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공부하면 할 수록, 형이상학자들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제 1원칙이나 절대적인 진리는 없고 인간성이 지닌 한계 속에서 개인의 진리, 집단의 진리, 순간의 진리라는 것만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들 밀의 진리란 어디 한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파편적으로 흩어져있다는 말처럼 대화가 중요한 것 같구요. 기술의 발전으로 세계화 속에서의 지역화가 일어나고 있는 현재, 가치 문제에 있어서도 극단주의 팽배하고 있는 요즘 같은 때 더더욱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다고 편식하고, 교류의 길을 차단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자세로 상호 존중하며 대화를 나눠야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그나마 진리에 가까운 무엇에라도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측면에서 뚝딱 철학처럼 다양한 시각에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채널들이 너무 고마운 것 같습니다.
철학과로 편입을 고민하던 때에 어떤 분이 저에게 그러더군요. "그런 거 배워서 어디다 써먹느냐?" 그때 교수님의 영상을 봤었더라면 제가 명확히 답변을 했을텐데요. 횡설수설하던 당시의 제가 부끄럽네요 ㅎㅎ. 저에게도 철학은 삶을 바라보는 관점과 척도, 그리고 개인적 선택에 크나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니 지금 이 새벽에도 교수님의 영상을 보면서 제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거겠죠 ㅎㅎ. 우스갯소리로 "문송합니다"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사실 저는 문과라서 행복합니다. 현금가치가 뛰어난 명강의를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완전히 틀리지도 않은, 그렇다고 완전히 옳은 것도 아닌. 미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저런 식의 사상이 발전할 수 밖에 없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신대륙에 발을 들인 이후로 끊임없이 전쟁을 하고 생존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근본적인 부분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을 겁니다. 우연인지 운이 좋았는지 짧은 역사 동안 그런 방법을 활용해 괄목한만한 발전을 이루기도 했구요. 사람은 원래 자신의 방법으로 한번 성공을 맛보고 나면 그 방법론을 수정하기 힘든 법이죠..^^
저는 민속학을 공부하는 외국인 대학원생인데 민속학을 연구하기 위해 체험주의라는 철학적 방법론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론과 학자들이 수없이 많아서 누가 누군지 뭐가 뭔지 헤매다가 교수님을 찾았네요~ 바로 책 두권을 구입했습니다. 내일 많은 기대가 되네요 ^^ 감사합니다
실용성은 인간의 삶에서 중요하긴 하나 그것이 전부가 될 수 없죠 예컨데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예쁜 미술작품을 보고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행위는 소위 여가 시간으로 분류되며 경제학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죠 그러나 인간에게는 이러한 여가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니 어쩌면 경제 활동보다도 더 중요할 수 있죠 "형이상학을 왜 공부하냐?"라는 물음은 물질주의적 가치가 가속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한 번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 삶의 방향성과 사회가 수행할 목표를 결정해주는 것이 바로 형이상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렇게 살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가?" 등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는 것은 언제나 형이상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과 대답이 없다면 인간 삶은 단순히 욕망을 만들고 채우기를 반복하는 공허한 과정이 되겠죠. 박사님 말씀처럼 그것이야말로 가장 높은 수준의 '실용적 가치'를 가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형이상학을 왜 공부하냐는 말에 의 한 장면이 떠오르네요. 회의 중에 앤디가 stuff라고 했다가 미란다한테 독설을 듣는 장면인데요. 그들이 회의에서 고민하는 것들이 앤디가 보기에는 아무 차이도 없이 똑같아 보여서 웃었었죠. 미란다는 앤디가 입고 있는 스웨터의 파란색이 어떤 기원을 가지는 것인지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앤디가 의미없다고 생각하는 패션이 실생활 패션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말합니다. 철학은 그런겁니다. 당장은 무의미해보이지만 실제로 우리의 사고방식과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자신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자신이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모두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철학에서 나온 것이죠. 철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자연인처럼 사회와 격리되어 살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으로 철학은 우리에게 흘러들어옵니다. 아무 의식없이 산다면 그것들을 모두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죠. 철학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상호텍스트성이 아닐까요? 내가 지금 하는 한 마디 말도 사실은 수천년의 철학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말입니다. 여자와 남자가 동등한 인격체라는 명제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역사와 철학과 희생이 필요했는지 생각만 해봐도 이해갈 것입니다.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것들은 실상은 쉽게 만들어진 것이 하나도 없죠.
마지막에 하신 말 참 공감되네요. 철학자 Derek Parfit도 자신의 대표작 Reasons and Persons에서 분리된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편 뒤에, 이 주장이 자신을 더 이타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며 형이상학 또한 흔히 말하는 '철학의 위안'을 줄 수 있다고 했죠.
제가 생각하기엔 인간은 동기를 결코 실용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용성만을 생각하는 인간은 언제나 모든 선택에 있어서 확률을 계산해야 합니다.이것은 개별적인 상황에 따라 다른 선택을 강요할수도 있고 이는 한 인간의 정체성을 흔들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게 믿음입니다. 어떠한 일관적인 믿음이 있다면 인간은 그 속에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자신의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고, 그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근거가 필요합니다. 종교는 그 근거를 기적에서 찾았습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신의 근거를 믿지 않습니다. 그 보다 국가와 돈을 믿죠. 돈과 국가는 어떤면에서는 구시대 신보다 더 일관적이지 못합니다. 저는 믿음의 근거를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애게 있어서 철학은 그런 의미입니다. 항상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주 예전에 저에게 미국 철학자 스승이 비유하시길 헤겔의 철학은 미국의 도시 디트로이트 같다고 하셨습니다 선해하자면 (철학)산업폐기물의 집대성이라고 할까? 오늘 말씀하신 것을 적용해 보면 산업폐기물도 어떤자에게는 한낱 쓰레기지만 어떤자에게는 재활용을 통한 큰 현금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네요 제임스는 절대 진리는 아니지만 항상 유용할 수 밖에 없는 말씀을 하신 것 같아요 마치 모든 문제를 다 해결 할 수 있는 하나의 절대 도구는 없지만 어떤 문제라도 그 상황에 걸맞은 가치를 창출하는 도구는 있을 수 있다라던가... 다시 한번 유익한 영상 감사드려요...^^
듀이 사상의 설명에서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질문드립니다. 생활가운데 직면하는 "문제 해결능력이 생겨나고 그것이 이성이다."라고 말씀하시고, 그 이성의 활동에 의해 지식과 사상이 생겼났다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럼 이성은 경험적 산물인가요? 그리고 이성 활동과 그 결과물인 지식과 사상이 다른 것인가요? 아니면 이성활동 자체가 지식이며 사상인가요?
신(형이상학, 이데아)이 있다고 행동하는 것과 없다고 생각하는 것 만이 아니고 어떠한 성향의 신인지도 갈립니다. 각자의 신은 엄밀히 말하면 모두 다릅니다. 이유는 완전히 동일한 경험과 매 순간 선택이 일치해야 기억이 같아지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공허한 기억공간으로 정신을 접지한다면 마음이 편하면 그만 입니다. 전자회로에서 접지의 역활은 쓸모 없는 잔류전기를 없애는 역할이고 이로써 전자회로 소자의 수명을 늘려 줍니다. 허상이 실질계에 미치는 역할은 딱 여기까지가 한계입니다. 의지에 힘이 실릴려면 필요없는 것(망상, 잡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최고성능의 수퍼카는 최고성능의 냉각기을 장착하는 원리와 같죠.
철학을 하긴하는데 인생에 대한 개척보단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것도 현금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을지도. 철학에서 이성의 개념도 이론이성과 실천이성으로 나뉘잖아요 ㅋㅋ 제가 천재는 아니지만 쇼펜하우어는 일반인에게 관념, 태양은 일상을 살아가는 길을 알려줄 빛이지만 천재에게는 태양은 "어떤 원리로 빛이 나서 사람들을 이끌까" 이렇게 본인의 생각을 즐기는 소재에 불과하다는 듯 의지와 표상에 쓴 기억이 난달까요. 광기와 천재 부분 대목에서요.
샷건을 사랑하는 나라. 야만적이라 불리지만, 그만큼 바로 앞 현실을 바라보는. 그런데, 그만큼 바로 앞 현실 밖에 못보는. 이미 양자 역학에 다차원 존재를 인정하는 수준인데, 현재가 지나가면 과거는 쓸모 없다니. 이미 노자에 천하의 모두가 아름답다고 아는 것이라도 그것을 아름답다고 일컬으면 이미 미운 것이다. 모두가 선하다고 아는 것을 선하다고 일컬으면 이미 선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와 무는 서로를 낳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를 이루며, 길고 짧음은 서로 견주어지고, 높음과 낮음은 서로 기울어지고, 소리는 서로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성스러운 사람은 일컬음 없이 일을 하는 방식을 취하니, 행하되 말을 하지 않음으로 가르치고, 만물을 만들어내지만 이에 대해 말하지 않으며, 살아가지만 어떤 존재로 머무르지 않고, 추구하고 실행하지만 그에 의존하지 않으며, 공을 이루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일하는 자는 머무르지 않으니, 이로써 떠나가지 않는다. 그랬었대요~ 어찌, 현재 과거를 나누고. 쓰임과 무쓸모를 가를 수 있겠어요~ 참. 마치 일직선에 +1, -1 이 존재 하며, 수없는 숫자들의 나열 속에 허수 i 가 일직선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건 아니듯이. X축만 바라보는 시선, 그런데 Y축도 존재 했으며, Z축도 존재하지만 보지 못하는 시선..
인간의 도구가 동물의 도구와 다른 능동적 특징으로 보면 실용주의가 아니라 수동주의라고 해야될것 같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문제만 해결할 수 있는걸 실용적이라고 할수없고 존재란 무엇인가 이런 철학적인 문제가 뜬구름 잡는 소리 같지만 이보다 더 중요하고 실용적인 문제는 없을겁니다.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시간은 존재하는 겁니까? 그냥 상식 선 에서 존재하는 건가요? 아니면 관념인가요? 먼가요? 이에 대해서 여러가지 과학적 설이 있습니다만 어떤 사람들은 그냥 시간은 발명품이라고 하고, 과연 시간은 발명품인가요? 시간이란 먼가요? 사람의 발명품인가? 아닌가?
미국적인 너무도 미국적인 철학 맞군요... 이들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이상학이 누구에게 현금가치가 있다면 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실용주의는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형이상학을 거부하자는 취지가 아닌거죠... 찰나주의와 영원주의에 대해서 입니다..과연 모든것이 살 찰나이고 그 찰나 조차 무한소 즉 제로에 가깝다는 입장이 불교의 공사상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영원주의는 모든 행동의 모든 기록은 영원히 남는다...니체의 영겁회귀 사상처럼 들리는군요...헌데 현재주의나 영원주의 선택이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또한 양자택일이 가능할 까하는 생각도. 결국 대부분은 현재주의와 영원주의가 혼합된 생각을 하며 살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입니다. 어느 쪽이든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알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이죠. 단 실용주의적 현금가치를 생각한다면 영원주의를 선택하는 쪽이 보다 도덕적으로 살 것이다라고 추정할 수 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든 행동이 영원이 남거나 반복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에 대한 심판하는 자가 없다면 누가 그것을 신경쓸가요? 하는 생각이 듭니다. 즉 영원주의란 최후의 심판을 하는 그리고 그러한 업에 대해 보상과 벌을 내리는 신을 가정하지 않는다며 찰나주의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오늘날 실용주의는 돈벌이와 관련되어 언급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경향이 가장 단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대학의 커리큘럼이다. 학생들을 모집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여러 대학에서는 학과의 구조조정을 단행해 왔다. 졸업해서 취직할 길이 막연한 학과는 폐과를 시키거나 학과의 명칭을 바꾸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가장 불이익을 받는 학과는 소위 순수학문과 관련된 학과들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기를 포기하고 취업학원이나 고시원이 되기를 자처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식의 구조조정을 실용주의적이라고 자평한다. 돈 되는 학과를 중심으로 대학을 운영하겠다는 대학의 소위 CEO 총장들의 이런 생각들은 과연 실용주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유선 실용주의
이것은 실용주의라고하기보다는 차라리 실리주의나, 신자유주의, 현실순응주의 등으로 부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오로지 취업이나 졸업 후의 안정된 직장을 얻는 것을 목표로 대학에 들어오는 학생들이 과연 실용주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개성을 실현하고 기존의 틀을 깨뜨리는 창의력을 키울 수가 있을까? 아마도 그런 대학의 교수들은 현실의 제도와 관행에 순응하는 인간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것이며, 학생들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얄팍하고 단편 적인 지식을 습득하는데 몰두할 것이다. 실용주의 철학자들은 전체적으로 사고하고, 경계를 넘어서 사고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소위 취업이 잘되는 실용적인 학과와 과목만으로 커리큘럼을 채우는 대학은 역설적이게도 실용주의적인 정신을 죽이게 될 것이다. 듀이는 실용주의적인 지식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이유선 실용주의
“우리로 하여금 환경을 우리의 욕구에 맞게 적용할 수 있게 해 주고, 우리의 목적과 욕망을 우리가 살고 있는 상황에 적용할 수 있게 해 줄 수 있도록 우리의 성향 안으로 조직화되어 들어온 것만이 진정으로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은 단순히 우리가 지금 의식하고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해할 때 우리가 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성향을 구성하는 것이다. 행위로서의 지식은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사이의 연관을 이해함으로써 곤란한 일을 풀어나간다는 관점으로 우리의 성향 중 어떤 것을 의식으로 가져가는 것이다.”27) 듀이는 실용주의적인 지식이 돈이 되는 지식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삶의 연관을 조망함으로써 우리가 당면한 문제 제를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지식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교양이 필요하다. 편협하고 단편적인 지식을 기능적으로 습득해서는 다양한 삶의 맥락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없을 것이다. 전체를 조망하면서 구체적인 맥락에서 정확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실천적 지혜가 실용주의자들이 말하는 지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유선 실용주의
로티의 경우에는 실용주의적 지식인상을 ‘문학적 지식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로티는 문학적 지식인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내가 ‘문학적 지식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현재 인간의 상상력이 직면한 한계와 대면하지 않고 사는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문학적 지식인은 소크라테스적인 자기 성찰과 자기 지식이라는 이념을, 인간에게 펼쳐져 있는 더 많은 가능성을 숙지함으로써 자아를 확장하는 이념으로 대치하였다. 문학적 지식인은 어떤 책이나 전통이 지고한 힘과 사랑을 지닌 인간이 아닌 존재와 당신을 연결시켜 줄 수 있다는 종교적 이념을 블룸적인 사상으로 대치한다. 블룸의 생각에 의하면, 당신이 더 많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인간 삶의 더 많은 방식들을 고려할수록, 더욱더 인간적이 될수록, 시간과 우연에서 벗어나려는 꿈을 덜 꾸고 싶어지고 우리 서로를 제외하고는 우리 인간들이 기댈 곳은 없다는 것을 더욱더 확신하게 된다.”28) -이유선 실용주의
로티가 ‘문학적 지식인’이라고 부르는 인물은 기존의 관습이나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지식인이다. 그는 그러한 가치를 만들어냄에 있어서, 전통적인 지식인들이 했던 것처럼, 신이나 진리와 같은 초인간적인 어떤 것에 호소하기보다는 인간이 처한 역사적 한계와 우연성을 받아들이면서,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인간의 가능성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인물이다. 로티가 여기서 ‘문학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실용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을 깨기에 충분할 것이다. 문학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흔히 실용적인 것과는 가장 거리가 먼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유선 실용주의
그러나 로티는 지금까지의 보편적인 진리에 대한 탐구에 바탕을 두고 있는 철학적, 과학적 문화에 대한 대안적인 문화를 ‘문학적 문화’라고 부르고 있다. 왜냐하면 소설이나 시야말로 영원성이나 보편성에 기대지 않으면서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 시키는 창조적인 상상력이 발휘되는 대표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실용주의적인 지식이란 현실에 순응해서 돈벌이를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지식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처한 한계에 도전하면서,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창조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대학이 실용주의적인 지식인을 키우고자 한다면, 단편적인 지식이나 기능을 숙달한 직업적 전문가를 키울 것이 아니라, 폭넓은 교양을 갖추고 문제해결 능력을 습득한 실천적인 지혜를 갖춘 지성인을 길러 내야 할 것이다 -이유선 실용주의
Too many issues to list the details.. To me, everything is the matter of who owns self. A self-owned self, the majority of selves in the world, encounters all the imaginable and manifested issues. A god-owned self, aka the self possessed by god(s), is the free man, the baptized of absolute freedom shower. God(s) is false only until a god(s) comes into you. Wishing you the god(s)'s blessings. Amen.
철학은 공부하면 할 수록, 형이상학자들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제 1원칙이나 절대적인 진리는 없고
인간성이 지닌 한계 속에서 개인의 진리, 집단의 진리, 순간의 진리라는 것만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들 밀의 진리란 어디 한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파편적으로 흩어져있다는 말처럼 대화가 중요한 것 같구요.
기술의 발전으로 세계화 속에서의 지역화가 일어나고 있는 현재, 가치 문제에 있어서도 극단주의 팽배하고 있는 요즘 같은 때
더더욱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다고 편식하고, 교류의 길을 차단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자세로 상호 존중하며 대화를 나눠야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그나마 진리에 가까운 무엇에라도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측면에서 뚝딱 철학처럼 다양한 시각에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채널들이 너무 고마운 것 같습니다.
확실히 실용주의는 탁상공론을 막아준다는 장점이 있긴 하겠지만, 역시 과도하게 주장된다면 보편 윤리를 무시하는 꼴이 되어버리니 위험하겠군요. 항상 유익한 영상 감사합니다^^.
철학과로 편입을 고민하던 때에 어떤 분이 저에게 그러더군요. "그런 거 배워서 어디다 써먹느냐?" 그때 교수님의 영상을 봤었더라면 제가 명확히 답변을 했을텐데요. 횡설수설하던 당시의 제가 부끄럽네요 ㅎㅎ. 저에게도 철학은 삶을 바라보는 관점과 척도, 그리고 개인적 선택에 크나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니 지금 이 새벽에도 교수님의 영상을 보면서 제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거겠죠 ㅎㅎ. 우스갯소리로 "문송합니다"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사실 저는 문과라서 행복합니다. 현금가치가 뛰어난 명강의를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완전히 틀리지도 않은, 그렇다고 완전히 옳은 것도 아닌. 미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저런 식의 사상이 발전할 수 밖에 없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신대륙에 발을 들인 이후로 끊임없이 전쟁을 하고 생존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근본적인 부분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을 겁니다. 우연인지 운이 좋았는지 짧은 역사 동안 그런 방법을 활용해 괄목한만한 발전을 이루기도 했구요. 사람은 원래 자신의 방법으로 한번 성공을 맛보고 나면 그 방법론을 수정하기 힘든 법이죠..^^
내가 제일 줗아하는 프래그머티즘….
철학과에서 철학공부를 하더보면 뜬구름잡는 형이상학적인 주제는 와닿지도 않은데
실용주의는 말그대로 세계를 샌드박스로 여기고 마구 흙놀이 해본다는 느낌
저는 민속학을 공부하는 외국인 대학원생인데 민속학을 연구하기 위해 체험주의라는 철학적 방법론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론과 학자들이 수없이 많아서 누가 누군지 뭐가 뭔지 헤매다가 교수님을 찾았네요~ 바로 책 두권을 구입했습니다. 내일 많은 기대가 되네요 ^^ 감사합니다
머니머니 해도 머니징~ 그런데 확실히 비 실용적이라고 여긴 분야나 학문이 시간이 지나 엄청난 실용성과 효율성을 가져온다는 생각이 드네요. 특히 수학 분야가 그런 것 같아요
실용성은 인간의 삶에서 중요하긴 하나 그것이 전부가 될 수 없죠 예컨데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예쁜 미술작품을 보고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행위는 소위 여가 시간으로 분류되며 경제학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죠 그러나 인간에게는 이러한 여가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니 어쩌면 경제 활동보다도 더 중요할 수 있죠
"형이상학을 왜 공부하냐?"라는 물음은 물질주의적 가치가 가속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한 번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가 시간은 여가활동으로 인한 소비 촉진이나 노동활동을 지속할 힘을 주는 충전 역할을 해준다고 봤을 때 충분한 경제학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무엇에 대해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에 끄덕여지는 영상이네요
많이 공감이 가네요. 형이상학적 문제가 실제 삶의 태도에 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쓸모없는 논쟁으로 보기가 힘들어지니까요.
서인천고 국어과 교사분들 시험 문제 출제 잘하시길 바랍니다...
존듀이의 하우위싱크를 읽다가 이 사람이 천재라는 생각이 들어서 궁금하여 찾게 되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를 이해하고 책을 이해하는데에도 저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삶의 태도,,,,,,,,, 빅터 플랭크 박사의 로고테라피........
삶의 의미를 심도 있게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에 충실하게 될 수밖에 없을듯 싶네요...
삶의 표면에 다가오는 모든 것이 값진 경험이요 삶 그 자체가 아닐지......
감사합니다. 🙏
개인 삶의 방향성과 사회가 수행할 목표를 결정해주는 것이 바로 형이상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렇게 살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가?" 등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는 것은 언제나 형이상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과
대답이 없다면 인간 삶은 단순히 욕망을 만들고 채우기를 반복하는 공허한 과정이 되겠죠. 박사님 말씀처럼
그것이야말로 가장 높은 수준의 '실용적 가치'를 가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형이상학을 왜 공부하냐는 말에 의 한 장면이 떠오르네요. 회의 중에 앤디가 stuff라고 했다가 미란다한테 독설을 듣는 장면인데요. 그들이 회의에서 고민하는 것들이 앤디가 보기에는 아무 차이도 없이 똑같아 보여서 웃었었죠. 미란다는 앤디가 입고 있는 스웨터의 파란색이 어떤 기원을 가지는 것인지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앤디가 의미없다고 생각하는 패션이 실생활 패션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말합니다. 철학은 그런겁니다. 당장은 무의미해보이지만 실제로 우리의 사고방식과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자신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자신이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모두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철학에서 나온 것이죠. 철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자연인처럼 사회와 격리되어 살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으로 철학은 우리에게 흘러들어옵니다. 아무 의식없이 산다면 그것들을 모두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죠. 철학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상호텍스트성이 아닐까요? 내가 지금 하는 한 마디 말도 사실은 수천년의 철학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말입니다. 여자와 남자가 동등한 인격체라는 명제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역사와 철학과 희생이 필요했는지 생각만 해봐도 이해갈 것입니다.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것들은 실상은 쉽게 만들어진 것이 하나도 없죠.
오늘 영상은 뭔가 "왜 형이상학을 공부하죠?"라고 질문한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은 대답인 것 같네요ㅋㅋㅋ
마지막에 하신 말 참 공감되네요. 철학자 Derek Parfit도 자신의 대표작 Reasons and Persons에서 분리된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편 뒤에, 이 주장이 자신을 더 이타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며 형이상학 또한 흔히 말하는 '철학의 위안'을 줄 수 있다고 했죠.
행동과학 찾아보다가 실천 실용까지 오니 떡하니 김교수님 나오심, 잘보고 갑니다. 아...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두루 두루 용이하게 사용하는 인간인것을 부정 할수 없습니다😂
사람과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다는 것은 살아갈 때
어떠한 중심이 되어주고 삶의 목적과 목표에 대한 답을 주는 것 같습니다.
수능 비문학떄문에 봤는데 도움되는건 너무좋고~
잘보았습니다. 스마트폰에 파묻혀 있는 중.고1학년에게 선생님책을 권해도 될까요? 소화불량걸릴까보아 주저되네요
김박사님께서는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대학에서 교수로서 강의를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저희 학교로 오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진리의 가치는 사람 마다 다르다."이걸 왜 공부해?" 이런 질문은 의미가 없다.
제가 추상, 관념 개념을 넘 좋아하지만.
대체 이걸 어디다써 ..하고 가끔 현타가 왔었는데 실용주의를 배우니 맘이 좀 편안해집니다.
철학적 사고는 넘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쨌든 듀이 퍼스 제임스 이런사람들은 형이상학도 열라 잘했음
$미쿡사람$ 영상 잘 보았습니다 선생님^^
좋은 영상 잘 봤습니다. 혹시 실용주의에 대한 도서가 있을까요?
마지막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실용성, 유용성이란 것은 상대적인 것이죠. 형이상학을 토대로 어떠한 깨달음을 얻고 인간의 삶을 사는데 있어서 원칙이 잡힌다면 그것은 아주 실용적인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무엇이든지 내가 받아들이기 나름이라는 것입니다.
와 대박 실용주의가 영상 하나로 완벽하게..이해됐어요… ㅜㅜㅜ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전 실용주의이론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확실히 포스트 모더니즘 사회에서 드럽게 까일만한 주장이긴 하죠 ㅋㅋㅋㅋㅋ
돈으로 뭔가를 산다고 생각하진 않고 돈으로 교환한다고 생각함.다만,교환의 대상이 그 대상의 본질이 아니라 흔적이라고 생각함.
why, what, when, how 중에서 why 를 특별히 중시하는 철학이 실용주의
말씀하신대로 형이상학 논리가 사실은 실용적인 논리가 되기도 하지만 현 상황에서 나에게 부족하여 필요한 것은 실용주의. 자신 스스로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물어보는 것이 필요한듯.
이번편 참 좋았습니다.
인간이 사회 속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 정말 필요한 형이상학. 물론 과학, 윤리, 심리학, 수학도 필요. ㅋㅋ
저는 우리나라 교육계가 기초학문에 대해 조금 더 쉽고 조금 더 재미있게 교육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듀이!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인간은 동기를 결코 실용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용성만을 생각하는 인간은 언제나 모든 선택에 있어서 확률을 계산해야 합니다.이것은 개별적인 상황에 따라 다른 선택을 강요할수도 있고 이는 한 인간의 정체성을 흔들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게 믿음입니다. 어떠한 일관적인 믿음이 있다면 인간은 그 속에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자신의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고, 그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근거가 필요합니다. 종교는 그 근거를 기적에서 찾았습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신의 근거를 믿지 않습니다. 그 보다 국가와 돈을 믿죠. 돈과 국가는 어떤면에서는 구시대 신보다 더 일관적이지 못합니다. 저는 믿음의 근거를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애게 있어서 철학은 그런 의미입니다.
항상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그 질문은 마치 망망대해중 항해하는 배에서 한 선원이
"왜 우리는 낚시로 자급자족하지 않고 아까운 석탄을 쓰며 나아가나요?" 라고 묻는것과 비슷하게 들렸습니다.
주워들은 말에 따르면 쓸데없는 일을 할 때 온전한 인간이 된다고 합니다. 형이상학적 사색이 이에 해당할 것 같네요.
이런 거 (우리) 미쿡 사람들에게 안맞아요... 어색해하다가 결국 웃음^^
재미있네요. 실용주의 철학은 제가 듣기에는 오컴의 면도날이 적용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같네요.
너무 이해가 잘 되게 설명해주신 것 같아요 ㅎㅎ 짱 !!
칸트나 헤겔이나 하이데거 이런 양반들의 글을 릭으면 가슴이 아주 답답해 옵니다. .. 전문용어로 고구마 먹는다고 하죠
어제가 있어
오늘이 있고
오늘이 있어
내일이 있습니다
어제 오늘 내일은 하나입니다
영상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주 예전에 저에게 미국 철학자 스승이 비유하시길 헤겔의 철학은 미국의 도시 디트로이트 같다고 하셨습니다
선해하자면 (철학)산업폐기물의 집대성이라고 할까?
오늘 말씀하신 것을 적용해 보면 산업폐기물도 어떤자에게는 한낱 쓰레기지만 어떤자에게는 재활용을 통한 큰 현금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네요
제임스는 절대 진리는 아니지만 항상 유용할 수 밖에 없는 말씀을 하신 것 같아요
마치 모든 문제를 다 해결 할 수 있는 하나의 절대 도구는 없지만 어떤 문제라도 그 상황에 걸맞은 가치를 창출하는 도구는 있을 수 있다라던가...
다시 한번 유익한 영상 감사드려요...^^
수능특강 독서ebs에 프래그머티즘 지문이 나오는데 마치 뚝딱 철학 영상 보고서 대사만 쭉 따라 적은 수준인 지문이 있네요. Ebs에 저작권비 달라고 하시죠!!
듀이 사상의 설명에서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질문드립니다. 생활가운데 직면하는 "문제 해결능력이 생겨나고 그것이 이성이다."라고 말씀하시고, 그 이성의 활동에 의해 지식과 사상이 생겼났다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럼 이성은 경험적 산물인가요? 그리고 이성 활동과 그 결과물인 지식과 사상이 다른 것인가요? 아니면 이성활동 자체가 지식이며 사상인가요?
신(형이상학, 이데아)이 있다고 행동하는 것과 없다고 생각하는 것 만이 아니고 어떠한 성향의 신인지도 갈립니다.
각자의 신은 엄밀히 말하면 모두 다릅니다.
이유는 완전히 동일한 경험과 매 순간 선택이 일치해야 기억이 같아지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공허한 기억공간으로 정신을 접지한다면 마음이 편하면 그만 입니다.
전자회로에서 접지의 역활은 쓸모 없는 잔류전기를 없애는 역할이고 이로써 전자회로 소자의 수명을 늘려 줍니다.
허상이 실질계에 미치는 역할은 딱 여기까지가 한계입니다.
의지에 힘이 실릴려면 필요없는 것(망상, 잡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최고성능의 수퍼카는 최고성능의 냉각기을 장착하는 원리와 같죠.
흥미있게 들었습니다.
철학을 하긴하는데 인생에 대한 개척보단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것도 현금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을지도.
철학에서 이성의 개념도 이론이성과 실천이성으로 나뉘잖아요 ㅋㅋ
제가 천재는 아니지만 쇼펜하우어는 일반인에게 관념, 태양은 일상을 살아가는 길을 알려줄 빛이지만 천재에게는 태양은 "어떤 원리로 빛이 나서 사람들을 이끌까" 이렇게 본인의 생각을 즐기는 소재에 불과하다는 듯 의지와 표상에 쓴 기억이 난달까요.
광기와 천재 부분 대목에서요.
샷건을 사랑하는 나라. 야만적이라 불리지만, 그만큼 바로 앞 현실을 바라보는.
그런데, 그만큼 바로 앞 현실 밖에 못보는. 이미 양자 역학에 다차원 존재를 인정하는 수준인데, 현재가 지나가면 과거는 쓸모 없다니.
이미 노자에
천하의 모두가 아름답다고 아는 것이라도 그것을 아름답다고 일컬으면 이미 미운 것이다.
모두가 선하다고 아는 것을 선하다고 일컬으면 이미 선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와 무는 서로를 낳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를 이루며, 길고 짧음은 서로 견주어지고,
높음과 낮음은 서로 기울어지고, 소리는 서로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성스러운 사람은 일컬음 없이 일을 하는 방식을 취하니,
행하되 말을 하지 않음으로 가르치고, 만물을 만들어내지만 이에 대해 말하지 않으며,
살아가지만 어떤 존재로 머무르지 않고, 추구하고 실행하지만 그에 의존하지 않으며, 공을 이루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일하는 자는 머무르지 않으니, 이로써 떠나가지 않는다.
그랬었대요~ 어찌, 현재 과거를 나누고. 쓰임과 무쓸모를 가를 수 있겠어요~
참. 마치 일직선에 +1, -1 이 존재 하며, 수없는 숫자들의 나열 속에 허수 i 가 일직선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건 아니듯이.
X축만 바라보는 시선, 그런데 Y축도 존재 했으며, Z축도 존재하지만 보지 못하는 시선..
상당한 내공이 ...
인간의 도구가 동물의 도구와 다른 능동적 특징으로 보면 실용주의가 아니라 수동주의라고 해야될것 같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문제만 해결할 수 있는걸 실용적이라고 할수없고 존재란 무엇인가 이런 철학적인 문제가 뜬구름 잡는 소리 같지만
이보다 더 중요하고 실용적인 문제는 없을겁니다.
먹고 싶은걸 먹고 보고싶은걸 보듯
가슴과 마음이 이끌리는걸 보며 배우고 생각할뿐이죠 후후훗
불교에서 말하는 상에 대한 입장과 비슷하네요
실용주위는 배금주의 다만 솔직한게 장점이라면 장점
미국을 지금의 위대한 나라로 만든 철학… 사변을 혐오함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시간은 존재하는 겁니까? 그냥 상식 선 에서 존재하는 건가요? 아니면 관념인가요? 먼가요? 이에 대해서 여러가지 과학적 설이 있습니다만
어떤 사람들은 그냥 시간은 발명품이라고 하고, 과연 시간은 발명품인가요? 시간이란 먼가요? 사람의 발명품인가? 아닌가?
17세기 실학주의 교육과 19세기 실용주의 교육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미국 실용주의 탄생의 배경에는 경제호황이 있다고 봐요. 그래서 지금같이 실업자가 많은 세상에서는 잘 맞지않는 철학같이 느껴지네요. 저는 우리 삶이 무용해도 의미는 있다고 봅니다.
그냥...요약하면 하고싶은 걸 하라는 걸로 들리네요
포보스 선정 한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철학
한국은 미국식 실용주의가 극대화된 사회같어요
@@jeonghodu 맞아요 천박할 정도로 더 극대화 되었죠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은데요... 저는 형이상학이 더 끌리네요 ㅎㅎ
실용주의는 현금화하여 바로바로 사용하구
형이상학은 토지.건물 부동산처럼 장기적으로 보유해서...
벼락거지를 면해보고자 합니다
ㅋㅋ.
실용주의 저랑 잘맞네요 ㅎㅎ
반반주의는 없나요?
후라이드 반 / 양념 반도 있잖아요.
미국적인 너무도 미국적인 철학 맞군요... 이들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이상학이 누구에게 현금가치가 있다면 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실용주의는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형이상학을 거부하자는 취지가 아닌거죠... 찰나주의와 영원주의에 대해서 입니다..과연 모든것이 살 찰나이고 그 찰나 조차 무한소 즉 제로에 가깝다는 입장이 불교의 공사상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영원주의는 모든 행동의 모든 기록은 영원히 남는다...니체의 영겁회귀 사상처럼 들리는군요...헌데 현재주의나 영원주의 선택이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또한 양자택일이 가능할 까하는 생각도. 결국 대부분은 현재주의와 영원주의가 혼합된 생각을 하며 살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입니다. 어느 쪽이든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알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이죠. 단 실용주의적 현금가치를 생각한다면 영원주의를 선택하는 쪽이 보다 도덕적으로 살 것이다라고 추정할 수 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든 행동이 영원이 남거나 반복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에 대한 심판하는 자가 없다면 누가 그것을 신경쓸가요? 하는 생각이 듭니다. 즉 영원주의란 최후의 심판을 하는 그리고 그러한 업에 대해 보상과 벌을 내리는 신을 가정하지 않는다며 찰나주의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08:55 라이프니치의 결정된 세상이 영원주의일까요? 그리고 5분 철학님은 어떤 현재주의와 영원주의 중 어떤 형이상학점 관점을 가지셨나요??
오늘날 실용주의는 돈벌이와 관련되어 언급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경향이 가장 단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대학의 커리큘럼이다. 학생들을 모집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여러 대학에서는 학과의 구조조정을 단행해 왔다. 졸업해서 취직할 길이 막연한 학과는 폐과를 시키거나 학과의 명칭을 바꾸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가장 불이익을 받는 학과는 소위 순수학문과 관련된 학과들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기를 포기하고 취업학원이나 고시원이 되기를 자처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식의 구조조정을 실용주의적이라고 자평한다.
돈 되는 학과를 중심으로 대학을 운영하겠다는 대학의 소위 CEO 총장들의 이런 생각들은 과연 실용주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유선 실용주의
이것은 실용주의라고하기보다는 차라리 실리주의나, 신자유주의, 현실순응주의 등으로 부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오로지 취업이나 졸업 후의 안정된 직장을 얻는 것을 목표로 대학에 들어오는 학생들이 과연 실용주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개성을 실현하고 기존의 틀을 깨뜨리는 창의력을 키울 수가 있을까? 아마도 그런 대학의 교수들은 현실의 제도와 관행에 순응하는 인간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것이며, 학생들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얄팍하고 단편
적인 지식을 습득하는데 몰두할 것이다. 실용주의 철학자들은 전체적으로 사고하고, 경계를 넘어서 사고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소위 취업이 잘되는 실용적인 학과와 과목만으로 커리큘럼을 채우는 대학은 역설적이게도 실용주의적인 정신을 죽이게 될 것이다.
듀이는 실용주의적인 지식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이유선 실용주의
“우리로 하여금 환경을 우리의 욕구에 맞게 적용할 수 있게 해 주고, 우리의 목적과 욕망을 우리가 살고 있는 상황에 적용할 수 있게 해 줄 수 있도록 우리의 성향 안으로 조직화되어 들어온 것만이 진정으로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은 단순히 우리가 지금 의식하고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해할 때 우리가 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성향을 구성하는 것이다. 행위로서의 지식은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사이의 연관을 이해함으로써 곤란한 일을 풀어나간다는 관점으로 우리의 성향 중 어떤 것을 의식으로 가져가는 것이다.”27)
듀이는 실용주의적인 지식이 돈이 되는 지식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삶의 연관을 조망함으로써 우리가 당면한 문제 제를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지식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교양이 필요하다. 편협하고 단편적인 지식을 기능적으로 습득해서는 다양한 삶의 맥락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없을 것이다. 전체를 조망하면서 구체적인 맥락에서 정확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실천적 지혜가 실용주의자들이 말하는 지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유선 실용주의
로티의 경우에는 실용주의적 지식인상을 ‘문학적 지식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로티는 문학적 지식인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내가 ‘문학적 지식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현재 인간의 상상력이 직면한 한계와 대면하지 않고 사는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문학적 지식인은 소크라테스적인 자기 성찰과 자기 지식이라는 이념을, 인간에게 펼쳐져 있는 더 많은 가능성을 숙지함으로써 자아를 확장하는 이념으로 대치하였다. 문학적 지식인은 어떤 책이나 전통이 지고한 힘과 사랑을 지닌 인간이 아닌 존재와 당신을 연결시켜 줄 수 있다는 종교적 이념을 블룸적인 사상으로 대치한다. 블룸의 생각에 의하면, 당신이 더 많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인간 삶의 더 많은 방식들을 고려할수록, 더욱더 인간적이 될수록, 시간과 우연에서 벗어나려는 꿈을 덜 꾸고 싶어지고 우리 서로를 제외하고는 우리 인간들이 기댈 곳은 없다는 것을 더욱더 확신하게 된다.”28)
-이유선 실용주의
로티가 ‘문학적 지식인’이라고 부르는 인물은 기존의 관습이나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지식인이다. 그는 그러한 가치를 만들어냄에 있어서, 전통적인 지식인들이 했던 것처럼, 신이나 진리와 같은 초인간적인 어떤 것에 호소하기보다는 인간이 처한 역사적 한계와 우연성을 받아들이면서,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인간의 가능성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인물이다.
로티가 여기서 ‘문학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실용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을 깨기에 충분할 것이다. 문학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흔히 실용적인 것과는 가장 거리가 먼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유선 실용주의
그러나 로티는 지금까지의 보편적인 진리에 대한 탐구에 바탕을 두고 있는 철학적, 과학적 문화에 대한 대안적인 문화를 ‘문학적 문화’라고 부르고 있다. 왜냐하면 소설이나 시야말로 영원성이나 보편성에 기대지 않으면서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 시키는 창조적인 상상력이 발휘되는 대표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실용주의적인 지식이란 현실에 순응해서 돈벌이를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지식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처한 한계에 도전하면서,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창조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대학이 실용주의적인 지식인을 키우고자 한다면, 단편적인 지식이나 기능을 숙달한 직업적 전문가를 키울 것이 아니라, 폭넓은 교양을 갖추고 문제해결 능력을 습득한 실천적인 지혜를 갖춘 지성인을 길러 내야 할 것이다
-이유선 실용주의
C S 퍼스 -- 고트하르트 귄터 -- 조지 스펜서 브라운
신천년의 논리학 건축가들 경이천재
석삼극 무진본 양웅 팔불중도 이분해탈 인식=의지 존재=사유
수능 특강 인문-예술12번 지문
실용주의는 공리주의와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공리주의에서 발전한게 실용주의 입니다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에 목적있다면,
실용주의는 성장그자체가 목적이 되어야한다고 보죠
도덕판단의 기준을 공리주의는 공리의 원리로 보고
실용주의는 지성적 행위를 통해 미래에 산출될 사건을 예측하는 판단이라고 봅니다
실용적인 것이 꼭 공리에 합당한지...
공리에 합당해도 비실용적일 수 있는지...
공리가 미분당하는 느낌이네요...^^
음. 실용주의는 아예 철학에서 빼야겠습니다. 왜 철학을 하는가? 걍 고상하게 살고 싶어서이다. 왜 시를 미술을 음악을 감상하는가? 라는 질문과 별 다를 것 없는 결과적으로 멍청한 대통령만 양산하는 오늘의 미국. 철학을 안해서 입니다.
미국은 바보가 아니에요
실용주의는 '남의 물건을 잘 훔치는 방법' 따위도 과연 가치 있는 지식인가 하는 문제점이 있다고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실용적이라 믿고 행했던 많은 일들이 지구를 죽이고 있지 않았나 싶네요
형이상학이 개소리이고 쓸모가 없기에 역설적으로 통과의례로 필요한 것인 아닌지....
저는 영원주의에 한표! ♡
상대에 대한 공감
물리학이나 화학에서 다루는 질량보전의 법칙의 문과적 해석
🗽🇰🇷 SBS 집사부일체 '윤석열' 후보 출연! 오늘 저녁 6시 30분 방송 예정!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생활유용성 ㄷㄷ 후천개벽 운운 하는 한민족과 확실히 차별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실용주의철학자들이야말로 자가당착의 끝판왕이었네요.
실용주의 연구할 시간에 당장 돈벌러 나갔어야되는거 아닌가 합니다.
그거 연구해서 돈벌었습니다..
ㅎㅇ
음~ 맛있어
^^
Too many issues to list the details..
To me, everything is the matter of who owns self. A self-owned self, the majority of selves in the world, encounters all the imaginable and manifested issues. A god-owned self, aka the self possessed by god(s), is the free man, the baptized of absolute freedom shower. God(s) is false only until a god(s) comes into you. Wishing you the god(s)'s blessings.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