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뭔가 모르게 왜 뜨끔하죠ㅎ 저는 30대인데.. 항상 저는 저런 주제가 나오면 생일때 아버지와 함께 비싼 레고를 사러갔던 일을 말해요ㅠ 기억이 희미할정도로 어릴때인데 그때는 레고가 한참 인기였거든요.. 개중에서도 10만원 정도 하는 커다랗고 비싼 세트상자들은 저희집 형편에 정말 갖기 힘든 장난감이었죠.. 미국서부 컨셉의 세트였는데 사러가던길, 고르던일, 사서 돌아오던길, 집에와서 풀어 갖고 놀던 모습들이 너무 생생하고 유일하다 할만큼 너무 행복하게 그날이 느껴져요..ㅠㅠ 기억이 왜케 물질적인거야..ㅠㅠㅋㅋㅋㅋ
예전 김제동이 힐링캠프에서 한석규가 제일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물었던게 떠오르네 김제동이 어릴 때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집안에 어른 남자가 없던 시절 겨울에 친구들은 아빠나 삼촌이 멋지게 썰매를 만들어주고 김제동은 썰매가 없어 항상 심판만 봤었는데,, 어느날 큰 누나 매형이 김제동을 불러 딱 한마디 하는데.. "처남, 가서 철사 사와." 이 한마디에 직감적으로 매형이 썰매 만들어줄꺼란 걸 알고 신나게 철물점으로 뛰어가던 기억이 제일 행복했었다는...
저는 그래서... 김제동 그 사람이 좋아요 최근 들어 정치적으로 조금 욕 먹는 거 알고있어요 그런데 최순실게이트 인간들처럼, 조국같은 인간들처럼 범죄자는 아니잖아요 여기서 이 두 새끼들을 언급한 이유도 한쪽으로 치우쳐진 입장에서 좋다는 게 아니라 그냥 김제동이라는 사람이 좋습니다.
영상과 댓글 속 행복한 이야기들을 보며 따뜻한 눈물을 흘리다가 예전 기억을 떠올려봤다. 아무리 쥐어짜내도 행복한 기억이 안나서 엉엉 울었다. 알코올중독자 아빠 때문에 안좋은 기억들이 더 많다. 그래서 한참을 울다가, 갑자기 스쳐지나가듯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정전 났을 때 거실 바닥에 후레쉬를 키고 앉아 도란도란 구운계란을 까먹던 날, 주말마다 엄마가 밥솥으로 만들어주던 핫케잌 냄새와 다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리던 순간 등등.. 아빠의 병이 심해지기 전에는 문득문득 행복했던 추억들도 있었다. 안좋은 기억에 가려졌을 뿐이었다. 행복한 기억이 떠오르니 또 슬퍼졌다. 분명 우리 가족도 소소하게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갈수록 우리 가족들을 힘들게해서 결국 버려진 아빠.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대학 졸업을 하고.. 사는동안 우리 가족을 힘들게 한 아빠를 원망하며 살았는데, 성인이 되고 수많은 감정들을 겪어보니 과묵했던 아빠의 속마음이 궁금해진다. 아빠는 어쩌다가 그지경까지 갔을까. 아빠도 우리가 모르는 내면속의 파도가 있었을 까? 아빠만의 힘듦이 있긴 있었겠지. 너무 나약했던 탓에 술에 의지했고,알코올 중독에 지배되어 결국엔 삶이 망가졌지만 모르겠다. 몰라몰라. 뭐가 어찌됐던간에 아빠 한명 때문에 엄마,나,동생 세사람이 고통받으며 살았던것은 사실이니 동정할 필요도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다. 그냥...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하... 새벽인데 펑펑 울어서 눈이 띵띵 부었다....다시 세수해야겠다. 아무튼..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으니 힘들었던 어린시절의 나와 내면속 나를 토닥토닥 보살펴주며 현재를 살아가야지. 나는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아빠처럼 회피하거나 중독에 빠지지 않을것이다. 책읽고 명상하고 절제하고 끊임없이 배우며 모든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해나가는 성숙한 내가 되어야지. 새벽 감수성에 펑펑 울며 주저리주저리,,
가슴 아픕니다. 댓글들이 모두 자기들의 어렸을 때 행복했던 소소한 순간을 이야기할 때 이런 생각에 더 괴로워지는 게. 저도 님과 비슷한 시기를 겪고 드디어 그 아버지와 관계를 끊는 시점인데요, 아버지를 가족 중 가장 싫어하던 동생이 얼마전 아버지와 행복했던 순간과 이런 안 좋은 사건들이 혼재되어 있어 더 괴롭다고 하더라고요. 난 무조건 싫기만 했는데, 그 얘는 행복과 불행이 같이 생각난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고, 비참하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럴거에요.. 우리는 다른 삶을 살기로 해요..
어느정도 크면 아무데서나 잠들면 부모가 힘들어서 깨워서 자러가라그러는데 좀 애매한 3학년 4학년쯤엔 부모가 가끔 안아서 방에 넣어줄때가 있지. 그때가 참 좋은데..특히 그나이때는 그렇게 누가 안아주는데 거의 마지막이니까 특히 아빠가 안아주면 참 포근하고 좋았던 기억이 있네. 애들이 크면서 그런순간들이 마지막이 되는거지..그 이후엔 그런스킨십 어려우니까..딸이나 아들이나 목욕시키는 것도 그렇고 밤에 데리고 자는 것 업어주는것 안아주는 것 그런거 다..학교도 다닐때가 딱 정해져 있는거고..사실 다 정해져 있는 시기가 있어서 계산해보면 내가 아이와 함께할수 있는것도 무한정은 아닌거지.. 최소 10년 공들여 기르면 아무문제없이 자랄듯..
저의 지금도 생각나는 제일 행복하다고 느꼈던 순간중 하나는 해가 넘어가며 노을이 지는 저녁 어머니는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시고 아버지는 거실에서 tv를 보시며 친누나는 침대에 누워 깔깔웃으며 핸드폰을 보고있고 저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무 특별할 일없이 평범한 그런 하루의 순간에서 안정감에서 오는 행복이라고 할까요. 이런 행복하고 평화로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라고 느꼈던게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이 납니다.
나의 어릴때 가장 행복했던 기억 중 하나는 아주 어릴적 성묘를 갔다 돌아오는 길에 너무 거센 폭우에 차를 잠시 멈추고 아빠 엄마가 같이 차에서 잠시 잠을 자던 순간 막내동생은 엄마품에 안겨 잠잘때, 아빠 엄마 막내동생이 잠에 깨지 않게 조용히 둘째와 같이 뒷좌석 뒤의 공간에 있던 성묘음식 꺼내서 먹으면서 동생과 숨죽여 키득대던 순간이 제일 행복했었음 그날에 대한 기억은 진짜 선명함. 거센 비가 차지붕을 때리면서 나던 소리. 습하지만 선선했던 공기. 잠시 쉬는 차 옆으로 빠르게 지나가던 차들이 폭우를 가르던 소리. 성묘음식의 맛. 보자기를 풀어 음식을 꺼내먹던 동생의 표정.
나도 떠올리게 되네요^^ 국민학교 3학년때 저녁 먹고 엄마 아빠랑 뚝방으로 산책갔었어요. 계단에 앉아 엄마랑 아빠랑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시고 나는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소리내어 구구단을 외우던 기억이 있어요. 아빠는 5학년때 돌아가셨지만 그 저녁 어스름에 평화롭고 아늑했던 기억이 있어 오늘을 살아가는것 같아요~
아주 춥고 어두운 밤이었는데, 아버지가 과자세트를 주시며 선물이라고 했어요. 제가 워낙 작은 시골 마을에 살고 있어서 과자 선물세트를 처음 봤는데 열어보니 과자랑 껌이랑 잔뜩 있었죠. 밤새도록 식구들 잠깨지 않게 조심조심 하나 하나 뜯어서 먹었는데 그날 과자 뜯었던 소리, 눈 내리던 거, 코시린 기억, 바람소리 다 기억납니다. '아무도 깨지 않게 이 과자들 다 맛봐야지'
욕조에 둘이 들어가도 될정도로 어렸을때 동생이랑 같이 욕조에서 목욕하면서 장난치던 기억 / 친구랑 저녁 노을이 질때까지 놀다가 집에 들어가던 기억/ 주말마다 약수터에 아빠와 물뜨러 갔던 기억/ 수술할때 마취직전 엄마가 두손으로 꼭 잡고 이름불러주며 괜찮다고 말해주던 기억 / 놀이공원에서 밤늦게까지 퍼레이드 보면 신나게 놀았던 기억 등등 나를 행복하게 하는 순간들
이 영상 보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떠오른 건데 초등학교 때 외할머니가 가끔 데리러 와주셨는데 운동장에 있는 저를 보시고 으스러지게 끌어안아 주시면서 금쪽같은 내새끼~ 해주던 게 그 당시 품에 안겨있으면서도 너무 좋았어요 금쪽같다고 해주는 말과 하굣길에 어수선한 분위기랑. 그때 할머니가 해를 등지고 걸어오셨는데 되게 환한 옷을 입고 있어서 딱 햇살이 나를 품어준 것 같은 기억이네요 되게 오랜만에 이런 기억을 떠오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 더웠던 여름밤, 엄마랑 아빠랑 멍멍이랑 함께 돗자리랑 베개 들고 옥상 올라가 하루내 열기로 뜨거워진 옥상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등을 대고 누워서 여름 밤하늘을 쳐다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이 떠올라요...생각해보면...그때 참 가난하고 남루하게 살던 때인데 집에 에어컨도 없던 시절 그 여름밤에 우리는 까만 밤을 바라보며 막연히 낙관했던 것 같아요...등은 따뜻한데 바람은 시원하던 그 이질적인 감각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때 함께 했던 아빠도 멍멍이도 이젠 곁에 없고, 더 이상 옥상은 가 볼수도 없는 고층 아파트의 불빛들 속의 하나가 되어버린 요즘...이따금 그 여름밤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네요...
더운 여름, 엄마가 설탕 뿌려서 내어주던 토마토 우뭇가사리를 한껏 넣은 콩국 걸쭉하게 타서 꿀꺽꿀꺽 들이키던 미숫가루 비오던 날 엄마가 구워주던 홍합 넣은 김치전 아파트 단지 어딘가에서 목 놓아 외치던 찹쌀떡 장수의 찹쌀떠어억 소리 아빠와 거실에 이부자리 깔고 보던 드라마 허준
나도 분명 저런 자잘한 기억들이 있을텐데 유독 가족과 관련된 기억은 잘 없고 나 혼자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들만 많아서 잠깐 슬펐다 그래도 아직 난 어리고 저 분들처럼 나이가 더 들면 지금은 기억나지 않거나 행복한 추억이라고 여기지 않던 것들이 또 새롭게 다가와 주겠지...
매일 야근하고 피곤하 신데 학교 숙제 도와주신다고 엄청 늦은 밤까지 가족신문만들고 여러 숙제 같이 해주시고.... 그 피곤하지만 옷도 갈아입지 않고 끝까지 곁에서 있어주시던게 기억난다. 그 뒤로 상을 조금씩 타면서 할 수 있는 대회는 다 나가 휩쓸고, 내 스스로가 느끼는 승부욕과 무거운 엉덩이가 남았다
어렸을때는 네가족이 한방에서 잠을 잤는데 악몽을 꾸고 예기치 못한 새벽에 잠이 깨면 그 순간 집의 풍경들이 너무나 무서워서 이불밖으로 손도 내밀지 못하고 식은땀만 흘리다가 아주 작게 용기 내어 아빠를 부르면 그 작은 소리에도 잠결에 반응 해주셨던 아빠의 목소리와 다독임으로 다시 잠들고는 했던 날들을 오랜만에 떠올려 봅니다
ㅋㅋ 그 작은 행동이 어린 아이에겐 눈물나게 크고 안심되는 순간이 되죠. 저는 어렸을때 자면서 코피가 많이 났었는데 하루는 베개가 다 젖을 정도로 멈추지가 않아서 너무 무서웠던 기억이 나요. 자고 있는 아빠한테 작게 아빠 나 코피가 안멈춰.. 라고 했는데 평소엔 잘 일어나지도 않던 분이 벌떡 일어나서 멈출때까지 안아줬던 기억이 나요. 원랜 안 울었는데 아빠가 안아주니 눈물 나더라구요.
내가 가장 행복했을때는 중3때 원하던 학교에 합격하고 입학식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놀았던 그순간이 너무 행복했음. 예체능이라서 공부를 조금 쉬엄쉬엄하기도 했고 원하는 공부를 하는기대감도 컸고.. 그때쯤에 언니랑 새벽에 몰래 편의점가서 야식도 사먹고 집근처 작은 놀이터에 있는 작은 농구골대에 과자봉지 던지고 놀다가 걸려서 낑낑대며 다시 빼는 순간이 또 웃겨서 웃고 그냥 그렇게 걱정없이 놀던때가 참 좋았던것같은데
유희열님의 가정사를 알고 나니 저 눈물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거 같습니다. 저도 중1무렵부터 아버지와 떨어져 산 이후 이상하게 유독 아버지 얘기에는 감정이 북받치더라구요. 다른 거에는 이상하게 운 적도 별로 없는 데 말이죠. 솔직히 여러 일들이 많았어서 이젠 크게 보고싶다는 생각은 안 드는 아버지지만 이렇게 27이나 먹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길에 대해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우리 아버지는 나에게 어떤 조언을 해줬을까가 요즘따라 참 궁금합니다.
난 제일 행복했던 순간이 하루종일 엄마랑 같이 마트하고 문화센터나 도서관 다니다가 해질녘 집에 돌아오던 순간이었음 그당시 내가 책이랑 이야기 만들어 내는거에 빠저있었는데 엄마랑 항상 릴레이로 작문하기 했음 그리고 그 아이의 꿈은 현재 작가임 지금도 나만의 글을 써가고 있고 또하나는 할머니네 갔다오면 항상 한밤중이었는데 아빠가 딸 깼어? 하고 물어보는데 한반 부르다 한번 픽 웃으시고 날 안아서 집에 들어가곤 조심히 침대에 놔주셨음 아직도 그 이불냄새랑 척감은 못잊음 이젠 내가 아빠를 안아주고 싶음
엄마의 첫 번째 기일을 지내며 자기가 가장 어렸을 때로 생각이 드는 엄마하고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네 살이나 다섯 살 때 쯤이던가. 엄마 손 잡고 논두렁길을 걸어 외갓집 가던 길. 꽤나 쌀랑한 바람결에 엄마의 팥색 두루마기 옷고름이 내 얼굴을 살짝살짝 때리던 기억이 아스라하다고 했다. 언니들이 음력 시월 외할머니 제사에 갔던가 보다고 하였다. 엄마 이야기하면서 쪼금 눈물 바람도 하고 맛난 것도 먹고... - 지금 우리 손주 보다도 더 어렸을 때의 기억이네요. -
어린시절.. 6-7살즈음에 부모님과 함께 친척집에 갔다가 늦은 저녁 차타고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밤은 늦었고 잠은 오고.. 그러다가 뒷자리에서 동생이랑 같이 새근새근 잠이 들기 일수였죠 ㅎㅎ 그러다가 집에 도착하면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잠이든 동생과 저를 안아주셔서 저희 방에 뉘어 주실때 그 포근함을 잊을수가 없네요 ㅎㅎ 유작가님 처럼 사실 아버지가 안아주실때.. 아니 어쩌면 집에 도착하기 직전에 잠깐 깨기도 했었는데 아버지가 제 방에 이불을 덮어줄때까지 안깬척 꼭 감고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ㅎㅎ 유희열님 처럼 저도 모르게 행복한 기억이 떠올라서 눈물이 나네요 ㅎㅎ
2002년 월드컵 당시 갓 초등학교를 들어간 나이였어요. 월드컵의 열기가 대한민국을 달궜고 경상북도 어딘가에 있는 소도시의 시민들도 다들 미쳐있었죠ㅠㅠㅎ 뚝방에서 경기 중계를 해줘서 어린 동생들은 두고 저랑 부모님 이렇게 셋만 중계를 보러 갔었어요. 차에 이어붙인 십여개의 모니터로 축구경기를 보고 (물론 뭣모르는 나이라 그냥 보고만 왔지만요ㅎㅎ) 엄마아빠 사이에서 손잡고 돌아오다가 아빠가 목마 태워준 그 기억이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도 생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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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어릴땐 부모가 세상이네.,.,
댓글 보고 울컥 눈물 나기는 처음 ㅠ
왠지 아들에게 미안해서 펑펑 울고 있음 ㅠ
저두 늙었는지 눈시울이.. 따흑
힝
부모가 반 복이라는 말이 있죠.. (자기가 가진 복의 반이라는 말)
너무 멋진말이네요
유현준은 자신의 창작에 대한 엄마의 칭찬을, 황교익은 엄마의 금목걸이의 촉감을, 유시민은 아버지의 포근함을, 유희열은 엄마 등의 안락함을... 확실히 촉감이 아이의 애착형성에 엄청 중요한 역할을 하나부다...
이걸 정리해서 결론을 내시는 당신은 ...박사님?
오오 맞아요! 정확히는 아이와의 스킨쉽이 애착형성에 정말 중요하다고 해요! 그리고 자주 못 안아주더라도 꽉~ 안아주는 것이 효과적이라네용
중요한 거 같아요
저렇게 울컥해도 놀리지 않고 되게 행복한 사람이구나 해주는 거 너무 좋다
아 유시민 일화 진짜 너무 공감이고 듣자마자 유희열이랑 같이 눈물 고였다....
행복한 얘기하는데 왜 눈물이 나지ㅜㅜㅜㅜ
눈물흘리는 유희열이 너무 이해된다
아버지 생각이 나셨을거애요..
항상 느끼는건데 사람들이 행복했던 순간을 말하는 걸 보면 대부분이 돈과 관련이 없는 추억이라는게 흠... 부모, 친구, 연인, 반려동물 같은 연대관계에서 오는 충족감이 인생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구나 싶음
헉 뭔가 모르게 왜 뜨끔하죠ㅎ 저는 30대인데.. 항상 저는 저런 주제가 나오면 생일때 아버지와 함께 비싼 레고를 사러갔던 일을 말해요ㅠ 기억이 희미할정도로 어릴때인데 그때는 레고가 한참 인기였거든요.. 개중에서도 10만원 정도 하는 커다랗고 비싼 세트상자들은 저희집 형편에 정말 갖기 힘든 장난감이었죠.. 미국서부 컨셉의 세트였는데 사러가던길, 고르던일, 사서 돌아오던길, 집에와서 풀어 갖고 놀던 모습들이 너무 생생하고 유일하다 할만큼 너무 행복하게 그날이 느껴져요..ㅠㅠ 기억이 왜케 물질적인거야..ㅠㅠㅋㅋㅋㅋ
연대감 충족감을 느끼려면 기본적인 재정조건이 되어야죠
@@홀로-e7l 그 추억의 기저에 '10만 원'이라는 절대적인 화폐가치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사주셨다는 고마움과 애정이 있기 때문 아닐까요
@@홀로-e7l물론 비싼레고도 추억에 한 몫하겠지만 그것을 이루는 큰 부분은 아버님이 주신 시간과 애정인 듯...행복
돈과 직접적인 관련 없는 추억이겠지만 모든게 다 돈이죠 사실 ㅎㅎ
사람은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느낄때 가장 행복하죠......
눈을 뜨지 말아야겠다... 아련한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떠오릅니다.
아.. 나도 기억난다... ㅎㅎ
유희열 남의 들어주는 말 방식 너무 편하고 좋다
보는나도 옆사람들도 그 따뜻함에 동화 되게 하는것 같다
유희열씨가 유시민쌤을 정말 많이 좋아하는듯 .. 알쓸신잡 최고에요!!
유희열 님이 가족에 대한 마음이 어린시절부터 참 깊었어요..
예전 김제동이 힐링캠프에서 한석규가 제일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물었던게 떠오르네
김제동이 어릴 때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집안에 어른 남자가 없던 시절
겨울에 친구들은 아빠나 삼촌이 멋지게 썰매를 만들어주고 김제동은 썰매가 없어 항상 심판만 봤었는데,,
어느날 큰 누나 매형이 김제동을 불러 딱 한마디 하는데..
"처남, 가서 철사 사와."
이 한마디에 직감적으로 매형이 썰매 만들어줄꺼란 걸 알고 신나게 철물점으로 뛰어가던 기억이
제일 행복했었다는...
그 매형이 거제도에 있는 조선소에서 일하다가 추락사하셨다고... 그래서 노동자들보면 아직도 매형같고 가족같고 그렇다고 하시더라구요.
아 두분 아침부터 눈물나게 하세요ㅠㅠ
그 썰매 만들어준 분이
처음 김제동의 집에 와서
콩잎으로 만든 반찬을 보고
기겁했다는 전라도 매형이랬죠.
거제 조선소에서 일하다
사고 돌아가신..
힐링 캠프에서 한석규가 김제동한테로 바꿔주세요
저는 그래서... 김제동 그 사람이 좋아요
최근 들어 정치적으로 조금 욕 먹는 거 알고있어요
그런데 최순실게이트 인간들처럼, 조국같은 인간들처럼 범죄자는 아니잖아요
여기서 이 두 새끼들을 언급한 이유도 한쪽으로 치우쳐진 입장에서 좋다는 게 아니라
그냥 김제동이라는 사람이 좋습니다.
“행복할 때 울어요”라는 말에 울시울이 불거지는 나이가 되었어요.
모나미153 볼펜...
어떤 부모는
너 왜 쓸데없는 짓하고 있니?
혹은 적극적 칭찬을 안 하는 경우...
여기에 따라서 아이의 정서 미래 성격 등이 어떤 방향으로 자리잡아 가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그말을 들은 아이는 앞으로 평생 쓸데없는 일은 안하려고 고집하겠지요..
저도 같은 생각했어요. 부모가 되려면 경제적인 여유뿐만아니라 마음의 여유도 갖춰야 하는 것 같아요.
제가 그렇네요. 쓸데없다고 소리 들을 것같은 행동은 무의식적으로 안 하게 돼요. 제대로 놀지도 못 ㅎㅐ봤네요ㅠㅠ
망설이지 않고 가족과의 행복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들
가족들과의 일화가 긍정적인 색으로 밝게 물들어있는 사람들
또 그런 캔버스를 아직까지도 잃어버리지 않고 잘 지켜온 사람들
참 눈부시게 부러운 사람들.
아 유시민 작가 기억이랑 저의 기억이 똑같습니다. 마흔 다섯되고 늦은 나이에 남매의 아빠가 됐는데 지금 9살 아들에게 늘 이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행복했던기억...산같았던 아버지가 이제 작아지셨네요...
알쓸신잡 다시했으면 좋겠다 ㅠㅠ 진짜 내용이 너무 좋네
알쓸범잡도 잘 하고 있지만 알쓸신잡은 정말 너무 좋았죠 ㅎㅎㅎ 언젠가 다시 돌아와주길 ㅎㅎㄹ
영상과 댓글 속 행복한 이야기들을 보며 따뜻한 눈물을 흘리다가 예전 기억을 떠올려봤다. 아무리 쥐어짜내도 행복한 기억이 안나서 엉엉 울었다. 알코올중독자 아빠 때문에 안좋은 기억들이 더 많다. 그래서 한참을 울다가, 갑자기 스쳐지나가듯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정전 났을 때 거실 바닥에 후레쉬를 키고 앉아 도란도란 구운계란을 까먹던 날, 주말마다 엄마가 밥솥으로 만들어주던 핫케잌 냄새와 다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리던 순간 등등.. 아빠의 병이 심해지기 전에는 문득문득 행복했던 추억들도 있었다. 안좋은 기억에 가려졌을 뿐이었다. 행복한 기억이 떠오르니 또 슬퍼졌다. 분명 우리 가족도 소소하게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갈수록 우리 가족들을 힘들게해서 결국 버려진 아빠.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대학 졸업을 하고.. 사는동안 우리 가족을 힘들게 한 아빠를 원망하며 살았는데, 성인이 되고 수많은 감정들을 겪어보니 과묵했던 아빠의 속마음이 궁금해진다. 아빠는 어쩌다가 그지경까지 갔을까. 아빠도 우리가 모르는 내면속의 파도가 있었을 까? 아빠만의 힘듦이 있긴 있었겠지. 너무 나약했던 탓에 술에 의지했고,알코올 중독에 지배되어 결국엔 삶이 망가졌지만 모르겠다. 몰라몰라. 뭐가 어찌됐던간에 아빠 한명 때문에 엄마,나,동생 세사람이 고통받으며 살았던것은 사실이니 동정할 필요도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다. 그냥...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하... 새벽인데 펑펑 울어서 눈이 띵띵 부었다....다시 세수해야겠다. 아무튼..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으니 힘들었던 어린시절의 나와 내면속 나를 토닥토닥 보살펴주며 현재를 살아가야지. 나는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아빠처럼 회피하거나 중독에 빠지지 않을것이다. 책읽고 명상하고 절제하고 끊임없이 배우며 모든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해나가는 성숙한 내가 되어야지. 새벽 감수성에 펑펑 울며 주저리주저리,,
가슴 아픕니다. 댓글들이 모두 자기들의 어렸을 때 행복했던 소소한 순간을 이야기할 때 이런 생각에 더 괴로워지는 게. 저도 님과 비슷한 시기를 겪고 드디어 그 아버지와 관계를 끊는 시점인데요, 아버지를 가족 중 가장 싫어하던 동생이 얼마전 아버지와 행복했던 순간과 이런 안 좋은 사건들이 혼재되어 있어 더 괴롭다고 하더라고요. 난 무조건 싫기만 했는데, 그 얘는 행복과 불행이 같이 생각난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고, 비참하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럴거에요.. 우리는 다른 삶을 살기로 해요..
감사합니다 저 또한 어릴적 기억이 좋지 못한데 그럼에도 할 수 있는한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고 노력하고있어요 같은 노력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보니 반갑네요
어느정도 크면 아무데서나 잠들면 부모가 힘들어서 깨워서 자러가라그러는데 좀 애매한 3학년 4학년쯤엔 부모가 가끔 안아서 방에 넣어줄때가 있지. 그때가 참 좋은데..특히 그나이때는 그렇게 누가 안아주는데 거의 마지막이니까 특히 아빠가 안아주면 참 포근하고 좋았던 기억이 있네. 애들이 크면서 그런순간들이 마지막이 되는거지..그 이후엔 그런스킨십 어려우니까..딸이나 아들이나 목욕시키는 것도 그렇고 밤에 데리고 자는 것 업어주는것 안아주는 것 그런거 다..학교도 다닐때가 딱 정해져 있는거고..사실 다 정해져 있는 시기가 있어서 계산해보면 내가 아이와 함께할수 있는것도 무한정은 아닌거지.. 최소 10년 공들여 기르면 아무문제없이 자랄듯..
난 어릴때 기억중 자잘한 슬픔이 많은데 ㅋㅋㅋㅋ
에잇 ..
어릴때 부모와의 유대가 그사람의 평생을 좌우한다해도 과언이 아닌듯해
나도 그래..
토닥토닥
나도요 억울했던 기억 ㅠ
안 그래도 댓글 보면서 좀 억울한...
저두요.. 어린시절 기억 떠올리니 슬픈 기억밖에 안나서 자꾸 눈물이 나네요
상처만 기억나네요ㅠㅠ
슬픈 듯;;
유시민 작가가 얘기하신건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나봐요..저도 정말 똑같은 기억이 있어요..ㅎㅎ 분명히 깼어요 ㅎ 완전공감 ㅎㅎ
저의 지금도 생각나는 제일 행복하다고 느꼈던 순간중 하나는
해가 넘어가며 노을이 지는 저녁 어머니는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시고
아버지는 거실에서 tv를 보시며 친누나는 침대에 누워 깔깔웃으며 핸드폰을 보고있고
저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무 특별할 일없이 평범한 그런 하루의 순간에서
안정감에서 오는 행복이라고 할까요. 이런 행복하고 평화로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라고 느꼈던게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이 납니다.
나의 어릴때 가장 행복했던 기억 중 하나는
아주 어릴적 성묘를 갔다 돌아오는 길에 너무 거센 폭우에 차를 잠시 멈추고 아빠 엄마가 같이 차에서 잠시 잠을 자던 순간
막내동생은 엄마품에 안겨 잠잘때,
아빠 엄마 막내동생이 잠에 깨지 않게 조용히
둘째와 같이 뒷좌석 뒤의 공간에 있던 성묘음식 꺼내서 먹으면서 동생과 숨죽여 키득대던 순간이
제일 행복했었음
그날에 대한 기억은 진짜 선명함.
거센 비가 차지붕을 때리면서 나던 소리.
습하지만 선선했던 공기.
잠시 쉬는 차 옆으로 빠르게 지나가던 차들이 폭우를 가르던 소리.
성묘음식의 맛.
보자기를 풀어 음식을 꺼내먹던 동생의 표정.
Jeong gak lol 예뻐요 너무 예쁜 기억❤️
글을 읽으니 그때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거 같아요.
저절로 흐믓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
너무 소중한 기억이네요^^
젊은 아버지가 계셔서 폭풍우에도 든든했겠어요
말씀만 들어도 행복함이 느껴집니다
유시민쌤 에피소드는 봐도 봐도 볼때마다 눈물이 나네요
다들부모님의 품에 안겨있을 때나 등에 업혔을 때 그 포근함에 빠져 내려서 걷기 싫어져 자는 척을 한번 쯤은 해봤던 기억이 있나봐요
나도 떠올리게 되네요^^ 국민학교 3학년때 저녁 먹고 엄마 아빠랑 뚝방으로 산책갔었어요. 계단에 앉아 엄마랑 아빠랑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시고 나는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소리내어 구구단을 외우던 기억이 있어요. 아빠는 5학년때 돌아가셨지만 그 저녁 어스름에 평화롭고 아늑했던 기억이 있어 오늘을 살아가는것 같아요~
2:10 사랑받는다는 기억이 많을수록 이 세상을 더욱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또 베풀 수 있습니다.
자잘한 행복의 기억이 많은 사람일수록 어른이 되어서도 작은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말씀에 공감이 됩니다.
아이들에게 작은 행복들을 많이 선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IMF때 엄마 무릎에 누워 엄마랑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엄마한테 계속 엄마 쉬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엄마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엄마도 그러고 싶다
라고 말한 그 기억
60이 가까운 온갖 풍파를 다 겪은 작가도 그 어릴적 어버이 손길을 또렷이 기억한다. 연로하여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할머니에게 딸이 자식이나 손주 누구 보고싶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보고싶다고하여 망연자실했다던 일화가 떠오른다.
행복할 때 오히려 슬프더라. 이 행복한 순간은 찰나에 스쳐지나가니까... 영원하지 못하는 순간들이라.
와 건축교수님 멋지다ㄷㄷ
다 애기들같애..다 늙어가지구...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ㅋㅋㅋㅋㅋㅋㅋ
@@최준혁-y9z ㅄ
@@winchesterdeen7390 진지충 고쟈쑤ㅖ끼
@@최준혁-y9z 븅신이세요?
유시민작가님의 소중한 기억.. 표정에서 편안함이 느껴지니... 더 이상 정치인 유시민으로서의 저의 작은 바람은 미련이 없네요~
저도 유시민을 사랑하기에 정치 안하셨음 좋겠어요
아주 춥고 어두운 밤이었는데, 아버지가 과자세트를 주시며 선물이라고 했어요.
제가 워낙 작은 시골 마을에 살고 있어서 과자 선물세트를 처음 봤는데 열어보니 과자랑 껌이랑 잔뜩 있었죠.
밤새도록 식구들 잠깨지 않게 조심조심 하나 하나 뜯어서 먹었는데 그날 과자 뜯었던 소리, 눈 내리던 거, 코시린 기억, 바람소리 다 기억납니다.
'아무도 깨지 않게 이 과자들 다 맛봐야지'
욕조에 둘이 들어가도 될정도로 어렸을때 동생이랑 같이 욕조에서 목욕하면서 장난치던 기억 / 친구랑 저녁 노을이 질때까지 놀다가 집에 들어가던 기억/ 주말마다 약수터에 아빠와 물뜨러 갔던 기억/ 수술할때 마취직전 엄마가 두손으로 꼭 잡고 이름불러주며 괜찮다고 말해주던 기억 / 놀이공원에서 밤늦게까지 퍼레이드 보면 신나게 놀았던 기억 등등 나를 행복하게 하는 순간들
저도 유시민님과 같은 기억이 있어요.
공감백배임다~^^
자잘한 좋은 기억들이 많을수록 어른이 되었을 때 행복한 사람이 된다...동의합니다.
오늘의 사소한 행복감으로 노년에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오늘도 좋은 기억 많이 남기렵니다.
고마워요 알쓰신잡
행복한 마음가득안고갑니다
유시민작가님 유희열씨
오래오래 해주세요
아주 어려서 더운 여름날 엄마가 썰어준 수박을 먹고 거실에 누워 창밖을 보니 옆집 할머니네 나뭇잎들 사이로 빛이 쏟아지던 것을 구경하던 그때 그 광경을 지금도 잊지 못 함.
이 영상 보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떠오른 건데 초등학교 때 외할머니가 가끔 데리러 와주셨는데 운동장에 있는 저를 보시고 으스러지게 끌어안아 주시면서 금쪽같은 내새끼~ 해주던 게 그 당시 품에 안겨있으면서도 너무 좋았어요 금쪽같다고 해주는 말과 하굣길에 어수선한 분위기랑. 그때 할머니가 해를 등지고 걸어오셨는데 되게 환한 옷을 입고 있어서 딱 햇살이 나를 품어준 것 같은 기억이네요 되게 오랜만에 이런 기억을 떠오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영상은 보태지않고 백번이상 본것같습니다 다섯분사연에 모두공감이되고 볼때마다 행복의눈물이나요 아무것도 아닌일에 칭찬받았던것, 또부모님의 얼굴이 기억나진않지만 애기때의 촉감, 형제들사이에서 나도 챙김을 받는것같은 행복감, 첫째형제가 학교갈때 엄마와의마중 ,어린시절 차를타고 가족여행가던 그추억 다섯분 모든추억이 전 다있네요ㅎㅎ이런게 돈주고 살수없는 행복한 추억인것같군요ㅎ 특히 형제많은 집엔 형제들 아무도 모르게 나만 시장에 데려가서 꽈배기랑 칼국수 도 사주시고 가끔 비밀로 같이 다녔던 부모님과의 추억이 떠오를때면 가슴벅차게 사랑받았단 느낌이들어 그립습니다
아마도 모든 자식들에게 그리하셨겠지요 각자 비밀로했던 부모님과의 추억이 있겠지요
부모에 대한 상처때문에 미래에 자녀는 낳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이런 걸 들으면 나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라는 생각도...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면서도..
유희열님은 형이 아버지 역할을 대신 하셨다구 그래요. 더 뭉클하셨을 거에요, 유시민님 이야기.
초등학교때 부모님이 이혼해서 아빠없이 자라서 아빠가 안아 줬다는 말에 울컥하신것 같아요.ㅠㅠ
유희열씨 삽화집에 보면 가정법원에서 엄마랑 살랴 아빠랑 살래 물어봣을때 나는 형이랑 살거에요 라고 말햇을정도니까 ㅠㅠ..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눈물이 나는 것 같네요...
희열형 아버지 추억이 부족해서 더 감정이복 받치는것 같아보여요 미우새 본기억이나네요
어릴때 부모사랑이란걸 못받고 자란 나로서는 한번이라도 어릴적으로 돌아가 유시민작가님이 말씀하신걸 느껴보고싶다
있었을겁니다.
본인이 기억이란 걸 하기 전 까지
어느 더웠던 여름밤, 엄마랑 아빠랑 멍멍이랑 함께 돗자리랑 베개 들고 옥상 올라가 하루내 열기로 뜨거워진 옥상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등을 대고 누워서 여름 밤하늘을 쳐다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이 떠올라요...생각해보면...그때 참 가난하고 남루하게 살던 때인데 집에 에어컨도 없던 시절 그 여름밤에 우리는 까만 밤을 바라보며 막연히 낙관했던 것 같아요...등은 따뜻한데 바람은 시원하던 그 이질적인 감각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때 함께 했던 아빠도 멍멍이도 이젠 곁에 없고, 더 이상 옥상은 가 볼수도 없는 고층 아파트의 불빛들 속의 하나가 되어버린 요즘...이따금 그 여름밤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네요...
저희도 그런 추억 있네요
졸라 아름다워ㅜ
짱.. 그림 그리는 듯 멋져요..
와 진짜 ㅠㅠ 눈물날라그러네.
나 저거 본방으로 봤는데, 나도 눈물 핑.
내게는 왜 저런 행복하고 너무 좋았다, 라고 생각되는 기억이 없을까?
토닥...토닥ㄱ
토닥토닥💐
누군가 기억속에 그런 기억 하나를 품고 있어요. 기억을 깨울 계기가 없어서 그런거에요. 그 때의 냄새, 빛, 풍경 등이 살다보면 문득 떠오를 때가 있어요. 저도 30대 후반에야 그런 순간을 떠올렸어요. 님도 하나쯤은 가지고 계실거에요.
"내가 행복한 사람이구나...하는거지.."
개인적으로 알쓸신잡 영상중에 최고...
7살 즈음으로 기억하는데 크리스마스날 새벽 부모님이 내가 그토록 원하던 선물을 내 침대맡에다 두면서 두분이서 동시에 자고있는 날 꼬옥 안아주셨어. 아주 어렸고 잠결이었지만 그때 그 순간 그 감정을 아직도 잊지 못하겠다.
이건 정말 눈물이 난다 ㅠㅠ
더운 여름, 엄마가 설탕 뿌려서 내어주던 토마토
우뭇가사리를 한껏 넣은 콩국
걸쭉하게 타서 꿀꺽꿀꺽 들이키던 미숫가루
비오던 날 엄마가 구워주던 홍합 넣은 김치전
아파트 단지 어딘가에서 목 놓아 외치던 찹쌀떡 장수의 찹쌀떠어억 소리
아빠와 거실에 이부자리 깔고 보던 드라마 허준
허준 ㅋㅋㅋㅋㅋㅋㅋ
부모님과 놀이공원 놀러갈 때, 양쪽에서 나를 한 손씩 잡으시고 번쩍 들던 순간이 생각나네요.
이거봐서 넘 다행이고 좋다.내일 울애들한테 작은 좋은기억하나 남겨줄 작정이다
오늘도 해주셔요~
모른척.. 아무도괜찮냐고 묻지 않아서 참 좋아요..
행복이라는게 큰게 아니라는걸 알 수 있겠다. 함께 웃고 먹고 떠들 수 있는 시간과 여유. 이런 일상 자체가 행복이란걸 알아차리지 못함이 아쉬운거지.
나도 분명 저런 자잘한 기억들이 있을텐데 유독 가족과 관련된 기억은 잘 없고 나 혼자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들만 많아서 잠깐 슬펐다 그래도 아직 난 어리고 저 분들처럼 나이가 더 들면 지금은 기억나지 않거나 행복한 추억이라고 여기지 않던 것들이 또 새롭게 다가와 주겠지...
와 놀러간 장면? 뭐가 있을까? 생각 하다가 유시민님이 말씀하시니까 갑자기 그게 생각나고 느껴지고 눈물나고 너무 좋네요
어린시절 부모님과의 기억과 유대감.. 미치도록 부럽다.. 나도 겪어보고싶어요 엄마아빠
유시민님 추억은 나도 공감임... 아련하다..
매일 야근하고 피곤하
신데 학교 숙제 도와주신다고 엄청 늦은 밤까지 가족신문만들고 여러 숙제 같이 해주시고.... 그 피곤하지만 옷도 갈아입지 않고 끝까지 곁에서 있어주시던게 기억난다. 그 뒤로 상을 조금씩 타면서 할 수 있는 대회는 다 나가 휩쓸고, 내 스스로가 느끼는 승부욕과 무거운 엉덩이가 남았다
저런 대화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참 부럽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라도 전화만 하면 만나서 아무데서나 수다 떨 수 있었던 친구들이 이제는 각자의 가정이 생겨서 누군가의 경조사가 아니면 만나기 힘들어진 나이가 된 지금.
저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저 연세에 사소하지만 사랑받았던걸 얘기하면서 웃는걸 보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
2:36 아... 유희열 눈에 눈물 차오르는거 보니 나도 눈물나네... ㅠㅠㅠ
놀이터에서 손에 흙 잔뜩묻히며 놀다가
해질녘쯤 집에 들어오면 엄마가 화장실에 쭈그려앉아서 손빨래를 하고 계셨는데,
그때 그 순간의 향기가 행복을 가져다준것 같다. 세제냄새 , 건너오는 찬바람냄새, 아직 내 몸에 베어있는 팍팍한 모래냄새
오와 이거 되게 슬프다..
아.공감백배.어릴때 아직잠은안들었지만 엄마가 이불땡겨 잘덮어주는 그순간이좋아서 일부러 이불걷어차고 자는척했던기억이..진짜 너무오래전기억이 되었네요
황교익쌤은 엄마품이라면 2살전일텐데 그게 기억나시네요. 유년시절 추억은 넘 곱고 아름다워요. 슬프기도 하고
제일 행복한 기억은
한겨울 언 강에서 아빠가 만들어주신 썰매 타고 아빠,언니,오빠랑 논 기억
그 해가 아빠와 마지막이 되어서인지 더 가슴에 남고 애틋하지만 아빠와 함께 했다는 행복한 기억
저는 생각 나는 단편적인 장면이 꽤 있는데 지금 생각나는 거는 휴일 정오에 집에 아무도 없을 때 바닥에 깐 러그 무늬 위로 건넛 건물이 뾰족한 그림자를 만들어서 그게 해 움직이는 거 따라서 미묘하게 조금씩 움직이는게 신기해서 한시간동안 봤던 기억이 나네여 재밌었는데
어렸을때는 네가족이 한방에서 잠을 잤는데 악몽을 꾸고 예기치 못한 새벽에 잠이 깨면 그 순간 집의 풍경들이 너무나 무서워서 이불밖으로 손도 내밀지 못하고 식은땀만 흘리다가 아주 작게 용기 내어 아빠를 부르면 그 작은 소리에도 잠결에 반응 해주셨던 아빠의 목소리와 다독임으로 다시 잠들고는 했던 날들을 오랜만에 떠올려 봅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아빠는 그때 살짝 무서웠다고..ㅋㅋㅋㅋㅋ 새벽에 갑자기 아빠.. 아빠.. 하는 소리가 들려와서ㅋㅋㅋㅋㅋ
ㅋㅋ 그 작은 행동이 어린 아이에겐 눈물나게 크고 안심되는 순간이 되죠. 저는 어렸을때 자면서 코피가 많이 났었는데 하루는 베개가 다 젖을 정도로 멈추지가 않아서 너무 무서웠던 기억이 나요. 자고 있는 아빠한테 작게 아빠 나 코피가 안멈춰.. 라고 했는데 평소엔 잘 일어나지도 않던 분이 벌떡 일어나서 멈출때까지 안아줬던 기억이 나요. 원랜 안 울었는데 아빠가 안아주니 눈물 나더라구요.
@@narimi_im 빵터짐 ㅋㅋㅋ
@@narimi_im 진짜예여.
저두 딸이 새벽에 엄마,엄마 이럼 진짜
깜짝놀라요.
또 여자라 머리도 길어서 ㅠㅠ
목소리톤은 왜또그리 무서운영화톤인지ㅠㅠ
그래두 덤덤한척
왜 ? 이럼요.
속으론 무섭지만요ㅡ ㅡ
내가 가장 행복했을때는 중3때 원하던 학교에 합격하고 입학식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놀았던 그순간이 너무 행복했음. 예체능이라서 공부를 조금 쉬엄쉬엄하기도 했고 원하는 공부를 하는기대감도 컸고.. 그때쯤에 언니랑 새벽에 몰래 편의점가서 야식도 사먹고 집근처 작은 놀이터에 있는 작은 농구골대에 과자봉지 던지고 놀다가 걸려서 낑낑대며 다시 빼는 순간이 또 웃겨서 웃고 그냥 그렇게 걱정없이 놀던때가 참 좋았던것같은데
저는 어렸을때 자고 일어났는데,손톱 발톱이 깨끗하게 정리되어있어서 놀라고 신기해서 엄마에게 말했더니.그 지난밤에 엄마가 깎아놓으셨단 이야길 듣는데, 지난밤을 상상하며 사랑받는기분에 행복해했던기억이 나요
사건들이 있었지만 이 맴들이 있던때가 가장 다시보고 싶은 순간임 ㅠㅠ
유희열님의 가정사를 알고 나니 저 눈물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거 같습니다.
저도 중1무렵부터 아버지와 떨어져 산 이후 이상하게 유독 아버지 얘기에는 감정이 북받치더라구요. 다른 거에는 이상하게 운 적도 별로 없는 데 말이죠.
솔직히 여러 일들이 많았어서 이젠 크게 보고싶다는 생각은 안 드는 아버지지만
이렇게 27이나 먹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길에 대해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우리 아버지는 나에게 어떤 조언을 해줬을까가 요즘따라 참 궁금합니다.
난 제일 행복했던 순간이 하루종일 엄마랑 같이 마트하고 문화센터나 도서관 다니다가 해질녘 집에 돌아오던 순간이었음
그당시 내가 책이랑 이야기 만들어 내는거에 빠저있었는데 엄마랑 항상 릴레이로 작문하기 했음
그리고 그 아이의 꿈은 현재 작가임
지금도 나만의 글을 써가고 있고
또하나는 할머니네 갔다오면 항상 한밤중이었는데 아빠가 딸 깼어? 하고 물어보는데 한반 부르다 한번 픽 웃으시고 날 안아서 집에 들어가곤 조심히 침대에 놔주셨음 아직도 그 이불냄새랑 척감은 못잊음
이젠 내가 아빠를 안아주고 싶음
6-7살때쯤? 저녁늦게 을 다같이 봤는데 그때 난 너무 무서워서
어린 동생을 안고 누워있는 엄마등 뒤에 바짝 붙어서 실눈 뜨고 tv를 훔쳐보노라면 엄마에게서 향긋한 냄새가 났던게 생각나요
8살 오빠는 씩씩한척 혼자 당당히 앉아 tv보는게 좀 부러웠었죠
정말... 부모의 존재는 아이에게는 너무 소중한거네요.
난 정말 나쁜 부모는 아닌가하고 반성하게되네요.
이걸 보니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때 갑자기 비오는날 하굣길에 엄마가 처음 기다리고 있었던 날이 젤 행복했었다. 그때 같이 분식집 갔던 그 기분 까지 생생하다
유희열 감수성 풍부한 사람...ㅠㅠㅠ
나도 눈물이 나네...아무 기억이 안나네...엄마 아버지 마음 아프게 한것만 생각나네. 슬프다
이분들의 소중한 사랑의 큰 기억들이 지금의 이들을 만들었구나..
아이들 머리한번더 쓰담고..
사랑한다는 말도 해야지..
참... 보는것만도 아까우신 분들이에요..
어머니가 장사를 오래 하셨는데 밤늦게 오셔서 씻겨주신다고 깨워서 같이 목욕했던기 생각나네요 어렸던 나에게 하루 힘들었던 얘기를 하시면서 저를 너무 사랑했던게 느껴졌어요ㅜㅜ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네요 너무 찌들고 지쳐서 감정을 못느낄수도 있지만
난 저런 평범함이 너무나 가지고 싶었는데....가지지 못했네.... 저 평범함 내 자식들에게는 줘야지 .....
엄마의 첫 번째 기일을 지내며 자기가 가장 어렸을 때로 생각이 드는 엄마하고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네 살이나 다섯 살 때 쯤이던가.
엄마 손 잡고 논두렁길을 걸어 외갓집 가던 길. 꽤나 쌀랑한 바람결에 엄마의 팥색 두루마기 옷고름이 내 얼굴을 살짝살짝 때리던 기억이 아스라하다고 했다. 언니들이 음력 시월 외할머니 제사에 갔던가 보다고 하였다.
엄마 이야기하면서 쪼금 눈물 바람도 하고 맛난 것도 먹고...
- 지금 우리 손주 보다도 더 어렸을 때의 기억이네요. -
님은 꼭 글을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moonbikerabbit 특급 칭찬 감사합니다!
행복할 때 눈물이 난다는 말이 와 닿네요!
어렷을 적 자고 있는 아빠 배 위에
귀를 대고 살포시 누워있었던 순간이 참 행복했습니다.
아빠의 코골이, 아빠의 배 속에서 나는 소리 그 소리를 들으면
저도 모르게 잠이 들곤 했었어요
참 달콤하고 행복했는데...
시민쌤 얘기 듣고 눈물고임... 아진짜...
어려서 일찍 부모님이 이혼해서 외할머니손에 키워진 저는 부모보다 외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네요.
명절때 온가족이 다모여서 할아버지들은 화투 치시고 삼촌들이랑 숙모들은 술한잔하시며 왁자지껄 시끄러운 시골집에 분위기. 저와 사촌동생들은 이방 저방 뛰어다니며 놀았던 기억. 명절이 끝나 사촌들이 집에 돌아가는게 안타까워 갖고놀던 장난감을 줬던 기억,,
난 어렸을 때 옆집 동생이 생일이었는데 돈 없어서 종이학 100마리 접어서 옆집 애한테 선물해줬는데 엄마가 칭찬해줬던 것밖에 안 떠오름. 그래서 그 이후로 정성을 쏟기 시작함.
나는 그거 기억난다. 어렸을때 외할머니랑 지냈는데 여름에 자기전에 풀먹인 빳빳한 이불을 푹 덮어주시던거 ㅎㅎ
어릴때 행복했던 기억이 성인이 되어 힘든 시기가 와도 그걸 견디게 만드는 무한한 에너지가 됩니다.
행복해지네요
어린시절.. 6-7살즈음에 부모님과 함께 친척집에 갔다가 늦은 저녁 차타고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밤은 늦었고 잠은 오고.. 그러다가 뒷자리에서 동생이랑 같이 새근새근 잠이 들기 일수였죠 ㅎㅎ 그러다가 집에 도착하면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잠이든 동생과 저를 안아주셔서 저희 방에 뉘어 주실때 그 포근함을 잊을수가 없네요 ㅎㅎ 유작가님 처럼 사실 아버지가 안아주실때.. 아니 어쩌면 집에 도착하기 직전에 잠깐 깨기도 했었는데 아버지가 제 방에 이불을 덮어줄때까지 안깬척 꼭 감고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ㅎㅎ 유희열님 처럼 저도 모르게 행복한 기억이 떠올라서 눈물이 나네요 ㅎㅎ
참 아름다운 얘기
참 따뜻한 이야기들
참 행복해 지는 이야기들 입니다.
저런 기억을 많이 만들어 줘야겠다
희열님이 울 줄 알았어 그래서 슬펐어요 혈님 제가 사랑하는거 알죠
왜 나는 유년시절 행복한 기억이 없을까...
2002년 월드컵 당시 갓 초등학교를 들어간 나이였어요. 월드컵의 열기가 대한민국을 달궜고 경상북도 어딘가에 있는 소도시의 시민들도 다들 미쳐있었죠ㅠㅠㅎ 뚝방에서 경기 중계를 해줘서 어린 동생들은 두고 저랑 부모님 이렇게 셋만 중계를 보러 갔었어요. 차에 이어붙인 십여개의 모니터로 축구경기를 보고 (물론 뭣모르는 나이라 그냥 보고만 왔지만요ㅎㅎ) 엄마아빠 사이에서 손잡고 돌아오다가 아빠가 목마 태워준 그 기억이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도 생생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