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와 알아보는 "하루2잔 아메리카노의 효능 11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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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1 сен 2024
  • 에스프레소에 물을 넣어 연하게 마시는 커피이다. 적당량의 뜨거운 물을 섞는 방식이 연한 커피를 즐기는 미국에서 시작된 것이라 하여 ‘아메리카노’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메뉴 중 하나이다.
    에스프레소에 쓰이는 원두와 물의 양에 따라 커피 맛이 천차만별이다. 참고로 물을 넣어 희석시켰다고 해서 커피 맛도 흐려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뜨거운 물이 맛을 더욱 부드럽게 살려 주어 커피 본연의 특징을 강조해 주기도 한다. 머그잔에 적당량의 물을 붓고 난 후 살살 돌리면서 에스프레소를 부어주면 진한 크레마가 살짝 떠서 더 맛있어 보인다.
    1. 에스프레소 30㎖를 추출한다. 혹은 리스트레토 60㎖를 추출한다.
    2. 머그잔에 뜨거운 물 250㎖를 붓는다.
    3. 샷 글라스를 살살 돌려가며 에스프레소를 물 위에 붓는다.
    높은 온도의 물로 아메리카노를 만들 때에는 리스트레토로 즐기는 것도 좋다. 쓴맛이 사라지고 기분 좋은 신맛과 단맛, 구수함이 조화를 이룬다. 만약 프렌치프레스로 내리는 경우라면 무조건 신선하고 좋은 원두를 써야 한다. 원두가 간직한 모든 맛들이 터져 나와 잡맛까지도 그대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는 유럽에서 처음 마시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것은 1890년경이다. 1896년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던 고종 황제가 러시아 공사 웨베르의 권유로 커피를 처음 마셨다고 전해진다. 그 뒤 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덕수궁 내에 ‘정관헌’이라는 최초의 서양식 건물을 지었다. 그곳에서 신하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다과를 즐겼다. 당시의 커피는 네모난 설탕 덩어리 속에 커피 가루가 들어 있었다. 그 설탕 덩어리에 더운 물을 부으면 설탕이 먼저 녹고 그 속의 커피 가루가 퍼지며 색깔을 냈다. 그 뒤 8·15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미군 부대를 통해 인스턴트 커피가 들어왔다. 동서커피는 1968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커피를 생산했다.
    다방은 1910년경에 생겼다. 1920년대에는 서울 명동, 충무로, 종로 등지에 다방이 본격적으로 선보였다. 1927년, 우리나라 사람이 경영한 최초의 다방 ‘카카듀가’가 문을 열었다. 다방에는 문화예술인들이 주로 모였다. 요절한 천재 시인 이상(1910~1937)은 동거녀 금홍과 함께 1933년 종로에 ‘제비’ 다방을 개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70년대는 다방의 르네상스였다. DJ(Disc Jockey)가 있는 음악다방은 다방문화를 선도했다. 1980년대에는 커피 전문점이 등장하고, 1990년대에는 커피 전문점이 고급화됐다. 스타벅스(STARBUCKS)가 1999년 이대점을 시작으로 한국에 상륙한 이후 토종과 해외 브랜드 커피 체인점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우리나라 커피 시장의 규모는 2011년 커피 전문점, 커피 음료, 인스턴트 커피 등을 포함해 약 3조 7000억 원에 이른다.
    커피는 세계 60억 인구의 절반 이상이 즐겨 마시는 기호음료다. 900년 무렵 페르시아의 내과의사 라제스(Razes)의 의학 서적에 ‘커피’라는 말이 최초로 등장한다. 커피를 공개적으로 처음 언급한 사람은 11세기 페르시아의 의사이자 철학자였던 아비세나다.
    커피의 식물학상 속명은 ‘코페아(coffea)’. 커피나무에서 열리는 커피 열매의 씨다. 이 씨를 우리는 원두(Coffee Bean)라고 부른다. 커피나무는 관목에 가깝다. 잎은 월계수를 닮았다. 커피가 처음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갈 당시 커피는 카와(qahwa)로 불렸다.
    커피의 카페인은 독일의 화학자 룽게가 1819년 처음으로 추출해냈다. 150mg 인스턴트 커피에는 60mg의 카페인이 들어 있다. 같은 양의 원두커피에는 85mg의 카페인이 들어 있다. 유럽연합(EU) 식품과학위원회는 1999년 “임신 중에도 하루 300mg 정도의 카페인 섭취는 인체에 영향이 없으며 천식 환자의 호흡 기능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것이 커피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당시 커피 공급이 중단되자 나폴레옹 부대는 커피 대신 치커리를 마셔야 했다. 카페인을 섭취하지 못한 탓에 몽롱한 정신으로 싸우다 보니 패배했다는 설이다. 18세기 터키 여인들은 커피를 제때 대주지 못하는 남편과는 합법적으로 이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커피 하면 자연스레 유럽이 떠오른다. 커피를 프랑스어로 카페라고 부른다. 유럽의 100년 이상 된 카페들이 지금도 성업 중이다. 볼테르, 루소, 빅토르 위고 등의 유명 문인, 화가, 정치인들이 카페에 드나들었다. 유럽에서 카페는 커피를 마시는 곳 이상의 장소였다. 유명 인사들이 모여 담론을 나누던 장이었다. 오죽하면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카페는 자유를 향한 길이다”라고 말했을까.
    그렇다면 커피의 원산지는 유럽일까? 그렇지 않다. 유럽은 커피 수입국일 뿐 원조는 아니다. 15세기 오스만투르크의 빈 침입으로 유럽에 커피가 퍼지기 시작했다. 중남미의 브라질은 총생산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의 커피 산지지만 원조는 아니다. 아시아 최대 커피 생산국인 인도네시아도 아니다. 정답은 아프리카. 아프리카의 아비시니아(현재의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커피가 발견됐다.
    에티오피아에서 염소를 기르던 목동 칼디(Kaldi)의 얘기가 커피 기원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홍해 근처의 수도원 언덕에서 염소를 돌보던 어느 날, 칼디는 염소들이 덤불에서 붉은 열매를 조금씩 갉아먹으며 즐거운 듯 춤추며 도는 것을 보았다. 이상하게 여긴 그는 그 열매를 따서 씹어보았다. 그러자 독특한 맛이 나고 기분이 좋아졌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승려들은 커피 열매가 정신을 맑게 하고 피로를 덜어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후 수도승들은 기도할 때 졸음을 쫓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
    커피는 토양과 기후가 중요하다. 적도 근처의 해발 800m 되는 서늘한 고지대가 최고 입지다. 평균 강우량이 1500mm 이상인 열대 및 아열대 지역도 좋은 조건이다. 소위 ‘커피벨트’는 남북 회귀선 사이의 적도 아래위 25도 이내다. 중남미에서는 브라질·콜롬비아·자메이카·멕시코·과테말라, 아프리카에서는 에티오피아·케냐·탄자니아, 아시아에서 인도네시아·베트남·인도 등이 포함된다. 주요 커피 생산국이다. 커피는 현재 약 70여 개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커피가 세계인의 음료로 자리 잡기까지는 이슬람교도의 역할이 컸다. 역사가들은 11세기 초에 아라비아의 무역상들이 예멘으로 커피나무를 가지고 오면서 커피 재배가 시작됐다고 본다. 터키로 전달된 커피는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널리 음용됐다. 아라비아 사람들은 커피를 최초로 경작했다. 그들은 주요 수입원인 커피나무의 유출을 철저히 금지했다. 커피 열매를 삶거나 불로 건조하지 않으면 다른 지방으로 가져갈 수 없었다. 17세기 들어 네덜란드 상인이 인도의 순례자 바바 부단(Baba Budan)으로부터 7개의 커피 종자를 입수하면서 처음으로 유럽인의 손에 들어왔다. 이후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마라바르 지방과 인도네시아 자바 등에서 커피가 재배됐다. 이로써 네덜란드 식민지들은 유럽에 커피를 공급하는 커피 생산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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