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시절 민속학을 배웠던 입장에서 오랫만에 보는 석전 관련 영상이라 기분이 새롭습니다. 석전은 좀 오래된 민속놀이긴 합니다. 이게 결정적으로 중단된 건 일제강점기 시절입니다. 야만성이라는 개념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피가 튀고 살이 튀는 일들에 대해서 야만적이라 여기고 금지했습니다. 다만 현대의 윤리관으로 과거의 민속을 바라보는 건 조금 미묘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추정하는 바로는 정초라는 시기에 이뤄졌다는 걸로 봐선, 민간신앙적 이유(풍농, 구복성 성격)로 이뤄졌고. 현실적으론 매년 불만을 정초 단 한번의 석전으로 끝내고 초기화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 발생 원인으로 추정되는 것이 아예 없는 게 아닌데. 당시 사회구조적 모순에 대해 당시 민중이 효과적으로 해소를 할 수 있는 수단이 석전 외에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양반 같은 사회 고위 계층의 자유와 하위 계층의 자유가 서로 달랐음.) 당시에는 농외세수의 상세한 세수 측정, 고려가 어렵고,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파악되는게 농업을 통한 세금이 측정이 원활했기 때문에, 당시 하위 계층의 사람들은 5명을 한 조로 짜서, 촌락에 대한 이탈을 근본적으로 막는 시절이었습니다. 결국 그 당시의 땅 없는 소작농이나, 천민들은 어떻게든 자기들 치의 세금을 내기 위해선 농사를 지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조선 후기 왜란과 호란이 끝난 뒤에는 세금과 군역이 면제되는 양반이 되고자, 족보를 사고, 그 결과 개화기 직전의 조선에서는 세금을 내야 하는 사람들은 전체 조선 인구의 20%고, 80%가 세금 면제를 받는 기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말 그대로 80%의 사람들이 20%의 하위 계층 사람들의 고혈을 빨면서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 부담 때문에 살고 있는 곳을 떠날 수도 없던 하위 20% 계층은 남이 천하게, 그리고 저속하게 여기는 일들을 해서라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매년마다 석전과 같은 폭력적인 놀이가 시작되어도 관에서도 제지하지 않고, 추궁하지 않고, 그리고 그것으로 그만이라 여겼습니다. 그걸로 사회적 불만이 해소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했거든요. 여담이지만, 석전의 놀이 원리나 사유가 같은 놀이가 눈싸움입니다. 석전이 완전히 낮설고 새로운 놀이인 것만은 아닙니다.
석전은 보통 마을단위, 옆마을 사이에서 벌어졌죠... 조선시대등의 상하관계, 계급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가 문제였다면... 양반vs평민 이런식으로 싸웠겠지만... 마을간의 문제... 즉, 논등에 물대기 우선권, 소먹이는 목초지문제, 땔깜 문제등 마을간의 분쟁 + 개인간의 분쟁이 원인이겠죠... 평소에 사람을 직접 죽이거나 엄청난 폭력을 가할수는 없으니... 석전으로 대신한 걸로 보입니다...
@@여비서의향기 그것은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오재미의 경우에는 일제에서 한반도 전국에 소학교를 세우며. 사람들이 사적으로 모이는 것을 막는 집회법을 발의한 뒤, 축제의 개념을 대체한 운동회를 개최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오재미 던져서 사람을 맞추는 식으로 순화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석전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고요. 그리고 석전을 공식적으로 금한 이유는 미개함, 폭력성, 야만적이라는 문구를 섞었지만, 실제 목적은 석전을 하고자 모인, 무장한 장정 수십명이 돌을 들고 그 대상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던 운동회도 1920년대 문화통치 시기에 진행되었습니다만,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30년대, 40년대에는 그 조차도 금지를 합니다. 이유는 '집단이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고요. 피구는 석전과는 조금 궤를 달리하는 미국에서 1895년 YMCA 체육부장 윌리엄 모건에 발안되어 만들어진 구기, Dodgeball이 원조입니다.
참고로, 석전 참가자들 끼리 불문율 같은 건 있었는데. 1. 집에서 독자나 가장은 나오지 말 것 2. 완전히 무방비한 차림을 하곤 나오지 말 것 3. 팔매와 같은 도구를 들고 오지 말 것 1번의 경우에는 대체 할 수 없는 사람이 나와서 죽는 경우에는 더 큰 문제의 단초가 되기 때문에 시작하기 전에 돌려 보냈습니다. 2번의 경우에는 석전의 규칙이 그냥 한 대 맞으면 나오는 게 아니라 아프면 도망가면 그 자리서 아웃이라 최대한 참을 수 있도록 날씨가 따뜻한 날에도 솜모자, 솜옷을 껴입고 나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석전이 오래 지속되면 아픈 거 보다 점점 솜옷이 무거워서 힘이 빠진 채 이탈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3번은 팔매질을 하는 순간 아무리 작은 돌이라도 짐승을 잡을 정확도와 파괴력이 생기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팔매질은 하지 않고 순수한 완력으로만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체 능력만으로 강하고 세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석전꾼을 우대하고 찾았습니다.
@@bangjung1257 말씀하신대로, 대부분의 석전은 가까운 마을끼리의 갈등 때문에 열렸습니다. 제가 언급한 내용은 이 석전이라는 놀이가 계속 유지되고 있던, 나아가 그게 유지될 수 있었던 사회구조적 원인은 이러한 점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서로 잘 먹고 잘 사는데 굳이 피를 보는 놀이를 이웃마을끼리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서로가 불행하지만 누가 원인인지는 잘 모르겠고, 결국 가장 만만했던게 '가깝지만 잘 모르는 바로 옆 마을 놈들'이었기 때문에. '놈들을 이기면, 우리 마을에 행복과 평안이 찾아오리라'는 막연한 맹신이 계속 이어진거죠. 정작 자신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자기들더러 미개하고 못배워먹은 놈들 취급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냥 무서우니 애써 눈을 돌렸습니다. 이러한 관점과 생각이 지배적으로 깔린 탓에 대한제국이 일제와 병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의외로 민중들은 반감이 없었던 것을 당시 선교하러 들어왔던 선교사들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미 체념을 오래전부터 해, 바뀌었다고 해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구한말까지 갈것도 없이 70년대에도 동네끼리 뭉쳐서 진심으로 돌싸움하고 놀았습니다. 그냥 막하는게 아니라 요즘 전술놀이처럼 전술세워서 어디 지키고 어디 쳐들어가고... 머리 깨진 친구도 있었슴; 진짜 험하게 놀았죠. 여러 경험담이 나오는 걸로 보아, 60-70년대 20세기역사로 다시 한번 돌싸움을 다루는 연구도 있어야 할 듯하네요.
이 석전이 정말 미친 놀이였던게 조선를 방문한 외국인이 석전 구경하고 기록한 일지에 따르면 돌에 맞아 사람이 죽어도 아무렇지 않게 다음 돌을 찾아 던지며 놀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석전 놀이가 마을 단위로 이뤄지면 이긴 마을 사람들이 진 마을로 쳐들어가 집을 부수는 등 참 과격한 놀이였다네요
1972년경 충북제천에 살던 국민학교 4학년 시절 대보름 전후에 이웃마을 어린이들과 투석전을 하였는데 당연히 부상자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위험한 일이였는데 당시에 그런것 생각도 하지를 못하였네요. 이제 환갑인 제가 석전의 마지막 채험자인듯 합니다. 더이상 어린이들이 이처럼 위험한 놀이에 차여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현대화하면 한국 고유의 스포츠 문화로 충분히 계승이 될 것 같습니다. 올림픽의 크로스컨트리 스포츠도 알고보면 세금징수자들이 스칸디나비아 설원을 스키타고 다니며 세금 거두다가 미납자들에게 공격당하거나 도망가는 사람 잡아야 할때를 대비해 활을 들고 다닌계 현대 크로스컨트리의 총으로 계승된거죠.
1.전투민족 고구려 돌 던지기를 하고 태왕은 좋다구나 심판 봄 2.고려는 아예 왕이 좋다구나 가서 돌 던지고 말리는 신하 있으면 그 놈한테도 돌 던짐 3. 조선은 석전경기 때 돌 던지며 머리가 깨지든 피가 나든 마구 던지며 놀았다는 기록들이 많음 4. 나중가서 나라가 멸망하자 나라 멸망시킨 놈에게 돌을 던짐 정리해보니 ㄹㅇ 돌 던지는거에 미쳤네 ㅋㅋㅋㅋ
서울 합정동에 살았던 나이 많은 분에게 물었습니다.( 이규태씨의 한국인이라는 책에서 읽고 인상에 남아서) 오래전에 "돌던지기 놀이"에 대해서..... 자신이 어렸을 때 딱 한번 있었답니다. 자신도 그것이 놀이인지 싸움인지 구별이 안되고 참 신기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제가 처음으로 물어보는 것이라 했습니다.
방어력없는 근접은 원딜 에 쉽게 털리죠. 일기토도 그냥 서로의 발전 상태를 비교하는 정도로 마무리하는게 대부분이죠. 마치 동물들의 수컷끼리 춤배틀하는 정도였는데 골리앗의 보디빌딩 보고 물러갈줄 알았다가 다윗이 슬링샷에 대혼란이 발생해버림. 얼마전 다국적 군사훈련에서 미국짱짱맨으로 대미를 장식해야할껄 한국이 눈치없이 잠입해서 다 깨부순 일화처럼 다윗이 왕되고 개판오분전 만들어서 병크짓에 요즘 종교계에서도 다윗 언급 잘 안하죠. 비대칭전력에도 승리한 대명사정도로 쓰일뿐...
전통놀이랑 관련이 있는지 모르겟으나 70년대 어릴적에 놀이터에서 편을 갈라서 돌멩이를 서로 던지는 놀이는 한것 같습니다.삼삼오오 편을 갈라서 밤톨만한 돌을 서로 던지면서 서로 여기 넘어오면 안돼 이랬던거 같네요.근데 막 상대방 머리쪽으로 던진건 아니고 주로 땅바닥쪽으로 던져서 크게 다치친 않았네요.
석전이나 투기장 등등. 현대의 시선으로 보면 이해하기 힘든 즐길거리나 풍습, 사고 방식이 많습니다. 한반도 역사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요. 다만 이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아서 이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게 쉽지 않은 것이 참 안타깝네요. 기록이라도 많았으면 당시 사람들에게 이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추론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예전 책에서 보고 너무 이해할수 없는 전통이라고 생각했었죠... 돌에 맞고 정신을 잃고 불구가 되고 수십명이 머리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고~ 자기 아버지 아들이 죽어있어도 시신을 밟고 또 돌을 던지고 되도록 큰돌을 던지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었다고 하던데~~ 이렇게 경기가 끝나고 나면... 수많은 시신들을 거리에 널부러져 있었다고 하던데~ 이건 흑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중간에 잠깐 나왔지만 마을간 , 지역간 경쟁심을 유발하기도 헀고 마치 지금의 프로스포츠 지역 구단 마냥 평양이나 안동이 석전으로 전국적인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고 함. 열기가 어느정도였냐면 패배한 마을의 선수들은 마을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노숙을 하기도 했고 머리에 석전으로 인한 흉터가 없다면 남자 취급도 못받았다 하는 소리도 있을정도
모든 장정들에게 충분한 병기를 들리기엔 비용이 많이 들어 전투력은 후달리지만 싸다는 장점이 있는 석전이 장려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사회적 분노를 상층이 아닌 수평부의 다른 경쟁자로 대치하는 것 어떤 시대나 공통인 것 같고요. 전시에 주력을 차지할 수도 없고 부상자가 많아 세종처럼 일찍 없앴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물론 부상에 충분한 변형이나 보조장비가 있었다면 괜찮겠지만요. 중근동이나 유럽에도 석전병? 들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거기서 좀더 발전적인 게 투석구, 슬링 등으로 불리는 도구를 사용하는 방식이죠. 슬링은 정확성을 올리려면 상당한 연습이 필요했지만 꽤나 대미지가 강력해서 궁병을 어느 정도 보완하는 수준까지는 됐다고 합니다. 다윗이 사용한 무기가 슬링이죠. D&D등 각종 롤플레잉 게임에도 자주 등장하는 초반용 무기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재현하는건 무리지만, 석전을 모티브로 한 FPS 게임을 만드는것도 나쁘지 않을거 같해요..! 뭐, 탄은 다 돌맹이지만... 그래도 매질꾼/석전꾼이라는 분화도 있고, 돌 투척 방식을 세분화해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잡아도 좋을거 같고... 그것도 아니면 석전을 소재로한 디펜스/오펜스 게임이라던지... 석전의 대한 정보 감사합니다!😆
@@seongryeolcho375 그냥 돌만 던지는거 보다는 오버워치 점령전 스타일로 방어팀vs공격팀으로 싸우는 방식으로 하는걸로 생각했었어요. 그냥 돌만 던지는 대신, 무릿매(슬링, 돌 던지는 도구)나 돌주머니 등으로 돌 소지량 및 투석 사거리를 늘리거나, 더욱 좋은 방어구로 받는 피해를 줄이거나 하는 식으로... 그게 아니면, 냥코대전쟁 비슷하게 투석꾼(원거리 공격) 계열 유닛과 매질꾼(근접 공격) 계열 유닛을 수집/생산하여 적 성을 파괴하고 스테이지를 하나씩 클리어해가는 디펜스형 게임으로 나오면 어떨까 했지요
어릴 때 시골에서 마른 논에 들어가 친구들이랑 편 먹고 진흙이 굳은 흙탄 던지고 놀았는데.. 나름 흙으로 성도 쌓아서 방어도 하고 놀았는데 그것도 석전의 일종이라 할수도 있겠네요. 맞으면 흙탄이 터져서 얼굴에만 안 맞으면 크게 다치진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눈 같은 곳에 안 맞아서 정말 다행..
학부시절 민속학을 배웠던 입장에서 오랫만에 보는 석전 관련 영상이라 기분이 새롭습니다.
석전은 좀 오래된 민속놀이긴 합니다. 이게 결정적으로 중단된 건 일제강점기 시절입니다. 야만성이라는 개념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피가 튀고 살이 튀는 일들에 대해서 야만적이라 여기고 금지했습니다. 다만 현대의 윤리관으로 과거의 민속을 바라보는 건 조금 미묘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추정하는 바로는 정초라는 시기에 이뤄졌다는 걸로 봐선, 민간신앙적 이유(풍농, 구복성 성격)로 이뤄졌고.
현실적으론 매년 불만을 정초 단 한번의 석전으로 끝내고 초기화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 발생 원인으로 추정되는 것이 아예 없는 게 아닌데. 당시 사회구조적 모순에 대해 당시 민중이 효과적으로 해소를 할 수 있는 수단이 석전 외에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양반 같은 사회 고위 계층의 자유와 하위 계층의 자유가 서로 달랐음.)
당시에는 농외세수의 상세한 세수 측정, 고려가 어렵고,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파악되는게 농업을 통한 세금이 측정이 원활했기 때문에, 당시 하위 계층의 사람들은 5명을 한 조로 짜서, 촌락에 대한 이탈을 근본적으로 막는 시절이었습니다.
결국 그 당시의 땅 없는 소작농이나, 천민들은 어떻게든 자기들 치의 세금을 내기 위해선 농사를 지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조선 후기 왜란과 호란이 끝난 뒤에는 세금과 군역이 면제되는 양반이 되고자, 족보를 사고, 그 결과 개화기 직전의 조선에서는 세금을 내야 하는 사람들은 전체 조선 인구의 20%고, 80%가 세금 면제를 받는 기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말 그대로 80%의 사람들이 20%의 하위 계층 사람들의 고혈을 빨면서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 부담 때문에 살고 있는 곳을 떠날 수도 없던 하위 20% 계층은 남이 천하게, 그리고 저속하게 여기는 일들을 해서라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매년마다 석전과 같은 폭력적인 놀이가 시작되어도 관에서도 제지하지 않고, 추궁하지 않고, 그리고 그것으로 그만이라 여겼습니다. 그걸로 사회적 불만이 해소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했거든요.
여담이지만, 석전의 놀이 원리나 사유가 같은 놀이가 눈싸움입니다. 석전이 완전히 낮설고 새로운 놀이인 것만은 아닙니다.
석전은 보통 마을단위, 옆마을 사이에서 벌어졌죠...
조선시대등의 상하관계, 계급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가 문제였다면... 양반vs평민 이런식으로 싸웠겠지만...
마을간의 문제... 즉, 논등에 물대기 우선권, 소먹이는 목초지문제, 땔깜 문제등 마을간의 분쟁 + 개인간의 분쟁이 원인이겠죠...
평소에 사람을 직접 죽이거나 엄청난 폭력을 가할수는 없으니... 석전으로 대신한 걸로 보입니다...
@@여비서의향기 그것은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오재미의 경우에는 일제에서 한반도 전국에 소학교를 세우며. 사람들이 사적으로 모이는 것을 막는 집회법을 발의한 뒤, 축제의 개념을 대체한 운동회를 개최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오재미 던져서 사람을 맞추는 식으로 순화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석전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고요. 그리고 석전을 공식적으로 금한 이유는 미개함, 폭력성, 야만적이라는 문구를 섞었지만, 실제 목적은 석전을 하고자 모인, 무장한 장정 수십명이 돌을 들고 그 대상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던 운동회도 1920년대 문화통치 시기에 진행되었습니다만,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30년대, 40년대에는 그 조차도 금지를 합니다. 이유는 '집단이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고요.
피구는 석전과는 조금 궤를 달리하는 미국에서 1895년 YMCA 체육부장 윌리엄 모건에 발안되어 만들어진 구기, Dodgeball이 원조입니다.
참고로, 석전 참가자들 끼리 불문율 같은 건 있었는데.
1. 집에서 독자나 가장은 나오지 말 것
2. 완전히 무방비한 차림을 하곤 나오지 말 것
3. 팔매와 같은 도구를 들고 오지 말 것
1번의 경우에는 대체 할 수 없는 사람이 나와서 죽는 경우에는 더 큰 문제의 단초가 되기 때문에 시작하기 전에 돌려 보냈습니다.
2번의 경우에는 석전의 규칙이 그냥 한 대 맞으면 나오는 게 아니라 아프면 도망가면 그 자리서 아웃이라 최대한 참을 수 있도록 날씨가 따뜻한 날에도 솜모자, 솜옷을 껴입고 나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석전이 오래 지속되면 아픈 거 보다 점점 솜옷이 무거워서 힘이 빠진 채 이탈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3번은 팔매질을 하는 순간 아무리 작은 돌이라도 짐승을 잡을 정확도와 파괴력이 생기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팔매질은 하지 않고 순수한 완력으로만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체 능력만으로 강하고 세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석전꾼을 우대하고 찾았습니다.
@@bangjung1257 말씀하신대로, 대부분의 석전은 가까운 마을끼리의 갈등 때문에 열렸습니다.
제가 언급한 내용은 이 석전이라는 놀이가 계속 유지되고 있던, 나아가 그게 유지될 수 있었던 사회구조적 원인은 이러한 점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서로 잘 먹고 잘 사는데 굳이 피를 보는 놀이를 이웃마을끼리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서로가 불행하지만 누가 원인인지는 잘 모르겠고, 결국 가장 만만했던게 '가깝지만 잘 모르는 바로 옆 마을 놈들'이었기 때문에.
'놈들을 이기면, 우리 마을에 행복과 평안이 찾아오리라'는 막연한 맹신이 계속 이어진거죠.
정작 자신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자기들더러 미개하고 못배워먹은 놈들 취급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냥 무서우니 애써 눈을 돌렸습니다.
이러한 관점과 생각이 지배적으로 깔린 탓에 대한제국이 일제와 병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의외로 민중들은 반감이 없었던 것을 당시 선교하러 들어왔던 선교사들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미 체념을 오래전부터 해, 바뀌었다고 해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눈속에다가 조그만 돌넣어서 던지는겅우도 있었음. 어렸을적에
구한말까지 갈것도 없이 70년대에도 동네끼리 뭉쳐서 진심으로 돌싸움하고 놀았습니다. 그냥 막하는게 아니라 요즘 전술놀이처럼 전술세워서 어디 지키고 어디 쳐들어가고... 머리 깨진 친구도 있었슴; 진짜 험하게 놀았죠. 여러 경험담이 나오는 걸로 보아, 60-70년대 20세기역사로 다시 한번 돌싸움을 다루는 연구도 있어야 할 듯하네요.
그때 죽었으면 지금 말했겠지 저때처럼 심하게는 전혀 안했을거임 그냥 애들몇명끼리 그러다 어른한테 걸려서혼나고 그랳을거
@@오렌지섭빌런닝겐제 아버지의 가장 큰형님이 돌싸움하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때가60~ 70년도쯤인거 같네요 대단한 천재였다고 하던데 안타까워요
김풍 봉천동석전
70년대에 동네형이 정월 대보름때 이웃동네 사람하고 저것 하다가 머리 돌에 맞아 머리 깨져음.
I am so 😔
🛑정치적 내용이나 욕설, 비하, 영상 속 사건과 관련없는 댓글은 경고 없이 삭제 또는 차단될 수 있습니다.🛑
달리는 열차에 돌을 던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원태우지사 이야기
ruclips.net/video/prAkItLogf4/видео.html
역시 원딜의 민족..
그런데 사람이 던진 돌로 맞았다면 표적이 너무 잘 보였다는 거겠죠?
마을단위... 옆마을과의 석전은 1950년대말까지는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625(1950년)즈음에 10대였던 분을 아는데...
그분 이마가 조금 함몰되었는데...
옆마을과의 석전으로 머리뼈가 깨졌다고 하시더군요...
@@bangjung1257 워엌.......
@@bangjung1257 이야 이게 해방 이후까지 있었나보네요...
이 석전이 정말 미친 놀이였던게 조선를 방문한 외국인이 석전 구경하고 기록한 일지에 따르면 돌에 맞아 사람이 죽어도 아무렇지 않게 다음 돌을 찾아 던지며 놀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석전 놀이가 마을 단위로 이뤄지면 이긴 마을 사람들이 진 마을로 쳐들어가 집을 부수는 등 참 과격한 놀이였다네요
진짜 ㅈㄴ 미개했었네 ㅋㅋㅋㅋㅋㅋ 일본이 강점기때 없애길 잘한듯 ㄹㅇ
에임도 좋은 민족이 그딴 놀이로 동족상잔했으니 조선 말에 일본한테 쳐발렸지 ㅋㅋㅋㅋ
총이나 미사일로 간접적으로 잘 안보이는 곳의 적을 죽이고 비교적 평화시대인 지금이랑 다르게 칼, 창 등으로 인간도살이 빈번하게 일어나던 시대에서 석전 정도는 아가들 놀이였겠네 ㅋㅋㅋㅋ
?미개하다는 건 일제강점기때의 일본제국ㄴ들의 관점이지 싶습니다
@@101보병-d7v 지금 우리 관점도 일본제국문화임?
그냥 당시 근대문화는 유럽을 비롯해 일본까지 사상적으로 퍼진거고, 무조건 근대식 사고라고 해서 일본제국주의 관점이다라고 하는건 굉장히 잘못된 생각임.솔직히 병적으로 심하지
1972년경 충북제천에 살던 국민학교 4학년 시절 대보름 전후에 이웃마을 어린이들과 투석전을 하였는데 당연히 부상자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위험한 일이였는데 당시에 그런것 생각도 하지를 못하였네요. 이제 환갑인 제가 석전의 마지막 채험자인듯 합니다. 더이상 어린이들이 이처럼 위험한 놀이에 차여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꽤 최근까지 있았다니 신기합니다.
현대화하면 한국 고유의 스포츠 문화로 충분히 계승이 될 것 같습니다. 올림픽의 크로스컨트리 스포츠도 알고보면 세금징수자들이 스칸디나비아 설원을 스키타고 다니며 세금 거두다가 미납자들에게 공격당하거나 도망가는 사람 잡아야 할때를 대비해 활을 들고 다닌계 현대 크로스컨트리의 총으로 계승된거죠.
잘 다듬어서 석전을 부활시키면 어떨까 합니다. 사람이 다치거나 죽지않게요
@@OYT0724 머리에 헬멧쓰고 몸통에 보호구와 조끼를 입은 다음 돌 대신 테니스공을 던져서 조끼에 맞으면 아웃으로 치는거죠. 이러면 부상위험도 적고 석전느낌을 낼 수 있지 않읅가요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도 돌을 던지던 것에서 토마토로 바꾼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돌 대신 부드러운 것으로 바꾸어서 유지하면 좋을 듯 ㅋㅋ
참가 당했다는 표현 겁내 웃기네 ㅋㅋㅋㅋ
조선인들: 어? 너도 참가자지?? (짱돌 마구 투척)
조선인들: 아.. 왜 돌을 던져?(급정색) (추방)
핫하!!! 이게 조선의 데스게임이다!!!!!!!!
@@jin.24. 화력이 시원찮았나보다
강제 징집
“You have been JOINED”
1.전투민족 고구려 돌 던지기를 하고 태왕은 좋다구나 심판 봄
2.고려는 아예 왕이 좋다구나 가서 돌 던지고 말리는 신하 있으면 그 놈한테도 돌 던짐
3. 조선은 석전경기 때 돌 던지며 머리가 깨지든 피가 나든 마구 던지며 놀았다는 기록들이 많음
4. 나중가서 나라가 멸망하자 나라 멸망시킨 놈에게 돌을 던짐
정리해보니 ㄹㅇ 돌 던지는거에 미쳤네 ㅋㅋㅋㅋ
원태우지사 아무리 느린속도라지만 기차에 타고있던 이토를 정확히 저격하다니 ㄷㄷㄷ
@@TV-lo7gm 전직 석전판 저격수 원태우지사 ㄷㄷ
일제가 잘없앰... 쌉미개
@@TV-lo7gm 오늘날이었음 야구시켰을 인재네
짱돌 던지기는 못참지 ㅋㅋ
서울 합정동에 살았던 나이 많은 분에게 물었습니다.( 이규태씨의 한국인이라는 책에서 읽고 인상에 남아서) 오래전에 "돌던지기 놀이"에 대해서..... 자신이 어렸을 때 딱 한번 있었답니다. 자신도 그것이 놀이인지 싸움인지 구별이 안되고 참 신기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제가 처음으로 물어보는 것이라 했습니다.
40대입니다 서울 마포 합정동 근처 사는데요 제가 어렸을 때 친구들과 돌싸움 자주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긴 하네요
@@손진욱-o5x 진짜 돌던지고 싸우는게 있었네요 그냥 아저씨들의 전설인줄 알앗는데
물론 돌을 들고 머리찍는 그런것도 들었지만..그냥 당시 어지럽던 한국사회를 대변하는 싸움문화라고 생각했음
71년생 전북 고창 사람입니다. 국민학교들어가기 전까지는 윗마을 아랫마을끼리 돌던지고 싸웠어요. 코흘리개인 저도 작은 돌맹이 던지며 그 사이를 뛰어다녔죠. 예전엔 참 위험한 짓을 많이 했어요
응암동도 70년대까지 돌싸움하고 놀았어요. 작전짜고 동네끼리 진짜 열렬했슴.
@@손진욱-o5x 안다쳤을지 요??!
감사합니다.
북한에서도 고구려의 문화라며 한번 석전 행사를 열었던 적이 있는데, 첫 대회부터 사상자가 너무 많이 나와 바로 폐지되었다고 합니다....ㅋㅋㅋㅋㅋㅋ
석전이 사라진 시기를 보니 우리가 오랜 전통이라고 알고있던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최근까지 살아남았음도 알게되네요.
석전을 전통이라고 하기엔 너무 민족체면이 깎이는거 같네요
@@Edhilues 뭔 체면씩이나 본래 전투훈련이나 사냥방식이 놀이형태로남는거 어느나라에나 흔한일인데 석전같은건 거의 원형에 가깝게 오래남은거죠 고려도 조선도 석전부대가 있었다고 영상에도 나오잖음
고구려때부터 이어진건데 전통은 맞죠
문득 함진아비가 생각나네요
근대에 변화를 겪기는 했어도 무려 1990년대까지 유지되었던 혼례 문화라고 합니다.
역시 사람은 재미있어
돌팔매는 생각외로 위력적임
성경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투석구를
사용해서 잡은걸 감안해도 우습게볼수없음 실제 역사속전투에서도
짱돌에 맞아죽은 장수들이 많았다고함
방어력없는 근접은 원딜 에 쉽게 털리죠. 일기토도 그냥 서로의 발전 상태를 비교하는 정도로 마무리하는게 대부분이죠. 마치 동물들의 수컷끼리 춤배틀하는 정도였는데 골리앗의 보디빌딩 보고 물러갈줄 알았다가 다윗이 슬링샷에 대혼란이 발생해버림. 얼마전 다국적 군사훈련에서 미국짱짱맨으로 대미를 장식해야할껄 한국이 눈치없이 잠입해서 다 깨부순 일화처럼 다윗이 왕되고 개판오분전 만들어서 병크짓에 요즘 종교계에서도 다윗 언급 잘 안하죠. 비대칭전력에도 승리한 대명사정도로 쓰일뿐...
발레리아스 투석병들은 로마에 용병으로 기용되기도 했을 정도로 잘 사용하면 위력적인 무기임. 본문만 보면 투석구(슬링)을 쓴거랑 아닌거랑 차이가 있는걸로 느껴질 수 있는데 투석구는 한국도 썼었음.
물론 석전 놀이(...)에서도 쓰기도 했음
@@마개조_무닌 ㅁㅊㅋㅋㅋㅋㅋㅋ
@@마개조_무닌 아니 놀이에서 그걸쓰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긴 제가 읽은 성경에 나온 다윗도 투석구로 골리앗을 헤드샷으로 쓰러뜨린 걸로 압니다
저희 고조 할아버지께서 투석구를 잘 쓰셔서 밭의 새도 잡고 아버지 어리셨을때 멀리있는 물건 맞추는 묘기를 보여 주시곤 했다 하십니다.
전통놀이랑 관련이 있는지 모르겟으나 70년대 어릴적에 놀이터에서 편을 갈라서 돌멩이를
서로 던지는 놀이는 한것 같습니다.삼삼오오 편을 갈라서 밤톨만한 돌을 서로 던지면서 서로 여기
넘어오면 안돼 이랬던거 같네요.근데 막 상대방 머리쪽으로 던진건 아니고 주로 땅바닥쪽으로
던져서 크게 다치친 않았네요.
@싼다할아버지 그냥 좋은추억 말씀하시는건데 왜그래요..
@싼다할아버지 한글 못 읽니? 땅바닥쪽으로 던졌다고 하잖아? 유치원에서 한글 배우잖아? 유치원도 안 나온거 아니지? 한글을 똑바로 읽고 댓글을 달아. 제대로 읽지도 않고 헛소리 하지 말고 말야.
ㄴ맥락없는 말이 갑자기 튀어나오네
그게놀이냐? 미개문화지
@@홍길동-p4s 미개문화는 일제강점기때의 일본제국의 관점이지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잘보고갑니다 화이팅 하세요 좋아요 찜하고감니다 ^^♡역사공부잘하고감니다
석전이나 투기장 등등. 현대의 시선으로 보면 이해하기 힘든 즐길거리나 풍습, 사고 방식이 많습니다. 한반도 역사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요.
다만 이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아서 이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게 쉽지 않은 것이 참 안타깝네요. 기록이라도 많았으면 당시 사람들에게 이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추론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현재도 격투스포츠나 액션영화가 인기있는걸보면 원초적인걸 좋아하는 인간의 종특인가 보죠
오버워치나 포트리스 비슷한 느낌이였을듯ㅋㅋ
19세기 말에는 웬만한 문화에서는 다 사라지고 없죠 ㅋㅋㅋ
축구도 원래 너무 거친 운동이라...
섹스피어 소설에서는 축구선수가 욕이였었죠.
석전 기록 많습니다ㅋㅋㅋㅋ
단지 학자들이 쪽팔려서 가르치지 않을뿐
석전 투기장이 사라지고 협곡이 들어섰다...
정말 강한자만 살아남던 시대였군요
*_돌팔매가 별로 위협적이지 않은듯 느끼시는 분들도 있으신데......_*
*_최홍만보다 컸던 골리앗이 160센치짜리 호빗족 데이빗에게 돌 맞아 죽었습니다.........._*
로마는 섬나라 투석병들을 고용해서 원딜로 쓰는게 군 편제였고
슬링을 써서 가능했다는 설이 있죠
이스라엘은 팔레인스타인 소녀가
돌을 이스라엘 병사에게 던지자
구속했음.
사실, 정확히는 골리앗은 돌에 맞아 쓰러진 것이고(아마도 기절 정도?) 죽기는 칼에 찔려 죽었죠. ㅋㅋ
그건 데이빗이 자세가 좋고 돌팔매 짬밥이 있으니.....
룰이 이어지고 좀 더 방어구끼고 안전해져서 발전 했으면 페인트탄 쏘듯이 하는 써바이벌 느낌으로 발전 했을 듯
영상을 보니 우리 조상님들의 광기가 어땠는지 채감이 되는구만...어찌 저것이 돌이나 탱커를 동원해 몽둥이 찜질을 하고 뚝배기를 깨는 것이
어찌 동방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의 풍습이라 할수 있는가? (태그 놀이,대화수단,점성술,지역 연고제의 프로스포츠)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다만 역사채널인 만큼 5:56 '동방예의지국' 같은 단어 사용은 지양하시는게 어떨까 합니다.
한양의 최고의 석전 장소는 아현동 애오개역 부근에서 열리는 석전이 제일 규모가 크고 살벌했다고 어떤 책에서 읽었음. 죽는 사람도 적지않게 나올정도였다고 함.
저렇게 석전을 하다가 끝나면 바로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던 조상님들ㄷㄷ
50년전쯤 서울 안암동로타리 에서도 옆동네하고 설날 다음날 돌싸움을 햇네요. 지금 잣대로 보면 ㅋ
예전 책에서 보고 너무 이해할수 없는 전통이라고 생각했었죠... 돌에 맞고 정신을 잃고 불구가 되고 수십명이 머리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고~ 자기 아버지 아들이 죽어있어도 시신을 밟고 또 돌을 던지고 되도록 큰돌을 던지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었다고 하던데~~ 이렇게 경기가 끝나고 나면... 수많은 시신들을 거리에 널부러져 있었다고 하던데~ 이건 흑역사라고 생각합니다..
화약의 생산량이 매우 빵빵했더라면...(예를 들어 한반도에 초석광산 같은게 있었더라면..) 대규모의 척탄병을 운용했을 것 같습니다. (...무서워!)
그런의미에서 이번요리는 짱돌찌개 ᵔᴥᵔ
어떠실까요\\( •̀ω•́ )//
새로운 얘기들 몰랐던 역사적 이야기 흥미롭네요 고양이 여전히 귀요미
ㄹㅇ 조상님들의 시대는 약한자들은 살아남을수 없던 시대였구나.......
근데 왜 약한자 짓밟아준 일본한텐 아직까지 열등감이 있나
@@아바사이공에휴 놀이랑 정복이랑 구분 못하는사람도 있네 ㅋㅋㅋ
@@아바사이공일본도 메이지유신까지 석합전이란게 있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농촌에서는 1980년대까지도 정월대보름밤에. 이웃마을과 돌싸움을. 하는 풍속이. 남아있었어요 .
몇백년 전 그대로인게 너무 신기하네요.
근데 현대에도 헬멧+보호구 차고 콩주머니나 모래 주머니로 바꿔서 하면 재밌겠다ㅎㅎ서바이벌 경기장이나 규격화된 넓은 곳에서 하면 좋을 듯
@송재빵 그래봐야 멍이나 들겠지 뭐 할만 할거같은데?
비슷한 거 : 눈싸움
규격화해서 간소화한 것 : 학교에서 운동회 때 콩주머니인가 던져서 박 터트리는 거
ㅋㅋㅋ
@@kyj894 눈에 돌넣으면 그게 석전이지
모래주머니 중량 잘못잡으면 늑골정돈 가볍게 부러질 것 같다
사타구니 맞추게 금지
오늘날 기술이랑 합쳐서 스포츠로 만들수는 없을까싶네 ㅋㅋ 꿀잼일듯
사실 요즘에도 군사훈련할때 실탄을 쓸수가 없으니 공포탄을 장전하고 송수신기를 붙여서 명중여부를 판별하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직계후손은 아니지만 서바겜이 가장 비슷한듯 ㅋㅋㅋ
동티모르공화국 출신인 제가 너무 졷습니다ㅎㅎ 존경할만한 ㄹ한국문화!!
혹시나 오해하시는 분이 있을까봐 말하는데, 돌을 던지는 '놀이'는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었습니다. 한반도에서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그래서 투척무기가 발달 되었습니다
@@두부-r2c 일본에서는 투석이 공성에 도움된다해서 다이묘가 권장했다하고, 중국은 저런 석전이 아니라 계투라고 연장들도 패싸움하는 풍습이 있었다네여 그리고 스페인에서도 존재했다고 나무위키에서 그러네여
@@두부-r2c 토마토 축제의 근원도 이런 돌싸움에서 비롯됬다는 말을 들은 적 있어요.
@@Min__Woong 아.. 다 좋은데 나무위키라 좀 그러네요
에이 뭘 아즈텍에선 사람 머리도 던지고 놀았는데 ㅋㅋ
석전은 없어진 게 아니라 눈싸움과 물풍선 등등 던지는 수단만 바뀌었을 뿐이다. 던지는 물건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
차이가 있다면 눈싸움과 물풍선은 맞으면 재밌지만 석전은 맞는 즉시 사망......
사람 맞고 대가리깨지고 죽어도 아무상관도 안쓰고 계속했단거보면 아무리봐도 전혀 다른데
맨끝에 뜨는 영상 목록중에 "원딜의 민족"이 써진거 보고 뿜었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PC방에서 부모님 안부물어가며 게임하는 우리민족성이 여기서 나온것이군요 !!!
해방 후에도 종종하기도 했답니다. 현재 운동회 오재미 박터트리기도 석전의 변종이 아닐까 싶기도...
전통문화라고 다 도움되는 것은 아닙니다...
짱돌을 빠르게 던지면 사람 정강이 정도는 우습게 작살낼 수 있어요.
@GeonWoo Do 맞기는 하지만... 적어도 현 시대에서는 위험성이 더 크다고 봅니다.
옛날에는 인권의식이 희박해서 남의 목숨 고통에는 가벼웠지..
하나의 문화일뿐 그걸 현대 사상과 비교하는건 무식함
반만년 원딜 노하우를 딴 나라 사람들이 따라잡기 힘들다는... ㅋㅋ
원딜특화라 수성전에는 강했으나 벌판 기동 회전에서는 얄짤없었다는 ㅎ
@@kiyongkim7651 한국에 평지가 있어야죠 ㅋㅋㅋㅋ
규칙은 야만적인데 스포츠맨십은 뛰어난게 킬포ㅋㅋㅋㅋㅋㅋ
규칙이 천박하네......
역시 동방예의지국(웃음)
@@성이름-l4q1z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놀이는 달라지는건데.. 이것도 생각 못하는거보면 생각이 깊진 않으신가보네 ㅋㅋㅋㅋ
@@charleslee5880그거 중국이 조선은은 명나라한테 예의가 바르다고 해서 만든건데
내가 만약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른되기전에 석전꾼이 던진 돌맞고 골로 갔을듯 ㅋㅋ
이건 사라져서 잘된듯 만약 지금까지 있었다면 명절마다 친척 식물인간 만들었다는거 후기글로 많이 나왔을테니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 민족이라고 배웠는데 석전을 보니까 호전적인 민족 맞네요.
그 투석전으로 외국을 침량하는 행위는 하지 않았으니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은 맞죠?
11살된 울막내아들이 태권도학원서 금요일마다 개최하는 피구놀이에 진심인 이유가... 이거였구나.. 원래도 그랬지만 이제는 더더 적극적으로 응원해줘야지~❤
조상님들 리스펙 ㅋㅋㅋㅋ 눈싸움도 아니고 돌싸움이라니 강인하다…
그렇게 강인했으면 침략만 당하고 살지 않았겠죠^^ 팀킬의 민족
걍 미개한 아프리카 토인 수준들이었구만 뭘 ㅋㅋㅋ
@@tRhOeOoSdEoVrEeL 강인하니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가 있었죠
@Ted C 강인하니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가 있었죠
@@tRhOeOoSdEoVrEeL티베트.위구르 보고 느끼는 거 없냐 ㅋㅋ 양심없는 중화문명 옆에 끼고 수천년 동안 정복전쟁으로 흡수 안 당했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여기가 일본처럼 섬나라도 아니고
마을단위로 석전을 하면서 재밌게 놀았다니 가슴따뜻하네요 ㅎㅎ
그래서 진 마을은 이긴 마을에 공물을 바쳤나요?
너무 위험한 놀이이지않나 거의 콜로세움급..ㅋㅋ
아니.. 이거는 보고도 안믿겨지는 영상이네
행주산성 전투도 마냥 임기응변이 아니었다
그게 제일 손에 익은 무기였을 뿐이지…!!
근데 고대 중세는 진짜 생채기로도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시절인데
저렇게 목숨 내놓고 진심으로 놀았다는 거 진짜 미친 것 같음 ㅋㅋㅋㅋㅋㅋㅋㅋ
조선판 퍼지 였네요 ~나에게 오라 였나 박상민 나오던 영화에서도 석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석전영상보니깐
일본 지역축제중 통나무타고 분노의 질주를 하는 축제가 있는데
목숨을건, 부상위험이 큰축제,놀이에 관련된 영상은 어떨까요
8:00 석전금지로 성난 조상님들
참고로 이거 지방은 70년대 중후반에도 있었어요 70년생 아버지가 직접 경험하심
중간에 잠깐 나왔지만 마을간 , 지역간 경쟁심을 유발하기도 헀고 마치 지금의 프로스포츠 지역 구단 마냥 평양이나 안동이 석전으로 전국적인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고 함. 열기가 어느정도였냐면 패배한 마을의 선수들은 마을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노숙을 하기도 했고 머리에 석전으로 인한 흉터가 없다면 남자 취급도 못받았다 하는 소리도 있을정도
의외로 다른 나라들도 석전 역사가 많더라
농경 국가 특징인 것 같기도...
일본도 메이지유신까지 석합전이란게 있었다 유신이후에도 일부시골에 남아서 일본 할아버지들중에 기억하는 사람도있음
중국은 계투가 있었음.
동아시아전쟁은 공성전이나 투석전 의주니까 일종의 연습이라고 권력자들도 놔둠 ㅋㅋ
어릴때 눈오면 하던 눈싸움이 석전의 한 형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이제 눈싸움도 옛날이야기가 되어가네요..ㅎㅎ
눈싸움은 대한민국에서 겨울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절대 사라지지 않을겁니다. 걱정마세요.
나름대로 규칙이 있었다가 한번 제대로 금지되니 전수가 끊겨서 노룰전이 되어버렸고 선넘다보니 사라진거군
게임 강국의 비결...ㄷㄷㄷ;;
모든 장정들에게 충분한 병기를 들리기엔 비용이 많이 들어 전투력은 후달리지만 싸다는 장점이 있는 석전이 장려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사회적 분노를 상층이 아닌 수평부의 다른 경쟁자로 대치하는 것 어떤 시대나 공통인 것 같고요. 전시에 주력을 차지할 수도 없고 부상자가 많아 세종처럼 일찍 없앴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물론 부상에 충분한 변형이나 보조장비가 있었다면 괜찮겠지만요. 중근동이나 유럽에도 석전병? 들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거기서 좀더 발전적인 게 투석구, 슬링 등으로 불리는 도구를 사용하는 방식이죠. 슬링은 정확성을 올리려면 상당한 연습이 필요했지만 꽤나 대미지가 강력해서 궁병을 어느 정도 보완하는 수준까지는 됐다고 합니다. 다윗이 사용한 무기가 슬링이죠. D&D등 각종 롤플레잉 게임에도 자주 등장하는 초반용 무기이기도 합니다.
난 40대인데 나 어릴때 "돌싸움" 이러면서
편 나눠서 돌던지면서 놀았는데
주로 한쪽 편에 애 얼굴이 터져서 피나서 울면
게임 끝남
겨울에는 똑같은 규칙으로 눈싸움했었고...
이게 전통 놀이었다니... 헐 이제 알았네
어쩐지 동네마다 돌싸움 그러면 잘 알더라
되게 과격한 놀이였네요 ㄷㄷ
ㄷㄷㄷㄷㄷ
이 짓거리를 20세기에도.. 진짜 답 없는 민족이다
@@4885-i5r영원한 꿈...
이럴줄 알았어.... 어쩐지 왜 우리나라가 게임에 목숨거는지 이제 알아버렸다!!
옛날부터 걸었던거였음 ㅋㅋㅋㅋ
잘못하면 뒤지니까
퍄퍄킴님 영상 보는맛에 요즘 살아요 진짜..^_^
임꺽정의 부하들이 대단한거임. 쇠도리깨 마스터랑 석전마스터랑 축지법 마스터가 있으니...
역시 옛날 부터 게임 만큼은 전투의 민족 ㅋㅋㅋ
강 건너 돌 구경
근데 조선에 수류탄이 있었다면 석전꾼들은 전쟁 영웅이 되는 건가
원래 구독자이긴 한데 침튜브 풍님과 석전썰 이야기 보니 이게 떳네요 ㅋㅋ 못봤던건데 보고 갑니다 ㅋㅋ
돌 조가치 던지네 = 게임잘하네 ㅋㅋㅋㅋㅋㅋㅋ 조상이나 후손이나 ㅋㅋㅋㅋㅋ
역시 원딜의 민족... 돌던지기 빠지면 섭하지ㅋㅋㅋㅋㅋㅋㅋ
결투의 역사 해주실 수 있나요?
서양은 꽤 있는데 동양은 많이 없더라구요
동양의 결투 문화 하면 일본의 부레이우치 문화가 유명하죠
삼국지연의 관련 코에이 사에서
만든 게임의 결투 일기토
결투하면 동양이 더 많은데요. 사무라이 칼싸움처럼 제식화된 칼싸움 결투가 대표적이고 삼국지 일기토도 엄청 유명하고
이런문화가 계승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댓글로 남겨주세요 오늘 6일이니까 14번 일어나서 발표해볼까요?
이런거 볼때마다 조선시대가 미개해보임
우리 문화가 별로 좋게 생각되지가 않는다
교과서에선 뭔 동방예의지국 문화 깊은 유교국가마냥 알려주더니 알면 알수록 미개하고 뭣도 없었던 조선시대..
왜곡이지 뭐 ㅋㅋㅋ
역사적으로도 우리 민족은 원거리 딜에 능했다.
그 석전으로 달리는 기차에 돌을 던져서 하로부미를 두번이나 머리를 맞춘 사건 ㄷ
역시 우린 전투민족 게임에 진심인 나라
각 고대문명마다 투석병이 정규편제였던 것 외에도, 인류가 창과 활을 만들기 이전부터 대형 육식동물들과 경쟁할 수 있었던 것도 오직 인간만이 가진 투척능력 덕분이라고 카더라
누구야... 누가도 쓸데없이... 돌을 던지느냐...?
모르고 당신은 던졌다지만... 내가슴에 멍이 들었네.....
오은주가 부릅니다 돌팔매
강한자만 살아남는 전통놀이...
고양이 역사채널은 참을 수 없지
ㄹㅇ 원딜에 환장하는 민족ㅋㅋㅋㅋㅋ
우리 어렸을때
옆동네애들과 연탄재를 깨서 돌처럼 던졌는데
ㅎㅎㅎㅎㅎ
정말 재미 있었는데 ㅋㅋㅋ
3.1운동에 안동에서 일본경찰들한테 주민들이 짱돌을 던졌다는 소문이 있네요ㄷㄷ
7:43 심지어 어떤 외국인은 총을 쏴서 반격했다가 성난 군중들에게 쫓겨 겨우 피신했죠. 출처-릴리아스 호튼 언더우드, 상투의 나라
석전이 규모가 생각보다 엄청나게 컸네요. 룰도 있었다니 놀랐네요.
75년생입니다. 유치원 때 윗반 아랫반 석전을 자주 했던 기억이 나네요. 어쩌다 석전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선생님들이 겨우겨우 말렸으나 벌은 받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실제로 재현하는건 무리지만, 석전을 모티브로 한 FPS 게임을 만드는것도 나쁘지 않을거 같해요..!
뭐, 탄은 다 돌맹이지만... 그래도 매질꾼/석전꾼이라는 분화도 있고, 돌 투척 방식을 세분화해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잡아도 좋을거 같고...
그것도 아니면 석전을 소재로한 디펜스/오펜스 게임이라던지...
석전의 대한 정보 감사합니다!😆
사이드로 던져서 커브넣는 캐쉬 석전꾼을 판매합니다
@@seongryeolcho375 그냥 돌만 던지는거 보다는 오버워치 점령전 스타일로 방어팀vs공격팀으로 싸우는 방식으로 하는걸로 생각했었어요.
그냥 돌만 던지는 대신, 무릿매(슬링, 돌 던지는 도구)나 돌주머니 등으로 돌 소지량 및 투석 사거리를 늘리거나, 더욱 좋은 방어구로 받는 피해를 줄이거나 하는 식으로...
그게 아니면, 냥코대전쟁 비슷하게 투석꾼(원거리 공격) 계열 유닛과 매질꾼(근접 공격) 계열 유닛을 수집/생산하여 적 성을 파괴하고 스테이지를 하나씩 클리어해가는 디펜스형 게임으로 나오면 어떨까 했지요
총게임보다 재미없어서 도태될듯....
일전에 손노리 라고 화이트데이 만든회사에서 오재미 라는 이름으로 석전 비슷한 게임을 내기는 했었어요. 콩주머니로 상대방을 맞추거나 상대방 진영에 있는 박 터뜨리는 겜이었는데 재미가 없었고 멀티가 힘들다는 이유로 사장됐었습니다.
@@seongryeolcho375 의외로 fps게임의 메인컨텐츠가 아니라 서브컨텐츠면 할지도 ㅋㅋㅋ 대놓고 하라면 싫어하는데 부수기능으로 두면 서든 칼전처럼 하는 거 아닐지 ㅋ
돌팔매질도 역사가 깊었군요..!ㅇㅇ
이게 봉천동 석전의 유구한 역사구나
ㅋㅋㅋㅋㅋㅋ
진짜 미친역사였고 악습이었던거같네요
꼴에 저걸 풍습이랍시고 놀이라하다니...
게다가 석전의 목적도 사상자를 내기위함이라니 정신나갔죠
목적이 사상자를 내기 위함이라고 누가 그래 ㅋㅋ
일본도 메이지유신까지 석합전이란게 있었다 ㅋㅋ
중국은 계투가 있었다. 그러므로 님논리면 한중일은 근대화 전까지는 다 미개하다 ㅋㅋ
60년대까지 정월대보름밤에 이웃마을에 처들어가 투석전을 했는데
석전 이야기는 들었는데 사진보니까 그냥 손으로 돌린게 아니라 끈 투석기로 던졌네요 ㅎㄷㄷ 손으로 던져도 아픈데 투석기로 던지면 직타 맞으면 죽었을텐데
어릴 때 시골에서 마른 논에 들어가 친구들이랑 편 먹고 진흙이 굳은 흙탄 던지고 놀았는데.. 나름 흙으로 성도 쌓아서 방어도 하고 놀았는데 그것도 석전의 일종이라 할수도 있겠네요. 맞으면 흙탄이 터져서 얼굴에만 안 맞으면 크게 다치진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눈 같은 곳에 안 맞아서 정말 다행..
그건 재밌겠네요
행주대첩 때 돌을 던지고 싸웠다는 이야기가 괜히나온게 아닌 듯
정말 원초적 본능의 게임인거같다. 돌 던지고 맞추면 쟤는 아프겠지만 나는 안아픈 그런 게임 ㅋㅋ
저 50대초반… 어릴적 포항동네에서 투석전 하는것 구경하다가 코에 돌맞아서 피 철철 흘리며 병원 실려간 기억이 있습니다….
나름 안전에 유의해 페인트볼같은거로하고 서로 깃발뺏는식으로 하면 현실 aos느낌으로 재밌을듯
아니면 종이를 뭉쳐서 만든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저런문화가 있었는지 첨알았네요. 소싯적에 길건너 마을애들이랑 돌던지면서 놀았던기억이 있네요 참으로 무식한놀이였는데 저게 하나의 문화였다는게 소름돋네요 ㅎㅎ
솔직히 이런게 있었는지는 이정도로 전통인지는 진짜 몰랏ㅆ..😨🙀
진짜 약하면 살아 남을 수 없는 세상이었네.. 저런 시대를 살아남은 사람들만 남아서 다들 한 성질 하는 건지..
쏘고 던지고 맞추는 데엔 따라올 자가 없는 원딜의 민족
저 풍습이 남은게 요새는 잘하지 않지만 오재미??라고 하는게 있었죠
조상님들은 굉장히 전투적이었던게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