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컨텐츠 재미있게 보시고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영상을 끝까지 보시고 최고 전략가 만슈타인의 어록을 모두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전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군대가 방어를 할 때 이렇게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고집한다면 반드시 모든 것을 다 잃게 된다. 2. 적을 항복하게 하는 것은 영토만 점령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적 주력부대의 포위섬멸만이 할 수 있다. 3. 승리의 기회는 위험을 무릅쓸 때 찾아오는 법이다.
감사드립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만슈타인의 전략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는데 꼭 들어가는 것이 적을 속이는 것 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폴란드 전, 프랑스 전, 3차 하르코프 공세 그리고 마지막 한스 후베 포위전 돌파까지. 적을 기만하는 것은 항상 똑같았던 만슈타인의 방식이었습니다.
잘 봤습니다. 스스로의 승리를 못믿어 완벽한 승리를 놓쳐버려서 큰 후환을 남겨버린 게 독일로선 뼈아픈 실책이었지요, 아르덴 돌파 포위는 예상외의 너무 큰 승리여서, 독일최고지도부가 너무 조심해 몸을 사려 덩케르크의 기적적철수가 성공했습니다 독일지도부가 당시 격동하는 전장에서 흐름에 따라 담대했다면 알렉산더의 가우멜라 전투에 버금가는 대승을 거뒀을 겁니다 다시 확인해야할 부분은, 당시 독일군 총참모장이었던 할더는 계급이 원수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참모총장처럼 육군서열 1위가 아니라 작전분야의 최고책임자 정도였다고 봐야지요, 계급은 대장 정도, 우리나라 군제로는 중장쯤에 해당합니다 즉 총참모장을 군의 최고 계급이 맡는 게 아니었던 거지요, 최고 계급인 원수는 주로 야전군 사령관들에게 주어진 것으로 압니다
할더의 계급은 원수는 아니었습니다.상급대장이었는데 직책만 육군 참모총장이었습니다. 너무 큰 승리여서 몸을 사렸다는 표현 정확합니다. 기갑부대 정지 명령에 대해 추가하자면 히틀러도 히틀러지만 주변의 독일군 지휘부가 너무 독일군이 진격이 빠르다보니 두려움이 컸다고 합니다. 따라서 기갑부대 정지명령은 군 지휘부 인사들에게 히틀러가 영향을 받아 최종 명령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그 프란츠 할더는 어떻게 보자면 2차대전 당시 가장 독일의 영광된 시절 당시의 참모총장이지만 동시에 가장 힘없는 참모총장이기도 한 아이러니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뉘른베르크 재판 당시 피고인이 아닌 증인으로 과거 동료들에 대한 모든 것을 증언한 인물이기도 하니......
만슈타인은 폴란드 전역, 프랑스 전역의 모든 작전을 기획한 인물입니다. 그런데도 프랑스전역까지 그는 한직에 머물렀죠. 독일군 지휘부의 꼰대들 때문이었습니다. 1940년만해도 구데리안, 만슈타인 등은 소장파로서 목소리가 크지 않았습니다. 히틀러가 너무 특이한 인물이었기에 만슈타인의 전략을 채택했던 것이죠.
만물상자는 언제나 최고! 우선 훌륭한 작품을 만드신 만물상자님! 카리스마와 탁월한 전략들을 기획한 만슈타인 원수! 또한 트랜치코트 입은 모습이 너무 멋있고 카리스마 쩜! 그리고 아름다운 롬멜원수! 그 외에도 구데리안과 발터 모델등 한시대를 관통했던 인류의 산물들.. 그분들의 훌륭한 면들을 만물상자를 통해서 배우고 접목합니다! 사랑합니다👍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만슈타인 시리즈를 보셨군요. 구데리안 시리즈를 같이 보시면 더욱 전체적 상황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기갑부대의 아버지라고 불린 남자 구데리안 1부 (ruclips.net/video/4hhyvNFCr2U/видео.html). 만슈타인과 구데리안은 절친이었습니다. 때문에 만슈타인은 자기의 전략을 구데리안에게 가장 먼저 알려줍니다. 만슈타인은 희대의 전략을 구상하고도 주인공이 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1940년만해도 만슈타인은 아직 독일 육군 내에서 핵심이 아니었거든요.
잘 아시네요. 제 채널에서 이미 말했었죠. 히틀러가 늦잠을 잔 것은 맞지만 깨워도 안일어난 것이 아니라 아예 눈치보고 깨우질 않았다고요. 그 원흉이 요들이었죠. 서부전선에서 항복을 했죠. 작전짜는 재능은 히틀러보단 낫다고 하는데 특별한 능력을 발휘했던 것 같지 않더군요. 당장은 만슈타인 2부 기적의 승리를 거둔 만슈타인이 제작 중입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토부룩 점령에서 실패 한 롬멜 장군에게 할더 원수가 파울르스 장군을 2번 보내서 경고를 하고, 그가 원하면 롬멜과 교체 할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독소전의 비밀을 알게된 파울르스가 변심 해서 롬멜장군에게 공격 대신 방어만 치중 하라고 지침을 내리고 동부전선에 참가 합니다.
사실 만슈타인이 뛰어난 능력자인 것을 알려주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2차대전 전에 있었던 히틀러의 군부 길들이기 중 하나인 블룸베르크 프리치 사건 여파로 독일 육군참모본수 스텝에서 보병사단장으로 좌천되기 직전에 히틀러가 갑자기 내린 오스트리아 침공 작전 계획안을 만들라는 지시가 내리자 그 당시 여유시간이 단 5시간 밖에 없었는데 만슈타인은 진짜 백지 상태에서 단 5시간만에 오스트리아 침공작전 계획안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진짜 아무리 까라면 까는 것이 군대라고는 해도 한 나라의 침공 작전을 백지 상태에서 단 5시간만에 완전 편제된 계획안으로 완성시킨다는 것은 진짜 지금 군대에서도 가능할지....... 그것도 스텝들 도움도 없이 단 루드비히 베크 참모총장 ( 나중에 히틀러 암살계획의 주 인물임, 히틀러가 유일하게 두렵다고 말한 단 한명의 참군인 ) 과 같이 둘이서만 말입니다....
그렇게 되는거죠. 독일의 초반 실수라고 할 수 있는 기갑부대 정지 명령의 수수꼐끼가 이 컨텐츠로 인해 말끔히 풀렸을 것입니다. 바로 1차대전 때의 악몽같은 기억이 독일 지휘부들을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너무 깊이 진격하면 후방차단이 될지 모른다고 괜히 불안해했던 독일군 지휘부에서 히틀러에게 바람을 넣었던 것입니다. 덩케르크에서 연합군이 전멸당했다면 북아프리카에서도 좀 더 유리했을 것이고 노르망디 상륙작전까지도 훨씬 늦어졌을테니 태평양 전선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합니다.
건들건들 분들이 영상도 보고 왔지만, 이 영상도 색다르고 재밌네요 ㅎㅎ 건들건들 영상에 따르면, 폴란드가 방어전략전술에 여럿 실책을 범하긴 했지만 독소불가침조약에 의한 소련의 도움이 없었으면 나치 독일은 거기서 끝났다고 할 정도였다네요.. 실제로 폴란드군도 공중전 같은 데서 나름 잘 싸운 전적도 있고요. ruclips.net/video/8Oben_hKa_o/видео.html 낫질 작전은 만슈타인의 선구안 덕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프 연합군이 상상 이상으로 미련하고 안이한 사고방식에 잡혔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소위 말하는 군대의 보수성 때문인데 이것도 양날의 검이죠.. 아르덴 숲 위로 공중정찰이라도 떴으면 그냥 끝나는 거였습니다 ㄷㄷ.. 공교롭게도 아르덴 숲이 2차 대전의 초기와 말기를 장식하는군요....
본 채널에서는 만슈타인의 낫질작전만 다루지 않고 향후 만슈타인 시리즈를 3부작으로 계속 할 예정입니다. 이번 컨텐츠에서는 다른 곳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폴란드 침공(백색작전)에 대한 만슈타인 계획도 다뤘습니다. 본 컨텐츠를 통해 구데리안과 롬멜이 왜 그렇게 상관과 싸우면서 계속해서 진격했는지 그리고 히틀러가 급작스럽게 왜 기갑부대를 덩케르크 코 앞에서 멈춰세웠는지 그 미스테리에 대한 답도 제시하였습니다. 히틀러가 3일만에 정신을 차려서 구데리안에게 진격하라고 명령했을 때는 이미 영국군이 방어준비를 마친 상태였죠.
건들건들 영상은 사소한 것을 부풀리는 침소봉대가 심하고 별로 깊이가 없어서 저는 안봅니다. 도대체 폴란드전에서 나치 독일이 고전했다는 황당한 이야기가 어디서 나온건지 궁금하네요. 단 2주만에 바르샤바 코앞까지 점령당했고, 더욱이 주력부대가 절반 이상 포위 섬멸당했는데요. 소비에트 침공은 뤼프에서의 최후의 방어선을 무력화하는 역할을 한것밖에 없습니다. 나중에 국경선 그을 때에도 독일이 뒤로 많이 물러나 줬지요.
@@만물상자TV전쟁의신 댓글을 다시 올려 드립니다. 건들건들 영상은 사소한 것을 부풀리는 침소봉대가 심하고 별로 깊이가 없어서 저는 안봅니다. 도대체 폴란드전에서 나치 독일이 고전했다는 황당한 이야기가 어디서 나온건지 궁금하네요. 단 2주만에 바르샤바 코앞까지 점령당했고, 더욱이 주력부대가 절반 이상 포위 섬멸당했는데요. 소비에트 침공은 뤼프에서의 최후의 방어선을 무력화하는 역할을 한것밖에 없습니다. 나중에 국경선 그을 때에도 독일이 뒤로 많이 물러나 줬지요.
사실 낫질 작전으로 프랑스를 단 6주만에 함락시킨 것 만으로도 진짜 만슈타인은 천재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손자병법에 '전쟁의 기본은 속임수이다. 적이 강하면 피하고 적이 화가 나 있으면 더욱 자극시켜라.' 그런 구절이 있는데 진짜 만슈타인은 그 격언을 제대로 살린 지휘관이 아닐까 생각됩니다만......
@@daewookkim4795 daewook님은 이해도가 너무 깊으셔서 댓글을 안달 수 가 없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영상 앞부분에 폴란드라는 나라가 얼마나 오만했었는지 잠깐 알려드렸죠. 폴란드는 신생국이었고 러시아와 독일 영토를 상당수 빼앗아 탄생한 나라입니다. 그 뒤에는 영, 프가 버티고 서서 뒤를 봐준거죠. 그러다보니 독일이 강국인데도 무시를 했습니다. 만슈타인은 이토록 자신만만했던 폴란드가 우리는 한치의 영토도 잃을 수 없다면서 전방으로 올인 할 것을 확신하고 이런 작전을 짠 것입니다.
지금 보신 만슈타인 전설의 시작 1부를 새롭게 재편집 한 컨텐츠 입니다. ruclips.net/video/lxB_hqPS8vE/видео.html 연합군 최고 전략가 앨런 브룩 (ruclips.net/video/djezQlsMRIg/видео.html) 을 같이 보시면 좋습니다. 만슈타인에 대해 저 또한 놀랐던 것은 우리가 아는 그 낫질작전을 만슈타인은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하면 만슈타인은 아예 그 때 연합군을 다 끝장을 내고 전쟁 자체를 끝내려고 했었습니다. "총통각하! 왜 적이 뻔히 예상하는 방향으로 공격을 합니까?" "적이 가장 약한 곳에 우리의 최강의 부대가 들어가야 합니다!" 만슈타인의 이 어록은 전쟁 승리의 원칙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의 별명이 말해줍니다. 우리가 가진 최고두뇌, 기동전의 대가. 흔히 쌈싸먹는다고 하죠. 기갑부대를 이용한 포위섬멸이 그의 장기였습니다. 만슈타인 2부에 나온 하르키우 포위전 승리는 정말 드라마틱했죠. 히틀러가 떠나기 전에 이미 SS기갑부대 배치를 해놨던 만슈타인이었습니다. 지금 보신 만슈타인 1부를 보시면 폴란드전이나 프랑스 침공이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항상 적을 기만했다는 점입니다. 만슈타인 4부, 만슈타인의 마지막 승리에서조차 적을 기만하는 것은 똑같았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도 일본군을 속여서 끌여들였듯이 명장들의 승리공식은 항상 적을 기만하는 것이었습니다.
낫질작전 1부를 잘 편집한 것이 ruclips.net/video/lxB_hqPS8vE/видео.html (만슈타인 1부)입니다. 이 컨텐츠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현재와 과거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 합니다. 만슈타인을 너무 미화해서도 안되겠지만 이것은 삼국지의 제갈량과 다름이 없습니다. 당연히 그가 야전군 선봉이 되야 했지만 그는 전투에 참가를 훨씬 늦게 하게 됩니다. 그러나 만슈타인의 절친 구데리안이 최선봉이었기에 이 작전은 성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전쟁 한참 전에 두 사람은 낫질작전을 논의했습니다.
세바스토폴 공방전 이야긴 만슈타인 시리즈에서도 빠진 부분입니다. 극적인 요소가 많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바스토폴 포위전은 (41.10~42.07) 1942년 6월 시작된 청색작전을 위해 후방정리의 일환으로 벌어진 전투였습니다. 세바스토폴 포위전과 가장 가까운 시기에 벌어진 청색작전! 그 주인공이었던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와 관련된 컨텐츠를 추천합니다! "우리에게는 불행하게도 히틀러가 있다."라는 말까지 한 전차전문가입니다. ruclips.net/video/yRdX52IxxjM/видео.html (독일군 최고 전차 전문가로 변한 장군,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
독일 내부 의견은 1941년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했지만 히틀러가 1939년 폴란드 침공 결정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패전국 독일에 대한 군축 감시로 인해 그간 무기를 생산한 양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폴란드 침공 당시를 보면 초기형 전차인 1호,2호 전차가 많이 보입니다.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히틀러는 자신의 입으로도 자기가 도박사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2차대전 초반을 보면 히틀러는 겁주기 방식으로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피 한방울 안흘리고 점령했죠. 그 영향인진 몰라도 폴란드 전투는 완벽한 준비를 갖추지 않았는데 서두른 감이 있습니다. 이 컨텐츠에서 참조한 영상장면은 모두 해당 시기에 맞게 검토한 영상입니다. 폴란드 전 당시만 해도 1-2호가 주력전차였죠. 독일의 초반 승전은 무기보다는 전략이 좋았고 장군들의 능력이 출중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독일과 영,프 의 무기로 대비 하는 것 보다 국방 예산을 계산 할때, 식민지군 유지비 와 마지노선 건설비를 포함해야 합니다. 심하게는 프랑스가 1930년 부터 40년 까지 투입한 총 국방비가 심하게는 독일보다 16배 였다고 합니다. 덕분에 프랑스군 월급이 한심한 수준 이였습니다.
동의하지만 그 당시 무법지대,각자도생 집단다구리 당하는 독일에 히틀러가 없었다면 베르사유 조약을 깨지도 강대국 집단린치속에서 재빠른 재무장도 이뤄내고 단결하지 못했을거임 영프연합군을 무릎꿇린 만슈타인의 낫질작전도 그 엘리트들이 미친짓이라고 할때 히틀러가 동의해서 맺어진 결실임
재미난 영상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궁금한게 아무리 독일군의 전차와 운송장비가 좋다해도 산림이 가득한 아르덴숲을 직공한다는게 현대 전차로도 쉽지 않다고 하고 당시 기술로는 더 힘들었을텐데 어떻게 저 울창한 숲을 뚫고 프랑스로 진격했는지가 의문이고 덩게르크에서는 30만의 영프연합군이 철수하는걸 왜 그냥 뒀는지가 의문입니다. 젊은 남성중심의 30만의 병력을 날려버리면 인적 손실이 엄청나게 클것이고 독일군 수뇌부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을텐데 저걸 왜 도버해협을 건너가게 놔뒀는지 영 의문이 듭니다.
그 어처구니 없는 사실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채널에서는 이미 그것을 집중적으로 다룬적이 있습니다. ruclips.net/video/GLrUAWknTC0/видео.html (히틀러가 덩케르크에서 멈춘 이유) 참으로 기가막힌 것은 그 덩케르크의 해안에는 연합군 최고의 전략가 앨런브룩, 롬멜을 격파한 몽고메리가 모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ruclips.net/video/djezQlsMRIg/видео.html (연합군 최고 전략가 앨런브룩) 구데리안이 그대로 진격만했어도 이들은 모두 죽거나 포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컨텐츠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만슈타인은 프랑스 점령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 한판으로 연합군을 아예 전멸시키고 잡전쟁을 끝내려고 했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감사합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지가 늘 의문이었는데 미리 가서 나무를 제거했군요. 그러지 않고서는 현대의 미군 에이브럼스나 레오파르트 같은 전차들과 험비도 도저히 통과할수가 없다고 합니다. 지금은 아르덴숲이 조금 개발이 되서 사람도 산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전형적인 뺴곡한 산림지역이었다고 하던데 당시의 전차와 차량이 여길 어떻게 통과했는지가 굉장히 궁금했었는데 제 의문점을 해결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낫질 작전 설명하는 다른 채널들도 여기를 독일군이 통과했다고만 하지 어떻게 통과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더군요. 감사합니다.
실제로 만슈타인이 아예 대놓고 한말이었죠. 만슈타인 3부(ruclips.net/video/m5a_ri5XUFQ/видео.html) 에 나옵니다. 최소한 동부전선만이라도 똑똑한 자로 하나 앉혀놔 주십시요. 그리고 혹시라도 저를 믿어주신다면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신을 그냥 동부전선 최고 사령관으로 앉혀달라고 이야기를 한 것이었죠. 그런데 히틀러가 이렇게 대답하죠! 지금 나조차도 원수들을 완전히 컨트롤 하는데 어려움이 있는데 네가 최고사령관이 된다면 원수들이 네 말을 내 말보다 더 잘 들을거라고 생각하는거냐? 이렇게 일갈합니다. 그러자 만슈타인은 " 제가 명령을 내린다면 그 누구도 거역하지 않을 것이고 지금보다 더 잘 될거라고 대답합니다! 둘의 사이가 완전 끝나는 순간이었죠.
만슈타인의 계획대로 연합군을 덩케르크에서 섬멸했다면 처어칠과 영국인들이 독일에 굴복했을까요 실제 역사에서 입증되었지만 독일의 영국침공은 영국공군과 해군이 막았지 영국육군은 1도 기여한바가 없습니다 상실된 군대는 결국 재건되었을테고 전쟁의 결과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을겁니다
영상에서 설명했듯이 기갑부대를 맘대로 돌격하게 허락하여 덩케르크에서 30만명의 영프연합군을 다 전멸시켰어도 영국 본토에 상륙하는 바다사자 작전은 어짜피 실행 못했을 것입니다. 독일은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해양국가가 아니었으니까요. 노르망디 상륙작전처럼 막강한 해군력이 받쳐줘야 하는데 독일은 그런 해군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영국 본토 상륙작전(바다사자작전)은 어짜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덩케르크에서 탈출했던 30만명의 영국군은 나중에 무기를 갖추고 정예병력이 되어 북아프리카와 노르망디에서 또다시 독일과 싸우게 됩니다. 따라서 덩케르크에서 그들이 몰살됐다면 전략적으로 독일에게 두고두고 화근이 되는 일은 최소한 없었겠죠. 즉 롬멜이 더 활개치고 다닐 수 있었을 것이고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더 늦게 시작되었을 거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미 연합군이 승리했겠죠. 그러나 그 과정에 이르는 길이 너무나 험난했을 것입니다. 또 전쟁은 언제나 돌발상황이 많기 때문에 영국군이 끔찍하게 전멸당했다면 반전 여론이 커지며 처칠이 실각할 수도 있었겠죠.
@miri 6400 덩케르크에서 영국군이 몰살당했다해서 대영제국이 당장 항복!~ 이런 것은 안했겠죠. 저도 동감합니다. 실제 2차대전이 끝날 무렵 영국피해는 민간인 합쳐서 그 이상으로 나게 되니까요~ 다만 1941년부터 시작되는 북아프리카 전역과 노르망디 상륙작전까지 이르는 과정이 영국으로서는 몇배가 더 힘들었을 것이고 독일에겐 전략적 유리함을 줬을 거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예를 들어 몽고메리가 전략적, 전술적 능력이 롬멜보다 떨어지는데도 막대한 물량을 축적할 때까지 준비만 하다가 롬멜이 없을 때 벌어지게 되는 엘 알라메인전투가 1942년 10월에 있었는데요 1942년에서 1943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이 독일에겐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었습니다. 롬멜의 진격이 멈춘 엘 알라메인 전투도 그 시점에 일어나지 않았을 확률이 크죠.
던케르크에서 탈출한 30만명의 연합군은 당연히 영국의 최정예병이었고 그보다 훨씬더 중요한것은 전격전을 당하는 입장에서 현대전을 경험한 중요한 전력이었다. 만약에 던케르크탈출이없었다면 영국은 또 어디선가 전격전에 당하고서야 전격전에대한 대비책을 만들수있었을것이다. 물론 독일은 그런 기회를 주지않았을것이다. 난 만슈타인을 전쟁의 성인이라고 생각한다. 성인이 되려면 3개의 기적을 일으켜야하는데 하나는 폴란드전에서 또하나는 세당에서 마지막하나는 스탈린그라드에서 기적을 일으켰다고 본다. 솔직히 만약에 파울러스가 만슈타인을 믿고 병력을 만슈타인의 구조병력쪽으로 이동시켰다면 전력의 최소 1/3은 살려서 갈수있었을것이다. 스탈린그라드에서 탈출기회를 준건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덩케르크에서 30만의 영국군이 궤멸됐다면 전략적으로 독일이 얼마나 유리하게 전쟁을 끌고 갔겠습니까? 바로 다음해인 1941년 2월에 북아프리카에서 롬멜과 덩케르크에서 무사히 도망쳤던 그 영국군들이 맞붙어 싸우게 되니까 말입니다. 만슈타인은 파울루스에게 분명히 말했습니다. 총통의 허락은 없었지만 자네가 판단해서 탈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탈출하라고요. 육군참모총장의 야심이 있었기에 살벌한 히틀러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어서 그렇게 말했지만 분명 판단해서 옳은대로 하라고 충고했죠.
히틀러는 똑똑했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 신) 채널, 2차대전 주요 이슈 재생목록에 히틀러 관련 이슈가 많습니다. 히틀러는 창의적이고 기발한 발상을 좋아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몽상가였습니다. 근본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오스트리아에서 그림공부를 하며 백수로 있던 시절, 히틀러의 친구가 "너는 종일 뭘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 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히틀러는 "나는 오스트리아의 교통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구상중이야"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좋은 질문이십니다. 만슈타인 1편 영상에서도 질문에 대한 결론을 내린바 있습니다만 기갑부대를 이용한 전격전. 즉 기동포위전은 1940년 당시 독일이 세계최초로 한 것입니다. 히틀러를 비롯한 꼰대 독일지휘부는 영프 연합군이 이렇게 빨리 무너질 수 있나? 혹시 역습아닐까 걱정해서 기갑부대를 스톱시킨 것입니다. 히틀러는 프랑스 항복 후에도 무려 2주간 영국을 공격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처칠의 평화회담 제의에 대한 답을 기다린겁니다. 결국 거절당하고 1940년 7월 중순에서야 영국 본토 항공전이 시작되죠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습니다. 기갑부대 스톱 없이 30만 영국군이 전멸되었다면 영국 내부에서 히클러와 강화협상 하자는 목소리가 더욱 커져서 처칠이 정치적으로 압박받았을 것이고 롬멜과 1년후에 맞붙게 되는 영국군도 그렇게 세력이 강하지 못했을 것이며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훨씬 늦어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미국이 참전 한다할지라도요. 4년전 무사히 도망간 그 영국군이 1944년 6월에 그대로 복수를 다짐하며 상륙하거든요
만슈타인 1부 업데이트 버전입니다. ruclips.net/video/lxB_hqPS8vE/видео.html 만슈타인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가 만든 낫질작전은 프랑스 점령 뿐 아니라 아예 연합군 전체를 말살시키기 위한 야심찬 작전이었습니다. 이 때 만슈타인 말대로 했다면 연합군은 끝났습니다. 아래 컨텐츠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ruclips.net/video/djezQlsMRIg/видео.html (연합군 최고 전략가 앨런브룩)
이번 컨텐츠 재미있게 보시고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영상을 끝까지 보시고 최고 전략가 만슈타인의 어록을 모두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전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군대가 방어를 할 때 이렇게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고집한다면 반드시 모든 것을 다 잃게 된다.
2. 적을 항복하게 하는 것은 영토만 점령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적 주력부대의 포위섬멸만이 할 수 있다.
3. 승리의 기회는 위험을 무릅쓸 때 찾아오는 법이다.
잘복고 갑니다운영자님😍😍😍😍^^
@@wooqak4637 감사드립니다. 진심으로!
잘보고갑니다 ^^❤❤❤❤
2차대전 개전에 서부전선 만슈타인 이렇게 시나리오 감상하니 좋네요
어떻게 작전 입안되고 진격 하였는가 자세히 나오니까 참 2차대전 이해하기 도움 많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제대로된 분석이네요. 유투버님의 전략분석과 고증에 감탄하고 갑니다
감사드립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만슈타인의 전략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는데 꼭 들어가는 것이 적을 속이는 것 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폴란드 전, 프랑스 전, 3차 하르코프 공세 그리고 마지막 한스 후베 포위전 돌파까지. 적을 기만하는 것은 항상 똑같았던 만슈타인의 방식이었습니다.
잘 봤습니다. 스스로의 승리를 못믿어 완벽한 승리를 놓쳐버려서 큰 후환을 남겨버린 게 독일로선 뼈아픈 실책이었지요,
아르덴 돌파 포위는 예상외의 너무 큰 승리여서, 독일최고지도부가 너무 조심해 몸을 사려 덩케르크의 기적적철수가 성공했습니다
독일지도부가 당시 격동하는 전장에서 흐름에 따라 담대했다면 알렉산더의 가우멜라 전투에 버금가는 대승을 거뒀을 겁니다
다시 확인해야할 부분은, 당시 독일군 총참모장이었던 할더는 계급이 원수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참모총장처럼
육군서열 1위가 아니라 작전분야의 최고책임자 정도였다고 봐야지요, 계급은 대장 정도, 우리나라 군제로는 중장쯤에 해당합니다
즉 총참모장을 군의 최고 계급이 맡는 게 아니었던 거지요, 최고 계급인 원수는 주로 야전군 사령관들에게 주어진 것으로 압니다
할더의 계급은 원수는 아니었습니다.상급대장이었는데 직책만 육군 참모총장이었습니다. 너무 큰 승리여서 몸을 사렸다는 표현 정확합니다. 기갑부대 정지 명령에 대해 추가하자면 히틀러도 히틀러지만 주변의 독일군 지휘부가 너무 독일군이 진격이 빠르다보니 두려움이 컸다고 합니다. 따라서 기갑부대 정지명령은 군 지휘부 인사들에게 히틀러가 영향을 받아 최종 명령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그 프란츠 할더는 어떻게 보자면 2차대전 당시 가장 독일의 영광된 시절 당시의 참모총장이지만
동시에
가장 힘없는 참모총장이기도 한 아이러니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뉘른베르크 재판 당시 피고인이 아닌 증인으로
과거 동료들에 대한 모든 것을 증언한 인물이기도 하니......
우리야 과정과 결과를 아니까 작전의 내용을
이해하고 보는거지만 저걸 창안하고 기획하는거는 정말 전략적 천재라고 할 수밖에요.
한편의 고급다큐를 보는 느낌입니다.
선생님의 소중하고 정성어린 영상 재밌게 봤습니다.감사합니다.^^
이따 2부 봐야지.
만슈타인은 폴란드 전역, 프랑스 전역의 모든 작전을 기획한 인물입니다.
그런데도 프랑스전역까지 그는 한직에 머물렀죠. 독일군 지휘부의 꼰대들 때문이었습니다.
1940년만해도 구데리안, 만슈타인 등은 소장파로서 목소리가 크지 않았습니다. 히틀러가 너무 특이한 인물이었기에 만슈타인의 전략을 채택했던 것이죠.
만물상자는 언제나 최고!
우선 훌륭한 작품을 만드신 만물상자님!
카리스마와 탁월한 전략들을 기획한
만슈타인 원수! 또한 트랜치코트 입은
모습이 너무 멋있고 카리스마 쩜!
그리고 아름다운 롬멜원수!
그 외에도 구데리안과 발터 모델등
한시대를 관통했던 인류의 산물들..
그분들의 훌륭한 면들을 만물상자를 통해서 배우고 접목합니다!
사랑합니다👍감사합니다👍💜💜
좋은 응원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만슈타인뿐만 아니라 한니발, 나폴레옹도 지형이 험한 곳을 골라서 기습을 성공시키고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고자 했지요. 천재들끼리는 공통점이 있나 봅니다.
와~ 만슈타인
적략적 승리.. 무릎을 탁치고 조아요 누릅니다
감사드립니다.
만슈타인 시리즈를 보셨군요. 구데리안 시리즈를 같이 보시면 더욱 전체적 상황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기갑부대의 아버지라고 불린 남자 구데리안 1부 (ruclips.net/video/4hhyvNFCr2U/видео.html). 만슈타인과 구데리안은 절친이었습니다.
때문에 만슈타인은 자기의 전략을 구데리안에게 가장 먼저 알려줍니다.
만슈타인은 희대의 전략을 구상하고도 주인공이 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1940년만해도 만슈타인은 아직 독일 육군 내에서 핵심이 아니었거든요.
시간되시면 요들 참모장에 대해서도 다뤄주세요. 유능한 인물이라고 나오긴 했는데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연합국 침공보고 짬시킨것 보면 능력에 의심이 가는 군인같아요
잘 아시네요. 제 채널에서 이미 말했었죠. 히틀러가 늦잠을 잔 것은 맞지만 깨워도 안일어난 것이 아니라 아예 눈치보고 깨우질 않았다고요. 그 원흉이 요들이었죠. 서부전선에서 항복을 했죠. 작전짜는 재능은 히틀러보단 낫다고 하는데 특별한 능력을 발휘했던 것 같지 않더군요. 당장은 만슈타인 2부 기적의 승리를 거둔 만슈타인이 제작 중입니다.
잘봤습니다ㅎㅎ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만슈타인 장군 과 관계 없는 스토리 입니다. 죄송합니다. 몇일전에 안 사실 입니다. 1941년 초, 토부룩 점령 실패 후, 북아프리카 군단의 사령관이 롬멜 장군에서 본 파울르스 장군 (스탈린그라드 대패) 으로 바뀔뻔 했었습니다.
원래 육군총사령부에서는 롬멜을 보내라고 건의하지 않았습니다. 롬멜이 아프리카로 가게 된 것은 순전히 히틀러의 추천 때문이었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토부룩 점령에서 실패 한 롬멜 장군에게 할더 원수가 파울르스 장군을 2번 보내서 경고를 하고, 그가 원하면 롬멜과 교체 할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독소전의 비밀을 알게된 파울르스가 변심 해서 롬멜장군에게 공격 대신 방어만 치중 하라고 지침을 내리고 동부전선에 참가 합니다.
@@goldeneagle3218 아....그렇게된거네요
사실 만슈타인이 뛰어난 능력자인 것을 알려주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2차대전 전에 있었던
히틀러의 군부 길들이기 중 하나인
블룸베르크 프리치 사건 여파로 독일 육군참모본수 스텝에서 보병사단장으로 좌천되기 직전에
히틀러가 갑자기 내린 오스트리아 침공 작전 계획안을 만들라는 지시가 내리자
그 당시 여유시간이 단 5시간 밖에 없었는데
만슈타인은 진짜 백지 상태에서 단 5시간만에
오스트리아 침공작전 계획안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진짜
아무리 까라면 까는 것이 군대라고는 해도
한 나라의 침공 작전을 백지 상태에서 단 5시간만에 완전 편제된 계획안으로 완성시킨다는 것은 진짜 지금 군대에서도 가능할지.......
그것도 스텝들 도움도 없이
단 루드비히 베크 참모총장 ( 나중에 히틀러 암살계획의 주 인물임, 히틀러가 유일하게 두렵다고 말한 단 한명의 참군인 ) 과 같이
둘이서만 말입니다....
그런데 만슈타인이 저런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2차대전 이후 냉전이 시작될 때
소련을 막아야 할 미국과 영국으로서는
서독을 키워서 막아야 했을 테고
그러기 위해서는
소련에게 있어서는 저승사자 그 자체인 만슈타인이 꼭 필요했을 겁니다.
잘보고갑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운영자님 ^^♡♡♡♡♡♡♡♡♡
덩케르크 철수병력도 포위 섬멸 됬었으면 영국은 영연방 국가 ( 호주,캐나드,뉴질랜드) 하고 인도에 있는 병력 데리고 왔을거라고 생각함 이렇게 되면 태평양 전선에도 영향이 가내요 일본한테 조금 유리한 방향 으로
그렇게 되는거죠. 독일의 초반 실수라고 할 수 있는 기갑부대 정지 명령의 수수꼐끼가 이 컨텐츠로 인해 말끔히 풀렸을 것입니다. 바로 1차대전 때의 악몽같은 기억이 독일 지휘부들을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너무 깊이 진격하면 후방차단이 될지 모른다고 괜히 불안해했던 독일군 지휘부에서 히틀러에게 바람을 넣었던 것입니다. 덩케르크에서 연합군이 전멸당했다면 북아프리카에서도 좀 더 유리했을 것이고 노르망디 상륙작전까지도 훨씬 늦어졌을테니 태평양 전선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합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음 그러면 동남아시아와동아시아는 영원히 전쟁이 끝날때까지 일본의식민지가되었겠네요
@@wooqak4637 그건아니라고봄 미국이 있는이상
@@tassader3317 하지만! 일본이 미치지않는이상 미국을 안건드렸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wooqak4637 그러면 미국 요구대로 중국점령지 하고 인도차이나 반도 토해내야.하는데 일본 군부정권이 위태로워 졌을거 같내요
독일군가 뭔가 멋있네요ㅎ
프로파간다용으로 군복도 멋있게 제작했어요
건들건들 분들이 영상도 보고 왔지만, 이 영상도 색다르고 재밌네요 ㅎㅎ
건들건들 영상에 따르면, 폴란드가 방어전략전술에 여럿 실책을 범하긴 했지만 독소불가침조약에 의한 소련의 도움이 없었으면 나치 독일은 거기서 끝났다고 할 정도였다네요.. 실제로 폴란드군도 공중전 같은 데서 나름 잘 싸운 전적도 있고요. ruclips.net/video/8Oben_hKa_o/видео.html
낫질 작전은 만슈타인의 선구안 덕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프 연합군이 상상 이상으로 미련하고 안이한 사고방식에 잡혔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소위 말하는 군대의 보수성 때문인데 이것도 양날의 검이죠.. 아르덴 숲 위로 공중정찰이라도 떴으면 그냥 끝나는 거였습니다 ㄷㄷ.. 공교롭게도 아르덴 숲이 2차 대전의 초기와 말기를 장식하는군요....
본 채널에서는 만슈타인의 낫질작전만 다루지 않고 향후 만슈타인 시리즈를 3부작으로 계속 할 예정입니다. 이번 컨텐츠에서는 다른 곳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폴란드 침공(백색작전)에 대한 만슈타인 계획도 다뤘습니다. 본 컨텐츠를 통해 구데리안과 롬멜이 왜 그렇게 상관과 싸우면서 계속해서 진격했는지 그리고 히틀러가 급작스럽게 왜 기갑부대를 덩케르크 코 앞에서 멈춰세웠는지 그 미스테리에 대한 답도 제시하였습니다. 히틀러가 3일만에 정신을 차려서 구데리안에게 진격하라고 명령했을 때는 이미 영국군이 방어준비를 마친 상태였죠.
또하나 본채널의 특징이라면 고증에 맞는 게임으로 당시 상황을 이해하기 쉽도록 잘 표현한다는 점이죠. 감사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건들건들 영상은 사소한 것을 부풀리는 침소봉대가 심하고 별로 깊이가 없어서 저는 안봅니다. 도대체 폴란드전에서 나치 독일이 고전했다는 황당한 이야기가 어디서 나온건지 궁금하네요. 단 2주만에 바르샤바 코앞까지 점령당했고, 더욱이 주력부대가 절반 이상 포위 섬멸당했는데요. 소비에트 침공은 뤼프에서의 최후의 방어선을 무력화하는 역할을 한것밖에 없습니다. 나중에 국경선 그을 때에도 독일이 뒤로 많이 물러나 줬지요.
@@hwihwang 이 부분은 제가 답을 정확히 알고 있는데 님 댓글이 안보이네요
@@만물상자TV전쟁의신 댓글을 다시 올려 드립니다.
건들건들 영상은 사소한 것을 부풀리는 침소봉대가 심하고 별로 깊이가 없어서 저는 안봅니다. 도대체 폴란드전에서 나치 독일이 고전했다는 황당한 이야기가 어디서 나온건지 궁금하네요. 단 2주만에 바르샤바 코앞까지 점령당했고, 더욱이 주력부대가 절반 이상 포위 섬멸당했는데요. 소비에트 침공은 뤼프에서의 최후의 방어선을 무력화하는 역할을 한것밖에 없습니다. 나중에 국경선 그을 때에도 독일이 뒤로 많이 물러나 줬지요.
사실 낫질 작전으로 프랑스를 단 6주만에 함락시킨 것 만으로도
진짜 만슈타인은 천재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손자병법에
'전쟁의 기본은 속임수이다.
적이 강하면 피하고
적이 화가 나 있으면 더욱 자극시켜라.'
그런 구절이 있는데
진짜 만슈타인은 그 격언을 제대로 살린 지휘관이 아닐까 생각됩니다만......
그렇죠. 만슈타인 1부 순서로서 뒤에 숨은 승리의 설계자 만슈타인 편을 보셨는데요. 폴란드 전과 서부전선 전역의 공통점을 아주 잘 짚어주셨네요. 바로 적을 속인 것이죠. 그리고 속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밀어붙였죠. 만슈타인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싸워나갑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사기는 테크닉이 아닌 심리전이다
그런 부분을 제대로 활용했다는 것 만으로도
진짜 만슈타인은.......
@@daewookkim4795 daewook님은 이해도가 너무 깊으셔서 댓글을 안달 수 가 없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영상 앞부분에 폴란드라는 나라가 얼마나 오만했었는지 잠깐 알려드렸죠. 폴란드는 신생국이었고 러시아와 독일 영토를 상당수 빼앗아 탄생한 나라입니다. 그 뒤에는 영, 프가 버티고 서서 뒤를 봐준거죠. 그러다보니 독일이 강국인데도 무시를 했습니다. 만슈타인은 이토록 자신만만했던 폴란드가 우리는 한치의 영토도 잃을 수 없다면서 전방으로 올인 할 것을 확신하고 이런 작전을 짠 것입니다.
만슈타인 최고의 명장군
진짜 천재다. 꼭 군인 아니라 사회 분야 어떤 일을 해도성공했을 것 같다. 자연과학 했어도 큰 일 했을 거 같다.
지금 보신 만슈타인 전설의 시작 1부를 새롭게 재편집 한 컨텐츠 입니다. ruclips.net/video/lxB_hqPS8vE/видео.html
연합군 최고 전략가 앨런 브룩 (ruclips.net/video/djezQlsMRIg/видео.html) 을 같이 보시면 좋습니다.
만슈타인에 대해 저 또한 놀랐던 것은 우리가 아는 그 낫질작전을 만슈타인은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하면 만슈타인은 아예 그 때 연합군을 다 끝장을 내고 전쟁 자체를 끝내려고 했었습니다.
"총통각하! 왜 적이 뻔히 예상하는 방향으로 공격을 합니까?"
"적이 가장 약한 곳에 우리의 최강의 부대가 들어가야 합니다!" 만슈타인의 이 어록은 전쟁 승리의 원칙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만슈타인을 처음 본 미군의 회고록을 보면, 군인 보다는 "학자, 교수"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두뇌가 뛰어났던 프로이센 귀족 출신의 군인.. ✋🏻
만슈타인은 견제와 우회기동 후 적을 포위섬멸했던 나폴레옹의 환생 같아요
그의 별명이 말해줍니다. 우리가 가진 최고두뇌, 기동전의 대가. 흔히 쌈싸먹는다고 하죠. 기갑부대를 이용한 포위섬멸이 그의 장기였습니다. 만슈타인 2부에 나온 하르키우 포위전 승리는 정말 드라마틱했죠. 히틀러가 떠나기 전에 이미 SS기갑부대 배치를 해놨던 만슈타인이었습니다. 지금 보신 만슈타인 1부를 보시면 폴란드전이나 프랑스 침공이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항상 적을 기만했다는 점입니다. 만슈타인 4부, 만슈타인의 마지막 승리에서조차 적을 기만하는 것은 똑같았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도 일본군을 속여서 끌여들였듯이 명장들의 승리공식은 항상 적을 기만하는 것이었습니다.
폴란드 침공 작전의 목표, 즉 교량, 발전소, 철도, 저수지, 공항 등등은 오히려 독일군이 위치를 폴란드군 보다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19세기 당시 독일이 모두 건설 했던거 였습니다.
다 독일 건축기술자들이 디자인하고 설계한것이니
손바닥을 들여다보는 것 처럼 속속들이 알 수 가 있던거니까요. 심지어 마지노 요세 까지도요.
진짜 낫질작전은 볼때마다 소름+감탄 ㅋㅋ 베르사유 조약으로 찐 엘리트 장교들만 남은 장교들 사이에도 정점인 만슈타인+구데리안 현실에서 2차대전 게임 찍어버림
낫질작전 1부를 잘 편집한 것이 ruclips.net/video/lxB_hqPS8vE/видео.html (만슈타인 1부)입니다.
이 컨텐츠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현재와 과거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 합니다.
만슈타인을 너무 미화해서도 안되겠지만 이것은 삼국지의 제갈량과 다름이 없습니다.
당연히 그가 야전군 선봉이 되야 했지만 그는 전투에 참가를 훨씬 늦게 하게 됩니다.
그러나 만슈타인의 절친 구데리안이 최선봉이었기에 이 작전은 성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전쟁 한참 전에 두 사람은 낫질작전을 논의했습니다.
혹시 세바스토폴 공방전 관련 영상도 있나요??
세바스토폴 공방전 이야긴 만슈타인 시리즈에서도 빠진 부분입니다.
극적인 요소가 많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바스토폴 포위전은 (41.10~42.07)
1942년 6월 시작된 청색작전을 위해 후방정리의 일환으로 벌어진 전투였습니다.
세바스토폴 포위전과 가장 가까운 시기에 벌어진 청색작전!
그 주인공이었던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와 관련된 컨텐츠를 추천합니다!
"우리에게는 불행하게도 히틀러가 있다."라는 말까지 한 전차전문가입니다.
ruclips.net/video/yRdX52IxxjM/видео.html (독일군 최고 전차 전문가로 변한 장군,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
독일 내부 의견은 1941년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했지만 히틀러가 1939년 폴란드 침공 결정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패전국 독일에 대한 군축 감시로 인해 그간 무기를 생산한 양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폴란드 침공 당시를 보면 초기형 전차인 1호,2호 전차가 많이 보입니다.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히틀러는 자신의 입으로도 자기가 도박사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2차대전 초반을 보면 히틀러는 겁주기 방식으로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피 한방울 안흘리고 점령했죠. 그 영향인진 몰라도 폴란드 전투는 완벽한 준비를 갖추지 않았는데 서두른 감이 있습니다. 이 컨텐츠에서 참조한 영상장면은 모두 해당 시기에 맞게 검토한 영상입니다. 폴란드 전 당시만 해도 1-2호가 주력전차였죠. 독일의 초반 승전은 무기보다는 전략이 좋았고 장군들의 능력이 출중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독일과 영,프 의 무기로 대비 하는 것 보다 국방 예산을 계산 할때, 식민지군 유지비 와 마지노선 건설비를 포함해야 합니다. 심하게는 프랑스가 1930년 부터 40년 까지 투입한 총 국방비가 심하게는 독일보다 16배 였다고 합니다. 덕분에 프랑스군 월급이 한심한 수준 이였습니다.
책 전격전의 전설을 참고하셨나요?
참고한 것은 만슈타인 자서전이 아니라 제3자가 지은 만슈타인 평전을 참고하였습니다
Erich Von Mansutein?
Yes. he is.
A major contributor to Hitler's occupation of France in 1940.
젝트의 비밀군비를 막지 못한 국제연맹..
미군의 융단전략폭격개념도 독일공군에서 모티브를얻은거였군요.
3:28 리츠시미그위인가요?
폴란드 최고 사령관 에드워드 리츠 스미글리 (Edward Rydz-smigly)입니다. 06:10에도 나옵니다. 1939년 9월 당시 폴란드 최고 사령관이었습니다
낫질작전 수립 전에 히틀러 총통은 슈리팬 계획을 3번이나 거절 한 상태 였고, 프랑스 침공 계획을 전달하는 도중에, 슈트리히 연락기가 대공포에 추락 하는 사건이 발생 했습니다. 이것이 총통 뒤에 들어간 상태에서 만슈타인 장군을 파티장에서 소개를 받았습니다.
만슈타인: 프로이센 귀족 + 독일제국 육사 출신 엘리트.
히틀러: 평민 + 독일제국 육군 상병 전역
맞습니다. 나이도 만슈타인이 히틀러보다 더 많았습니다. 히틀러가 1차대전때는 쳐다도 못봤죠. 만슈타인은 장교였으니까요.
이러니 전략을 짜는 안목이 달랐을 겁니다.
동의하지만 그 당시 무법지대,각자도생 집단다구리
당하는 독일에 히틀러가 없었다면 베르사유
조약을 깨지도 강대국 집단린치속에서 재빠른 재무장도
이뤄내고 단결하지 못했을거임
영프연합군을 무릎꿇린 만슈타인의 낫질작전도
그 엘리트들이 미친짓이라고 할때 히틀러가
동의해서 맺어진 결실임
세계 전사에 길이 남은 낫질의 전설!
재미난 영상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궁금한게 아무리 독일군의 전차와 운송장비가 좋다해도 산림이 가득한 아르덴숲을 직공한다는게 현대 전차로도 쉽지 않다고 하고 당시 기술로는 더 힘들었을텐데 어떻게 저 울창한 숲을 뚫고 프랑스로 진격했는지가 의문이고 덩게르크에서는 30만의 영프연합군이 철수하는걸 왜 그냥 뒀는지가 의문입니다. 젊은 남성중심의 30만의 병력을 날려버리면 인적 손실이 엄청나게 클것이고 독일군 수뇌부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을텐데 저걸 왜 도버해협을 건너가게 놔뒀는지 영 의문이 듭니다.
그 어처구니 없는 사실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채널에서는 이미 그것을 집중적으로 다룬적이 있습니다.
ruclips.net/video/GLrUAWknTC0/видео.html (히틀러가 덩케르크에서 멈춘 이유)
참으로 기가막힌 것은 그 덩케르크의 해안에는
연합군 최고의 전략가 앨런브룩, 롬멜을 격파한 몽고메리가 모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ruclips.net/video/djezQlsMRIg/видео.html (연합군 최고 전략가 앨런브룩)
구데리안이 그대로 진격만했어도 이들은 모두 죽거나 포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컨텐츠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만슈타인은 프랑스 점령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 한판으로 연합군을 아예 전멸시키고 잡전쟁을 끝내려고 했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아르덴숲은 독일 기갑사단이 어떤 방식으로 통과한겁니까?
@@ICEMAN-o3y
아르덴 숲은 독일군 공병대가 미리 들어가서
기갑부대가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몰래 개척해놨습니다.
구데리안 2부를 보시면 더욱 리얼하게 당시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ruclips.net/video/EYilChgctWE/видео.html
@@만물상자TV전쟁의신 감사합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지가 늘 의문이었는데 미리 가서 나무를 제거했군요. 그러지 않고서는 현대의 미군 에이브럼스나 레오파르트 같은 전차들과 험비도 도저히 통과할수가 없다고 합니다. 지금은 아르덴숲이 조금 개발이 되서 사람도 산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전형적인 뺴곡한 산림지역이었다고 하던데 당시의 전차와 차량이 여길 어떻게 통과했는지가 굉장히 궁금했었는데 제 의문점을 해결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낫질 작전 설명하는 다른 채널들도 여기를 독일군이 통과했다고만 하지 어떻게 통과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더군요. 감사합니다.
히틀러가 만슈타인 구데리안에 군 지휘권을 다 맡겼더라면 어찌 됬을까?
실제로 만슈타인이 아예 대놓고 한말이었죠. 만슈타인 3부(ruclips.net/video/m5a_ri5XUFQ/видео.html) 에 나옵니다. 최소한 동부전선만이라도 똑똑한 자로 하나 앉혀놔 주십시요. 그리고 혹시라도 저를 믿어주신다면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신을 그냥 동부전선 최고 사령관으로 앉혀달라고 이야기를 한 것이었죠. 그런데 히틀러가 이렇게 대답하죠! 지금 나조차도 원수들을 완전히 컨트롤 하는데 어려움이 있는데 네가 최고사령관이 된다면 원수들이 네 말을 내 말보다 더 잘 들을거라고 생각하는거냐? 이렇게 일갈합니다. 그러자 만슈타인은 " 제가 명령을 내린다면 그 누구도 거역하지 않을 것이고 지금보다 더 잘 될거라고 대답합니다! 둘의 사이가 완전 끝나는 순간이었죠.
그러면 제2차 대전은 완전승리고,세계지도가
전 유럽과.소련땅과 중동지역까지 독일제국이 되었을것이다.
만슈타인의 계획대로 연합군을 덩케르크에서 섬멸했다면 처어칠과 영국인들이 독일에 굴복했을까요 실제 역사에서 입증되었지만 독일의 영국침공은 영국공군과 해군이 막았지 영국육군은 1도 기여한바가 없습니다 상실된 군대는 결국 재건되었을테고 전쟁의 결과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을겁니다
영상에서 설명했듯이 기갑부대를 맘대로 돌격하게 허락하여 덩케르크에서 30만명의 영프연합군을 다 전멸시켰어도 영국 본토에 상륙하는 바다사자 작전은 어짜피 실행 못했을 것입니다. 독일은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해양국가가 아니었으니까요. 노르망디 상륙작전처럼 막강한 해군력이 받쳐줘야 하는데 독일은 그런 해군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영국 본토 상륙작전(바다사자작전)은 어짜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덩케르크에서 탈출했던 30만명의 영국군은 나중에 무기를 갖추고 정예병력이 되어 북아프리카와 노르망디에서 또다시 독일과 싸우게 됩니다. 따라서 덩케르크에서 그들이 몰살됐다면 전략적으로 독일에게 두고두고 화근이 되는 일은 최소한 없었겠죠. 즉 롬멜이 더 활개치고 다닐 수 있었을 것이고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더 늦게 시작되었을 거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미 연합군이 승리했겠죠. 그러나 그 과정에 이르는 길이 너무나 험난했을 것입니다. 또 전쟁은 언제나 돌발상황이 많기 때문에 영국군이 끔찍하게 전멸당했다면 반전 여론이 커지며 처칠이 실각할 수도 있었겠죠.
@@만물상자TV전쟁의신 영국의 인구와 대영제국을 건설한 전쟁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30만 잃었다고 항복할것 같지 않습니다 1차대전에서 끔직한 손실을 견딘 영국인입니다 처어칠역시 전쟁이 뭔지를아는 강인한 정치인 입니다 2차대전에서 30만명은 아무것도 아닌 숫자입니다
@miri 6400 덩케르크에서 영국군이 몰살당했다해서 대영제국이 당장 항복!~ 이런 것은 안했겠죠. 저도 동감합니다. 실제 2차대전이 끝날 무렵 영국피해는 민간인 합쳐서 그 이상으로 나게 되니까요~
다만 1941년부터 시작되는 북아프리카 전역과 노르망디 상륙작전까지 이르는 과정이 영국으로서는 몇배가 더 힘들었을 것이고 독일에겐 전략적 유리함을 줬을 거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예를 들어 몽고메리가 전략적, 전술적 능력이 롬멜보다 떨어지는데도 막대한 물량을 축적할 때까지 준비만 하다가 롬멜이 없을 때 벌어지게 되는 엘 알라메인전투가 1942년 10월에 있었는데요 1942년에서 1943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이 독일에겐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었습니다. 롬멜의 진격이 멈춘 엘 알라메인 전투도 그 시점에 일어나지 않았을 확률이 크죠.
던케르크에서 탈출한 30만명의 연합군은 당연히 영국의 최정예병이었고 그보다 훨씬더 중요한것은 전격전을 당하는 입장에서 현대전을 경험한 중요한 전력이었다. 만약에 던케르크탈출이없었다면 영국은 또 어디선가 전격전에 당하고서야 전격전에대한 대비책을 만들수있었을것이다. 물론 독일은 그런 기회를 주지않았을것이다.
난 만슈타인을 전쟁의 성인이라고 생각한다. 성인이 되려면 3개의 기적을 일으켜야하는데 하나는 폴란드전에서 또하나는 세당에서 마지막하나는 스탈린그라드에서 기적을 일으켰다고 본다. 솔직히 만약에 파울러스가 만슈타인을 믿고 병력을 만슈타인의 구조병력쪽으로 이동시켰다면 전력의 최소 1/3은 살려서 갈수있었을것이다. 스탈린그라드에서 탈출기회를 준건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덩케르크에서 30만의 영국군이 궤멸됐다면 전략적으로 독일이 얼마나 유리하게 전쟁을 끌고 갔겠습니까? 바로 다음해인 1941년 2월에 북아프리카에서 롬멜과 덩케르크에서 무사히 도망쳤던 그 영국군들이 맞붙어 싸우게 되니까 말입니다. 만슈타인은 파울루스에게 분명히 말했습니다. 총통의 허락은 없었지만 자네가 판단해서 탈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탈출하라고요. 육군참모총장의 야심이 있었기에 살벌한 히틀러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어서 그렇게 말했지만 분명 판단해서 옳은대로 하라고 충고했죠.
히총통이 나름 똑똑하긴 했지만. 좀더 현명했다면 세상이 더 힘들었을듯.
히틀러는 똑똑했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 신) 채널, 2차대전 주요 이슈 재생목록에 히틀러 관련 이슈가 많습니다. 히틀러는 창의적이고 기발한 발상을 좋아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몽상가였습니다. 근본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오스트리아에서 그림공부를 하며 백수로 있던 시절, 히틀러의 친구가 "너는 종일 뭘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 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히틀러는 "나는 오스트리아의 교통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구상중이야"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빈(Vien)'시청의 도로교통과 담당 행정공무원이 해야할 행정부서의 동문서답같은 대답이지만 친구는 그가 정치적인 안목을 지녔다는걸 몰랐을 겁니다.
독일과 러시아가 폴란드를 양분하는 조약을 맺고서 , 또 독일은 왜 폴란드를 침공하였나.
이미 댓글에 답이 있는데요.
소련과 폴란드를 양분하는 조약을 맺었으니까 조약대로 폴란드를 쳐들어간 것 아닙니까?
만약 덩케르크에서 영프 연합군을 전멸시켰다면 미국참전전에 영국을 굴복 시킬 수 있었을까요?
좋은 질문이십니다. 만슈타인 1편 영상에서도 질문에 대한 결론을 내린바 있습니다만 기갑부대를 이용한 전격전. 즉 기동포위전은 1940년 당시 독일이 세계최초로 한 것입니다. 히틀러를 비롯한 꼰대 독일지휘부는 영프 연합군이 이렇게 빨리 무너질 수 있나? 혹시 역습아닐까 걱정해서 기갑부대를 스톱시킨 것입니다. 히틀러는 프랑스 항복 후에도 무려 2주간 영국을 공격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처칠의 평화회담 제의에 대한 답을 기다린겁니다. 결국 거절당하고 1940년 7월 중순에서야 영국 본토 항공전이 시작되죠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습니다. 기갑부대 스톱 없이 30만 영국군이 전멸되었다면 영국 내부에서 히클러와 강화협상 하자는 목소리가 더욱 커져서 처칠이 정치적으로 압박받았을 것이고 롬멜과 1년후에 맞붙게 되는 영국군도 그렇게 세력이 강하지 못했을 것이며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훨씬 늦어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미국이 참전 한다할지라도요. 4년전 무사히 도망간 그 영국군이 1944년 6월에 그대로 복수를 다짐하며 상륙하거든요
그랴
독일의수많은명장들중 최고는 만슈타인이라고봄. 허풍많은 중국사의 제갈량따위와는 비교불가. 전술적으로 가장뛰어난 장군
만슈타인 1부 업데이트 버전입니다.
ruclips.net/video/lxB_hqPS8vE/видео.html
만슈타인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가 만든 낫질작전은 프랑스 점령 뿐 아니라
아예 연합군 전체를 말살시키기 위한 야심찬 작전이었습니다.
이 때 만슈타인 말대로 했다면 연합군은 끝났습니다.
아래 컨텐츠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ruclips.net/video/djezQlsMRIg/видео.html (연합군 최고 전략가 앨런브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