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시절 상병때까지의 모습과 병장 왕고참이 되어서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황제가 된 이후의 유비는 인자하고 덕이 있는 모습과는 차이가 많아 보입니다. 명말청초를 살았던 왕부지도 유비의 모습에서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고 보여집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황제의 후손이라지만 실질적으로 흑수저에서 황제까지 올랐던 입지전적인 인물이지만 황제에 오른 다음에는 이전까지의 모습은 가식이 아니었나 싶게 오만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안타까왔습니다. 물론 공적인 자리에서 사적인 의리에 집착한 것이 후대에도 많은 대중들의 마음을 흔들어서 삼국지연의의 트리오이며 의리의 대명사로 전해졌지만 오만한 관우에게 형주를 전담시킨 것과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육손을 무시하며 이릉대전을 일으킨 것은 자신의 종말을 앞당기는 자가당착의 악수가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반동탁 연합군 시절 실제로 동탁과 전투를 벌인 인물은 조조와 손권 밖에 없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의기의 조조가 점점 한실을 위협하는 권신이 되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유비도 오랜 유랑 속에서도 꿈을 버리지 않고 달려가던 유비는 황제가 되고 부터는 완고한 꼰대가 되어갔다고 생각됩니다. 고집불통 유비가 된 것은 아닌가 여겨집니다. 뛰어난 인물임에는 동의하지만 와 만 비교해도 차이가 발견되는 유비에 대한 지나친 미화와 이를 후대의 역대 중국 왕조에서 이용한 것에서는 벗어날 필요가 있지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표 밑에서 비육지탄을 말하던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고 황제로까지 등극한 것은 가히 영웅의 풍모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촉을 차지하고 추진한 인사권의 결과를 보면 촉 출신인사들은 찬밥 신세고 형주 출신과 이전부터 유비의 가신들로 인재풀이 채워지는 한계가 드러났습니다. 장개석이 대만을 점령하고 대만 출신들을 홀대한 것과 비슷해보입니다. 결론적으로 명나라 나관중이 주희의 역사관에 영향을 받아 촉한을 정통으로 보고 조조를 비판하는 역사관에 동이족 입장에서 동조할 의무는 없어보입니다. 유주 출신의 유비가 촉의 익주를 지배한 것으로 보면 유비는 당대의 효웅이었고 적수공권으로 일어나 황제까지 오른 능력자로 인정할 수는 있지만 관우, 장비 시절 지역 갱스터 시절의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한 한계로 인하여 좌절한 홍콩 느와르의 주인공 정도의 미학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mansubrotherman9680 그쵸 상대를 누구로 만나느냐는 시대를 선택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죠. 장개석도 손문의 최측근 후계자인 왕정위를 누르고 좌익에서 우익으로 노선을 갈아타면서 북벌 대업에도 성공했지만 모택동을 만나면서 대만으로 쫓겨갔죠. 유비, 조조 모두 얼굴가죽은 두껍고 마음은 시커멓다고 청말의 이종오가 주장했는데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유비나 유방이나 도망칠 때는 처자식을 나몰라라 했는데 항우는 우미인을 항상 곁에 두었고 무적의 전투력을 가졌지만 조물주는 한 인간에게 모든 것을 다 주지는 않았는가 봅니다. 체면을 중시해서 다시 강동의 부모들의 얼굴을 보기 부끄러워한 인물이었지만 유방은 아버지를 솥에 삶겠다는 말에도 한 그릇 달라고 할 정도의 인물이면서 도망칠 때는 자식도 마차에서 차버려서 마부 하후영이 다시 챙겨오는 수준의 인성이었다고 하죠. 현실의 이익에 민감한 친일파들이 성공하고 정의를 추구했던 독립운동가들이 현실에서 패배하는 것은 그러려니 하는데 국립묘지에서도 친일파들이 무덤까지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은 좀 그렇쵸. 더불어 미국도 대통령과 졸병 국립묘지 무덤 사이즈가 동일한데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그런 이야기가 전혀 먹히지 않으니 앞으로 백년이 지나도 현실의 기득권자들이 살기좋은 세상인 것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사실 삼국지의 세 군주들 모두 평가가 케바케로 많이 갈리지. 유비만 호평과 혹평이 크게 갈리지는 않음. 당장의 조조는 서주대학살 포함해 욕먹을 게 많아서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눈부신 업적도 많아 칭송하는 사람들도 많음. 유비와 조조는 둘 다 일단 50:50프로 비율로 좋아하는 사람과 혐오하는 사람이 크게 갈리는 편임. 그러나 손권만큼은 오빠들도 쉴드를 유독 치기 제일 힘든게 가장 많아 선호보다 혐오 쪽이 더 많음. 특히 이궁의 변 사태 일으키고 멀쩡한 충신 육손을 토사구팽시키는 개삽질하는 바람에 오나라 패망의 단추를 눌러버림 ㅋㅋㅋㅋㅋ 그래서 손권은 아무리 좋게 잘 쳐줘봐야 30:70프로. 혐오하는 사람이 더 많음 ㅋㅋㅋㅋㅋㅋ 욕쳐먹을 게 유비와 조조보다 압도적으로 더 많아서 ㅋㅋㅋㅋㅋㅋㅋ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조는 뛰어난 시인이며 다정다감한 권력자였습니다. 자신의 느낌을 숨기지 않지만 내심 냉혹한 성향입니다. 초기 어려운 시절 자신에게 협조했던 동소나 인사권을 맡겼던 최염 모두 제거했죠. 능력있고 바른말을 한 것이 거슬린 것이었죠. 양수도 능력이 있다고 보았으나 후계구도의 문제를 제거하기 위해 미리 싹을 제거했다고 보여집니다. 손권의 장점은 인재를 잘보고 발탁할 수 있는 능력에 실행력을 갖고 있는 것이죠. 초기에는 손씨가문의 위세가 오나라 호족들에 비해 눌리므로 참고 있었지만 점차 후계구도를 정리하면서 중신들을 조금씩 제거하며 스스로 오나라 기둥들을 제거하는 자충수를 두었다고 평가됩니다. 유비는 겉으로는 온화하지만 난세에 적수공권으로 남의 밥을 오래 먹은 관계로 말을 적지만 현실파악은 확실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비슷한 캐릭터가 노태우 같은 인물로 어린 시절부터 눈치밥을 오래 먹고 2인자 생활을 오래 하여 참는 것이 일상화되어 보여므로 순해보이지만 내면은 전혀 다르고 권력을 잡으면 달라지는 케이스라고 봅니다. 훗날 유비가 장유를 죽이자 제갈량이 무슨 죄로 죽였느냐고 질문하자 ""향기로운 난초라도 문앞에 피어나면 제거하지 않을 수 없지. 그 난초가 무슨 죄가 있느냐고? 그 죄는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는 것이지.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권력을 가진 유비와 객장이던 시절의 유비는 다른 것이겠죠. 그 조짐은 백문루에서 이미 보여졌다고 생각합니다. 조조에게 묶인 여포는 유비의 도움말을 청했지만 여포를 선봉장으로 쓸 것인가를 고민하는 조조를 유비는 한방으로 생각을 정리해줍니다. 정원, 동탁의 말로를 생각해보라는 말이지요. 여포는 거칠었지만 유비를 믿었고, 유비는 공손했지만 여포를 전혀 믿지 않았던 것이지요. 유비를 믿은 여포를 아무도 동정하지 않듯이 리더에게 맹종하는 팔로우들도 교주에게 맹종하는 신도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진나라 시절 진수가 작성한 정사 삼국지가 존재하고 사마광의 자치통감에서도 삼국시대의 역사가 기술되어 있습니다. 원말명초의 나관중이 시대 분위기상 주희의 명분론에 입각하여 유관장의 촉을 정통으로 기록하여 당시 이민족 몽골에 지배당한 한족의 원통함을 씻으려고 하였을 뿐입니다. 물론 모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표현처럼 왜곡도 존재하지만 인간의 한계로 인정하여야 할 것이지 실존하였던 위, 촉, 오의 삼국시대를 가짜라고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금의 현실에서도 많은 부분에 공감이 갑니다. 특히 리더가 갖춰야 할 인간관계, 판단력, 결단력 등 유비를 통해 많이 배우네요. 삼국지 좀더 알고 싶어요 다양하게 올려 주세요. 감사합니다.
군대 시절 상병때까지의 모습과 병장 왕고참이 되어서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황제가 된 이후의 유비는 인자하고 덕이 있는 모습과는 차이가 많아 보입니다. 명말청초를 살았던 왕부지도 유비의 모습에서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고 보여집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비도 조조못지않게 용병술과 강력한 리더십이있었음. 하지만 유비의 단점은 관우,장비처럼 거만했음. 유비는 자기 용병술만 믿고 결국 이릉에서 말아먹었음
황제의 후손이라지만 실질적으로 흑수저에서 황제까지 올랐던 입지전적인 인물이지만 황제에 오른 다음에는 이전까지의 모습은 가식이 아니었나 싶게 오만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안타까왔습니다. 물론 공적인 자리에서 사적인 의리에 집착한 것이 후대에도 많은 대중들의 마음을 흔들어서 삼국지연의의 트리오이며 의리의 대명사로 전해졌지만 오만한 관우에게 형주를 전담시킨 것과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육손을 무시하며 이릉대전을 일으킨 것은 자신의 종말을 앞당기는 자가당착의 악수가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난 차라리 조조가 나은듯
반동탁 연합군 시절 실제로 동탁과 전투를 벌인 인물은 조조와 손권 밖에 없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의기의 조조가 점점 한실을 위협하는 권신이 되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유비도 오랜 유랑 속에서도 꿈을 버리지 않고 달려가던 유비는 황제가 되고 부터는 완고한 꼰대가 되어갔다고 생각됩니다. 고집불통 유비가 된 것은 아닌가 여겨집니다. 뛰어난 인물임에는 동의하지만 와 만 비교해도 차이가 발견되는 유비에 대한 지나친 미화와 이를 후대의 역대 중국 왕조에서 이용한 것에서는 벗어날 필요가 있지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국지 결시의 마지막 시구가 생각납니다. 후인이 이를 조상하며 이러쿵 저러쿵 뇌까릴 뿐이다.
유비가 재조명 될수 있는 딱 하나의 사건 형남 4군을 먹고 상용 촉과 한중을 차지할때였죠. 막판에 관우의 북벌로 인해서 이미 모든걸 차지한 위를 흔들뻔했음 그 다음부터는 가망성이 없지만
유표 밑에서 비육지탄을 말하던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고 황제로까지 등극한 것은 가히 영웅의 풍모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촉을 차지하고 추진한 인사권의 결과를 보면 촉 출신인사들은 찬밥 신세고 형주 출신과 이전부터 유비의 가신들로 인재풀이 채워지는 한계가 드러났습니다. 장개석이 대만을 점령하고 대만 출신들을 홀대한 것과 비슷해보입니다. 결론적으로 명나라 나관중이 주희의 역사관에 영향을 받아 촉한을 정통으로 보고 조조를 비판하는 역사관에 동이족 입장에서 동조할 의무는 없어보입니다. 유주 출신의 유비가 촉의 익주를 지배한 것으로 보면 유비는 당대의 효웅이었고 적수공권으로 일어나 황제까지 오른 능력자로 인정할 수는 있지만 관우, 장비 시절 지역 갱스터 시절의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한 한계로 인하여 좌절한 홍콩 느와르의 주인공 정도의 미학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leetv5832 맞는 말입니다. 예전 유방도 그랬지만 성공했죠. 그런데 유비는 그 상대가 조조라서
@@mansubrotherman9680 그쵸 상대를 누구로 만나느냐는 시대를 선택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죠. 장개석도 손문의 최측근 후계자인 왕정위를 누르고 좌익에서 우익으로 노선을 갈아타면서 북벌 대업에도 성공했지만 모택동을 만나면서 대만으로 쫓겨갔죠. 유비, 조조 모두 얼굴가죽은 두껍고 마음은 시커멓다고 청말의 이종오가 주장했는데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유비나 유방이나 도망칠 때는 처자식을 나몰라라 했는데 항우는 우미인을 항상 곁에 두었고 무적의 전투력을 가졌지만 조물주는 한 인간에게 모든 것을 다 주지는 않았는가 봅니다. 체면을 중시해서 다시 강동의 부모들의 얼굴을 보기 부끄러워한 인물이었지만 유방은 아버지를 솥에 삶겠다는 말에도 한 그릇 달라고 할 정도의 인물이면서 도망칠 때는 자식도 마차에서 차버려서 마부 하후영이 다시 챙겨오는 수준의 인성이었다고 하죠. 현실의 이익에 민감한 친일파들이 성공하고 정의를 추구했던 독립운동가들이 현실에서 패배하는 것은 그러려니 하는데 국립묘지에서도 친일파들이 무덤까지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은 좀 그렇쵸. 더불어 미국도 대통령과 졸병 국립묘지 무덤 사이즈가 동일한데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그런 이야기가 전혀 먹히지 않으니 앞으로 백년이 지나도 현실의 기득권자들이 살기좋은 세상인 것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사실 삼국지의 세 군주들 모두 평가가 케바케로 많이 갈리지. 유비만 호평과 혹평이 크게 갈리지는 않음. 당장의 조조는 서주대학살 포함해 욕먹을 게 많아서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눈부신 업적도 많아 칭송하는 사람들도 많음.
유비와 조조는 둘 다 일단 50:50프로 비율로 좋아하는 사람과 혐오하는 사람이 크게 갈리는 편임.
그러나 손권만큼은 오빠들도 쉴드를 유독 치기 제일 힘든게 가장 많아 선호보다 혐오 쪽이 더 많음. 특히 이궁의 변 사태 일으키고 멀쩡한 충신 육손을 토사구팽시키는 개삽질하는 바람에 오나라 패망의 단추를 눌러버림 ㅋㅋㅋㅋㅋ
그래서 손권은 아무리 좋게 잘 쳐줘봐야 30:70프로. 혐오하는 사람이 더 많음 ㅋㅋㅋㅋㅋㅋ 욕쳐먹을 게 유비와 조조보다 압도적으로 더 많아서 ㅋㅋㅋㅋㅋㅋㅋ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조는 뛰어난 시인이며 다정다감한 권력자였습니다. 자신의 느낌을 숨기지 않지만 내심 냉혹한 성향입니다. 초기 어려운 시절 자신에게 협조했던 동소나 인사권을 맡겼던 최염 모두 제거했죠. 능력있고 바른말을 한 것이 거슬린 것이었죠. 양수도 능력이 있다고 보았으나 후계구도의 문제를 제거하기 위해 미리 싹을 제거했다고 보여집니다. 손권의 장점은 인재를 잘보고 발탁할 수 있는 능력에 실행력을 갖고 있는 것이죠. 초기에는 손씨가문의 위세가 오나라 호족들에 비해 눌리므로 참고 있었지만 점차 후계구도를 정리하면서 중신들을 조금씩 제거하며 스스로 오나라 기둥들을 제거하는 자충수를 두었다고 평가됩니다. 유비는 겉으로는 온화하지만 난세에 적수공권으로 남의 밥을 오래 먹은 관계로 말을 적지만 현실파악은 확실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비슷한 캐릭터가 노태우 같은 인물로 어린 시절부터 눈치밥을 오래 먹고 2인자 생활을 오래 하여 참는 것이 일상화되어 보여므로 순해보이지만 내면은 전혀 다르고 권력을 잡으면 달라지는 케이스라고 봅니다. 훗날 유비가 장유를 죽이자 제갈량이 무슨 죄로 죽였느냐고 질문하자 ""향기로운 난초라도 문앞에 피어나면 제거하지 않을 수 없지. 그 난초가 무슨 죄가 있느냐고? 그 죄는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는 것이지.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권력을 가진 유비와 객장이던 시절의 유비는 다른 것이겠죠. 그 조짐은 백문루에서 이미 보여졌다고 생각합니다. 조조에게 묶인 여포는 유비의 도움말을 청했지만 여포를 선봉장으로 쓸 것인가를 고민하는 조조를 유비는 한방으로 생각을 정리해줍니다. 정원, 동탁의 말로를 생각해보라는 말이지요. 여포는 거칠었지만 유비를 믿었고, 유비는 공손했지만 여포를 전혀 믿지 않았던 것이지요. 유비를 믿은 여포를 아무도 동정하지 않듯이 리더에게 맹종하는 팔로우들도 교주에게 맹종하는 신도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삼국지는가짜입니다
나관중 삼국연희
그당시 활약 장수없었다고
발표했습니다
단지. 허구소설 일뿐이라고요
진나라 시절 진수가 작성한 정사 삼국지가 존재하고 사마광의 자치통감에서도 삼국시대의 역사가 기술되어 있습니다. 원말명초의 나관중이 시대 분위기상 주희의 명분론에 입각하여 유관장의 촉을 정통으로 기록하여 당시 이민족 몽골에 지배당한 한족의 원통함을 씻으려고 하였을 뿐입니다. 물론 모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표현처럼 왜곡도 존재하지만 인간의 한계로 인정하여야 할 것이지 실존하였던 위, 촉, 오의 삼국시대를 가짜라고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