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친 도발 “강릉 무장공비 침투” / 대통령을 죽이러온 26명 공작원! [지식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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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0 ян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827

  • @카리스마빡
    @카리스마빡 2 года назад +477

    96년 그당시에.. 육군26개월 군생활. 95년7월군번... 상병때. 작전 나갔을때 기억나네요. 경기도쪽 사단이라서 총격전은 없었지만, 경기도와 강원도 근처라서..공비들이 경기도로 유입해서 서울로 들어오는거 차단하는 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106mm 무반동총 사수..새롭네요...제대하고 학교에 복학하고 들었습니다. 과동기 1명이 그때 전사했다고....벌써 26년전일이네요...그때 군생활하신분들 고생 많았습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 @Yazze1u5
    @Yazze1u5 2 года назад +42

    군인분들 진짜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우리나라 국민들 지키려 애쓰셨다니 진짜 감사합니다.. 이런 분들 덕분에 우리가 오늘날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동훈-h2t3p
    @이동훈-h2t3p 2 года назад +292

    무장공비들을 막기 위해 노력한 이때에 계셨던 군 장병들과 희생된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존경합니다

    • @육당최남선
      @육당최남선 2 года назад

      그러니까 북한을 진작에 중국이나 러시아한테 주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지 안그래도 통일반대한다며 특히 2030세들이 ㅋㅋㅋ

    • @한천수-v5b
      @한천수-v5b 2 года назад +4

      이때 제가 알기로는 우리나라 군사시설및 산업주요 정부주요 기반시설 촬영및 정보 취득후 북으로 돌아가기위해 잠수암 오는와중에 해안에서 좌초된걸로 그때당시에 들었는데 김영상대통령 암살은
      처음듣는 내용이네요
      암살

    • @jun-nv2hf
      @jun-nv2hf 2 года назад +3

      그시절 기억이 새록하네요 ㅎㅎ

    • @nijigibinda
      @nijigibinda 2 года назад +3

      북한 돈 많네 잠수함 아깝

  • @Hungrymountain123
    @Hungrymountain123 2 года назад +35

    저희 아버지가 저한테 이 얘기해주셨어요 아버지가 76년생, 95인가 96군번이신데 당시 막 상병되셨을때인데, 그때 나라 지켜주셔서 감사하고 또 건강히 돌아오셔서 저 낳아서 키워주신게 너무 감사하더라구요. 국군장병 여러분 감사합니다.

    • @-oldrama89
      @-oldrama89 2 года назад

      뭘 고마워 너도 가서 뺑이까면된다

  • @윤성훈-c6s
    @윤성훈-c6s 2 года назад +128

    이때 최초 신고자가 택시 기사 인데 이후에 집 근처에 수상한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협박 전화도 엄청 많이 와서 집에도 못들어가고 결국 이사 갔다고 하더라고요

    • @user-fk5lq6qs2u
      @user-fk5lq6qs2u 2 года назад +51

      ㅃㄱㅇ 너무 많습니다.. 아직도 이번에 의원관련해서도 나오고 개판이네요,,

    • @티치앨쥬스피앙
      @티치앨쥬스피앙 2 года назад +29

      교과서에 북한이 주적이라는 내용이 얼마전에 다시 생겼다죠...

    • @속바지입는여자는몰카
      @속바지입는여자는몰카 2 года назад +34

      민주당에서 압박했나보네..

    • @kbk102
      @kbk102 2 года назад

      고정 간첩 많죠 지금 정부 간첩들 색출 작업 빡시게 하고 있어요

    • @jjshim1
      @jjshim1 2 года назад

      @@속바지입는여자는몰카 정치병자 왔는가 ㅋ

  • @김명기-i4u
    @김명기-i4u 2 года назад +44

    이당시 74년생, 75년생, 76년생들이 입대해서 병사로 있던 시기였죠.
    군복무는 6-6-8-7로 26개월이고 무장공비 침투로 새우깡계급장이 먹물새우깡계급장으로 바뀌었습니다.

  • @일상茶飯事
    @일상茶飯事 2 года назад +317

    저 당시 실제 작전에 투입되었던 사람입니다.
    칠성산에 헬기 타고 매복하던 중 잠수함 함장을 소대내에서 사살하였고, 저희 소대 강정영 상병(추후 병장 진급)이 돌아가셨죠. 그리고 2일만에 칠성산을 걸어 내려와 5분대기조처럼 약간의 휴식을 누렸고, 실탄을 넣고 외곽근무를 서던 중, 행보관의 긴급 명령으로 길건너 수수밭으로 이동했었구요. 거기서 권총으로 자살하려던 간첩을 보았고, 특전사들이 그 주위를 둘러싸는 바람에 저 또한 죽을 뻔 했구요.
    아무튼, 그 당시만 생각하면, 처음에는 오줌조차 바지내리고 조용히 싸야 할 정도로 무서웠고, 나중에 오대산에서는 11월 추위에 자고 일어나면 온몸이 굳어 아침마다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 당시 고생하셨던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 @libertyfreedom8643
      @libertyfreedom8643 2 года назад +52

      노고 많으셨습니다.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 @일상茶飯事
      @일상茶飯事 2 года назад +36

      @@libertyfreedom8643 그 당시엔 당연한 걸로 생각했었고, 저희 부모님이 밤잠을 못 주무실 정도로 뉴스만 뚫어져라 보셨다 하셨을 때, 진짜 위험했었구나 라는 것을 느꼈네요.

    • @크크루-u7z
      @크크루-u7z 2 года назад +18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 @okimtaegyeongo
      @okimtaegyeongo 2 года назад +21

      선배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화랑!

    • @조활-l3t
      @조활-l3t 2 года назад +10

      너무 너무 고생많으셨어요~~~

  • @방구석밀덕-v8t
    @방구석밀덕-v8t 2 года назад +139

    4:38 저때 무장공비 사격에 특전대원 머리를 관통했는데 총에 맞는 그 순간에도 무장공비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죠 정말 존경스럽고 대한민국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 @kjblueskyjp
      @kjblueskyjp 2 года назад +10

      그것 거짓말 이라고 말 합니다. 티비에서는 죽은 그 공수부대원이 머리에 총상을 입은 순간에도 방아쇠를 당겼다고 발표 하였는대 그것은 사실이 아니고 공수부대원이 레펠 하강하던중 자신의 총의 방아쇠를 잘못 건드려 자신의 총에 의해 머리를 관통사한것이 진실이라고 말 합니다. 그 당시에 레펠 하강에 참가한 군인이 오랜 시간후에 제대후 말한 것 이기에 총기 오발사고가 맞을 것 입니다

    • @크크루-u7z
      @크크루-u7z 2 года назад +2

      @@kjblueskyjp 진짠가요??

    • @INTEL-I-KS
      @INTEL-I-KS 2 года назад +5

      @@kjblueskyjp 근거좀

    • @4949west
      @4949west 2 года назад +1

      @@kjblueskyjp 님이 잘못 알고 있는겁니다 당시 언론에서는 레펠로 하강하다가 ak 저격탄에 정확히 머리 조준해서 사망했다고 보도 되었죠
      훗날 같은부대 친하게 지내던 특전 중사가 96작전 참전후기 인터넷에 올리면서 사실 알려졌는데
      당시 언론보도처럼 레펠은 타지도 않았고
      실제로는 페스트 로프로 하강후 토끼몰이 작전(특전사가 헬기로 정상에서 하강해서 도보 정찰하면서 발견하면 총격전 벌이며 간첩 퇴로를 산아래 대기하고 있는 육군 보병 병력쪽으로 밀어주는 작전)
      하강후 도보로 이동중 간첩이 먼저 발견하고 척후조였던 이중사에게 먼저 총격 가해서 사망했다고 글올렸던걸로 기억하네요 당시 같은 팀이었던 대원은 총격 피하다가 절벽으로 떨어졌구요

    • @BKrulez
      @BKrulez 2 года назад +40

      죄송하지만 팩트는 아닌듯하네요.
      당시 작전참여자였고, 그 현장부근에서 작전하던 사람입니다. 고인의 명예에 회손될 발언인듯하니 삼가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 @apro1363
    @apro1363 2 года назад +34

    저 당시 강원도에서 군생활했던 1인입니다. 노란색 계급장이 어두운 색으로 바꼈죠.

  • @advance_No1
    @advance_No1 2 года назад +70

    제가 저당시 이등병이였는데 무장공비 1명을 잡기 위해 1개 대대 정도로는 택도 없다는 걸 느꼈고 죽기 살기로 버티던 무장공비 한명이 아군 부대장을 저격 사살 그 이후로 빨간색이였던 계급장이 눈에 잘 띄지 않는 검은색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저 영상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우리 부대에서는 내부사고가 좀 있었습니다. 우리부대는 무장공비한테 죽는 인원보다 내부사고로 인한 사상자가 더 많았던 강릉무장공비 침투사건이였습니다.

    • @석수갈매기
      @석수갈매기 2 года назад +12

      기무부대장은 무장공비가 있다고 들어가지 말라던 곳에 무리하게 조사한다고 들어갔다가 죽음. 그 분 따라 갔던 사람들도 어이없이 죽고 다치고... 그 계곡 다리로 들어갈때 기무부대 대령이라고 다들 경례를 하니 무장공비 입장에서는 고위간부라고 알려준격...

    • @chriskim2958
      @chriskim2958 2 года назад +9

      ​@@석수갈매기 현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이 같은 행동하다가 러시아 장교들 수두룩 저격으로 사망

    • @dmson9729
      @dmson9729 2 года назад +3

      오인사격으로 사망한것으로알고있음.

    • @gustomusic
      @gustomusic 2 года назад +5

      특수부대 1명이 매우 무섭다는 걸 알게 된 사건이기도 하죠. 그리고 군의 야전 훈련이 얼마나 부실했는지도 알게 된 사건...

    • @gustomusic
      @gustomusic 2 года назад +3

      @@석수갈매기 그 사건 뒤로, 훈련 나가면 경례하지 말라고 지시가 있었는데, 그래도 꼬박 꼬박 받을려는 간부들 있었음. 그러다 걸려서 행보관과 중대장에 졸라 까인다음 조용해졌음..
      그 때 말년 병장 중심으로 일부러 장난 치기도 했음. 행보관, 중대장 부근에서 일부러 "큰 목소리로" 경례를 하거나 (주로 이등병 시켜서...), 아니면 경례는 꼭 받아야 한다고 소대장에게 장난 치던 일도 있었음.. 소대장님 일찍 보내드리겠다고 농담 많이 했던 기억이..

  • @아린플레이저
    @아린플레이저 2 года назад +302

    요즘은 저렇게 몰래안들어오고 중국 국적얻어서 당당히 온다던데

    • @남센터느림
      @남센터느림 2 года назад

      하지만 확실한건 북한이진짜 제대로됀 무력도발을하는순간 우리가 얼마나 피해를보든 부한은 절때살아남지못함
      우리나라에한국인만있는것도아니고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등등
      거기에 북한과 우호적인 중국러시아인들도
      엄청 많은데 북한이 우릴 없애려는건 그사람들까지
      없애려는것과 다름없음

    • @서울토박이-y6w
      @서울토박이-y6w 2 года назад +28

      ㅇㄱㄹㅇ

    • @데쓸잉
      @데쓸잉 2 года назад +27

      북잘알

    • @ccj3372
      @ccj3372 2 года назад +27

      원래부터 국적 속여서 많이 들어감. 문제는 스파이가 아니라 암살 목적일 경우가 복잡해짐. 일본쪽에서도 제일동포 같은 걸로 위장해서.. 뭐 그렇다고. 미국도 중국계 유학생들을 포섭해서 수십년동안..

    • @ccj3372
      @ccj3372 2 года назад +12

      어떤 조직이든 단결된 조직으로 수십년을 커녕 수년도 못 버티는데 그건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 간첩도 남한 넘어오기도 전에 충성심 따위는. 가족같은 인질때문이지만 그것도 얼굴 안보고 몇년 살면 그것도 흐려짐. 이중간첩으로 변하기도 하고. 우리나라도 정권이 시작하면 몇달도 안되서 여당부터 내분이 시작됨. 이건 변하지는 인간 기본 속성. 최고 권력자도 본인빼고 믿는 사람이 급속도로 줄어듬 그래서 점점 더 회전문인사가 발생.

  • @부락민-o5i
    @부락민-o5i 2 года назад +91

    이런 사건들이 교과서에 수록되어야..학생들이 주적이 누군지 정확하게 알텐데..

    • @tastesnack
      @tastesnack 2 года назад

      ???: 훠훠훠 북한은 우리와 같은 민족입니다
      그 누구도 죽지 않도록
      평화롭게 적화통일 할것입니다

    • @세미소사-r4q
      @세미소사-r4q Год назад +9

      우리의 주적은 언제나 명확했습니다.
      북진멸공만이 유일한 통일의 길.

    • @a01022997074
      @a01022997074 Год назад

      @@세미소사-r4q어휴. . .

  • @capt.chickenpilot
    @capt.chickenpilot 2 года назад +23

    당시 강릉 촌놈이던 5학년의 나. 밤마다 조명탄으로 밝게 빛 나던 밤 하늘을 보았고, 첫 삼일은 안인 해변가 방향에서 간간히 교전 총성을 들었으며 야간 통금시간에 가족들과 함께 뉴스에 귀 기울이던 당시가 아직 생생하다.. 그 때 고생하신 군인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 @투리스
    @투리스 2 года назад +212

    북한 무장공비로 인해 희생되신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 @남센터느림
      @남센터느림 2 года назад +10

      근데 북한이 궁극적으로얻으려는건뭘까요?
      무슨 짓을하든 우릴꺽질 못할텐데
      무엇보다도 우릴 함부로건들수없는 가장큰이유가
      우리나라에 외국인이엄청많이거주하고
      심지어 중국과 러시아인도많아서
      북한이 선을 시게넘는순간단순히
      우리나라 와북한만에 문제로 끝나진 않을꺼같아요

    • @나-z5o7s
      @나-z5o7s 2 года назад +1

      걍 심심해서

    • @꿈고래-g6m
      @꿈고래-g6m 2 года назад +6

      @@남센터느림 이미 우리는 대한민국은 북한에 비해 잃을게 많고 쉽게 움직이기 힘들기에 적극적으로 도발하는 것이고 저런 행동이 미국한테 외교적 우위를 가지기 위해 저런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연평도 포격사건처럼 김정은이 내부 혼란을 잡기위해 외부로 적을 돌려 정권을 안정하기 위함도 있습니다.

    • @barbiekelley4459
      @barbiekelley4459 2 года назад

      ゲームがクラッシュ 🥺🤭🤣
      youtubeei.com/watch?v=zBmdVpaOG5C
      好きなゲームを推しが実況するという素晴らしい状況

    • @Smallake0902
      @Smallake0902 2 года назад

      @Berniece Gutkowski 사람 낚지 마세요

  • @전설의총남
    @전설의총남 2 года назад +6

    우리가이렇게 거의매일 편히잘수있는것도 좋든싫든 강제로끌려가 나라를지키기위해 고생하시는 우리의장병들 덕이라는것을 절대잊지마세요

  • @CharlieMooon
    @CharlieMooon 2 года назад +72

    언론때문에 망친 작전이죠

    • @우현박-q5e
      @우현박-q5e 2 года назад +20

      어휴 그러게나말입니다 진짜 기레기가 기레기 했을뿐인인데--

    • @cjfdlskfkche5162
      @cjfdlskfkche5162 2 года назад +14

      기레기들이 속보로 우리 위치 다 알려줌 ㅋㅋㅋㅋㅋㅋ

    • @o7k4m
      @o7k4m 2 года назад

      그저 기레기

    • @한천수-v5b
      @한천수-v5b 2 года назад

      개네들은 한가로이 산속에서 티비 보겠니

    • @CharlieMooon
      @CharlieMooon 2 года назад +7

      @@한천수-v5b 테레비 이전에 라디오라는게 먼저 나왓쥬

  • @형순철
    @형순철 2 года назад +12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에 대하여 자세한 보충 설명과 함께 리뷰 감사 드립니다.!!🙏🙆‍♂️🙋‍♂️💕💕

  • @전성원-d8v
    @전성원-d8v 2 года назад +42

    청학산 시신 발견 군인이 저희 아버지 이십니다. 아버지가 직접 얘기 해 주셔서 더욱 무서웠습니다.

  • @게임후라
    @게임후라 2 года назад +66

    강릉 무장공비침투 사건에서 전사하신분들 삼가고인에 명복을 빕니다

  • @조민규-f2r
    @조민규-f2r 2 года назад +9

    해 뜨면 수색하고 밤 되면 매복했었죠. 겨울도 아니였는데 엄청 추웠지요.

  • @사슴-u3b
    @사슴-u3b 2 года назад +86

    95년 10월 군번입니다.
    제가 근무했던 곳은 12사단 인제 원통 서화리 민통선 이었습니다.
    일병 말호봉 상병 진급하기전이었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매복, 수색작전에 투입되어 정말 하루하루가 힘든날이었습니다. 벌써 27년전의 일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군생활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입니다.
    그때 군생활 하신분들 정말 고생하셨고 존경합니다!!! 그리고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splaying
      @splaying 2 года назад +4

      선배님 12xx 37r 1bn 00군번 입니다.
      선배님들의 피와 땀으로 우리나라가 안전하다 생각합니다.
      FEBA는 서화리에 있었고, GOP 신병으로 자대배치 받아 두 번 올라갔다오고 .. 이젠 재미있었던 추억만 남았네요 ㅎㅎ

    • @nijigibinda
      @nijigibinda 2 года назад

      육군끼리는 아저씨라고 하지 않나요? ㅎㅎ

    • @Cover_the_earth
      @Cover_the_earth 2 года назад

      일병이 호봉이 어딨나요..
      적어도 상말정도는 돼야지

    • @풀튜닝두돈반
      @풀튜닝두돈반 Год назад +3

      @@Cover_the_earth이런 댓글에도 쿠사리를 쳐넣는 찐따가 있네요 ㅎㅎ

    • @이준걸-z4c
      @이준걸-z4c Год назад +2

      전 94년 7월군번 춘천102보충대 입소 고성22사단신병교육대 교육 ㅠㅠ 8군단 야공단 자대배치...입대전 에는 김일성 사망으로... 전쟁난다고..야단법석이 였는데... 강릉무장공비 침두땐 말년 휴가 나갔다가..집에서 뉴스듣고,,,복귀 ....날리가 아니였지요..

  • @엄태희-o3p
    @엄태희-o3p 2 года назад +4

    94년 8월군번입니다. 102보충대를 거쳐
    11사단 20연대서 근무.
    군대입대하기 한달전에는 김일성사망.
    96년 말년병장으로 저도 정말 불안불안해하면서 산에서 제대했네요.
    그때 돌아가신 병사,간부님들 ..
    모두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 @user-lbg1004
    @user-lbg1004 2 года назад +7

    영상 잘 보았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브베타도-q2t
    @브베타도-q2t 8 месяцев назад +4

    강릉사람 입니다 이때 진짜 극한의 공포와 엄청 났습니다

  • @쟁이들
    @쟁이들 2 года назад +24

    전역 1달 남겨놓고 개고생 시킨거 언젠가 값아주마 공산당...

    • @David-ly6ix
      @David-ly6ix 4 месяца назад

      ㅋㅋㅋㅋ 감사합니다

  • @khs1732
    @khs1732 Год назад +7

    95년 5월 군번입니다
    저때 기억나네요
    제대 못하는 줄 알았네요 ㅠㅠ
    방어선 위로 넘어가던
    특공여단 헬기들 아직도 생생하네
    희생자 분들 오래지났지만
    지금와서라도 명복을 빕니다
    육공 트럭위로 우유던져 주신 아저씨도 감솨~

  • @란파-y1w
    @란파-y1w 2 года назад +76

    저때 저희 행보관이 하사였고 직접 전투에 참가하셔서 썰을 풀어주셨는데 근 한달동안 거의 씻지도 못하였고 밤에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잠을 못잤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정예부대였던 무장공비가 그런지 사격실력들이 장난아니었다고 함

    • @돌아이-s1v
      @돌아이-s1v 2 года назад +7

      헬기에서 하강하던 특전사 요원을 저격해서 사망케 했었죠.

    • @란파-y1w
      @란파-y1w 2 года назад +6

      @@돌아이-s1v 그때 저격한 총이 북한이 무단복제한 M16이죠. 아마 k2도 복제품이 있을껍니다(한국도 북한무기가 있지만요)

    • @가오리싸만코
      @가오리싸만코 2 года назад +3

      @@서재현-u4o 무장공비침투사건때 하사였다는 말이에요

    • @user-bori2350
      @user-bori2350 2 года назад +1

      @@서재현-u4o 국평오;

    • @user-bori2350
      @user-bori2350 2 года назад +8

      @@서재현-u4o 진짜 국평오 맞구나;; 안타깝다

  • @사상의지평선
    @사상의지평선 2 года назад +9

    기억나네요. 그때 추석휴가 앞두고 나온사건이라 휴가는 무기한 취소되고 바로 수색들어갔죠.머 전역이 11월 이라 휴가에 미련은 없었지만 산은 진짜많이 올랐네요. 전투식량(특히 2종)은 정말 많이 먹었죠.그전 군생활동안 먹은것보다 산속에서 먹은 전투식량을 정말 많이 먹은듯.생쌀이 조금 씹하는듯한 투명봉지의 그 비빔밥.
    전역후에 부모님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집에 전화가 오면 특히 늦은밤에 전화가 오면 가슴이 철렁하셨다고 하셨더라구요. 훈련때 받던 실탄이 아니라 실전때문에 실탄을 받을때 그 긴장감이란..

  • @ceylonball1948
    @ceylonball1948 2 года назад +10

    이런 일이 있었다는게 놀랍네요,,, 대한민국이 부디 평화롭길 바랍니다.

  • @joshua_lee
    @joshua_lee 2 года назад +30

    저도 이 작전에 참여했던 기억이 나네요. 3기갑 여단 작전병으로 있었는데, 기갑부대라 출동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워낙 안 좋아서 기갑부대까지 작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제 기억에 포위망이 3단계였죠. 제일 바깥 쪽은 예비군이나 경찰이, 중간은 일반 보병들이, 제일 안쪽은 특전사나 특수부대가 맡았죠. 그리고 밤마다 총소리가 참 많이 들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야간훈련이라는 것을 받아본 적이 없었고, 불빛도 없는 늦가을 야간에 매복을 하다보니 떨어진 낙엽을 밟는 짐승들의 소리에 당황한 나머지 여기저기에서 K2와 60을 쏘는 총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런저런 사고도 많았고 제가 작전병이라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도 있지만, 그냥 그때 다들 진짜 죽도록 고생했다는 것만 기억해 주시면 좋겠네요. 지금 생각하면 웃을 수 있지만 그때는 정말 전쟁이 나는줄 알았습니다. 다시 영상을 보니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때 작전에 참여한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무명-t3b
    @무명-t3b 2 года назад +13

    "적은 3명이고 각개분산한 상태이며.. 야간에 기동할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 병력은 100명이다.. 매우 어려운 작전이 될 것이다."
    어느 병사의 일화에서.. " 무장공비는 각개분산 상태라 자신외의 사람은 전부 사살이 가능하나 우린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풀잎이 움직이는 작은소리에도 심장은 미칠듯이 뛰었으며..긴장감은 작전기간 내내 지속 됐다. 다른 전우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내가 정말 무서웠던건 수 없이 많은 아군들의 총부리였다.

  • @soju2pt124
    @soju2pt124 2 года назад +10

    지금도 무장공비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엔 간첩이 있습니다.
    그들은 검거하는게 너무 힘듭니다. 왜냐면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이 있으니깐요.
    우리는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합니다.
    무장공비에게 순국한 인원들도 있지만 아군에게 사살된 군 장성도 있습니다.
    제발 권위를 벗어버리고 절차와 초병의 지시에 응답했으면 합니다.

  • @BlueWingsSuwon
    @BlueWingsSuwon 2 года назад +11

    저때 기억난다 저때 전군 비상령 내려지고 지역 예비군 총 동원령 까지 내려졌었는데 한명 놓친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 @똥끊기달인
    @똥끊기달인 2 года назад +10

    전역을 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더 ㅎㄷㄷ 했지요

  • @신신-w4w
    @신신-w4w 2 года назад +10

    당시에 매복 나가서 추위에 얼며, 떨던 기억이 납니다.

  • @naju5364
    @naju5364 2 года назад +3

    선배 전우님들 고생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hotgod4284
    @hotgod4284 2 года назад +6

    93군번으로 제대후 1년후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당시 뉴스로 봤고 후배들 고생 많이 했습니다. 강원도 예비군 동원령 떨어졌고 예비군 한명 전사했습니다. 제 친구 동생이 노도부대 였는데 매복나갔던 이야기 들었습니다. 추워지는 날씨에 고생 많았고 많은 군인과 민간인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군복에 계급장이 노랑색에서 국방색으로 바뀝니다.

  • @rightright7246
    @rightright7246 2 года назад +9

    96군번으로 3기갑에 근무하면서 이등병으로 산에서 몇주 동안 생활 했습니다. 특전사도 아닌 그냥 일반 땅깨 인데도 몇주동안 산에서 자면서 개고생 하다가 산에서 내려 오니 도로에는 스키타러 다니는 일반인들을 보니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 같더군요. 새벽에 사이렌 울리면서 훈련이 아닌 실전이라는 소리를 들었을때의 공포감은 평생 갈듯 합니다.

  • @Breakc415
    @Breakc415 2 года назад +12

    추석명절을 일주일인가 앞두고 벌어진 작전이었음... 작전지에서 명절을 맞음...
    한참 취침중이던 새벽 5시에 당직사관이 내무반 불을 키면서 들어와 하는 말
    야!! 티비켜봐 실전이야 실전!!! 이거 아직도 기억남...

  • @김주현-w3o
    @김주현-w3o 2 года назад +7

    그 당시 군생활 했었죠. 오발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이 많았죠. 참 허무해요.

  • @황-b9u
    @황-b9u Год назад +2

    양양 8군단 통신병 으로 강릉 무장 공비 소탕 작전 참전 했습니다 그때 유서 쓰고 괘방산 칠성산 작전 투입 정말 고생 많이 했네요

  • @changwichu4868
    @changwichu4868 2 года назад +6

    95년 5월 군번. 후방부대 사단 fax병으로 야간 근무 서다가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공비 사살, 아군사망, 기무부대 대령 사망 보고가 기억납니다. 공비들 사격수준이 정말 말로만 듣던 특수부대 였고, 공비 수색, 사살은 대부분 우리 공수부대원 이었던 걸로 (개인적으로) 기억됩니다. 특전사가 다 한 줄 알았는 데, 일반병 분들도 고생 많으셨네요. 작업많은 우리부대에서 하사관이 철모, 탄띠 챙겨라 하길래 아싸 작업 안하겠다 했는 데, 그렇게 하고 작업 시키더군요. 징한 놈들. 지나고 보니 (후방이어서 그런가) 우리 군대가 얼마나 엉망이었나 세삼 느끼고, 지금 우크라이나를 보니 그 말이 뼈져리게 되세겨 지내요.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

    • @gustomusic
      @gustomusic 2 года назад +1

      전방에서는 밥 먹을 때도 총 메고 밥 먹고 잘 때도 군화 신고 잤어요. 강원도는 그 상태로 산에서 살았고, 경기도는 부대 안에서 그랬다는..

  • @이태영-j5u
    @이태영-j5u 2 года назад +5

    벌써 27년이 되어가네요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명복을 다시한번 빕니다 ~~~

  • @진형김-b5t
    @진형김-b5t 2 года назад +4

    예비군 현역 진짜 수고들 많았습니다

  • @yeahyeah06-x5r
    @yeahyeah06-x5r Год назад +4

    이때 저희 아버지가 공군으로 투입되었는데 살아계셔서 다행이에요 ㅠ

  • @케논데일
    @케논데일 2 года назад +2

    병장때 일이 터져 참 힘들었죠
    그때가 생각이 많이나네요

  • @LI-f2c
    @LI-f2c 2 года назад +34

    우리의 주적이 누구인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강력한 국방만이 답입니다. 그리고 북한의 강릉무장공비 침투사건에 투입된 모든 분들께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이 작전으로인해 고인이 되신 경찰군인등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빕시다.

  • @아저씨-z4y
    @아저씨-z4y 2 года назад +5

    96년4월 군번으로 모부대 수색중대 소속으로 치누크 타고 칠성산으로 작전 투입 했었습니다.
    당시 작전을 기점으로 많은게 바뀌는 계기가 되었는데..
    야샵도 나무손잡이에서 삼단으로..방탄조끼도 월남에서나 쓰던 넉마에서 신형으로..특전조끼 같은 개인 장구류부터 전투식량까지..기동타격으로 투입된 부대는 아실텐데 당시 전투식량은 익혀먹어야 하는데 긴급상황이라 박스채 들고 가서 벽돌같은 밥을 제대로 먹지도 못했지요..
    당시 전우들 모두모두 고생많았습니다.

  • @종남점김
    @종남점김 2 года назад +1

    끈질기구만. 무장공비땜에.한국이 아주 뒤집어졌네

  • @모타키드
    @모타키드 2 года назад +3

    94년 인제 전방에서 제대했는데 대학다니면서 들었던 치열한 전투소식.... 후배님들 고생했습니다.

  • @justinbest9088
    @justinbest9088 2 года назад +8

    우리의 안보관이 우리의 미래를 만든다.. 북괴에겐 자비란 없어야 한다

  • @beinghu
    @beinghu Год назад +3

    저때 군부대가 이동할 위치를 알리던 방송사가 밉다 군부대에서 송출 하지말라고 경고를 했는데 무장공비가 보겠냐면서 내보내다가 사살된 무장공비 유품에 “라디오를 참고했다” 라는 말이 나오네.

  • @ONE2LOVE3
    @ONE2LOVE3 2 года назад +6

    91년생인데 강릉시 출신에 평창 진부에서 살았어서 저때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저때 살아돌아갔다는 분도 북에선 전사처리되었고 초반에 죽은 11명은 살아남은 조보다 계급은 높았지만 비전투원이라 하극상 당해서 처형..ㄷㄷ

    • @탱고-z1t
      @탱고-z1t 2 года назад +2

      잠수함 승조원들이니 북한으로 돌아가는데 방해가 되니 모두 사살...

    • @johnlee4798
      @johnlee4798 2 года назад

      @@탱고-z1t 그게 공산주의입니다. 대를 위해서 소 는 희생되야 하는...

  • @victorys44
    @victorys44 2 года назад +7

    이때 해군유디티 대원들이
    잠수함 최초 내부진입하셧죵

  • @7202-s5p
    @7202-s5p 2 года назад +27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네요,..아침에 비상걸려서 밥도 못 먹고 출동대기하다 12시에 출동했었는데..출동하는 와중에도 들려오는 교전소식에 긴장했었는데....근데 웃긴건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60이 퍼질까봐 중간에 쉬면서 갔다는거..저때 이후에 계급장색깔이라던지 헬멧에 부착하는 계급표시라든지..레펠 타는 방식과 사격등등 여러가지 많이 바뀐걸로 기억하는데...정작 중요한 수송수단과 군 장비는 얼마나 바꼈을까.. 수통도 몇십년이 쓰는 나라인데...

    • @탱고-z1t
      @탱고-z1t 2 года назад +1

      경례잘받기위해 눈에 잘 보이는 계급장이 그후 색깔이 바꼈습니다

    • @yscho-h4k
      @yscho-h4k 2 года назад +1

      수통은 사실상 전쟁나면 500ml생수 보급하기때문에 중요도가 엄청낮은 물건으로 바꼇다고 보시면됩니다

  • @seo1739
    @seo1739 2 года назад +14

    나는 지원부대 부대원이라 많은 작전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매일 긴장속에 생활했던 날들이 생각납니다.
    지식스토리 가족 여러분 감사합니다 !

  • @금nim
    @금nim 2 года назад +2

    이기자출신인데 저때 산에서 한달 살았었음 갈수록 보급이 열악해져 개힘들었지

  • @모타키드
    @모타키드 2 года назад +8

    초반에 공비들이 민가에 들어가 민간인들을 가둬놨는데 공비들은 일반 남한 주민들이 핸드폰을 갖고 있으리라 꿈도 꾸지 못해서 핸드폰 압수를 안했다네요. 그래서 갇힌 사람중 핸드폰 소지자가 군에 신고를 해서 살아났다는 얘기도 그쪽 출신 후배에게 들었습니다.

    • @유튭신고대장
      @유튭신고대장 Год назад

      98년도에 핸드폰???

    • @모타키드
      @모타키드 Год назад +1

      @@유튭신고대장 PCS도 있고 스타텍 등 핸드폰이 이미 있었어요.

    • @검은깻돌-t7m
      @검은깻돌-t7m Год назад +2

      나는 95년부터 핸드폰 있었는데...

  • @chosunghwee
    @chosunghwee 2 года назад +2

    97년 2월에 전역앞두고 수색나갔던 기억나네요... 엄청 추웠는데 ㅠ.ㅠ 말년에 수색이라니.... ㅠ.ㅠ

  • @GammaLee-z9t
    @GammaLee-z9t 2 года назад +5

    95년 1월 군번으로 강원도에서 근무했었는데 상병말호봉에 저 사건 터져서 분대장 교육 받다가 비상 걸려 완전군장하고 뛰어나간 후 몇 달간은 정말 힘들었다. 절반은 수색 나가고 나머지는 부대에서 나간 인원 분까지 일하고. 근무 설 인원이 없어 말년병장 둘이서 근무 나간 적도 있었다. 다행히 우리 쪽에서는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우리 동생도 사건 일어난 근처에서 군생활하고 수색에 투입되어 부모님이 얼마나 마음도 많이 졸이셨는지.. 친구 중 하나는 군장에 총알을 맞기도 했었던 기억이 난다. 끝나고 나서는 계급장이 잘 노출된다고 하여 모두 노란 형광색에서 검은색으로 바꾸게 되고, 병장이 훈련에서 열외되는 문화도 사라지고 줄줄이 훈련을 강화하는 바람에 말년에 이가 갈리도록 훈련했던 기억이 나네..벌써 많은 세월이 지났구나.

    • @suuuuuuu-dy2fi
      @suuuuuuu-dy2fi 2 года назад +1

      당신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김현일-k1d
    @김현일-k1d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아 잊혀졌던 군대 기억입니다 이때 저는 입대한 지 4개여월 밖에 되지 않은 이등병이었는데 특공대에서 복무중이던 저는 침투 당일 새벽에 해당 지역으로 직접 투입되어 공비를 제거하는 임무에 참전하게 되어 이등병 시절이어서 개고생하고 40여일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실탄과 수류탄을 장착한 채 살아야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 @다빈아빠-y7c
    @다빈아빠-y7c 2 года назад +7

    저 때 강원도 동해에서 해군 복무중이었는데 ... 옛날 생각나네

  • @rlee4805
    @rlee4805 2 года назад

    기억이 나네요
    존경과 감사.애도를 표합니다

  • @PPakQ
    @PPakQ 2 года назад +2

    작전에 참가한 운전병 출신입니다
    너무 긴장되고 무서워서 일주일 넘게
    똥을 못 쌌던 기억이 나네요

  • @엘비트윈
    @엘비트윈 2 года назад +2

    그때의 사건이 새롭네요 피로써 지킨 대한민국...
    유사시 전투복에 의기투합하여 이 나라 고장 지역을 승리하도록 하겠습니다.

  • @김근우-r7b
    @김근우-r7b 2 года назад +2

    지식스토리 화이팅~!!

  • @남자탁용삼
    @남자탁용삼 2 года назад +8

    1996년 북한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 @안녕하세요-z7r8k
    @안녕하세요-z7r8k 2 года назад +4

    무장공비 사건때 인제군 지역은 정확히는
    인제군 서화면,천도리 입니다
    천도리와 서화면 사이의 평화생명동산이라고 있습니다 거기에 건물안에 무장공비사건의 대해적혀있습니다 그리고 대암산(대암산은 천도리의 학교 의 교가에 있는 앞산 입니다) 거기에 입구의 있는 마을 쪽과 대암산 에서 전투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서화면 에 있는 마을과 양구 가는길 쪽에서 양구로 이동했다가 한명은 DMZ넘어 북으로 갔다고 합니다. 전 천도리의 13년 살다 딴 지역으로 간 사람입니다. 그리고 천도리의 13년 있었던이유 는 군인가족이여서 그렇습니다.

  • @leedonghyup
    @leedonghyup 2 года назад +5

    이후 계급장이 검정으로 바뀌게됐다는

  • @신진우-n6f
    @신진우-n6f 2 года назад +2

    같이 일하시는분이 저 작전에 투입되셧는데 저 무장공비들 특수훈련받은애들이라 그런지 사격을 조준사격만하고 산도 엄청 빠르게 다녓다고 하더라구요..

  • @이온-w2y
    @이온-w2y 2 года назад +6

    회사에 특전사분이고 참여하신분이 있는데 엄청난 스트레스셨다고 ㅠㅠ

  • @fisherwanderer70
    @fisherwanderer70 Год назад +3

    전사한 우리군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런데도
    북한이주적이 아니라고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루빨리 그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 @압구정찰리
    @압구정찰리 Год назад +2

    상병달고 식기짠밥일때 작전나갔었는데...밤에 낙옆굴러다니는 소리의 공포감이 생각나네요

  • @assadeabag
    @assadeabag Год назад +3

    96.9.18일 입대했습니다ㆍ잊을수 없는날입니다ㆍ

  • @라잇쳐
    @라잇쳐 Год назад +1

    저때 병장 휴가받아서 쉴때였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뉴스가 딱

  • @kingking-dm2jp
    @kingking-dm2jp Год назад +1

    저때무서웠는데ㅜㅜ 저분들이 진짜 용사들이죠!!

  • @홍길동-d4k6q
    @홍길동-d4k6q 2 года назад +3

    저 때 일병말 상병초 때인데, 저기 작전 나간 인원들한테 보급품 우선 지급한다고 속옷 보급 못받았던 기억이..인천김포쪽 부대였는데도 거의 반 년 가까이 군복입고 잤었네요.

    • @nuclear2268
      @nuclear2268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혹시 1방공여단?

    • @홍길동-d4k6q
      @홍길동-d4k6q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nuclear2268 ㄴㄴ 61사단;;;

  • @청라-p9w
    @청라-p9w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그랬었군요.그보다 훨씬전에 워낙 많은도발에 만성이되어 잘몰랐었는데ᆢ

  • @강주희-y5q
    @강주희-y5q 2 года назад +12

    당시 2사단 근무중이었습니다.
    저는 포병대대였기 때문에 직접 작전에 나가지 않았지만 2사단에서도 2명의 전사자(각 31연대, 공병대대 소속이었을 겁니다)
    마지막 사살된 공비 2명이 대대에서 매우 가까운 지역이라 사살 전 날부터는 대대도 난리가 났었던 기억이 납니다

    • @yscho-h4k
      @yscho-h4k 2 года назад

      포병연대 선배님 이시네요 62빼고 포병대대 전부 인제에 있었으니 셋중 한군데 출신이시겠네요 전 18대대출신입니다

    • @henryros301
      @henryros301 2 года назад

      저도 2사단 17연대 출신이었습니다
      저희 부대원 한명도 공비에게 사살 되었네요
      1달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매복하느라 모두가 고생했었죠

  • @samuelkim1236
    @samuelkim1236 2 года назад +2

    아...
    이때 상병 두달째 였네요
    너무 힘들었어요

  • @songsong_fam
    @songsong_fam 2 года назад +8

    우린 절대로 지난 역사를 잊지말아야 합니다

  • @SDT-zb5vi
    @SDT-zb5vi 2 года назад +15

    진짜 이때 돌아가신 군인분들은 무조건 국가 유공자로 선정해드려야됨

  • @roadartj6281
    @roadartj6281 2 года назад +1

    96년8월 전역을 앞두고 갑자기 전역연기대상 공문이 떨어졌죠..ㅎㅎ
    실제상황이다보니..강원도 양양에서 근무를 하던 저로썬 앞이 캄캄했어요..말년병장이였으니깐..ㅠㅠ
    주특기 야간감시수리병이란 직책으로 강릉 칠성산 항공대대에 집결을하게됩니다..저의 임무는 칠성산의 모든 장병들 두둔하고있는
    적외선장비들을 정비하는 이동정비병이였거든요.. 안타깝게도 그때 우리 수색대원들 몇명이 전사를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일을 평생 잊을수가없어요...

  • @alexkim861
    @alexkim861 2 года назад +2

    원산에서 출항한게 아닙니다.함남도 라흥군 차호구에 있는 동해 5전단. 마양도기지 에서 출항했습니다.

  • @정인우-r2b
    @정인우-r2b 2 года назад +2

    저는 이 당시 강릉 옥계에 있는 레이더기지에서 근무했습니다. 94군번....
    새벽 2시경 잠수함 발견 통보를 받고 진돗개 발령되어 탄약고 열어 무장하던 때가 생각나네요. 말년 병장이었는데.. ㅋ
    고생 좀 했죠. 석 달 동안 앉아서 밥 먹어본 적 없었던 거 같네요. 비 맞으며 서서 밥 먹고 완전 무장상태로 전투화 신고 내무반에서 거꾸로 가면.... 가면 아세요? 임시로 대충 잔다는 말.. 숙면에 반대인가. ㅋ
    그때 다들 고생이 많았죠. 말로 다 할 수 없음. ㅎ

  • @gustomusic
    @gustomusic 2 года назад +1

    그리고 남은 1명은 북으로 탈출 한거라고 합니다. 처음에 잠깐 정보가 나왔다가 모두 기밀로 분류되서 말이 바뀐 걸로 알아요. 처음에 얘기나오다가 바로 입단속도 들어갔으니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철책 경계 그렇게 했는데도 탈출 흔적을 나중에 찾았다고 합니다. 당시 탈출했다고 하면, 일이 너무 켜져서 그랬거나, 철책 경계의 취약점이 노출 될까봐 기밀로 분류됐을 겁니다.
    북한이 죽었다고 주장한 건 한참 뒤의 일입니다. 일이 커지면 서로 곤란하니 그랬을 거라 생각합니다. 남북 분위기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험악했던 시절이라...

  • @권투아재
    @권투아재 2 года назад +3

    고작26명이 침투해도 이런데.. 전쟁시 진짜...
    제발 전쟁은 막읍시다..

  • @김제순-o1j
    @김제순-o1j 2 года назад +3

    전 그당시 68사단(철벽부대) 강릉 가갑 독립 중대에 이병으로 있었습니다
    전날 유격훈련 종료로 행군으로 자대복귀해서 두시간이나 잤나?갑자기 비상이걸리면서 실제상황 이라며 장갑차에 실탄 집어넣고 엔진킨채로 대기하고있었습니다
    이병이라 뭘 시킬게 없는지 선임한명과 위병소근무를 12시간 맞교대로 한달간 있었습니다
    위병근무를서던중 칠성산방향에서 대형수송헬기가 뭘 대롱대롱 메달고 저희 독립중대 연병장에 내려놓고 가더군요
    그후 별단 찝차가 몇십대가 계속 위병소를 통과... 알고보니 연병장에 내려논 그화물이 집단자살한 승조원들 시체였습니다
    하루하루 옆군지단 누가 죽었네 특전사가 레펠하다 총맞고 죽었네 여비군들 경계근무중오발로 죽었네 소리 선임들 한테 많이들었습니다
    그한달지나니 칠성산으로 장갑차 장착된 무전기 뗘갖고 수색도 다녀왔지요 정말 무섭고 다시는 경험하기싫은 기억입니다
    그때 같이 동거동락하던 선임들 지금연락은 안되지만 챙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충성!

  • @김민-c1e9q
    @김민-c1e9q 2 года назад +1

    군대를 늦게 가서 96년 4월 군번임 ㅜㅜ 험난한 생활~~~그리고 서해교전까지 근대 군생활중에서는 스팩타클한 군생활

  • @탱고-z1t
    @탱고-z1t 2 года назад +5

    공비들은 장교 계급장을 보고 사격해서 보안대 장교가 전사햇죠..그때부터 계급장 색깔을 바꿔서 눈에 잘띄지 않게...경례 잘받으려 눈에 잘띄던 계급장이 적의 총알을 부르는 계급장이 되었습니다

  • @SYTark
    @SYTark 2 года назад +2

    당시에 맛있는 김치를 보내주셨던 해당 지역 부녀회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 @호연지기-s4l
    @호연지기-s4l 2 года назад +4

    당시 작전에 참가했던 장교로서 감회가 새롭네요~

  • @정각-q5o
    @정각-q5o 2 года назад +2

    이사건을 계기로 전군 모든 계급장 사단마크가 지금의 검정색으로 통일 되는계기가 됩니다
    적에게 노출되기 쉽다는 논리로
    육군기준 모자 상의는 노란색 야상은 빨간색 야상 어깨는 각사단 특유의 색깔있는 사단마크가 있었죠

  • @MintChocolate1
    @MintChocolate1 2 года назад +4

    강릉살면 가족나들이건 학교 소풍이건 어릴때 무조건 통일공원가서 잠수함 보고 오는거같음 어릴때 봐도 내부가 상당히 낮고 좁다고 느꼈는데 지금가면 더 작게 느껴지겠지?

  • @Slowlifeinmyhome
    @Slowlifeinmyhome 2 года назад +2

    저때 헬기레펠 예비동작 중에
    적 총격에 피격되는 일이 있어서
    예비동작 없이 바로 줄타고 내려오는거 연습했었네요.

  • @williamsonga
    @williamsonga 2 года назад +1

    북한군이 라디오 들으면서 피해다녔다는 이야기는 빠졌네융

  • @leekaviyaza6603
    @leekaviyaza6603 2 года назад +3

    한국엔 실화를 소재로 영화 만들 소재가 넘쳐남..

  • @시저-j9n
    @시저-j9n Год назад +3

    야간 매목시 겁이나더라 ㅎㅎ
    낮엔 수색하다가 해가 저물어 가기 시작하면 비트구축해서 매복하는데
    대가리 총 맞을까봐 낮은포복및 자세로 혼자 아닌 두명씩 나와 용변볼때 한사람은 사주경계 ㅎㅎ
    가슴이 두근두근 했죠
    할말은 많으나 9월이면 생각나고
    또한 추석이 다가오면 생각나고..,

  • @파송송오구탁
    @파송송오구탁 2 года назад +3

    병장때였는데 노란 계급장에서
    검정색으로 바뀌고. 예비군들도 동원 됐다고하고 분단국이란걸 온몸으로 느꼈던 사건이였네요
    아군 병사들도 많이 전사 했었군요 ㅜㅜ 그중 예비군 분은 어쩌다가...

  • @윤한영-b6c
    @윤한영-b6c 2 года назад +3

    작전이 끝나고 노획한 무기류, 옷가지들을 전시한다고 해서 마산역까지 단체로 간 기억이 나네요.그게 제가 초등학교 2학년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