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선조가 지시한건 경복궁 재건에 대한 견적을 뽑아오라는 것임 즉 본격적인 착공 전에 비용과 시간이 얼마나 소요되는지 파악하라는 것 그러면서 아쉬운대로 월산대군집에 지내면서 창덕궁을 고쳐서 썼음 나라 형편이 워낙 안좋으니 이 창덕궁 리모델링도 한참 걸려서 광해군 3년이 되어서야 끝남 문제는 여기서 어느정도 마무리 해야 할 궁궐 건축이 광해군 이후부터 완전 산으로 가버림 창덕궁에 요괴 나온다고 월산대군집을 리모델링 + 확장공사 해서 경운궁이란 이름까지 붙여 정식궁궐로 삼더니 인왕산 밑에 대규모로 인경궁 건축하고 동생 정원군 집 뺏어서 경희궁 지어버림 거기에 파주천도 계획까지 세웠다 무산되기도 함 실제 당시 기록을 보면 광해군 9년 전후로 유랑민이 급증하고 특히 궁궐에 목재를 조달해야하는 경기동부와 강원도는 인구가 반토막났음. 광해군 궁궐공사가 뭐 선조가 원인제공했니 어쩌니 하는게 완전 개소리란 증거
선조 양난 이후 경복궁 재건을 최 우선 목표로 했습니다. 하다 보니 너무 소실이 많이 되어 무에서 유를 창조 하는 수준이라 비용 문재와 한옥 목재 건출물 특성상 건축에 들어 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터라.. 당장에 본인 살 궁이 없기에.. 피해 적었던 창덕궁을 중건 하는 방향으로 바뀌었고.. 이 창덕궁도 선조 죽고 광해 즉위 이후에야 중건 됩니다. 저 광기 모습 보이며 고혈 빨아 경복궁 및 각종 궁 건립도 들어 갔고.. 이 뻘짓에 광해군 재임 시절 광해군이 민심으로 부터 외면 받는 결정적 원인 된듯 합니다. 선조가 살아서도 그리 방해 하더니.. 죽어서도 광해 앞에 뚱물 뿌려 버린 거죠.. 목조 궁에 사용될 목재 다스리는데 벌목부터 부재로 사용 되기까지 전통 방식이 7년 걸립니다. 이러기에 많은 수의 서울내 양반 댁 고택 허물었단 기록이 있고 상당수 피해 봤던 양반들이 인조 반정시 광해군 반대 세력으로 등극 하죠... 선조의 저 광기는 거짓은 아닌듯 합니다.. 기록의 민족이라.. 광해군때 선조가 시작한 각종 궁 공사 끝마친거라.. 사업 마무리 했다고 비난 하는건 좀 아닌듯 합니다.
@@수원토끼 세종 대 크게 정비되었던 경복궁은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선조(宣祖)가 한양을 떠난 사이 완전히 불타버렸다. 이때 창덕궁과 창경궁(昌慶宮), 종묘(宗廟)도 모두 불에 타버렸기 때문에 임진왜란이 끝나고 1605년(선조 38) 중건 대상으로 논의되었던 궁궐은 경복궁이었다. 궁궐을 중건하기로 논의가 모아진 직후인 1605년 11월 궁궐영건도감에서 경복궁의 정전 구역을 먼저 착공하기로 결정하면서, “조종조(祖宗朝)의 법궁(法宮)”이 경복궁임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착공을 하고 공사가 진행되자 인력과 물자의 투입이 과도하니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었다. 이런 가운데 선조는 승정원에 국초에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경복궁을 영건할 때 신료들의 논의와 술사들의 의견을 빠짐없이 조사하여 보고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때를 전후하여 경복궁은 불길하니 창덕궁을 영건해야 한다는 술사의 주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경복궁 대신에 창덕궁을 중건하기로 결정하였다. {우리 역사 넷} 이란 싸이트에 적혀 있는 글입니다. 궁 중건 시작은 선조가 했습니다. 디져서 마무리를 광해군이 하게 된거죠.. 양난으로 나라 거덜 나 있고.. 백성들 궁핍해져 있을때 선조가 말년 광기를 보인거죠..
경복궁 재건한 적 없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넘이고... 세금감면은 했는데.. 서민걱정할 인간이 아닙니다........ 사람됨됨이가 이순신, 의병장 질투해서 죽게 만든 인간은 분명하고... 나라 버리고 명나라에 망명할려던 넘 입니다... 그런 인간에 충분히 맞는 내용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ㅈㄴ 웃겨 영화아님이거?? ㅋㅋㅋㅋ 그래서 김덕령도 김자령으로 나오고, 실제 천영이 존재했을리 만무한데… 걍 감독이나 작가가 선조 안티팬이구나보면되지… 다큐도아니고 영화인데 잘못된게 있다거 말하려면 다끄집어내서 이야기해야죠 걍 역사적 사건에 기초한 영화 정도로 생각하면될것같네요
궁궐병은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서 했음. 아비 선조도 전쟁 중에도 궁궐 지을 생각을 했다가 전란과 주변의 강력 반대로 철회했습니다. 전쟁끝 난 이후에 본격적으로 궁궐 복원 공사를 지시했는데 먼저 정궁인 경복궁 공사 부터 시작했습니다.여러가지로 사전조사와 기초공사를 시작했다가 엄청난 물량이 예상되어서 신하들의 강력 반대로 선조는 포기했습니다.저 영화에서경복궁에 집착하는 선조의 모습은 어느 정도 사실입니다. 결국 창덕궁 공사부터 시작하여 광해군 원년인가 1년인가에 결국 공사가 끝났습니다. 조선의궁궐은 왕이 거주하는 공간인 동시에 정사를 보는 장소라 협소한 관계로 어느 정도 궁궐 공사를 해야 할 필요성은 있습니다. 하나의 궁궐이 있으면 또 다른 궁궐을 지을 필요가 있나 싶겠지만, 전문가들이 떠드는 소리 들으니 어느 정도 필요성이 있다고 하네요. 어째든 광해군의 궁궐 복원 공사는 어느 정도 필요한 것고 , 문제는 그 속도전에 조선 재정이 힘이 부친다는 점입니다. 결국 그게 궁궐에 너무 집착한다고 해서 궁궐병에 걸렸다고 수근 거림이 있었고. 광해군은 경복궁을 제외한 조선의 궁궐은 왠만큼 중건하여 후대 임금이 처할 상황을 자기 대에서 마무리했습니다.
@@Compatriots-o5c 광해군이 암군 소리를 들으려면 조선왕조 22명은 암군이라는 말. 인조 21년 대사간 유백증(서인)은 인조에게 이렇게 상소합니다. "이 때문에 천재와 시변이 광해에 비하여 더욱 많고, 흉년이 드는 일이 광해에 비하여 더욱 심하고, 인심이 원망하고 능멸하는 일이 광해보다 더욱 깊으며, 세 차례의 병화(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는 광해에게는 없고 전하께서는 당하였으니, 장래의 환란이 필시 이 정도에서 그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렇다면 당초에 거의할 이유가 뭐가 있었겠습니까." 한마디로 광해군보다 인조와 반정세력이 잘하는게 하나도 없으면서 이럴꺼면 왜 쿠데타를 일으켰냐고 당시 대사간이었던 신하가 팩트 폭행했죠.
선조는 궁궐의 일부를 수리해서 사는 수준으로 썼음. 본격적인 궁궐공사는 광해군으로 기존의 궁궐터 복구, 수리 뿐만 아니라 확장까지 했음. 이 와중에 화약 만드는데 써야할 염초를 기와장 만든다고 빼돌렸음. 그리고 사르후 전투는 보급을 방치하면서 원정군이 전사하는 날까지 고통을 주었음.
미쳤구먼 오히려 전란 이후 피해 복구 과정에서 대신들 등 주위의 강력 반대로 궁궐 보수 역사 계획을 확실히 중단한 게 선조였고 후에 즉위해서 주위 무당 점술인 등 요설과 사술등에 홀려서 무리하고 무식 수준으로 궁궐 보수와 신축을 무리하여 단행하고 강행한 게 광해군였는데 억지로 미친 듯이 역사 왜곡해대지 못해서 안달들이로군
광해군의 궁궐 공사가 역대 여러 왕들의 궁궐공사보다 부정적으로 부각되어 비난받는 것도 그가 쿠데타로 폐위된 왕이었기에 그의 문제점이 그로 인해 부각될수밖에 없었던 것이지 쿠데타로 폐위되지 않은 왕들의 궁궐 공사의 문제점이 균형적으로 부각된게 있습니까? 이래서 궁궐 공사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이런 편향적인 승패주의 논리에 좌우되어 문제될수밖에 없지요 게다가 광해군의 궁궐 공사가 진시황과 수양제처럼 민생 파탄을 끔찍하게 야기하는 수준이라면 백성들은 광해군에게 대규모 봉기를 일으켜서 저항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광해군 재위 기간 동안 광해군 정권에 반기를 민란은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지요 이런 점을 본다면 광해군의 궁궐 공사가 서인측 사관이라는 특정 사관에 따라 얼마나 견강부회적으로 부풀려서 부정 평가를 하는지를 알수가 있지요
맞습니다. 궁궐 공사를 시행한 왕은 태조, 태종, 세종, 성종같은 임금들도 궁궐 공사를 했습니다. 특히 세종대왕과 성종대왕조차도 궁궐공사문제로 신하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들었습니다. 조선임금 중에서 궁궐 공사를 안했던 왕은 손가락에 꼽을만큼 거의 없을 정도인데, 유독 광해군만 궁궐 공사로 폭군이다라는 프레임으로 가둡니다. 서인반정세력이 이런 것을 노리고 [광해군일기]에 궁궐 공사를 유달리 부풀리고 과장해서 기록했다고 봅니다. 세종대왕도 근정전과 사정전을 청기와로 제작했는데, 유독 광해군이 인경궁의 편전에 청기와 사용한 것을 문제 삼습니다. 반정세력들이 인경궁을 헐고 그 청기와를 그대로 지금의 창덕궁 선정전 지붕에 사용한 청기와 양을 확인할 수 있는데, 반정세력의 주장과는 달리 양이 매우 약소해 보입니다. 저 정도의 양이라면 함유된 염초의 분량도 얼추 가늠이 되는데, 서인들의 침소봉대 참으로 악의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경복궁 재건한 적 없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넘이고... 세금감면은 했는데.. 서민걱정할 인간이 아닙니다........ 사람됨됨이가 이순신, 의병장 질투해서 죽게 만든 인간은 분명하고... 나라 버리고 명나라에 망명할려던 넘 입니다... 선조의 그런 쓰레기 인간성에 충분히 합당한 설정입니다.
믿고보는 배우 차씨
차 차 차씨 연예인 이름을 대보자
실제 선조가 지시한건
경복궁 재건에 대한 견적을
뽑아오라는 것임
즉 본격적인 착공 전에
비용과 시간이 얼마나
소요되는지 파악하라는 것
그러면서 아쉬운대로
월산대군집에 지내면서
창덕궁을 고쳐서 썼음
나라 형편이 워낙 안좋으니
이 창덕궁 리모델링도
한참 걸려서 광해군
3년이 되어서야 끝남
문제는 여기서 어느정도
마무리 해야 할 궁궐 건축이
광해군 이후부터
완전 산으로 가버림
창덕궁에 요괴 나온다고
월산대군집을 리모델링 +
확장공사 해서 경운궁이란
이름까지 붙여 정식궁궐로
삼더니
인왕산 밑에 대규모로
인경궁 건축하고
동생 정원군 집 뺏어서
경희궁 지어버림
거기에 파주천도 계획까지
세웠다 무산되기도 함
실제 당시 기록을 보면
광해군 9년 전후로
유랑민이 급증하고 특히
궁궐에 목재를 조달해야하는
경기동부와 강원도는 인구가
반토막났음.
광해군 궁궐공사가 뭐 선조가
원인제공했니 어쩌니 하는게
완전 개소리란 증거
선조 인재보는 눈이 ㅆㅅㅌㅊ이었음
매수타이밍은 기깔나게 보는데 매도타이밍보는 능력은 ㅆㅎㅌㅊㅋㅋㅋㅋㅋㅋ
머리가 비상하고 붕당을 이용해 줄타기를 잘하는 타고난 정치꾼이었음. 그와 별개로 옹졸하고 겁이 많아서 전쟁나서 튈 생각만함.
@@짐승친구들-d9h 근데 도망친게 결과적으론 신의 한수였음
그당시에 조선은 국왕이 사로잡히면 모든게 끝나는 관점으로 보는 시대라서 한양에 남거나 싸우면서 물러나다가 잘못해서 사로잡히면 조선은 그대로 먹힐 운명이였음
@@61메테오 몽진이 잘못되었다고 뭐라 하는게 아니라 자기 나라 버리고 명나라로 망명가려고 한 걸 지적한거임. 해외 도피는 어떤 명분을 붙여도 정당화가 안됨.
이걸진짜라고 믿는다니..역사왜곡 심각하다
실제로는 광해군때 함 선조때가 아니라
차승원님이 광해군 배역도 했어서 ....
MBC 화정
했었음 드라마가망해서문제지
대동계 수장 배역도 했었지 ....
@@aaa................대동계 수장은 아니고 수장의 이름팔았던 이몽학 이었죠
실제 궁궐병은 아들 광해가 한거...
선조가 쓰레기같은 군주는 맞는대
하지도 않은 일을같다가 뭐라하는건 좀
궁궐병은 선조가 아니라 광해군인대
그러니까요 누가 좌빨감독 선봉장 박찬욱아니랄까봐 허위거짓 선전선동의 달인이네요
선조 양난 이후 경복궁 재건을 최 우선 목표로 했습니다. 하다 보니 너무 소실이 많이 되어 무에서 유를 창조 하는 수준이라 비용 문재와 한옥 목재 건출물 특성상 건축에 들어 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터라.. 당장에 본인 살 궁이 없기에.. 피해 적었던 창덕궁을 중건 하는 방향으로 바뀌었고.. 이 창덕궁도 선조 죽고 광해 즉위 이후에야 중건 됩니다. 저 광기 모습 보이며 고혈 빨아 경복궁 및 각종 궁 건립도 들어 갔고.. 이 뻘짓에 광해군 재임 시절 광해군이 민심으로 부터 외면 받는 결정적 원인 된듯 합니다. 선조가 살아서도 그리 방해 하더니.. 죽어서도 광해 앞에 뚱물 뿌려 버린 거죠.. 목조 궁에 사용될 목재 다스리는데 벌목부터 부재로 사용 되기까지 전통 방식이 7년 걸립니다. 이러기에 많은 수의 서울내 양반 댁 고택 허물었단 기록이 있고 상당수 피해 봤던 양반들이 인조 반정시 광해군 반대 세력으로 등극 하죠... 선조의 저 광기는 거짓은 아닌듯 합니다.. 기록의 민족이라.. 광해군때 선조가 시작한 각종 궁 공사 끝마친거라.. 사업 마무리 했다고 비난 하는건 좀 아닌듯 합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궁궐 재건은 광해가 시작했습니다.선조가 한게 아닙니다
@@수원토끼 세종 대 크게 정비되었던 경복궁은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선조(宣祖)가 한양을 떠난 사이 완전히 불타버렸다. 이때 창덕궁과 창경궁(昌慶宮), 종묘(宗廟)도 모두 불에 타버렸기 때문에 임진왜란이 끝나고 1605년(선조 38) 중건 대상으로 논의되었던 궁궐은 경복궁이었다. 궁궐을 중건하기로 논의가 모아진 직후인 1605년 11월 궁궐영건도감에서 경복궁의 정전 구역을 먼저 착공하기로 결정하면서, “조종조(祖宗朝)의 법궁(法宮)”이 경복궁임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착공을 하고 공사가 진행되자 인력과 물자의 투입이 과도하니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었다. 이런 가운데 선조는 승정원에 국초에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경복궁을 영건할 때 신료들의 논의와 술사들의 의견을 빠짐없이 조사하여 보고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때를 전후하여 경복궁은 불길하니 창덕궁을 영건해야 한다는 술사의 주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경복궁 대신에 창덕궁을 중건하기로 결정하였다.
{우리 역사 넷} 이란 싸이트에 적혀 있는 글입니다. 궁 중건 시작은 선조가 했습니다. 디져서 마무리를 광해군이 하게 된거죠.. 양난으로 나라 거덜 나 있고.. 백성들 궁핍해져 있을때 선조가 말년 광기를 보인거죠..
@@토공돌이-p4e3i 광해는 다른문제입니다. 결국 선조는 36년 비변사의 상소로 경복궁 중건을 중단합니다만 광해는 인경궁, 경희궁,자수원을 아예 새로 만들고 창경궁을 중수합니다. 선조와 바통터치를 한게 아니라 선조는 선조고 광해는 따로입니다. 선조는 창덕궁 창경궁 수리만 합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 이순신 장군님과 그 병사들, 의병들을 사내 괴롭힘 하고 태움 했는데 뭘 하지도 않은일 한일 찾고 앉았어...그냥 저 정도 왕이었다라는 메세지 전달 용이구만
오세훈이는 국기게양대를 만들려고 함.
@@윤건주-p5yㅋㅋㅋ 그전 박원순이 10년동안 시민단체에 돈 뿌리고 도시개발 다 중단시킨건 관심 없으시죠? ㅋㅋ 그런거 다 비서 성추행 사건으로 들어날꺼니깐 살자 하고 현충원에 이장되어있는데 그건 관심없죠? ㅎ
선조는 의병들도 충분히 대우 해줬음
있는 그대로 만들지 삼국시대 처럼 사료가 거의 없는것도 아니고 조선 역사로 무슨 판타지물을 만드냐..
과거에 광해 역할했다고 선조 역할에 분출하시네 ㅋㅋ
이 장면만 보면 사실상 화정 시즌2네 ㅋㅋ
거기서 차승원이 광해군 역할을 맡아서 그거랑 이 장면이랑 합쳐서 보면 역사적으로 더 설득력 있을듯 ㅋㅋ
심지어는 이몽학역도 하셨었음 ㄷㄷ
선조는 경복궁을 재건한 적이 없음 남아있는 궁을 수리해서 살았고 전후 세금감면하고 민심 신경은 썼음 저 부분은 허구임
경복궁 재건한 적 없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넘이고... 세금감면은 했는데.. 서민걱정할 인간이 아닙니다........ 사람됨됨이가 이순신, 의병장 질투해서 죽게 만든 인간은 분명하고... 나라 버리고 명나라에 망명할려던 넘 입니다... 그런 인간에 충분히 맞는 내용입니다.
@@lshflesh 그렇다고 하지도 않았던 일을 마치 했던 것처럼 표현하면 그것도 좀 잘못되긴했죠.......
@@lshflesh아무리 한심해도 날조는 새꺄ㅋㅋ
너도 똑같은 인간 되는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ㅈㄴ 웃겨 영화아님이거?? ㅋㅋㅋㅋ 그래서 김덕령도 김자령으로 나오고, 실제 천영이
존재했을리 만무한데… 걍 감독이나 작가가 선조 안티팬이구나보면되지… 다큐도아니고 영화인데 잘못된게 있다거 말하려면 다끄집어내서 이야기해야죠
걍 역사적 사건에 기초한 영화 정도로 생각하면될것같네요
@@애옹이-j8c 그럼 왕도 허구의 인물로 했어야....
궁궐병은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서 했음. 아비 선조도 전쟁 중에도 궁궐 지을 생각을 했다가 전란과 주변의 강력 반대로 철회했습니다. 전쟁끝 난 이후에 본격적으로 궁궐 복원 공사를 지시했는데 먼저 정궁인 경복궁 공사 부터 시작했습니다.여러가지로 사전조사와 기초공사를 시작했다가 엄청난 물량이 예상되어서 신하들의 강력 반대로 선조는 포기했습니다.저 영화에서경복궁에 집착하는 선조의 모습은 어느 정도 사실입니다. 결국 창덕궁 공사부터 시작하여 광해군 원년인가 1년인가에 결국 공사가 끝났습니다. 조선의궁궐은 왕이 거주하는 공간인 동시에 정사를 보는 장소라 협소한 관계로 어느 정도 궁궐 공사를 해야 할 필요성은 있습니다. 하나의 궁궐이 있으면 또 다른 궁궐을 지을 필요가 있나 싶겠지만, 전문가들이 떠드는 소리 들으니 어느 정도 필요성이 있다고 하네요. 어째든 광해군의 궁궐 복원 공사는 어느 정도 필요한 것고 , 문제는 그 속도전에 조선 재정이 힘이 부친다는 점입니다. 결국 그게 궁궐에 너무 집착한다고 해서 궁궐병에 걸렸다고 수근 거림이 있었고. 광해군은 경복궁을 제외한 조선의 궁궐은 왠만큼 중건하여 후대 임금이 처할 상황을 자기 대에서 마무리했습니다.
추천 100개 드리고 싶은 인사이트 글입니다.
와......후덜덜덜...... 게시판에서 볼 수준의 글이 아니다.
@@강병록-s2c 선조는 간청하면 듣기라도 했지 광해이놈들 신하들이 도저히 안된다. 하니 강행 둘중 하나만 짓자해도 안돼
아니면 하나라도 일단 짓고 그 다음에 보자해도 안돼 그냥 미신에 미친놈 맞았음 ㅌ
필요는 무슨 창덕궁 하나만 있으면 되지 명이 사르후 전투 조선군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주라고 준 돈까지 몽땅 궁궐공사에 투자한 그 암군 광해군이?
@@Compatriots-o5c 광해군이 암군 소리를 들으려면 조선왕조 22명은 암군이라는 말.
인조 21년 대사간 유백증(서인)은 인조에게 이렇게 상소합니다.
"이 때문에 천재와 시변이 광해에 비하여 더욱 많고, 흉년이 드는 일이 광해에 비하여 더욱 심하고, 인심이 원망하고 능멸하는 일이 광해보다 더욱 깊으며, 세 차례의 병화(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는 광해에게는 없고 전하께서는 당하였으니, 장래의 환란이 필시 이 정도에서 그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렇다면 당초에 거의할 이유가 뭐가 있었겠습니까."
한마디로 광해군보다 인조와 반정세력이 잘하는게 하나도 없으면서 이럴꺼면 왜 쿠데타를 일으켰냐고 당시 대사간이었던 신하가 팩트 폭행했죠.
선조를 과하게 찌질하게 해놨으니 영화로서 캐릭터 보여주려는건 알겠다면 이러면 광해 궁궐병 가져가는것 같아보인다고 생각한 부분이네요 ㅋㅋ
저런것들이 지금도
선조가 업이 많아 환생하니.
섬에 갇혀 삼시 걱정을 하게되는데...
하다 하자 삼각주 옆 드래곤마운틴ㅇ까지 거주 하시죠
선조가 쓰레기라고 평가되고있지만 저러진않았음. 역사에 픽션과 허구로 왜곡된 인식을 갖게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지양해야함.
정~자도~ 큼지마악하게 지어쓰면 조껬코!
으으으으 은희야 나 돈좀 빌려줘 😅
마법사의아들 코리에 나오는 마왕닮았다
실제로는 선조는 궁궐 재건 최대한 자제하며 살았고 궁궐병에 걸렸던건 광해군 ㅋㅋ
근데 광해군도 경복궁 중건하다가 나가리됌ㅋㅋㅋ
광해군:난 경복궁 중건한 적 없는데...
경복궁은 흥선대원군때 재건함
대만인아 니들 황제들도 사치향락 관리들도 수탈 겁나 했으면서 다른척 오진다~~
명나라 황제도 충신 죽이고 청나라 황제와 만주귀족들도 사치하고 백성 수탈한건 사실인데?
@@Trex143 궁궐 짓는 중에 정신못차리고 경복궁 재건이야기 꺼내긴했음 물론 반대가많아서 조용히 사라짐
.... 아무리 픽션 이라 해도 이건 너무 역사왜곡 이다 이거 보고 믿는 사람이 너무 많은것 같아서 쫌 그렇네요 선조가 잘한건 아니지만 선조가 안한 것 까지 다 선조가 했다고 하는건 쫌
이놈에 영화드라마들이 역사를 이상하게 보여줘가지고 선조는 개폐급암군으로나오고 광해는무슨 세종 정조 다음가는 성군으로묘사하고 에휴 선조랑 인조를 같은 급으로보질않나 아이고
그래도 인조보단 선조가 그나마 낫다보는데..ㅎㅎ
선조 폐급 암군맞는데?
선조가 상대적으로 수완이 있는건 맞는대
욕먹어도 쌀 쓰레기인것 또한 사실
@@Xbbcs광해도 마찬가지임 정예병 보내서 후금한테 개쳐맞고 온걸 중립 외교라 하질 않나 그냥 미화 ㅈ됨
진짜 폐급 암군은 고종같은 새끼고 선조는 평타 이상이 맞음
실제 저런말을 했으니 참.
선조는 실제로 저런 적 없음
@@Trex143니가 어케 암?
@@cs-cw6vt ㄴㄴ 선조는 전쟁 이후에 오히려 민심을 위해서 노력했고 오히려 아들인 광해군이 궁궐 재건에 더 신경썼다고함 실록에 기록되어있음
@@wyangga 니가 암?
@@cs-cw6vt 넌 그냥 암덩어리
띵동😂😂😂
실제로 궁궐중건에 힘쓴건 광해도 만만치 않지...
그게 걀국 민심 잃어버린 원인이 됐으니
오히려 선조는 안했음 광해군때는 전란이 끝난지도 수십년이 되었는데 궁궐재건 논의가 아예 불가한 건 아니었지
@@fislen-e1d뭔소리임 광해군 즉위때 전쟁끝난지 10년이었음
사람이 재능은 있는데 그릇은 작고 권한은 크면 선조가 됨. 그냥 어디 정승집에서 태어나서 관리로 살았으면 참 잘했을텐데 ㅉㅉㅉ
조 뾰족모자 근거있는 모자인가
캐스팅시 지대로 된건가? 조선시대 사람들이 190센티노 ㅋ 160넘는 사람도 드물던 시대에
아니 외적의 침입을 못 막고 나라를 버리고 튀었는데, 다시 왔는데 또 쟤한테 나라를 맡긴다고??
임진왜란은 조선이 이긴 전쟁임
선조가 수도 버리고 도망간건 잘한 판단임 요동으로 튀겠다고 징징거린건 욕먹을만 하지만.
그때 당시 전국시대 겪은 정예병 20만을 어떻게 미리 막음
왜적
ㅋㅋㅋㅋㅋ 아니 막말로 그때 선조가 안 튀어서 왜적한테 잡혀 죽었으면 우린 지금 일본말 쓰고 있을텐데?
전쟁을 감성으로 생각하면 안되져 ㅋㅋㅋㅋ
선조가 아니라 그 어떤 명군이 와도 쉽게 이기기 어려웠던 전쟁인데 무슨 선조라서 처발린것처럼 말하냐
선조가 안 튀었으면 그대로 조선 멸망이였어
먼훗날.. 외국인관광객 유치까지 내다본 선조의 안목...
궁궐 쳐지어싼건 광해군 저작자임
중원에 온 사신들도 우리 궁궐보다 어떻게 조선 궁궐이 왜 이렇게 넓냐 ㅡㅅㅡ 이럴정도 ㅋㅋ
@@Movie-Photo ㅡㅅㅡ 표정 ㅋㅋㅋㅋㅋㅋㅋㅋ
꼭 거니 굥 보는 느낌
ㅁㅊ 선조. 화난다
실제는 창덕궁만 재건하고 거기서 그침
궁궐 집착은 광해군이지
우리나라 사극보면 광해군을 무슨 비운의 왕으로 묘사하고 선조, 인조를 아주 정박아로 취급함
인조 정박아 짓 한 건 맞음
선조 인조 정박아 맞지.
@@고고-o6d선조는 왜란기에 비열하고 음흉해서 그렇지 왜란 전하고 왜란 후에는 성군이었음.
? 저거 아닐텐데 선조가 왜란후에 저랬었나?
ㄴㄴ 광해가 저랬음
픽션이 섞여 있어요
전혀 반대였어요 경복궁은 광해군때 세웠고 선조는 오히려 축소해서 작은규모 창덕궁 건설했죠 노비면천도 선조가 다해줬구요 저영화 완전히 반대인물로 만들어서 선동하는겁니다
어자피 다 차승원임
ㄴ이병헌 아님?
저런 아비에게서 고통받고 살았는데
광해가 선군에서 미친놈이 되는게 당연하지
광해군이 한 짓임 저건
궁궐에 집착한건 광해임
역사 왜곡된 걸 보고 감정이입하네...
선조 광해 인조의 암군 쓰리콤보 ㅋㅋㅋ
그걸 캐리한 효종은 도덕책
이때 이순신 이 왕이 됐으면. 나라가 어떻게
"... 텐노 헤이카 반자이, 텐노 헤이카 반자이."
조선은 선조만이 아니라 대대손손이 만행이었음...
개소리
조선만큼 민생 아낀 나라도 없음
조선에서 만든 표음문자로 댓글 적으면서
그런 얘기는 아닌듯
@@lch6732한글 위대하지, 근데 한글 하나로 퉁치기엔 너무 트롤 집단이었는데?
@@Damoor-x5m 무슨 트롤? 일본 처럼 전국시대 열렸으면 좋겠어?
선조는 경복궁 재건한 적 없음 저 부분은 역사 사실이 아니야 그리고 중국 황제 귀족들도 겁나 사치하고 노역시킨건 마찬가지 서태후도 하룻밤 잔 남자 다 직이고
세종대왕의 모든 것이 닮았으나 인성 만 유일하게 세종을 못 닮은왕
뭘 모든걸 닮아 ㅋㅋㅋㅋ 얼마나 용열했던 왕인데
@@파크냐아수투아루 인제등용 대명회전 이순신등용 많은데? 그리고 인제풀도 좋았고
@@파크냐아수투아루 그리고 용열 한 건 이미 인성부분에서 언급했고
한국사의 문제는 인물의 장단을 입체적으로 보지않고 욕받이는 온갖저주를 다받고 영웅은 무결점의 선인으로 만듦
조두순도 잘 찾아보면 장점이 있다는 것인가?
@@darkani5665 조두순ㅋㅋㅋㅋㅋㅋ
@@darkani5665공과 과가 있다는거지 국가의 지도자란 중책을 맡는 사람들이 무조건 암군일 순 없음 그랬으면 진작에 나가리니까 그런 폐급은 굳이 따지자면 연산군이나 북쪽의 김씨일가 정도겠지
@@dufbeufgjxdshf
런승만도
좀 오버한 것 같은데
선조는 궁궐의 일부를 수리해서 사는 수준으로 썼음. 본격적인 궁궐공사는 광해군으로 기존의 궁궐터 복구, 수리 뿐만 아니라 확장까지 했음.
이 와중에 화약 만드는데 써야할 염초를 기와장 만든다고 빼돌렸음. 그리고 사르후 전투는 보급을 방치하면서 원정군이 전사하는 날까지 고통을 주었음.
청와대 버리고 용산가서 재개발과 건축에 올인한 지금 정부 풍자하는구나...
궁궐 지으라고 선조가 시킨걸 광해군이 욕받이로 덤터기 쓴줄 모르는 인간들이 있다니 ㅋㅋ 선조 D지고 난 후에도 공사 중단하면 손절비용이 더 들어서 이 악물고 지은거임
21세기에도 건물 짓다가 공사중단되면 비맞고 눈맞고 하면서 비용이 치솟는데 저때 목재쓰는 궁궐은 어땠겠냐? 광해군이 멘탈 나갈법도 하지
비맞고 눈맞고 하면서 비용 급증하는건 현대건물이 철근콘크리트, 그러니까 원래 슬러지 반액체상태 재료를 굳혀서 짓는것이기 때문임 목재는 오히려 뭐 덮어놓는 정도로만 해도 중단과 재개 비용이 철근콘크리트만큼 무지막지하게 크진않음 없다는건 아니지만
@@hp0635 조선시대에 목재에다 비닐 덮어놓고 습기는 뭐 물먹는 하마라도 깔아두나? 여름 장마때 곰팡이는 조상님이 막아주나?
@@Mysteryhandle554 지금 목조건물들 몇백년 장마철 습기에 안썩고 있는게 뭐겠음? 이미 옻칠이나 기타처리 하고 온거임 결합부는 그런 처리 못하니까 뭐 씌워놓는거고 막말로 돌같은거 얹어놔도 됨
@@Mysteryhandle554 물론 그래도 니말대로 물먹고 팽창해서 처리된거 다 깨먹는 목재도 있지 그게 위에서 말한 비용이지 근데 그게 철근콘크리트만큼은 아님
선조대왕 재조명하ㄹ
미쳤구먼 오히려 전란 이후 피해 복구 과정에서 대신들 등 주위의 강력 반대로 궁궐 보수 역사 계획을 확실히 중단한 게 선조였고 후에 즉위해서 주위 무당 점술인 등 요설과 사술등에 홀려서 무리하고 무식 수준으로 궁궐 보수와 신축을 무리하여 단행하고 강행한 게 광해군였는데 억지로 미친 듯이 역사 왜곡해대지 못해서 안달들이로군
선조는
ㅋㅋㅋ궁궐 재건 금지시켯음ㅋㅋㅋ그냥 한양복귀부터 죽을때까지
광해군이 궁궐에 집착해서 반정당함ㅋㅋ
이거 역사 왜곡임.
사초랑 정반대
면도 좀 하지 ㅋ
백날 옛날 이야기하면 뭐하냐 옛날이랑 지금이랑 같냐 ㅋㅋㅋ 노비 노예가 당연하던 시절인데 ㅈㄴ 감정이입하노 ㅋㅋㅋ
옛날 이야기를 빗대서 지금을 비판하는 것임. 😮
선조는 전쟁전가후로나뉨
진짜 역겹다는 말 아니면 표현이 안되네 저게 실제로 한말이라지?
실제 선조는 본인 아들 광해군마냥 민생복구는 뒷전이고 궁궐 복구에 집중한적은 없음
그랬다면 광해군때 창덕궁이 완공되지 않았겠지
실제 역사에서 선조는 궁을 재건한 적이 없어 영화에서 저 부분은 허구임.. 전후에 세금감면하고 땅 개간하면 소유권 인정해주며 나름 국토회복 장려했음
혹시 서울의봄 보고 장포스가 진짜 진격한거라고 믿는건아니지> ??
허구에요 저거랑 완전 반대에요 나무위키 검색만해도 바로 나옵니다
광해군이 광해군에게 ㅋㅋ
없던 사실 만들어서 욕먹이네
선저가 도망 안 갔으면 그 때 병합 되았겠지 이순신을 앞세와 아시아의 바다를 제패하고..
서울의봄, 전란을 보고 역사를 배우는 1찍들 ㅋㅋㅋㅋ
구경꺼리 국기게양대를 세우겠다는 오세훈.
세금으로 한깅유람선 타겠다고도 하네.
저때 역사가 어떻게 1찍2찍나뉘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2찍들은 너무 1차원적이고 단순함 ㅠㅠ
이승만도 6.25 전쟁시 제일 먼저 토꼈지..
ㅈㄹ
선조 보다 더한 인조
인조보다 더하는 김건희대통년.
😢😢😢😮😮😮
역사왜곡 반일선동영화
어처구니가 없는게 친일파 후손이 여기에서 의병으로 나온다는거다.
감독의 의도가 뭘까?
36년을 일제강점기로 살았다. 36년.
조상의 잘못을 후대에 화풀이하는 거 뭔데
진심 역겹네
@@Zero00zoro00 친일파야 니가 더 역겹다. 너두 친일파 자손 80만명중에 한명이냐?
강동원은 후손이지만 독재시절 영화에도 나왔음.
지금 권력잡고 있는 정치인들이 민감한 내용에
영화나오는데 그정치인들이 친일파 후손
당신이 이런 댓글 쓰는 의도가 궁금하다
@@Zero00zoro00 역사적 정의와 사회적 청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조상의 매국 반민족 친일행위등 역사적 사실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친일 행위로 얻은 부당한 이익이 있다면 그것을 바로잡는 사회적·법적 절차는 중요합니다.
광해군의 궁궐 공사가 역대 여러 왕들의 궁궐공사보다 부정적으로 부각되어 비난받는 것도 그가 쿠데타로 폐위된 왕이었기에 그의 문제점이 그로 인해 부각될수밖에 없었던 것이지 쿠데타로 폐위되지 않은 왕들의 궁궐 공사의 문제점이 균형적으로 부각된게 있습니까? 이래서 궁궐 공사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이런 편향적인 승패주의 논리에 좌우되어 문제될수밖에 없지요
게다가 광해군의 궁궐 공사가 진시황과 수양제처럼 민생 파탄을 끔찍하게 야기하는 수준이라면 백성들은 광해군에게 대규모 봉기를 일으켜서 저항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광해군 재위 기간 동안 광해군 정권에 반기를 민란은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지요 이런 점을 본다면
광해군의 궁궐 공사가 서인측 사관이라는 특정 사관에 따라 얼마나 견강부회적으로 부풀려서 부정 평가를 하는지를 알수가 있지요
맞습니다. 궁궐 공사를 시행한 왕은 태조, 태종, 세종, 성종같은 임금들도 궁궐 공사를 했습니다. 특히 세종대왕과 성종대왕조차도 궁궐공사문제로 신하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들었습니다. 조선임금 중에서 궁궐 공사를 안했던 왕은 손가락에 꼽을만큼 거의 없을 정도인데, 유독 광해군만 궁궐 공사로 폭군이다라는 프레임으로 가둡니다. 서인반정세력이 이런 것을 노리고 [광해군일기]에 궁궐 공사를 유달리 부풀리고 과장해서 기록했다고 봅니다.
세종대왕도 근정전과 사정전을 청기와로 제작했는데, 유독 광해군이 인경궁의 편전에 청기와 사용한 것을 문제 삼습니다. 반정세력들이 인경궁을 헐고 그 청기와를 그대로 지금의 창덕궁 선정전 지붕에 사용한 청기와 양을 확인할 수 있는데, 반정세력의 주장과는 달리 양이 매우 약소해 보입니다.
저 정도의 양이라면 함유된 염초의 분량도 얼추 가늠이 되는데, 서인들의 침소봉대 참으로 악의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역덕후-z1y ; 예 광해군의 궁궐 공사를 비난한 반정 세력들은 이중적이에도 자신들의 사택 건설에 백성들을 많이 동원하여 착취하는 이중성을 보이기도 하였지요
조선왕조가 아니라 아시아, 아니 전세계에서 찾아봐도 전쟁후 궁궐 5채(창덕궁 빼고)를 15년 내내 짓는 사례는 없을텐데요
@@ohilyeojoh-a 그러니까 그 실체를 남인들의 저서나 일기 등 기록물에서 명확하게 확인되면 "광해군=과도한 궁궐공사에 집착한 군주" 바로 인정합니다.
@@ohilyeojoh-a 15년 내내 지었다는 주장을 남인들은 한 적이 없으며, 서인들 중에서도 대사간이었던 유백증은 광해군의 실정을 여러 차례 언급하지만, 궁궐 공사는 단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실제역사에서 이 장면은 선조가 아닌 광해군이 한거임
누가 얘기하더라 지금 정권과 비슷하다고 ㅋㅋㅋ
근데 뭔가 윤건희 같다
ㄴㄴㄴ문재명임
다혜는?😂😂😂
경복궁 재건한 적 없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넘이고... 세금감면은 했는데.. 서민걱정할 인간이 아닙니다........ 사람됨됨이가 이순신, 의병장 질투해서 죽게 만든 인간은 분명하고... 나라 버리고 명나라에 망명할려던 넘 입니다... 선조의 그런 쓰레기 인간성에 충분히 합당한 설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