밴플리트 장군이 정말 대단한 게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로 서울이 세번째로 함락당할 위기였는데 한반도의 수도라는 서울의 중요한 정치적 가치를 고려해 서울을 다시는 내주면 안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는 겁니다. 뛰어난 전략,전술을 바탕으로 서울 바로 위인 송추,의정부까지 내려온 중공군을 더 남진 못하게 필사적으로 막았고 이로 인해 공산군은 두번 다시 서울에 발을 못 들이게 되었죠
밴플리트 장군이 가장 최우선으로 중요시한 것은 서울을 안전히 방어하고 서울을 수도로 유지할 수 있게 전선을 올린다는 것입니다. 밴플리트와 리지웨이 장군은 서울을 수도로 유지하기 위한 생명선을 서부에서는 한강하구와 임진강하류, 중부에서는 연천,철원과 김화 지역으로 설정했답니다. 최소 이 지역까지 전선을 형성하지 못하면 서울 자체는 대한민국 영토로 유지하지만 군사지리 문제로 수도로 유지할 수는 없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코리아 소사이어티는 미국인들의 후원을 받아 거지나라 대한민국의 수많은 청년들을 미국으로 유학보내고 또 전세계 미국의 원조국중 가장 많은 원조를 받게 도움을 줬는데 그 때마다 미국조야에선 왜 빅짐 당신은 수많은 나라에서 전쟁을 했지만 유독 한국만 편애하냐고 하자 빅짐은 한국은 그 수 많은 원조를 위정자들이 착복하지 않고 모두 교육과 국가건설에 사용하는 유일한 나라고 설득했고 또 그 지원이 잘 진행되는지 집적확인하기 위해 한국을 수도 없이 방문 했던겁니다. 또 밴플리트가 만든 육군사관학교에서 대통령을 3명을 만들어 대한민국을 지금의 선진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존경스러운 밴플리트장군! 육군사관학교를 함께 졸업한 동기가 대장과 중장일 때 본인은 대령, 그것도 탐탁치 않은 오해로 벌어진 진급 누락. 참 쉽지 않은 상황이었을 텐데 그런데도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며 견뎌내서 끝내는 그 능력을 인정받았고, 대한민국을 공산당으로부터 지켜내는 중책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전후 대한민국이 지금처럼 발전하는데 밑거름을 만들어준 숨겨진 히어로 영웅! 많은 우리 국민들이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역전다방 고맙습니다^^ 밴플리트 장군 고맙습니다^^* 제가 다녔던 국민학교(초등학교)엔 3 종류의 교사가 있었습니다. 3학년이 쓰는 일제시대 때 지은 교사. 1학년 4학년이 쓰는 유엔군(미군)이 지은 교사 2. 5. 6 학년이 쓰는 한국인이 지은 교사.. 유엔군(미군)이 그렇게 교사를 열심히 지은 이유가 있었군요 ^^*
그전에 토크멘터리를 재미있게봤었는데 없어져서 아쉬워하던중 우연히 국방tv에서 역전다방을 보게되었는데, 이게 토크멘터리보다 훨씬 재미있게 구성/진행하더군요. 특히 채승병박사의 설명이 눈에띄게 재미있고 알기쉽게 설명해주셔서 잘 보고있습니다. 어쩌다 유투브에 1회부터 있는걸알게되어 140일전부터 매일 하루에 1회씩 돌파해서 드디어 140회까지 완주! 담주부터는 이제 매주화욜 정규방송을 정주행할생각입니다. 진행하시는 4분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아들인 지미 밴플리트 중위가 군산 울프팩 공군기지에서 폭격기 조종사로 단독 폭격 첫 임무 나가서 실종됨...그리고 군 당국에 수색작전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함...수색하다가 다른 군인들의 희생이 커진다고...대단한 사람이기는 함...게다가 웨스트 포인트 동기인 아이젠하워가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한국전쟁 전선 시찰 왔다가 3사단 대대장으로 복무중이던 아들을 후방으로 전출 시켜달라고 요청했을때...이게 무슨 말씀이시냐고 반문했을때...아이젠하워가 전사 하면 가문의 영광이지만...만약 포로가 된다면...군 통수권자로서 결정할때 이성적인 결정이 어려울 수 있다고 요청했다고 하자....아이젠하워 아들을 후방으로 보낸 일화는 유명함...6.25당시 대통령 당선인의 아들...장관 아들...미국 CIA국장 아들, 4성 장군 아들부터 장군의 아들들까지...정작 당사자인 우리나라 고위직 공무원들과 부자들 자식들은 군대에 안갔는데...
서울을 다시는 적에게 내주면 안된다는 강경한 전략을 고수한 것은 실제 이미 두번이나 적에게 내준 경험이 있고 이번 사태로 한번 더 서울을 먹히게 되면 이제는 한강 일대에서 전선이 고착화되어 굳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입니다. 북진통일을 못하고 휴전을 하게 되어도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한반도에서 가장 큰 대도시인 서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유민주주의 나라의 온전한 도시로 유지하고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한국인들의 염원이고 이를 고려해 밴플리크와 리지웨이 장군도 전략을 만들고 실행했다는 게 중요합니다
19세기 영국 수상을 지냈던 탬플, 외무장관으로서 1843년 하원 연설. " 국제관계엔 영원한 동맹도, 영구적인 적도 없다. 우리의 관심은 영원한 국익뿐이며, 국익추구는 우리의 의무. " " We have no eternal allies, and we have no perpetual enemies. Our interests are eternal and perpetual, and those interests it is our duty to follow. " 지난 수 백 년, 영국과 전쟁한 적들 ---------------------------> 프 + 독 + 러 + 스페 + 네 + 미 + 중 + 일 + ... 지난 수 백 년, 영국과 함께한 동맹 ---------------------------> 프 + 독 + 러 + 스페 + 네 + 미 + 중 + 일 + ... 영국은 지난 수 백년간 세력균형 정책으로 유럽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프랑스가 쎄지면 프로이센(구독일)등 꼬드겨 프랑스 두들겨 패고, 독일이 강해지면 얼마 전까지 두들겨 패던 프랑스 달래서 함께 독일 몰매하는 과정의 무한 반복 루프, 당한 넘들이 바보. -------------------------------------------------------> 프-독 등이 바보라서 당한 것 아닐 겁니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저렇게 몰려버린. 한반도에는 그 보다 더한 바보들이 널렸죠. 프랑스나 독일은 깃발 날리고 유럽을 휩쓸기도 했지만, 한반도에선 바보들이 내부에서 외세 부추김 당하면서 내부 초토화를 스스로 가열차게 했으니. 미국은 과거 영국에 비하면 서툴지만, 그래도 꽤나 현란한 테크닉으로 세계를 요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반도는 미국과 영국에게 확실하게 당했던 역사가 있음을 명심해야. 지난 세기초 미국과 영국은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영일동맹으로 한반도를 일본에 넘겼습니다. 일본은 미국 영국의 동맹으로 선택되어 극동에서 러시아-소련의 남하는 막는 미영의 방패로 기능했습니다. 미영의 동맹이었기에 1차대전 연합국으로 참전. 반식민지 상태였던 중국의 독일 조차지와 중부태평양 독일령 마리아나 제도를 1차대전 이후 점령 또는 신탁통치령으로 획득해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의 발판 전진기지 획득했던 것.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으로 일본에게 뺨싸대기 쳐맞은 이후에야 미영은 우리 독립운동을 지원. 생각해보길 진주만 이전 일본이 미영의 극동 행동대장 시절 미영이 우리 항일독립운동 지원할 수 있을지. (1898년 미-스페인 전쟁 승리로 쿠바와 필리핀 탈취. 스페인이 전쟁에 패배하자 그 틈에 필리핀은 독립선언 하고 제1공화정 선포. 승리한 미국은 무력 진압에 나서 약 60만의 인명 피해 발생. 명백히 미국은 국익을 위해 스페인과 전쟁. 필리핀인들의 자유, 민주주의, 민족자결 위해 전쟁했다면 왜 무력 진압했겠습니까?) 지난 세기 미국은 한반도에 병과 약을 모두 주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지원만 고마워해선 안되는.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38선 그리고 미 극동방어선 에치슨 라인에서 대한민국 배제. 카쓰라-태프트 밀약으로 한반도는 일본 지배 확정되었고, 미국의 미숙한 전후 처리 과정에서 38선 분단. 38선 분단 이후 애치슨 라인 배제로 남침 욕망을 극대화시켰던. 미국이 개입했던 외부 요인도 중요했던 지난 세기 한반도 암흑, 잊어선 안되는. 한국전 이후 혈맹으로 거듭났다지만 외세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일방적 믿음 역시 잠재 위협 요소입니다. 물론 민족분단과 동족상쟁의 가장 큰 책임은 우리 민족 내부에 있습니다. 남북간 극한 투쟁과 대한민국 내부의 적대적 분열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한반도의 미래 없습니다. (한 때 유럽 열강 제국이었던 오스트리아. 2차대전 독일 패전 후 미영프소 연합국 4개국에 분할 점령 신탁통치 후 영세중립 선언. 저들의 좌우익은 민족 내부 투쟁 피했습니다. 우린 옳다는 확신과 불타는 적개심으로 서로 쳐죽여댔고.) 19세기 영국 수상을 지냈던 이가 했던 발언 무시무시한 겁니다. 저런 지도자 국가가 존재하는 지구촌에서, 넋빠진 이들이 영원한 혈맹 운운하며 공동체 내부 투쟁에 몰두하기에, 저런 국가들이 세계를 쥐락펴락 해왔고, 해오고 있고 앞으로도 할 예정. (어디에 좌우 구분이 있는지 냉정하게 생각해야, 좌우 아닌 안밖의 투쟁이 결정적.)
민족분단과 동족상쟁의 가장 큰 원인은 물론 우리 민족 내부 적대적 분열 투쟁. 하지만 외부적 요인 역시 존재했습니다. 서구제-동구제 이데올로기가 수입되면서 더 큰 내부 적대적 투쟁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또한 외부 요인이 단순히 우리가 이데올로기를 수입한 정도에서 그친 것이 아닌 + 한반도 분단의 가장 결정적 물리적 요소로 작용한 측면도 있습니다. ruclips.net/user/shorts4xYAzsdguHo --------------------------------------------> 1945년 8월, 처음 계획된 --------------------------------------------> 미영중소 연합 4개국에 의한 일본 분할 점령 계획안. --------------------------------------------> 일본만이 아닌 한반도 역시 미영중소 4개국이 분할 점령해 일본군 무장 해제 계획이었지만 결국 변경된. ruclips.net/video/8ldqolPJIG0/видео.html The British Occupation of Japan --------------------------------------------> 2차대전 종전 후 독일-오스트리아-일본에 대한 연합군 분할 점령 관련 내용. --------------------------------------------> 유럽에선 전범국이 미영프소 4토막 분할 점령되었지만, 극동에선 전범국 일본 아닌 한반도가 미소 2토막 나눠 먹기. --------------------------------------------> 전범 일본에 대한 연합국 점령 계획안이 어떻게 사실상 거의 미국 단일 점령에 가깝게 ( 영국이 약간 점령하는 형태 ) --------------------------------------------> 바뀌는지 보길. 소련의 일본 홋카이도-혼슈북부 점령 철회 + 영국의 일본 점령지 축소 + 중국의 일본 점령지 0화 한국전쟁은 외세의 역활도 무시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치명적일 수도 있습니다. 미영중소 4개국의 한반도 분할 점령 계획안 검색해서 찾아보길. 소련 점령 예정지는 함경도 일대에 국한되고 한반도의 대부분은 미영중이 점령하는 형태. 만일 일본과 한반도의 4개국 분할 점령 계획대로 전후 처리가 실시되었다면, 동서독에서 서독이 훨씬 컸던 그 조건과 본질적으로 같아져, --------------------------------------------------------------> 함경도 귀퉁이 차지한 물리적 조건에서 한국전 발발은 사실상 힘들었을 것. --------------------------------------------------------------> 소련군 점령 예정지는 인구 측면에선 미영중 점령지에 비한다면 압도에 압도에 압도되는 수준. --------------------------------------------------------------> 또한 모택동 아닌 장개석군이 한반도에 진주하는 조건에서 중국 공산화 역시 조금은 더 힘들었을 것. ---------------------> 미국이 일본 전체 점령 욕심 부리면서, ---------------------> 그 반대급부로 한반도 38선 이북을 소련에게 떼어주는 선택을 한 것. ---------------------------------------------> 유럽에선 전범국 독일과 독일어 사용하는 오스트리아가 미영프소 4개국에 분할 점령되었지만, ---------------------------------------------> 태평양전쟁 종전 처리 과정에선, 미국의 주도적 역활로 전범국 일본 아닌 한반도가 유탄 맞은 것은 치명적 민족분단 원인. ---------------------------------------------> 오스트리아는 4개국 신탁통치 후 영세 중립 선언, 하지만 ---------------------------------------------> 오스트리아는 내용적-경제적으로 사실상 친서방 서구 민주주의 국가가 된. 그 이유는 ---------------------------------------------> 미국-영국-프랑스군의 점령과 서방측 원조가 친소 공산세력의 확산을 저지 + 현명한 오스트리아 내부 타협 때문. ---------------------------------------------> 한반도의 좌우익은 정파적 승리를 위해 외세와 결탁해 자발적 내부 투쟁에 돌입했지만 오스트리아 좌우익은 달랐던. 그리고 미국의 태평양 전쟁 막판 끝내기는 인류 역사상 아마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대악수, 최악의 오판 삽질. ---------------------------------------------> 사실상 태평양 전쟁 승패 결정된 상태에서, ---------------------------------------------> 미군 희생 좀 더 줄여보겠다고 + 소련의 대일전 참전 요청 + 소련은 형식적으로 미국의 요청을 수용하면서 ---------------------------------------------> 과장 아주 아주 조금 보태 일본 항복 1초 전에 + ( 게다가 태평양 전쟁 기여도 0 상태에서 ) + 만주 전체와 한반도 절반 점령. ---------------------------------------------> 소련 입장에선 그냥 굴러 들어온 떡. ---------------------------------------------> 만주만 점령해도 중국 국공내전 모택동의 승리를 결정지을 조건에 + 추가로 한반도 절반 떼어준다는데 왜 거부합니까? 덜떨어진 미국이었지만 자신들이 오키나와에서 악전고투 하던 그 무렵, 미국의 요청으로 소련군이 만주를 침공할 경우 사실상 한반도 전체를 무혈 점령 가능성 뒤늦게 깨닫고, --------------------------------------------------------------------> 허겁지겁 수정안 즉 38선 경계로 북의 소련군 점령을 용인하면서 소련의 한반도 전체 점령 막는 잔머리. --------------------------------------------------------------------> 소련군이 만주 점령한 그 순간 ---------------------------> 중국 국공내전 모택동 승리, 장개석 패배 확정. --------------------------------------------------------------------> 소련이 만주 점령, 일본군 무장 해제만 하겠습니까? --------------------------------------------------------------------> 소련군이 무장 해제한 일본군 무기는 사실상 모택동에 가는 겁니다. --------------------------------------------------------------------> 또한 소련군이 점령한 만주는 모택동이 대륙 전체를 노리는 배후 강력한 거점으로 변하는. -------------------------------> 저렇게 허접했던 미국, 아마도 소련이 오케이 해준 순간 --------------------> 한반도 절반은 건졌다면서 속으로 만만세 외쳤을 것. 1945년 당시 세계 유일 핵 보유국으로서, 미국이 정상적인 판단했다면 이랬어야 하는 겁니다. ---------------------> 소련에 대한 강력 경고, 대일본전 지원 빌미로 감히 만주-한반도 발 내딛지 말라!!! --------------------------------------------------------------------------------------------------------> 태평양 전쟁 기여도 0에 + 일본과 소일-불가및 맺은 주제에 감히 나대지 마라!!! --------------------------------------------------------------------------------------------------------> 혹이라도 일본 항복 밥상에 숟가락 얹는 꼼수 부리면 핵무기 사용해서라도 막겠다!!! 한국전쟁 유엔군 파병, 소련이 거부권 행사했다면 불가능, 왜 소련이 안보리 불참 기권했는지도 냉정히 생각해보길. -------------------------------------------------> 독소전에서 우랄 서부 소련의 핵심 유럽 지역이 사실상 완전 토초화 + 민간인 포함 거의 2천만 인명 피해 상태에서 -------------------------------------------------> 강력하지만 덜떨어진 미국을 극동의 국지전에 몰아 넣고, 동구권에서 철의 장막 확실하게 치려고 의도적으로 기권한 것. -------------------------------------------------> 미국이 한국전쟁에 붙들린 사이에 소련은 동구권에서 철의 장막 완성했던 것 부인하기 어려운. -------------------------------------------------> 국가 이익이 충돌하는 장에서 소련-스탈린이 정말 쫄아서? 멍 때리다 안보리 출석 못해 유엔군 파견??? -------------------------------------------------> 스탈린은 독소 불가침 + 일소 불가침 맺었던 음흉한 넘이기에 순진하게 멍 때렸다고 보기 어려운. 만일 영국 없이 미국 단독으로 유럽에서 종전 협상했다면 미국은 소련에게 완벽하게 당했을 것. -------------------------------------------------> 영국은 1944년 그리스에 상륙, 공산 빨치산 토벌 + 티토 유고 지원하며 반소 독자 노선 걷도록 유도. -------------------------------------------------> 미국은 유럽에서도 그저 그저 그저 ... 하루라도 아니 1초라도 빨리 미 본토로 돌아가려 정신 넋 빠졌던. -------------------------------------------------> 그러다 전후 막상 철의 장막 현실 보고서, 뒤늦게 처칠 초청해서 철의 장막 연설 들으며 박수쳤던 뒤늦은 수습. 또한 지난 세기 초, 미국과 영국은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영일동맹으로 일본을 극동의 파트너로 선택 러시아-소련의 남하를 저지하는 역활 일본에 부여. 한반도의 일본 지배는 그렇게 사실상 최종 결정된 겁니다. ----------------------> 일본에 먹힌 한반도 때문에 태평양전쟁 종결 과정에서 38선이 태어난 것도 명백. 만일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기습이 없이 일본이 미영의 극동 지부 행동대장으로 만족하고 계속 미영의 편에 남았다면 21세기 현재도 한반도와 만주는 여전히 일본령 가능성 압도적. 따라서 한국전 이후 한미 관계만 보며, 미국에 대한 지나친 합리화는 위험. 우리 민족은 이미 지난 세기 초 미국에게 제대로 뒤통수 쳐맞은 경험도 있었다는 점에서.
1. 100 Greatest Generals in History 역사상 승리 많은 장군 랭킹 : 전투 중요도 가중치 없이 횟수만, 나폴레옹 1위 ruclips.net/video/TmSQriq0zTc/видео.html 2. Have the British really invaded 90% of the countries in the world? 영국은 전세계 국가 90%를 실제로 침략했는가? ruclips.net/video/t86J_zZjjq4/видео.html : 유엔 회원국 193개 시점에서, 무려 171개국 군사적 침공 1. 승리 횟수로 본 장군 랭킹 정리 1위 나폴레옹 56회, 2위 웰링턴 39회, 3위 칼리드 이반 알 왈리드 28회, 4위 줄리어스 시저 23회, 5위 알렉산더 22회 전투 승리 횟수로 본 국가 랭킹과 달리 실제 체감과 차이가 훨씬 더 나는 편입니다. 단순한 전투 승리 횟수 보다 전투의 중요성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국가 랭킹에서는 누적 전투 수가 1만회를 넘어가지만, 장군 지휘관들의 한 평생 전투 누적 기록은 아무리 많아도 100회를 넘기 어렵게 때문에 통계적 오류 발생 확률이 커서. 하지만 그렇게 단순화시켜도 랭킹 1위, 4위, 5위에는 나폴레옹, 시저, 알렉산더가 포함됩니다. 문제는 한니발과 같은 위대한 장군이 20위 근처인데 그런 부분은 결정적 오류라고 보아야 할 겁니다. 전투 횟수 산정에 애매한 점이 있기 때문이죠. 한니발은 알프스를 넘어 이태리에 진공한 다음 로마군과 거의 20년을 이태리 반도에서 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치러진 전투를 어떻게 구분하고 횟수 산정할지 지극히 애매하죠. 한니발은 횟수만이 아닌 질도 결정적이죠. 고국 카르타고의 지원 없이 고립된 상태에서. 섬멸전의 원조, 망치와 모루의 원조인 칸나 전투 하나만으로도 한니발은 1위가 될 여지가 있습니다. 문제는 한니발은 최종적으로 로마에 패했다는 약점이 있고, 알렉산더는 아예 패전을 경험한 적이 없이 젊은 나이에 병사. 승리 횟수로만 산정할 때 일본 전국시대 장수들이 꽤나 순위에 들어가는 오류도 생깁니다. 그런 부분들은 고려하면서 영상 보면 될 겁니다. 충무공이 11승으로 나오는데, 23전 23승 아닌 무패로 본 모양. (충무공의 23전에는 매우 인접한 장소에서 몇 일 사이에 벌어진 전투를 각각 셈한 결과. 그런 전투들은 1개로 통합될 여지도.) (충무공의 23전 식으로 횟수 산정할 경우, 2차대전 대서양 해전은 어마어마한 횟수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 수송선단과 유보트 교전 횟수는 약 1,000회에 개별 항해 선박과 유보트 교전은 수천 회에 달하지만 모두 다 교전 횟수로 계산하지는 않았겠죠.) 근대 이후로는 단연 나폴레옹이 압도적입니다. 1차, 2차대전의 탁월했던 그 어떤 독일 장군도 감히 넘보지 못할 기록이며 나폴레옹은 프랑스 대혁명 중반부 이후 포병 장교로 등장해서 워털루에서 패배 까지 20년 동안 유럽을 석권. 1차 대전 독일 4년, 2차대전 독일 6년과 비교할 수 없고 나폴레옹은 모스코바를 점령 후 후퇴했지만 독일은 불가능했죠. 웰링턴의 승리 횟수 상당 수는 스페인에서 벌어진 전투 때문입니다. 나폴레옹이 자신의 형제 친척들은 유럽 각각의 국왕으로 임명하면서 스페인 국왕 역시 그렇게 되었죠. 그 때문에 스페인과 포르투칼에서 반 프랑스 봉기가 일어났고, 영국은 10년 이상 이베리아 반도에서 장기적 전투를 수행. 스페인 전역에서 영국군은 프랑스군에 패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기억이 희미한데 프랑스가 스페인에서 손실한 병력이 10년 동안 누적해서 대략 30만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가랑비에 몸이 젖은 셈이죠. 만쉬타인, 구데리안, 롬멜, 패튼 몽고메리 등도 나옵니다. 롬멜, 패튼, 몽고메리는 제 아무리 유능한 장군이라고 해도 만쉬타인급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2차대전에서 그토록 유능했던 전쟁의 대가 만쉬타인 조차도 인류 전쟁사에선 앞 순위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 독일과 영국의 가장 큰 차이 독일은 무수한 전투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전쟁엔 패배. 영국은 수 많은 전투의 패배에도 결국 전쟁에선 승리. 그 원인은 전투의 중요도 결정성 때문. 1588년 무적함대 격파는 세계제국 팽창 시발점, 1592년 임진왜란 발발 후 충무공의 승리는 조선의 강대국 부상과 아무 관련 없고. 영국 북미와 인도에서의 결정적 승리로 대륙 장악, 트라팔가와 워털루는 유럽의 향후 100년을 결정. 독일은 분명 압도적 대승을 거두었지만, 전략적으로는 결정적 승리가 아닌 지역적 일시적 승리에 지나지 않았고. 2. 영국은 과연 오늘날 존재하는 전세계 모든 국가 90%를 그 어떤 이유건 침공한 적이 있는가? 정리하면 상당 부분 근거는 있는 것 같군요. 침공 후 지배 까지는 아니더라도 군사적 개입, 주둔, 압박. 동영상에 소개된 책자 발행 시점 당시 유엔 회원국 193개국 중에서 무려 171개국이 영국의 군사적 침공을 경험. 현 최강국 미국의 대통령 관저 : 화이트 하우스, 불 탄 후 흰색 페인트로 가림. 나폴레옹 전쟁과 같은 시기 잠시 일어났던 미영 전쟁 중 수도 워싱턴이 점령당해 대통령 관저가 불타버렸죠. 막강한 군사강국 러시아 : 크림 전쟁 때 크림 반도만 점령당한 것이 아니고, 그 무렵 극동에서 캼차캬 반도 까지 일시적이지만 점령당했습니다. 그 충격으로 알래스카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미국에 매각했죠. 알래스카는 영국령 캐나다와 미국과 접하고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영국이나 미국에 먹힐 것이라고 판단해 손 턴 것. 러시아 혁명 당시 적백 내전이 벌어졌고, 영국이 주도한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이 무르만스크, 흑해의 크림반도, 극동의 블라디보스톡 등에 상륙해서 상당기간 점령. 하지만 트로츠키가 지휘하는 적군의 승리로 백군 반혁명군이 패배하자 결국은 모두 철수. ( 적백 내전 당시 영국군이 상륙 점령한 곳은, 북극해 무르만스크 + 발트해 페테스부르크 + 흑해 크림반도 + 카스피해 일부 지역 + 극동 블라디보스톡 등. ---------------------------------> 프랑스 3군데, 미국은 2군데? 상륙, 일본은 블라디보스톡 1곳 상륙. 영국은 5곳 모두에 발 걸치고 공산혁명 진압 시도. ) 중국과 인도는 말할 필요도 없고. 카리브해와 남미에도 영국령 섬들과 영령 가이아나. 심지어 조선말 우리도 거문도를 점령당했죠. 일본 역시 일부 지역 번들이 영국과 소규모지만 전쟁 했고. 프랑스는 백년전쟁의 전쟁터, 독일은 18세기초 말버러공이 이끄는 대륙 원정군의 전쟁터. 지중해는 영국의 연못. 중동 아프리카 생략. 정리하면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가들의 대다수는 영국의 직간접 침공, 주둔, 압박등 경험한 적이 있다. 없는 곳을 구태여 찾자면, 바다로 부터 완전 격리된 몽골과 같은 정도. 그런데 다른 강대국들과 차별되는 점이 있죠. 대영제국은 위대한 영웅에 의존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건설되었다는 것. 알렉산더, 징키즈칸, 시저, 나폴레옹 급의 탁월한 군사지도자 없이 고만 고만한 장군들과 그렇게 많지 않은 병력으로 세계 최초로 전세계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가 되었죠.
1. 4,500년간 전투 승리 횟수 국가별 랭킹 : BC2,500~2,017년, 위키디피아 오른 전투들, 중요도 무시 오직 횟수, 내전 포함. ruclips.net/video/HK5OsDWYJmQ/видео.html 1위 프랑스 1,115회 , 2위 영국 1,105회 , 3위 미국 833회 , 4위 러시아 491회 , 5위 독일 425회 6위 스페인 387회 , 7위 폴란드 344회 , 8위 로마 259회 , 9위 중국 244회 , 10위 터키 210회 위키디피아 등재된 전투가 어떤 규모 이상인지 아니면 규모 상관 없이 역사 기록에 남은 전투 모두인지 모름. 승률이 아닌 승리 횟수만을 반영한 통계. 프랑스가 횟수로는 근소한 차의 1위지만, 승률로는 1위는 아닌 느낌. 2차대전 대서양에서 벌어진 해상 전투들은 나타나지 않는 것 같군요. 4,500년 전체 관점에서는 미미한 오류. 하지만 프랑스와 영국의 미세한 차이는 역전되고도 남을만한 누락임도 분명합니다. 영국은 수 백년 동안 해상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반으로 강대국으로 거듭났는데, 대규모에 결정적인 해상 전투들도 누락된 느낌. 마찬가지로 항공전도 빠진 것 같습니다. 그렇더라도 4,500년 장기 통계엔 거의 영향은 없고. ( 아마도 영국 항공전 포함 유럽에서의 항공 전투를 1개의 전투 취급했거나 + 대서양 해전의 무수한 유보트 전투들을 종합해 1개의 전투로 처리했을 수도 ) 세계지도에서 전투 발생을 점으로 나타내며 승리 횟수 높은 국가 순으로 자막이 나옴. 인용된 총 전투 수는 약 10,600개 전투의 중요도 가중치 없이 모든 전투를 1회로 단순 평가. 내전에서의 전투 또한 1회로 취급해서 실제 타국과의 전쟁에서 군대의 강력함을 반영하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측정해도 결과는 현재 강대국들 다 포함. 비스마르크 통일 독일제국에서 1,2차 대전 까지 막강했던 독일이 5위로 조금 낮은 평가인듯 하지만, 4,500년의 누적임. 로마는 로마공화정과 제정로마를 모두 합산했는데, 생각 보다 전투 횟수가 많지 않은 듯. 중국의 경우는 주로 한족 왕조만 따진 것 같음. 몽골 등이 별도로 계산. 하지만 청나라는 중국으로 환산됨. 즉 국적 분류가 딱부러지게 쉽지만 않고 애매할 수가 있음. 청 등이 중국으로 분류되었다면, 한족 주도의 중국의 승리 횟수와 승률은 추가로 하락하게 됨. 프랑스와 영국은 거의 같은 횟수, 그 두 나라 사이의 전투가 아마도 상당한 비중일 것임. 백년전쟁 여파로. 프랑스는 승리 횟수로 간발의 차이로 영국에 앞선 1위지만, 결정적 전쟁에 패한 충격이 크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1위 아님. 나폴레옹 때문에 프랑스의 1위가 결정된듯. 하지만 나폴레옹 몰락 후, 특히 보불 전쟁 부터 프랑스는 중요한 전쟁에서 패배한 취약점이 있음. 프랑스의 승리에 노르만 정복을 포함한다면 수정 필요. 노르만 정복의 승리로 현재의 영국이 완성되니까 영국의 승리, 영국의 내전 횟수로 기록해야 되는데 파악할 길은 없음. 노르만과 앵글로색슨 왕가는 애초 친척지간. 친척간의 왕위 다툼. 미국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3위. 하지만 남북전쟁으로 내전에서 승리 횟수도 상당히 많음. 폴란드 전투 승리 많은 편. 폴란드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부 세계사에서 막강했던 세력들이라 간단한 어림셈도 상당히 정확한 결과를 낸듯. 2. 거의 같은 자료, 세계지도가 아닌 국가별 통계로 1위~100위 까지 나열한 랭킹 총 전투 횟수는 약 12,000회로 더 많음. ruclips.net/video/xgLKVaJwpXY/видео.html 1위 2위 ...10위 결과는 1번 자료와 동일함. 승리 횟수도 같거나 거의 같음. 미국은 역사가 아주 짧지만, 남북전쟁 이후 1차 2차대전 참전과 2차대전 이후로는 현재 까지 꾸준히 계속 전투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3위에 오른 것 같음. 영국은 2차대전 이후에도 미국과 거의 같은 전장에서 함께 전투하기 때문에 승리 횟수도 늘고. 저런 통계를 분석한 사람이 외국에 존재한다는 것, 사용된 원본 데이터에 상당한 오류나 누락이 있을 수 있지만, 크게 크게 보았을 때 지난 4,500년간 역사의 큰 흐름을 파악하게 하는 분석을 시도했다는 것, 시야 대단히 넓은 것. 개인적으로 정리한다면, 1. 4500년간 전쟁이 가장 많이 일어난 곳은 유럽. 2. 주관적 가중치 부여하면, 가장 강력한 전투 민족은 영국 범게르만의 일족으로 통합한다면 영국 미국의 앵글로색슨과 독일. 미국의 인구 구성 조차도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즈-북아일랜드를 통칭한 영국계 및 독일계가 백인의 주류. 3. 1차 2차대전 독일의 막강함이 인상적이었지만, 미국이 독일 아닌 영국으로 부터 건설되었듯 영국의 영향력 결정적. 4. 영국은 과거나 지금이나 군대의 규모, 병력 수에서는 다른 경쟁국 보다 작지만 승리 많고 결정적 승리를 반복. 그 전통이 여전히 남아 미 육사의 샌드허스트 경연에서 영국과 영연방에 미국 조차 압도당할 정도로 지난 수 백년 지구촌 최강 전투 민족은 원조 앵글로색슨. 사관생도들 경연에서 저런 결과, 그 원인은 소규모지만 꾸준히 어디선가 계속 전투 중이고, 그 전훈을 지속 엎데이트 하는 걸로 추정. 실전 경험 없는 군 또는 실전 경험은 있지만 전훈을 엎데이트 하지 않는 군의 생도들 압도. 5. 위키디피아에 등재된 기록은 일단 영어가 압도적이고 분석하는 사람도 영어 자료를 분석했을 듯. 따라서 영어권 아닌 지역의 전쟁이나 전투 기록은 영어로 올리지 않는다면 제외될 수도. 그래서 아프리카,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서 고대 발생한 전쟁들, 고대 몽골 초원의 전투들을 모두 포함했는지 확인 안됨. 즉 역사는 실제 사건 발생 여부를 떠나, 기록을 남긴 자들의 영향력이 더 크게 남음.
주적 개념과 + 주적을 구태여 명시할 필요성, 둘 모두 심각히 고민해야 합니다. 특히 한반도 민족 내부 주적질과 완전 대비된 철천지 원수 이민족 연합체의 세계 패권 장악과 내부 패권 승계 무시할 수 없는. 내부 주적질 >>>> 남북의 극단적 좌우익 사생결단 투쟁관 -------------------------------------------------------> 아직 인류는 아와 비아의 투쟁 예외 없으며, -------------------------------------------------------> 모든 도전은 비아로부터 아를 향해 오며 + 그 도전에 대한 응전을 아가 하는 것. -------------------------------------------------------> 아와 비아의 투쟁 및 도전과 응전, 단순히 인간의 역사에만 적용되는 것 아닌 바이러스와 그에 대한 인간의 대응도 내포. 내부 주적질에 대해 냉정할 필요, 대한민국 유신-두환 시절 초중고 학생들은 사실상 국가가 제시한 이념으로 가축과 같이 사육되었지만 그들이 가장 강력한 반독재 투쟁자로 번한. 통행금지 + 국민교육헌장 암기 + 국기하강식 + 고등학교 여학생도 교련 + 대학생 교련만이 아닌 전방 입소와 문무대 교육에, 북과 유사하게 뻑하면 학생들 동원해 궐기대회 규탄대회 + 해 마다 6.25 무렵이면 국민학생들이 학교 운동장 빙빙 돌며 행진하며 6.25노래 부르고. --------------------------------------------------------> 냉정하게 본다면 유치 찬란, 북이 아직도 하는 짓거리와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 깨닫길. 생각해보길. 한반도 남북의 6.25노래 가사 보면서 두려움에 떨 세계인들이 얼마나 될지. ------------------------------------------------------> 아마도 가사 확인한다면, 세계인들 다수는 재들 같은 민족끼리 왜 저래??? 생각해보길. 철천지 원수 켈트-앵글로색슨 연합체 연합왕국의 룰브리타니아 가사 보면서, 세계인들이 연합왕국 우습게 여길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길.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모국 영국이 반공을 국시로 하고 구소련과 현중국을 과연 주적으로 명시했는지. 주적 명시는 어리석은 겁니다. 명시하건 하지 않건 주적에 대한 대비만 철저하면 됩니다. 한국전 직전 주적에 대한 적개심 노출 및 개전 직후 전선 붕괴가 반례. ----------------------------------> 한국전 직전 일부 국군 장성들이, ----------------------------------> 주적 북괴에 대한 적개심과 자심감을 밝혔어도, 개전 직후 전선 붕괴. ----------------------------------> 그들은 이렇게 자신만만 했었습니다., 전쟁 터지면 점심은 개성 저녁은 평양. 그러나 현실은 완전 달랐던.
다음주에는 사창리 패전을 극복한 6사단의 이야기가 나오겠네요.사창리 패전을 결사의 정신으로 무장해서 되갚아준 장도영장군님과 청성부대의 용문산 파로호대첩이 기대됩니다. 밴플리트장군의 외아들은 공군으로 참전해서 평양 이북을 폭격하다가 비행기가 피격되서 실종되었는데 밴플리트장군이 수색중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다른 군인들이 희생된다는 이유로 힘든 결정을 했습니다. 나중에 극비문서를 통해서 밴플리트주니어 대위는 1970년대까지 소련의 감옥에서 생존했다는 문서가 발견되었죠.그때 수색대와 구조대를 투입해서 샅샅히 수색했다면 아마도 아들을 찾을수도 있었겠네요.
벤플리트 장군님... 정말 감사합니다.. 미국은 진정한 혈맹 중의 혈맹이다.
밴플리트 장군을 존경해야 하는게 자국도 아닌 태평양 건너 극동의 작은 나라를 위해 이렇게 열심히 전략,전술을 짜고 작전을 펼쳐 대한민국을 사수하도록 활약을 했다는 점입니다. 남의나라 전쟁이지만 자국처럼 여기고 헌신을 다했다는 점에서 참된 군인의 표본으로 존경해야 합니다
소설 검은머리 미군대원수 때문에 전쟁사에 빠지고 밴플리트장군을 알게 됐는데 이분 ㄹㅇ로 미군역대 장군중에 제일 친한파임. 밴플리트장군 한번검색해 보시는걸 추천드림.
검은머리 대원수 강추!! 이름이 병맛이라 유치하다고 생각할수도 있는데 정말 재밌게 잘쓴 소설임 역사물 전쟁사 좋아하시면 꼭 보세요
문피아 부동의 역작 GOAT 라인중 하나라고 봅니다 ㅋㅋ 양장본 소장하길 잘햇다
밴플리트 장군이 정말 대단한 게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로 서울이 세번째로 함락당할 위기였는데 한반도의 수도라는 서울의 중요한 정치적 가치를 고려해 서울을 다시는 내주면 안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는 겁니다. 뛰어난 전략,전술을 바탕으로 서울 바로 위인 송추,의정부까지 내려온 중공군을 더 남진 못하게 필사적으로 막았고 이로 인해 공산군은 두번 다시 서울에 발을 못 들이게 되었죠
바로 화력으로 탄막을 친거죠!밴플리트 탄약량 일일 탄약소모량의 5배가 아닌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만큼 지원해주고 추후 계산한다는 개념이죠!
밴플리트 장군이 가장 최우선으로 중요시한 것은 서울을 안전히 방어하고 서울을 수도로 유지할 수 있게 전선을 올린다는 것입니다. 밴플리트와 리지웨이 장군은 서울을 수도로 유지하기 위한 생명선을 서부에서는 한강하구와 임진강하류, 중부에서는 연천,철원과 김화 지역으로 설정했답니다. 최소 이 지역까지 전선을 형성하지 못하면 서울 자체는 대한민국 영토로 유지하지만 군사지리 문제로 수도로 유지할 수는 없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게딱지-x3i중부축선
광화문에서 마포까지
400문의 포를 방렬하여
북한산 너머의 중공군에게
밴플리트 탄약량으로 쏘았던것, 생각만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장면입니다.
미국사람이 어떻게 이같이 한국을 사랑할수 있는지
아버지같이
참 감사한분 입니다.
데릭 키니의 임진전투60주년 기념방문때 기자의질문에 대답한게 기억나네요ᆢ그때 그상황이 지금또생긴다면 어찌하겠습니까? 물과 탄알만 있었다면 지금도 그자리에 그대로 있었을겁니다ᆢ대단한 영국 29여단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건국과 발전에 가장 기여한 외국인물을 뽑으라면 단연 밴플리트 장군입니다. 맥아더나 워커 장군은 알아도 밴플리트 장군을 모르는 한국인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습니다. 미국의 코리아 소사이어티 에서 주는 상도 밴플리트상이죠. 이분을 다루는 영화가 나오길 바랍니다.
코리아 소사이어티는 미국인들의 후원을 받아 거지나라 대한민국의 수많은 청년들을 미국으로 유학보내고 또 전세계 미국의 원조국중 가장 많은 원조를 받게 도움을 줬는데 그 때마다 미국조야에선 왜 빅짐 당신은 수많은 나라에서 전쟁을 했지만 유독 한국만 편애하냐고 하자 빅짐은 한국은 그 수 많은 원조를 위정자들이 착복하지 않고 모두 교육과 국가건설에 사용하는 유일한 나라고 설득했고 또 그 지원이 잘 진행되는지 집적확인하기 위해 한국을 수도 없이 방문 했던겁니다. 또 밴플리트가 만든 육군사관학교에서 대통령을 3명을 만들어 대한민국을 지금의 선진국으로 만들었습니다.
😅
진짜 옛날 기록 영상보면
기존 8군사령관들은 전선 군 관련 행사에서만 보이지만.
밴 플리트는 부인과 함께 대한민국 주요행사에 대부분 참석하여 기록영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분..
미국은 진짜 고마운 나라다
동의합니다.
동감합니다!
영원한 우방은 없죠... 일본이 전쟁범죄 일으키고.. 분단은 한국이 되었습니다.. 왜? 일까요? 일본을 미국의 영향력 아래 두기위해... 한국을 완충지대로 둔 것입니다... 미국이 한국전쟁에서는 고마운 나라이긴 하지만... 항상 객관적 시선을 가져야합니다~~
@@하늘등대-p9h
소설은 이렇게 쓰는구나!
그렇다면 통일을 시켜서 완충지대로 쓰면 더 훌륭했겠지?
통일을 안 시키고 한 이유가 있냐?
영원한 동맹은 없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다.
다만 현실을 보고 동맹을 맺는 거다.
미국보다 더 좋은 동맹이 있냐?
@@하늘등대-p9h미국과 함께 싸운 6.25 전쟁 영상에 다는 댓글 수준 ㅋ
@@truth1472 소설이 아니길 바랬다면 미국이 38선 그을때 애치슨 라인에 한국은 왜? 없었을까? 역사 공부 좀 하시지~~
밴플리트장군님 감사합니다
벤플리트 장군 외아드님이 6.25 전쟁에서 대위로 사망했어요...강골무인, 진정한 군인 그 자체인 분입니다.
아들을 바친 나라가 잘 되길 바라는 건...당연할 지도 모릅니다. 사랑합니다. 장군님
존경스러운 밴플리트장군!
육군사관학교를 함께 졸업한 동기가 대장과 중장일 때 본인은 대령, 그것도 탐탁치 않은 오해로 벌어진 진급 누락. 참 쉽지 않은 상황이었을 텐데 그런데도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며 견뎌내서 끝내는 그 능력을 인정받았고, 대한민국을 공산당으로부터 지켜내는 중책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전후 대한민국이 지금처럼 발전하는데 밑거름을 만들어준 숨겨진 히어로 영웅! 많은 우리 국민들이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밴플리트 라는 이름을 모르고 살았는데 한국에게 참 고마운 사람이네요. 존경스럽습니다.
전라민중 하나되어.. 전라민중은 한미연합 훈련 중지와 통일방해하는 주한미군의 조선반도에서의 영구 철거를 주장한다..전라민중의 철천지 원쑤 맥아더와 밴플리트..
억울한 일로 진급도 못하고 동기들 3,4성 달때 대령이면 진짜 장포대처럼 깽판치고 노는 사람도 많은데... 정말 대단하신 분이었네요 우리나라 인복이 좋았네요
밴플리트 장군은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정말 고마운분 이네요.
역전다방 고맙습니다^^
밴플리트 장군 고맙습니다^^*
제가 다녔던 국민학교(초등학교)엔 3 종류의 교사가 있었습니다.
3학년이 쓰는 일제시대 때 지은 교사.
1학년 4학년이 쓰는 유엔군(미군)이 지은 교사
2. 5. 6 학년이 쓰는 한국인이 지은 교사..
유엔군(미군)이 그렇게 교사를 열심히 지은 이유가 있었군요 ^^*
벤플리트장군 한국군 사단 발전 공을 세웠지
밴플리트 장군의 외아들도 공군대위로 한국전쟁 참전했는데 폭격작전 도중 실종되어 귀환하지 못했습니다. 그 점도 이분이 한국에 큰 애착을 갖게 된 계기가 아닌가 싶네요.
벤플리트 정말 우리나라에겐 최고의 은인이였는데 지금까지 이름도 모르고 있었네요 ㅜㅜ
드디어 한국군의 아버지가 나타나셨네요. 다음 편에는 꼭 밴 플리트 장군이 어떻게 국군을 제대로된 군대로 변화시키는지 소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벤플리트 장군님 감사합니다
워커, 릿지웨이 장군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밴플리트 장군에 대해서는 이름만 들었지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잘 듣게 됐습니다. 정말 우리나라에 은인이시네요. 감사합니다.
벤장군의 행적을 보니 진짜가슴이 먹먹해진다...
위대한 밴플리트 감사합니다.
외아들이 한국전에 참전해 전사햇단 역사적 사실만 알앗는데 이런 비화가 있엇네요. 벤플리트 장군 감사합니다.
밴 플리트 장군님께 가슴 뜨거워지는 감사함을 느낍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장군님
밴플리트장군의 별칭이 한국육군의아버지라고 듣었습니다 그만큼 한국군을 사랑하셨고 체계를 잡아주신 정말 존경받을 훌륭한군인 이십니다 이승만대통령도 미국방문때 벤플리트장군에게 맥아더장군만큼감사했다고듣었습니다
벤플리트장군님 감사합니다 당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읍니다
벤플리트 장군님은 정말 한국의 은인이시네요
그전에 토크멘터리를 재미있게봤었는데 없어져서 아쉬워하던중 우연히 국방tv에서 역전다방을 보게되었는데, 이게 토크멘터리보다 훨씬 재미있게 구성/진행하더군요. 특히 채승병박사의 설명이 눈에띄게 재미있고 알기쉽게 설명해주셔서 잘 보고있습니다.
어쩌다 유투브에 1회부터 있는걸알게되어 140일전부터 매일 하루에 1회씩 돌파해서 드디어 140회까지 완주!
담주부터는 이제 매주화욜 정규방송을 정주행할생각입니다.
진행하시는 4분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벤장군님을 여기서 처음 알게됐는데 정말로 고맙고 감사한분이시네요....이영상을 빌어 다시한번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ㅠㅠ
밴플리트 장군의 감사함을 알게 해준 역전다방에 감사드려요.
왜 이런 분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는지...
맥아더 장군님 감사합니다.
밴플리트 장군님 사랑합니다~ (울컥하네요)
눈물의 여왕 다음으로 기다려 지는 역전다방 한국전쟁 시리즈,
아마 유투브 역사상 군사 밀리터리를 다루는 채널중에선 최고인듯,
물론 패널 한분한분 굵직한분들이 계서서 그렇거겠지만!
몰랏던 영웅을 알게되서 너무고맙고 감사합니다 잊지않겠습니다
한국전쟁에 엘리트 장군들만 배속됐던건 우리로선
그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런 일 이었던가~!
우리가 정말 기억해야 하는 분은 벤플리트 장군이었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밴버지 정말 감사합니다 ㅜㅜ
이번 편도 체감상 재생 시간 15분입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출연자분들 스튜디오 걸어 잠구고 못 나오게 한다음 연속 촬영 시키고 싶습니다. ㅜㅜ 요즘 제 인생의 유일한 낙 입니다.
고맙습니다 밴장군님
당신의 헌신 덕에 한국에서 기적이 만들어졌습니다
평범한 이 하루도 당신의 헌신 덕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겠습니다
웬만한 드라마나 예능보다 더 기다려서 보고 있습니다 ㅋㅋ 수요일의 선물 오늘도 고맙습니다~
정말 20세기 미국이라는 나라는 위대했구나! 벤플리트 장군님 기억하겠습니다.
625전쟁에서 밴플리트 장군의 업적이 정말 대단하네요......
밴플리트 장군님에 대해 잘 몰랐는데 정말 감사하신 분이셨네요
오늘도 하나 배워갑니다!
밴플리트 장군 멋진데요?😮
정말 대단하신 밴플리트장군님이시네요
존경심을 가지게 돼네요
밴플리트장군님 감사합니다~~^^
6.25전쟁을 역전다방에서 다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막상 전쟁에 대략적인 내용만 알고 있다가 수많은 전투에서 국군과 UN군의 목숨을 건 많은 전투와 희생을 알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엄청 중요하신분 이였네요!!
참 대단한 영웅들이 지켜낸 대한민국이네요
잘 지켜내야겠습니다.
벤 장군님 처음 알았네요
이렇게 대한민국을 사랑하신분인줄 모르고, 부끄럽습니다. 오늘도 많이 배우고 갑니다. 그리고 스탈린땅크 이야기할때 너무 재미있었습니다ㅋㅋㅋㅋ
머나먼, 이름도 몰랐던 나라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희생에 감사드립니다.
보고싶다 빨리 완전 재밋음
밴플리트 장군에 대해서는 아는게 전무했는데 오늘도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이겨라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 파이팅 ❤❤❤
밴플리트 장군님 감사합니다.
맥아더 장군님 고맙습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했던 당신의 노력은 잊지 않을 것입니다.
밴플리트 장군님은 한국군의 아버지 같은 분임…
초반 무기고 설명부터 벌써 독소전의 냄새가 스멀스멀...언젠가는 꼭 하리라고 봅니다.
육군사관학교에 왠? 벤플릿 장군의 동상이? 이런생각 했었는데 영상말미 심중령님 말씀 들어보니 이해가 되네요 대한민국 국군의 아버지 벤플릿트 메모
진정한 장군임
사랑해요 밴플리트
역전다방 더욱 흥하길! 일주일에 두번 편성이나 시간 2시간 해주세요 🙏
아들인 지미 밴플리트 중위가 군산 울프팩 공군기지에서 폭격기 조종사로 단독 폭격 첫 임무 나가서 실종됨...그리고 군 당국에 수색작전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함...수색하다가 다른 군인들의 희생이 커진다고...대단한 사람이기는 함...게다가 웨스트 포인트 동기인 아이젠하워가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한국전쟁 전선 시찰 왔다가 3사단 대대장으로 복무중이던 아들을 후방으로 전출 시켜달라고 요청했을때...이게 무슨 말씀이시냐고 반문했을때...아이젠하워가 전사 하면 가문의 영광이지만...만약 포로가 된다면...군 통수권자로서 결정할때 이성적인 결정이 어려울 수 있다고 요청했다고 하자....아이젠하워 아들을 후방으로 보낸 일화는 유명함...6.25당시 대통령 당선인의 아들...장관 아들...미국 CIA국장 아들, 4성 장군 아들부터 장군의 아들들까지...정작 당사자인 우리나라 고위직 공무원들과 부자들 자식들은 군대에 안갔는데...
밴플리트 장군님 감사합니다.
밴플리트 장군은 백선엽 장군과 친했다. 한국에서 제대로 밥은 먹냐고, 부하들은 잘 먹냐고 늘 걱정했다고 함 - 백선엽 장군 회고록
서울을 다시는 적에게 내주면 안된다는 강경한 전략을 고수한 것은 실제 이미 두번이나 적에게 내준 경험이 있고 이번 사태로 한번 더 서울을 먹히게 되면 이제는 한강 일대에서 전선이 고착화되어 굳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입니다. 북진통일을 못하고 휴전을 하게 되어도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한반도에서 가장 큰 대도시인 서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유민주주의 나라의 온전한 도시로 유지하고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한국인들의 염원이고 이를 고려해 밴플리크와 리지웨이 장군도 전략을 만들고 실행했다는 게 중요합니다
대한민국 육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군이 바로 벤플리트 장군이죠. 그리고 중공군 춘계공세때 서울 시내 한복판에 155미리 곡사포를 잔뜩 방열시켜서 거의 무제한 화력지원을 하는 벤플리트 탄약량으로 유명합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디어 등판 밴틀리트 포격!!진정한 은인
밴플리트 장군은 네덜란드 계여서 진급이 늦은것도 있습니다 ㅠ
늘 재미있게 보고있는 애청자입니다. 흥미진진한 스토리 감사드립니다!
60년대초 국민학교 교과서에 밴프리트 장군 아들이 북한 상공으로 출격했다 피격되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엏는데
드디어 다음주는 사창리전투.용문산전투.현리전투가 나오겠구만 기대됩니다.
건국전쟁 다큐 보니까 밴플리트 장군 1965년 이승만 전대통령 장례식을 위해 한국까지 오셨더라구요
1976년 미국 의회 내에 박동선 게이트로 대한민국이 어글리 코리아라고 비난 받을시 영향력 있는 인물로선 유일하게 한국 정부를 지지해줬던 은인.
12분부터 독소전쟁 전차 이야기 너무 재밌어요ㅋㅋㅋ 꼭 독소전쟁 다뤄주세요
이번주도 재미있지만 담주예고편이 전투내용이네요 이게 더재미있죠
일주일을 또 어떻게 기다리지~~
브래들리 장군은 육사 졸업 사진 얼굴이나 합참의장 때 얼굴이나 또이또이하네요~ ㅋㅋㅋ 🤣
오메~ 벌써 끝났어? 시간 가는줄 모르고 보고있었네요.
역전다방 2시간씩해라...아쉽다 너무 짧아..
영상이 짧은거여 . . 끊는 타이밍 기가 막힌거여 . . 매번 갑자기 뚝 끝날때 아! 소리가 절로나옵니다
130만 ????
어질어질 하구만 ㅜㅜㅜ
그래도
끝까지
서울을
지켜주셔서
❤❤❤❤❤❤
^^7
밴플리트 탄약량:화력으로 탄막을 치는 개념임!
이야- 이번편은 중공군의 계획과 밴장군님 이야기로 끝나는군요;;;;;;
무기고 전차얘기 너무 웃기네요ㅋㅋㅋㅋ 역시 샤를세환
현리전투 너무기대된당❤❤
53년 7월 27일 휴전 당일밤.
밴 플리트 장군이 미국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한국에 대한 기금마련을 독려하는 장면.
ruclips.net/video/ZIX4zkys39Y/видео.html
밴플리트 장군님 외동아들이 한국전쟁에서 전사했다고 합니다.안타깝네요.
진짜 한국과 미국은 이런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데 지금 한국인들은...
잘먹겠습니다~
빅짐 멋지십니다
지난주 국회의원 선거 개표 참관인으로 재방 시청
이번주 본방사수...
늦었지만 심중령님 진급 축하드립니다🎉
무기고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이거 허준씨버전말고 샤를공 원본버전 그립네요 한번 뻔뻔하게 해주시죠
펜타곤 견학갔을때 맥아더장군 관한 기록보고 좀 많이 놀랬는데
중국 본토를 공격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면 맥아더 장군님은 한국을 사랑했어..
(전쟁을 끝내지 못한 미안함이 의리로 까지 발전된 과정)
아...진짜 대한민국은 무슨 복으로 이렇게 많은 은혜를 받앗는지......지금 보면 그렇게 은혜 받은 나라에 국민으로 사는지 좀 돌아 봐야 할듯 하네요...
19세기 영국 수상을 지냈던 탬플, 외무장관으로서 1843년 하원 연설.
" 국제관계엔 영원한 동맹도, 영구적인 적도 없다. 우리의 관심은 영원한 국익뿐이며, 국익추구는 우리의 의무. "
" We have no eternal allies, and we have no perpetual enemies. Our interests are eternal and perpetual, and those interests it is our duty to follow. "
지난 수 백 년, 영국과 전쟁한 적들 ---------------------------> 프 + 독 + 러 + 스페 + 네 + 미 + 중 + 일 + ...
지난 수 백 년, 영국과 함께한 동맹 ---------------------------> 프 + 독 + 러 + 스페 + 네 + 미 + 중 + 일 + ...
영국은 지난 수 백년간 세력균형 정책으로 유럽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프랑스가 쎄지면 프로이센(구독일)등 꼬드겨 프랑스 두들겨 패고, 독일이 강해지면
얼마 전까지 두들겨 패던 프랑스 달래서 함께 독일 몰매하는 과정의 무한 반복 루프, 당한 넘들이 바보.
-------------------------------------------------------> 프-독 등이 바보라서 당한 것 아닐 겁니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저렇게 몰려버린.
한반도에는 그 보다 더한 바보들이 널렸죠. 프랑스나 독일은 깃발 날리고 유럽을 휩쓸기도 했지만,
한반도에선 바보들이 내부에서 외세 부추김 당하면서 내부 초토화를 스스로 가열차게 했으니.
미국은 과거 영국에 비하면 서툴지만,
그래도 꽤나 현란한 테크닉으로 세계를 요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반도는 미국과 영국에게 확실하게 당했던 역사가 있음을 명심해야.
지난 세기초 미국과 영국은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영일동맹으로 한반도를 일본에 넘겼습니다.
일본은 미국 영국의 동맹으로 선택되어 극동에서 러시아-소련의 남하는 막는 미영의 방패로 기능했습니다.
미영의 동맹이었기에 1차대전 연합국으로 참전.
반식민지 상태였던 중국의 독일 조차지와 중부태평양 독일령 마리아나 제도를
1차대전 이후 점령 또는 신탁통치령으로 획득해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의 발판 전진기지 획득했던 것.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으로 일본에게 뺨싸대기 쳐맞은 이후에야 미영은 우리 독립운동을 지원.
생각해보길 진주만 이전 일본이 미영의 극동 행동대장 시절 미영이 우리 항일독립운동 지원할 수 있을지.
(1898년 미-스페인 전쟁 승리로 쿠바와 필리핀 탈취.
스페인이 전쟁에 패배하자 그 틈에 필리핀은 독립선언 하고 제1공화정 선포.
승리한 미국은 무력 진압에 나서 약 60만의 인명 피해 발생. 명백히 미국은 국익을 위해 스페인과 전쟁.
필리핀인들의 자유, 민주주의, 민족자결 위해 전쟁했다면 왜 무력 진압했겠습니까?)
지난 세기 미국은 한반도에 병과 약을 모두 주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지원만 고마워해선 안되는.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38선 그리고 미 극동방어선 에치슨 라인에서 대한민국 배제.
카쓰라-태프트 밀약으로 한반도는 일본 지배 확정되었고, 미국의 미숙한 전후 처리 과정에서 38선 분단.
38선 분단 이후 애치슨 라인 배제로 남침 욕망을 극대화시켰던.
미국이 개입했던 외부 요인도 중요했던 지난 세기 한반도 암흑, 잊어선 안되는.
한국전 이후 혈맹으로 거듭났다지만 외세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일방적 믿음 역시 잠재 위협 요소입니다.
물론 민족분단과 동족상쟁의 가장 큰 책임은 우리 민족 내부에 있습니다.
남북간 극한 투쟁과 대한민국 내부의 적대적 분열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한반도의 미래 없습니다.
(한 때 유럽 열강 제국이었던 오스트리아.
2차대전 독일 패전 후 미영프소 연합국 4개국에 분할 점령 신탁통치 후 영세중립 선언.
저들의 좌우익은 민족 내부 투쟁 피했습니다. 우린 옳다는 확신과 불타는 적개심으로 서로 쳐죽여댔고.)
19세기 영국 수상을 지냈던 이가 했던 발언 무시무시한 겁니다.
저런 지도자 국가가 존재하는 지구촌에서, 넋빠진 이들이 영원한 혈맹 운운하며
공동체 내부 투쟁에 몰두하기에, 저런 국가들이 세계를 쥐락펴락 해왔고, 해오고 있고 앞으로도 할 예정.
(어디에 좌우 구분이 있는지 냉정하게 생각해야, 좌우 아닌 안밖의 투쟁이 결정적.)
민족분단과 동족상쟁의 가장 큰 원인은 물론 우리 민족 내부 적대적 분열 투쟁.
하지만 외부적 요인 역시 존재했습니다. 서구제-동구제 이데올로기가 수입되면서 더 큰 내부 적대적 투쟁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또한 외부 요인이 단순히 우리가 이데올로기를 수입한 정도에서 그친 것이 아닌 + 한반도 분단의 가장 결정적 물리적 요소로 작용한 측면도 있습니다.
ruclips.net/user/shorts4xYAzsdguHo
--------------------------------------------> 1945년 8월, 처음 계획된
--------------------------------------------> 미영중소 연합 4개국에 의한 일본 분할 점령 계획안.
--------------------------------------------> 일본만이 아닌 한반도 역시 미영중소 4개국이 분할 점령해 일본군 무장 해제 계획이었지만 결국 변경된.
ruclips.net/video/8ldqolPJIG0/видео.html The British Occupation of Japan
--------------------------------------------> 2차대전 종전 후 독일-오스트리아-일본에 대한 연합군 분할 점령 관련 내용.
--------------------------------------------> 유럽에선 전범국이 미영프소 4토막 분할 점령되었지만, 극동에선 전범국 일본 아닌 한반도가 미소 2토막 나눠 먹기.
--------------------------------------------> 전범 일본에 대한 연합국 점령 계획안이 어떻게 사실상 거의 미국 단일 점령에 가깝게 ( 영국이 약간 점령하는 형태 )
--------------------------------------------> 바뀌는지 보길. 소련의 일본 홋카이도-혼슈북부 점령 철회 + 영국의 일본 점령지 축소 + 중국의 일본 점령지 0화
한국전쟁은 외세의 역활도 무시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치명적일 수도 있습니다.
미영중소 4개국의 한반도 분할 점령 계획안 검색해서 찾아보길.
소련 점령 예정지는 함경도 일대에 국한되고 한반도의 대부분은 미영중이 점령하는 형태.
만일 일본과 한반도의 4개국 분할 점령 계획대로 전후 처리가 실시되었다면, 동서독에서 서독이 훨씬 컸던 그 조건과 본질적으로 같아져,
--------------------------------------------------------------> 함경도 귀퉁이 차지한 물리적 조건에서 한국전 발발은 사실상 힘들었을 것.
--------------------------------------------------------------> 소련군 점령 예정지는 인구 측면에선 미영중 점령지에 비한다면 압도에 압도에 압도되는 수준.
--------------------------------------------------------------> 또한 모택동 아닌 장개석군이 한반도에 진주하는 조건에서 중국 공산화 역시 조금은 더 힘들었을 것.
---------------------> 미국이 일본 전체 점령 욕심 부리면서,
---------------------> 그 반대급부로 한반도 38선 이북을 소련에게 떼어주는 선택을 한 것.
---------------------------------------------> 유럽에선 전범국 독일과 독일어 사용하는 오스트리아가 미영프소 4개국에 분할 점령되었지만,
---------------------------------------------> 태평양전쟁 종전 처리 과정에선, 미국의 주도적 역활로 전범국 일본 아닌 한반도가 유탄 맞은 것은 치명적 민족분단 원인.
---------------------------------------------> 오스트리아는 4개국 신탁통치 후 영세 중립 선언, 하지만
---------------------------------------------> 오스트리아는 내용적-경제적으로 사실상 친서방 서구 민주주의 국가가 된. 그 이유는
---------------------------------------------> 미국-영국-프랑스군의 점령과 서방측 원조가 친소 공산세력의 확산을 저지 + 현명한 오스트리아 내부 타협 때문.
---------------------------------------------> 한반도의 좌우익은 정파적 승리를 위해 외세와 결탁해 자발적 내부 투쟁에 돌입했지만 오스트리아 좌우익은 달랐던.
그리고 미국의 태평양 전쟁 막판 끝내기는 인류 역사상 아마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대악수, 최악의 오판 삽질.
---------------------------------------------> 사실상 태평양 전쟁 승패 결정된 상태에서,
---------------------------------------------> 미군 희생 좀 더 줄여보겠다고 + 소련의 대일전 참전 요청 + 소련은 형식적으로 미국의 요청을 수용하면서
---------------------------------------------> 과장 아주 아주 조금 보태 일본 항복 1초 전에 + ( 게다가 태평양 전쟁 기여도 0 상태에서 ) + 만주 전체와 한반도 절반 점령.
---------------------------------------------> 소련 입장에선 그냥 굴러 들어온 떡.
---------------------------------------------> 만주만 점령해도 중국 국공내전 모택동의 승리를 결정지을 조건에 + 추가로 한반도 절반 떼어준다는데 왜 거부합니까?
덜떨어진 미국이었지만 자신들이 오키나와에서 악전고투 하던 그 무렵,
미국의 요청으로 소련군이 만주를 침공할 경우 사실상 한반도 전체를 무혈 점령 가능성 뒤늦게 깨닫고,
--------------------------------------------------------------------> 허겁지겁 수정안 즉 38선 경계로 북의 소련군 점령을 용인하면서 소련의 한반도 전체 점령 막는 잔머리.
--------------------------------------------------------------------> 소련군이 만주 점령한 그 순간 ---------------------------> 중국 국공내전 모택동 승리, 장개석 패배 확정.
--------------------------------------------------------------------> 소련이 만주 점령, 일본군 무장 해제만 하겠습니까?
--------------------------------------------------------------------> 소련군이 무장 해제한 일본군 무기는 사실상 모택동에 가는 겁니다.
--------------------------------------------------------------------> 또한 소련군이 점령한 만주는 모택동이 대륙 전체를 노리는 배후 강력한 거점으로 변하는.
-------------------------------> 저렇게 허접했던 미국, 아마도 소련이 오케이 해준 순간 --------------------> 한반도 절반은 건졌다면서 속으로 만만세 외쳤을 것.
1945년 당시 세계 유일 핵 보유국으로서,
미국이 정상적인 판단했다면 이랬어야 하는 겁니다. ---------------------> 소련에 대한 강력 경고, 대일본전 지원 빌미로 감히 만주-한반도 발 내딛지 말라!!!
--------------------------------------------------------------------------------------------------------> 태평양 전쟁 기여도 0에 + 일본과 소일-불가및 맺은 주제에 감히 나대지 마라!!!
--------------------------------------------------------------------------------------------------------> 혹이라도 일본 항복 밥상에 숟가락 얹는 꼼수 부리면 핵무기 사용해서라도 막겠다!!!
한국전쟁 유엔군 파병,
소련이 거부권 행사했다면 불가능, 왜 소련이 안보리 불참 기권했는지도 냉정히 생각해보길.
-------------------------------------------------> 독소전에서 우랄 서부 소련의 핵심 유럽 지역이 사실상 완전 토초화 + 민간인 포함 거의 2천만 인명 피해 상태에서
-------------------------------------------------> 강력하지만 덜떨어진 미국을 극동의 국지전에 몰아 넣고, 동구권에서 철의 장막 확실하게 치려고 의도적으로 기권한 것.
-------------------------------------------------> 미국이 한국전쟁에 붙들린 사이에 소련은 동구권에서 철의 장막 완성했던 것 부인하기 어려운.
-------------------------------------------------> 국가 이익이 충돌하는 장에서 소련-스탈린이 정말 쫄아서? 멍 때리다 안보리 출석 못해 유엔군 파견???
-------------------------------------------------> 스탈린은 독소 불가침 + 일소 불가침 맺었던 음흉한 넘이기에 순진하게 멍 때렸다고 보기 어려운.
만일 영국 없이 미국 단독으로 유럽에서 종전 협상했다면 미국은 소련에게 완벽하게 당했을 것.
-------------------------------------------------> 영국은 1944년 그리스에 상륙, 공산 빨치산 토벌 + 티토 유고 지원하며 반소 독자 노선 걷도록 유도.
-------------------------------------------------> 미국은 유럽에서도 그저 그저 그저 ... 하루라도 아니 1초라도 빨리 미 본토로 돌아가려 정신 넋 빠졌던.
-------------------------------------------------> 그러다 전후 막상 철의 장막 현실 보고서, 뒤늦게 처칠 초청해서 철의 장막 연설 들으며 박수쳤던 뒤늦은 수습.
또한 지난 세기 초, 미국과 영국은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영일동맹으로 일본을 극동의 파트너로 선택 러시아-소련의 남하를 저지하는 역활 일본에 부여.
한반도의 일본 지배는 그렇게 사실상 최종 결정된 겁니다. ----------------------> 일본에 먹힌 한반도 때문에 태평양전쟁 종결 과정에서 38선이 태어난 것도 명백.
만일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기습이 없이
일본이 미영의 극동 지부 행동대장으로 만족하고 계속 미영의 편에 남았다면 21세기 현재도 한반도와 만주는 여전히 일본령 가능성 압도적.
따라서 한국전 이후 한미 관계만 보며, 미국에 대한 지나친 합리화는 위험.
우리 민족은 이미 지난 세기 초 미국에게 제대로 뒤통수 쳐맞은 경험도 있었다는 점에서.
1. 100 Greatest Generals in History 역사상 승리 많은 장군 랭킹 : 전투 중요도 가중치 없이 횟수만, 나폴레옹 1위
ruclips.net/video/TmSQriq0zTc/видео.html
2. Have the British really invaded 90% of the countries in the world? 영국은 전세계 국가 90%를 실제로 침략했는가?
ruclips.net/video/t86J_zZjjq4/видео.html : 유엔 회원국 193개 시점에서, 무려 171개국 군사적 침공
1. 승리 횟수로 본 장군 랭킹 정리
1위 나폴레옹 56회, 2위 웰링턴 39회, 3위 칼리드 이반 알 왈리드 28회, 4위 줄리어스 시저 23회, 5위 알렉산더 22회
전투 승리 횟수로 본 국가 랭킹과 달리 실제 체감과 차이가 훨씬 더 나는 편입니다.
단순한 전투 승리 횟수 보다 전투의 중요성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국가 랭킹에서는 누적 전투 수가 1만회를 넘어가지만,
장군 지휘관들의 한 평생 전투 누적 기록은 아무리 많아도 100회를 넘기 어렵게 때문에 통계적 오류 발생 확률이 커서.
하지만 그렇게 단순화시켜도 랭킹 1위, 4위, 5위에는 나폴레옹, 시저, 알렉산더가 포함됩니다.
문제는 한니발과 같은 위대한 장군이 20위 근처인데 그런 부분은 결정적 오류라고 보아야 할 겁니다.
전투 횟수 산정에 애매한 점이 있기 때문이죠. 한니발은 알프스를 넘어 이태리에 진공한 다음 로마군과 거의 20년을
이태리 반도에서 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치러진 전투를 어떻게 구분하고 횟수 산정할지 지극히 애매하죠.
한니발은 횟수만이 아닌 질도 결정적이죠. 고국 카르타고의 지원 없이 고립된 상태에서.
섬멸전의 원조, 망치와 모루의 원조인 칸나 전투 하나만으로도 한니발은 1위가 될 여지가 있습니다.
문제는 한니발은 최종적으로 로마에 패했다는 약점이 있고, 알렉산더는 아예 패전을 경험한 적이 없이 젊은 나이에 병사.
승리 횟수로만 산정할 때 일본 전국시대 장수들이 꽤나 순위에 들어가는 오류도 생깁니다.
그런 부분들은 고려하면서 영상 보면 될 겁니다. 충무공이 11승으로 나오는데, 23전 23승 아닌 무패로 본 모양.
(충무공의 23전에는 매우 인접한 장소에서 몇 일 사이에 벌어진 전투를 각각 셈한 결과. 그런 전투들은 1개로 통합될 여지도.)
(충무공의 23전 식으로 횟수 산정할 경우, 2차대전 대서양 해전은 어마어마한 횟수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 수송선단과 유보트 교전
횟수는 약 1,000회에 개별 항해 선박과 유보트 교전은 수천 회에 달하지만 모두 다 교전 횟수로 계산하지는 않았겠죠.)
근대 이후로는 단연 나폴레옹이 압도적입니다.
1차, 2차대전의 탁월했던 그 어떤 독일 장군도 감히 넘보지 못할 기록이며
나폴레옹은 프랑스 대혁명 중반부 이후 포병 장교로 등장해서 워털루에서 패배 까지 20년 동안 유럽을 석권.
1차 대전 독일 4년, 2차대전 독일 6년과 비교할 수 없고 나폴레옹은 모스코바를 점령 후 후퇴했지만 독일은 불가능했죠.
웰링턴의 승리 횟수 상당 수는 스페인에서 벌어진 전투 때문입니다.
나폴레옹이 자신의 형제 친척들은 유럽 각각의 국왕으로 임명하면서 스페인 국왕 역시 그렇게 되었죠.
그 때문에 스페인과 포르투칼에서 반 프랑스 봉기가 일어났고, 영국은 10년 이상 이베리아 반도에서 장기적 전투를 수행.
스페인 전역에서 영국군은 프랑스군에 패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기억이 희미한데 프랑스가 스페인에서 손실한 병력이
10년 동안 누적해서 대략 30만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가랑비에 몸이 젖은 셈이죠.
만쉬타인, 구데리안, 롬멜, 패튼 몽고메리 등도 나옵니다.
롬멜, 패튼, 몽고메리는 제 아무리 유능한 장군이라고 해도 만쉬타인급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2차대전에서 그토록 유능했던 전쟁의 대가 만쉬타인 조차도 인류 전쟁사에선 앞 순위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
독일과 영국의 가장 큰 차이
독일은 무수한 전투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전쟁엔 패배.
영국은 수 많은 전투의 패배에도 결국 전쟁에선 승리. 그 원인은 전투의 중요도 결정성 때문.
1588년 무적함대 격파는 세계제국 팽창 시발점,
1592년 임진왜란 발발 후 충무공의 승리는 조선의 강대국 부상과 아무 관련 없고.
영국 북미와 인도에서의 결정적 승리로 대륙 장악, 트라팔가와 워털루는 유럽의 향후 100년을 결정.
독일은 분명 압도적 대승을 거두었지만, 전략적으로는 결정적 승리가 아닌 지역적 일시적 승리에 지나지 않았고.
2. 영국은 과연 오늘날 존재하는 전세계 모든 국가 90%를 그 어떤 이유건 침공한 적이 있는가?
정리하면 상당 부분 근거는 있는 것 같군요. 침공 후 지배 까지는 아니더라도 군사적 개입, 주둔, 압박.
동영상에 소개된 책자 발행 시점 당시 유엔 회원국 193개국 중에서 무려 171개국이 영국의 군사적 침공을 경험.
현 최강국 미국의 대통령 관저 : 화이트 하우스, 불 탄 후 흰색 페인트로 가림.
나폴레옹 전쟁과 같은 시기 잠시 일어났던 미영 전쟁 중 수도 워싱턴이 점령당해 대통령 관저가 불타버렸죠.
막강한 군사강국 러시아 :
크림 전쟁 때 크림 반도만 점령당한 것이 아니고,
그 무렵 극동에서 캼차캬 반도 까지 일시적이지만 점령당했습니다.
그 충격으로 알래스카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미국에 매각했죠.
알래스카는 영국령 캐나다와 미국과 접하고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영국이나 미국에 먹힐 것이라고 판단해 손 턴 것.
러시아 혁명 당시 적백 내전이 벌어졌고,
영국이 주도한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이 무르만스크, 흑해의 크림반도, 극동의 블라디보스톡 등에 상륙해서 상당기간 점령.
하지만 트로츠키가 지휘하는 적군의 승리로 백군 반혁명군이 패배하자 결국은 모두 철수.
( 적백 내전 당시 영국군이 상륙 점령한 곳은,
북극해 무르만스크 + 발트해 페테스부르크 + 흑해 크림반도 + 카스피해 일부 지역 + 극동 블라디보스톡 등.
---------------------------------> 프랑스 3군데, 미국은 2군데? 상륙, 일본은 블라디보스톡 1곳 상륙. 영국은 5곳 모두에 발 걸치고 공산혁명 진압 시도. )
중국과 인도는 말할 필요도 없고. 카리브해와 남미에도 영국령 섬들과 영령 가이아나.
심지어 조선말 우리도 거문도를 점령당했죠. 일본 역시 일부 지역 번들이 영국과 소규모지만 전쟁 했고.
프랑스는 백년전쟁의 전쟁터,
독일은 18세기초 말버러공이 이끄는 대륙 원정군의 전쟁터. 지중해는 영국의 연못. 중동 아프리카 생략.
정리하면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가들의 대다수는 영국의 직간접 침공, 주둔, 압박등 경험한 적이 있다.
없는 곳을 구태여 찾자면, 바다로 부터 완전 격리된 몽골과 같은 정도.
그런데 다른 강대국들과 차별되는 점이 있죠.
대영제국은 위대한 영웅에 의존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건설되었다는 것.
알렉산더, 징키즈칸, 시저, 나폴레옹 급의 탁월한 군사지도자 없이
고만 고만한 장군들과 그렇게 많지 않은 병력으로 세계 최초로 전세계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가 되었죠.
1. 4,500년간 전투 승리 횟수 국가별 랭킹 : BC2,500~2,017년, 위키디피아 오른 전투들, 중요도 무시 오직 횟수, 내전 포함.
ruclips.net/video/HK5OsDWYJmQ/видео.html
1위 프랑스 1,115회 , 2위 영국 1,105회 , 3위 미국 833회 , 4위 러시아 491회 , 5위 독일 425회
6위 스페인 387회 , 7위 폴란드 344회 , 8위 로마 259회 , 9위 중국 244회 , 10위 터키 210회
위키디피아 등재된 전투가 어떤 규모 이상인지 아니면 규모 상관 없이 역사 기록에 남은 전투 모두인지 모름.
승률이 아닌 승리 횟수만을 반영한 통계. 프랑스가 횟수로는 근소한 차의 1위지만, 승률로는 1위는 아닌 느낌.
2차대전 대서양에서 벌어진 해상 전투들은 나타나지 않는 것 같군요. 4,500년 전체 관점에서는 미미한 오류.
하지만 프랑스와 영국의 미세한 차이는 역전되고도 남을만한 누락임도 분명합니다. 영국은 수 백년 동안 해상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반으로 강대국으로 거듭났는데, 대규모에 결정적인 해상 전투들도 누락된 느낌.
마찬가지로 항공전도 빠진 것 같습니다. 그렇더라도 4,500년 장기 통계엔 거의 영향은 없고.
( 아마도 영국 항공전 포함 유럽에서의 항공 전투를 1개의 전투 취급했거나 + 대서양 해전의 무수한 유보트 전투들을 종합해 1개의 전투로 처리했을 수도 )
세계지도에서 전투 발생을 점으로 나타내며 승리 횟수 높은 국가 순으로 자막이 나옴. 인용된 총 전투 수는 약 10,600개
전투의 중요도 가중치 없이 모든 전투를 1회로 단순 평가. 내전에서의 전투 또한 1회로 취급해서 실제 타국과의 전쟁에서
군대의 강력함을 반영하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측정해도 결과는 현재 강대국들 다 포함.
비스마르크 통일 독일제국에서 1,2차 대전 까지 막강했던 독일이 5위로 조금 낮은 평가인듯 하지만, 4,500년의 누적임.
로마는 로마공화정과 제정로마를 모두 합산했는데, 생각 보다 전투 횟수가 많지 않은 듯.
중국의 경우는 주로 한족 왕조만 따진 것 같음. 몽골 등이 별도로 계산. 하지만
청나라는 중국으로 환산됨. 즉 국적 분류가 딱부러지게 쉽지만 않고 애매할 수가 있음.
청 등이 중국으로 분류되었다면, 한족 주도의 중국의 승리 횟수와 승률은 추가로 하락하게 됨.
프랑스와 영국은 거의 같은 횟수, 그 두 나라 사이의 전투가 아마도 상당한 비중일 것임. 백년전쟁 여파로.
프랑스는 승리 횟수로 간발의 차이로 영국에 앞선 1위지만, 결정적 전쟁에 패한 충격이 크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1위 아님.
나폴레옹 때문에 프랑스의 1위가 결정된듯. 하지만 나폴레옹 몰락 후, 특히 보불 전쟁 부터 프랑스는 중요한 전쟁에서
패배한 취약점이 있음.
프랑스의 승리에 노르만 정복을 포함한다면 수정 필요. 노르만 정복의 승리로 현재의 영국이 완성되니까 영국의 승리,
영국의 내전 횟수로 기록해야 되는데 파악할 길은 없음. 노르만과 앵글로색슨 왕가는 애초 친척지간. 친척간의 왕위 다툼.
미국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3위. 하지만 남북전쟁으로 내전에서 승리 횟수도 상당히 많음. 폴란드 전투 승리 많은 편.
폴란드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부 세계사에서 막강했던 세력들이라 간단한 어림셈도 상당히 정확한 결과를 낸듯.
2. 거의 같은 자료, 세계지도가 아닌 국가별 통계로 1위~100위 까지 나열한 랭킹 총 전투 횟수는 약 12,000회로 더 많음.
ruclips.net/video/xgLKVaJwpXY/видео.html
1위 2위 ...10위 결과는 1번 자료와 동일함. 승리 횟수도 같거나 거의 같음.
미국은 역사가 아주 짧지만, 남북전쟁 이후 1차 2차대전 참전과
2차대전 이후로는 현재 까지 꾸준히 계속 전투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3위에 오른 것 같음.
영국은 2차대전 이후에도 미국과 거의 같은 전장에서 함께 전투하기 때문에 승리 횟수도 늘고.
저런 통계를 분석한 사람이 외국에 존재한다는 것, 사용된 원본 데이터에 상당한 오류나 누락이 있을 수 있지만,
크게 크게 보았을 때 지난 4,500년간 역사의 큰 흐름을 파악하게 하는 분석을 시도했다는 것, 시야 대단히 넓은 것.
개인적으로 정리한다면,
1. 4500년간 전쟁이 가장 많이 일어난 곳은 유럽.
2. 주관적 가중치 부여하면, 가장 강력한 전투 민족은 영국
범게르만의 일족으로 통합한다면 영국 미국의 앵글로색슨과 독일.
미국의 인구 구성 조차도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즈-북아일랜드를 통칭한 영국계 및 독일계가 백인의 주류.
3. 1차 2차대전 독일의 막강함이 인상적이었지만, 미국이 독일 아닌 영국으로 부터 건설되었듯 영국의 영향력 결정적.
4. 영국은 과거나 지금이나 군대의 규모, 병력 수에서는 다른 경쟁국 보다 작지만 승리 많고 결정적 승리를 반복.
그 전통이 여전히 남아 미 육사의 샌드허스트 경연에서 영국과 영연방에 미국 조차 압도당할 정도로 지난 수 백년 지구촌 최강 전투 민족은 원조 앵글로색슨.
사관생도들 경연에서 저런 결과, 그 원인은 소규모지만 꾸준히 어디선가 계속 전투 중이고, 그 전훈을 지속 엎데이트 하는 걸로 추정.
실전 경험 없는 군 또는 실전 경험은 있지만 전훈을 엎데이트 하지 않는 군의 생도들 압도.
5. 위키디피아에 등재된 기록은 일단 영어가 압도적이고 분석하는 사람도 영어 자료를 분석했을 듯.
따라서 영어권 아닌 지역의 전쟁이나 전투 기록은 영어로 올리지 않는다면 제외될 수도.
그래서 아프리카,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서 고대 발생한 전쟁들, 고대 몽골 초원의 전투들을 모두 포함했는지 확인 안됨.
즉 역사는 실제 사건 발생 여부를 떠나, 기록을 남긴 자들의 영향력이 더 크게 남음.
주적 개념과 + 주적을 구태여 명시할 필요성, 둘 모두 심각히 고민해야 합니다.
특히 한반도 민족 내부 주적질과 완전 대비된 철천지 원수 이민족 연합체의 세계 패권 장악과 내부 패권 승계 무시할 수 없는.
내부 주적질 >>>> 남북의 극단적 좌우익 사생결단 투쟁관
-------------------------------------------------------> 아직 인류는 아와 비아의 투쟁 예외 없으며,
-------------------------------------------------------> 모든 도전은 비아로부터 아를 향해 오며 + 그 도전에 대한 응전을 아가 하는 것.
-------------------------------------------------------> 아와 비아의 투쟁 및 도전과 응전, 단순히 인간의 역사에만 적용되는 것 아닌 바이러스와 그에 대한 인간의 대응도 내포.
내부 주적질에 대해 냉정할 필요, 대한민국 유신-두환 시절 초중고 학생들은
사실상 국가가 제시한 이념으로 가축과 같이 사육되었지만 그들이 가장 강력한 반독재 투쟁자로 번한.
통행금지 + 국민교육헌장 암기 + 국기하강식 + 고등학교 여학생도 교련 + 대학생 교련만이 아닌 전방 입소와 문무대 교육에,
북과 유사하게 뻑하면 학생들 동원해 궐기대회 규탄대회 + 해 마다 6.25 무렵이면 국민학생들이 학교 운동장 빙빙 돌며 행진하며 6.25노래 부르고.
--------------------------------------------------------> 냉정하게 본다면 유치 찬란, 북이 아직도 하는 짓거리와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 깨닫길.
생각해보길.
한반도 남북의 6.25노래 가사 보면서 두려움에 떨 세계인들이 얼마나 될지.
------------------------------------------------------> 아마도 가사 확인한다면, 세계인들 다수는 재들 같은 민족끼리 왜 저래???
생각해보길.
철천지 원수 켈트-앵글로색슨 연합체 연합왕국의 룰브리타니아 가사 보면서, 세계인들이 연합왕국 우습게 여길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길.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모국 영국이 반공을 국시로 하고 구소련과 현중국을 과연 주적으로 명시했는지.
주적 명시는 어리석은 겁니다. 명시하건 하지 않건 주적에 대한 대비만 철저하면 됩니다. 한국전 직전 주적에 대한 적개심 노출 및 개전 직후 전선 붕괴가 반례.
----------------------------------> 한국전 직전 일부 국군 장성들이,
----------------------------------> 주적 북괴에 대한 적개심과 자심감을 밝혔어도, 개전 직후 전선 붕괴.
----------------------------------> 그들은 이렇게 자신만만 했었습니다., 전쟁 터지면 점심은 개성 저녁은 평양. 그러나 현실은 완전 달랐던.
멕아더, 워커, 리지웨이가 없었으면 6.25를 이길 수 없었고 밴플리트가 없었으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없었다!
07~08년 군생활때 M114 155mm 포병이었는데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네요 ㅎㅎㅎ
다음주에는 사창리 패전을 극복한 6사단의 이야기가 나오겠네요.사창리 패전을 결사의 정신으로 무장해서 되갚아준 장도영장군님과 청성부대의 용문산 파로호대첩이 기대됩니다.
밴플리트장군의 외아들은 공군으로 참전해서 평양 이북을 폭격하다가 비행기가 피격되서 실종되었는데 밴플리트장군이 수색중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다른 군인들이 희생된다는 이유로 힘든 결정을 했습니다. 나중에 극비문서를 통해서 밴플리트주니어 대위는 1970년대까지 소련의 감옥에서 생존했다는 문서가 발견되었죠.그때 수색대와 구조대를 투입해서 샅샅히 수색했다면 아마도 아들을 찾을수도 있었겠네요.
헐;; 모야;; 이거 계속 올라오는 중이었던거야??? 다음편이 왜 없는지 한참 찾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