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 상륙작전 전날, 아이젠하워는 너무 초조했습니다. 실제로는 그조차도 작전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롬멜도 있고 막강한 독일 기갑부대도 있고... 점점 자신감이 떨어져갔던 아이젠하워는 미 101 공수사단을 방문하게 되고 한 병사때문에 완전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전체 영상은 아이젠하워 1부 (ruclips.net/video/_5p662pyK38/видео.html)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때 오히려 미군의 장군 아들이 참전해 기꺼이 전사했지만 당시 한국 고위층 아들이 참전해 전사했다는 뉴스는 들어본적 없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을까? 지금도 한국의 지도층들이나 그 이들들의 병역 이행 비율이 일반서민들의 비율보다 더 낮은 것은 왜 그럴까? 말로만 국민, 국민. 전쟁나면 먼저 해외도피 할 줄 누기 아는가!
사실이 그렇습니다. 미국이 괜히 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보통 우리는 미국이 자원이 넘사벽이라 최종 승리했다고 알고 있는데 물론 그것도 원인이었지만 승리의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미국과 영국은 가장 상층부의 리더십을 보면 탄복을 하게 됩니다. 독일처럼 자원이 부족했다고 해도 쉽게 패배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처칠과 루즈벨트의 리더십 (ruclips.net/video/j48aG0yXRq8/видео.html) 2차대전 참전국 중 가장 최강의 나라는 어디였을까?(ruclips.net/video/iIz4iGgvcmU/видео.html) 이 두 영상을 보신다면 연합국의 진짜 강력한 힘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젠하워의 회고록에도 디데이전날 만나본 101공수사단 병사들의 환대가 그의 일생에서 가장 기쁘고 고마운 일이었다고 적고 있다. 오성장군인 원수가 된날도 미대통령에 당선된 날도 이날만 못했다고 고백한 아이크. 인물은 인물이다.그가 적국의 수도 베를린을 포기하고 엘베강에서 진격을 멈추라 지시한것도 한명의 병사라도 더 살려서 고향으로 돌려보내길 원해서였다.
한국에서도 있었습니다. 6.25 때 맥아더가 당시 20 살인 어린병사를 보고 감동해서 무조건 지원병을 보내겠다고... "맥아더,병사! 다른 부대는 다 후퇴했는데, 자네는 언제까지 여기를 지키고 있을 건가?" "소년병,상관의 명령 없인 절대 후퇴하지 않는 게 군인입니다. 철수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죽어도 여기서 죽고, 살아도 여기서 살 겁니다." 이후 맥아더와 미군은 대규모로 참전했고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해 전세를 뒤집었죠.
아이젠하워 평전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을 확신할 수 없었던 아이젠하워. 독일의 방어태세, 그리고 롬멜. 아이젠하워는 근심이 깊어졌다. 이럴 때 그가 늘 하는 방법은 병사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는 내일 가장 먼저 적진으로 투입될 101 공수사단 장병들부터 만나기로 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 병사들 중 상당수가 살아남기 어렵다는 사실을... 그런데 오히려 아이젠하워를 만난 그 병사들은 용기백배했고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아이젠하워는 이 작전이 반드시 성공할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롬멜군의 장병들도 비슷한 말을 하였을 겁니다,롬멜에게...노르망디가 목표라는 것도 알았고(비화기 감청 및 암호해독),롬멜과 막강한 기갑부대가 있었으나 단하나, 문제는 히틀러총통은 어떤 장군에게도 전략적 융통성을 주지 않았고 D-day에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독일군이 승리하기에는 전쟁의 규모와 스피드가 너무 커지고 빨라진 탓도 있고/나폴레옹이 그랬듯이 그것이 히틀러총통과 독일군의 한계였습니다, 모든 전투에 이기고 최후의 결전에 패한다-손자병법에서 피하라고 하는 부분이였는데/좋은 컨텐츠 감사드리고 주말에도 건강하시길 ~♡
히틀러도 처음엔 그렇지 않았지만 점점 더 과대 망상환자가 되어 갔습니다. 그토록 대단했던 인물들을 밑에 두고도 자유 재량권, 임무형 지휘를 전혀 하지 못했으니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그에 반해 루즈벨트와 처칠의 리더십은 정말로 대조적이었습니다. (ruclips.net/video/j48aG0yXRq8/видео.html). 영상을 보시면 대체 어떤 점이 그렇게 달랐는지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연합군에게도 만슈타인과 같은 전략가인 앨런 브룩이 있었습니다. (ruclips.net/video/djezQlsMRIg/видео.html) 이 영상을 봐도 히틀러가 뭐가 문제였는지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앨런브룩은 "처칠은 까다로운 사람이기는 하나 그와 함께 일한 것은 내 인생 최고의 보물" 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어느 공수사단이 더 활약했는가는 확실히 알수 없습니다. 이날 연합군은 미군공수사단 82.101그리고 영국6 공수사단 총 3개 사단이 공중투하되었고 바람이 심하게 부는데다 사방으로 흩어져 모든 공수부대원들이 죄다 뒤섞여서 싸웠거든요. 대대나 연대가 서로 섞인 정도가 아니라 디데이 당일과 이후 1주일까지도 82공수사단병사가 101공수사단에 끼어서 함께 싸우고 반대로 101공수사단의 장교가 82공수사단 병사들을 지휘하는 등 엉망징창이었습니다.
바로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주인공 부대입니다. 울부짖는 독수리가 부대마크. D-day전날 연합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가 방문해서 힘을 얻었던 부대도 바로 이 부대였습니다. 사실 아이젠하워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실패할지 몰라 스트레스가 만땅이었습니다. 그런데 101공수부대의 병사들이 이렇게 외치는 것을 듣고 오히려 힘을 얻게 됩니다. 기다려라! 히틀러! 우리가 널 잡으러 간다!
채널에서 이미 아이젠하워에 대해 다룬 적이 있었는데요. 아이젠하워도 알려지지 않았던 멋진 면이 상당히 많습니다. 1942년에 육군 소장. 그리고 고작 마셜 참모총장의 부관으로 있다가 2년후에 육군 대장으로 진급합니다. 그리고 무려 연합군 총사령관 임명. 이보다 대단할 수 있을까요? 아이젠하워 1부 (ruclips.net/video/_5p662pyK38/видео.html) 추천합니다.
6.25 때 지도층이 도망 갈 생각만 했다던지, 장군들 중에 참전한 자식이 있냐? 라는 분들이 많은데... 1. 당시 대통은 자식이 없으니... 2. 당시 한국군 장성들 나이가 30대 초중반이라, 자식들 나이가 15~16세가 될까말까니, 참전할 수 있기 어렵죠. 3. 고위층이 도망갈 생각만 한다고 했는데, 당시 고위층이면 대부분 "독립 운동 출신자"라고 봐야 되는데 대략 난감합니다. ㅠㅠ
가장 위험한 곳에 가장 먼저 투입되는 것이 지금도 공수부대입니다. 저 당시 아이젠하워의 방문 목적은 자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수백만명이 동원되는 인류역사 최대의 작전을 앞두고 본인도 승리를 자신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병사들이 너무나 자신감이 넘치는 것을 보고 아이젠하워도 승리를 자신하며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ruclips.net/video/_5p662pyK38/видео.html 아이젠하워 1부를 꼭 보시길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미군이 상륙했던 오마하 해변에서 셔먼 dd 전차들이 대다수 폭풍우로 좌초당하거나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화에서 많이 묘사되었듯이 미군은 그냥 알보병으로 돌격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것돠 관련된 컨텐츠가 연합군 상륙을 막아라! 기갑부대 배치 논쟁 (ruclips.net/video/OQaoX_oa0p0/видео.html) 이라는 컨텐츠입니다.
말씀하신 것에 대해 동의합니다. 그는 만슈타인이나 구데리안, 롬멜, 패튼과 같은 명장은 아닙니다. 다분히 정치적인 인물입니다. 제 컨텐츠 중에 아이젠하워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이젠하워 1부 (ruclips.net/video/_5p662pyK38/видео.html) 1942년까지만 해도 마셜 참모총장의 부관에 불과했던 사람이 2년 사이에 포스타, 연합군 총사령관에 앉혀진 것입니다. 이것은 루즈벨트가 한 거였습니다. 이유는 영국과 미국의 기라성 같은 장군들을 하나로 아우르기 위한 정치력이 높은 사람을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히틀러는 벙커에서 탕 했죠!. 이 당시 즉 노르망디 상륙작전 전날, 우리가 예상하기엔 당연히 연합군이 압도적으로 승리할 거라고 예상하지만 실제로는 연합군 병사들 특히 아이젠하워조차 승리를 100% 장담할 순 없었습니다. 때문에 아이젠하워는 승리했을 경우 연설문과 패배했을 경우 연설문을 따로 따로 작성했다고 합니다.
아이젠하워 연합군 총사령관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실패했을 경우의 사과 연설문과 성공했을 경우의 연설문을 따로 만들어놨습니다. 그만큼 100%의 승리의 확신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의 마음을 달랠 겸 병사들을 방문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쇼츠 영상은 그떄의 이야깁니다. 완편영상은 아이젠하워 1부에 나오게 됩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전날, 아이젠하워는 너무 초조했습니다. 실제로는 그조차도 작전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롬멜도 있고 막강한 독일 기갑부대도 있고...
점점 자신감이 떨어져갔던 아이젠하워는 미 101 공수사단을 방문하게 되고 한 병사때문에 완전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전체 영상은 아이젠하워 1부 (ruclips.net/video/_5p662pyK38/видео.html)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때 오히려 미군의 장군 아들이 참전해 기꺼이 전사했지만 당시 한국 고위층 아들이 참전해 전사했다는 뉴스는 들어본적 없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을까? 지금도 한국의 지도층들이나 그 이들들의 병역 이행 비율이 일반서민들의 비율보다 더 낮은 것은 왜 그럴까? 말로만 국민, 국민. 전쟁나면 먼저 해외도피 할 줄 누기 아는가!
사실이 그렇습니다.
미국이 괜히 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보통 우리는 미국이 자원이 넘사벽이라 최종 승리했다고 알고 있는데 물론 그것도 원인이었지만 승리의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미국과 영국은 가장 상층부의 리더십을 보면 탄복을 하게 됩니다. 독일처럼 자원이 부족했다고 해도 쉽게 패배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처칠과 루즈벨트의 리더십 (ruclips.net/video/j48aG0yXRq8/видео.html) 2차대전 참전국 중 가장 최강의 나라는 어디였을까?(ruclips.net/video/iIz4iGgvcmU/видео.html)
이 두 영상을 보신다면 연합국의 진짜 강력한 힘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대통령은 군미필자입니다.
@@박영길-r9x 군필이었던 전임: 적으로부터 삶은 소대가리라는 욕 들어먹음
벤플리트 아들 전사
리지웨이 아들 중대장
@@캣타워카펜터스김승우 맞습니다. 미국도 영국도 심지어 독일도 2차세계대전 당시에 육군 원수의 아들까지 전사한 경우가 많더군요, 독일 육군 원수 만슈타인의 아들도 전사했죠,
하지만 한국은 전쟁이 나면 가장 힘없는 위치의 사람부터 전사할 것 같습니다.
아이젠하워의 회고록에도 디데이전날 만나본 101공수사단 병사들의 환대가 그의 일생에서 가장 기쁘고 고마운 일이었다고 적고 있다. 오성장군인 원수가 된날도 미대통령에 당선된 날도 이날만 못했다고 고백한 아이크. 인물은 인물이다.그가 적국의 수도 베를린을 포기하고 엘베강에서 진격을 멈추라 지시한것도 한명의 병사라도 더 살려서 고향으로 돌려보내길 원해서였다.
영웅들에게 경의를표합니다
아이젠하워는 저 101 공수사단 병사들 중 대부분이 살아남기 어려울 거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그들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영웅이라고 부를 수 있는것 같아요..
미군은 병사가 장군을 격려합니다. "걱정말게 아이크. 불안해해야 할 것들은 우리가 아니라 독일놈들이야."
딱 맞는.말씀이네요.
한국에서도 있었습니다. 6.25 때 맥아더가 당시
20 살인 어린병사를 보고 감동해서 무조건 지원병을 보내겠다고...
"맥아더,병사! 다른 부대는 다 후퇴했는데, 자네는 언제까지 여기를 지키고 있을 건가?" "소년병,상관의 명령 없인 절대 후퇴하지 않는 게 군인입니다. 철수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죽어도 여기서 죽고, 살아도 여기서 살 겁니다." 이후 맥아더와 미군은 대규모로 참전했고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해 전세를
뒤집었죠.
네. 맞습니다.
맥아더가 한국이란 나라를 반드시 지켜줘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것도 이름없는 한 병사의 싸우겠다는 용기와 결기 때문이었죠.
6.25참전용사 故신동수님 입니다
한국전쟁에 아이젠하워 아들도 참전했었죠..적어도 군인의 명예에 관해선 한 수 배워야 할 분들입니다...
미국의 군인들은 참 멋있어 마음가짐이 후륭하다
그렇지 제대로 됀 장군님이라면 마음이 절대 편할일이 없지 병사들이 싸우러 가는데 있어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우리가 생각하기엔 압도적 전력으로 쉽게 성공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아이젠하워는 실패할 경우의 사과 연설문과 성공할 경우의 축하 연설문 2개를 따로 작성해놨다고 합니다.
그럴 정도로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아 그렇군요..우리가 역사는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우리나라 역사든 다른 나라 역사든.. 그나저나 전 우리가 고구려때 처럼 부강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원 입니다
마지막 아이크 표정에서 처연함이 느껴진다 저들중 반이상은 다시 못볼걸 아는거지
제대로 보셨네요. 말씀하신 그 부분도 있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장담할 수 없었던 것도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아이젠하워는 작전이 성공했을 때 연설문과 실패했을 때의 사과 연설문 2종을 작성해 놨었다고 합니다.
그랬기 때문에 아이크는 평생 이때의 일을 잊지 않았고 그날의 젊은 병사들에게 깊은 감명과 감동을 받았다고 술회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에서 가장 고맙고 기쁜일이었다고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고 회고했죠.
다른 일화가 있던데요... 아아젠하워가 그 병사들을 만났을때, 차마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실제 디데이때 살아 남을 병사가 별로 없을 것 다 아니까 차마 그 병사들 얼굴을 볼 면목이 없다고 했네요..
아이젠하워 평전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을 확신할 수 없었던 아이젠하워. 독일의 방어태세, 그리고 롬멜.
아이젠하워는 근심이 깊어졌다. 이럴 때 그가 늘 하는 방법은 병사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는 내일 가장 먼저 적진으로 투입될 101 공수사단 장병들부터 만나기로 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 병사들 중 상당수가 살아남기 어렵다는 사실을... 그런데 오히려 아이젠하워를 만난 그 병사들은 용기백배했고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아이젠하워는 이 작전이 반드시 성공할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저기에 많은사람들이 있었겠지만 밴드오브브라더스 나온 딕윈터스소령님 부대원들 있었겠죠? 참...시간은 빠르군요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일 새벽에 가장 먼저 강하할 101 공수사단 병력들이었으니 그럴 가능성도 있었겠죠.
밴드 오브 브라더스 2편에 나오죠. 강하하는 장면.
롬멜군의 장병들도 비슷한 말을 하였을 겁니다,롬멜에게...노르망디가 목표라는 것도 알았고(비화기 감청 및 암호해독),롬멜과 막강한 기갑부대가 있었으나 단하나, 문제는 히틀러총통은 어떤 장군에게도 전략적 융통성을 주지 않았고 D-day에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독일군이 승리하기에는 전쟁의 규모와 스피드가 너무 커지고 빨라진 탓도 있고/나폴레옹이 그랬듯이 그것이 히틀러총통과 독일군의 한계였습니다, 모든 전투에 이기고 최후의 결전에 패한다-손자병법에서 피하라고 하는 부분이였는데/좋은 컨텐츠 감사드리고 주말에도 건강하시길 ~♡
히틀러도 처음엔 그렇지 않았지만 점점 더 과대 망상환자가 되어 갔습니다.
그토록 대단했던 인물들을 밑에 두고도 자유 재량권, 임무형 지휘를 전혀 하지 못했으니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그에 반해 루즈벨트와 처칠의 리더십은 정말로 대조적이었습니다. (ruclips.net/video/j48aG0yXRq8/видео.html).
영상을 보시면 대체 어떤 점이 그렇게 달랐는지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연합군에게도 만슈타인과 같은 전략가인 앨런 브룩이 있었습니다. (ruclips.net/video/djezQlsMRIg/видео.html)
이 영상을 봐도 히틀러가 뭐가 문제였는지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앨런브룩은 "처칠은 까다로운 사람이기는 하나 그와 함께 일한 것은 내 인생 최고의 보물" 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이런게 진정한 군인정신 이다
상관에 대한 믿음이며
그것은 국가에 대한 충성이고
이것은 곧 희생이된다.
그건 대의가 확고, 명확, 투명하게 서 있을때고.
안그럼 상관은 가장 큰 적이며
그것은 국가에 대한 불신이고
이것은 곧 개죽음이 되겠지?
틀딱새끼 ㅉㅉ 간부는 주적이지
군인은 전장터에 있어야 듬직하다 위장하고 군장꾸리고~~
디데이때 82공수 보다 101공수가 활약많이했나요?
밴드 오브 브라더스 보신적 있으시죠?
윈터스 대위가 주인공이었던 그 시리즈 드라마 말입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그 부대가 101 공수사단입니다.
이 영상을 가만히 보면 팔뚝에 울부짖는 독수리 마크가 보일 겁니다.
그것이 101 공수마크입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D-day 첫날에 101 공수사단인 주인공 부대가 새벽에 뛰어내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쇼츠 컨텐츠에 나온 장면은 실제로 디데이 전날에 찍힌 화면입니다.
어느 공수사단이 더 활약했는가는 확실히 알수 없습니다. 이날 연합군은 미군공수사단 82.101그리고 영국6 공수사단 총 3개 사단이 공중투하되었고 바람이 심하게 부는데다 사방으로 흩어져 모든 공수부대원들이 죄다 뒤섞여서 싸웠거든요. 대대나 연대가 서로 섞인 정도가 아니라 디데이 당일과 이후 1주일까지도 82공수사단병사가 101공수사단에 끼어서 함께 싸우고 반대로 101공수사단의 장교가 82공수사단 병사들을 지휘하는 등 엉망징창이었습니다.
@@이정환-x7p 말씀하신대로 오히려 그렇게 된 것이 독일군에게 더 혼란을 조성했다고 합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독일군지휘부 입장에서 사방에서 보고가 들어오기는 하는데 도무지 일관성이 없다보니 헷갈리는게 당연했지요.
군필자로 국회의원, 대선 출마기준을 만듭시다. 남성, 여성이라도 예외없이 적용해야합니다.
연합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의 리더십은
전형적인 통합의 리더십 그 자체였습니다.
디데이와 벌지대전투의 주역답게 멋진 깡다구네요ㅋ
101공수사단 하면 또 밴드오브브라더스~
맞습니다. 바로 그 부대, 울부짖는 독수리.
아이젠하워가 노르망디 상륙작전 전날에 방문했던 부대는 그 이름도 유명한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부대였습니다.
나도 이거 쓰려고 왔는데.. ㅎㅎㅎ
아이젠하워(는 또는 를) 걱정할 만 했지요.
군 경력을 보면 실제 전투에 참가한 경력이 무색하여 "무관"이 아닌 "문관"으로 평가 하기도 합니다.
그 예로 더글러스 맥아더 역시 아이젠하워를 자기가 만난 "사무원" 중 최고의 인물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했지요.
이름만 들어도 명성이 자자한 101공수...
바로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주인공 부대입니다.
울부짖는 독수리가 부대마크.
D-day전날 연합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가 방문해서 힘을 얻었던 부대도 바로 이 부대였습니다.
사실 아이젠하워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실패할지 몰라 스트레스가 만땅이었습니다.
그런데 101공수부대의 병사들이 이렇게 외치는 것을 듣고 오히려 힘을 얻게 됩니다.
기다려라! 히틀러! 우리가 널 잡으러 간다!
와 야전에 나오신 어깨 별 4개
ㄷㄷ
채널에서 이미 아이젠하워에 대해 다룬 적이 있었는데요.
아이젠하워도 알려지지 않았던 멋진 면이 상당히 많습니다.
1942년에 육군 소장. 그리고 고작 마셜 참모총장의 부관으로 있다가 2년후에 육군 대장으로 진급합니다.
그리고 무려 연합군 총사령관 임명. 이보다 대단할 수 있을까요? 아이젠하워 1부 (ruclips.net/video/_5p662pyK38/видео.html) 추천합니다.
아이젠하워는 작전 실패를 걱정한 것이 아니라
몇 명이 전사할지 걱정한 것이었다!!
"피로 물든 타라와!"
이런 식으로 성공한 작전도 마구 물어뜯기 때문!
원래 6월 5일날이 d day 였다는데 하루 연기 됐으니 4일날 간거 아닌가요?
원래 상륙일이 6월 5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날씨가 하도 나빠서 하루 연기를 시켰습니다.
아이젠하워가 방문한 날짜는 6월 5일이 맞습니다. 연기 통보는 이미 아이젠하워가 방문하기 직전에 이뤄졌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아 그렇군요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배경음악 사상최대의작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가장 잘 나타내는 노래가 바로 The longest day 지상최대의 작전 주제가입니다.
오늘 에피소드의 교훈 : 사회 생활은 중요하다.
공수부대 전사율이 50%이니 저 병사는 반죽었군
말씀하신 것 처럼 아이젠하워는 D-day 첫날 투입될 공수부대 병사들을 방문하면서 이들 중 상당수가 전사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준비된 군대라. 자신감 충만.
아이젠하워,
마셜,
니미츠,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군의 3대 영웅.
영웅들에게 행운과경의를 표합니다 만세❤😂🎉
군인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참 짠하네
미국 전쟁도 아닌데~~
당시 미국이 대단했던게 저게 미국 전쟁이라고 인식을 했다는거.
그냥 있었으면 독일이 유럽 소아시아 점령하고 미네랄 가스 멀티 성공하고 미국 본진까지 밀고 들어 올거란걸 인식했던거겠지?
문제는 저사람들중 다음 날 몇사람이 살아 남았을까임. 선발대로 간만큼 다죽었을듯.
아이젠하워의 기록에는 이렇게 나와 있더군요.
나는 힘을 얻기 위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제일 먼저 투입될 101 공수부대 병사들을 방문했다.
이들 중 70%병사들의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사나이란 이런 것이지
흙수저 아이젠하워와
금수저 맥아더는 병사를보는시각이 다른듯
누군가의 아들과 소비재로
그런 사람을 뽑은 국민 잘못임
1진이면 모두 죽었겠네.
얼마나 무서워을까?
죽을줄 알면서도 돌진한다는게.
난 못할꺼 같아!
그 유명한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101 공수사단 바로 그 부대입니다.
가장 먼저 적진에 투하되기에 약 70%가 전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후시딘을. 잡아야 하는더ㆍ
우리에게는 화살머리
임모미 필사 령과니 이찌 ㅡ
유비도 위연이 호언할때 입이 귀에 걸렸었지
적국의 괴수를 동네 똥개 부르듯 호명하는 병사의 객기는 객기를 넘어 용기이며, 용기를 넘어 국력을 나타냅니다!
동감입니다.
6.25 때 지도층이 도망 갈 생각만 했다던지, 장군들 중에 참전한 자식이 있냐? 라는 분들이 많은데...
1. 당시 대통은 자식이 없으니...
2. 당시 한국군 장성들 나이가 30대 초중반이라, 자식들 나이가 15~16세가 될까말까니, 참전할 수 있기 어렵죠.
3. 고위층이 도망갈 생각만 한다고 했는데, 당시 고위층이면 대부분 "독립 운동 출신자"라고 봐야 되는데 대략 난감합니다. ㅠㅠ
3. 당시고위층 독립운동가 아닙니다. 상당수 일제경찰 및 일제친일파고위층입니다.
친일파가 고위층이었지 ... 말은똑바로해야지
아이젠하워 대통령 연합군사령관시절이군요ㄷㄷ
1941년에 육군 준장 겸 마셜 참모총장 부관, 1942 육군 소장 겸 마셜 참모총장 부관, 1943년에 육군 중장 바로 대장 승진 후 연합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 원수님....김일성원수님...맥아더원수님....원수를 사랑하라???
아이젠하워는 명장이 아닙니다.
30만명이 참가하는 작전을 자신감없이 하다니 ..
아이젠하워가 발탁된 것은 전투 능력이나 전략가 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발탁된 것은 연합군의 통합을 해낼 수 있는 리더십. 오직 그거 하나 때문에 발탁된 것입니다.
만약 전투능력을 보고 뽑았다면 패튼 정도가 총사령관이 되야 맞을 것입니다.
자네 쓸데없는 허세부리지 말게 꼭 살아남아 낚시다니게나
ㅎㅎ, 재미있네요.
이 당시 아이젠하워는 굉장히 초조한 상태였습니다.
롬멜이 아내 생일때문에 자리를 비운 것도 몰랐고 연합군 병력이 당연히 압도적이었으나 꼭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디데이 라는 말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나온 말이지
그렇죠, 1944년 6월 6일. 그날이 최초의 D-day였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딱 34년전이군
그래서 아이젠아워는 장병들을 많이 죽였다
지는 사무실에 앉아 꿀삘고
포상휴가 출발!
한국은 지도층들이 노블레스오블리즈를 안해도 현재의 명성만으로도 국민들이 맹종하기 때문에 개선이 안되는데, 이것은 나보다 강하면 자진해서 굽신대며 빌붙으려는 노비근성이 문제의 발단입니다.
101이 피해가 꽤컸었다던데
윈스터 대위와 닮은 ... 군인이 보여
명예가 먼지 모르는 민족 조선
인신공양 했다지?
8~9만 명 이상 💀💥
이지컴퍼니~
근데..저당시 공수부대는 대다수 죽음..ㅠㅠ
가장 위험한 곳에 가장 먼저 투입되는 것이 지금도 공수부대입니다.
저 당시 아이젠하워의 방문 목적은 자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수백만명이 동원되는 인류역사 최대의 작전을 앞두고 본인도 승리를 자신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병사들이 너무나 자신감이 넘치는 것을 보고
아이젠하워도 승리를 자신하며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ruclips.net/video/_5p662pyK38/видео.html 아이젠하워 1부를 꼭 보시길 바랍니다!
상륙 장갑차 투입한 영국군은 피해가 적었고
맨몸 돌격한 미군 피해가 컸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본듯
안녕하세요.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미군이 상륙했던 오마하 해변에서 셔먼 dd 전차들이 대다수 폭풍우로 좌초당하거나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화에서 많이 묘사되었듯이 미군은 그냥 알보병으로 돌격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것돠 관련된 컨텐츠가 연합군 상륙을 막아라! 기갑부대 배치 논쟁
(ruclips.net/video/OQaoX_oa0p0/видео.html) 이라는 컨텐츠입니다.
아이젠하워는 명장은 아닙니다. 아군 사상자가 너무 많은 작전! 맥아더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권경모
말씀하신 것에 대해 동의합니다.
그는 만슈타인이나 구데리안, 롬멜, 패튼과 같은 명장은 아닙니다.
다분히 정치적인 인물입니다. 제 컨텐츠 중에 아이젠하워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이젠하워 1부 (ruclips.net/video/_5p662pyK38/видео.html) 1942년까지만 해도 마셜 참모총장의 부관에 불과했던 사람이 2년 사이에 포스타, 연합군 총사령관에 앉혀진 것입니다.
이것은 루즈벨트가 한 거였습니다. 이유는 영국과 미국의 기라성 같은 장군들을 하나로 아우르기 위한 정치력이 높은 사람을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101이면 보자
이 영상에 나오는 부대는 울부짖는 독수리 101 공수사단이 맞습니다.
영상 마지막 부분에 보면 독수리 마크가 보입니다.
ㅅㅂ...유언이었군
음악이 너무 시끄러움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이것은 쇼츠 영상이라서 그럴 것입니다.
다음 쇼츠영상에서는 참고하겠습니다.
근데 히틀러는 벙커에서 탕 했는데 ㅋㅋㅋ
결국 히틀러는 벙커에서 탕 했죠!.
이 당시 즉 노르망디 상륙작전 전날, 우리가 예상하기엔 당연히 연합군이 압도적으로 승리할 거라고 예상하지만
실제로는 연합군 병사들 특히 아이젠하워조차 승리를 100% 장담할 순 없었습니다. 때문에 아이젠하워는 승리했을 경우 연설문과 패배했을 경우 연설문을 따로 따로 작성했다고 합니다.
한국군도 좀 보고 배웠으면 합니다
6.25 전쟁에서 한국군은 참 부끄러웠죠
타국에서 온 군인들이 자신들과 상관없는 나라를 위해 죽어가며 싸웠는데
우리 군은 중공군에 겁먹고 도망치기 일수였죠
이 나라를 지켜야할 사람은 우리입니다
절대 도망치지 맙시다
우리 가족을 위해서
당신은 젼사를 전반부만읽었군ㅎㅎ
이부대가 훗날 청성부대로 중공군에게 악몽이 된 부대로 거듭났죠.
하지만 먼저 말한 전쟁에서 은밀히 기습하는 중공군에 질서없는 퇴각을 해 전작권이 미군에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죠.
이후의 용문산 파로호전투에서 중공군을 몰살시킴으로 전작권이 넘어갔던게 더 뼈아팠던 때임.
오히려 광속 퇴각으로 병력의 피해가 적었던게 반격의 힘이 되기도 했음. 퇴각후 조롱하는 유엔군에 울분을 참지못하고 수치심에 사단마크를 떼어버리고 이를갈면서 복수에 성공했다.
당시 중공군은 훈련안되고 장비가 열악한 한국군을 돌파지점 삼아 골라서 진격했다함.
용문산과 파로호전투때도 구멍이라 생각한 자신들이 미끼가 되어 격퇴한 것임.
저중 많이 죽었을꺼임
101 공수사단이었으니까 아마 그랬을 겁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 나온 바로 그 부대죠.
윤틀러를 잡아라~
다들 광기에 먹혔다
삶은 소대가리는 북괴군이였나?
영상 음악 어릴때 운동회서 나오던 음악인데 .. 그립다..그때가..
지상최대의 작전 주제가입니다.
똥별들만 잘하면 됩니다
우리는 걱정 안합니다 이말을 하고 싶었겠지
그건 한국군 얘기지. 미군 장교, 장성은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예전부터 이런말이 있어 병사는 독일군, 하사관은 일본군, 장교는 미군.
하나님의 정의의 군대는 성령께서 용기
를 북돋아 주신다!
인간들의 한계.
목소리 왜.이러냐? ㅠ
이게 뭐야..
아이젠하워 연합군 총사령관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실패했을 경우의 사과 연설문과 성공했을 경우의 연설문을 따로 만들어놨습니다.
그만큼 100%의 승리의 확신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의 마음을 달랠 겸 병사들을 방문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쇼츠 영상은 그떄의 이야깁니다.
완편영상은 아이젠하워 1부에 나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