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원왕후. 영조에게 유일하게 조롱하듯 말대꾸할 수 있었던 왕실 웃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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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6 окт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115

  • @트라이앤
    @트라이앤 6 месяцев назад +215

    말은 바로해야죠
    영조가 유일하게 대들지 못한 인물이죠..
    영조는 인원왕후가 아니었음 왕이 못되었음.

    • @yoon7838
      @yoon7838 3 месяца назад

      인원왕후덕에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인원왕후가 연잉군을 양자로 입적해줘서 정통성 태클에 문제 없게 해준 게 크다는데 맞나요???

  • @Real-MintChoco
    @Real-MintChoco 6 месяцев назад +76

    든든한 마음의 지원군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니
    마음이 정말 허 했을 거 같아요..
    영조도 참...

  • @user-byuljeonnam
    @user-byuljeonnam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41

    영조 세제시절 궁궐 내 유일한 지원군이었죠...

    • @inyeobseo9369
      @inyeobseo9369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숙빈 최씨가 죽기 전에 로비한 여자가 하나 더 있는데 영빈 김씨입니다. 영빈은 노론들과 작당하여 경종 독살 미수에도 혐의가 있습니다. 영조는 영빈을 이모라고 부르며 따랐습니다. 인원왕후와 영조는 공생관계였다는게 정설입니다. 그녀의 경주 김씨 가문에서 정순왕후를 간택합니다.

  • @푸른산-v3m
    @푸른산-v3m 6 месяцев назад +89

    인원왕후가 영조에게는 어머니뻘이니 그렇게 말할수 있는것이지. 인원왕후가 경종시절에 세제로 있던 연잉군을 살려준 은혜도 있고

    • @steve_8824
      @steve_8824 4 месяца назад +2

      @@leadiana77 족보이야기 하는데 뭔소리 하는겨.. 아빠인 숙종의 계비 이니 어머니뻘 이라는 것이지

  • @chobong5159
    @chobong5159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5

    엄마뻘인데 말대꾸라니...영조가 말대꾸하면 했찌...법도가 그런게 아니란 말이욧!!!

  • @최혜정-i9c
    @최혜정-i9c 6 месяцев назад +53

    영조는 너무 오래 살았어

  • @뀨미니미니
    @뀨미니미니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0

    인원왕후가 사도세자를 좋아주고 아껴주었네. 더 오래~ 장수 했다면 왕실은 행복했을텐데. 너무 안타깝다. 😮

    • @우주율지는보물
      @우주율지는보물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인원왕후가 장수할 게 아니라 영조가 더 빨리 갈 길 갔어야지. 근데 장헌이 하고 다닌 행실보면 영조가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음

  • @유나예-r6c
    @유나예-r6c 5 месяцев назад +8

    인원왕후가 영조 사도세자 부자의 지원
    군이죠 그 괴팍한 영조조차도 자신을 후
    원해준 인원왕후에게 예를 다하며 후하
    게 대접해줬고 사도세자 역시 자신을 아
    껴주는 할머니 인원왕후를 잘 따랐다고
    합니다

  • @hyelansong2083
    @hyelansong2083 6 месяцев назад +8

    가장 오래 중전자리에 있었는데도 사극엔 날 등장하지 않은 왕비

  • @오병춘-f4q
    @오병춘-f4q 6 месяцев назад +26

    숙종대때부터 능력을 떠나 괴팍한 왕들이 나오기 시작했죠 사랑꾼으로 숙종은 환국때문에 유명하지만 영조는 개인생활부터 가족을 대하는게 유별나죠 특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것보자 용납하지 못한걸로 유명하죠

    • @미미롱-y8d
      @미미롱-y8d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숙종의 생모였던 명성황후의 성정이 괴팍하고 다혈질이었다죠. 숙종이후 괴팍한 성정이 그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 @--ZENITH--
      @--ZENITH-- 4 месяца назад

      @@미미롱-y8d 명성황후래 푸하하하

    • @미미롱-y8d
      @미미롱-y8d 4 месяца назад

      @@--ZENITH-- 아 ㅋ 내가 황후라 했구나 오타였어ㅎㅎㅎ명성왕후
      너 명성이 붙는게 조선말 명성황후만 있다고 생각해서 웃은거 아니지? 숙종생모 명성왕후라 불러 보통은 오타겠거니 할텐데... 숙종생모 명성왕후몰라서 그렇게 과하게 웃은거 아니지? ㅋ

    • @--ZENITH--
      @--ZENITH-- 4 месяца назад

      @@미미롱-y8d 1. 꼭 댕청한 애들이 자격지심에 이절 삼절 사절 주저리 주저리 떠들더라
      2. 꼭 댕청한 애들이 오타드립 치더라

    • @--ZENITH--
      @--ZENITH-- 4 месяца назад

      @@미미롱-y8d 지가 틀려놓고 쪽팔리니까 되려 걸고 넘어지네 수준하고는ㅋㅋㅋ
      꼭 ㅈ 도 모르는 애들이 오타였다느니 드립이었다느니 개 솔을 하더라ㅋ

  • @joannesong2693
    @joannesong2693 6 месяцев назад +7

    좋은 역사 이야기 감사합니다

  • @mye2596
    @mye2596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0

    설명 재있게 잘 들었습니다. 꼼꼼하게 사료조사 한 것이 느껴지네요.^^ 구독 누르고 갑니다.

  • @doroshi99
    @doroshi99 4 месяца назад +6

    영조는 백성들에겐 좋은 왕이었을지는 모르나 자기 가족들에겐 가혹하기 그지없던 왕이었다는것. 그리고 이외의 다른 여러 일들을 볼때 자신에겐 관대하고 남에겐 엄격했던 인간이었다는게 밝혀짐.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후기에 영조만한 왕도 없다는게 문제임..

  • @seon-ws5ur
    @seon-ws5ur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9

    단종의 일 이후로 왕비 자리를 비워두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습니다. 단종의 모후 현덕왕후가 살아있었다면 수렴청정을 했을 거고, 그럼 세조가 단종에게 양위를 요구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비슷한 사례로 중종이 인종의 생모 장경왕후가 요절한 뒤 문정왕후를 들였고, 선조도 정비 의인왕후가 죽자 인목왕후를 들였죠. 인조도 인렬왕후 사후 장렬왕후를 들였고 영조 본인도 정성왕후가 죽은 후 한창 어린 정순왕후를 들였습니다. 이처럼 중전 자리를 오래 비워두지 않았기에 숙종도 인원왕후를 들일 수밖에 없었겠죠. 인원왕후는 본인 소생이 없었고, 집안이 노론이었기에 연잉군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신임옥사로 연잉군은 역모죄로 죽임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인원왕후가 보살펴주었죠. 후계가 없던 경종도 연잉군을 죽이면 다른 가까운 혈육이 없었기에(숙종의 아들 중 당시 살아있던 이는 경종과 연잉군뿐이었고 숙종은 외아들이었습니다) 후계를 새로 정하는 것이 부담이긴 했을 겁니다. 하지만 후계로 선조를 택한 명종 사례만 봐도 종친 중에서 고르려면 고를 수는 있었겠지요. 정통성 있는 소현세자의 자손들도 멀쩡히 여럿 있었고요. 영조로선 인원왕후 도움 없이는 목숨 부지하기도 어려웠던 상황이라 즉위 후 인원왕후에게 효도를 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법적으로 모친이기도 했고요(후궁의 자식은 모두 왕비의 자식으로 호적에 올랐습니다).

    • @루비-z4g
      @루비-z4g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인원왕후는 소론집안이었어요. 나중에 결국 노론이나 마찬가지가 됐지만.

    • @vanille1212
      @vanille1212 6 месяцев назад

      멋대로 불문율입니까? 님이 아는 지식 안에서 상식을 뽑아내 전파하지 마세요. 허위정보입니다. 예종(세조 아들) 계비 안순왕후, 성종 계비 폐비 윤씨, 중종 계비 문정왕후, 선조 계비 인목왕후, 인조 계비 장렬왕후 모두 전비의 3년상을 마친 뒤에 책비됐습니다. 조선 개국 이래 폐비(혼인 취소 관계)가 아닌 전비의 사후 3년상을 마치기 전에 재혼한 왕은 숙종이 최초입니다.

    • @normaltv5150
      @normaltv5150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저 당시 살아있는 대표적인 종친이 밀풍군 탄 경종 부인도 밀풍군을 왕 만들려 했음
      소현세자 셋째 아들 석린의 증손임
      인조가 트롤짓하는 바람에 석철과 석견을 죽여버림

  • @dohakang5674
    @dohakang5674 16 дней назад

    세상을 살아가는데에 있어, 자신의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되지요

  • @user-vh6ub3ej6j
    @user-vh6ub3ej6j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0

    숙종. 경종시절 눌려지내다 킹메이커로 영조후원해줘서 천대받던 정성왕후도 누르고 죽을때까지 내명부에 군림했음.

    • @박주슷
      @박주슷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정성왕후가 며느리라 죽지않는한 대비인 인원왕후힘이 크죠 눌렀다는 표현은..ㅋㅋ

    • @user-vh6ub3ej6j
      @user-vh6ub3ej6j 5 месяцев назад

      @@박주슷 대비가 아무리 웃전이라도 내명부는 중전 소관이라 중전의 힘이 클수밖에 없는데 하도 영조가 구박하니 힘쓸수도 없었음. 오죽하면 문녀가 영빈 막대했을때도 중전이 나서지 못하고 인원왕후가 회초리 들었음. 원래 후궁은 중전권한인데 총애받는 숙의 문씨를 혼내지도 못했다는말임. 숙종때 나이어린 중전인 인현왕후가 장희빈 회초리를 때린 사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성왕후는 후궁을 다스릴 권한을 행사하지 못했음.

  • @Ju-vx1ue
    @Ju-vx1ue 3 месяца назад +2

    참,남의자식이뻐하긴 쉽지않은데 인원왕후의 인서이 존경할만하네요.
    내자손도 말안들으면 미운데~~

  • @리코디언수쌤
    @리코디언수쌤 6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제가 봤을때, 영조는 되려 인원왕후한테 저런식으로 오냐오냐 해갖고 어떻게 나라를 이끌고가겠냐고
    되려 정신차라라고 언젠간 발끈했을 사람입니다.

  • @사일러스-e3w
    @사일러스-e3w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4

    영조도 못되먹어서 문제죠 그리고 맹꽁이서당은 영조 미화하니까 싫더라고요

    • @푸른산-v3m
      @푸른산-v3m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영조가 백성에게는 성군맞다 가족에게 모질게해서 그렇지

    • @여름날-v7j
      @여름날-v7j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영조가 정치는 잘 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백성이 가장 편하게 산 왕이 영ㆍ정조 시절이라잖아요

    • @hamtolyoon6610
      @hamtolyoon6610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여름날-v7j그거 숙종때 닦아놓은거 사도가 잘 이어받아 정치 잘해서 그런거예요 영조야 말로 연산이랑 행동만 반대로 한 편집증 폭군이었어요 제일 대표적인 예로 임진왜란 전쟁배상문제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균역법으로 군대 박살 내놓고 일본으로 통신사파견 이래도 성군인가요?

    • @여름날-v7j
      @여름날-v7j 5 месяцев назад

      @@hamtolyoon6610
      사도??? 사도세사???
      숙종이 영조 아버지인데 사도가 뭘 잘 이어 받아요?
      너님은 동북공정으로 가짜 역사만 배웠니?
      균역법으로 군대 박살??? 공부 더 하고 와라

    • @nakamura139
      @nakamura139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hamtolyoon6610님이 꼭 그 시대 살아본것처럼 얘기하네요

  • @굉장허네-y6z
    @굉장허네-y6z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2

    잼있게 잘봤어요

  • @waegwan2
    @waegwan2 6 месяцев назад +5

    7:53 조선의 앞선 기술
    저 시대에 벌써 볼트/너트에 와셔까지 ㅎㅎㅎ

    • @yukihyde1
      @yukihyde1 6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최첨단 선진 철기문명 조선

    • @bnojay7507
      @bnojay7507 4 месяца назад +1

      18세기에 산업혁명에서나 볼 수 있는 볼트, 너트도 만드는 오버테크놀로지 조선 ㄷㄷ

  • @심해-s1i
    @심해-s1i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1

    영조는 그냥 사이코패스. 어려서 죽을 위험을 수도 없이 넘기면서 고생을 하다보니 결국 사이코패스가 된 게 영조지.

  • @매니아썬
    @매니아썬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

    ❤❤❤

  • @normaltv5150
    @normaltv5150 5 месяцев назад +9

    사도세자를 미치게한건 영조임
    본인 성에 안찬다고 들들 볶는데 안 미치고 버티나 걍 놔뒀으면 무난하게 왕 됐을것을 양녕처럼 사고치는것도 아니고
    임해군처럼 툭하면 사람 죽이는 사람도 아니였는데
    영조가 빌런이지 사도한테는
    인원왕후나 정성왕후 둘 중 한사람만 오래살았어도 사도가 안 미쳤을거다

  • @cube6808
    @cube6808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인현왕후도 정비인 인경왕후 사후 3년 경과 전에 계비가 된 걸로 압니다.

  • @eden1552
    @eden1552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인원왕후 70세면 엄청 오래산거같고 인원왕후가 오래살았더라면이 아니라 영조가 진작에 죽었으면 됐을 일..

  • @서울구름
    @서울구름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연령군과 효장세자가 오래살고 정성왕후와 인원왕후가 20년 더 살았더라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 @박주슷
      @박주슷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정성왕후가 대비까지 되었다면...
      적어도 정조가 정순왕후땜에 받는 스트레스는 적었을듯...

  • @playrandom-l2v
    @playrandom-l2v 6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오래 사셨어야 했는데,

  • @딸기맛꿀젤리
    @딸기맛꿀젤리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하지만 숙종은 영빈을 별로 안 좋아해서 소 닭보듯 했다든데 연령군을 경종 폐위 후 세자 책봉하려고 염두하던 중 사망했죠. 인원이 간택된 이유도 숙종이 영빈을 안 좋아해서 후궁은 왕비가 못 된다고 못 박았답니다. 숙빈이 아들을 낳았으나 신분이 좋지 않아 정치적 기반이 없어 아예 왕비후보로 생각조치 안 했대요. 영빈이 가장 유력해서 청풍 김씨 가문에서 어느정도 영빈에 대한 기대를 했는데 결국 왕비는 못 되었지요. 영빈이 죽을 때 연잉군이 상주가 되어 장례를 치렀기에 실제 영빈의 양자라고 하더군요

    • @normaltv5150
      @normaltv5150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숙종이 후궁이 왕비 안된다고 못박은건 희빈장씨 때문인걸로 아는데요?

    • @오란희-r9t
      @오란희-r9t 5 месяцев назад

      ​@@normaltv5150노노. 장희빈은 사사되었고 계비 민씨도 사망. 중전자리가 비었는데 당시 후궁중 왕비 자격은 숙종이 싫어하는 영빈 김씨가 가문이 좋아서 유력했기에 그녀를 왕비안시키려고 후궁은 왕비가 못된다고 함. 숙빈은 신분이 미천해서 왕비꿈도 못꿈.

    • @블루블랙딸기
      @블루블랙딸기 4 месяца назад

      @@오란희-r9t 웃기는 소리를 하네요 영빈은 진즉에 중전민씨가 살아있을때 처음 후궁으로 입궁할때부터 개찬밥이였고 한번도 찾지않았음
      당연히 자손도없고~~ 그리고 다들 알다싶이 서인이 핍박 받을때 가장먼저 영빈 가문이 줄초상 나고 뒷배도 없어지고 최악인건 중전 폐비 당시 같이 내쫒겼다가
      복위때 같이 들어오긴했지만 님말대로 훗날 어찌될지 모르는게걱정이면 왜 복위시키고 거기다 품계까지 한단계 올려줄까??? 어차피 영빈은 들어와도
      조용히 살다갈 뒷방 후궁일뿐인데 무슨 다음 중전자리를 넘봐요?? ㅋㅋㅋ 너무웃겨서 폭소가나옴 더구나 숙종 성격에 영빈을??? ㅋㅋㅋ 애초에 총애 한번도 받아보지도 못했고
      뒷배도 없고 거기다 자식도 없는 후궁이 신분이 높다하여 그럼 다음 중전자리에 앉을수있는건가?? ㅋㅋㅋ 차라리 숙빈을 경계해서 만든 법이다가 더설득력이있지
      연잉군은 왕세자 인데 그자식을 낳은 후궁이 버젓히 있는데 무슨 영빈따위가 중전자리를 탐내요???ㅋㅋㅋ 지나가는 개가웃을듯

  • @hjj5370
    @hjj5370 4 месяца назад +2

    영조는 재해석되야함
    최악의임금

  • @bookrose1301
    @bookrose1301 4 месяца назад +2

    생모보다 나은 양모와 조모

  • @christsymphony7436
    @christsymphony7436 4 месяца назад +1

    내가.숙종이여도 안 잤겠다 딸뻘하고 무슨;; 왕비자리만 열심히 시키신듯

  • @지구인-e5w
    @지구인-e5w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피의 역사 ᆢ모든게 ᆢ
    왕가의 업보다
    왕가의 여인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곤ᆢ
    인생이 참 불쌍도하지 ᆢ

  • @lllilll-n6r
    @lllilll-n6r 4 месяца назад

    법대로 따지면 어쨌든 엄마니깐ㅋㅋㅋㅋ 효에 죽고 못사는 조선이 엄마를 무시하는 게 말이 안되지ㅋㅋ

  • @행복을꽃피우다
    @행복을꽃피우다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컴플렉스 덩어리
    0조를 즉위할수 있게 철벽쉴드 쳐준
    인원왕후

  • @블루블랙딸기
    @블루블랙딸기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0

    장렬왕후랑 비슷한거지 그냥 중전자리 비워둘수없으니 채운여자

  • @딸기맛꿀젤리
    @딸기맛꿀젤리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숙빈 최씨의 출신을 두고 무수리냐 침방나인이냐 말이 많은데 소설 혼불에서는 숙빈이 인현왕후 가문의 노비이고 입궁계기는 인현이 가례치를 때 따라오는 교전비.. 즉 가마를 수행하는 노비였다고 되어 있어요. 그러다 궁에 눌러앉아 허드렛일을 하는 천비가 된 것이라고 합니다.

    • @여름날-v7j
      @여름날-v7j 5 месяцев назад

      그랬으면 인현왕후가 내쳐질 때 같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소설은 소설일뿐~

    • @딸기맛꿀젤리
      @딸기맛꿀젤리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여름날-v7j 누가 교전비 따위를 내칠지 말지를 정하겠어요. 실제 정치적 영향도 없는데.. 대신들이 그리 한가한 자들이 아니지요

    • @여름날-v7j
      @여름날-v7j 5 месяцев назад

      @@딸기맛꿀젤리 친정에서 데려간 노비들은 친정 재산이라 중간에 친정으로 돌려보내기도 하고,
      잘 없는 일이지만 아내가 쫓겨날 때는 같이 내보냅니다. 요즘으로 표현하면, 결혼 전 취득 재산의 개념이라. 궁중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이런 일을 대신들이 하나요? 내명부에서 정리합니다

    • @여름날-v7j
      @여름날-v7j 5 месяцев назад

      @@딸기맛꿀젤리 소설은 역사가 아닙니다. 소설은 소설일뿐

  • @현윤-t6i
    @현윤-t6i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1

    저 꼬라지 보려고 세조는 왕권 찬탈한 건가 ㅋㅋ
    오히려 왕이 올바른 모본을 보여야 후대에 선례가 없어서 뭘 못하는 건데 왕이 조카가 어리긴 하나 왕인데 왕을 축출하면 나중에 선례가 된다는 걸 왜 모른 단 말인가

    • @inyeobseo9369
      @inyeobseo9369 6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세조의 왕손은 명종에서 단절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선조, 인조는 방계 출신이고 영조도 효종의 자손이므로 소현세자의 후손 밀풍군에게 열등감이 있었습니다.

    • @로크콜-r2z
      @로크콜-r2z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애초에 조선에 시작이 찬탈임 그런식으로 따지면 할아버지 태종도 동생죽이고 세자 됀건데
      세조만 가지고 ㅈㄹ 하면 안돼지 오히려...

    • @현윤-t6i
      @현윤-t6i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

      @@inyeobseo9369 단절이 되었다기 보다 중앙 권력에서 밀려 났다고 봐야겠죠
      당시에 중앙 권력에서 밀려난 왕의 종친들이 사화를 피해서 각지로 피신을 하였습니다

    • @황성민-h5v
      @황성민-h5v 6 месяцев назад

      ​@@현윤-t6i전주이씨들중에서도 중간에 몇대손인지 불명인 이들이 있잖아요. 바로 이때부터 그런 전주이씨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 @ttennisvader
      @ttennisvader 6 месяцев назад

      @@로크콜-r2z 씨가 다르잖아, 왜 역성혁명이란 말이 있는지 모르는거야 세조가 한 짓은 같은 성씨, 같은 혈족 간에도 권력을 위해서는 해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겨버린거지 그로인해서 다른 혈족 위주로 경계하고 같은 혈족 내에서는 평안을 얻고 충전을 하는 시스템이 망가져버린거지 역사책을 읽어야한다

  • @강철룡-e7p
    @강철룡-e7p 4 месяца назад

    영조 담당 일진. 그러나 사도세자 사건은 어쩌지 못함 ㄹㅇ

  • @howono
    @howono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

    노무현 대통령도 대통령 못해먹겠다 하다가
    영부인한테 한소리들음 ㅋㅋㅋㅋㅋ

  • @ji-hokim6140
    @ji-hokim6140 6 месяцев назад +5

    영조 즉위할때 생모인 동이는 죽은건가요

    • @공라헬
      @공라헬 6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숙종보다 2년 앞서 죽어요

    • @공라헬
      @공라헬 6 месяцев назад

      그리고 동이는 드라마 제목이지 실제 이름은 아닙니다

    • @블루블랙딸기
      @블루블랙딸기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숙빈은 진즉에 대궐밖에나가서 조용히살다 숙종보다 훨먼져죽엇음

    • @루비-z4g
      @루비-z4g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인현왕후와 장희빈 죽고나서 있던 후궁 다 밖으로 내보내고 중전이고 후궁이고 다시 들임.

    • @블루블랙딸기
      @블루블랙딸기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루비-z4g 그건틀린것같은데요 후궁다 내보내다니요~~~귀인김씨는 인현왕후 복위후 1단게 오른 빈으로 계속 대궐에서 살았고 숙빈 최씨만 나갔음 인현왕후가 죽엇으니 당연히 새중전을 들였고 제대로 아시길

  • @2356-b7u
    @2356-b7u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말대꾸라는 표현은 잘못됐다
    인원대비가 영조보다 어른인데..말대꾸라는 표현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쓰는 표현임

  • @batuu2601
    @batuu2601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천연두를 앓아서 곰보의혹이 있어서
    미모를 따지는 숙종의
    자녀를 낳지않았다고 봄

    • @user-tc5qw7ro2g
      @user-tc5qw7ro2g 4 месяца назад

      장희빈의 아들 경종은 지 엄마 닮아 아주 잘생긴 왕이였다네요 ㅋ

  • @user-zb4bj8r
    @user-zb4bj8r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왕의 삶이 뭐가 궁금해?
    노비를 그렇게 많이 만들게 했으면
    백성들 한테 미안한줄 알아야지.
    사극 보면 매번 왕이 나오고

  • @Henry-o4x
    @Henry-o4x 6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윤~허하오

  • @ccccccarrmmy
    @ccccccarrmmy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정치9단 숙종이었네

  • @Vickor777
    @Vickor777 6 месяцев назад

    나이가 좀 있는 여자를 들이지.

  • @mmmim-rb9sf
    @mmmim-rb9sf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