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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메이지시대 - "보신전쟁에서 탈탈털린 28만 석 아이즈번(会津藩). 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이었다 !! Feat. 마지막 쇼군 요시노부(慶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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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0 окт 2022
  • #일본사 #일본역사 #사무라이 #에도시대 #아이즈번 #카타모리 #굴욕
    막부말기 보신전쟁에서 유독 학대받은 아이즈번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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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murairomance

Комментарии • 130

  • @ELBUG-ku1iq
    @ELBUG-ku1iq Год назад +19

    아마 저런 배경 때문에 아이즈 출신 간수가 안중근 의사에 대해 좋게 평하고 여러가지로 편의를 봐준 걸수도ㅋ

    • @user-if1bk9sg3v
      @user-if1bk9sg3v Год назад +3

      아하 그럴수도!

    • @nomad7021
      @nomad7021 7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아아~~~그렇게 연결이?
      맞아요 이토히로부미가 죠슈번 출신이거든요
      아이즈출신 간수가 동지애를 느꼈나?
      ㅋㅋㅋ

    • @ELBUG-ku1iq
      @ELBUG-ku1iq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nomad7021 ??? : 우리가 못한걸 조선 청년이 해줬다!

  • @longlong2754
    @longlong2754 Год назад +19

    어찌보면 진정한 충신인데 그때문에 죽은 사람들 생각하면 슬프네요

  • @user-ut3mp4iq6l
    @user-ut3mp4iq6l Год назад +15

    항상 이렇게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지네요. 건강 관리 잘하시고 한번 뵐 날을 기대합니다.^^

    • @samurairomance
      @samurairomance  Год назад +1

      항상 소중한 후원 감사드립니다. 마산 갈 일 있을 때 한 번 뵙죠!

  • @ohmytoshi
    @ohmytoshi Год назад +11

    영상 말미 이야기는 감동적이네요.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항상 가지고 다녔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 @samurairomance
      @samurairomance  Год назад +2

      어떤 면으로는 회한 많은 생이었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내용이기도 한 것 같아요.

    • @ohmytoshi
      @ohmytoshi Год назад

      @@samurairomance 그렇네요. 어디선가 들은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말도 기억 납니다.

  • @보에몽
    @보에몽 Год назад +18

    막부 420만석라는 직할령이 있었는데
    예산이 없다;;;
    그리고 이건 아이즈번을 학살한거나
    마찬가지네요.

  • @sylphi135
    @sylphi135 2 месяца назад +3

    전 그래도 끝까지 의리를 지킨 사람이라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 @core_meltdown
    @core_meltdown Год назад +10

    대하드라마 "야에의 벚꽃"이 생각나네요. 딱 아이즈번이 막부 말기~메이지 시대 동안 겪은 일들을 그린 스토리니. 다시 정주행하고 싶어집니다.

    • @user-if1bk9sg3v
      @user-if1bk9sg3v Год назад +1

      그거 어디가면 볼 수 있나요 ㅠㅠ

    • @core_meltdown
      @core_meltdown Год назад +1

      @@user-if1bk9sg3v 저는 웹하드에서 다운받았어요.

    • @user-if1bk9sg3v
      @user-if1bk9sg3v Год назад +1

      @@core_meltdown 어디꺼요?

    • @core_meltdown
      @core_meltdown Год назад +1

      @@user-if1bk9sg3v 저는 클럽박스에서 받았습니다. 지금도 있는지는??

    • @user-if1bk9sg3v
      @user-if1bk9sg3v Год назад +1

      헉 3년전에 폐쇄됐네요 ㅠㅠ

  • @Alderbridge
    @Alderbridge 2 месяца назад +2

    대한민국사람만큼 이성보다 감성에 잘 휘둘리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지요

  • @taewonhwang5416
    @taewonhwang5416 Год назад +9

    그래도 평화적으로 마무리하려고 쇼군이 노력한건데… 전쟁은 피할 수 없었네요…

  • @user-ft2vo1jo3f
    @user-ft2vo1jo3f Год назад +8

    아이즈번 이야기라길래 울 준비 하고 들어왔습니다8ㅅ8 아이고... 아이고ㅠㅠㅠ 대하드라마에서 금문의 변 이후는 마음 아파서 못 보는 인간 여기 있습니다😢
    조슈정벌 때도 가로들이 할복하더니 여기도 가로들 목을 바치는군요... 여러모로 극한직업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 @samurairomance
      @samurairomance  Год назад +2

      너무 감수성 예민한 것 아닙니까. ㅋ

  • @yongtarot
    @yongtarot Год назад +6

    어렴풋이 알고 있던 이야기를 확실히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samurairomance
      @samurairomance  Год назад +1

      감사합니다. 저도 이야기 준비하면서 많은 생각이 든 영상이었습니다.

  • @user-yv4kn4cw6u
    @user-yv4kn4cw6u Год назад +4

    날아드는 총탄속에서 갑주 입고 황망히 뛰어다니는데.. 측실과 눈이 똭!! 띠로리~♥️ㅋㅋㅋㅋㅋㅋㅋㅋㅋ

    • @user-if1bk9sg3v
      @user-if1bk9sg3v Год назад +4

      사무라이 만화에서도 함락 직전일에 교합을 하면서 죽음을 앞두고 씨를 뿌리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짜릿하다는 식으로 묘사되어있더군요. 곧 죽을 판이니 어떻게든 씨를 남기고 싶다는 종족 보존의 본능이 더 빛을 발하는 때이겠지요?

  • @ejoynet
    @ejoynet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말로만 듣던 보신전쟁에 대하여 자세히 알게 되어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user-vw5jf7qt9p
    @user-vw5jf7qt9p Год назад +6

    단순한 감정에따른 의사 결정으로 오도하는 우를 범하고 있네요 . 아이즈번은 그충절로 인해 항상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본의 번입니다 .

    • @samurairomance
      @samurairomance  Год назад

      "정치인"이 별로 "정치인" 답지 못한 부분에 이야기의 강조점을 둬 봤습니다.
      수 많은 영민을 대표하는 아이즈번 번주 "카타모리"와, 에도 막부의 일개 가신 "카타모리" 중 무엇을 택하는 것이 맞느냐라는 부분이죠.
      교토 수호직으로 아이즈번 예산을 끌어다 쓰며 내부적으로 불협화음을 일으킨 부분을 충절로 본다면 "카타모리"의 처신은 막부 직속 가신 "하타모토" 정도의 그릇이라고 봅니다. 애당초 여기에서 발 잘못 담근 것이 보신전쟁의 복수극으로 이어진 것이니까요. 모든게 결과론이니 그냥 하는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친형인 "오와리번의 도쿠가와 요시카츠"라면 카타모리 같은 처신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다 양보한다 하더라도 애당초 끝까지 결사항전을 계획한 것도 아니고, 아이즈에서 다양한 방식의 항복 조건을 제시했는데도 신정부에 받아들여지지 않은 결과로 일어난 비극적 측면이 크기 때문에 순수한 충절로 보는 시각이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신정부에서 츠루가성 무혈입성을 받아 줬다면 "충절의 아이즈" 이야기는 지금 존재하지 않았겠죠.
      "충절"을 이야기하려면 이 부분이 중요한 이야기가 아닐까요?
      카타모리도 의미없는 싸움임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 다양한 조건을 내세우며 항복을 신청했는데 받아주지를 않고 공격해 오니 싸울 수 밖에는 없는 것이죠.
      이런 측면에서 보면 "충절"은 결과를 각색한 내용으로 보이기도 하지 않겠습니까.
      "쇼나이번", "아이즈번", "오와리번" 총 세 편의 영상을 올렸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아이즈번과 오와리번의 대조적인 부분을 여러분들이 곰곰히 생각해 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다이묘들은 "막부"가 "정부"로 바뀌는 것이지 막번체제가 순식간에 뒤집힐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최상위 지배층이 바뀌면서 바뀐 대상에 복종하는 조건으로 토지와 영민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는 전형적인 봉건제도에 연장이라고 생각했겠죠.
      물론 카타모리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항복 의사를 타진했겠죠.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나이 먹어가니 속물이 되서 그런지... 하여튼 저는 그렇게 생각이 드네요.

  • @user-td5en5jp9l
    @user-td5en5jp9l Год назад +8

    아이즈번은 그렇다쳐도 센다이번 같은 몇몇 번들은 신정부군의 사절이 너무 오만불손해서 반감을 가지고 아이즈쪽에 가담했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 @hyoobee
      @hyoobee Год назад +10

      옥우월 열번동맹의 토대가 된 오우 회의의 소집은 센다이 번이 주도했습니다. 그래서 센다이 번은 아이즈 번 다음의 혹독한 처분을 받았지요.
      아이즈 번에 내려진 처분이 상당히 가혹해서 조명되지는 않는 모양입니다만..

  • @user-vi2cf6cj2x
    @user-vi2cf6cj2x Месяц назад +2

    결국 요시노부의 확고한 신념과 결단이 없었기에 그리 허망하게 무너지고, 아이즈만 작살난거라고 봅니다.....

  • @user-te4wf8pl8u
    @user-te4wf8pl8u Год назад +6

    후쿠시마현이 그 아이즈? 보신전쟁으로 번이 이동되고 - 그 후 원전사고로 쑥대밭이 되고 그랬나요? 아~

    • @dominion8998
      @dominion8998 Год назад +2

      원전 후쿠시마번에 유치하자고 한 정치인 누굴까 궁금하네요

    • @hyoobee
      @hyoobee Год назад +2

      역사를 우리가 왜 배워야 하고, 과거의 일을 보면 현재를 알 수 있는 것의 대표적인 사례죠.
      비슷하게 대한민국도 갑자기 뚝 떨어진 나라가 아니고, 지금 우리가 이유 없이 잘먹고 잘사는 게 아닙니다.

    • @Odyss2023
      @Odyss2023 Год назад +1

      자민당을 메이지 신정부의 후예로 본다면 계속되는 악연, 불운이라고 할 수 있죠

  • @normaljang9338
    @normaljang9338 Год назад +7

    오늘 에피소드 좋네요. 마츠다이라 슌가쿠에 대해서도 나중에 다루어 주셨으면 합니다.

  • @user-jy9ov7nb5b
    @user-jy9ov7nb5b Год назад +2

    감사합니다.

  • @dayfox9669
    @dayfox9669 Год назад +1

    폐업이라는 표현이 참 맛깔나네요ㅎㅎ

  • @75umberto20
    @75umberto20 Год назад +7

    죄송하지만 마쓰다이라 카타모리에 대한 비판은 지나치게 현대인의 관점이 아닌가 합니다. 어느 시대든 그 시대의 시스템이 있고 그 시스템을 떠받치는 이념이 있게 마련이죠. 우리는 하나로 통합된 통일국가로서의 일본이라는 관점 그리고 근대국가라는 시스템의 관점에서 보고 있기 때문에 그 시대 사람들의 선택을 그대로 이해하질 못하고 있는 겁니다.
    당시 일본은 하나의 통일국가라기 보다는 개별적인 국가연합이라고 해야 할까요. 여하튼 현대의 연방제 국가보다는 훨씬 지방 번국의 독자성이 강하던 시대였습니다. 관념적으로도 각각의 번은 자기 번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고 다른 번에 대해서는 경쟁심리가 강했죠. 비록 도쿠가와 막부시대에 들어와서 '일군만민' 같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 통합 이데올로기가 부상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정치적으로 일본은 개별성이 강했습니다. 그러니 아마 아이즈번 입장에서 막부 밑에서 바짝 기던 조슈, 사쓰마 놈들한테 우리가 왜 고개 숙이냐 같은 사고방식이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중앙권력이 조슈 같은 반막부 세력에게 넘어간다면 아이즈번 입장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계산도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주나라 봉건주의의 부활을 주장한 유교이념을 보자면 아이즈 번 입장에서 막부를 저버리기 힘들죠. 이건 현대인의 이성만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애시당초 감성이 아닌 이성만으로 보자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행동 자체가 어떻게 성립하겠습니까? 이념은 절대로 이성만으로 만들어지는게 아닙니다. 해당 시스템에 대한 열렬한 헌신을 이끌어내야 하는데 어떻게 감성의 영역이 없겠습니까? 현대인도 이념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습니까?
    봉건 영주 집단이란것 자체가 하나의 친족집단이고 친족집단의 윤리가 곧 정치윤리가 되는게 봉건시스템이니 그 시스템, 이념의 틀 안에서는 카타모리처럼 행동하는게 도덕적으로 옳은 행동이죠. 현대인에게는 고용인-피고용인의 관계가 경제적 이해관계에 기반한 드라이한 계약관계에 지나지 않지만 봉건시대 사람들에게는 훨씬 끈적끈적한 관계였죠. 막부-영주-사무리이의 관계는 수백년전 몇대조 할아버지부터 대대로 이어진 기나긴 관계라서 대대로 우리 가문이 윗분들에게서 은혜를 입었다 라는 관념이 지배하던 시대이지 않습니까? 몇백년전 할아버지들 부터 이어져온 관계를 단지 나의 이해타산 때문에 배신을 한다? 봉건윤리의 입장에서는 큰 불명예죠. 그래서 저는 카타모리의 선택에 대해 이해하는 편입니다.

    • @samurairomance
      @samurairomance  Год назад +2

      정답이 있는 내용이 아니라서 님의 의견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제 관점은 전혀 현대적 관점이 아니며 에도시대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시대상을 바라봤음을 먼저 밝혀 둡니다.
      비슷한 입장에 서 있던 오와리번 번주 토쿠가와 요시카츠(카타모리 친형)의 상황을 보면 카타모리가 취한 유교적 충효 가치가 보편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제 영상에 요시카츠 내용도 연달아 올려두었으니 참고해 보시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위에 서는 사람"이 갖춰야 할 덕목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판단 기준은 달라질 것입니다. 대의명분은 만드는 것이지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신정부군이 에도까지 토오카이도를 통해 별 다른 저항 없이 입성할 수 있었다는 것만 봐도 "군신유의"가 그 당시 일본 전역의 독립국가들에 있어서 절대 가치가 아니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토오카이도가 통과하는 지점은 애당초 서쪽 다이묘들이 에도 침공을 위해 가장 적절하게 활용될 루트였기 때문에 도쿠가와 막부에서는 친막부 다이묘와 하타모토의 영지로 도배를 해 둔 지역입니다.
      개인적인 감정이든 정확한 시대적 판단이든 "친막부"적 입장이어야만 했던 요시카츠는 보신전쟁 이전부터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고, 보신전쟁이 터진 이후 오와리번이 친막부 성향임을 의심하던 신정부군의 신뢰를 얻기 위해 자신이 번주를 역임한 오와리번 가신 10여 명을 반역죄로 몰아 처형해 신정부 측에 섰음을 분명히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토오카이도 인근의 친막부 세력에게 서신을 보내 신정부 측에 가담하도록 함으로써 신정부군의 에도 무혈 입성의 1등 공신이 된 것입니다.
      이를 배신으로 볼 것이냐는 겁니다.
      애당초 일본의 봉건제도라는 것이 영지 보전을 전제로 주종 관계를 맺는 역사가 오래 지속되어 왔고 에도시대에 들어 와 유교적 사상을 적용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사츠마의 처세와 토카이도 인근의 다이묘, 하타모토들의 선택을 보면 "영지 보전"이 "군신유의"보다 떨어지는 시대적 가치는 아니라는 것이 증명됩니다.
      따라서 현대전에 나서는 군인들의 사기와 이념을 에도시대 전쟁 양상에 비유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일견 잔인해 보이지만, 10여 명의 목숨을 버리고 오와리번 전체를 살릴 수 있다면 "위에 서는 자"는 이런 결정을 할 강단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오와리번이 오랜 기간 동안 "도쿠가와를 지탱하는 BIG 3" 중 한 곳이었기 때문에 신정부군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는 이런 강력한 액션이 필요했겠지요.
      아이즈번은 한 때 교토에서 사츠마번과 손 잡고 쵸슈를 몰아낸 이력이 있는 번입니다. 사츠마의 처세와 실력을 진작부터 간파했다면 매를 벌 선택을 덜 했겠죠.
      먹이가 필요했던 신정부군에게 아이즈가 먹잇감으로 선정된 경향이 큰 부분도 있지만, 이 역시 명분싸움에서 진 것입니다.
      지도자는 결과로 평가받는 겁니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지도자는 무능한 자가 되는 것이죠. 전쟁에서 지면 전범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교토 수호직을 위해 무리하게 번 예산을 끌어다 쓴 부분, 시대를 판단하는 능력 부족, 명분 싸움에서의 패배, 전쟁 지휘 능력의 부재.... 결과는 수 많은 영민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고 21세기 일본 지역 감정 끝판왕의 씨앗까지 심었죠.
      정답 없는 결론입니다만, "에도시대의 사고 방식"에 최대한 빙의해 생각해 봐도 카타모리는 무능력했다고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제 개인 판단이자 성향일 뿐입니다.

    • @user-vi2cf6cj2x
      @user-vi2cf6cj2x Месяц назад +1

      님의 의견에 저도 공감이 많이 됩니다...

  • @crouchingstone
    @crouchingstone Год назад +3

    보신전쟁의 전쟁규모가 권력구조를 뒤엎는 내전치곤 생각보다(?) 작더니 이러한 눈치 게임들이 있었군요... 아이즈번에게 다 몰아줘 놓고 하타모토 출신 번주들은 현실적인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판이네요. 영상 잘 보고 갑니다.

    • @hyoobee
      @hyoobee Год назад +2

      전쟁 규모가 작게 보이는 이유는 260년을 내려오며 평화롭게 작동되어온 막번시스템의 병농공상의 신분구조 때문입니다.
      전국시대 때야 영지에 군사로 쓸 사람이 모자라면 밭 부치던 개똥이 말똥이 다 창 하나씩 쥐어주고 대충 무장시킨 다음 데려가고 그랬지만...
      에도 막부가 들어서고 초기의 여러 우여곡절 끝에 전쟁 수행이 가능한 무기를 무장할 수 있는 권리는 사무라이들만 가지고 있는 것이 되었죠.
      농공상에 해당하는 서민들은 호신용 칼 정도만 소지할 수 있었고, 이렇게 또 지나다 보니까 서민들은 싸움을 잊고 전쟁은 사무라이만 하는 것이 되어버렸죠.
      하지만 병력이 적다고 우습게 볼 게 아닙니다.. 사무라이들은 평소에도 계속 무예를 갈고 닦아온 무사들로서 서양으로 따지면 기사계급입니다.
      전근대 시대에는 병력의 질이 지금보다 훨씬 중요했습니다. 코르테스가 아즈텍 제국을 정복할 때 300명의 병력으로 수만명을 상대했었습니다.
      처음 일본 조계지에서 생활하였던 미국인/영국인들의 기록을 보면, 사무라이들의 칼 실력은 공포스러운 수준이라고 항상 언급하고 있습니다.
      개중에는 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칼에 맞아 죽은 사람도 많았구요. 워낙 정확하고 빠르게 공격이 들어와서 대처할 틈도 없었다고 그러더라구요;;

  • @user-do9ki7gb5d
    @user-do9ki7gb5d Год назад +1

    진짜 잼있네요 ㅎㅎ

  • @user-uo1lp1zb7w
    @user-uo1lp1zb7w Год назад +2

    메이지 유신 세력에게 저항한 아이즈 지방은 그 때문에 역적의 지방이 될수밖에 없어서 온갖 차별대우를 많이 받았지요 공직 임용이나 출세에서 아이즈 출신들이 많은 차별을 받고

  • @joehenry8165
    @joehenry8165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충성한 사람을 탓할 게 아니라, 충성심을 이용해 먹고 보신에만 급급한 요시노부를 탓해야 할 거 같네요.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라지만 요시노부의 행각은 비겁하고 자기 밖에 모른다는 말이 안나올 수가 없음.

    • @samurairomance
      @samurairomance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요시노부가 재평가 되면서 이 모든것을 염두에 두고 한 행동이 아니었냐는 쪽으로 해석이 기울고 있기는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얻어 걸린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말이죠.....

  • @DamulStation-vk3hp
    @DamulStation-vk3hp 3 дня назад

    오사카에서 막부군과 신정부군의 전투 중에 쇼군이 도망간 거군요. 그냥 간 게 아니라 전투 중 구심점인 쇼군이 도망갔다면 남은 병력은... 어쨌든 쇼군이 겁이 많았네요. 그보다, 그렇게 싸우려면 아예 대정봉환 때 싸우는 게 막부 편이 많아서 유리했을 텐데...

  • @lee-true
    @lee-true Год назад +2

    요시노부 일본에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카타모리 입장에선 정말 양아취네요...

  • @user-sr5bc2zo9u
    @user-sr5bc2zo9u Год назад +2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 처럼 막부 다이묘 들이 검만 쓰는 그런 낭만의 모습은 없었음 서로 총쏘느라 바빴고 단지 막부보다 신진부 세력들의 무기가 더 선진화 되어있었을뿐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는 신진부 세력에는 상인들이 많이 협력해서 서양에서도 신식인 무기들을 많이 가져왔죠

  • @VitorJKhan
    @VitorJKhan Год назад +2

    잘쓰는 글입니다. 늘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 이런 글은 한글만이 아니고
    영어와 중국어로도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된답니다.

    • @samurairomance
      @samurairomance  Год назад +1

      글이라 함은 영상 속 스크립트를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 @YounChulShin
    @YounChulShin Месяц назад +1

    그렇지만, 역사에는 아이즈번처럼 의리 지키는 인간들이 있어야만, 쿠데타 세력들에 경고가 되고, 역사가 더 재미있게 전개됨. 아니 영지 대부분 박탈당한 다음에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이후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이야기가 없어서 아쉽네요.

  • @paul-qc9rw
    @paul-qc9rw Год назад +4

    중대한 일에선 감정보단 이성이 우선이어야...

    • @samurairomance
      @samurairomance  Год назад +5

      적어도 20만 석이 넘는 다이묘라면 말이죠. 입장이 일개 막부 직속 가신은 아닌 것이니까.

    • @paul-qc9rw
      @paul-qc9rw Год назад

      @@samurairomance 큰힘엔 큰책임이 따른다려나요.ㅎㅎ

  • @user-bw7sz1gb7f
    @user-bw7sz1gb7f Год назад +4

    굴곡의 아이즈번ㅜ.ㅜ

  • @user-om3de1wi9b
    @user-om3de1wi9b Год назад +7

    영상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조금 의문이 들었던 점은 마츠다이라 가타모리가 호시나 마사유키의 직계 후손이었다면 가훈에 의한 감정호소 전략에 설득당한 나름의 이유가 그래도 이해될 것 같습니다만, 넓게 보면 미토번 계열의 양자였던 가타모리가 가훈에 연연해야 했을 이유가 궁금합니다.(아무리 양자였어도 입양된 이상 입양된 집안의 가풍을 따르는 게 당시에선 매우 엄격히 요구됐던 걸까요?) 혹은 가타모리가 막부의 요구를 거절했을 시 막부로부터의 처벌, 보복 우려 같은 현실적인 판단은 없었을지의 의문도 들긴 합니다.

    • @core_meltdown
      @core_meltdown Год назад +7

      출신이 양자라서, 정통성 흠결로 컴플렉스가 있기 때문에, 더욱 가훈에 맹종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왜정 시대에 조선인 경찰이 더욱 악랄하게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고,
      광복 직후, 부르조아 출신 공산주의자가 누구보다 열렬히 공산주의 사상에 헌신했듯이요.
      제 일본인 지인 하나도, 술자리에서 이러더군요.
      "나는 일본도 사랑하고, 천황도 존경한다. 하지만 그건, 실은 내 자신이 타이완과의 혼혈이라, 순수한 일본인이 아니기에 더욱 그런 것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순수한 일본인이었다면 이런 것들은 신경도 쓰지 않겠지."
      지금도, 현 사회에서도 각 업계에서는 비전공자일 수록 자격증 따위에 연연하지요.
      자격증이 실력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자격증이 없으면 실력을 의심받거든요.

    • @user-om3de1wi9b
      @user-om3de1wi9b Год назад +3

      @@core_meltdown 말씀하신 것처럼 가신단 장악을 위해서 그럴 수도 있겠네요.. 다만, 신판 중에서도 아이즈 마쓰다이라보다는 미토 도쿠가와가 도쿠가와 본류에 가깝고, 범 미토 번 계열 다이묘들이 신판 다이묘 중에서도 많았음을 고려하면 가타모리 입장이 그렇게 불리했었는지는 조금 의문이 들긴 합니다..

    • @disastermoon420
      @disastermoon420 Год назад +4

      @@core_meltdown 야에의 벚꽃에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해석하더군요. 양자 출신이라 번의 가훈에 더 얽매여서 교토수호직을 맡게 됐다고.

    • @user-fr9ie1qy9s
      @user-fr9ie1qy9s Год назад +3

      요시노부도 미토 번 출신

    • @jeh2023
      @jeh2023 Год назад +1

      조선의 경우 양반 가문에서 '양자' 입적은 너무나 흔하고 정통성에 아무 문제 없는 절차였죠. 그 유명한 이완용도 방계에서 양자로 입적되어서 대를 이은 인물이고요. 전근대 사회에는 사생아나 서얼이 아닌 양자로 가계를 이은 경우는 정통성 컴플렉스에 시달릴 리는 별로 없다고 생각이 되네요. 일본도 전국시대라면 혹시 모를까 막부 후반기면 유교적인 충의 효도 이런 개념이 자리잡으면서 정서가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오히려 양자로 입적해서 가업을 잇게 해줬으니 개인적으로 더 진심어린 마음으로 유훈을 그대로 따르려고 했다고 해석하는 게 맞지 않나 싶네요.

  • @user-ov5zm5rz3v
    @user-ov5zm5rz3v Год назад +1

    10일 후에나 매장 햇다면 금지 시킨것과 다름 없습니다.
    다만 신정부에서도 좀 과햇다고 봐줬을 수도 있겠지요!
    일단 피를 보면 머리 꼭대기까지 오르는 법이니 식는 시간도 필요했을 터입니다.

  • @user-bu1kl5sk3p
    @user-bu1kl5sk3p Год назад +2

    15:13 쯤에 있는 오호~~하는 소리는 뭔가요? 가부키같은데 나오는 건가요?

    • @user-fr9ie1qy9s
      @user-fr9ie1qy9s Год назад +1

      판소리에 나오는 추임새같은 거인 듯

  • @tv-nq3dd
    @tv-nq3dd Год назад +2

    충신중 충신이었다 인정한다

  • @user-zp3en8pk7m
    @user-zp3en8pk7m Месяц назад +1

    천왕의 친서에 쇼군까지 명분은 있었네 보신전쟁에서 막부파가 승리 했다면 조선의 역사도 바뀌었을까? ㅎㅎ

  • @user-fr9ie1qy9s
    @user-fr9ie1qy9s Год назад +2

    아이즈 번의 다이묘 가들은 순탄치않은 듯. 아시나,가모, 우에스기

    • @user-if1bk9sg3v
      @user-if1bk9sg3v Год назад +1

      센다이번을 견제하기 위함이 커서가 아닐까요?

  • @user-wn2ne9hk5t
    @user-wn2ne9hk5t Год назад +3

    당시 토사번의 번주였던 야마우치 요도였었나? 사카모토 료마의 원래 주군인 이 분의 메이지 시대 역할과 생활사는 어땠는지 궁금해집니다.

    • @samurairomance
      @samurairomance  Год назад +3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술과 여자에 빠져 살다가 술 때문에 뇌출혈(추정) -> 좌반신 마비 -> 치료 -> 다시 쓰러져서 그 길로 사망.
      대충 이런 삶이었네요.

  • @user-rn7ms6wy5j
    @user-rn7ms6wy5j Год назад +1

    🙋‍♀️🤳👏👏👏🤲

  • @seokhohong4181
    @seokhohong4181 Год назад +1

    예전, 사츠마의 아가씨를 부인으로 삼고자 인사갔던 아이즈번의 청년이 호된 꼴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ㅎㅎ

    • @samurairomance
      @samurairomance  Год назад +2

      맞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만든 "후쿠시마현 vs 야마구치현 지역감정" 관련 영상에도 그런 내용들을 몇 건 언급했었는데요.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는 감정의 골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고도 합니다만.. 현지인이 아니니 알 수 없는 내용이겠네요.
      후쿠시마에서 택시탔을 때 야마구치 출신이라고 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있었다는...

  • @user-fr9ie1qy9s
    @user-fr9ie1qy9s Год назад +1

    거리를 감안해서 교토 치안은 에치젠 마츠다이라가 맡았어야.

  • @스테이트오브디케이
    @스테이트오브디케이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4:59 처.... 철구?

  • @user-bw7sz1gb7f
    @user-bw7sz1gb7f Год назад +2

    3:40 3대쇼군 이에미츠가 동복동생보다 더 이뻐한 동생ㄷㄷ
    호시나 마사유키는 자기 양아버지가 친아들이 있었지만 가독을 넘기지 않았죠
    이에미츠의 친동생은 자결 엔딩...

    • @user-fr9ie1qy9s
      @user-fr9ie1qy9s Год назад +1

      다케다 가문을 이을 뻔했던 인물

    • @hyoobee
      @hyoobee Год назад +2

      셋푸쿠의 형식을 취한 사실상의 권력 숙청이었지 않았을까요. 사극들을 보면 거의 이 설을 채택하고 있어서....
      실제로 기록들을 봐도 다다나가가 준부성에 기거할 때 불온한 소문이 상당히 많이 돌았다고 합니다.

    • @user-if1bk9sg3v
      @user-if1bk9sg3v Год назад +2

      동복동생은 쇼군자리두고 경쟁하는 라이벌이지만 이복동생은 라이벌이 아니니 각별히 예뻐해줄수 있었을것 같네요.

    • @user-fr9ie1qy9s
      @user-fr9ie1qy9s Год назад +1

      호시나 가문은 다케다 가문 출신.

    • @user-bw7sz1gb7f
      @user-bw7sz1gb7f Год назад +1

      @@user-fr9ie1qy9s 그렇죠
      다케다 신겐의 누이동생이 잠시 맡은

  • @biy4692
    @biy4692 Год назад

    적자가 아닌 양자라서 더 완고했을지도.

  • @user-jy2ng8ts2t
    @user-jy2ng8ts2t Год назад +1

    잘 찾아보면 이시대 충신이지.

  • @ptahoteff
    @ptahoteff Год назад +1

    지기구 싸워라

  • @bradbeetlexax2
    @bradbeetlexax2 Год назад +1

    막부에 의해 일본이 통일 되엇엇더라면 훨씬 더 책임감 잇고 유연한 외교를 펼치는 일본을 볼 수 잇엇을 텐데... 좌막파가 진 것이 언제나 아쉽습니다.

  • @manga5644
    @manga5644 Год назад +5

    충신으로서 도리는 다했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프랑스 제 3공화국도 페탱 원수가 나치한테 빨리 항복하지 않았더라면 프랑스가 철저하게 잿더미로 변했을지도 모른다는 평가가 있음을 생각해보면서
    말로는 무조건적인 반일과 자주국방 타령하면서 아무대책도 세우지 않는 어느나라의 정치인들이 같이 떠오릅니다.

    • @user-zs7eb5uc9r
      @user-zs7eb5uc9r Год назад

      이런 개소리에 동조하는 짐승도 4마리나 되네 아후

    • @user-zs7eb5uc9r
      @user-zs7eb5uc9r Год назад

      패탱이 항복해서 프랑스가 건재했다고 ? 그게 어디서 출처한 건지? 악질매국노 정인각이 손자같은 신박한 개소릴 참 천연덕스럽게도 한다야. 낯짝이 얼마나 두꺼우면 이런소리가 가능할까? 니가 씨부린 소리 프랑스 역사교과서에도 나오는 소리지? 그나라가 친나치부역질에 동조하면 공소시효없이 형사처벌 쌉가능한데 그소리 한 놈 누군지 밝혀줄래? 프랑스대사관에 알려줄라고.

    • @user-zs7eb5uc9r
      @user-zs7eb5uc9r Год назад

      무조건적인 반일이 누군데?

    • @user-zs7eb5uc9r
      @user-zs7eb5uc9r Год назад

      글로벌 파이어 파워 랭킹 6위에 빛나는 대한민국이 전작권회복하자는게 니너미 비난하는 자주국방타령맞냐? 머리속에 아주 위험한 사상을 담고 다닌다만 그러다 그 폭탄이 터질수도 있단다. 자중하렴. 혹시 정인가기가 후손이냐?

    • @user-zs7eb5uc9r
      @user-zs7eb5uc9r Год назад

      자주국방하면서 아무대책안세운 정치인누구? 구채적으로 거명가능해? 그리고 허위사실유포도 고소미대상이니까 함부로 입놀리다 신세조지고 싶으면 제대로 답달아라. 누군데? 그게? 거론가능?

  • @user-gq5jb4gw2n
    @user-gq5jb4gw2n Год назад +1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