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영화 속의 학교, 1936년 미몽과 1940년 수업료, 컬러(Japan 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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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1 дек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437

  • @소나무-t6l
    @소나무-t6l 7 месяцев назад +68

    정말 귀한 자료네요... ^^ 이런 귀한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길-f5q
    @길-f5q 7 месяцев назад +42

    어머니가 36년생 서울분이신데 그 당시 서울 말씨나 단어를 아직도 쓰신다는 걸 안게 신기하네요~^^ 어려워도 참 정넘치는 모습 그립습니다~

  • @뜨로이
    @뜨로이 7 месяцев назад +82

    일제 강점기 때 사셨던 분들한테 일본인에 관해 물어보면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말씀에 매우 의아했습니다. 아닐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분은 기관사를 하셨던 분인데 직장에서 차별에 관해 물어보았는데 후임 때는 일본인 선임한테 많이 맞았는데 선임되어서 일본인 후임들을 군기도 잡고 많이 때렸다는 말에 매우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일본인을 때릴 수 있다고 믿어야 하나 그 당시는 맞으면서 배우는 시절이라고 하셨고 기관사만큼은 일본인 조선인 차별은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시절 사신 많은 평범하신 분들은 보통의 일본인에 대해서 나쁜 감정이 없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물론 일본의 군국주의는 마땅히 비판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시절을 겪어 보지도 않고 본인의 생각만으로 일본인을 판단하고 미워하지 맙시다.

    • @laughatloo3212
      @laughatloo3212 7 месяцев назад +7

      저희 할아버지는 일본 군대에서 일본인 선임한테 맞다가 후임이 오기도 전에 일본이 패망해서 일본에 대한 감정이 안좋아요

    • @eokim2186
      @eokim2186 7 месяцев назад +31

      시어머니는 일본에서 태어난 조선인입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일본인 친구와 같이 아사히카세이라는 대기업 입사시험을 봤는데 친구는 떨어지고 시어머니만 합격해서 결혼할 때까지
      5년간 일했다고 하네요. 조선인, 일본인 차별은 지금도 그 당시에도 없었고, 능력주의인 것 같아요. 일본인이건 조선인이건 열심히 살지 않고 능력없으면 지금과 같이 자격지심 속에 살아야 되는 건 마찬가지였던 것 같네요. 아, 시고모부도 조선인이지만 오사카 신사록에 등재돼 있습니다. 시아버지 형님은 시모노세키에서 료칸을 경영했었고 선주이기도 했지요. 저도 한국에서 차별받는 조선인만 나오는 역사공부했지만 일본에서 살다보니 대체 차별이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 @해도리-b2x
      @해도리-b2x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eokim2186 한국은 정치적 목적으로 일본에 대한 왜곡된 역사를 가르쳐 온지가 40년도 안됐음
      민주 정권 들어오고 나서부터 일본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조선이 무조건 피해자 인것 마냥 역사 왜곡을 했습니다. 사실 누구보다 일제에 동조 했던게 조선인들 이였고
      식민지중 에서 어느 나라 보다 자국민 처럼 일본이 대우 해주었던게 조선인 이였는데 말이죠. 식민지를 거느렸던 다른 나라들은 절대로 식민지들을 조선같이 대우 안했습니다.
      이게 역사적 팩트예요. 그래서 일제를 살았던 분들에게서 의외 의 대답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 @cocochanel6094
      @cocochanel6094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친일파는 잘 살았는지 모르지만 일반사람들은 군대 끌려가고 강제징용당하고 위안부 속아 끌려간사람 많다
      할머니 한테 들은 얘기는 식민지시절 일본인이 집에 쌀이고 놋그릇이고 할꺼 없이 다 뺏아가서 먹을것이 없었다고 한다
      나무의 풀뿌리나 뽑아서 연명하던게 한국 조상님들 일본에 한이 맺혀있음
      괜히 왜구라고 하는게 아님

    • @cocochanel6094
      @cocochanel6094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친일파는 잘 살았는지 모르지만 일반사람들은 군대 끌려가고 강제징용당하고 위안부 속아 끌려간사람 많다
      할머니 한테 들은 얘기는 식민지시절 일본인이 집에 쌀이고 놋그릇이고 할꺼 없이 다 뺏아가서 먹을것이 없었다고 한다
      나무의 풀뿌리나 뽑아서 연명하던게 한국 조상님들 일본에 한이 맺혀있음
      괜히 왜구라고 하는게 아님

  • @nao-shi
    @nao-shi 7 месяцев назад +46

    興味深い映像を有難うございました。

  • @jsm9252
    @jsm9252 7 месяцев назад +37

    오래전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1920년생)와 할머니(1925년생)도 일제강점기 어린시절 학교다녔을 당시 저런 풍경이었겠구나 싶네요. 물론 저 당시는 지금처럼 의무교육이 아니어서 학교다니는 아이들이 드물었다고 합니다

    • @jalopy2005
      @jalopy2005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일제강점기”는 80년대 주사파빨갱이들이 만들어 사용하기시작한 용어입니다.

  • @쿠드로
    @쿠드로 2 месяца назад +46

    미스터션샤인은 드라마라도 믿으면서 이건 영화라고 부정하는 클라스 ㅋㅋㅋㅋ

    • @air5210
      @air5210 Месяц назад +1

      드라마에서... 노비출신인 이병헌이..양반 아씨에게...조선이 내 나라가 맞냐고...묻죠. 노비의 조선에서의 정체성은 사람 아닌 가축이였는데.. 조선 백성이라고 할 수 없었던 겁니다.

  • @유동규-i5w
    @유동규-i5w 7 месяцев назад +51

    일제강점기나 해방후 교사의 권위가 상당했죠. 실제로 박정희나 김대중이 일제강점기때 배웠던 일본인 선생님을 찾아가 만났습니다.
    지금도 교사의 권위가 낮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당시의 교사는 최고 엘리트가 하는 직업이었죠.

    • @-markshin-
      @-markshin- 3 месяца назад +4

      조선시대에 훈장도 똑같았음. 그냥 시대가 그런 시대임

    • @KGJ-user
      @KGJ-user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실제로 해방이후 학생들에게 잘해주었던 일본인 교사들은 안전하게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학생들을 자주 때리던 교사들은 모두 맞아죽었다고 함

    • @-markshin-
      @-markshin- 3 месяца назад

      @@KGJ-user ㅋㅋㅋㅋ 구당사도 죽우면 뉴스나옴. 어디서 갸소리를... 역사 사기범죄 일본의 32배 거짓민국이네

    • @-markshin-
      @-markshin- 3 месяца назад

      @@KGJ-user 근거없는 사기민국 거짓말

    • @영식의슨마일
      @영식의슨마일 2 месяца назад

      김대중이에 박정희를 뭍히넼 센세 와타다시 도요타다이쥬데스

  • @yjsong5742
    @yjsong5742 7 месяцев назад +51

    과거 정치인 경제인들이 초로의 나이에 접어들어 일제시대 자신들을 가르쳐주신 일본인 선생님을 만나뵙고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하는 모습이 이해됩니다..

  • @댕댕이냥이-q1n
    @댕댕이냥이-q1n 7 месяцев назад +55

    조선어,일어 같이 쓰는게 놀랍네요

  • @keito-bf7mf
    @keito-bf7mf 7 месяцев назад +38

    백년역사CH는 왜 이렇게 가슴에 울리는 사료를 보여 주시는 거죠.

  • @김남훈-v7i
    @김남훈-v7i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02

    노태우대통령도 대통령에 당선되자 국민학교 담임선생님이던 일본인교사를 찾아서 청와대에서 상봉했습니다.
    그리고 김대중대통령도 일본에 가서 센세 도요다데스 하면서 재회했습니다.
    그리고 김영삼대통령도 교장선생님의 가족을 일본에서 만나서 감사함을 표했습닏다.
    사제지간에 국적이 무슨상관입니까?
    얼마나 그리워했겠습니까?

    • @bazimaster595
      @bazimaster595 7 месяцев назад +41

      전국민이 의무교육 받게된게 일제시대부터. 그전에는 교육은 기득권의 전유물이었으며 일반국민들은 글도 몰랐음.
      간혹 글모르는 노인들이 나이들어 한글배운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조선왕조가 존속했더라면 그게 일반적인 경우가 되었을거임

    • @PrettyT-rex
      @PrettyT-rex 7 месяцев назад +9

      @@bazimaster595 헛소리 근대교육은 대한제국부터 시작. 일제가 아니었어도 전국으로 확대될 예정이었음.

    • @821marcello
      @821marcello 7 месяцев назад +56

      @@PrettyT-rex
      알고 계십니까?
      대한제국 시대에 전국민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국민학교를 건설하는 것을 추진한 것은 이토 히로부미입니다. 그러나 양반들이 노예에게는 교육은 필요 없다고 하고, 학교 건설을 저지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을 알게 된 이토는 분노하고 대한제국 정부에 학교 건설을 조속히 추진하도록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 @eokim2186
      @eokim2186 7 месяцев назад +41

      @@821marcello알 턱도 없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무지성 반일을 해야하거든요

    • @안원태-y6t
      @안원태-y6t 7 месяцев назад

      그런데 지금은 일본과 전쟁을하고싶어하는 한국 정치 좌파세력이 있으니...

  • @greenfig-tube88
    @greenfig-tube88 7 месяцев назад +29

    この「授業料」という映画のモノクロフルバージョンを観ました。
    今の映画のような派手さはありませんが、心に沁みる映画でした。
    日本も昔はこのようないい映画が沢山ありました。
    この映画と同じ学校の先生と子供をテーマにした「二十四の瞳」というのがあります。

  • @sangkim7504
    @sangkim7504 7 месяцев назад +59

    우리 할머니는 학교 보내달라고 방문 닫고 단식투쟁 하셨습니다

    • @곽인호-d3v
      @곽인호-d3v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그레서 학교 가셨나요?

    • @sangkim7504
      @sangkim7504 7 месяцев назад +6

      @@곽인호-d3v 가셨습니다

    • @eternalkoch
      @eternalkoch 7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음,그 정도 강단은 있어야 될 듯요.😊

    • @유동규-i5w
      @유동규-i5w 7 месяцев назад +2

      1930년생인 우리 할머니는 지금도 소학교 나오신걸 자랑하세요. 고학년 되서는 학교에서 조선말 쓰면 사용권 같은걸 하나씩 교사가 뺏었다고 하네요.

    • @Mukmuks
      @Mukmuks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유동규-i5w 영어유치원에서 한국말 못하게 하는것과 같은 목적이라고 생각됩니다. ㅎㅎ

  • @821marcello
    @821marcello 7 месяцев назад +52

    모든 국민에 대한 교육은 민주주의에 대한 첫걸음입니다.

    • @shibato4733
      @shibato4733 7 месяцев назад +5

      자유시장경제 민주주의입니다 . 중공의 인민민주주의,북한의 인민민주주의도 홍콩의 민주주의 저거들도 민주주의라고합니다
      한국에서도 지역의 억압이 억누르고 있고 이것을 말하지않습니다
      투표율과 득표율이 인민민주의하는 나라가 기겁할 정도입니다 정상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통일보다 더 시급하고 큰문제입니다 사람들이 지역에 억눌린 상태인데 억눌린것을 그지역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하고있습니다
      나머지는 쉬쉬하고 있습니다 억눌린것이 눌린상태로 내려앉을것인지 아니면 튕겨져 나갈것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상황을 말을 하는 사람이 극소수입니다
      그러나 선거결과 데이터는 말하고 있습니다 양심있는 학자여 ,기자여 눈이 없는가 ? 머리가 없는가? 아니면 양심이 없는가?

  • @tkdvPehoska
    @tkdvPehoska 5 месяцев назад +8

    수업료 영화 유투브로 봤는데 음질이 좋지 않아 중간중간 잘 안들렸는데 자막 제공 감사합니다

  • @베라츨
    @베라츨 7 месяцев назад +50

    이런거 너무 좋아요

  • @gupalsam1
    @gupalsam1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6

    울 아버지 4살때군.... 저 영상속 사람들 대부분 돌아가셨을 듯

  • @PoohJinping
    @PoohJinping 3 месяца назад +21

    저희 할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씀 그대로 입니다. 일본인 선생님들 한 분 한 분 모두 친절 하셨고 혼신의 힘을 다해서 학생들 가르쳤다고 들었습니다. 정치인들 거짓말 때문에 반일 사상이 커지니 마음이 아픕니다.

    • @READ0630
      @READ0630 2 месяца назад +2

      해방 후에 이승만 정부부터 시작해 국민들 모두가 반일감정에 불타던 것은 뭐임? 신익희가 일본이랑 수교하자고 했다가 이승만으로부터 새로운 친일파라고 크게 비난 받았을 정도로 해방 정국부터 시작해 이승만 정부 내내 반일감정이 매우 심했고, 박정희 정부에서도 반일감정이 전국민적으로 너무 심해서 박정희 정부도 반일교육은 계속하면서도 일본 문화 수입조차 못해서 몰래 일본 영화를 따로 들여와서 봐야했다.

    • @user-RINACHICHII
      @user-RINACHICHII 2 месяца назад

      @@READ0630 그 때는 친일파 숙청 및 지주 처단이 우선이여서 자신이 친일파임을 숨겼어야 했고 그 일제 패망한 후에 활동했던 핵심 독립운동가들이 기득권자였음. 그리고 + 일본의 태평양 전쟁에 의해 조선인 일본인 구분하지 않고 강제 징집 카미카제 731부대 등 전쟁범죄도 한 몫해서 그 때 반일이 터질 수도 있지. 지금도 한국남자들이 한국의 징병제 보고 일본의 강제 징병이랑 다를게 없다고 반감 갖는 사람 많잖아. 그거랑 똑같음 ㅉ

  • @intelamd3076
    @intelamd3076 2 месяца назад +3

    36년에 저렇게 깔끔한 옷을 입고 있다는게 믿기지 않네요..1960년대나 1970년대 옷보다 더 세련된 것 같은데요...충격이네요..

  • @김선생-d5i
    @김선생-d5i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8

    정말 귀한자료 봅니다 감사합니다

  • @jameslee-xv3yk
    @jameslee-xv3yk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4

    구독 좋아요 알림 신청했네요. 이런영상 정말 좋습니다.

  • @charlesgoh-y7o
    @charlesgoh-y7o 7 месяцев назад +94

    영화속 일본인 선생이 참 스승이네요.

    • @kmlee8211
      @kmlee8211 7 месяцев назад +7

      일본인 아니고 조선인.

    • @캡틴배CaptainBae
      @캡틴배CaptainBae 7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일본인 선생이요?
      우리말 잘하는데

    • @_NakTa
      @_NakTa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0

      일본인 교사임. 주인공 친구 누나와의 로맨스도 나옴.

    • @sanmicheal6754
      @sanmicheal6754 6 месяцев назад +5

      왜구 선생님이라고 꼭 차별하고 못된분들만 계신게 아닙니다

    • @tkdvPehoska
      @tkdvPehoska 5 месяцев назад +5

      ​@@캡틴배CaptainBae 실제로 선생님이 조선인인데 영화에서 일본인으로 나왔어요

  • @룰루랄라-m2f8s
    @룰루랄라-m2f8s 4 месяца назад +38

    난 친일파도 반일파도 아니다. 조선은 과연 조선백성들을 위해 한 것이 무엇인가?
    일본을 욕하기 전에 조선은 무엇을 했나?

    • @같이보기-f4j
      @같이보기-f4j 3 месяца назад +1

      그냥 자멸하기 직전의 왕조 국가였죠. 백성보다 자신들의 안위만을 먼저 걱정한 조선 왕조.

    • @심남종
      @심남종 Месяц назад

      그것도 모리나?? 조선왕조가 500년간 백성한테 한짓은 오직 '착취.수탈'

  • @밝은전망-o2o
    @밝은전망-o2o 7 месяцев назад +50

    일제시대때 일본인한테 교육받고 일본식 사관학교 들어갔다고 해서 친일파라고 매도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변변한 교육시설이 없는데서 드럽지만 교육을 받아야 내가 깨어야 한다는 걸 알지 않습니까? 권토중래하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 드럽고 치사하지만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참고 이겨내야 하는게 진정한 인간입니다. 그 다음 선택은 본인의 몫이지요.

    • @박스베타-p2f
      @박스베타-p2f 2 месяца назад

      사관학교에 들어간것도 잘못이지만 앞장서서 혈서쓰고 독립군 토벌한 넘은 친일파중에도 쳐죽여야할 친일파지요. 뭐 나중에 여자끼고 술쳐먹다 부하 총에 디졌지만.

  • @andrewnathan629
    @andrewnathan629 7 месяцев назад +53

    1930년이후면 문화통치 시대네요. 이 때는 조선인에 대한 통제가 없었고 조선인은 조선인 자율대로 살도록 놔뒀습니다.
    한일 합병하고 10년까지는 무력으로 진압했는데 생각보다 반발이 심해서 이후 문화통치로 바뀌었죠. 그래서 저렇게 자신이 쓰는 언어가 조선어면 조선어 교실 그리고 일본어면 일본어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마지막으로 거리에 순사들이 칼을 차고 통제하던 시절은 일제 통합 초기인 1910년부터 1920년까지만 그랬습니다. 이후 문화통치로 선생들도 전부 양복입고 수업을 했죠.
    할아버지께서 이야기해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지금 96세로 일제시대를 겪으신 세대입니다. 생각보다 일반인은 자유롭고 통치만 일본이 하는 식이었습니다. 3.1운동이 1919년이 일어났는데 이 운동을 바탕으로 일본의 통치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1920년이후부터는 독립운동가들은 국내가 아닌 국외로 주로 활동했습니다. 이유가 생각보다 국내에서 활동은 조선인들 사이에서도 반발이 심했었죠. 과거와는 달리 큰 호응을 못얻은 것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1920년이후부터는 조선인도 꽤 잘살았거든요.

    • @drmengtang
      @drmengtang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3

      일제 초기의 헌병경찰도 실은 일본 내지에서 불량배들이 하도 많이 건너와가지고 그놈들을 때려잡을라고 그랬던 거였어요.. 실제로 검거 건수를 보면 그러합니다.

    • @jokuro111
      @jokuro111 7 месяцев назад

      나의 조부 1903년생 나의 부친 1923년생 조부는 사시장철 한여름 남양군도로 징용 끌려가시고 부친은 오뉴월에도 산에는 눈이 쌓여 있다는 지시마(캄차카반도 아래 쿠릴열도)로 징용 끌려 갔다 오셨습니다.
      당시 조모는 남편과 아들 둘을 동시에 징용 보내고 어린 아이들과 힘들게 농사일 하셨다 하셨습니다.
      추수철에는 공출이라고 곡식을 몽땅 몰수 해갔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지급받는 배급으로 초근목피로 살아 오셨다고 왜놈 세상을 원망하셨던걸 어릴때 들었습니다.
      내가 어릴때 일제시대를 겪었던 어르신들 어느 누구도 살기 좋았다고 한 사람 못 봤습니다.
      어쩌면 님의 조상들은 친일파라 왜정시대를 따뜻하게 보냈나 봄니다.

    • @시키원피스
      @시키원피스 7 месяцев назад +3

      헛소리 주절주절 써놓으셨네요.
      쪽팔립니다. 내면의 분노는 조선인의모습 그대로인데 모든것이 일본으로 도배된사람인것같이 보여요.
      무력진압요? 그때당시 조선인들상황 모르세요?

    • @cocochanel6094
      @cocochanel6094 7 месяцев назад +5

      영화라 많이 각색되있음
      식민지 시절이잖아
      애들 각잡고 있는거봐라
      실제 사진보면 칼차고있는 선생도 있다
      조선시대 학생보다 더힘들어보인다

    • @김예슬-m1i
      @김예슬-m1i 4 месяца назад +1

      네 그래서 저희 할아버지는 국외에서 강제 징용 끌려가셨다네요. 일본어를 굉장히 잘 하셨어요. 전 부산 사람이고 강제징용, 위안부 경상도 사람들 제일 많이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국외는 생체실험, 징용, 위안부고 국내는 헌법,군권, 세금, 경제권, 토지권 박탈이였습니다. 너무 미화하지 마세요.

  • @맑은가을-p4y
    @맑은가을-p4y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8

    긍정할 것은 긍정하고....

  • @user-zn7nq998
    @user-zn7nq998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07

    그냥 자연스러운 과정이지요... 일본을 악마화시켜 무슨 이득을 볼려고 하는지... 있는 그대로 가르치고 반성하는게 정석이 아닌가....
    일제 시대때 교육 받은 사람이 현대인(문명인)으로 개화되었고,,,, 그 분들이 이승만, 박정희시대에 조국을 위해 열심히 일해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그 당시 정책결정자들 찾아 보시면 모두 다 일제시대 교육을 잘 받은 사람입니다.
    수학분야로 한정하면 세계적인 수학자 이임학교수, 권경환교수, 이정림교수, 임덕상 교수님등 이분들은 일제시대 교육을 바탕으로
    명성을 얻은 분이십니다. 서당에서 공자왈 맹자왈 하다가 갑자기 듣지도 못한 수학을 어찌 합니까
    조선이 망한건 왕조가 운명을 다한거고 조선왕조의 책임이지
    일본을 원망하거나 악마화해서 득이 될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 @피부는민둥산
      @피부는민둥산 7 месяцев назад +9

      일제치하에서 말단으로나마 먹고살려고 배우고 하다 해방되서 그랬던거지 괜시리 포장은 ㅋㅋㅋ

    • @sbngchl
      @sbngchl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7

      ​@@피부는민둥산 윗분 말이 맞아

    • @juneric5926
      @juneric5926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맞습니다. 그런데 제생각에는 이승만이 일제를 악마화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승만은 이씨 왕족으로써 조선시대때 미국에가서 미국에서만 수십년을 살며 일제에 적대심을 갖고살았겠죠. 실제 조선의 백성들이 어떻게 문명인의 삶을 살게됐는지 어떤 혜택을 받고 살았는지 전혀 몰랐을꺼에요. 오로지 이승만은 조선독립 이런생각만 하고 살았을꺼에요. 1900년대초 사상을 1950년대에 주입시킨거죠. 박정희는 일제시대를 겪어본 사람으로써 반일감정을 이용하는건 좋지않다고 생각했겠지만 이미 십여년동안 이승만이 반일감정을 이용하여 정치를 했으니 그걸 그대로 받아들였을테고...그러다가 지금의 한국인들이 이런 모순속에 빠진거라고 생각합니다.

    • @a01022997074
      @a01022997074 7 месяцев назад

      @@juneric5926아예 이승만대통령 가지고 거짓 양비론펼치고있네

    • @eokim2186
      @eokim2186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2

      그러게요… 일제시대 때 교육받은 사람들 다 죽고 없어지니 점점 더 부패한 정치가만 배출되고…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7 месяцев назад +31

    고 김수환 추기경님이 저런 교실에서 수업을 했고
    장면 전 총리가
    저런 교실에서 김수환 추기경님을 가르치셨습니다.

    • @eugenelee6083
      @eugenelee6083 7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노기문주교님도 그렇겠조?

  • @bkazz4942
    @bkazz4942 7 месяцев назад +34

    This was before communism come in Korea.

  • @afistfulofdollars-ue8rq
    @afistfulofdollars-ue8rq 7 месяцев назад +37

    40년대나 내학창시절 60년대나 별차이없어 보입니다.

    • @댕댕이냥이-q1n
      @댕댕이냥이-q1n 7 месяцев назад +7

      제가 국딩이던 80년대 하고도 별 다를바가 없어보이네요

    • @이병욱-x7p
      @이병욱-x7p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외려 애들 드잡이 하던건 8090년대가 정점이었던게 정설이죠

  • @신현민-q5m
    @신현민-q5m 2 месяца назад +1

    분위기 정말 좋다..좋은 시대였던것 같아..정서적으로 참 좋네..

    • @READ0630
      @READ0630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조선인 86.6%가 국민학교도 못가고 조선인 64%가 소작농으로 착취당하며 조선시대보다 소작지도 적고 쌀 소비량도 적어질 정도로 심각. 대부분 일본 통계로 확인되는 사실. 특히 86.6%가 국민학교 못가본 것은 1944년 조선총독부 통계로 확인됨. 문맹률도 1930년 조선총독부 통계로 일제강점기 때 문맹률이 증가하고 조선 말기와 구한 시기에 문맹률이 66.7%로 줄어들면서 자체적으로 점점 낮아지기 시작하던 것과 달리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다시 올라가기 시작해서 미군정이 1945년에 확인해보니 78%가 문맹. 그리고 미군정 시기 3년후, 대한민국 정부수립 당시 문맹률은 41%까지 떨어져있었음.
      참 좋은 시대죠? 그래서 해방 후에 신탁통치 오보사건을 통해 신탁통치 이야기를 들은 전국 여론이 이를 또 다시 외세가 지배하는 것이라 취급해(실제는 다르지만 당시에 대부분 이렇게 취급) "외세가 다시 지배해선 안 돼!"라고 분노해서 신탁통치를 찬성하는 공산당들을 향한 분노가 쏟아졌었죠?

  • @캡틴배CaptainBae
    @캡틴배CaptainBae 7 месяцев назад +8

    0:35 '병신'이라는 용어가 저때만해도 비속어는 아니었나 보네
    잼민이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말 꺼냄ㅋㅋㅋ
    걍 불구나 장애 같은 뜻으로 통했던듯

    • @_NakTa
      @_NakTa 7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일제잔재라면 눈이 뒤집히면서 순한국말 쓰면 비속어로 생각하고 일본식 한자어 쓰면 젊잔은걸로 아는 신기한 나라죠 ㅋㅋㅋㅋㅋㅋ

  • @iremin4703
    @iremin4703 3 месяца назад +6

    혼란스럽다 이걸 아떻게 봐야하나 일본인선생님이 너무 착하다 내가 배운거랑 틀리잖아

    • @Abcfghi-q7j
      @Abcfghi-q7j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저건 영화니깐 그렇지ㅋㅋㅋㅋ

    • @user-RINACHICHII
      @user-RINACHICHII 2 месяца назад +3

      @@Abcfghi-q7j그러기에는 김대중, 김영삼, 노태우 대통령들도 다 국민학교 시절 일본인 담임선생한테 뵙는데 뭘 부정해. 김대중은 직접 일본가서 찾아가고. 노태우는 그 일본인 선생님을 청와대에 초청을 했고 김영삼은 감사 편지 보냄

  • @user-ye5cz6sp2h
    @user-ye5cz6sp2h 7 месяцев назад +32

    조선시대보다 평화로워보인다
    일본이 우리를 점령해서 기반을 깔아 줬기에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거다 오히려 일본에 감사해야 한다

    • @830-s2z
      @830-s2z 3 месяца назад +3

      맞아요 .. 미국이 자금을 줬다면 일본은 자금+기술을 알려줘서 지금의 우리가 있었습니다.. 옆나라에 선진국 일본이 있었다는건 산업화 하려는 우리에겐 엄청난 행운이였죠 ..

    • @아칼리버프좀-x9v
      @아칼리버프좀-x9v 3 месяца назад

      무슨 ㅂ신같은 소리야.... 일본이 기반을 깔아준 것들 중 써먹을만한 공장 시설은 죄다 북에 있었고 그 마저도 625때 시설 기반이 다 파괴되어서 말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황폐화 된 땅이였는데
      미국과 세계의 원조랑 박정희의 한 수 덕분에 성장하고 그 기반으로 선진국이 된거지

  • @水明-i5i
    @水明-i5i 7 месяцев назад +32

    授業料を取り上げてくださって感謝します。
    映画では日本語の翻訳字幕がなく、視聴者たちが日本語の意味をつかめていないようでした。
    特に教師が友情箱の意味、先生たちや子どもたちの善意について語っている部分を理解てきているのか、疑問で残念でした。
    当時の日本人教師の人格を知ってもらえてうれしいです。
    栄達くんの役者さんはその後のwarで亡くなったそうですね。😢

    • @centuryhistory
      @centuryhistory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2

      영달이 역할의 배우를 말씀하시는건가요? 그 역할을 맡으셨던 정찬조씨는 한국전쟁에서 돌아가시지 않고 서울대학교 독문과를 졸업(1953년)하신 뒤 1960년에 시집을 펴내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기사의 링크를 첨부합니다.
      www.snua.or.kr/magazine?md=v&seqidx=9453

    • @水明-i5i
      @水明-i5i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2

      @@centuryhistory さん
      私の記憶違いだったようですね。
      2018年ごろ初めて見て感動した映画です。
      その頃、何かで栄達役の方がwarに巻き込まれて亡くなった、と読み、悲しく思ったのですが、今探してもその記事は見つかりません。
      母親役の文芸峰は北に渡ったんですね。
      栄達だけが貧しかったのではありません。日本も、特に当時の東北地方は、栄達のようにとても貧しかったのです。
      항상 수고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 @hjnmylove
      @hjnmylove 7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이 "수업료" 영화 전체를 RUclips에서 볼수가 있어요. 거기에 방한준 감독님의 손녀가 되신다는 분이 "할아버지는 육이오때 포로로 끌러가시다 돌아가셨다는 기록만 있고..." 이런 글을 남기고 계십니다.
      정보가 엇갈렸는지도 모르겠네요.

    • @水明-i5i
      @水明-i5i 7 месяцев назад +5

      ​@@hjnmylove さん
      감사합니다.
      저도 RUclips로 "수업료" 를 보았습니다.
      pure water…christian 입니까?living water…
      私は、韓国の教師は스파르타 교육で怖い、という印象を持っています。
      私に韓国人の知人がいますが、彼は小学生の時に貧しくて、やはり学校に授業料を持っていけなかったそうです。ある日、そのことで教師にひどく怒られました。校庭の木のそばで泣いていたとき、イエスさまが現れて彼を慰めてくれた、と私に話してくれました。
      日本では、学校にお金を持ってこられない生徒がいても、教師が怒ることはありません。
      「授業料」の中の日本人教師も、栄達を励ましました。韓国の할아버지,할머니들も、「日本人(教師)は優しかった」と証言する人が多いです。(윤서인님의 RUclips ''할머니가 들려준 그 시절의 진실" 댓글들)
      これが日本人のmindです。

    • @hjnmylove
      @hjnmylove 7 месяцев назад

      네. 잘 알고있습니다.
      먼 옛날부터 이어진 大和魂이죠.

  • @칼포퍼-j4p
    @칼포퍼-j4p 3 месяца назад +7

    나라는 빼앗겼지만 일반 백성들은 악독한 양반들에게서 해방되었고 직업을 구하거나 글을 배울 수 있는 권리를 가졌으니 비난만 할 시절이 아님

    • @yoshitsune1184
      @yoshitsune1184 3 месяца назад +1

      노비 해방은 구한 말이야. 일제시대가 아니고. 악독한 양반이라는거는 이미 구한 말 때 갑오개혁으로 사라졌어.

    • @칼포퍼-j4p
      @칼포퍼-j4p 3 месяца назад

      @@yoshitsune1184 구한 말 때도 노비는 존재했어 일본이 양반들에게 강제해서 실제로 없어진거다 좆선시대에 상식적으로 가능했겠냐 ㅋㅋ

    • @칼포퍼-j4p
      @칼포퍼-j4p 3 месяца назад

      @@yoshitsune1184 독립군들이 왜 전부 양반이거나 그 식객들인줄 아냐 머슴들이 양반처럼 사는 게 울화통이 터져서야 그래서 유명한 독립군들은 대다수가 양반이 많은 경상도 평양쪽이었고 노비가 많은 전라도는 없는거야

    • @yoshitsune1184
      @yoshitsune1184 3 месяца назад

      @@칼포퍼-j4p ? 김구 유관순 김원봉이 양반이냐? 정신 차려

    • @칼포퍼-j4p
      @칼포퍼-j4p 3 месяца назад +1

      @@yoshitsune1184 유관순은 꼭두각시였고 김구나 김원봉은 당시 신분상 중인이었음

  • @kschoi7337
    @kschoi7337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월사금, 수업료가 1970년대까지도 초등학교, 국민학교 시절에 남아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시골학교 국민학교에서 매월 수업료를 받아갔습니다. 지금
    그런 것이 기억나네요.

  • @asupomkim4928
    @asupomkim4928 4 месяца назад +10

    1936년 일제시대의 GDP가 한국의 60년대 GDP보다 높습니다.
    근 30년간 GDP가 정체 혹은 역성장함. 전쟁과 사회혼란으로 역성장햇는데
    대부분의 식민지가 해방후에 역성장을 겪었는데 한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 @Mukmuks
      @Mukmuks 3 месяца назад +2

      일단 공업단지가 전부 북한에 있었고, 남한에는 논밭밖에 없었는데 그나마 있던거 625때 다 박살났죠. 젊은이들도 많이 죽고. 진짜 그 폐허에서 일어난 우리 조상님들이 정말 위대하신것 같습니다.

    • @jimchoi8750
      @jimchoi8750 3 месяца назад

      바로 이런 이유로, 즉, 일제시대를 그리워하는 한국인들을 막으려고
      이승만, 박정희가 반일교육을 시작했지요....-ㅠㅠ

    • @박스베타-p2f
      @박스베타-p2f 2 месяца назад

      국사편찬위원회가 3∼7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이 편지는 “내가 죽은 뒤 나의 아들 김명진에게 전해 주시오”라는 전언으로 시작한다.
      이 서신은 “네가 왜놈의 병정으로 뽑혀 간 그 이튿날부터 순사와 면서기 놈들은 날마다 우리 집에 와서 쌀을 뒤져서 빼앗아 가고, 배급은 눈곱만큼 주기 때문에 집안 식구는 굶어 죽었다”라고 당시 일제의 가혹한 수탈 상황을 고발했다.
      이 서신은 “너의 아버지와 어린 동생 세 사람은 모두 굶어죽었다”며 “나는 너의 아버지를 따라가겠다”고 적혀 있어 필자가 자결을 앞두고 쓴 절명기(絶命記)임을 밝히고 있다.
      이 서신은 이어 “너는 왜놈들의 군대에 있는 동안 온갖 방법을 다해 왜놈의 대포와 탱크, 비행기를 비밀리에 파괴하고 못쓰게 만들어라”며 “더 있지 못할 경우 왜놈의 장관을 죽이고 중요한 문서를 훔쳐 가지고 우리 독립군이나 (동)맹군대로 달아나 힘을 합쳐 원수 왜놈과 끝까지 싸워라”고 거듭 복수를 당부하고 있다.
      이 편지는 “꼭 원수 갚아라. 원수는 왜놈이다. 사월 십일. 어/미 그림”이라고 글을 맺었는데 1945년 4월 광복군의 ‘일본군내 한인 투쟁지침 전단’과 함께 발견된 점에 비춰 비슷한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gdp가 높아서 굶어 죽었군요..

  • @Dude459
    @Dude459 7 месяцев назад +32

    친일파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해방후 사회지도층이나 요직에 필요할수 밖에 없었던게 그당시 전문직들의 인재들이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김구처럼 최종학력이 서당이었던 사람들을 국가요직에 앉힐수는 없었으니까 요

    • @bazimaster595
      @bazimaster595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0

      심지어 영어도 못했음

    • @parmenideskim9739
      @parmenideskim9739 7 месяцев назад +3

      학력이 미천했던 다나까 수상이 그랬지. "나는 학벌은 없지만 학력은 있다!". 김구 선생님과 이승만, 둘 중 누가 더 학력이 높을까? 서울법대 나온 윤석열이 3줄짜리 메모를 못 외워 3번이나 봐가며 방명록을 작성하던데 학벌과 학력은 같지 않다.

    • @Dude459
      @Dude459 7 месяцев назад +2

      @@parmenideskim9739 조선이 왜 도태되며 망했는지 돌아봐라. 김구같은 것들이 요직을 움켜쥐고 그런것들을 주인으로 바라보는 저능아들로 나라가 꽉차있으니 망하는건 순리겠지.

    • @cocochanel6094
      @cocochanel6094 7 месяцев назад +2

      @@bazimaster595석렬이도 못함

    • @youngpak8662
      @youngpak8662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4

      @@parmenideskim9739 세상에 김구와 이승만의 학력과 학벌을 비교하다니... 이승만은 영어 사전도 없던 시절, 영양 실조에 시달려가며 유학 생활을 통해 프린스턴대에서 동양 최초의 박사가 되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미국인들에게 한국을 알렸어요.
      5년여의 유학 기간 중 140여회에 걸쳐서 강연을 한 사람의 지력을 김구보다 못하다는 식으로깍아 내릴 수가 있나.

  • @ПавелЛии
    @ПавелЛии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2

    МГУ에서 조선반도의 근대역사를 연구하는 노서아製 고려사람이올시다.
    연구차 남한과 이북을 오가며 이런저런 자료들을 탐독하건데,
    근대역사 중 일제시대가 참으로 독특했던 것이, 당시 산골오지에도 공립학교가 들어섰다는 점이외다.
    물론 단순하게 본다하면 일본제국의 황민화 정책에 따른 교육인프라 정도일 뿐이겠으나, 사실 인구 및 생산성과 소득수준이 낮은 지역에서의 그런 시설은 총독부청 입장에서는 결코 비효율적이었는데 말이외다.
    심지어 경성부 고가네마치의 사범학교를 나온 수준높은 교사들을 파견하면서까지라니, 식민지 조선을 연구하는 본인으로서는 도통 이해가 가지를 않더이다.
    심지어 1943년도 상반기까지는 필수학습과정에 조선어 수업도 곁들여 있었소만.
    더구나 경성부 효자정에는 조선역사 최초의 장애학생 전문교육기관까지 총독부청에서 직접 관리하여 그 역사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소이다.
    다른 여타 식민지들의 역사를 들여다보아도 이처럼 구석구석 교육기관을 세워 식민지민들을 깨우쳤던 경우는 全無하다시피.
    기실 노예들이 지식을 쌓게끔 가만히 내버려 둔, 아니 외려 많은 근대지식과 기술들을 적극적으로 전수하려고 발악했던 제국열강은 유일하게 저 일본 단 하나뿐이었다는 사실이오만.
    여담으로 조선에 있던 경성공립농업학교와 경성고등공업학교는 내지를 넘어, 당대 아시아 최고학부로 이름을 날렸소이다.
    그런 점들이 도대체 어째서였던건지, 지금은 그 부분을 집중해서 들여다보고 있으메.
    당시로써 일반적이지않은 그 이율배반적인 식민지 교육정책은 실로 독특하다라고 볼 수 밖에.
    교육뿐이 아니라 의료, 교통, 행정, 법치, 수도, 치안, 환경보건, 금융, 농업, 수산업, 과학기술 등등 모든 부문에서...
    모든 것을 종합해서 살펴보건데, 짐작가는 심증은 당시 일본은 조선을 앞으로도 영원히 영유하려는 심산이지 않았을까 싶소이다만은.
    당시 일본의 위정자들이 공식적으로 꺼내놓고 말은 안했지만.
    본인들이 조선반도에서 넘어온 도래인들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광범위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메. (대표적으로 東條英機 수상이 왜란때 끌려간 밀양 박씨 후손이외다.)
    그들의 정신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사상인 大和란.
    서기 3세기경, 한반도 곳곳 여러 부족출신들의 도래인들이 일본땅에서 최초의 통일정부를 구성할 적에 우리만큼은 여기서 하나로 화합하자는 의미로.
    大和, 즉 야마토라 부른 것.
    이후 이들 한반도 도래인들은 스스로들을 일컬어 大和民族이라 부르며, 곧 후세의 대화혼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올시다.
    아무래도 이들 입장에서 조상들의 땅 한반도를 영유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램이 그러한 독특한 식민지 정책을 펼친 계기이지 않았을까..그 부분의 물증을 잡으려 노서아 및 이남 이북의 자료들, 일본의 자료들을 여태껏 뒤적이고 있는 것이외다.

    • @centuryhistory
      @centuryhistory  5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유익한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 @bigpictureman8426
      @bigpictureman8426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저도 비슷한 생각.. 고종을 왕족으로 편입시킨 것부터 해서.. 결국 한반도를 일본의 본토로 만들려고 했던 것 같음.

    • @2jaemyungE
      @2jaemyungE 3 месяца назад +5

      일본은 조선을 단순 식민지가 아니라, 수도를 한반도로 옮길 생각이었음.

    • @cvh928
      @cvh928 3 месяца назад +1

      황궁을 용인으로 천도 계획

    • @ПавелЛии
      @ПавелЛии 3 месяца назад

      @@cvh928 천황궁은 부여로, 행정수도는 용인읍으로...

  • @jameslee-xv3yk
    @jameslee-xv3yk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0

    따뜻하다 영화... 저 감성이 80년대도 있었지... 지금은 있나모르겠네...

  • @user_937ndkzb1
    @user_937ndkzb1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어르신들 특유의 어투가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저시대만의 특징이었구나

  • @Eddguhbbctukkvc
    @Eddguhbbctukkvc 3 месяца назад +29

    일제가 자신들 이익을 위해서 조선의 근대화를 했으니 그건 고마워할 이유가 없을 뿐더러 착취다라고만 한다는건 진짜 미개한 생각이다. 당신들이 다니는 회사가 당신들을 위해서 존재 한다 생각하고 다니고 월급 받고 그걸로 생활하고 애들 교육시키고 공부하고 자동차사고 맛있는 외식도 하고 여행도 하나? 아님 내가 월급 받고 일하는게 착취고 그에 대한 댓가라 생각하나. 뭐든 서로 필요 불가결한 시대적 환경적 경제적 요인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 고마워할 필요도 없지만 누구에겐 그게 고마운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속에서 개인은 그저 열심히 살아갈 뿐인거다. 그런 몸부림을 정치질로 갈라치기하고 악으로 만들고 하는건 정치인들인거다. 제발 정신 차리자. 정치병에서 나오라,.

    • @jun2848
      @jun2848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실제로 수탈한 건 맞긴 하지요. 그걸 현대의 개인과 기업의 관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회사에서는 총칼을 들고 개개인들에게 가서 취업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으니까요. 개인이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차별 받던 시기였지요. 대표적으로 투표권이 존재하지 않은 것이 있지요. 그리고 잔혹한 통치도 있었고요. 대표적으로 착취라고 볼수있는 게 일본인 적산 비율이 독립했던 시기의 비율을 보신다면 착취로 여길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ㅎㅎ 회사와 식민지를 비교 하기 어려운 게 기업은 이익을 위해 직원을 구하고 연봉이 적절하면 사람을 구하겠지만 일본은 강제로 했던게 차이겠네요. 칼들고 협박한 느낌인데 만약 현대의 기업이 취업하라고 칼들고 협박 하면 그건 문제가 되겠지요?

    • @ggfkjg
      @ggfkjg 2 месяца назад +2

      @@jun2848수탈할게 있긴했을까요?
      조선시대 전국민 절반이상이 노예였던건요? 한국인이 한국인을 노예로 부리는거랑 다른건 뭐였을지..?

    • @jun2848
      @jun2848 2 месяца назад

      ​@@ggfkjg 네 맞쥬 한국인인 매국노가 한국인을 일본에 팔아서 한국인을 착취했지요. 그리고 그런 위험하고 편협한 논리는 뭐든 걸 극단적으로 만들지요. 예 -> 못사는 사람을 때려서 수탈하자! 어차피 갖은것도 없는데 뭐 어때? 아니면 일제시대 광기어린 군국주의도 비슷한 논리를 펼칠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시아인들은 서구의 식민지 노예다! 그러니 우리의 노예로 만들자! 그리고 아무리 우리나라가 일제대비 공업력이나 경제력이 없었다고 해도 수탈할게 없었을거 같나요? 일본의 지형은 식량을 재배할 평야가 상대적으로 적지유. 대표적으로 식량이 수탈 대상이였습니다. 그리고 훨씬 싸게 굴릴 인력이며

    • @jun2848
      @jun2848 2 месяца назад +1

      @@ggfkjg 그렇기에 친일파를 미워 해야 하는 겁니다 :) 자기가 일제의 부귀영화를 위해 국가와 백성을 판거니까요

    • @ggfkjg
      @ggfkjg 2 месяца назад

      @@jun2848말씀하신거로는 당위가 안돼요. 솔직히 전 좆망하는 나라 안팔아먹고 지속됐으면 (현 북조선) 그게 더 행복하게 사는 길인지 모르겠거든요.
      작금에 와서 나라를 매국을 했니 마니 하지만, 솔직히 나라가 나한테 뭔갈 해줘야 애국심도 생기는거죠.
      지금 애들을 안낳는 이유랑 같은거죠.
      그렇다고 조선을 계승한 북한이 천국이냐? 그건 말안해도 아시겠죠?
      시대적 사항이라는건요.. 무조건 흑과 백으로 나뉘는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매국노들을 옹호하는게 아니라, 미워하는데도 이유는 알아야 하는거라고 말하고싶네요.

  • @김윤섭-c1i
    @김윤섭-c1i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와 이런 자료가 있었네 ㄷㄷㄷ

  • @flowerfree
    @flowerfree 3 месяца назад +14

    조선이라는 나라는 동족을 노비로 삼았다.
    우리의 90프러는 노비
    10프로만 양반이였다.
    그걸 없애고 전체적으로 교육을 한 것은
    좋은점이다.
    625가 터지고 양반 노비는 종식된거다.
    일제식민지 625전쟁은 역사적으로 아픈 부분이지만
    양반 쌍놈이 없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창씨개명이란건 다들 노비들이라
    이름이 없고 성도 없었다.

    • @yoshitsune1184
      @yoshitsune1184 3 месяца назад +1

      노비 없앤건 구한 말~대한제국 시절이야.

    • @KGJ-user
      @KGJ-user 3 месяца назад

      1950년대 사진에도 양반이 나오는데 일제가 양반종식 ㅇㅈㄹ

    • @flowerfree
      @flowerfree 3 месяца назад

      @@yoshitsune1184 구한말 없앴지만 농촌에 가면 일꾼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있었죠 해당년 영화만 봐도 나오죠

    • @flowerfree
      @flowerfree 3 месяца назад

      @@KGJ-user 해방후 일부다처제도 금지하고 전쟁이후 많이 변했죠
      ㅇㅈㄹ은 좀..

    • @yoshitsune1184
      @yoshitsune1184 3 месяца назад +1

      @@flowerfree 그건 소작농 아님? 소작농하고 노비를 혼동하면 안됨

  • @분열정신
    @분열정신 3 месяца назад +1

    1941년 영화 "집없는 천사"라는 영화가 있는데 그건 더~ 절망스럽죠
    마지막 부분에 대놓고
    일장기에 인사하고 황국신민의 서사를 외우는 장면까지 나옵니다 애들도 가급적이면 학교에선 일본어를 쓰지요
    태평양전쟁 개시와 더불어 본격적인 전쟁시기이니 더더욱 혹독했을 겁니다

  • @smithpark5788
    @smithpark5788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와 신기하다

  • @임용원-z5d
    @임용원-z5d 7 месяцев назад +28

    일본군국주의가나쁜것이지 , 그당시일본사람들이 다나쁜것이아닙니다 우리네일반국인의정서와 다를것이없지요 .

  • @parmenideskim9739
    @parmenideskim9739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7

    박정희란 인물은 매우 흥미로운데 일제시대에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 일본육사까지 다녔습니다. 당연히 일본어 실력은 원어민과 같은 수준이며 박정희에겐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형이 한 분 계셨는데 그 형은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언뜻보면 형제가 정반대의 길을 가서 서로 싸웠을 법도 하지만 박정희는 그 형을 인생의 멘토로 삼아 깊이 존경했으며 그 형도 박정희를 무척 아껴 형제간의 우애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고 합니다. 정작 광복이 된 후 박정희는 그 형이 대구에서 이승만이 조직한 서북청년단에의해 죽임을 당하자 극도로 분노해 바로 남로당에 가입해 빨갱이가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박정희는 이승만을 증오했는데 나중에 5.16후에도 이승만을 증오하는 건 똑같았다고 합니다. 박정희가 집권하던 시절이 반일교육이 최대로 진행되었던 시기로 교과서에 유관순 열사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리고 일제가 어떤 잔인한 일을 벌였고 이런 치욕을 또 격지 않으려면 산업화와 과학기술에 힘써야 된다는 뭐 그런 게 교육에 그대로 주입되던 시기였씁니다.

    • @juneric5926
      @juneric5926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제가 궁금했던 부분 전부 해결해주시는 댓글이네요. 감사합니다.

    • @drmengtang
      @drmengtang 7 месяцев назад

      박정희가 이승만을 누구보다도 가장 증오했다는게 바로 팩트입니다. 오늘날 이 나라의 보수 우파는 반드시 꼭 알아야 합니다. 건국전쟁요? 박정희 떄 그딴거 만들었다가는 당장에 중앙정보부에 끌려갔습니다.

  • @댕댕이냥이-q1n
    @댕댕이냥이-q1n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2

    영달이가 에이타츠,병준이가 헤이쥰으로 불리는게 잼있네요.내이름은 긴카로 불렸겠네요 ㅋㅋㅋ

  • @choichirim6231
    @choichirim6231 2 месяца назад

    신기하네요

  • @미미래-k2i
    @미미래-k2i 3 месяца назад +4

    조선의 진정한 근대화는 일제시대이다. 일본에 감사해야 한디ㅣ.

  • @조에드먼드
    @조에드먼드 4 месяца назад +1

    👍👍

  • @aylmerwhiliem3873
    @aylmerwhiliem3873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2

    저때가더정이많아보임

  • @崔泰英
    @崔泰英 7 месяцев назад +25

    조선에서 평민으로 살기 vs 일제시대 평민으로 살기

    • @KGJ-user
      @KGJ-user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조선시대에 양반의 노비로 살기 vs 일제시대에 양반출신 친일파의 소작농(농노)으로 살기

  • @행호할캥홍
    @행호할캥홍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치욕스런 시대라는거를 계속 반성해야합니다
    제거할 것들은 제거해야 순금이됩니다

  • @user-cil4oh1e7b4utu0foy
    @user-cil4oh1e7b4utu0foy 7 месяцев назад +24

    우리가 일본을 먹든 일본이 우리를 먹든 뭔 상관이고, 땅 커지면 장땡이다.

    • @나-o9o3c
      @나-o9o3c 4 месяца назад

      뇌가 없나?

  • @영식의슨마일
    @영식의슨마일 2 месяца назад

    36년이랑 40년의 그 짧은 몇년에 확 바뀐 이유가 다 있음 뒷 영화에 에이타츠니 헤이준이니 창씨개명 안한거고 애들 하교하면서 이사토라고 하는건 걘 창씨개명 안했을 확률이 높음

  • @nekosensei744
    @nekosensei744 7 месяцев назад +22

    일제시대가 더 치안이 좋았지 지금은 개판임;;;

  • @나-o9o3c
    @나-o9o3c 4 месяца назад

    채널 이름 백년역사 의미가?

  • @patrick6437
    @patrick6437 3 месяца назад

    교실에 '국어'라고 쓰여있는 표어 위에 일장기.

  • @scbaik254
    @scbaik254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이런 영화를 보고 저 때가 좋았다는 사람들은 북한의 선전 영화도 철석같이 믿을 지능을 가진 모지리 들이다.

  • @parmenideskim9739
    @parmenideskim9739 7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이봉창 의사가 처음엔 3.1 만세 운동에도 무관심한 극렬 친일파였습니다. 자신은 일본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일본인으로부터 끊임없이 차별을 받았고 진정한 일본인이 되려고 아예 일본에 가서 정착하려 했으나 거기서도 차별을 받을 다음 깨달은 바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셨습니다. 처음엔 김구선생님으로부터도 첩자라는 의심을 받았으나 이봉창의사는 일본왕에게 폭탄을 던지고 기꺼이 자기 목숨을 바쳤습니다.

    • @해도리-b2x
      @해도리-b2x 3 месяца назад

      뭐 어쩌라고요. 극렬 친일파가 그렇게 변한 사례도 있지만 극렬 민족주의자가 극렬 친일파가 된 사례도 많아요.ㅋㅋㅋㅋㅋㅋ

    • @user-pu7ey2xl6o
      @user-pu7ey2xl6o 3 месяца назад +2

      그런사람이 임정에서 받은 돈으로 일본에서 매춘행위 무지했죠 .....

    • @plee1022
      @plee1022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창씨개명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이 1940년 2월 11일입니다.
      이봉창 의사는 1932년 10월 10일에 돌아가셨고요.
      그러나 기노시타 쇼조(木下昌藏)라고 창씨개명을 했는데요.
      이것은 일제가 강요해서 창씨개명을 한 것이 아니라 선진국인 일본을 좋아하여 자발적으로 일본인이 되려고 했답니다.
      우리나라 역사교육에는 이런 명백한 팩트 (fact)를 가르치지 않죠.

  • @kiryou-g2d
    @kiryou-g2d 3 месяца назад +1

    다큐나 몰래카메라가 아니고요. 실존인물이 있다해도 영화입니다.물론 착한 사람도 소수 있었겠지만. 일제 북한에 의해 징병,죽임을 당한것도 사실이고.

  • @Beatdownk1d
    @Beatdownk1d 7 месяцев назад +30

    저때 태어나고 싶었다

    • @sbngchl
      @sbngchl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2

      외할아버지가 군대가기 싫어서 일찍 장가 갔죠 그때 태어났으면 태평양전쟁에 죽거나 한국전쟁때 죽죠

    • @cocochanel6094
      @cocochanel6094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성노예 위안부로 살고 싶나보네

  • @churlkoh8053
    @churlkoh8053 3 месяца назад +2

    조선은 백성들에게 글을 가르쳤던가?...노비, 천민으로 부려먹었지

  • @이병욱-x7p
    @이병욱-x7p 3 месяца назад +4

    일본은 여러모로 고마운 나라다
    최소한의 인간이라면 배은망덕해지지 말자

  • @김유진-k3j3i
    @김유진-k3j3i 3 месяца назад +4

    최소한 조선때보다는 훨씬 살기 좋아보이네.

  • @lupin4419
    @lupin4419 2 месяца назад

    신기하네요. 근데 해방 당시 조선반도의 문맹률은 70%였다고 합니다. 학교를 다녔던 것은 극소수

    • @READ0630
      @READ0630 2 месяца назад

      78%임. 미군정 통계.

  • @JWLEE-v5n
    @JWLEE-v5n 3 месяца назад +1

    당시는 일본 제국주의 일본 군국주의가 중국 등 아시아 각지로 뻗어나가는 심모원려의 전략 아래, 일본의 가장 우수한 자원들을 선생님, 순사, 관료, 사업가 등으로 식민지 각지로 보냈으니, 조선에 온 일본인 교사들의 감동적인 사연이 많았겠지요.
    그런 데에 혹 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땅에서 2등국민으로 사는 노예백성의 비애를 덮으려는 문화적 술책인 것입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 @과학이야기-d3o
    @과학이야기-d3o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이 당시는 국적이 일본입니다. 외국에서도 일본과 한국을 같은 나라로 보았습니다.
    공식적인 언어는 일본어이고 생활에서는 한국어가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조선의 양반들 1%만 인간답게 살고 나머지 국민들 모두 노예처럼 사는 나라와
    일제시대 산업사회로 진입하는 사회 가운데 선택하라면?
    대부분 국민들이 일제시대를 선택했기 때문에 조선은 망한 것입니다.
    역사책 다시 써야 합니다. 조선은 스스로 일제를 선택한 것입니다.
    양반들만 독립운동했으며. 그것도 왕정복고와 양반사회 재건설이 목표였습니다.
    대부분 국민들 미쳤다고 지옥같은 조선을 선택하겠습니까?

  • @tkdvPehoska
    @tkdvPehoska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일제시대라 조선인 선생님이 영화 속에서 일본인 선생님으로 둔갑하였군요

  • @parmenideskim9739
    @parmenideskim9739 7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지금 국가발전의 좌표를 잃고 헤매고 있는 대한민국은 다시 김구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됩니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의 침략으로 피눈물을 흘렸기에 행여라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나라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다만 오로지 한없이 드높은 문화의 힘으로 인류에게 빛이 되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

    • @칼포퍼-j4p
      @칼포퍼-j4p 3 месяца назад

      그런 김구가 북에갔을때 김일성의 남침야욕을 알고도 남한에 어떤 정보도 주지 않은 건 자신의 출세욕에 눈이 멀어서 임.
      국민을 400만명이나 죽게 만든 6.25를 미리 알았다면 반도의 지도는 지금과 달랐을 겁니다. 킬구는 사이코패스임

  • @jaewonjang3446
    @jaewonjang3446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2

    북한보다 낫네

  • @최아롱이-n2r
    @최아롱이-n2r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센세이 인간적인거봐라...일본한테 먹혔으니 다행이지 소련한테 먹혔으면 학교 수업이고 나발이고 단체농장에 끌려가서 농사나 지었겠지

  • @야크트판터-i2j
    @야크트판터-i2j 3 месяца назад +5

    저런 교육을 한 선진 일본을 ...친일파라 욕한다고~원시인 이냐~~민주당은...

  • @user-Korean-Samurai
    @user-Korean-Samurai 7 месяцев назад +78

    일제시대는 한반도가 수천년 가난이란 굴레를 벗어던지고 오늘 날의 서구근대화 강국이된 결정적 밑거름이었던 시기였습니다.

    • @피부는민둥산
      @피부는민둥산 7 месяцев назад +7

      그래서 625 이후에 그게 다 남아있었고?

    • @user-Korean-Samurai
      @user-Korean-Samurai 7 месяцев назад +28

      @@피부는민둥산 일제시대 지식인들이 남아있었고 인프라가 남아있었지. 인프라가 무슨 뜻인줄은 알지?

    • @피부는민둥산
      @피부는민둥산 7 месяцев назад +8

      @@user-Korean-Samurai 뭔 인프라? 625때 개작살난거 모름?

    • @roastcurry9777
      @roastcurry9777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3

      @@피부는민둥산 아니 인천이랑 부산은 남아 일본이 만든 인프라가 남아 있는데

    • @윤현철-n2f
      @윤현철-n2f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8

      일본식 근대교육을 받은 인적 자산이 남아있었고 북에서 남으로 넘어온 사람들 중에 인텔리와 지식인이 많았지요
      그게 인프라이지요

  • @압-d2b
    @압-d2b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신분제 봉건국가 조선보다는 법치국가 일제가 훨씬 좋았다고 하더군.. 우리나라 1930년대 1인당 소득은 1960년대 중반에 와서야 다시 갱신할 수 있었다지

  • @이슈반응채널
    @이슈반응채널 3 месяца назад +2

    일제시대 대부분 민중들은 일제시대 편안하게 살았습니다.
    경제가 크게 성장을 했다고 합니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같은 일본의 나라로 생각해서 엄청난 투자를 했기 때문입니다.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등이 동남아나 아프리카에서 자원 수탈만 했던 식민지와 달랐습니다.
    물론 극소수의 양반들은 기득권을 뺏았겨서 저항했지만

  • @행호할캥홍
    @행호할캥홍 3 месяца назад

    유학생들이ㅡ외국가서 수업하는거랑 다른거거ㅡ뭘까
    안방에 불청객이 문을 확 열고 들어온다몀

  • @tedb8140
    @tedb8140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지금의 북한보다 훨씬 살기 좋아보인다. 뼈만 남은 북한이이들보다 더 활기차고 건강해보인다.

  • @winter413wind
    @winter413wind 7 месяцев назад +4

    북한 = 일제시대
    끔찍 😫

    • @란-d7b
      @란-d7b 7 месяцев назад +9

      북한이 훨씬 더 끔찍하지 않을까요?

    • @Southjkco
      @Southjkco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일제시대가 끔찍하다고?
      오히려 저시대가 더행복했다.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에게 얼마나 상냥했는데 그은혜를 어찌 모를수가있냐?

  • @이정은-f8h
    @이정은-f8h 2 месяца назад

    아직 모르겠습니다.단지, 환영해야했을것은 조선인 평균수명이 일제 이후 45세로 폭등했다는 사실입니다.휴, 그전엔 대체......?

    • @nandeoe
      @nandeoe 15 дней назад

      일본들어오기전 상하수도도없었고 도로 공장 건물 철도 병원 기본적인인프라가 전혀없었고 그냥 똥밭이었음..똥다치워주고 상하수도 깔아주고나서 평균수명 폭등한거임...조선시대엔 왕도 평균수명이40세가안되고 일반인은 아마20대정도가 평균수명이었을거임

  • @parmenideskim9739
    @parmenideskim9739 7 месяцев назад +7

    일제가 정점에 이른 1940년 시인 조지훈은 경복궁을 구경하러 갔다가 다 파괴되고 남은 궁궐엔 거미줄만 가득한 걸 보고 봉황수 라는 시를 지었습니다. 그 시에 이렇게 운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냐마는 저 가장 높은 하늘 위에 높이 올라 실컫 통곡하고 싶다고 시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역시 비슷한 시기 서울에 살았던 시인 윤동주는 사람들이 모두 표정이 어둡고 뭔가에 눌려 있고 천진난만하게 웃을 법한 애 들마져도 전부 표정이 어두워 마음이 아팠다고 그의 시에 쓰고 있습니다.

    • @윤현철-n2f
      @윤현철-n2f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0

      궁궐은 그랬겠지요
      근대 궁궐 바로 밖은 어땠을까요?
      당시의 현대식 빌딩과 백화점 상가 등등이
      기라성 처럼 서 있었을 텐데

    • @drmengtang
      @drmengtang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윤동주는 본인 자신이 기저질환 지병을 앓고 있었으니까

    • @崔泰英
      @崔泰英 7 месяцев назад +8

      나라 팔아먹고 떵떵 거리고 살았던 왕조가 뭘ㅋㅋㅋ

  • @yoshitsune1184
    @yoshitsune1184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카메라 앞에선 착한 선생이지. 카메라 돌려지면 사랑의 매와 사랑의 뺨을 휘두르겠지.

    • @KeiKaneda-gy8lh
      @KeiKaneda-gy8lh 22 дня назад +1

      책사풍후 게이 여기서 뭐하노 ㅋㅋ

  • @정재범-s4y
    @정재범-s4y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다 일제 시대에 학교를 나왔지만. 일본을 증오하시던 기억이 나네요. 일제 시대와 한국전쟁 잠천으로 정말 고생하셨던 불행했던 세대

  • @READ0630
    @READ0630 2 месяца назад +1

    보통 일본인 거주구역과 조선인 거주구역은 따로 있었음. 조선총독부 1944년 5월 학력 통계에 따르면 1944년에 15세 이상 인구에서 불취학이 80.28%, 간서수가 6.38%로 86.66%가 국민학교도 못 다님. 국초퇴 1.58%, 국초졸 9.81%, 국고졸 0.34%, 중졸 1.41%,. 전문학교졸 0.16%, 대졸 0.05%로 7374명이 전부. 반면 조선내 일본인 불취학은 3.73%였다. 조선인 차별이 없긴. 이봉창이 일본인으로 살려고 했는데 조선인이라고 차별당하는 것에 분노해서 독립운동가로 변한건데. 교육만 봐도 나오지.
    조선총독부 통계다.
    86.66%에 달하는 조선인들이 국민학교도 다녀보지 못했던 것이 일제강점기고, 그래서 1945년 해방 후에 미군정에서 조사한 결과 78%가 문맹이었다. 근데 3년만에 41%로 문맹률이 자체적으로 떨어졌다. 일제가 없어졌다고 순식간에 절반에 가까운 숫자로 문맹률이 떨어진거다. 이승만 정부 10년차엔 1958년에 문맹률은 4%까지 내려간다.

    • @user-xb3nc2ug9q
      @user-xb3nc2ug9q 2 месяца назад

      일제시대 통계말고 조선시대 통계를 보면 일제시대가 얼마나 개꿀이였을지 알건데 ㅋㅋㅋㅋ

    • @READ0630
      @READ0630 2 месяца назад +1

      @@user-xb3nc2ug9q 오히려 일제강점기 때 통계자료로 조선시대보다 삶의 질이 퇴보한 이들이 대다수인게 확인된다. 당장 1930년에 조선총독부에서 조사한 걸로 1870년 이전의 조선시대 문맹률이 79%인데 조선말기와 구한 때 사람들은 문맹률 66.7%임. 그리고 미군정에서 해방후 통계가 문맹률 78%. 당장 조선총독부 1944년에 국민학교도 못가본 조선인의 숫자가 86.6%가 넘는 것이 나오고.(학교 갈 나이가 아닌 미취학을 제외한 통계임.)
      소수의 양반 계층을 우대해서 통제력을 강화하는 정책을 했기에 대다수 소작농들의 삶의 질은 조선시대보다 퇴보해서 일본에서도 조선인들의 식사량이 조선시대 때보다 줄었고 쌀을 먹을 수 있는 숫자도 크게 감소했다는 것이 나옴. 왜냐하면 조선에서 쌀을 만들어서 일본의 쌀값을 안정시켜서 내부안정을 했으니까. 조선인의 쌀 소비량 통계자료도 있음. 쌀 공출량도 그렇고. 쌀 생산량이 늘어나지만 일본으로 빠져나가는게 대다수라 쌀 소비량은 오히려 더 줄어드는 일이 발생함.
      소작농 관련으로 1920년대에 조선총독부에서 식량증산 및 그 식량을 일본으로 보내고 효율적으로 소작농들 착취하기 위해서 지주들에게 특혜 몰아주기 및 자영농들 아작내서 지주들에게 귀속시키기 정책이 이어졌지. 일본인 지주들과 조선인 지주들 중 조선인 지주들은 양반 지주들인데 이 때 조선시대보다 상상도 못할 수준으로 꿀 빰.
      1944년에 소작농이 조선인 전체에서 64%에 달할 정도까지 늘어났다고 하니. 일제강점기 초기에 45%가 소작지였는데 이 비율이 일제강점기 내내 점점 늘어나고.
      조선총독부가 통계자료들을 남겨놔서 조선 말 때보다 악화되는 것이 실시간으로 보여지는 것이 상당히 많음. 조선총독부는 근대적 통계를 해놔서 시간이 지날수록 얼마나 나빠지고 있나를 보다 상세하게 알 수 있음.
      조선총독부 통계자료 및 조사자료들만 봐도 일제강점기가 조선 말때보다 삶의 질 및 식사 등 여러 문제에서 더 나빠서 왜 해방 후에 일제강점기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전혀 없이 신탁통치란 단어만으로도 조선인들 여론이 발작이 났는지 알 수 있는 수준임. 왜 다시 외세의 간섭을 받아선 안 된다는 사고방식이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있었는지.
      양반지주들에겐 진짜 특혜 몰아받기에 돈 벌기 쉽던 꿀 빨던 시대였음. 이승만의 농지개혁이 그래서 중요한거고. 그리고 웃긴건 이 자료들을 일본측 자료를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어서 일제강점기 때 얼마나 삶의 질이 나빴나가 일본측 자료들로 쉽게 알 수 있다.

  • @231-o6y
    @231-o6y 3 месяца назад

    그래도다교육시켜주고 문명인처럼 사네

  • @mifasoul9627
    @mifasoul9627 2 месяца назад +3

    대체 일제 강점기 때 약탈적이고 괴수같은 일본 제도하에서 조선 언어로 조선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가? 여아들 잡아다가 위안부로 넘기는 납치가 횡행했다고, 남아들 잡아다가 노예로 끌고 갔다는 것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나? 이 영화는 분명 가짜일 것이다. 저런 영상 속의 세상은 분명 가상의 세상일 것이다. 일제시대는 지옥이었다 라는 것이 한국 역사교과서에 완벽히 기술되어 있다.ㅎㅎㅎ

  • @younggchoi4005
    @younggchoi4005 Месяц назад

    일제 시대가 좋을수 있죠..살게 해주고 친절하게 해주고... 그러나 1936 영화와 1940 영화에 볼수 있는 차이점은 헤어 스타일도 달라지고.... 언어도 일본어로 가르치고....한국 정첵성이 사라지고 일본식으로 변하고 있다는것입니다...아마 50년만 더 일제제국에서 살았더라면 모두다 일본 사람같이 행복하게 살았을것 같습니다, 한 민족을 통치 하려면요...항상 압박만 있지 읺습니다.. 달콤한 생황도 제공해햐지 세뇌 교육이 되죠...일본인 되가고 일본성이름으로 바꾸고 일본인 같은 생활를 하는데 왜 구박을 합니까?? 그런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죠....그럼 나쁜 사람들은?? 한국어 하고 한복입고... 그럼 사람들에게는 압박이 가는것이죠//// 왜 아직도 일본 우익주의자들은 한국과 한인들 싫어 하는데요?? 일본화를 못하게 한것에 분노가 있는게 아날까요?? 일본 다수는 그런 혐오가 없습니다...그러나 이름을 일식으로 바꾸면 더 좋아하겠죠...

  • @phistis631
    @phistis631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우리가 흔히 일제가 한글을 금지시켰다고 배워왔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조선왕조는 한글을 언문이라고해서 배척하고 가르치지 않았지만 일제는 근대교육과 함께 한글을 가르쳤지요...그러나 태평양전쟁 이후부터 전시체제로 돌입하면서 한글교육을 폐지합니다

    • @yoshitsune1184
      @yoshitsune1184 3 месяца назад +1

      대한제국 국사교과서 보면 한글로 역사 가르치고그랬어. 니 망상으로 지어내지마.

  • @parmenideskim9739
    @parmenideskim9739 7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제 할아버지는 일제말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홋카이도 어딘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같이 끌려간 마을 사람들 중에 살아 돌아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 바람에 제 아버지는 고아가 되서 학교 교육을 전혀 받지 못 했습니다.

  • @박스베타-p2f
    @박스베타-p2f 2 месяца назад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45년경 지금의 고3이었는데 학도병 거부해서 김천 교도소에서 투옥중에 해방을 맞았습니다. 고등학교때 교실에 선생이 칼차고 들어 왔답니다.

    • @READ0630
      @READ0630 2 месяца назад +1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고3이면 당시에 고등학교가 아니라 중학교에 통합됐었으니, 당시 20만도 안 되는 중졸(중+고등학교)에 속하지 못하셨겠네요. 그래도 고3이면 당시 엄청난 고학력...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일본경도제국대학에 수석이었는데, 차석이 일본인이라 "조센징 따위가 수석이라니, 차석으로 내려버려."에 의해 차석으로 떨어질 뻔 했지만 다른 일본인 교수들이 나서서 해결해서 수석이 될 수 있었다는데...솔직히 지주 집안의 차남이었다보니 당시 특혜를 보는 위치라 가능했던 것이죠. 노비 출신 머슴들도 계속 부렸고...
      그래서 저는 당시 지주층이 얼마나 특혜를 누렸는지 보다 잘 알 수 있었음...일제강점기 때 친일지주가 꿀 빨기 좋은 시대였죠. 조선총독부는 조선인들을 효율적으로 수탈하기 위해 소작농 보호법안들을 없애버리고, 온갖 특혜로 친일지주들에게 힘을 실어줬고....
      그래서인지 아버지도 할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지만, 증조부 이상부터는 거의 언급도 안하면서 "아버지(제 할아버지)는 인품도 모두 훌륭한 분이나 아버지 제외한 집안은 나쁜 짓도 많이 한 좋은 집안은 전혀 아니었어. 가문에 자부심 가지지 마."라고 하심...
      할아버지의 형인 장남은 지주 아들이라 막대한 재산 갖고 도박, 기생놀이 하며 일제강점기 내내 신나게 유흥을 즐기면서 재산들을 잘 날렸고.
      오히려 당시 혜택을 누린 집안쪽에서 실상을 더 잘 파악하지, 혜택을 누리지 못한 조상을 둔 이들은 이상한 망상에 빠져있어서 사실관계를 알아보지도 않고 조선총독부 통계도 확인도 안하면서 미화하기 바쁜게 참...조선총독부 통계자료만 찾아봐도 될텐데.

  • @gavernoogle749
    @gavernoogle749 7 месяцев назад +5

    여기 댓글 다시는 분들은 서대문형무소는 가보셨는지 묻고싶습니다…. 그리고 단면만 보지마시고 일제가 왜 우리에게 침략했을지에 개한 의도와 목적을 알았으면 좋겠고 반복되지 않기 위해 그 만행을 기억해둬야하는겁니다…..

    • @개불지미랑
      @개불지미랑 7 месяцев назад +4

      말하자면 2등시민 같은거죠 일제에 옹호가 있는 이유는 일반 서민들은 정신그딴것보다 배를 불려주는게 누구인가가 중요한것이기때문에
      일제시대때가 더욱 윤택했다면 그걸로 된거라는 논리죠 왜냐 조선이라는곳은 일제시대보다 더한 수탈 학대 인권유린이 있었던국가이기 때문에
      조선인으로서 라는 사상은 기득권이던 양반들이 복원 독립을 주장했기때문에 노비와 상놈들에게 일본을 찬양하던 조선을 찬양하던 그건 자유가 아닌가죠
      왜 해방이후에 만든 교육과 사상으로만 그당시 사람들을 판단하려함? 해방이후에 우리는 자유를 찿았고 경제발전도했고 더좋아진것이 사실이긴하지만
      이건 해방이후의 정신일뿐임 해방전에는 적어도 조선보다는 훨씬 나았으리라 봅니다 일제가 2차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가혹히진 단면만 보고 판단하는건 님이죠

    • @김해숙-h3b
      @김해숙-h3b 7 месяцев назад +22

      양반강점기는 24H 고문을 당했는데?ㅋㅋㅋ ㅋㅋㅋ

    • @김해숙-h3b
      @김해숙-h3b 7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침략이 아니고 대한제국 황제가 자발적으로 국가 양여(讓與)했다ㅋㅋㅋ
      한일병합 순종황제 칙유(勅諭) - 1910. 8. 29.
      “짐(朕)이 부덕(否德)으로 간대(艱大)한 왕업을 이어받아 임어(臨御)한 이후 오늘에 이르도록 정령(政令)을 유신(維新)하는 것에 관하여 누차 도모하고 갖추어 시험하여 힘씀이 이르지 않은 것이 아니로되, 원래 허약한 것이 쌓여서 고질이 되고, 피폐가 극도에 이르러 시일 간에 만회할 시책을 행할 가망이 없으니 한밤 중에 우려함에 선후책(善後策)이 망연하다. 이를 맡아서 지리(支離)함이 더욱 심해지면 끝내는 저절로 수습할 수 없는데 이를 것이니 차라리 대임(大任)을 남에게 맡겨서 완전하게 할 방법과 혁신할 공효(功效)를 얻게 함만 못한 까닭으로 짐이 이에 결연히 내성(內省)하고 확연히 자단(自斷)하여 이에 한국의 통치권을 종전부터 친근하게 믿고 의지하던 이웃 나라 대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讓與)하여 밖으로 동양의 평화를 공고(鞏固)히 하고 안으로 팔역(八域:팔도)의 민생을 보전하게 하니 그대들 대소 신민들은 국세(國勢)와 시의(時宜)를 깊이 살펴서 번거롭게 소란을 일으키지 말고 각각 그 일에 안주하여 일본 제국의 문명한 새 정치에 복종하여 행복을 함께 받으라. 짐의 오늘의 이 조치는 그대들 민중을 잊음이 아니라 참으로 그대들 민중을 구원하려고 하는 지극한 뜻에서 나온 것이니 그대들 신민들은 짐의 이 뜻을 능히 헤아리라.”

    • @2027대통령홍카콜라
      @2027대통령홍카콜라 7 месяцев назад +8

      당시 기준에서는 최신식 감옥이었는데?

    • @_NakTa
      @_NakTa 7 месяцев назад +8

      서대문 형무소를 왜 가야하죠? ㅎㅎ 어릴 때 부터 세뇌 받은 조선식 논리 이젠 그만 펴세요.

  • @AceTean
    @AceTean 2 месяца назад

    지금도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야함

  • @gavernoogle749
    @gavernoogle749 7 месяцев назад +7

    뭔 일본 때문에 선진국으로 도약을 했다는 말을 하시는지…. 황무지에서 지금의 한국을 만든건 한국국민입니다.

    • @개불지미랑
      @개불지미랑 7 месяцев назад +20

      미안하지만 한국도 일본에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현대차 삼성반도체 조선업등 왜 그렇게 부정만 하시는지 ..

    • @_NakTa
      @_NakTa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쓰레기 조선에서 1기는 일제, 2기는 친일파들에 의해 발전한것임.
      국민들은 친일파 박정희를 믿고 따르면서 열심히 노력함.

    • @banu8667
      @banu8667 4 месяца назад

      일본이 당시 5억 달러, 미국이 30억 달러에 가까운 천문학적인 돈으로 물질적 지원을 해주고 일본이 기술자들이 한국까지 와서 기계도 설치해주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기술을 다 가르쳐줘서 지금이 한국이 된겁니다. 한국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도 일본 묘조식품사에서 기술을 전수받아 지금의 한국 라면이 탄생한거고 포스코도 일본에서 준 돈으로 일본인 기술자들이 세워준 것입니다. 이런 지원 하나도 없이 국민들만 열심히 산다고 지금의 부를 누렸을까요? 택도 없는 소리죠

    • @칼포퍼-j4p
      @칼포퍼-j4p 3 месяца назад

      그럼 북한은 왜 저렇게 살까? 생각 좀 하고 살어

    • @2jaemyungE
      @2jaemyungE 3 месяца назад

      그렇지요. 그런데요. 한국이 아프리카 한가운데 있으면 그게 가능한가요?

  • @뱅기매니아
    @뱅기매니아 7 месяцев назад +4

    뭔가 일제가 잘보이려고만든 영화같음ㅡㅡ

  • @jhryu5655
    @jhryu5655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0

    사람들이 잘 모를꺼라 생각하여 첨언.... 대충 1940년을 기점으로 보면 된다. 그 이전은 소학교. 그 이후는 국민학교로 개편. 소학교에서는 국어(일본어) 이외 현지어(조선어) 교육이 같이 있었다. 그 이후는 말 안해도 알꺼임. 그리고 뭐 영상을 보고 왈가왈부하는데.... 1980년대 국민학교를 다녀본 그 이전 세대까지는 알꺼임. 그냥 뭐 한편의 배달의 기수지 뭐. 학교 선생님은 다 인간적이고 군인들은 다 신사고... 현실은 아니라는 것은 알꺼임. 그냥 북한 선전방송과 다를바 없음. 그냥 그 시대의 분위기와 환경만을 읽는 것이지 그 당시가 오늘날 (왕따와 입시지옥) 보다 더 좋았다고 생각하는건..... 뭐 생각은 자유니깐. 한마디만 하면 일본인과 한국인 간 차별은 존재했다. 마치 링컨이 노예해방 선언해도 100여년간 차별이 지속되었던 것 처럼..... 당시 일본인이 식민지 국민을 동일하게 대우하고 싶을 가능성은 0%이다.

    • @sbngchl
      @sbngchl 7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초딩들이 생각을 안 해요

    • @jhryu5655
      @jhryu5655 7 месяцев назад +3

      @@sbngchl 요즘 초딩들은 이런 영상에는 관심이 없을 듯.. 그냥 댓글보고 그 시대로 돌아가서 살고샆다는 사람이 있다길래 쓴 글임. 솔직히 이런 세상에서도 밀려난다면 일제시대에는.... 불가촉민이 아니었을까 싶음.. 너무 과했나???

    • @eokim2186
      @eokim2186 7 месяцев назад +3

      @@jhryu5655네, 과하셨네요.

    • @란-d7b
      @란-d7b 7 месяцев назад +6

      당연히 차별은 존재했겠죠. 지금도 사소한 차이만으로 차별하는게 인간이란 종족의 특징 아닙니까? 그런것까지도 감안했을 때 우리가 학창시절 교육으로 이미지화된 일제시대 무지막지한 차별의 모습과는 상당한 괴리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죠. 과연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만큼 심각한 수준이었냐는거죠. 불합리나 차별이 아예 없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그 무언가를 찾는 사람입니다.

    • @칼포퍼-j4p
      @칼포퍼-j4p 3 месяца назад

      ​@@란-d7b 구한말과 비교를 해봐 백성들에겐 천국이었을 테니까

  • @하트뿅뿅-c9w
    @하트뿅뿅-c9w 3 месяца назад

    역사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일제 시대 관련 영상을 많이 보게 되면서 여러 영상 댓글중에 일제시대와 조선시대를 겪어본 어르신의 말씀들을 남기는 분들의 글을 많이 보았는대요
    일제 시대때가 생각보다 살기 좋았다는 글이 많았습니다... 일본보다 공산당이 더 나쁜 넘들이라는 글도 많더군요

  • @parmenideskim9739
    @parmenideskim9739 7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아래 댓글에 일제시대를 미화하는 사람이 있는데 일제시대를 실제로 산 사람들은 다들 지옥같았다고 합니다. 물질적인 것도 있지만 정신적으로 집단 왕따를 받으며 열등한 인간 취급을 받는 것이 지긋지긋. 박정희만 해도 일제가 그리웠기는 커녕 대통령이 된 후 대대적으로 민족교육을 강화하고 일본 냄새가 난다고 한자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전면 한글 전용을 밀어부쳤습니다. 1970년에 국민학교 입학했는데 학교 강당 가는 복도벽에 큰 그림 2개가 지금도 기억나네요. 그림 한 개는 유관순 열사가 일본놈이 쏜 총에 맞아 쓰러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금 생각해보면 노량해전인 것 같은데 엄청나게 많은 일본배가 불타는 그림이었습니다.

    • @lagrange1013
      @lagrange1013 7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일제시대를 제대로 산 사람들은 왜정시대가 조선시대 보다 훨씬 더 살기 좋았다고 합니다. 지옥같았다는 사람들은 당시 일제에 반대하던 공산주의자였겠죠. 신분제가 철폐되고 그나마 일하면 돈이라도 받던 근대화된 시대가 양반들 밑에서 소작농으로 뼈빠지게 일하고도 그것마저도 세금으로 강탈당하던 탐관오리 치하의 생활보다 못할 이유가 전혀없죠. 유관순이 일본놈이 쓴 총에 맞아??? 어유 이런게 왜곡 날조임. 정신 차리셈

    • @parmenideskim9739
      @parmenideskim9739 7 месяцев назад +4

      @@lagrange1013 그럼 조선말기보다 더 살기 나쁜 데가 어딨는데? 신분제 폐기? 일제시대에 신분제가 오히려 더 강화됬고 신분제가 폐지된 건 6.25때문임. 그리고 유관순 열사는 총이 아니라 고문으로 죽었으니 그 그림이 틀린 건 맞는데 일본이 잔인하게 죽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 @lagrange1013
      @lagrange1013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parmenideskim9739 정확하게 말하면 신분제는 갑오경장때 폐지되었고 그것마저도 일제의 도움을 받은 거임. 그후 여전히 사회적 문화적으로 잔재했었고, 일제시대때는 신분제가 강화될 이유가 없음. 왜냐하면 조선처럼 더이상 소작농의 시대가 아니거든.. 6.25 때문도 아님. 6.25로 인해 나라 자체가 리셋되었으니 나눌 신분 자체가 없어진거지 폐지는 무슨.. 6.25이후 60년대에도 여전히 머슴살이, 식모살이, 첩 이런거 존재했고, 70년대 이후 실질적인 경제성장으로 인해 차츰 사라진거임. 모르면 좀 가만있자.
      유관순이 일제에 의해 잔인하게 죽임당했다는 객관적인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유튜브 정책상 링크가 안되니 구글에서((유관순 열사 고문·순국에 대한 사실 왜곡))라고 검색해보셈. 거기 기사 내용 발췌 해줄께요
      일제가 독립 시위로 체포된 애국지사들에게 혹독한 고문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구체적인 방식에 대한 기술은 사료로 거의 남아있지 않다.
      다만, 국가기록원이 펴낸 여성독립운동사 자료총서에는 1919년 3월 하순에 출옥한 31명의 서울 여학생들의 증언을 토대로 "처음 수감돼서는 무수하게 매를 맞고, 그 후에는 발가벗겨져 알몸으로 손발이 묶인 채 마구간에 버려졌다", "왜놈들은 여학생 몇 명을 몰래 잡아가서 윤간하고는 새벽에 다시 끌고 왔다" 는 등의 기록이 있긴 하다.
      그러나 20여년간 유관순 연구소 소장을 지낸 박충순 전 백석대 교수는 성고문에 대해 "여러 혹독한 짓을 했으니 뭔들 못했을까 싶지만, 구체적인 악행은 모른다"며 "최근 들어 표현 강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근거가 될만한 기록은 없다"고 말했다.
      류정우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회장도 "인두로 허벅지를 지졌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 밖에 성고문 관련 기록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보면 알겠지만 수십년간 연구해왔다는 교수조차 한다는 말이 무수 한 설은 존재하지만,, 혹독한 짓을 햇으니 뭔들 못했을까 싶지만,,,인두로 허벅지를 지졌다는 기록이 있으나...결론은 전부 근거가 될 만한 기록은 없다, 보지 못했다 라고 함. 이게 유관순에 대한 우리의 연구 수준임.

    • @sbngchl
      @sbngchl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1

      외할머니가 그런데 1930년대는 살 만했고 대동아전쟁때는 고생했다는데

    • @drmengtang
      @drmengtang 7 месяцев назад

      박정희의 반일교육은 일제시대가 지옥 같아서가 아니라 외부의 적을 만들어야 국민을 통제하기 쉬웠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