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 정벌과 위화도 회군, 고려 멸망 카운트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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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4 ян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85

  • @jaejinlee4305
    @jaejinlee4305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8

    단순히 요동정벌 위화도회군이란 단편적인 사실만을 알고 있다가 이렇게 자세한 내막을 들으니 저절로 정리가 됩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Hmentary
      @Hmentary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영상이 유익했던 것 같아 다행입니다.
      좋게 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 @Orang_Fantasy
    @Orang_Fantasy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오늘도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위화도 회군 얘기는 익히 잘 알고 있던 내용이긴 했는데 이렇게 정리된 영상으로 보니 몰랐던 부분을 많이 알 수 있었습니다. 매번 영상 편집 능력과 이야기 구성 능력에 감탄하고 갑니다!

    • @Hmentary
      @Hmentary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항상 응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 편집자님께서 많은 수고를 통해 좋은 영상을 편집해 주시는 덕을 많이 보고 있어서 영상이 보기 편하셨다면 전적으로 편집자님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랑님의 영상도 계속해서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면서 좋은 영상 부탁드립니다.

    • @덕후나무늘보
      @덕후나무늘보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뭐랄까 닌텐도 포켓몬스터에서 희귀한 포켓몬을 발견하듯한 느낌이네요😳

  • @swiftboyinsw
    @swiftboyinsw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5

    고려의 영광과 개인의 꿈, 이상과 현실적 판단이 반영된 역사적 사건이었네요. 회군하더라도 요동에서 회군하지 라던 생각도 들었는데 ㅋㅋ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군요 ㅜㅜ.
    영상 유익하고 재밌게 봤습니다. 이것저것 생각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Hmentary
      @Hmentary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영상 재미있게 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영상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crybigfan
    @crybigfan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딱 정도전 정주행 중이었는데 적절한 주제네요! 감사합니다

    • @Hmentary
      @Hmentary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영상이 도움이 된 것 같아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유익한 영상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정재성-c1l
    @정재성-c1l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철령위에 대해서 자꾸 특정 지역개념으로 생각하는데 이것 대단한 오산입니다. 철령위는 특정 지역개념이 아닌 군사행정기구입니다.
    다만 그것을 설치한 지역과 그 역할이 문제인데 대략 철령위를 설치한 지역을 요령성 본계시일대로 추측하고 있고 철령위가 관할하는 지역을 요동일대라고 볼수 있죠.
    그런데 이제까지 상당수 역사학자들은 철령위를 무슨 특정지역개념으로 고려 명의 국경개념으로만 파악하다보니 강원도에서 함경도로 넘어가는 철령으로 보더라도 요령성 본계시에 일대로 보다라도 여러문제점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 @user-maniaKim
    @user-maniaKim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이성계가 아무리 대단해도 혼자 힘으로 4만의 대군을 돌리긴 힘들었을 듯...
    당대 최고무장들이 다 반대하거나 일부만 반발해도 이성계는 힘을 못 쓰는데
    위화도 회군을 단행한 건 다른 무장들도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뜻임.

    • @Hmentary
      @Hmentary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우군도통사 이성계와 좌군도통사 조민수의 뜻이 같았기에 회군이 이루어질 수 있었지요. 조민수도 당대에 나름 명함 좀 내밀 수 있는 무장이었습니다만, 결국 이성계에 의해 밀려나면서 역사에 그 이름을 조그맣게 남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회군 당시 뜻을 같이 했었기에 이성계가 군사를 돌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조민수와 이성계와 같이 고려를 대표하는 무장들 모두 요동 정벌을 회의적으로 보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아이언마스크-f4n
    @아이언마스크-f4n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위화도회군이라는 사건을 더 깊게 알아볼 수 있는 유익한 영상이였습니다. 김사합니다😊

    • @Hmentary
      @Hmentary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영상 좋게 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유익하게 여기실 수 있는 영상 업로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SuperWonder
    @SuperWonder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요동정벌은 꿈으로만 꾸는게 편할듯. 고려와 명나라가 싸우면 명나라가 이기는게 당연하지.

  • @자룡-q4j
    @자룡-q4j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확실히 당시 요동정벌은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문제는 그걸 유지하는 거였죠.
    딱 50년 후 토목의 변 시기의 명나라라면 요동+요서까지도 진출 가능했을텐데 요동정벌시기가 명나라 최전성기 때라 회군 안했으면 남옥의 40만 대군과 맞짱을 떠야할 판이니...
    이성계 5만 vs 남옥 40만....이성계가 군신급 장수라도 이기기 힘들겠죠?...
    정말 타이밍이 안맞네요.
    한반도 국가가 약할 때면 중원의 국가가 강해질 시기와 상당히 많이 겹치더군요.
    딱 하나 예외가 있는데 고구려...
    고구려 국력이 정점 찍었을 때가 중원이 5대 10국 시기라 한반도 국가 중 유일하게 중원 왕조를 두들겨 패고 선제공격하던 시기였죠.

  • @hong-ya
    @hong-ya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4

    만약 요동정벌을 한다면?
    1단계 ㅡ 요동에 주둔한 명군 5~10만
    2단계 ㅡ 몽골 원정을 하고 돌아온 풍옥,남승이 이끄는 명군 15만이 요서에 있슴, 이들을 깨부셔야 함
    3단계 ㅡ 1,2단계를 깨면 북경지역을 수비하는 연왕 주체(영락제)의 20만대군과 싸워야함
    4단계 ㅡ 1,2,3단계를 깨면 이제 명나라의 각 군단을 이끌 장군들, 이때쯤 군단급 지휘할 장수들6명 5만씩만 이끌어도 30만 병력
    5단계ㅡ 1,2,3,4단계를 다 깨면 주원장과 강남의 막강한 생산력
    이성계의 공요군이 이걸 다 깬다면 알렉산더,나폴레옹의 재림이다만 그게 되겠습니까 ㅎㅎ
    요동정벌이 아쉬운것과 별개로 이성계의 결단은 현실적이다고 봅니다.

    • @Hmentary
      @Hmentary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말씀하신 내용이 가장 현실적인 것 같습니다. 넘어야 할 산이 많아도 너무 많았지요.
      일단 요동에 주둔한 명군의 숫자가 대략 10만 정도로 추산됐는데 이성계의 무용으로 그들과의 싸움에서는 어떻게든 승리했다 치더라도(이것도 굉장히 긍정적으로 예상한 것입니다만) 그 이후 과정에서 승산은 극히 희박했습니다.
      게다가 말씀하신 역사의 명장들은 본인도 훌륭했지만 휘하 병력의 전투력이 막강하다는 전제를 깔고 갔음에 반해 이성계의 공요군은 그다지 정예가 아니었으니 이성계가 설령 언급하신 명장들 수준의 무인이었다 해도 승산은 없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로갓-i8w
      @로갓-i8w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3

      그뿐만이 아니라 만주-연해주일대의 유목/반유목/농업민족들을 대거 복속시키고 그들에 대항할 군사거점도 새로 만들어야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감당할 수 있는 국력이 과연 고려에게 있는가? 생각하면 불가능하죠. 동북9성도 결국 유지못했는데 그것보다 넓은 지역을 전성기도 아니라 무너지기 직전인 국가가 유지시킨다라...

    • @jamisont1
      @jamisont1 7 месяцев назад

      @@Hmentary 당시 요동은 12위가 설치된때였슴. 1위 = 5천.. 12위 = 6만임.

    • @유다이-h4g
      @유다이-h4g 3 месяца назад

      근데 짱깨라해볼만햇음

  • @hamtj1379
    @hamtj1379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명과 화친하면서 꼭 무리하게 공물까지 부담했어야 했나하는 궁금증이 있습니다.
    그 때 상황에서는 외교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었는가 하는 점 말이죠..

  • @은석이-c1j
    @은석이-c1j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3

    산성에 숨어서 수성전이나 펼쳐대서 청나라에게 굴욕당하던 찌질한 조선보단
    거란 여진 몽골제국과 대적하면서
    농경민족이었던 고려가 공성전과 대회전을 벌일정도로 국력이 융성했던 매력적인 고려 ❤

    • @은석이-c1j
      @은석이-c1j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심지어 한세기(100년) 단위로 침공을 받고 격퇴시키기까지 군사력면에서는 고려가 짱이죠 ❤

    • @Hmentary
      @Hmentary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원 간섭기를 거치기 전까지의 고려는 국방력에서는 정말 불가사의할 정도로 체급 대비 엄청난 역량을 보였습니다.
      대규모 회전에서의 승리는 우리 역사에 있어 고려가 마지막이었지요.

    • @Bongbongtravels
      @Bongbongtravels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고려의 체급이 불가사의할 정도로 작다는 건 모두가 다 동의하는 바죠. 이해가 안됩니다. 몽골의 침략 때 고려의 인구가 많이 잡아야 500만이 안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보다 훨씬 전인 거란의 침입 때 30만을 동원했다? 심지어 그랬는데도 동북면과 후방에는 남은 군사들이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로갓-i8w
      @로갓-i8w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근데 한반도에서 산성을 활용한 수성전을 포기하는건 비효율적이긴함. 전시체제를 항시 유지시켜야지만 가능한건데...

    • @은석이-c1j
      @은석이-c1j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3

      ​@@로갓-i8w 상대방이 공성으로 안나가고 직공하는 전략으로(실제로 몽골 청나라등이 이전략을 택했죠)
      나오면 거기에 따라 전략을 바꾸어서 능동적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조선은 무조건 성에 틀어박혀 지키기만 하니 노답인 나라죠.......

  • @cpu-ez1pz
    @cpu-ez1pz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어떻게 보면 공민왕이 죽지않고 명나라랑 틀어지지만 않았으면 요동까지 차지한 고려가 지속됐을수도 있었겠군요.

  • @ILoveDalgona
    @ILoveDalgona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의견이 다 다른건 존중하지만, 전 그래도 이성계 선택이 맞았다고 생각하네요. 요동정벌을 성공했다하더라도, 후에 주체가 황제되고나서 이걸 명분으로 삼아서 침략했을 가능성도 있다보니..

    • @Hmentary
      @Hmentary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영락제가 각 잡고 한반도를 침공했다면, 그 호전성과 군사적 역량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우리 나라가 지도에서 지워지는 사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 @드키무티
    @드키무티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1차 요동 정벌은 왜 실패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기껏 진격해서 점령해놓고 왜 퇴각했나요?

    • @SuperWonder
      @SuperWonder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군량부족으로요. 요동을 정복하긴 했는데 군량창고에 화재가 발생해서 다시 토해냈습니다.

    • @bobcruise1127
      @bobcruise1127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근본적으로는 고려의 보급역량한계죠.
      1차원정을 보면 원나라 잔당이라고는 하나 몇천의 몽골기병을 상대로 야전에서 이길정도의 능력은 있었지만, 정작 요동성까지 물자를 보급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결국 함락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요동성 군량창고가 불타고 보급이 안되니 쫄쫄굶으며 후퇴했습니다.

    • @로갓-i8w
      @로갓-i8w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애초에 점거와 점령, 영토로 편입하는건 난이도 자체가 다릅니다. 요동을 먹기 위해선 단순히 심양을 비롯한 요동 주요 거점을 먹는것이 끝이 아니라 이후에 올 중화권 국가들의 공세와 만주~연해주 일대에 유목,반유목,농업사회를 복속시켜야합니다. 애초에 고려 국력으로 점거만 한게 대단한겁니다. 그마저도 군량 부족으로 퇴각한건...

  • @user-Okinawa574
    @user-Okinawa574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Отслеживание

  • @huntersis1655
    @huntersis1655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그당시 왜군의 해적도 상대못하던 고려가
    요동을 노리는것은 이상한짓
    여진이나 명나라나 누군가 연합해야되는데
    요동을 통으로 내줄가능성은 제로

  • @바닥난창작
    @바닥난창작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자책골로 제목 바꾸면 더 좋을것 같아요!
    매번 영상 유익하게 보고 있습니다
    좋은 영상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 :)

    • @Hmentary
      @Hmentary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매번 영상 좋게 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불행한 사건으로 인해 자살골이 자책골로 명칭 변경되었다는 점은 알고 있습니다만, 이게 뭔가 어감을 살리고자 할 때에는 자살골이라는 옛 명칭이 더 적합한 것 같아서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보시기 불편하셨더라도 그런 의도를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앞으로는 불편함 없으실 영상을 올릴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 @shanestory3879
    @shanestory3879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개인적으로는 최영 장군 편이지만 정말 큰 실수를 하셨습니다. 자신이 추진한 전쟁에 자신이 안나서시다니... 왕의 간곡한 부탁이 있다 하더라도 꼭 나가셨어야했는데.... 뭐, 하늘이 이성계의 편이었겠지요

    • @Hmentary
      @Hmentary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최영은 전장에 나가고자 했습니다만, 우왕이 절대 자신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갈 수 없었습니다.
      최영이 자리를 비운 새 공민왕이 시해당했으므로 우왕 또한 최영이 없으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고려 말 왕권의 불안정함이 극심했던 듯합니다.

  • @benjaminkim277
    @benjaminkim277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태조가 다시 아뢰어 이르기를, “전하께서 반드시 대계를 이루고자 하신다면 마땅히 서경(西京)에 머무시어 가을을 기다려 병사를 내십시오. 곡식이 들을 뒤덮어 대군이 먹을 것이 족하여 북을 울리며 나아갈 수 있을 만할 것입니다. 지금은 병사를 내기에 적당하지 않으니, 비록 요동(遼東)의 한 성을 함락시킨다 하더라도 비가 내리면 군대가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퇴각할 수도 없으니, 군대가 지치고 양식을 소진하면 화만 빨리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4대불가론이 왜 국사책에서 유명한지는 지금도 미스테리지만 저게 4대불가론 이 후에 나왔던 말이라 그리고 이성계 1차요동정벌 땐 요동성을 먹었어도 요동성안 군량이 불타서 철수한거 보면 고려도 보급은 개판이어서 아마 저런 소리를 하지 않았을까 추측함.

    • @Hmentary
      @Hmentary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보급 뿐만 아니라 총체적으로 요동 정벌 실행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성계가 우왕에게 어가를 서경에 멈추고 가을을 기다리자고 했던 것도 일단 군사행동을 멈춘 상태에서 회유해 보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 @benjaminkim277
      @benjaminkim277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철수보다는 굳이 갈거면 군사를 더 모아서 가자라고 보는 편이라....아무리봐도 2차 때 최대 5만명으로 가는건 자살행위나 다름 없어서 이성계의 경험상 보급이 잘되고 군사를 더 모아서 가을 쯤에 가자고 한건 1차요동정벌 때의 경험을 살린거라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이성계가 1차 때 봄쯤에 출발해서 요동성를 먹은게 11월 쯤이라 식량이 빵빵하고 활 성능이 잘 나올 때도 여름이아니라 겨울 봄 건조할 때이라 가을쯤에 공격하자고한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 @dydyvxbd4364
    @dydyvxbd4364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솔직히 말하면 2차때부턴 미친짓 이었죠 국가총동원 해서 5만명 모았는데 그중 절반 은 전투병이 아닌 보급지원부대였으니

    • @Hmentary
      @Hmentary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제기된 어떤 설에 의하면 일단 개경에서 출발한 공요군의 숫자는 5만이지만, 요동까지 이동하면서 북방의 병력을 보퉁해서 실질적으로 8만~10만 가까운 군세를 확보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추정은 그다지 설득력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랬다면 여기저기 어딘가에든 기록이 남았겠지요.
      고려가 체급 대비 엄청난 국방력을 보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말기의 고려는 이미 상당히 쇠약해진 상태였으므로 저 정도 규모의 정벌군으로는 요동 정벌은 초반 러쉬 이후부터 굉장히 어려운 싸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니면 초반 러쉬부터 아예 명나라 수비군에게 막혀 버릴 수도 있고요.
      당시 명나라는 고려 쪽에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혹시나 고려가 딴 마음 먹지 않을까 예의주시하던 중이었으므로 기습도 불가능했을 것이고 해서 이래저래 어려운 시도였을 듯합니다.

  • @성수김-k2c
    @성수김-k2c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요동정벌했으면 고당전쟁마냥 통일중국왕조한테 허구한날 쳐맞고 국토 황폐화됬었겠지 명나라는 결과적으로 영락제가 황제인데 북경에 수도두고 있는데 지근거리 요동을 타국이 잡고있다? 어휴 국가보전만해도 다행잊ㄱ

  • @zokar
    @zokar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요동정벌을 하기에는 기회가 좋지 않았다고 본다.

    • @Hmentary
      @Hmentary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차 요동 정벌은 대놓고 명나라와 싸우겠다는 의미였으므로 때가 좋지 않았지요.
      차라리 1차 요동 정벌에서 좀 더 긍정적인 성과가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차피 떼쟁이 주원장은 지가 좀 안정되고 나면 시비 걸면서 요동 반환해라 어쩌라 시비 털었겠지만, 1차 요동 정벌 때 빠르게 주요 지점을 점령하고 거점화하면서 차지했다면 나중에 외교적으로 대응하면서 어떻게든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 @Red-Creeper
    @Red-Creeper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7

    위화도 회군은 조선아라는 역사상 최악의 나라를 탄생시켰다는점에서 한국사 최악의 사건이죠

    • @이동연-c6d
      @이동연-c6d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저때 요동정벌 했으면 한민족은 한족화 되었음. 그나마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해서 한민족을 유지시킨설 고맙게 여겨야함. 거기다 이성계가 요동정벌을 할꺼면 가을에 하자는걸 최영과 우왕이 씹었는데 그게 그들의 큰 실수였음.

    • @덕후나무늘보
      @덕후나무늘보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심정적으로 십분 이해가 가기는 하죠
      위화도 쿠데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덕후나무늘보
      @덕후나무늘보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동연-c6d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 요동을 정벌했다면 양상은 달라지지 않을까 합니다
      우선 조선이 건국되는게 아닌 고려가 그대로 있고 최영을 비롯한 수많은 유능한 무장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기도 하죠
      즉 요동정벌을 하면 고려와 명나라가 싸우는건데
      이러면 얘기가 달라질수 있죠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 최영및 고려 무장들
      도적때에서 시작해 권력잡은 주윈장과 그 아들 주체
      둘중에 누구 하나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라인업들이죠
      우리나라가, 고려가 일방적으로 털린다고 말하긴 힘들죠

    • @덕후나무늘보
      @덕후나무늘보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이동연-c6d
      그리고 요동정벌의 최대 문제점은 팔도도통사 최영이 직접 가지 않고 이성계만 전선에 갔다는게 문제죠
      원래 최영이 가야하는데 우왕 이 겁쟁이가 무섭다고 최영을 곁에 두는게 화근이였죠

    • @유다이-h4g
      @유다이-h4g 3 месяца назад

      @@이동연-c6d ㅋㅋㅋ 그놈의한족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탁대호
    @탁대호 4 месяца назад

    회군안했다면 우린........

  • @은석이-c1j
    @은석이-c1j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저때 우왕이나 최영이나 자기 아버지(공민왕)이 1차 요동정벌을 성공해서 실제로 요동을 점령했으나 퇴각해서 다시금 그때의 향수를 자극한것도 있을겁니다
    저때가 고구려와 발해가 망한지 445년만에
    다시금 우리 고려가 만주회복을위해 노력했다는 증거이지요
    조선이 압록강과 두만강이라는 경계로
    영토를 회복했지만 그이상 올라가지 않았죠
    그래서 우리가 더이상 만주는 우리 영토라는 주장이 먹히지 않기도 하구요
    조선만 아니었다면 고려가 다시금 국력을 회복하여 요동뿐아니라 만주를 다시금 되찾을수 있었을텐데 아쉽습니다 ㅠㅠ

    • @Hmentary
      @Hmentary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사실 고려가 존속되었다면 요동과는 더 멀어졌을 것 같습니다.
      고려는 이미 왕조 말기의 쇠약함이 수습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고,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가 필요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려의 멸망 및 조선의 건국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조선이 고려의 뒤를 이은 다음 보다 유리한 상황이 조성되면서 요동을 공략하는 게 이상적이었는데 명나라의 세력이 너무나 탄탄했고, 조선은 요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기회를 엿보긴 했습니다만 이방원이 확고한 명나라 사대를 결정하고 요동을 포기하면서 그 뒤로 다시는 요동에 대한 그 어떤 시도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역사와 요동을 완전히 떨어뜨린 주범을 이방원이라 보고 있으며, 그때 확립된 대명 사대주의가 가장 안타까운 굴레라고 보고 있습니다.

    • @은석이-c1j
      @은석이-c1j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Hmentary국력이 기운 상황속에서도 5만의 군대를 일으킬정도라면 나라가 안정화만 되었어도 10만군을 일으킬정도로
      회복 가능성은 있어보입니다 조선은 이후로도 10만의 상비군을 중앙집권적 국가로 나아가도 결국 해내지 못했죠......

    • @SuperWonder
      @SuperWonder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고려도 만주먹을려고 윤관보냈다가 여진족한테 털렸는데요. 정복전쟁이라는게 겪어보지 않은 자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이고 대제국을 세우는 것에 환상을 품게 하지만 실상은 망한 사례도 굉장히 많아요.

    • @로갓-i8w
      @로갓-i8w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사실 요동을 먹을 군세를 가췄다면 이성계가 굳이 남하해서 고려를 취하는것보다 요동에서 왕으로 군림하는 편이 나았겠죠.

    • @덕후나무늘보
      @덕후나무늘보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SuperWonder
      그래서 더 안타까운거죠
      실패했으니 문제점을 보고 고치고 더 크케 성공하면 되는데 한번 실패하고 다시 시도도 하지 않고 있는게 안타깝죠
      물론 고려가 여진과의 전투, 원나라의 간섭기에 힘을 쓰지 못하나
      고려 31대 공민왕때부터 적극적으로 북방을 공략하죠
      주인장의 말씀대로 이방원 이후 아예 포기하니 답답하죠

  • @칼쓴
    @칼쓴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결국 이성계도 4불가론 했지만 자기가 왕되고 나선 요동정벌 할려한겨 보면 내로남불 기회주의자 이기도했죠

  • @feusia5634
    @feusia5634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공민왕의 죽음이 ㄹㅇ 안타깝네..

  • @효파리
    @효파리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위화도 회군x 위화도 반역o / 아군을 죽이는 회군은 없는데 왜 회군이라고 역사학자들이 만들었는지... 반역으로 새워진 나라 배신으로 망함...ㅠ

  • @Bongbongtravels
    @Bongbongtravels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나라를 위하던 충신은 싹 다 사라지고 개인의 안위를 우선하던 역신이 나라를 세우니 그 나라가 비굴하고 한심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군요. 애초에 부자지간 갈등 때문에 애꿎은 신하들을 몇명이나 죽인 옹졸한 인간이니 ㅋㅋㅋ

    • @Hmentary
      @Hmentary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처세술 및 정세 예견에 있어서 확실히 이성계가 최영보다는 훨씬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영은 우직할 만큼 의도의 순수성을 강하게 지닌 인물이었기에 위인으로서의 매력은 이성계보다 훨씬 뛰어났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성계도 여말선초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아니라 고려가 좀 더 안정적이고 굳건한 상태에서 등장했다면 계속해서 고려를 위해 큰 공을 세우면서 충신으로 이름을 길이 남겼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말선초의 혼란 속에서 자신에게 밀려오는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 국가보다는 본인을 더 중시하면서 결국 위화도에서 회군하게 되었지요.
      왕조를 떠나 그 나라에 사는 백성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면, 전란을 멈추고 새로운 국가의 기틀을 잡으며 안정을 추구하게 된 조선의 등장이 더 좋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긴 역사의 흐름에서 보자면 조선이라는 극도의 실용주의 외교 노선을 택한 나라의 등장으로 인해 한편으로는 우리 역사의 맥이 이어지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역사에 굴종과 비겁이라는 부끄러운 면모도 나타나게 된 것 같습니다.

    • @SuperWonder
      @SuperWonder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역신이 엎어버린 그 나라의 건국자도 역신출신이었는데.

  • @Turn-Off
    @Turn-Off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세종때 4군6진 개척하고 온전한 조선의 영토 만드는데 10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음
    요동 정벌해봤자 정복지 관리도 못했을거임
    개빡친 홍무제나 영락제가 전쟁 일으켜서 나라 없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 @Hmentary
      @Hmentary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말씀하신 대로 영토 확장이라는 게 정말 쉬운 게 아니지요. 특히나 요동은 발해가 거란에게 빼앗긴 이해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땅이었고, 사실 발해가 점유하고 있던 시절에도 한반도 집권 세력에게는 남의 땅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손쉽게 점유하고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산 정약용은 고려 때부터 우리가 요동을 차지하지 못한 게 아쉽긴 한데 요동을 먹으면 좋기는 하지만 여러 방향에서 침략해 오는 외부 세력 막기도 어렵고, 요동 지키다가 오히려 나라가 약해질 수도 있으니 현실적으로 요동을 먹지 못한 게 차라리 다행일 수도 있다는 얘기를 남기기도 했지요.

  • @전투불패
    @전투불패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지가 4불가론 내세워서 안된다고 위화도에서 군사 회군시켜놓구선, 나중에 왕 되고 나더니 주원장 마음에 안든다고 한판 뜨자면서 요동정벌 계획한건 뭐냐? 이미 속에 역심 품고 명분없이 고려를 멸망시킨 정도전과 이성계지...그래놓고 뭐 유학? 충성? 웃기고 자빠졌네!
    그렇게 충효를 내세우는 놈들이 역적질 해서 나라 세우냐?

    • @PMasterWannabe
      @PMasterWannabe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 말이 맞지 ㅋ 나라 세운 이후에 요동정벌을 다시 입에 올린 순간 4불가론은 그냥 회군의 정당성을 위한 개소리밖에 안 된다.

    • @로갓-i8w
      @로갓-i8w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근데 그때랑 그때가 상황이 완전히 달라서...

  • @5up226
    @5up226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흑역사 이씨 조선 and 김씨 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