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에 오류가 있습니다. 막내 이방번 -> 막내 이방석 [함께 보면 좋은 영상] 이성계는 어떻게 왕이 됐을까?(조선1) ruclips.net/video/vYegmZn_Uqc/видео.html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왜 혼자가 됐을까(조선2) ruclips.net/video/xrXleqEP9hY/видео.html
@@퍄퍄킴사람들이 자꾸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데, 고려는 첫째부인이 죽고 둘째부인이 살아있으면 첫째부인의 아들이 아닌 둘째부인의 아들이 왕위나 가문을 이어가는 것이 풍습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이성계 자체도 둘째부인의 자식입니다. 이원계를 낳은 이씨가 환조의 첫째 부인이고, 이성계를 낳은 최씨가 둘째 부인이었다는 것이 현재의 통설입니다. 이성계의 할아버지 도조대왕 이춘도 이성계의 증조할아버지 익조의 첫째부인 손씨의 아들이 아닌 둘째부인 정숙왕후 최씨의 아들입니다.
근데 이건 현대로 따지면 나하고 형들이 아버지 도와서 중견기업을 나라에서 알아주는 대기업으로 만드는데 깨끗하든 더럽든 가리지않고 분골쇄신 했는데 아버지란 작자는 재혼한 젊은 새엄마에 빠져서 새엄마가 낳은 자식들에게 회사 물려주고 부회장인 아빠친구이자 삼촌이라고 부르는 작자는 새엄마랑 짜고 형과 나를 재낄려고 하는건데 이걸 반란을 못참아?
사람들이 자꾸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데, 고려는 첫째부인이 죽고 둘째부인이 살아있으면 첫째부인의 아들이 아닌 둘째부인의 아들이 왕위나 가문을 이어가는 것이 풍습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이성계 자체도 둘째부인의 자식입니다. 이원계를 낳은 이씨가 환조의 첫째 부인이고, 이성계를 낳은 최씨가 둘째 부인이었다는 것이 현재의 통설입니다. 이성계의 할아버지 도조대왕 이춘도 이성계의 증조할아버지 익조의 첫째부인 손씨의 아들이 아닌 둘째부인 정숙왕후 최씨의 아들입니다.
위화도회군을 한 이유 부터가 명나라가 강성해서 싸워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고 느껴서인데 막상 본인이 왕이 되서는 명과 관계를 씹창내버리고 사실상 첩사이에서난 서자를 본인을 위해서 힘썼던 아들들보다 우대했다는것만 봐도 이성계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자인지 알만하죠 이방원은 형제를 죽였다는 프레임이 씌워진사람이긴하나 본인이랑 진짜 가족들 목숨이 위험한상황에서 나라도 이런상황을 했을것 같네요
그게 바로 이성계의 한계점이 아닐까란 생각이듬 무장의 능력있지만 정치적 능력은 본인도 인정할 정도로 없음 왕건은 호족들 많이들인 단점있지만 적으로 돌리지않고 이성계는 벌써 즉위부터 세자책봉이랑 요동정벌로 벌써 신하들이 등을 돌렸음 조사의의 난이 성공하면 또 자질없는 자가 왕이되면 어떡해 될지 뻔함 왕자의 난이 또 발생해 팔왕의난이 되어 멸망할거고 이성계의 본인의 평가만 더 하락할거임 왕건은 상인의 아들로 이성계는 무장출신이라 정치적 능력에서는 왕건이 더 뛰어나고 이성계는 무장출신이라 정치적 능력이 별로 없음
개인적으로 이방원이야말로 가장 자기 능력만으로 왕이 되었다고 생각.... 물론 후대의 평가가 엇갈리지만 태종이라는 묘호로 조선 안에서도 대단한 군주로서 평가 받는 것도 그렇고 왕자의 난이라는 이방원 입장에서는 필수였던 과업에 대한 비판 말고는 크게 다른 비판도 없는 왕이라.... 차라리 이성계가 능력있고 장성한 아들들에게 전권을 주고 교통정리 해줬으면 이방원도 후대에 이렇게 욕 먹지는 않았고 또 왕자의 난도 없었을거라는 생각이....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세종대왕 메이커라서 그 역할만으로도 조선 역사에서 가장 대단한 업적이다 ㅋㅋㅋㅋ
실제 여말선초때 시기를 그린 작품에서 그려진 이방원의 모습을 보면 진짜 참모와 행동대장의 기질을 모두 갖춘 인물임 솔직히 역사만 봐도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실행력이 떨어지고,반면 실행력이 좋은 맹장들의 경우엔 침착함이 부족한데,이방원의 경우는 이런 인텔리와 파이터의 좋은 점만 갗췄음 대표적인 사례가 선지교에서 정몽주를 참살한게 대표적 여담으로 정몽주는 아버지의 동지여서 다른 사람들이 죽여야 한다는 걸 알면서 주저할때,이방원이 가장먼저 비교적 빠른시기에 정몽주를 제거했으며,더군다나 백주대낮에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인걸로 봐선 '대중들에게 우리뜻을 거스르면 이렇게 된다.' 라는 공포의 메세지마저 씌웠으니 예사인물은 아니라는 거지
태조실록은 이방원의 심복인 하륜이 작성한 것으로.. 모순되는 부분이 많고, 이방원 찬양적인 면이 많습니다. 그래서 정도전은 물론이고, 이방과 조차 무능한 이미지로 쓸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방과는 스스로가 제법 뛰어난 무장이었고, 왕자의 난이 가병과 이숙번의 군대로 한것처럼 되어 있지만, 아무리 야음이라도 쉽게 성공할리가 없습니다. 이방과는 당시 수도의 친위부대(요즘으로 치면 수도방위사령관)를 지휘하고 있었고, 아마도 반란의 주력군은 이방과의 부대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정황상 이방과는 1차 왕자의 난 당시만해도 주도권이 어느정도는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하지만 2차 왕자의난으로 이방원이 확실한 주도권을 가졌고, 이 때문에 허수아비 왕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성계를 생각할 때 마다, 사람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서 취하고자 하는 것을 다 취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모두 손에 쥐는 것은 결코 부려선 안 될 욕심이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역사에 한 손가락 안에 드는 용맹한 장수요, 행실과 사람 챙김이 남다른 인격자로 기억되고, 가족 모두 행복할 수 있었을텐데..그나마 그리 강건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말년에 미치지 않을 수 있었을 겁니다.
생각해보면 태조 이성계 장군은 완벽하게 뼛속까지 군인이었음. 사실상 태조 이성계 장군은 군인으로서는 100점인데, 군왕으로서는 0점임. 왜냐면 생각해보면 이성계 하면 군인 시절때 전쟁 업적들이 유명하지 군왕으로 즉위한 이후에 뭔가 업적이랄게 딱히 정도전의 업적들이지 본인의 업적들이 아니었고 군왕때 업적이래봤자 조사의의 군사반란때 배후세력으로 이성계 장군이 조사의의 군사반란을 조종했다는 딱 이런 전투 관련적인 업적밖에 없음. 그래서 정치를 정도전에 맡겨버리니 정도전은 왕권을 약화시키기위해서 이방원 등을 탄압하고 방석, 방간을 기반으로 다음 왕권을 줄려고 했고 또 이성계는 장남계승을 어기다보니 형제간에 칼부림과 내전이 발발했음. 태조 이성계의 이 같은 행동은 이성계가 군왕이 아니라 '군인'이면 이해가 가는 행동임. 이성계는 아직까지도 자신이 군왕이 아니라 군인이라고 생각했었고 군왕이라봤자 군인들의 대장 정도로 생각한 것 같음. 그래서 군인들은 충이 강해서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기 때문에 그 어떤 명령이라도 어기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것같음. 딱 군인들의 상명하복으로 생각한듯. 그래서 이렇게 자신은 '군인'답게 명령을 내렸는데 그 명령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방원이 결국 왕자의 난을 일으키면서 군사 내전이 발발함.
태종이 세제가 아니라 세자가된 이유는 자신이 태조의 정통성을 이었다는, 자기가 2대 왕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보시면 될듯 합니다. 정종이 정종으로 묘호를 받고 2대 왕으로 인정?된 것이 조선 후기고 그전까지는 공정왕으로 불린 것을 보면 더더욱 그런 뜻이라고 봐야겠지요.
왕자의 난 당시에 중요한 인물이 하나 있었는데.. 이방번(7남)입니다. 이방번은 세자의 친형이었기에 절제사로서 많은 병력을 쥐고 있었습니다. 이성계의 사위(절제사)는 아내의 친동생인 세자의 편에 서서 싸우지만, 세자의 친형인 이방번은 우물쭈물합니다. 절제사 3명은 이성계의 사위, 차남 이방과, 7남 이방번이었고, 세사람이 병권을 쥐고, 쿠데타의 성패에 영향을 줄수 있었습니다. 이방과는 이방원과 함께 쿠데타에 동참했고, 사위는 저항했지만, 일설에 따르면 이방원은 이방번에게 세자만 칠거니까 중립을 지킬것을 요구했고, 이에 이방번은 아무것도 안하다가 날이 밝자, 귀양지로 끌려가다가 살해됨.
왕자의 난은 아무리 봐도 후계 문제를 지혜롭게 처리하지 못 한 이성계 탓. 건국에 공을 세운데다 각자 세력이나 인맥+경험도 갖춘 장성한 아들들이 줄줄이 있는데 공도 뭣도 없는데다 심지어 장성한 아들들에게는 배다른 동생이 되는 어린 아들에게 후계를 물려주다니 너무 안일했죠. 바보가 아닌 이상 누가 저기서 가만있겠어요.
이성계가 다섯 아들들에게 세자 자리를 안물러주는 이유가 참 대단한데.... 이방우: 첫째 아들인데 이유는 불문이지만, 아버지에 대한 행위 때문에 환멸심을 느껴 이성계가 그걸 알고 안해줬을 가능성도 있음. 이방과: 정치 쪽보다는 무장 쪽이 어울린다는 이유로 거절 이방의: 최인두의 딸과 혼인했다는 이유로 거절, 참고로 최인두는 최영 장군과 인척 관계 이방간: 이방의와 비슷한 이유로 거절 이방원: 마음에 안들어서
저때 이성계가 정말 아파서 저항을 못한 건지.. 아무리 아파도 백전노장 어깨깡패 무골 용장 이성계가 그리 허망하고 무력하게 이방원에게 털릴 수 있는지 의문스러운데.. 혹자는 저때 이방원이 이방석을 붙잡고 인질극이라도 벌인 게 아니냐고도 하더라고요 ㄷㄷ 그래서 이성계가 유독 더 충격 먹고 절망해서 동북 방면으로 도피한 걸지도요.. 물론 진짜 아팠을 수도 있지만.
3:03에 오류가 있습니다. 막내 이방번 -> 막내 이방석
[함께 보면 좋은 영상]
이성계는 어떻게 왕이 됐을까?(조선1)
ruclips.net/video/vYegmZn_Uqc/видео.html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왜 혼자가 됐을까(조선2)
ruclips.net/video/xrXleqEP9hY/видео.html
사실 이성계 건국 ~ 왕자의난까지 3편으로 기획했는데,
시간이 된다면 조사의의난, 왕자의난 도와준 처가 킬 등의 이야기를 섞어서 한편 내겠습니다.
😊😊
나폴레옹 시리즈는 언제 만들어지는거야!!ㅠㅠ
@@퍄퍄킴😊😊😊
@@퍄퍄킴사람들이 자꾸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데, 고려는 첫째부인이 죽고 둘째부인이 살아있으면 첫째부인의 아들이 아닌 둘째부인의 아들이 왕위나 가문을 이어가는 것이 풍습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이성계 자체도 둘째부인의 자식입니다. 이원계를 낳은 이씨가 환조의 첫째 부인이고, 이성계를 낳은 최씨가 둘째 부인이었다는 것이 현재의 통설입니다. 이성계의 할아버지 도조대왕 이춘도 이성계의 증조할아버지 익조의 첫째부인 손씨의 아들이 아닌 둘째부인 정숙왕후 최씨의 아들입니다.
문으로 출세하던 이방원이 과거 역사를 모를리도 없고 배다른 형제가 왕이되면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될지는 머리좋은 이방원은 단번에 알았을테니 왕자의난은 거의 강요수준의 선택이었을거임
숙명
솔직히 살려고 한 반란.
올인 한방 타이밍 러시 들어간게 먹힌거 ㄷㄷㄷ
옛날 역사선생님들은 이방원 권력에 미친 나쁜놈이라고 가리치는 분 들 많았는데 깊게 보면 개인적으로 ㄹㅇ 인간 이방원으로서는 이순신 버금가는 사람 같음. 형제가 그렇게 많은데 다 통솔하고 머리도 좋고 왕권 강화해서 훗날 세종이 수많은 업적을 이루게 길도 닦고....
@@Kimdohan_1972 깊게 보면?
진짜 깊게 봤음???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으니 살려고 왕자의 난 한거.
근데 이건 현대로 따지면 나하고 형들이 아버지 도와서 중견기업을 나라에서 알아주는 대기업으로 만드는데 깨끗하든 더럽든 가리지않고 분골쇄신 했는데 아버지란 작자는 재혼한 젊은 새엄마에 빠져서 새엄마가 낳은 자식들에게 회사 물려주고 부회장인 아빠친구이자 삼촌이라고 부르는 작자는 새엄마랑 짜고 형과 나를 재낄려고 하는건데 이걸 반란을 못참아?
이성계가 진짜 가족관련해서는 변명 한마디도 못하는 인물임. 왕자의난은 보면 볼수록 이성계가 자초한 일이다
사람들이 자꾸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데, 고려는 첫째부인이 죽고 둘째부인이 살아있으면 첫째부인의 아들이 아닌 둘째부인의 아들이 왕위나 가문을 이어가는 것이 풍습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이성계 자체도 둘째부인의 자식입니다. 이원계를 낳은 이씨가 환조의 첫째 부인이고, 이성계를 낳은 최씨가 둘째 부인이었다는 것이 현재의 통설입니다. 이성계의 할아버지 도조대왕 이춘도 이성계의 증조할아버지 익조의 첫째부인 손씨의 아들이 아닌 둘째부인 정숙왕후 최씨의 아들입니다.
@@보고보고-x3q지금 적장자를 세우라는 문제가 아니라, 능력있고 일등공신인 아들들이 뻔히 있는데, 의도적으로 애첩의 자식을 편애하니 가족문제가 안생기겠냐는 거임.
@@보고보고-x3q님은 문해력에 문제가 있는듯
@@보고보고-x3q ...? 첫째부인 아들은 북벌로 엄청난 공훈을 얻고 누가봐고 적장자였는데 대신들 반대 ㅈ까라하고 지 애첩아들 그것도 애새끼 방석을 세자로? 할꺼면 첫째아들들을 정리했어야했음 그것도 아니였으니 난은 당연한 것이었음
위화도회군을 한 이유 부터가 명나라가 강성해서 싸워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고 느껴서인데 막상 본인이 왕이 되서는 명과 관계를 씹창내버리고 사실상 첩사이에서난 서자를 본인을 위해서 힘썼던 아들들보다 우대했다는것만 봐도 이성계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자인지 알만하죠 이방원은 형제를 죽였다는 프레임이 씌워진사람이긴하나 본인이랑 진짜 가족들 목숨이 위험한상황에서 나라도 이런상황을 했을것 같네요
능력있는 아들에게 업무는 업무대로 짬때리는데, 제대로 논공행상도 안하고 팽시키려고 노골적으로 티내는데 난을 안일으키는게 이상한 상황이었네
그것도 부자관계이고 이방원이 아버지를 위해서 모든 걸 다 했는데도 아버지가 아들을 팽하려하니 관계 끊어도 이상하지 않죠. 이성계가 너무 이방원 견제한다고 당시의 후계자에 대한 시대적 관례무시와 권한축소만 시켰으니...
이방원이 그동안 꾹 참은게 신기할 정도에요.
그게 바로 이성계의 한계점이 아닐까란 생각이듬 무장의 능력있지만 정치적 능력은 본인도 인정할 정도로 없음
왕건은 호족들 많이들인 단점있지만 적으로 돌리지않고 이성계는 벌써 즉위부터 세자책봉이랑 요동정벌로 벌써 신하들이 등을 돌렸음
조사의의 난이 성공하면 또 자질없는 자가 왕이되면 어떡해 될지 뻔함 왕자의 난이 또 발생해 팔왕의난이 되어 멸망할거고 이성계의 본인의 평가만 더 하락할거임
왕건은 상인의 아들로 이성계는 무장출신이라 정치적 능력에서는 왕건이 더 뛰어나고 이성계는 무장출신이라 정치적 능력이 별로 없음
능력이 너무 뛰어나서 자기를 제낄거라 생각했나...
@@buna775 이유가 어찌됐든 미운털 확실히 박힌듯
왕자의난이 의미하는건 건국초기의 혼란함을 상징한다고 봐야할듯..건국이란게 결국은 기존의 나라를 무너뜨리고 세우는거라 혼란스러울수밖에... 멀리갈것도 없이 광복이후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편함
권력 앞에서는 가족이고 뭐고 없지....실제로 세계사도 보면 온갖 패륜으로 왕위 계승 한 사례가 엄청 많음 ㅋㅋㅋㅋㅋ
고양이가 폴짝폴짝 뛰는거 너무 귀여워...❤
여말선초 드라마들이 재밌는 이유😂
최근에 알고리즘 덕분에 알게됐는데 영상도 재밌고 고양이 너무 귀여워가지고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혹시 아직 안다루셨다면 시간날때 콘스탄티노플 함락도 다뤄주실 수 있나요?
이방원에 대해선 어릴땐 암만 그래도 동생까지 죽이면서 왕하고 싶었냐하고 생각했는데 정치라는게 엄청 무서운거더라구요...만약 이방석이 왕이 됬다면 훈민정음은 존재하지도 않았겠죠.
근데 이방석은 성격이 워낙 막나가던 성향에다가 공부하기를 엄청 싫어해서 이성계가 오죽했으면 공부 좀 하라고 잔소리를 했을 정도였죠.
물론 그거 빼더라도 정통성이 거의 없고 무리수로 되었기 때문에
@@musicmagazine9861이방석 머리가 총명한걸로 유명한데 뭔소리
@@carrbdc5851 총명한것과 성실한건 다르죠
@@carrbdc5851 모든 천재가 아인슈타인인건 아니다 갈통아
그건 7남 이방번...@@musicmagazine9861
개인적으로 이방원이야말로 가장 자기 능력만으로 왕이 되었다고 생각.... 물론 후대의 평가가 엇갈리지만 태종이라는 묘호로 조선 안에서도 대단한 군주로서 평가 받는 것도 그렇고 왕자의 난이라는 이방원 입장에서는 필수였던 과업에 대한 비판 말고는 크게 다른 비판도 없는 왕이라.... 차라리 이성계가 능력있고 장성한 아들들에게 전권을 주고 교통정리 해줬으면 이방원도 후대에 이렇게 욕 먹지는 않았고 또 왕자의 난도 없었을거라는 생각이....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세종대왕 메이커라서 그 역할만으로도 조선 역사에서 가장 대단한 업적이다 ㅋㅋㅋㅋ
곧 구독자 27만명 축하드려요 퍄퍄킴님!
왜 드라마 작가들이 많이 다뤘음에도 포기할 수 없는 캐릭터인지 말해주죠. 이방원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여말선초의 사건들 하나하나가 굉장히 역동적인 ㅋㅋ 조사의의 난도 기대되네요. ㅎㅈㅎ
실록에 보면, 방번이 세자에 못오른건 "경솔하고 광망하다"라는게 이유로 나왔지만, 실제로는 혼인관계 때문인듯 합니다. 방번의 부인 왕씨가 공양왕의 조카였으니까요.(정확히는 공양왕의 아우인 정양군(귀의군) 왕우의 딸)
왕씨 다 죽였다고 하는데 그래도 살려는 줬나보네 ㄷㄷ
실제 여말선초때 시기를 그린 작품에서 그려진 이방원의 모습을 보면 진짜 참모와 행동대장의 기질을 모두 갖춘 인물임
솔직히 역사만 봐도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실행력이 떨어지고,반면 실행력이 좋은 맹장들의 경우엔 침착함이 부족한데,이방원의 경우는
이런 인텔리와 파이터의 좋은 점만 갗췄음
대표적인 사례가 선지교에서 정몽주를 참살한게 대표적
여담으로 정몽주는 아버지의 동지여서 다른 사람들이 죽여야 한다는 걸 알면서 주저할때,이방원이 가장먼저 비교적 빠른시기에 정몽주를
제거했으며,더군다나 백주대낮에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인걸로 봐선 '대중들에게 우리뜻을 거스르면 이렇게 된다.'
라는 공포의 메세지마저 씌웠으니 예사인물은 아니라는 거지
가장 조선에서 저평가된 인물임 ㄹㅇ
@@auriha05 선죽교 맞아요. 오타인듯
@@auriha05 제가 알기론 선죽교의 경우 정몽주 사후에 붙여진 이름으로 알고 있고,
정몽주가 피살될 당시에는 선지교로 불렸던 걸로 압니다.
물론 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터라 궁금하시면 검색을 하셔서 알아보심이 나을 듯 합니다.
선죽교임
매우 정확한 평
정종은 처음 이미지는 나약하고 허약한 왕 이미지였는데 전쟁터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역전의 용사였다니
다음편은 언제나오나요?
저한테 정종은 무능하게 태종한테 왕위 물려주는 형이라는 이미지였는데 이제보니까 꽤 강한 사람이었어 ㄷㄷㄷ
무능하게 아니고 정종은 원래부터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인물이였습니다.
오죽했으면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고 이방원이 아닌 자신이 왕세자로 세운다는 소식을 듣고 '그냥 너가 하면 안되는가?' 하는 소리까지 했죠.
태조실록은 이방원의 심복인 하륜이 작성한 것으로.. 모순되는 부분이 많고, 이방원 찬양적인 면이 많습니다.
그래서 정도전은 물론이고, 이방과 조차 무능한 이미지로 쓸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방과는 스스로가 제법 뛰어난 무장이었고, 왕자의 난이 가병과 이숙번의 군대로 한것처럼 되어 있지만,
아무리 야음이라도 쉽게 성공할리가 없습니다.
이방과는 당시 수도의 친위부대(요즘으로 치면 수도방위사령관)를 지휘하고 있었고, 아마도 반란의 주력군은 이방과의 부대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정황상 이방과는 1차 왕자의 난 당시만해도 주도권이 어느정도는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하지만 2차 왕자의난으로 이방원이 확실한 주도권을 가졌고, 이 때문에 허수아비 왕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musicmagazine9861
헬스랑 결혼한 타입이었네
큰 공을 세웠는데 무시당하고 잘못하면 숙청될 각. 근데 힘들거나 위험한 일엔
겁나게 부려먹고 그나마 가진 권한도 빼앗으려 들어... 이러니 반란이지 뭐;;
실패하면 신거미 되는 거고 성공하면 방워니 되는 거지ㅋㅋㅋㅋ
근데 신거미 쿠테타 성공한거 아님? 나라가 망해서 그렇지
@@JungSungMock 집권 이후 행보 두고 말하는 거임
@@bugs_bunny__ ㅇㅇ ㅋㅋㅋ 비교가 재미있어서 달았어요 간만에 드라마 왕건장면 떠올라서 ㅋㅋㅋ
아들이 이도라서 방워니 승!
@@JungSungMock 사실 저도 왕건 드라마 생각나서 비유를 그리 한 겁니다 ㅋㅋㅋㅋ
솔직히 대단한 사람인거같음
쿠데타 벌인 사람 중에 저렇게 후대까지 생각해서 기틀을 다진 사람 없음 진짜. 보통 누구든 폐해를 남기는데 이방원은 그런거 없었다는게 대단하다고 생각함
무고한 사람도 죽인게아니라 핵심만 콕 찝어서 제거한거니 대단하죠 ㄷㄷ
방원이 없었으면 조선도 없었을듯.
@@자라라모발아 킬방원이었을 지언정 백성들한테 갓방원 그 자체..
@@Kimdohan_1972 백성은 지 권력에 하등 방해요소가 아니니까
방해요소면 명분 따위 일단 자르고 봄
권력에 미친 사이코패스 이게 갓방원???
9:50 ㅋㅋㅋㅋㅋㅋㅋㅋ 한방에 찌그러지네
아무리 뛰어난 창업군주라도 자식농사는 결국 하늘의 뜻에 달려있다는게 결론(?)같은데...
태종은 유일하게 문과 고시패스한 유일한 왕자임.
6째 이방연도 과거에 급제했음.
정확히는 고려 장원에 급제한 조선 왕이 태종이 유일.
일어나라 문과여
그 과거에 같이 합격한 사람이 황희
같이 거병한 이숙번도 문과 급제자였음
솔직히 이방원이 난을 일으켜도 그 시대 배경과 공적을 보더라도 이방원이 왕위에 올라도 후대에 평가가 나쁘지 않았지만, 세조의 계유정난은 태종과 많이 비교될 정도로 명분도 없고 태종보다도 못했죠. 어떻게 보면 태종이 조선초기의 전성기에 대한 초석을 닦았다고 무방합니다.
갓세종이 세탁잘해줌
세조의 계유정난은 그래도 명분이 있었습니다. 단종의 외척들이 세도정치를 자신들의 권력 이득을 위해 변질시킬려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왕권강화를 선호하던 수양대군이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거고요.
이성계가 진짜 내로남불인게 저거지 자긴 안된다면서 회군하고 나중에 요동정벌할려했으니 걍 지가 왕하고 싶어했을뿐이지 황해도 여진족이니 그럴만하다.
좀 더 소름돋는건 저때는 전화, 뉴스, 인터넷 이딴거 없었음
그냥 눈이랑 귀로 저렇게 첩보, 정보수집, 반란모의 성공해낸거임
조선4는 안나오나요?
기습공격 마스터
이성계가 근데 잘못하긴 함ㅋㅋㅋ 나같아도 열받을듯
이방원은 세'제'가 아닌 세'자'로 책봉됬다 그렇다 동생이 아니라 아들로 형앞에 양자로 들어간것이다 왜? 정통성을 확보하겠다고
다음편은 어디에 있나요 너무 재미있는데ㅠㅠ
학교 사회시간에 이거 틀어주는게 우리나라 교육에 더 나을듯..
왕자의 난 덕분에 지금 우리가 세종대왕님이 만드신 한글을 쓰게 되었으니 좋은거지
드라마에서는 정종 이방과가 좀 유약하게 나오지만 실제는 이성계 따라서 전쟁터 많이 다닌 무장
고양이 캐릭터 귀여워요
조선의 역대왕중 유일하게 과거에 급제해 관료생활을 해본 군왕이 태종임...
역시 전쟁사는 퍄퍄킴! 왕자의 난 잘보고갑니다.ㅋ
온 친척들 인척들이 죄다 뜯어말리고 하다못해 형이 야 이 미친놈아 아버지가 에휴 등신같은 OO 라고 평한 이방간의 난(2차 왕자의 난)은 볼 때마다 웃기네요
이성계를 생각할 때 마다, 사람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서 취하고자 하는 것을 다 취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모두 손에 쥐는 것은 결코 부려선 안 될 욕심이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역사에 한 손가락 안에 드는 용맹한 장수요, 행실과 사람 챙김이 남다른 인격자로 기억되고, 가족 모두 행복할 수 있었을텐데..그나마 그리 강건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말년에 미치지 않을 수 있었을 겁니다.
생각해보면 태조 이성계 장군은 완벽하게 뼛속까지 군인이었음.
사실상 태조 이성계 장군은 군인으로서는 100점인데, 군왕으로서는 0점임.
왜냐면 생각해보면 이성계 하면 군인 시절때 전쟁 업적들이 유명하지
군왕으로 즉위한 이후에 뭔가 업적이랄게 딱히 정도전의 업적들이지 본인의 업적들이 아니었고
군왕때 업적이래봤자 조사의의 군사반란때 배후세력으로 이성계 장군이 조사의의 군사반란을 조종했다는 딱 이런 전투 관련적인 업적밖에 없음.
그래서 정치를 정도전에 맡겨버리니 정도전은 왕권을 약화시키기위해서 이방원 등을 탄압하고 방석, 방간을 기반으로
다음 왕권을 줄려고 했고 또 이성계는 장남계승을 어기다보니 형제간에 칼부림과 내전이 발발했음.
태조 이성계의 이 같은 행동은 이성계가 군왕이 아니라 '군인'이면 이해가 가는 행동임.
이성계는 아직까지도 자신이 군왕이 아니라 군인이라고 생각했었고 군왕이라봤자 군인들의 대장 정도로 생각한 것 같음.
그래서 군인들은 충이 강해서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기 때문에 그 어떤 명령이라도 어기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것같음.
딱 군인들의 상명하복으로 생각한듯. 그래서 이렇게 자신은 '군인'답게 명령을 내렸는데
그 명령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방원이 결국 왕자의 난을 일으키면서 군사 내전이 발발함.
왕자의 난 중 제일 중요 인물은 이방번 이였음 . 이방번은 조선의최고 정예병,엄청난 병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방원은 이방번을 꼭 포섭해야했던 인물 . 만약 이방번이 이방원의 적이였다면 왕자의난은 실패로 끝났을거임. 그리고 세자 이방원이 아닌 , 세제로 책봉된거임
2차 왕자의 난 관련된건 볼때마다 육룡이 나르샤에서 2차 왕자의 난 실패하고 이방간이 이방원한테 당당하게 나 좀 꼭 살려달라고 소리치던 장면이 생각남ㅋㅋㅋㅋ
태종이시여 그때의 상황과 심정을 이해한다해도 그 잔인한 숙청의 과정들이 걸리지만 위대한 세종대왕에게 양위한걸로 모든걸 이해하기로했소
왕조 국가의 왕위 계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과 대의명분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후처 소생의 막내 아들을 세자로 삼은 건 원칙도 명분도 없는 무리수. 개국 군주인 이성계도 이때쯤에는 판단력이 많이 흐려진 게 분명하다.
방간이 물어본 것에 그저 자신의 생각을 말해줬을뿐 실제로 난에는 가담조차 하지 않았던 박포는
형을 죽일 수 없으니 누군가 대신 책임을 물어 죽여야 할 인물을 찾던 방원의 눈에 포착되어 대신 죽음.
가장 억울한 인물...
빨리 다음편 빨리 다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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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척부인도 그렇고,
영창대군의 엄마 인목왕후, 그리고
이성계(수정!)의 부인 신덕왕후는
주제를 알고 좀 납작 엎드렸거나
자기 아들을 왕으로 세울 생각을 안 하고 그랬으면
비참하게 살거나 죽지는 않았을텐데...참....
이방원->이성계로 수정하셔야 할듯해요
@@november2546 수정했습니다. ㅋㅋ....제목만 계속 보다가 이방원이 손에 붙어버린 듯.
@@Ratel4Moon 역시ㅋㅋㅋㅋㅋ
저도 처음엔 자연스럽게 느껴졌거든요
영창대군 엄마 인목대비는 광해군과 그가지 각을 안 세웠음. 그건은 광해군과 대북정권이 과민반응을 한거고 그래서 광해군이 폭군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임.
막내 둘이 불쌍하네. 아무것도 모르고 어른들이 무거운짐을 지어놔 목숨을 잃었네. 첫째부인 소생왕자들은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이고. 이성계의 실수다
👍
태종이 세제가 아니라 세자가된 이유는 자신이 태조의 정통성을 이었다는, 자기가 2대 왕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보시면 될듯 합니다.
정종이 정종으로 묘호를 받고 2대 왕으로 인정?된 것이 조선 후기고 그전까지는 공정왕으로 불린 것을 보면 더더욱 그런 뜻이라고 봐야겠지요.
정종도 어떻게보면 폐위당한 임금도아닌데 보통조선임금들의 시호가 보통 O종 OO대왕포함하면 8자가 기본인데 정종은 숙종이 묘호 및 시호를 다시 올리기전에는 뭐... 온인 순효 대왕 네글자니 안습인거죠
왕자의 난 당시에 중요한 인물이 하나 있었는데.. 이방번(7남)입니다. 이방번은 세자의 친형이었기에 절제사로서 많은 병력을 쥐고 있었습니다.
이성계의 사위(절제사)는 아내의 친동생인 세자의 편에 서서 싸우지만, 세자의 친형인 이방번은 우물쭈물합니다.
절제사 3명은 이성계의 사위, 차남 이방과, 7남 이방번이었고, 세사람이 병권을 쥐고, 쿠데타의 성패에 영향을 줄수 있었습니다.
이방과는 이방원과 함께 쿠데타에 동참했고, 사위는 저항했지만,
일설에 따르면 이방원은 이방번에게 세자만 칠거니까 중립을 지킬것을 요구했고, 이에 이방번은 아무것도 안하다가 날이 밝자, 귀양지로 끌려가다가 살해됨.
차라리 이방번을 세자로 세웠으면 정통성이라도 조오오금은 확보됬을텐데, 아빠가 고려 왕실이랑 정략결혼 시켜놓곤 세자세우기 뭣 하니까 "걔는 쫌 모질이야" 하고 세자 제외ㅋㅋ 세자자리에서 밀린것도 억울한데 형들한테도 견제받고 동생이 왕되도 왕의 형이라는 이유로 죽을게 뻔한 운명...
@@Jangsahaja원래 이성계가 이방번 세자로 삼으려고 했다가 신하들이 신덕왕후 아들로 해야되면 차라리 이방석으로 하라고 해서 그렇게 된거임. 애초에 이방번이 이방원한테 붙었으면 죽었을 일도 없었음
@@davidhan684 ㄹㅇㅋㅋ
중립 할 거면 걍 이방원한테 붙는 게 맞는 판단인데 ㅋㅋ
현대로 따져도 이방원 위치는 최고 중요 장남도 차남도 아닌 오남 근대 다른 것도 아닌 배다른 동생인것도 모잘라서 세자 자리 까지 물려줬으니 이방원 입장에선 분노로 눈 뒤집힐 사쐉
정치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이성계가 이방원을 너무 홀대하긴 했어…
이러니저러니 해도 친형제들은 살려둔 보면 이방원도 딱히 형제들 피를 보는 게 달가울 정도로 권력에 미친 인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왕자의 난은 아무리 봐도 후계 문제를 지혜롭게 처리하지 못 한 이성계 탓. 건국에 공을 세운데다 각자 세력이나 인맥+경험도 갖춘 장성한 아들들이 줄줄이 있는데 공도 뭣도 없는데다 심지어 장성한 아들들에게는 배다른 동생이 되는 어린 아들에게 후계를 물려주다니 너무 안일했죠. 바보가 아닌 이상 누가 저기서 가만있겠어요.
이성계가 다섯 아들들에게 세자 자리를 안물러주는 이유가 참 대단한데....
이방우: 첫째 아들인데 이유는 불문이지만, 아버지에 대한 행위 때문에 환멸심을 느껴 이성계가 그걸 알고 안해줬을 가능성도 있음.
이방과: 정치 쪽보다는 무장 쪽이 어울린다는 이유로 거절
이방의: 최인두의 딸과 혼인했다는 이유로 거절, 참고로 최인두는 최영 장군과 인척 관계
이방간: 이방의와 비슷한 이유로 거절
이방원: 마음에 안들어서
@@musicmagazine9861 변명일뿐이죠 두째년이 사주한거뿐이죠 배다른형제가 왕되면 5명 살수있었을까요? 전부참수형이죠?
이방원은 동생이니까 세제가 더 나은 표현이 아닐까요?
항상 재미있고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그렇긴 하지만 나중에 정종이 이방원을 먼저 양아들로 삼고 세자로 책봉한거라 세자가 맞는 표현입니다.
원래는 그게 맞는데 이방원이 억지로 세자 직함 받음
그때에도 세자냐 세제냐는 문제로 조정에서 갑론을박이 있었던걸로 압니다.
정종이 이방원 양자로 한거 아닌가? 왕위계승 정통성 때문인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세제는 lg화학
재밌어요
결론 이성계는 견훤 시즌2 였어요.ㅋㅋㅋㅋ
이방원은 이성계의 '문'의 역량을 물려받은 인물이었죠.
이성계의 '무'의 역량은 이방과가 물려받았고요.
가별초를 국가의 군대로 통합하는게 정국안정을 위해서는 당연한거였지만...
영상에 나오는거처럼 다른거에서 문제였죠.
이성계와 정도전이 주장한 요동정벌은 사실 목소리만 높히는거고 실제의도는 다른거에 있었고요.
주원장도 전쟁을 벌일 생각은 없었지만 일단 목소리만 높히고 공격적으로 발언만 한거였고요.
마무리까지 반란을 일으킨거보면 이성계의 권력욕도 장난아니였나봄 .. 그래서 자신만큼 뛰어난 자식들을 밀어낸건 아닐지
토사구팽 당하게 생겼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냐구요....
웃긴 것은 장자 승계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세제가 아닌 세자가 왕위를 물려받아야 한다며 형인 정종의 양자로서 세자가 되었다는 점.
그러게 처음부터 이방원을 세자로 삼았어야지
조선만이 아니라 건국 첫 왕(황제) 후에 숙질간 형제간 부자간 권력다툼은 흔한 일이었죠
박포 미스트신이 안그려져서 아쉽;;
고양이 젠장 귀여워 죽겠구먼
참고로 태종은 남은이 죽어서 안타까워 했죠
9:29: 방원이가 날 죽이려고 했다니까요!!
9:50 조용히 하세요!
저때 이성계가 정말 아파서 저항을 못한 건지.. 아무리 아파도 백전노장 어깨깡패 무골 용장 이성계가 그리 허망하고 무력하게 이방원에게 털릴 수 있는지 의문스러운데.. 혹자는 저때 이방원이 이방석을 붙잡고 인질극이라도 벌인 게 아니냐고도 하더라고요 ㄷㄷ 그래서 이성계가 유독 더 충격 먹고 절망해서 동북 방면으로 도피한 걸지도요.. 물론 진짜 아팠을 수도 있지만.
암만 이성계가 전쟁에서 잔뼈 굵은 노장이었어도 나이가 나이인지라..그리고 젊은 시절 워낙 전장에서 굴러댔으니 노년에 몸이 좋을리도 없을듯
아무리 쎄도 판타지처럼 수백명 못썰음 2명만 잡아도 힘떨어지는데 무슨 정치에서 밀리니 좃된거지
세자 책봉 경쟁에서도 탈락했다 태조는 결국 여덟째 아들 방석(芳碩)을 세자로 책봉하고. 방원은 권력구조의 핵심에서 차츰 밀려나고, 사병마저 혁파될 위기에 놓였다.왕자들을 궁중으로 불러들여 사병을 동원해 반대파를 제거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성계는 말년에 치매가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비하의 목적이 아니라 그 고려명장 이성계가 저딴 판단을해서 아끼는 자식들을 싸우게 만들고 주변인물들에게 해가되는 행위들만 하고 가버렸죠
박포하면 막걸리 맞는거밖에 모르겠는데 죽을때도 집에 있었는데 그냥 끌려나와 죽었네... 너무 불쌍하다..
이방원: 아니 아버지 왕을 만들어주려고 온갓 도맡아서 다 처리해줬는데 우리 어머니를 무시하고 딴 여자의 둘째 아들이 세자가 된다고 에라이!!!
솔직히 왕자의 난 아니였으면 태종이 성군 칭호를 받고도 남았을뗀데
과연 그렇게 되었을까요? 만약에 이방석이 왕이 되었더라면 이방원을 포함해서 형제들도 무사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musicmagazine9861 그니까 이성계가 처음부터 이방원을 세자로 지목했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태종도 피를 흘리지 않고 성군이 되었을 것이고요
근데 모든걸 터트린것이 정도전의 2차요동정벌이 아닌가? 싶기도
공신도 배제해, 사병도 뺏아가, 그것만 해도 충분히 빡칠 텐데 그것도 모자라 새엄마 애들 중 막내가 그 다음 후계자라는 데 거기서 폭발 안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육남 이방연도 과거급제해 관직에 있었음
아들 이도를 낳아서 왕을 시킨것만으로도 이방원의 모든 죄를 눈감아 줄 수 있음. 그렇지 않다면 나는 지금 댓글을 한자로 써야 했을거임
인생의 마지막이라...
솔직히 디져라고 집 지어놓은거 아버지가 배다른 막내 줘버리면 눈깔 돌아갈듯
ㄹㅇ
@@hyon07239
이방원은 무인정사에서 어떻게 이긴걸까요??
이전에 사병 철폐도 했고 가별초도 없었고;
일부 작중에서 이방원의 의형제였던 이숙번이 안산부사여서 안산의 병력들을 서울로 핑계를 대며 끌고 올라온걸로 압니다.
청화수님 왕자의난 영상 한번 보셈.
이방원이란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땐 참 웃겼지. 이름이 빵원인데 안 웃길리가 있나. 근데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가니 알면 알수록 이방원만한 인물도 없네. 아이큐측정을 했다면 160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싶네.
7:26 아 ㅈㄴ 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왕자의난은 일어날만하다
진짜 괜히 여말선초하는게 아니네 개꿀잼
ㅇㅇ 손나 흥미 진진함.
역사 소설이든 정사든
3:03 그다음 둘째 부인 강씨 소생의 막내 이방번 > 이방석 수정 필요한것 같습니다.
오류가 있었네요 ㅠㅠ 고정댓글 상단에 반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항상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보살도 이건 못참지 정적도 제거하고 오명도 자기가 다쓰고 묵묵히 공세우고 푸대접에도 참고 그런데 가만히 안자서 죽으라고 난못함
솔직히 세종대왕 아버지라는것 빼고 봐도 기득권에겐 가혹했지만 백성에겐 자상한 왕이라고 알고있음
태조도 참 배제할거면 확실하게 배제하던가 하지 굳이 명나라 사신같은 중요임무를 맡겨서 이방원의 정치생명을 연장시켜주는걸 보면 어휴...아버지이자 왕으로서 자기의 권위를 너무 과신한게 아닌가 싶네요.
다음 이성계 이야기 영상 만들러 간 퍄퍄킴은 '함흥차사'인가 어찌하여 영상이 안 올라오는고?
조사의의 난 예고 까지 완벽하다....
당시 군사력이 강했던 이방번이 멍청하게 왕자의 난을 묵인했다가 죽음
안하면 자기가 먼저 죽을거 같으니까 했지 ㅋㅋㅋ
이성계가 말년에 노망이 나면서 벌어진 일.
이방원이 조선태종이 된것이 조선초기 번영의 시발점이지요.
냐옹이 형 역시 재미있어요. 춘추전국시대 요녀 시리즈로 한번 가요~, 하희 하고 제나라 자매하고...
그 당시로부터 1200년전에 중국에서 손권이 하던짓 그대로 한 이성계.....
영상 마지막 부분을 보니 다음 영상은 조사의의 난인가요?
눈이 멀고 노망나 나라 말아먹을뻔한걸 이방원이 바로잡았다 생각함
고양이 캐릭 더 볼때 마다 귀여울
이때 명나라 수도가 북경이였나여??
조선이 세웠을 때 명나라의 수도는 북경이 아니고 난징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