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0 중3때 담임 선생님께 의뢰를 받았습니다. 친구♡를 일년동안 돌보아라. 학기초에는 될수있으면 나가서 축구하지말고 그 친구 옆을지켜라. 제가 그 당시 일년동안 느낀 것들이 교수님 강의로 설명이 되는 느낌입니다. 이런 경험을 그로 써보고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감사합니다. 철학에 대한 관심도 생겼어요. 야전침대를 제공하라. 그친구가 원했던것이 그것인것 같습니다. 저도 알았는데 그때제가 어려서 방법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때 들었던 말은 선과악이 갈린다.였어요.지나고 보니 나라별 개인별 한 행동에 대해 볼수있었어요. 리더에 따라 성공과 실패. 공동체를 위해 나도 따라주었는지?. 어리석은 자신은 열심히 따라주지 않으며 남까지 선동해서 방역을 방해했어요. 하늘이 선별하더군요..내가 본 하늘은 분명 같이 다루지 않았어요.칠성판위 따로 담겨졌어요.
니체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니체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는 사람이다. 니체는 예민하고 병약하고 정직하고 약자를 동정하고 천재고 감성적이면서 이성적인 인간이다. 행복과 동정이 도덕의 1원칙이 될수없음은 명확하다. 스피노자가 말했듯이 모든 고귀한것들은 드물고 어렵다. 도덕성은 고귀함이다. 심미적 감수성이 작용하는 의지적인 취향이 바로 도덕이다.
배 부르면.. 그제야 어떻게?라는것이 스물스몰 몰려온다 .불평등이 심한 대한민국이 이제야 평민들도 어떻게?에 대해 갈증을 느끼는듯하다 학창시절 아무리 배워도 삶의 찐이 안되고 40대 부터 다른 자기로 혼돈이 오는것같다 공동체가 심했던 우리나라 구조로 개인의 자유와행복은 없다.나도 행복하려면 부모님도 자식도 주변인도 행복해야 비로소 마음이 좋고 자기에게 집중하게 되는듯. 교수님들이 시민들과 자주 호흡하고 서로의 눈높이를 이해하는 장이 사랑방처럼 곳곳에 있으면 좋겠다.
불쌍한 사람을 보고 돕고싶은 사람이 도움을 행하면 그것이 자연의 순리와 이치이고 그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아도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사람이 돕지 않는 행위도 똑 같은 자연의 순리와 이치이다. 모든 문제는 도움을 준 사람이("착한일 한사람") 혹은 제 3자들이 돕지않은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나쁘게 보거나 이런 행위를 어떤 획일적인 가치관의 잣대로 보거나 강하게 비판하거나 주장하면서 인간끼리 차별과 멸시와 혐오가 생길때 발생된다.
힘의 의지에 의해 상승하려는 욕구에 따른 해석이란 도덕이라고 할 수 없다.인간의 의지에 의해 상승하려는 욕구는 이기적이다. 이기적인 기준에 의해 해석되는 것은 매우 주관적이며 개개인의 다른 주관적인 해석이 보편적이지 않기 때문에도덕이라 할 수 없다. 자기 욕구충족에 대한 행위에 대한 변명일 뿐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선악 구분이 없어지고 욕망을 충족하려는악행도 자신의 도덕이라고 주장하면 사회는 혼란스러울 뿐이다. 니체가 자신의 생각을 문학적 독백으로 서술한 것을 철학이라고 말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아마 단지 문학일 뿐이 아닌가 생각된다. 철학이란 논리가 정연하여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젊은 시절 니체를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했었다. 니체의 철학은 쇼펜하우에 심취해서 최초에는 비관주의적이었으나 나중에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반발하면서 자신의 철학적 사상을 변화시켰다. 쇼펜하우어의 맹목적의지를 권력의 의지 라고 외치며 긍정적 철학사상으로 선회했지만 궁극적으로 쇼펜하우어의 의지의 철학을 벗어나지 못했다.니체의 책을 읽으면 그 무한한 독설 해학의 문장은 독자로 하여금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서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으나 그의 책에서 체계적인 사상은 얻을 수 없다. 반면 칸트의 저서는 난해하기는 하나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쇼펜하우어의 책은 너무나 난해하여 철학자도 읽기를 거부하여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되었고 단지 그 자신이 만년에쉽게 해석해 놓은 책을 읽은 사람들의 의해 인정받아 만년에 유명하게 되었으나 청년시절의 명예욕은 이미 사라져홀로 조용히 오래 살다가 사라졌다.
사교성 많은 여우가 곰한테 와서 굴레를 만들어 놓고 친구하자 했지요 곰은 여우가 하자는 데로 몇개의 굴레 속에서 함께 즐거운 놀이도하고 배움도 같이 했지요 항상 대장이 되고 싶은 여우는 다른 곳에도 몇개의 굴레를 만들어 놓고 대장놀이를 즐기고 있었지요 곰과 여우는 친하니까 서로의 성격도 잘 알게되었지요 그런데 토끼도 닭도 강아지까지 여우 때문에 속상해 하며 곰한테 다가와 하소연도하고 여우가 했던 한소리라도 얻어들을까하고 곰 곁으로와서 질문들을 던졌지요 가끔씩 확인할수도 없는 말들을 함부로 쏟아내는 여우의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었던 곰은 말을 옮기는 일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지요 그런데 오래되니 그 여우의 근성은 곰에게도 튀고 말았지요 여러번 곰도 아픔을 당했지만 용기를 낼 기회가 왔지요 곰이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곰 혼자만의 아픔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동안 곰 곁으로와 여우 때문에 아파했던 많은 동물친구들과 곰 자신의 방어를 위해 시원한 한방을 날리고 싶었지요 곰은 굴속으로 들어가 사람이 될 때까지 마늘을 먹으며 인고의 시간을 갖기로 했지요
룬드 도덕결정의 주체는 개인. 하지만 개인도 누구인가에 의해 잡것과 고귀함이 있슴. 우린 잡것이아닌 ㅇ고귀한 위버맨시가 되어야하며 위버맨시의 도덕이 선한것이다 라고 할수 있겠네요. 물론 또 다른 위버 맨시가 볼땐 선이 아닐수도 있지만. 이게 니체가 본 도덕과 선악의 기준인것 같네요. 따라서 스피노자처럼 선과악은 결정할수 없고 단지 나의 존재 역량에 유리한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가 아는 선.악은 인간의 무지에서 오는 편견이다. 라고도 할수 있겠죠.저도 어려눠요. 머리가 빙빙돔.
선과악은 진화와 관계가 있죠~ 선만 있었다면 인간은 멸절했을것이고 악만 있었더라도 인간은 멸절했을겁니다. 선과악이 적당히 공존해야 멸절하지 않고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죠~ 진화는 도덕을 모르죠~ 진화가 가르키는것은 단 한가지 뿐!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해 인간들은 다양한 생각을 갖게 진화되어 왔음. 선한사람 악한사람~ 선도 악도 아닌사람~
@@soongum 인류가 사유하는 도덕이 진화하는 와중에 나타나는 망상이라면 인간은 진화가 아니라 퇴화한게 아닌가요? 허왕된 망상을 인간의 역사속 대부분에서 사유했으니깐요. 선과 악처럼 진화론과 창조론 우리는 그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는 선택의 순간에 살고 있습니다. 칸트와 니체가 서로 다른 의견을 보여줬듯이 어느 한쪽은 맞고 어느 한쪽은 틀렸지만 그 결과를 아직은 알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과학이 진리라고 믿는 사람들은 언젠간 생물학적 접근으로 우리의 기원이나 도덕을 밝힐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과학이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이죠. 진화론도 과학도 어느 하나 완벽한 진리는 없으며 그저 믿음에 의해 추측하는 이론들일 뿐이죠. 과학 현상을 증명했기때문에 그것이 진리라고 반문한다면 그것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그 틀안에 갇힌체 경험한 것들을 보고 증명했기때문이죠. 결국 우리의 세계 밖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우리는 경험할 수 없고 그것이 존재하는지 조차 확인되지 않았기때문에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은 불가능한 이론이라고 말했으나 아인슈타인이 틀린것 처럼 우리는 과학조차도 진리라고 말할 수 없으며 그 진리가 아닌 과학으로 먼 훗날 생물학적 접근으로 우리의 DNA에 도덕심의 기원을 찾는다는 것은 확정할 수 없는 추측일뿐이죠. Hewis님을 반박하기 보단 마치 과학을 진리라고 착각하는 이들에게 어떠한 것도 우리는 확정할 수 없다고 말해주고 싶어 댓글남깁니다.
@@기도-d3h 인간은 물론이고 그 어떤 생명도 바로앞에 미래를 완벽히 예측 할수 없다!! 여기서 완벽이란 100% 를 말합니다. 99.99999999%와 100% 차이가 수치로는 작으나 결과는 0.000000001의 차이가 생깁니다. 진화는 100년 1000년이 아니라 훨신 더 큰 시간개념 까지도 생각하고 내린 결론 처럼 명확합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증식과 다양성 입니다. 그 다양성 안에 선과 악이 포함된겁니다. 그리고 그후 다른 인간의 모든 감정들이 사소하게 변화하여 분노,사랑,증오,고독, 즐거움,슬픔 등등이 생겨 났고~ 그러한 다양한 감정들은 진화의 산물인 것이죠~ 인간이 선하기만 했다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영원히 살았을거란 착각을 많이 합니다! 인간이 선하기만 했다면~ 행복하게는 살수 있지만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는 없습니다. 100년 1000년 은 운이 좋아 행복하게 살 순 있겠지만 10000년 100000년은 선한것 만으론 불가능 합니다. 그걸 진화는 알고 있어서 증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양성까지 포함한겁니다. 그러면 증식과 다양성으로 진화는 만족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다양성에서 오는 딜레마가 생겨납니다. 악의 딜레마! 그건 다시 진화로 보정하는것이 관찰되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완벽한 명제를 실제론 차이가 발생하는 부분도 감지하여 그걸 다시 진화로 보정해 주는것이 관찰됩니다. 보정되어가는 과정도 진화로 해결 하고 있다고 봅니다. 계속 진화 되어가는 모습은 진화의 명제를 완벽히 만족하지 않기 때문일겁니다. 하지만 점점 진화의 명제의 수렴해 가는것 처럼 보입니다.
@@기도-d3h 진화를 생각할때 옳은것! 선한것! 을 먼저 생각하는것은 잘못 생각한겁니다. 진화는 선과악 옳고 그름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건 그냥 도구정도 일 뿐! 진화는 유전자를 남기려고 하는것일뿐입니다. 언제까지? 영원히~ 그렇다면 많이? 그것도 아닙니다. 그냥 아무생각 없이 어느 시간을 찍든! 그 시간엔 반드시 필요한 유전자가 있어야 한다죠~ 기원전 5세기를 찍든 서기 3000년을 찍든 10000년을 찍든 그시간에 반드시 하나의 유전자는 있어야 한다!! 그걸 만족시키기위에 생명의 육체든 정신이든 이렇게 변화 하고 있는겁니다
선과악을 바라보는 니체의 관점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신이 없다는 전제하에 그의 주장은 가장 현실적이며 진리에 가까운듯 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마지막에 그가 주인성 (이타적인, 이성에의한 행위) 과 노예성 (이기적인, 본능에의한 행위) 을 선과 악으로 구분지었다는 것이다 (절대적 선과 악은 없다고 주장하지만 자신을 방어할 마지막 수단). 마지막 강사의 멘트에서 볼 수 있듯이 도덕은 삶 위에 만들어진 다는 것에 동의한다. 마치 내가 누군가에 의해 살인당하지 않기위해서 살인을 보편적인 관점위에 악으로 여기는 것처럼. 도덕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인간들이 만들어낸 일종의 방어체계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세상의 선과 악의 기준이 "나" 로 정의된라면, 철저히 인간이 만들어낸 도덕과 선의 사슬(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로부터 벗어난 오직 자신을 위한삶 (이기적인 삶) 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이고 진리에 접근한 삶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살인당하지 않기 위해서 남을 살인 하면 안되지만, "선과 도덕의 굴레 속에서 오지랍과 이타적인 삶을 사는 자신을 보고 지혜롭다, 현명하다, 선하다, 이게 옳은 삶이야' 라고 자위하며 살 필요는 없다는 것" 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만약 나의 삶을 판단 하거나 심판할 절대자(신)의 존재가 없다면, 나만을 위해 사는 삶을 감히 누가 악이라 판단 할 수 있는가? 결국 도덕은 인간이 삶을 유지하지 위해 만든 "선" 이라는 고귀하고 가치있는 것으로 위장한 한가지 방어체계 수단이며 이 세상은 결국 강한자(힘)에 의해 선과 악의 기준이 나눠진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인간관계를 통해서 생존과 번식을 하려고 합니다. 어떠한 인간도 혼자서 생존과 번식을 할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만약 번식을 포기하고 생존만을 위해서 혼자 살겠다고 했다면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은 누구에게도 책임질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관계를 해야 하는 인간은 상대방에게 영향을 주는 행동에 대해 책임지어야 그 관계가 유지됩니다. 절대자가 있건 없건 내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한 나의 선과 악은 타인에 의해 규명될 수 있으며 나 또한 타인의 선과 악을 규명할 수 있기에 내가 그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면 이기적인 삶이 아닌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도덕적인 삶을 산다”라는 것은 결국 인간관계를 추구하면서 살겠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은 자신의 삶을 추구하는건 좋은데 기본전제가 항상 있죠.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깔아놓은 인프라 위에서만 살 수 있어요. 자유로운 여행이 궁극의 목적인 사람이 맨 몸으로 혼자 그게 가능할까요? 기차 배 비행기 식사 숙소 심지어 관광지 티켓팅 직원까지 타인의 활동이 받쳐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인간 자체가 홀로 살 수가 없기 때문에 같이 섞여 살아가는 존재임으로 자신의 삶을 누리고 즐기고 자신을 궁극의 목적으로 추구하되 타인의 자유나 생명 권리등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전제가 깔려야 합니다. 이것이 선한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유명한 말인 '만인이 만인의 적' 즉 모두가 이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무시하면 모든 인간이 모두 서로에게 적이되고 즐기지도 못하고 공멸하는 즉 집단의 만족과 효용이 0에 수렴하게 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죠. 나도 이 사람를 이유없이 패고 그 사람도 나를 이유없이 패고 모두 몸져누워 이로 못하고 굶어 죽는 이런 개판같은 세상이 도래하는 것인데 인간이 이런 자해행위와 같은 상황을 자처할만큼 어리석지는 않죠. 관습과 상식 법등 유무형의 것으로 인간 사이의 룰을 만들어 놓았고 이는 순전히 인간이 모여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 도덕이라는 것은 인간이 서로 적이 되지 않고 부드럽게 서로가 서로를 도움닫기로 삼으며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도덕에 절대적 선이라던가 그러한 가치성이 있는게 아니라 인간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최소한 인간답게 살다가 갈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규칙의 필요성에 의해 생겨난 부산물이다라고 생각합니다. 도덕이란게 상대적이잖아요?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르고. 그 시대의 특성에 맞는 즉, 그 시대에 사람들이 서로 마찰없이 어울릴 수 있게 만드는 규칙이란게 있고 그러한 규칙의 정신이나 가치를 담은게 그 시대의 도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남을 해치지 마라 이런건 도덕이나 선의 개념이 아니라 절대적 본원적 가치체계이죠.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이라면 태어난 이상 배고프면 밥을 먹고 싶다는 것만큼의 본능적 차원으로 남의 육체를 해하는것이 잘못된 것이라는걸 압니다. 잠자는 사람 함부로 건드는것도 마찬가지 차원으로요. 우리가 연약한 갓난아이가 새근새근 잠드는걸 볼때 함부로 깨우는 행위를 상상만해도 죄를 짓는것 같은 느낌이 들죠? 인간의 본능적인 것을 침해하고 있다는 걸 유전자(?) 차원에서 직감적으로 아는 겁니다. 이런건 도덕이 아니라 인간이 후각 시각등을 갖고 태어나는 것처럼 그냥 본능적으로 아는 영역이구요. 도덕을 침해하는 인간은 비난받는 정도에 끝나지만 이런 절대적 영역을 침해하는 인간은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취급 자체를 못 받고 집단에서 퇴출 격리당하거나 심심찮게 목숨을 잃는걸로 인생이 끝납니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서양인들의 철학의 단점은 모든걸 "이것은 이것이야", "저것은 저것이야"처럼 명료하게 구분되야 한다는것이다. 생존과 안전 그리고 약간의 즐거움(오락)을 제외한 모든 인간의 "고상한" 이념,사상,철학,도덕,통념 등은 모두 인간언어(생각;머리속의 언어)가 만든것들이다. 하지만 인간언어(생각)는 볼수도,만질수도,들을수도,맛볼수도 그리고 냄새 맡을수도 없는 귀신의 존재와 그 특성이 너무나 똑 같다. 인간의 생각(상상과 모든 종류의 지식등)은 너무나 가변적이어서 도덕이라는 것도 상황적이고 상대적이고 지역적이고 시대적이고 문화에 따라 수시로 얼마든지 변하는것이다(예;"열녀문"은 더이상 도덕이 아니고 요즘의 "열녀"는 바보다). 귀신을 닮은 허상의 인간언어(생각,관념,이념,철학,도덕 등)가 만든 도덕이나 행복론으로 바람직한 인간 혹은 인간생활의 "표준"을 구분하고 주장하는 행위를 나는 '똑똑한 무식'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세상의 모든 "위대한"지식보다는 절대 상황적이지 않고 가변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인간을 포함한 모든 지구의 생명들과 물질에게도 통하는 자연의 순리와 이치로 이세상과 인간사회를 읽고 살아간다.
갠적 느낌> 실로 한사람이 오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가 오는 대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린 이를 알수 없죠 어떤 사람인지 ? 내가 만나는 이 사람들의 영향으로 내인생이 나쁘게 되기도 혹은 반대로 좋게 변하기도 합니다. 그건 즉 사람의 선과악행에 공존하는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래서 옛말에 이른 말이 있습니다. 어질고 착한이를 가까이하라 (다중.이중인격은제외입니다)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자를 가까이 하지마라 무례하게 함부로 대하는 자를가까이 하지마라 술도박,아첨 여자를 탐하는 자를 가까이 하지마라 등등 내 주위에 이른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영향을 받을 것이고, 내인생도 타인 처럼 바뀔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되는....
도덕이란 공동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행해져 온 교육과 학습의 산물이며 그 사회의 팽창이나 수축에 따라 규범으로서의 도덕도 그 가치를 달리하게 되는 결코 절대적일 수 없는 가변적인 것일 뿐. 허나 인간에 대한 지나친 신뢰를 바탕으로 태어 난 니체의 힘의 의지로 이해되는 이 세계의 미래는 존재의 영속성에 의문을 던질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감사드립니다 틀림없다는 진리의 말을 듣고./철수 김원태 고난은 행복의 뿌리다. 힘은 행복의 원천이며 호흡이다 힘없는 행복은 포장이다. 행복의 조건은, 삶의 근육을 단련해라. 죽음을 굴복시켜라. 신이든 인간이든, 버팀목을 가져라 꾸준히 마음을 멋지게 달래면서 다스려라. 부정을 벌이고 긍정을 심어라. 존재로 쾌락을 누리고. 그리움의 사랑을 하라.
들으면 들을수록, 논하면 논할수록 햇갈리게 하는 전형적 "철학" 강좌 수준을 넘지 못함은 도덕과 행복 선악 등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 우주의 운행 이치 덕: 도를 따라 행할 때의 결과 선: 우주 이치에 순응함. 악: 우주 이치에 거스림. 이 정도만으로 정의가 되면 간단하게 설명, 이해할 수 있다.
강연 컨텐츠의 저작권은 '(재)플라톤 아카데미'에 있으며 본 영상 저작물에 대한 무단 도용/배포/재가공 등을 금합니다.
아침부터 좋은 강연을 집에서 들을 수 있다니 행복해요~~~
백승영 교수님 강의력이 참 좋으시네요.
잘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유익하고 좋은 강의 원없이 빠져 들었습니다. 내가 얼아나 무지한 사람인지도 깨닫게 되었네요 좋은 의지를 갖인 사람이 되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니체를 열심히 공부하고 싶습니다 감사하게 경청하였습니다 존경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행위가 도덕의 기준이 아니라 행위자가 건강한 사람인지 판단해야한다.
이제 이해가 되었습니다.
살면서 왜 그렇게 공허한 느낌이었는지도 알게 되었고, 밑에 댓글들을 보니 더더욱 실감이 갑니다.
좋은 가르침 감사합니다.
명강의 감사합니다 🎉🎉🎉
예전에 저희 학교에 오셔서 특강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늘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백교수님도 그렇지만 지혜의 빛님도 좋은 강의를 지난 2년간 많이 남겨주셨네요. 감사히 잘 듣고 있습니다.
해외 온라인에서 이러한 주제들을 다루는 온라인 강연 강의를 찾기가 어려운데, 올려주시는 동영상들이 어느정도 그 답답함을 해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께서 깊은 고민과 사색의 끝에 내던진 통찰과 글로 간략하게 추스려서 제시하는 혜안 덕분에 스스로 다양한 질문들이 던져질 수 있었습니다.
정제된 답이 생각할 여지를 주었습니다.
짧은견해로 볼때
칸트는 에고이스트적 도덕성을
니체는 나르시시스트적 도덕성을
보여주는듯해요
어려운 주제를 흥미롭고 알기쉽게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꽃은 꽃이로되 꽃이 아니다. 만개한 꽃 백승영 교수님!!! 강의 잘 봤습니다!!!
강의 잘 들었습니다 이제서야 듣게 되어 너무 안타까울 뿐이에요~ 감사합니다!
교과서적인 강의 감사합니다. 계속적으로부탁 드립니다.
아주 좋은 강의 였습니다.
교수님 존경스럽습니다.
저의 60인생의 숙제가 풀렸습니다.
음향이 조금 아쉽습니다.
좋은 강의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16:50 중3때 담임 선생님께 의뢰를 받았습니다. 친구♡를 일년동안 돌보아라. 학기초에는 될수있으면 나가서 축구하지말고 그 친구 옆을지켜라. 제가 그 당시 일년동안 느낀 것들이 교수님 강의로 설명이 되는 느낌입니다. 이런 경험을 그로 써보고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감사합니다. 철학에 대한 관심도 생겼어요. 야전침대를 제공하라. 그친구가 원했던것이 그것인것 같습니다. 저도 알았는데 그때제가 어려서 방법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명강의 감사합니다 🙏
멋찌세요 ㅡ강의 감사합니다 🙏 💕 😊 😘
힐링 하고 갑니다.
코로나때 들었던 말은 선과악이 갈린다.였어요.지나고 보니 나라별 개인별 한 행동에 대해 볼수있었어요. 리더에 따라 성공과 실패. 공동체를 위해 나도 따라주었는지?. 어리석은 자신은 열심히 따라주지 않으며 남까지 선동해서 방역을 방해했어요. 하늘이 선별하더군요..내가 본 하늘은 분명 같이 다루지 않았어요.칠성판위 따로 담겨졌어요.
선동당해서 방역 타령한거지. ㅉㅉㅉ
참 고마운 채널이네요. 차근차근 들어보겠습니다.
좋은강의 넘 감사합니다
지금까지살아오던 삶을돌아보고 지금현재의 자신을 객관적으로볼수있었습니다. 정말어려운내용인대,,,교수님의 명강연감사합니다.
백승영 교수님 멋져요
삶이 도덕에 우선한다는 마지막 말은 당연하면서도 무서운 말이군요.
kind prince
a가 잘못됐다고 해서
ㄱa가 꼭 옳은건 아니니까요.
b가 더 나을수도 있지만,
c로 더 나빠질 수도 있네요.
안 당연합니다.
삶이 우선이지ㅠㅠ도덕은 뒷전...
가슴에 와닿는 말씀 깊이 않고
노력하며 살아야겠네요 교수님 강의실력이 돋보이네요
1시간 20분동안 지루할 틈 없이 들었네요 너무 재밌게봐서 그런지 백승영 교수님이 쓰신 책에도 관심이 가네요
좋은영상입니다. 감사합니다
니체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니체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는 사람이다. 니체는 예민하고 병약하고 정직하고 약자를 동정하고 천재고 감성적이면서 이성적인 인간이다. 행복과 동정이 도덕의 1원칙이 될수없음은 명확하다. 스피노자가 말했듯이 모든 고귀한것들은 드물고 어렵다. 도덕성은 고귀함이다. 심미적 감수성이 작용하는 의지적인 취향이 바로 도덕이다.
좋은 것만 보는 눈을 키우자.반성해야 겠다. 모든 이들은 나의 선생님.
강의를 듣다보니 니체와 스피노자간의 선.악을 바라보는 관점에 공통점이 많군요.
백승영 서강대에서 철학을 배우고
함평군자 최진석교수 동문이로군요
반갑습니다 암투병 극복승리자 💕
프리드리히 니체ᆢ의지의 철학자
공부를 독일 🇩🇪 철학을 한국 🇰🇷
대한민국 🇰🇷 정착에 노력 부탁해요
설민석
김용옥
난잡한 교사들에게 인문ㆍ역사학문
한국 🇰🇷 내에 쌍두마차 역활 부탁드립니다 🙏
니체, 깨는군요,, 재밌습니다, 철학공부가 이렇게 (다시) 재미있기는,
참 오랫만입니다, 감사합니다.
111111111ㅣㅔ
감사합니다
멍청한 결론에 도달했지만
알차게 구성된 강의네요
동양철학, 유교사상에서 동정심은 선의 기본이라고 주장하는데 서양철학과는 관점이 다른걸 보니 흥미롭습니다.
배 부르면.. 그제야 어떻게?라는것이 스물스몰 몰려온다 .불평등이 심한 대한민국이 이제야 평민들도 어떻게?에 대해 갈증을 느끼는듯하다
학창시절 아무리 배워도 삶의 찐이 안되고 40대 부터 다른 자기로 혼돈이 오는것같다
공동체가 심했던 우리나라 구조로 개인의 자유와행복은 없다.나도 행복하려면 부모님도 자식도 주변인도 행복해야 비로소 마음이 좋고 자기에게 집중하게 되는듯.
교수님들이 시민들과 자주 호흡하고 서로의 눈높이를 이해하는 장이 사랑방처럼 곳곳에 있으면 좋겠다.
불쌍한 사람을 보고 돕고싶은 사람이 도움을 행하면 그것이 자연의 순리와 이치이고 그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아도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사람이 돕지 않는 행위도 똑 같은 자연의 순리와 이치이다. 모든 문제는 도움을 준 사람이("착한일 한사람") 혹은 제 3자들이 돕지않은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나쁘게 보거나 이런 행위를 어떤 획일적인 가치관의 잣대로 보거나 강하게 비판하거나 주장하면서 인간끼리 차별과 멸시와 혐오가 생길때 발생된다.
힘의 의지에 의해 상승하려는 욕구에 따른 해석이란 도덕이라고 할 수 없다.인간의 의지에 의해 상승하려는 욕구는 이기적이다. 이기적인 기준에 의해 해석되는 것은 매우 주관적이며 개개인의 다른 주관적인 해석이 보편적이지 않기 때문에도덕이라 할 수 없다. 자기 욕구충족에 대한 행위에 대한 변명일 뿐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선악 구분이 없어지고 욕망을 충족하려는악행도 자신의 도덕이라고 주장하면 사회는 혼란스러울 뿐이다. 니체가 자신의 생각을 문학적 독백으로 서술한 것을 철학이라고 말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아마 단지 문학일 뿐이 아닌가 생각된다. 철학이란 논리가 정연하여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젊은 시절 니체를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했었다. 니체의 철학은 쇼펜하우에 심취해서 최초에는 비관주의적이었으나 나중에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반발하면서 자신의 철학적 사상을 변화시켰다. 쇼펜하우어의 맹목적의지를 권력의 의지 라고 외치며 긍정적 철학사상으로 선회했지만 궁극적으로 쇼펜하우어의 의지의 철학을 벗어나지 못했다.니체의 책을 읽으면 그 무한한 독설 해학의 문장은 독자로 하여금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서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으나 그의 책에서 체계적인 사상은 얻을 수 없다. 반면 칸트의 저서는 난해하기는 하나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쇼펜하우어의 책은 너무나 난해하여 철학자도 읽기를 거부하여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되었고 단지 그 자신이 만년에쉽게 해석해 놓은 책을 읽은 사람들의 의해 인정받아 만년에 유명하게 되었으나 청년시절의 명예욕은 이미 사라져홀로 조용히 오래 살다가 사라졌다.
17:42 고통받는 벗에게 딱딱한 야전침상같은 쉼터가 되어야 한다. 즉, 고통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멋진 강의, 니체공부 많이 하셨네요.
위버맨쉬와 일곱차크라와 연결하면
먼진 조화가 돌것 같습니다.
니체철학의 핵심은 의식확장입니다.
사교성 많은 여우가 곰한테 와서
굴레를 만들어 놓고
친구하자 했지요
곰은 여우가 하자는 데로
몇개의 굴레 속에서 함께 즐거운 놀이도하고 배움도 같이 했지요
항상 대장이 되고 싶은 여우는
다른 곳에도 몇개의 굴레를 만들어
놓고 대장놀이를 즐기고 있었지요
곰과 여우는 친하니까
서로의 성격도 잘 알게되었지요
그런데 토끼도 닭도 강아지까지
여우 때문에 속상해 하며
곰한테 다가와 하소연도하고
여우가 했던 한소리라도 얻어들을까하고
곰 곁으로와서 질문들을 던졌지요
가끔씩 확인할수도 없는 말들을 함부로 쏟아내는 여우의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었던 곰은 말을 옮기는
일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지요
그런데 오래되니 그 여우의 근성은
곰에게도 튀고 말았지요
여러번 곰도 아픔을 당했지만
용기를 낼 기회가 왔지요
곰이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곰 혼자만의 아픔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동안 곰 곁으로와
여우 때문에 아파했던
많은 동물친구들과 곰 자신의
방어를 위해 시원한 한방을
날리고 싶었지요
곰은 굴속으로 들어가
사람이 될 때까지
마늘을 먹으며 인고의
시간을 갖기로 했지요
감사드립니다
삶의 끄적끄적/철수 김원태
객관적인 일반적 창조적 삶
주관적인 서정적 창조적 삶
일반인 틀에 밖인 객관적 삶
넓고
높고
멀고
주관적인 시인에 삶
뛰어넘는 창조적 삶
행복이란?
3고(고통,고뇌,고난,) 없는
긍정적인 평안한 삶
흔하디흔한 근접한 삶의 파편조각이라도 행복을 느끼며
사랑하라.
생각 따라가며 생각하기 나름이다
가정의 궁극적 목적은 사랑실천이다
자연은 하나님이다.
꾸벅 감사해요
강의 잘 보았습니다. 니체의 도덕철학 비판은 그 시대에 아주 용기있는 견해로 좋았지만 '리버멘쉬' 는 받아 들이기 힘듭니다.
리버가 아니고 위버입니다. 영어로는 over, 넘어선다는 뜻입니다. 위버맨쉬는 인간을 넘어서는, 이라는 뜻이며 그래서 "초인"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감동!!!!! 백승영교수님 강의는 최고 입니다.
1999년 콘스탄쯔, 2000년 본 대학시절,, 그리고 2005년 베를린공대에서,,, 대략
서너차례 걸쳐 칸트를 소화해 볼라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기억들이
오늘,,, 스쳐지나 갑니다.
'우리를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와 '왜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약간 명확히 구분해주셨다면, 더 이해하기 수월했을 듯 싶었습니다.
룬드 전체가 이에 대한 설명이구만.
봉원동 전체가 이에 대한 설명인데, 구분해서 설명해주셨으면 좋았겠다는 겁니다.
룬드 도덕결정의 주체는 개인. 하지만 개인도 누구인가에 의해 잡것과 고귀함이 있슴. 우린 잡것이아닌 ㅇ고귀한 위버맨시가 되어야하며 위버맨시의 도덕이 선한것이다 라고 할수 있겠네요. 물론 또 다른 위버 맨시가 볼땐 선이 아닐수도 있지만. 이게 니체가 본 도덕과 선악의 기준인것 같네요. 따라서 스피노자처럼 선과악은 결정할수 없고 단지 나의 존재 역량에 유리한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가 아는 선.악은 인간의 무지에서 오는 편견이다. 라고도 할수 있겠죠.저도 어려눠요. 머리가 빙빙돔.
명쾌한 강의! 대학 시절 잊었던 상승의 프로세스!
니체에겐 도덕이 파괴의 대상입니다. 도덕이 오랜 세월동안 인간을 망쳐왔기에 신 따위에게나 기대는 나약한 바보가 되었다는 것이죠.
니체의 괸점은 오로지 강인함입니다. 자타를 막론하고 강함이 곧 선이고, 나약함은 이유를 막론하고 죄라는 겁니다.
좋은 강의 잘 들었습니다 ㅠ... 과연 인간은 본능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요 극복 해야하는 것일까요 너무 의문만 남네요
엉뚱한 발상일 수 있지만. 선과 악 또는 도덕심의 기원은
생물학적 접근으로 찾는 날이 올 수 있다고 본다 즉 DNA 문제다.
언제나 그렇듯, 철학적 접근은 마치 도착지 없는 여행일 수 있다.
여행 그 자체가 즐거울수도 있고 그게 목적이라면 그것도 좋은 거다.
선과악은 진화와 관계가 있죠~
선만 있었다면
인간은 멸절했을것이고
악만 있었더라도
인간은 멸절했을겁니다.
선과악이 적당히 공존해야
멸절하지 않고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죠~
진화는 도덕을 모르죠~
진화가 가르키는것은
단 한가지 뿐!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해
인간들은 다양한 생각을
갖게 진화되어 왔음.
선한사람 악한사람~
선도 악도 아닌사람~
@@soongum 인류가 사유하는 도덕이 진화하는 와중에 나타나는 망상이라면 인간은 진화가 아니라 퇴화한게 아닌가요? 허왕된 망상을 인간의 역사속 대부분에서 사유했으니깐요. 선과 악처럼 진화론과 창조론 우리는 그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는 선택의 순간에 살고 있습니다. 칸트와 니체가 서로 다른 의견을 보여줬듯이 어느 한쪽은 맞고 어느 한쪽은 틀렸지만 그 결과를 아직은 알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과학이 진리라고 믿는 사람들은 언젠간 생물학적 접근으로 우리의 기원이나 도덕을 밝힐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과학이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이죠. 진화론도 과학도 어느 하나 완벽한 진리는 없으며 그저 믿음에 의해 추측하는 이론들일 뿐이죠. 과학 현상을 증명했기때문에 그것이 진리라고 반문한다면 그것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그 틀안에 갇힌체 경험한 것들을 보고 증명했기때문이죠. 결국 우리의 세계 밖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우리는 경험할 수 없고 그것이 존재하는지 조차 확인되지 않았기때문에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은 불가능한 이론이라고 말했으나 아인슈타인이 틀린것 처럼 우리는 과학조차도 진리라고 말할 수 없으며 그 진리가 아닌 과학으로 먼 훗날 생물학적 접근으로 우리의 DNA에 도덕심의 기원을 찾는다는 것은 확정할 수 없는 추측일뿐이죠. Hewis님을 반박하기 보단 마치 과학을 진리라고 착각하는 이들에게 어떠한 것도 우리는 확정할 수 없다고 말해주고 싶어 댓글남깁니다.
@@기도-d3h
인간은 물론이고 그 어떤 생명도
바로앞에 미래를 완벽히 예측 할수 없다!!
여기서 완벽이란 100% 를 말합니다.
99.99999999%와 100% 차이가
수치로는 작으나 결과는 0.000000001의 차이가 생깁니다.
진화는 100년 1000년이 아니라
훨신 더 큰 시간개념 까지도
생각하고 내린 결론 처럼
명확합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증식과 다양성 입니다.
그 다양성 안에 선과 악이 포함된겁니다.
그리고 그후 다른 인간의 모든 감정들이
사소하게 변화하여 분노,사랑,증오,고독,
즐거움,슬픔 등등이 생겨 났고~
그러한 다양한 감정들은 진화의 산물인 것이죠~
인간이 선하기만 했다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영원히 살았을거란 착각을 많이 합니다!
인간이 선하기만 했다면~
행복하게는 살수 있지만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는 없습니다.
100년 1000년 은 운이 좋아 행복하게
살 순 있겠지만
10000년 100000년은 선한것 만으론
불가능 합니다.
그걸 진화는 알고 있어서
증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양성까지 포함한겁니다.
그러면 증식과 다양성으로
진화는 만족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다양성에서 오는 딜레마가
생겨납니다.
악의 딜레마!
그건 다시 진화로 보정하는것이
관찰되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완벽한 명제를
실제론 차이가 발생하는 부분도
감지하여 그걸 다시 진화로
보정해 주는것이 관찰됩니다.
보정되어가는 과정도
진화로 해결 하고 있다고 봅니다.
계속 진화 되어가는 모습은
진화의 명제를 완벽히
만족하지 않기 때문일겁니다.
하지만 점점 진화의 명제의
수렴해 가는것 처럼 보입니다.
@@기도-d3h
진화를 생각할때
옳은것! 선한것! 을 먼저 생각하는것은
잘못 생각한겁니다.
진화는 선과악 옳고 그름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건 그냥 도구정도 일 뿐!
진화는 유전자를 남기려고
하는것일뿐입니다.
언제까지?
영원히~
그렇다면 많이?
그것도 아닙니다.
그냥 아무생각 없이 어느 시간을 찍든!
그 시간엔 반드시 필요한 유전자가
있어야 한다죠~
기원전 5세기를 찍든
서기 3000년을 찍든
10000년을 찍든
그시간에 반드시 하나의 유전자는
있어야 한다!!
그걸 만족시키기위에
생명의 육체든 정신이든
이렇게 변화 하고 있는겁니다
선과악을 바라보는 니체의 관점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신이 없다는 전제하에 그의 주장은 가장 현실적이며 진리에 가까운듯 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마지막에 그가 주인성 (이타적인, 이성에의한 행위) 과 노예성 (이기적인, 본능에의한 행위) 을 선과 악으로 구분지었다는 것이다 (절대적 선과 악은 없다고 주장하지만 자신을 방어할 마지막 수단). 마지막 강사의 멘트에서 볼 수 있듯이 도덕은 삶 위에 만들어진 다는 것에 동의한다. 마치 내가 누군가에 의해 살인당하지 않기위해서 살인을 보편적인 관점위에 악으로 여기는 것처럼. 도덕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인간들이 만들어낸 일종의 방어체계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세상의 선과 악의 기준이 "나" 로 정의된라면, 철저히 인간이 만들어낸 도덕과 선의 사슬(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로부터 벗어난 오직 자신을 위한삶 (이기적인 삶) 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이고 진리에 접근한 삶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살인당하지 않기 위해서 남을 살인 하면 안되지만, "선과 도덕의 굴레 속에서 오지랍과 이타적인 삶을 사는 자신을 보고 지혜롭다, 현명하다, 선하다, 이게 옳은 삶이야' 라고 자위하며 살 필요는 없다는 것" 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만약 나의 삶을 판단 하거나 심판할 절대자(신)의 존재가 없다면, 나만을 위해 사는 삶을 감히 누가 악이라 판단 할 수 있는가? 결국 도덕은 인간이 삶을 유지하지 위해 만든 "선" 이라는 고귀하고 가치있는 것으로 위장한 한가지 방어체계 수단이며 이 세상은 결국 강한자(힘)에 의해 선과 악의 기준이 나눠진다고 생각한다.
실례지만, 예시를 들어줄 수 있을까요? 와 닿을 것 같으면서 안 와닿아 가지고... 부디 이해하고 싶습니다
도덕이란 것은 세상 시작때부터 존재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말 같은데요?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의 사회들마다 '선'의 기준이 조금씩 바뀐다는 것?
우리는 인간관계를 통해서 생존과 번식을 하려고 합니다. 어떠한 인간도 혼자서 생존과 번식을 할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만약 번식을 포기하고 생존만을 위해서 혼자 살겠다고 했다면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은 누구에게도 책임질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관계를 해야 하는 인간은 상대방에게 영향을 주는 행동에 대해 책임지어야 그 관계가 유지됩니다. 절대자가 있건 없건 내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한 나의 선과 악은 타인에 의해 규명될 수 있으며 나 또한 타인의 선과 악을 규명할 수 있기에 내가 그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면 이기적인 삶이 아닌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도덕적인 삶을 산다”라는 것은 결국 인간관계를 추구하면서 살겠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은 자신의 삶을 추구하는건 좋은데 기본전제가 항상 있죠.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깔아놓은 인프라 위에서만 살 수 있어요. 자유로운 여행이 궁극의 목적인 사람이 맨 몸으로 혼자 그게 가능할까요? 기차 배 비행기 식사 숙소 심지어 관광지 티켓팅 직원까지 타인의 활동이 받쳐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인간 자체가 홀로 살 수가 없기 때문에 같이 섞여 살아가는 존재임으로 자신의 삶을 누리고 즐기고 자신을 궁극의 목적으로 추구하되 타인의 자유나 생명 권리등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전제가 깔려야 합니다. 이것이 선한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유명한 말인 '만인이 만인의 적' 즉 모두가 이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무시하면 모든 인간이 모두 서로에게 적이되고 즐기지도 못하고 공멸하는 즉 집단의 만족과 효용이 0에 수렴하게 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죠. 나도 이 사람를 이유없이 패고 그 사람도 나를 이유없이 패고 모두 몸져누워 이로 못하고 굶어 죽는 이런 개판같은 세상이 도래하는 것인데 인간이 이런 자해행위와 같은 상황을 자처할만큼 어리석지는 않죠.
관습과 상식 법등 유무형의 것으로 인간 사이의 룰을 만들어 놓았고 이는 순전히 인간이 모여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 도덕이라는 것은 인간이 서로 적이 되지 않고 부드럽게 서로가 서로를 도움닫기로 삼으며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도덕에 절대적 선이라던가 그러한 가치성이 있는게 아니라 인간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최소한 인간답게 살다가 갈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규칙의 필요성에 의해 생겨난 부산물이다라고 생각합니다.
도덕이란게 상대적이잖아요?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르고. 그 시대의 특성에 맞는 즉, 그 시대에 사람들이 서로 마찰없이 어울릴 수 있게 만드는 규칙이란게 있고 그러한 규칙의 정신이나 가치를 담은게 그 시대의 도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남을 해치지 마라 이런건 도덕이나 선의 개념이 아니라 절대적 본원적 가치체계이죠.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이라면 태어난 이상 배고프면 밥을 먹고 싶다는 것만큼의 본능적 차원으로 남의 육체를 해하는것이 잘못된 것이라는걸 압니다. 잠자는 사람 함부로 건드는것도 마찬가지 차원으로요. 우리가 연약한 갓난아이가 새근새근 잠드는걸 볼때 함부로 깨우는 행위를 상상만해도 죄를 짓는것 같은 느낌이 들죠? 인간의 본능적인 것을 침해하고 있다는 걸 유전자(?) 차원에서 직감적으로 아는 겁니다. 이런건 도덕이 아니라 인간이 후각 시각등을 갖고 태어나는 것처럼 그냥 본능적으로 아는 영역이구요. 도덕을 침해하는 인간은 비난받는 정도에 끝나지만 이런 절대적 영역을 침해하는 인간은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취급 자체를 못 받고 집단에서 퇴출 격리당하거나 심심찮게 목숨을 잃는걸로 인생이 끝납니다.
21세기에 선과 악의 개념을 갖는다면 인간의 의식은 아직 중세시대에 머물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현 시대는 선과 악 대신 인간이 반드시 지녀야할 책임감과 의무감 또는 그럴수 있는 힘을 지녔냐는것으로 판단해야한다 qualify와 not qualify로 따져야한다고 봄
니체형 다 좋은데 그래도 사람은 좀 다양해야지~ 라고 생각합니다..
좋은강의 감사합니다~~ 핫이쓔
좋은 강연 잘 들었습니다
니체 도덕철학이 오늘에 와서야 실감합니다. 권력의지, 위버맨쉬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즉 생명을 뺀 도덕적 가치는 매트릭스일 뿐입니다.
꼭 영원히 원래본성,원래모습이 나쁜것자체,나쁜것,나쁜존재,나쁜사람의 모든것을 알려주세요?
이직도 신이 있다, 없다를 찾는
인간의 무지가 언제쯤이면 끝을 내려나?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서양인들의 철학의 단점은 모든걸 "이것은 이것이야", "저것은 저것이야"처럼 명료하게 구분되야 한다는것이다. 생존과 안전 그리고 약간의 즐거움(오락)을 제외한 모든 인간의 "고상한" 이념,사상,철학,도덕,통념 등은 모두 인간언어(생각;머리속의 언어)가 만든것들이다. 하지만 인간언어(생각)는 볼수도,만질수도,들을수도,맛볼수도 그리고 냄새 맡을수도 없는 귀신의 존재와 그 특성이 너무나 똑 같다. 인간의 생각(상상과 모든 종류의 지식등)은 너무나 가변적이어서 도덕이라는 것도 상황적이고 상대적이고 지역적이고 시대적이고 문화에 따라 수시로 얼마든지 변하는것이다(예;"열녀문"은 더이상 도덕이 아니고 요즘의 "열녀"는 바보다). 귀신을 닮은 허상의 인간언어(생각,관념,이념,철학,도덕 등)가 만든 도덕이나 행복론으로 바람직한 인간 혹은 인간생활의 "표준"을 구분하고 주장하는 행위를 나는 '똑똑한 무식'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세상의 모든 "위대한"지식보다는 절대 상황적이지 않고 가변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인간을 포함한 모든 지구의 생명들과 물질에게도 통하는 자연의 순리와 이치로 이세상과 인간사회를 읽고 살아간다.
그것이 바로 데카르트, 스피노자, 비트겐슈타인의 고민이었지요. 화이트헤드, 데리다도 마찬가지고요.
@@정인철-w2x ♥♥♥♥♥
안녕하세요. 철학에 관심이 많은 한 고등학생입니다.
백승영 교수님의 강연 잘 보고 있습니다.
을 읽고 있는데 궁금한 점이 있어 이메일로 직접 여쭙고 싶습니다. 홍익대 홈페이지에서 이메일을 찾을 수 없어 댓글을 남깁니다. 혹시 여기에서 이메일을 알 수 있을까요?
이기적인 동기라도 ᆢ 그것이 다른 이에게 선을 행하는 행동을 한다면 ᆢ이타심과 같은 것이다 ᆢ 이기적인 것은 기본적 생존(자기 보존)을 위한 것이라면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ᆢ
니체는 주인성은 인간 스스로를 자기를 세계의 주인으로 삼는것이 다 , 신의 존재를 베제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즉 불교의 사상과 방향을 같이한다
갠적 느낌>
실로 한사람이 오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가 오는 대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린 이를 알수 없죠 어떤 사람인지 ?
내가 만나는 이 사람들의 영향으로 내인생이 나쁘게 되기도 혹은 반대로 좋게 변하기도 합니다.
그건 즉 사람의 선과악행에 공존하는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래서 옛말에 이른 말이 있습니다.
어질고 착한이를 가까이하라 (다중.이중인격은제외입니다)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자를 가까이 하지마라 무례하게 함부로 대하는 자를가까이 하지마라 술도박,아첨 여자를 탐하는 자를 가까이 하지마라 등등 내 주위에 이른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영향을 받을 것이고, 내인생도 타인 처럼 바뀔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되는....
귀에 감기는 강의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도올 김용옥교수님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
참 좋아요...&&^^&&
나도좋고 너도 좋을때
용기가 배가된다
대상의 의사와 관계없이 어떤 행위로 인해 대상이 싫어하는 결과를 야기했을 경우 악이라고 할수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동물이지요
교수님 화이팅...^^*
사마리아인의 행위는 선의지 이전에 생명존중에 대한 본능적인 행위라 할 수 있다
에프
그런데 왜이리 안타깝지 이렇게 좋은 강의인데도 불구하고 빈자리며 그와중에 집중못하는 사람들이며... 아~ 왜 철학이 한국에서? 한국에서만은 아닌지 몰라도 이렇게 외면받는지 안타깝다
원래 관심있는걸 보고 해야 함..저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을수도 있죠
그래도 덕분에 이렇게 좋은 강의를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도덕이란 공동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행해져 온 교육과 학습의 산물이며 그 사회의 팽창이나 수축에 따라 규범으로서의 도덕도 그 가치를 달리하게 되는 결코 절대적일 수 없는 가변적인 것일 뿐.
허나
인간에 대한 지나친 신뢰를 바탕으로 태어 난 니체의 힘의 의지로 이해되는 이 세계의 미래는 존재의 영속성에 의문을 던질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고맙습니다..
자석이니라
생각을너무옥죄지도
생각으너무느슨하게도하지말며
상대가하는의도중 언행을보되눈을깉이보고
여자든 남자든 술을두어번
마셔보라
속이드러나느니라
하여
살펴아니다싶으면 미련없이 정리하라 미룩상은 멀어지나심은오히려멀어지지않느니라
감사드립니다
틀림없다는 진리의 말을 듣고./철수 김원태
고난은 행복의 뿌리다.
힘은 행복의 원천이며 호흡이다
힘없는 행복은 포장이다.
행복의 조건은,
삶의 근육을 단련해라.
죽음을 굴복시켜라.
신이든 인간이든,
버팀목을 가져라
꾸준히 마음을
멋지게 달래면서
다스려라.
부정을 벌이고
긍정을 심어라.
존재로 쾌락을 누리고.
그리움의
사랑을 하라.
좀부족하다싶으면 서운해하고 좀과하다싶으면호구취급당하기쉬우니
늘선을균형감있게조율하여 선약
약속으로서 진실을보이고
신뢰로서화답해주거라
갈증해소에 도움이 ! ❗
인간은 동물적 본성을 가지고 있지만 도덕 감정을 가짐으로써 그 본성을 좀 더 활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도덕 행위는 생존의 도구일 뿐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50:15
이게제일정답같음
도덕은 신성성과는 상관없이 신성 중에 가장 자연적인 것과만 관련있는 것 같음. 제일 동물적인 것.
예술가들이나 문학가들이 본성을 생각하는 다양한 작품들이 있으니 보고 참고 하세요 본성이라는게 단순하지가 않으니
자리보존
니체는 최고의 멘토
자발적인 존경심이 생기고 스스로 그 법칙이 보편적인 법칙이 되기를 의욕한다면 그건 나의 준칙이자 도덕법칙이 된다 이런거군
도덕적으로 사는 것은 내가 자유롭다는 뜻이다 = 자연적 경향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선의지를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기에 도덕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덕행위를 하는것은 자유로운 것이다 = 선의지(자발적 자유로움 전제)가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게철학이지 살면서 누구나 비슥하게 햐봤을만한 고민을 미리 하고 정리해둔사람의 가르침을 받으며 거인의 어깨위에서 몇걸음 더나아가능거지
칸트
선의지도 환경의지배를받는거지 주변에아무도없다고하면선의지가생길까
외국에선 스스로 여러 책을 공부하든지 혼자 터득하든지 공부를 해서 책으로 내든지 연설을 하든지 하는데 우리나라는 책을 해설하는게 좀 특이합니다
외국도 책을 해설하는 분들이랑 집필하는 분들이 우리나라와 비율 비슷할겁니다.
아~칸트여! 맞습니다
니체 누가 행위하는가 가 중요하다는 말은 누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행하는가 를 보완해야 할것이라 생각한다
도덕은 질서를 위한 하나의 도구이며, 질서는 나를 정리해 줄수있는 하나의 방법임으로
도덕이 행복을 추구한다는것은 매우 국한적인 일부 일수 있다.
동정심은 도덕을 위한 환경적 생태계의 잠재적 규범이다.
선생님은 총기가 총총인데. 학생들이 영 멍~~~ 하네요. ㅎㅎ
도덕적인 의사결정: 집단을 의식한 직관.
언젠가는...은 칼뱅 아니었나...요? "이윤의 긍정..."
칼뱅은 극단적 신권주의자로서 누군가는 천국으로 누군가는 지옥으로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졌다는 이중예정론을 주장한 종교개혁자입니다.
동영상의 주제인 선악의 기준에 대해서는 아무 관련이 없어요.
도덕은 눈으로 보이는 최고 가치,
사랑과 진리는 마음과 정신 의 최고 가치.?
*** 이게 니체 생각이예요, 내한테 왜그러냐고 묻지마 ( 1:03분 40초~)
지성과 미모를 겸비하신 분이 이런 얘기를 하시니 집중이 잘 되네요 ㅎ
이야 너무 재밌다다다닫닥
선과악의 실체도 있나요???
이분의의 말씀은 목사들이 경청해야 됐니다.
칸트와 니체가 언제 선악이 불분명하다고 말했나요.
우리에게 이토히로부미의 단죄가 정의 일수 있지만 일본의 입장에서는 구국의 영웅 인것 처럼 정의라는 규정 또한 입장에 따라 달리지는 착각인 것인다.
일신의 영웅화는 단순 허상에 불과한 정치적인 이미지에 불과하다고 생각함.
원칙은 없다
들으면 들을수록, 논하면 논할수록 햇갈리게 하는 전형적 "철학" 강좌 수준을 넘지 못함은 도덕과 행복 선악 등에 대한 정의를 바르게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 우주의 운행 이치
덕: 도를 따라 행할 때의 결과
선: 우주 이치에 순응함.
악: 우주 이치에 거스림.
이 정도만으로 정의가 되면 간단하게 설명, 이해할 수 있다.
아름다워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