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안공주. 세종대왕보다 더 총명한 모습을 보여 태종이 무척이나 아꼈던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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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9 дек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35

  • @zzang-mathis
    @zzang-mathis 8 месяцев назад +34

    경안 공주는 태종 부부가 아들 셋을 연달아 앞세우고 나서 낳은 바로 다음 자식이기 때문에 바로 밑 동생인 양녕 대군과 더불어서 부모 입장에서는 남다른 사랑을 줄 수밖에 없는 자식이었죠.
    그런 딸이 착하고 똑똑하기까지 하니 동생들 입장에서는 정말 의지가 되는 누나였을 것이고, 부모 입장에선 천금 같은 딸이었겠죠
    예전에는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권력이 강해도 높은 확률로 자녀들을 앞세워야 하니 보통 정신력으로는 정말 버티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다른 자녀들 보면서 버티었겠지만

  • @user-byuljeonnam
    @user-byuljeonnam 8 месяцев назад +49

    세종이 극찬한 걸 보면 상당한 재능같긴한데... 기록이 없으니 알수없음...

    • @inyeobseo9369
      @inyeobseo9369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세종이 가장 아낀 딸 정의공주는 단종 죽일때 세조의 편에 가담을 하죠. 세종이 하늘에서 이를 알았다면 이들에게 뭐라 하였을까요? 당시 세종의 자녀들은 중립을 지키기가 불가능하여 둘로 나뉘게 됩니다. 정현옹주의 남편은 폐비 정순왕후를 노비로 달라는 말까지 하죠. 이게 신숙주로 와전됩니다.

    • @볼빨간갱년기-l8f
      @볼빨간갱년기-l8f 8 месяцев назад +4

      태종 이방원의 자식들은 다 똑똑했음.

    • @inyeobseo9369
      @inyeobseo9369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볼빨간갱년기-l8f 양녕대군은 민하지도 착하지도 않은 평민보다 못한 왕자였죠. 태종이 죽여도 부족함이 없는 왕자..다른 집안에게는 무자비하고 내혈육에겐 한없이 자애로운 이중잣대..

  • @inyeobseo9369
    @inyeobseo9369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2

    최연소 유배 왕손인 권총은 여자 문제로 숱하게 탄핵을 받았으나 세종이 막아주었고 성종때 지중추부사 까지 올라 68세 까지 장수합니다. 건방진 왕손 치고는 벌을 거의 안받은 경우입니다. 실록에서도 철이 없어 정신 나간 아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 형 권담은 1439년 죽으니 단명한 편입니다.

  • @김세열-p9v
    @김세열-p9v 8 месяцев назад +7

    어릴적부터 세종을 따끔하게 혼냈던 그 누나였군요

  • @janetk5768
    @janetk5768 7 месяцев назад +5

    저런 군주시대에도 국법때문에 그 소중한 손주 얼굴조차 못보는 막강권력의 태종이었는데..
    지금은 민주국가라면서 온갖 사기질 범죄 저지른 사람을 수사 한 번 안하고 지네 멋대로네요.

  • @mmmim-rb9sf
    @mmmim-rb9sf 8 месяцев назад +3

    ❤❤❤

  • @타키수녀님
    @타키수녀님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9

    경안공주의 직계 후손이 공빈 김씨죠 .

    • @이지웅-z9n
      @이지웅-z9n 8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남편이 권씨인데 왜 선조후궁이자 광해군어머니인공빈김씨?

    • @타키수녀님
      @타키수녀님 8 месяцев назад +6

      공빈 김씨의 모후 권씨가 경안공주쪽 후손이에요 .

    • @테라노돈1
      @테라노돈1 8 месяцев назад

      ​@@타키수녀님 공빈 김씨도 양반가 였군요

    • @볼빨간갱년기-l8f
      @볼빨간갱년기-l8f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조선시대 혈통을 보면 정말 드라마틱한게 많음.

    • @jinsukcha5081
      @jinsukcha5081 8 месяцев назад

      공빈간택후궁출신으로 압니다,인빈이 오히려 성은후궁이구요.즉 성은후궁출신으로 왕이된건 경종과영조였죠,그나마 경종은 친조부가 역관으로 중인출신이었는데 영조는 뭐
      더구나 유부녀였었다는 소문도있었으니 영조가 느꼈을 부담감은 컸을겁니다.

  • @왕눈웃음
    @왕눈웃음 8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막내랑 하늘과 땅차이네

  • @토닥핑_토닥
    @토닥핑_토닥 8 месяцев назад +2

    23세인데 애가 셋... 아이고...😢

  • @씨박-e9h
    @씨박-e9h 8 месяцев назад +2

    권총?

  • @송준호-h7v
    @송준호-h7v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아들만7명 셋 요절

  • @ninek2674
    @ninek2674 8 месяцев назад +2

    태종 보다는 태종처가가 학자 집안이라 다들 그머리를 닭았을듯

    • @구슬-f7c
      @구슬-f7c 4 месяца назад +2

      태종은 조선유일하게 과거 급제자 출신왕입니다 물론 고려시대 과거지만요 그만큼 우리가 생각하는 무인적기질보다는 학자적 기질이 강한왕입니다

  • @잘랄웃딘멩구베르디
    @잘랄웃딘멩구베르디 8 месяцев назад +7

    의원들 존 나 불쌍하다 ㅋㅋㅋ 신분강등에 처맞고

  • @imapuella231
    @imapuella231 8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아들 6명낳은거 아닌ㄱㅏ여 3 명은 요저ㄹ하고 3명은 살았고

    • @DHYIM-m4p
      @DHYIM-m4p 8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정확히는 7남이었습니다. 양녕대군 위로 세명의 자식이 어린 나이에 요절로 떠났으니 실제로
      맏이인 양녕대군은 4남이었고 효령대군, 세종 대왕이 된 충녕대군에 마지막으로 태종이 왕이
      된 이후 원경왕후 사이에서 늦둥이로 태어난 성녕대군이 있죠. 태종 실록에 문헌을 찾다보면
      성녕 대군에 대해 태종이 얼마나 늦둥이 아들을 아꼈는지에 대한 대목이 좀 실려 있습니다.

  • @SungrueWang-dh9nk
    @SungrueWang-dh9nk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유전자 무슨일

  • @천리안-u5v
    @천리안-u5v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왜 권근에 하륜이 들어가죠

  • @zimo-d3c
    @zimo-d3c 8 месяцев назад +3

    그렇다고 한글 만들었다는 개소리는 있지도 않았음

    • @persephonekore
      @persephonekore 8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당연하죠. 한글 만들기 한참 전에 돌아가셨는데

  • @kcha5109
    @kcha5109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유학 진짜 아무짝에 쓸모없는 쓰래기 학문

  • @매니아썬
    @매니아썬 8 месяцев назад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