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을 신학교서 깊진 않지만 간간히 배웠고 교수님 책 두 권다 읽으면서도 깨우치며 더 깊고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데 정말 필요한데, 교회 강대상 위에서 이런 설교와 강의를 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정도입니다. 진짜 매번 신앙의 깊이를 위해 역사적 예수와 고대 근동사에 대해 입을 열려고 하지만, 성도님들의 삶의 애환과 함께 엮긴 그들의 신앙을 또 흔들리게 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고요. 여튼, 개인적으로도 이런 환풍구 같은 강의가 있어 너무 마음에 위로를 얻습니다. 건강하세요 교수님!
영상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셔서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 교수님의 책을 감명깊게 읽고 있습니다. 책에서 예수님이 실존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됨을 깨달은 사건을 '그리스도교의 기원이 되는 위대하고 신비로운 체험으로서 인간사에 기념할 만한 특별한 경험' 이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인상깊습니다. 그 인식과 통찰은 예수님의 '나와 아버지는 하나' 라는 말씀에 압축적으로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사회의 신앙의 모습과 시대상을 고려해볼 때, 그 말에 종교 기득권 세력이 느꼈을 당혹감과 위협이 상상이 갑니다. 예수님의 감화력과 영적인 존재감을 볼 때 참으로 눈엣가시 였겠지요. 그로 인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것이 참 여러 생각을 하게 합니다. 기독교 신앙을 오랜시간 깊이 탐구해보지 못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경솔하고 외람된 부분이 있겠지만, 그러나 지금도 이러한 경향이 여전히 기독교에 남아있다고 생각하고, 저는 이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자인 저는 불교 신앙의 가장 깊은 메세지는 '내가 부처임을 자각하여 부처를 이루는 것' 이라고 느낍니다. 그리고 실존적으로 내가 삶의 길 위에서 비틀거릴 때, 삶을 이끌어주고 바로 잡아주는 붓다의 소리를 내 안에서 듣는다고 말할 수도 있을듯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부처의 단어의 자리에 하나님과, 예수를 넣는다면 그것은 기독교에서는 심각한 이단으로 간주 된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그래서 이런 의문이 제가 기독교의 본질적인 부분에 무지해서 나온 것인지 항상 궁금했습니다.
죄를 대속한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고 봅니다. 두 가지 경우가 핵심적이라고 보는데요. 인간이 창조된 것이라면 죄의 책임은 창조주에 있기 때문에 죄 자체가 성립되지 않고 창조된 게 아니라면 당시는 물론 먼 미래의 죄를 예상할 수도 대신할 수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더구나 이 경우 죄를 누가, 언제, 어떻게 규정하느냐와 죄를 지었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일종의 명확한 계약이 진행 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매번 드는 생각이지만,, 이런 강의를 유투브라는 공간에 올려주심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쉬시는? 동안 영육간에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고맙습니다. 좋은 날 되세요.
교수님 강의 잘 들엇습니다. 오늘 강의가 가장 감명깊엇습니다. 교수님 책 2권도 열독하엿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약자와 연대하고자 하는 마음을 따르고 싶은 사람입니다.
기존의 신앙에 모순이 있더라도 시대를 앞서나간 선각자로 따르고 실천하는데는 장애가 없을 듯하여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강의 감명 깊게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을 신학교서 깊진 않지만 간간히 배웠고 교수님 책 두 권다 읽으면서도 깨우치며 더 깊고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데 정말 필요한데, 교회 강대상 위에서 이런 설교와 강의를 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정도입니다. 진짜 매번 신앙의 깊이를 위해 역사적 예수와 고대 근동사에 대해 입을 열려고 하지만, 성도님들의 삶의 애환과 함께 엮긴 그들의 신앙을 또 흔들리게 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고요. 여튼, 개인적으로도 이런 환풍구 같은 강의가 있어 너무 마음에 위로를 얻습니다. 건강하세요 교수님!
노고가 많으시네요.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성취있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영상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셔서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
교수님의 책을 감명깊게 읽고 있습니다. 책에서 예수님이 실존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됨을 깨달은 사건을 '그리스도교의 기원이 되는 위대하고 신비로운 체험으로서 인간사에 기념할 만한 특별한 경험' 이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인상깊습니다.
그 인식과 통찰은 예수님의 '나와 아버지는 하나' 라는 말씀에 압축적으로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사회의 신앙의 모습과 시대상을 고려해볼 때, 그 말에 종교 기득권 세력이 느꼈을 당혹감과 위협이 상상이 갑니다. 예수님의 감화력과 영적인 존재감을 볼 때 참으로 눈엣가시 였겠지요. 그로 인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것이 참 여러 생각을 하게 합니다.
기독교 신앙을 오랜시간 깊이 탐구해보지 못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경솔하고 외람된 부분이 있겠지만,
그러나 지금도 이러한 경향이 여전히 기독교에 남아있다고 생각하고, 저는 이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자인 저는 불교 신앙의 가장 깊은 메세지는 '내가 부처임을 자각하여 부처를 이루는 것' 이라고 느낍니다.
그리고 실존적으로 내가 삶의 길 위에서 비틀거릴 때, 삶을 이끌어주고 바로 잡아주는 붓다의 소리를 내 안에서 듣는다고 말할 수도 있을듯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부처의 단어의 자리에 하나님과, 예수를 넣는다면 그것은 기독교에서는 심각한 이단으로 간주 된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그래서 이런 의문이 제가 기독교의 본질적인 부분에 무지해서 나온 것인지 항상 궁금했습니다.
고마운 말씀입니다. 평안하시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좋은 강의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기독교의 죄의식 강조는 종교권력자들이 사람들을 통제하기 수단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 면도 있다고 보입니다.
죄를 대속한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고 봅니다. 두 가지 경우가 핵심적이라고 보는데요. 인간이 창조된 것이라면 죄의 책임은 창조주에 있기 때문에 죄 자체가 성립되지 않고 창조된 게 아니라면 당시는 물론 먼 미래의 죄를 예상할 수도 대신할 수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더구나 이 경우 죄를 누가, 언제, 어떻게 규정하느냐와 죄를 지었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일종의 명확한 계약이 진행 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감사드립니다.
김선생님의 예수에 대한 견해를 적극 지지합니다.
그것이 '썩은 밀알'입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역사교육과 86학번입니다
알겠습니다.
교수님, 요한복음에 나오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나 니고데모가 예수의 장례를 치르는 인물로 나오는데 그것은 역사적 관점에서 어떻게 된 것으로 봅니까?
제 책이나 강의를 참고하시면 될 것입니다. 개별 설명하자면 좀 길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다만 예수는 피땀을 흘리지 않앗습니다. 제 책 교회가 가르쳐주지 않은 성경의 역사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교의 탄생" 아주 잘 읽었습니다. 요사이는 체력은 딸리고, 다양한 분야의 보고 싶은 책들은 많은지라 말씀하신 책은 아직 읽질 못했습니다. 이렇게 성원해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