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중국의 후연도 쳐서 멸망시킬만큼 강했고 넓은 땅을 차지하고있던 우리민족이, 고구려와 발해가 멸망한 후에는 반도 안으로 쪼그라들고 그것도 모자라서 나라가 두동강나서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으니 황쌤같은 역사학자 입장에선 역사를 공부하고 가르치시면서 피가 끓으실만도 합니다. 하지만 반도의 반토막에서 살면서도 세계 11위권에 들정도의 강국이 되었으니 우리나라는 저력이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고 대륙과 철도로 연결이 된다면 또 얼마나 더 강한 나라가 될까요. 통일의 그날이 온다면 진취적인 광개토대왕님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계로 뻗어나가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강의도 잘 보고갑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서 기록의 지명은 한반도에 없습니다. 거의 모든 지명과 수도 주요 전쟁 장소는 중국 땅 한복판에 있습니다. 고구려 연개소문이 당왕을 추격해다 놓친곳에 당왕이 기념으로 세운 몽룡보탑 위치가 어딘지 아십니까 중국 현지 역사가가 kbs역사 스페셜 취재진에게 진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터뷰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와 교수들이 그리고 화려한 말하기를 좋아하는 스타 학원강사 나부랭이들이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중국 역사가를 통해서만 들을수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 (북경)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구려 유적들과 병영 병참기지 중국땅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는 수십 수백개의 고조선과 고구려 피라미드와 유적지들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댐건설 등으로 수장시키고 공사로 파괴중입니다. 1997년까지 산동반도에는 상가들 이름이 백제가 들어간 간판이 널려있었지만 현재는 단 한개의 간판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광개토대왕의 영역 확장 수준은 우리가 국사책에서 보던 수준을 초월합니다. 광개토대왕의 영락궁 위치는 장안성 근방이랍니다… 놀랍지 않나요 경주에서 발견된 그릇에 쓰여진글귀에 광개토대왕 영토라는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 전체는 거의 고구려 영향력 아래 들어가있던 작은 부분이었던 겁니다. 백제는 수많은 왕을 거느린 황제국 수준의 나라였습니다. 대한민국 작은 전라도 땅안에 국한된 지방정권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ruclips.net/video/NZwluWSsap4/видео.html 진짜 역사 이야기는 여기에 많습니다. 꼭 한번 가보십쇼 저는 역사에 관심이 그리 많지도 않고 게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대한민국 사람 한명이라도 우리 조상님들의 진짜 이야기를 알기를 바랍니다.
예전 역사스페셜 장수왕편 보면 가장 맞는 해석이 나옵니다.. 고구려는 저기 먼 위에 북방 유목민족처럼 말타고 쓸어버리고 멸망시켜 풀자라게 하는게 아닌 정복해서 굴복시키되 멸망시키지 않고 고구려 중심 밑에 두고 동북아시아의 고구려를 중심으로 질서있는 이상향을 꿈꾼 나라가 고구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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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발굴한 고구려5세기초 덕흥리 고분의 주인공 진인 의 무덤에서 벽면에 진인의 생전 모습과 그의 약력이 기록되여 있는데 이런 글이 써있죠 진인은 유주(현, 뻬이징/북경 일대 지역)자사로 휘하에 13명의 태수(지방 행정 관리)를 두었다, 즉 고구려의 영토강역이 요서 지역인 하북성 유주를 중심으로 주변 13명의 태수가 관리하는 요서 영토를 두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자학사관적 망상에 빠져있는 남한 주류 강단사학계는 이를 근거 없이 부정하며 평가 절하해 아마도 서쪽의 북위에서 고구려로 망명한 관료일 것이다 라며 억측을 부렸다고 합니다 자세한 것은 북한 덕흥리 진인 고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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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아쉽긴 합니다. 고구려가 가장 강력했던 저 때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를 하나의 나라로 합하고 네 나라의 왕조가 하나의 씨족 체제처럼 되어서 유능한 왕을 선발하는 체제로 갔더라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요동 요서 지역을 포함한 대 제국이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일본 따위가 침략해올 수 없는 그런 대 제국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정말 신라의 당나라 연합은 우리 민족의 가장 최악의 선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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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고교시절에 국사교과서를 보면서 가졌던 의문이 현필쌤 강의덕분에 풀렸습니다. 저도 광개토대왕이 그렇게 위대한 왕이신데 3국통일을 왜 안했을까. 라는 궁금증을 가졌었거든요. 강의를 듣고 나니 영상 말미의 현필쌤 말씀처럼 안타깝기그지없네요... 정치, 군사, 인품, 덕 고루갖춘 모든면에서 뛰어난 군주였고, 그래서 길게 내다보시면서 원대한 꿈을 꾸신 분이었는데, 천수를 누리지 못하셨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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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말은 해야겠다 하시고, 대통령의 중국전문에 관한 말씀 하신것 ! 이미 내리신듯 합니다. 큰 감동 받은 식견이자 의견이었습니다. 그 내용을 다시한번 청취할수 있는 방법울 간절히 부탁드려 봅니다. 파일도 괜찮습니다. 해당 컨텐츠에 댓글도 달았었습니다. 다른 어떤 의도도 없습니다. 긍적적 답변이 오길 기다리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선생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서 기록의 지명은 한반도에 없습니다. 거의 모든 지명과 수도 주요 전쟁 장소는 중국 땅 한복판에 있습니다. 고구려 연개소문이 당왕을 추격해다 놓친곳에 당왕이 기념으로 세운 몽룡보탑 위치가 어딘지 아십니까 중국 현지 역사가가 kbs역사 스페셜 취재진에게 진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터뷰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와 교수들이 그리고 화려한 말하기를 좋아하는 스타 학원강사 나부랭이들이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중국 역사가를 통해서만 들을수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 (북경)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구려 유적들과 병영 병참기지 중국땅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는 수십 수백개의 고조선과 고구려 피라미드와 유적지들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댐건설 등으로 수장시키고 공사로 파괴중입니다. 1997년까지 산동반도에는 상가들 이름이 백제가 들어간 간판이 널려있었지만 현재는 단 한개의 간판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광개토대왕의 영역 확장 수준은 우리가 국사책에서 보던 수준을 초월합니다. 광개토대왕의 영락궁 위치는 장안성 근방이랍니다… 놀랍지 않나요 경주에서 발견된 그릇에 쓰여진글귀에 광개토대왕 영토라는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 전체는 거의 고구려 영향력 아래 들어가있던 작은 부분이었던 겁니다. 백제는 수많은 왕을 거느린 황제국 수준의 나라였습니다. 대한민국 작은 전라도 땅안에 국한된 지방정권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ruclips.net/video/NZwluWSsap4/видео.html 진짜 역사 이야기는 여기에 많습니다. 꼭 한번 가보십쇼 저는 역사에 관심이 그리 많지도 않고 게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대한민국 사람 한명이라도 우리 조상님들의 진짜 이야기를 알기를 바랍니다.
순전히 광개토태왕의 힘만으로 이 모든 정벌이 가능하진 않았을겁니다. 훌륭한 왕 밑에는 훌륭한 신하들이 있었을 것이고, 실제로 그러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용맹하고 날랜 장수들과 체계적으로 훈련된 군대와 나라만 생각했던 책사들이 있었을 것인데 사료가 적어 아쉽습니다. 이는 외침이 많은 반도국의 특성상 사료가 불타거나 훼손이 심한 것도 한몫하겠죠. 바라건대 요서나 요동 깊숙한 어느 산골이나 동굴에 고구려의 충의지사가 숨겨놓은 고구려의 역사서가 발견되기를 소망합니다.
광개토대왕이 판단 미스를 한듯...... 백제 신라를 통일하고 통일고구려 만든다음에 승하하셨어야했는데 ㅡㅡ;; 고구려 멸망의 불씨를 남겨놓고말았어... 꺼져가는 불씨도 다시보자... 그냥 살아생전에 북쪽으로 더 영토 확장을 하지말고 방어위주로만하고 남쪽 통일에만 힘썼으면 나중에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후방을 걱정안해도 되었고 지원도 더 받을수 있었는데 정말 아쉽네... 판단미스 ............ 다스리기 복잡하고 이래저래 어쩌구 저쩌구해도 친하니 어쩌니 후연도 그냥 놔두고 어쩌구해도.......... 결국 적이 아닌가?? 동맹이래도 언제든 깨질수 있는게 동맹이고.. 정말 아쉬운건 충분히 백제 신라를 통일할수 있었는데 일찍 단명할바엔 통일이라도 시켰어야했는데 광개토대왕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삼국통일 했을꺼고... 이후에 일은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충성스런 고구려의 백성이 되었을수있고 관리가 의외로 잘되서 후대에 당나라하고 싸움하기에 병력 보충도 더 할수있고.. 너무 아쉽네.. 한국 고대 역사가 크게 바뀌었을텐데. 아쉽게 세종대왕은 안태어났겠지만... 적어도 여진, 거란 이런넘들한테 시달리고 살진 않았을텐데.. 아.. 그냥 광개토대왕이 백제 신라를 흡수했어야했어 ............. 남쪽을 더 신경썻어야했는데. 너무 북방에 신경을 많이 쓰고 남쪽에는 아량을 베풀었어...
강사님 강의를 앞 부터 보다가 마지막 능비의 문구를 보니까요, 이전에 그냥 보았던 능비가 마치... 연애편지? 사모곡? 처럼 느껴집니다. 그냥 왕릉의 비문으로 생각했었는데 강사님 강의 후의 이 비문은 어느 훌륭한 군주가 요절했는데, 그 사실을 통탄히 슬퍼하는 사람의 심정이 느껴지네요.
당시는 중국이나 고백신 3국이나 4분5열된 상황이고 지배 민족(기마)과 피지배 민족(농경)이 달랐기 때문에 몽골처럼 힘으로 제압하고 간접 통치를 하는 식이었지요 고구려 지배층이 몽골계 혈통이란 건 다음을 통해 알 수 있죠 1. 선비족과 언어가 통하고 2. 초기 왕의 호칭으로 칸을 썼고 3. 이름이 몽골식이란 것 (을지.문덕, 온달 등)
고려시대때 서희가 되찾은 강동6주는 압록강 북쪽입니다 ‘강동’의 뜻은 강의 동쪽을 뜻합니다 즉 지금의 요하 동쪽에 있는 영토를 되찾아서 강동6주를 설치한 것입니다 만약 강동6주가 평안도라면 강남6주가 되어야 합니다 압록강 남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명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서쪽 영토가 지금의 요하 동쪽 철령까지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동쪽 영토가 두만강 북쪽 688리 지점인 공험진까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기술되어있는 고려의 영토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사’에 기록되어있는 것을 그대로 베낀것입니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라는 기관을 설치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국인 역사학자들이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 신석호입니다 이들은 친일파 역사학자들인데 해방후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독립운동가들이었기 때문에 다 제거되거나 납북되어서 남한의 역사학계는 이들 식민사학자들만 남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계승해서 왜곡된 우리 역사를 가르쳤고 그들의 제자들도 식민사학을 배워서 또다시 그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의 제자들은 다시 그들의 제자들에게 식민사학을 가르치고.... 그 결과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배워온 것입니다 원나라가 무너진 후 명나라가 철령에 철령위를 설치하고 자신들의 땅으로 편입시키겠다고 고려에 통보하자 우왕과 최영이 요동정벌군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에는 철령이 함경도 안변이라고 기술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고려는 그 땅을 지키려면 어디로 군대를 보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함경도이겠죠? 그런데 왜 요동정벌군을 보냈겠습니까? 철령이 요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몽골이 고려를 침공하자 당시 고려 북쪽 지방의 수령들이었던 조휘와 탁청 등이 그 지역을 갖다 바치고 투항을 했습니다 그리고 원나라는 고려의 북쪽 영토를 직속령으로 편입시키고 쌍성총관부를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원나라가 쇠약해지자 공민왕이 그 땅을 수복하기 위해 인당과 유인우로 하여금 군사를 몰아 쌍성총관부를 점령케 합니다 이때 인당은 압록강을 건넜고, 유인우는 두만강을 건넜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쌍성총관부가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 교과서에는 쌍성총관부가 함경도 지역에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일제가 완전히 왜곡한 것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민왕이 북방 영토를 회복한 후 원나라가 북쪽으로 물러나자 명나라가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고려에 통보했습니다 그러자 고려에서는 우왕과 최영이 그 땅을 지키기 위해 이성계와 조민수로 하여금 요동을 정벌토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위화도 회군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의 태종때 명나라와 국경을 합의했는데 고려시대때의 우리 영토였던 철령과 공험진까지를 조선의 북방 영토로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세종이 김종서와 최윤덕을 북방으로 보내 4군 6진을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 지역이 현재 우리가 간도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즉 4군 6진이 간도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대학의 역사학 교수들, 역사를 다루는 국가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 중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일제의 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기 때문에 왜곡된 역사가 바로 잡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왜곡된 우리 역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국의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 땅에 한사군(낙랑군, 현도군, 진번군, 임둔군)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의 사마정은 사기 하본기의 주석서인 사기색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태강지리지에서 말하기를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으며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위,촉,오의 분열을 끝낸 나라는 사마염이 건국한 진나라 입니다 ‘태강’은 진나라 무제였던 사마염의 연호입니다 사마염은 삼국을 통일한 후 전국의 지방행정조직을 점검하기 위해 ‘태강지리지’라는 지리서를 편찬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태강지리지는 낙랑군이 현존했을때의 책이기 때문에 정확한 자료입니다 그리고 태강지리지가 당나라때에는 존재했기 때문에 사마정이 그 책을 인용해서 사기색은에 기록한 것입니다) 갈석산은 하북성에 있는데 아주 유명한 산입니다 고조선의 영토가 거기까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주류 역사학자들은 한사군이 북한 땅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갈석산이 평양에 있습니까?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내려왔나요? 평양에 있었던 것은 낙랑군이 아니라 낙랑국입니다 고구려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낙랑공주는 낙랑국 왕의 딸인 것입니다 그러나 낙랑군은 독립된 나라가 아니라 지방행정기관이기 때문에 낙랑태수의 딸은 낙랑공주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북성에 있었던 낙랑군과 평양에 있었던 낙랑국은 서로 다릅니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했을때 수당군이 집결한 지역은 북경 근처의 탁군입니다 그런데 왜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약 한국 군대가 북한으로 처들어간다면 어디서 군대가 집결하겠습니까? 당연히 휴전선 근처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겠죠? 하지만 목포나 부산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당시 고구려와 수당과의 국경이 북경 근처였기 때문에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던 것입니다 갈석산이 있는 하북성이 고조선의 땅이였기 때문에 광개토태왕때 고구려가 옛 땅을 되찾기 위해 거기까지 진출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고대 요동의 위치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역과 달라집니다 북경 근처에 있는 난하가 고대의 요하였고 난하의 동쪽이 요동, 서쪽이 요서였던 것입니다 우리 역사를 공부하면 애국심이 생기지도 않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내가 어떤 의무나 희생을 치를 가치도 전혀 못느끼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니까 검찰처럼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만 혈안인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길보다는 개인의 이익과 영달만 좇는 것입니다 이게 다 우리 역사의 뿌리가 잘려나갔기 때문입니다 일제의 의도대로 민족정신이 말살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 잡아서 제대로된 미래를 설계해야 합니다 현재의 코로나 방역, 한류열풍, G7국가로의 진입 가능성이 타진 되는 상황등 우리의 자부심을 높이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도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면 우리의 원래 모습을 알 수 있고, 우리의 원래 모습이 발현되는 현상이 바로 K방역, 한류열풍, G7국가로의 진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도 제대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한민족은 한(恨)이 많은 민족이다.그 한이 간방(艮方)의 한인 것이다 . 한은 간(艮)의 마음(心)이 있다는 뜻이다.다시말해 간방의 미련이 있다는 말이다.찬란했던 적어도 동아시아에서 상고시대의 시원 문화문명을 일으켰던 동이(東夷)족인 한(韓)민족이 잃어버린 간방을 그리워한다는 말이다.이게 진짜 한민족의 한의 의미다.21세기가 다 가기전의 본래의 모습을 찾는 아니 그 이상의 한이 풀리는 것이다.광개토왕이 일찍 죽고 장수왕이 반도로 수도를 옮긴 것은 그 당시 간방의 사람으로서 역할을 했을 뿐이다.그 다음이 진방 차례이기때문이다.이게 천지의 뜻이다.18세기이후 손방이 반짝하다가, 태방의 도움을 받아 태방의 좋은 것을 융합하여 간방이 다시 수면위로 드러나는 것이다.다시 드러날 때는 동아시아판이 아닌 세계판이므로 광개토왕같은 아니 그 이상의 인재들이 구름처럼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간방은 시작과 끝이다.인류사(史)의 인간과 역사의 심판이 간방에서 이뤄지는 것이다.이해를 못하면 그냥 넘어가도 된다. 다만 형이하적 역사를 더해 형이상적인 것을 알아야 인류와 인류사를 관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요동을 확보하고 농경을 장려하고 성들을 지어 요하를 기준으로 다른 민족과 갈라 놓고 튼튼한 고구려의 국경선과 영토를 확정한 것은 위대한 군주의 역할중 하나다. 그런데 직접 정복한 영토를 지배하지 않은 것은 땅은 넓고 고구려인들은 소수라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 땅을 유지하는 것이 더 큰 비용과 그 지역으로 이주한 고구려인들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비를 베푸는 척 맞서 싸운 그 지역의 토호들을 용서해주고 영원히 고구려를 침략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고 땅을 돌려준 것이다. 이것은 지금으로 치면 관리가 가능한 땅만큼만 직접 경영을 하고 직접 관리가 어려운 곳은 그곳의 토호들에게 확실한 겁을 줘 고구려를 배신치 못하게 한 외교적 능력이다. 그러나 전쟁에서 진 그 지역의 백성들은 태왕의 자비와 배려에 감사하고 자발적으로 대를 이어 충성을 했을 것이며 자기들끼리도 전쟁으로 생긴 복수심에 대한 마음을 키우지 않음으로 해서 자발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한 것이며 이것이 팍스코리아나의 핵심가치인 것이다. 정복을 했다고 무조건 식민지를 삼는 것이 아니고 그 지역민들과 백성들에게 서로 다툼을 더이상 하지 않도록 위무를 하고 자치적으로 살아가도록 보장해 줌으로서 더 깊은 고구려에 대한 충성을 자발적으로 하게 한 것이 위대한 태왕의 공이다. 지금 작금의 시대는 식민경영을 하면서 온갖 못된 차별을 자행한 선진국들이 여전히 세계 경영을 하고 있는 와중에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들어가고 한류가 인류 보편 타당한 가치를 전파하자 전세계의 억눌리고 식민지였던 나라들의 존경과 지지를 대한민국이 받게 된 것이다. 세계 경영은 약육강식만 있는 것으로 알고 글로벌 경영을 하던 선진국들이 대한민국의 선한 국제경영을 배우고 싶어하고 따라오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피지배민족들은 한류의 가치를 수용하고 약육강식이 아닌 평화공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를 통해 배우는 듯 하다. 이로써 과거 태왕께서 이루셨던 팍스코리아나가 재현될 것으로 믿는다. 서로간의 과거의 복수를 하지 않으며 서로 상생하는 관계를 구축하는 국제관계를 추구하고 동시에 대한민국은 패권국들의 일방적인 약육강식이 아닌 모두가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의 유일한 롤모델이 되어 전세계의 개발도상국들의 마음의 맹주가 되지 않을 까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가 이런 위치가 될 수 있는 것은 과거 태왕의 기록이 있어서 배워서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이 올바른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배운 민족은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는 것이다.
솔직히 연결 안 됩니다. 계속 유목 생활, 반농반목생활을 하는 북방민족에 대해서 계통이나 연결을 따지기가 좀 많이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게다가 예를 들면 흉노가 선비로 편입되기도, 거란이 여진에 편입되기도 혹은 선비라 칭하기도 여진이라 칭하기도 하는 편인지라... 연결고리를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편이죠.... 그리고 아마 이 분이 하실려면 유목사 관련 책을 읽어야할텐데 공부많이 하셔야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기본서들마다도 조금씩 설명에 차이를 보이는 편이라...
1: "사람이 살지 않았다."완전 과대 해석인건 겉네요. 2: 요동.... 산이 많아요. 오히려 고구려 서쪽 북쪽 국경선 따라 평원이 쫙쫙 펼쳐졌거든요. 고속도로 한 두 시간 달려도 산이 안 보일 정도로 지루하거든요. 완전 지구 표면을 굴러가는 느낌. 3: 부여나 옥저 처럼 당한 입장에선 패전이 어마무시하게 끔찍했겠지요.>
12:30 이전에 임용한 박사님(?)인가, 그 삼국지 아저씨, 그분도 광개토대왕이 정복을 못한 것이 아니라 통치 기반때문에 못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을 데리고 가면서 고구려인으로 동화시켜서 다시 내려 보내가지고 영원히 고구려에 동화될 수 있도록 계획을 했죠. 다만, 그 계획 실행하려고 했는데 돌아가셨죠...
위대한 왕은 일찍 가신다! 왜? 너무 에너지를 많이 쏟아부어서인가? 광개토태왕이 2~30년을 더 장수하셨다면 역사의 지도는 또 바뀌었을테고, 조선조의 정조대왕게서도 20년을 더 집권했다면 일본에게 허망하게 나라 뺐기진 않았을터, 그러나 역사에는 만약에는 없다! 다만, 우리 한민족의 국운일 따름이다!
@@초아의카이저 역사는 if란 없지만 고구려가 통일을 하고 강성해졌다고 하더라고 통일중국국가와 맞붙는건 힘들수있고 정복전쟁에서 졌다면 한반도와 만주에 그들의 지방관을 보내 관리하려했을수도 있다 이말입니다 그렇다면 그안에서 발생한 쿠데타 및 반란은 중국이 관리할것이고 지금까지 중국에 속해있을수도 있는것이죠 위대한 우리의 고구려 역사이지만 고구려가 통일이 되지않아 다행히 우리가 독립된 국가로 존재 할수있다고 볼수도 있어요
영상 11분쯤에 말씀하신 맥아더 얘기중에 맥아더가 만주에 핵날리자 한건 중공군에게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약해지자 무리수로 던진말로 알고있습니다 맥아더가 무리한 진격을 멈추고 청천강 이남을 기점으로 방어선만 제대로 구축했어도 분단의 아픔을 겪지 않았을거라 보는 시각도 있는걸로 압니다 당시 중공군에 공격에 전혀 대비도 못하고 있었고 결국 트루먼대통령이 전권으로 맥아더를 해임시키고 리지웨이 장군을 후임으로 보냅니다 다행히도 리지웨이는 중공군의 전술을 간파함과 동시에 망가진 전선을 수습하고 서울을 사수하는데 성공합니다 맥아더가 만주에 핵날리자고 한건 매우 현실성도 없을뿐더러 엄청나게 위험한 발언이였습니다 당시 한반도 전쟁에 소극적이였던 소련에게 참전명분을 줘버린 엄청난 발언이였을뿐더러 만주공격론은 실제로 중공을 참전하게 만들었습니다 만약 맥아더의 말을 미국의회가 승인해서 핵을 투하했으면 핵전쟁으로 아마 한반도는 지금의 후쿠시마 같은 땅이 됐을거라고 봅니다 물론 선생님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혹시나 오해하는분도 있을까봐 공부하는겸 써봤습니다
삼국사기에서 광개토왕비문의 기록을 대부분 다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신묘년(391)조도 백제본기에 나옵니다. 다음처럼, *진사왕 7년; 봄 정월, 궁실을 중수하면서,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진귀한 새를 기르고 기이한 화초를 가꾸었다. 이렇게 광개토왕비문의 신묘년조와 같습니다. 이 기사의 바로 앞(390년)과 비교하여 책을 잘 보아야 합니다. 진사왕 7년조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신묘년조는 일본서기에도 나옵니다.
활발한 정복사업을 하면서도 정복한 국가의 독립성과 문화를 유지시키는 포용정책을 썼다는 점에서 후대의 징기즈칸과 유사한 면이 있네요. 징기즈칸과 광개토대왕은 몽골족이라는 태생적인 면과 동북아의 광활한 유목지역을 통치하며 기마병을 이용해 정복사업을 벌였다는 면에서 매우 공통점이 많은 인물로 보여집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면서 백성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준 군주가 최고의 군주가 아닌가 합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서 기록의 지명은 한반도에 없습니다. 거의 모든 지명과 수도 주요 전쟁 장소는 중국 땅 한복판에 있습니다. 고구려 연개소문이 당왕을 추격해다 놓친곳에 당왕이 기념으로 세운 몽룡보탑 위치가 어딘지 아십니까 중국 현지 역사가가 kbs역사 스페셜 취재진에게 진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터뷰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와 교수들이 그리고 화려한 말하기를 좋아하는 스타 학원강사 나부랭이들이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중국 역사가를 통해서만 들을수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 (북경)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구려 유적들과 병영 병참기지 중국땅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는 수십 수백개의 고조선과 고구려 피라미드와 유적지들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댐건설 등으로 수장시키고 공사로 파괴중입니다. 1997년까지 산동반도에는 상가들 이름이 백제가 들어간 간판이 널려있었지만 현재는 단 한개의 간판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광개토대왕의 영역 확장 수준은 우리가 국사책에서 보던 수준을 초월합니다. 광개토대왕의 영락궁 위치는 장안성 근방이랍니다… 놀랍지 않나요 경주에서 발견된 그릇에 쓰여진글귀에 광개토대왕 영토라는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 전체는 거의 고구려 영향력 아래 들어가있던 작은 부분이었던 겁니다. 백제는 수많은 왕을 거느린 황제국 수준의 나라였습니다. 대한민국 작은 전라도 땅안에 국한된 지방정권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ruclips.net/video/NZwluWSsap4/видео.html 진짜 역사 이야기는 여기에 많습니다. 꼭 한번 가보십쇼 저는 역사에 관심이 그리 많지도 않고 게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대한민국 사람 한명이라도 우리 조상님들의 진짜 이야기를 알기를 바랍니다.
요동수복이 우리의 동기부여 일수는있어도 가능성은 낮죠. 우리가 준비를 잘해도 작전특성상 단기에 작전을 성공시켜야 되고 수복후에도 그곳을 관리하고 경영할 계획, 보급로 확보까지 문제는 더 증폭됩니다. 그리고 그모든게 국고 다시말해 백성이 내는 세금으로 충당되는대 요동수복? 현실성이 떨어지는 발언이죠. 요동수복은 단순히 군사적인 정벌이 아닌 군사적행위+행정(수복후 다스림)이 수반되는 고급스러운 정치현안입니다. 그걸아니까 고구려 이후에 나라들도 요동수복이 주는 의미에 대해 신중한거였죠. 못해서가 아닌 하게되면 생기는 그 모든 상황이 여의치않으니 신중한거였습니다. 또한 그걸아는 중국도 동북쪽 변경에 대해선 정예화시키고 늘 주시하고있었죠. 우리가 요동수복 을 하면 그들도 그걸막기위해 군사를 보낼거고 그러다보면 끝도없는 전쟁에서 물자가 닝비되고 군사로 차출된 백성들이 전장에서 산화되겠죠. 그럼 양국모두 망국의 길로 가는거죠. 그렇기에 망설인겁니다
지난주에 황현필선생님을 알게되었는데 벌써 수많은 영상을 보게되네요.. 열정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한국역사에 대해서 정말 편하게 접근할수 있었습니다... 건강 잘 챙기셔요... 감사합니다.
기운나는 강의에 신까지 납니다. 국회가셔서 의원들 교육시켜 그들의 뇌를 씻고 싶습니다. 아~왜 단명하셨는지요. 안타깝지만 이제라도 알게되어 감사합니다 ~♡
한때는 중국의 후연도 쳐서 멸망시킬만큼 강했고 넓은 땅을 차지하고있던 우리민족이, 고구려와 발해가 멸망한 후에는 반도 안으로 쪼그라들고 그것도 모자라서 나라가 두동강나서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으니 황쌤같은 역사학자 입장에선 역사를 공부하고 가르치시면서 피가 끓으실만도 합니다. 하지만 반도의 반토막에서 살면서도 세계 11위권에 들정도의 강국이 되었으니 우리나라는 저력이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고 대륙과 철도로 연결이 된다면 또 얼마나 더 강한 나라가 될까요. 통일의 그날이 온다면 진취적인 광개토대왕님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계로 뻗어나가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강의도 잘 보고갑니다.
heonseo lee 원나라때와 병자호란때는 여자 팔았어.
Peter Pan 근데? 그게 내가 단 댓글이랑 뭔상관?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니가 반말했으니까 나도 반말할게 니 댓글 보니까 황쌤이 올린 영상에 동의하지 않는것같은데 그럼 강의영상은 뭐하러보고 내 댓글에 대댓글은 왜담? 서로 피곤하게 시비걸지말고 걍 니취향에 맞는 딴 영상 봐라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조선족은 니가 조선족이네 중국에서 고구려,백제사는 중국사로 편입을 마쳤다고 니가 댓글에 적었잖아 한마디로 중국이 한 동북공정이 옳고 신라만 한민족이라고 주장하는건데 너처럼 주장하는건 중국+조선족들밖에 없음 고로 넌 조선족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조선족이지?
걍 꺼지샘
최고의 민족역사학자입니다.
공부 많이하고 있어요.
좋은 강의 감사드립니다. ~
황현필 선생님 항상 좋은 강의 듣고 있습니다!!
황현필 강의 초기 보터 봐 왔지만 늦게 ㄳ인사 드립니다.
몰랐던 역사 새롭게 마니 배웁니다 ㄳ합니다.
감사합니다. ❤❤❤❤❤❤
늘........당신을 응원합니다
역사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부터..
역사에 if는 존재하진 않다고는 하지만 강의를 들을때마다 우리역사만큼 아쉬운역사를 가진 나라도 드문것 같습니다. 오늘 강의도 잘들었고 항상 응원합니다♡
고구려에 눈물이나고 가슴이벅차오르는 민족은 우리뿐이닷!!!!!!
마지막 문구가 너무 슬프네요.
하늘이 백성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나보다
39세에 세상을 버리고 떠나셨다......
고대시대인 점과 재위기간 생각하면 그렇게 또 얼마 못하고 죽은건 아닌데..
@@epsdm 옛날엔 유아기 혹은 출산때 죽거나 질병으로 젊어 죽는사람 때문에 평균수명이 낮은거지 오래사는 사람은 지금하고 크게 다르지 않아요...
@@김지환-c5k2x병으로 죽는 것도 포함해서 말한거에요. 3~4세기 쯤이랑 조선시대하고만 비교해도 의술이 엄청나게 차이날테고, 고구려 왕들 재위기간 보면 장수왕이랑 태조왕 처럼 엄청나게 장수한 왕 빼고는 보통 20년 내외죠.
@@goaghkh9516 이 토착왜구새끼야...너희 나라로 꺼져라....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갱상도 토착왜구쓰래기
명쾌한 강의 감사합니다.
이제라도 썩어빠진 일제 식민지 사관과 중국 사대사관을 떨쳐버리고
광개토대왕의 웅지를 이은 합리적 민족주의 정통사관이 자리잡았으면 합니다.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의 신라중심 편향된 사관도 극복하고요.
와... 하늘이 이 백성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나 보다... 얼마나 대단한 군주였으면 이런말까지 비문에 적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서 기록의 지명은 한반도에 없습니다.
거의 모든 지명과 수도 주요 전쟁 장소는 중국 땅 한복판에 있습니다.
고구려 연개소문이 당왕을 추격해다 놓친곳에 당왕이 기념으로 세운 몽룡보탑 위치가 어딘지 아십니까
중국 현지 역사가가 kbs역사 스페셜 취재진에게 진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터뷰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와 교수들이 그리고 화려한 말하기를 좋아하는 스타 학원강사 나부랭이들이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중국 역사가를 통해서만 들을수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 (북경)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구려 유적들과 병영 병참기지
중국땅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는 수십 수백개의 고조선과 고구려 피라미드와 유적지들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댐건설 등으로 수장시키고 공사로 파괴중입니다.
1997년까지 산동반도에는 상가들 이름이 백제가 들어간 간판이 널려있었지만
현재는 단 한개의 간판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광개토대왕의 영역 확장 수준은 우리가 국사책에서 보던 수준을 초월합니다.
광개토대왕의 영락궁 위치는 장안성 근방이랍니다… 놀랍지 않나요
경주에서 발견된 그릇에 쓰여진글귀에 광개토대왕 영토라는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 전체는 거의 고구려 영향력 아래 들어가있던 작은 부분이었던 겁니다.
백제는 수많은 왕을 거느린 황제국 수준의 나라였습니다.
대한민국 작은 전라도 땅안에 국한된 지방정권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ruclips.net/video/NZwluWSsap4/видео.html 진짜 역사 이야기는 여기에 많습니다.
꼭 한번 가보십쇼
저는 역사에 관심이 그리 많지도 않고 게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대한민국 사람 한명이라도
우리 조상님들의 진짜 이야기를 알기를 바랍니다.
@@팔라딘스님 내 글이랑은 좀 관련성이 먼것 같은데 이거 왜 적으신건지 이유좀 알수 있을까요? 저도 책보고님 영상들은 다 보고 있습니다만 제 댓글과는 연관성이 또 떨어지지 않습니까?
홍보용으로 좋아요가 많은 댓글 여기저기 남기고 있습니다
글쓴이분 내용과는 상관없습니다
ㅕ😊😊😊 😊8😊 8ㅠㅑ😊 ㅠㅍ😊😊
😅 ㅕ😊 😊ㅕ 😊😊 😊😊 😊 ㅑ😊😊😊퍄. ㅠㅕ😊ㅑ ㅑ ㅍ8ㅑㅍ😊8ㅍ 8. ㅑ 😊 ㅓㅠ ㅕㅎ
선생님 마지막에 수고하셨습니다 너무 듣기 좋습니다~~^^
당나라가 신라와 연합해 고구려 멸망시키고 사흘 밤낮으로 고구려 기록들 불태워 없앴다고 들었어요. 그러니 고구려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어요. 참 슬퍼요...
그렇쿤요 ㅡㅡ아ㅡㅠ
잘듣고있습니다 감사힙니다
이때 통일이 되었어야했는데~~
나당연합군반쪽 통일~참~
예전 역사스페셜 장수왕편 보면 가장 맞는 해석이 나옵니다.. 고구려는 저기 먼 위에 북방 유목민족처럼 말타고 쓸어버리고 멸망시켜 풀자라게 하는게 아닌 정복해서 굴복시키되 멸망시키지 않고 고구려 중심 밑에 두고 동북아시아의 고구려를 중심으로 질서있는 이상향을 꿈꾼 나라가 고구려임
따지고보면 현재 미국이 구사하고있는 세계전략과 거의유사하다고 할수있겠네요
코로나로 집안에 심심할때 항상 좋은 강의 시간 가는줄 모르고 듣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고구려의 최고전성기를 구가했던 광개토대왕과 장수왕도 뛰어난 업적을 남기셨던 군주였지만 그 선대왕이었던 소수림왕께서 국가기반을 닦아 놓지 않았다면 불가능 했을것입니다.
나중에 소수림왕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서 기록의 지명은 한반도에 없습니다.
거의 모든 지명과 수도 주요 전쟁 장소는 중국 땅 한복판에 있습니다.
고구려 연개소문이 당왕을 추격해다 놓친곳에 당왕이 기념으로 세운 몽룡보탑 위치가 어딘지 아십니까
중국 현지 역사가가 kbs역사 스페셜 취재진에게 진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터뷰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와 교수들이 그리고 화려한 말하기를 좋아하는 스타 학원강사 나부랭이들이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중국 역사가를 통해서만 들을수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 (북경)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구려 유적들과 병영 병참기지
중국땅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는 수십 수백개의 고조선과 고구려 피라미드와 유적지들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댐건설 등으로 수장시키고 공사로 파괴중입니다.
1997년까지 산동반도에는 상가들 이름이 백제가 들어간 간판이 널려있었지만
현재는 단 한개의 간판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광개토대왕의 영역 확장 수준은 우리가 국사책에서 보던 수준을 초월합니다.
광개토대왕의 영락궁 위치는 장안성 근방이랍니다… 놀랍지 않나요
경주에서 발견된 그릇에 쓰여진글귀에 광개토대왕 영토라는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 전체는 거의 고구려 영향력 아래 들어가있던 작은 부분이었던 겁니다.
백제는 수많은 왕을 거느린 황제국 수준의 나라였습니다.
대한민국 작은 전라도 땅안에 국한된 지방정권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ruclips.net/video/NZwluWSsap4/видео.html 진짜 역사 이야기는 여기에 많습니다.
꼭 한번 가보십쇼
저는 역사에 관심이 그리 많지도 않고 게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대한민국 사람 한명이라도
우리 조상님들의 진짜 이야기를 알기를 바랍니다.
잘 듣고 갑니다.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완전 멋있어요 최고 입니닥
광개토 대왕님께서 정복을 하는 과정속에서 아마 수 많은 이야기와 일들이 있었겠지..
선생님 강의를 듣고보니, 그 과정들이 너무 궁금하다. 옆엔 훌륭하고 좋은 장수들이 많았겠지.
그들은 어떻게 충성을 바치고 어떻게 정복해 나갔을까. 타임머신이 있다면 한번 가보고싶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서 기록의 지명은 한반도에 없습니다.
거의 모든 지명과 수도 주요 전쟁 장소는 중국 땅 한복판에 있습니다.
고구려 연개소문이 당왕을 추격해다 놓친곳에 당왕이 기념으로 세운 몽룡보탑 위치가 어딘지 아십니까
중국 현지 역사가가 kbs역사 스페셜 취재진에게 진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터뷰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와 교수들이 그리고 화려한 말하기를 좋아하는 스타 학원강사 나부랭이들이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중국 역사가를 통해서만 들을수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 (북경)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구려 유적들과 병영 병참기지
중국땅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는 수십 수백개의 고조선과 고구려 피라미드와 유적지들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댐건설 등으로 수장시키고 공사로 파괴중입니다.
1997년까지 산동반도에는 상가들 이름이 백제가 들어간 간판이 널려있었지만
현재는 단 한개의 간판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광개토대왕의 영역 확장 수준은 우리가 국사책에서 보던 수준을 초월합니다.
광개토대왕의 영락궁 위치는 장안성 근방이랍니다… 놀랍지 않나요
경주에서 발견된 그릇에 쓰여진글귀에 광개토대왕 영토라는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 전체는 거의 고구려 영향력 아래 들어가있던 작은 부분이었던 겁니다.
백제는 수많은 왕을 거느린 황제국 수준의 나라였습니다.
대한민국 작은 전라도 땅안에 국한된 지방정권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ruclips.net/video/NZwluWSsap4/видео.html 진짜 역사 이야기는 여기에 많습니다.
꼭 한번 가보십쇼
저는 역사에 관심이 그리 많지도 않고 게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대한민국 사람 한명이라도
우리 조상님들의 진짜 이야기를 알기를 바랍니다.
@@팔라딘스님 감사합니다
펴. ㅠㅕ8 ㅑ ㅑㅕ8ㅕ 😊 ㅕ.
지금 북한이 고구려의 중심지였는데 통일이 된다면 우리가 모르는 고구려 역사 자료가 더 발굴되어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지안을까 궁금합니다. 남한에 있는 자료 만으로 한반도 역사 전체를 평가하는게 옭은건지 또한 궁금합니다.
혹시 아시는분계시면 답변 부탁드립니다.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동북공정 지랄났네 ㅉㅉ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어디서 이상자료 가져와서 졷지랄을하네.ㅋㅋ링크자료에서도 전라도전라도 그러는거보니 어떤ㅄ이 주작불로그만들어논거네.ㅋ저런걸 팩트라고 들고온 ㅄ도 참..ㅋㅋ답없네.ㅎ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역사학도로서 당신같은 사람들을 보면, 동북공정이 중국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얄팍한 지식으로 머리를 채운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음을 실감합니다.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고구려가 중국사면 야발 고려도 중국사고 결국엔 자주독립국가이고 중국하고 민족도 언어도 다른 대한민국도 중국사겠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ㅁ친련이 어디서 ㅈㅈㄹ을 쳐하고 있네
북한에서 발굴한 고구려5세기초 덕흥리 고분의 주인공 진인 의 무덤에서 벽면에 진인의 생전 모습과 그의 약력이 기록되여 있는데 이런 글이 써있죠 진인은 유주(현, 뻬이징/북경 일대 지역)자사로 휘하에 13명의 태수(지방 행정 관리)를 두었다, 즉 고구려의 영토강역이 요서 지역인 하북성 유주를 중심으로 주변 13명의 태수가 관리하는 요서 영토를 두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자학사관적 망상에 빠져있는 남한 주류 강단사학계는 이를 근거 없이 부정하며 평가 절하해 아마도 서쪽의 북위에서 고구려로 망명한 관료일 것이다 라며 억측을 부렸다고 합니다 자세한 것은 북한 덕흥리 진인 고분을 ~
역사를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그시대에 와 있는 느낌 생생한 감동 참 훌륭한 분들 많았네요 감사합니다
60대 중반 나이에 우리역사 공부 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귀에 쏙쏙 들어는강의~잘듣고 있습니다 시간이되면 발해역사도 강의 좀~~아 죄송 발해가 우리역사인근거 라는 강의가 있었네요
인물 좋으시고 학식 높으시고 식견밝고 철학과 소신 명료 하시고 부럽습니다. 황현필 산생님 혹시 다니 시다가 교통 위반 딱지 싼것 하나 떼시면 제 덕이라 생각하셔도 됩니다 ㆍ물론 바라는 것은 이니구요 ^^
무슨 의미이신지요?
술드셨나
병신같아
고구려가 망한게 안타깝지만 세종대왕님이 탄생할 수 있어서 괜찮음.
후손들이 선조들의 꿈을 계승 발전 시켜나아가면 됨.
문화와 경제력
그리고 군사력으로 세계를 뻗어 나가지요.
한글 같은 문자라면 영토보다 문자라고 생각함.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개솔 ㄴㄴㄴㄴ
한국인인척하지마라 토나온다.
토착왜구야.
한글을 왜 쓰냐, 웃기놈아 ㅋㅋㅋㅋ
@@yoomin789
네
용맹하기도 하지만 정말 똑똑했구나 광개토대왕은 적어도 자신이 있는 동안엔 정벌과 동시에 치세까지 다 챙기다니 천재가 왕으로 태어날때 누릴수 있는 상황 결은 다르지만 세종대왕도 그렇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서 기록의 지명은 한반도에 없습니다.
거의 모든 지명과 수도 주요 전쟁 장소는 중국 땅 한복판에 있습니다.
고구려 연개소문이 당왕을 추격해다 놓친곳에 당왕이 기념으로 세운 몽룡보탑 위치가 어딘지 아십니까
중국 현지 역사가가 kbs역사 스페셜 취재진에게 진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터뷰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와 교수들이 그리고 화려한 말하기를 좋아하는 스타 학원강사 나부랭이들이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중국 역사가를 통해서만 들을수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 (북경)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구려 유적들과 병영 병참기지
중국땅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는 수십 수백개의 고조선과 고구려 피라미드와 유적지들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댐건설 등으로 수장시키고 공사로 파괴중입니다.
1997년까지 산동반도에는 상가들 이름이 백제가 들어간 간판이 널려있었지만
현재는 단 한개의 간판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광개토대왕의 영역 확장 수준은 우리가 국사책에서 보던 수준을 초월합니다.
광개토대왕의 영락궁 위치는 장안성 근방이랍니다… 놀랍지 않나요
경주에서 발견된 그릇에 쓰여진글귀에 광개토대왕 영토라는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 전체는 거의 고구려 영향력 아래 들어가있던 작은 부분이었던 겁니다.
백제는 수많은 왕을 거느린 황제국 수준의 나라였습니다.
대한민국 작은 전라도 땅안에 국한된 지방정권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ruclips.net/video/NZwluWSsap4/видео.html 진짜 역사 이야기는 여기에 많습니다.
꼭 한번 가보십쇼
저는 역사에 관심이 그리 많지도 않고 게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대한민국 사람 한명이라도
우리 조상님들의 진짜 이야기를 알기를 바랍니다.
황현필 선생님을 국회로 보냅시다~~
.....만,
황쌤 명강으로
한국사를 재대로 잼나게 공부합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서 기록의 지명은 한반도에 없습니다.
거의 모든 지명과 수도 주요 전쟁 장소는 중국 땅 한복판에 있습니다.
고구려 연개소문이 당왕을 추격해다 놓친곳에 당왕이 기념으로 세운 몽룡보탑 위치가 어딘지 아십니까
중국 현지 역사가가 kbs역사 스페셜 취재진에게 진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터뷰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와 교수들이 그리고 화려한 말하기를 좋아하는 스타 학원강사 나부랭이들이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중국 역사가를 통해서만 들을수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 (북경)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구려 유적들과 병영 병참기지
중국땅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는 수십 수백개의 고조선과 고구려 피라미드와 유적지들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댐건설 등으로 수장시키고 공사로 파괴중입니다.
1997년까지 산동반도에는 상가들 이름이 백제가 들어간 간판이 널려있었지만
현재는 단 한개의 간판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광개토대왕의 영역 확장 수준은 우리가 국사책에서 보던 수준을 초월합니다.
광개토대왕의 영락궁 위치는 장안성 근방이랍니다… 놀랍지 않나요
경주에서 발견된 그릇에 쓰여진글귀에 광개토대왕 영토라는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 전체는 거의 고구려 영향력 아래 들어가있던 작은 부분이었던 겁니다.
백제는 수많은 왕을 거느린 황제국 수준의 나라였습니다.
대한민국 작은 전라도 땅안에 국한된 지방정권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ruclips.net/video/NZwluWSsap4/видео.html 진짜 역사 이야기는 여기에 많습니다.
꼭 한번 가보십쇼
저는 역사에 관심이 그리 많지도 않고 게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대한민국 사람 한명이라도
우리 조상님들의 진짜 이야기를 알기를 바랍니다.
너무도 아쉽긴 합니다.
고구려가 가장 강력했던 저 때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를 하나의 나라로 합하고
네 나라의 왕조가
하나의 씨족 체제처럼 되어서
유능한 왕을 선발하는 체제로 갔더라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요동 요서 지역을 포함한 대 제국이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일본 따위가 침략해올 수 없는 그런 대 제국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정말 신라의 당나라 연합은
우리 민족의 가장 최악의 선택이었습니다.
소수의 인구로 북방몽골과 중원을 점령하고 통치했던 만주족의 청제국이 메이지 일본한테 영혼까지 털린거 생각하면 고구려가 삼국통일하고 근현대까지 남았다 한들 계속 끝까지 강했을꺼라고 장담은 못함
정말수고하셨읍니다 고맙고감사합니다
동전의양면이라생각합니다 선생님 두가지언급중한가지동화쪽에더비중을두고싶습니다 당시에는떨치던민족들이 다 중화되어버렸으니까요 저는평양천도가신의한수아니였나싶은마음입니다 어쨋거나지금껏독자적문화를구축하고이루며나름이어올수있었다고생각하니까요
오 황현필쌤도 유튭채널이있었네요. 2009년에 선생님 인터넷강의들었었는데...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항상 감사한마음 갖고있습니다. 정말 열심히 잘가르쳐주셨던 기억이나네요.
선생님의 강의는 언제나 호방하십니다 가슴이 후련해지네요 선생님께 한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고구려 유민으로 중국에 나라를 건국한 이정기 장군에 대한 강의를 부탁드려도 될런지요 항상 재미있게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서 기록의 지명은 한반도에 없습니다.
거의 모든 지명과 수도 주요 전쟁 장소는 중국 땅 한복판에 있습니다.
고구려 연개소문이 당왕을 추격해다 놓친곳에 당왕이 기념으로 세운 몽룡보탑 위치가 어딘지 아십니까
중국 현지 역사가가 kbs역사 스페셜 취재진에게 진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터뷰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와 교수들이 그리고 화려한 말하기를 좋아하는 스타 학원강사 나부랭이들이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중국 역사가를 통해서만 들을수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 (북경)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구려 유적들과 병영 병참기지
중국땅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는 수십 수백개의 고조선과 고구려 피라미드와 유적지들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댐건설 등으로 수장시키고 공사로 파괴중입니다.
1997년까지 산동반도에는 상가들 이름이 백제가 들어간 간판이 널려있었지만
현재는 단 한개의 간판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광개토대왕의 영역 확장 수준은 우리가 국사책에서 보던 수준을 초월합니다.
광개토대왕의 영락궁 위치는 장안성 근방이랍니다… 놀랍지 않나요
경주에서 발견된 그릇에 쓰여진글귀에 광개토대왕 영토라는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 전체는 거의 고구려 영향력 아래 들어가있던 작은 부분이었던 겁니다.
백제는 수많은 왕을 거느린 황제국 수준의 나라였습니다.
대한민국 작은 전라도 땅안에 국한된 지방정권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ruclips.net/video/NZwluWSsap4/видео.html 진짜 역사 이야기는 여기에 많습니다.
꼭 한번 가보십쇼
저는 역사에 관심이 그리 많지도 않고 게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대한민국 사람 한명이라도
우리 조상님들의 진짜 이야기를 알기를 바랍니다.
와 이정기장군 고구려유민에서 당나라 장군으로등용되어 서역 정벌했다고 들었습니다 이것황쌤이 언제 인가 올리셨던거로 기억하는데 그래서 제기억에 남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영상 감명 깊게 잘 보았습니다.
중국의 음흉한 마수를 걷어내고 꼭 다시 빛나는 역사의 계승하여야겠습니다.
동북공정? ㄱ같은 중화사상 따위에 동조하는 무리들이 각성하는 계기가 되기를....
샘 1편보다 갑자기 끊겨서
몇번 돌려봤잖아요ㅠ
한편 나눠 올리실거면 한번에 두개올려주세요ㅜㅜ
기다리다 현기증날뻔
항상 좋은 강의 고맙습니다
제가 고교시절에 국사교과서를 보면서 가졌던 의문이 현필쌤 강의덕분에 풀렸습니다. 저도 광개토대왕이 그렇게 위대한 왕이신데 3국통일을 왜 안했을까. 라는 궁금증을 가졌었거든요.
강의를 듣고 나니 영상 말미의 현필쌤 말씀처럼 안타깝기그지없네요...
정치, 군사, 인품, 덕 고루갖춘 모든면에서 뛰어난 군주였고, 그래서 길게 내다보시면서 원대한 꿈을 꾸신 분이었는데, 천수를 누리지 못하셨다니...
열정적인강의 항상감사합니다
중원고구려비에 영락7년써져있으면 5만병력보냈을때 그때 지휘관들이 일끝내고 포로들중 비석제작가능한 놈 나와한 다음 인증샷(인증비)하고 간 건가보다싶네요.
진짜 안타까움 호태왕께서 불과 30대에 저업적을 다이루셨는데 60세까지사셨다고 가정한다면 백제 가야 신라 다털고 호남지역에서 쌀생산력에 인구도 배는 늘어날테고 장수하신 장수왕이 이어받아 더 발전시키고 만주를 온전히 우리민족 의 영토로 확립시키셨을텐더 너무아쉬움
20년만 더 사셨다면 역사가 완전히 바뀌었겠지요
어우... 정말 많은 연구 끝에 수업하신다는 느낌이 팍팍 오네요... 좋은 수업 감사합니다!
사학과 지망하는 학생입니다. 본 강의를 듣고나서 역사를 연구하는 데에 있어서 한자를 어떻게 해석하는 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한자를 멀리하고, 등한시 했지만, 올바른 역사 해석을 위해서는 한자가 필수적이군요,,,
다른 학자분도 본인이 미리 점 찍어놓고 시간되면 병합생각한거 같다고 해서 애석하게도 젊은 나이에 생 마감해서 그 꿈 좌절
잘듣고있어요
현필쌤님~ 늘 강의 잘 보고 있습니다!!
전국민이 볼 수 있는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역사책 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선생님께너 서술하신 책도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잘 봤습니다 선생님~
좋의 강의 감사합니다.
생각만으로 우리의 가슴을 웅장하게 만들어주는
우리 역사상 유일한 왕 광개토대왕 👍
선왕 무왕도 있슴
구독 알림설정했습니다.
진짜 많이 배워갑니다..저보다 1살위시던데 지식이 대단하심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하면 이리 많은 지식을 쌓을수있는건지 궁금하네요.
역사 선생님이십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서 기록의 지명은 한반도에 없습니다.
거의 모든 지명과 수도 주요 전쟁 장소는 중국 땅 한복판에 있습니다.
고구려 연개소문이 당왕을 추격해다 놓친곳에 당왕이 기념으로 세운 몽룡보탑 위치가 어딘지 아십니까
중국 현지 역사가가 kbs역사 스페셜 취재진에게 진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터뷰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와 교수들이 그리고 화려한 말하기를 좋아하는 스타 학원강사 나부랭이들이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중국 역사가를 통해서만 들을수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 (북경)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구려 유적들과 병영 병참기지
중국땅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는 수십 수백개의 고조선과 고구려 피라미드와 유적지들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댐건설 등으로 수장시키고 공사로 파괴중입니다.
1997년까지 산동반도에는 상가들 이름이 백제가 들어간 간판이 널려있었지만
현재는 단 한개의 간판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광개토대왕의 영역 확장 수준은 우리가 국사책에서 보던 수준을 초월합니다.
광개토대왕의 영락궁 위치는 장안성 근방이랍니다… 놀랍지 않나요
경주에서 발견된 그릇에 쓰여진글귀에 광개토대왕 영토라는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 전체는 거의 고구려 영향력 아래 들어가있던 작은 부분이었던 겁니다.
백제는 수많은 왕을 거느린 황제국 수준의 나라였습니다.
대한민국 작은 전라도 땅안에 국한된 지방정권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ruclips.net/video/NZwluWSsap4/видео.html 진짜 역사 이야기는 여기에 많습니다.
꼭 한번 가보십쇼
저는 역사에 관심이 그리 많지도 않고 게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대한민국 사람 한명이라도
우리 조상님들의 진짜 이야기를 알기를 바랍니다.
저때 신라를 잡아 먹었어야 됐다.
할말은 해야겠다 하시고,
대통령의 중국전문에 관한 말씀 하신것 !
이미 내리신듯 합니다.
큰 감동 받은 식견이자 의견이었습니다.
그 내용을 다시한번 청취할수 있는 방법울
간절히 부탁드려 봅니다.
파일도 괜찮습니다.
해당 컨텐츠에 댓글도 달았었습니다.
다른 어떤 의도도 없습니다.
긍적적 답변이 오길 기다리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선생님.
👏👏👏👏역시 졸라 멋지네요! 안타깝게도 청춘의 나이에 돌아가셨지만 그의 업적은 대단한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가 넓힌 영토가 오랫동안 지금 오기까지 남겨져있었으면 좋았을껄 하는 아쉬움도 진하네요 큽...🙊😭👍
강의 예술입니다 엄지척~^^!
띄우씌기를 해석하면 광개토대왕이 바다로 건너간 왜를 치고 가야 백제를 신민으로 삼아다라는 해석이 맞는 해석이 같아오.
선생님 항상 감사합니다!!!
아 ... 요동 요하를 우리민족의 국경선 경계로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무슨 소리 세요?압록강 두만강은 조선시대 세종때 영토죠.최윤덕의4군김종서의6진. 통일신라는 대동강 이남,그위는 발해 (요즘은 통일신라시대라고 부르지않음)
요동,요하를 점령했다면 아마 지금쯤 아파트만 겁나 짓고 있겠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서 기록의 지명은 한반도에 없습니다.
거의 모든 지명과 수도 주요 전쟁 장소는 중국 땅 한복판에 있습니다.
고구려 연개소문이 당왕을 추격해다 놓친곳에 당왕이 기념으로 세운 몽룡보탑 위치가 어딘지 아십니까
중국 현지 역사가가 kbs역사 스페셜 취재진에게 진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터뷰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와 교수들이 그리고 화려한 말하기를 좋아하는 스타 학원강사 나부랭이들이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중국 역사가를 통해서만 들을수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 (북경)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구려 유적들과 병영 병참기지
중국땅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는 수십 수백개의 고조선과 고구려 피라미드와 유적지들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댐건설 등으로 수장시키고 공사로 파괴중입니다.
1997년까지 산동반도에는 상가들 이름이 백제가 들어간 간판이 널려있었지만
현재는 단 한개의 간판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광개토대왕의 영역 확장 수준은 우리가 국사책에서 보던 수준을 초월합니다.
광개토대왕의 영락궁 위치는 장안성 근방이랍니다… 놀랍지 않나요
경주에서 발견된 그릇에 쓰여진글귀에 광개토대왕 영토라는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 전체는 거의 고구려 영향력 아래 들어가있던 작은 부분이었던 겁니다.
백제는 수많은 왕을 거느린 황제국 수준의 나라였습니다.
대한민국 작은 전라도 땅안에 국한된 지방정권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ruclips.net/video/NZwluWSsap4/видео.html 진짜 역사 이야기는 여기에 많습니다.
꼭 한번 가보십쇼
저는 역사에 관심이 그리 많지도 않고 게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대한민국 사람 한명이라도
우리 조상님들의 진짜 이야기를 알기를 바랍니다.
수고하셧습니다......
신라....고려의 은혜는 이미 지난일....우린 당군에게 식량을 지급하겟다.....!!
우리에게도 남북조시대가 있었음을 확실히 말합니다
남쪽은 통일신라가 있었고 북쪽엔 고구려의 후예 발해가 해동성국으로 발전하고 있었던 시대를
우리의 남북조시대라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통일신라시대가 아니고 남북조시대라 해야합니다
현필샘 강의중 군주가 몇년만 더 살았더라면 이란 표현에 딱 두명있는데 광개토대왕 그리고 문종 진짜 이 두분은 넘 일찍 돌아가셨어ㅠㅠ
만약에 10년만 광개토 대왕이 더살았더라면이라는 if에대해 다른 영상에서도 인구문제를 애기하더니 역시 인구때문이였군요
순전히 광개토태왕의 힘만으로 이 모든 정벌이 가능하진 않았을겁니다. 훌륭한 왕 밑에는 훌륭한 신하들이 있었을 것이고, 실제로 그러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용맹하고 날랜 장수들과 체계적으로 훈련된 군대와 나라만 생각했던 책사들이 있었을 것인데 사료가 적어 아쉽습니다.
이는 외침이 많은 반도국의 특성상 사료가 불타거나 훼손이 심한 것도 한몫하겠죠. 바라건대 요서나 요동 깊숙한 어느 산골이나 동굴에 고구려의 충의지사가 숨겨놓은 고구려의 역사서가 발견되기를 소망합니다.
저도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고구려의 역사서가 부디 발견되어지기를....
광개토대왕이 판단 미스를 한듯...... 백제 신라를 통일하고 통일고구려 만든다음에 승하하셨어야했는데 ㅡㅡ;; 고구려 멸망의 불씨를 남겨놓고말았어... 꺼져가는 불씨도 다시보자... 그냥 살아생전에 북쪽으로 더 영토 확장을 하지말고 방어위주로만하고 남쪽 통일에만 힘썼으면 나중에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후방을 걱정안해도 되었고 지원도 더 받을수 있었는데 정말 아쉽네...
판단미스 ............ 다스리기 복잡하고 이래저래 어쩌구 저쩌구해도 친하니 어쩌니 후연도 그냥 놔두고 어쩌구해도.......... 결국 적이 아닌가?? 동맹이래도 언제든 깨질수 있는게 동맹이고..
정말 아쉬운건 충분히 백제 신라를 통일할수 있었는데 일찍 단명할바엔 통일이라도 시켰어야했는데 광개토대왕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삼국통일 했을꺼고... 이후에 일은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충성스런 고구려의 백성이 되었을수있고 관리가 의외로 잘되서 후대에 당나라하고 싸움하기에 병력 보충도 더 할수있고.. 너무 아쉽네.. 한국 고대 역사가 크게 바뀌었을텐데.
아쉽게 세종대왕은 안태어났겠지만... 적어도 여진, 거란 이런넘들한테 시달리고 살진 않았을텐데.. 아.. 그냥 광개토대왕이 백제 신라를 흡수했어야했어 ............. 남쪽을 더 신경썻어야했는데. 너무 북방에 신경을 많이 쓰고 남쪽에는 아량을 베풀었어...
감사합니다. 코로나 이겨냅시다.
강사님 강의를 앞 부터 보다가 마지막 능비의 문구를 보니까요, 이전에 그냥 보았던 능비가 마치... 연애편지? 사모곡? 처럼 느껴집니다. 그냥 왕릉의 비문으로 생각했었는데 강사님 강의 후의 이 비문은 어느 훌륭한 군주가 요절했는데, 그 사실을 통탄히 슬퍼하는 사람의 심정이 느껴지네요.
황쌤에 말씀에 박번 동의합니다 첨엔 왜 신라백제 가야를 직접통치 안했을까 의문이였는데 인터넷 유튜로 여러 역사라학자을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왜 난 황쌤 영상을 볼때마다 울컥울컥 해서 눈에 눈물이 맻히는건지,.....ㅠ
당시는 중국이나 고백신 3국이나 4분5열된 상황이고
지배 민족(기마)과 피지배 민족(농경)이 달랐기 때문에
몽골처럼 힘으로 제압하고 간접 통치를 하는 식이었지요
고구려 지배층이 몽골계 혈통이란 건 다음을 통해 알 수 있죠
1. 선비족과 언어가 통하고
2. 초기 왕의 호칭으로 칸을 썼고
3. 이름이 몽골식이란 것 (을지.문덕, 온달 등)
역사를 알게 됩니다 감사드립니다
고려시대때 서희가 되찾은 강동6주는 압록강 북쪽입니다 ‘강동’의 뜻은 강의 동쪽을 뜻합니다 즉 지금의 요하 동쪽에 있는 영토를 되찾아서 강동6주를 설치한 것입니다 만약 강동6주가 평안도라면 강남6주가 되어야 합니다 압록강 남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명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서쪽 영토가 지금의 요하 동쪽 철령까지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동쪽 영토가 두만강 북쪽 688리 지점인 공험진까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기술되어있는 고려의 영토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사’에 기록되어있는 것을 그대로 베낀것입니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라는 기관을 설치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국인 역사학자들이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 신석호입니다 이들은 친일파 역사학자들인데 해방후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독립운동가들이었기 때문에 다 제거되거나 납북되어서 남한의 역사학계는 이들 식민사학자들만 남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계승해서 왜곡된 우리 역사를 가르쳤고 그들의 제자들도 식민사학을 배워서 또다시 그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의 제자들은 다시 그들의 제자들에게 식민사학을 가르치고.... 그 결과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배워온 것입니다
원나라가 무너진 후 명나라가 철령에 철령위를 설치하고 자신들의 땅으로 편입시키겠다고 고려에 통보하자 우왕과 최영이 요동정벌군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에는 철령이 함경도 안변이라고 기술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고려는 그 땅을 지키려면 어디로 군대를 보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함경도이겠죠? 그런데 왜 요동정벌군을 보냈겠습니까? 철령이 요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몽골이 고려를 침공하자 당시 고려 북쪽 지방의 수령들이었던 조휘와 탁청 등이 그 지역을 갖다 바치고 투항을 했습니다 그리고 원나라는 고려의 북쪽 영토를 직속령으로 편입시키고 쌍성총관부를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원나라가 쇠약해지자 공민왕이 그 땅을 수복하기 위해 인당과 유인우로 하여금 군사를 몰아 쌍성총관부를 점령케 합니다 이때 인당은 압록강을 건넜고, 유인우는 두만강을 건넜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쌍성총관부가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 교과서에는 쌍성총관부가 함경도 지역에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일제가 완전히 왜곡한 것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민왕이 북방 영토를 회복한 후 원나라가 북쪽으로 물러나자 명나라가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고려에 통보했습니다 그러자 고려에서는 우왕과 최영이 그 땅을 지키기 위해 이성계와 조민수로 하여금 요동을 정벌토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위화도 회군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의 태종때 명나라와 국경을 합의했는데 고려시대때의 우리 영토였던 철령과 공험진까지를 조선의 북방 영토로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세종이 김종서와 최윤덕을 북방으로 보내 4군 6진을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 지역이 현재 우리가 간도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즉 4군 6진이 간도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대학의 역사학 교수들, 역사를 다루는 국가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 중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일제의 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기 때문에 왜곡된 역사가 바로 잡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왜곡된 우리 역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국의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 땅에 한사군(낙랑군, 현도군, 진번군, 임둔군)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의 사마정은 사기 하본기의 주석서인 사기색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태강지리지에서 말하기를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으며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위,촉,오의 분열을 끝낸 나라는 사마염이 건국한 진나라 입니다 ‘태강’은 진나라 무제였던 사마염의 연호입니다 사마염은 삼국을 통일한 후 전국의 지방행정조직을 점검하기 위해 ‘태강지리지’라는 지리서를 편찬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태강지리지는 낙랑군이 현존했을때의 책이기 때문에 정확한 자료입니다 그리고 태강지리지가 당나라때에는 존재했기 때문에 사마정이 그 책을 인용해서 사기색은에 기록한 것입니다) 갈석산은 하북성에 있는데 아주 유명한 산입니다 고조선의 영토가 거기까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주류 역사학자들은 한사군이 북한 땅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갈석산이 평양에 있습니까?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내려왔나요?
평양에 있었던 것은 낙랑군이 아니라 낙랑국입니다 고구려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낙랑공주는 낙랑국 왕의 딸인 것입니다 그러나 낙랑군은 독립된 나라가 아니라 지방행정기관이기 때문에 낙랑태수의 딸은 낙랑공주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북성에 있었던 낙랑군과 평양에 있었던 낙랑국은 서로 다릅니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했을때 수당군이 집결한 지역은 북경 근처의 탁군입니다 그런데 왜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약 한국 군대가 북한으로 처들어간다면 어디서 군대가 집결하겠습니까? 당연히 휴전선 근처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겠죠? 하지만 목포나 부산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당시 고구려와 수당과의 국경이 북경 근처였기 때문에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던 것입니다 갈석산이 있는 하북성이 고조선의 땅이였기 때문에 광개토태왕때 고구려가 옛 땅을 되찾기 위해 거기까지 진출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고대 요동의 위치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역과 달라집니다 북경 근처에 있는 난하가 고대의 요하였고 난하의 동쪽이 요동, 서쪽이 요서였던 것입니다
우리 역사를 공부하면 애국심이 생기지도 않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내가 어떤 의무나 희생을 치를 가치도 전혀 못느끼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니까 검찰처럼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만 혈안인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길보다는 개인의 이익과 영달만 좇는 것입니다 이게 다 우리 역사의 뿌리가 잘려나갔기 때문입니다 일제의 의도대로 민족정신이 말살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 잡아서 제대로된 미래를 설계해야 합니다 현재의 코로나 방역, 한류열풍, G7국가로의 진입 가능성이 타진 되는 상황등 우리의 자부심을 높이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도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면 우리의 원래 모습을 알 수 있고, 우리의 원래 모습이 발현되는 현상이 바로 K방역, 한류열풍, G7국가로의 진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도 제대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아~~~~통일!!
감사합니다
한민족은 한(恨)이 많은 민족이다.그 한이 간방(艮方)의 한인 것이다 . 한은 간(艮)의 마음(心)이 있다는 뜻이다.다시말해 간방의 미련이 있다는 말이다.찬란했던 적어도 동아시아에서 상고시대의 시원 문화문명을 일으켰던 동이(東夷)족인 한(韓)민족이 잃어버린 간방을 그리워한다는 말이다.이게 진짜 한민족의 한의 의미다.21세기가 다 가기전의 본래의 모습을 찾는 아니 그 이상의 한이 풀리는 것이다.광개토왕이 일찍 죽고 장수왕이 반도로 수도를 옮긴 것은 그 당시 간방의 사람으로서 역할을 했을 뿐이다.그 다음이 진방 차례이기때문이다.이게 천지의 뜻이다.18세기이후 손방이 반짝하다가, 태방의 도움을 받아 태방의 좋은 것을 융합하여 간방이 다시 수면위로 드러나는 것이다.다시 드러날 때는 동아시아판이 아닌 세계판이므로 광개토왕같은 아니 그 이상의 인재들이 구름처럼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간방은 시작과 끝이다.인류사(史)의 인간과 역사의 심판이 간방에서 이뤄지는 것이다.이해를 못하면 그냥 넘어가도 된다. 다만 형이하적 역사를 더해 형이상적인 것을 알아야 인류와 인류사를 관통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강의 듣고나니 원래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안타깝네요.. 저희가 지금보다도 더 강대국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텐데.. 강의를 듣고 나니 최고의 군주 세종대왕이 더 위대한지, 광개토대왕이 더 위대한지 고민이 더 됩니다.. ㅎ
내정과 외치로 구분해서 투탑으로 하죠ㅋ
요동을 확보하고 농경을 장려하고 성들을 지어 요하를 기준으로 다른 민족과 갈라 놓고 튼튼한 고구려의 국경선과 영토를 확정한 것은 위대한 군주의 역할중 하나다. 그런데 직접 정복한 영토를 지배하지 않은 것은 땅은 넓고 고구려인들은 소수라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 땅을 유지하는 것이 더 큰 비용과 그 지역으로 이주한 고구려인들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비를 베푸는 척 맞서 싸운 그 지역의 토호들을 용서해주고 영원히 고구려를 침략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고 땅을 돌려준 것이다. 이것은 지금으로 치면 관리가 가능한 땅만큼만 직접 경영을 하고 직접 관리가 어려운 곳은 그곳의 토호들에게 확실한 겁을 줘 고구려를 배신치 못하게 한 외교적 능력이다. 그러나 전쟁에서 진 그 지역의 백성들은 태왕의 자비와 배려에 감사하고 자발적으로 대를 이어 충성을 했을 것이며 자기들끼리도 전쟁으로 생긴 복수심에 대한 마음을 키우지 않음으로 해서 자발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한 것이며 이것이 팍스코리아나의 핵심가치인 것이다. 정복을 했다고 무조건 식민지를 삼는 것이 아니고 그 지역민들과 백성들에게 서로 다툼을 더이상 하지 않도록 위무를 하고 자치적으로 살아가도록 보장해 줌으로서 더 깊은 고구려에 대한 충성을 자발적으로 하게 한 것이 위대한 태왕의 공이다. 지금 작금의 시대는 식민경영을 하면서 온갖 못된 차별을 자행한 선진국들이 여전히 세계 경영을 하고 있는 와중에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들어가고 한류가 인류 보편 타당한 가치를 전파하자 전세계의 억눌리고 식민지였던 나라들의 존경과 지지를 대한민국이 받게 된 것이다. 세계 경영은 약육강식만 있는 것으로 알고 글로벌 경영을 하던 선진국들이 대한민국의 선한 국제경영을 배우고 싶어하고 따라오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피지배민족들은 한류의 가치를 수용하고 약육강식이 아닌 평화공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를 통해 배우는 듯 하다. 이로써 과거 태왕께서 이루셨던 팍스코리아나가 재현될 것으로 믿는다. 서로간의 과거의 복수를 하지 않으며 서로 상생하는 관계를 구축하는 국제관계를 추구하고 동시에 대한민국은 패권국들의 일방적인 약육강식이 아닌 모두가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의 유일한 롤모델이 되어 전세계의 개발도상국들의 마음의 맹주가 되지 않을 까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가 이런 위치가 될 수 있는 것은 과거 태왕의 기록이 있어서 배워서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이 올바른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배운 민족은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는 것이다.
황쌤 방송 이것은전국민이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시간되시면 북방민족 정리 한번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역사책 보다보면 여러 민족이 나오는데, 누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선비, 거란, 돌궐, 말갈, 만주, 여진, 흉노 등등.. 현재와 연결해서 알려주시면 좋겠네요
솔직히 연결 안 됩니다. 계속 유목 생활, 반농반목생활을 하는 북방민족에 대해서 계통이나 연결을 따지기가 좀 많이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게다가 예를 들면 흉노가 선비로 편입되기도, 거란이 여진에 편입되기도 혹은 선비라 칭하기도 여진이라 칭하기도 하는 편인지라... 연결고리를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편이죠.... 그리고 아마 이 분이 하실려면 유목사 관련 책을 읽어야할텐데 공부많이 하셔야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기본서들마다도 조금씩 설명에 차이를 보이는 편이라...
예전에 나름 비슷하게 설명해주신게 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나네요
북방민족을 알려면 스키타이부터 쭉 갈라치면, 흉노, 유연, 갈 계열은 보통 북몽골계열, 강,저가 서몽골 티벳계, 오환,선비,거란,여진 같은 만추리아 퉁구스계 동호가 대표적인 중국이 생각하는 이민족 분류라 봅니다
선생님 빠른 업댓 감사합니다^^
1: "사람이 살지 않았다."완전 과대 해석인건 겉네요.
2: 요동.... 산이 많아요. 오히려 고구려 서쪽 북쪽 국경선 따라 평원이 쫙쫙 펼쳐졌거든요. 고속도로 한 두 시간 달려도 산이 안 보일 정도로 지루하거든요. 완전 지구 표면을 굴러가는 느낌.
3: 부여나 옥저 처럼 당한 입장에선 패전이 어마무시하게 끔찍했겠지요.>
12:30 이전에 임용한 박사님(?)인가, 그 삼국지 아저씨, 그분도 광개토대왕이 정복을 못한 것이 아니라 통치 기반때문에 못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을 데리고 가면서 고구려인으로 동화시켜서 다시 내려 보내가지고 영원히 고구려에 동화될 수 있도록 계획을 했죠. 다만, 그 계획 실행하려고 했는데 돌아가셨죠...
와^^고맙습니다
국민학교 시절에 스스로 선택해서 읽었던 책이 광개토대왕 위인전 이였죠. 그때 그 어린 나이에 영웅이 되버린 위인이죠.
철령의 위치가 함경도 지방이 아니라 압록강 너머 요동 산지에 철령이 있었다는 주장( 이덕일 선생) 있습니다~ 어찌 생각하나요 ? / 한사군 낙랑의 위치도 평양부근으로 표시하는데~ 한사군 위치가 요동 또는 요서에 있었다는 주장은 동의 안하는 건가요 ? 황선생~
황현필 참 열정적인 역사가다.
위대한 왕은 일찍 가신다! 왜?
너무 에너지를 많이 쏟아부어서인가?
광개토태왕이 2~30년을 더 장수하셨다면
역사의 지도는 또 바뀌었을테고,
조선조의 정조대왕게서도 20년을 더 집권했다면
일본에게 허망하게 나라 뺐기진 않았을터,
그러나 역사에는 만약에는 없다!
다만, 우리 한민족의 국운일 따름이다!
당시에 고구려가 통일을 안한게 역사적 실책이자 한이다.
당시 고구려가 통일을 했다면 지금 우리는 중국에 속해있을수도 있습니다..
@@골D로저-s3w 무슨소리?
@@초아의카이저 역사는 if란 없지만 고구려가 통일을 하고 강성해졌다고 하더라고 통일중국국가와 맞붙는건 힘들수있고 정복전쟁에서 졌다면 한반도와 만주에 그들의 지방관을 보내 관리하려했을수도 있다 이말입니다 그렇다면 그안에서 발생한 쿠데타 및 반란은 중국이 관리할것이고 지금까지 중국에 속해있을수도 있는것이죠 위대한 우리의 고구려 역사이지만 고구려가 통일이 되지않아 다행히 우리가 독립된 국가로 존재 할수있다고 볼수도 있어요
고구려가 통일했다가 멸망했다? 그럼 통째로 중국 넘어가는거임. 3나라 중에 2나라만 멸망했으니 지금의 한국이 있는거
11:45 부터~
지금의 코로나위기를 우리나라가 고구려의 기상으로 멋지게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
영상 11분쯤에 말씀하신 맥아더 얘기중에
맥아더가 만주에 핵날리자 한건 중공군에게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약해지자 무리수로 던진말로 알고있습니다
맥아더가 무리한 진격을 멈추고 청천강 이남을 기점으로 방어선만 제대로 구축했어도 분단의 아픔을 겪지 않았을거라 보는 시각도 있는걸로 압니다
당시 중공군에 공격에 전혀 대비도 못하고 있었고 결국 트루먼대통령이 전권으로 맥아더를 해임시키고 리지웨이 장군을 후임으로 보냅니다
다행히도 리지웨이는 중공군의 전술을 간파함과 동시에 망가진 전선을 수습하고 서울을 사수하는데 성공합니다
맥아더가 만주에 핵날리자고 한건 매우 현실성도 없을뿐더러 엄청나게 위험한 발언이였습니다
당시 한반도 전쟁에 소극적이였던 소련에게 참전명분을 줘버린 엄청난 발언이였을뿐더러 만주공격론은 실제로 중공을 참전하게 만들었습니다
만약 맥아더의 말을 미국의회가 승인해서 핵을 투하했으면 핵전쟁으로 아마 한반도는 지금의 후쿠시마 같은 땅이 됐을거라고 봅니다
물론 선생님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혹시나 오해하는분도 있을까봐 공부하는겸 써봤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삼국사기에서 광개토왕비문의 기록을 대부분 다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신묘년(391)조도 백제본기에 나옵니다. 다음처럼,
*진사왕 7년; 봄 정월, 궁실을 중수하면서,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진귀한 새를 기르고 기이한 화초를 가꾸었다.
이렇게 광개토왕비문의 신묘년조와 같습니다. 이 기사의 바로 앞(390년)과 비교하여 책을 잘 보아야 합니다. 진사왕 7년조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신묘년조는 일본서기에도 나옵니다.
광개토대왕의 번뜩이는 칼은 백제가 아닌 신라를 향했어야 했습니다. 특히 흉노계 성골진골 뼉따귀들을 싸그리 도륙냈어야 훗날 대륙 영토가 온전했을 겁니다.
결과론적이라 저도 고구려가 통일 했으면 좋겠지만 한반도가 중국 손에 있던가 한국이 고구려땅을 지금도 차지하고 있던가 진짜 모 아니면 도임 지금 잘 살고 있으니 신라가 통일한 걸 감사해야 되나...
감사합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우리역사의 왕들은 잔악무도하지 않은게 흠이였네요 ㅎㅎ 다들 애민이라 다른 나라백성까지 생각해서 명분없는 불필요한 전쟁으로 백성을 희생시키지 않으려는 마음때문인듯 그나저나 이성계 이방원은 아무리생각해도 좋아할수없는 이때부터 민족의 자긍심을 잃은듯합니다. 큰나라를 거스를수없다는 말이 참 거지같다는 생각 ,,
활발한 정복사업을 하면서도 정복한 국가의 독립성과 문화를 유지시키는 포용정책을 썼다는 점에서 후대의 징기즈칸과 유사한 면이 있네요.
징기즈칸과 광개토대왕은 몽골족이라는 태생적인 면과 동북아의 광활한 유목지역을 통치하며 기마병을 이용해 정복사업을 벌였다는 면에서 매우 공통점이 많은 인물로 보여집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면서 백성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준 군주가 최고의 군주가 아닌가 합니다.
(재일사학자 이진희 교수와 )서해학자 김병기 교수가 입공우를 도해파로 일제가 변조했다는 내용으로도 강의 했으면 더 좋았을것 같습니다. 다음 강의때 꼭 부탁드립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서 기록의 지명은 한반도에 없습니다.
거의 모든 지명과 수도 주요 전쟁 장소는 중국 땅 한복판에 있습니다.
고구려 연개소문이 당왕을 추격해다 놓친곳에 당왕이 기념으로 세운 몽룡보탑 위치가 어딘지 아십니까
중국 현지 역사가가 kbs역사 스페셜 취재진에게 진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터뷰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와 교수들이 그리고 화려한 말하기를 좋아하는 스타 학원강사 나부랭이들이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중국 역사가를 통해서만 들을수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 (북경)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구려 유적들과 병영 병참기지
중국땅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는 수십 수백개의 고조선과 고구려 피라미드와 유적지들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댐건설 등으로 수장시키고 공사로 파괴중입니다.
1997년까지 산동반도에는 상가들 이름이 백제가 들어간 간판이 널려있었지만
현재는 단 한개의 간판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광개토대왕의 영역 확장 수준은 우리가 국사책에서 보던 수준을 초월합니다.
광개토대왕의 영락궁 위치는 장안성 근방이랍니다… 놀랍지 않나요
경주에서 발견된 그릇에 쓰여진글귀에 광개토대왕 영토라는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 전체는 거의 고구려 영향력 아래 들어가있던 작은 부분이었던 겁니다.
백제는 수많은 왕을 거느린 황제국 수준의 나라였습니다.
대한민국 작은 전라도 땅안에 국한된 지방정권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ruclips.net/video/NZwluWSsap4/видео.html 진짜 역사 이야기는 여기에 많습니다.
꼭 한번 가보십쇼
저는 역사에 관심이 그리 많지도 않고 게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대한민국 사람 한명이라도
우리 조상님들의 진짜 이야기를 알기를 바랍니다.
서울의 세종대왕과 이순신 동상처럼
평양에도 광개토대왕과 연개소문 동상이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동상을 대신하는 날이 올 때
고담덕이 꿈꾸던 팍스코리아나가 이뤄질 거 같습니다
연개소문은 그냥 권력에 미친 독재자인데
요동수복이 우리의 동기부여 일수는있어도 가능성은 낮죠. 우리가 준비를 잘해도 작전특성상 단기에 작전을 성공시켜야 되고 수복후에도 그곳을 관리하고 경영할 계획,
보급로 확보까지 문제는 더 증폭됩니다. 그리고 그모든게 국고 다시말해 백성이 내는 세금으로 충당되는대 요동수복? 현실성이 떨어지는 발언이죠. 요동수복은 단순히 군사적인 정벌이 아닌 군사적행위+행정(수복후 다스림)이 수반되는
고급스러운 정치현안입니다. 그걸아니까 고구려 이후에 나라들도 요동수복이 주는 의미에 대해 신중한거였죠. 못해서가 아닌 하게되면 생기는 그 모든 상황이 여의치않으니 신중한거였습니다. 또한 그걸아는 중국도 동북쪽 변경에 대해선 정예화시키고 늘 주시하고있었죠. 우리가 요동수복 을 하면 그들도 그걸막기위해 군사를 보낼거고 그러다보면 끝도없는 전쟁에서 물자가 닝비되고 군사로 차출된 백성들이 전장에서 산화되겠죠. 그럼 양국모두 망국의 길로 가는거죠. 그렇기에
망설인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