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하시중 조준은 조선 건국, 건국 이후의 초기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인물인데 정도전에 비해 사실상 듣보잡 취급을 받아 너무 아쉽습니다. 당장 공양왕부터가 '제일 먼저 조준을 제거해야 한다' 라고 할 정도로 이성계의 핵심적 인물인데... 알려지지 않아 너무 아쉬운데... 조준에 대해 영상 하나 만들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드라마 용의눈물 방영 이전에는 대중들에게 정도전과 조준은 비슷했습니다.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두 사람다 조선개국의 1등공신들이지만 , 정도전은 제1차 왕자의 난 때 제거되면서 금기시되고, 조준은 태조 이성계 사후 공신록에 올라갔다! " 정도로. 용의눈물 방영후 정도전 신드롬이 일어나서 두 사람 비중이 차이가 나기 시작 한 것
정작 왕위 계승권 없던 왕씨 후손들은 고려 왕릉 관리하는 관리로 임명되어서 월급도 따박 따박 받으며 살음. 인조때부터는 아예 각잡고 고려왕릉 관리에 들어가서 기록이 다 남음ㅋㅋㅋㅋ 책 이름부터 여조왕릉등록으로 각잡고 고려왕릉 보존 수리하겠다는 의지도 표명하고 실제로 관리함.
이방원이 직접 명나라로가서 표전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왔죠(외교문제해결) 명나라 수도 남경으로가기전 주원장 당시명의 황제 넷째아들인 연왕주체를 먼저 만났는데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고 이방원과 주체는 서로 심상치않음을 첫만남에 알았고 나중에 조선으로와서 이방원은 왕자의난으로 왕위를 찬탈하고 주체는 정난의변으로 황제가됩니다 후에 주체는 이방원이 조선이 왕이된걸 축하해줬다하죠
야사에선 왕건이 이성계 꿈에 나와 난 고려를 세울때 신라 김씨를 귀족으로 대우하고 해하지 않았거늘..네놈은 내 후손을 학살했다는 거냐? 좋다 네놈 자식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저주를 내려주마라고 일갈했다는 이야기도 있죠 왕자의 난으로 아들들끼리 서로 죽이고 죽이는 꼴을 본 이성계가 왕위를 내다버리고 함흥에 처박히며 함흥처사 이야기를 만든 것도 ...
오히려 이성계니까 가능한 세자책봉이 아니었나 싶음. 고려 말 동북면은 유목민+정주민 등 온갖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임. 특히 유목민들이 많이 살았고 그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게 바로 태조 이성계임. 이성계의 집안이 동북면에서 꽤 오랜 시간 지역 호족으로 살았는데 당연히 유목민과 접촉이 많았을꺼임. 근데 유목민에게는 좀 독특한 전통이 있는데 바로 말자상속 제도임 뭐냐면 첫째부터 아버지의 재산의 일부를 물려 받고 떠나서 사는건데 유목민 특성상 서로 가까이 지내면 목초지 문제로 싸우게 되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온 전통으로 보임. 이러다가 나중에 아버지가 늙으면 막내가 아버지를 모시다가 아버지가 죽으면 아버지의 가축을 물려 받음. 유목민은 정착을 안하니까 지연도 의미 없고 학교도 솔직히 부족에서 배우니까 학연도 의미 없음 오직 혈연이 가장 중요함. 태조는 비록 농경민족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정체성은 유목민에 가까움. 당연히 그의 아들 특히 이방원은 아버지와 전혀 달랐고 방석의 세자책봉을 이해 못하는거지. 물론 유목민 이라고 다 막내 상속하는건 아님. 누르하치의 경우 장남 포지션인 다이샨이 아닌 8남인 홍타이지가 원태조의 경우 삼남 오고타이가 물려받긴 했지만.. 이건 왕조를 창업한 경우라서 예외인거고
이방석 세자책봉은 단순히 신덕왕후 김씨에 대한 애정 편애 때문만이 아니라.. 과거 고려 시절 기득권 권문세족과 접점이 아예 없는 아들을 세자로 올려 고려와 완전히 단절해 새 왕조를 만드려는 비전 탓도 있었습니다. 같은 강빈 아들인 이방번이 세자에 탈락한 이유도 하필이면 이미 구 고려 귀족 세력인 권문세가와 결혼했기 때문이죠.. 훗날 조선 왕조의 적장자 징크스는 몰살당한 왕씨의 저주가 아니었나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듭니다. 주원장이 아무래도 조선 태조의 군기를 잡고 싶어 저랬던 거 같은데 표전문 갖고 트집 시비를 거는 꼴을 보니.. 문자의 옥이 떠오르는데 언젠가 퍄퍄킴님 영상으로 문자의 옥도 보고 싶습니다.
권문세가와의 단절은 현실적으로 말도 안되고요. 이성계는 물론이고 조선건국공신들 상당수가 기존의 고려 권문세가와 밀접했습니다. 조선건국의 주축인 신진성리학 세력은 왕권주의가 아니라 신권주의(요새로 치면 입헌군주제 스탈)를 표방하였기에 야심만만한 왕자가 아니라 아직 어려서 자신들이 원하는 군주상으로 키울 수 있는 왕자를 원했는데 신의왕후의 막내아들이 딱 적격이었다고 봅니다. 이방원은 이성계 아들중 유일하게 고려시대 문과급제자(우리나라 70, 80년대 사법고시 이상으로 어려웠음.)로 매우 똑똑했고 군사를 지휘할 줄도 알았으며 야심만만하기에 역성혁명을 주도한 신진성리학 세력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왕위에 올라서는 안되는 인물이었죠.
@@피캉3세 첩까진 아니고 이성계 본인이 사실상 어디 근본도 없는 말뼈다귀급 출신인걸 한씨하고는 다르게 정치적 출세용으로 개경의 집안 배경좋은 출신인 둘째 마누라랑 결혼하고 본인도 그 찬스를 쓴게 크죠. 마찬가지로 이방원 부인인 원경왕후도 나름 잘나가는 집안 여식인걸 이방원은 미래를 위해 가족들한테서도 킬방원 소리 들어도 결국 전부 숙청했지만.
혹시 로마 5현제 다음 개트롤 황제랑 비슷하지만 싸움으로 무쌍찍은 동로마 마누일대제(동로마서 4명만 이 타이틀 얻음) 설명 가능한가요? 특히 혼자서 하나도 안다치고 튀르크 기병 40썰고 친척 3합쳐서 500 튀르크 기병 썰어서 적군이 마누닐 1세가 전투에 온다 하면 항복한다 하던 대제 말입니다
개성왕씨들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유례가 없을정도로 참혹하게 멸족을 당했죠..현재 왕씨들이 거의 남아있지않은 이유가 그렇죠..정작 조선이 멸망하고 전주이씨 왕족들은 일본에 의해 이왕가로 편입되어 나름 일본귀족으로 대접받으며 잘먹고 잘살았음..그래서 우리나라가 해방후에 왕정복고에 대한 주장이 거의없었던 이유기도하죠
@@피캉3세 그인간들 애비가 무능에 끝을 달린 암군이었고 왕족들이랍시고 나라를위해 뭐한것도 없이 일본좋을대로 이용당하면서 호의호식하면서 살았으니까요 고종손자인가 증손인가 하는 미친노인네한마리는 지금도 전주이씨이름으로 전주에서 돈타먹고 사나 그럼 누가 그딴걸 좋아하겠음 ㅋ
맞는 말입니다만, 고려신하들이 짝짝꿍해서 고려를 망하게하고 조선을 세웠듯, 대한제국 신하들(사실상 일본이 뽑은)이 일본이랑 짝짝꿍해서 제국을 일본에 적극적으로 팔아넘겼는데, 일가 가족 모두가 일본의 감시하에 있고, 일신의 유지와 미래 설계가 일본의 의지에 달린 상태에서, 대한의 독립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의지 표명을 할 수 있었다고 보는지? 궁금하네요. 물론 역사를 보면, 일본에 나름 대항해서 독립운동 지원한 의친왕이나 일본에 반감을 가진 이우 등의 인물이 있고, 반대로 일본에 잘따른 케이스도 있지만요. 왕정복고 불발의 주된 원인을, 저는, 1. 해방 후 미군, 소련이 황실의 존재를 원치않음(미국에 이익이 안됨), 2.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이미 공화정체로 설립되었음. 북한도 동일. 3. 권력욕이 있던 이승만이 황실의 존재를 원치않음. 김일성도 동일. 4. 국내에 이미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같은 반군주정사상이 널리퍼졌음. 5. 독립운동에 황실이 극적인 기여를 하지 못했음. 정도로 생각됩니다. 의미없는 만약 이야기지만, 대한제국황실이 일본과 관계를 맺은 것보다 더 밀접하게, 몽골제국 황실과 고려 왕실이 엮여졌지만, 몽골이 약해지자 반몽골 내세우며 구심점을 잡았던 것처럼, 이승만이 황실인원의 국내입국을 못막고, 국내 입국한 황실이 친일파 척살의 선봉에 섰으면, 당시 분위기로 유럽왕가처럼 되어 황실이 생존해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사실 정도전이 만들려고 한 조선은 오늘날 입헌군주제와 비슷한 나라였습니다. 왕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고 헌법에 따라 신하들이 다스리는 나라였고 이런 시대를 한참 앞서나간 구상에 놀랍게도 이성계가 100% 동의했다고 합니다. 정도전은 핏줄에 의해 이어지는 왕조는 성군 뿐만 아니라 암군이나 패륜군주도 나올 수 있어 그런 상황에서도 백성을 보호하고 나라를 유지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정도전이 만들려 한 조선은 민본주의 국가였고 정도전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조선엔 정도전의 영향이 크게 남았습니다.
이성계와 정도전의 요동정벌에 대한 평가를 한마디로 가능한게. 갓세종대왕께서 간신히 이룬게 요동정벌보다 훨씬 규모 작은 4군 6진이야. 이성계와 정도전을 합친다고 갓세종을 능가한다고 착각하는건가? 막말로 여진족처럼 약탈이 목적이라면 가능했겠지만, 합병이 목적이라면... 다시 말하지만 갓세종대왕께서 합병을 이룬게 저 4군 6진이다. 갓세종대왕보다 낮은 티어에 더 크고 지키기도 힘든 요동? 한민족으로써 고토에 욕심이 안나는게 불가능 하지만, 욕심과 현실은 다른 법이나... 아쉽게도... 슬프게도...
150명 정도 죽였다는 건 믿을 수 없는데 정치와 상관없던 일반인이였던 사람들까지 죽인 걸로 아는데 당시 왕씨가 얼마나 많이 있었는가? 당시 인구로 보아도 왕씨 일반인이 1명이라도 죽었다면 최소 5천명이상 죽였는데 승리자의 기록은 조사를 해봐야 한다 150명 왕손을 죽였다고 일반인까지 왕씨 성을 다 바꾸었겠나
예전부터 우리 집안에 내려오던 전설이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해서 현재의 고향에 정착했는지에 대한 것인데요. 내 생각엔 왕씨에서 바뀐 성이 전씨, 옥씨 등만 있는건 아닌듯 하더군요 그 전설에 따르면 새로운 국왕이 등극하면서 옛 국왕을 따르던 사람들을 서해로 데리고 가서 수장시켰고, 그 당시 조상님이 살아남아 성씨를 바꾸고 현재의 고향에 정착했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그래서 찾아보니 동영상에 나온 것처럼 저런 사료가 있더군요 ㅡ,.ㅡ
후처의 어린 아들을 세자로 삼은 이유가 단순히 후처를 사랑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전처 한씨의 장성한 아들들은 고려 말 벼슬을 하면서 고려 옛 귀족들과 친분, 혼맥이 있었습니다. 태조와 정도전은 조선을 아예 새로운 나라로 만들고자 했기에 어린 왕자를 세자로 삼은 것입니다.
문하시중 조준은 조선 건국, 건국 이후의 초기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인물인데 정도전에 비해 사실상 듣보잡 취급을 받아 너무 아쉽습니다. 당장 공양왕부터가 '제일 먼저 조준을 제거해야 한다' 라고 할 정도로 이성계의 핵심적 인물인데... 알려지지 않아 너무 아쉬운데... 조준에 대해 영상 하나 만들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또말선초로 대하드라마 우재 조준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아
드라마 용의눈물 방영 이전에는 대중들에게 정도전과 조준은 비슷했습니다.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두 사람다 조선개국의 1등공신들이지만 , 정도전은 제1차 왕자의 난 때 제거되면서 금기시되고, 조준은 태조 이성계 사후 공신록에 올라갔다! " 정도로. 용의눈물 방영후 정도전 신드롬이 일어나서 두 사람 비중이 차이가 나기 시작 한 것
근데 솔직히 정도전 일생이 드라마틱해서 드라마 주인공하기 딱좋은 사람이죠 박해받던 비주류에서 새나라를 세우고 만인지상에 올라왔던 남자 정도전
사람들은 조석의형으로 생각함
과전법 사료만 봐도 에임형이 다 했지… 또도전한테 너무 가려짐
다들 오해하시는게, 저때 개성왕씨가 다 죽은건 아니고, 옥씨라던가 국씨라던가 하는식으로 바꾼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것도 강제로 한게 아니고 탄압당할까바 무서워서 "자발적으로"한거긴 하지만...
실제로 처형된 개성왕씨는 130~150여명으로 추정됩니다
전씨 옥씨는 왕과 한자 획이 비슷해서 납득이 되는데 국씨는 왜죠?
요동정벌 못 하겠다고 쿠데타 일으켰는데
나중엔 하려했다는게 그냥 군사력 갖고있으니까 쿠데타 일으킨걸로밖에 안 보이네
주원장 히스테릭은 수천년 중국역사에서도 독보적인 편이라...
성격 유했던 한족 지도자들중엔 독보적인 씹새끼 잔혹했던 원 시절 유목민 형벌을 없애지 않고 오히려 더 강화시킴
이성계가 요동정벌을 하겠다는거는 주원장이 철령위 드립치면서 목소리만 높히는거처럼
이성계와 정도전도 목소리만 높이면서 사병을 전부다 관군으로 흡수하려고 하려는 의도였을 가능성이 높죠(개인적인 추측입니다)
조준이 재정적인 이유를 말하면서 요동정벌을 반대하고 이성계도 조선건국시기의 불안정성을 잘알아서요(군잘알이었고요)
효종의 북벌도 여러 의도가 있었다는데 이성계의 경우도 그럼직하군요?
@@krk2688 그렇죠. 사병문제가 심각했으니까요.
주원장이 직접 건드리면(전쟁) 안되는 국가중에서 조선도 직접 언급했고요.
@@krk2688 비슷한듯 다른경우이긴하지만 중세유럽 봉건제하의 군주들이 왕권이란게 없다시피했지만 전쟁때만큼은 군의 지휘권을 가지고 권력을 행사했지요 프랑스는 100년전쟁이후에 절대왕정시기를 맞이했구요
어떻게 보면 일본이 대단하네 ...
봉건사회에 번들이 사병을 소유하고 사무라이라는 무사집단들이 존재하고 그걸 막부가 통제하면서 번의 영주들과 사무라이들이 수긍하고 복종한다는게 참 ... 대단하기도
@@gggg33333ee 지들끼리 싸우기만 한 게 수백년이고 임진왜란 때 잠시 집권된 듯 보였지만 다시 무너지고 번끼리 싸운 게 근대에까지 이어집니다. 찍소리 못하고 따르던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5:49 즉위한 바로 다음날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나라이름 정해달라고 부탁했던 기록도 있죠. 화령 또는 조선을 추천했고 그렇게 명나라 주원장이 조선으로 정해줍니다.
왕씨를 몰살한 업보로 결국은 아들들끼리 서로를 죽고 죽이는 참극을 맞이해야만 했죠
왕자의 난은 태조의 정치력 한계가 보여준 참극. 이방원 혼자 능력 쩐다고 가능한 정변이 아니었음.
잘봅니다 수고하십니다
대한민국에서 고려 때 그렇게 적극적인 사성정책으로 널리 퍼졌다는 왕씨 성을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죠.
정작 왕위 계승권 없던 왕씨 후손들은 고려 왕릉 관리하는 관리로 임명되어서 월급도 따박 따박 받으며 살음.
인조때부터는 아예 각잡고 고려왕릉 관리에 들어가서 기록이 다 남음ㅋㅋㅋㅋ
책 이름부터 여조왕릉등록으로 각잡고 고려왕릉 보존 수리하겠다는 의지도 표명하고 실제로 관리함.
@@Dohan06 몽골피 안섞인 왕족도 있긴 했어요
@@Dohan06 고려 왕족들이 몽골피 섞였다고 차별하기엔 반원정책, 쌍성총관부를 공격한 공민왕의 행보도 있고, 무엇보다 이성계 집안은 대대로 원나라 부역자여서 참 머쓱함 ㅋㅋ
옥씨 전씨 주씨로 바꾸기도 했죠 살기위해
사실상 왕건이 건국한 고려욍조는 무신정권때 끝났다고 봐야, 이후에는 최씨 무신정권과 몽골에 의해 옹립된 허수아비뿐,
왕씨몰살 이후 용의 눈물에서 왕건이 이성계에게 "네이놈 이성계! 네가 고려를 멸망한것도 모잘라 내 후손을 죽였으니 나도 니놈 후손을 죽여버릴거야!"라며 칼을 휘두르며 한 악몽장명이
인상깊었지요.
옛날에 만화에서 봤던 같아요
일본도로 두동강나서 지금도 못합쳐지는중
죽임당한 왕씨들도 있지만 왕씨들이라고 다 바보는 아니니
스스로 다른 성씨로 갈아서 살아남은 인원이 더 많았을듯
전씨 와 옥씨가 이때 새상에 등장..
왕씨와 상관없는 다른왕씨들 더러 모계성으로 바꾸라고 태종이 명한바가 있다고 하더군요. 오히려 그게 와전된거라고...
역사 속 비극 입니다.
이방원이 직접 명나라로가서 표전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왔죠(외교문제해결) 명나라 수도 남경으로가기전 주원장 당시명의 황제 넷째아들인 연왕주체를 먼저 만났는데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고 이방원과 주체는 서로 심상치않음을 첫만남에 알았고 나중에 조선으로와서 이방원은 왕자의난으로 왕위를 찬탈하고 주체는 정난의변으로 황제가됩니다 후에 주체는 이방원이 조선이 왕이된걸 축하해줬다하죠
응 그래용 설명충좋아요
천재가 아니라 반역자가 반역자를 알아본 거죠.
@@kulkul5517 이방원 천재 맞는데 ㄷㅅ아? 고려 과거시험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암?
@@kulkul5517 이성계도 반역아님? 세자책봉보면 이성계 업보임
@@ridkdkdhbc 과거시험 붙은 전원 천재면 천재 너무 많은거 아님?
4:37 아, 이거 넘 커여운거 아닙니까 ㅋㅋㅋ
요동정벌 하기 싫어서 위화도 회군을 한 태조가, 정작 후에는 요동정벌을 하려는 조짐을 보였다는게 신기하네요
이성계와 주원장 모두 건국 초기라 서로가 서로에게 잠재적 위험인 까닭에 둘이서 서로 으르렁 거린거지 실제로 공격할 마음은 둘다 없었음.
공민왕때는 실제로 정벌을 하기도 했었죠ㅇㅇ 위화도 회군땐 정말로 정벌 안하고 회군한게 잘한 선택...
그래서 정치적 쇼라는 얘기가 나오는거죠
효종도 말만 북벌이고 실상은 왕권강화가 목적인 것처럼 정도전의 요동정벌도 사병철폐같이 왕권강화를 위한 개혁의 일환이지 정말 요동 털어먹을 생각은 없는듯함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2차정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서 그런거고 1차요동정벌은 이성계가 직접 나서서 성공까지 했다
재밌는 역사 귀여운 고양이 깔끔한 설명💛
2편 있나요..?
재밌게 보다 끊기니 아쉽다..
@🌈𝒀𝑶𝑲𝑶🎀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𝒀𝑶𝑲𝑶🎀 비유를 이렇게 찰지게 할 수 있다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사에선 왕건이 이성계 꿈에 나와 난 고려를 세울때 신라 김씨를 귀족으로 대우하고 해하지 않았거늘..네놈은 내 후손을 학살했다는 거냐? 좋다
네놈 자식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저주를 내려주마라고 일갈했다는 이야기도 있죠
왕자의 난으로 아들들끼리 서로 죽이고 죽이는 꼴을 본 이성계가 왕위를 내다버리고 함흥에 처박히며 함흥처사 이야기를 만든 것도 ...
다 보고나니, 이성계가 괜히 그 이방원의 아버지인 게 아닌 것 같네요. 어쨌든 결단을 내린 건 끝까지 밀고나가는 추진력 등등이.
[형제의 난]
이방원 : "왕위를 계승 중입니다 아버지."
오히려 이성계니까 가능한 세자책봉이 아니었나 싶음.
고려 말 동북면은 유목민+정주민 등 온갖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임. 특히 유목민들이 많이 살았고 그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게 바로 태조 이성계임.
이성계의 집안이 동북면에서 꽤 오랜 시간 지역 호족으로 살았는데 당연히 유목민과 접촉이 많았을꺼임.
근데 유목민에게는 좀 독특한 전통이 있는데 바로 말자상속 제도임
뭐냐면 첫째부터 아버지의 재산의 일부를 물려 받고 떠나서 사는건데 유목민 특성상 서로 가까이 지내면 목초지 문제로 싸우게 되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온 전통으로 보임.
이러다가 나중에 아버지가 늙으면 막내가 아버지를 모시다가 아버지가 죽으면 아버지의 가축을 물려 받음.
유목민은 정착을 안하니까 지연도 의미 없고 학교도 솔직히 부족에서 배우니까 학연도 의미 없음 오직 혈연이 가장 중요함.
태조는 비록 농경민족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정체성은 유목민에 가까움.
당연히 그의 아들 특히 이방원은 아버지와 전혀 달랐고 방석의 세자책봉을 이해 못하는거지.
물론 유목민 이라고 다 막내 상속하는건 아님.
누르하치의 경우 장남 포지션인 다이샨이 아닌 8남인 홍타이지가 원태조의 경우 삼남 오고타이가 물려받긴 했지만.. 이건 왕조를 창업한 경우라서 예외인거고
그렇게 할꺼면 다른자식들에게 뭔가 나눠줘서 분가시켰어야했는데 그런것도 없었음.. 걍 배갯머리송사+정도전 등의 설득에 넘어가서 발등찍은거
@@대국적인뉴비 이성계가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할때 정도전의 설득같은건 없었습니다. 오히려 정도전도 나이순이나 공이있는 왕자를 책봉해야한다고 했었는데 이성계는 그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한겁니다.
@@kaiser1679 ㅇㅇ
실책에 실책을 남발한 결과는 태조에게 있어 참극으로 변했죠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의 제일 명군이 탄생했고요
왜 자꾸 댓글이 자동으로 지워지지...조선왕조실록 기록 언급하는데.
퍄퍄킴 고양이 캐릭터 넘 귀엽당 ㅋㅋ
이방석 세자책봉은 단순히 신덕왕후 김씨에 대한 애정 편애 때문만이 아니라.. 과거 고려 시절 기득권 권문세족과 접점이 아예 없는 아들을 세자로 올려 고려와 완전히 단절해 새 왕조를 만드려는 비전 탓도 있었습니다. 같은 강빈 아들인 이방번이 세자에 탈락한 이유도 하필이면 이미 구 고려 귀족 세력인 권문세가와 결혼했기 때문이죠..
훗날 조선 왕조의 적장자 징크스는 몰살당한 왕씨의 저주가 아니었나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듭니다.
주원장이 아무래도 조선 태조의 군기를 잡고 싶어 저랬던 거 같은데 표전문 갖고 트집 시비를 거는 꼴을 보니.. 문자의 옥이 떠오르는데 언젠가 퍄퍄킴님 영상으로 문자의 옥도 보고 싶습니다.
공감합니다 이방과는 몰라도 이방우는 왜 배제됐나 말많긴한데 고려 기득권이랑 너무 연관이 많았다는 설이 타당한거같아요
오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ㅇㅇ 이성계가 정계에 진출할때까지에는 권문세가들이 필요했지만 새왕조에서는 척결해야할 기득권이 된것.
이소리 대체 누가 지어냈는지 모르겠는데 그런거 없습니다. 당장 저 이방석 엄마부터가 권문세족 곡산강씨네 따님인데 뭔 고려와 단절입니까? 처가는 조지기라도 하지 외가 치맛바람은 답도 없어요.
권문세가와의 단절은 현실적으로 말도 안되고요. 이성계는 물론이고 조선건국공신들 상당수가 기존의 고려 권문세가와 밀접했습니다. 조선건국의 주축인 신진성리학 세력은 왕권주의가 아니라 신권주의(요새로 치면 입헌군주제 스탈)를 표방하였기에 야심만만한 왕자가 아니라 아직 어려서 자신들이 원하는 군주상으로 키울 수 있는 왕자를 원했는데 신의왕후의 막내아들이 딱 적격이었다고 봅니다. 이방원은 이성계 아들중 유일하게 고려시대 문과급제자(우리나라 70, 80년대 사법고시 이상으로 어려웠음.)로 매우 똑똑했고 군사를 지휘할 줄도 알았으며 야심만만하기에 역성혁명을 주도한 신진성리학 세력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왕위에 올라서는 안되는 인물이었죠.
대단한군인이 좋은왕이되긴 어렵다는건 이성계를보니 잘알겠네요
울 고등학교 교장도 성이 왕씨였는데 이 때 살아남은 몇 안되는 왕씨 중 한 명이셨나...
중국에 왕씨 많음
고려 왕족이 아니라 중국쪽 혈통일 수도 있음
애초에 지금 시대엔 족보나 성같은 거 아무 의미 없음 조선말기에 죄다 섞이고 만들어지고 거래되서
@@마따끄-l6n 근데 왕씨 같은경우는 조선에서 약간 멸시되는 성씨라 선택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듯
머 그럴수도 있지 싶네요. 직접 물어봤다면 좋았겠지만요
조선말 기준으로 양반의 비율이 10%를 넘지 않음, 고로 대부분의 족보는 가짜로 봐야,
왕조 초창기부터 후계자 선정을 잘못하는 바람에... ㅎㄷㄷ
그게 한고조 유뱡도 첩의 자식을 세자로 세우다가 한고조 죽은뒤 실제로 첩인 척부인이 여태후에게 인간돼지형이란 형별 내리는데
사지 절단하고 돼지우리에 가두는 형벌을 받음 결국 이성계도 첩을 편애하다가 왕자의 난이 일어나고 끔찍한 사태가 일어났지만
@@피캉3세 참고로 당시 돼지는 뒷간 똥 떨어지는 곳에세 키웠습니다
@@피캉3세 첩까진 아니고 이성계 본인이 사실상 어디 근본도 없는 말뼈다귀급 출신인걸 한씨하고는 다르게 정치적 출세용으로 개경의 집안 배경좋은 출신인 둘째 마누라랑 결혼하고 본인도 그 찬스를 쓴게 크죠. 마찬가지로 이방원 부인인 원경왕후도 나름 잘나가는 집안 여식인걸 이방원은 미래를 위해 가족들한테서도 킬방원 소리 들어도 결국 전부 숙청했지만.
배산임수에 산이 감싸는 지형, 고지대라 홍수 피해 없고 심지어 지형 자체가 통째로 화강암 기반 위에 놓여져 있어서 지진도 안일어난다는 무친 명당;;;;
심지어 해수면 상승에도 저 자리는 버텨서, 향후 수만년동안 저 자리는 멀쩡할 거라고...
배산임수는 개뿔 ㅋㅋㅋ 배산임수의 결과는 현재 미쳐버린 집값임
@@suhyunkim3581 그건 지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지 빡통ㅅ끼야 ㅋㅋ
주원장은 자신이 빛 광이랑 글자가 중을 위장하여 돌아다녔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며 이 글자를 못 쓰게함.
이 외에도 별 시답지 않은 이유로 못 쓰게 하는 글자들이 많았고 이를 어기면 사형시킴
방석냥이 귀엽네요ㅎㅎ
7:03 이 부분에서 고려 실제 영토가 함경도 제외한 한반도 전체였냐는 의문이 있죠 철령위 실제 위치도 의문이고요
혹시 로마 5현제 다음 개트롤 황제랑 비슷하지만
싸움으로 무쌍찍은 동로마 마누일대제(동로마서 4명만 이 타이틀 얻음) 설명 가능한가요?
특히 혼자서 하나도 안다치고 튀르크 기병 40썰고
친척 3합쳐서 500 튀르크 기병 썰어서
적군이 마누닐 1세가 전투에 온다 하면 항복한다 하던 대제 말입니다
개성왕씨들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유례가 없을정도로 참혹하게 멸족을 당했죠..현재 왕씨들이 거의 남아있지않은 이유가 그렇죠..정작 조선이 멸망하고 전주이씨 왕족들은 일본에 의해 이왕가로 편입되어 나름 일본귀족으로 대접받으며 잘먹고 잘살았음..그래서 우리나라가 해방후에 왕정복고에 대한 주장이 거의없었던 이유기도하죠
이승만이 영친왕과 덕혜옹주의 귀국을 반대한적있었는데 이유는 이제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인데 이 두명오면 문제가 생길까봐 그랬음
실제 당시 어떤 영상에서 본인이 6.25 참전 용사분이 그 왕조 후손보고 도둑이라고 말했음 이렇게 까지 인식이 안좋은건 나도 몰랐음
왕씨들의 일부가 전씨 아니면 옥씨로 개명을 해서 살아 갔다는 설도 있죠
@@피캉3세 그인간들 애비가 무능에 끝을 달린 암군이었고 왕족들이랍시고 나라를위해 뭐한것도 없이 일본좋을대로 이용당하면서 호의호식하면서 살았으니까요 고종손자인가 증손인가 하는 미친노인네한마리는 지금도 전주이씨이름으로 전주에서 돈타먹고 사나 그럼 누가 그딴걸 좋아하겠음 ㅋ
맞는 말입니다만, 고려신하들이 짝짝꿍해서 고려를 망하게하고 조선을 세웠듯, 대한제국 신하들(사실상 일본이 뽑은)이 일본이랑 짝짝꿍해서 제국을 일본에 적극적으로 팔아넘겼는데, 일가 가족 모두가 일본의 감시하에 있고, 일신의 유지와 미래 설계가 일본의 의지에 달린 상태에서, 대한의 독립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의지 표명을 할 수 있었다고 보는지? 궁금하네요.
물론 역사를 보면, 일본에 나름 대항해서 독립운동 지원한 의친왕이나 일본에 반감을 가진 이우 등의 인물이 있고, 반대로 일본에 잘따른 케이스도 있지만요.
왕정복고 불발의 주된 원인을, 저는, 1. 해방 후 미군, 소련이 황실의 존재를 원치않음(미국에 이익이 안됨), 2.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이미 공화정체로 설립되었음. 북한도 동일. 3. 권력욕이 있던 이승만이 황실의 존재를 원치않음. 김일성도 동일. 4. 국내에 이미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같은 반군주정사상이 널리퍼졌음. 5. 독립운동에 황실이 극적인 기여를 하지 못했음. 정도로 생각됩니다.
의미없는 만약 이야기지만, 대한제국황실이 일본과 관계를 맺은 것보다 더 밀접하게, 몽골제국 황실과 고려 왕실이 엮여졌지만, 몽골이 약해지자 반몽골 내세우며 구심점을 잡았던 것처럼, 이승만이 황실인원의 국내입국을 못막고, 국내 입국한 황실이 친일파 척살의 선봉에 섰으면, 당시 분위기로 유럽왕가처럼 되어 황실이 생존해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이승만도 전주이씨 ㅎㅎ
1:20 경제육편??경제육전이 맞는 것 같은데용🥺
왕과 이씨 가문 수장 이성계ㅜ사이의 실책
본인은 왕씨들을 멸족시키고 왕도 3번이나 폐위 시켰으나
정작 본인 집안은 정치적 힘의 논리가 아니라 가부장으로써 본인이 컨트롤 하려면 컨트롤 돨줄 확신했던
왕이라기ㅡ보단 군인에 가까운 인물
우왕: 서해용왕의 저주가 내릴 것이야
이성계: 서해용왕 곁으로 보내줄게 왕씨들아
세계사를 보다보면 실크로드가 나오는데 실크로드가 언제부턴가 언급되지 않는데 실크로드는 어떻게 만들어진거고, 어떻게 사라졌는지 영상으로 만들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16세기 대항해시대에 해운의 발달로 육상 교역로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쇠퇴함
한나라 무제때 흉노 토벌위한 동맹을 위해 대월지에 장건을 파견하는데 장건이 개척한 길이 훗날 실크로드가 됩니다
사라진 건아니고 당나라 고선지가 851 탈라스전투에서 아바스+@세력에 져서 주도권 뺏깁니다
4:42 이때 수도 계룡으로 옮겼으면 ㄹㅇ 헬이였을듯
이방석 세자로 세우는건 진짜 말도 안되는 선택이었음 ㅋㅋㅋㅋ
사실 정도전이 만들려고 한 조선은 오늘날 입헌군주제와 비슷한 나라였습니다. 왕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고 헌법에 따라 신하들이 다스리는 나라였고 이런 시대를 한참 앞서나간 구상에 놀랍게도 이성계가 100% 동의했다고 합니다. 정도전은 핏줄에 의해 이어지는 왕조는 성군 뿐만 아니라 암군이나 패륜군주도 나올 수 있어 그런 상황에서도 백성을 보호하고 나라를 유지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정도전이 만들려 한 조선은 민본주의 국가였고 정도전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조선엔 정도전의 영향이 크게 남았습니다.
나이가 들면 물러나는 게 최선입니다. 잘 나가던 이성계는 뇌망이 들어 세자 책봉에 큰 실책을 저지르는 바람에 가문에 피피바람이 불었습니다. 처음부터 둘째 방과를 세자로 임명했으면 무리가 없었을텐데요.
선초가 좀 많이 삐그덕거렸군요... 생각보다 더 심각하게...
선초 안정이 아이러니 하게도 태종 이방원 때 싸그리 숙청하고 나서였죠. 태조도 권문세족 영향을 받고 있었고 정종도 동생 눈치 보는 판에 이래저래 당위성 잡은 태종 이방원의 칼바람에 세종 치세를 이룰 수 있었지요
물론 개성왕씨 가문 자체는 조선시대에도 명맥을 이어갔고, 과거 합격해서 출세한 사람도 나왔음... 어쨌든, 민심 잃을만한 나쁜짓인건 분명했고...
권력에 욕심만 안내면 따뜻했던 그 남자가 곧 나오겠구만 ㅋㅋㅋㅋㅋㅋㅋㅋ
이성계가 늙어서 노망들었다는게 학교의 점심
위화도 회군 해놓고 지가 최영처럼 요동 정벌 하겠다니 ㅋㅋ
왕건 같은 경우는 포용했지만
이성계는 다 죽여버리니까
주변에 사람이 없는거지
이 영상을 궁예가 좋아합니다
군무원의 역사역할이야기해주세요 24트
궁금한게 있는데 전두환의 전씨랑 개성왕씨랑 관계있나요?
현재 남아있는 개성왕씨는 전부 방계이고 그마저도 10만명 수준이라죠.....
그러면 직계 개성왕씨는 없어진거예요?
@@야옹이-d2u 대한민국 방송인 왕영은씨가 개성왕씨의 시조인 태조 신성대왕(왕건)의 직계후손 인걸로 알고있어요
@@Gray-pr2dh 답변 감사합니다.
나라가 바뀐 엄청난 일인데 수많은 일이 생길수밖에 없지
이성계와 정도전의 요동정벌에 대한 평가를 한마디로 가능한게.
갓세종대왕께서 간신히 이룬게 요동정벌보다 훨씬 규모 작은 4군 6진이야.
이성계와 정도전을 합친다고 갓세종을 능가한다고 착각하는건가?
막말로 여진족처럼 약탈이 목적이라면 가능했겠지만, 합병이 목적이라면...
다시 말하지만 갓세종대왕께서 합병을 이룬게 저 4군 6진이다.
갓세종대왕보다 낮은 티어에 더 크고 지키기도 힘든 요동?
한민족으로써 고토에 욕심이 안나는게 불가능 하지만, 욕심과 현실은 다른 법이나...
아쉽게도... 슬프게도...
세상에 완벽한 왕이란 없다
보통 전조의 왕족은, 특히 선양까지 해준 전조면 왕공족 대우 해주면 해줬지,
저렇게 쓱-삭 해버리는걸 '사대부' 라는 양반들이 주장했다고...?
옳소, 고려왕실에서 무력으로 왕권을 강탈한 최씨 무신정권, 그들이 가진 권력을 빼앗으려던 친원파, 조선건국이후에도 이들이 고려왕족을 내세워 세력확장을 꾀하지 않고서는 고려왕족을 살해할 하등의 이유가 없음.
단심가를 백번천번 지어 받친들 자주권없는 왕에게 무슨 충성이 되겠음, 허수아비 왕을 앉힌 도적떼에 대한 충성이지.
@@딴지타파-j3d
뭔소리여,
난 고대 중국에서부터 이여진 '선양례'에 관해 말한건데...
고려도 신라 왕실 항복할때 선양례 비스무리하게 했는데 조선만 유독 저랬으니꺼
@@최승원-g8i 고려는 신라에게 선양비스무리한걸 받은적이 없음. 애초에 왕건이 역성혁명으로 궁예의 태봉국을 무너뜨리고 고려를 건국한거라서 신라에게 선양받고 할것도 없었고 신라는 그냥 적국인 고려에게 항복해서 나라를 바친거임.
@@딴지타파-j3d 자주권없는 왕은 고려의 왕을 말하는거임?
곧 킬방원 등장이네
저때 살아남은 왕씨들은 임금왕 자에 점하나를 붙여 구슬옥 자로 개명해 후손들은 옥씨성을 쓰면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가 있음
일썰에는 그랴서~ 田씨도 있고 全씨도 있다는 설이 ..
최씨고집의 유래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생각해 보길. 주범은 뒷전에서 웃고 종범들끼리 싸우는 격.
역대 한반도 왕조 중 기존 왕족 멸족시킨게 조선말고 또 있었나? 어쩌면 조선이 말로가 안 좋은게 자업자득일지도..
중동의 아바드 왕가도 우마이야 왕가를 전멸 시켰고, 볼셰비키들은 로마노프 왕가를, 또 도쿠가와도 풍신수길 가문을 멸족 시킴.
@@이동연-c6d 한반도 왕조들
한반도 왕조중 혁성혁명으로 붕괴된 나라가 단군조선, 태봉, 고려 뿐인데. 다른 왕조의 왕족과 비교하는건 무리긴함.
이의민 시절만 봐도 왕씨들과 그 신하들의 인성이… 당연한 결과인듯
왕조가 바뀌면 전왕족 씨족들은 다 제거되는건 당연하지 저 시대에 그 어떤 새 왕조가 전 왕조를 살려 놓냐
4:12 관용적인 좋은 부분은 내가 이야기 해서 된 것 처럼, 제거라는 안 좋은 부분은 신하가 이야기해서 어쩔수 없이 한 것 처럼.
세자책봉 때 신하들 말 뒤지게 안 들은 인간이 왕씨 몰살에는 신하들의 말을 듣는다???
캬~ 이성계의 혜안에 가슴이 옹졸해진다...
성공한 쿠데타
왕권찬탈
역사는 승리한자의 관점에서 쓴다지....
이거 말고도 다음것도 있나보군요.
애초에 요동정벌 반대해서 정권 잡은 놈이 뭐? 요동정벌?
150명 정도 죽였다는 건 믿을 수 없는데
정치와 상관없던 일반인이였던 사람들까지 죽인 걸로 아는데 당시 왕씨가 얼마나 많이 있었는가? 당시 인구로 보아도 왕씨 일반인이 1명이라도 죽었다면 최소 5천명이상 죽였는데 승리자의 기록은 조사를 해봐야 한다 150명 왕손을 죽였다고 일반인까지 왕씨 성을 다 바꾸었겠나
태조가 진짜 어리석었던 판단을 한 거임. 저 판단 때문에 자기 아들이 아들 손에 죽었으니 ㅉㅉ
진짜 씨를 말렸네요
그런데 고려 왕족 수가 몇 명이지???
탄압해서 찾아보기 힘든 왕씨, 대부분 가짜여서 진짜 이씨는 찾기힘든 전주이씨 둘다 ㄹㅈㄷ인듯 ㅋㅋㅋㅋㅋ
ㄹㅇㅋㅋㅋ
이후의 일은 왕자의 난과 조선 내 반란(심지어 자신이 반란군쪽인)으로 인해 뒷방 늙은이로 전락하는 태조가 되겠습니다
근데 이방번은 왕씨가 처가쪽 식구인게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대신들 입장에서는 왕씨가 들어오는건 못 받아들였을겁니다
조선 이씨는 왕씨한테 한짓 반만큼만 당했어도 개판났을껀데 나라 망하고나서도 일제한테 충성하면서 호의호식한거 보면 운은 ㄹㅇ 좋은듯
대한국 국제보면 고종이 모든 권력을 다 차지하고 있었음 이게 뭘 의미하느냐? 결국 일제한테 나라를 바친건 고종이라는 거임 고종 이외 다른 이들은 애시당초 권력이 없었음
어찌보면 태종이 더러운일은 다 하고다닌 왕이었는데 뭔가 평가가 박해...
ㄴㄴ 이방원 보다 더 더럽고 피를 많이본일을 한 왕이 이성계임. 위화도 회군을 시작으로 최영,조민수,변안열 등 반대세력들을 숙청하고 고려왕들을 폐위시키고 왕씨들을 죽이는 등 이성계가 더 많이 했습니다.
참고로 주원장은 이방원을 꽤나 마음에 들어했엇음
이성계는 왕이 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냥 장군, 군부 최고권력자 정도로 만족했어야 했다고 생각함
이성계가 한계가 있긴 하지만 새 왕조를 개창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을 갖춘 사람인건 맞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고려말은 손을 쓸수 없을정도로 몰락한지라서... 이미 새로운 왕조가 탄생하거나 다른 나라에 복속/합병 되는건 당연한 절차였음
그럼 아직까지 한글 대신 한문 쓰고 있었을 거임
그럼 명나라와의 적대 관계 땜에 망할 수도
이성계가 왕이 되지 말았어야 한다는 이유는 전혀 없는데. 이성계는 새로운 왕조를 창업할수있는 조건과 힘을 갖춘 사람이었음.
왕씨것들 부활하려는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있어왔는데 미쳤다고 그걸 냅두나
당연히 싹은 잘라내야지
왕씨가 부활할것 같았으면 무신정권이후 최씨들 허수아비 노릇 안했지, 조선건국이후에도 고려때 적당패들이 왕씨를 허수아비로 내세워 부활시도하다 왕씨들만 죽이고 끝난듯.
150명이면 어마어마한 수준은 맞지만...
멸족 운운할 수준은 아니네요.
수도 이전은 전잼 때문에 떠밀려 한게 아닌 이상 항상 문제가 됐군요.
고구려 : 평양 천도
고려 : 묘청의 서경천도
조선 : 개국 진통
4:37 다밟고 가네요 ㅋㅋㅋ
배우 전지현(본명 왕지현)이 개성 왕씨인걸로 알고있는데
ㅎㅎ 당시 고려는 몽골문화가 주류였고 이성계도 몽골교포 장군이였지요. 몽골은 말자상속을 한답니다. 500년 역사의 고려의 왕씨일족을 겨우 150명밖에 안죽였다면 14세기에는 평화적 정권교체라고 볼수있지요
예전부터 우리 집안에 내려오던 전설이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해서 현재의 고향에 정착했는지에 대한 것인데요. 내 생각엔 왕씨에서 바뀐 성이 전씨, 옥씨 등만 있는건 아닌듯 하더군요
그 전설에 따르면 새로운 국왕이 등극하면서 옛 국왕을 따르던 사람들을 서해로 데리고 가서 수장시켰고, 그 당시 조상님이 살아남아 성씨를 바꾸고 현재의 고향에 정착했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그래서 찾아보니 동영상에 나온 것처럼 저런 사료가 있더군요 ㅡ,.ㅡ
유목민들은 가문의재산을 막내가 가진다는데, 이성계는 북방계 유목민족이였던거 아닐까요 고려인은 아니였던듯
왕대비 퍄퍄 왤케 귀여움
위선적인 국가가 조선. 유교를 숭상한다면서 하극상도 일어나고 ㅋㅋ 유교는 어디?
@@winterkarina-q6b 지 아비 유폐시키고 형제들 도륙내는것도 맹자가 가르쳐줌?😂
유교는 그냥 노예들 말 잘듣게 하려고 채택하는 이념임
@@user-yj1lu6om8n 대한민국이 유학사상을 정치이념으로 하고있냐?ㅋㅋ 자유민주주의 아님?ㅋㅋㅋ
이방우는 왕위 욕심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조선은 정치이념을 유교로 택했으면 안됐음
실리를 중시하는 실리이념을 선택했으면
나라가 좀더 유동적이었을텐데
공자 맹자 ㅇㅈㄹ 할필요도 없고
불교를 택할수는 없으니깐요..
성리학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다.
왕족 죽이고 유배보내고 아들이 아버지 유폐시키고 형제들 도륙하며 세워진 국가가 유교를 국교로 정한다는 모순 ㅋㅋㅋ
원래 유교가 노예들 말 잘들으라고 채택하는 이념이잖아 ㅋㅋ 통치자 입장에선 그것만한게 없지
조선 중기에 집권 세력이 바뀌어서 그렇지 ㅋㅋㅋ
조선 초 중반 때는 온리 성리학만 외치던 때가 아님
반정에서 온리 성리학만 외치던 애들이 성공해서
원격포맷은 지룡자✔
내가 새로운 왕이 됐는데 이전의 왕은
내가죽여도 명분이 있지만 그의 친척들까지
3족 5족을 죽여봐야 혹시라도 살아남은
누군가를 걱정해야 하는데 아랫놈들이
눈치것 알아서 나대줘야 체면도살고 혹시라도
남아있는 이전왕조의 씨앗들이 까불지못하지.
조선에 안좋은 역사라 축소될만한데 그대로 기록된거도 아이러니
본인이 왕위에 오른시작점이 고려의 요동정벌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회군부터인데. 왕이되니까 본인은 요동정벌을 밀어붙이는것도 남들한테 모순적으로 보이겠지
이방석퍄퍄가 너무귀여워요
여말선초!!!!좋다!!!!!
후처의 어린 아들을 세자로 삼은 이유가 단순히 후처를 사랑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전처 한씨의 장성한 아들들은 고려 말 벼슬을 하면서 고려 옛 귀족들과 친분, 혼맥이 있었습니다.
태조와 정도전은 조선을 아예 새로운 나라로 만들고자 했기에 어린 왕자를 세자로 삼은 것입니다.
그렇다기엔 이방원이 받아서 전혀 새로운 나라로 잘 개조한거 같은데요
후처를 더 사랑했다기보다 후처가 이성계가 역모하는데 도움을 줬던거죠 후처의 집안이 좋았음
이때 살기위해 王씨에 점 찍어 玉씨가 생겼죠
춘추전국시대7국도 하나씩 다다스려줬으면
애초에 조선왕이 아닌 고려왕이 된 탓에 그만...
솔직히 왕씨도 이성계를 죽이려 했으니 딱히 불쌍하지는 않네. 그저 싸움에 진 것일 뿐이지
자기가 위화도 회군하고서 요동정벌을 추진?
정도전도 웃긴게 왜 최영의 실수를 그대로 반복했지? 요동없으면 결국 속국신세인걸 안걸까?
유력자들의 사병 통제를 위한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설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