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전속결 맥아더, 신중한 워커, 그리고 펑더화이의 덫 ★ 크리스마스 대공세 vs 중공군의 2차 공세 ▣역전다방 127회 ◆6.25전쟁 ep.19ㅣ국방홍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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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5 окт 2024
  • 지피지기백전불태?!
    중공군의 1차 공세 직후 미 8군사령부 작전참모부는
    ‘중공군 전술 긴급분석’에 나서고...
    중공군 66군 역시 운산전투에서 파악된
    미군과 국군의 강점, 약점을 향후 작전 개념에 반영한다.
    미군의 화력에 쫄아서(?) 중공군 7만이 도망쳤다고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불길함을 떨쳐낼 수 없었던 워커(미 8군 사령관).
    크리스마스 공세 계획을 짜고 준비할 때도 신중한 행보를 보이는데...
    전력상 최강인 미 9군단을 주력으로 삼아
    6개 축선에 따라 부대를 배치하고, 총공세 개시일을
    11월 24일로 늦춘 워커의 결정에 대한 '포 아이즈'의 시선은?
    한편... 1차 공세를 펼치다가 중공군이 싸악 사라졌던
    '충격적인 이유'가 공개된다!
    "약 1주일 간의 공세 → 잠적 → 재정비 → 다시 공세"
    라는 전투 패턴을,
    중공군이 반복하게 된 배경에는 “차오몐”이 있었다?
    게다가 중공군의 2차 공세 작전에는
    [손빈병법]에 등장하는 계책까지 담겨 있었다는데...
    중공군이 쳐둔 ‘덫’의 실체는?
    이윽고 미 8군 역시 중공군의 기습 출현을 예상하고
    나름의 대비를 하며, 다시 한번 총공세에 나서는데...
    진격 개시 이튿날. 20만의 중공군이 나타난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워커 vs 호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펑더화이의 조치는?
    그리고 MC 허준을 경악하게 만든 중공군 38군의 '밤샘 기동'까지...
    [역전다방]에서 그 전모를 파헤쳐봅니다!

Комментарии • 257

  • @mitch4949
    @mitch4949 9 месяцев назад +59

    전쟁이 끝난지 70년이 됐음에도 이념에 매몰되서 한국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제대로 된 한국전쟁 전사 자료를 찾기 어려웠는데 그 갈증을 역전다방이 드디어 풀어주네요. 한국전쟁을 한국인의 시각으로 직시할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cjfdlskfkche5162
      @cjfdlskfkche5162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유튜브 교양선택전쟁사 참고하세요^^

  • @北朝鮮人民共和國
    @北朝鮮人民共和國 9 месяцев назад +87

    중공군은 인해전술밖에 없다고 배우면서 항상 의문이었던게 그리 별거아닌데 어찌 1.4후퇴까지 했나 의문이었는데 이거보면서 많이 풀림. 기본적으로 야간전술에 특화된 애들이 제파식 공격을 특정 고리에 쏟아 부으니 그당시 미군도 상대하기 어려웠던거군요. 암튼 중공군이 어떻게 싸웠는지 이런 자세한 설명은 거의 못들어본듯.

    • @samarobot
      @samarobot 9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애초에 한국전에서 서로 병력이 큰차이(한국전 내내 대략 1대 1.3 차이였음) 안났는데 중공군이 인해전술 했다는게 말이 안됨. 다만 공격시에 병력을 모아서 집중공격했기 때문에 당하는 우리측에서 그렇게 느꼈던건 맞음. 예를 들어 중공군은 큰범위로 다 공격 하면 병력 많이 드니 모은 병력을 우리측 어떤곳에 a.b.c 3개 있던 구역 중에 한군데를 2~3배의 숫적 우위 병력으로 먼저 집중 공격함.

    • @빨간포션알약
      @빨간포션알약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samarobot 미군쪽에 1 국군쭉에 3 이렇게 배치했다고 하던데 맞나요?

    • @never-er
      @never-er 7 месяцев назад +3

      @@samarobot축구 포메이션같아요.. 공이 있는곳에 한명이상의 숫적우위를 항상 점하는

    • @jeonggeunkim6002
      @jeonggeunkim6002 4 месяца назад +2

      이승만 정권도 부패한것이 어찌 유재흥 같은 자가 계속 군복무를 하면서 고위직을 역임 하고 박정희 정권에서 국방부 장관까지 할수
      있었는지 한국의 부패도 상당했었는가 봅니다 그자의 멍청한 개쓰레기 짓 때문에 죽은 그많은 인명과 물자 장비 손실은 그당시 엄청
      난 것이었고 남과 북의 휴전선이 설정되는데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 @candyblingglitter
      @candyblingglitter 19 дней назад

      인해전술이라 하기엔 차이 얼마 안났음. 게릴라전 야전에 능했고 전략을 잘세움. 유엔군보다 국군이랑 붙으려고 하고

  • @aureliuscap
    @aureliuscap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

    너무 너무 훌륭한 패널들이 심도 깊고 객관적으로 전쟁사를 알려주는 방송. 매회 바로 시청했는데 중공군의 침공과 우리의 패배가 너무 아프고 속상해서 미루다가 이제 시청했습니다. 이 전투의 패배로 우리나라의 역사도 개인의 역사도 많이 바뀌게 되었고 지금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거니까요.

  • @tomcat1845
    @tomcat1845 9 месяцев назад +44

    이야 우리나라 최고의 6.25해설인거 같네요 거듭 감사드립니다.
    오래 끌어도 좋으니 제대로 만들어서 완성시켰으면 하네요

    • @jeonggeunkim6002
      @jeonggeunkim6002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이승만 정권도 부패한것이 어찌 유재흥 같은 자가 계속 군복무를 하면서 고위직을 역임 하고 박정희 정권에서 국방부 장관까지 할수
      있었는지 한국의 부패도 상당했었는가 봅니다 그자의 멍청한 개쓰레기 짓 때문에 죽은 그많은 인명과 물자 장비 손실은 그당시 엄청
      난 것이었고 남과 북의 휴전선이 설정되는데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 @성수김-k2c
    @성수김-k2c 9 месяцев назад +59

    확실히 이번 한국전쟁이야기를 듣고서 증공군이 단순 물량공세만 하는 군대가 아닌거라는걸 알게됐읍니다
    확실히 중일전재 국공내전을 하면서 지휘관들부터 병사들도 다 산전수전 겪은 부대인줄 알게 돼있습니다

    • @三民-g6c
      @三民-g6c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7

      한국 교사들 6.25 전쟁 하면 학생들에게 인해전술 만 알려주고 영화 , 드라마도 인해전술만 부각시키니까 . 국민들이 바보가 되는거죠. 실제로 미국 장교가 한국군 너무 못싸운다고 전쟁중에 전군을 다시 훈련장 보내서 재교육했던 일화도 있습니다. 이거 한국에서는 죽어도 안알려줍니다. 역전다방에서 아마 1.4후퇴 이후에 소개해줄껍니다. 😂😂😂

    • @귀요미-y1k
      @귀요미-y1k 9 месяцев назад +9

      ​@@三民-g6c워커 리지웨이 밴플리트 장군들 한국군 때문에 화병 많이 생겼죠.사실 한국군은 기본적인 훈련 ,전술 이해,전쟁 경험 , 화력,장교들의 역량이 너무
      부족한지라

    • @댕댕댕-g4m
      @댕댕댕-g4m 8 месяцев назад +2

      한국군의 전시작전권이 괜히 미국에게 있는게 아니죠... ;;;

  • @박휘종-d6l
    @박휘종-d6l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6

    우리나라 국방티비에서 적인 중공군의 장점을 이야기하기 쉽지 않았을텐데 이렇게 자세하게 방송해주니 너무 감사하네요 적을 제대로 파악해야 다음에는 이런 아픔을 겪지 않겠지요

  • @송철호-n7n
    @송철호-n7n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0

    중공이 왜 이 전쟁을 자랑스러워하는지 알겠네 ㅜㅜ 슬프다... 최고의 프로! 감사합니다!

  • @arnshutain
    @arnshutain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9

    역시 실전경험이 최고임.(중일전쟁, 두번의 국공내전을 경험한 중공군이니....)

  • @이현우-l1u
    @이현우-l1u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1

    역전다방 진짜 오래오래했으면 좋겠다

  • @모비딕-q3i
    @모비딕-q3i 9 месяцев назад +6

    항상 수요일이 기다려 지네요
    거짓말 않고 5번씩은 보고듣는것 같습니다
    우연찮게 작년 태평양 전쟁부터 지금껏 ~~
    좀 드라이한 전쟁스토리를 재밋게 듣고 있습니다
    네분의 건투를 빌며 감사할 따름입니다
    응원합니다 ~~^^

  • @stormtrooper6602
    @stormtrooper6602 9 месяцев назад +50

    저렇게 유능하던 펑더화이조차 문화대혁명기간에 숙청당하다니 참,,,웃프네요. 그 바람에 후에 있을 중월 전쟁때 영혼까지 털림.

    • @고구려-NO1
      @고구려-NO1 9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아 글쿤요 진짜

    • @효녀밍밍
      @효녀밍밍 9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어차피 중월전쟁 때 펑더화이세대 장군들은 너무 고령이여서 투입못합니다 ㅋㅋ

    • @stormtrooper6602
      @stormtrooper6602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0

      @@효녀밍밍 사실 간략하게 펑더화이만 언급 했지만 휘하의 베테랑 지휘관들도 싸그리 숙청당하는 바람에 역량이 박살났죠ㅎㅎㅎ

    • @bunningshouse
      @bunningshouse 9 месяцев назад +6

      마오쩌둥이 한 100살까지 살앗어야 했는데 참 ㅋㅋ

    • @하상욱-v1e
      @하상욱-v1e 8 месяцев назад

      ​@@bunningshouseㄹㅇㅋㅋ

  • @GNG45
    @GNG45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0

    미국공영방송국에서 만든 다큐를 보면 저 당시 참전한 미군들은 추운날씨에 개고생한 것과 중공군 신출귀몰에 당황했다는 인터뷰들이 많더군요.그뿐만 아니라 당시 그 추운날씨속에서 비롯 적군이지만 전투를 상당히 잘해서 경의를 표한다는 참전군인들 인터뷰도 있더군요.그만큼 당시 전투는 미군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것 같습니다.

  • @다인-g3m
    @다인-g3m 9 месяцев назад +48

    역시 국공내전을 겪으면서 노련해진 중공군의 역량이 잘 드러나는 회차인 듯 하네요. 상대방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그에 딱 맞는 전략수립까지.... 14시간만에 70km가 넘는 산길을 주파한 중공군의 능력은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야간행군은 주간행군보다 훨씬 힘든데 그걸 저렇게나 빠르게... 중공군의 역량이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 @고구려-NO1
      @고구려-NO1 9 месяцев назад +8

      네 적군을 과소평가 하면 자멸뿐 (오늘도 마찬가지 입니다)

    • @truth1472
      @truth1472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과장된거예요.
      군장을 메고 72.5km를 시속 5.5km로 가능하다고 생각을 해요?
      포장도로로도 못합니다.

    • @三民-g6c
      @三民-g6c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7

      ​@@truth1472 영상 안봤나요? 단독군장으로 낙오병들은 버리고 주파했다잖아요. 그 결과로 UN군이 평양까지 철수한거고요. 제발 인정할껀 인정합시다. 현실부정한다고 바뀝니까?

    • @동의보감구수략
      @동의보감구수략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0

      ​@@truth1472 딱 그 당시 미군의 생각을 보여주네. 현실을 봐도 이 악물고 외면하면서 정신 승리하는 모습이라니. ㅉㅉㅉ

    • @imck84
      @imck84 8 месяцев назад

      @@truth1472 뭐 그리 신기하다고 국공내전때도 하루만에 120km를 모든 군장을 메고 이동해 쉬지 않고 전투까지 바로 시행급습해서 전과를 이루어낸 부대도 있는데

  • @jjaesmine
    @jjaesmine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다음 편이 드디어 장진호! 절단 신공 오지네요. 기대 하겠습니다.

  • @davidpark5840
    @davidpark5840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8

    원래 일하느라 바쁠 때
    회의 하자고 부르는 상사가 가장 미운 법인데.
    맥아더가 그걸 했네요.
    높으신 분들은 회의를 해야 본인들이 일하는 거 같으니.

  • @주자한
    @주자한 8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지금까지 본 6.25관련 영상중에서 국뿅없이 제일 진실되게 제작했네요.

  • @게딱지-x3i
    @게딱지-x3i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5

    중공군 공세로 국군이 많이 궤멸당했고 이들을 그나마 메꾸고 피해를 최소화하느라 유엔군이 많이 고생을 한 게 사실입니다 ㅜㅜ 미9군단은 미1군단이 중공군 2차 공세로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청천강 라인에서 평양으로 무사히 철수할 수 있게 통로와 시간을 벌어주었죠

  • @류진형-o5l
    @류진형-o5l 9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적이지만 귀감으로 삼아야겠다 싶을 정도네요.

  • @danjjakchinguTV
    @danjjakchinguTV 8 месяцев назад

    '6.25전쟁'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gomdorij3213
    @gomdorij3213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고맙습니다^^*

  • @ftmstem9705
    @ftmstem9705 9 месяцев назад +8

    역전다방 제작진이 국방TV 전화 통화의 면담에서 '한국전쟁' 40부작으로 제작되어 마무리를 지을 것이라고 하네요.

  • @게딱지-x3i
    @게딱지-x3i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0

    저 평안남도 순천은 우리 전라남도 순천과 이름이 같지만 인지도가 워낙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낮아서 잘 모르죠. 하지만 북한에서는 꽤 규모가 있는 도시고 순천역도 상당히 크답니다. 서로 이름이 같아 전남 순천으로 가야 할 해외에서 온 배송이 잘못 북한 평남 순천으로 가게 돼 북한에서 큰 소동이 난 적도 있답니다

  • @모비딕-q3i
    @모비딕-q3i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역사는 반복된다
    살수대첩 공간에서 또다시 그들과 맞닿뜨리고
    항상 준비하고 대비해야~~

  • @hk-hk-hkk
    @hk-hk-hkk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이번 영상도 여전히 재밌네요 ^,.^

  • @jazzkind
    @jazzkind 9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어마어마한 부대였네요. 밤에 산길 72km를 14시간만에.. 저게 가능했던 부대가 있을까 싶네요.

    • @귀요미-y1k
      @귀요미-y1k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예전 페르시아 전쟁때 아테네군이 생각나네

  • @TV-pu5ph
    @TV-pu5ph 9 месяцев назад +6

    러일전쟁도 다뤄주시길 바랍니다 🙏

  • @namsookim985
    @namsookim985 9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정말 중공군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라는 손자병법의 구절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군대였네요.

  • @kangsj1977
    @kangsj1977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와 오늘도 넘 감사합니다 😮

  • @태사자-r5x
    @태사자-r5x 9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아이고 1주일 기다리느라 힘들었네;;

  • @ImperatorDDragon
    @ImperatorDDragon 9 месяцев назад +7

    박원장님 얼굴 오랜만에 뵙게되니 반갑네요 ㅎㅎ 다시 돌아오셨으면 ㅜㅜ

  • @위장염
    @위장염 9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축구에서 공이 둥글듯이 전쟁에서도 강대국 약소국의 싸움은 방심할 수 없구나. 사실 중공군은 장비, 무기, 보급에서 연합군에 비해 월등히 밀리는 약체였음. 그걸 전략과 전술, 훈련도로 커버친건 대단한거. 21세기에도 이런 일이 재현될 수 있다.

  • @해오름-o8m
    @해오름-o8m 9 месяцев назад +3

    긴박한 전선에서 군단장들을 빼내서 도쿄에서 회의라니.. 맥아더도 참 이런 안일한 생각을 할수가 있나 모르겠군요..

  • @로봇식빵
    @로봇식빵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그 당시 워커 장군도 최선을 다했네요,,,훌륭한 사령관이라 할수 있지만 적을 너무 몰랐어요 ㅜ

  • @dubu999
    @dubu999 9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재밌게 봤습니다

  • @Nevermore-w8x
    @Nevermore-w8x 8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중공군의 기동전술상 가장 약체인 국군에 공격의 주력이 집중됐으니 국군입장에서는 제파식 인해전술로 보였었군요.

  • @ansolu_assa
    @ansolu_assa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손자병법과 삼국지의 나라는 맞네요

  • @kswieg
    @kswieg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 오래오래 해주시길 ! 👍👍👍

  • @myoungkim1680
    @myoungkim1680 9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손자병법은 유효하군요.

  • @큰입
    @큰입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반갑습니다.

  • @고구려-NO1
    @고구려-NO1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적군이지만 대단했다. 전광석화 처럼 일사분란하게 ..
    흥미진진 했습니다

  • @치즈피자치즈추가
    @치즈피자치즈추가 9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앞으로 나아가길 원하는 맥아더와 불안함이 감지되는 전선의 상황에서 고뇌했을 워커 장군의 심정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의 지휘관의 고뇌란. 그와 반대로 윗선인 마오쩌둥과 원만했던 펑더화이는 최상의 판단을 할 수 있었네요. 독일 제국의 통일전쟁에서 대몰트케 장군은 어땠을지 궁금해집니다. 다음 번에 한 번 탐구해보면 어떨까요?

  • @광천김-m5c
    @광천김-m5c 7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더 콜디스트 윈터 읽어보면 중공군이 인구빨로만 미는 애들이 아니라는 걸 알게됩니다. 굉장히 치밀한 전술을 갖고 있었고 엄청난 정신력으로 무장한 군대였습니다. 운산에서 당했을 때라도 신중하게 움직였다면 장진호의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인천상륙작전은 대단한 성공이었지만 그 성공에 취해 오만해진 맥아더의 실책이죠.

  • @모비딕-q3i
    @모비딕-q3i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기다리는 중입니다ㅡㅡ

  • @게딱지-x3i
    @게딱지-x3i 9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중공군 2차공세 때 중공군이 더 약한 국군을 집중 공격했고 국군을 메꾸느리 미9군이 고생을 했죠. 하지만 이들의 병력 손실이 상당히 많아 미9군에 속한 2사단이 사실상 궤멸되어서 평양 동쪽부터 상원-후창-양덕-원산 선에 방어선을 메꿀 수가 없어 평양원산선 방어선 구축 및 재정비는 아예 불가능해졌죠 ㅠ

  • @AceTean
    @AceTean 9 месяцев назад +3

    당시 중국 장군들도 유능한 장군들이 많았음 린바오 주더 등 여러 명장들이 가득했음

  • @인삼차-x3x
    @인삼차-x3x 9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야간에 산악을 14시간만에 72키로미터 주파;; 장비는 거의없다시피햇다해도 대단하군

  • @user-Seige.Breakers
    @user-Seige.Breakers 9 месяцев назад +3

    난 여태까지 중공군이 그냥 무지성으로 우와아 하고 밀고 내려온 줄 암 ㅋㅋ 뭐냐 이거

  • @세잡쓰
    @세잡쓰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중공군이 적이지만 산악 보병전은 인정해야겠네 무시무시한 군대였구만 ㄷㄷㄷㄷ

  • @바다다-y9f
    @바다다-y9f 3 месяца назад

    중공군 거의 특수부대 급이네 14시간동안 70km그것도 야간에산행 대단하다
    중공군 대장이 전술을 잘햇네 손자병법 캬

  • @kju42
    @kju42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4

    저때 1월에 영하 40도까지 내려갔는데 원래계획대로 방어선치고 겨울 났으면 중공군 산속에서 보급없어서 상당히 얼어죽고 그냥 손쉽게 압록강까지 점령했을텐데...

    • @JaeM-t2j
      @JaeM-t2j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양놈들 한겨울 무시하는건
      어쩔수가 없나봄

    • @고구려-NO1
      @고구려-NO1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우리에겐 많이 아쉬운 부분😞
      아님 좀더 빨리 북진 했거나..꾸물꾸물 대지말고

    • @truth1472
      @truth1472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미군도 월동 준비를 안했죠.

    • @귀요미-y1k
      @귀요미-y1k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장진호 전투에서 미군이 철수하는 과정에 중공군도 많이 동사했죠

    • @이요셉-v7w
      @이요셉-v7w 9 месяцев назад

      그게 되겠음 애초 중공군 개입 자체만으로 당시 유엔군도 서로 각기 구역으로 나눠서 이동해서 격파 당했는데 뭔 소리야

  • @NangNangEE
    @NangNangEE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16:00 훗,,, 그래서 소 머릿수 센거야??? 푸하하하하하하하하!!!!

  • @listen2viewyujin564
    @listen2viewyujin564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우리군은 현재 북한적군의 전술을 꿰뚫고있는지 궁금합니다 적을 정확히 아는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영상을보니

  • @lI1lIIIlllIIlIIlIlIlIIIIl
    @lI1lIIIlllIIlIIlIlIlIIIIl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5

    22:48 박원장님 그립네요

    • @성수김-k2c
      @성수김-k2c 9 месяцев назад +5

      박원장님은 어떤이유로 빠진건가요?
      지식의 깊이가 다르신분이던데 확실히 없으시니까 깊이가 다른 느낌입니다

    • @COCOCHANNEL-bt8eg
      @COCOCHANNEL-bt8eg 9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저도 첨엔 못느끼다가 이젠 ㅠㅠ 한달이 지나구서야.. 쩝..ㅠㅠ

    • @user-Seige.Breakers
      @user-Seige.Breakers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성수김-k2c 본업이 바빠져서

    • @하꼬-t9v
      @하꼬-t9v 9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성수김-k2c 서울수복편 마지막에 영상편지가 올라와있습니다. 학교일때문에 바빠지셨다고하네요 ㅠㅠ

    • @abcabc4219
      @abcabc4219 8 дней назад

      빨갱이 안그립다

  • @허걱-x7q
    @허걱-x7q 9 месяцев назад +6

    15년 넘게 내전을 해온 중공군의 짬바가 하필이면 한국전쟁에서 제대로 발휘됐군요

    • @leopardleopard6664
      @leopardleopard6664 8 месяцев назад

      ​@user-xe2hc6sz5i짱개저삭 번역기 돌렸냐

  • @hope153park
    @hope153park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625를 복한의 남침이라고 몇십년간 우려 먹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우려 먹고 있는데
    실제는 소련이 가장 핵심이고 중공군과의 싸움이고 결정권은 스탈린이 가지고 있었던 전쟁 물론 주도권은 김일성이였지만 ㅋ
    지금도 우리는 한반도 전쟁하면 남북한 전쟁이라고
    선전하고 이용하고 그러고 있는중 ㅋ
    한반도 전쟁은 미국이나 중국의 허락 없이 불가능한데
    우리도 현재 전력으로 북한을 능가 하지만 !!!
    막상 중국군이 개입되면 모든 물량에서 밀리기 때문에 전쟁 시나리오 작성할 때 후방 지원 물풍을 얼마나 공급 받을 수 있을지 재고 하고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에 넣어야 한다고 본다
    이미 전쟁 초기에 우리의 군수 공장들과 주요 산업 시설들은 타격을 받은 후라는 걸 감안하면 우리는 지리적으로 일본이 우리의 군수 보급기지가 될 수 밖에 없다
    우리 군수 공장들이 해외에 합작 생산으로 사용가능한 곳이 인도 터키 이집트 폴란드 등이 있겠지만 거리가 멀어서 바로바로 투입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면 적어도 일본과 대만 정도에 우리의 군생산 기지가 있어야 된다
    미군에서 물량이 들어 오지만 그것 만으로는 택도 없다 이번 러우전을 보면은 ㅋㅋㅋㅋㅋ
    또 한반도 전쟁 시 또
    일본이 떼돈을 버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한반도 전쟁설은 정치인들 특히 극우들이 안했으면 좋겠다!!!!!
    625때 미군 사망자가 4만 밖에 안되다고 하던데 ?
    의외다 엄청 많이 죽었을 거라고 여겼는데
    우리는 민간인 포함 500만 이라고 하던데
    전쟁이 나면 당사국만 초토화 되는 거니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된다고 봅니다
    625는 51년 7월에 끝났는데 스탈린이 동유럽 먹으려고 관심을 한반도에 붙잡아 두려고 끌었다가
    스탈린이 죽고 나자 마자 휴전 되면서 그동안 안 죽어도 되는 군인들 수만이 죽어나간 전쟁 ㅋ
    정치가 이렇게 중요함 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러니 하게도
    한반도 대치 상황으로 항상 무기를 생산하고 배치하는 나라가 한반도 이다보니
    이번 러우전에서 양쪽 다 무기 판매 장난 아니게 하고
    특히 북한은 러시아에 무기 판매 하면서 북한의 식량 난 단번에 해결됨 ㅋ
    러시아에 스커드 미사일 제공 이후에 뉴스에서 북한 식량이 모자란다는 말 어디에도 안나옴 ㅋㅋㅋㅋㅋ
    러우전이 북한 입장에서 보면 전화위복이 되는 계기가 됨
    러시아는 우리와 가까이 하면서 북한에 제공하던 식량을 옐친이 끊으면서 90년대 고난의 행군이 온 건데
    이번에 전쟁으로 북한의 무기 도입이 급하니까 서둘러 제공하고 첨단 기술들 미사일 로켓부분 전투기 등이 제공되지 않을까 싶다
    수호이 57까지는 아니래도
    37정도는 공여가 될듯 싶다
    북한의 공군기가 위낙 취약하니까 전쟁 끝나면 순차적으로 제공 되지 싶따 !!!!
    하필이면 북러가 가까워져야 하는시기에
    우리가 반중 반러 정책을 펼치고 있는 중이어서 더 가까워지는 극단으로 가고 있어서 ㅜㅜ
    극단적인 정권이 바뀌고 나면 이후에 얼마나 회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러시아 쪽에서 이리 대한민국이 필요한 상황이라 앞으로는 극단적인 정권말고 보수정권이 잡더라도 러시아와의 관계는 회복 되었으면 좋겠다 ~
    본의 아니게
    중국이나 러시아는 우리의 경제적인 밥을 제공해주는 나라들이라서
    이 나라들에서 돈 벌어서 미국의 최신예 무기 사주는 나라가 한국인데
    이 관계를 깨뜨려서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
    우리나라 경제에 도움이 되는 나라를 굳이 대 놓고 적국으로 할 필요가 없다 물론 잠재적인 적국이긴 하지만
    서로 그런거 알면서도 교류하는 거지만
    바로 돈이 들어오는 걸 굳이 안먹겠다고 차는 거는 아닌듯 !!!!!!
    아 그리고
    미국은 점점 가면서 힘이 빠지고 있는 중이고 중국은 가면 갈 수록 떠오르는 해인데
    굳이 ?
    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일본은 이미 망해가고 있는 나라
    잃어버린 30년을 지나서 40년을 향해 달리고 있는 나라를 ㅋㅋㅋㅋㅋㅋ
    670년대에 바라보던 나락 아닌데도 ㅋㅋ
    일본은 극우들이 내내 집권하는 바람에 스스로 죽어가는 나라
    극우들이 집권하면서 창의력은 다 사라지고 경직된 사회로 나아가면서 국민들이 유연하게 사고 하지 못하게 극단으로 치달으니
    가면 갈수록 망해가는거지 ㅋㅋㅋㅋ
    그런 나라를 우리 극우들이 좋다고 따라하려해 ㅋㅋㅋㅋㅋㅋㅋ
    미국도 지는해
    이미 미국의 인재 비중이 중국 인도 한국 순으로 미국은 저 밑으로 없어짐 ㅋ
    가장 큰 근거는
    중국의 기독인 90년대에 1억2천만
    미국은 교회가 점점 유럽교회처럼 까페나 호프집 같은 거로 변화는 중
    미국이 강성했던 이유는 그들이 잘해서가 아니라 기독교 국가였기 때문에 그동안 미국을 강성하게 해 준건데 스스로 망해 가는 중
    대체로 이제 미국에서 동 아시아로 넘어 오는중
    한국이 1200만 까지 갔다는데 이제는 700만 수준으로 떨어짐 순수 기독교만 카톨릭 제외
    그런데 한반도는 북한에 지하 교회가 있어서
    통일 이후에 또 한번의 부흥이 기다리고 있는 중 이라서
    통일 한국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 군사 대국이 됨 !!!!
    30년대 이후를 그려보면 중국이 1위 미국이 2위 통일 한국이 3위
    이 흐름으로 가고 있어서 우리는 굳이 중국을 대 놓고 적으로 국가가 나서서 정책을 펼 필요가 없음
    경제 분야는 협력하고
    군사적인 부분은 견제를 위해서 미국과 힘을 합치면 됨
    이것을 중국에서도 러시아에서도 인정함
    그러니 외교는 실리 외교를 해야 댐 !!!
    우리가 3위의 국가가 되어서도 마찬 가지임 ㅋㅋㅋㅋㅋㅋㅋ
    대체로 통일 한국 시대는 인구가 거의 1억을 넘길 거임
    우리가 5600만 북한이 3000만 가까이 되는데
    통일 한국이 되면 초기에는 1국가 2체제로 북한에서 근로자들이 내려오면 그들의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한가정에서 3명에서 5명까지 출산을 하게 되기 때문에 통일 한국 이후 얼마지 않아서 1억 인구 가능 !!!
    1억이면 내수시장 만으로도 경제발전이 되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강국이 됨 ㅋㅋㅋㅋㅋ
    지금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가 200만 가량
    이 인력을 북한 근로자들이 대체가 되고
    현장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숙련된 기술자들이 채워 짐으로 다시 대한민국의 생산 능력이 향상됨 ㅋㅋㅋ
    제조업이 중국이 밀리던 것이 다시 살아남 !!!!
    제조업이 북한으로 들어가면 몇십년간은 특수를 누리기도 하여서
    어마어마한 시너지 효과 있을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LEK611
    @LEK611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맥아더의 볼기를 맞고 원균이 된 워커...ㅋㅋㅋ

  • @Inceptor_key
    @Inceptor_key 9 месяцев назад +3

    군전력의 핵심이자 최고 무기는 장병 자체인 것 같습니다. 국공내전과 항일전으로 단련되고 나름 명분을 갖춘 중공군은 하나의 거대한 숙련된 유기체로 보입니다. 통신이 어려워도 서로 어느 부대가 어디에서 어떻게 기동할지 직감적으로 파악하고 움직인 것 같습니다. 이를 보면 임진왜란의 초반에 조선군의 패배는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 @난쿠네개복치
    @난쿠네개복치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우리의 막내(심 중령님).... 많이 추우신가효..?
    뭐하고 계신가욧 !? 허준띠 !! 빨리 담요라도 챙겨 드리셔욧 !!
    우리 막내 감기 걸리면 안되닝 !! 허준띠 어여 !!!

  • @hanwoo7233
    @hanwoo7233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스튜디오가 얼마나 추우면 외투를 껴 입어 가시며.. ㄷㄷ

  • @디텍티브멀더
    @디텍티브멀더 3 месяца назад

    18:20 샤를 뿌셔뿌셔ㅋㅋ

  • @smithcho4618
    @smithcho4618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와중에 현장 최고 사령관 둘을 모두 도쿄로 소환하다니. ㅋㅋㅋ 답이없네... 지가 직접 와서 전황을 파악하는게 정석이지.

  • @남자탁용삼
    @남자탁용삼 9 месяцев назад +3

    기다린다

  • @fierwalt
    @fierwalt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중공군이 잘했으니 초기에 밀린거죠. 중국이 싫어도 그건 사실...

  • @Hello_Dex
    @Hello_Dex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보면서 또 한마디했네요
    또 언론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미국은 진짜 남북전쟁도 그렇고 왜이렇게 알리는걸 좋아하나 ㅋㅋㅋ 끝난게아닌데 ㅋㅋㅋ

    • @귀요미-y1k
      @귀요미-y1k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진주만때도 지역신문이 상세하게 군사시설 보도했죠😂일본
      스파이가 신문보고 다 알았죠

  • @firesword5199
    @firesword5199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백인이 동양인을 항상 우습게 알죠.

  • @간식-i4x
    @간식-i4x 3 месяца назад

    전쟁결과를 떠나서 우리상대는 바보같은 지휘관이 아닌 명장이랑 싸웠다

  • @맛있는라면-c8d
    @맛있는라면-c8d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22:31 샤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yuria-i3f
    @yuria-i3f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실전을 꾸준히 겪은 중공군 그걸 과소평가한 미군 거기에 낙관주의 정보취급자.... 특히 정보취급자는 비관론자가 더 어울리지

  • @김은식-z5o
    @김은식-z5o 9 месяцев назад

    당시 워싱턴 분위기도 알수있으면 좋았을텐데 살짝 아쉬웠습니다. 박원장님이 그립네요…

  • @DarkFuse
    @DarkFuse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새로 추가된 패널분 좀더 말투를 군인말투를 버리고
    조금만, 여유롭게 말하면 좋겠어요 ㅜㅜ
    채승병패널까지 빨라지는 느낌 말이?
    약간 집중이 풀리는 느낌?
    딱 여유,일반인 말투만 생기면 좋을거 같아요

  • @댕댕댕-g4m
    @댕댕댕-g4m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새로오신 박사님 조금만 천천히 말씀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너무 급한느낌

  • @copland6268
    @copland6268 4 месяца назад

    맘 아프다 ㅠ

  • @jmk290
    @jmk290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14시간만에 뚫은게 그렇게 중요한가?
    얼마가 됫든, 전쟁터에서 하루도 안되는 시간에 74.5km을 진격한거 자체가 대딘한건데..
    (시속 5.5가 중요한게 아닌데..)

  • @고양이-b2n4t
    @고양이-b2n4t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허준 점점 살빠지는가 봐 ㅠㅠ

  • @maatpon
    @maatpon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오늘같은 날에 계셨더라면' 하고 빈 자리가 특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오늘의 역전다방도 무척 재밌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 @게딱지-x3i
    @게딱지-x3i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평안북도 운산군은 평안북도 남부에 위치하고 묘향산이 가깝고 청천강 북쪽에 위치하죠. 저기가 운산 광산이 유명한데 금광이 있어서죠. 대한제국 시절 미국이 저 광산을 조차해 금을 많이 캐갔는데 노다지라는 말도 저 운산 광산에서 유래했죠

  • @성이름-m6t4j
    @성이름-m6t4j 9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일본군이 보병전에 강했음. 첨단무기.화력.물량전.산업생산력이란 계급장때고 동급조건 저런 산악전.제한전애선 미군도 고전했음 실제로 오키나와 산악전.
    그래서 미군도 중공군의 1차공세직후 중국킬러 일본군투입 고려는 했는데 이승만과 한국인들 반발을 고려해서 안함.

    • @rightbloodyelbow
      @rightbloodyelbow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와도 그닥 도움 안됐을듯 걔네들도 보급이 있어야 싸울텐데

  • @rightbloodyelbow
    @rightbloodyelbow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26:04 좀 닮긴 닮았네 ㅋㅋㅋ

  • @토니김-l4g
    @토니김-l4g 9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책에서는 단순히 물량공세 이랬는데 저런 심오한 전략전술이

  • @피부암통피
    @피부암통피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박원장님 청일전쟁 안해주고 가셨네요..벌써 그립네여

  • @효녀밍밍
    @효녀밍밍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저때 맥아더가 사실상 일본을 통치하고있었는데 중일전쟁때 중공군과 전투경험이 많은 일본군을 대거 투입했다면 이기지 않았을까요?

    • @truth1472
      @truth1472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일본군 일부가 투입이 됐습니다.
      미군으로 편입이 돼서 기뢰제거를 했어요.

    • @시라소니-p8j
      @시라소니-p8j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븅신...깡따구잇는 일본군은 대부분 전사햇거나 할복햇다...일본군의 최정예부대는 삼십만관동군이다...흑룡회가 관동군전신이고 대부분 막부시대의 몰락한 사무라이들이다...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점령한 부대도 관동군이다...하지만 그 유명한 관동군도 백만소련홍군에게 처참하게 무너졋다...알간...

    • @youngjunlee3939
      @youngjunlee3939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지휘 편제는 누가 하죠? ㅋㅋ

    • @훈방튜브
      @훈방튜브 9 месяцев назад

      6.25때 약 33000명의 병력을 한국에 파병하려 한 장개석의 대만군도 확전을 우려한 미국무부의 반대로 파병이 좌절 됐는데, 패전국으로써 무장 해제 당한 일본군을 재무장시켜 일본육군이 한반도에 파병됐다면 전 세계적인 비난과 더불어 이승만 대통령의 극렬한 반대에 봉착했을 겁니다.
      그래서 원산 상륙전 당시 소수의 일본해군 소해대가 파병되고도, 최근까지도 비밀로 취급된 이유이지요.

    • @우문식-k6b
      @우문식-k6b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정보) 따지고 보면 중일전쟁도 결국 일본의 전략적 패배다

  • @상준이-l2m
    @상준이-l2m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중공군이 연합군 우측을 물면 연합군 좌측이 크게 돌아 중공군 뒤를 치면 되는 건데~~아쉽다~~😢

    • @scz8333
      @scz8333 8 месяцев назад

      님 말고 다른 이가 이미 먼저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님은 전쟁을 오락 게임으로 여길 수도.
      일단 님의 의견 ( 중공군이 연합군 우측을 물면 연합군 좌측이 크게 돌아 중공군 뒤를 치면 되는 건데~~아쉽다~~ )
      -------------------------------------------> 도는 지형 생각 먼저 해보길,
      -------------------------------------------> 중공군은 높은 산악지대에서 낮은 평지를 향해 크게 돌고 있고 + 님은 반대로 평지에서 높은 산악지대로 돌며 침투하자고 하는 것.
      ------------------------------------------->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닐 겁니다. 지도 놓고 차근 차근 살펴보길. 산악지대로 미 기갑장비들과 연료 탄약 보급이 가능하겠습니까?
      다른 이의 주장을 반론한 것 소개하죠.
      ===========================================
      ( 중공군 최정예사단이 국군을 상대했다는건 미군과 대치하고있었던 중공군은 약했을것 같은데 )
      ----------------------------------->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 최전선의 부대 배치를 저렇게 결정했고 + 미국은 수동적으로 저렇게 배치당한 겁니다.
      ( 미군이 왜 과감하게 공격해서 뚫고들어가지 않았을까요?그럼 포위당할 위기도 모면했을것 같은데... )
      -----------------------------------> 저렇게 선택한 중국이 멍청하게 미군이 자신들의 약한 부대를 공격할 때 당당히 맞서 싸우면서 전멸당하겠습니까?
      -----------------------------------> 저렇게 부대 배치를 하고 중의 주력이 공세 펼쳤다는 것은 + 미군이 자신들의 약한 부대를 칠 경우, 약한 부대들은 후퇴한다는 것.
      -----------------------------------> 즉 미군이 중의 약한 부대를 쫒아 깊숙이 침투할 수록 + 더 깊은 함정에 빠지는 겁니다.
      중일전쟁 때 만주 전체 + 중국 해안지대 사실상 전체 + 북경-상해-남경 등 중의 핵심 지대 전부 점령하고도 일본은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중공군 주력이 국군에 대한 공세로 미군의 퇴로가 막히는 조건에서,
      -----------------------------------> 님 주장대로 미군이 중의 약한 부대들 치고 어디까지 올라갔다 + 방향을 되돌려 남쪽의 중국 주력을 섬멸하려 내려와야 합니까?
      -----------------------------------> 중일전쟁 대륙에 투입된 일본군에 비한다면 한 줌 수준의 미군 병력으로 가능하겠습니까?
      -----------------------------------> 압록강에서 멈추었다 다시 남으로 오면 됩니까? 중공군 주특기가 강한 적이 공세 펴면 후퇴 + 그 적이 물러나면 추격인데.
      -----------------------------------> 아니면 아예 압록강 넘어 만주로, 북경으로 ... 계속 전진?
      배후가 뚫리면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는 것이 현명한 겁니다.
      적 주력이 아군의 배후를 뚫었는데 + 아군 주력이 전면의 적 약한 부대들 상대로 진격한다는 것은 + 그것도 그런 상황을 아군이 주도적으로 만든 것 아닌
      ------------------------------------> 교활-현명한 적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든 조건에서 약한 적 부대 추격 섬멸에 나선다는 것은 적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더 빠른 섬멸됨을 자초할 위험도.

  • @prococonut
    @prococonut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한반도 전쟁을 했던 중공군 수준이 미친다.
    전쟁을 어떻게 하면 잘하는지 너무 잘 알잖아.

  • @김주현-u6v
    @김주현-u6v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역전다방 처럼 객관적인 방송이 빛납니다.
    역시 전선이 무너지는데엔 유재흥의 혁혁한 전과가 또 나왔군요!
    한국군이 가장 존경하는 일본군 장교 출신의 전과입니다.
    계속된 유장군의 패전... 그리고 계속된 알토란 같은 중책이 그에게 돌아가는 한국군과 그후의 반란군 무리들의 인사...
    원산 평양 라인을 잘 지켰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너무멀리 어처구니 없이 후퇴해 버리고...
    프랑스군의 승리 전까지 계속된 패배패배가 아쉽입니다.
    뛰어난 공군 훌륭한 무기도 겁먹은 군인 개개인에겐 효과가 없나봅니다.
    그놈의 인해전술 핑계는 고만하고 적과 아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다음엔 냉정한 전술로 만회해야 합니다.
    수천년 치고받은 동양의 전술을 무시한 짧은 역사의 미국 천조국도 그 후 베트남 아프간에서 계속된 철수로 그 답을 하는 것 같습니다.

    • @tachap7714
      @tachap7714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압도적인 전력열세에서 적이 작정하고 주공으로 설정한 경우엔 누가 와도 못 해결함. 50년 6월 포천-동두천 축선이 그랬고 51년 중공군과의 전투상황이 그러했음. 1사단 백선엽 장군이나 6사단 김종오 장군같은 사람들도 중공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시점임
      2000년대 중후반에 밀덕계 일각에서 유재흥을 지나치게 비하하는 유행이 돌았지만, 창군기 KMAG 주한미군사고문단의 고평가를 시작으로 영천전투 등에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준 인물이었으며,
      1948년 제주도 4.3사태당시 초기 군/경/서청의 강경책일변도 진압작전으로 생긴 무고한 양민피해가 속출하고 사태가 확산세에 치닫자, 제주도에 부임해서 유화책을 사용하고 신중한 민사작전으로 작잔방침을 변경해 사태를 수습하고 많은 억울한 희생을 줄이기도 했던 장군이 유재흥 장군임
      당시 한국군 장성 인재풀에서 고평가를 받아서, 그만큼 아군도 적군도 중요하게 생각한 자리에 갈 일이 많았던거지 당신이 비웃는것처럼 마냥 무능한 인간이 아니었음.

    • @김주현-u6v
      @김주현-u6v 8 месяцев назад

      @@tachap7714 반란으로 자리잡은 독재자가 능력있고 유능한 부하를 군의 중책으로 기용할까 생각해보니 군 관련자리는 말잘듣고 어리숙한 자를 쓰겠죠?
      그러니 국방부 장관도 해 먹지...?
      그의 부친부터 매국노 오브 매국노였던 집안에서 매국이 가업인 일본사관학교 출신이라...나라의 군권을 넘겨준 공을 칭찬해야하나?
      베트남도 그 정도는 아니였는데...허어...
      인재풀 이야기하는데 그래서 이승만은 군생활 해본적 없는 사람을 국방부 장관에 기용했었구만...?

  • @KJ11-DAFS
    @KJ11-DAFS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밑에 댓글 보니까 인해전술이 없다라고 하시는 분 많던데. 투입된 중공군의 숫자가 거의 비슷했는데 기적의 전략으로 미군과 한국군을 공격해서 군사적 목적을 달성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입니다. 적이 병력을 집중해서 몰아치면 방어하는 쪽에서는 당연히 예비대를 투입하고 전선의 병력을 빼내서 구멍난 곳을 틀으막으려고 시도를 하기 때문에 만약 방어쪽과 공격쪽의 병력차이가 없다면 결국 병력수는 같아지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만약 병력의 숫자가 많아서 부대지경선을 수없이 침투 할 수 있고, 화력의 우위, 또는 속도의 우위를 내세워 상대보다 더 빨리 상대의 주요기지, 사령부, 보급기지를 박살낼 수 있다면 공격은 성공할 것입니다. 여기서 중공군은 화력의 우위는 없기 때문에 자신의 강점인 병력의 우위를 살려서 공격을 시도했을 것이고, 열악한 경제사정과 빈약한 병참선을 고려할때 비전투 손실은 미군보다 많을 수 밖에 없고, 전투와 비전투손실로 발생한 병력의 공백을 끊임없이 보충병을 받아서 충당했을 겁니다. 이게 인해전술이 아니면 뭡니까? 인해전술은 매우 잔인한 전술입니다. 포탄대신 사람을 보낸것이기 때문에 죽이는자도 고통이고, 죽을자리로 보내는 사람도 고통이었을 겁니다. 그 과정에서 죽은 중공군이 아무리 적군이라고 한들 그들의 죽음을 없는것으로 친다면 이것은 죽을자리로 보낸 사람들보다 더 잔인해지는 겁니다. 다시 전투의 과정을 생각해보자면, 만약 유엔군과 중공군이 서로간의 병력차이가 없다면 화력도 빈약한 중공군이 정규군인 유엔군을 압박할 수단이 없습니다. 여러 전투를 돌아보자면, 당시 유엔군들은 2차세계대전을 겪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전투에는 닳고 닳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소수의 병력으로 이들을 압박해서 후퇴를 강요한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군대시절 봤던 책에서 한국전쟁의 전투과정을 보면, 전투지경선이나 각종핵심 위치에 중공군이 깔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걸 하자면 병력의 우위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한쪽에 전력을 집중한다는것도 어느정도 전선을 유지가 가능할때 가능한 겁니다. 한쪽을 비워놓게 되면 역으로 적이 밀고 들어와서 사령부, 병참선을 박살내어 버립니다. 이걸 틀어막을 모루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것은 망치만큼 강력해야 하기 때문에 망치와 모루 전술이라고 하는 겁니다. 결국은 공격자는 이런 전술을 성공시키기 위해 방어자보다 더 많은 병력과 화력을 동원하는 것이고, 상대적으로 방어자는 소수의 병력으로 방어가 가능합니다. 왜냐면 공간의 한계로 인해 축차투입은 불가피할 것이고, 1차공격이 좌절되면 결국 2차투입을 하더라도 전력차이는 거의 없게되고 이런식으로 축차투입으로 전투가 망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뚫렸다면 이것은 그 이상의 화력과 병력을 밀어 넣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력이 없다면 화력을 대신할 병력을 동원해야 한다는 뜻이고, 막대한 병력으로 전장을 다 채워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이 공세가 돈좌 했음에도 전선이 유지되는 것은 공세로 인해 막대한 인명손실이 있음에도 또다시 전선을 유지할 병력을 동원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병력손실을 채우지 않고 내버려두면 전선에 큰 구멍이 나버리고 이것을 뚫고 북진을 해야 정상인데, 북진하자고 외치던 한국군 마저도 그런건 하지 못했습니다. 파로호 전투를 떠올리시기 바랍니다. 중공군 군단병력이 날라갔는데, 전선은 결국 바뀌지 않았죠.

  • @johnyyun53
    @johnyyun53 7 месяцев назад

    모든실수 다 그렇다치고 전투의 기본중의 기본은 왜 않지켰는지. 육군진격전엔 반드시 공군의 전방폭격은 그냥 공식아닌가. 적이있던 없던 반드시 공중폭격 필요하다. 세계최강 천여대의 전투기 두고도 않쓰고 대패한것은 너무나 안타깝다.

  • @국제결혼피해센터
    @국제결혼피해센터 9 месяцев назад

    패튼장군이 있었다면

  • @마-p2r
    @마-p2r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어쨌든 제갈량도 중국인이지...

  • @종희이-t7d
    @종희이-t7d 7 месяцев назад

    미국 맥아더 장군님 마을 드러야지 인자중국이 앚장뜨자 한다

  • @홍두깨샘
    @홍두깨샘 8 месяцев назад

    고지대에서 내리달리는데 14시간이면 70키로는 무난한거라고 봄
    군인이고 전시니까 대단한건 아니지요

  • @LCH0228
    @LCH0228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역전다방...포아이즈에서 이제는 포마우스인가요?
    전에는 각자 분야가 있고, 토론하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서로 앞다투어서 허준님에게 설명하는 느낌이네요
    작가분의 설정인가요?
    아님 PD의 배분인가요?
    4분의 전문분야가 뭔지 구분을 못하겠네요

  • @LuftUberSoldat
    @LuftUberSoldat 8 месяцев назад

    병력비교
    27:22

  • @엉수-u2w
    @엉수-u2w 4 месяца назад

    펑버지 띵장이긴하다.

  • @떠도는이야기-j6c
    @떠도는이야기-j6c 8 месяцев назад

    한국전쟁도 그렇고, 과거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경괘한 기동전으로 보였던 전쟁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경쾌한 진군을 했다가 벽을 들이받고 부숴져 버리거나, 공세종말점이 되어서 잽싸게 후퇴를 한다.
    워커는 맥아더의 말을 안들을 수 도 없고, 군대를 진격시키자니, 한반도의 말도 안되는 길로, 중후장대한 중장비를 이동시키기에는 너무나 문제가 많았고, 남한 지형보다 북한 지형은 산악지형이 많아서, 헬난이도가 되어버렸다고 봅니다. 서부 지형의 길을 통해 병력을 진출시킨다고 해도, 좁은 길목으로 대량의 중장비를 이동시키게 되면, 빠른 기동은 커녕, 길바닥위에 장사진을 펼치게 되는데, 중공군은 폭격기도 있었고, 전투기도 있었으며, 쏘련공군이 비밀리에 참전했기 때문에, 길바닥에다가 중장비를 깔아놓는건 자살행위 입니다. 2차세계대전의 화력으로도 길위에 탱크들이 늘어서 있으면, 죽여달라는것과 마찬가지였는데, 당시는 제트기가 날아다니던 시절입니다. 그리고 이런 위험을 무시하고 진격을 한다고 쳐도, 당시의 트럭이나 탱크의 연료소모량을 생각해서, 길목마다, 연료를 비축할 장소 정도는 깔아놔야 진군이 가능했을 겁니다. 부대가 이동하면, 부대에게 트럭이 왔다갔다를 반복하며, 수송을 해야 하고, 그러자면, 주유소가 있어야 합니다. 미군은 기계화된 군대라서 길이 없으면 진군 자체가 안됩니다. 화포를 버려두고 전투를 할 수 도 없었을 것이고, 숫자도 적은데, 화력의 우위가 없으면 무엇으로 싸울 수 있을까요? 그리고 국군은 중장비가 없으니, 산악지형도 별 문제가 없었을것이고, 가지고있는 화포라고 해봐야 105밀리인데, 이정도면 이동이 불가능하지는 않죠. 미군은 훨씬 무거운 중장비가 많았을 것이고, 지반이 푹푹꺼지는 것도 고려해야 했을 겁니다. 당시 한반도 지형에 대한 지형정보가 거의 없을테니. 보병을 이동시키는 군대와는 달랐을 겁니다. 요약하자면, 병력이 소수인 미군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자신들이 완전한 병력 열세라는 것을 눈치 챘을 것이고, 노련한 워커가 그것도 몰랐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따라서, 맨몸으로 가면, 전멸 확정인데, 보충할 병력따위는 없고, 때문에 죽지 않으려면, 중장비를 싸들고 진군을 해야 하는데, 폭격기나, 전투기가 무섭고, 또한 트럭들이 수송을 하려면, 길목마다 연료도 비축해야 하고, 할건 많은데, 전부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죠. 달랑 알보병만 이동을 하면, 먹을것도 보급 못받고, 화력도 후달리고, 미그기는 날라오고, 미군이 연발화기로 무장한 상태라 탄약소모도 많고, 무작정 진격했다간 철벽을 들이받고 와해가 되어버리는 수순이 뻔했다고 봅니다. 따라서, 최소한의 안정장치를 구축하려고 했을것이고, 이 최소한 마저도 시간이 걸렸다고 봐야 합니다.

    • @scz8333
      @scz8333 8 месяцев назад

      ( 한국전쟁도 그렇고, 과거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경괘한 기동전으로 보였던 전쟁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경쾌한 진군을 했다가 벽을 들이받고 부숴져 버리거나, 공세종말점이 되어서 잽싸게 후퇴를 한다. )
      -------------------------------------------> 한국전쟁 미군의 기동전은 실패했지만,
      -------------------------------------------> 몽골과 청의 기동전은 성공했습니다. 특히 병자호란 당시 청의 기동전은 탁월.
      -------------------------------------------> 대몽항전 당시 고려 조정이 강화도로 피난했다는 것 파악하고 + 소수의 선발대가 한양에서 강화로 가는 길목 막아 남한산성 삼전도 굴욕.
      한국전 미국은 병자호란 당시 청 수준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리고 미국에 대한 근거 없는 과대 평가는 피해야, 한국전 당시 미국은 현명한 전쟁 수행했다고 보기 힘듭니다.
      또한 미국은 한국전쟁 70년이 지난 21세기 현재까지 질적으로는 결코 최상이었다고 보기 힘든 꾸준했던 여러 실전 및 훈련 사례들이 많다는 것 냉정히 파악해야.
      ( 2차대전 초 탁월했던 독일 전격전 기동전 역시 과거 몽골군에 비한다면 새발의 새발의 새발의 피 수준에 불과. )
      ( 말 보다 기갑 차량 속도가 더 빨랐지만, 독일군 진격 속도와 진격 거리 강력한 전파 방해 사용하며 영 폭격기들이 미 본토 핵폭격 성공. ( 1960년 미국은 전자전에서 여전히 영국에 뒤쳐진. )
      -------------------------------------> 특히 60, 61년 중 한 해에는 아예 핵폭격 임무 성공 후에 + 뉴욕 공항에 착륙해 미군은 더 큰 충격.
      1960년 첫 대규모 미 본토 핵방공 훈련에선,
      미 본토의 모든 여객기 비행을 훈련 시간 동안 정지시킬 정도로 미 국방부측이 심혈을 기울였던 훈련.
      --------------------------------------> 2년 연속 영국 벌컨 폭격기에게 핵폭격 피폭 판정에 + 90% 가까운 방공망 뚫림에
      --------------------------------------> 스카이 쉴드 훈련은 영구 폐지 + 훈련 결과 또한 미국 언론엔 99년 기밀 해제 전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소개한 1960-61년 훈련의 다른 영상 미국인 댓글 중에 이런 내용도 있군요. 미 군사력 질적 수준이 영국 대비 어땠는지 확인해보길.
      영국 공군 벌컨 폭격기의 미국에서 실시된 다른 미영 공군 훈련에서, 영국 공군은 미국 수도 워싱턴을 그것도 3대의 폭격기가 쓸어버렸고 + 백악관 핵폭 상징으로 초크백을 백악관에 투하.
      다른 훈련에선 그랜드 캐년 계곡을 저공 비행으로 돌파 미군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경로로 공격하는 등 미군이 번번이 당하면서 + 미국측이 그랜드 캐년 사용은 노매너 항의 규칙 바꾸고
      다시 방어해봤지만 여전히 방어막 다 뚫렸다는.
      여기 소개한 댓글 아닌 다른 미영 지상군 연합훈련 댓글 본 기억도 소개한다면,
      영국 SAS가 미영 훈련에서 야간에 백악관 침투해 국기 게양대 성조기를 다른 깃발로 갈아치웠음에도 방어하는 미군측이 눈치채지 못해 직접 전화걸어 확인 요청했다는 댓글도.
      미군은 실전이건 훈련이건 영국과 함께 할 때는 언제나 스스로 자괴감 느낄 겁니다.
      같은 편 동맹으로 함께 한다는 점에선 안도하겠지만, 자신들을 언제나 초라하게 만드는 질적 차이를 절감하고 있을 것.
      어쩌다 우연히 발생한 소수의 사건이 아닌 + 함께 훈련할 때 마다 반복되는 일상적 현상 + 걸프전 등 실전에서도 효율성에서 확연히 드러나고.
      @stepheneatch2793
      4개월 전
      In an exercise a Vulcan flew along the Grand Canyon and the US defence had no idea until it suddenly appeared and flew at 200ft to its simulated target they kept changing the rules but every time the Vulcans got through. They even "attacked" the White House with three aircraft wiped out all radio and TV transmission around Washington and successfully dropped chalk bags to "destroy" the White House
      미 공군만 저렇게 당한 것이 아니라,
      세월이 좀 더 흘러 영국이 정규 항모 폐기하고 수직이착륙기 운영하던 소형 경항모 시절 미 해군도 마찬가지로 당한.
      ---------------------------------------> 초대형 미 핵항모와 영국 경항모의 훈련에서,
      ---------------------------------------> 믿기지 않겠지만 미 핵항모가 영국 경항모 함재기에게 선제 피격당해 판정패 당하기도.
      ---------------------------------------> 당시 영국 경항모는 자신 보다 체급이 큰 ( 훈련 지역 해상 근처를 지나던 ) 대규모 민간 화물선-유조선-여객선 근처 항로 택해,
      ---------------------------------------> 미 항모측이 가상적 아닌 민간 선박으로 착각 방심-멍 때리게 만들어 기습해 미 항모 피격 판정.
      미 공군과 해군 아닌 미 육군도 마찬가지.
      미 육사 웨스트포인트에서 해 마다 열리는 세계 군사 경연대회, 샌드허스트 경연.
      1994년 전세계에 개방된 첫 해부터, 2년제도 아닌 단기 군사 교육기관 영 육사의 11연속 우승에 그 바로 뒤 캐나다의 3연속 우승.
      4년제 미 육해공 사관학교들은 18회 때 미 육사가 첫 우승할 정도로 홈그라운드에서 수모 당한.

    • @scz8333
      @scz8333 8 месяцев назад

      2차대전 종전 후에도, 미국과 영국은 거의 함께 싸웠습니다.
      투입한 병력 규모에선 미국이 압도적이었지만, 전장의 다양성 측면에선 의외로 미국이 뒤진 면도.
      미국이 전혀 경험하지 못한 전쟁을 영국은 경험했으며, 같은 전투에서 조차 미국이 뒤쳐진 부분도.
      1. 제트기-미슬 시대의 함대 방공전 -------------------> 미국 실전 경험 없음, 영국만이 포클랜드전으로 유일
      포클랜드전에서 시스키밍 대함미슬 요격에 실패, 종전 뒤 세계 각국은 본격 근접방어 체계 도입 시작.
      2차대전 후 실전 함대방공전에서 적기를 격추한 경험은 영국 해군만이.
      2. 잠수함의 적함 격침 -------------------> 미해군 아직 없음, 단 2건의 기록 중 1건이 영국 핵잠의 기록
      잠수함 등장 이후 21세기 현재까지 잠수함 : 잠수함의 수중 전투에서 적 잠수함 격침 기록 역시 45년 종전 직전
      북해에서 수중 항해중이던 영 잠이 수중 항해중이던 독 유보트 격침한 사례가 유일한 전과.
      3. 대함미슬을 함대공 미슬로 요격 ----------------------> 미해군 전과 없음, 오직 영 해군이 걸프만에서 사상 최초 요격.
      걸프만에서 재취역한 미 전함 아이오와급이 포함된 미 함대를 호위하던, 영 방공구축함 T42가 이란의 실크웜 대함
      미슬을 시다트 함대공 미슬로 요격한 것이 유일한 전과. 당시 그 함대 소속 미 이지스함의 CIWS는 근처의 미 함정
      을 향해 오발 사고. 또한 그 무렵 걸프만의 다른 미 이지스함은 이란 여객기를 적기로 오판 격추해, 민간인 수 백명
      이 희생되는 대참사. 뿐만 아니라 그 무렵 걸프만의 또 다른 미 수상함은 고무보트 자살 폭탄 테러당해 함정 옆구리
      구멍 뚫려 바지선에 태워져 후송. 분명 미 이지스함이 영 T42 보다 고성능인데 막상 실제 상황에선 저런 일 터진.
      4. 전차 : 전차, 최장거리 격파 기록 -----------------> 1차 걸프전 때, 영 챌린저1 약 4.7KM 거리에서 적 전차 격파
      저 당시 미군이 병력과 투입 전차 수에서 압도적이었지만, 소수의 영국 전차부대가 최장거리 격파 기록.
      사막 지형이라 가능한 기록. 한반도의 굴곡진 지형에선 저 정도 거리에선 적 전차 관측할 곳도 별로 없음.
      걸프전 영국과 미국의 전차전 전과는 이렇습니다.
      영국은 192대? 전차 투입하고서 300 : 0 전과를 기록했고 특히 전차전 교전 손실 0 달성.
      미국은 영국 보다 압도적인 수량의 전차 투입, 끝 자리 수에서 0을 하나 더 붙여 투입하고 600 : 2 전과, 하지만 전차전 전투 손실 2 발생.
      우크라이나 전쟁 진행중인 2023년, 발트해 연안 에스토니아에서 실시된 나토 기갑부대 경연에서,
      ----------------------------------------> 주력 전차 MBT 부분 성적, 1위 영국 챌린저2 + 2위 스페인 레오파드2 + 3위 미국 에이브럼스2
      5. 아프칸 등에서의 최장거리 저격 기록 -------------------> 캐나다 영국이 주도하며 미국이 뒤 따르는.
      투입 병력은 미군이 압도적이지만 소수의 영국군과 더욱 소수의 캐나다군이 우세한 저격 기록. 캐나다 1위-3위-4위 영국-2위 미국-5위
      캐나다의 1위 기록은 2위 이하 기록과 차원이 다른 초장거리, 기억으로 약 3.5KM, 2위~5위는 2KM대 기록. 미군이 투입 병력은 많음에도 실전 기록은 저런.
      수정 추가합니다.
      ( 2023년 진행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군 58세 저격병이 최장거리 저격 기록 약 3.7km 를 우크라이나 자국산 저격총으로 세웠다고. )
      ( 최장거리 저격 기록 세운 우크라이나군 노병은 전쟁 전 사격 선수로 여러 대회 우승 경험 있었는데, 전쟁 터지자 자원 입대했다고. )
      2차대전 이후 최강 패권국으로 등장한 미국.
      냉정하게 평가하면 덩치에 비해 내실 부족하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지난 70년.
      투입한 병력과 보유한 장비 및 과학기술 수준을 고려할 때, 믿기지 않는 비효율적 개입과 철수 반복된.
      21세기 현재, 서방측에서 미군이 가장 거대하고
      장비 또한 최상이지만 미군의 질적 수준이 그렇다는 아무런 보장 없고,
      이런 상태에서 미국이 아직 까지 경험하지 못한 단독으로 최강 적성국과 전쟁에서 승리 기대하기 힘들 것.
      생각해보길, 2차대전 이후 그리고 21세기 현 미국이 단독으로
      중국이나 러시아 국경 근처나 국경을 넘어 침공해 재래식 전쟁 벌여 승리할 의지나 능력이 있을지를.
      미국과 달리 영국은 안쑤시고 다닌 대륙이나 국가 찾기가 힘들 정도, 그것도 지극히 적은 병력으로 치명적 승리를 거두며.
      --------------------------------------------------------------------------------------------> 미국은 아직 단독으로는 최강의 적성국과 붙어 승리해본 경험도 없는.
      21세기 미 핵항모전단

    • @scz8333
      @scz8333 8 месяцев назад

      미 육사 웨스트포인트에서 해 마다 열리는 세계 군사 경연대회 샌드허스트 경연.
      믿기지 않겠지만 4년제 미 육해공 사관학교들이, 2년제 이하 단기 군사교육 기관인 영국 육사에게 압도당한.
      1994년 이후 전세계에 개방된 경연 첫 해부터 영국 육사 11연속 우승, 그 다음은 캐나다의 3연속 우승에, 호주 까지도 우승.
      미 육사 웨스트포인트 팀은 18년만에 첫 우승했었죠. 대한민국 육사의 첫 출전 성적은 최하위권.
      영국 육사 샌드허스트는 2년제도 아닙니다.
      대학-대학원-전문대 졸업한 이들이 입교해 군사교육만 받는 단기 과정. 여기선 편의상 2년제라 해보죠.
      우리식으로 한다면 사관학교나 ROTC 아닌 학사장교 제도에 더 가까운데, 교육기간이 긴 학사장교 정도겠군요.
      중동이나 제3세계권 특수층 자제들은 특례로 입학하는 경우도 있기에, 일반인이 들어갈 문은 그 만큼 더 좁아집니다.
      작년인가 뉴스 보니 동구권 출신이 최우등으로 졸업했기도. 대한민국 육사 생도도 최근엔 교환학생으로 졸업하기도 했을 겁니다.
      ----------------------------------------------------------------------------------------------------------------------------------
      샌드허스트 경연 역대 성적 : 1994년 이후 2019년 까지, 2020년은 코로나19로 취소.
      샌드허스트 경연. 1960년대 미 육사 웨스트포인트를 교환 방문했던 영국군 영관 장교 제안으로,
      미 웨스트포인트 내부 경연으로 실시되었고, 우승팀에 영 육사 샌드허스트 지휘검 수여되어 붙은 이름.
      교환 방문한 영국군 영관 장교가 보기에 미 육사 교육 과정에 문제점이 있어서 보완 차원에서 제안 추정됨.
      30년간 자체 경연으로 실시되다 1994년 이후 개방되어 세계 각국 참여.
      영국 2팀 출전 팀명은 샌드허스트1,2 또는 A,B 또는 RED, BLUE.
      1. 샌드허스트 경연 역대 우승팀, 1994년~2019년 (영어 위키). 1994년 이전엔 미 육사 자체 경연.
      Winning squad
      2009's champion squad: Royal Military College of Canada
      Since 1994, when RMA Sandhurst began competing, either a Sandhurst squad or a RMCC squad won every competition until 2011 when Company B-3 of West Point won.[4] The Royal Military College of Canada took the honours for the fifth time in 2016.
      2019 - USMA Black
      2018 - United States Air Force Academy
      2017 - USMA Black
      2016 - Royal Military College of Canada
      2015 - Sandhurst Red
      2014 - Sandhurst Blue
      2013 - Sandhurst Blue
      2012 - Royal Military College of Australia - Duntroon
      2011 - USMA B-3
      2010 - Sandhurst A
      2009 - Royal Military College of Canada
      2008 - Sandhurst Red
      2007 - Royal Military College of Canada
      2006 - Royal Military College of Canada
      2005 - Royal Military College of Canada
      2004 - Sandhurst Red
      2003 - Sandhurst Blue
      2002 - Sandhurst Red
      2001 - Sandhurst Blue
      2000 - Sandhurst 2
      1999 - Sandhurst 1
      1998 - Sandhurst 2
      1997 - Sandhurst 1
      1996 - Sandhurst 1
      1995 - Sandhurst 1
      1994 - Sandhurst 1
      References
      Sandhurst 2010. Department of Military Instruction. USMA website. Retrieved 2010-06-28.
      "43rd Sandhurst is Friday and Saturday". Pointer View.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April 22, 2009. Retrieved 2009-04-20.
      "Sandhurst Manual: History". Department of Military Instruction. Retrieved 2009-04-20.
      "Sandhurst Historical Results". Department of Military Instruction. Retrieved 2009-04-20.
      2. 샌드허스트 경연 대한민국 육사팀 성적
      2013년 : 52위 / 58개팀, 첫 출전 충격으로 다음 해 출전않고 철저히 준비
      2014년 : 출전하지 않음
      2015년 : 12위
      2016년 : 13위
      2017년 : 22위
      2018년 : 34위, 64개팀중
      2019년 : 26위, 가장 최근 성적
      첫 출전에서의 충격으로, 웨스트포인트 출신
      주한미군 장교에게 조언받으며, 주한미군 기지에서 특별 훈련 후 출전.
      현재는 육사 교육 과정에도 샌드허스트 경연과 유사한 경연이 포함되어 개선되었다고 함.
      2013년 첫 출전하긴 전 대한민국 육사 출신 장교단, 특히 고위 장성들. 그 진짜 내실은 사실 아무도 모르죠.
      캐나다가 미국 보다 전체 우승 횟수가 더 많음.
      영국은 우승 못해도 거의 2~3위권 유지. 초창기에는출전팀 2팀이 모두 1위, 2위 동반 석권.
      미국은 영국과 영연방국에 연속 우승을 너무 많이 빼았겨, 우승만을 목표로 특별 과외 훈련했을 가능성 있음.
      최근에는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국과 영연방팀은 평소 교육 훈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출전할 여지 있고.
      1994년 전세계에 개방된 샌드허스트 군사경연.
      이미 약 30년 세월이 흘렀기에 초창기 영국 단기 사관학교에 압도된 경험을 한
      미 육사 웨스트포인트 출신 엘리트 장교들 아마 지금은 미 육군 최고 지휘부 근처에 도달했을 것.
      ---------------------------------------------------> 자신들이 생도 시절 당한 저 트라우마 여전할 겁니다. ------------------> 질적으로 영국군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경험.
      ---------------------------------------------------------------------------> 그렇다면 2차대전 때는 지금과 달리 미국과 미군이 영국과 영국군을 과연 쉽게 무시할 수 있었겠습니까?
      평범한 몽고메리 포함 거의 거의 거의 모든 영국 지상군 장교들은 영국 육사 샌드허스트 출신입니다.
      21세기 현재 이런 영국 육사가 2차대전 상황에서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다고 여길 아무런 근거 없습니다.
      사실 미국이 대부분의 분야에서 영국을 따라 한 상태, 미국의 모든 특수부대들은 영국 SAS 등 특수부대 참고해 만든 것.
      하지만 저런 영국군 장교들도 2차대전 독일군과 교전할 때는 쩔쩔 맸습니다. ----------------> 오늘날의 사관학교 제도 자체가 프로이센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로 퍼진.
      사관학교 교훈으로도 상당 부분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미국-영국-대한민국 육사 교훈(모토)
      1. 미국 -------------------------> duty, honor, contury ( 의무, 명예, 조국 ) : 손발 조금은 오그라 드는 추상적 구호.
      2. 대한민국 --------------------------------------> 지, 인, 용 : 아무리 생각해도 미국 육사 교훈 형태 슬쩍 참고한 구조, 추상적 단어 3개 나열.
      3. 영국 ------------------------------------------------------------------------> serve to lead ( 이끌기 위해선 솔선-헌신하라. )
      저랬으니 영국이 지극 소수의 병력으로 수 백년간 지구 차원에서 주먹 휘두른 겁니다.
      미국이 저랬으니 뜬 구름 잡는 추상적 구호와 자부심으로 2차대전 이후 패권 장악 후 불과 5년 뒤 부터,
      한국전쟁-비기기 + 베트남전-패배성철군-철군후공산화 + 중동에서의 끝 없는 수렁이라는 덩치만 큰 물렁 상태였던 것.

    • @scz8333
      @scz8333 8 месяцев назад

      2차대전 후 미국의 군사 개입, 사실 제대로 된 승리가 없습니다.
      1945년 2차대전 종전, 불과 5년 뒤 한국전쟁 비기기로 시작해서 줄줄이 쓴 맛.
      2차대전 종전 후 미국이 왜 베트남에서 패배성 철군했고, 중동에서 겉보기 사상누각 승리 수렁에 빠졌겠습니까?
      냉정하게 본다면 미국은 사상 최약체 패권일 수도, 패권 장악 확인 도장 찍고서 고작 5년 후부터 저런 허약한 패권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2차대전 후 미국이 대응에서 실패했던 중국 공산화,
      최초로 승리하지 못한 한국전, 최초로 패배성 철군 당한 베트남 및 수렁에 빠진 중동 개입에 대해.
      중국-베트남 --------> 저들의 반외세 투쟁은 왜 좌익의 최종 승리로 끝났을까요?
      ----------------------------> 저들 내부의 우익은 왜 좌익에게 패배당했거나, 아예 존재감 자체가 없었을까요?
      중국-베트남 공산화 모두에서 서방측 책임은 치명적 결정적.
      그에 비해 한반도의 반식민지 항일투쟁은 폭 넓은 좌우 스펙트럼, 왜?
      중국-베트남, 특히 베트남과 한반도의 반식민 독립투쟁의 좌우 스펙트럼 차이 냉정하게 따져본다면,
      2차대전 직후 미국이 압도적 국력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제대로 된 개입과 승리가 없었던 원인에 다가설 수도.
      1. 중국 공산화 : 미국이 아무리 장개석 지원해도 막기 힘들었던.
      아편전쟁 이후 반식민지 상태의 굴욕을 당한 중국인들 입장에선,
      자신들에게 치욕을 안긴 주도 세력은 영국-미국-일본 등 우익 자본주의 국가들.
      국공 내전 당시 미국-영국 지원받는 장개석 아닌 미영일 모두의 적인 소련의 지원받는 모택동에 민심 쏠린.
      즉 중국 공산화는 아편전쟁 이후 서방 주도의 중국 반식민화 침략에 대한 중국의 저항으로 해석할 수도.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정의로운 미국이 장개석 정부 지원했지만, 부패한 장개석을 파고든 교활한
      모택동 무리들에게 어리석은 중국인들이 현혹된 공산화라고 여기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은.
      2. 베트남 민족주의는 왜 좌익-공산주의 일색이었나?
      베트남의 반프 독립투쟁, 프랑스의 동맹이자 식민지를 보유했던 미영은 지원할 수 없음.
      베트남의 반프 독립운동이 지원받을 유일한 곳은 미영프 모두의 적인 공산주의 소련 밖에 없었던 상황.
      즉 베트남 민족주의는 공산주의가 좋아서가 아닌,
      국제정세 제약 조건으로 좌익-공산주의를 반식민지 투쟁의 유일한 도구 선택 몰려버린.
      (철수하는 프랑스 대타로 개입한 미국, 민심을 얻지 못했기에 패배성 휴전, 휴전 후 철군, 철군 후 공산화.)
      베트남 공산화 이후 얼마 뒤, 바로 미국과 수교하고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세계시장에 편입된 것으로 명백.
      3. 왜 한반도의 항일투쟁은 좌우익의 폭 넓은 스펙트럼이었나?
      한국전 --------------> 2차대전 후 처음 터진 대규모 국지전 아닌 국지전.
      미국 이외의 모든 강대국들이 초토화된 상태에서, 미국은 단독도 아닌 유엔군과 함께 하고도,
      거기다 소련의 직접 개입 없는 상태에서, 49년 막 공산화 직후 아직 내부 혼란 상태였던 중공 상대로도,
      미국은 비겼습니다. 대한민국 내부의 수 많은 미국 우호 세력이 없었다면 그 마저도 힘들었을 수.
      (한국전에서 초라했던 중공 상대로도 승리하지 못한 미국이,
      21세기 G2로 변해버린 중국 상대로 동북아의 전면전에서 승리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베트남과 한반도, 어떤 차이점이 있었겠습니까?
      지난 세기 초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영일동맹으로 러시아-소련 남하 막는 미영의 방패로 선택된 일본.
      하지만 진주만 기습으로 일본에게 뺨싸대기 쳐맞은 이후 미영은 비로서 우리 항일독립 투쟁 지원 시작.
      만일 진주만으로 일본이 미영의 적이 되지 않았다면 미영은 우리 항일투쟁에 그 어떤 지원도 없었을 것.
      즉 진주만 기습 이후 미영이 일본의 적이 된 조건 하에 우리 우익 독립투쟁이 미영의 지원을 받은 것.
      대한민국엔 천만다행으로 미국의 항일 독립투쟁 지원으로,
      해방 후 38선 남에서 대한민국 우익이 미국 지원을 정당화할 명분을 획득.
      그런 상태에서 한국전쟁이 터져 미국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할 수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있었기에 비기기 정도로 마감된 것.
      만일 한국전쟁이 베트남과 유사하게
      철수하는 일본 대타로 미국이 개입하는 형식이었다면,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과 대한민국에 대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은 베트남 처럼 한반도 공산화로 마감 가능성.
      그런 상황에선 한반도의 민심은 미국에게 향할 수 없기 때문.
      모든 인간은 시대 조건이라는 제약에 예속됩니다.
      4. 중동의 반미 반영 반서방 정서
      걸프전-이라크전-아프칸전, 겉보기엔 엄청난 대승. 하지만
      최근 아프칸 사태에서 보듯 사상누각-임시방편 수준 승리에 지나지 않는.
      아프칸에서 미군과 미국인 철수 완료되기도 전에, 수도 카불이 함락당할 정도로 황당 사태.
      이라크 역시 미국 철수 즉시 원위치 될 가능성 큰.
      십자군 부터 21세기 현재 까지 서방측의 무력 개입이 잦았던.
      투르크 시절 발칸반도와 스페인 일부 점령한 시기를 제외하면 서방측의 중동 개입이 주였던.
      그러한 역사적 배경에 2차대전 후 철수하는 영국 대타로 개입한 미국이었기에 민심을 얻을 수 없는.
      근본적 해결책은 미영을 필두로 한 서방측이 무력에 기반한 중동에서의 이권 유지를 포기하는 것.
      아프칸에 1,000조 투입했는데도 부패한 정권과 군 때문에 미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이 복귀했다는
      오판에서 벗어나야 하는. 미국이 퍼부은 1,000조 중 아프칸의 헐벗은 주민들에게 지원된 비중은 아마
      극히 일부이고, 거의 대부분은 미군수업체-국방부-미민간군사업체 쪽으로 투입되었을 것. 미국은 중동인들의
      마음을 얻는 곳에 별 투자하지 않았기에 미군과 미국인 철수 완료되기도 전에 수도 카불이 함락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인.
      현재 미국이 어떤 깃발을 내걸고 중동에서 군사개입 하건,
      명백한 것은 21세기 현 시점에서 미국은 중동인들에게 불청객임을 부인하기 힘든.
      중동에서 미군이나 영국군 1명 전사할 때, 그 상대편은 아마도 수 십배 비율로 죽어나갈 겁니다.
      저런 식으로 중동인들 마음이 열릴 수는 없기에, 저런 식의 중동 개입은 벗어날 수 없는 수렁이 되는.
      이런 관점에서 2차대전과 그 후 미국의 군사개입을 바라본다면,
      2차대전은 미국이 마땅히 수행해야 했고 반드시 승리해야만 했던 전쟁이었지만,
      2차대전 이후 잦았던 미국의 군사개입 대부분은 그렇지 못했던 성격이라 초래된 차이 아닐까 합니다.
      2차대전과 종전 후 미군의 정신력과 태도 차이.
      대공황-풍요 경험 차이라기 보다는,
      왜 전쟁 군사개입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정당성과 국민적 합의 여부.
      그리고 미국의 군사개입을 바라보는 개입 대상 지역 사람들의 미국에 대한 태도 차이.
      2차대전 때 미군은 어디서건 환영받았지만, 2차대전 후 미군은 자신들을 배척하는 이들도 만나게 되는.
      1차대전 윌슨 민족자결주의에서 벗어나 프랑스 대타로 개입하는 등의 미국의 변화가 초래한.
      그리고 사실 미국은 아직 독일, 영국 수준의 경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더 나아가 미국은 단독으로는 특정 시점 최강 적성국과 붙어본 적도 없는 지극 취약함도.
      1. 미국이 독일 수준의 경험을 하려면,
      미국을 제외한 사실상 전세계인 중-러-유럽연합과 동시에 투쟁해 저들을 그로기로 몰아야.
      그것도 2번 연속을. 미군과 미국 민간인 수 백만이 희생되면서, 적들에게 수 천만의 인명피해를
      강요하는 전쟁을 수행해야만. 하지만 미국이란 공동체는 한국전이나 베트남전 수준의 인명 피해
      에도 즉시 휴전이나 철군 여론 빗발침을 고려한다면 미국에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2. 미국이 영국 수준이 되려면,
      앞으로 수 백년 매 시기 가장 강력한 적성국을 상대로,
      단독이건 동맹과 함께건 투쟁해서 최강의 적을 모두 패배시키고 승리해야만.
      그러나 이미 한국전-베트남전 비기기-패배성철군으로 불가능해졌고, 그 기초 단계를
      성공한다고 가정하더라도 미국은 영국 레벨이 될 수 없습니다. 영국은 패권을 잃을 때 조차도 적대세력의
      패권 장악을 저지하며, 같은 언어-문화-가치관을 가진 미국이라는 대체 세력 자체도 파생시키면서 패권을 평화적으로 잃었기에.

    • @떠도는이야기-j6c
      @떠도는이야기-j6c 8 месяцев назад

      @@scz8333 병자호란당시 삼전도의 굴육을 당했지만, 당시 청나라의 사정도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남한산성에서 나온 조선군에게 기습을 받아 청나라군사도 많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근왕군이 몰려올때, 청나라군도 상당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최근 고려거란전쟁 드라마에도 나오듯이 유목민족은 장기간 전쟁을 지속할 능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유목민족이 세운 청나라도 별반 다를바 없었고, 병자호란당시 청나라는 만주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고, 병자호란당시는 인구급증으로 상당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었기 떄문에 전쟁지속능력이 떨어졌습니다. 애당초, 중국으로 들어가려는 이유 자체가 먹고 살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청나라 성공 요인은 보급은 아예 포기하고 신속한 기동전을 했고, 남한산성의 포위전에 성공했으며, 무엇보다 전세를 결정적으로 바뀌게 된 이유는 세자가 잡히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선조는 남한산성에서 계속 버티고 있었는데, 세자가 잡히고만 겁니다. 이게 결정적인 이유가 뭐냐면, 왕조시대에는 왕이 있어야 국가가 유지가 됩니다. 왕이 있어야 신하가 있고, 신하는 왕명을 근간으로 백성을 지배하기 때문에, 왕이 없으면, 신하는 백성을 지배할 명분이 없어지고, 국가는 붕괴되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왕명을 함부로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왕명을 한번 내리면, 왕조차도 이것을 쉽게 번복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그만큼 왕의 위엄이 중요했던 겁니다.) 따라서, 조선의 경우 세자를 두어서, 왕이 사망할때를 대비하는데, 병자호란당시, 남한산성의 왕이 싸우다 죽더라도, 세자만 살아있으면, 나라는 유지가 됩니다. 하지만, 세자가 잡혔고, 남한산성도 붕괴 일보직전이라서, 삼전도의 굴육이라는 사건이 발생했던 겁니다.
      알아둬야 할것은 청나라는 왕의 항복을 받아내자 마자 빠르게 철군했습니다. 계속 있다가는 정말 어찌될지 모르거든요.
      그리고, 미군에 대해 과대평가를 하자는게 아니라, 중국군이 유엔군과 숫자가 엇비슷했다는게 말도 안된다는 겁니다. 당시 미군은 M1소총으로 무장하고, BAR분대 기관총, M1919 7.62미리 기관총, 60미리, 82미리, 박격포, 무반동포, 105미리 화포, 155미리 화포,탱크, 전투기, 폭격기로 무장했습니다. 전형적인 정규군 무장입니다. 미군 보병들이 들고 다니는 무기가 죄다 연발무기입니다. 보급수요가 늘어나기는 하지만, 일단 전투에 들어가면 압도적인 화력의 우위를 점하기 때문에 볼토액션 소총으로 무장한 군대는 압살 당합니다. 이미 2차세계대전에서 증명된 사실입니다. 미국 정규군은 연발소총, 그리고 공용화기가 충실히 무장되어 있으며, 이런 공용화기는 유지보수에 많은 물자와 비용이 듭니다. 미국은 그것을 감당할 몇 안되는 국가였습니다. 중공군의 경우, 기껏해야 볼트액션 소총, 따발총이라고 불리우는 9미리 기관단총, 아니면, 수류탄, 쏘련제 사단포나, 일본제 산포라고 불리우는 무기로 무장했다고 하는데, 이 정도의 무장은 그냥 게릴라입니다.
      게릴라와 정규군이 충돌하면, 말도 안되는 교환비가 나옵니다. 베트남전에서도 그랬고, 다른 전쟁에서도 그랬습니다. 중무장한 정규군을 상대로 알보병으로 밀어붙인다는 것은 희생을 전제로 합니다. 상대는 기관총에다가 각종 화포를 쏘아대는데, 중공군은 보병만으로 밀어붙였고, 그렇게 함에도 전략적인 목표를 달성했다고 한다면, 수도 없는 알보병의 희생없이는 달성이 불가능 한 겁니다. 거기다, 미군은 공군이 강력하기 때문에, 공군에게 막대한 피해는 피할 수 없었을 겁니다. 중공군도, 쏘련의 지원을 받아 엄호를 받았겠지만, 미공군을 상대할 국가는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없습니다. 미국이 2차세계대전후에 많은 무기를 폐기했지만, 공군까지는 아니었거든요. 따라서, 유엔군과 중공군이 숫자가 비슷했다는 전제는 말도 안됩니다. 중국의 허세지요. 그리고 유엔군 병력이 20만 정도였다면, 수송, 각종 지원병과까지 포함한 숫자였을테고, 따라서 전투병은 따로봐야 합니다. 중공군의 20만이라는 것은 지원병력을 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과 우마차의 수송력을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게, 만주에서 한반도까지는 거리가 그리 먼게 아닙니다. 그리고 2차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의 400만 병력의 병참수송을 말이 담당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또한 전면에 나선 병력이 20만이라 한다면, 후방에 예비나, 대기하는 병력이 얼마인지도 따져 봐야 합니다. 중국은 한국전쟁 당시 내전중이었고, 병력이 비정상적일만큼 팽창한 상태였다는 것을 고려 해야 합니다. 1950년대에 중국인구가 6억정도라는 것을 참고하시고, 한국은 남북한 다 합쳐봐야 대략 2000만 넘는 수준이었다는걸 아셔야 합니다. 1만정도의 사단을 유지하려면, 계속해서 신병을 뽑아서 보충을 해줘야 합니다. 부상으로 불구가 되어 전투가 불가능한 사람, 또는 사망자를 계속 보충해줘야 군대가 유지가 되는 겁니다. 따라서 20만의 군대를 유지하려면, 계속 10퍼센트 또는 20퍼센트정도의 소모되는 병사를 계속 보충해줘야 합니다. 중공군은 그게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내전중인 중국은 각종 통계 자료 자체가 신빙성이 의심됩니다. 내전중인 나라가 제대로 통계를 내기가 힘든 이유는 행정력이 딸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투에서의 사망자 수, 또는 개별전투에서의 승리는 전체 전쟁에서 바라보면 중요한게 아닙니다. 정규전에서는 화포로 모든것을 갈아버릴 능력이 중요한 겁니다.
      다시 병자호란을 보자면, 당시 광교산전투에서 홍타이지 매부가 전사하고, 상당한 청나라의 병사가 녹아 내렸지만, 전쟁에서는 조선군이 졌지요. 마찬가지로, 베트남전에서 미군이 베트콩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사례는 극히 적습니다. 대부분 압도적인 교환비로 압살을 했지만, 전쟁은 졌지요. 전쟁에서의 승리는 전략적 목표의 달성 여부입니다.
      과감한 기동전으로 한양을 점령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많고, 또한 한국전쟁에서 초반에 국군이 부산까지 밀리다가, 다시 인천상륙작전으로 백두산까지 진격했고, 중공군의 참전으로 다시 서울을 빼앗기고, 다시 기동전으로 서울을 수복하고, 휴전선에서 고지전으로 일관하게 되는게 한국전쟁입니다. 쾌속진격해서 섬멸을 하지 못한 이유는 수송로 확보가 안되기 때문에 보급이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보급 수요도 낮고, 중무장이 아닌 중공군마져, 산악지대로 인해, 보급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초반 기동전이 가능한 이유는 휴대한 보급품으로 며칠동안은 전투가 수행이 가능한데,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보급을 받아야 하고, 이게 한반도 지형에서는 어렵다는 겁니다.
      보급수요가 한참은 적었던, 과거 임진왜란에도 왜병들이 보급의 어려움으로 겪은 각종 일화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쾌속진군으로 한양을 점령했지만, 그 이후에 보급이 실패해서 결국은 왜군이 후퇴를 해야만 했던 겁니다.

  • @김후니-g8b
    @김후니-g8b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좋은프로인데 발음안되는분땜에 몰입깨네

  • @효녀밍밍
    @효녀밍밍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중공군 최정예사단이 국군을 상대했다는건 미군과 대치하고있었던 중공군은 약했을것 같은데 미군이 왜 과감하게 공격해서 뚫고들어가지 않았을까요?그럼 포위당할 위기도 모면했을것 같은데...

    • @scz8333
      @scz8333 9 месяцев назад

      ( 중공군 최정예사단이 국군을 상대했다는건 미군과 대치하고있었던 중공군은 약했을것 같은데 )
      ----------------------------------->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 최전선의 부대 배치를 저렇게 결정했고 + 미국은 수동적으로 저렇게 배치당한 겁니다.
      ( 미군이 왜 과감하게 공격해서 뚫고들어가지 않았을까요?그럼 포위당할 위기도 모면했을것 같은데... )
      -----------------------------------> 저렇게 선택한 중국이 멍청하게 미군이 자신들의 약한 부대를 공격할 때 당당히 맞서 싸우면서 전멸당하겠습니까?
      -----------------------------------> 저렇게 부대 배치를 하고 중의 주력이 공세 펼쳤다는 것은 + 미군이 자신들의 약한 부대를 칠 경우, 약한 부대들은 후퇴한다는 것.
      -----------------------------------> 즉 미군이 중의 약한 부대를 쫒아 깊숙이 침투할 수록 + 더 깊은 함정에 빠지는 겁니다.
      중일전쟁 때 만주 전체 + 중국 해안지대 사실상 전체 + 북경-상해-남경 등 중의 핵심 지대 전부 점령하고도 일본은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중공군 주력이 국군에 대한 공세로 미군의 퇴로가 막히는 조건에서,
      -----------------------------------> 님 주장대로 미군이 중의 약한 부대들 치고 어디까지 올라갔다 + 방향을 되돌려 남쪽의 중국 주력을 섬멸하려 내려와야 합니까?
      -----------------------------------> 중일전쟁 대륙에 투입된 일본군에 비한다면 한 줌 수준의 미군 병력으로 가능하겠습니까?
      -----------------------------------> 압록강에서 멈추었다 다시 남으로 오면 됩니까? 중공군 주특기가 강한 적이 공세 펴면 후퇴 + 그 적이 물러나면 추격인데.
      -----------------------------------> 아니면 아예 압록강 넘어 만주로, 북경으로 ... 계속 전진?
      배후가 뚫리면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는 것이 현명한 겁니다.
      적 주력이 아군의 배후를 뚫었는데 + 아군 주력이 전면의 적 약한 부대들 상대로 진격한다는 것은 + 그것도 그런 상황을 아군이 주도적으로 만든 것 아닌
      ------------------------------------> 교활-현명한 적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든 조건에서 약한 적 부대 추격 섬멸에 나선다는 것은 적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더 빠른 섬멸됨을 자초할 위험도.

    • @scz8333
      @scz8333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차대전 후 미국의 군사 개입, 사실 제대로 된 승리가 없습니다.
      1945년 2차대전 종전, 불과 5년 뒤 한국전쟁 비기기로 시작해서 줄줄이 쓴 맛.
      2차대전 종전 후 미국이 왜 베트남에서 패배성 철군했고, 중동에서 겉보기 사상누각 승리 수렁에 빠졌겠습니까?
      냉정하게 본다면 미국은 사상 최약체 패권일 수도, 패권 장악 확인 도장 찍고서 고작 5년 후부터 저런 허약한 패권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2차대전 후 미국이 대응에서 실패했던 중국 공산화,
      최초로 승리하지 못한 한국전, 최초로 패배성 철군 당한 베트남 및 수렁에 빠진 중동 개입에 대해.
      중국-베트남 --------> 저들의 반외세 투쟁은 왜 좌익의 최종 승리로 끝났을까요?
      ----------------------------> 저들 내부의 우익은 왜 좌익에게 패배당했거나, 아예 존재감 자체가 없었을까요?
      중국-베트남 공산화 모두에서 서방측 책임은 치명적 결정적.
      그에 비해 한반도의 반식민지 항일투쟁은 폭 넓은 좌우 스펙트럼, 왜?
      중국-베트남, 특히 베트남과 한반도의 반식민 독립투쟁의 좌우 스펙트럼 차이 냉정하게 따져본다면,
      2차대전 직후 미국이 압도적 국력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제대로 된 개입과 승리가 없었던 원인에 다가설 수도.
      1. 중국 공산화 : 미국이 아무리 장개석 지원해도 막기 힘들었던.
      아편전쟁 이후 반식민지 상태의 굴욕을 당한 중국인들 입장에선,
      자신들에게 치욕을 안긴 주도 세력은 영국-미국-일본 등 우익 자본주의 국가들.
      국공 내전 당시 미국-영국 지원받는 장개석 아닌 미영일 모두의 적인 소련의 지원받는 모택동에 민심 쏠린.
      즉 중국 공산화는 아편전쟁 이후 서방 주도의 중국 반식민화 침략에 대한 중국의 저항으로 해석할 수도.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정의로운 미국이 장개석 정부 지원했지만, 부패한 장개석을 파고든 교활한
      모택동 무리들에게 어리석은 중국인들이 현혹된 공산화라고 여기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은.
      2. 베트남 민족주의는 왜 좌익-공산주의 일색이었나?
      베트남의 반프 독립투쟁, 프랑스의 동맹이자 식민지를 보유했던 미영은 지원할 수 없음.
      베트남의 반프 독립운동이 지원받을 유일한 곳은 미영프 모두의 적인 공산주의 소련 밖에 없었던 상황.
      즉 베트남 민족주의는 공산주의가 좋아서가 아닌,
      국제정세 제약 조건으로 좌익-공산주의를 반식민지 투쟁의 유일한 도구 선택 몰려버린.
      (철수하는 프랑스 대타로 개입한 미국, 민심을 얻지 못했기에 패배성 휴전, 휴전 후 철군, 철군 후 공산화.)
      베트남 공산화 이후 얼마 뒤, 바로 미국과 수교하고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세계시장에 편입된 것으로 명백.
      3. 왜 한반도의 항일투쟁은 좌우익의 폭 넓은 스펙트럼이었나?
      한국전 --------------> 2차대전 후 처음 터진 대규모 국지전 아닌 국지전.
      미국 이외의 모든 강대국들이 초토화된 상태에서, 미국은 단독도 아닌 유엔군과 함께 하고도,
      거기다 소련의 직접 개입 없는 상태에서, 49년 막 공산화 직후 아직 내부 혼란 상태였던 중공 상대로도,
      미국은 비겼습니다. 대한민국 내부의 수 많은 미국 우호 세력이 없었다면 그 마저도 힘들었을 수.
      (한국전에서 초라했던 중공 상대로도 승리하지 못한 미국이,
      21세기 G2로 변해버린 중국 상대로 동북아의 전면전에서 승리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베트남과 한반도, 어떤 차이점이 있었겠습니까?
      지난 세기 초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영일동맹으로 러시아-소련 남하 막는 미영의 방패로 선택된 일본.
      하지만 진주만 기습으로 일본에게 뺨싸대기 쳐맞은 이후 미영은 비로서 우리 항일독립 투쟁 지원 시작.
      만일 진주만으로 일본이 미영의 적이 되지 않았다면 미영은 우리 항일투쟁에 그 어떤 지원도 없었을 것.
      즉 진주만 기습 이후 미영이 일본의 적이 된 조건 하에 우리 우익 독립투쟁이 미영의 지원을 받은 것.
      대한민국엔 천만다행으로 미국의 항일 독립투쟁 지원으로,
      해방 후 38선 남에서 대한민국 우익이 미국 지원을 정당화할 명분을 획득.
      그런 상태에서 한국전쟁이 터져 미국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할 수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있었기에 비기기 정도로 마감된 것.
      만일 한국전쟁이 베트남과 유사하게
      철수하는 일본 대타로 미국이 개입하는 형식이었다면,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과 대한민국에 대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은 베트남 처럼 한반도 공산화로 마감 가능성.
      그런 상황에선 한반도의 민심은 미국에게 향할 수 없기 때문.
      모든 인간은 시대 조건이라는 제약에 예속됩니다.
      4. 중동의 반미 반영 반서방 정서
      걸프전-이라크전-아프칸전, 겉보기엔 엄청난 대승. 하지만
      최근 아프칸 사태에서 보듯 사상누각-임시방편 수준 승리에 지나지 않는.
      아프칸에서 미군과 미국인 철수 완료되기도 전에, 수도 카불이 함락당할 정도로 황당 사태.
      이라크 역시 미국 철수 즉시 원위치 될 가능성 큰.
      십자군 부터 21세기 현재 까지 서방측의 무력 개입이 잦았던.
      투르크 시절 발칸반도와 스페인 일부 점령한 시기를 제외하면 서방측의 중동 개입이 주였던.
      그러한 역사적 배경에 2차대전 후 철수하는 영국 대타로 개입한 미국이었기에 민심을 얻을 수 없는.
      근본적 해결책은 미영을 필두로 한 서방측이 무력에 기반한 중동에서의 이권 유지를 포기하는 것.
      아프칸에 1,000조 투입했는데도 부패한 정권과 군 때문에 미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이 복귀했다는
      오판에서 벗어나야 하는. 미국이 퍼부은 1,000조 중 아프칸의 헐벗은 주민들에게 지원된 비중은 아마
      극히 일부이고, 거의 대부분은 미군수업체-국방부-미민간군사업체 쪽으로 투입되었을 것. 미국은 중동인들의
      마음을 얻는 곳에 별 투자하지 않았기에 미군과 미국인 철수 완료되기도 전에 수도 카불이 함락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인.
      현재 미국이 어떤 깃발을 내걸고 중동에서 군사개입 하건,
      명백한 것은 21세기 현 시점에서 미국은 중동인들에게 불청객임을 부인하기 힘든.
      중동에서 미군이나 영국군 1명 전사할 때, 그 상대편은 아마도 수 십배 비율로 죽어나갈 겁니다.
      저런 식으로 중동인들 마음이 열릴 수는 없기에, 저런 식의 중동 개입은 벗어날 수 없는 수렁이 되는.
      이런 관점에서 2차대전과 그 후 미국의 군사개입을 바라본다면,
      2차대전은 미국이 마땅히 수행해야 했고 반드시 승리해야만 했던 전쟁이었지만,
      2차대전 이후 잦았던 미국의 군사개입 대부분은 그렇지 못했던 성격이라 초래된 차이 아닐까 합니다.
      2차대전과 종전 후 미군의 정신력과 태도 차이.
      대공황-풍요 경험 차이라기 보다는,
      왜 전쟁 군사개입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정당성과 국민적 합의 여부.
      그리고 미국의 군사개입을 바라보는 개입 대상 지역 사람들의 미국에 대한 태도 차이.
      2차대전 때 미군은 어디서건 환영받았지만, 2차대전 후 미군은 자신들을 배척하는 이들도 만나게 되는.
      1차대전 윌슨 민족자결주의에서 벗어나 프랑스 대타로 개입하는 등의 미국의 변화가 초래한.
      그리고 사실 미국은 아직 독일, 영국 수준의 경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더 나아가 미국은 단독으로는 특정 시점 최강 적성국과 붙어본 적도 없는 지극 취약함도.
      1. 미국이 독일 수준의 경험을 하려면,
      미국을 제외한 사실상 전세계인 중-러-유럽연합과 동시에 투쟁해 저들을 그로기로 몰아야.
      그것도 2번 연속을. 미군과 미국 민간인 수 백만이 희생되면서, 적들에게 수 천만의 인명피해를
      강요하는 전쟁을 수행해야만. 하지만 미국이란 공동체는 한국전이나 베트남전 수준의 인명 피해
      에도 즉시 휴전이나 철군 여론 빗발침을 고려한다면 미국에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2. 미국이 영국 수준이 되려면,
      앞으로 수 백년 매 시기 가장 강력한 적성국을 상대로,
      단독이건 동맹과 함께건 투쟁해서 최강의 적을 모두 패배시키고 승리해야만.
      그러나 이미 한국전-베트남전 비기기-패배성철군으로 불가능해졌고, 그 기초 단계를
      성공한다고 가정하더라도 미국은 영국 레벨이 될 수 없습니다. 영국은 패권을 잃을 때 조차도 적대세력의
      패권 장악을 저지하며, 같은 언어-문화-가치관을 가진 미국이라는 대체 세력 자체도 파생시키면서 패권을 평화적으로 잃었기에.

    • @scz8333
      @scz8333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차대전 종전 후에도, 미국과 영국은 거의 함께 싸웠습니다.
      투입한 병력 규모에선 미국이 압도적이었지만, 전장의 다양성 측면에선 의외로 미국이 뒤진 면도.
      미국이 전혀 경험하지 못한 전쟁을 영국은 경험했으며, 같은 전투에서 조차 미국이 뒤쳐진 부분도.
      1. 제트기-미슬 시대의 함대 방공전 -------------------> 미국 실전 경험 없음, 영국만이 포클랜드전으로 유일
      포클랜드전에서 시스키밍 대함미슬 요격에 실패, 종전 뒤 세계 각국은 본격 근접방어 체계 도입 시작.
      2차대전 후 실전 함대방공전에서 적기를 격추한 경험은 영국 해군만이.
      2. 잠수함의 적함 격침 -------------------> 미해군 아직 없음, 단 2건의 기록 중 1건이 영국 핵잠의 기록
      잠수함 등장 이후 21세기 현재까지 잠수함 : 잠수함의 수중 전투에서 적 잠수함 격침 기록 역시 45년 종전 직전
      북해에서 수중 항해중이던 영 잠이 수중 항해중이던 독 유보트 격침한 사례가 유일한 전과.
      3. 대함미슬을 함대공 미슬로 요격 ----------------------> 미해군 전과 없음, 오직 영 해군이 걸프만에서 사상 최초 요격.
      걸프만에서 재취역한 미 전함 아이오와급이 포함된 미 함대를 호위하던, 영 방공구축함 T42가 이란의 실크웜 대함
      미슬을 시다트 함대공 미슬로 요격한 것이 유일한 전과. 당시 그 함대 소속 미 이지스함의 CIWS는 근처의 미 함정
      을 향해 오발 사고. 또한 그 무렵 걸프만의 다른 미 이지스함은 이란 여객기를 적기로 오판 격추해, 민간인 수 백명
      이 희생되는 대참사. 뿐만 아니라 그 무렵 걸프만의 또 다른 미 수상함은 고무보트 자살 폭탄 테러당해 함정 옆구리
      구멍 뚫려 바지선에 태워져 후송. 분명 미 이지스함이 영 T42 보다 고성능인데 막상 실제 상황에선 저런 일 터진.
      4. 전차 : 전차, 최장거리 격파 기록 -----------------> 1차 걸프전 때, 영 챌린저1 약 4.7KM 거리에서 적 전차 격파
      저 당시 미군이 병력과 투입 전차 수에서 압도적이었지만, 소수의 영국 전차부대가 최장거리 격파 기록.
      사막 지형이라 가능한 기록. 한반도의 굴곡진 지형에선 저 정도 거리에선 적 전차 관측할 곳도 별로 없음.
      걸프전 영국과 미국의 전차전 전과는 이렇습니다.
      영국은 192대? 전차 투입하고서 300 : 0 전과를 기록했고 특히 전차전 교전 손실 0 달성.
      미국은 영국 보다 압도적인 수량의 전차 투입, 끝 자리 수에서 0을 하나 더 붙여 투입하고 600 : 2 전과, 하지만 전차전 전투 손실 2 발생.
      우크라이나 전쟁 진행중인 2023년, 발트해 연안 에스토니아에서 실시된 나토 기갑부대 경연에서,
      ----------------------------------------> 주력 전차 MBT 부분 성적, 1위 영국 챌린저2 + 2위 스페인 레오파드2 + 3위 미국 에이브럼스2
      5. 아프칸 등에서의 최장거리 저격 기록 -------------------> 캐나다 영국이 주도하며 미국이 뒤 따르는.
      투입 병력은 미군이 압도적이지만 소수의 영국군과 더욱 소수의 캐나다군이 우세한 저격 기록. 캐나다 1위-3위-4위 영국-2위 미국-5위
      캐나다의 1위 기록은 2위 이하 기록과 차원이 다른 초장거리, 기억으로 약 3.5KM, 2위~5위는 2KM대 기록. 미군이 투입 병력은 많음에도 실전 기록은 저런.
      수정 추가합니다.
      ( 2023년 진행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군 58세 저격병이 최장거리 저격 기록 약 3.7km 를 우크라이나 자국산 저격총으로 세웠다고. )
      ( 최장거리 저격 기록 세운 우크라이나군 노병은 전쟁 전 사격 선수로 여러 대회 우승 경험 있었는데, 전쟁 터지자 자원 입대했다고. )
      2차대전 이후 최강 패권국으로 등장한 미국.
      냉정하게 평가하면 덩치에 비해 내실 부족하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지난 70년.
      투입한 병력과 보유한 장비 및 과학기술 수준을 고려할 때, 믿기지 않는 비효율적 개입과 철수 반복된.
      21세기 현재, 서방측에서 미군이 가장 거대하고
      장비 또한 최상이지만 미군의 질적 수준이 그렇다는 아무런 보장 없고,
      이런 상태에서 미국이 아직 까지 경험하지 못한 단독으로 최강 적성국과 전쟁에서 승리 기대하기 힘들 것.
      생각해보길, 2차대전 이후 그리고 21세기 현 미국이 단독으로
      중국이나 러시아 국경 근처나 국경을 넘어 침공해 재래식 전쟁 벌여 승리할 의지나 능력이 있을지를.
      미국과 달리 영국은 안쑤시고 다닌 대륙이나 국가 찾기가 힘들 정도, 그것도 지극히 적은 병력으로 치명적 승리를 거두며.
      --------------------------------------------------------------------------------------------> 미국은 아직 단독으로는 최강의 적성국과 붙어 승리해본 경험도 없는.
      21세기 미 핵항모전단

    • @scz8333
      @scz8333 9 месяцев назад

      민족분단과 동족상쟁의 가장 큰 원인은 물론 우리 민족 내부 적대적 분열 투쟁.
      하지만 외부적 요인 역시 존재했습니다. 서구제-동구제 이데올로기가 수입되면서 더 큰 내부 적대적 투쟁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또한 외부 요인이 단순히 우리가 이데올로기를 수입한 정도에서 그친 것이 아닌 + 한반도 분단의 가장 결정적 물리적 요소로 작용한 측면도 있습니다.
      ruclips.net/user/shorts4xYAzsdguHo
      --------------------------------------------> 1945년 8월, 처음 계획된
      --------------------------------------------> 미영중소 연합 4개국에 의한 일본 분할 점령 계획안.
      --------------------------------------------> 일본만이 아닌 한반도 역시 미영중소 4개국이 분할 점령해 일본군 무장 해제 계획이었지만 결국 변경된.
      ruclips.net/video/8ldqolPJIG0/видео.html The British Occupation of Japan
      --------------------------------------------> 2차대전 종전 후 독일-오스트리아-일본에 대한 연합군 분할 점령 관련 내용.
      --------------------------------------------> 유럽에선 전범국이 미영프소 4토막 분할 점령되었지만, 극동에선 전범국 일본 아닌 한반도가 미소 2토막 나눠 먹기.
      --------------------------------------------> 전범 일본에 대한 연합국 점령 계획안이 어떻게 사실상 거의 미국 단일 점령에 가깝게 ( 영국이 약간 점령하는 형태 )
      --------------------------------------------> 바뀌는지 보길. 소련의 일본 홋카이도-혼슈북부 점령 철회 + 영국의 일본 점령지 축소 + 중국의 일본 점령지 0화
      한국전쟁은 외세의 역활도 무시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치명적일 수도 있습니다.
      미영중소 4개국의 한반도 분할 점령 계획안 검색해서 찾아보길.
      소련 점령 예정지는 함경도 일대에 국한되고 한반도의 대부분은 미영중이 점령하는 형태.
      만일 일본과 한반도의 4개국 분할 점령 계획대로 전후 처리가 실시되었다면, 동서독에서 서독이 훨씬 컸던 그 조건과 본질적으로 같아져,
      --------------------------------------------------------------> 함경도 귀퉁이 차지한 물리적 조건에서 한국전 발발은 사실상 힘들었을 것.
      --------------------------------------------------------------> 소련군 점령 예정지는 인구 측면에선 미영중 점령지에 비한다면 압도에 압도에 압도되는 수준.
      --------------------------------------------------------------> 또한 모택동 아닌 장개석군이 한반도에 진주하는 조건에서 중국 공산화 역시 조금은 더 힘들었을 것.
      ---------------------> 미국이 일본 전체 점령 욕심 부리면서,
      ---------------------> 그 반대급부로 한반도 38선 이북을 소련에게 떼어주는 선택을 한 것.
      ---------------------------------------------> 유럽에선 전범국 독일과 독일어 사용하는 오스트리아가 미영프소 4개국에 분할 점령되었지만,
      ---------------------------------------------> 태평양전쟁 종전 처리 과정에선, 미국의 주도적 역활로 전범국 일본 아닌 한반도가 유탄 맞은 것은 치명적 민족분단 원인.
      ---------------------------------------------> 오스트리아는 4개국 신탁통치 후 영세 중립 선언, 하지만
      ---------------------------------------------> 오스트리아는 내용적-경제적으로 사실상 친서방 서구 민주주의 국가가 된. 그 이유는
      ---------------------------------------------> 미국-영국-프랑스군의 점령과 서방측 원조가 친소 공산세력의 확산을 저지 + 현명한 오스트리아 내부 타협 때문.
      ---------------------------------------------> 한반도의 좌우익은 정파적 승리를 위해 외세와 결탁해 자발적 내부 투쟁에 돌입했지만 오스트리아 좌우익은 달랐던.
      그리고 미국의 태평양 전쟁 막판 끝내기는 인류 역사상 아마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대악수, 최악의 오판 삽질.
      ---------------------------------------------> 사실상 태평양 전쟁 승패 결정된 상태에서,
      ---------------------------------------------> 미군 희생 좀 더 줄여보겠다고 + 소련의 대일전 참전 요청 + 소련은 형식적으로 미국의 요청을 수용하면서
      ---------------------------------------------> 과장 아주 아주 조금 보태 일본 항복 1초 전에 + ( 게다가 태평양 전쟁 기여도 0 상태에서 ) + 만주 전체와 한반도 절반 점령.
      ---------------------------------------------> 소련 입장에선 그냥 굴러 들어온 떡.
      ---------------------------------------------> 만주만 점령해도 중국 국공내전 모택동의 승리를 결정지을 조건에 + 추가로 한반도 절반 떼어준다는데 왜 거부합니까?
      덜떨어진 미국이었지만 자신들이 오키나와에서 악전고투 하던 그 무렵,
      미국의 요청으로 소련군이 만주를 침공할 경우 사실상 한반도 전체를 무혈 점령 가능성 뒤늦게 깨닫고,
      --------------------------------------------------------------------> 허겁지겁 수정안 즉 38선 경계로 북의 소련군 점령을 용인하면서 소련의 한반도 전체 점령 막는 잔머리.
      --------------------------------------------------------------------> 소련군이 만주 점령한 그 순간 ---------------------------> 중국 국공내전 모택동 승리, 장개석 패배 확정.
      --------------------------------------------------------------------> 소련이 만주 점령, 일본군 무장 해제만 하겠습니까?
      --------------------------------------------------------------------> 소련군이 무장 해제한 일본군 무기는 사실상 모택동에 가는 겁니다.
      --------------------------------------------------------------------> 또한 소련군이 점령한 만주는 모택동이 대륙 전체를 노리는 배후 강력한 거점으로 변하는.
      -------------------------------> 저렇게 허접했던 미국, 아마도 소련이 오케이 해준 순간 --------------------> 한반도 절반은 건졌다면서 속으로 만만세 외쳤을 것.
      1945년 당시 세계 유일 핵 보유국으로서,
      미국이 정상적인 판단했다면 이랬어야 하는 겁니다. ---------------------> 소련에 대한 강력 경고, 대일본전 지원 빌미로 감히 만주-한반도 발 내딛지 말라!!!
      --------------------------------------------------------------------------------------------------------> 태평양 전쟁 기여도 0에 + 일본과 소일-불가및 맺은 주제에 감히 나대지 마라!!!
      --------------------------------------------------------------------------------------------------------> 혹이라도 일본 항복 밥상에 숟가락 얹는 꼼수 부리면 핵무기 사용해서라도 막겠다!!!
      한국전쟁 유엔군 파병,
      소련이 거부권 행사했다면 불가능, 왜 소련이 안보리 불참 기권했는지도 냉정히 생각해보길.
      -------------------------------------------------> 독소전에서 우랄 서부 소련의 핵심 유럽 지역이 사실상 완전 토초화 + 민간인 포함 거의 2천만 인명 피해 상태에서
      -------------------------------------------------> 강력하지만 덜떨어진 미국을 극동의 국지전에 몰아 넣고, 동구권에서 철의 장막 확실하게 치려고 의도적으로 기권한 것.
      -------------------------------------------------> 미국이 한국전쟁에 붙들린 사이에 소련은 동구권에서 철의 장막 완성했음을 깨닫길.
      -------------------------------------------------> 국가 이익이 충돌하는 장에서 소련-스탈린이 정말 쫄아서? 멍 때리다 안보리 출석 못해 유엔군 파견???
      -------------------------------------------------> 스탈린은 독소 불가침 + 일소 불가침 맺었던 음흉한 넘이기에 순진하게 멍 때렸다고 보기 어려운.
      만일 영국 없이 미국 단독으로 유럽에서 종전 협상했다면 미국은 소련에게 완벽하게 당했을 것.
      -------------------------------------------------> 영국은 1944년 그리스에 상륙, 공산 빨치산 토벌 + 티토 유고 지원하며 반소 독자 노선 걷도록 유도.
      -------------------------------------------------> 미국은 유럽에서도 그저 그저 그저 ... 하루라도 아니 1초라도 빨리 미 본토로 돌아가려 정신 넋 빠졌던.
      -------------------------------------------------> 그러다 전후 막상 철의 장막 현실 보고서, 뒤늦게 처칠 초청해서 철의 장막 연설 들으며 박수쳤던 뒤늦은 수습.
      또한 지난 세기 초, 미국과 영국은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영일동맹으로 일본을 극동의 파트너로 선택 러시아-소련의 남하를 저지하는 역활 일본에 부여.
      한반도의 일본 지배는 그렇게 사실상 최종 결정된 겁니다. ----------------------> 일본에 먹힌 한반도 때문에 태평양전쟁 종결 과정에서 38선이 태어난 것도 명백.
      만일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기습이 없이
      일본이 미영의 극동 지부 행동대장으로 만족하고 계속 미영의 편에 남았다면 21세기 현재도 한반도와 만주는 여전히 일본령 가능성 압도적.
      따라서 한국전 이후 한미 관계만 보며, 미국에 대한 지나친 합리화는 위험.
      우리 민족은 이미 지난 세기 초 미국에게 제대로 뒤통수 쳐맞은 경험도 있었다는 점에서.

    • @scz8333
      @scz8333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9세기 영국 수상을 지냈던 탬플, 외무장관으로서 1843년 하원 연설.
      " 국제관계엔 영원한 동맹도, 영구적인 적도 없다. 우리의 관심은 영원한 국익뿐이며, 국익추구는 우리의 의무. "
      " We have no eternal allies, and we have no perpetual enemies. Our interests are eternal and perpetual, and those interests it is our duty to follow. "
      지난 수 백 년, 영국과 전쟁한 적들 ---------------------------> 프 + 독 + 러 + 스페 + 네 + 미 + 중 + 일 + ...
      지난 수 백 년, 영국과 함께한 동맹 ---------------------------> 프 + 독 + 러 + 스페 + 네 + 미 + 중 + 일 + ...
      영국은 지난 수 백년간 세력균형 정책으로 유럽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프랑스가 쎄지면 프로이센(구독일)등 꼬드겨 프랑스 두들겨 패고, 독일이 강해지면
      얼마 전까지 두들겨 패던 프랑스 달래서 함께 독일 몰매하는 과정의 무한 반복 루프, 당한 넘들이 바보.
      -------------------------------------------------------> 프-독 등이 바보라서 당한 것 아닐 겁니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저렇게 몰려버린.
      한반도에는 그 보다 더한 바보들이 널렸죠. 프랑스나 독일은 깃발 날리고 유럽을 휩쓸기도 했지만,
      한반도에선 바보들이 내부에서 외세 부추김 당하면서 내부 초토화를 스스로 가열차게 했으니.
      미국은 과거 영국에 비하면 서툴지만,
      그래도 꽤나 현란한 테크닉으로 세계를 요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반도는 미국과 영국에게 확실하게 당했던 역사가 있음을 명심해야.
      지난 세기초 미국과 영국은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영일동맹으로 한반도를 일본에 넘겼습니다.
      일본은 미국 영국의 동맹으로 선택되어 극동에서 러시아-소련의 남하는 막는 미영의 방패로 기능했습니다.
      미영의 동맹이었기에 1차대전 연합국으로 참전.
      반식민지 상태였던 중국의 독일 조차지와 중부태평양 독일령 마리아나 제도를
      1차대전 이후 점령 또는 신탁통치령으로 획득해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의 발판 전진기지 획득했던 것.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으로 일본에게 뺨싸대기 쳐맞은 이후에야 미영은 우리 독립운동을 지원.
      생각해보길 진주만 이전 일본이 미영의 극동 행동대장 시절 미영이 우리 항일독립운동 지원할 수 있을지.
      (1898년 미-스페인 전쟁 승리로 쿠바와 필리핀 탈취.
      스페인이 전쟁에 패배하자 그 틈에 필리핀은 독립선언 하고 제1공화정 선포.
      승리한 미국은 무력 진압에 나서 약 60만의 인명 피해 발생. 명백히 미국은 국익을 위해 스페인과 전쟁.
      필리핀인들의 자유, 민주주의, 민족자결 위해 전쟁했다면 왜 무력 진압했겠습니까?)
      지난 세기 미국은 한반도에 병과 약을 모두 주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지원만 고마워해선 안되는.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38선 그리고 미 극동방어선 에치슨 라인에서 대한민국 배제.
      카쓰라-태프트 밀약으로 한반도는 일본 지배 확정되었고, 미국의 미숙한 전후 처리 과정에서 38선 분단.
      38선 분단 이후 애치슨 라인 배제로 남침 욕망을 극대화시켰던.
      미국이 개입했던 외부 요인도 중요했던 지난 세기 한반도 암흑, 잊어선 안되는.
      한국전 이후 혈맹으로 거듭났다지만 외세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일방적 믿음 역시 잠재 위협 요소입니다.
      물론 민족분단과 동족상쟁의 가장 큰 책임은 우리 민족 내부에 있습니다.
      남북간 극한 투쟁과 대한민국 내부의 적대적 분열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한반도의 미래 없습니다.
      (한 때 유럽 열강 제국이었던 오스트리아.
      2차대전 독일 패전 후 미영프소 연합국 4개국에 분할 점령 신탁통치 후 영세중립 선언.
      저들의 좌우익은 민족 내부 투쟁 피했습니다. 우린 옳다는 확신과 불타는 적개심으로 서로 쳐죽여댔고.)
      19세기 영국 수상을 지냈던 이가 했던 발언 무시무시한 겁니다.
      저런 지도자 국가가 존재하는 지구촌에서, 넋빠진 이들이 영원한 혈맹 운운하며
      공동체 내부 투쟁에 몰두하기에, 저런 국가들이 세계를 쥐락펴락 해왔고, 해오고 있고 앞으로도 할 예정.
      (어디에 좌우 구분이 있는지 냉정하게 생각해야, 좌우 아닌 안밖의 투쟁이 결정적.)

  • @hk-hk-hkk
    @hk-hk-hkk 9 месяцев назад

    무기 좀 많이 설명해주세요

    • @hk-hk-hkk
      @hk-hk-hkk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예를 들어 @32:00 38군 42군이 국군 2군단에 대해서 엄청나게 공격을 했다 보다는 어떤 무기가 사용되었는지 언급이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나나-t4n
    @나나-t4n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어투가? 싸우나?

  • @jeonggeunkim6002
    @jeonggeunkim6002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이승만 정권도 부패한것이 어찌 유재흥 같은 자가 계속 군복무를 하면서 고위직을 역임 하고 박정희 정권에서 국방부 장관까지 할수
    있었는지 한국의 부패도 상당했었는가 봅니다 그자의 멍청한 개쓰레기 짓 때문에 죽은 그많은 인명과 물자 장비 손실은 그당시 엄청
    난 것이었고 남과 북의 휴전선이 설정되는데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 @changshanming8607
    @changshanming8607 9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재밋다.펑더화이 전략전술 대단하네.구독햇습니다.인해전술이고뭐고 전쟁은 목적이 이기는거다.이기면장땡이야.사람이 곧 힘이다.이건진리다.그래서 모두들 빨리빨리 결혼해서 애기 둬쌍(4명)은 가지세요.저는 4분의1임무는 완성햇습니다.

    • @marksmithcollins
      @marksmithcollins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당신은 모르겠고 앴끼라고 불린 그 1/4 당사자가 불쌍하단 생각밖에 안듭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