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제가8살때 이네요. 시골 산골마을 에서 그어린 나이에 나무를 자르고 굵은 철사를 휘어서 썰매를 만들고, 대나무쪼개서 방패연을 만들고 온동네 산과들판 개울, 집들의 모퉁이마다 놀이터가 되어 뛰놀던 시절 이었지...그때 코흘리고 싸우고 뛰놀던 그 친구들의 눈동자,웃음소리 다 어딜 갔는가? 한참 젊으셨던 할아버지 엄마 아버지... 모두 어디에, 다시는 돌아갈수 없는 어린시절의 추억 눈물나도록 그립습니다. 이제 낼모레 육십인데 ...
아마 8~12세쯤..부친따라 인천 소사 영등포 답십리 부평-강원도 신철원까지 어린나이에 함께 늘 이사봇다리 싸고 다녔던 그시절..눈물의 시절입니다. 박대통령서거때 나라가 망한줄 알았던 시절..매일 라디오뉴스에 경제성장에 관한 뉴스로 그 어린시절에 나라의 안위와 발전만을 생각하게했던 박대통령시절..새마을 운동으로 마을사람들이 길닦고 청소하고 풀베기대회 등등...동네마다 어린아이들 울음소리와 왁자지껄 하던 마을의 활기찬 그시절이...한편으로는 그립기도하고 눈시울이 나도 모르게 붉어지는 ...참으로 부모님들 고생많이하셨던 그 시절.. 배고팠고 추웠던 그 시절..우리 자식들세대가 얼마나 알까...역사를 얼마나 알까? 다시는 나라잃는 비참함을 당하지 않고 번영된 대한민국을 물려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이미 전교조 선생들에 의해 젊은이들은 사상이 변해서 민족의 구원자 박정희를원수로 알고있어요 이젠 진짜정의와 올바름을 가르쳐주기 위해 전교조해체, 민노총해체, 우리법연구해체, 5.18법 해체, 세월호보상법해체~등등 무지막한 인민공화국식 악법의 해체를 위해 박정희,이승만이 싸우면서건설했던 그 정신으로 문쩝쩝이, 주사파세력을 없애는것이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오로지 후손들의 안녕을 위해~~~!!
1968.3에 중학교 입학하여 왕십리역으로 기차통학을 했는데, 그당시 왕십리역 앞이 전차종점 이었지요. 역 앞에는 황소가 끄는 수레들이 즐비하게 있었고요. 신당동까지 걸어서 등,하교 하는 길에는 길 양쪽이 모두 로구로 스가시 목공가게들과 나전칠기 공예가게들이었지요. 저는 1968년 부터, 서울에서 중,고,대,군대생활 까지 다 했지요. 의정부 촌놈인데요^^ 우리 또래 여러분들 모두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까마득한 옛날 같은 느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구나.. 수색가는 뻐스를 보니 70 년도에 수색 30 사단에서 보병기초 훈련 받던 그해 3 월이 왜 그리 춥던지... 얼마후 와우 아파트 사건이 있었지 불도져 시장 김현옥도 물러나고.. 피끊는 청년 장교 시절이었다. 허망한 세월이 흘러 70 후반을 보내는 노년이 되었네... 늘 지나간 과거의 추억은 아름다운법..그 시절이 그립다.
요지음 젊은이들 저런때가 있었다는 사실들을 역사로 알아 배우시고 그런때가 다시는 안오도록하시기 바랍니다. 전 군복무, 학교 미치고 '60년 중반에 북미에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양가 부모님들 타계하실때까지 꼬박꼬박 생활비를 챙겨 드렸고. 이곳에 오셔서 손자, 손녀들도 만나 보시고 몇년씩 사시다 귀국하시며 '얘들아 우리가 좀 젊었어도 영어을 배을텐데 말이 안통하니 답답할때가 많구나. 이젠 집으로 돌아가 살다 죽어야겠다' 이렇게 말씀들 히시고 귀국해 거의 백세들을 누리고 돌아들 가셨습니다. 아이들도 커서 거의 장년이 되어 그래도 친, 외 조부모님들을 기억합니다.
어릴때 시간 그러니까 어릴때일수록 시간이 느리지 국민학교 시절이 일년이면 한 십년넘고..40대는 10년이 4~5년? 지금 50대는 2~3년이 아닐까?? 감이 온다 앞으로60대70,80대 갈 수록 시간이 더럽게 짧아질듯,,,,시간도 중력 지배받나보다 에너지 다운될수록 시간도 짧아진다.마음 닦기 전에 벗어나진 못할듯하다
삶의 불만족스럼이나 자기 정제가 필요할 때 인간은 소와는 달라 위장이 하나라 되새김을 할 수 없죠. 그래서 반추를 통한 자신에 대한 추동력을 얻는다 여깁니다. 민둥산 산허리 빽빽한 삶의 무게들, 잿빛 도시의 그늘... 어떻게 살것인가가 잉태하는 삶의 몸부림의 장엄한 거리의 행진.. 작가님이 제공하신 한편의 서정영상시에 제맘의 풍금이 울리고 저를 감싼 공간에 저를 던져 침잠하게 됩니다. 어머님 양수같은 원초의 상태로.......
69년 부산생으로... 어릴적 동네 골목에서 들리던 고래고기~~~~ 재첩국 사이소~~~~ 흰연기 뿜던 그 방역차 따라 다니던 기억... 당시 소고기는 사치고 돼지고기도 자주 먹기 힘들고... 그나마 고래는 합법적으로 많이 잡던 때라... 서민들의 영양식, 술안주로 많이들 먹었지. 고래고기 파는데도 많았고... 솔직히 지금도 고래고기 많이 생각남. 전라도 사람들이 홍어 좋아하는 것 처럼, 저는 고래고기가 별미로 남아 있음. 지금은 오히려 비싸서 잘 못먹는다는... 이것도 맛들이면 환장할 맛입니다. 어릴적 맛들인 건 나이들어도 마찮가지. 기억이 새록새록...
아련히 옛날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때네나이17세이엇는데지금63세휴세월빠러네요.어제같은추억입니다
그러게
71돼지입니다 형님. 아버지께서 정미소를 하셔서 배고프게 살지는 않았지만 그때 시절이 아련해지고 그립기도 하네요.
59 기해년생
ㅋㅋㅋ
59년기해생 변해도 너무변한세상 좋은건지...
서글프네요.추억은그립고
내나이 69 참힘겨운 시대를살았네
뭉클하다.머코사는데만 집중하고 살았으니 뭔낙이란걸 알았을꼬!
토박이라서 사진속풍경을 다압니다,
좋은 아파트 살고 편하게 치킨도 먹을수 있고 지금 모든 생활이 저 시절 대한민국 모든 부모님들이 만드신 작품입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편하게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프고 아름다운 ~~~추억
감사합니다
70년...제가8살때 이네요.
시골 산골마을 에서 그어린 나이에 나무를 자르고 굵은 철사를 휘어서 썰매를 만들고, 대나무쪼개서 방패연을 만들고 온동네 산과들판 개울, 집들의 모퉁이마다 놀이터가 되어 뛰놀던 시절 이었지...그때 코흘리고 싸우고 뛰놀던 그 친구들의 눈동자,웃음소리 다 어딜 갔는가? 한참 젊으셨던 할아버지 엄마 아버지... 모두 어디에, 다시는 돌아갈수 없는 어린시절의 추억 눈물나도록 그립습니다. 이제 낼모레 육십인데 ...
그시절 가난해도빛났던
유년에서 소년시절 ,휘리릭
가버린 그시절 ㅡ글을읽노라니
가슴한켠이 먹먹해지고 시려
괜실한맘에 그리워집니다
보리밭길. 아카시아 가득피던
방천길.야트막 동산에피던
진달래 울넘어살구꽃핀풍경
꿈속같고 눈에서합니다 ㅡ
님의글을 읽고잠시 행복한
시간이 되었네요 고맙습니다
와우 이렇게 소중하고 귀하고 좋은사진 발취해 영상 올려주셔서 너무나 감사 감동 그자체 입니다 옜시절 추억이 묻은 이사진들 너무 귀하고 좋아서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머리숙여감사올림니다. 공유합니다 또올려주세요.
일가님
생각하기도
끔찍 스럽습니다
배곱아 학교 우물물로
배를 채우면 배에서
천둥소리가 나며
고속도로 처럼 설사를
했지요.
아~~!!
그때가 그립습니다 고드름 주렁주렁
매달린 시골집 처마와 푸른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저녘무렵~ 밥 먹어라!! 하고
내 이름을 부르던 엄마의 그 음성~~
흑흑! 그립습니다
추수하고 난 논받이 온통 우리 놀이터였었죠. 멀리서 보이는 우리집 굴뜩 연기보면서 더 놓아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 뒤에는 여지없이 머리에 수건 둘러쓴 엄마가 밥 먹자.. 그런 세월을 보냈군요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가족들과의 정 많았던 그시절 그맆습니다
무드셀라증후군 이라고 하죠.
찹쌀떡 메밀묵은 잘때 그렇게 들었어도 한번 사먹어본 적이 없구나..
이시절중하교다닐때 사진
을보니 감회가새롭습니다
어려웠던시절이지만 너무
나좋았고 이웃간에우애잇
고 서로나누어먹던시절입
니다
교복입고 빡빡머리에 중학
교다니던생각이납니ㄷ
귀중한사진을 올려주신님
께 감사함을전합니다.
그시절로다시가보고싶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아마 8~12세쯤..부친따라 인천 소사 영등포 답십리 부평-강원도 신철원까지 어린나이에 함께 늘 이사봇다리 싸고 다녔던 그시절..눈물의 시절입니다. 박대통령서거때 나라가 망한줄 알았던 시절..매일 라디오뉴스에 경제성장에 관한 뉴스로 그 어린시절에 나라의 안위와 발전만을 생각하게했던 박대통령시절..새마을 운동으로 마을사람들이 길닦고 청소하고 풀베기대회 등등...동네마다 어린아이들 울음소리와 왁자지껄 하던 마을의 활기찬 그시절이...한편으로는 그립기도하고 눈시울이 나도 모르게 붉어지는 ...참으로 부모님들 고생많이하셨던 그 시절..
배고팠고 추웠던 그 시절..우리 자식들세대가 얼마나 알까...역사를 얼마나 알까? 다시는 나라잃는 비참함을 당하지 않고 번영된 대한민국을 물려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때 4-H클럽이라는게 있었죠
풀베기해서 거름, 두엄만들기 등등
새벽에 일어나 사기슭으로 모두가서
열씨미 풀을 베었던 그태가 엊그제같습니다
그시절 배고픔에 힘들때 전세계위대한영도자
박정희대통령각하 께서는 이한몸
국가와국민을위하여 받쳐
전세계최빈곤 나라를 세계12부국을
이룰때 괴뢰앞잡이 종북놈들은 지하구석.구석.처박혀 괴뢰붉은사상리념에 빠져
대한민국전복을 노렸다.
삶은소대가리 종북 괴역적들은 그때괴뢰앞잡이였다.
이제는 잡아 혈세회수 뿌리뽑아대청소
할때입니다.
이미 전교조 선생들에 의해 젊은이들은
사상이 변해서 민족의 구원자 박정희를원수로 알고있어요 이젠 진짜정의와 올바름을 가르쳐주기 위해
전교조해체, 민노총해체, 우리법연구해체,
5.18법 해체, 세월호보상법해체~등등
무지막한 인민공화국식 악법의 해체를 위해
박정희,이승만이 싸우면서건설했던 그
정신으로 문쩝쩝이, 주사파세력을 없애는것이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오로지 후손들의 안녕을 위해~~~!!
@@박민규-j5h6p 님 지금 시급한것이 괴뢰앞잡이 괴쓰레기 괴짚단 삶은소대가리가 괴정권 괴역적들
잡아 혈세회수 뿌리뽑아대청소가
시급합니다.
옳은말씀 입니다.
가슴 시리고
애달픈시절 그러나
눈물 나도록 그립습니다
ㄱ.어려운시절에도 곳감 홍시 암닭 땅에묻은 동김치 등 잊을수없는 먹거리 눈뭉치 고드름 우리는 자연을먹고 자랏읍니다 그맛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지요 돌아가신 부모님 과 오빠 언니 등 생각나네요 나도모르게 눈물이흐르네요 추억을 보여주신 분 감사합니다 다시 그시절로 시간여행한거같군요
아 옛날이여 저시절 서울에서 고생 무지 했슴다 잘 봅니다 귀한 자료 감사 해요
정말 귀하고 소중한 사진입니다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그때는 어렵고 힘들었지만 힘든줄 모르고 친구들과 너무도 재미있게 보냈던 시절이었다
1968.3에 중학교 입학하여 왕십리역으로 기차통학을 했는데, 그당시 왕십리역 앞이
전차종점 이었지요.
역 앞에는 황소가 끄는 수레들이
즐비하게 있었고요.
신당동까지 걸어서 등,하교
하는 길에는 길 양쪽이 모두
로구로 스가시 목공가게들과
나전칠기 공예가게들이었지요.
저는 1968년 부터, 서울에서
중,고,대,군대생활 까지 다 했지요.
의정부 촌놈인데요^^
우리 또래 여러분들 모두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엄마. 아빠가. 무척보고싶네요, ㅎ 언젠가는 만날수있겠죠 저 하늘나라에서 ^^^
엄마생각.................................................보고시퍼요
😢
70년생 어릴적 영등포에서 넓은마당 큰집 자가용 침대 소파있는 집에서 살았지만 허구헌날 싸우는 부모님에 행복한줄 몰랐음 가난하지만 화목하고 행복했다고 하는 분들 부럽
귀한 영상 감사합니다~🤗🤗
가수유비인가?
힘들다고하지마소
그땐엄청힘들던때니
지금이만해도감사해
손발이 터서 피가나고 안티푸라민 발라주든 울 엄마...ㅜㅜ
그리운 시절입니다ㆍ
요즘 젊은이 들이 어찌 알까요 ㆍ
네나이 13살때 큰이모집이 독립문 영천동 산골짝에 놀러갔는데 물지게로 공동수도로 나려던시절 삼양라면 처음보았네요 ~ 참아득하네요
영천중학교11회.꿀꿀이운동장.서대문형무소.
까마득한 옛날 같은 느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구나..
수색가는 뻐스를 보니
70 년도에 수색 30 사단에서
보병기초 훈련 받던 그해 3 월이
왜 그리 춥던지...
얼마후 와우 아파트 사건이 있었지 불도져 시장 김현옥도 물러나고..
피끊는 청년 장교 시절이었다.
허망한 세월이 흘러
70 후반을 보내는 노년이 되었네...
늘 지나간 과거의 추억은
아름다운법..그 시절이 그립다.
그땐
내가 이렇게 부요한 삶을 살스 있을 것이라고
꿈도,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준
어르신들과
우리 세대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국민 여러분 백세 가지 건강 조심하시고 행복하세요
참 그립습니다...고맙습니다. 이런 추억거리를 주셔서...
그때 그시절이 그립습니다 다시돌아가고싶은 그시절 절로생각이 나네요 ~ㅠㅠ
70년대생들이 마흔줄 다 넘었다..내가 이 나이 먹을 줄 몰랐다..ㅠㅠ
그러게요! 그런데 심지어 80년대 초반생들조차도 40이 넘었습니다 ㅠㅠ 70, 71, 72년생들은 이미 50대에 들어섰구요. 세월 참 무심하세요. 건강 잘 챙기세요!
90년생 벌써 32 입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군요
그립다, 배고프고 추웠던 대학시절 어렵게 등록금 마련하면, 가을 학기는 데모로 문닫기를 몇년째, 배운 것도 없이 미국 유학 생활에서 오늘날까지 살아 남다니
용산시장서 아이스께끼 팔던 생각.. 효창운동장서 연예인 운동회 할때 높은담 넘어서 구경하던 생각.옛날이 그립네요.
지금 이영상보시는 분들 어떤기억이 생각나시는지요~
요지음 젊은이들 저런때가 있었다는 사실들을 역사로 알아 배우시고 그런때가 다시는 안오도록하시기 바랍니다. 전 군복무, 학교 미치고 '60년 중반에 북미에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양가 부모님들 타계하실때까지 꼬박꼬박 생활비를 챙겨 드렸고. 이곳에 오셔서 손자, 손녀들도 만나 보시고 몇년씩 사시다 귀국하시며 '얘들아 우리가 좀 젊었어도 영어을 배을텐데 말이 안통하니 답답할때가 많구나. 이젠 집으로 돌아가 살다 죽어야겠다' 이렇게 말씀들 히시고 귀국해 거의 백세들을 누리고 돌아들 가셨습니다. 아이들도 커서 거의 장년이 되어 그래도 친, 외 조부모님들을 기억합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 부모님 그립지요.
서울보문동에서중학교
다니던시절에사진을보니
옛생각이나네요.
쌀이귀하던시절이었어요
연탄불때고살았습니다.
중국집짜장면맞을잊을수
가없고요.
참힘들었던시절에사진입니다.
귀한사진오려주심에감사
드립니다
코로나 조심하시고건강하
세요.
잘보고갑니다
타이머신타고 그시절로 잠깐갔다오고싶다,
정말 공감합니다~~
춥고 배고팠어도,,,,희망이 꽃피던 시절,,,,세월아 무정한 세월아,,,,
그땐여러가구가 마당한가운데수도 하나있고 빨래하면서 엄마들수다떨고 아이들은 골목에나가 밥때가되도록뛰어 놀았죠 한집에아이들도 최하2명많이낳는집은10명낳는집도 흔했죠 아이들끼리놀다 싸우고 맞고오면 어른싸움이되어 엄마들끼리 머리끄덩이잡고 많이싸웠어요 머리끄덩이잡고 싸운뒤 머리를 빗을때 보면 머리칼이 한뭉텅이더라구요 그걸보고 엄ㅁㅏ는 또열받아서 그랬죠 손톱길러서 할켜야겠다구 살만하니 돌아가신 부모님 저하늘 별이되었을까요
가슴이 저립니다...인생이란것이 참...
그시절힘들고 고달팟지만 그래도 그때는 사람사는 세상 이었지 다시돌아갈수만 있다면 네기얶속에서만 맴돈다 그때그시절로 가고싶다 나의유년시절로~~~
그 시절 영상 잘 봤습니다. 어려운 여건에서 생활하셨네요. 또 뵙겠습니다. ^^
엄마 아버지 하얀고무신 앞개울에서 늘 하얗게 닦아서 드리면 칭찬받고 행복했어요
나무지게 지고 뒷산 등성이 오르내리던 그시절
지게 한짐 지고 징검다리 잘도 건너시던 동네 어른들
우물물 길어 물동이 이고 골목 오르다가 눈길에 미끄러진 뒷집 아지매
처마밑에 멍석 말아서 걸어놓은거보니 예전에 우리집에도 저렇게 걸어놨었는데...
그립습니다 부모님 그리고 어린시절
항상 저에추억에 남아 떠오르고
하는 그리운 그때
국민학교5학년때 혜화동에서 전차타고 돈암동 종점에서 내려서 미아리고개 넘어서 대지극장 자리있는데서 미꾸라지,붕어잡고... 삼양동은 너무먼 산골이라 마음먹고 가야했고...
아~그옛날 친구들 어떻게 사는지 보고싶다 !!!!
지금은 모든게 풍부한지만 그시절이 그립다~~
정말 그때 그 시절 풍경입니다. 용문동 어릴때 생각 납니다.
어렴풋이 삼륜차 소리도 생각 납니다.
영상 잘보고 느낍니다
풀청하고 갑니다 응원 드립니다 힘내세요 ^^.ㅎ
좋습니다
저때는 왜 그리 물이 말랐는지 허구헌날 물길러다니고 먹고살기 힘들던
돌아보고싶지 않은... 하지만 철없이놀던 가슴아프고 눈물나고 가슴시리던 아련한 시절
근데 나도모르게 욕이나와 너무나도 힘들던 시절이라
전국민 모두가 참 정이 많고 순수 했던 그 시절.. 아~옛날이여....
완전 그때를 아십니까 그시절 그영상이네요..잘 보고 갑니다..꾸~벅
굴하지 않고 잘 이끌어 왔다는 생각 밖에 안든다.
내가살던~(독립문영천)모습이잠시보이네요 아 ~ 그때 그시절로 가고싶네요 무악재고개 옆 안산초등학교 제 모교입니다 지금영상이 내기얶속에서 어린시절의 모습과일치됩니다~(감사합니다 🥰
저도 안산초등학교 나왔읍니다 1960년 5학년때 419시위 현장 61년 6학년때 516혁명이 있었읍니다 독립문옆 영천시장 (금화터널 올라 가는길 바로 오른편)옆(지금은 아파트단지)동네에서 살았었읍니다 나의 6학년때 담임선생님 이셨던 민일기 선생님 그립습니다
어렸을적 옷도 션찮고...양말도 션찮고...70년대 어렸을적 기억은 겨울이면 춥고 발이 너무 시려웠던 기억이 나네요..
인생이……우리삶을 이렇게 뒤돌아볼수있어감사합니다.
70년대는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던 시절였는데, 중3때(79년) 고향을 떠나
타지아닌 타지가 고향이 되였지만,
서울은 아무리 발전해도,
내고향은 그모습만 그대로 간직하며
(지하철은 4호선 까지 기억합니다),
옛날 고향을 찿습니다.
국민학교 4학년때까지 단칸방 초가집에서 살았네 그것도 우리집이 아닌 남의집에 세들어서 지금이야 가족수보다 많은방에 한집에2차량 시대가 되었지만
경부고속도로 건설할때, 돈많은 부자들이나 외제 승용차 타고 놀러다닐 도로 라며 반대하던 위인들이 이었죠.
모든 국민이 자동차 소유할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극소수 였죠.
페결핵[지금의 코로나19]이 대유행이되어 페결핵약으로 동네 멍뭉이들 무쟈게 잡아먹어 많이 죽어나갔지 그당시 페결핵으로 죽은 사람도 많고 ....연탄가스 중독으로 도 많이 죽고....
또아이 진짜 오래만에 듣는 소리네요 80년중반까지 우리집에서 사용하던 물건있데 물통.논에 음식가지고갈때 우리집소 들판 매로갈때가 생각이나네요 97년도까지키웠는데 30년이상 고무신 아궁이 98년까지 사용하던 새로집짓고 다~버렸지요 그때가 좋았지요
2070년에 2020년도 영상을 보면
슬퍼보일까요? ㅡ나는 그때 없어요ㅡ
어릴때 광나루에서 수영하고 뚝섬에서 물고기 잡고 게 잡던 생각이 나네요.
연탄가스에 중독되 간신히 살아났던 기억도..
추억이 아름다운 건 사실이지만 전 꼭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추억은 추억일 뿐이고 가장 아름다운건 지금 현실이라고..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고생했어도 추억이니까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시절에는 아름다운게 아니었죠.
또가리 양동이보니
옛날생각남니다
참슬프네요
그당시에 명동상가 쇼윈도우를 바둑판
한칸보다 조금 더큰 타일로 외장하고
방범샤시를 한자로 一,二,三 표시한
함석 문짝인 점포도 미도파 맞은편 번화가
에서도 본 기억이 납니다 . 조흥은행 본점에
처음 개통된 에스컬레이타 타보려고 간 기억도.....
懐かしさで涙ぐましくなります。
庶民に焦点を置いた映像が主流の、飾り気のないBeho様のチャンネルはやみつきになります。
Tank you so much
나무하고. . . .형제들과 사이좋게 오순도순. . .
어릴때 시간 그러니까 어릴때일수록 시간이 느리지 국민학교 시절이 일년이면 한 십년넘고..40대는 10년이 4~5년? 지금 50대는 2~3년이 아닐까?? 감이 온다 앞으로60대70,80대 갈 수록 시간이 더럽게 짧아질듯,,,,시간도 중력 지배받나보다 에너지 다운될수록 시간도 짧아진다.마음 닦기 전에 벗어나진 못할듯하다
내 나이 70인데
다른거는 다 봐왔던
건데 고무신 뒤 기워
신은것은 못봤는것
같은데 새롭네요?
추억은 아름다워~🎉
그때 나름 좋은 추억이 많네요.
하하하. 어릴적 살았던 청량리 대왕코너 . .
저는 제기동 살았어요 홍파국민학교 9회 졸업생 이네요
😊난저때 중1 그립다 세월이 너무도 빠르다
감사합니다!!
오 오서울이이정도니
지방은 ㅠㅠ말해뭐해요ㅜㅜ
삶의 불만족스럼이나 자기 정제가 필요할 때
인간은 소와는 달라 위장이 하나라 되새김을 할 수 없죠.
그래서 반추를 통한 자신에 대한 추동력을 얻는다 여깁니다.
민둥산 산허리 빽빽한 삶의 무게들, 잿빛 도시의 그늘...
어떻게 살것인가가 잉태하는 삶의 몸부림의 장엄한 거리의 행진..
작가님이 제공하신 한편의 서정영상시에 제맘의 풍금이 울리고
저를 감싼 공간에 저를 던져 침잠하게 됩니다. 어머님 양수같은 원초의 상태로.......
사회첫발을디딘첫날대연각화재를보았네요
너무도순수하고정감이있든그시절너무도그립네요 지울수업는영원한마음속의영상감사합니다
울린더 더 더잘살해
야됀다 진짜루요후
ㅜㅜㅜ진짜루요
노랜옛노래만 지금이 더 더좋아요
국민학교 다닐때
겨울엔 각자 장작 두세개씩 들고갔지
배경 음악 흘러간 옛노래였으면 눈물 날뻔
했것는대 배경 음악이 여엉 분위기 파악싹
깨뿌리내 😭😭😭😭
공감합니다. 추억의 소야곡이나 아옛날이여 로 음악을 깔았으면 보는사람 눈물날텐데요
어릴때 처마 고드름 따서 먹고 그랬는데. 집에 수도 안들어와서 물초롱 들고 가면서 힘들면 쉬고 그랬는데. 그래도 그런가부다 힘든거 모르고 컸다는.
휴 휴가슴이막막하네
엄마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으허허헝~~~~
아,옛날이여---
69년 부산생으로...
어릴적 동네 골목에서 들리던
고래고기~~~~ 재첩국 사이소~~~~
흰연기 뿜던 그 방역차 따라 다니던 기억...
당시 소고기는 사치고 돼지고기도 자주 먹기 힘들고...
그나마 고래는 합법적으로 많이 잡던 때라...
서민들의 영양식, 술안주로 많이들 먹었지.
고래고기 파는데도 많았고...
솔직히 지금도 고래고기 많이 생각남.
전라도 사람들이 홍어 좋아하는 것 처럼,
저는 고래고기가 별미로 남아 있음.
지금은 오히려 비싸서 잘 못먹는다는...
이것도 맛들이면 환장할 맛입니다.
어릴적 맛들인 건 나이들어도 마찮가지.
기억이 새록새록...
지금도 고래고기.재첩국 생각나네요.부신가면 제첩국 한사발은 기본인디 맛이 다르더라고요.
풍납토성을 보니 그리움이 밀려오네~ 야속한 세월......
그때는 그게 고생이라고 생각조차 하지않았다
배호 티브
감사합니다
잠시 그시절로
감회가 남씁니다
6.25로 폐허가 되어
겨우 발버둥 치며 살아
가던 그시절 눈물이
나는군요.
그렇게 살아난 대한민국
국민 이였는데 지금의
세대가 한심합니다
하루에 서너번 오가는 트럭 한 두번 오가는 뻐스 뒷 꽁무니에 뽀핳게 달고오는 흙먼지 신작로 !
갑자기 눈물난다, 지금 춥그든, 지독한 겨울,동치미,
내나이 이팔청춘일때 흘러간 내청춘
어디가서 차 자 볼카나
차자보면 있쓸까!
학교에서 벼이삭 주워 오라하고 겨울엔 솔방울 주어가고 난 풀씨도 가지고 갖는대 연탄가루 물에개서 난로피우고 새삼 생각이 나내
수색 종점 142가 저 때도 142번이었군요..
추억이 방울방울
수학여행날아침동생들몰래
별식으로라면을끓여주셨던
울엄마
그 라면맛잊히질않네
고드름 따먹던 그때~~~
두메산골
아~난자연인이다였지
서울 명륜동 산동네 살던 시절 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