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1위 찍을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 - 6화[대반전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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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5 сен 2024
  • 밀정 이덕일, 복기대 그들이 하는 무논리!
    2022년 복기대는 "한사군은 어떻게 갈석에서 대동강까지 왔나?"는 논문을 발표 했으나, 수경을 역도원의 실수처럼 "패수가 동으로 흐른다" 라는 잘못된 해석을 기반으로 한 논문이다.
    대릉하 갈석에 낙랑이 있다는 태강지리지에 전한다는 구절을 역시 인용하는데, 대릉하는 낙랑요동이 아니며 동족방뇨로 주장하는 "옛요동은 현재의 대릉하다"라는 어떤 근거도 없다.
    밀정 이덕일, 복기대는 한국 역사 연구를 망치고, 결국 아무런 논리적 근거도 없다고 세계에서는 볼 것이니 한국학계의 격을 떨어뜨리는 밀정이 아니라 할수 없다.

Комментарии • 68

  • @조민제-g7s
    @조민제-g7s Год назад

    감사합니다.

  • @이기용-p6l
    @이기용-p6l Год назад +1

    고대의 요동은 기주.
    기주는 고구려의 발상지이며 옛 고죽의 땅입니다.

    • @TV-DOCJON
      @TV-DOCJON  Год назад

      고대 요동이 기주라는 근거가 없다구요. 북한도 현 요동으로 보는데, 반민족적인 주장입니다. 북한하고 역사화합을 해야 하는데 쓰레기 같은 논리로 민족을 분열시키지 마세요

  • @TV-kz2xm
    @TV-kz2xm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대성동고분군 시리즈를 하다가 독자들의 요청으로 전라도 천년사를 하는 중인데 이것이 끝나면 다시 대성동 고분군을 계속할 것입니다. 여기 올리신 대성동 고분군 관련 동영상을 보니 저와 생각은 비슷한데 방법이 다릅니다. 제 방식은 대성동 고분군에 누가 묻혀있는지 6하원칙에 의하여 지위와 이름을 대는 것입니다. 이전에 영산강유역 전방후원분을 할 때도 거기 묻힌 사람의 지위와 이름을 6하원칙에 의하여 대는 것이었습니다. 고분군 이해에는 이 방식이 가장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도장깨기님의 유튜브를 방문하여 동영상도 몇 개 보고 대회를 통하여 나름 여러가지를 배웠습니다. 소중한 답변에 감사드리며 이제 다른 곳으로 가서 배우려고 합니다.

    • @TV-DOCJON
      @TV-DOCJON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감사합니다. 육하원칙으로 해결이 되는 것은 논쟁이 없어야 맞습니다. 논쟁이 된다면 육하원칙으로 해결이 안된다고 봅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 말고, 하나하나의 주제로 토론하는 것은 환영합니다. 대부분의 분들이 토론에 막히면 자꾸 딴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그렇지 않는 토론을 기대하며 살고 있습니다

  • @김성용-g3d
    @김성용-g3d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외이렇게. 백성을 어지럽게하는지

  • @TV-kz2xm
    @TV-kz2xm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다음은 한서지리지의 낙랑군에 소속된 각 현들에 대한 소개입니다. 어떻게 해석하시는지요?
    樂浪郡, 武帝元封三年開 莽曰樂鮮 屬幽州 戸六萬二千八百一十二 口四十萬六千七百四十八 有雲鄣 縣二十五 朝鮮 䛁邯 浿水 水西至増地入海 莽曰樂鮮亭 含資 帶水西至帶方入海 黏蟬 遂成 增地 莽曰增土...

    • @TV-kz2xm
      @TV-kz2xm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미 다 아시겠지만 제가 이 글을 올린 것은 2가지 때문입니다.
      (1)낙랑군 25현들의 특징을 소개하는데, 패수현은 물이 서쪽으로 흐르는 것이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즉 패수현만 서쪽으로 흐르고 나머지 대부분 지역은 서쪽으로 흐르지 않기 때문에 다른 현과 구분되는 특징이 되는 것으로, 패수가 서쪽으로 흐르는 강이 될 수 없다고 할 때 인용하는 구절입니다. 만일 당시의 패수가 Z자처럼 꺽이는 곳이 있었으면 그 곳이 패수현입니다.
      (2)두번째는 대방이 대수에서 이름이 나왔듯이 낙랑이란 이름도 어느 큰 강의 이름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강을 찾아야 하는데 현재까지 딱 1가지 학설이 있습니다. 요수(시라무엔강)와 백수(대릉하) 사이의 지역을 지역이라고 했다는 심백강설인데 저도 확신은 못합니다.
      이후 위만조선의 해체로 인한 동쪽으로의 민족 대이동이 BC 1세기에 신라, 고구려, 백제의 건국을 불러온 것은 물론이고, 낙랑군도 요서에서 요동으로 이동시켰다는 것입니다. 후한 광무제 이후 요동의 낙랑군은 대동강유역의 낙랑국을 통치하다, 서진 말인 313년에 고구려의 공격을 받고 요서로 쫒겨갔다는 것입니다.

  • @TV-kz2xm
    @TV-kz2xm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북한 평양의 낙랑유적지구는 대동강 북쪽에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6세기에 역도원이 북위에 온 고구려 사신에게 들어보니 평양 남쪽을 흘러 서쪽으로 바다로 들어가는 (대동)강을 패수라고 부른 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8백년 전 고조선 시대의 패수를 기록한 수경의 동쪽으로 바다로 들어간다는 기록이 잘못되었다고 주석을 단 것 아닙니까?
    2) 패수와 대수는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 있었던 두 강을 뜻하는 말 아닙니까? 그래서 고구려가 평양을 점령한 후에 대동강과 예성강을 패수와 대수로 부른 것 아닙니까?

    • @TV-DOCJON
      @TV-DOCJON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다들 토론을 하자면서 피하시는데, 좋은 토론 되기를 바래봅니다.
      1. 수경에서 동쪽으로 들어간단 기록의 해석을 잘못한겁니다. 따라서 동쪽으로 드어간단 기록 자체가 없다라고 볼수 있고, 역도원의 주석은 헛일 입니다.
      2. 패수와 대수의 패수와
      위만이 넘은 패수는 동명이강이라고 봅니다. 그걸 동일시 하는게 중국의 역대 역사 공정이라고 봅니다.

    • @TV-kz2xm
      @TV-kz2xm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TV-DOCJON 사람이 이동하면 지명도 이동하므로 시대가 달라지면 강의 이름도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동시대에 두 강에 같은 이름이 붙으면 혼란을 일으키므로 그런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즉 BC 2세기 초에 위만이 넘은 패수와 BC 1세기 말에 비류와 온조가 넘은 패수는 시간적으로 약 2백년의 차이가 있지만 같다고 봅니다.
      당시 고조선의 수도인 왕검성은 패수와 열수 사이의 열수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학계의 통설은, 청천강과 대동강 사이의 대동강 가까이에 낙랑유적지구가 있으므로, 패수를 청천강, 열수를 대동강으로 비정하고 있습니다. 백제가 BC1세기 건국시에 고구려를 탈출하여 건넌 패수와 대수는 압록강과 한강 사이의 큰 강들인 청천강과 대동강에 비정하고 있습니다. 즉 통설에 따르면 대동강은 열수이자 대수입니다. 하지만 청천강이 살수로 불린 적은 있으나 패수로 불린 것은 없고, 대동강이 패수로 불린 적은 있으나 열수나 대수로 불린 적은 없습니다.
      패수의 위치가 문제되는 것은 전한시대 이전인 BC3~BC1세기지 후한시대인 AD1세기 이후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삼국사기 대무신왕조가 1세기 중반에 청천강과 대동강 사이의 낙랑이 후한 광무제의 통치하에 들어갔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평양의 낙랑유적지구에서 발굴되는 유물은 전한시대 것에 비해 후한시대 것이 압도적으로 많아 이 기록이 정확하며, 평양의 낙랑유적지구는 전한시대에서 후한시대로 바뀌며 큰 정치적 변동이 있었습니다.

    • @TV-DOCJON
      @TV-DOCJON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TV-kz2xm 제 주장의 핵심은 위만의 패수를 온조의 패수로 역사공정을 했다는 것이고, 재야든 강단이든 이 역사공정에 당했단 겁니다.
      한자가 다른 패수가 동시대에 2개가 있을수 있다.고 봅니다. 또한 패수는 강이름이 아니라, 지류나 곁가지강, 옆강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정도 말은 이미 아시리라 믿습니다.
      요동의 위만의 패수를 대동강으로 만든게 역사공정이 아니라고 판단하신다면 간략하게 정리해 주시거나 영상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 @김성용-g3d
    @김성용-g3d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요동은 있다면서 외이렇게 없다있다 말이많지요

    • @TV-DOCJON
      @TV-DOCJON  9 месяцев назад

      뭐가 요동에 있다는겨? 요동군이 요동에 있겠지... 제대로 써라 좀

  • @TV-kz2xm
    @TV-kz2xm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인용하신 저 지도는 21세기 현대의 지도로 2,400년 전 고조선 시대의 지도와는 다소 다릅니다. 따라서 고조선시대의 강은 고조선시대의 지도를 놓고 논의를 해야 합니다. 당시의 지형은 현대의 지형과 다음과 같이 다릅니다.
    1) 위 지도는 대능하의 지류가 남쪽만 있는데 고조선시대에는 북쪽으로도 큰 지류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2) 또 하나는 요동만이 지금보다 훨씬 커서(동북쪽으로 연장해야 함) 요하 하류의 요택은 물론이고 그 북쪽까지도 바다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당시 요서를 흐르는 시라무엔강(서요하), 대능하, 소능하 등은 동쪽으로 바다로 들어갔고, 요동을 흐르는 혼하, 태자하, 소자하 등은 서쪽으로 바다로 들어갔습니다. 그 결과 요동만은 여러 강들의 하구가 모이는 장소였습니다.

    • @TV-DOCJON
      @TV-DOCJON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당시 지도를 볼수 있다면 좋겠네요. 혹 영상에서 쓰셨다면 동영상 제목을 주세요. 시간까지 주시면 더 좋구요

    • @TV-kz2xm
      @TV-kz2xm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요택이 바다였다는 것은 오래 전에 책에서 본 것입니다. 대능하의 북쪽 지류가 말라버린 것은 근대 이후에 발생한 것으로 인터넷에서 지도를 보고 안 것입니다. 오래 전 지도를 보면 오래될수록 북쪽 지류가 길고 큽니다. 아마 지금도 인터넷 검색이 가능할 것입니다.@@TV-DOCJON

    • @TV-DOCJON
      @TV-DOCJON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TV-kz2xm 너무 방대하게 설명하시는데요. 고조선 시대 지형지도 알려주시면 편할듯 합니다

    • @TV-kz2xm
      @TV-kz2xm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TV-DOCJON 제가 지도를 한 번 그려보았습니다.
      www.youtube.com/@TV-kz2xm/community

  • @TV-kz2xm
    @TV-kz2xm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패수는 전한과 고조선의 국경이었을뿐 아니라 준왕의 천도 및 한과 마한의 성립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1) BC 2세기 초에 준왕은 위만에게 고조선을 내주고 해로를 이용하여 한의 땅으로 천도하여 국가를 유지하는데 이것이 한왕체제의 수립입니다. 준왕이 해로로 천도한 곳이 어디입니까?
    (2) BC 1세기 말~BC 1세기 초에 한은 다시 남쪽으로 천도하게 되는데 이것이 마한입니다. 마는 순수한 우리말로 남쪽이란 뜻이므로 마한이란 남쪽으로 내려간 한이라는 뜻입니다. 국명이 바뀔 정도면 상당히 내려간 것입니다. 백제가 건국 10년 후인 온조왕 10년에 만난 마한이 바로 이것입니다. 한이 밀려 내려오게 된 원인은 무엇이며 어디로 내려 갔습니까?
    (3) 당대를 산 최치원은 '고구려 즉 마한, 변한 즉 백제, 진한 즉 신라' 라고 했는데 왜 고구려가 마한입니까? 신라를 양서와 북사는 진한의 종족이라고 하고, 구당서와 신당서는 변한의 후예라고 하는데, 왜 신라가 진한의 후예가 아니고 변한의 후예입니까? 新羅 本辰韓種也 一說 本弁韓之苗裔, 『册府元龜』

    • @TV-DOCJON
      @TV-DOCJON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저는 중국 사료와 그로 인해 오렴된 (특히 기자 조선) 한국 세뇌 사료를 믿지 않습니다.
      준왕은 없습니다.
      진시황때 고조선이 멸망했다는 1차사료 염철론을 신뢰합니다.
      기자 조선을 만들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수백년뒤(삼국지, 후한서)기준을 만들어서 위만이 나쁜놈이라는 역사 공정을 믿지 않습니다.

    • @TV-kz2xm
      @TV-kz2xm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TV-DOCJON 후한서와 삼국지의 정확성은 삼국사기와 삼국사기 등 다른 사료와의 교차검증으로 확인됩니다. 예를 들면 마한소국의 명칭들, 변진한소국의 명칭들, 진왕의 부득자립위왕과 공립, 진한이 본래 6국이었는데 점차 나뉘어 12국이 되었다는 것, 후한서에는 진왕이 삼한을 모두 통치하나 삼국지에는 마한과 진한만 통치한다는 것,... 모두 다 삼국사기로 확인 가능한 정확한 기록들입니다. 심지어 김제 벽골지를 백제인들이 아니라 신라인들이 쌓았다는 삼국사기 기록을 증명할 때 가지고 오는 것이 삼국지 변진한편입니다. 물론 후한서와 삼국지 동이전에 틀린 것도 있습니다. 틀린 것들 역시 삼국사기와 일본서기 등으로 찾아냅니다.

  • @TV-DOCJON
    @TV-DOCJON  2 года назад

    16:15 서에서 동 ==> 동에서 서로 흐르는게 맞네

  • @김성용-g3d
    @김성용-g3d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외이렇게 말이많나

    • @TV-DOCJON
      @TV-DOCJON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덕일은 10년 전부터 말이 졸라 많더라. 세바닥이 존나 길어

  • @wanjunyang8353
    @wanjunyang8353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헛소리좀 그만 하세요

    • @TV-DOCJON
      @TV-DOCJON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한문 해석도 못하는 헛소리 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