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살펴 볼때 현대의 교통 통신수준으로 이해하면 망합니다. 하나의 나라가 광활한 영토를 통치하기 위해 제후국을 둔 영방제국가체제였음을 전제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후국들이 반란을 일어켜서 성공하면 왕조가 바뀌고 실패하면 사라지는 그런 역사!! 게다가 지배층의 분쟁에 다수인 평민들은 자신의 터전을 이어 왔울것이고 전쟁시기에는 한반도나 지금은 일본으로 피해 살러갔을것입니다. 요즘도 전쟁나면 부자들은 도망갑니다. 재산 털어서 옛날이라고 다를 바가 없겠지요
근초고왕 며느리 .. 왜땅에 상륙하여 터잡기 전에도 .. 신라 하고 고구려 사람들 그곳에 살었을꺼라 보게되죠 .. 백제왕 며느리 ..만삭의 몸으로 상륙하여 여러 지역을 정복 하는 ..백제왕 며느리 .. 야마토 건국 신화 일본에 있지 안나 싶어요... 한반도 에 없고 일본에만 있다는 것은 .. 그곳에 상륙한 이가 신화가 되었다는 내용이죠..
신라에 비단을 많이 만들었다 하지 않았나요? 한자 매금寐錦 풀이하면 비단을 아무렇지도 않게 많든다는 뜻도 되는듯 해서요. 구글에 매금을 입력해 보니 신라의 17대부터 22대까지 군주를 지칭해서 마립간 또는 매금이라 사용했다 나오네요. 국가를 매금이라 했던 군주를 매금이라 했던 확실한건 우리가 매금이라는 단어를 전혀 인식 못 하고 있다는 것이지 않나 생각 듭니다. 오늘도 고맙습니다 ^^
1388년 음력 7월 12일 명이 북평에 행도를 설치 (비로소 도착하였음을 알림).~새로운 요서의 시작 음력 7월 22일 명이 산해위를 설치. (새로운 만주의 시작) 음력 9월 15일 8개 점령지에 대한 분봉 (秦王,晉王,周王,楚王,齊王,湘王,魯王,潭王) 분봉된 8개 지역을 점령하기 1년전의 요서 요동이 그 당시의 요서 요동.
매금(寐錦)은 몽골어 명사수, 일등 궁수를 뜻하는 мэргэн/미(메)르긍/일 가능성이 큼. 합성어로 성인(- ухаантан), 군자(- хүн)가 있어 통치자의 칭호에 걸맞음. 이사금(尼師今)도 эрхэм/이르흠(큼)/으로 볼 수 있는데 ‘귀중한’의 뜻이지만 эрхэм танд처럼 귀하, 경 등 높임말 번역되는 용례가 보임(*몽골어의 р/이르/ ‘ㄹ’ 발음은 баяртай/바이(야)르테/)처럼 한국어 ‘ㅅ’ 음가가 섞여 ‘바이시테’로 들리는 경우가 있으니 ‘이스큼’이 가능함). 한국어 벼슬아치-бясалгагч/뱌슬각치/ 명상가, 수행자, 사또-сайд/새뜨/, сайдууд/새또드/ 장관의 경우처럼 고대사를 이해하자면 몽골어를 알아 둘 필요가 있어 출처 없는 내용이지만 거론해 봄.
20여년 전에 마을 도서관에서 업무에 필요한 자료를 찾다가 삼국사기 번역본이 눈에 보여 처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려운 철학이나 풀기어려운 수학보다 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백제가 요서를 공략하고 장수왕이 내려 오면서 사 오십개의 성을 공략하고 백제가 신라의 성을 사오십개씩 공략 했다는데 공략된 성들이 어디인지 모르겠고 좁은 한반도에서 북쪽은 고구려 동서로 백제 신라가 그렇게나 많은 성을 잃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인지 그 당시에는 산악지역인 한반도에 숲이 우거져서 사람 다니기도 어려웠을 텐데 수천명의 기병들이 수시로 활동을 하고 이 좁은 한반도에서 신라에서는 기근이 들고 백제에서는 홍수가 일어나고 매뚜기들이 작물을 씨를 말리고 어디는 지진이나서 수많은 건물이 무너지고... 또 왕들의 계보는 뭐가 그리 복잡한지 누가 누군지 계보를 알 수도 없고.. 그래도 졸려가는 눈을 붙잡고 절반 이상은 읽어본 기억이 있다. 뭔가 내 나라 역사니까 조금 이라도 알아보자는 마음이었으나 차라리 삼국지 24권 짜리를 보는게 낫겠다 싶었다. 학교 역사 선생님들이 철학자 보다 존경스러웠다. 요즘들어 대륙 삼국론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삼국사기가 조금씩 이해고 있다 하지만 대륙 삼국론에도 헛점이 보인다 대륙의 동서에서 중국과 한민족이 서로간에는 박터지게 싸우면서 남의동네 하고는 발걸음도 건너지 않은 것인지 결국 땅따먹기 인데 친척들 끼리만 박터지게 싸우는지 또 묘하게도 서로간에 동시에 혼란기가 찾아오고 동시에 수숩되고 하는지 또 왜 통일된 중국은 바로 옆에 백제 신라는 나두고 고구려 하고만 못 잡아먹어서 난리인지 동아시아의 역사는 뭐가 진실인지 언제 부터 사짜 역사가 시작됬는지 왜 중국의 역사서 들은 전해지고 있는데 우리 역사서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인지 지금 유튜브에서 소위 눈밝고 깨인 재야 학자들의 수 많은 자료들은 서로 닮았으면서 부분적으로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맥락은 한 방향으로 나가는 것 같다 최근에는 중국의 역사들을 거의 쓰레기 변조품으로 만들 수 있는 이론도 보인다 소위 중국은 처음부터 없다 우리의 역사를 위변조하면서 날조된 기록들이다 하는 것이다 이부분에서 생각의 방향은 다시 잡으면 어떨까 싶다 눈 어두운 뒷방 노인의 조잡한 역사의식 이었습니다.
백제 동성왕 모대(牟大)가 신라 지증왕 지대로(智大路, 모대의 대大자)임, 동성왕은 신라 이찬의 사위이고, 동성왕의 사망년도가 AD 501년으로, 삼국유사에 지증왕이 왕위에 오른 시기와 같습니다. 지증왕의 아들 법흥왕의 이름이 모진(募秦)으로 모(募)와 모(牟)는 음차이니 같은 말
올해 2월에 와이프와 막내딸이 오사카와 교토를 여행했는데 교토에서 택시를 탔는데 딸이 일본어를 잘하니 일본인 운전사가 딸에게 "교토는 신라인들이 들어와 만든 도시였는데 이후 백제인들이 들어와서 신라인들을 다 내쫒았다" 그리 말하더랍니다.
신라인들이 교토에서 백제인들에게 쫓겨나 열받아서 도교라고 거꾸로 도시명을 짖지않았을까요??? 그련 도교가 더 좋은땅이고 도쿠가와도 이에야스도 원씨 신라인이라던데...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자칭 중국 장꼬르드의 역사서는 거짓말입니다.
@@kr9446 저두 너무 감사여 사택적덕 이랑 소가씨 관심 있어 봤는데
사택적덕에 사택은 모래를 의미하고 적덕은 불교에서 무슨 왕자 이름 이라고. 여튼. 너무감사여
역사를 살펴 볼때 현대의 교통 통신수준으로 이해하면 망합니다. 하나의 나라가 광활한 영토를 통치하기 위해 제후국을 둔 영방제국가체제였음을 전제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후국들이 반란을 일어켜서 성공하면 왕조가 바뀌고 실패하면 사라지는 그런 역사!! 게다가 지배층의 분쟁에 다수인 평민들은 자신의 터전을 이어 왔울것이고 전쟁시기에는 한반도나 지금은 일본으로 피해 살러갔을것입니다. 요즘도 전쟁나면 부자들은 도망갑니다. 재산 털어서 옛날이라고 다를 바가 없겠지요
맞습니다. 지금의 상식과 시각으로 1500년전을 바라보면 안됩니다.
사택적덕은 확실히 백제 용어가 맞는건지 .?
근초고왕 며느리 .. 왜땅에 상륙하여 터잡기 전에도 .. 신라 하고 고구려 사람들 그곳에 살었을꺼라 보게되죠 .. 백제왕 며느리 ..만삭의 몸으로 상륙하여 여러 지역을 정복 하는 ..백제왕 며느리 .. 야마토 건국 신화 일본에 있지 안나 싶어요... 한반도 에 없고 일본에만 있다는 것은 .. 그곳에 상륙한 이가 신화가 되었다는 내용이죠..
그세력들은 기호마한세력 백재가 한성을 도읍으로 경기남부 오늘날 경기화성. 충북으로해서 경북북부까지 세력을 확정한 마한세력.. 청주즁심으로 세력을 떨친 마한인들이 가야의 시조고. 백제에선 한성백제에 밀렸지만 . 가야에서 번성한 세룍들을 말함. 그전에 대전 청주의 청동마한세력둘이 경북으로해서 왜로 건넘감. 이들이 야마토시조. 이땐 원두막짓고 나라라기보단 부족시대.. 백제 근초고왕이 왜의 동생 제후국을 왕이 실제 야마토.국
신라에 비단을 많이 만들었다 하지 않았나요? 한자 매금寐錦 풀이하면 비단을 아무렇지도 않게 많든다는 뜻도 되는듯 해서요. 구글에 매금을 입력해 보니 신라의 17대부터 22대까지 군주를 지칭해서 마립간 또는 매금이라 사용했다 나오네요. 국가를 매금이라 했던 군주를 매금이라 했던 확실한건 우리가 매금이라는 단어를 전혀 인식 못 하고 있다는 것이지 않나 생각 듭니다. 오늘도 고맙습니다 ^^
앞선 동영상을 보시면 좋을듯 요
매금 = 한반도 신라 (동신라)를 칭하던 단어
1388년 음력 7월 12일 명이 북평에 행도를 설치 (비로소 도착하였음을 알림).~새로운 요서의 시작
음력 7월 22일 명이 산해위를 설치. (새로운 만주의 시작)
음력 9월 15일 8개 점령지에 대한 분봉 (秦王,晉王,周王,楚王,齊王,湘王,魯王,潭王)
분봉된 8개 지역을 점령하기 1년전의 요서 요동이 그 당시의 요서 요동.
백제는 대륙에서 건국했고, 서기 238년에 백제(고이왕=부여 의려왕)가 영산강지역도 차지하고, 일본열도까지 진출했습니다 신라는 대륙에서 박씨왕조가 건국했고, 한반도 경주에는 석씨 왕조가 있었고, ♥500년 경에 대륙신라의 김씨왕조가♥ 한반도 경주로 수도를 옮겼습니다
삼국사기의 말갈이 중국 사서의 오환인데 산서성이 주활동 무대로 고구려의 속민이었습니다 서기 480년 이후에 말갈과 신라의 전쟁기록이 없습니다 서기 500년 이후에 신라와 말갈의 전쟁이 없는 이유는 신라 왕성을 중국 대륙에서 한반도 동남부 경주로 옮겼기 때문.
따라서 AD 500년 이전에 신라 박씨왕과 김씨왕은 왕도가 중국 대륙에 있었기에 산서성의 말갈과 전쟁을 하였고, 한반도 동남부의 신라 석씨 왕 시기는 말갈과 전쟁을 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에 전쟁 기사 내용이 거의 없는 것입니다
AD 500년 이전의 말갈과 신라의 전쟁을 보면 박씨 왕과 김씨왕때 말갈과 대분분 전쟁을 하였고, 석씨왕 시대에 전쟁은 몇개되지 않음(고구려는 한나라와 붙어 있으니, 후한서 오환이 삼국사기에 등장해야, 삼국사기 말갈은 후한서에 등장해야 정상적. 그런데..)
@@수구리suquri 석씨가 소가씨 일본인 소가노 뭐있었는데 그럼 왜인인지 신라인인지
사실 사택도 선비족이랑 연관이 있고. 근데 매금 이라면 사실 마립관해서 신라랑 연관이 더 많다는 뜻 아닌가여
신라가 정말 대단한 나라이군요.
매금(寐錦)은 몽골어 명사수, 일등 궁수를 뜻하는 мэргэн/미(메)르긍/일 가능성이 큼. 합성어로 성인(- ухаантан), 군자(- хүн)가 있어 통치자의 칭호에 걸맞음. 이사금(尼師今)도 эрхэм/이르흠(큼)/으로 볼 수 있는데 ‘귀중한’의 뜻이지만 эрхэм танд처럼 귀하, 경 등 높임말 번역되는 용례가 보임(*몽골어의 р/이르/ ‘ㄹ’ 발음은 баяртай/바이(야)르테/)처럼 한국어 ‘ㅅ’ 음가가 섞여 ‘바이시테’로 들리는 경우가 있으니 ‘이스큼’이 가능함). 한국어 벼슬아치-бясалгагч/뱌슬각치/ 명상가, 수행자, 사또-сайд/새뜨/, сайдууд/새또드/ 장관의 경우처럼 고대사를 이해하자면 몽골어를 알아 둘 필요가 있어 출처 없는 내용이지만 거론해 봄.
*매금은 고구려어로 통치자가 아닐까 함(주몽-명궁-мэргэн-매금)
그렇네요. 아주 중요한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대륙신라와 대륙백제는 신라가 삼국통일후 그 영토가 한반도 신라와 함께 통일신라의 영토로 유지되었나요?
20여년 전에 마을 도서관에서 업무에 필요한 자료를 찾다가 삼국사기 번역본이 눈에 보여 처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려운 철학이나 풀기어려운 수학보다 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백제가 요서를 공략하고 장수왕이 내려 오면서 사 오십개의 성을 공략하고 백제가 신라의 성을 사오십개씩 공략 했다는데 공략된 성들이 어디인지 모르겠고 좁은 한반도에서 북쪽은 고구려 동서로 백제 신라가 그렇게나 많은 성을 잃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인지 그 당시에는 산악지역인 한반도에 숲이 우거져서 사람 다니기도 어려웠을 텐데 수천명의 기병들이 수시로 활동을 하고 이 좁은 한반도에서 신라에서는 기근이 들고 백제에서는 홍수가 일어나고 매뚜기들이 작물을 씨를 말리고 어디는 지진이나서 수많은 건물이 무너지고... 또 왕들의 계보는 뭐가 그리 복잡한지 누가 누군지 계보를 알 수도 없고.. 그래도 졸려가는 눈을 붙잡고 절반 이상은 읽어본 기억이 있다. 뭔가 내 나라 역사니까 조금 이라도 알아보자는 마음이었으나 차라리 삼국지 24권 짜리를 보는게 낫겠다 싶었다. 학교 역사 선생님들이 철학자 보다 존경스러웠다.
요즘들어 대륙 삼국론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삼국사기가 조금씩 이해고 있다 하지만 대륙 삼국론에도 헛점이 보인다
대륙의 동서에서 중국과 한민족이 서로간에는 박터지게 싸우면서 남의동네 하고는 발걸음도 건너지 않은 것인지 결국 땅따먹기 인데 친척들 끼리만 박터지게 싸우는지
또 묘하게도 서로간에 동시에 혼란기가 찾아오고 동시에 수숩되고 하는지 또 왜 통일된 중국은 바로 옆에 백제 신라는 나두고 고구려 하고만 못 잡아먹어서 난리인지
동아시아의 역사는 뭐가 진실인지 언제 부터 사짜 역사가 시작됬는지
왜 중국의 역사서 들은 전해지고 있는데 우리 역사서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인지
지금 유튜브에서 소위 눈밝고 깨인 재야 학자들의 수 많은 자료들은 서로 닮았으면서 부분적으로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맥락은 한 방향으로 나가는 것 같다 최근에는 중국의 역사들을 거의 쓰레기 변조품으로 만들 수 있는 이론도 보인다 소위 중국은 처음부터 없다 우리의 역사를 위변조하면서 날조된 기록들이다 하는 것이다 이부분에서 생각의 방향은 다시 잡으면 어떨까 싶다
눈 어두운 뒷방 노인의 조잡한 역사의식 이었습니다.
😊👍
백제 동성왕 모대(牟大)가 신라 지증왕 지대로(智大路, 모대의 대大자)임, 동성왕은 신라 이찬의 사위이고, 동성왕의 사망년도가 AD 501년으로, 삼국유사에 지증왕이 왕위에 오른 시기와 같습니다. 지증왕의 아들 법흥왕의 이름이 모진(募秦)으로 모(募)와 모(牟)는 음차이니 같은 말
삼국사기에 백제 동성왕이 심복이자 왕의 호위 대장이었던 백가가 보낸 자격에게 살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백제 좌현왕인 일본 열도를 다스리던 비류백제 무령왕에게 밀려, 사위 국가인 신라로 동성왕이 들어가서 신라의 왕이 됨. 법흥왕 이후에 김씨왕은 진흥왕.
『수서 동이열전 신라』에 "그 나라(신라)의 왕은 본래 백제 사람이었는데, 바다로 도망쳐 신라로 들어가 마침내 그 나라의 왕이 되었다(其王本百濟人, 自海逃入新羅, 遂王其國)" 는 내용이 ♥백제 동성왕이 신라로 들어가서♥, 신라 지증왕이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럴듯한 논리네요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동성왕 살해를 지시한 백가가 501년(무령왕 원년) 1월에 죽었는데, 죽은 백가가 501년(동성왕 21년) 11월에 자객을 시켜서 동성왕을 살해 했답니다!!! --> (501년은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번역된 년도입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소지마랍간 "22년(500)〕 여름 4월에 폭풍이 불어 나무가 뽑혔다. 용이 금성정(金城井)에 나타났다. 서울[京都]에 누런 안개가 사방에 가득 끼었다." 는 내용이 백제 동성왕이 신라에 들어왔다는 암시를 나타냅니다
구주도 신라인 이유가 뭐임
인트로 빼면 3분 카레보다 짧네
1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