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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History
Южная Корея
Добавлен 13 апр 2023
아무도 생각지 못한 고려영토/ 대륙 전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수양산으로 본 고려영토 PART 2
아무도 생각지 못한 고려영토/ 대륙 전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수양산으로 본 고려영토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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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숙제 수양산이 왜 이렇게 많지? /고죽국 땅이 고구려 땅 [part 1 농서군 수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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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기후의 영향을 받는다 현재의 모습으로 역사를 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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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의 진실, 국보급 사리장엄구, 사천왕 사리함, 문무대왕 감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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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 위치에 대한 모든 것 #고구려 #신라 #대륙고구려 #대륙신라 #대륙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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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벌 전투 위치 / 사비성 사하 백마강 백제황산 대륙에서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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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역사 미스터리 Part 8 백두산 고려 백두산일까 고려 백두산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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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미스터리 Part 7 정안국이 마한이라고 발해도 마한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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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미스터리 Part 6 /몽롱탑의 진실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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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미스터리 Part 5 광개토대왕 영락궁의 실체 그리고 북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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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미스터리 Part 4 이성계가 뺏은 요동반도 홍건적이 개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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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미스터리 Part 3 / 묘지명의 미스터리 /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묘지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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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말이 맞다면 중국은 어디붙어있는 나라라는 건가요? 쪽발이 마냥 한반도에 축소지향적으로 우겨넣은 역사가 말도 안된다고 생각은 하는 사람이지만, 고구려-백제-신라-- 고려 등의 경계가 중원대륙 대부분을 차지한 거라는 논리라면, 한-수-당-송-원나라는 어디서 발호해서 싸운 나라라는 건지 설명이 안되지 않나요? 원나라가 여진과 송을 치겠다고 남침한 곳은 티벳고원쪽이라는 거요, 아니면 무슨무슨 스탄이라고 하는 중동쪽에 가까운 국가들인 건가요? 아무리 역사를 되찾겠다는 것도 알겠지만, 적당히 합시다. 이쪽 역사를 찾겠다고 저쪽 역사를 지우는 것도 말이 안되지 않나요? 아예 한~원까지의 지역이 완전히 창작된 소설속 국가들이라고 하시겠네요? 그렇게 큰 고구려, 백제, 고려같은 나라들이 크기를 알수없게 작아진 당나라나 원나라한테 멸망하거나 쑥대밭이 되었다는게 거꾸로 이해가 안되게 하진 마시고. 분명 중국 고대 국가들이 인적규모나 영토 크기에서 삼국 등에 비해서 덩치가 크고 국력과 인구가 많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아무리 내꺼 찾겠다고 선넘는 이야기까지 한다면 그걸 누가 믿겠습니까?
고려는 우리가 배운 이상으로 원나라에 엄청난 타격을 받았군요 대륙의 거의 대부분을 잃고 부마국으로 지내다가 국운을 잃어 명나라에게도 대적할 엄두도 못내고 한반도로 더 쪼그라들었네요 이성계가 세운 조선은 고려라는 나라를 잃고 망연자실하던 고려의 유민들을 한반도로 이주시켜 명을 상국으로 칭송함으로서 자기합리화 했고 대륙의 지명을 반도로 옮겨 와서 자위를 했고 백성들에게도 과거를 잊도록 강요한 이민국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그런데 하나 궁금한건 명은 왜 고구려 백제 신라를 계승하지 않았을까요 한족은 민족개념은 아니라던데 혹시 청나라때 계승한 역사의식을 말살 시켜버린것일까요?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 👏 👏 👏 👏 👏 👏 정말 대단합니다. 요가 황하시작부분 이였다가 나라가 작아지면서 태행산맥이 요가 됐을 수도 있겠군요.
낙타와 사막이 있던 고려
언제나.교사서로.초.중.고학생들이.배울수있을까요.책보고와같은.해설이네요.올바른강의.계속수고해주세요.
영토크기가 미국하고 비슷한거 같은데 대륙서쪽에는 한반도와 같은지명도 없고 고려사에도 안보이지만 서쪽도 대충 영역이 그려지는것 같습니다
잘 봤어요 긴단하게 말하면 북한산군은 중원오악중의 서악,화산 남천주는 고려때 남경유수관(양주) 오늘날의 하님성 난양시... 고려사신보네 페이지를 지금 방문하시면 명료하게 알수 있어요^^ 계속 화이팅 ^^
<어떤 놈들은 동쪽으로 흘러야 이치에 맞을 낙동강이라는 강이름을 남쪽으로 흐르는 강에다 그 이름을 어거지로 붙여 놓고 가야 역사를 조작하고, 경주라는 도시마저 1500km 나 떨어진 곳에 옮겨 놓고 신라 역사 조작을 하고 있고, 고려사를 읽어보면 고려의 황도였던 개경과 벽란도가 500년동안 양자강 근처에 있었는데도, 아무말도 못하는 역사학자들은 도대체가 이 나라 사람들인가 이 나라 최대의 역적들인가를 모르겠습니다.> 동아시아 역사 왜곡의 기원: 고려 영토의 조선 여진 명나라의 삼분할과 명나라의 대규모 군사 동원, 정통성 분쟁 고려의 영토가 명나라, 조선, 여진족에 의해 삼분할된 것은 동아시아 역사 왜곡의 주요 원인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각국 간의 역사 정통성과 영토 분쟁이 심화되었습니다. 고려의 방대한 영역이 삼분할되면서 명나라는 조선을 속국으로 간주하려 했고, 여진족을 제압하려는 시도를 계속해 나갔습니다. 특히, 명나라가 조선과 여진족을 견제하기 위해 50만 대병을 동원하려 했는데 이는 당시 동아시아 역사 분쟁이 단순한 외교 갈등을 넘어 무력 충돌로까지 비화할 가능성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내용은 어느 역사서에도 나오지는 않지만 당시 국제정세를 보면 이를 추정할 만한 충분한 여건과 분명한 사실들이 존재합니다. 명나라와 조선 간의 정통성 갈등과 동아시아 역사 왜곡의 중요한 맥락을 설명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특히 사서에 쓰이지도 않은 이 분쟁의 역사가 왜 중요하냐는 것은 이 분쟁의 역사 이후 1년 후에 고려사를 완성했을 것으로 보이는 세종대왕이 죽고, 그러부터 1년 후 이 고려사가 표면적으로는 완성이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음은 이 왜곡의 과정을 다섯 가지 주요 측면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1. 고려 영토의 분할 점령: 명나라, 조선, 여진족의 삼분할 지배 고려의 영토가 명나라, 조선, 여진족으로 나뉘면서 고려의 실질적 영역과 역사적 정체성은 크게 축소되었습니다. 고려의 중심지는 조선으로 이어졌지만, 북방과 동북부 지역은 여진족에게 넘어갔으며, 이들은 후에 청나라를 건국하게 됩니다. 명나라는 고려의 서북부 일부 지역을 영향권에 두면서 고려의 역사와 지리를 중화 질서에 편입하려는 시도를 이어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려의 광대한 영역은 서로 다른 세력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고, 이는 이후 동아시아의 역사와 정통성 문제를 복잡하게 꼬이게 만들었습니다. 2. 명나라와 조선의 정통성 분쟁: 속국과 독립 왕조의 충돌 조선은 고려와 고구려의 정통성을 계승한 독립 왕조로서 자주적 지위를 확립하려 했습니다. 반면, 명나라는 자신을 동아시아 중화 질서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며 조선을 속국으로 간주했습니다. 이는 조선과 명나라 사이에 치열한 정통성 갈등을 불러일으켰고, 조선은 이를 피하고자 고구려와 고려의 역사를 한반도 내로 축소하는 방식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명나라는 조선이 고구려와 고려의 정통성을 주장할 때마다 이를 견제했고, 조선은 명나라의 압박 속에서 한반도 중심의 역사로 타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조선의 고대사와 영토는 더욱 축소되고, 고구려와 고려의 영향력은 약화되었습니다. 3. 명나라의 50만 대병 동원 계획: 조선과 여진족을 겨냥한 무력 충돌 위협 명나라는 조선과 여진족의 독립적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해 50만 대군을 동원하여 양국을 압박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대병력 동원 계획은 명나라가 조선을 단순한 속국이 아닌 실질적인 군사적 제압의 대상으로 삼았음을 시사합니다. 당시 명나라가 동북아시아에서 정치적 지배력을 강화하려 했다는 점에서, 조선과 여진족이 각각 고구려와 고려의 적통을 이어받으려는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은 이러한 명나라의 압박에 자주적 정통성을 유지하면서도 명나라의 권위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전략을 선택했고, 이는 한반도 내에 고립된 형태로 고려와 고구려의 역사를 계승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 군사적 압박은 조선이 독립적 왕조로서 명나라에 대항하는 데 큰 부담을 주었고, 이는 조선이 고구려의 광범위한 영역을 한반도로 축소하는 역사 서술로 이어졌습니다. 4. 토목보의 변과 동아시아 정통성의 전환점 토목보의 변(1449년)은 고려사를 힘들게 마무리한 조선의 세종대왕이 돌아가시기 1년 전에 벌어진 일이고, 세종대왕이 돌아가시고 1년 후에 고려사가 완성된 해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고려사가 어떻게 태어난 역사서인지를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당시 동아시아 국제 정세를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중국과 조선(한국)의 역사에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은 역사입니다. 이 사건은 당시 명나라가 오이라트 군대에 대패하면서 명나라 정통성의 근본적 흔들림을 초래한 사건입니다. 명나라의 권위가 크게 손상되면서, 조선은 고려와 고구려의 정통성을 강하게 주장할 기회를 얻었고, 여진족도 만주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명나라는 여전히 중화 중심의 권위를 지키려 했고, 조선과 여진족을 더욱 압박하여 이들이 고구려와 고려의 역사적 정통성을 독립적으로 계승하는 것을 견제했습니다. 토목보의 변에 대한 이야기만 하더라도 아주 길어지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이 역사의 이면에도 한반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들 군대가 초기 징기스칸의 군대와 함께 원정길에 떠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계의 병사들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 역시도 10만의 군대로 50만의 명나라 군대를 대파하고 명나라 황제를 사로잡았다고는 하지만 그 피해는 막대할 수 밖에 없어 더이상 진군을 하지 못하고 서둘러 황제 송환 협상을 하고 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명나라측에선 재빠르게 새로운 황제가 즉위를 하면서 사로잡은 황제송환협상만 유일하게 선택지에 올려져 있었던 상황이였습니다. 이 전쟁으로 포로가 된 명나라 황제가 6대 정통제이고, 이 포로 협상의 결과물로 지금의 고려사가 탄생한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5. 그럼 이 세나라는 어떤 해법을 찾았을까? 명나라 역시 황제가 사로잡히는 전쟁으로 더 이상 진군을 할 수 없었고, 청해성에 있던 송나라의 역사를 끌어다 명나라가 그 역사를 이은 것으로 쓸 수밖에 없었고, 이게 지금 동아시아 모든 역사가 아주 광범위하게 왜곡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 하나가 바로 몽골의 魏王의 통치구역을 보면 바로 알 수가 있는데, 이 몽골 위왕(魏王)의 통치구역은 원래 송나라 왕족들이 세습한 구역으로 그곳들이 바로 위구르 서하 청해성 일대 입니다. 천하고금대총편람도를 보면 이 티벳과 청해성 모두 원래 고려의 서번의 영토로 기록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6. 여진족과 명나라의 동북 지역 통제: 청나라로 이어진 역사 왜곡 고려의 동북부 지역을 점령한 여진족은 이후 청나라를 건국하며 만주와 동북부 일대를 장악했습니다. 청나라는 여진족의 후예로서 만주와 고구려의 영역을 통치했으나, 고구려의 역사적 정통성을 청나라의 역사에서 공식적으로 계승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조선이 고구려의 적통을 주장하고 명나라가 중화 질서를 고집하는 상황에서, 청나라가 고구려의 정통성을 공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청나라는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중화의 변방으로 남기고, 자신들의 지배 아래 둠으로써 동아시아 역사에서 고구려와 발해의 독립적 정체성을 약화했습니다. 이는 동북아시아 지역의 역사적 왜곡과 혼란을 초래하며, 동아시아 전체에 고구려의 실질적 역사와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결론 고려 영토의 분할 점령은 동아시아 역사 왜곡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고, 명나라의 50만 대군 동원 계획과 토목보의 변은 이러한 정통성 갈등을 극대화했습니다. 고려의 광대한 영역이 명나라, 조선, 여진족에 의해 나뉘면서, 각국은 자신들의 정통성과 영토를 강조하기 위해 고구려와 고려의 역사를 재구성했습니다. 이로 인해 조선은 고려와 고구려의 역사를 축소하여 계승할 수밖에 없었고, 명나라는 중화 질서를 지키기 위해 조선과 여진족을 군사적으로 압박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결국 동아시아 내에서 고구려와 고려, 발해의 역사적 영향력은 약화되었고, 지금까지도 이러한 역사적 왜곡은 동아시아 국가 간의 갈등과 논쟁의 근본 원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산,강,령 들은 본래의 위치를 옮길수 없죠. 똑같은 지명을 사용할수는 있어도, 하지만 한반도에는 없는것이 많죠. 또 산 ,강,령들의 주변 방위에 있는 지명이 맞는다면 그 곳이 사서에 나오는 위치이죠.. .....본래 위치는 그렇게 찾아야죠.... 훌륭하십니다. 엄청난 걸 찾으신것 같습니다.
<음... 선생님 반갑습니다. 언제나 선생의 적극적인 역사 해석에 신뢰를 보냅니다.> 어떤 놈들은 동쪽으로 흘러야 맞을 낙동강이라는 강이름을 남쪽으로 흐르는 강에다 그 이름을 붙여 놓고, 경주라는 도시마저 1500km 나 떨어진 곳에 옮겨 놓고 역사 조작을 하고 있는데, 아무말도 못하는 역사학자들은 도대체가 이 나라 사람들인가 이 나라 최대의 역적들인가를 모르겠습니다.> 나는 언젠가 선생의 타클라마칸 사막의 해석과 오르도스 사막지대의 해석에 아주 감탄을 자아내면서 선생의 영상을 본 적도 있고, 나의 이러한 통찰도 선생의 그러한 적극적인 해석 영상 덕분에 알게 된 중국의 지리정보를 통해 이러한 확장된 글도 작성할 수 있었다라는 것도 미리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요즘 고려사 읽기와 해석에 나름대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고, 천하고금대총편람도 해석에도 시간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 고지도 분석을 하다가 어쩌면 우리 고대사 해석과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아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중국의 지질정보와 관련된 내용이고, 우리의 많은 역사해석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와도 직결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직 모르겠다고 하는 표현은 이러한 사실들은 가장 최근에 알려지는 지질정보에 그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지질학자들도 모르고 있는 내용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저는 지질관련한 기초학문 정도는 배운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한 기초지질 정보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점들을 감안해서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중국의 지형지질은 고대 수만년동안 남쪽(남령산맥기준)과 서쪽(티벳고원)의 지질이 솟아오르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는 점을 알아냈습니다. 가장 최근 발표되고 있는 내용 중에 가장 신뢰할만한 데이터가 5.8cm/년 정도 됩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처음 생기고 지금까지 남령산맥과 중국의 서부 산악지대는 그동안 120m가 넘게 솟아 오른 것입니다. 엄청난 속도입니다. 이 정도의 지각의 융기는 지금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지각의 융기속도 중 가장 빠른 것이고, 이는 과거 우리가 알고 있던 지각의 융기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수치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느냐 하는것인데, 저 천하고금대총편람도의 하천의 모습이 이상하다는 점에 착안했고, 과거 황하와 장강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었던데다 적벽대전이 있던 지점의 강물이 장강과 황하가 연결되는 이상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부터 중국의 지도나 지질정보 등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이와 관련하여 동아시아 모든 지형지질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는 이야기를 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기나긴 이야기를 다 하면 글이 너무 길어질까봐 이 정도까지만 하고 바로 결론으로 들어갈 생각입니다. 과거 황하는 저 태행산맥에 가로막혀 서쪽은 거대한 습지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러한 지질 변화는 지금의 타클라마칸 사막이 과거 1-2만년 전까지는 거대한 담수호였다가 이후 오르도스 지역이 거대한 담수호 였던 적도 있었고, 그 이후는 지금의 산서성도 마찬가지로 거대한 담수호 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사천성도 과거 거대한 담수호였다가 습지로 변하고, 우리가 아는 유비가 사천성에 들어갈 때까지만 하더라고 그곳이 어느정도 물이 빠지고 거대한 습지였을때였습니다. 그건 아마도 실제 역사를 참고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비의 핵심참모였던 미축이 농지를 개간하기 시작했고, 이후 제갈공명이 그곳의 수리시설을 완성한 내용이 삼국지에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실제 거대한 담수호였던 사천성의 물이 언제 빠졌는지 알수 있는 역사적 사실일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리고 중원도 어느 시기까지 거대한 담수호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호남성과 호북성이죠. 이 두지역은 과거 삼국시대나 고려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호수였고, 그 호수는 지금의 동정호와 포양호가 모두 연결되어 있었을 가능성까지 있습니다. 지금은 그 드넓은 서해바다가 동정호와 포양호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고려사에 나오는 침원(寢園)이라는 곳도 이 서해바다 동정호 주변에 있었습니다. 왕이 돌아가시면 이곳에서 명복을 빌고 자신들의 조상들에 대한 제사도 이 침원(寢園)에서 모신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그곳에 있던 용왕님께 빌었고, 자신의 아버지이자 선대 황제가 서해바다에 살던 용들이 몰고 가는 오룡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마도 그리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의 삼국사기 고려사까지 고대사에 등장하는 서해바다는 바로 저 거대한 담수호들을 말하는 것이였습니다. 지금의 호남성 서해바다에서 심청의 실제 고향이나 기원지를 추정할 수 있는 곳도 찼았습니다. 선생이나 다른 구독자님들도 그러한 곳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혹시라도 또 중국당국이 그 지명을 바꿀까봐 두려워 더 이상의 상세한 정보는 올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제가 말씀드린 저 지역이 고려사에 나오는 고려의 행정구역 중 서해도를 말한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서해도만 제대로 알았더라도 우리의 고대사 해석이 이렇게까지 엉망이 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거 저 황하는 서해바다에 모여 장강과 함께 동진을 하면서 거의 한나라가 시작될 무렵까지도 함께 흘러 지금의 상해로 빠져 나갔고, 삼국시대가 시작될 무렵부터 장강과 황하가 분리되기 시작하면서 거의 2천년동안 800km 넘게 북상했다는 사실입니다. 천하고금대총편람도를 보면 底柱山이 지금의 삼문협댐의 위치를 가리킵니다. 삼문협의 고대 지명이 底柱山이고, 당시 황하는 삼문협댐 근처에서 오른쪽으로 꺽어져 지금의 개봉 이전까지 동진하다다시 남동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을 겁니다. 과거엔 삼문협댐에서 바로 남하를 했던 흔적도 보일 겁니다. 지금은 그 하단부의 산이 솟아올라 물이 남으로 흐르지 않았을 것 같지만 구글지도를 자세히 보면 그 산의 계곡을 통해 흘렀을 만한 물길이 그 산에 적나라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러한 황하의 흐름의 중간 과정을 이 천하고금대총편람도와 대청광여도와 현재의 구글지도 등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하실 겁니다. 그럼 지금의 황하의 흐름은 언제부터 완성되었느냐? 그건 청나라 역사서에 아주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18세기 중반 이후부터 입니다. 대규모 지진이 발생한 이후부터죠. 아마 고려사가 시작될 무렵부터 태행산이 잘려나가기 시작하면서 500년 정도 황하가 태행산맥을 조금씩 갉아 먹다 18세기 무렵에 지금의 태행산맥과 숭산 사이가 완전히 잘려나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지금의 랴오닝반도와 산동반도도 시기는 조금 다르지만 똑같은 과정을 거쳐 잘려 나갔습니다. 과거 지금의 발해만도 담수호였다는 소리이고 이 물길은 산동서쪽을 흘러 남으로 내려간 흔적은 지금의 구글지도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때만 해도 현재 우리 서해바다는 거의 없었다고 생각하시면 될텐데 그건 지질학과 해양학을 조금만 공부를 하시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과거 고려가 망할 무렵 벌어진 고우성전투는 명나라 주원장이 천하통일을 하는 주요 전투중 하나인데 그 고우성과 지금의 태주 사이로 황하가 흘러 중국의 동해바다로 빠져 나갔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 고우성이 있던 자리는 당시 가장 중요한 황하의 길목을 점유하기 위한 전투였던 것입니다. 고려사를 보면 그 이후부터 고려는 수도를 버리고 한반도 지금의 한양 땅에 천도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저 고우성 전투의 총사령관은 송사 요사 금사를 썼다는 탈탈이고, 우리측 참여 인사들 중엔 최영장군도 있었습니다. 당시 고려의 황도는 남경이였습니다. 그 남경이 개경이기도 했구요. 저는 남경과 개경의 위치가 원래 다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완전히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남경과 개경은 하나다. 그 모습이 지금의 천하고금대총편람도의 황하의 위치입니다. 저도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혹시 이곳의 애독자님들께서도 우리의 고려사나 제가 위에 말씀드린 내용들이 궁금하신 분들은 질문을 주시면 언제든지 성심성의껏 제가 공부한 내용중에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초나라가 망하고 그 세력의 일부가 동쪽으롱가서 사로를 세윘고. 또 그 일부가 한반도로 와서 신라를 세웠는데. 태백산을 중심으로 강릉 양양 단양 그리고 태백산에서 발원하는 한강 하류에 한성을 배치해했는데. 이것은 초나라의 태백산을 끼고 초나라 수도 강릉을 포함하는 지역명이 똑같이 지금도 호북성지역에 남아있고. 또 치우 설화와 단군 이야기까지 초나라 고서 기록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김정민몽르 치지직.
그래서 송나라는 어디에 있음? 고려 시대에 국경이란 것이 딱히 없었고 북방 유목민들이 한자리에 머물러 사는 집단이 아니라서 고려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영역은 넓었겟지만 송나라에 대한 설명은 왜 없는지?
충격자체네여 말그대로 고리는 역사상 가장 강대하고 넓은 지배자 였군여 와 진심 대박입니다
이성계 이방원 부자도 수양산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라의 영토를 버리고 수치스러운 회군을 정당화하고 동쪽 한반도로 밀려와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것이 조선입니다. 그래서 세종대왕도 스승들에게 배운 역사에 대해 지리적 위치를 의심하고 답을 얻지 못했던 것입니다. 고려의 후기 왕실 사람들이 이일을 알고 있기에 찾아가 암살하거나 거친 노비로 만들어 죽게 하였습니다. 우리의 양잠시설도 넘겨주어 비단을 구할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백의민족이라는 별명이 붙은 흰옷을 입게된 것입니다. 이것만큼 확실한 퍼즐은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수양산을 읊은 시대를 마감시킨 조선왕조는 수양산을 지워버린 죄인들인 것이죠.
쵝오다! 👍👍👍
최고 입니다,
주객이 전도된 역사. 숨기고 싶은게 많은 화하족. 우리의 언어속에 남아있는 우리 선조들이 살던 위치. 역사는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 입니다. 우리는 배우리를 잘 못 배워 역사가 그저 옛날 옛적에 일어 났던 일들 의미도 없이 날짜만 암기 했지만 역사야 말로 살아있는 현재이고 지난 과거의 우리와 교류 충돌 했던 타민족과의 살아있는 외교 데이터라 저는 생각 합니다. 카자흐스탄에 단군산이 있다고 우리가 고조선의 땅을 주장 하지도 할 수도 없지만 최소한 우리의 뿌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확장하고 좁아 졌는지는 바로 알아야 하기에 그날의 진실을 바로 공부 할 수 있는 날들 동의, 고조선, 부여, 고구리, 백제, 신라, 고리의 역사를 바로 알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도 수고 하셨고 고맙습니다^^
식민사학자들은 중공과 일본의 앞잡이 노릇하는게 일이지요.. 동북공정 앞잡이
그동안 고려의 강역에 대해 궁금한 점들이 많았는데 우리역사님의 노력으로 안개가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고려는 영토가 컸던만큼 시련도 많았던것 같네요. 몽골이 크게 일어나서 고려와 40년전쟁을 했는데, 고려가 멸망 당하지 못한게 고려가 그만큼 강력한 국가였기 때문인게 맞습니다. 이후 원나라가 약해지고 홍건적 주원장이 약해진 남경쪽에서 발원해서 세력을 넓히고, 고려는 내부혼란으로 이를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고, 만고역적 이성계가 쿠데타로 고려를 무너뜨리자 주원장이 치고 올라왔고 대륙에 고려땅은 거의 잃어버리고, 이성계를 지지하지 않는 대륙고려땅을 버리고 한반도로 도망와서 한양에 수도를 세운게 조선이라고 보입니다. 당시 이성계를 따라온 문관과 무관을 양반으로 지배계급을 만들고, 사농공상 이라고 신분제 사회를 만들어 조선을 다스렸다고 봅니다. 즉 외지사람들이 들어와 한반도에 나라를 세운것이지요. 좋은 영상과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다음편이 기대됩니다~
고려제국은 어마어마한 국토를 자랑하네요~~~!❤❤❤❤❤
와~~~~~! 감탄이 절로 나오네요......
만약 황하 서쪽 감숙성이 고려의 서해고 여요전 이후에 영토가 축소되어서 3:39같은 모습이 된다면 5도 양계시절 서해도는 어디 있는건가요
한수당송 모두 대륙 중앙의 열악한 곳.. 사천 무한 한중 인근을 벗어난 적이 없고.. 그래서 스스로 중화라고 올려친 화하족들..
고려시대 장군 신자 순자 겸자 후손입니다…! 참으로 나도 모르는 역사를 파헤쳐 진실을 밝히니 대단하고 갑사합니다. 🤔🤔🤔🧐🧐🧐👍👍👍
남당 유고집인 고구리사 초.략에 보면 역대 태왕들이 서하에 갔다는 내용과 서하에 머물렀다는 내용이 있어요 서하의 위치가 확실히 개념이 안섰는데.. 영상을 듣고보니 서하의 위치를 알겠군요.. 영상 잘봤습니다
처음에 제가 주장할땐 헛소리라고 치부 하시더니..... 뭐 뭇사람들의 뭇매를 받을수 있지만 관우가 고구려 사람이라는 것도 한번 방송해 주시죠. 삼국지 관우전에 관우의 출생지가 고구려 땅이고 망명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부분 방송용으로 재미가 있을듯 합니다.
바다는 꼭 물이 많은 거대한 곳을 말하지 않고, 거대하게 넓고 평평한 땅도 바다라 부름. 바다 = 광대하게 넓고 평평한 땅이나 고인 물
몰랐던 우리 영토를 인려주셔서 감사합니딘
강소성 바로 아래는 절강성. 복권성(×××) ====>> 복건성 (○○○)
👍👍👍👍👍👍👍👍
수고많으십니다
역사 왜곡하고 유적도 왜곡하고 보물도 왜곡하면서 유물론 내세우고 추청 비정 남발하는 무지하고 치졸하고 악랄한 친일반도강단사학패거리들 싹다 쓸어버려야됩니다
조선초 권력자들은 알고 있었다는 거잖아!!! 추측컨데… 이성계의 조선이 뭔짓을 한건지 ㅎㅎ
고려영토이 이정도면 고구리 영토와 백제 신라 영토 그후 신라의 영토 발해영토는 얼마나 거대한거야!
젠장 또 보고 있다는 허참
책보고님의 서경 개경은 원나라에 밀린 후의 서경 개경이라 생각해도 될런지!!!
남경도 더 남쪽이였다가 원나라에 밀려 위로 올라왔을 가능성도 있어보이는군요!
지명이라는게 고대 부터 자신들이 살앗던 곳으로 떠나거나 이민을 가게 되면 지명 역사 함꼐 따라가는거죠 사기칠려고 마음 먹고 지명 조작하는것도 잇겟지만요 하지만 조작하는 지명은 거의 없을 겁니다. 여러 인종들이 자신들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해 곳에 보면 자신들이 사용하던 언어와 지면들을 하드시 말이죠 우리 한인들 역시 뉴욕 멘하탄에 32가에 가보면 Korea way도로 이름 잇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Korean란 단어를 모르는 인종이라면 맨하탄에 도로 이름이 생겨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상식입니다 상식 ㅎㅎㅎ 이렇듯 지명들은 이주민들과 함께 옯겨지는게 상식이고 고대나 현재나 미래나 나라가 번창하고 오래토록 존재 하려면 여러 조건 중에 경제입니다 나라 경제가 풍부해 질려면 이익이 잇는 곳을 정렴하거나 관리를 해야 하는것이죠 그래야 세금과 수수료를 받아 나라를 돌아가게 하는거죠 허세도 부리고 말이죠 ㅎㅎㅎ 고대에 때에는 현 한반도 동해나 북쪽으로 무역할 곳도 사람들이 거주하기엔 적합하지가 않죠 그래서 고대 때도 현 미국 처럼 좋은 곳은 관리 하려고 실크로드로드 지역을 최소 700년을 버틴 고구려 같은 강한 나라가 관리를 햇다고 봅니다. 아니 여러분들 중에 첨단 전투 장비가 없는 시기에 목숨걸고 왕노릇하며 700년을 버틴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냥 지휘봉만 들고 다니면 나라가 지켜지지 않죠. 지근이야 나라는 미국에 맞기고 어깨 너머로 허세나 부리고 지휘봉만 들고 스스로는 나라를 지킨다고 하겟죠 개념이 없는 머슴들은 생각 없이 열광이나 하지요 ㅉㅉ 그러니까 신라는 백제는 모르겟만 고구려는 중앙아시아를 넘나든 강대국이엿다고 보는거죠 돈황근처에 비공개 되고 잇는 고구려 무덤들이 잇어서 그렇게 보인다는겁니다. 왜 비공개 학세냐고요 자신이 없으니까 그런거고 또한 고선지 장군이 왜 탈라스 전투 지휘를 햇겟냐고요 지리적적인 이해와 노련한 장군이엿기에 지휘력을 가진거죠 상식입니다. 자신들 같으면 초등에게 군사 지휘력을 주겟냐고요 상식입니다 상식 ㅎㅎㅎ 그래서 징기스칸은 고구려의 후손이엿고 그 조직세력들은 고구려의 혼을 이여 받아 유렵까지 넓혀 같다고 보는편입니다. 맞나? ㅎㅎㅎㅎ
친일반도강단사학과 중공따까리들이 문화대혁명이랍시고 유적지 보물을 죄다 때려부시는 야만적인 짓거리를 하며 우리역사의 진실을 묻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선동날조왜곡을 하여 국민들을 속이는짓거리를 하는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가려지겠냐 우리는 꼭 역사독립을 이룬다
공자선생도 한반도 출신이라 하던데
통천 즉 사라진 큰호수 북해 아래에 통천 금강산 임을 입증하면ㅡㅡ신라 마지막 왕자 마의태자 금강산 입증하면 ㅡㅡ역사 이해가 빠르겠네요ㅡㅡ혹 가능하다면 통천 주변 산 이름 ㅡㅡ연구 조사 부탁드립니다ㅡㅡ마의태자 후손의 부탁입니다ㅡ목 잘린 내조상 성상들
우리가 쪼그라 든 과정ㅡ마음 아프지만ㅡ있는 그대로ㅡ보여주세요
좋은 내용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내용중. 복건성福建省이 맞고. 강소성江苏省 양저우扬州는 남경옆에 있고. 볶은밥이 유명하죠. 그옆에 高邮가 있죠
12:48에 나오는 유당 고려국에서 有唐은 정확히 무슨 뜻으로 해석해야 할까요?
내가 통천 김씨ㅡㅡ숨겨둔 우리조상 사당 ㅡ전부 다 목이 잘려있음ㅡ수십개 전부 다ㅡㅡ신라 마의태자 후손 ㅡ마의태자 금강산 통천으로 사라졌다고 함 ㅡ너무 똑같네요
도대체 저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가 왜 알려지지 않았던건지?? 정말 상상도 못한 역사가 아닌가!! 와~~
담덕이 먼저 거란을 원정하여 펴정하고 염수를 확보후 다시후연을 공격하고 치열한 전투후에 풍발이 반란으로 고구려인 고운을 후연 왕으로 추대했으니 고구려 지배를 받는 영토이거나 식민지이죠! 후연땅도 못먹었으면 역사책에 나오는 조그만 땅 한반도 두배도 안돼는데 뭐가 대단하다고 쩝!! 북방 유목 민족 돌궐,몽골,거란,여진족들은 모두 중원 대륙을 정벌하여 거대한 영토를 이루었는데 담덕도 후연을 집어 삼키고 동북 삼성 하북성 내몽골 산서성 그리고 후백제 한수 이북까지는 먹어야 좀 큰 영토가 그림이 그려지고 현실적인거죠 황하가 한수이고 그 아래가 하남 위례성이고 지금도 중국에서 하북성 하남성 하는것 처럼
단단한 거짓속에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이세상. 단단한 거짓은 지금의 중국이 만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전혀 안드는게 그들의 역사의 승자인 적이 없다는 점. 소위 영미제국과 그들의 우방연합이 역사를 새로 만들고 우리역사를 축소시켰을것으로 생각된다. 매우 기만적이게도 이스라엘과 영미는 지금 우리 우방국에 속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보수에는 민족주의가 없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구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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