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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건사고-기억하겠습니다
Добавлен 29 окт 2024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사건사고들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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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전날 400원이 모자랐던 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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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1일(수능예비소집일) 전주시 완산구에서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가던 A군이 400원이 모자르다는것을 확인하고 황급히 하차를 요구했지만 택시기사는 돈이없는데 왜탔냐는 대답과 함께 출발지로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고 겁이난 A군은 달리던 택시에서 뛰어내려 전치 8주의 부상을 입었다. 이 일로 택시기사는 감금치상 혐의로 징역 8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A군은 부상을 입은채로 수능을 보게된다.
북한강 토막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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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 토막살인사건은 2025년 10월 25일 중령 진급 예정인 38세 양씨가 자신과 내연관계였던 33세 군무원 A양을 살해한 후 토막내어 시신을 북한강에 유기한 사건이다. 정확한 동기는 수사중이지만 말다툼 끝에 격분한 양씨가 목을 졸라 살해한뒤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토막내어 유기한것이라고 추정된다. 양씨는 범죄를 모두 시인하면서도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였지만 시신을 담은 봉투가 떠오르지않게 돌을 넣은점, 북한강변에 범행도구를 숨긴점 등을 보아 계획살인으로 수사중이다. 한편, 피의자신상공개가 진행되었는데 양씨는 신상공개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하였지만 이는 기각되었고 강원경찰청을 통해 신상이 공개되었다.
이춘재가 화성에서 벌인 끔찍한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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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겠습니다. 이춘재사건은 1986년 2월 ~ 1994년 1월까지 총 15명을 살해한 사건이며, 그가 검거된 후 화성 연쇄살인 사건에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는 1986년 9월 15일 1차살인을 시작으로 14건의 연쇄살인을 저질렀으며 5차에 엽기살인으로 언론을 타기시작했고 점점 가학적인 살해행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미제사건이었던것이 2019년 DNA분석기술 발달로 1994년 1월 13일 청주처제살인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살고있던 이춘재를 진범으로 특정하게되고 결국 자백을 받아내지만 공소시효의 만료로 인해 공소권 없음으로 처분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억울한 사람들이 누명과 옥살이를 하기도하였는데, 무려 4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고문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중 윤모씨는 8차사건으...
20대부부를 노예로 사용한 편의점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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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겠습니다. 편의점 노예부부 사건은 2013년 8월 광주 광산구에 부인과 함께 편의점을 차린 김씨가 24시간 동안 문을 열어야 하는데 종업원을 구하기 힘들자 과거 같은 회사 동료였던 이씨부부를 노예처럼 부린사건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이씨 부부는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고, 이런 상황을 알고 있던 김씨는 “부인과 교대로 편의점에서 일해 달라”고 부탁하며,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의 방 한 칸을 보증금 300만원, 월 45만원을 내고 쓰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그는 최저시급의 절반정도만 주며 이씨부부를 2교대로 12시간씩 일을 시켰으며, 폭력을 일삼았고 이씨가 일할땐 그의 부인을 성착취하며 5살 아들을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폭행하며 학대하였다. 여기서 그치지않고 도박빚을 갚기...
촉법소년이 범죄를 저지르고 받은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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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겠습니다. 대전 렌트카절도운행 사건은 2020년 3월 29일 중학교 2학년이었던 학생 8명이 서울특별시에서 한 렌터카 업체의 렌터카를 절도하여 대전까지 운전하다가 경찰이 추격하자, 도주하는 과정에서 오토바이 배달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교 1학년 이건을 추돌하여 사망하게 한 뒤 도주한 사던이다. 가해자들이 촉법소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고 이들은 sns에 경찰서에서 담배피며 웃고있는 사진이나 친구들과 ‘분노의 질주를 했다.’라는 농담을 하는등 촉법소년이라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당당하게 행동했다. 이로 인해 국민청원등으로 촉법소년 폐지를 주장하는 이야기가 많이 돌았으며 그들은 정신차리기는 커녕 또다시 렌트카업체를 속여 무면허운전을하거나 무리지어 폭행과 갈취를 하는 모습을...
서초구 백화점에서 일어난 끔찍한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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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겠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1995년 6월 29일 서울의 삼풍백화점이 붕괴하여 502명이 사망, 부상자 937명이 발생하여 대한민국 단일 사건 중에서는 최대 사망자 수를 기록했다. 붕괴원인은 부실공사였는데, 원래 삼풍백화점은 삼풍쇼핑이라는 이름으로 종합상가로 설계되어 건설중이었지만 거의 완공에 가까워질 무렵 건축주 이준은 건물 용도를 돌연 백화점으로 변경하고 시공사에 원래 예정돼 있었던 4층 위에 1층을 더 얹어 도합 5층으로 건물을 시공으로 무리하게 변경하는 바람에 붕괴되었다. 운영중에도 붕괴의 전조현상인 펀칭(기둥이 옥상을 뚫는것)과 천장과 바닥이 침하되기도 하였지만 대피명령은 커녕 자가진단조차 하지않아 사고가 더욱 커지게되었다.
강서PC방에서 일어난 끔찍한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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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겠습니다. 피시방 살인사건은 2018년 10월 14일 서울특별시 강서구에 위치한 PC방에서 김성수가 신씨의 얼굴과 목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다. 김성수가 PC방에 들어오면서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자리가 너무 더럽다'고 지적하자 직원은 곧바로 자리를 치워주었지만 그 후에도 김성수는 계속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이유로 시비를 걸었다.(김성수는 알바생이 욕을했다 주장) 이후 김성수는 게임을하다 알바생에게 환불을 요청하며 또다시 시비가 붙게되었고 경찰까지 출동하게되었지만 경찰은 단순 분쟁으로 판단하고 다시 돌아갔다. 경찰이 돌아간후 김성수는 등산용 칼을 들고 다시 PC방으로 돌아왔고, 김성수와 동생은 PC방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쓰레기를 버리고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알바생을 뒤에 있던...
잊지말아야할 월드컵기간의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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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겠습니다. 2002년 6월 29일 2002월드컵 3,4위 결정전날 대한민국 서해 연평도 부근 NLL 북서쪽 방향 일대에서 북한 해군 서해함대가 85mm 전차포 선제 포격 도발로 시작된 해전이다.(정부지침으로 인해 침범하였음에도 선제공격 할수없는 상황이었다.) 6명 전사, 18명 부상으로 최종 집계되었으며 참수리 357정이 대파당한 것 때문에 전투후 침수 과다로 최종 격침당했다. 예고없이 발포된 85mm포 기습 발사를 시발점으로 북한과의 교전이 시작되었다. 그와 동시에 윤영하소령은 대응사격을 명하였지만, 갑작스런 공격과 이미 큰 부상으로 인해 전사였다. 이후 이희완부장이 의식이 없는 그를 대신하여 지휘권을 행사했고 357호와 정부의지원으로 북한을 패퇴시키며 승리하였다. 6/29는 월드컵3,4위전 결...
건강한 20대청년이 사망한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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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겠습니다. 당시 서울대학교 3학년 학생인 박종철(21세)을 경찰이 연행하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각종 고문을 하다가 사망한 사건이다. 1987년 1월 14일 경찰은 박종운(서울대 민주화 추진위원회 위원)을 체포하기 위해 이를 알고 박종철을 신림동 하숙집에서 체포해 서울특별시 용산구 갈월동 대공분실로 연행했다. 수사관들은 박종철의 옷을 모두 벗기고 조사실 안에 있는 욕조로 끌고 가 물고문을 반복했고 결국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으로 인해 의식을 잃었다. 중앙일보 사회면에 최초로 보도되었고 이후 기자들이 사실 확인을 위해 달려들었다. 이에 치안본부장 강민창은 박종철의 사망 원인에 대해 “책상을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라는 말도안되는 거짓시인으로 기사가 나자 전국민적으로 엄청난 반발이 일어났다.(이...
2023년에 일어난 칼부림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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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에 다발적으로 일어난 흉기난동 사건들이다. 1. 7/23 신림역일대 칼부림사건 2. 8/3 서현역 칼부림사건 3. 8/17 신림동공원 강간살인사건(너클로 폭행) 4. 9/4 칠곡병원 흉기난동사건 등등 여러 사건들이 다발적으로 일어났으며 각종 커뮤니티에 칼부림을 예고하는 글들을 올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로인해 경찰과 정부는 강경대응하겠다고 반응했으며 용의자를 포함한 267명이 검거되고 26명이 구속되었다. 또, 경찰은 예고글의 장소에 장갑차와 특공대까지 동원하면서 순찰과 불심검문을 강화하기도 하였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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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겠습니다. 1988년 10월 8일 영등포교도소 재소자 12명이 이송 중 교도관을 흉기로 찌르고 탈주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마지막까지 잡히지 않은 4명(지강헌,안광술,강영일,한의철)은 10월 15일 밤 9시 40분경 서대문구 북가좌동 고모 씨의 집에 잠입해서 고 씨의 가족을 인질로 잡았다. 경찰과 대치하면서 실랑이를 벌이다가 낮 12시경 강영일이 협상을 위해 밖으로 나와 있을 때 한의철과 안광술이 총으로 자살했고 지강헌은 경찰에게 비지스의 홀리데이 카세트테이프를 요구한 뒤 노래를 들으면서 유리조각으로 자살을 기도하고있을때 경찰특공대원들이 집으로 진입해 인질들을 구출하고 지강헌을 사살했다. 당시 지강헌의 발언: "이 바보들아! 나는 국민학교밖에 못 나왔어! 국민학교밖에 못 나왔지만, 난 그동안 생각...
28년만에 잡힌 살인자의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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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2월 4일 뉴월드 호텔앞에서 일어난 조직폭력배 간의 보복살인 사건이다. 서씨와 행동대장 정씨가 소속된 영산파는 결혼식 참석으로 인해 호텔에 모여있던 목포파 조직원들을 공격해 2명을 살해하고 2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이후 서씨는 28년간 도피행각을하다 2023에 체포되었는데 그는 공소시효가 완성된 후인 2016년에 중국으로 밀항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증거를 확보한 광주지검이 2003년에 밀항하였다는 자백을받고 결국 서씨는 징역 18년을 선고받는다. 한편, 수배범이던 행동대장 정씨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는데 외부 침입 흔적이 없고 현장에서 정동섭의 자필 메모가 발견된 것으로 미뤄 사인은 자살로 추정된다.
대구지하철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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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겠습니다. 대구 지하철참사는 2003년 2월 18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방화 사건이며, 이 사고로 192명이 사망하고, 151명이 부상을 당한전 세계 지하철 사고 사망자 수 2위를 기록한 철도 사고다. 뇌졸중으로 인한 반신불수와 심한 우울증을 앓던 김대한이 자살을 하기 위해 휘발유 2L를 구입한 상태로 1079호 열차에 승차하여 열차가 중앙로역에 진입하는 순간 가방에 든 휘발유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자신의 옷에 불이 붙자 놀란 김대한은 휘발유 통을 전동차의 바닥에 던졌고 수 초만에 전동차가 불길에 휩싸였다. 1080호 열차 기관사는 대구역을 출발할 무렵 운전사령으로부터 "중앙로역 진입 시 조심해 운전하여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지금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을 통보받았...
공매도가 아니라 선물아닌가요.??
선물거래 레버리지 숏 다포함
저거주작이자나 숏은 99.99퍼떨어져도 50배숏치면 4999퍼가 맥스임 롱이랑 수익자체가틀림
영상좀 자주 올려주세요
제작중입니다!
나도 저때익절해서9천범
슬프다...
권씨승
2015년 11월 11일(수능예비소집일) 전주시 완산구에서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가던 A군이 400원이 모자르다는것을 확인하고 황급히 하차를 요구했지만 택시기사는 돈이없는데 왜탔냐는 대답과 함께 출발지로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고 겁이난 A군은 달리던 택시에서 뛰어내려 전치 8주의 부상을 입었다. 이 일로 택시기사는 감금치상 혐의로 징역 8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A군은 부상을 입은채로 수능을 보게된다.
북한강 토막살인사건은 2025년 10월 25일 중령 진급 예정인 38세 양씨가 자신과 내연관계였던 33세 군무원 A양을 살해한 후 토막내어 시신을 북한강에 유기한 사건이다. 정확한 동기는 수사중이지만 말다툼 끝에 격분한 양씨가 목을 졸라 살해한뒤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토막내어 유기한것이라고 추정된다. 양씨는 범죄를 모두 시인하면서도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였지만 시신을 담은 봉투가 떠오르지않게 돌을 넣은점, 북한강변에 범행도구를 숨긴점 등을 보아 계획살인으로 수사중이다. 한편, 피의자신상공개가 진행되었는데 양씨는 신상공개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하였지만 이는 기각되었고 강원경찰청을 통해 신상이 공개되었다.
기억하겠습니다. 이춘재사건은 1986년 2월 ~ 1994년 1월까지 총 15명을 살해한 사건이며, 그가 검거된 후 화성 연쇄살인 사건에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는 1986년 9월 15일 1차살인을 시작으로 14건의 연쇄살인을 저질렀으며 5차에 엽기살인으로 언론을 타기시작했고 점점 가학적인 살해행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미제사건이었던것이 2019년 DNA분석기술 발달로 1994년 1월 13일 청주처제살인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살고있던 이춘재를 진범으로 특정하게되고 결국 자백을 받아내지만 공소시효의 만료로 인해 공소권 없음으로 처분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억울한 사람들이 누명과 옥살이를 하기도하였는데, 무려 4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고문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중 윤모씨는 8차사건으로(그당시는 모방범죄로 인식됨) 20년이나 옥살이를 하였고 진범이 밝혀지자 재심을 통해 약 18억원을 배상받게되며, 한 인터뷰에서는 지금이라도 자수해줘서 고맙다는 발언으로 그동안 얼마나 심적으로 힘들었음을 표현한다.
배경음 제목이 뭔가요?
러블리바스타즈 입니다
불구속 ㅋㅋㄱ ㅅㅂ 실화냐?
도주할 확률이 낮다고 판단되면 불구속입건도 함 불구속이라고 형량이 낮아지는 건 아님
기억하겠습니다. 편의점 노예부부 사건은 2013년 8월 광주 광산구에 부인과 함께 편의점을 차린 김씨가 24시간 동안 문을 열어야 하는데 종업원을 구하기 힘들자 과거 같은 회사 동료였던 이씨부부를 노예처럼 부린사건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이씨 부부는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고, 이런 상황을 알고 있던 김씨는 “부인과 교대로 편의점에서 일해 달라”고 부탁하며,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의 방 한 칸을 보증금 300만원, 월 45만원을 내고 쓰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그는 최저시급의 절반정도만 주며 이씨부부를 2교대로 12시간씩 일을 시켰으며, 폭력을 일삼았고 이씨가 일할땐 그의 부인을 성착취하며 5살 아들을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폭행하며 학대하였다. 여기서 그치지않고 도박빚을 갚기위해 이씨의 신분증으로 1800만원을 대출하고 피해자부인의 명의로 4개의 휴대폰을 개통하는 일도 저질렀다. 결국 피해자의 부인이 집을나가버렸고 이씨는 평소 알고지내던 한형사에게 이러한 사실을 털어놓아 이 일이 알려지게되었고, 김씨는 불구속입건을 당하게된다.
고맙습니다
숨은영웅님들 감사합니다🎉🎉🎉🎉🎉🎉🎉
이런분들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뤄주시면 많은 도움이 될텐데 아쉽네요ㅠ
참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분들이 많네요 😢
우리아빠 연펴해전 참전함
우리나라의 영웅이십니다!
우리가 우리 아빠가 있었을 때 그 군대❤❤
멋진 영웅이십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촉법소년 기준을 8살로 낮추면 안되나? 법좀 빨리 고쳐라.
기억하겠습니다. 대전 렌트카절도운행 사건은 2020년 3월 29일 중학교 2학년이었던 학생 8명이 서울특별시에서 한 렌터카 업체의 렌터카를 절도하여 대전까지 운전하다가 경찰이 추격하자, 도주하는 과정에서 오토바이 배달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교 1학년 이건을 추돌하여 사망하게 한 뒤 도주한 사던이다. 가해자들이 촉법소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고 이들은 sns에 경찰서에서 담배피며 웃고있는 사진이나 친구들과 ‘분노의 질주를 했다.’라는 농담을 하는등 촉법소년이라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당당하게 행동했다. 이로 인해 국민청원등으로 촉법소년 폐지를 주장하는 이야기가 많이 돌았으며 그들은 정신차리기는 커녕 또다시 렌트카업체를 속여 무면허운전을하거나 무리지어 폭행과 갈취를 하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2년후인 2022년에 8월 1일에 집단폭행으로 3명이 구속, 2명이 불구속 입건되었다.
이 날은 기억해야한다. 북괴를 일망타진해야 남한 사람들의 미래가 있다
기억하겠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1995년 6월 29일 서울의 삼풍백화점이 붕괴하여 502명이 사망, 부상자 937명이 발생하여 대한민국 단일 사건 중에서는 최대 사망자 수를 기록했다. 붕괴원인은 부실공사였는데, 원래 삼풍백화점은 삼풍쇼핑이라는 이름으로 종합상가로 설계되어 건설중이었지만 거의 완공에 가까워질 무렵 건축주 이준은 건물 용도를 돌연 백화점으로 변경하고 시공사에 원래 예정돼 있었던 4층 위에 1층을 더 얹어 도합 5층으로 건물을 시공으로 무리하게 변경하는 바람에 붕괴되었다. 운영중에도 붕괴의 전조현상인 펀칭(기둥이 옥상을 뚫는것)과 천장과 바닥이 침하되기도 하였지만 대피명령은 커녕 자가진단조차 하지않아 사고가 더욱 커지게되었다.
ㅋㅋㅋㅋ 사람을 70번 찔렀는데 30년? 진짜 판사도 찔려봐야지 알지
알바생이 너무 불쌍하다..... 고인 명복을빕니다
기억하겠습니다. 피시방 살인사건은 2018년 10월 14일 서울특별시 강서구에 위치한 PC방에서 김성수가 신씨의 얼굴과 목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다. 김성수가 PC방에 들어오면서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자리가 너무 더럽다'고 지적하자 직원은 곧바로 자리를 치워주었지만 그 후에도 김성수는 계속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이유로 시비를 걸었다.(김성수는 알바생이 욕을했다 주장) 이후 김성수는 게임을하다 알바생에게 환불을 요청하며 또다시 시비가 붙게되었고 경찰까지 출동하게되었지만 경찰은 단순 분쟁으로 판단하고 다시 돌아갔다. 경찰이 돌아간후 김성수는 등산용 칼을 들고 다시 PC방으로 돌아왔고, 김성수와 동생은 PC방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쓰레기를 버리고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알바생을 뒤에 있던 김성수의 동생이 피해자의 허리를 잡으며 습격했고 피해자의 얼굴과 목을 무려 70회 가량 찌르게되었다. 이후 체포된 김성수는 인터뷰에서 '나만 바보가 됐다'는 어이없는 범행동기나 발언등으로 많은 공분을 샀으며 그는 결국 징역30년을 선고받는다.
기억하겠습니다. 2002년 6월 29일 2002월드컵 3,4위 결정전날 대한민국 서해 연평도 부근 NLL 북서쪽 방향 일대에서 북한 해군 서해함대가 85mm 전차포 선제 포격 도발로 시작된 해전이다.(정부지침으로 인해 침범하였음에도 선제공격 할수없는 상황이었다.) 6명 전사, 18명 부상으로 최종 집계되었으며 참수리 357정이 대파당한 것 때문에 전투후 침수 과다로 최종 격침당했다. 예고없이 발포된 85mm포 기습 발사를 시발점으로 북한과의 교전이 시작되었다. 그와 동시에 윤영하소령은 대응사격을 명하였지만, 갑작스런 공격과 이미 큰 부상으로 인해 전사였다. 이후 이희완부장이 의식이 없는 그를 대신하여 지휘권을 행사했고 357호와 정부의지원으로 북한을 패퇴시키며 승리하였다. 6/29는 월드컵3,4위전 결정전으로 인해 보도가 등한시된점, 대통령과 국무총리 추모식불참, 전사자 보상처리문제등 여러 논란을 일으켰던 사건이다.
@HuiseongShin-d7e이런다ㅋㅋ
국무총리나 국방부장관의 각료진도 당시 전사자들의 영결식에 불참한 것은 문제가 있지 않냐는 비판이 있었으나 당시 국방부 측의 해명과 총리실의 해명을 들여다 보면 각 군장(軍葬)으로 영결식을 거행할 경우 주관자인 각군 참모총장 이하만 참석했던 게 관례였으며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보다 상위의 직급이 참여하는 것은 관례상으로도, 의전상 혼란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국무총리 쪽은 출국한 대통령의 대리로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참석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정계에 관련 있는 사람으로는 전두환, 손학규(당시 경기도지사 당선인 신분) 정도만이 영결식에 참석했다. 국방부의 해명 자료에 나타난 대로 해군참모총장의 상급자인 국방부장관은 사전 조문을 갔으며 국무총리를 포함한 다른 상급자들도 관례대로 사전 조문을 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전 조문으로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대리로 보냈다. 2002년 7월 2일 일본에서 돌아온 후 국군수도병원에 있는 부상자들을 방문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조문 행사에는 위와 같은 이유로 직접 참석하지 않았다. 물론 과거부터 대통령의 추모식 불참이 관례였다고 하더라도 후술하듯 잘못된 관례를 답습하여 이전 정권보다 나을 것 하나 없는 모습을 보인 것은 비판받는 게 마땅하다. 아래 이명박 정부 시기 문단에서 자세히 서술하겠지만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추모식이 해군참모총장 주관에서 정부 주관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대통령까지 참석하게 변경되었고 주관 부서도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국가보훈처로 변경되어 대우가 개선되었다. 다만 박근혜 전 대통령[54] 이후부터는 참석하지 않았고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불참이 이어졌다
오늘 저녁엔 홀리데이나 들어야겠다..
최근 1987영화 봤더니 바로 쇼츠로 뜨네 ㅋㅋㅋㅋ
요즘 시대에도 관통하는 말이라는게 정말 슬프다..
기억하겠습니다. 당시 서울대학교 3학년 학생인 박종철(21세)을 경찰이 연행하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각종 고문을 하다가 사망한 사건이다. 1987년 1월 14일 경찰은 박종운(서울대 민주화 추진위원회 위원)을 체포하기 위해 이를 알고 박종철을 신림동 하숙집에서 체포해 서울특별시 용산구 갈월동 대공분실로 연행했다. 수사관들은 박종철의 옷을 모두 벗기고 조사실 안에 있는 욕조로 끌고 가 물고문을 반복했고 결국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으로 인해 의식을 잃었다. 중앙일보 사회면에 최초로 보도되었고 이후 기자들이 사실 확인을 위해 달려들었다. 이에 치안본부장 강민창은 박종철의 사망 원인에 대해 “책상을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라는 말도안되는 거짓시인으로 기사가 나자 전국민적으로 엄청난 반발이 일어났다.(이후에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다.)
2023년에 다발적으로 일어난 흉기난동 사건들이다. 1. 7/23 신림역일대 칼부림사건 2. 8/3 서현역 칼부림사건 3. 8/17 신림동공원 강간살인사건(너클로 폭행) 4. 9/4 칠곡병원 흉기난동사건 등등 여러 사건들이 다발적으로 일어났으며 각종 커뮤니티에 칼부림을 예고하는 글들을 올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로인해 경찰과 정부는 강경대응하겠다고 반응했으며 용의자를 포함한 267명이 검거되고 26명이 구속되었다. 또, 경찰은 예고글의 장소에 장갑차와 특공대까지 동원하면서 순찰과 불심검문을 강화하기도 하였다.
1988년 10월 8일 영등포교도소 재소자 12명이 이송 중 교도관을 흉기로 찌르고 탈주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마지막까지 잡히지 않은 4명(지강헌,안광술,강영일,한의철)은 10월 15일 밤 9시 40분경 서대문구 북가좌동 고모 씨의 집에 잠입해서 고 씨의 가족을 인질로 잡았다. 경찰과 대치하면서 실랑이를 벌이다가 낮 12시경 강영일이 협상을 위해 밖으로 나와 있을 때 한의철과 안광술이 총으로 자살했고 지강헌은 경찰에게 비지스의 홀리데이 카세트테이프를 요구한 뒤 노래를 들으면서 유리조각으로 자살을 기도하고있을때 경찰특공대원들이 집으로 진입해 인질들을 구출하고 지강헌을 사살했다. 당시 지강헌의 발언: "이 바보들아! 나는 국민학교밖에 못 나왔어! 국민학교밖에 못 나왔지만, 난 그동안 생각했단 말이야! 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자기 인생을 버렸단 말이야! 그런데도 결국 오늘 이 사회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 노태우 대통령, 국민을 위한! 국민을 위한 노태우 대통령!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고 있어! 낭만적인 바람막이 하나 없이 이 사회에서 목숨을 부지하기에는 너무나 살아갈 곳이 없었다"
몰랐던 과거네요 덕분에 하나 배워갑니다 ^^
1994년 12월 4일 뉴월드 호텔앞에서 일어난 조직폭력배 간의 보복살인 사건이다. 서씨와 행동대장 정씨가 소속된 영산파는 결혼식 참석으로 인해 호텔에 모여있던 목포파 조직원들을 공격해 2명을 살해하고 2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이후 서씨는 28년간 도피행각을하다 2023에 체포되었는데 그는 공소시효가 완성된 후인 2016년에 중국으로 밀항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증거를 확보한 광주지검이 2003년에 밀항하였다는 자백을받고 결국 서씨는 징역 18년을 선고받는다. 한편, 수배범이던 행동대장 정씨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는데 외부 침입 흔적이 없고 현장에서 정동섭의 자필 메모가 발견된 것으로 미뤄 사인은 자살로 추정된다.
기억하겠습니다. 대구 지하철참사는 2003년 2월 18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방화 사건이며, 이 사고로 192명이 사망하고, 151명이 부상을 당한전 세계 지하철 사고 사망자 수 2위를 기록한 철도 사고다. 뇌졸중으로 인한 반신불수와 심한 우울증을 앓던 김대한이 자살을 하기 위해 휘발유 2L를 구입한 상태로 1079호 열차에 승차하여 열차가 중앙로역에 진입하는 순간 가방에 든 휘발유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자신의 옷에 불이 붙자 놀란 김대한은 휘발유 통을 전동차의 바닥에 던졌고 수 초만에 전동차가 불길에 휩싸였다. 1080호 열차 기관사는 대구역을 출발할 무렵 운전사령으로부터 "중앙로역 진입 시 조심해 운전하여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지금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을 통보받았으나 평상시처럼 중앙로역에 진입하였다. 이러한 지하철공사의 잘못된 초동대응으로 인해 더욱이 많은 사상자가 생기게되었다.
이태원 압사사고는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의 해밀톤호텔 골목에서(이동가능 폭 3m) 코로나 제한해제 후 첫 할로윈 축제로 수많은 인파가 몰린 와중에 발생한 압사 사고이다. 삼거리에서는 20분만에 막대한 인파가 빠르게 유입되는 바람에, 뒤쪽 인파였던 사람들도 앞쪽으로 누적되어 갔고, 뒤쪽 인파에서 3차례 정도 밀치자 사람들이 우르르 넘어져, 이른바 '연쇄 깔림'으로 인해 앞쪽 참변이 가중되었고, 이 사고로 인해 159명이 사망하고 195명이 부상을 당했다. 한편, 경찰의 부실대응 논란/일부 사람들의 밀어!밀어! 등 여러 논란도 많은 사고이다.
기억하겠습니다. 개구리소년 사건은 1991년 3월 26일 대구광역시 달서구 성서 지역에서 5명의 국민학생들이 "도롱뇽 알을 찾으러 간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실종되었고, 실종된 지 11년 6개월이 지난 2002년 9월 26일에 백골로 발견된 사건이다. 한편, 경찰은 훼손된 유골을 봤으면서도 "상식적으로 봤을 때 타살 흔적은 거의 없는 거 같다."거나 "조난을 당했고 추위에 떨다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이다" 라고 주장해 거센 항의를 받기도 하였고, 언론의 오보로 인해 도롱뇽이 개구리로 알려졌다.
기억하겠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오가는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확증이 불가능한 원인으로 침몰하면서 승객 중 29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영구 실종된 해상사고다. 선사의 부실한 선박 관리와 안전교육, 이를 방치한 승무원들, 선장과 항해사의 판단 착오와 늦장 대응, 그리고 그로 인한 시간 지체, 가만히 있으라는 비상식적인 안내 방송 등 총체적 난국이었던 최악의 해난 사고라는 의견이 있었다. 선장은 세월호 참사의 주범으로 1년 반에 걸친 재판 끝에 미필적고의 및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