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6 북한산 최대의 미스테리 왜 진흥왕순수비는 비봉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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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0 сен 2024
  • 20210306 북한산 최대의 미스테리 왜 진흥왕순수비는 비봉에 있을까?
    비봉은 한강하류유역(현재의 서울)을 백제로 부터 빼았은 진흥왕이 이를 기념하여 행차(순수)한 것을 기념해서 세운 진흥왕순수비가 있어 비봉이라고 불리운다.
    신라 진흥왕과 백제 성왕이 나제동맹을 맺고 고구려의 한강유역을 되찾을때 한강상류는 신라가, 원래 한성백제가 있던 지금의 서울 한강하류는 백제가 나누어 갖기로 했으나 신라가 나제동맹을 깨고 백제로부터 뺏어 이렇게 차지한 한강하류가 신라땅임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후 신라는 중국과 서해를 통해 직접적으로 교류할 수 있게 되었고 백제와 고구려를 중간에 지형적으로 분리시켜 결국 이후 당과의 연합을 통해 삼국통일할수 있게된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이다. 순수비는 이후 역사에서 사라져 조선후기 금석문의 대가 추사 김정희에 의해 발견되기 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왜 진흥황 순수비는 지금의 비봉에 있을까. 개인적으로 이게 나의 북한산 최대 미스테리였다.
    왜냐하면 비봉능선이 보이는 남산,인왕산이나 은평둘레길 비봉능선전망대에서 보면 비봉능선 봉우리중 그 역사적의미를 가진 비석을 세우면 어디에 세우면 좋을까하는 질문을 다른 사람들에게 해보면 열에 열 다 보현봉에 세운다고 한다. 그만큼 보현봉이 우뚝 솟아있기 때문이다. 비봉이 예쁘기는 하나 한강유역을 차지한 걸 기념하는 기념물이라면 당연히 우뚝솟은 보현봉이 어울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진흥왕은 가장 높은 백운대도 아니고 비봉 옆에 더 우뚝 멋지게 솟은 보현봉도 아니고 비봉을 선택했을까? 백운대는 어렵더라도 보현봉은 올라가기도 그리 어렵지 않은데…
    사실 북한산과 관련된 더 큰 미스테리가 있다. 백제의 시조인 비류와 온조가 고구려에서 어머니 소서노와 함께 남하하여 백성들과 살곳을 찾기위해 부아악에 올랐다는 내용이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맨앞에 나오는데 여기서의 부아악이 학계에서 인수봉으로 해석되어 그 시절 인수봉을 올랐다는 애기가 되어서 이게 가능한가 하는게 더 큰 미스테리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것과 진흥왕순수비가 왜 비봉에 있나가 연결될수 있다. 그래서 흥미진진하다.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이걸 먼저 해결해야한다. 즉 왜 비봉인가의 두번째 미스테리를 풀기 위해선 더 큰 첫번째 미스테리를 해결해야 한다.
    일단 현실적으로 부아악을 인수봉으로 해석하는건 아닌거 같다. 첫째는 인수봉을 그 당시에 오르는게 불가능했을거고(지형이 그때는 달라서 가능하다는 분도 계신데 이건 아닌듯하다. 북한산이 만들어진거는 인간이 살기전이다.) 둘째는 산에 오른 이유가 삼국사기에 명확하게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한 정상정복이 아니라 백성들과 살곳을 찾기 위해서라고 했으니 굳이 오르기 어려운 인수봉에 오를 이유가 없다.
    따라서 그냥 백성들과 살곳을 찾기 위해 북한산에 올랐다. 즉 부아악을 북한산 전체으로 보고 북한산의 어느곳 중 하나에 올랐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그리고 북한산에 올라본 모든 사람은 알겠지만 인수봉이나 그 옆 백운대에서는 살만한 평지가 안보인다. 또한 비봉능선이 가리고 있어 한강쪽이 안보인다. 그 당시에도 물은 도시를 세울때 고려할 가장 귀한 자원이었을 테니 결국 한강과 북한산 사이에 살곳을 찾았을 것이므로 백운대나 인수봉보다는 비봉능선쪽에 가야 살곳이 더 잘보인다.
    결국 비봉능선의 보현봉, 문수봉, 비봉, 향로봉, 족두리봉 중에 하나에 비류와 온조가 올라 백성과 살 곳을 알아봤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하는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곳이 인수봉이나 백운대보다는 당시 사람들이 오르기도 쉽고, 살곳을 찾기도 쉽기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두번째 미스테리인 왜 진흥왕이 비봉에 순수비를 세웠을까라는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나제동맹을 깨고 한강하류를 집어삼킨 진흥왕의 결정은 지금까지 삼국시대에서 매번 3등이던 신라가 2등 그리고 이후 1등으로 올라서는 결정적 계기된 사건이고 절대 다시 백제에 뺏길수 없는 그런 결단이었다. 그러면 진흥왕은 어디에 비를 세워야 상징적으로 절대 백제에 이곳을 뺏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일 수 있을까?
    내가 진흥왕이라면 백제에게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자리에 비를 세워 이제부터는 백제가 아니라 신라가 한강하류의 주인이다라는걸 밝히고 싶었을거 같다.
    이제 무슨 말인지 아실것이다. 즉 비류와 온조가 올라 살곳을 찾아본 그 봉우리가 바로 비봉이 아닐까 하는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비봉이 그런 역사적인 장소였다는 것이 백제와 신라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백제가 시작된 역사적인 장소이고 백제의 뿌리와 같은 성지이니 그곳에 신라가 비석을 세우면 신라입장에서는 가장 확실히 백제를 제압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백제로서는 둘도 없는 치욕이고.
    그래서 비봉능선의 5개의 봉우리중 더 멋지게 우뚝솟은 보현봉이 아니라 비봉에 진흥왕순수비가 세워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소설에 가까운 개인적 추측이다.
    그래서 또 다른 가능성이 있지 않을 까 싶어 오늘 산행에 나섰다. 몇가지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봤지만 다들 별로다. (관악산-인왕산-비봉 일직선, 비봉능선의 5봉중 가운데이므로 일월오봉도의 가운데 즉 왕의 상징 등등)
    본래 무릎이 좋지않아 산책겸해서 은평둘레길의 비봉능선 전망대에서 비봉전체를 조망하고 돌아갈려고 했으나 뭐에 홀린듯 탕춘대 능선을 넘어 비봉까지 갔다. 비봉이 나를 불렀다고나 할까. 뭔가 할말이 있는듯 해서 비봉까지 올랐다.
    오늘도 여전히 아무리 생각해 봐도 비봉보다는 보현봉에 진흥왕 순수비를 올려야 더 멋져 보인다.
    그럼에도 왜 진흥왕은 비봉에 순수비를 세웠을까?
    혹시 내생각이 맞는 건 아닐까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만일 그렇다면 오늘 난 비류와 온조 그리고 진흥왕을 비봉에서 함께 만났다.
    #걸어야사는남자
    #북한산
    #비봉
    #진흥왕순수비
    #비류
    #온조
    #부아악

Комментарии • 3

  • @Vancouver_Ohi
    @Vancouver_Ohi 2 года назад +1

    한국 살때 북한산 정말 좋아했었는데 이렇게 역사에 해박하신 하이커님은 처음 보네요~ 그런 미스테리는 모른채 그냥 산에 오르곤 했어요.ㅎㅎ😁👍🤗

    • @wangbongmtlover
      @wangbongmtlover  2 года назад +1

      감사합니다. 저도 역사 이런거 잘 모르는데 그냥 순수비가 도데체 왜 저기 있을까? 넘 궁금해서 찾아보고 그런거예요. 산타면서 이런 재미도 만들어 보는게 즐겁더라구요.

    • @Vancouver_Ohi
      @Vancouver_Ohi 2 года назад +1

      @@wangbongmtlover 그런 궁금증과 애정이 진정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