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배경을 설명해주지 않으면 정말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예를 들자면 한국군 주무장이 K2 소총이지만 실제 가장 중요한 주 전력은 K9 같은 자주포나 박격포입니다. 마찬가지로 당시 왜군의 주 무장은 창이었지만 실제 가장 중요한 주 전력은 조총부대였습니다. 조총이 아니었으면 조선 침략은 불가능했습니다. 실제 조선군 주요 장수들 중 전사한 분들은 거의 다 조총에 맞아서 사망했습니다. 이순신 장군, 황진장군, 김시민 장군 전부다 조총에 당했죠. 왜군 조총 부대가 강력한 화력으로 조선군 주전력을 궤멸시키면 붕괴된 전열로 냉병기로 무장한 왜군이 밀고들어와 난도질을 하는 전술을 주로 많이 사용했습니다. 주전력이 궤멸한 상태에서 전과확대에 저런 냉병기가 많이 사용되다보니 당시 전쟁을 잘 모르던 상당 수 양반들의 눈에는 왜군의 능력이 과대평가된 면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에 일개 영주인 사쓰마 번이 명색이 국가였던 오키나와를 쉽게 먹은 것도 사실 그들이 대단한 사무라이 라서가 아니라 조총부대를 잘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일반 아시가루 군사들도 창병이든 총병이든 다들 카타나 한자루씩은 차고 있었으니 돌격 + 방어 + 수성 + 공성에 모두 우세였죠. 거기에 100년이상의 내전에 휘말린 베테랑들이였으니... 우리 조상님들도 어떻게 보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저런 전투병기들을 상대로 고전해서 결국에 막아내긴 했으니
그냥 훈련 한번 제대로 받은 적 없는일반인들이 조선의 병력입니다. 방군수포현상, 군적수포제등으로 인해 3년에 한 번가는 수자리를 13개월에 두필내는 군포로 때우고 어쩌다 한 번 있는 동원훈련도 반나절만 제식훈련으로 때우는등. 그럼에도 그들이 이치전투, 행주성 전투, 1차 진주성 전투등에서 100년 넘게 전투로 단련된 왜병들을 상대로 싸우고 승리까지 했으니 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아시가루들의 장창 사용 방법은 찌르기가 아닌 휘두르기였죠. 애초에 서로 창벽을 세우다보니 접근이 사실상 불가능했고, 창벽 아래를 파고 드는 방식으로 싸우다 보니 찌르는것이 아닌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서 싸웠습니다. 장창은 길이 때문에 무게가 엄청나 맞는 순간 두개골이 깨져나가니 접근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워져 실제 사상자 비율을 보면 활로 죽은 병사가 대부분일 정도로 창벽은 위력적이었죠.
@@김명기-i4u 음 글쎄요. 선조실록에 보면 전쟁 중에 화약 생산이나 정밀한 기계공학의 부재로 인한 기술적 난관 때문에 사실상 힘들다는 보고를 받으면서도 꾸준히 항왜를 통해 조총을 개발, 보급하라는 거의 독촉에 가까운 지시가 꾸준히 내려간 걸로봐서 그건 아닌 듯 합니다.
드라마나 영화가 사람을 망침ㅋㅋ 조총이란 무기를 10여만면의 병력에게 사용하게 하려면 당장 들어갈 화약양만해도 엄청남 염초등도 거기다가 가장 중요한건 병기란건 아무리 발달을 해도 결국 규모의 경제 즉 근대이전에는 개별 구매가 거의 원칙이었음 그런대 12만 가량의 일본 공격군중 단 10% 1만2천명을 철포부대로 무장한다 처도 불가능 ㅋ
뭔가 한국가의 역사를 따로 뛰어놓고 보면 이해가 안되는데 오다노부나가가 그리스 역사를 읽었을 것 그리고 그의 전술에 영향을 준 인물은 알렉산더 대왕이다 이 가설을 놓고 보면 오다노부나가의 전술이 많이 이해되는 부분이 생김 가령 소수로 적진을 뚫고 적장의 목을 배는 전술이라던지 그렇다면 장창의 논쟁도 그리스시대의 장창 논쟁의 연관성을 찾으면 더 재미있을듯 앤드 요즘 만화에 자주 나오는 설정 오드아이 역시 그 원류가 어디일까 생각해보는 것도
아시가루라고 하는 일반 농민병은 창이 주력이고, 일부 사무라이들이나 특수병과들이 칼이 주력입니다. 당연히 병력 비율상 아시가루의 비율이 지휘관인 사무라이보다 월등히 높으니 군대면에서 보자면 창이 주력이 맞죠. 거기에 칼이 아닌 창이나 활을 사용하는 사무라이들도 있었으니 칼 사용 비율은 더 내려갑니다. 칼이 주력이었다고 하는 건 비율 자체는 낮았지만 당시 명이나 조선에 비해 훨씬 위력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인상이 깊게 남아 그렇게 표현되는 경우가 있는 겁니다. 조총도 마찬가지고요.
이건 배경을 설명해주지 않으면 정말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예를 들자면 한국군 주무장이 K2 소총이지만 실제 가장 중요한 주 전력은 K9 같은 자주포나 박격포입니다. 마찬가지로 당시 왜군의 주 무장은 창이었지만 실제 가장 중요한 주 전력은 조총부대였습니다. 조총이 아니었으면 조선 침략은 불가능했습니다. 실제 조선군 주요 장수들 중 전사한 분들은 거의 다 조총에 맞아서 사망했습니다. 이순신 장군, 황진장군, 김시민 장군 전부다 조총에 당했죠. 왜군
조총 부대가 강력한 화력으로 조선군 주전력을 궤멸시키면 붕괴된 전열로 냉병기로 무장한 왜군이 밀고들어와 난도질을 하는 전술을 주로 많이 사용했습니다. 주전력이 궤멸한 상태에서 전과확대에 저런 냉병기가 많이 사용되다보니 당시 전쟁을 잘 모르던 상당 수 양반들의 눈에는 왜군의 능력이 과대평가된 면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에 일개 영주인 사쓰마 번이 명색이 국가였던 오키나와를 쉽게 먹은 것도 사실 그들이 대단한 사무라이 라서가 아니라 조총부대를 잘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세계대전에서 장교 저격 하듯이 쓴것이죠
두까운 갑옷을 관통하기 위해서도 경제적으로도
고급 장교의 갑옷 한벌값이 조총 수십자루 가격이었거든요 또 시대상 고급 장교 확충은 치명적이구요
심지어 일반 아시가루 군사들도 창병이든 총병이든 다들 카타나 한자루씩은 차고 있었으니 돌격 + 방어 + 수성 + 공성에 모두 우세였죠. 거기에 100년이상의 내전에 휘말린 베테랑들이였으니... 우리 조상님들도 어떻게 보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저런 전투병기들을 상대로 고전해서 결국에 막아내긴 했으니
그게 막아낸거냐?ㅋㅋㅋㅋㅋ 국토 전부 유린당하고 그 개무시하던 일본땅 한번도 못 밟아본게?? 국뽕도 정도것해라
ㅇㅈ@@공정빈-z7s
명군 올때까지 런한게 막아낸거냐?ㅋㅋ
일본도 초석은 수입해야 하는데
조총을 주무기로 삼기에는 보급난이도가 어마무시하줘, 그렇다고 화포를 포기하기도 힘드니
걔네 말 오줌으로 질산칼륨 만들지 않음?
@@영나방그건 청나라.
일본은 말 자체가 별로 없었고, 기마병이라고 해봐야 왜란시절엔 장수정도만 타고 싸울땐 내려야 하는 당나귀 사이즈정도만 있었음.
같은 머릿수여도 전투 경험이 있고 없고는 엄청난 질적 차이가 난다는데 그런 애들이 10만 단위로 처들어왔으니 설령 조총이 없었다 한들 고전을 면치 못했을거임
다시 한번 성웅께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ㄹㅇ200년넘게 북방부대 일부 빼고는 평화롭던 군대vs내전으로 단련된 정예병 10만인데
그냥 훈련 한번 제대로 받은 적 없는일반인들이 조선의 병력입니다. 방군수포현상, 군적수포제등으로 인해 3년에 한 번가는 수자리를 13개월에 두필내는 군포로 때우고 어쩌다 한 번 있는 동원훈련도 반나절만 제식훈련으로 때우는등. 그럼에도 그들이 이치전투, 행주성 전투, 1차 진주성 전투등에서 100년 넘게 전투로 단련된 왜병들을 상대로 싸우고 승리까지 했으니 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llllllllllllllllllll6176 그래도 조금더 안정적으로 경상도 라인에서 막았을듯요
일본뿐 아니라 냉병기 시절 알보병의 기본주력 무기가 창이었슴
특히 장창은 적기병 돌격을 막을수 있는수단이라 없으면 안되는 무기였슴
당시 조선은 화포로 무장한 강국 였습니다 무장의 질만 따져도 아시아에선 원탑이였지만.. 이래서 방심은 금물 이란 말이 생긴거 겠죠
전국시대부터 임진왜란,세키가하라까지 창은 왜군에 있어서 집단전을 가능케한 무기이다!!
창이 진짜 좋은무기죠
창을 좋아하는거야 전쟁을 좋아하는거야
사실 아시가루들의 장창 사용 방법은 찌르기가 아닌 휘두르기였죠.
애초에 서로 창벽을 세우다보니 접근이 사실상 불가능했고, 창벽 아래를 파고 드는 방식으로 싸우다 보니 찌르는것이 아닌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서 싸웠습니다. 장창은 길이 때문에 무게가 엄청나 맞는 순간 두개골이 깨져나가니 접근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워져 실제 사상자 비율을 보면 활로 죽은 병사가 대부분일 정도로 창벽은 위력적이었죠.
사람이 모여 방진은 만드는데 공격을 찔러서 하는게 아니라 들어올려서 내려찍는것 자체가 매우 특이한 창 사용법이죠..
내려치기였죠 그래서 졸병들도 창이 머리를 때릴때 흘려 보낼 수 있게 원뿔형에 모자를 쓴거죠
창으로 내려치는건 유럽에서도 쓰던방법이라 특이한 사용법은 아니고 보편적인 방법이죠
2미터장대로 내려치는데 버티는 인간은 없을듯
일본에 방패가 없는게 죄다 장창들고 있어서 그런거구나
@@garangbii 이러니까 화살맞고 다죽었지
배경화면은 가이의 호랑이 다께다 신겐
과 에치고의 용 우에스기겐신의 전투를
다룬 영화 장창으로 대열전투중 찌르기
하다가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면서 싸웠다
고 하더군요
당시 일본군 조총병 비율이 20프로정도였음. 전후 조선에서 주력으로 육성한게 창병이 아니라 조총병인거만 봐도 조총의 역할이 어마무시했다고 볼 수 있음
14%정도였다. 그리고 조선이 조총비율이 매우높은건 숙련비용 문제때문임.
@@12coom 그래요? 전문가들도 대략적으로 10단위로 끊어서 이정도였을것이다 하고 예측하는데 그렇게 정확한 수치는 어느 기록에 나오는건가요?
그리고 방패도 뚫는 조총의 화력, 활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운 조작법 등 모두 조총의 위력이라고 보는게 맞죠.
각궁 만드는데 고가의 수입품인 물소뿔이 들어가고 만들고 유지관리하기 힘들어서 국내서 모든 재료가 나오고 각궁보다 유지보수가 쉬운 조총병을 육성한 거임.
@@김명기-i4u 음 글쎄요. 선조실록에 보면 전쟁 중에 화약 생산이나 정밀한 기계공학의 부재로 인한 기술적 난관 때문에 사실상 힘들다는 보고를 받으면서도 꾸준히 항왜를 통해 조총을 개발, 보급하라는 거의 독촉에 가까운 지시가 꾸준히 내려간 걸로봐서 그건 아닌 듯 합니다.
@@haskar-by5pl
그때야 만드는법을 몰랐을때 상태지 만드는법을 알고나서는 조총의 단가가 확 떨어졌음. 반대로 각국은 물소뿔이 들어가니 만드는법을 알아도 구하기 힘든 재료때문에 조총보다 비용이 더 비쌌고.
우리 조상님이 당해낸게 아니라 화살을 날리고 도망가는 게릴라를 주로 쓴것이고 실제 사상자의 대부분은 화살에 맞아 죽었죠 이건 조선군이나 왜군이나 마찬가지
그게 당해낸거 아닌가요? 저런 장창방진은 로마가 그리스 상대로 할때도 무식하게 맞다이 뜨지않고 측면을 노렸죠 아니면 장창쓰기 힘든 지형에서 싸우거나 그 잘싸우던 로마도 정면에서 못깨고 진적이 있던게 장창방진이니
빨간 왜군과 까만 왜군이 싸우는 장면은 다케다군과 우에스기군을 재연한 것이네요. 임진왜란을 다룬 한국 사극은 일본 전국시대를 다룬 사극을 참고해서 제작해야 합니다.
검은색이 우에스기 빨간색이 다께다군
이전투 비긴거로 아는데 다께다가
별동대로 기습하려는거 우에스기가
미리알고 본진 털기로 다께다 죽을뻔한
전투
야레야레... 아니, 야리야리...
당시 조선의 창 길이도 짧았다고 들었어요
집단전투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였겠죠
당시 조선은 장거리 투사 무기로 활과 화포를 주로 사용하다보니 창 사용빈도가 떨어져서 그렇게 된거였고 결국 조선군도 후기에는 창이 길어졌습니다.
인류의 전쟁사는 창의 역사이기도 하지
창칼총 3박자 딱맞음
노비들이 면천하고 싶어서 싸운게 큰 힘이 됐겠지
당해내긴 뭘 당해내.. 못 당해냈으니깐 대규모 야전에서는 한번을 못 이겼지..
전쟁은 창으로 하지....
조선 기병이 원거리에서 활로 쏴서 왜의 장창병에 타격을 주고 근접하면 편곤으로 후려쳐서 당해냈을듯...
조총이 아니라 장창 방진에 거의 당했을 듯
명량 에 나오는 하루 는 조총저격수 스나이퍼 던데요
조총으로 저격 절대 불가능함
사정거리 살살력 둘다..
@망아징 아 조총으로는 저격이 아예불가능이군 명량 에 나오는 저격은 거히 그냥 과장된거네요ㅋㅋ
조총. 화약. 창
무기도 무기지만 그당시 일본은 백년간의 실전 경험. 현재 미국과 중국이 싸우면 백프로 미국이 이긴다.
전국시대 경험치
드라마나 영화가 사람을 망침ㅋㅋ
조총이란 무기를 10여만면의 병력에게 사용하게 하려면
당장 들어갈 화약양만해도 엄청남 염초등도 거기다가
가장 중요한건 병기란건 아무리 발달을 해도 결국 규모의 경제 즉 근대이전에는 개별 구매가 거의 원칙이었음 그런대 12만 가량의 일본 공격군중 단 10% 1만2천명을 철포부대로 무장한다 처도 불가능 ㅋ
그런에도 일본군 하면 조총을 떠올릴만큼 조총의 충격이 컸나보네요.
그건 변명하려고 만들어낸 허구죠. 조선도 대포쏘고 총쏘던 나라인데
장창보병이 주력이면 대포 쏘고 보병대만 가도 될텐데.
명나라 당신은 임진왜란 때 왜 맞고 다닌 겁니까?
뭔가 한국가의 역사를 따로 뛰어놓고
보면 이해가 안되는데
오다노부나가가 그리스 역사를
읽었을 것 그리고 그의 전술에
영향을 준 인물은 알렉산더
대왕이다
이 가설을 놓고 보면 오다노부나가의
전술이 많이 이해되는 부분이 생김
가령 소수로 적진을 뚫고 적장의
목을 배는 전술이라던지
그렇다면 장창의 논쟁도
그리스시대의 장창 논쟁의
연관성을 찾으면 더 재미있을듯
앤드 요즘 만화에 자주 나오는
설정 오드아이 역시 그 원류가
어디일까 생각해보는 것도
당시 유럽에서 저런 식으로 창병들을 운용하고, 총병들도 3열로 세워 집단 연사를 하고 있었습니다..네델란드, 포르투갈인들이 일본에 활발하게 왕래했으니, 당연히 그들에 의해서 전해졌겠지요..
장방진 전열에 장창병 후열에 아케부스
수비형진형이죠
@@서창-z2w3열사격 구라예요 유럽도 나폴레옹시대되서 생긴전술이예요
그냥 개발렸다고 말하기 쪽팔려서 조총탓한거지 뭐
아 신립이 그래서 개발렸구나
역사 왜곡이지
개털려서 거의 먹히지않았나
어디서는 칼이라 하고 어디서는 창이라 하고 뭐가 맞는 거임?
둘다...
전장에선 창을 많이 사용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다수대 다수의 싸움인 전쟁에서는 창이 유리하고 저렴하니깐요.
조선도 활을 잘다루고 유명하지만
편제상 궁수의 비율은 많지 않았습니다.
아시가루라고 하는 일반 농민병은 창이 주력이고, 일부 사무라이들이나 특수병과들이 칼이 주력입니다.
당연히 병력 비율상 아시가루의 비율이 지휘관인 사무라이보다 월등히 높으니 군대면에서 보자면 창이 주력이 맞죠. 거기에 칼이 아닌 창이나 활을 사용하는 사무라이들도 있었으니 칼 사용 비율은 더 내려갑니다.
칼이 주력이었다고 하는 건 비율 자체는 낮았지만 당시 명이나 조선에 비해 훨씬 위력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인상이 깊게 남아 그렇게 표현되는 경우가 있는 겁니다. 조총도 마찬가지고요.
둘 다요
칼은 짬 높은 사람들이나 쓰는 비싼 무기임
우리조상들이 뭘 당해내
당했지 그냥
??? : 방포하라
못당해내고 다찔리고 주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