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벼락 흙은 안먹어 봣지만 어느지역 흙이 먹는흙이라 하여 또래들과 30리길을 걸어가 흙을파서 먹고 보자기에 싸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던 유년시절이 생각납니다 흙을 많이 파 먹었는대도 재를넘어 가기 힘들정도로 배가고팟던 기억이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없는 행동이였지만 흙을 먹은 나와 또래 친구들 그래도 배탈안나고 무탈하게 넘어간게 감사할따름이지요
민주주의 인도, 공산독재 중국. 독재자 모택동, 독재자 등소평. 민주주의가 만병통치약이 아니고, 독재자도 독재자 나름. 2차대전 이전에 식민지, 독재정, 왕정, 야만 상태였다, 지금은 민주화된 나라들은 세상에 흔해 빠졌고, 2차대전 이전에 가난한 거지국가 였다, 지금은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는 한국이 유일. 민주화는 쉽고, 산업화 경제발전은 어렵다.
당시 시작 때는 스웨덴이 도움을 줘서 그 것을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 보험을 만든 곳이 있었지요, 청십자 보험 부산에서 시작하여 경남을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 이상은 가입한 병원이 적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내용이 지금의 의료보험과 비슷합니다. 우리나라 의무 건보가 바로 청십자보험을 기초로해서 만든 겁니다. 부산에서는 큰 병원이 대부분 가입 되어있었고 중간 정도에 의원들도 일부 가입 되어 있었지요. 가입한 시민도 많아 억지로 꾸려 갔답니다. 백과사전에 청십자를 찾으면 의사들과 이면에서 고생하신 분들과 병원이 나옵니다.
6.25 전쟁 끝나고 7년도 지나디 않은 세월. 정말 아무것도 없구나. 내 67년생. 우리 할아버지 부모님 세대에 마음으로 부터 늘 감사한 마음 뿐이다. 저 어려운 일제와 6.25 시대를 다 견디시고 이렇게 잘 사는 대한민국이 되도록 황무지를 개척해서 기초를 세워 물려주셔서 우리가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세대가 다 돌아 가시기 전에 국가가 더 많은 혜택을 드렸으면 좋겠다.
대다수 한국인들이 모르는데, 독일 탄광에 한국인들 가기전엔, 일본인들이 일하고 있었죠. 독일은 마샬 플랜으로 종전후 급속히 경제가 회복되어서 석탄이 많이 필요했는데, 전사자들이 많았으니 노동력이 부족했고, 그래서 동맹국이었던 일본에서 사람들 대려다 탄광에서 일 시켰죠. 그런데 625특수로 일본도 경제가 회복되자, 막장에서 일하던 일본인들이 썰물같이 일본으로 돌아갔고, 이때 한국 대사가, 독일정부에다, 한국인들도 일본인 만큼 열심히 일한다며 한국인들 써달라고 해서 성사된 일이죠. 그때 독일 탄광 월급이 한국 국무총리 보다 많아서, 대졸백수들이 손에 석탄을 문질르고 구름같이 몰려들었죠.
여보시요 지금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예전 세상으론 절때 가고 싶질 않소이다 그때 그시절엔 아파 죽는것 보다 굶어 죽는사람이 더 많았고 또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게 밥못먹는 서러움 이였다오:1956년 10월1일생 이며 :고향은 서울 옥수동 산동내에 사랐다오 품팔이 일이 없는 날이면 며칠식도 굶어다오 옟 시절은 상상도 하기싫소
60년대,,,,,,,,,,,, 대대로 서울에서 태어났기에, 시골 사진들은 소생도 당시 사진이나 극장에서 보여주는 "대한 늬우스" 에서만 보았지만, 서울 풍경은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1960년 중학교 입학하고 1969년 대학교 4년을 마쳤으니 (졸업식은 1970년 2월), 60년대 10년간은 학창시절로만 보냈던 의미있고 그리운 세월이었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살았기에 텃밭조차 없어서 처참한 6.25 사변을 겼었던 50년대에는 늘 배가 고팠던 기억만 앞섭니다만 그래도 60년대에는 라디오 (FM 은 나중이고 잡음 많은 AM 방송으로) 와 미군방송 (AFKN) 을 통하여 Beatles 등 세계 유행음악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그땐 누구나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며 착하게 살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 이란 것이 있었고 종북세력이 거들먹대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본 방송 중 카세트 테이프가 소개되는데, 대한민국에서는 60년대가 아니고 70년대에 도입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조선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림. 어쨋든 기찻길 선로 이음매에 대못 대가리 끼워두고 기차 지나가길 기다리던 기억(납작해진 대못들고 담배 한 갑 사서 탄광 찾아가면 그라인더로 갈아서 칼을 만들어 주었죠.)...헌대 못 대가리와 꼬리 방향을 잘못겨냥하면 나중에 대못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죠...ㅎㅎ
@@김문주-h6q yes, I think the same, I visited Seoul almost two years ago, it's really a clean ,reliable ,and very very beautiful city, bright day and night , the river, the mountains ,very beautiful people, I fell in love with Seoul , wonderful!!
생존이 최우선이던 시절. 그러나 밥을 못먹어도 학교는 갔고 미국구호품으로 입고 먹었지만 결코 암울하지 않았던 시절. 저 시절을 산 사람은 미국의 고마움을 잊지못한다. 아니 잊어서는 안된다. 국민학교때 급식은 미국이 구호한 빵이었다. 그나마 차마 다 먹지 못하고 집에있는 가족을 위하여 절반은 남겨야했던 열살 언제나 배고픈 코흘리개. 미국 밀기울로 죽을 쒀먹고 그 푸대에 머리 팔 팔 뚫으면 반소매 웃도리가 되고 고무줄을 넣어서 반바지로 만들어 입던 시절. 미군용 담요가 없었다면 우린 겨울에 뭘 입었을까. 지금 미국을 욕하고 저주하는 세대들. 그대들이 보수틀딱이라고 조롱하는 저 화면에 살은 아버지 할아버지가 왜 미국에 친미하는지.......은혜는 갚아야 하는데 갚기는 커녕 원수로 삼으니 그 댓가는 반드시 돌려받을 것이다. 그게 하늘의 섭리다.
잘못된 생각을 갖고 계시네요. 미국의 이익을 위해 패전국 일본 대신 우리나라를 두동강내고 38도선이 생기고 그후 6.25가 발발했습니다. 패전국 독일과 일본을 분단시키기로 되어 있었는데 원자폭탄을 만든 미국은 일본에 원자탄을 투하하고 그 위력을 알게되면서 욕심이 생깁니다. 그후 갑자기 미국 트루먼 정권은 일본 대신 한반도 분단을 주장하고 일반명령 1호를 통보합니다. 이에 소련등이 기존대로 독일,일본 분단을 요구하지만 결국 원자폭탄을 유일하게 보유한 미국에 굴복해서 미국의 요구대로 한반도 분단에 동의하게 되고 이렇게 죄없는 우리민족은 일본 대신 분단되어 비참한 동족간 전쟁을 겪고 지금까지 남북한이 분단되어 오고 있는 겁니다. 미국은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죄없는 한반도를 분단시킵니다. 미국이 도와줘서 고맙다느니 하는 생각은 버리시는게 옳다고 봅니다. 인디안들이 자신들의 조상을 학살하고 빼앗은 땅에서 인디안 보호구역에 몰아넣고 먹을것 입을 것을 준다고 인디안들이 고맙다고 한다면 어찌 생각하시는지?? 미국 정부는 조선이 일본에 넘어가는 걸 방조하고 묵인하고 동조했던 나라이고 러일전쟁에서 일본을 적극 도왔고, 카쓰라 테프트 밀약으로 일본의 한반도 점령을 동조하고 협력한 나라입니다. 우리가 힘이 있다면 언젠가는 미국에 한반도 분단의 책임을 물어서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요구해야 할 겁니다. 왜 한반도가 일본에 점령당하고 분단되었는지 생각하십시요. 저도 저 사진속의 시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과거 역사를 모를땐 인디안을 총쏘아 죽이는 서부영화에서 박수를 치며 좋아했던 사람이지만 이젠 그렇지 않습니다. 미군은 우리를 돕기위해 이 나라에 주둔하는게 아닙니다.모든게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계획되고 실행되는게 한반도에서의 미국입니다. 우리가 돈주고 사들인 전투기 등 미국 무기도 마음대로 분해하지 못하게 하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그 속에서 눈치보면서 힘을 키우고 살아 온 것이 우리나라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일본과 가깝다고 말합니다. 당연합니다.미국에겐 한반도는 그냥 세력 확장의 발판일 뿐입니다. 미국과 일본은 원래 동맹국이었죠. 단지 아시아에서 서로 힘을 키워가다고 일본의 힘이 과대해지자 이에 부담을 느낀 미국이 일본에 원유공급 등 에너지원을 차단시키자 부딪친게 태평양전쟁입니다. 2차 세계대전하고 성격이 다른 전쟁이죠. 같은 시기에 발발했을뿐입니다. 원래 미국과 일본은 동맹국이었습니다.
거의 신석기 시절 생활상ㅡ 액운을 막는다고황토를 뿌리고ㅡ 뱀이 집안으로들지 못하게 뱀 부적을 붙이기도ㅡ정월대보름날 무더위를 판다며 ^녜더위^^를 해다구ㅡ불과 한 50 여년전의 우리의 자화상 ^^ 그래도 모든게 부족 하니 나누고ㆍ 함께하고ㆍ ㅡㅡㅡ 노자의 無爲 自然 적 삶 ㅡ
60~70년대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행복했던것 같습니다. 전쟁도 없었고 그리움, 기다림, 사랑, 자비, 행복 아 아 그리움이 밀려듭니다.~~
새마을 운동으로 마을길도 넓히고 초가집도 걷어내고 참 많이도 일하신 선조님들 덕분에 따뜻하고 배부르게 잘 지냅니다 감사합니다
젏었던 엄마가 있었고 정정하신 할머니 수수부꾸미 맛있었던 다시는 갈수 없는 아름다웠던 내 유년시절
너무 어렵고 힘 들었지만 그 속에서 놀던때가 눈물 나도록 그립습니다.
시골 할머니집에 가면 나무로 불을 때서 밥을 해주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리운 할머니 시골집
그 가난했던때 열심히도 살았던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 ㆍ귀한 영상 잘 봤읍니다
과거 현재의 우리나라 부모님들과 어른분들의 많은 희생과 고생으로 이룬 지금의 대한민국. 제가 생각해도 우리나라 국민들은 눈물나게 대단한것 같아요.존경합니다.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인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127P님^^ 지는67년도에 지원입대했다 68년도김신조때매 혹독고된 군생활을,지금생각해도 너무 미련했고,지금 그렇케하면 반란일어날겁니다
@@AbDul-xe8rg 어르신 같은 분들이 계셨기에 이나라가 있으며 저희들이 있습니다.
그 노고에 깊이 감사합니다.
@@AbDul-xe8rg 안그랬음 여기가 남기나. 문주사파민주당 정의당
간찰스당땜 큰일이예요
꼭 그때 ㅇ남같아요
@@AbDul-xe8rg 고생하셨습니다 앞으로는 행복하세요
저런 불편했던 생활이 그리운게 아니고
어린시절이라 부모님의 그늘속에 순수했던 우리의 생각들과 삶이 그리운게 아닐까합니다
우리 부모님들께서 이렇게 고생고생해서
이나라를 이렇게까지 만들었다니~
눈물이 울컥 하네요~
가난이 보편화된 시절이었습니다. 일주일에 몇번은 끼니를 거르고. 영양실조로 온몸에 피부병이. 참 잘 극복하고 오늘의 번영을 이룩한 부모님 세대들 감사합니다.
요즘의 젊은이들 이 그걸 안다면 어른들 한태 제발 함부로 안했으면 좋겠다 젊음이 까 힘도 있겠지만 젊은이들 도 세월을 비켜가질 않는다 낭중에 들 후회없는 삶의 되기를 기원합니다 필승
배호님은 이렇게 귀한 사진들을 어디서 구하는지 정말 궁금해지네여,ㅎㅎㅎ
그시절엔 가난하고 모든것이 부족했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기지고 열심히 살았지요.
이 세대엔
더 큰 꿈과 일거리가 있지않을까요.
세계열방을 향해서,.
물론, 세계에 흩어져있는 사랑하는 내 동포들
어루만지고 세워내는 일도 하야겠지요.
젊은 우리의 다음세대에게 부탁합니다.
진짜.귀한영상.감사.맞아요.옛날에.국민학교.다닐적에.학교갔다오면.보릿살.삶아놓은.광주리당걸어매어놓은것한주먹묵곤했지.배고파서.담배락흙도먹어서요.
담벼락 흙은 안먹어 봣지만 어느지역 흙이 먹는흙이라 하여 또래들과 30리길을 걸어가 흙을파서 먹고 보자기에 싸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던 유년시절이 생각납니다 흙을 많이 파 먹었는대도 재를넘어 가기 힘들정도로 배가고팟던 기억이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없는 행동이였지만 흙을 먹은 나와 또래 친구들 그래도 배탈안나고 무탈하게 넘어간게 감사할따름이지요
생각하기도 싫은 열악한환경 그런데도 왜 이렇게 그리운지 아련한 옛추억에 목구멍이욹어져오네요, 귀한 추억 공유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허!허! 세월이 흘러 이젠 절대로 돌아갈 수 없는 아련한 그리움에 가슴 먹먹해진다.
소중한 자료 늘 고맙게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초기집에 살때가 지금 메마른 세상보다 훨씬 좋게 느껴지네요
옛날 모습 오랜 만에 보니 내머리 속에기억이 되살아납니다 힘든 시절 이었죠!
아~~ 그 시절~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어머님이 한없이 그립네요. 다시는 못 가는 그 시절~
지금이 훨씬 살기 편하지만
40되보니...
예전이 그립기보다...
엄마가 보고 싶고 옹기종기 지내던 가족들
그때의 젊은 내가 그리운 듯 하다
슬프고 배 고프던 그때 그 시절 남루하지만 아름다운 옛추억의 오솔길을 마구마구 내 달림니다
달리다 넘어져 무릎이 터져도 아프지않을 옛추억의 그림들 임니다
감사감사
감사합니다
어쩜 이렇게 귀한 그림들을 ~~
얼핏 삼양라면 박스가 보였습니다. 국민라면이 맞네요.
그시절이좋았고행복했던것같다.고생이뭔지모르보살아왔으니까.영상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추억에 잠깁니다.그리운 시절..
양푼에 밥 비펴놓구선
내것 남이 먹지못하게
침뱉어 먹던 시절이었지요~
갑자기 눈물이 울컥하네요ㅠㅡ
오늘날 우리의 삼십대 사십대 이하의 젊은 세대들이 한 번쯤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현재 번영이 민주화 하나 만으로 가능하였을까 고생하신 부모 조부모의 산업화 시대의 고생을
민주주의 인도, 공산독재 중국. 독재자 모택동, 독재자 등소평. 민주주의가 만병통치약이 아니고, 독재자도 독재자 나름.
2차대전 이전에 식민지, 독재정, 왕정, 야만 상태였다, 지금은 민주화된 나라들은 세상에 흔해 빠졌고,
2차대전 이전에 가난한 거지국가 였다, 지금은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는 한국이 유일.
민주화는 쉽고, 산업화 경제발전은 어렵다.
어릴적 생각이 납니다 초가집 생각 납니다 아버지 따라 국민학교 4학년 5학년때로 기억 합니다 이음엮음 어깨에며고 지붕위에 올라 갔습니다
한많은피란살이설음도많아
그래도잊이못할 판자집니여
안타까운것은
부산의피란민촌 철암장성엔 연탄채취산업전사의집 ...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애국동포힘네세요!!!
그리운 옛적 추억이지만, 제일 안타까웠던 일들은 병들었을 때 치료도 못받고 죽어가야만 했던 일이 었지요!!!!!! 병원갈 돈도 없었지만, 제대로 된 병원이 없었으니 돈많은 사람이라도 별 수 없었지요.......
당시 시작 때는 스웨덴이 도움을 줘서 그 것을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 보험을 만든 곳이 있었지요, 청십자 보험
부산에서 시작하여 경남을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 이상은 가입한 병원이 적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내용이 지금의 의료보험과 비슷합니다.
우리나라 의무 건보가 바로 청십자보험을 기초로해서 만든 겁니다.
부산에서는 큰 병원이 대부분 가입 되어있었고 중간 정도에 의원들도 일부 가입 되어 있었지요.
가입한 시민도 많아 억지로 꾸려 갔답니다.
백과사전에 청십자를 찾으면 의사들과 이면에서 고생하신 분들과 병원이 나옵니다.
그립기는하지만. .... 돌아가기는싫어요!! 춥고 배고프고..
뭔가항상 목말랐든시절.... 이좋은세상
우리후손들에게 잘물러주자고요...!!
그립ㄱ
그립기는 사무치게 그리워도
춥고배고프던 시절로 돌아가기싫단말 공감하네요
어릴적 추억이 그대로 담겨있는 사진들이네요
소죽 끓인다고 왕겨퍼다가 풍구돌려가며 아궁이에 불 때던 시절이 그립네요.
만드시느라고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
60년대 부자집 부엌, ㅋㅋㅋ 정릉에 있던 우리 외할머니 댁이 저랬는데. 주로 한옥촌이었죠, 골목마다 아이들 뛰놀던 생각이 나네요.
요즘은 어디던 아이들 소리 듣기 힘들잖아요.
부잣집은 식모를 썼기 때문에, 안방마님이 직접 부엌에서 일할 필요가 없었죠.
보고십고볼수없더그시절
추억이그립던시절
추억의영상감사드림니다~^^
즐겁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나라 어르신들은 셰계에서 최고에 영웅 대접 받아해요 셰계에서 두번째로 제일 못살던 나라을 한지도자가 해성같이 나타나 10등 안에 들게 했어요 18년 동안 국민들에게 하면된다 자고일어나면 희망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넘 좋아요 ~
그때 저는 고향 서울을 떠나 헤외로 나갔고 종내는 키나다에 정착했지만 왜인지 그때가 지금보다 더 그립습니다. 지금의 우리나라를 보면 사람들이 너무 각박해진것 같아요. 배려심이 부족하고 나만 잘살면 된다는식으로 사는것도 같고....
돌아가고 싶지않음,
슬픈 기억만 가슴아파,,,
귀한 자료입니다
6.25 전쟁 끝나고 7년도 지나디 않은 세월.
정말 아무것도 없구나.
내 67년생.
우리 할아버지 부모님 세대에 마음으로 부터 늘 감사한 마음 뿐이다.
저 어려운 일제와 6.25 시대를 다 견디시고 이렇게 잘 사는 대한민국이 되도록 황무지를 개척해서 기초를 세워 물려주셔서 우리가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세대가 다 돌아 가시기 전에 국가가 더 많은 혜택을 드렸으면 좋겠다.
난 67년도에 군대갔우다
경기도 시골은 않굶었는데 ㅡ.
서울꼬방동네는 헹편없----
정들엇든거리 눈에익네요그때내옆에소중한 부모 형재들다떠나고안계시네요 그때 그시절로돌아가고싶어요 가난하고 힘들엇지만 정하난 넘치던시절그립씀니다 버스비 8원하든시절 택시기본요금60원할때타봣네요부모님과택시타며어깨힘주던시절 아늑하네요
가나했지만 나눔있었고 예쁘지앉았지만 사랑이넘쳤던그옛날 봄이되면 환하게피던 나의추억이 정말그립습니다 ,
그예전 사람
옛날그시절매우그립습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전57년생 보리밥 감자 고구마 수제비로 못먹던시절 그러나 돈줘도 못사는 청정지역에 인심좋고 범죄없던 그시절이 넘 그립네요
국도 스카라 대한극장
LP판 정말 많이 모았었는데
구독 좋아요 눌렀읍니다!! 대국본 3:1 절 천만앱에 동참해주세요!! 우리나라를 살리는갈입나다!! 도와주세요
구독 눌렀습니다. 고맙습니다.
새마을 사업 그시절이 그립습니다 그당시 시골마을은 아이들 천지 였지요 ㅋㅋ국민학교시절 언니 애기보래 엄마가 학교에 와있는아이를 부릅니다
오래 된영상 입니다 영상잘보아읍니다 조아요 꾹누름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
귀한 옛날 사진을 보고 있으려니 눈을 떼지 못하겠습니다. 지나가버린 과거지만, 아련한 추억들이 사진을 보니 되살아나고, 참 잊혀진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과거의 모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이런 사진이 더 소중합니다.
우리 아버지도60년대에 태어나셨는데.. 정말 말도 못하게 힘드셨다던데 사진을 보니 아버지 생각이 나서 눈물이 ㅠㅠ
60년대 혁명정부가 통일벼 재배해서 보릿고개 넘겨 살았고 고리체정리로 평생 못갚을 빚 탕감했던시절 독일 월남으로 외화벌이 나간 우리시대 아는지 ? 잘 감상하고갑니다
박정희 대통령 각하가 지긋지긋한 배고픈시대를 통일벼로 긑네죠 한민족에 행운아이신 박정희 각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보고싶네요 당당한신 모습
박정희 각하 힘차고 당당하신 걸음걸이 의연한 모습 그립습니다 당신은 민족을 구원하신 위대한 지도지이십니다
7천년의 광야에서 말타고
신의 자손 제사장계급의
백의민족을 구원하러 오신 초인이십니다
대다수 한국인들이 모르는데, 독일 탄광에 한국인들 가기전엔, 일본인들이 일하고 있었죠. 독일은 마샬 플랜으로 종전후 급속히 경제가 회복되어서 석탄이 많이 필요했는데, 전사자들이 많았으니 노동력이 부족했고, 그래서 동맹국이었던 일본에서 사람들 대려다 탄광에서 일 시켰죠. 그런데 625특수로 일본도 경제가 회복되자, 막장에서 일하던 일본인들이 썰물같이 일본으로 돌아갔고, 이때 한국 대사가, 독일정부에다, 한국인들도 일본인 만큼 열심히 일한다며 한국인들 써달라고 해서 성사된 일이죠. 그때 독일 탄광 월급이 한국 국무총리 보다 많아서, 대졸백수들이 손에 석탄을 문질르고 구름같이 몰려들었죠.
여보시요 지금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예전 세상으론 절때 가고 싶질 않소이다 그때 그시절엔 아파 죽는것 보다 굶어 죽는사람이 더 많았고 또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게 밥못먹는 서러움 이였다오:1956년 10월1일생 이며 :고향은 서울 옥수동 산동내에 사랐다오 품팔이 일이 없는 날이면 며칠식도 굶어다오 옟 시절은 상상도 하기싫소
고생 마니 하셨네요
맞아요, 무슨 개뿔 그 힘든 시절로 돌아 가고싶겠습니까, 이만한 번영은 정말 기적이 아닐 수없습니다.
70년대초 옥수동. 지인살아서 가본일
있습니다!! 참 열악한 환경이드군요!
다닥다닥 붙은집.....
뒤에 태어났지만 고향 종로. 그때 서울 이렇진 않았는데.
👀👀
@@터미널포터맨
혹시 달동네가 거기였어요?
60년대,,,,,,,,,,,,
대대로 서울에서 태어났기에, 시골 사진들은 소생도 당시 사진이나 극장에서 보여주는 "대한 늬우스" 에서만 보았지만, 서울 풍경은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1960년 중학교 입학하고 1969년 대학교 4년을 마쳤으니 (졸업식은 1970년 2월), 60년대 10년간은 학창시절로만 보냈던 의미있고 그리운 세월이었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살았기에 텃밭조차 없어서 처참한 6.25 사변을 겼었던 50년대에는 늘 배가 고팠던 기억만 앞섭니다만 그래도 60년대에는 라디오 (FM 은 나중이고 잡음 많은 AM 방송으로) 와 미군방송 (AFKN) 을 통하여 Beatles 등 세계 유행음악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그땐 누구나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며 착하게 살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 이란 것이 있었고 종북세력이 거들먹대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본 방송 중 카세트 테이프가 소개되는데, 대한민국에서는 60년대가 아니고 70년대에 도입이 되었습니다..)
60년대 서울 한복판 어디인지 머르지만 그때는 조금만 시내 빠저 너와도 시골이나 마찬가지 인걸로 생각 되는데요. 그때 명윤동 해와동 삼성도에 부자들이 많이 살았지요..
@@ejshin3835 / 광화문 네거리 근처 출신입니다.
그후, 혜화동에서도 살았지요.
어린 시절....그리운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셔서 좋은 추억이 많지만..........어렵고 가난했던 시절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네요........
정겹다
당시는 여자분들이 특히 고생했겠다 그 추운 부엌에서 밥통도 없고 세탁기도 없고 보일러도 없고 냉장고도 없고 뜨거운물도 안나오고 집안일 하기 진짜 힘들었을듯 거기다 밖에서 일도 하고 ㄷㄷㄷ
어쩌면 조선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림. 어쨋든 기찻길 선로 이음매에 대못 대가리 끼워두고 기차 지나가길 기다리던 기억(납작해진 대못들고 담배 한 갑 사서 탄광 찾아가면 그라인더로 갈아서 칼을 만들어 주었죠.)...헌대 못 대가리와 꼬리 방향을 잘못겨냥하면 나중에 대못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죠...ㅎㅎ
그시절이그립습니다행복했습니다~
와우 청계천 막 복개 공사전 사진이네요..어디서 구했을까 대단하다..
가난했지만 인정이 있던 시절
아~옛날이여~나는 부잣집에서 자라나서 부러움없이 자랐다,못사는 사람은 보지도 못하였는데 이 영상을 보니까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네요~
그렇죠, 옛날엔 모두가 가난했다는건 자기 시골촌구석 밖에 나와보지 못했던 사람들 말이죠.
정말 싫어 ㅡ
생각 하기도 싫어 ㅡ
너무 아파서 싫어
너무 배가 고파서 ㅡ
그립긴 하지만 절때 그 시절이 다시 왔어는 안되는
사람들의.경겨운것만.돌아가고쉽어요.현실을무시할수없으니까.그땐참.모던게부족했지요.소풍.가는날인데.울집에는.밴또가없어요..얼마나속상하는지.말로다못했요.아무것도없이.딸랑.돈.1원.가지고.갔어요.소풍.
하얀쌀밥에계란한개!상상속의만찬!
전 56년생
소풍때 엄마가5원 챙겨주셔서 갖고 갔던기억이...학교다녀오면
엄마 아버지 하얀고무신을
텃밭아래에 개울물에서 깨끗이 닦아놓고 칭찬받던 어린시절 생각나네요...
참힘들었던시절!1965년도에(600)원가지고순천에서울까지상경했던게엇그제같은데벌써75살짜리늙은애가됏네요!홍제동화장터옆에살던시절~
그리운게 아니고 끔찍스럽네요
연탄 고무신 모두모두 그리워라
너무도슬픈것은,가족이병들어죽어가는데,병원한번못가보고,약한첩못쓰보고,지켜만봐야했던,그마음,아이,너무도슬퍼,눈물이나네요
옛날에 줄거웁게 지내던일 나언재나 그리 워라 동산에 올라가함께놀던 그옛날의 친구여 먼산에 진달래 곱게피고 뻐국이 한나절 울어대는 그리운 옛날의 그예기를 다시 들려주새요
지금도 지구촌에서 흔히볼수있는 화면. 우리도 불과45십년 전엔이런생활상. 박정희대통령의 새마을운동으로 농촌까지 눈부신 발전을 해왔는데~
참옛날의 우리 생활상이 이러한 어려움을 거쳐왔는데~~
5ㅣ년생입니다,
나의유년시절 먼과거
아님 요즘 젊은사람들
알랑가 모르것소,
참, 어려웟던시절이엿지요
그자체가 우리네역사이니
너무촌스럽다고???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은 있는데 유대감 연대감 정은 사라지는 느낌...
돌아가다니 다시는 가고싶지 않아요, 70년도면 몰라도
양지에 앉아 속옷을 벗으면 살찐 이들이 수백마리씩 팬티에 촘촘이 ᆢ 요즘 아이들 빈대 알랑가 몰라
그때는서울역벤치에도빈대님이돌아다녔다오~
이당시 서민들 참 많이. 고생 하셧읍니다. 조선이 망하게 된이유 는 정치인들 의 서민들 탄압, 과 정치인들 의 당파싸움,
키큰 버드나무에서 울어 제치던 매미. 매미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발에 맞지않은 큰 고무신 형들 신발 물려받아 동생들은 기워신고 ...
왜 저 못살았을때 초가집이 왜이렇게 그리운겨
아쉬움 보단정겨움:!!!!!?!
So was South Korea in the 60s?How much progress in 70 years, now is wonderful! Congratulations to South Koreans.
Thank you so much for the warm words.
Miracle one word
God bless forever
@@김문주-h6q yes, I think the same, I visited Seoul almost two years ago, it's really a clean ,reliable ,and very very beautiful city, bright day and night , the river, the mountains ,very beautiful people, I fell in love with Seoul , wonderful!!
@@marciaperez9728 thank you so much l bless for your successful life
you will hear the shout of victory with ķoreans and korea nature
젊은 사람들은 저 시대를 싫어하는것이 아니다.
저 시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
배 고프고 가난했어도 정이있었던 시절 아 그때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청년시절은 무조건 최고의 황금타임 그시절 돌아갈수 없겠지? !!
요즘은 홈쇼핑 그시절은 5일장 쇼핑 그래도 그시절이 왜생각날까?
옛날영상 어디서 수집하는지
대단합니다 어럽게살든시절
나무. 톳밥. 갈탄. 연탄 때던 그 시절. 아련한 추억. 때묻지않은 수수한 우리나라 대한민국 국민. 나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좋아합니다..
그리운 60년대
생존이 최우선이던 시절. 그러나 밥을 못먹어도 학교는 갔고 미국구호품으로 입고 먹었지만 결코 암울하지 않았던 시절. 저 시절을 산 사람은 미국의 고마움을 잊지못한다. 아니 잊어서는 안된다. 국민학교때 급식은 미국이 구호한 빵이었다. 그나마 차마 다 먹지 못하고 집에있는 가족을 위하여 절반은 남겨야했던 열살 언제나 배고픈 코흘리개. 미국 밀기울로 죽을 쒀먹고 그 푸대에 머리 팔 팔 뚫으면 반소매 웃도리가 되고 고무줄을 넣어서 반바지로 만들어 입던 시절. 미군용 담요가 없었다면 우린 겨울에 뭘 입었을까.
지금 미국을 욕하고 저주하는 세대들. 그대들이 보수틀딱이라고 조롱하는 저 화면에 살은 아버지 할아버지가 왜 미국에 친미하는지.......은혜는 갚아야 하는데 갚기는 커녕 원수로 삼으니 그 댓가는 반드시 돌려받을 것이다. 그게 하늘의 섭리다.
잘못된 생각을 갖고 계시네요. 미국의 이익을 위해 패전국 일본 대신 우리나라를 두동강내고 38도선이 생기고 그후 6.25가 발발했습니다. 패전국 독일과 일본을 분단시키기로 되어 있었는데 원자폭탄을 만든 미국은 일본에 원자탄을 투하하고 그 위력을 알게되면서 욕심이 생깁니다. 그후 갑자기 미국 트루먼 정권은 일본 대신 한반도 분단을 주장하고 일반명령 1호를 통보합니다. 이에 소련등이 기존대로 독일,일본 분단을 요구하지만 결국 원자폭탄을 유일하게 보유한 미국에 굴복해서 미국의 요구대로 한반도 분단에 동의하게 되고 이렇게 죄없는 우리민족은 일본 대신 분단되어 비참한 동족간 전쟁을 겪고 지금까지 남북한이 분단되어 오고 있는 겁니다. 미국은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죄없는 한반도를 분단시킵니다. 미국이 도와줘서 고맙다느니 하는 생각은 버리시는게 옳다고 봅니다. 인디안들이 자신들의 조상을 학살하고 빼앗은 땅에서 인디안 보호구역에 몰아넣고 먹을것 입을 것을 준다고 인디안들이 고맙다고 한다면 어찌 생각하시는지?? 미국 정부는 조선이 일본에 넘어가는 걸 방조하고 묵인하고 동조했던 나라이고 러일전쟁에서 일본을 적극 도왔고, 카쓰라 테프트 밀약으로 일본의 한반도 점령을 동조하고 협력한 나라입니다. 우리가 힘이 있다면 언젠가는 미국에 한반도 분단의 책임을 물어서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요구해야 할 겁니다. 왜 한반도가 일본에 점령당하고 분단되었는지 생각하십시요. 저도 저 사진속의 시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과거 역사를 모를땐 인디안을 총쏘아 죽이는 서부영화에서 박수를 치며 좋아했던 사람이지만 이젠 그렇지 않습니다. 미군은 우리를 돕기위해 이 나라에 주둔하는게 아닙니다.모든게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계획되고 실행되는게 한반도에서의 미국입니다. 우리가 돈주고 사들인 전투기 등 미국 무기도 마음대로 분해하지 못하게 하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그 속에서 눈치보면서 힘을 키우고 살아 온 것이 우리나라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일본과 가깝다고 말합니다. 당연합니다.미국에겐 한반도는 그냥 세력 확장의 발판일 뿐입니다. 미국과 일본은 원래 동맹국이었죠. 단지 아시아에서 서로 힘을 키워가다고 일본의 힘이 과대해지자 이에 부담을 느낀 미국이 일본에 원유공급 등 에너지원을 차단시키자 부딪친게 태평양전쟁입니다. 2차 세계대전하고 성격이 다른 전쟁이죠. 같은 시기에 발발했을뿐입니다. 원래 미국과 일본은 동맹국이었습니다.
@@torydo6665 그렇죠, 그냥 조선은 일본 치하에 남겨놨어야 죠.
배은망덕한 민족 도와준게 잘못이죠.
71년도에 신촌전화국 시험실에 근무한 신순옥 보고싶다 꼭 열락해라 정 진
58년 개띠정도가 마지막 보리고개 세대인듯..
1960년 이전 태생
우리 배이비 부머 세대가 가고나면 ~
감사~~~~~!
지금 북에서는 저 보다도 빈약한 삶을 살고 있으니...기도를 많이 해야~~
현재의 필리핀이구나
그래도 그시대엔 희망이 있었습니다.
거의 신석기 시절 생활상ㅡ
액운을 막는다고황토를 뿌리고ㅡ
뱀이 집안으로들지 못하게 뱀 부적을 붙이기도ㅡ정월대보름날 무더위를 판다며 ^녜더위^^를 해다구ㅡ불과 한 50 여년전의
우리의 자화상 ^^
그래도 모든게 부족 하니 나누고ㆍ 함께하고ㆍ ㅡㅡㅡ
노자의 無爲 自然 적 삶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