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대만처럼 식민지 통치하기 쉬운 곳부터 시작한게 일본으로서는 행운이었다고나 할까요? 특히 조선의 경우 지방행정이 완전히 중앙에 복속되어 있고, 관료제가 잘 발달되어 있어서, 무력 점령이 아닌, 단순 통치권을 이양받는 방식으로도 조선을 완전히 식민지화 할 수 있었다는게 일본으로서는 너무나 좋았죠... 이후 일본은 이런 쉬운 경험을 가지고 넓디 넓고 군벌로 쪼개진 중원으로 들어갔다가.....ㅋㅋ
청일전쟁 직후 엄청난 배상금을 받았던 반면 러일전쟁 직후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하면서 전쟁배상금을 전혀 받지 못했던 일본의 경제적 충격으로 히비야 방화사건이 발생하고 막대한 재정적자로 경제위기로 빠져드는 내용의 영상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이때의 경제적 위기를 탈출하지 못하고 미국의 경제대공황과 금본위제 회귀결정으로 일본이 국가부도직전까지 갔었던 것과 그 결과 2.26쿠데타까지 이어지면서 일본이 완전히 군국주의로 빠져들고 태평양전쟁으로 갈수 밖에 없었던 일본의 흐름을 한번 다루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도 재밌게 잘 봤습니다.
@@피트-n6i 유대인 자본과는 크게 상관없는걸로 아는데요. 제가 당시에 살아본적 없어서 당시 뉴스를 못봤으니 자세한것은 모르겠네요. 하지만 막대한 재정적자와 경제위기로 쇼와대공황과 인플레이션, 쌀값폭등 등으로 곳곳에서 폭동이 발생하여 일본이 소란스러웠다는것이 팩트죠. 1차세계대전과 청일 전쟁으로 경제가 기사회생해서 잘 살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던 일본 국민들은 전쟁을 선호하게 됩니다. 그것이 군국주의를 따르게 된 경제적 이유중 하나입니다. 당시 일본경제는 방직 공업기술과 농업국가적인 성격이 더 강했기 때문에요. 물론 중공업을 일으키기 위해서 많은 투자와 유학생들을 보내서 성장시키려 노력했다는 것도 팩트이구요
일본을 묘사한 그림들을 보면서 묘한 느낌이 드네요. 일본기를 보면 일본인데 그려진 사람들은 일본인이 아닌듯 보이는...마치 자기들은 서양의 그들과 같아 그들과 같은 강한 힘을 가질 수 있고, 당연한 것이다. 라는 말을 하고 있는듯 보이네요. 자기들 스스로 서양인처럼 보여지길 바랬었나보네요. 나라가 힘이 없으면 내 땅인데도 내 마음껏 누릴 수 없고, 나라가 힘이 없으면 내 피붙이인데도 내 마음처럼 보듬아 줄 수가 없고, 나라가 힘이 없으면 내가 살아가야 할 시간조차도 마음대로 꿈꿀 수가 없네요. 친일을 했던 친미를 했던 친영을 했던 천러를 했던...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어째서 희망을 다른 곳에서 찾았을까요... 왜 그들이 선택이라는 기로에서 내 나라를 떠올리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네요. 애국이 무엇인지...만약에 저 시대를 살았다면 너무 답답할거 같네요. 내 몸 편하고, 내 가족 평안하자고, 다른 사람 해코지도 못하겠지만...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미래를 바꿀 용기도 힘도 없으니...매일 한숨만 쉬었을듯...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하면...지금처럼 잊고 산다는게 죄송스럽네요. 지금세대나 다음세대에게 국가에 대한 사랑보다 우리주변에 대한 사랑을 심어주는 교육이 필요한거 같아요. 소수의 권력을 위한 국가가 아닌 우리들이 먼저인 나라를 만들 수 있게 말이죠.
요즘 우리나라와 너무 비슷한 상황이 많아 보입니다.. 시국이 걱정입니다. 국민들 분위기 또한 어이없게도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일본과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내일 3.1절을 맞아 이순신 장군이 하신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왜는 간사하기 짝이 없어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펌글 1925년 한참 대륙을 석권하던 시절 왜는 동시에 일본열도에 나라를 세우고 있었다. 이때 대규모로 대륙 동부지역 사람들이 유구제국을 그 훨씬 이전 시대에 제압한 것은 일본열도로 들어가기 위함이었고 일본열도 자체가 유구국의 영역에 속하는 땅이었기에 왜제국은 유구국을 합병한 것이다. 이때 당시 유구왕국은 환태평양문화권과 조선의 유교문화가 공존하는 나라였다. 페리제독이 왜에 개항을 요구할 때 먼저 유구국을 거쳤다고 나온다. 당시까지만 해도 유구국은 독립 국가였다고 페리제독은 증언하고 있다. 왜가 지금의 남경에서 가장먼저 한일이 유구국 침공이었다. 그 점령은 곧 일본열도로의 진군을 의미하는 것이다. 유구제도를 이용해 일본열도로 들어가게 되는 통로가 열리고 이때 일본열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여 토착민들을 포섭 제압하는 과정에서 일본열도의 사무라이 집단과의 전쟁을 묘사한 사건이 ‘라스트 사무라이’의 영화 내용이다. 대륙의 근대화된 왜 제국군과, 아직 활 쏘고 칼 휘두르는 전쟁문화를 가진 일본열도 토착민들을 제압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서 결코 근대화된 왜 제국군은 일본열도에서 자생한 군대가 아니다. 이 왜 제국군들은 복건성 일대에서 발흥하여 대만에서도 호응을 하여 이것이 왜 제국의 근간이 되었고, 이때 산동성의 왜 세력은 없어지게 되었다. 산동성의 왜는 임진왜란 이후 토요토미 가문이 덕천가문에 의해 붕괴되어 왜의 중심지는 남경 덕천가문의 중심지로 옮겨지고 산동성의 왜 세력은 거의 없어지고 조선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덕천가강이 왜 이렇게 했을까? 덕천가강은 조선의 충실한 신하였다. 그래서 임진왜란 때도 군대를 보내지 않았다. 자신의 중심지였던 남경을 에도라고 발음하는 것도 현대 일본어이고 당시 강도 江都라 불린 지역이 이 남경이었다. 1912년 지금의 북경에 중화민국이 들어서고 중화민국의 남쪽수도를 남경이라고 지칭할 때 일본열도로 아주 일본이 옮겨졌다. 에도막부의 에도는 오도吳都에서 나왔으며 고또江都와 에도吳都를 같이 썼다. 오나라수도가 에도이며 왜는 오나라를 기반으로 한 나라였고 이들이 역사상의 왜이며 왜였고 왜 지역을 침공한 동아시아 바다를 떠돌아다니던 해적들이 왜구들이었으며 이들을 제압하고 다스리라는 뜻으로 막부에게 평남대장군이라는 직함을 조선에서는 보냈던 것이며, 이 직함 하나로 강호 지역을 평정하게 되니 우리가 중국 무협지에서 강호를 평정했다고 하는 것은 이 일본장군이 그 지역 무사들을 제압하고 우두머리가 되어 조선조정에 충성한 것을 후에 무협지 작가들이 중국의 옷을 입혀서 써낸 소설이다. 강호를 떠돌았다고 하는 무협지의 이야기는 미야모토 무사시 등의 일본무사들의 이야기와 매우 비슷하다. 강호의 무사들은 왜 무사들이었고 이것을 일본열도로 옮긴 왜 세력들은 일본열도를 배경으로 새롭게 각색한 이야기인 것이다. 이들이 남색을 즐겼다는 기록이 결국 대륙에서 있었던 남색열풍에 편승한 성 풍조였고 이 왜의 성 풍조는 후에 일본열도로 옮겨져 역사가 된 것이다. 당시 대륙 동남부 사람들은 혼도시를 하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왜 사무라이 머리는 대륙남부 사람들의 풍속이었다. 원래 왜구들은 머리를 산발한 해적들이었다. 그러나 대륙 왜 사람들은 조선의 풍속을 따라서 상투를 틀었고 그것을 투구를 쓰는데 편리하게 변발 비슷한 앞머리를 깎아 낸 것이다. 왜가 대륙에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런 머리를 했던 것이다. 왜 무사의 그 상투 머리는 대륙의 풍속이었고 상투는 조선의 풍속, 그리고 앞머리를 깎아 버리는 것은 대륙조선 북쪽 올랑해의 풍속이었다. 이들이 이런 상투를 잘라버린 것은 조선을 버리고 서구열강에 들어가겠다고 하는 선언이었으며 메이지 유신 때 상투를 제거하였다. 중국에 새로운 혁명정부가(1911년 신해혁명) 들어서자 메이지정권은 대륙의 일부지역과 대만을 남겨둔 채 일본열도에서 본격적으로 일본시대를 열게 된다. 이 영향으로 대만은 친일국가가 된다. 대만의 1.21사태는 이런 친일토착민들이 대륙의 중국정권에 대해 반기를 든 사건이며 이때 대륙국민당군대는 학살을 하여 전에 왜인이었던 사람을 제압한다. 그런 분위기가 남아 있어서 대만사람들이 비록 대륙식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그전에는 왜식 이름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대만은 친일국가이다. 대만은 유구왕국의 일부였으며 장개석이 대륙에서 쫓겨 오기 전까지는 왜 땅이었다. 일본이 패망한 이후 미국 주도 하에 국민당 정부가 대만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이등휘 총통이 퇴임 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했던 것이다.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 부탁드립니다~~
조선과 대만처럼 식민지 통치하기 쉬운 곳부터 시작한게 일본으로서는 행운이었다고나 할까요?
특히 조선의 경우 지방행정이 완전히 중앙에 복속되어 있고, 관료제가 잘 발달되어 있어서, 무력 점령이 아닌, 단순 통치권을 이양받는 방식으로도 조선을 완전히 식민지화 할 수 있었다는게 일본으로서는 너무나 좋았죠... 이후 일본은 이런 쉬운 경험을 가지고 넓디 넓고 군벌로 쪼개진 중원으로 들어갔다가.....ㅋㅋ
통치하기는 쉬웠어도 재정은 늘 적자였습니다. 길거리 오물 치워져 각종 인프라 까는 사업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 적자경영을 면치 못했다고 합니다 대만은 10년쯤 되어서야 겨우 흑자경영을 하기 시작햇다고 합니다.
네.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홍차왕자님~
조선의 근대사 듣는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3.1절이기도해서 쭉 들었네요. 언제나 화나고 안타까운 우리 역사 입니다.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 꾹꾹 눌러주시고 그리고 저스티스님 숏츠도 자주자주 올려주세용 ㅎㅎㅎㅎ오늘도 행복한 하루되세염 ㅎㅎㅎㅎㅎㅎ
일본사는 잘 몰라서 메이지 관련 영상들 두세번씩 더 봐야겠어요
내일 푹 쉬시구요^^
네. 매니아썬님도 즐거운 휴일 보내세요.~
치욕의 역사이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
절대 잊으면 안되고 후세에게도 잘 가르쳐줘야 하는 역사죠..
감사합니다. 학윤 이님~
이번 영상도 재미나게 잘 봤습니다.
특히, 처음보는 사진자료들이 흥미를 더 갖게하구요.
물론 저스티스님의 나래이션도 귀에 쏙쏙 들어와서 좋구요.
잘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행복한 주말 되세요~^^
좋아요 누르고 시청합니다.
감사합니다. youse14님~
저스티스님 잘봤습니다 👍
항상 감사드립니다. 이학선님~
역사 지식의 폭과 깊이에 이번에도 놀라고 갑니다. 같은 사건이라고 해도 어떤 방향으로 보느냐에 따라 여러가지 방법으로 설명 가능한데 저스티스님의 식견에 매번 감탄합니다.
그저 책 읽고 요약한 것 뿐입니다.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잘보겟습니다 ㅎㅎㅎ
항상 감사드립니다. 명준님~
@@justice20000 숏츠도 자주자주 올려주세용 ㅎㅎㅎㅎ
잘봤습니다.
타이밍도 좋습니다.
네. 내일이 삼일절이네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백학수님~
잘봤어요 왠지 중요한 다큐 상,하편 중에서 상편이 제작되었으며, 곧 하편이 제작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네요
네. 다음은 일본의 패망을 다룰 예정입니다. 제1,2차 세계대전은 기존에 만들어 놨기 때문에, 1,2차 대전 사이의 일본을 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김병진님.
참 40년 가까운 시간을 허송세월 보냈군요.
청일전쟁 직후 엄청난 배상금을 받았던 반면 러일전쟁 직후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하면서 전쟁배상금을 전혀 받지 못했던 일본의 경제적 충격으로 히비야 방화사건이 발생하고 막대한 재정적자로 경제위기로 빠져드는 내용의 영상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이때의 경제적 위기를 탈출하지 못하고 미국의 경제대공황과 금본위제 회귀결정으로 일본이 국가부도직전까지 갔었던 것과 그 결과 2.26쿠데타까지 이어지면서 일본이 완전히 군국주의로 빠져들고 태평양전쟁으로 갈수 밖에 없었던 일본의 흐름을 한번 다루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도 재밌게 잘 봤습니다.
네. 참고하겠습니다.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꿀단지님~
러일전잰후 경제가 망할뻔 했으나 유대인 자본으로 살아난게 신기했는데
@@피트-n6i 유대인 자본과는 크게 상관없는걸로 아는데요. 제가 당시에 살아본적 없어서 당시 뉴스를 못봤으니 자세한것은 모르겠네요. 하지만 막대한 재정적자와 경제위기로 쇼와대공황과 인플레이션, 쌀값폭등 등으로 곳곳에서 폭동이 발생하여 일본이 소란스러웠다는것이 팩트죠. 1차세계대전과 청일 전쟁으로 경제가 기사회생해서 잘 살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던 일본 국민들은 전쟁을 선호하게 됩니다. 그것이 군국주의를 따르게 된 경제적 이유중 하나입니다. 당시 일본경제는 방직 공업기술과 농업국가적인 성격이 더 강했기 때문에요. 물론 중공업을 일으키기 위해서 많은 투자와 유학생들을 보내서 성장시키려 노력했다는 것도 팩트이구요
선따봉 후감상
항상 감사드립니다. 강성현님~
@@justice20000 채널이 번창하길 성원합니다.
동시대 한중일 근대사는 태풍보다 강한 격동의 시대였던것 같아요🤔
네. 말씀 감사합니다. ᅳ기영님~
어쩌면 국사에서 제일 중요하고 많이 배울 수 있는 파트!
항상 감사드립니다. 이상민님~
제일 중요한 교육과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시긴데 역사선생이란 것들은 이걸 반일의 원동력으로만 이용함 그런 부분에서 참 안타까움 일본이 미운것은 맞지만 인정할건 인정하고 배울건 배우는게 진짜 우리 국가를 위한 교육인데
튀르키예 지진 피해 난민에게 종이학이나 접어서 보내는 무지한 나라에게 국권을 빼앗겼던 것은 절대 잊으면 안되리라 생각됩니다.
내일 삼일절은 모두들 경건하게 보냈으면 좋겠네요. 이번 영상도 수고하셨습니다. ^^
종이학은 왜 보낸걸까요?...그 마인드가 궁금하긴 하네요. 다른 뜻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곽철근님~
그럼 그렇게 무지한 나라한테 국권을 빼앗겼던 조선은 도대체 얼마나 더 무지한 거냐?^^
일본을 묘사한 그림들을 보면서 묘한 느낌이 드네요. 일본기를 보면 일본인데 그려진 사람들은 일본인이 아닌듯 보이는...마치 자기들은 서양의 그들과 같아 그들과 같은 강한 힘을 가질 수 있고, 당연한 것이다. 라는 말을 하고 있는듯 보이네요.
자기들 스스로 서양인처럼 보여지길 바랬었나보네요.
나라가 힘이 없으면 내 땅인데도 내 마음껏 누릴 수 없고,
나라가 힘이 없으면 내 피붙이인데도 내 마음처럼 보듬아 줄 수가 없고,
나라가 힘이 없으면 내가 살아가야 할 시간조차도 마음대로 꿈꿀 수가 없네요.
친일을 했던 친미를 했던 친영을 했던 천러를 했던...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어째서 희망을 다른 곳에서 찾았을까요...
왜 그들이 선택이라는 기로에서 내 나라를 떠올리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네요.
애국이 무엇인지...만약에 저 시대를 살았다면 너무 답답할거 같네요.
내 몸 편하고, 내 가족 평안하자고, 다른 사람 해코지도 못하겠지만...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미래를 바꿀 용기도 힘도 없으니...매일 한숨만 쉬었을듯...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하면...지금처럼 잊고 산다는게 죄송스럽네요.
지금세대나 다음세대에게 국가에 대한 사랑보다 우리주변에 대한 사랑을 심어주는 교육이 필요한거 같아요. 소수의 권력을 위한 국가가 아닌 우리들이 먼저인 나라를 만들 수 있게 말이죠.
네. 내가 저 시대에 태어났다면 과연 어땠을까?...
일본사를 공부하면 언제나 나와 조국과 일본을 비교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본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덩달아 내 본연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죠.
오늘은 삼일절이네요....
@@justice20000
삼일절이네요.
마음에라도 만세를 불러봐야겠네요...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바탕이 된, 후쿠자와유키치가,
탈아입구를 목표로 했다고 들은것 같아요.
서구와 동일시하고 싶었겠지요~
@@황호연-t8p
내 자신을 잊어가면서 까지 누군가를 닮고 싶어하는 마음은 어떤걸지...
댓글 하나가 보이지 않는...희한하네요
교과서에 나와 있지만 교과서에서 배울수 없는 것을 알려주시는군요!
잘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숙영님.
저 러시아가 문어로 된 지도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출처가 궁금해요~
그냥 구글링으로 찾은 지도입니다. 감사합니다.
생방은 안하시나용?ㅎㅎ
하고 싶긴 한데요....당장 할말이 없..ㅋㅋㅋ
@@justice20000 ㅎㅎㅎㅎㅎ
총독부 건물 폭파는 진짜 역사에 대한 무지가 극에 달한 사건..
대원군이 쇄국을 한 결과 결국 일제에 의해 강제 개항 당했습니다. 병인년 프랑스가 왔을 때 그 때 개항했어야 했습니다.
1빠!!!!!
요즘 우리나라와 너무 비슷한 상황이 많아 보입니다.. 시국이 걱정입니다. 국민들 분위기 또한 어이없게도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일본과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내일 3.1절을 맞아 이순신 장군이 하신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왜는 간사하기 짝이 없어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노제펜으로 말아먹는 거 보고도 정신을 못 차리시군요. ㅉㅉㅉ 오히려 무지성으로 반일을 외치면 전쟁가능국가 만드는거 도와주는 거 모릅니까?
네. 요즘 우려할만한 상황들이 많이 펼쳐지고 있긴 하죠...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이 기조가 달라질 수 없겠죠...
말씀 감사합니다. 물고기옵하님~
@@justice20000 실리외교를 하는것이죠 미국과일본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너무 한쪼진영에 치우쳐서 세상을 보는건 않좋아요 저스티스선생님
@@aureovedma 실리외교 같은 소리하네요. 지금은 미중 신냉전 제3차그레이트 게임입니다. 어느 쪽에 설건지 선택 잘해야 합니다.
@@Coreana176 그러니까 일본미국과 같은배를 타는게 실리외교라고 말하는것입니다만
정의구현은 후쿠시마 정화수 방류다. 일본 발꼬락을 핥아 백년천년 더살자ㅋ
펌글
1925년 한참 대륙을 석권하던 시절 왜는 동시에 일본열도에 나라를 세우고 있었다.
이때 대규모로 대륙 동부지역 사람들이
유구제국을 그 훨씬 이전 시대에 제압한 것은
일본열도로 들어가기 위함이었고
일본열도 자체가
유구국의 영역에 속하는 땅이었기에
왜제국은 유구국을 합병한 것이다.
이때 당시 유구왕국은 환태평양문화권과 조선의 유교문화가 공존하는 나라였다.
페리제독이 왜에 개항을 요구할 때 먼저 유구국을 거쳤다고 나온다.
당시까지만 해도 유구국은 독립 국가였다고 페리제독은 증언하고 있다.
왜가 지금의 남경에서 가장먼저 한일이 유구국 침공이었다.
그 점령은 곧 일본열도로의 진군을 의미하는 것이다.
유구제도를 이용해
일본열도로 들어가게 되는 통로가 열리고
이때 일본열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여 토착민들을 포섭 제압하는 과정에서
일본열도의 사무라이 집단과의 전쟁을 묘사한 사건이
‘라스트 사무라이’의 영화 내용이다.
대륙의 근대화된 왜 제국군과,
아직 활 쏘고 칼 휘두르는 전쟁문화를 가진
일본열도 토착민들을 제압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서
결코 근대화된 왜 제국군은 일본열도에서 자생한 군대가 아니다.
이 왜 제국군들은
복건성 일대에서 발흥하여 대만에서도 호응을 하여
이것이
왜 제국의 근간이 되었고,
이때 산동성의 왜 세력은 없어지게 되었다.
산동성의 왜는
임진왜란 이후 토요토미 가문이 덕천가문에 의해 붕괴되어
왜의 중심지는 남경 덕천가문의 중심지로 옮겨지고
산동성의 왜 세력은 거의 없어지고
조선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덕천가강이 왜 이렇게 했을까?
덕천가강은 조선의 충실한 신하였다.
그래서 임진왜란 때도 군대를 보내지 않았다.
자신의 중심지였던 남경을 에도라고 발음하는 것도 현대 일본어이고
당시 강도 江都라 불린 지역이 이 남경이었다.
1912년 지금의 북경에 중화민국이 들어서고
중화민국의 남쪽수도를 남경이라고 지칭할 때
일본열도로 아주 일본이 옮겨졌다.
에도막부의 에도는 오도吳都에서 나왔으며
고또江都와 에도吳都를 같이 썼다.
오나라수도가 에도이며
왜는 오나라를 기반으로 한 나라였고
이들이 역사상의 왜이며 왜였고
왜 지역을 침공한 동아시아 바다를 떠돌아다니던 해적들이
왜구들이었으며
이들을 제압하고 다스리라는 뜻으로
막부에게 평남대장군이라는 직함을 조선에서는 보냈던 것이며,
이 직함 하나로 강호 지역을 평정하게 되니
우리가 중국 무협지에서 강호를 평정했다고 하는 것은
이 일본장군이
그 지역 무사들을 제압하고 우두머리가 되어 조선조정에 충성한 것을
후에 무협지 작가들이 중국의 옷을 입혀서 써낸 소설이다.
강호를 떠돌았다고 하는 무협지의 이야기는
미야모토 무사시 등의
일본무사들의 이야기와 매우 비슷하다.
강호의 무사들은 왜 무사들이었고
이것을 일본열도로 옮긴 왜 세력들은
일본열도를 배경으로 새롭게 각색한 이야기인 것이다.
이들이 남색을 즐겼다는 기록이
결국 대륙에서 있었던 남색열풍에 편승한 성 풍조였고
이 왜의 성 풍조는 후에 일본열도로 옮겨져 역사가 된 것이다.
당시 대륙 동남부 사람들은
혼도시를 하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왜
사무라이 머리는 대륙남부 사람들의 풍속이었다.
원래 왜구들은 머리를 산발한 해적들이었다.
그러나 대륙 왜 사람들은 조선의 풍속을 따라서 상투를 틀었고
그것을 투구를 쓰는데 편리하게 변발 비슷한 앞머리를 깎아 낸 것이다.
왜가 대륙에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런 머리를 했던 것이다.
왜 무사의 그 상투 머리는
대륙의 풍속이었고 상투는 조선의 풍속,
그리고 앞머리를 깎아 버리는 것은
대륙조선 북쪽 올랑해의 풍속이었다.
이들이 이런 상투를 잘라버린 것은
조선을 버리고 서구열강에 들어가겠다고 하는 선언이었으며
메이지 유신 때 상투를 제거하였다.
중국에 새로운 혁명정부가(1911년 신해혁명) 들어서자
메이지정권은
대륙의 일부지역과 대만을 남겨둔 채
일본열도에서 본격적으로 일본시대를 열게 된다.
이 영향으로 대만은 친일국가가 된다.
대만의 1.21사태는
이런 친일토착민들이 대륙의 중국정권에 대해 반기를 든 사건이며
이때 대륙국민당군대는
학살을 하여 전에 왜인이었던 사람을 제압한다.
그런 분위기가 남아 있어서 대만사람들이
비록 대륙식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그전에는 왜식 이름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대만은 친일국가이다.
대만은 유구왕국의 일부였으며
장개석이 대륙에서 쫓겨 오기 전까지는 왜 땅이었다.
일본이 패망한 이후
미국 주도 하에 국민당 정부가 대만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이등휘 총통이 퇴임 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했던 것이다.
못난 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