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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경』에는 “북해(발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으니 그 이름을 조선이라 한다.(北海之隅有國 名曰朝鮮)” 라는 기록이 나온다.송나라 때 국가에서 편찬한『무경총요』에는 “북경에서 북쪽으로 고북구를 가는 중간에 조선하가 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송나라 때 낙사라는 역사학자가 쓴 『태평환우기』에는 “하북도 노룡현에 폐허가 된 조선성이 남아 있는데 이곳이 은나라의 왕자 기자가 망명을 해 왔던 조선이다”라고 적혀 있다. 남북조시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유신이 쓴 선비족 모용은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조선건국朝鮮建國 고죽위군孤竹爲君” ps 고죽국(孤竹國, 기원전 11세기~기원전 664년)은 상주대부터 춘추시대 후기까지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허베이성 탕산 시에 존재한 국가이다. 국성은 자(子), 씨는 묵태(墨胎)이다. 백이와 숙제의 고사로 알려져 있고 기원전 664년에 제에 의해 멸망했다.
한민족은 원래 고조선, 부여, 고구려, 고려, 신라와 조선시대로 오면서 영역이 줄어들게 보인거지 실제로는 몽골+만주족+여진족+한민족은 같은 민족으로 봐야함. 다만 부족시대의 소수부족으로 나뉘는 것임. 같은 한민족으로 봐야하는 이유가 바로 고조선과 고구려를 보았을 때...최소 요동반도와 몽골, 연해주, 캄차카까지 아우러 봐야함. 그래서 최초 한민족의 터전은 백두산을 깃점으로 봐야하고 지금의 상태는 잠시 위축된 모습에 불과함
『산해경』에는 “북해(발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으니 그 이름을 조선이라 한다.(北海之隅有國 名曰朝鮮)” 라는 기록이 나온다.송나라 때 국가에서 편찬한『무경총요』에는 “북경에서 북쪽으로 고북구를 가는 중간에 조선하가 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송나라 때 낙사라는 역사학자가 쓴 『태평환우기』에는 “하북도 노룡현에 폐허가 된 조선성이 남아 있는데 이곳이 은나라의 왕자 기자가 망명을 해 왔던 조선이다”라고 적혀 있다. 남북조시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유신이 쓴 선비족 모용은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조선건국朝鮮建國 고죽위군孤竹爲君” ps고죽국(孤竹國, 기원전 11세기~기원전 664년)은 상주대부터 춘추시대 후기까지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허베이성 탕산 시에 존재한 국가이다. 국성은 자(子), 씨는 묵태(墨胎)이다. 백이와 숙제의 고사로 알려져 있고 기원전 664년에 제에 의해 멸망했다.
단군 할아버지가 부동산 사기를 당해요? 저는 최적의 땅을 선택했다고 보는데요 첫째로 고조선의 영역이 한반도 보다 훨씬 큰 지금의 내몽골과 산동성, 동쪽으로는 러시아의 연해주까지 였습니다. 그 영역을 후손들이 잘 지켰다면 지금 세계 최강국이 되었을 겁니다. 또 세계적으로 당장 산골에서도 시냇물을 먹을 수 있는 나라가 몇 없다고 합니다. 깨끗한 물을 바로 먹을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에너지야 나무를 때도 되고 석탄도 되지만 중동 지방 같이 석유가 안나온다 해서 부동산 사기(?) 그건 아니라 봅니다.
조선 말기에 (일제가 침략하기도 전의 시절) 한반도 인구가 대략 2천만으로 추정되는데, 방한 선교사들 사진에 보면 산에 나무가 하나도 없었음. 땔감용으로 다 때 버려서 전국에 바닥 났음. 고종 앞에 철종이 별명이 강화 도령이었는데 강화도에서 나뭇짐 지고 나르는 일 했었음. 사람 별로 살지 않는 강화도 나무까지 베어다 땔감 서야 할 정도로 조선은 자원이 말라붙었음. 물론 한반도에 인구가 200만명 정도 살던 시절에는 천국이었겠지. 하지만 1천만 이상을 지탱할 자원력은 도저히 못 됨. 현재는 남북한 합쳐서 7천만임. 물론 17~18세기에 이상 기후 변동으로 심한 가뭄이 지속되서 자원력이 저하된 것도 일부 기여했을 수 있음. 근데 유럽이나 일본은 기술 발전, 영토 확장으로 위기를 극복해 냄. 사실 유럽 각국이나 일본이 같은 시기에 급속하게 산업 발전, 기술 발전을 이룩한 것도 당시의 기후 악화가 모티베이션으로 작동했을 가능성이 높음. 하지만, 조선은 청의 감시 때문에 화포 개발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음. 네덜란드 출신 박연이나 하멜이 조선에 오래 머물렀던 것도 그들로부터 화포 제작 기술을 빼내려고 한 시도가 청나라에 알려질까봐 두려워서 조선 정부가 강제 억류했었음. 한마디로 한반도는 자원력도 폭망, 기술 개발도 중국 때문에 폭망, 현 시대에 미국 유럽을 포함한 서방 세계가 중국, 일본을 견제할 목적으로 우리를 적극 지원하지 않았으면 조선 말기보다 더 심한 연장선상이었을 것임.
단군이 부동산 투자를 잘못 한 것이라기 보다는 단군이 요하, 요서, 요동 포함하여 만주 일대에 나라를 세웠으나 후에 나라가 망해 여러 나라로 갈라지고 결국 통일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며 한반도로 줄어들게된 것입니다. 한국의 상고사, 고대사도 관심 갖고 공부하고 연구하시길 바랍니다.
『산해경』에는 “북해(발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으니 그 이름을 조선이라 한다.(北海之隅有國 名曰朝鮮)” 라는 기록이 나온다.송나라 때 국가에서 편찬한『무경총요』에는 “북경에서 북쪽으로 고북구를 가는 중간에 조선하가 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송나라 때 낙사라는 역사학자가 쓴 『태평환우기』에는 “하북도 노룡현에 폐허가 된 조선성이 남아 있는데 이곳이 은나라의 왕자 기자가 망명을 해 왔던 조선이다”라고 적혀 있다. 남북조시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유신이 쓴 선비족 모용은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조선건국朝鮮建國 고죽위군孤竹爲君” ps고죽국(孤竹國, 기원전 11세기~기원전 664년)은 상주대부터 춘추시대 후기까지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허베이성 탕산 시에 존재한 국가이다. 국성은 자(子), 씨는 묵태(墨胎)이다. 백이와 숙제의 고사로 알려져 있고 기원전 664년에 제에 의해 멸망했다.
위만 조선, 고구려의 국도는 한반도에 있지 않았고 따라서 있었는지도 불확실한 한사군이라는 것도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 그런 게 있었던 곳은 다 지금의 북경 근방이었다.. 한반도에 정복 목적으로 군사를 상륙시킨 중원 세력은 당나라가 유일했으나 신라에 의해 격퇴됐고 그 후 고려 때 한반도를 침탈했던 거란, 몽골, 홍건적 따위는 중원 세력이 아닌 북방 유목민족이거나 도적떼였을 뿐이다..
개인적 생각입니다 우리나라가 중국에 먹히지 않은이유는 산이 많고 평야가 적어 중국입장에서는 가성비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니들끼리 살고 조공이나 바치면 된다는 생각을 했을겁니다 과거 중국 농경시대에는 지금보다 훨씬 영토가 적고, 평야지대를 중심으로 하고 잇습니다 중국과 한반도의 위성지도를 보세요. 화북평야와 양쯔강 유역의 광활한 평야는 말할것도 없고, 영상에 언급하신 촉한의 사천성도 쓰촨평야가 대한민국만큼큽니다 쓰촨평야가 없었다면 거기도 한반도처럼 놔뒀을겁니다 중국이 북쪽의 몽골사막과 서쪽 티벳으로 진훌한것은 근대의 일입니다 한반도가 농사짓기 좋은 평야지대였다면 벌써 중국에 먹혔습니다 그리고 단군 부동산 사기설에도 반대합니다 지금 선진국들의 위치는 모두 중위도 입니다 이유는 적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한반도는 태평양을 접하고 있어 해상무역이 가능합니다. 반면 일본열도가 방파제 역할을 하여 해일피해가 없습니다 태평양을 이용할수는 있으면서 불의 고리는 피해서 지진이나 화산활동도 없습니다 지구본을 놓고 보세요 우리나라보다 조건좋은 부동산이 많은지 나쁜곳이 많은지 영상의 봄나물 내용은 좋은 시각입니다 영상의 고사리, 두릅외에 토란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처럼 먹고살기 좋은 시절이니 그렇게 말 할 수 있지만 5~60년 전만 내려가 봐도 척박하고 먹고살기 힘들어서 이런 말 하지 못할 겁니다. 보릿고개가 사라진지 몇십년 되지도 않았습니다. 환경은 척박하지만 억세게 그 환경을 극복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우리나라 처럼 수없이 침략당하고 처참하게 당한 나라도 많지 않은 것을 보면 오로지 악으로 깡으로 살았을 확륙이 높죠
@@yongsoooh3891과거 농경사회에는 태평양을 이용할 필요도 없었고 능력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해적들 막기 바빴죠 현대에 와서 국제무역이 중요해지면서 태평양을 이용하는 이점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대양을 끼지 않은 내륙의 맹지였다면 지금과 같은 위치는 택도 없습니다
물론 한반도에 인구가 200만명 정도 살던 시절에는 천국이었겠죠. 하지만 1천만 이상을 지탱할 자원력은 도저히 못 됩니다. 현재는 남북한 합쳐서 7천만이고요. 조선 말기 (일제가 침략하기도 전의 시절) 한반도 인구가 대략 2천만으로 추정되는데, 방한 선교사들 사진에 보면 산에 나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땔감용으로 다 때 버려서 전국에 바닥 났죠. 고종 앞 철종 별명이 강화 도령이었는데 강화도에서 나뭇짐 지고 나르는 일 했었죠. 사람 별로 살지 않는 강화도 나무까지 베어다 땔감 할 정도로 조선은 자원이 말라붙었습니다. 물론 17~18세기에 이상 기후 변동으로 심한 가뭄이 지속되서 자원력이 저하된 것도 일부 기여했을 수 있습니다. 근데 유럽이나 일본은 기술 발전, 영토 확장으로 위기를 극복해 냈습니다. 사실 유럽 각국이나 일본이 같은 시기에 급속하게 산업 발전, 기술 발전을 이룩한 것도 당시의 기후 악화가 모티베이션으로 작동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조선은 청나라의 감시 때문에 그 좋아하던 화포 개발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네덜란드 출신 박연이나 하멜이 조선에 오래 머물렀던 것도 그들로부터 화포 제작 기술을 빼내려고 한 시도가 청나라에 알려질까봐 두려워서 조선 정부에 의해 강제 억류됐었던 거죠. 결국 탈출.. 한마디로 한반도는 자원력도 폭망, 기술 개발도 중국 때문에 폭망, 현 시대에 미국 유럽을 포함한 서방 세계가 중국, 일본을 견제할 목적으로 우리를 적극 지원하지 않았으면 조선 말기보다 더 심한 연장선상이었을 것습니다.
노마 히데키라는 분 말씀이군요. 옛날에 서점에서 잠깐 읽은 적 있습니다. 게슈탈트 붕괴나 에크리튀르 같은 생소한 표현을 처음 접해서 조금 난해했죠. 기억하는 바로는 과도하게 옹호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하나하나 정확히 분석하면서 무어이 훌륭한 지 짚어줘서 오히려 더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역사를 보는 관점에 현재 중국전역을 한족이 이루어온 역사로 보는 것은 크나큰 오류가 있습니다. 당시 역사와 문화 등은 중국의 역사라기보다 고대동북아라는 표현이 더 정확합니다. 당시는 지금과 같이 민족과 국가가 구분되어 있었다기 보다 다양한 민족들이 섞여 동북아지역의 지배적 세력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실제 중국의 역사라 알려진 나라 중 한족이 지배한 나라는 한나라와 송나라 정도로 소수에 불과합니다. 실제 동이족이나 거란과 여진, 돌궐, 몽고족 등이 돌아가면서 지배하였지요. 중국의 역사에 이름난 사람들 중 상당한 사람이 동이족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요. 따라서 이제 중국역사 혹은 중국문화라기 보다 고대 동북아 지역의 역사 혹은 문화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홍대선 저자님께 질문] ‘한국인의 탄생 - 홍대선, 2023’의 13페이지에 “20세기 중반 대한민국의 건국” 이라 서술하셨는데요, 그러면 대한민국의 건국이 1919년(20세기 초중반)이 아니라 저서에 기술하신대로 20세기 중반이면 광복 후 ‘1948년 8윌 15일’을 의미하는지요?
불과 100년전 역사관도 바꾸려고 난리인데 과연 과거에도 실제 역사에 대한 왜곡이 없었을까 라는 의문이 있습니다. 한반도라는 척박한 땅에서 작은 나라가 삼국시대부터 조선왕조까지 수백년씩 이어졌는데 그 넓은 땅을 다스렸다는 중국은 그렇게 수많은 왕조가 생겼다없어졌다했는데 한반도 지형이 방어가 좋다고만하기엔 너무 빈약하지않나 싶네요. 단편적으로 그렇게 정복이 어렵다는 파촉에 세워진 중국에 삼국시대에 촉나라도 생긴지 반세기도 안되서 정복당해 멸망당했는데요. 그넓은 땅도 수십년안에 정복하는 나라들이 그작은 땅 점령을 못한다는게 대륙에서 그렇게 싸우면서 옆에 반도국가를 그냥 뒀다 는것도 신기하죠. 고구려도 그렇게 작은 나라라면 그렇게 척박한 땅에서 위나라에게 수도 한번 정복당하면 거의 멸망당해도 부족하지않을상황인데 그걸 다시 회복하고 광개토대왕등 탄생하여 정복전쟁을 했다는것도 정말 우리의 터전이 그저 한반도와 만주일대가 맞는건가 의심이 되긴합니다. 고려 왕릉들도 저게 왕릉이 맞나 싶을정도로 초라한것도 많고 뭐든 소실되었다 알수없다 왕릉인듯하다 하는 그런 곳들이 태반이니까요..
한반도는 벼농사에 적합한 땅이에요. 가장 맛있는 쌀이 나지요. 이 쌀은 현대에 중국이 만주를 개간하기 전까지 대체가 없는 것이에요. 1960년대 만주를 개간해서 쌀이 나기 시작했는데 여기 쌀도 한반도의 쌀과 비슷한 맛이 난다고 합니다. 고대에 만주는 쓰레기 땅이었었요. 사람 살만한 곳이 아니었지요. 우리 선조가 만주를 포기한 이유가 있는 것이에요. 거기가 좋은 땅이었다면 포기 했겠어요? 광개토태왕은 왜 기를 쓰고 한반도로 내려 오려고 했겠어요, 이 모지리는.. 쌀이 뭔지를 모르는 우리는 동남아시아 쌀은 먹지 않아요. 엄청나게 수확량이 많이 나오는 통일벼를 우린 지금 애 안 먹을까요? 3배가 더 나는데.. 3모작이랑 똑같은거 아니에요? 일제때 일본도 우리 쌀 수탈해가기 바빠서 우리는 돈주고도 우리 쌀 못먹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쌀은 땅의 지력을 해하지 않는 작물이에요. 수생 식물이기 땜인데 이로인해 쌀농사를 6000년을 지었지만 지력이 떨이지지 않았지요. 무지는 죄가 아니에요. 이해는 합니다만 단편적인 인상으로 논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듣고 있으면 손발이 오그라 들어요. //// 여긴 전세계에서 물이 가장 좋은 땅이에요. 화강암 지대이기 때문인데 물이 좋다는 것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모양이에요, 그게 별게 아니라니.. 4계절이 명확한것도 별거 아니라고 하고 그로 인해 오곡이 풍부하고 맛이 좋은 것들이 나며 울나라 산지에서는 다양한 약재가 납니다. 왜 산삼은 조선것만 쓸까요? //// 여기는 고대에도 천만이 가까운 사람이 살았던 곳이에요. 인구밀도로 보면 한중일중 한반도가 가장 높았어요. 왜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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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대선 작가 저서 『한국인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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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ruclips.net/video/9F0cr_yFQQg/видео.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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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선 작가님, 역사를 민족성 그리고 먹거리 기타 모든 것과 연결해서 설명해주셔서 넘넘 리얼리얼^^ 감사합니다 ❤
결핍이 최대의 에너지란 말이 있죠. 우리나라가 우크라이나 나 아르헨티나와 같이 넓고 농사가 잘 되고 풍요로웠다면 여유로운 기질을 갖게되었겠지만 악착갖고 근면한 기질은 없었을겁니다.
게으르면 바로 사망 입니다. 겨울에 얼어죽고, 여름에 더워죽고 한가지 날씨에 적응하면 살아갈수 없는 매번 변화에 적응해서 살아야하는 인생들~
앞뒤로 미세먼지와 오염수
또는 동북공정과 역사왜곡 ㅋㅋㅋ
@@user-6626ㅎㅎㅎ
한많은 이세상 야속한 님아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한오백년) 민요 가사가 그냥 나온게 아니였네요 ^^ 좋은 말씀 잘들었습니다
단군할아버지는 요서와 요동으로 잡았는데 후손들이 못지켜 뺏기고 쫓겨난거죠
『산해경』에는 “북해(발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으니 그 이름을 조선이라 한다.(北海之隅有國 名曰朝鮮)” 라는 기록이 나온다.송나라 때 국가에서 편찬한『무경총요』에는 “북경에서 북쪽으로 고북구를 가는 중간에 조선하가 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송나라 때 낙사라는 역사학자가 쓴 『태평환우기』에는 “하북도 노룡현에 폐허가 된 조선성이 남아 있는데 이곳이 은나라의 왕자 기자가 망명을 해 왔던 조선이다”라고 적혀 있다.
남북조시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유신이 쓴 선비족 모용은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조선건국朝鮮建國 고죽위군孤竹爲君”
ps 고죽국(孤竹國, 기원전 11세기~기원전 664년)은 상주대부터 춘추시대 후기까지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허베이성 탕산 시에 존재한 국가이다. 국성은 자(子), 씨는 묵태(墨胎)이다. 백이와 숙제의 고사로 알려져 있고 기원전 664년에 제에 의해 멸망했다.
실제 배달조선은 중앙아시아에 있었습니다 대홍수때 일부는 산맥을 따라 점점 동쪽으로 이동해 대흥산맥아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어떻하면 좋니?
@@내가판단하고내가결정그때도민주당이있었나
@@장기성-h3g ? 무슨소리죠?
유전적으로 행복호르몬이 부족하다는걸 이제야 알았네요
지정학적 지리학적 이유로 피할 수 없는 유전현상이라면 걍 이렇게 살아야겠군요..
행복하기위한 노력 자체가 스트레스일 수도..
다른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지금을 명쾌하게 분석하시네요. 강의 들을때마다 감탄
한민족은 원래 고조선, 부여, 고구려, 고려, 신라와 조선시대로 오면서 영역이 줄어들게 보인거지 실제로는 몽골+만주족+여진족+한민족은 같은 민족으로 봐야함. 다만 부족시대의 소수부족으로 나뉘는 것임.
같은 한민족으로 봐야하는 이유가 바로 고조선과 고구려를 보았을 때...최소 요동반도와 몽골, 연해주, 캄차카까지 아우러 봐야함.
그래서 최초 한민족의 터전은 백두산을 깃점으로 봐야하고 지금의 상태는 잠시 위축된 모습에 불과함
『산해경』에는 “북해(발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으니 그 이름을 조선이라 한다.(北海之隅有國 名曰朝鮮)” 라는 기록이 나온다.송나라 때 국가에서 편찬한『무경총요』에는 “북경에서 북쪽으로 고북구를 가는 중간에 조선하가 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송나라 때 낙사라는 역사학자가 쓴 『태평환우기』에는 “하북도 노룡현에 폐허가 된 조선성이 남아 있는데 이곳이 은나라의 왕자 기자가 망명을 해 왔던 조선이다”라고 적혀 있다.
남북조시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유신이 쓴 선비족 모용은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조선건국朝鮮建國 고죽위군孤竹爲君”
ps고죽국(孤竹國, 기원전 11세기~기원전 664년)은 상주대부터 춘추시대 후기까지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허베이성 탕산 시에 존재한 국가이다. 국성은 자(子), 씨는 묵태(墨胎)이다. 백이와 숙제의 고사로 알려져 있고 기원전 664년에 제에 의해 멸망했다.
골짝 골짝 생명력이 깃들일 수가 있어서
전란과 혼란이 휩쓸고 지나가도 멸망하ㅈ지 아니하고
새 봄에는 골골이 생명체가 살아나오고 기어나와
마침내 오늘날 대한민국을 일구었지요
단군할아버지가 터잡은 백두산 북쪽에서는 중국 원유 생산량의 절반이 나오는 지역이에요 ㅜㅜ
홍작가님 너무 늦게 알게되어서 속상해요
이제부터라도 모든 강의 찾아서 들을게요
감사합니다
홍대선작가님,감사합니다. 😊
단군 할아버지가 부동산 사기를 당해요? 저는 최적의 땅을 선택했다고 보는데요
첫째로 고조선의 영역이 한반도 보다 훨씬 큰 지금의 내몽골과 산동성, 동쪽으로는 러시아의 연해주까지 였습니다.
그 영역을 후손들이 잘 지켰다면 지금 세계 최강국이 되었을 겁니다.
또 세계적으로 당장 산골에서도 시냇물을 먹을 수 있는 나라가 몇 없다고 합니다. 깨끗한 물을 바로 먹을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에너지야 나무를 때도 되고 석탄도 되지만 중동 지방 같이 석유가 안나온다 해서 부동산 사기(?) 그건 아니라 봅니다.
조선 말기에 (일제가 침략하기도 전의 시절) 한반도 인구가 대략 2천만으로 추정되는데, 방한 선교사들 사진에 보면 산에 나무가 하나도 없었음. 땔감용으로 다 때 버려서 전국에 바닥 났음. 고종 앞에 철종이 별명이 강화 도령이었는데 강화도에서 나뭇짐 지고 나르는 일 했었음. 사람 별로 살지 않는 강화도 나무까지 베어다 땔감 서야 할 정도로 조선은 자원이 말라붙었음. 물론 한반도에 인구가 200만명 정도 살던 시절에는 천국이었겠지. 하지만 1천만 이상을 지탱할 자원력은 도저히 못 됨. 현재는 남북한 합쳐서 7천만임. 물론 17~18세기에 이상 기후 변동으로 심한 가뭄이 지속되서 자원력이 저하된 것도 일부 기여했을 수 있음. 근데 유럽이나 일본은 기술 발전, 영토 확장으로 위기를 극복해 냄. 사실 유럽 각국이나 일본이 같은 시기에 급속하게 산업 발전, 기술 발전을 이룩한 것도 당시의 기후 악화가 모티베이션으로 작동했을 가능성이 높음. 하지만, 조선은 청의 감시 때문에 화포 개발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음. 네덜란드 출신 박연이나 하멜이 조선에 오래 머물렀던 것도 그들로부터 화포 제작 기술을 빼내려고 한 시도가 청나라에 알려질까봐 두려워서 조선 정부가 강제 억류했었음. 한마디로 한반도는 자원력도 폭망, 기술 개발도 중국 때문에 폭망, 현 시대에 미국 유럽을 포함한 서방 세계가 중국, 일본을 견제할 목적으로 우리를 적극 지원하지 않았으면 조선 말기보다 더 심한 연장선상이었을 것임.
단군이 부동산 투자를 잘못 한 것이라기 보다는 단군이 요하, 요서, 요동 포함하여 만주 일대에 나라를 세웠으나 후에 나라가 망해 여러 나라로 갈라지고 결국 통일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며 한반도로 줄어들게된 것입니다. 한국의 상고사, 고대사도 관심 갖고 공부하고 연구하시길 바랍니다.
재밌어요. ㅎㅎ
너무 재밋어요!!!
너무 재밌어요~^^
홍대선 짱짱맨
홍대선작가 홧팅
고구려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지금 세계는!? 1.2차 세계대전도 없었고
고구려가 세계 패권국으로
평화로운 지구가 되었을 것!!❤😂🎉
단군 할아버지가 터를 잘못잡았다고 지금의 북한과 남한의 땅만보고 말하는데 발해가 지배하는 땅들은 우리민족 땅들이었다.
척박한 토지, 겨울에는 엄청 춥고 여름에는 엄청 덥고 평야 보다 산 ⛰이 많은 한반도의 지형, 자연환경이 한국인의 기질을 만들어 냈죠.
정말 공감됩니다!
평소에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나도
치열한 삶의 현장이 우리 선조들의 모습입니다
맞아요. 공감합니다
믿고 듣는 작가님
선리플 후감상 입니다
뭔가 구구절절 맞는 말 같네요 😂
질투는 한국사람들 뿐만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 특성같습니다.
뭐 정도의 차이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미드 보면 질투로 일어나는 사건이 얼마나 많습니까..
단군할아버지가 터 잡은 곳이 발해만 일대가 아닐까요? 지금은 우리는 한반도에 살고 있지만. 그리고 그때 보다는 거의 5배 정도 인구가 늘러난 탓도 있지 않을까요? 하여튼 요즘 늘어난 인구로 좁혀진 넓이의 땅에서 살아가는 것은 힘들기는 하다.
『산해경』에는 “북해(발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으니 그 이름을 조선이라 한다.(北海之隅有國 名曰朝鮮)” 라는 기록이 나온다.송나라 때 국가에서 편찬한『무경총요』에는 “북경에서 북쪽으로 고북구를 가는 중간에 조선하가 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송나라 때 낙사라는 역사학자가 쓴 『태평환우기』에는 “하북도 노룡현에 폐허가 된 조선성이 남아 있는데 이곳이 은나라의 왕자 기자가 망명을 해 왔던 조선이다”라고 적혀 있다.
남북조시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유신이 쓴 선비족 모용은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조선건국朝鮮建國 고죽위군孤竹爲君”
ps고죽국(孤竹國, 기원전 11세기~기원전 664년)은 상주대부터 춘추시대 후기까지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허베이성 탕산 시에 존재한 국가이다. 국성은 자(子), 씨는 묵태(墨胎)이다. 백이와 숙제의 고사로 알려져 있고 기원전 664년에 제에 의해 멸망했다.
핵공감입니다 ㅋ 작가님 영상 진짜 재밌다아~~
위만 조선, 고구려의 국도는 한반도에 있지 않았고 따라서 있었는지도 불확실한 한사군이라는 것도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 그런 게 있었던 곳은 다 지금의 북경 근방이었다.. 한반도에 정복 목적으로 군사를 상륙시킨 중원 세력은 당나라가 유일했으나 신라에 의해 격퇴됐고 그 후 고려 때 한반도를 침탈했던 거란, 몽골, 홍건적 따위는 중원 세력이 아닌 북방 유목민족이거나 도적떼였을 뿐이다..
아조씨 주장 인정할려면 수천가지 유물역사 사료역사 반박해야하는데 가능? 고조선 세거지 요서 요동 평양으로 밀리고 위만조선때 나머지 고조선 세력이 남쪽으로 내려가 삼한이 된거
개인적 생각입니다
우리나라가 중국에 먹히지 않은이유는 산이 많고 평야가 적어 중국입장에서는 가성비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니들끼리 살고 조공이나 바치면 된다는 생각을 했을겁니다
과거 중국 농경시대에는 지금보다 훨씬 영토가 적고, 평야지대를 중심으로 하고 잇습니다
중국과 한반도의 위성지도를 보세요. 화북평야와 양쯔강 유역의 광활한 평야는 말할것도 없고, 영상에 언급하신 촉한의 사천성도 쓰촨평야가 대한민국만큼큽니다
쓰촨평야가 없었다면 거기도 한반도처럼 놔뒀을겁니다
중국이 북쪽의 몽골사막과 서쪽 티벳으로 진훌한것은 근대의 일입니다
한반도가 농사짓기 좋은 평야지대였다면 벌써 중국에 먹혔습니다
그리고 단군 부동산 사기설에도 반대합니다
지금 선진국들의 위치는 모두 중위도 입니다
이유는 적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한반도는 태평양을 접하고 있어 해상무역이 가능합니다.
반면 일본열도가 방파제 역할을 하여 해일피해가 없습니다
태평양을 이용할수는 있으면서 불의 고리는 피해서 지진이나 화산활동도 없습니다
지구본을 놓고 보세요
우리나라보다 조건좋은 부동산이 많은지 나쁜곳이 많은지
영상의 봄나물 내용은 좋은 시각입니다
영상의 고사리, 두릅외에 토란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동감입니다
지금 처럼 먹고살기 좋은 시절이니 그렇게 말 할 수 있지만 5~60년 전만 내려가 봐도 척박하고 먹고살기 힘들어서 이런 말 하지 못할 겁니다.
보릿고개가 사라진지 몇십년 되지도 않았습니다. 환경은 척박하지만 억세게 그 환경을 극복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우리나라 처럼 수없이 침략당하고 처참하게 당한 나라도 많지 않은 것을 보면 오로지 악으로 깡으로 살았을 확륙이 높죠
태평양을 이용할수 있는 좋은 위치인데, 왜 우리는 한번도 태평양을 향해 나아가지 않았을까요?
@@yongsoooh3891과거 농경사회에는 태평양을 이용할 필요도 없었고 능력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해적들 막기 바빴죠
현대에 와서 국제무역이 중요해지면서 태평양을 이용하는 이점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대양을 끼지 않은 내륙의 맹지였다면 지금과 같은 위치는 택도 없습니다
물론 한반도에 인구가 200만명 정도 살던 시절에는 천국이었겠죠. 하지만 1천만 이상을 지탱할 자원력은 도저히 못 됩니다. 현재는 남북한 합쳐서 7천만이고요. 조선 말기 (일제가 침략하기도 전의 시절) 한반도 인구가 대략 2천만으로 추정되는데, 방한 선교사들 사진에 보면 산에 나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땔감용으로 다 때 버려서 전국에 바닥 났죠. 고종 앞 철종 별명이 강화 도령이었는데 강화도에서 나뭇짐 지고 나르는 일 했었죠. 사람 별로 살지 않는 강화도 나무까지 베어다 땔감 할 정도로 조선은 자원이 말라붙었습니다. 물론 17~18세기에 이상 기후 변동으로 심한 가뭄이 지속되서 자원력이 저하된 것도 일부 기여했을 수 있습니다. 근데 유럽이나 일본은 기술 발전, 영토 확장으로 위기를 극복해 냈습니다. 사실 유럽 각국이나 일본이 같은 시기에 급속하게 산업 발전, 기술 발전을 이룩한 것도 당시의 기후 악화가 모티베이션으로 작동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조선은 청나라의 감시 때문에 그 좋아하던 화포 개발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네덜란드 출신 박연이나 하멜이 조선에 오래 머물렀던 것도 그들로부터 화포 제작 기술을 빼내려고 한 시도가 청나라에 알려질까봐 두려워서 조선 정부에 의해 강제 억류됐었던 거죠. 결국 탈출.. 한마디로 한반도는 자원력도 폭망, 기술 개발도 중국 때문에 폭망, 현 시대에 미국 유럽을 포함한 서방 세계가 중국, 일본을 견제할 목적으로 우리를 적극 지원하지 않았으면 조선 말기보다 더 심한 연장선상이었을 것습니다.
와닿네! 좀 더 근거자료가 필요하긴하지만
세라토닌 분비가 적은 민족이 된 이유는 전쟁이나 환경에 맞추어서 남아남는 민족의 유전자가 남아서 그럴지도…….
자연이 식량을 주는 적도부근 나라는 게으르고 저개발국이 많고 북반구에 선진국이 많은 것은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완전 공감됩니다..애증관계
한글에 매료되어 한글의 탄생이란 책을 쓴 일본유명대학 교수가 있죠..
한국인보다 더깊게 분석한 그책을 참 감명깊게 읽었는데 한국인의 탄생 ᆢ 이란 책도 관심이 가네요ᆢ 한번 봐야 할텐데ᆢ
노마 히데키라는 분 말씀이군요. 옛날에 서점에서 잠깐 읽은 적 있습니다. 게슈탈트 붕괴나 에크리튀르 같은 생소한 표현을 처음 접해서 조금 난해했죠. 기억하는 바로는 과도하게 옹호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하나하나 정확히 분석하면서 무어이 훌륭한 지 짚어줘서 오히려 더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호랑이에 대한 불안한 경계감을 가져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같은데...
호랑이가 즐비한데 낭만적으로 살았다간...
역사를 보는 관점에 현재 중국전역을 한족이 이루어온 역사로 보는 것은 크나큰 오류가 있습니다.
당시 역사와 문화 등은 중국의 역사라기보다 고대동북아라는 표현이 더 정확합니다.
당시는 지금과 같이 민족과 국가가 구분되어 있었다기 보다 다양한 민족들이 섞여 동북아지역의 지배적 세력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실제 중국의 역사라 알려진 나라 중 한족이 지배한 나라는 한나라와 송나라 정도로 소수에 불과합니다. 실제 동이족이나 거란과 여진, 돌궐, 몽고족 등이 돌아가면서 지배하였지요.
중국의 역사에 이름난 사람들 중 상당한 사람이 동이족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요.
따라서 이제 중국역사 혹은 중국문화라기 보다 고대 동북아 지역의 역사 혹은 문화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중국 역사에서 한족보다는 북방민족이 다스린 기간이 훨씬 더 많습니다.
울 역사에서 삼한이라는 개념이 마한 진한 변한이였다가 나중에는 고백신으로 확장된것처럼 동이라는 개념도 중국에서는 황하 동쪽에서 중원 동쪽으로 확장된거임 그리고 돌궐 거란 요 금 등 유목민족 대다수가 화북 한족에 동화 또는 흡수돼 정체성을 잃어 지금의 중국인이된거
생존을 위한 본능으로 살아온 민족
ㅋㅋㅋㅋㅋ 말 재미있게 전달하시네
[홍대선 저자님께 질문] ‘한국인의 탄생 - 홍대선, 2023’의 13페이지에 “20세기 중반 대한민국의 건국” 이라 서술하셨는데요, 그러면 대한민국의 건국이 1919년(20세기 초중반)이 아니라 저서에 기술하신대로 20세기 중반이면 광복 후 ‘1948년 8윌 15일’을 의미하는지요?
한반도가 벼농사에 적합치 않고 밀농사가 적합하다라면 한국인의 주식은 밀가루가 되어야 하나요?
석유 안나오는 땅;;;
쌀 농사 짓기 힘든 산악지형😅😅😅
답답한 단군 할아버지 왈 ~~
한심한 자손들아 산이 없었으면 거대 중국인들에게 살아남았 겠는가 또 그 좋은 물을 먹을수 있겠었는가 부동산 사기가 아니라 금수강산이란다
그런건 기본적인 인간본성 아닐까요? 정도의 차이일텐데.. 주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비교적 균형감이 있는거 같은데요
불과 100년전 역사관도 바꾸려고 난리인데 과연 과거에도 실제 역사에 대한 왜곡이 없었을까 라는 의문이 있습니다. 한반도라는 척박한 땅에서 작은 나라가 삼국시대부터 조선왕조까지 수백년씩 이어졌는데 그 넓은 땅을 다스렸다는 중국은 그렇게 수많은 왕조가 생겼다없어졌다했는데 한반도 지형이 방어가 좋다고만하기엔 너무 빈약하지않나 싶네요. 단편적으로 그렇게 정복이 어렵다는 파촉에 세워진 중국에 삼국시대에 촉나라도 생긴지 반세기도 안되서 정복당해 멸망당했는데요. 그넓은 땅도 수십년안에 정복하는 나라들이 그작은 땅 점령을 못한다는게 대륙에서 그렇게 싸우면서 옆에 반도국가를 그냥 뒀다 는것도 신기하죠. 고구려도 그렇게 작은 나라라면 그렇게 척박한 땅에서 위나라에게 수도 한번 정복당하면 거의 멸망당해도 부족하지않을상황인데 그걸 다시 회복하고 광개토대왕등 탄생하여 정복전쟁을 했다는것도 정말 우리의 터전이 그저 한반도와 만주일대가 맞는건가 의심이 되긴합니다. 고려 왕릉들도 저게 왕릉이 맞나 싶을정도로 초라한것도 많고 뭐든 소실되었다 알수없다 왕릉인듯하다 하는 그런 곳들이 태반이니까요..
무슨 말씀이신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라...어조가 꼭 일본 사람 같아요
중국사람인가?
@@ajwonderland 일본 or 중국 사람이 뭐하러 한국사람 터전이 한반도 만주에 그치지 않았을거라고 이야길하나요 ? 밑도끝도없이 일본 중국타령하는 당신이 더 의심스럽네요
맞습니다. 부동산 사기 당했습니다.
그 땅에서 5천 년을 살아온 한국인은 대단한 민족입니다.
약먹은 개미 ㅋㅌㅋㅌㅋㅌ 아 진짜 웃기면서도 눈물나네요 ㅎㅎ
이제 그만합시다. 단군은 요동에 나라를 세웠습니다. 우리 후손들이 그 땅들을 말아 먹은 겁니다. 사실은 사실대로 압시다.
한반도는 벼농사에 적합한 땅이에요.
가장 맛있는 쌀이 나지요.
이 쌀은 현대에 중국이 만주를 개간하기 전까지 대체가 없는 것이에요.
1960년대 만주를 개간해서 쌀이 나기 시작했는데
여기 쌀도 한반도의 쌀과 비슷한 맛이 난다고 합니다.
고대에 만주는 쓰레기 땅이었었요.
사람 살만한 곳이 아니었지요.
우리 선조가 만주를 포기한 이유가 있는 것이에요.
거기가 좋은 땅이었다면 포기 했겠어요?
광개토태왕은 왜 기를 쓰고 한반도로 내려 오려고 했겠어요,
이 모지리는.. 쌀이 뭔지를 모르는
우리는 동남아시아 쌀은 먹지 않아요.
엄청나게 수확량이 많이 나오는 통일벼를 우린 지금 애 안 먹을까요?
3배가 더 나는데.. 3모작이랑 똑같은거 아니에요?
일제때 일본도 우리 쌀 수탈해가기 바빠서
우리는 돈주고도 우리 쌀 못먹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쌀은 땅의 지력을 해하지 않는 작물이에요.
수생 식물이기 땜인데
이로인해 쌀농사를 6000년을 지었지만 지력이 떨이지지 않았지요.
무지는 죄가 아니에요.
이해는 합니다만
단편적인 인상으로 논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듣고 있으면 손발이 오그라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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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전세계에서 물이 가장 좋은 땅이에요.
화강암 지대이기 때문인데
물이 좋다는 것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모양이에요,
그게 별게 아니라니..
4계절이 명확한것도 별거 아니라고 하고
그로 인해 오곡이 풍부하고 맛이 좋은 것들이 나며
울나라 산지에서는 다양한 약재가 납니다.
왜 산삼은 조선것만 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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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고대에도 천만이 가까운 사람이 살았던 곳이에요.
인구밀도로 보면 한중일중 한반도가 가장 높았어요.
왜 일까요?
잘 들었습니다.
다음에는 아시아판 NATO와 관련하여 김현철 교수님의 강의를 부탁해도 될까요?
우리 선조들이 터잡은곳은 이곳 한반도가 아니었다
중국자체도 오랑케 뭉쳐진 국가인데 ㅋㅋ
울나라는 신라 통일한게 문제임
고구려가 했어야 했음
신라는 중원대륙에 있어서 쌀을 많이 생산해서 당나라 굳대에 공급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한반도에 국한된 나라가 아닙니다 고조선부터 삼국 그리고 고려 때까지 중원대륙있었던 나라입니다
근거는? 중국에 동래라는 지명이 있다고 부산은 원래 산동에 있었다라는 지능 낮은 이야기 믿는거 아니죠?
오류가 있는게,
먼 과거에 서해는 육지였고, 전부 고조선 영토였음.
그래서 마니산에 참성단이 있는 것임.
다들 알다시피 고조선 전성기땅은 한반도가 아닌데
아.. 힘드네…
한반도에 사는사람들이 행복할수없는이유~~ 금투세도입한다고 자꾸 겁박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ㅋㅋㅋ
정신 차리세요. 금투세가 코스피 4천 가는 열쇠에요. 반드시 도입 해야합니다
@@fjord38ㅋㅋㅋㅋㅋ 미우친 ㅋㅋ
@@fjord38금투세가 코스피 4천으로 가는 열쇠는 ㅈㄹ 황천길로 가는 열쇠겠지
주식투자로 5천이상 버시나 봅니다 하지만 도입은 반대합니다 가뜩이나 국내주식 분위기도 좋지 않은데
문 열면 호랑이가 들어오는 동네
이렇게 비옥하지 못한 척박한 땅인데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곧죽어도
농산물은 신토불이~ 하면서 국산 좋아함 😅
단군은 터 잘잡았고 기름도 나옴.....후손들이 그땅을 뺏기고 아래로 내려와서 문제지....ㅎㅎㅎㅎ단군의 땅을 회복해야는데....
단군은 중국대륙에 살으라고 자리 잡았는데, 후손들이 쫒겨난거지.. ㅋㅋ
원래 땅은 북을 너머 북북북
아 이런!! 세상일을 한중일이 다 해주고 있었다니
단군 조선 시대의 기후는 지금과는 달랐다는 것을 간과하시네요.
그리고 낙랑국과 낙랑군도 혼동하시고.
기본적 역사의식은
일제 식민사관 인 듯.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에서 낙랑은 한사군의 낙랑군이 아니라 최씨낙랑국입니다 삼국유사에도 나오는걸로 압니다.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
고대사 공부는 좀 더 하시고 확정적으로 말씀하시는게 맞는거 같습니다
반도사관으로 왜곡된 지식을 바꿔야 합니다.
환웅이 안착한 터는 섬서성 태백산.
한사군이 한반도에 이쑈었다는 것 잘못
아는 것 같습니다. 교과서 역사지식정도인듯
좀 역사는 잘체카해주시기 바랍니다. 삼국사기만
제대로 보면 한반도만이 한국의 땅으로 이야기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사군 평양 서북한에 있던게 정설
사하라사막에 살아봐야
정신 차리지
중국에 흡수되지 않았는가하는데 우리 배달족은 고려카지 대륙 동부에 살았기. 때문이며 현 사학계는. 횡국사거ㅡㄴ에 따르는 강단사학으로 우리가 배운 역사는 모두 소설이딘
따라서 제대로 공부하고 역사를 논하시오
ㅋㅋㅋㅋㅋ우린 약먹은 개미!!!
아흐~ 작가라는 사람들 진짜 ㅠ.ㅠ
개재밌네 진쨬ㅋㅋㅋ 약먹은 개미 먼뎈ㅋㅋㅋㅋㅋㅋㅋㅋ
맞죠 대부분 대륙 동쪽 해안가가 삼국의 본류가 있었으니 ㅌㅌ 부동산 사기가 아니라 이사가서 본류를 버린 민족아닌가 ㅋㅋㅋ 이성계와 이방원이가 북쪽 간도까지 버렸지ㅋㅋ
홍대선 작가님, 제발 역사 공부 좀 하시고 다른 나라와 비교하세요.
미국이 최고의 땅이구요 나머지 나라는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단군은? 예수 같은 개념임.
세계 최초의 벼농사를 지은
곳이 한국 청주 '소로리'다!
기원전 16세기 볍씨가 발견 돼 세계학회에서 인정했는
데 척박했다고? 저런 책 읽
을 시간에 차라리 잠을 자세
요~ 제대로 한국사 배우려
는 사람은 이덕일 윤내현
복기대 이 분들이 쓴 책부
터 읽으시면 됩니다~
딴지일보 출신 ㅜㅜ
한마디로 잡초네요 ㅋㅋㅋ
환인 환웅 단군은 신화가 아닙니다, 홍대선 작가님도 일제 식민사관을 꿋꿋하게 믿고 설명하시는군요
서자라는 것이, 조선시대의 서얼의 서자 개념이 아니라 첫째아들 이외의 아들을 서자라고 표시했죠.
고조선 최초 세거지가 요서 그다음 요동 그다음 평양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