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를 뒤흔든 【신라인 해적】/해적의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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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30 июл 2021
  • *신라 해적 이야기 (신라인 해적단이 있었다고?/해적의역사)
    #신라해적 #해적의역사
    참고문헌
    9세기 신라인의 출현에 대한 일본의 대응. 김창겸.
    9세기 신라 일본해적의 연대와 일본정부의 대응. 이병로.
    9세기 일본 서부 연안에 나타난 신라인들. 김창겸.
    9세기 前半 武州 西南海地域의 海上勢力. 변동겸
    9세기 전반 신라의 사회변동과 지방사회. 손흥호.
    고대 동아시아의 황해와 황해무역: 8, 9세기 신라를 중심으로. 권덕영.
    고대신라의 국내상황과 倭로의 해적행위. 성해준.
    신라하대 서·남해역의 해적과 호족. 권덕영.
    신라 흥덕왕대의 청해진 설치 배경. 김호범.
    신라·당의 국내 정세와 9세기 초의 해적. 이영.
    장보고의 해상활동과 해적. 고경석.
    청해진의 해상방위와 군사운용. 신성재.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신라해적. 성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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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 979

  • @user-mh7wd7lg5c
    @user-mh7wd7lg5c 3 года назад +195

    유럽의 경우 바이킹 같은 해적을 방지하기 위해 3가지 방법을 사용함
    1. 군사적으로 방어 : 뜻 그대로 무력을 키워서 맞서 싸움 다만 바이킹이 워낙 체급도 크고 잘 싸워서 개빡셈
    2. 돈 주고 보내기 : 바이킹이 만족할 정도의 돈을 주고 오지 말라고 하는데 문제는 바이킹은 서로 통합된 사회가 아니라서 이 방법을 쓰면 오히려 더 많이 몰려오는 경우도 있음 (맛집 소문)
    3. 너 내 부하되랏 : 바이킹을 성주로 임명하여 충성심을 확보하고 다른 바이킹의 침략을 막게 함 은근히 북유럽 땅이 척박하기 때문에 고향에 미련이 없는 바이킹도 존재했음

    • @SGC-qp2ee
      @SGC-qp2ee 3 года назад +40

      3번이 노르망디 첫시작임.

    • @jlee5401
      @jlee5401 3 года назад +45

      바이킹이 아무리 잘싸워도 보병이라 중앙에서 중장기병들 오면 토벌되긴했음.바이킹이 쇠퇴한 가장 큰 이유는 농노제가 활성화되면서 노예무역에 의존하던 사업이 쇠퇴하면서임 그 후 정착하기 시작

    • @Tripleaxelyang
      @Tripleaxelyang 3 года назад +15

      러시아가 바이킹에서 시작했다는 학설도 많죠 ㅋㅋ

    • @user-ud1th4qr5x
      @user-ud1th4qr5x 3 года назад +15

      @@Tripleaxelyang 그런저런 침략당했던게 존심 상해서 부득부득 이 갈면서 슬라브 인종 주장하는 러시아학계 ㅎㅎ

    • @Tripleaxelyang
      @Tripleaxelyang 3 года назад +7

      @@user-ud1th4qr5x 러시아가 민족주의 강하죠 ㅋㅋ

  • @user-lq2nv3mw6n
    @user-lq2nv3mw6n 3 года назад +175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이어지는 10~11세기는 여진구의 전성시대가 되었다는 훈훈한 결말....

    • @999masijjyeong
      @999masijjyeong 3 года назад +26

      한반도 인근 해역도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다이나믹한게 삼국시대 초기엔 왜구가 극성이고 삼국통일하니 신라구가 극성이고 고려가 들어서니 여진구가 극성이고 여말에는 또 왜구가 극성이고 조선시대 들어오면 황당선이 극성을 부리고 ㅋㅋㅋ

    • @jeongminko9624
      @jeongminko9624 3 года назад +22

      맞아요~ 고려 시대에는 여진 해적도 유명했었죠~
      그래서인지 고려 초기의 고려수군은 질적, 양적으로 상당히 훌륭한 해상 전력이었죠~

    • @user-gw2zu5do2r
      @user-gw2zu5do2r 3 года назад

      @@999masijjyeong 황당선은 해적인가요?

    • @user-uh3uo3jx8d
      @user-uh3uo3jx8d 3 года назад +5

      막바지엔 끝판왕인 이양선(흑색기선)..

    • @999masijjyeong
      @999masijjyeong 3 года назад +1

      ​@@user-gw2zu5do2r
      국적 불명의 선박, 좁게는 명나라 해적들을 부르는 말이었죠. 실록에서는 11대 중종의 실록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지만 다른 기록에서는 태조대의 사신선 약탈도 황당선의 소행이라 기록했습니다
      중근세의 해적들이 그렇듯이 반쯤은 사무역선이었지만 동시에 불법조업, 밀무역, 인신매매, 약탈, 방화 및 살인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또한 총통 등의 화기로 무장까지 해서 조선조정에서도 적극적으로 때려잡았습니다. 이들로부터 조선도 총통에 격목 대신 토격을 넣는 기술도 습득했고 이로서 화살만 쏘던 소구경 총통들도 철환을 발사할 수 있게 되었죠

  • @korkarnak2400
    @korkarnak2400 3 года назад +290

    역사에서도 신라구에 대한 내용은 잘 안다뤄서 좀 궁금하던 차엿는데 잘보고갑니다

  • @seung-jeyang3746
    @seung-jeyang3746 3 года назад +174

    신라구하니 예전 KBS드라마 해신 생각나네 어릴때 재미있게 봤는데

    • @sonhuengmin1
      @sonhuengmin1 3 года назад +8

      OST 브금도 걸작
      배우들의 연기력도 갑

    • @yhansookim7850
      @yhansookim7850 2 месяца назад +1

      멋지게 포장햇지만 결국 해적.
      중앙 집권이 약하던 고대엔 때려잡자니 해안전투에선 특화된 놈들 잡기도 힘들고
      내국인 패지말고 다른놈 패라고 관직주던 때임.
      해안 호적들은 죄다 해적이라 보면되고,
      사쓰마번도 해적질해서 큰 번이엇고,
      임진왜란때 이순신과 싸운 놈들도 해적출신이 많앗엇슴.

  • @soullohen
    @soullohen 3 года назад +371

    장보고가 잡던 해적들이 바로 요 신라구였죠..

    • @Tripleaxelyang
      @Tripleaxelyang 3 года назад +55

      해적잡고 군벌이 되어서 내전일어난건 안비밀이요

    • @user-em6tp2bf2l
      @user-em6tp2bf2l 3 года назад +28

      @@Tripleaxelyang 이것도 복잡한게 처음에는 김균정파vs김제륭파가 흥덕왕 사후 왕위쟁탈전을 벌였고 김제륭파가 이겨서 김제륭이 희강왕이 됩니다. 김균정 아들 김우징은 청해진으로 도망했고 장보고는 김우징을 보호합니다. 문제는 희강왕 정권도 또다른 왕족인 김명의 반역에 무너집니다. 김명은 민애왕이 됩니다. 이때 장보고와 김우징은 민애왕을 왕위찬탈한 역적으로 규정하고 민애왕 정권을 쳐서 무너뜨립니다. 김우징은 신무왕이 됩니다. 장보고는 희강왕 시절은 나름 중립을 지키다 민애왕 시절에 내전을 일으켰는데 민애왕도 왕위를 찬탈한 역적이라서 딱히 이분법을 적용하기가 힘들어요.

    • @Tripleaxelyang
      @Tripleaxelyang 3 года назад +40

      @@user-em6tp2bf2l 역사에서 이분법 적용은 안되죠 그 시대는 봉건제 가까웠고 지방세력이 강했기 때문에 내전 내란이 잘 났었다는걸 얘기한건데 이분법처럼 들렸다면 보완이 되야겠네요

    • @cuzin6260
      @cuzin6260 3 года назад +35

      그동안 장보고가 백성을 노예로 잡아사는 왜구를 격퇴했다고만 배워왔는데 의외의 사실이네요 ㄷㄷ

    • @AMoonShapedPoo
      @AMoonShapedPoo 2 года назад +33

      위인전,교과서에도 그냥 남해안의 해적들을 잡았다고 쓰면 모를까 아예 일본 해적들을 잡았다고 써져 있고 신라구 이야기는 없는게 다반사더라고요

  • @carnage3324
    @carnage3324 3 года назад +130

    신라 해적은 별로 들어보진 못했는데 오늘 영상 덕분에 더 자세히 알아가게 됐네요.. 언제나 감사드립니다...ㅜㅜ

    • @二十八劃生
      @二十八劃生 3 года назад +14

      왜 저런 역사를 들어보지 못하는지 아시나요? 답은 간단하죠 정치적 목적으로 선동질할려면 저런 추한 국뽕들 빠져나갈 역사는 안실어요 이거 말고도 한국의 추한 역사는 사실 많이 있고 임진전쟁이나 구한말 조선의 실태등 많은 상당수의 역사를 왜곡하는 나라입니다 근데 한국인들은 이런 간단한 사실을 모른체 자기들이 가장 우월한 민족인것마냥 선동 당해서 열등감에 빠져 있는겁니다 평소에 조금 유튜브 보다보면 별것도 아닌걸로 싸우고 마녀사냥하고 한국을 비판하거나 일본을 칭찬하는 말을 쓰면 눈에 불을 켜고 자기랑 의견이 다르거나 생각하는게 다르다고 부모님 안부를 물어봐주는 따뜻한 동방예의지국 답게 그런 한국인을 흔히 볼수 있습니다

    • @user-ye3gq1vk9l
      @user-ye3gq1vk9l 3 года назад +14

      @@二十八劃生 일본의 역사왜곡을 욕하면서 누구보다 역사 왜곡하는 나라 ㅋㅋㅋㅋ

    • @머핲
      @머핲 3 года назад +3

      @@user-ye3gq1vk9l 역사를 왜곡하는것과 가르치지 않는건 다른거같습니다 선생님..

    • @miniron-5354
      @miniron-5354 3 года назад +1

      @@二十八劃生 뭔x소리야. 저 역사를 가르치지 않은 이유는 신라가 해상왕국이며 해상전력이 강했다는 것을 숨기려는 일제xx시키들이 지워놓은 흔적인데, 신라구가 왜 추한 역사냐?? 그만큼 항해술과 배를 운용하는 호족들이 많고 연안을 넘어 대양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지. xxx모지리 같은...

    • @user-zw5wv5wb3v
      @user-zw5wv5wb3v 2 года назад +11

      @@二十八劃生 ㅈㄹㄴ 임진왜란은 말할것도 없고 구한말 조선은 중학교 역사책만 봐도 답 없었던거 알 수 있음
      우리나라가 신라구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기록하지 않고 누락한건 분명히 우리가 잘못한게 빼박이고 비판을 감수하며 반성할게 맞음, 근데 니처럼 우월한 민족인지 착각한다던지 열등감에 절어있다는지 하는걸 보면 그냥 일뽕충이 오냐 월척이로구나 하고 억까하는걸로밖에 안보임

  • @wolfk3893
    @wolfk3893 3 года назад +267

    은근히 한국사에서 놓치고 지나가는 부분들이 많은데
    이런부분 재조명하는것도 필요할 듯

    • @owo5052
      @owo5052 3 года назад +3

      그러다 학생들 머리 터져요..;;
      이런건 배우려고 보는게 아니면 재밌으니까 잠깐 보고 마는거지 원하지도 않는거 보게하고 외우게하면 좋던것도 싫어질거같은데 양도 늘리는건..;

    • @Dovahkiin15
      @Dovahkiin15 3 года назад +47

      @@owo5052 애초에 역사의 맥을 배워야 하는건데 사건이랑 연도를 하나하나 외우게 하니까 추가를 못 하는거지 ㅋㅋ

    • @user-ls6ff2pz9n
      @user-ls6ff2pz9n 2 года назад +8

      @참티즈는말지않긔 교육의 근간이 이성을 사용하는 능력의 향상보다 그냥 암기력향상에 근간은두어서 그럼 철학 아님수학제외하고 문제풀때 사고를 안해도 풀수있다는것 부터가..

    • @user-ui4yp8gh9y
      @user-ui4yp8gh9y 2 года назад

      신라구, 고려구, 여진구 ㅋㅋ

    • @pkpkqwe
      @pkpkqwe 2 года назад

      @@user-nv8pf8lt8x 그 침략이라는게 군사적인 침략이지 저런 도적떼 침략이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능수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whitemind111
    @whitemind111 3 года назад +357

    우리나라 고대역사에서 제일 가려진 부분이
    신라구였는데 이걸 알려주는 교과서도 없는데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말 알아야하는 역사이고 이런 부끄러운 일이 없어야 한다는 걸 알아야하는 것도 역사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청해진이 설치되었고 장보고가 위대하다는 걸 이걸 통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네요 영상 감사드립니다

    • @user-bx6uw3qv7g
      @user-bx6uw3qv7g 3 года назад +110

      항상 우리나라가 다른ㅈ나라 침략'안'한 것이고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나쁜짓 한적 없다고 합리화 하는 국뽕충들 ㅂㄷㅂㄷ중이겠네요

    • @stacyjung3361
      @stacyjung3361 3 года назад +129

      부끄러울 껀 없죠. 그냥 역사는 사실로 인정해야 합니다. 미화도 비화도 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나라 역사교육은 사실위주가 아니라 자꾸 감정을 섞는것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봅니다.

    • @user-ik5vx2vf4d
      @user-ik5vx2vf4d 3 года назад +55

      고대 우리 땅에서 시작된 나라가 번창했다고 국뽕 가질 필요도 없고 쇠락했다고 열등감 가질 필요 없음
      그냥 역사는 참고일 뿐이지 과거의 실수를 다시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할 뿐

    • @hiswieder9398
      @hiswieder9398 3 года назад +7

      @@user-ik5vx2vf4d 참고로 '쇠락'임

    • @모래고래
      @모래고래 2 года назад +31

      늘 일본에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는 프레임을 유지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어요. 여몽연합의 일본인 학살도 교과서에는 없죠. 그냥 침공했다가 실패했다 이정도만 써 있고요.

  • @354spartacus
    @354spartacus 3 года назад +167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중고등학교 국사 교사들이 신라 때의 해적은 오직 일본인 아니면 당나라인이었던 것처럼 가르쳤으니.... 신라인도 있지 않았나요? 하니까 개망신까지 주던....

    • @user-np2bg5wq2e
      @user-np2bg5wq2e 3 года назад +71

      다른게 국수주의가 아니라 그게 바로 국수주의였던 것을...

    • @user-qd1uc3rl1d
      @user-qd1uc3rl1d 3 года назад +6

      @@user-np2bg5wq2e 그저 교과서에 나온대로 가르쳤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 @user-xe1tz2hi7o
      @user-xe1tz2hi7o 3 года назад +40

      원래 역사학계 쪽이 그런게 심함

    • @user-sp6oq8nw8w
      @user-sp6oq8nw8w 3 года назад +32

      원래 역사 교사들이 좀 그런게 있어요

    • @ulrichkesler1220
      @ulrichkesler1220 2 года назад +14

      30년전에는 국뽕이 지금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결코 덜 하지 않았지요

  • @humanplusscience4449
    @humanplusscience4449 3 года назад +211

    교과서에 왜구 이야기는 많이 나와도 신라구 얘기는 잘 안 나오죠. 그래서 한국 사람은 착한 줄만 아는데, 사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비슷. 임진왜란 직전 사화동이라는 유명한 왜구 우두머리가 있었는데, 얘가 사실 조선 출신.

    • @user-Roni
      @user-Roni 3 года назад +15

      그래도 왜구 우두머리니까 노비보다는 사람대우는 받았겠네
      왜 항조선인이 은근히 꽤 있었는지 알것같다.

    • @user-kf5oc6zb6h
      @user-kf5oc6zb6h 3 года назад +69

      진짜 역사교육 개편이 필요해보입니다... 역사에 누락된 내용들이 있으니 외교나 국가에 영향이 크죠...

    • @user-lj2zq4gx2n
      @user-lj2zq4gx2n 3 года назад +37

      결론은 다 사람 사는곳이다

    • @user-px5js8gf1p
      @user-px5js8gf1p 3 года назад +34

      @@user-Roni 조선에서는 박대 받으며 관청에 물건 납부나 하던 도공들이 타지인 일본에서는 다이묘들이 서로 데려가려고 안달이 난 전문직업인으로 대접받았고 조선의 차별에 불만을 품고 청에 집단으로 투항한 백정들은 유목민이라 도축 기술자를 존중해준 만주족에게 우대받고 그대로 청에 잔류한 사례도 있습니다.

    • @minkim3408
      @minkim3408 3 года назад +6

      @@user-Roni 네 맞습니다
      일본이 곧죽어도 한국을 방문하려는건 고향으로? 돌아오려는 습성때문이지요
      실제로 내지인보다 한반도에서 넘어간 항한반도인이 더 많습니다

  • @B.O.P.E-3234
    @B.O.P.E-3234 3 года назад +34

    바다가 있는 국가치고 해적없는 국가는 없었음

  • @addinrain8886
    @addinrain8886 3 года назад +38

    그리고 전근대에서 팔 물건이 있으면 상인이 되고 팔 물건이 없으면 도적이 되어 팔 물건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
    저 시절 해적들은 나름 해상무역에 몸을 담던 대상인들이었습니다.
    청해진의 장보고는 말할 것도 없고 훗날 고려 태조 왕건의 조부인 작제건도 이름 날리던 해적이었고요

    • @elite0506
      @elite0506 3 года назад +6

      헐... 해적과 상인이 큰 차이가 없었던거군요. 몰랐네요.

    • @user-lc1fd9lq3l
      @user-lc1fd9lq3l 3 года назад +4

      @@elite0506 과거 바이킹들이 유명하죠. 유럽에서 최고로 성공한 해적이라고 해야하나

  • @2024GOTYBlackMythWuKong
    @2024GOTYBlackMythWuKong 3 года назад +34

    신라 해적의 일본 침략편 잘봤습니다.ㅋ
    다음편 기대되네요!! ㄷㄷ
    신라 해적이 더 등장할지, 당나라 해적이나 여진족 해적도 등장할지 ㄷㄷ

  • @user-lIlIlllllIIll
    @user-lIlIlllllIIll 3 года назад +86

    신라구: 이렇게 된 이상 헤이안쿄로 간다!
    세견선 선원 : 오케이!

  • @user-fg9mv7xk8w
    @user-fg9mv7xk8w 2 года назад +2

    또 하나의 지식이 늘었네요 좋은 영상 항상 감사합니다

  • @MrSeonggyu
    @MrSeonggyu 3 года назад +4

    너무 재미있네요.
    흥하셔야겠어요~

  • @suhong4403
    @suhong4403 3 года назад +44

    고전명작 불타는 버스 ㅋㅋㅋ

  • @nkalabinka6266
    @nkalabinka6266 3 года назад +3

    아... 오늘도 유익했다... 언제나 잘 보고 갑니다.

  • @user-ur6gn2ue7f
    @user-ur6gn2ue7f 3 года назад +160

    저승에 계신 장보고 장군 억장 무너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 @user-oj5wy5is9z
      @user-oj5wy5is9z 3 года назад +16

      과연그럴까?ㅋㅋㅋ

    • @user-ye2lp2fk9n
      @user-ye2lp2fk9n 3 года назад +5

      ㄹㅇ 관료 개1새끼들

    • @user-pu9yy3pp5w
      @user-pu9yy3pp5w 3 года назад +15

      징보고 소상공인 피눈물 흘리게 만듬.

    • @blockbusterkim1120
      @blockbusterkim1120 3 года назад +22

      장보고도 해적
      드라마의 영향이 어마무시하구나

    • @user-ch7ol7bb5h
      @user-ch7ol7bb5h 2 года назад +6

      장보고 장군 자체가 해군기지인 청해진 설치해서 신라구를 완전 학살하다시피 없앴지만 결국 암살당해 전사해버림...

  • @user-eo9zr9do1j
    @user-eo9zr9do1j 3 года назад +51

    청해진은 유명한데 정확히 뭘막았는지는 말을 안했던거네ㅋㅋㅋ

  • @user-ry8nq5ys1n
    @user-ry8nq5ys1n 3 года назад +3

    재밌는 영상♡

  • @Supergolem12345
    @Supergolem12345 3 года назад +72

    얘네가 얼마나 악명이 높았으면 일본의 다이묘가 진성여왕에게 "제발 니네 나라 해적들 좀 어떻게 해 봐!"라고 말했을까요

    • @user-gx7ch8yk9y
      @user-gx7ch8yk9y 3 года назад +22

      근데 나중에 고려,조선시대에 입장이 뒤바뀌죠
      ...

    • @pirami8091
      @pirami8091 3 года назад +4

      정확히는 다이묘가 아니지만요 ㅋㅋ

    • @krk2688
      @krk2688 3 года назад +9

      @@user-gx7ch8yk9y 니가 한대 때리면 나도 한대 때리고
      이게 상호주의 아니겄습니까

    • @Supergolem12345
      @Supergolem12345 3 года назад +20

      @@krk2688 사실 해적이 당연히 일본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여진족이나 동남아시아에도 있었고 아니면 먹고 살기 힘들어진 어민들이 해적이 되기도 했죠

    • @user-xz2gp9lo6u
      @user-xz2gp9lo6u 2 месяца назад +1

      걍 약하면 쳐 맞아야지

  • @danjjakchinguTV
    @danjjakchinguTV 2 месяца назад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leebum3925
    @leebum3925 2 года назад +2

    퍄퍄킴님 역사강의 넘넘재밌어요 감사합니다

  • @risk4619
    @risk4619 3 года назад +20

    이런거도 교과서에 넣어서 재미있게 설명해주면 좋을 것 같음 ㅇㅇ
    유익하고 재밌네요 ^^

  • @seokusmagnus4369
    @seokusmagnus4369 3 года назад +8

    저번에 제댓글로 신라구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렸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___^

  • @user-nm7rd4hi2j
    @user-nm7rd4hi2j 3 года назад +2

    언제 봐도 흥미롭네~!

  • @user-zq1lq4gd3r
    @user-zq1lq4gd3r 3 года назад +1

    역사란 중요한것이야. 오늘도 감사해용.

  • @swordman7330
    @swordman7330 3 года назад +107

    신라구는 당시에 엄청난 해적들이었죠. 당나라와 일본에선 신라구때문에 골칫거리라 신라조정에 항의하기도 했고 그들을 막기위해 연안방비를 강화하기도 하는등...일본에선 당시에 오죽하면 해안근처의 마을에 사람이 살지않고 텅빈상황이다 라는 말까지 나돌았으니.

    • @Supergolem12345
      @Supergolem12345 3 года назад +19

      심지어는 다이묘가 "니네 나라 해적들 좀 어떻게 해 봐!"라는 서신까지 보냈으니...

    • @talkertalker0
      @talkertalker0 3 года назад +8

      리버스 고려네

    • @user-vs7dq7cq7f
      @user-vs7dq7cq7f 2 года назад +2

      너무 과장된 말 아닌가요? 신라구가 고작 규슈 몇 번 침략한 게 다인데

    • @user-ok4zf6hj7h
      @user-ok4zf6hj7h Год назад +2

      ​@@user-vs7dq7cq7f 일본 어민들이 신라 해적기지를 목격하고 너무 거대한 나머지 신라가 일본을 공격하려 준비중이라고 오해했다죠 ㅋㄱ

    • @user-xz7qj8re3q
      @user-xz7qj8re3q Год назад +3

      @@user-vs7dq7cq7f 몇번 수준이 아님 오지게 처들아가고 대학살도 하고 여튼 그랬음..

  • @user-tt4ve7os8y
    @user-tt4ve7os8y 3 года назад +25

    장보고가 조졌던 해적이 얘네였구나 처음알았네

  • @Sinra1999
    @Sinra1999 2 года назад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 @user-ks1dd8mn1i
    @user-ks1dd8mn1i Год назад +2

    유익한 지식 감사합니다~~~

  • @somethingweirdo8518
    @somethingweirdo8518 3 года назад +3

    해적역사 시리즈를 전부 본 나에게 딱맞는 영상추천이구나 유튜브!

    • @퍄퍄킴
      @퍄퍄킴  3 года назад +2

      저도 해적의 역사를 너무 좋아해서
      요즘엔 역사 유튜브인척 하면서
      해적 영상을 만든다는 소리를 듣네요😂

  • @user-yy5pb1dx4g
    @user-yy5pb1dx4g 3 года назад +188

    신라 해적보다 더 강력한... 드디어 다음편엔 여진 해적이 등장할 차례인가!!

    • @TV-qf3pk
      @TV-qf3pk 3 года назад +2

      @tuna_salad 실체로 존재 했어요

    • @user-in7uw5mk9h
      @user-in7uw5mk9h 3 года назад +11

      @tuna_salad 동여진해적모름??일본가서 싹다털고다닌전설의해적인데?애들 상륙하는순간 벌쳐되서(말) 다털고감 일본:씨바막아라 하면뭐함 ㅈㄴ빨라서 이미털고난뒤바다로 런인더::

    • @user-iw1cv3vm2e
      @user-iw1cv3vm2e 3 года назад +3

      @tuna_salad 모르면 확인 좀..

    • @KoreanLeeDongGyu
      @KoreanLeeDongGyu 3 года назад +9

      @tuna_salad 울릉도가 빈 땅이 된 이유가 여진 해적 때문인걸요..?

    • @user-gw2zu5do2r
      @user-gw2zu5do2r 3 года назад +8

      그 유명한 여진구! 옛날 읍루족도 해적질로 유명해서 옥저를 털었다고 들었습니다.

  • @user-bu4km8vs4w
    @user-bu4km8vs4w 3 года назад +22

    그동안 일본 해적에 관한것만 들어왔는데 한반도에도 해적이 있었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CrabTastingMan
      @CrabTastingMan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신라구처럼 "범죄조직의 도적질과 인신매매"는 세계 어느 나라나 있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허나 합법 정권들이 저러는 건 차원이 다릅니다. 신라에서도 토벌하려고 했죠. 고려/조선 때도, 중국도, 왜구 문제 갖고 일본 정부보고 단속 좀 하라고 요구했지 책임지우진 않았습니다. 야마구치구미가 한국에서 범죄일으키면 그게 일본 탓이 아니죠. 규모는 무시하고, 한국도 멕시코도 살인이 일어나니까 두 나라의 치안의 동급이라고 하는 꼴인데 페미나 할 소리죠? 도적? 어느 나라나 있었습니다. 근데 유럽에서도 왜 바이킹이 제일 악명 높을까요? 규모로서 차원이 달라 그렇고, 왜구도 그렇습니다. 수천명 단위로 침략해오는 건 상식을 한참 넘은 거고 바이킹도 그 때문에 악명을 날린 겁니다.
      메이지유신 45년간만해도 일본이 팔아먹은 자국 여성 (가라유끼상)들은 50만명이 됩니다. 그중 상당수가 수백년 전통대로 규슈에서 팔려나갔고요. 빠른 개혁을 위한 돈이 다 어디서 나왔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도 팔아대서 싱가포르에 "일본인의 묘지"만 따로 만들어진 겁니다. 1500년대 세계 곳곳에 범죄자도 아닌 공식 합법 정권인 사무라이출신 다이묘들이 조총 산다고, 서아프리카 왕국들처럼 자국민을 엄청나게 노예로 팔았습니다. 네덜란드 동화 "오니 이야기"는 일본인 노예를 희화화한 이야기인데 아니뗀 굴뚝에 연기가 나겠습니까?
      1500년대 임란 전에 4명의 소년이 천주교로 개종해서 포르투갈 선교사 따라 로마에 가는데, 이걸 덴쇼 소년사절단 (Tensho Embassy)라고 합니다. 그런데 소년들 하는 말이 동남아와 인도에 들렀다가 동, 서 아프리카 항만도 들르는데, 가는 항구마다 일본인 노예를 흑인 노예들 사이에서 힘들게 사는 걸 봤다고 합니다. 일본인을 반출해 나가 타국에 팔아 차익을 챙기는 포르투갈 노예상보다, 애초에 자국민을 이렇게 "가축보다 싸게" 팔아치우는 일본인들의 죄가 원흉이다라고 의논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일본 인터넷에 버젓이 올라와있는 규슈어동좌기 pdf 받아보시면 거의 끝에 외국으로 팔려나가는 일본인들은 지옥에 끌려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서술해놓았습니다. 지방 다이묘들 약화시킨다고 히데요시는 1587년에 허가 없이 천주교 개종 금지, 남만인 따라 소/말고기 먹는 거 금지(일본은 675~1872년 육식금지령 있었음), 중국/남만/조선에 노예 파는 거 금지라고 괜히 그랬겠습니까? 그런데 어차피 1800년대 후반 마리아 루스 사건 때도 "노예제 없다고? ㅈㄹ하네 유곽의 유녀들은 노예 아니면 뭐냐?"라고 했죠. 옛날 중국 백과 "삼재도회" 일본판인 화한삼재도회 7권에서 奴僕(노복)을 (+여성 노비 婢(비)를) 소개 하는데, 일본의 노비입니다. 조선통신사 그림의 통신사의 가마꾼들 + 조선임금의 칙서를 따로 소중히 모셔 가마에 실었던 가마꾼들도 바지 안입고 있죠? 그 사람들입니다.
      하기사 맨날 전쟁한다고 서로서로 더 잘 죽여서 일본 제패하겠다고 조총과 화약을 상대방보다 최대한 많이 최대한 빠르게 사려던 게 사무라이들이었죠. 그래서 세금도 조선의 몇배나 되게 가혹하고 징수하고 (조선의 공식 세율은 10% 내외인데, 이렇게 적게 거두다 보니 봉급을 주거나 내부 감시망을 못 만들어 탐관오리들이 잡세를 만들어 착취합니다. 그런 거 감안해도 실질세율이 유럽 평균과 동일하게 25%. 일본은 60~90%. 싱가포르 이전의 동아시아의 싱가포르였던 무역왕국 오키나와의 류큐왕국은 일본이 1609년에 침략하기 전까진 그러지 않았는데 일본이 90% 세율 만드니까 임산부를 벼랑에서 떨어뜨리고 아기도 돌로 죽이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그래놓고 "이런 죄악이 성행한 건 오키나와가 미개한 탓이다"라고 책임을 떠넘깁니다. 가라데가 오키나와에서 만들어진 이유도, 반항 못하게 창칼을 훔쳐간 뒤 어쩔 수 없이 멧돌 손잡이를 통파로서, 도리깨를 쌍절곤으로서 등등 농기구를 무기화로 쓰는 방편을 훈련한 겁니다.)
      조총만 사고 화포는 개발할 엄두도 못내니까, 1592년 임진왜란 때 조총을 아득히 뛰어넘는 화력과 사거리를 가진 화포에 호되게 당해 화포쇼크를 먹습니다. 개전 1년 만에 1/3내지 1/2 병력이 날아갔다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보고서도 올립니다. 1609년에 처음 개발착수하고 1614년 오사카 성 전투에서 처음으로 일본제 화포가 실전을 치루죠. 그전에는 소수 수입한 걸 운용하는 선에서 그치고.

    • @CrabTastingMan
      @CrabTastingMan 8 месяцев назад

      그리고 규모도 다릅니다. 한명 죽이는 것과 10명이 동급이면 페미 말하는 것처럼 멕시코도 한국도 사람은 죽기야 죽으니 치안은 동급일까요? 도적? 어느 나라나 있습니다. 근데 유럽에서도 왜 바이킹이 제일 악명 높을까요? 규모로서 차원이 달라 그렇고, 왜구도 그렇습니다. 1400년대 중국 동남해안까지 왜구 문제가 심각해지니, 명 조정에서 언제 일본정벌 한번 가야하는 거 아니냐라고 조선에 연락했을 때 오히려 조선이 말려, 일단 대마도만 정리하면 어느 정도 없앨 수 있다고 솔선수범해서 명나라 일본 정벌 의지를 무마시킨 게 대마도 정벌 이유 중의 하나 였죠. 그 때 얼마나 심각했냐면 왜구들이 중국 남쪽에 상륙해 중국인들 공방에 노예로서 가둬놓고 물건 만들게 할 정도였습니다. 북로남왜 시기라 북쪽 유목 민족들 견제하느라 신경쓸 틈이 적었던 면이 큽니다 (조선도 최전방이 여진족 상대하는 북쪽이었고 남쪽은 최후방이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일본애들이 서로 조공하겠다고 죽여대느라 골치아프다고 한 적이 있는데, 얘넨 중국 가서도 1521년 영파의 난을 일으킵니다. 국내외적으로 백제 후손이라고 수백년 동안 자처하던 오우치 가문과 호소카와 가문이 영파에서, 오우치 쪽이 먼저 왔는데 호소카와 쪽이 조공 순서 바꾸려고 중국 관리에게 뇌물 쓰다가, 오우치 쪽이 화가나서 명나라 중국인 백성들과 관리도 학살하고 호소카와 측도 죽이고 배를 태워버리고 약탈 실컷한 뒤 튀었죠. 신의를 져버려 조공(감합)무역이 깨지니 왜구가 다시 기승을 부립니다.
      영상에서 신라구 최대 30척, 500명이라고 한 건, 왜구들 스케일로는 일반 규모고, 최대 7000명 씩 온 적도 있습니다. 최무선의 화약개발로 화약이 없는 왜구들을 대거 소탕했죠? 그걸 알고 나중에 중국 해적 왕직을 두목으로 모셔 화약을 알려달라고 빕니다. 왕직의 다국적 해적단 중에서 포르투갈 배에서 조총을 갖다 주게 됩니다. 뭐 개발 착수야 하지만 최대한 빠르게 최대한 많이 구해서 얼른 일본의 1인자 자리 먹으려고 하니까 수입도 많이 해서, 다이묘들이 너도나도 자국민을 팔아제낍니다. 마이클 호프먼 찾아보세요.
      일본은 전국시대부터 해외에 일본인을 성노예든 노동력으로던 많이 팔았습니다. 다테 마사무네와 우에스기 겐신은 당대 제일가는 노예상 사무라이/다이묘였죠. (PORTUGUESE COLONIALISM AND JAPANESE SLAVES, by Michio Kitahara. Kadensha, 2013 참조) 그리고 전국시대 땐 전쟁하느라, 에도시대 땐 지방 영주들이 사병 모아 또 전쟁 할까봐 가혹하게 세금을 착취하죠. (에도시대 에도의 번영은 북한에서 평양만 그럭저럭 잘 사는 거와 같은 이치입니다. 속지마세요. 그게 아니면 하기 도자기, 이삼평의 아리타 도자기, 심수관의 사쓰마 도자기처럼 전부 조선인이 세운 자기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거나.) 민본주의 조선에서는 작은 정부를 지향해 명목상 세율이 10%내외에 실질로 25%라 해도, 일본에서는 60~80%였고 1609년 임진왜란의 패전을 만회하려고 정벌한 국제 무역의 허브였던 (싱가포르 이전의 싱가포르) 오키나와에서 90% 거둬가서 백성들은 임산부를 절벽에서 밀어버리고 아기는 돌로 눌러죽이기 시작하는데, 일본은 이들의 악행으로 치부하지만 일본의 착취 이전엔 없었던 사실을 숨기죠. 일본 본토에서도 입하나 덜자고 마비키라는 영아살해가 횡행했는데, 19세기 학자 사토 노부히로가 지역마다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며 대략 1/3의 가정이 7살까지 아이를 죽여댔다고 합니다. 1500년 전국시대에도 루이스 프로이스가 "일본 엄마들은 아기를 키울 형편이 안된다고 여기면 아기 목을 무릎으로 눌러 죽인다"라고 할 정도였죠. 조선에서는 여자 노비가 성추행하는 주인 얼굴을 칼로 찍어도 정당방위 무죄방면+훗날 보복당할 수도 있으니 보호차원에서 근무지 변경하라고 왕실에서 세심히 신경쓸 정도였는데 조선에서 배고파서 애를 죽였다는 건 기록으로도 없는데다가 그랬다면 연대책임으로 고을 전체가 강등당합니다.
      아무튼 2차대전 당시에도 가라유키상 비슷하게 인신매매해댔는데 이걸 까발린 이야기로 일본 여성 작가가 실제 팔려나간 일본여성 인터뷰해서 지은 "산다칸 8번 창관" 읽어보세요. 나머지는 1870년 홋카이도 침략하거나 러일전쟁 일으켜주는 대신 영국이 자꾸 파산한 일본 정부에 돈을 수혈해줬습니다. 러일전쟁만 아니었으면 일본은 끝장났고, 그전의 개혁도 사실 미국이 친미파 매국노 심어버리기도 전에 우연히 1861년 미국 남북전쟁이 일어나 남부연합이 목화 수출해서 군자금 얻지 못하도록 해상봉쇄를 하려고 모든 배를 동원해서 일본을 신경 쓸 겨를 이 없던 겁니다. 그 와중에 일본은 무진전쟁이라고 의견차이 났다고 전국에서 서로 쳐죽이는 내전을 겪어도 될 만큼 외세의 간섭에서 자유로웠던 겁니다. (1936년 226 사건 때 일본 육군 황도파 상당수가 가난해서 여동생들을 유곽에 팔아댔던 집 출신들이었습니다. 친위쿠데타 일으키려 했던 이유는 자기들은 진급도 안되고 집은 가난한데 윗대가리들은 해군을 위해 비싼 군함만 만들어대니 불만이 생겼죠)
      유럽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약소국과 달리 서구권의 소수 열강들은 아메리카에서 수백년간 대륙단위로 착취한 돈으로 동진해서 아프리카를 교역국에서 식민지로 지배하기 시작하고 나아가 인도도, 동남아도, 차례차례로 장악합니다. 프랑스도 아이티 하나만으로 본국 세수의 300%를 착취해서 대략 GDP 성장을 20배속으로 돌릴 수 있었습니다. 1900~47년 GDP성장은 0%였고 그 기간 개도국 7% 성장율로 24배 성장할 수 있던 걸 영국이 다 가져갔습니다. 이처럼 수백년 동안 여러 국가 착취한 돈으로 기술개발에 투자할 돈이 생겼고요. 산업혁명? 제국주의 선두주자 스페인이 아니라 하필 인도를 먹고, 하필 면직물에서 터진 건 우연이 아닙니다. 경쟁자를 없애고 면직물 일본은 그 최동단에 있어 소수의 서유럽 열강세력들이 미쳐 동남아 식민지들 소화시킬 쿨타임에 시간이 생겼던 겁니다.
      러시아가 러일전쟁 때 힘에 부친 건 사실 공산주의 때문인데, 일본이 파산하는 와중에도 일본 1년 세수입 0.5%나 되는 돈을 레닌, 크로포트킨, 플레하노프, 막심 고리키 등 공산주의자들에게 뿌려, 자본주의 러시아를 내부에서도 파괴하라고 지령을 내렸습니다. Japan Funded Lenin (일본이 레닌을 지원했다) 구글링 해보세요. 결국 1905년 러시아 민중봉기가 더 심해집니다.

  • @user-ff2ov2ln8r
    @user-ff2ov2ln8r 2 года назад +1

    몰랐던 역사도 알려주는 곳 👍

  • @user-iy2mq9go2s
    @user-iy2mq9go2s 3 года назад +44

    몇일전 완도 장보고기념관에서 해상왕의 일대기를 본적이 있었는데, 장성해서 중국관리가 된 후 중국에서 팔려나가는 신라동족들의 모습을 보곤 신라로 돌아와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적들을 물리쳤다고 되어있어서 왜구를 물리쳤겠거니 했었는데. 알고보니 신라구였군요. 오늘도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user-cd4fu5fg6i
      @user-cd4fu5fg6i 3 года назад +16

      저도 교과서에 해적 물리쳤다길래 왜구인줄 알았어요

    • @user-jz1ri2ep6p
      @user-jz1ri2ep6p 3 года назад +3

      전 당구가 신라인 팔아먹는 건 줄 알았는데 신라구......

    • @musiccafe8895
      @musiccafe8895 3 года назад +5

      ㄹㅇ 내가 배운 역사는 모두 거짓인거 아닐까?

    • @Supergolem12345
      @Supergolem12345 3 года назад +11

      @@user-jz1ri2ep6p 그냥 셋 다 잡았겠죠 해적이 물건 털 게 있으면 다른 나라 해적이라도 일단 손 안 잡고 배겨요?

  • @user-xv3zu8pf7l
    @user-xv3zu8pf7l 3 года назад +4

    신라도 해적이 있었다는걸 몰랐네요...새로 배워 갑니다

  • @sunnysunny-yp4fb
    @sunnysunny-yp4fb Год назад

    몰랐던 사실 알고 갑니다 넘 재밌네요 ㅎㅎ 그럼 장보고가 소탕했던 해적 중에 신라구가 있었고 나중에 장보고를 암살한 염문도 신라구 출신인 건가요??

  • @wung-suu
    @wung-suu 2 года назад +1

    해적시리즈 너무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실례가 안된다면 유명한 이슬람해적
    하이르 앗 딘도 연재해 주실수 있나요

  • @GongryongMan
    @GongryongMan 3 года назад +8

    어찌보면 삼국무역에서 해적들의 존재는 필연적이었구나 싶은 영상이네요 잘 봤습니다

    • @hotwo7021
      @hotwo7021 3 года назад +1

      어디든지 돈이 꼬이는곳은 항상 범죄집단이 꼬이는 법이죠

  • @user-jn5ip6zt4k
    @user-jn5ip6zt4k 3 года назад +6

    사실 고려 왕조부터 해적출신일 가능성이 높음. 당시 교역으로 부를 축적했던 송악 호족이 왕건 집안인데. 영상의 설명처럼 상선을 보호하려면 무장을 해야했음. 근데 당시 배경을 보면 정상적인 교역만으로는 해상세력으로 자리잡기가 어려움.
    왕건의 가계를 보면 작제건 이전의 족보가 불확실함. 그리고 혼란스럽던 신라말기에 갑자기 신흥호족 세력으로 등장. 기존의 토호세력이었으면 가계에 대한 기록이 좀 더 구체적이었을 거임. 근데 용왕과 연관하여 설화적으로 꾸며놓고 있음. 바다와 관련된 집안내력을 표현하는데. 혼란스러운 신라말기와 작제건의 생존 추정시기가 엇비슷하게 맞아떨어짐.
    즉 실질적으로 작제건 때부터 왕건의 집안이 송악에서 자리잡고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는 건데. 바다와 연관시키면 결국 해적질 말고는 세력을 키울 동력이 없음. 교역이란 것도 서로 교환할 재화가 있어야 가능함. 나중에 세력이 어느정도 커지고 자리잡은 이후에는 해적질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 @Byron_Lenon
    @Byron_Lenon Год назад +1

    재밌어😃😃😃😜

  • @1234ncwrd
    @1234ncwrd 3 года назад +46

    이분은 해적과 똥에 진심임

    • @user-rk3te2nj1q
      @user-rk3te2nj1q 3 года назад +3

      엌ㅋㅋㅋ

    • @turksaie1550
      @turksaie1550 3 года назад +15

      방구끼면서 추진력으로 항해하는 해적나오면 참 좋아하실듯

    • @퍄퍄킴
      @퍄퍄킴  3 года назад +14

      @@turksaie1550 아니 미치셨습니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

    • @turksaie1550
      @turksaie1550 3 года назад +5

      @@퍄퍄킴 네.. 미친거같애요 ㅠㅠ 댓글쓸때는 몰랐는데 이걸 뭔가로 만들면 골때리겠네요

    • @kalsukong
      @kalsukong 2 года назад +1

      @@퍄퍄킴 영화 스위스아미맨 추천이요

  • @user-ik5vx2vf4d
    @user-ik5vx2vf4d 3 года назад +11

    흥미로운 역사네요ㅋㅋ
    하긴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해적이 없는 게 더 이상하죠

  • @user-hd8wb2jx1k
    @user-hd8wb2jx1k 3 года назад +55

    비슷한 바리에이션으로 여진구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한반도눈 물론 일본, 가끔 중국 해안에도 출몰했었죠.
    (다만 소빙하기로 만주가 초토화 되면서 문명이 리셋돼, 고려말, 조선시절엔 여진은 항해기술이 실전됩니다)

    • @user-pb7gc6su6b
      @user-pb7gc6su6b 3 года назад +1

      소빙하기로 리셋된 게 아니라 정확히는 몽골제국 때문에 문명리셋된 거 아님?

    • @user-hd8wb2jx1k
      @user-hd8wb2jx1k 3 года назад +2

      @@user-pb7gc6su6b
      원나라한테 박살나고 학살당한 금나라 여진족은 중원으로 넘어가서 나라 세우고 한화된 부류인데요?
      만주에 남아서 몽골한테 복속된 후 한족과 삼한계한테 동화되지 않은 여진족이 현재까지 남아있는 만주족의 뿌리고요.
      (솔직히 이당시 소빙하기로 추정되는 기간이 1200년대 후반임, 금나라 멸망 시기랑 애매하게 겹치기도 해서 저도 했갈려요.)

    • @user-gw2zu5do2r
      @user-gw2zu5do2r 3 года назад +2

      삼국시대 읍루족도 해적질 했고 금나라도 수군 육성해서 장강을 건너랴고 했는데 기술을 전부 잃었을까요?

  • @smook3706
    @smook3706 3 года назад

    꿀잼👍

  • @user-un9gy4zv9m
    @user-un9gy4zv9m 3 года назад +2

    앗! 지난 번 왜구 영상에서 신라구 요청했었는데 해주셨군요! 흙흙 캄샤합니다!

  • @alvarosoler1522
    @alvarosoler1522 3 года назад +120

    왜구가 해적으로 유명하지만 그 전에 신라구 여진구(연예인 이름아님)이 유명했지

    • @아이신기오로누르하치
      @아이신기오로누르하치 3 года назад +12

      여진해적은 여진구 라고 불림

    • @Oxford_not_brogues
      @Oxford_not_brogues 3 года назад +1

      이 가 아니라 가 아님?

    • @jin.24.
      @jin.24. 3 года назад +11

      너무 쎈 애들만 있자너. 노진구도 나와라

    • @user-uc3oz3qk6g
      @user-uc3oz3qk6g 3 года назад +18

      @@jin.24. 노진구 뒷배가 도라에몽이라 최종보스임

    • @user-zt1jw1pn2h
      @user-zt1jw1pn2h 3 года назад +1

      도이의 변 이야기 말하는거 맞죠?

  • @hiyong8259
    @hiyong8259 3 года назад +10

    신라해적 재밋다 ! 우리나라 교과서에도 이런것은 꼭배워야한다고생각해요

  • @user-oj9yb1bm4e
    @user-oj9yb1bm4e 3 года назад +1

    신선하네요.

  • @user-hy7kl2qw2u
    @user-hy7kl2qw2u 3 года назад

    드디어!!

  • @11_Gaius_Julius_Caesar
    @11_Gaius_Julius_Caesar 3 года назад +9

    신라해적 퇴치는 사실상 고려를 세운 왕건이 다른 대책 융화책을 내놓자 자연스럽게 사라졌네요.

  • @user-bo6jk7br6n
    @user-bo6jk7br6n 2 года назад +7

    잘 봤습니다.
    역사를 보는관점에선 자기가 가지고있는 국적을 내려놓고 봐야 제대로된 디테일들이 보이는데
    그런의미에선 아직 우리나라는 멀었다고 생각듭니다.일제강점기 여파때문에 나라 전체에 만연해진 국수주의 떄문이라 생각 되는군요..
    뭐 이런건 동아시아 종특이긴하지만..

  • @user-xd1yi2jn6y
    @user-xd1yi2jn6y 3 года назад +1

    헐 이번꺼는 처음 들어봤음

  • @seekerxars4173
    @seekerxars4173 2 года назад +5

    우리 역사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어두운 면들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대마도는 예전부터 일본의 지배하 지역이었나요?
    워낙 국뽕에서 하는 얘기만 듣다보니..
    이 부분도 한번 다뤄주셨음 좋겠네요~

    • @il4033
      @il4033 2 года назад

      @김도진 조선전기때 대마도정벌후 대마주라고 경상도에 편입했던적은 있긴함

  • @user-ji8yy9rf1c
    @user-ji8yy9rf1c 3 года назад +33

    삼국시대때는 신라해적이 일본에 가고 고려시대때는 일본해적이 고려에 가고

    • @khd5031
      @khd5031 3 года назад +14

      신라구 왜구 서로 주거니 받거니 치고받음 고려때도 마찬가지일거임
      고려도 중앙집권국가라곤 해도 지방토호들의 힘이 강하던 때라
      무역하던 토호휘하의 선원들이 해적질하는거 어렵지 않았을거에요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고대엔 무역하던배의 선원들이 해적으로 돌변하는거 흔한일이었음

    • @user-uo4yf4st6l
      @user-uo4yf4st6l Год назад +1

      그사이에 여진해적도 ㅋㅋㅋ만만치 않았던것으로 ㅋㅋ

  • @user-ib8ji5lw7e
    @user-ib8ji5lw7e 3 года назад +10

    사람사는건 어차피 다 똑같고 주어진 환경이 그렇게 만든다는걸 보여주는 이야기네

  • @elvenisar
    @elvenisar 3 года назад +1

    와 그 스케치를 보고 이런 썸네일이라니... 구미님은 신인건가???

  • @diang4369
    @diang4369 3 года назад +30

    퍄퍄킴님 덕분에 세계사+한국사+지식+자랑거리(?)+퍄퍄킴님의 사랑(?)을 얻었습니다!
    감시합니다!

    • @user-sv9lh9qk5q
      @user-sv9lh9qk5q 3 года назад +3

    • @wan_dukong
      @wan_dukong 3 года назад

      감시한다구요...?

    • @diang4369
      @diang4369 3 года назад

      @@wan_dukong 엌ㅋㅋㅋㅋ

    • @gminu604
      @gminu604 3 года назад +1

      @@user-sv9lh9qk5q 그 이모티콘은 도대체 어떻게 유튜브 댓글에 사용할 수 있는 거에요? 유니코드에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 @user-dl7cx5pj2v
    @user-dl7cx5pj2v 3 года назад +19

    와 신라인이 해적질을 저렇게 했다는건 처음 들었네 ㅎㄷㄷ우리나라 역사에서는 전혀 안가르치는구나

    • @user-jp2dd9ch6p
      @user-jp2dd9ch6p Год назад +1

      ㅋㅋㅋ안가르쳐야지 무조건일본해적 왜구만 나빠야만하니까

    • @CrabTastingMan
      @CrabTastingMan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신라구처럼 "범죄조직의 도적질과 인신매매"는 세계 어느 나라나 있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허나 합법 정권들이 저러는 건 차원이 다릅니다, 그건 침략이죠. 신라에서도 도적 토벌하듯 해적 토벌하려고 했죠. 고려/조선 때도, 중국도, 왜구 문제 갖고 일본 정부보고 단속 좀 하라고 요구했지 책임지우진 않았습니다. 야마구치구미가 한국에서 범죄일으키면 그게 일본 탓이 아니죠. 규모는 무시하고, 한국도 멕시코도 살인이 일어나니까 두 나라의 치안의 동급이라고 하는 건 페미나 할 소리입니다. 도적? 어느 나라나 있었습니다. 근데 유럽에서도 왜 바이킹이 제일 악명 높을까요? 규모로서 차원이 달라 그렇고, 왜구도 그렇습니다. 수천명 단위로 침략해오는 건 상식을 한참 넘은 거고 바이킹도 그 때문에 악명을 날린 겁니다. 영상에서도 신라구 최대규모는 500명이라고 했잖아요? 1555년 을묘왜변 7000명은 상식을 한참 넘었습니다.
      메이지유신 45년간만해도 일본이 팔아먹은 자국 여성 (가라유끼상)들은 50만명이 됩니다. 그중 상당수가 수백년 전통대로 규슈에서 팔려나갔고요. 빠른 개혁을 위한 돈이 다 어디서 나왔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도 팔아대서 싱가포르에 "일본인의 묘지"만 따로 만들어진 겁니다. 1500년대 세계 곳곳에 범죄자도 아닌 공식 합법 정권인 사무라이출신 다이묘들이 조총 산다고, 서아프리카 왕국들처럼 자국민을 엄청나게 노예로 팔았습니다. 네덜란드 동화 "오니 이야기"는 일본인 노예를 희화화한 이야기인데 아니뗀 굴뚝에 연기가 나겠습니까?
      1500년대 임란 전에 4명의 소년이 천주교로 개종해서 포르투갈 선교사 따라 로마에 가는데, 이걸 덴쇼 소년사절단 (Tensho Embassy)라고 합니다. 그런데 소년들 하는 말이 동남아와 인도에 들렀다가 동, 서 아프리카 항만도 들르는데, 가는 항구마다 일본인 노예를 흑인 노예들 사이에서 힘들게 사는 걸 봤다고 합니다. 일본인을 반출해 나가 타국에 팔아 차익을 챙기는 포르투갈 노예상보다, 애초에 자국민을 이렇게 "가축보다 싸게" 팔아치우는 일본인들의 죄가 원흉이다라고 의논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일본 인터넷에 버젓이 올라와있는 규슈어동좌기 pdf 받아보시면 거의 끝에 외국으로 팔려나가는 일본인들은 지옥에 끌려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서술해놓았습니다. 지방 다이묘들 약화시킨다고 히데요시는 1587년에 허가 없이 천주교 개종 금지, 남만인 따라 소/말고기 먹는 거 금지(일본은 675~1872년 육식금지령 있었음), 중국/남만/조선에 노예 파는 거 금지라고 괜히 그랬겠습니까? 그런데 어차피 1800년대 후반 마리아 루스 사건 때도 "노예제 없다고? ㅈㄹ하네 유곽의 유녀들은 노예 아니면 뭐냐?"라고 했죠. 옛날 중국 백과 "삼재도회" 일본판인 화한삼재도회 7권에서 奴僕(노복)을 (+여성 노비 婢(비)를) 소개 하는데, 일본의 노비입니다. 조선통신사 그림의 통신사의 가마꾼들 + 조선임금의 칙서를 따로 소중히 모셔 가마에 실었던 가마꾼들도 바지 안입고 있죠? 그 사람들입니다.
      하기사 맨날 전쟁한다고 서로서로 더 잘 죽여서 일본 제패하겠다고 조총과 화약을 상대방보다 최대한 많이 최대한 빠르게 사려던 게 사무라이들이었죠. 그래서 세금도 조선의 몇배나 되게 가혹하고 징수하고 (조선의 공식 세율은 10% 내외인데, 이렇게 적게 거두다 보니 봉급을 주거나 내부 감시망을 못 만들어 탐관오리들이 잡세를 만들어 착취합니다. 그런 거 감안해도 실질세율이 유럽 평균과 동일하게 25%. 일본은 60~90%. 싱가포르 이전의 동아시아의 싱가포르였던 무역왕국 오키나와의 류큐왕국은 일본이 1609년에 침략하기 전까진 그러지 않았는데 일본이 90% 세율 만드니까 임산부를 벼랑에서 떨어뜨리고 아기도 돌로 죽이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그래놓고 "이런 죄악이 성행한 건 오키나와가 미개한 탓이다"라고 책임을 떠넘깁니다. 가라데가 오키나와에서 만들어진 이유도, 반항 못하게 창칼을 훔쳐간 뒤 어쩔 수 없이 멧돌 손잡이를 통파로서, 도리깨를 쌍절곤으로서 등등 농기구를 무기화로 쓰는 방편을 훈련한 겁니다.)
      조총만 사고 화포는 개발할 엄두도 못내니까, 1592년 임진왜란 때 조총을 아득히 뛰어넘는 화력과 사거리를 가진 화포에 호되게 당해 화포쇼크를 먹습니다. 개전 1년 만에 1/3내지 1/2 병력이 날아갔다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보고서도 올립니다. 1609년에 처음 개발착수하고 1614년 오사카 성 전투에서 처음으로 일본제 화포가 실전을 치루죠. 그전에는 소수 수입한 걸 운용하는 선에서 그치고.

    • @CrabTastingMan
      @CrabTastingMan 8 месяцев назад

      그리고 규모도 다릅니다. 한명 죽이는 것과 10명이 동급이면 페미 말하는 것처럼 멕시코도 한국도 사람은 죽기야 죽으니 치안은 동급일까요? 도적? 어느 나라나 있습니다. 근데 유럽에서도 왜 바이킹이 제일 악명 높을까요? 규모로서 차원이 달라 그렇고, 왜구도 그렇습니다. 1400년대 중국 동남해안까지 왜구 문제가 심각해지니, 명 조정에서 언제 일본정벌 한번 가야하는 거 아니냐라고 조선에 연락했을 때 오히려 조선이 말려, 일단 대마도만 정리하면 어느 정도 없앨 수 있다고 솔선수범해서 명나라 일본 정벌 의지를 무마시킨 게 대마도 정벌 이유 중의 하나 였죠. 그 때 얼마나 심각했냐면 왜구들이 중국 남쪽에 상륙해 중국인들 공방에 노예로서 가둬놓고 물건 만들게 할 정도였습니다. 북로남왜 시기라 북쪽 유목 민족들 견제하느라 신경쓸 틈이 적었던 면이 큽니다 (조선도 최전방이 여진족 상대하는 북쪽이었고 남쪽은 최후방이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일본애들이 서로 조공하겠다고 죽여대느라 골치아프다고 한 적이 있는데, 얘넨 중국 가서도 1521년 영파의 난을 일으킵니다. 국내외적으로 백제 후손이라고 수백년 동안 자처하던 오우치 가문과 호소카와 가문이 영파에서, 오우치 쪽이 먼저 왔는데 호소카와 쪽이 조공 순서 바꾸려고 중국 관리에게 뇌물 쓰다가, 오우치 쪽이 화가나서 명나라 중국인 백성들과 관리도 학살하고 호소카와 측도 죽이고 배를 태워버리고 약탈 실컷한 뒤 튀었죠. 신의를 져버려 조공(감합)무역이 깨지니 왜구가 다시 기승을 부립니다.
      영상에서 신라구 최대 30척, 500명이라고 한 건, 왜구들 스케일로는 일반 규모고, 최대 7000명 씩 온 적도 있습니다. 최무선의 화약개발로 화약이 없는 왜구들을 대거 소탕했죠? 그걸 알고 나중에 중국 해적 왕직을 두목으로 모셔 화약을 알려달라고 빕니다. 왕직의 다국적 해적단 중에서 포르투갈 배에서 조총을 갖다 주게 됩니다. 뭐 개발 착수야 하지만 최대한 빠르게 최대한 많이 구해서 얼른 일본의 1인자 자리 먹으려고 하니까 수입도 많이 해서, 다이묘들이 너도나도 자국민을 팔아제낍니다. 마이클 호프먼 찾아보세요.
      일본은 전국시대부터 해외에 일본인을 성노예든 노동력으로던 많이 팔았습니다. 다테 마사무네와 우에스기 겐신은 당대 제일가는 노예상 사무라이/다이묘였죠. (PORTUGUESE COLONIALISM AND JAPANESE SLAVES, by Michio Kitahara. Kadensha, 2013 참조) 그리고 전국시대 땐 전쟁하느라, 에도시대 땐 지방 영주들이 사병 모아 또 전쟁 할까봐 가혹하게 세금을 착취하죠. (에도시대 에도의 번영은 북한에서 평양만 그럭저럭 잘 사는 거와 같은 이치입니다. 속지마세요. 그게 아니면 하기 도자기, 이삼평의 아리타 도자기, 심수관의 사쓰마 도자기처럼 전부 조선인이 세운 자기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거나.) 민본주의 조선에서는 작은 정부를 지향해 명목상 세율이 10%내외에 실질로 25%라 해도, 일본에서는 60~80%였고 1609년 임진왜란의 패전을 만회하려고 정벌한 국제 무역의 허브였던 (싱가포르 이전의 싱가포르) 오키나와에서 90% 거둬가서 백성들은 임산부를 절벽에서 밀어버리고 아기는 돌로 눌러죽이기 시작하는데, 일본은 이들의 악행으로 치부하지만 일본의 착취 이전엔 없었던 사실을 숨기죠. 일본 본토에서도 입하나 덜자고 마비키라는 영아살해가 횡행했는데, 19세기 학자 사토 노부히로가 지역마다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며 대략 1/3의 가정이 7살까지 아이를 죽여댔다고 합니다. 1500년 전국시대에도 루이스 프로이스가 "일본 엄마들은 아기를 키울 형편이 안된다고 여기면 아기 목을 무릎으로 눌러 죽인다"라고 할 정도였죠. 조선에서는 여자 노비가 성추행하는 주인 얼굴을 칼로 찍어도 정당방위 무죄방면+훗날 보복당할 수도 있으니 보호차원에서 근무지 변경하라고 왕실에서 세심히 신경쓸 정도였는데 조선에서 배고파서 애를 죽였다는 건 기록으로도 없는데다가 그랬다면 연대책임으로 고을 전체가 강등당합니다.
      아무튼 2차대전 당시에도 가라유키상 비슷하게 인신매매해댔는데 이걸 까발린 이야기로 일본 여성 작가가 실제 팔려나간 일본여성 인터뷰해서 지은 "산다칸 8번 창관" 읽어보세요. 나머지는 1870년 홋카이도 침략하거나 러일전쟁 일으켜주는 대신 영국이 자꾸 파산한 일본 정부에 돈을 수혈해줬습니다. 러일전쟁만 아니었으면 일본은 끝장났고, 그전의 개혁도 사실 미국이 친미파 매국노 심어버리기도 전에 우연히 1861년 미국 남북전쟁이 일어나 남부연합이 목화 수출해서 군자금 얻지 못하도록 해상봉쇄를 하려고 모든 배를 동원해서 일본을 신경 쓸 겨를 이 없던 겁니다. 그 와중에 일본은 무진전쟁이라고 의견차이 났다고 전국에서 서로 쳐죽이는 내전을 겪어도 될 만큼 외세의 간섭에서 자유로웠던 겁니다. (1936년 226 사건 때 일본 육군 황도파 상당수가 가난해서 여동생들을 유곽에 팔아댔던 집 출신들이었습니다. 친위쿠데타 일으키려 했던 이유는 자기들은 진급도 안되고 집은 가난한데 윗대가리들은 해군을 위해 비싼 군함만 만들어대니 불만이 생겼죠)
      유럽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약소국과 달리 서구권의 소수 열강들은 아메리카에서 수백년간 대륙단위로 착취한 돈으로 동진해서 아프리카를 교역국에서 식민지로 지배하기 시작하고 나아가 인도도, 동남아도, 차례차례로 장악합니다. 프랑스도 아이티 하나만으로 본국 세수의 300%를 착취해서 대략 GDP 성장을 20배속으로 돌릴 수 있었습니다. 1900~47년 GDP성장은 0%였고 그 기간 개도국 7% 성장율로 24배 성장할 수 있던 걸 영국이 다 가져갔습니다. 이처럼 수백년 동안 여러 국가 착취한 돈으로 기술개발에 투자할 돈이 생겼고요. 산업혁명? 제국주의 선두주자 스페인이 아니라 하필 인도를 먹고, 하필 면직물에서 터진 건 우연이 아닙니다. 경쟁자를 없애고 면직물 일본은 그 최동단에 있어 소수의 서유럽 열강세력들이 미쳐 동남아 식민지들 소화시킬 쿨타임에 시간이 생겼던 겁니다.
      러시아가 러일전쟁 때 힘에 부친 건 사실 공산주의 때문인데, 일본이 파산하는 와중에도 일본 1년 세수입 0.5%나 되는 돈을 레닌, 크로포트킨, 플레하노프, 막심 고리키 등 공산주의자들에게 뿌려, 자본주의 러시아를 내부에서도 파괴하라고 지령을 내렸습니다. Japan Funded Lenin (일본이 레닌을 지원했다) 구글링 해보세요. 결국 1905년 러시아 민중봉기가 더 심해집니다.

  • @Dictator_Lary
    @Dictator_Lary 3 года назад +24

    ???: 이렇게 된 이상 천황으로 간다!
    ???: 오케이!

  • @somethingweirdo8518
    @somethingweirdo8518 3 года назад +2

    썸네일을 대체 몇번을 바꾸는거예요?? 3번은 바꾼것같은데

  • @TV-sp1uz
    @TV-sp1uz 3 года назад +1

    왜구만 알았지 신라 해적이 있었다는건 처음듣네요 감사합니다

  • @태움
    @태움 3 года назад +8

    2:53 마치.. 골드로저와 레일리를 보는듯하군 🤣🤣

  • @user-nc3dk6ks6f
    @user-nc3dk6ks6f 3 года назад +3

    영상에서 나온 800년대 이때는 소빙하기랑 겹치고 전지구적으로 기후가 변덕스럽던 시절입니다 흔히 유럽에선 암흑기라 불리는 시절이죠

  • @user-xj5vv9ep7z
    @user-xj5vv9ep7z 2 года назад

    고꾸리에 대해서도 다뤄주세요

  • @user-wu9zo4cl3d
    @user-wu9zo4cl3d 3 года назад +29

    해적은 나라가 혼란할 때 나타난다
    신라구가 그랬고 왜구가 그랬고 소말리아가 그랬다

    • @user-lp1zb8tv3n
      @user-lp1zb8tv3n 3 года назад +7

      대항해시대의 유럽 해적은 예외

  • @user-ze3kx6xc7e
    @user-ze3kx6xc7e 2 года назад +3

    경남대학교 사학과 김성윤강사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참고문헌은 어디에서 보셨나요

    • @backdo2
      @backdo2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일본서기에 정확히 기록되있습니다 올바르게 가르쳐주셔야합니다. 신라구가 일본 열도 약탈한적있었다. 자랑스러운역사가아닌 부끄러운역사도 가르쳐주어야합니다

  • @durusamdasu
    @durusamdasu 3 года назад +12

    와.. 장보고가 떄려잡던 해적이 일본해적이 아니라 신라해적이었어ㅋㅋㅋ 처음 알았네요

    • @jinyoungan4830
      @jinyoungan4830 3 года назад +3

      신라구라고 전부 한국인은 아니고 가령 894년 대규모 침공 때 보면 중국인도 섞여있긴 했습니다. 나중에 왜구도 일본 위주긴 했지만 한중 어느정도는 섞여 있었고

    • @user-wu4nd3xd5z
      @user-wu4nd3xd5z 2 года назад

      명작 드라마 해신만 봐도 나옴

    • @rainmaker9725
      @rainmaker9725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왜구나 중국해적도 일본인이나 중국인만으로 이뤄지지 않았음. 신라구 왜구 중국해적 모두 지금의 민족관점에서 주류 발생지 정도로 볼 수 있지만 그 구성은 다양하기도 했음

  • @user-gw2zu5do2r
    @user-gw2zu5do2r 3 года назад +1

    바이킹 활동 초기와 시간적으로 겹치는군요. 바이킹으로 유명한 북유럽인들도 17세기에 바르바리 해적한테 털린 것과 신라구로 일본에 공포를 안긴 한국이 고려시대에 왜구한테 털린 것이 묘하게 비슷하네요. 근데 마지막에 일본을 일본 해적이 털었다는 말씀인가요?

  • @gou7304
    @gou7304 2 года назад +21

    급식 시절 국사 쌤한테 우리나라는 왜 약탈 같은 거 안했냐고 물어봤을 때 우리 민족은 성품이 온순해서 삼국시대 고구려 정도를 제외하면 다른 나라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라고 대답하셨는데ㅋㅋ 그땐 좀 이상해도 시험이랑 전혀 상관없는 질문이고 공부할 것도 많아서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지만 이런 역사도 있었네

    • @armudi5947
      @armudi5947 2 года назад +18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해서 ~ 같은 민족주의적 발언은 삼가야 함 특히 교탁에서
      툭하면 여진족 쳐들어가서 살인 방화 약탈한 나라가 조선임
      그런데 역사 교과서에는 4군6진 (땅을 넓혔다) 이렇게만 배우니 자세한 건 모르지

    • @user-ki5od9ec4s
      @user-ki5od9ec4s 2 года назад +2

      여진족 주기별로 쳐들어가 다죽이고 몇년후 좀컸다싶으면 다시 가서 주민들 싹죽이고. 이게 조선시대 북방정책이었음. 이정도로 악독하게 다른민족 괴롭힌사례는 찾기힘들정도.

    • @sunnysunny-yp4fb
      @sunnysunny-yp4fb Год назад +3

      맞습니다 고딩 땐 윤관의 여진 정벌, 동북 9성 이정도로 배우고 넘어갔는데 자세히 알아보니 민간인 학살이더군요 여진족 민간인 마을 습격해서 여자 노인할 거 없이 다 죽었다고 ㄷㄷ

    • @SovietPikachu1945
      @SovietPikachu1945 Год назад

      원래 옛날 전쟁이 현지보급이고 군대가 도망갔으면 산에서 내려올 때 까지 기다리거나 안 내려오면 초토화 시켜서 다시는 번경지역 노략질 못하게 조치를 취하는 겁니다.

    • @SovietPikachu1945
      @SovietPikachu1945 Год назад +4

      성군으로 알려진 세종대왕 조차도 조선파 여진족 족장이 죽자 하늘이 내린 기회라며 싹다 조싸버리셨는데.
      세종도 개인적으로 안된 일이지만 국가의 일은 다르게 처리한다고 인정사정 뵈주지 않은 분임.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은 진즉에 다 멸망했음 ㅋㅋ 당시 복지가 있어 머 있어 흉년이 들면 옆 나라 약탈하는게 유목민인데 평화를 사랑한다고 안쳐들어오나

  • @999masijjyeong
    @999masijjyeong 3 года назад +3

    유럽과 별다를 것 없이 동아시아도 해적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시기가 꽤나 존재했죠 ㅋㅋ 한반도와 중원에서는 이들을 퇴치대상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잡아들였지만 일본은 봉건제의 영향인지 오스만 튀르크가 알제리 해적과 맺은 관계와 비슷하게 흡수하여 정착을 시킨점도 재밌는 점이라고 봅니다

  • @user-zh4tt7vs6v
    @user-zh4tt7vs6v 3 года назад +8

    그러고보니 과거 지하철무료신문이
    있던시절 어느무료신문에 이현세 작가분이 연재한만화에서 지금의 울릉도를 거점으로 해적질을 하던
    신라인이야기를 봤던게 생각남

    • @CrabTastingMan
      @CrabTastingMan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신라구처럼 "범죄조직의 도적질과 인신매매"는 세계 어느 나라나 있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허나 합법 정권들이 저러는 건 차원이 다릅니다. 신라에서도 토벌하려고 했죠. 고려/조선 때도, 중국도, 왜구 문제 갖고 일본 정부보고 단속 좀 하라고 요구했지 책임지우진 않았습니다. 야마구치구미가 한국에서 범죄일으키면 그게 일본 탓이 아니죠. 규모는 무시하고, 한국도 멕시코도 살인이 일어나니까 두 나라의 치안의 동급이라고 하는 건 페미나 할 소리입니다. 도적? 어느 나라나 있었습니다. 근데 유럽에서도 왜 바이킹이 제일 악명 높을까요? 규모로서 차원이 달라 그렇고, 왜구도 그렇습니다. 수천명 단위로 침략해오는 건 상식을 한참 넘은 거고 바이킹도 그 때문에 악명을 날린 겁니다. 영상에서도 신라구 최대규모는 500명이라고 했잖아요? 1555년 을묘왜변 7000명은 상식을 한참 넘었습니다.
      메이지유신 45년간만해도 일본이 팔아먹은 자국 여성 (가라유끼상)들은 50만명이 됩니다. 그중 상당수가 수백년 전통대로 규슈에서 팔려나갔고요. 빠른 개혁을 위한 돈이 다 어디서 나왔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도 팔아대서 싱가포르에 "일본인의 묘지"만 따로 만들어진 겁니다. 1500년대 세계 곳곳에 범죄자도 아닌 공식 합법 정권인 사무라이출신 다이묘들이 조총 산다고, 서아프리카 왕국들처럼 자국민을 엄청나게 노예로 팔았습니다. 네덜란드 동화 "오니 이야기"는 일본인 노예를 희화화한 이야기인데 아니뗀 굴뚝에 연기가 나겠습니까?
      1500년대 임란 전에 4명의 소년이 천주교로 개종해서 포르투갈 선교사 따라 로마에 가는데, 이걸 덴쇼 소년사절단 (Tensho Embassy)라고 합니다. 그런데 소년들 하는 말이 동남아와 인도에 들렀다가 동, 서 아프리카 항만도 들르는데, 가는 항구마다 일본인 노예를 흑인 노예들 사이에서 힘들게 사는 걸 봤다고 합니다. 일본인을 반출해 나가 타국에 팔아 차익을 챙기는 포르투갈 노예상보다, 애초에 자국민을 이렇게 "가축보다 싸게" 팔아치우는 일본인들의 죄가 원흉이다라고 의논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일본 인터넷에 버젓이 올라와있는 규슈어동좌기 pdf 받아보시면 거의 끝에 외국으로 팔려나가는 일본인들은 지옥에 끌려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서술해놓았습니다. 지방 다이묘들 약화시킨다고 히데요시는 1587년에 허가 없이 천주교 개종 금지, 남만인 따라 소/말고기 먹는 거 금지(일본은 675~1872년 육식금지령 있었음), 중국/남만/조선에 노예 파는 거 금지라고 괜히 그랬겠습니까? 그런데 어차피 1800년대 후반 마리아 루스 사건 때도 "노예제 없다고? ㅈㄹ하네 유곽의 유녀들은 노예 아니면 뭐냐?"라고 했죠. 옛날 중국 백과 "삼재도회" 일본판인 화한삼재도회 7권에서 奴僕(노복)을 (+여성 노비 婢(비)를) 소개 하는데, 일본의 노비입니다. 조선통신사 그림의 통신사의 가마꾼들 + 조선임금의 칙서를 따로 소중히 모셔 가마에 실었던 가마꾼들도 바지 안입고 있죠? 그 사람들입니다.
      하기사 맨날 전쟁한다고 서로서로 더 잘 죽여서 일본 제패하겠다고 조총과 화약을 상대방보다 최대한 많이 최대한 빠르게 사려던 게 사무라이들이었죠. 그래서 세금도 조선의 몇배나 되게 가혹하고 징수하고 (조선의 공식 세율은 10% 내외인데, 이렇게 적게 거두다 보니 봉급을 주거나 내부 감시망을 못 만들어 탐관오리들이 잡세를 만들어 착취합니다. 그런 거 감안해도 실질세율이 유럽 평균과 동일하게 25%. 일본은 60~90%. 싱가포르 이전의 동아시아의 싱가포르였던 무역왕국 오키나와의 류큐왕국은 일본이 1609년에 침략하기 전까진 그러지 않았는데 일본이 90% 세율 만드니까 임산부를 벼랑에서 떨어뜨리고 아기도 돌로 죽이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그래놓고 "이런 죄악이 성행한 건 오키나와가 미개한 탓이다"라고 책임을 떠넘깁니다. 가라데가 오키나와에서 만들어진 이유도, 반항 못하게 창칼을 훔쳐간 뒤 어쩔 수 없이 멧돌 손잡이를 통파로서, 도리깨를 쌍절곤으로서 등등 농기구를 무기화로 쓰는 방편을 훈련한 겁니다.)
      조총만 사고 화포는 개발할 엄두도 못내니까, 1592년 임진왜란 때 조총을 아득히 뛰어넘는 화력과 사거리를 가진 화포에 호되게 당해 화포쇼크를 먹습니다. 개전 1년 만에 1/3내지 1/2 병력이 날아갔다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보고서도 올립니다. 1609년에 처음 개발착수하고 1614년 오사카 성 전투에서 처음으로 일본제 화포가 실전을 치루죠. 그전에는 소수 수입한 걸 운용하는 선에서 그치고.

  • @COMUSE
    @COMUSE 2 года назад +2

    우리역사에도 해적이 있었다니 흥미롭네요

  • @bibibibi6288
    @bibibibi6288 3 года назад +1

    고양이너무귀엽습니다...

  • @kariiko1782
    @kariiko1782 3 года назад +29

    신라구의 대표적인 인물이 수달이라 알려진 능창이죠 나중에 후백제의 장수가 되는....

    • @squidward_tentacles92
      @squidward_tentacles92 3 года назад +3

      수달이가 주거써!!

    • @user-kn9zd5bi6t
      @user-kn9zd5bi6t 3 года назад

      아... ㄷㄷㄷ

    • @terrybossman3697
      @terrybossman3697 3 года назад

      오너라 이놈들아!!난 수달이니라~~~!!

    • @Tradesoul2025
      @Tradesoul2025 3 года назад +6

      신라구의 주요 세력들이 후백제 영향권에 있었고 그 당시 일본 조정이 그걸 잘 알고 있었다는 추정도 있더군요. 일본이 후백제에 외교적으로 싸늘하게 반응했던 이유 중에 하나일 수도 있겠죠. 나중에 신라구가 줄어든 것도 고려와의 전쟁 때문에 후백제가 군사력을 해외에 투사할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좀 있죠.

    • @sonhuengmin1
      @sonhuengmin1 3 года назад

      수달은 강이 주무대 아님?
      바다도 있음?

  • @taehyeon901
    @taehyeon901 3 года назад +6

    소말리아도 안정화 된다면 해적들이 사라질까요?

  • @user-oc6hp8ew4r
    @user-oc6hp8ew4r 3 года назад +2

    드디어 해적이다~~

  • @Curse_of_Leo
    @Curse_of_Leo 3 года назад +2

    와! 신라구! 능창!

  • @BladerSoul9375
    @BladerSoul9375 3 года назад +8

    이 때부터가 해상왕 장보고의 일대기가 시작됩니다

  • @tigerstones9895
    @tigerstones9895 3 года назад +6

    왜구만 욕할게 아니었군요... 신라구의 존재는 몰랐었네요.

  • @user-je3wm7jf7n
    @user-je3wm7jf7n 2 года назад

    퍄퍄킴 영상은 항상 고냥이들이 나와서 좋음... 극악무도한해적이 고양이야 ㅋㅋㅋ

  • @bictorlym5150
    @bictorlym5150 3 года назад

    오오옷 신라구 얘기했었는데 올려주셔서 ㄱㅅ합니다

  • @sowhat5743
    @sowhat5743 3 года назад +24

    우리는 항상 착한사람 피해만 받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 이런 프레임 짜놓으니 신라해적에 대해 교과서에도 없었고 최근에야 들어본거지
    역사란...

    • @TAHONG7
      @TAHONG7 2 года назад +1

      6.25때는 국방부에서 한국 위안부를 만들어
      북측 여자나 남측 여자를 빨갱이 몰이해서
      위안부로 만들었죠. 직업여성도 있었고, 한명당 6.15명을 상대하게 해서 실적이라고 올리기까지 했지만....전쟁이 끝난 1953년 이후로 침묵중..

    • @Ycmjg37143
      @Ycmjg37143 Год назад

      그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식민사관에 반대한다고 만들어진 민족주의 사관을 그대로 써서 벌어진 일이에요.
      그러다보니 초중고 교과서의 입장과 현재 역사학계의 입장이 상당히 다르다고 해요.
      왜냐하면 현재는 민족주의 사관을 안 쓰고도 일제가 주장한 식민사관을 반박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깐요.
      그런데 시험이라는게 교과서대로 하라고 하다보니 그런 어이없는 사례가 벌어지는거죠.
      진짜 현대 역사학계의 입장을 가르치는 것은 고려대를 제외한 대학들이라고 해요.
      고려대는 기존의 민족주의 사관을 여전히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 @CrabTastingMan
      @CrabTastingMan 8 месяцев назад

      뭔 개소리죠? 자격지심에 찌들은 유교정신이란 ㅉㅉ 신라구처럼 "범죄조직의 도적질과 인신매매"는 세계 어느 나라나 있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허나 합법 정권들이 저러는 건 차원이 다릅니다. 신라에서도 토벌하려고 했죠. 고려/조선 때도, 중국도, 왜구 문제 갖고 일본 정부보고 단속 좀 하라고 요구했지 책임지우진 않았습니다. 야마구치구미가 한국에서 범죄일으키면 그게 일본 탓이 아니죠. 규모는 무시하고, 한국도 멕시코도 살인이 일어나니까 두 나라의 치안의 동급이라고 하는 건 페미나 할 소리입니다. 도적? 어느 나라나 있었습니다. 근데 유럽에서도 왜 바이킹이 제일 악명 높을까요? 규모로서 차원이 달라 그렇고, 왜구도 그렇습니다. 수천명 단위로 침략해오는 건 상식을 한참 넘은 거고 바이킹도 그 때문에 악명을 날린 겁니다. 영상에서도 신라구 최대규모는 500명이라고 했잖아요? 1555년 을묘왜변 7000명은 상식을 한참 넘었습니다.
      메이지유신 45년간만해도 일본이 팔아먹은 자국 여성 (가라유끼상)들은 50만명이 됩니다. 그중 상당수가 수백년 전통대로 규슈에서 팔려나갔고요. 빠른 개혁을 위한 돈이 다 어디서 나왔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도 팔아대서 싱가포르에 "일본인의 묘지"만 따로 만들어진 겁니다. 1500년대 세계 곳곳에 범죄자도 아닌 공식 합법 정권인 사무라이출신 다이묘들이 조총 산다고, 서아프리카 왕국들처럼 자국민을 엄청나게 노예로 팔았습니다. 네덜란드 동화 "오니 이야기"는 일본인 노예를 희화화한 이야기인데 아니뗀 굴뚝에 연기가 나겠습니까?
      1500년대 임란 전에 4명의 소년이 천주교로 개종해서 포르투갈 선교사 따라 로마에 가는데, 이걸 덴쇼 소년사절단 (Tensho Embassy)라고 합니다. 그런데 소년들 하는 말이 동남아와 인도에 들렀다가 동, 서 아프리카 항만도 들르는데, 가는 항구마다 일본인 노예를 흑인 노예들 사이에서 힘들게 사는 걸 봤다고 합니다. 일본인을 반출해 나가 타국에 팔아 차익을 챙기는 포르투갈 노예상보다, 애초에 자국민을 이렇게 "가축보다 싸게" 팔아치우는 일본인들의 죄가 원흉이다라고 의논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일본 인터넷에 버젓이 올라와있는 규슈어동좌기 pdf 받아보시면 거의 끝에 외국으로 팔려나가는 일본인들은 지옥에 끌려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서술해놓았습니다. 지방 다이묘들 약화시킨다고 히데요시는 1587년에 허가 없이 천주교 개종 금지, 남만인 따라 소/말고기 먹는 거 금지(일본은 675~1872년 육식금지령 있었음), 중국/남만/조선에 노예 파는 거 금지라고 괜히 그랬겠습니까? 그런데 어차피 1800년대 후반 마리아 루스 사건 때도 "노예제 없다고? ㅈㄹ하네 유곽의 유녀들은 노예 아니면 뭐냐?"라고 했죠. 옛날 중국 백과 "삼재도회" 일본판인 화한삼재도회 7권에서 奴僕(노복)을 (+여성 노비 婢(비)를) 소개 하는데, 일본의 노비입니다. 조선통신사 그림의 통신사의 가마꾼들 + 조선임금의 칙서를 따로 소중히 모셔 가마에 실었던 가마꾼들도 바지 안입고 있죠? 그 사람들입니다.
      하기사 맨날 전쟁한다고 서로서로 더 잘 죽여서 일본 제패하겠다고 조총과 화약을 상대방보다 최대한 많이 최대한 빠르게 사려던 게 사무라이들이었죠. 그래서 세금도 조선의 몇배나 되게 가혹하고 징수하고 (조선의 공식 세율은 10% 내외인데, 이렇게 적게 거두다 보니 봉급을 주거나 내부 감시망을 못 만들어 탐관오리들이 잡세를 만들어 착취합니다. 그런 거 감안해도 실질세율이 유럽 평균과 동일하게 25%. 일본은 60~90%. 싱가포르 이전의 동아시아의 싱가포르였던 무역왕국 오키나와의 류큐왕국은 일본이 1609년에 침략하기 전까진 그러지 않았는데 일본이 90% 세율 만드니까 임산부를 벼랑에서 떨어뜨리고 아기도 돌로 죽이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그래놓고 "이런 죄악이 성행한 건 오키나와가 미개한 탓이다"라고 책임을 떠넘깁니다. 가라데가 오키나와에서 만들어진 이유도, 반항 못하게 창칼을 훔쳐간 뒤 어쩔 수 없이 멧돌 손잡이를 통파로서, 도리깨를 쌍절곤으로서 등등 농기구를 무기화로 쓰는 방편을 훈련한 겁니다.)
      조총만 사고 화포는 개발할 엄두도 못내니까, 1592년 임진왜란 때 조총을 아득히 뛰어넘는 화력과 사거리를 가진 화포에 호되게 당해 화포쇼크를 먹습니다. 개전 1년 만에 1/3내지 1/2 병력이 날아갔다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보고서도 올립니다. 1609년에 처음 개발착수하고 1614년 오사카 성 전투에서 처음으로 일본제 화포가 실전을 치루죠. 그전에는 소수 수입한 걸 운용하는 선에서 그치고.

    • @CrabTastingMan
      @CrabTastingMan 8 месяцев назад

      그리고 규모도 다릅니다. 한명 죽이는 것과 10명이 동급이면 페미 말하는 것처럼 멕시코도 한국도 사람은 죽기야 죽으니 치안은 동급일까요? 도적? 어느 나라나 있습니다. 근데 유럽에서도 왜 바이킹이 제일 악명 높을까요? 규모로서 차원이 달라 그렇고, 왜구도 그렇습니다. 1400년대 중국 동남해안까지 왜구 문제가 심각해지니, 명 조정에서 언제 일본정벌 한번 가야하는 거 아니냐라고 조선에 연락했을 때 오히려 조선이 말려, 일단 대마도만 정리하면 어느 정도 없앨 수 있다고 솔선수범해서 명나라 일본 정벌 의지를 무마시킨 게 대마도 정벌 이유 중의 하나 였죠. 그 때 얼마나 심각했냐면 왜구들이 중국 남쪽에 상륙해 중국인들 공방에 노예로서 가둬놓고 물건 만들게 할 정도였습니다. 북로남왜 시기라 북쪽 유목 민족들 견제하느라 신경쓸 틈이 적었던 면이 큽니다 (조선도 최전방이 여진족 상대하는 북쪽이었고 남쪽은 최후방이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일본애들이 서로 조공하겠다고 죽여대느라 골치아프다고 한 적이 있는데, 얘넨 중국 가서도 1521년 영파의 난을 일으킵니다. 국내외적으로 백제 후손이라고 수백년 동안 자처하던 오우치 가문과 호소카와 가문이 영파에서, 오우치 쪽이 먼저 왔는데 호소카와 쪽이 조공 순서 바꾸려고 중국 관리에게 뇌물 쓰다가, 오우치 쪽이 화가나서 명나라 중국인 백성들과 관리도 학살하고 호소카와 측도 죽이고 배를 태워버리고 약탈 실컷한 뒤 튀었죠. 신의를 져버려 조공(감합)무역이 깨지니 왜구가 다시 기승을 부립니다.
      영상에서 신라구 최대 30척, 500명이라고 한 건, 왜구들 스케일로는 일반 규모고, 최대 7000명 씩 온 적도 있습니다. 최무선의 화약개발로 화약이 없는 왜구들을 대거 소탕했죠? 그걸 알고 나중에 중국 해적 왕직을 두목으로 모셔 화약을 알려달라고 빕니다. 왕직의 다국적 해적단 중에서 포르투갈 배에서 조총을 갖다 주게 됩니다. 뭐 개발 착수야 하지만 최대한 빠르게 최대한 많이 구해서 얼른 일본의 1인자 자리 먹으려고 하니까 수입도 많이 해서, 다이묘들이 너도나도 자국민을 팔아제낍니다. 마이클 호프먼 찾아보세요.
      일본은 전국시대부터 해외에 일본인을 성노예든 노동력으로던 많이 팔았습니다. 다테 마사무네와 우에스기 겐신은 당대 제일가는 노예상 사무라이/다이묘였죠. (PORTUGUESE COLONIALISM AND JAPANESE SLAVES, by Michio Kitahara. Kadensha, 2013 참조) 그리고 전국시대 땐 전쟁하느라, 에도시대 땐 지방 영주들이 사병 모아 또 전쟁 할까봐 가혹하게 세금을 착취하죠. (에도시대 에도의 번영은 북한에서 평양만 그럭저럭 잘 사는 거와 같은 이치입니다. 속지마세요. 그게 아니면 하기 도자기, 이삼평의 아리타 도자기, 심수관의 사쓰마 도자기처럼 전부 조선인이 세운 자기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거나.) 민본주의 조선에서는 작은 정부를 지향해 명목상 세율이 10%내외에 실질로 25%라 해도, 일본에서는 60~80%였고 1609년 임진왜란의 패전을 만회하려고 정벌한 국제 무역의 허브였던 (싱가포르 이전의 싱가포르) 오키나와에서 90% 거둬가서 백성들은 임산부를 절벽에서 밀어버리고 아기는 돌로 눌러죽이기 시작하는데, 일본은 이들의 악행으로 치부하지만 일본의 착취 이전엔 없었던 사실을 숨기죠. 일본 본토에서도 입하나 덜자고 마비키라는 영아살해가 횡행했는데, 19세기 학자 사토 노부히로가 지역마다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며 대략 1/3의 가정이 7살까지 아이를 죽여댔다고 합니다. 1500년 전국시대에도 루이스 프로이스가 "일본 엄마들은 아기를 키울 형편이 안된다고 여기면 아기 목을 무릎으로 눌러 죽인다"라고 할 정도였죠. 조선에서는 여자 노비가 성추행하는 주인 얼굴을 칼로 찍어도 정당방위 무죄방면+훗날 보복당할 수도 있으니 보호차원에서 근무지 변경하라고 왕실에서 세심히 신경쓸 정도였는데 조선에서 배고파서 애를 죽였다는 건 기록으로도 없는데다가 그랬다면 연대책임으로 고을 전체가 강등당합니다.
      아무튼 2차대전 당시에도 가라유키상 비슷하게 인신매매해댔는데 이걸 까발린 이야기로 일본 여성 작가가 실제 팔려나간 일본여성 인터뷰해서 지은 "산다칸 8번 창관" 읽어보세요. 나머지는 1870년 홋카이도 침략하거나 러일전쟁 일으켜주는 대신 영국이 자꾸 파산한 일본 정부에 돈을 수혈해줬습니다. 러일전쟁만 아니었으면 일본은 끝장났고, 그전의 개혁도 사실 미국이 친미파 매국노 심어버리기도 전에 우연히 1861년 미국 남북전쟁이 일어나 남부연합이 목화 수출해서 군자금 얻지 못하도록 해상봉쇄를 하려고 모든 배를 동원해서 일본을 신경 쓸 겨를 이 없던 겁니다. 그 와중에 일본은 무진전쟁이라고 의견차이 났다고 전국에서 서로 쳐죽이는 내전을 겪어도 될 만큼 외세의 간섭에서 자유로웠던 겁니다. (1936년 226 사건 때 일본 육군 황도파 상당수가 가난해서 여동생들을 유곽에 팔아댔던 집 출신들이었습니다. 친위쿠데타 일으키려 했던 이유는 자기들은 진급도 안되고 집은 가난한데 윗대가리들은 해군을 위해 비싼 군함만 만들어대니 불만이 생겼죠)
      유럽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약소국과 달리 서구권의 소수 열강들은 아메리카에서 수백년간 대륙단위로 착취한 돈으로 동진해서 아프리카를 교역국에서 식민지로 지배하기 시작하고 나아가 인도도, 동남아도, 차례차례로 장악합니다. 프랑스도 아이티 하나만으로 본국 세수의 300%를 착취해서 대략 GDP 성장을 20배속으로 돌릴 수 있었습니다. 1900~47년 GDP성장은 0%였고 그 기간 개도국 7% 성장율로 24배 성장할 수 있던 걸 영국이 다 가져갔습니다. 이처럼 수백년 동안 여러 국가 착취한 돈으로 기술개발에 투자할 돈이 생겼고요. 산업혁명? 제국주의 선두주자 스페인이 아니라 하필 인도를 먹고, 하필 면직물에서 터진 건 우연이 아닙니다. 경쟁자를 없애고 면직물 일본은 그 최동단에 있어 소수의 서유럽 열강세력들이 미쳐 동남아 식민지들 소화시킬 쿨타임에 시간이 생겼던 겁니다.
      러시아가 러일전쟁 때 힘에 부친 건 사실 공산주의 때문인데, 일본이 파산하는 와중에도 일본 1년 세수입 0.5%나 되는 돈을 레닌, 크로포트킨, 플레하노프, 막심 고리키 등 공산주의자들에게 뿌려, 자본주의 러시아를 내부에서도 파괴하라고 지령을 내렸습니다. Japan Funded Lenin (일본이 레닌을 지원했다) 구글링 해보세요. 결국 1905년 러시아 민중봉기가 더 심해집니다.

  • @user-jh6by5ic1q
    @user-jh6by5ic1q 3 года назад +6

    고려시대에 접어들면서 신라해적(신라구)는 사라졌지만 이제는 여진족 해적(여진구)들이 나타나 일본 규슈지방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했죠...

    • @ES_COOKIES
      @ES_COOKIES 3 года назад +1

      말탄 여진구: 시박 날 막을 수 없으셈

  • @dws3026
    @dws3026 3 года назад +273

    왜 우리나라에서는 신라구를 안배울까

    • @pisik_like
      @pisik_like 3 года назад +226

      그러면 반만년동안 침략한 역사 없다는 거짓말이 들통나니깐요ㅋㅋ 일본 침략행위에 대해 일방적였다는 왜곡된 역사를 가르칠 명분도 사라지고

    • @euureefdusuwusxujvjfcjjgjrjrjg
      @euureefdusuwusxujvjfcjjgjrjrjg 3 года назад +25

      한 두줄이라도 추가해주지

    • @user-kf5oc6zb6h
      @user-kf5oc6zb6h 3 года назад +131

      국뽕주입식 교육이라고 그래요 우리나라도 역사교육 개혁이 빨리 시급한 상황입니다...

    • @bugs_bunny__
      @bugs_bunny__ 3 года назад +83

      어느나라든 불편한 진실은 안배우기 마련입니다.

    • @pisik_like
      @pisik_like 3 года назад +5

      @전투개미 SentoAri 침략이 아닌 정벌로 배움 정벌의 사전적의미보고오시면 됩니다

  • @t72b35
    @t72b35 Год назад +2

    진정한 '거울'치료

  • @dslee5069
    @dslee5069 3 года назад +3

    내용은 진지한 내용인데 고양이가 너무 귀여움

  • @jeongminko9624
    @jeongminko9624 3 года назад +3

    그럼 많은 분들이 언급하신 드라마 '해신'에서 주인공 장보고의 라이벌이었던 염문(우리가 아는 장보고 암살범 염장~)과 그 일파가 신라구였겠군요~
    드라마 상에선 이들이 고구려 유민 계열로 나오던데~

    • @gerughigiulio9190
      @gerughigiulio9190 3 года назад +3

      해신에서 잘 표현한게 상인이든 지역유지든 해적이든 구분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신라 말에 지역 통제가 안되고 질서가 문란해지다보니 고려가 완전히 전국의 질서를 바로잡기까지 누가 도적이고 누가 선량한 조직인지 알 도리가 없지요.

  • @warlord_of_viking
    @warlord_of_viking 3 года назад +39

    생각해보면 학교에서 역사배우면서 왜구에 대해 배웠어도 한국 해적에 대해 들어본 적은 없었네요

    • @pinemarten4371
      @pinemarten4371 3 года назад +7

      뭐 우리나라 국사교육이 그렇지.

    • @user-kang63
      @user-kang63 3 года назад +11

      한중일 할 것 없이 다 자기들 유리한대로 가르침

    • @Tradesoul2025
      @Tradesoul2025 3 года назад +2

      남해안 지역은 다도해라서 해적에게는 최적의 근거지가 될 수 있죠. 한반도 남부 지방은 목재와 인력을 수급하기도 쉽고요. 이순신 장군도 막장 상황에서 그 지역을 잘 장악해서 수군 재건하고 생산력을 유지할 수 있었죠.

    • @user-qd1uc3rl1d
      @user-qd1uc3rl1d 3 года назад

      @Ann Zarh ?북한군의 민간인 학살은 가르치던데 말입니다

    • @user-qd1uc3rl1d
      @user-qd1uc3rl1d 3 года назад

      @Ann Zarh ?북한군의 민간인 학살은 가르치던데 말입니다

  • @user-rr8xf4qv3d
    @user-rr8xf4qv3d 2 года назад +1

    역사 컨텐츠도 재밌고 아는척 할려고 안달난 댓글도 재밌고

  • @user-ux4ok4kh3r
    @user-ux4ok4kh3r 3 года назад +36

    장보고가 암살 안 당했으면 청해진이 계속 동북아 해상 중심지였을건데

    • @jin.24.
      @jin.24. 3 года назад +18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해상을 장악하는건 국가가 흥하게 하기 매우 좋은 사안인데 정부는 장보고를 왕위쟁탈전에 이용만 해먹고 장보고 딸을 왕비로 들이겠단 약속을 무시, 장보고를 죽이고 청해진 주민들은 강제이주시켰죠.. 장보고가 실제로 역모를 꾸몄는진 모를 일이지만 아까운 인물이 죽은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 @SGC-qp2ee
      @SGC-qp2ee 3 года назад +7

      @@jin.24. 정부만 장보고를 이용해먹은게 아니라, 장보고도 자기세력 확장을 위해 정부랑 커넥션을 유지했음.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던 공생관계였음. 근데 정부가 자기한테 필요없어질것같으니까(혼인문제) 그 상황을 타개하려고 무력을 동원했다가 암살당한거. 절대 일방적인 피해자가 아니란 말.

    • @jin.24.
      @jin.24. 3 года назад +9

      @@SGC-qp2ee 제가 알기론 정부가 왕위 쟁탈을 위해 장보고를 포섭했고 왕이 되게 도와준 대가로 자신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기로 약속했는데 중앙정부 쪽이 약속을 어긴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용당했단 말이었고요.

    • @AppleJimed
      @AppleJimed 3 года назад +5

      청해진은 어디까지네 동네 군벌이 만든 항구라 당대 평가도 '가보니까 생각보다 규모가 크더라' 이정도지 위치나 상징성 모두 절대 동북아 무역 중심이 될 정도는 아녔음

    • @user-px5js8gf1p
      @user-px5js8gf1p 3 года назад +3

      @@jin.24. 김우징이 도와주면 사돈을 맺게 해주겠다고 제안해 그들 도와줘서 신무왕이 즉위하는건 좋았지만 신무왕은 단명했고 아들인 문성왕이 약속을 씹었죠.

  • @user-bi9mv4yr2d
    @user-bi9mv4yr2d 3 года назад +12

    아니 맨날 해적은 우리가 토벌던건대 일본이 해적을 토벌한다니 뭔가 어색함

    • @user-sanaekochiya
      @user-sanaekochiya 3 года назад +5

      원피스 만화와 똑같죠. 해적은 무국적

    • @bugs_bunny__
      @bugs_bunny__ 3 года назад +4

      범죄자에게 국적은 무의미함. 일본에서 유일하게 인종차별 안하는 집단이 야쿠자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

  • @Ori-maeuntang
    @Ori-maeuntang 3 года назад

    엥? 썸네일 바꼈네요?? 아까까진 이말년 패러디였는데. 그냥 평범한거로 바꼇네여? 저작권때문인가요?

  • @user-hg3fc6bs4y
    @user-hg3fc6bs4y 3 года назад +3

    신라구라니 당시 먹고 살려고 해적으로 살려고 했다니 환경이 사람을 쓰레기로 만드는군요.

  • @pjhpang01
    @pjhpang01 3 года назад +4

    3:04 급 죄송합니다 뭔데? ㅋㅋㅋㅋㅋ

  • @zxcvasdgsdfafcv33r3rzsdfxcvzcv
    @zxcvasdgsdfafcv33r3rzsdfxcvzcv 2 месяца назад

    퍄퍄킴은 언제나처럼 옳차! 쵝오👍

  • @kiyongkim7651
    @kiyongkim7651 3 года назад +5

    저렇게 신라구에 당한 일본은 수백년뒤, 그 신라지역에 처들어와 점령하고 복수를 하는거군요.

  • @user-gm1bb1lu3b
    @user-gm1bb1lu3b 3 года назад +13

    와 우리나라 사람도 해적질 했구나 ㅋㅋㅋㅋㅋ

    • @kokekuka24
      @kokekuka24 3 года назад +3

      한국인들도 역사적으로 해적질, 학살, 강간 등 많이들 하고 다녔음

    • @user-yl7tk3bm8h
      @user-yl7tk3bm8h 3 года назад +4

      @@kokekuka24 그래도 다른나라에 비해 적긴함 왜냐면 나라가 ㅈㄴ약해서 다른나라한테 깝칠수가없어서

    • @REPUBLICAN_KILLER
      @REPUBLICAN_KILLER 3 года назад +2

      @@user-yl7tk3bm8h 조선시대때가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