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를 보면 사람과 ' 칼 ' 은 뗄래야 뗄 수 없는 몸의 일부였나 생각 듭니다 . 칼에 대한 집착이 대단 합니다 . 칼의 성능 . 상태를 알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네요 . 여담으로 . 몇년 전에 사카이에서 주방용 무쇠칼을 샀는데 이도 안 빠지고 튼튼해서 잘 쓰고 있죠 . 특이한 내용 . 신기하게 잘 봤습니다 . 감사합니다 .
심화 후속편?이라니 정말 좋으네요. 잘봤습니다!! 어째 실제로 전장에서 칼이나 창을 쓸 일이 크게 없어지니 시체에나 대고 요란스럽게 테스트라도 해야 그 가치가 평가가 되나..하는 생각도 들고 이쯤되면 칼이 도구를 떠나 하나의 보물이고 종교이자 신념 아닌가 싶습니다. 행정절차? 같은걸 보면 뭔가 상당히 갑갑하게 느껴지긴 하는데 그래도 그와중에 서양의술을 담당하는 관청이 설립되고 해부실습을 허가했다는 내용이 상당히 아이러니하네요.
안녕하세요 얼마전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보게된 시청자입니다 ㅋ 그 예전에 어디서 본 이야기가 있어서 질문드려봅니다 일본에서는 근대화 이전에 걸음걸이가 특이했다고 하던데 그게 사료로 남아있는 기록이 있을까요?? 보통 걸어가면 왼발-오른팔, 오른발-왼팔 이런식으로 교차하며 걸어가는데 일본 전통 걸음걸이는 왼발-왼쪽어깨, 오른발-오른쪽어깨 이런식으로 걸었다던데 정말인지요?
모르긴 해도 아마 칼날의 이빨 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했을 겁니다. 일본의 사철은 워낙 질이 낮은 철이고, 모든 도검은 도공 개인의 경험에만 의존해 만들어 정량적인 기준이 없어서 품질이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다보니 칼날 나가는 건 매우 흔했을 겁니다. 그러니 검호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도 마지막 순간에 칼을 여러 자루 꽂아 놓고 사용했다는 걸 보면 쉽게 유추할 수 있다고 봅니다. 타메시기리 할 때 칼날이 나가면 당연히 도공에게 책임이 갔겠죠. 아사에몬처럼 칼을 잘 다루는 사람도 없었을테니까요.
@@samurairomance 아사에몬 만큼 다양한 메이커의 도검 절삭력에 대한 데이터는 그 누구에도 없었을테니 그는 도공들에게 절대 갑이었을 겁니다. 아사에몬은 도공들로부터 등급 좀 잘 쳐달라고 뇌물도 엄청 받았을 겁니다. 비슷한 절삭력이면 뇌물 받은 도검을 좋게 평가해도 그로서는 아무 문제 없었을테니까요. 또 도검 하나 하나 마다 품질이 천차만별이었을테니 비교 테스트엔 좋게 해놨는데, 나중에 다른 사람이 아사에몬의 데이터를 믿고 그 메이커 검을 썼는데 쉽게 상했다고 해도 아무런 책임을 질 필요가 없었겠죠.^^
그렇죠. 권위를 얻으면 그 권위에 아무도 찍소리 못하는 경향이 일본사회가 좀 더 심한 것 같아요. 토쿠가와 쇼군의 칼을 시험할 정도인데... 그의 평가의 권위에 누가 토를 달 수 았겠습니까. 쇼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겠지요.. 온전하게 공정한 평가는 어렵지 않았을까요. 부탁, 뒷돈... 등을 받았을 수도 있고요...
저는 취미로 다도를 하다보니 일본의 다도도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헌데 우리나라의 다도도 꽤 격식을 따지지만 일본은 더하더군요. 찻그릇 파지법부터 종교적인 의미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 손수건 접고 펴기, 차통 위를 손수건으로 가볍게 문지르기 차선 젓기, 심지어 다 만든 차를 서빙할때도 격식을 따집니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저서에서 근대 유럽의 상류층이 자신들을 타계층과 차별화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예의범절, 의전들을 발전시켜켜왔다는 연구가 있는데 이 타메시기리에도 이러한 점이 엿보입니다. 솔직히 동물을 써도 되고, 도검을 시험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만 시험장의 배치부터 입회인의 종류, 관련 의전까지 죄다 세부화시켜놓은걸 보면 확실히 타메시기리에도 막부의 위엄을 돋보이기 위한 의도가 깔려있는것으로 보이네요.
덧붙이자면 한중일 삼국중 일본의 다도는 유난히 다기에 집착하고 세부적인 구분을 합니다. 문외한들이 보기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 다기지만 형태, 무늬, 제작기법 등을 두고 수백가지로 구분하지요. 당장 고려다완만 하더라도 랜덤으로 찍힌 문양을 보고 아와모리, 모미지 식으로 나누기도 하고 중국의 천목다완도 똑같은 유적천목(유테키덴모쿠자완)도 문양의 모양에 따라 격을 둡니다.
대단한 취미를 가지셨네요. 저는 전혀 문외한입니다만, 몇 달 전 다큐에서 텐모쿠챠완이 새로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는 주제로 방양된 내용을 봤습니다. 히스토리아에서 말이지요. 현존 하는 텐모쿠챠완이 몇 개 없다고 나오더라오요. 발견된 챠완이 텐모쿠 챠완인지 여부를 과학적으로 그리고 다각도로 분석 중이더라고요. 결론은 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텐모쿠챠완이 대단한 물건인가보죠???
@@samurairomance 텐모쿠는 송나라때 반짝 유행했던 물건입니다. 당시의 말차는 색이 우윳빛처럼 하얘서 검은 다완에 담으면 보색효과로 흰색이 더 돋보였기 때문에 선호되었습니다. 가마쿠라시기에 많이 일본으로 수출되었는데 중국 천목산 일대에 도요지가 있어서 천목, 텐모쿠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중국으로 불교공부하러 간 일본의 선승들이 다도문화와 함께 들여온 문물이지요. 하지만 중국 본토와 우리나라에서는 명나라, 조선이후 말차의 유행이 지나버렸고 주류가 엽차로 바뀐 반면에 일본에서는 아직도 다도하면 말차가 주류입니다. 전국시대 이후로는 다기의 주류가 한국의 것으로 (고라이모노)로 옮겨졌고 조선의 사발을 모방한 것들이 제작되고 조선산 다기가 엄청난 값에 팔리는 등 텐모쿠의 유행은 지났습니다만 에도시대 이후 복고풍이 다시 유행하면서 텐모쿠가 재조명을 받게됩니다. 텐모쿠 다완은 다양한 특징의 유약을 묻혀서 굽는데 그 유약이 녹아내리면서, 가마속 불꽃과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면서 랜덤한 문양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그 기술이 랜덤하기때문에 애시당초 뽑기운(?)이 필요하고 그 비법도 중국 본토에서도차 실전되었다 최근에야 비슷한 것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또 현존하는 송나라 천목다완은 몇 점 안되는데 전부 일본에 있습니다. P.S. 텐모쿠도 여러종류가 있습니다만 그 다큐멘터리에서 귀하다고 하는건 유적천목입니다. 요변(요헨)이라는 가마속 랜덤 효과로 나타나는 화려한 무늬를 나타내는 다완인데 그 외에 나뭇잎천목이나 민무늬천목은 흔한 편입니다.
@@samurairomance 비용은 마음가짐에 달렸습니다. 왜냐하면 다기의 종류도 천차만별이고 가격도 아주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만원남짓한 물건도 있고 수백수천짜리도 있지요. 차는 어떤 차를 마시냐에 따라 다르지만 이것도 가격차이가 아주 크고요. 일본 말차를 예를 들자면 똑같은 다원 제품인데도 등급에 따라 40그램 한 통에 수만엔짜리도 있고 수백엔짜리도 있습니다. 좀 차좀 만들어봤다는 다인들 말로는 확실히 맛이 다르다고 합니다만 저는 잘 모르겠네요. 그냥 적당한 가격대의 적당한 제품에서 가성비 좋은걸 찾는걸 좋아합니다. 다기도 구색만 좀 갖추고 가끔 골동품이나 명물중에서 저렴하게 경매로 나오는거 지르는걸 좋아하고요. 제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초기비용으로 다완 두점(우리나라 산청다완, 고려청자) 해서 7만5천원, 차를 젓는 차선 12000원, 차시 3000원, 일본식 옻칠차통 32달러, 말차는 국산으로 7000원 해서 15만원 남짓 썼었습니다. 제 최초의 다기였지요.
@@samurairomance 아그러시군요........미야모토무사시 (신멘타케조) 에 대해서 대부분 이름만 알뿐 이야기는 대부분 잘모르는데.......그래서 일반적이지는 않지 않나 싶습니다...........흥미로운 부분도 많을것같구요.........아무튼 알겠습니다.........
@@samurairomance 주인장님은 일어를 굉장히 잘 하시니 은혼 애니메이션의 기상천외한 패러디들을 보시면 배꼽을 잡으리라 생각합니다. 강추입니다. 배경도 메이지 이후고 콘도, 히지카타, 오키타 등 신센구미 3인방 다 나오고, 키헤이타이의 타카스기 신사쿠, 사카모토 료마, 카츠라 코고로도 나오니 초반 한 십여화 까진 좀 유치하나 그 다음부턴 미친듯이 빵빵 터집니다.
란 사실이 멋져보이나요? 시대상황을 무시하고 야만과 문명을 구분짓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하지만... 글쎄요. 죄를 지은 사형수나 적 포로였다해도.. 사람의 시체를 고기덩이처럼 실험도구로 쓴다는 발상으로 볼때 과거 열도의 왜인들은 도저히 인간에 대한 예를 찾기 힘들어보입니다. 과거 죄인을 참수하는 현장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이를 흥미롭게 구경했다는 풍속은 동서양에서 흔히 있는 일이긴했지만 이는 죄를 묻고 이를 단죄하는 행사였습니다. 죄값을 다 치른 시신을 도검류 성능 실험하려고 훼손하는 사례는 역사에서 찾기 힘듭니다. 이런 일이 있었다고해도 이걸 암암리에 했을거고... 싸이코 패스집단처럼 인체실험을 이렇게 책까지 써가며 체계적으로 했다니...일제시대 731부대가 행한 범죄행위도 그 뿌리가 겦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엔 동물을 도축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사문화되긴 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금기로 남아서 그런것도 한 몫합니다.덴무 덴노가 675년에 만든 법에서 근거한건데 뭐 그닥 잘 지켜진 법은 아니지만 이후로 채식을 강요하는 문화가 메이지 시대까지 이어진건 사실이니깐요. 웃긴건 덴무덴노는 지 조카 배떼지에 사시미 쑤셔넣고 그 자리에 올랐으면서 동물 죽이지 말라고 ㅈㄹ한거 보면 일본인들의 이런 문화는 이해가 안되는것도 사실입니다. 어느 나라나 잔인한 문화나 부끄러운 역사는 있는 법입니다만, 일본의 이런 문화는 실용성과 이익에 해를 주면서까지 진행된다는 점에서요
일단 첫번째로 아사에몬같은 A급 참수가문이 타메시기리에 사용하는 도검은 일반적인 제품이 아니며 실제로 5대 야마다 아사에몬은 그동안의 경험과 역대 아사에몬의 기록을 토대로 한 회보검척(懐宝剣尺)이라는 일종의 일본도 등급 서적을 만들기도 했죠 두번째로 멧돼지와 같은 동물들의 뼈는 사람과는 달리 밀도가 높아 현대공법으로 만드는 절삭기로 자르며 과거에는 도끼로나 뼈를 쪼갤수 있었다는걸 생각하면 동물을 사용해 타메시기리를 고가의 도검으로 하다가 도검이 손상되기라도 하면 시참자 자신의 신변문제 또는 배상과 같은 금전적 문제가 생길수 있죠. 그러니 일본도의 강도같은 부차적인 이유를 떠나서 더더욱 쓸수가 없죠. 예를들어 영화 분노의 질주에서 등장한 슈퍼카들은 정품이 아니라 전부 레플리카였죠. 진짜 정품 슈퍼카로 했으면 더욱 실감나고 좋았겠지만 그렇게 안한 이유는 뭐 잘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세번째로 당시 일본에서 멧돼지는 고급 식재료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일본은 불교국가여서 메이지 시대 이전까지 육식을 안했을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일본은 지방분권 봉건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각 지역마다 달랐죠. 사츠마 지방(=가고시마 현)만 해도 오늘날 지역 특산물이 흑돼지고기(=쿠로부타)일 정도로 돼지고기 섭식문화가 오래전부터 발달된 지역이니 말다했죠. 그리고 일단 상류층인 덴노, 귀족인 공가(=쿠게)부터 육고기 잘만 먹었죠. 그러니 사냥으로만 잡을수 있는 멧돼지같은 고급 식재료를 시참용으로 쓸순 없죠.
글쎄요. 저는 한국의 역사왜곡을 더 심각하게 바라봅니다. 이 역시 객관적 자료로 봤을 때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거짓말에 만연된 사회인지 인지하고 계시다면 우리가 당연시 배워 온 내용에도 많은 거짓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되실 겁니다. 이 역시 한국인의 시각이 이닌, 최대한 건조하게 우리 역사를 바라봐야 보이겠지요. 사기범죄가 일본의 100배. 인구대비로는 300배나 많은 나라가 한국이며, 사기범죄 비율이 세계 1위인 나라가 한국입니다. 일본 내 외국인 강력 범죄 순위에도 항상 상위권에 드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요즘은 베트남, 중국 등에 많이 밀리긴했지만... 임금 체불액도 일본 대비 10배가 넘는 나라이고요. 일본에서 불법체류 하며 돈버는 한국인들 비율도 압도적입니다. 몸파는 여자들은 셀 수도 없고요. 일본에 유학중인 한국 학생들에게 알바를 한다면 일본인 가게에서 일할래, 한국인 가게에서 일할래를 묻는다면 대부분 일본인 가게를 택할 겁니다. 저도 그랬고요. 한국인 사장은 신뢰하기 어려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거짓말이 만연된 나라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너무 많은 것이 일그러져 있고 계속 진행 중이지요. 완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일본 공부를 많이 하면 할 수록 일본을 싫어하는 한국인 비율은 높지 않은데 비해, 한국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한국에 비판적으로 바뀌는 일본인 비율이 높은 경향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개인 의견이지만... 그 이유를 일본 친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10년 넘게 공부하고 지금은 대학교수로 일본에서 활동하는 동갑내기 친구입니다. 한국을 공부하면 할수록 그 거대한 거짓의 산이 보인다고 하더군요.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이만 마치겠습니다.
@@samurairomance 지금 처럼 객관적이고 사실에 근거한 자료들을 계속 올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글에 크게 공감합니다. 지금도 일본의 소위 '현대 무사'들은 타타미를 베면서도 사람을 베는 마음 자세로 합니다. 한국의 무술인들도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인들의 시각에서 아주 야만스럽게 보이겠지만, 조선시대에는 단순히 목을 치는 정도가 아니라 능지처참 같은 처절한 형벌도 있었습니다. 일본을 미화하는 것도, 조선이나 한국의 국뽕에 취하는 것도 아닌 '사무라이 로망스'의 객관적인 유튜브를 응원합니다.
타메시기리를 위해 시체 구하는 그러니까 처형을 결정하는거 보면 아무나 야마다 습명 할 수 있는게 아니란걸 알수 있네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 되어야 그걸 이어 받을 수 있을지도? 한때 신선한 인체 장기를 공급하기 위해 처형일과 사형수를 고르던 중국이 생각나서요. 그리고 얼마전에 알게 된 잡학상식인데 일본 헌법에 연좌제 금지가 없다고 하네요. 범죄자 및 그 가족에 좀 각박하고 잔인하게 대하는게 그래서라고.(패망 후 전범배제를 위해 미군정이 태클을 안건게 그대로 쭉 내려와서 개별법에서 하나하나 연좌 금지를 넣어야 하죠. 전범은 그래서 정치 복귀 가능했음). 에도 시대 때도 시체를 저렇게 쓰는게 좀 잔인한 처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죄짓고 살면 죽은 뒤에도 괴로울지도? 할복도 그렇지만 타메시기리도 절차가 너무 복잡합니다. 물론 의뢰하는 상대가 보통 분이 아니니 그런 점도 감안해야 했으나 에도시대는 어째서인지 예법이 너무 복잡하고 까탈스러워서 높은 사람들도 살기 퍽퍽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양이나 조선도 높은 계급은 복잡한 예절과 매너를 선보일 줄 알아야 욕 안먹는 사회였습니다만 에도 막부와 그 이후의 일본만큼은 아닐겁니다. 추신구라가 원인은 여러 추측이 있지만 표면적으론 저런 복잡한 예법 강조하는 사회와 연관이 있다죠. 저걸로 밥 벌어먹는 사람도 있으니 더 매뉴얼화 되었을 거 같습니다. 그래도 오래전부터 내려온 터부와 지식에 대한 의문을 갖고 금기를 해제하려는 분위기와 그걸 용인하는 막부의 결정은 부럽더군요. 난학 뿐만 아니라 유학에서도 일본인들은 다양하게 접하고 뭐 하나만 해야한다 이런건 없었다고 합니다. 중국과 조선에서 탄압과 이단시 되는 양명학과 조선에서 수입한 성리학이 동시에 배움의 장이 열리고 연구되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는데 이게 메이지유신의 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고요. 정약용 선생도 일본의 유학에 대해 진일보했음을 인정하고 한탄했다고 합니다. 사실 조선이 외국에 대해 깜깜무소식이었단건 편견입니다. 왜관과 기타 루트(역관)를 통해 일본이나 중국에서 들여오는 문물(주로 책)을 접하기도 하고 다소 늦더라도 해외 소식을 알기도 했습니다. 천주교가 재야 양반사족들 사이에서 붐이 있었다던가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로 시작되는 개화파가 나올수 있었던게 그런 배경이죠. 다만 우린 의문을 갖고 있어도 그걸 깨부술 수 있는 분위기가 전혀 없었다는게 문제였죠. 천주교 믿은 사람들도 자기 목숨 내놓아야 했고요. 별거 아닌거 같은 문제지만 급변하는 해외 정세 속에서 조선이 미끄러져 버린 이유였다고 봅니다. 요즘 페미와 급좌파 정치가들이 힘을 갖게 되면서 사회분위기를 아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사람들이 서로 싸우게 만들고 규제는 강화되고 생각의 표출도 막는다는게 조선말기와 다를바 없다고 봅니다. 이젠 하다하다 못해 가볍게 즐겨보는 웹툰까지도 작가가 얘네들 무서워서 제대로 못그린다죠. 한 컷에 한밤 중의 달을 그리고 힘든 사회라고 썼다는 이유로 작가에게 대통령 모욕한거냐면서 반성하고 수정하라는 네티즌(누구들인지는 뻔하죠)들이 나대서 뉴스까지 나오는거 보면 쓴웃음 짓게 합니다.
야마다라는 이름을 제자들과 자식 중 뛰어난 사람에게 습명한 이유가 말씀하신 부분에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신적인 면과 실력을 모두 갖추어야 하니까요. 야마다 가문의 여자들도 장난 아니었던 것 같아요. 지하 저장고에서 시체를 선별하는 작업은 야마다 가문의 여자가 했다는 기록(보다는 썰에 가깝겠네요)도 있고요. 참수한 머리에 구더기 폈는지 확인하고 오라는 말 듣고, 야마다 부인이 다녀왔는데, 혹시나 해서 머리 수급 2개를 들고와 선선한 자리에 뒀다가 머리 위에 두고 잠이 들었다라거나...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대한민국은 20년 전 보다 후퇴하고 있습니다. 규제가 생업인 단체를 수 백개 만들어 놓은 결과물이지요. 생신적이지 않은 조직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규제를 만드는 것 이외에는 없겠지요. 작금의 규제 상황은 국가를 망조에 접어들게 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는 "결과물"이 식민지여서 그런지... 저도 항상 비판적이네요. 과정이야 어떻든, 식민지로 전락한 망한 왕조라는 결과물.
조선시대에는 서양인이 조선에오면 청에 보고해야했고 보고가 안되면 반역을 준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후금이 명나라와 전쟁시 선교사들이 무기개발에 도움을 많이 줘서 조선에서의 서구인의 접근을 통제했습니다. 그리고 몇번의 기회가 있였지만 일본의 방해로 무산된적이 몇번있였죠. 동인도회사와의 접촉시 일본에서 조선과 거래시 일본은 동인도회사와 거래중지를 통보했고. 일본으로 향하던 영국함선이 조선에 포류할때도 비슷한 방법으로 방해를 했죠. 과거나지금이나 일본은 우리를 방해만하네요.
이런 부분은 양쪽 의견을 다 들어봐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망해버린 조선후기 사회상을 외부 요인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어서요. 동인도 회사 관련 이야기를 시기와 함께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을까요? 동인도회사가 일본에 접근했던 시기와 그 당시 일본 정세를 맞물려 "일본이 동인도회사를 협박해서 조선과의 관계를 방해했다" 이야기의 진위 여부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인도 회사와 네덜란드 상인이 애초에 일본에 접촉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실텐데... 그 이유를 가지고 짐작래 보면, 조선에 접근할 이유는 크게 없어보입니다만.. 어쨌든 제가 잘 모르는 스토리인데 관련 이야기와 근거를 알고 계시면 답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캬 이런 고퀄의 영상을 무료로 볼 수 있다니 넘 황송하네요 ㅜㅜ 진짜 저기 직원들 회사 부지의 역사를 알고나면 섬뜩하겠어요 ㅋ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내용은 괜찮지만, 영상은 저퀄이죠.. 그림이라도 잘 그리면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데...
일본 역사를 보면 사람과 ' 칼 ' 은
뗄래야 뗄 수 없는 몸의 일부였나
생각 듭니다 . 칼에 대한 집착이
대단 합니다 .
칼의 성능 . 상태를 알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네요 .
여담으로 . 몇년 전에 사카이에서
주방용 무쇠칼을 샀는데 이도 안
빠지고 튼튼해서 잘 쓰고 있죠 .
특이한 내용 . 신기하게 잘 봤습니다 .
감사합니다 .
저도 일본산 사시미칼 쓰고 있는데요., 생선 필렛 자를 때 사용하면서 손맛(切れ味, 키레아지)을 느끼고 있습니다.
흥미있는 주제를 소개해 주어서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구독하겠습니다.
이전화의 내용을 심화시키는 좋은 구성이네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김사합니다.
잘봤습니다. 에도시대 역사 예술 사회 문화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었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함께 공부해 가면서 일본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 있는 기회를 같이 만들어 나아가십시다.
좋은 정보에 좋은 지도사이트까지..항상 감사하게 잘보고 있습니다..
지도에 이름이 나올 정도이니, 당시 야마다 아사에몬의 유명세를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아...너무 기다렸어요. 선 댓글 후 감상.
감사합니다 😊
귀한 영상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가치를 인정해 주시니 힘이 납니다 !!
@@samurairomance 아닙니다. 로망스님 덕분에 또 배우고 배웁니다.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많이 만들어 주십시오. 후후😏
일본도 수집이 취미라 영상 너무 재밌게 봤습니다. 타메시 메이가 들어간 도검이나 와자모노, 도검과 케이키, 혼아미 가문과 토켄 시바타 등도 혹 다루시면 재미있는 컨텐츠가 될것 같습니다. 왜 님 채널을 이제야 알았는지.. 구독+알림 누르고 영상 정주행 가겠습니다.
도검 분야가 워낙 전문적이라 제가 지식이 없습니다만, 키워드로 궁금하신 점을 주신다면 영상으로 만들 수 있을 만한 내용이 있을지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재밌게보고 있습니다.브금 너무 좋네요 좀 알려주실수 있을까요??
폭주하는 시대라고도 했던 메이지 유신 때의 시대상도 다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말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김사합니다. 앞으로도 같이 공부하시죠 !!
야마다 아사에몬!! 구독박습니다 !좋은영상 앞으로도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걸보니 일제의 만행중 100인 참수경쟁이나 예전 마루타 실험에서의 사람 줄지어 세워놓고 소총으로 몇사람 관통가능한가 실험하던것, 인체실험이 어떠한 배경과 역사, 문화에 의해 일어난건지 어렴풋이 이해가 되네요
잘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심화 후속편?이라니 정말 좋으네요. 잘봤습니다!!
어째 실제로 전장에서 칼이나 창을 쓸 일이 크게 없어지니 시체에나 대고 요란스럽게 테스트라도 해야 그 가치가 평가가 되나..하는 생각도 들고 이쯤되면 칼이 도구를 떠나 하나의 보물이고 종교이자 신념 아닌가 싶습니다. 행정절차? 같은걸 보면 뭔가 상당히 갑갑하게 느껴지긴 하는데 그래도 그와중에 서양의술을 담당하는 관청이 설립되고 해부실습을 허가했다는 내용이 상당히 아이러니하네요.
감사합니다
야마다 아사에몬이 살던 곳 풍수지리가 죽음과 관련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터일까요? 생명보험회사 자리라니 신기하네요.ㅋㅋ
근데 타메시기리 비용은 현재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할까요?
칼 시험하러 시체 베기.
-> 시체 베면 칼 상함
-> 칼 수리
-> 수리 된칼 시험하러 시체베기
-> 시체 베면 칼 상함
-> 칼 수리
-> 칼 시험 필요
....
한번만 하면 되지 않았을까요. 무한반복....
나무칼도 아니고 한 번 벴다고..?
일본엔 탄소강이 얼마없어서 접쇠를해서 칼만들어도 뼈꺼지날이 박히면 날이 부러졌으니 다시갈아야하는건 맞지만 칼몸체가 한방에 망가지진않죠
어디든反日 정신병환자는 있다.
@@tv.2745 요즘 반일이 정신병 수준인건 인정.
안녕하세요 얼마전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보게된 시청자입니다 ㅋ 그 예전에 어디서 본 이야기가 있어서 질문드려봅니다 일본에서는 근대화 이전에 걸음걸이가 특이했다고 하던데 그게 사료로 남아있는 기록이 있을까요??
보통 걸어가면 왼발-오른팔, 오른발-왼팔 이런식으로 교차하며 걸어가는데 일본 전통 걸음걸이는 왼발-왼쪽어깨, 오른발-오른쪽어깨 이런식으로 걸었다던데 정말인지요?
난바아루키(ナンバ歩き)라는 보행법입니다. 손을 거의 흔들지 않는 보법이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고문관들 보행법과는 좀 다른 느낌입니다. 링크 들어가서 함 보세요.
ruclips.net/video/DC66NZj8pJ4/видео.html
@@samurairomance 느낌이 다르긴하네요 확실히 ㅎㅎ 감사합니다 ^^
에도시대 상세지도를 그것도 구획까지 구글로 볼수있다니 대단합니다 일본
잘봤어요!
감사합니다.
쇼군도검시험하다가 뼈때문에 칼날이 상하면 책임 소재는 누구에게 있나요??
헛... 어려운 이야기네요.
야마다 아사에몬의 권위가 높아진 후 부터는 도검제작자의 책임으로 돌아가지 읺았을까요.
도검감정사 역할까지 했던 야마다 가문에서 실수했다 한들, 인정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혹시 관련 내용에 대한 기록이 있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samurairomance 감사합니다
모르긴 해도 아마 칼날의 이빨 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했을 겁니다. 일본의 사철은 워낙 질이 낮은 철이고, 모든 도검은 도공 개인의 경험에만 의존해 만들어 정량적인 기준이 없어서 품질이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다보니 칼날 나가는 건 매우 흔했을 겁니다. 그러니 검호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도 마지막 순간에 칼을 여러 자루 꽂아 놓고 사용했다는 걸 보면 쉽게 유추할 수 있다고 봅니다.
타메시기리 할 때 칼날이 나가면 당연히 도공에게 책임이 갔겠죠. 아사에몬처럼 칼을 잘 다루는 사람도 없었을테니까요.
@@samurairomance 아사에몬 만큼 다양한 메이커의 도검 절삭력에 대한 데이터는 그 누구에도 없었을테니 그는 도공들에게 절대 갑이었을 겁니다. 아사에몬은 도공들로부터 등급 좀 잘 쳐달라고 뇌물도 엄청 받았을 겁니다. 비슷한 절삭력이면 뇌물 받은 도검을 좋게 평가해도 그로서는 아무 문제 없었을테니까요. 또 도검 하나 하나 마다 품질이 천차만별이었을테니 비교 테스트엔 좋게 해놨는데, 나중에 다른 사람이 아사에몬의 데이터를 믿고 그 메이커 검을 썼는데 쉽게 상했다고 해도 아무런 책임을 질 필요가 없었겠죠.^^
그렇죠. 권위를 얻으면 그 권위에 아무도 찍소리 못하는 경향이 일본사회가 좀 더 심한 것 같아요.
토쿠가와 쇼군의 칼을 시험할 정도인데... 그의 평가의 권위에 누가 토를 달 수 았겠습니까. 쇼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겠지요..
온전하게 공정한 평가는 어렵지 않았을까요. 부탁, 뒷돈... 등을 받았을 수도 있고요...
진짜 잼나게 봤심다
신센구미나 보신전쟁 혹은 세이난전쟁같은데서 사람들이 잘모르는 재밌는 이야기는 없을까요?
신센구미는 이미 몇 가지 영상이 올라와 있고요. 보신이나, 세이난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지요. 세이난 전쟁 중 타바라자카 전투에는 특히 많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참수인이 살던 집에 생명보험 회사가 자리하고 있다니...
장사가 더 잘될까요? 생각만해도 끔찍... 그래서 일본 괴담이 많은 것일까요?
만화 참수인을 보면서도 좀 신기하다 생각했는데. 알면 알 수록 어려워지네요.
혹시 전국시대 배경 영화 추천해주실수 있나요? ㅎㅎ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하늘과 땅과(天と地と)" 또는 "카게무샤(影武者)"도 재미있고요. 최근 영화로는."세키가하라(関ヶ原)" 정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취미로 다도를 하다보니 일본의 다도도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헌데 우리나라의 다도도 꽤 격식을 따지지만 일본은 더하더군요. 찻그릇 파지법부터 종교적인 의미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 손수건 접고 펴기, 차통 위를 손수건으로 가볍게 문지르기 차선 젓기, 심지어 다 만든 차를 서빙할때도 격식을 따집니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저서에서 근대 유럽의 상류층이 자신들을 타계층과 차별화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예의범절, 의전들을 발전시켜켜왔다는 연구가 있는데 이 타메시기리에도 이러한 점이 엿보입니다. 솔직히 동물을 써도 되고, 도검을 시험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만 시험장의 배치부터 입회인의 종류, 관련 의전까지 죄다 세부화시켜놓은걸 보면 확실히 타메시기리에도 막부의 위엄을 돋보이기 위한 의도가 깔려있는것으로 보이네요.
덧붙이자면 한중일 삼국중 일본의 다도는 유난히 다기에 집착하고 세부적인 구분을 합니다. 문외한들이 보기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 다기지만 형태, 무늬, 제작기법 등을 두고 수백가지로 구분하지요. 당장 고려다완만 하더라도 랜덤으로 찍힌 문양을 보고 아와모리, 모미지 식으로 나누기도 하고 중국의 천목다완도 똑같은 유적천목(유테키덴모쿠자완)도 문양의 모양에 따라 격을 둡니다.
대단한 취미를 가지셨네요.
저는 전혀 문외한입니다만, 몇 달 전 다큐에서 텐모쿠챠완이 새로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는 주제로 방양된 내용을 봤습니다. 히스토리아에서 말이지요.
현존 하는 텐모쿠챠완이 몇 개 없다고 나오더라오요.
발견된 챠완이 텐모쿠 챠완인지 여부를 과학적으로 그리고 다각도로 분석 중이더라고요. 결론은 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텐모쿠챠완이 대단한 물건인가보죠???
@@samurairomance 텐모쿠는 송나라때 반짝 유행했던 물건입니다. 당시의 말차는 색이 우윳빛처럼 하얘서 검은 다완에 담으면 보색효과로 흰색이 더 돋보였기 때문에 선호되었습니다. 가마쿠라시기에 많이 일본으로 수출되었는데 중국 천목산 일대에 도요지가 있어서 천목, 텐모쿠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중국으로 불교공부하러 간 일본의 선승들이 다도문화와 함께 들여온 문물이지요. 하지만 중국 본토와 우리나라에서는 명나라, 조선이후 말차의 유행이 지나버렸고 주류가 엽차로 바뀐 반면에 일본에서는 아직도 다도하면 말차가 주류입니다. 전국시대 이후로는 다기의 주류가 한국의 것으로 (고라이모노)로 옮겨졌고 조선의 사발을 모방한 것들이 제작되고 조선산 다기가 엄청난 값에 팔리는 등 텐모쿠의 유행은 지났습니다만 에도시대 이후 복고풍이 다시 유행하면서 텐모쿠가 재조명을 받게됩니다.
텐모쿠 다완은 다양한 특징의 유약을 묻혀서 굽는데 그 유약이 녹아내리면서, 가마속 불꽃과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면서 랜덤한 문양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그 기술이 랜덤하기때문에 애시당초 뽑기운(?)이 필요하고 그 비법도 중국 본토에서도차 실전되었다 최근에야 비슷한 것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또 현존하는 송나라 천목다완은 몇 점 안되는데 전부 일본에 있습니다.
P.S. 텐모쿠도 여러종류가 있습니다만 그 다큐멘터리에서 귀하다고 하는건 유적천목입니다. 요변(요헨)이라는 가마속 랜덤 효과로 나타나는 화려한 무늬를 나타내는 다완인데 그 외에 나뭇잎천목이나 민무늬천목은 흔한 편입니다.
맞네요. 요헨텐모쿠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역사비화 히스토리아 2020년 4월 1일자 방영분.
잘 배웠습니다. 좀 어렵네요..
다도도 비용이 많이 드는 취미인가요??
@@samurairomance 비용은 마음가짐에 달렸습니다. 왜냐하면 다기의 종류도 천차만별이고 가격도 아주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만원남짓한 물건도 있고 수백수천짜리도 있지요. 차는 어떤 차를 마시냐에 따라 다르지만 이것도 가격차이가 아주 크고요. 일본 말차를 예를 들자면 똑같은 다원 제품인데도 등급에 따라 40그램 한 통에 수만엔짜리도 있고 수백엔짜리도 있습니다. 좀 차좀 만들어봤다는 다인들 말로는 확실히 맛이 다르다고 합니다만 저는 잘 모르겠네요. 그냥 적당한 가격대의 적당한 제품에서 가성비 좋은걸 찾는걸 좋아합니다. 다기도 구색만 좀 갖추고 가끔 골동품이나 명물중에서 저렴하게 경매로 나오는거 지르는걸 좋아하고요.
제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초기비용으로 다완 두점(우리나라 산청다완, 고려청자) 해서 7만5천원, 차를 젓는 차선 12000원, 차시 3000원, 일본식 옻칠차통 32달러, 말차는 국산으로 7000원 해서 15만원 남짓 썼었습니다. 제 최초의 다기였지요.
잘보고갑니다 시체소유도 이권다툼이 심했겠군요.
저렇게 쓸데 없이 절차 주의니까 현재까지 도장과 팩스가 안없어지지
정말 당황스러운 문화입니다. 도장과 팩스....
카타치라는 형식을 중시하는 문화가 아직도 여기 저기 엄청 많이 남아 있죠. 스모만 봐도 실제 시합 시간은 짧고, 온갖 퍼포먼스로 시간을 다 보내죠. ㅎㅎ
이 동네 기준으로는 그나마 시체를 배는 연습에 사용하는건 그나마 양심적인 것일지도 모릅니다. 도검 시험을 위해 한밤 중에 지나가는 불운한 사람을 습격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니까 그나마 죽은 사람을 배는건 양심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분명 있었을 것 같습니다. 무연고자가 그 대상이 되기 쉬웠겠지요.
쥬우지 오리라고 사전에도 있습니다. 십자로 같은 곳에 숨어 있다가 만만한 행인 지나가면 새 칼 성능 테스트했다는....
잘 보았어요. ^^ ㄷ ㄷ
결국 가로로 써는가 세로로 써는가의 문제.......
시체는 두구를 사용하는건가요?
일곱구 까지 겹쳐서 한번에 베는 타메시기리에 대한 기록도 있습니다. 여러 구를 겹쳐 베는 것도 일반적인 타메시기리 방법 중 하나였지요.
@@samurairomance 아 몇구를 베느냐에 따라 검의 평가가 올라가는거군요 ㅎㄷㄷ
미야모토무사시 영상은 왜없음????????
제가 일반적인 이야기는 잘 안다루려고 합니다. 뭔가 특이한 소재를 발견하면 그 내용을 중앙에 두고 인물 이야기를 배경에 넣는 편인데... 아직 무사시는 그런 컨셉 내용을 못찾고 있네요.
@@samurairomance 아그러시군요........미야모토무사시 (신멘타케조) 에 대해서 대부분 이름만 알뿐 이야기는 대부분 잘모르는데.......그래서 일반적이지는 않지 않나 싶습니다...........흥미로운 부분도 많을것같구요.........아무튼 알겠습니다.........
고독한 참수자, 무한의 주인
야마다 아사에몬은 은혼에서 패러디 된 걸로 처음 알게 되서 나무위키를 보며 좀 알게 됐네요. ㅎㅎ
은혼 이야기가 종종 나오던데.. 은혼이 뭐죠??
일본만화 작품중 하나입니다
@@hsp3388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samurairomance 주인장님은 일어를 굉장히 잘 하시니 은혼 애니메이션의 기상천외한 패러디들을 보시면 배꼽을 잡으리라 생각합니다. 강추입니다. 배경도 메이지 이후고 콘도, 히지카타, 오키타 등 신센구미 3인방 다 나오고, 키헤이타이의 타카스기 신사쿠, 사카모토 료마, 카츠라 코고로도 나오니 초반 한 십여화 까진 좀 유치하나 그 다음부턴 미친듯이 빵빵 터집니다.
일본만화 지고쿠라쿠(한국발음 : 지옥락)에서도 저 야마다 아사에몬 가문에 대해서 자세히 나오더군요 참수, 시체해부, 시체부위를 통한 환약제조 등 다양한 업무 업종을 가진 집안으로 묘사되었다는..
정확하게 묘사했네요. 열거하신 내용 중 시체해부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만, 一条龍興님 댓글을 보다보니, 시체가 부족해진 의사들이 야마다의 타메시기리가 있는 날이면 와서 참관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만화가 아주 사실적인 스토리 라인을 잘 잡았군요..
별 희한한 직업이...
란 사실이 멋져보이나요? 시대상황을 무시하고 야만과 문명을 구분짓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하지만... 글쎄요. 죄를 지은 사형수나 적 포로였다해도.. 사람의 시체를 고기덩이처럼 실험도구로 쓴다는 발상으로 볼때 과거 열도의 왜인들은 도저히 인간에 대한 예를 찾기 힘들어보입니다.
과거 죄인을 참수하는 현장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이를 흥미롭게 구경했다는 풍속은 동서양에서 흔히 있는 일이긴했지만 이는 죄를 묻고 이를 단죄하는 행사였습니다. 죄값을 다 치른 시신을 도검류 성능 실험하려고 훼손하는 사례는 역사에서 찾기 힘듭니다. 이런 일이 있었다고해도 이걸 암암리에 했을거고... 싸이코 패스집단처럼 인체실험을 이렇게 책까지 써가며 체계적으로 했다니...일제시대 731부대가 행한 범죄행위도 그 뿌리가 겦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장기 이식수술에 맞춰 시행되는 파룬궁 수련자 사형집행이 생각나네!!!
신장위그루에 갇혀있는 사람들의 장기는 "코셔"의 의미를 갖고 무슬림 고객들에게 이식되고 있다는 의심도 받고 있지요.
직업은 소중 한것이여.
우리나라에서는 망나니라고 그냥 천대했는데 일본은 이조차도 지위가 있고 산업과 연결되는군요...... 참나...
유교.... 조선시대 일부 양반 남자들만 향유했던 이 종교가 아직도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을 지배하고 았지요. 잘 모르겠습니다. 이게 전통인지 폐습인지....
악취미 칼 자랑으로 밖에는... 비용 비싸고 절차 번거로운 저것들을 행하는 주체들이 과연 위급하게 칼 뽑을 일 있을까 참
막부말기 전에는 평생 칼 뽑을 일이 한 번도 없었겠지요. 명품 좋아하는, "메이부츠고노미(名物好み)"의 일종 아니겠습니까.
2020🐯10😊26
굿.🍒🍨🎂🥯🍑.
머리모양이 특이하네...어떻게해야 저렇게되나?
고독한 참수자 생각나네.
멧돼지 잡아서 하면되지 사람을 가지고 저리 해야 하나요?
이해가 안되는 일본문화네요
동감합니다.
반인륜적이지만 ㅡ사실을 끝까지
정확히파헤치는 일본인들 습성
ㆍ저근성으로 기계문명정점을 찍었슴니다
ㅡ 미화는안니고ㆍ근성을 배워이겨야
합니다
당시엔 동물을 도축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사문화되긴 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금기로 남아서 그런것도 한 몫합니다.덴무 덴노가 675년에 만든 법에서 근거한건데 뭐 그닥 잘 지켜진 법은 아니지만 이후로 채식을 강요하는 문화가 메이지 시대까지 이어진건 사실이니깐요. 웃긴건 덴무덴노는 지 조카 배떼지에 사시미 쑤셔넣고 그 자리에 올랐으면서 동물 죽이지 말라고 ㅈㄹ한거 보면 일본인들의 이런 문화는 이해가 안되는것도 사실입니다. 어느 나라나 잔인한 문화나 부끄러운 역사는 있는 법입니다만, 일본의 이런 문화는 실용성과 이익에 해를 주면서까지 진행된다는 점에서요
일단 첫번째로 아사에몬같은 A급 참수가문이 타메시기리에 사용하는 도검은 일반적인 제품이 아니며 실제로 5대 야마다 아사에몬은 그동안의 경험과 역대 아사에몬의 기록을 토대로 한 회보검척(懐宝剣尺)이라는 일종의 일본도 등급 서적을 만들기도 했죠
두번째로 멧돼지와 같은 동물들의 뼈는 사람과는 달리 밀도가 높아 현대공법으로 만드는 절삭기로 자르며 과거에는 도끼로나 뼈를 쪼갤수 있었다는걸 생각하면 동물을 사용해 타메시기리를 고가의 도검으로 하다가 도검이 손상되기라도 하면 시참자 자신의 신변문제 또는 배상과 같은 금전적 문제가 생길수 있죠. 그러니 일본도의 강도같은 부차적인 이유를 떠나서 더더욱 쓸수가 없죠. 예를들어 영화 분노의 질주에서 등장한 슈퍼카들은 정품이 아니라 전부 레플리카였죠. 진짜 정품 슈퍼카로 했으면 더욱 실감나고 좋았겠지만 그렇게 안한 이유는 뭐 잘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세번째로 당시 일본에서 멧돼지는 고급 식재료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일본은 불교국가여서 메이지 시대 이전까지 육식을 안했을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일본은 지방분권 봉건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각 지역마다 달랐죠. 사츠마 지방(=가고시마 현)만 해도 오늘날 지역 특산물이 흑돼지고기(=쿠로부타)일 정도로 돼지고기 섭식문화가 오래전부터 발달된 지역이니 말다했죠. 그리고 일단 상류층인 덴노, 귀족인 공가(=쿠게)부터 육고기 잘만 먹었죠. 그러니 사냥으로만 잡을수 있는 멧돼지같은 고급 식재료를 시참용으로 쓸순 없죠.
@@invitebyte3278 심오한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아는게 없어서 더 대꾸할 말이 없네요
일본인들의 칼에대한 집착이 정말 엄청났음을 느낍니다
가끔 일본사람들보면 쓸데없는것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한다는 것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기질 때문인지 메이드 인 재팬하면 일단 신뢰부터 하게 되는거 같습니다
세습주지 얘기 도 좀
세습주지가 뭔가요??
@@samurairomance 절 물려받는 중 가문이요
@@Ichizo_tatchan 류조지 뭐 이런 것도
@@Ichizo_tatchan xx원 이런 성씨도 그런지..
일본의역사적 왜곡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식민사관에 쩔어있는 지금의역사관으로 잘못된왜곡을 범하는 채널이 아니길 기대합니다 , 매의 눈으로 보고있습니다!많은걸 배우고 ,검증하며 공부하고있습니다!
글쎄요. 저는 한국의 역사왜곡을 더 심각하게 바라봅니다. 이 역시 객관적 자료로 봤을 때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거짓말에 만연된 사회인지 인지하고 계시다면 우리가 당연시 배워 온 내용에도 많은 거짓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되실 겁니다. 이 역시 한국인의 시각이 이닌, 최대한 건조하게 우리 역사를 바라봐야 보이겠지요.
사기범죄가 일본의 100배. 인구대비로는 300배나 많은 나라가 한국이며, 사기범죄 비율이 세계 1위인 나라가 한국입니다.
일본 내 외국인 강력 범죄 순위에도 항상 상위권에 드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요즘은 베트남, 중국 등에 많이 밀리긴했지만... 임금 체불액도 일본 대비 10배가 넘는 나라이고요. 일본에서 불법체류 하며 돈버는 한국인들 비율도 압도적입니다. 몸파는 여자들은 셀 수도 없고요.
일본에 유학중인 한국 학생들에게 알바를 한다면 일본인 가게에서 일할래, 한국인 가게에서 일할래를 묻는다면 대부분 일본인 가게를 택할 겁니다. 저도 그랬고요. 한국인 사장은 신뢰하기 어려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거짓말이 만연된 나라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너무 많은 것이 일그러져 있고 계속 진행 중이지요.
완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일본 공부를 많이 하면 할 수록 일본을 싫어하는 한국인 비율은 높지 않은데 비해, 한국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한국에 비판적으로 바뀌는 일본인 비율이 높은 경향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개인 의견이지만...
그 이유를 일본 친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10년 넘게 공부하고 지금은 대학교수로 일본에서 활동하는 동갑내기 친구입니다. 한국을 공부하면 할수록 그 거대한 거짓의 산이 보인다고 하더군요.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이만 마치겠습니다.
@@samurairomance 지금 처럼 객관적이고 사실에 근거한 자료들을 계속 올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글에 크게 공감합니다. 지금도 일본의 소위 '현대 무사'들은 타타미를 베면서도 사람을 베는 마음 자세로 합니다. 한국의 무술인들도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인들의 시각에서 아주 야만스럽게 보이겠지만, 조선시대에는 단순히 목을 치는 정도가 아니라 능지처참 같은 처절한 형벌도 있었습니다. 일본을 미화하는 것도, 조선이나 한국의 국뽕에 취하는 것도 아닌 '사무라이 로망스'의 객관적인 유튜브를 응원합니다.
@@samurairomance 맞습니다.
프로세서 → 과정
쉽고 정확한 한국어를 쓰면 좀더 쉬운 강의가 될거 같습니다.
닉네임 보고 고개가 끄덕끄덕...알겠습니다.
@the Death angel of GOD 영문음을 한글로 표기하는데 있어 뮐 모르고 시비군여..
ㅅㅂ 썸네일보고 거시기 자르는줄 암
힘이 풀리네요. ㅋ
타메시기리를 위해 시체 구하는 그러니까 처형을 결정하는거 보면 아무나 야마다 습명 할 수 있는게 아니란걸 알수 있네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 되어야 그걸 이어 받을 수 있을지도? 한때 신선한 인체 장기를 공급하기 위해 처형일과 사형수를 고르던 중국이 생각나서요.
그리고 얼마전에 알게 된 잡학상식인데 일본 헌법에 연좌제 금지가 없다고 하네요. 범죄자 및 그 가족에 좀 각박하고 잔인하게 대하는게 그래서라고.(패망 후 전범배제를 위해 미군정이 태클을 안건게 그대로 쭉 내려와서 개별법에서 하나하나 연좌 금지를 넣어야 하죠. 전범은 그래서 정치 복귀 가능했음). 에도 시대 때도 시체를 저렇게 쓰는게 좀 잔인한 처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죄짓고 살면 죽은 뒤에도 괴로울지도?
할복도 그렇지만 타메시기리도 절차가 너무 복잡합니다. 물론 의뢰하는 상대가 보통 분이 아니니 그런 점도 감안해야 했으나 에도시대는 어째서인지 예법이 너무 복잡하고 까탈스러워서 높은 사람들도 살기 퍽퍽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양이나 조선도 높은 계급은 복잡한 예절과 매너를 선보일 줄 알아야 욕 안먹는 사회였습니다만 에도 막부와 그 이후의 일본만큼은 아닐겁니다. 추신구라가 원인은 여러 추측이 있지만 표면적으론 저런 복잡한 예법 강조하는 사회와 연관이 있다죠. 저걸로 밥 벌어먹는 사람도 있으니 더 매뉴얼화 되었을 거 같습니다.
그래도 오래전부터 내려온 터부와 지식에 대한 의문을 갖고 금기를 해제하려는 분위기와 그걸 용인하는 막부의 결정은 부럽더군요. 난학 뿐만 아니라 유학에서도 일본인들은 다양하게 접하고 뭐 하나만 해야한다 이런건 없었다고 합니다. 중국과 조선에서 탄압과 이단시 되는 양명학과 조선에서 수입한 성리학이 동시에 배움의 장이 열리고 연구되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는데 이게 메이지유신의 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고요. 정약용 선생도 일본의 유학에 대해 진일보했음을 인정하고 한탄했다고 합니다.
사실 조선이 외국에 대해 깜깜무소식이었단건 편견입니다. 왜관과 기타 루트(역관)를 통해 일본이나 중국에서 들여오는 문물(주로 책)을 접하기도 하고 다소 늦더라도 해외 소식을 알기도 했습니다. 천주교가 재야 양반사족들 사이에서 붐이 있었다던가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로 시작되는 개화파가 나올수 있었던게 그런 배경이죠. 다만 우린 의문을 갖고 있어도 그걸 깨부술 수 있는 분위기가 전혀 없었다는게 문제였죠. 천주교 믿은 사람들도 자기 목숨 내놓아야 했고요. 별거 아닌거 같은 문제지만 급변하는 해외 정세 속에서 조선이 미끄러져 버린 이유였다고 봅니다.
요즘 페미와 급좌파 정치가들이 힘을 갖게 되면서 사회분위기를 아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사람들이 서로 싸우게 만들고 규제는 강화되고 생각의 표출도 막는다는게 조선말기와 다를바 없다고 봅니다. 이젠 하다하다 못해 가볍게 즐겨보는 웹툰까지도 작가가 얘네들 무서워서 제대로 못그린다죠. 한 컷에 한밤 중의 달을 그리고 힘든 사회라고 썼다는 이유로 작가에게 대통령 모욕한거냐면서 반성하고 수정하라는 네티즌(누구들인지는 뻔하죠)들이 나대서 뉴스까지 나오는거 보면 쓴웃음 짓게 합니다.
야마다라는 이름을 제자들과 자식 중 뛰어난 사람에게 습명한 이유가 말씀하신 부분에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신적인 면과 실력을 모두 갖추어야 하니까요.
야마다 가문의 여자들도 장난 아니었던 것 같아요. 지하 저장고에서 시체를 선별하는 작업은 야마다 가문의 여자가 했다는 기록(보다는 썰에 가깝겠네요)도 있고요.
참수한 머리에 구더기 폈는지 확인하고 오라는 말 듣고, 야마다 부인이 다녀왔는데, 혹시나 해서 머리 수급 2개를 들고와 선선한 자리에 뒀다가 머리 위에 두고 잠이 들었다라거나...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대한민국은 20년 전 보다 후퇴하고 있습니다. 규제가 생업인 단체를 수 백개 만들어 놓은 결과물이지요. 생신적이지 않은 조직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규제를 만드는 것 이외에는 없겠지요.
작금의 규제 상황은 국가를 망조에 접어들게 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는 "결과물"이 식민지여서 그런지... 저도 항상 비판적이네요. 과정이야 어떻든, 식민지로 전락한 망한 왕조라는 결과물.
@@samurairomance 규제 천국 한국이죠 패미가 한국을 시궁창으로 만드네요
암튼 에도시대의 형벌이라는 책 읽어보세요 내용은 유투브에 올리기는 적당하지는 않겠네요 아마 사무라이님은 이미 다 아시는 내용일 수도 있겧네요
조선시대에는 서양인이 조선에오면 청에 보고해야했고 보고가 안되면 반역을 준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후금이 명나라와 전쟁시 선교사들이 무기개발에 도움을 많이 줘서 조선에서의 서구인의 접근을 통제했습니다. 그리고 몇번의 기회가 있였지만 일본의 방해로 무산된적이 몇번있였죠. 동인도회사와의 접촉시 일본에서 조선과 거래시 일본은 동인도회사와 거래중지를 통보했고.
일본으로 향하던 영국함선이 조선에 포류할때도 비슷한 방법으로 방해를 했죠. 과거나지금이나 일본은 우리를 방해만하네요.
에도시대 형벌은 다른 리소스를 통해 대충 알고는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양쪽 의견을 다 들어봐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망해버린 조선후기 사회상을 외부 요인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어서요.
동인도 회사 관련 이야기를 시기와 함께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을까요?
동인도회사가 일본에 접근했던 시기와 그 당시 일본 정세를 맞물려 "일본이 동인도회사를 협박해서 조선과의 관계를 방해했다" 이야기의 진위 여부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인도 회사와 네덜란드 상인이 애초에 일본에 접촉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실텐데...
그 이유를 가지고 짐작래 보면, 조선에 접근할 이유는 크게 없어보입니다만.. 어쨌든 제가 잘 모르는 스토리인데 관련 이야기와 근거를 알고 계시면 답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키로의 오니부교는 귀신들을 다스리는 관리라는 뜻인가.. 호오
앗 1빠?
코와이
야만의 문화
사람죽이는 가문이네
한국의 망나니와같은 존재인뎅
1등
이건 뭐 아무짝이 쓸모없는 풍습이네ㅋㅋㅋㅋ
으사양반
개같은 세상.. 피 토하는 음악..ㅎㄴ
저런 일본문화를 정작 일본사람들은 얼만큼 알고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