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실 진소양왕 때 통일준비는 끝났으나(ex.장평대전), 삼성전자 주식만 생각하면 내 눈물이 흐르듯이 후계자인 진시황이 소양왕의 유산을 잘 받아먹고 잘 굴렸기에 통일 완수 할 수 있었습니다. 2. 임신은 보통 40주이나 42주 넘어간 과숙임신이 작은 확률로 일어날 수 있는데, 더 늦게 출산할 수록 아기에게 안좋아 폐병달고 태어날 수도 있고 외관이 애답지 않다고. 즉 진시황의 못생김은 과숙임신일 수도 있고 어쩌면 여불위의 아들일지도?(생모 조희는 말거시기와 같은 대물 노애와 앙앙하는게 가능한 비범한 여자인걸 생각해봐도...1 3. 여불위가 친부가 아니든말든 숙청은 불가피했을 겁니다. 법가사상으로 강력한 통제를 하는 진에서 여불위는 권력 좀 쥐었다고 도가정치를 표방하는데 여씨춘추를 발간함으로써 영정에게 대놓고 도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위지치 말이야 좋지만 그거 왕을 상징적인 존재로 만들고 지가 계속 권력 차지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4. 여불위가 망한건 거시기 대장 노애를 태후가 된 조희에게 보내서라기보다 위에 말한 대로 왕에게 도전을 했고, 그게 맘에 들지 않았던 자들-법가들이 왕의 힘을 실어줬기 때문일 겁니다. 진의 입장에서 법가는 보수이기 때문에 기득권을 해치는 진보 여불위가 맘에 안들었겠죠. 5. 진소양왕과 영정의 관계처럼 카이사르에게 똑같이 (정치적) 유산을 받아먹고 황제가 된 아우구스투스와 비교해보면 진시황은 정치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통일후 업적들은 부정할 수 없으나 강온조절을 잘하며 원로원들을 무력화 하고 굴복시킨 아우구스투스와 다르게 진시황은 일관되게 잔혹한 통치를 했기에 업적이 빛을 바랬죠. 유학자들에게만 가혹했다면 진승 오광의 난도 없었을테고 건달 유방이 한나라 세우며 영광을 가로채는 일은 없었겠죠. 새 부대에 새 술을 담아야 하는데, 통일된지 얼마 안된 시기에 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옛 6국의 백성들과 새 중국에게 맞지도 않는 가혹한 진의 법을 강요한거 보면 행정력은 뛰어나도 정치를 잘하는거 같진 않습니다. 6. 중국에서 황제가 수도에만 있고 지방순시를 잘 안하는건 백성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후대의 이야기지만 수양제와 건륭제 사례를 보면 민초들의 고통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그걸 5번이나 하는 진시황의 얼굴에 철판이 몇겹인지 궁금합니다. 7. 진시황 사후 직후에 있었던 사구정변의 전말은 상상의 영역이 아니라 신빙성 높다고 보는데 제국의 3인자였던 이사가 숙청당해 죽기전 폭로했을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깔끔하게 빨리 참수하면 큰 문제가 없었을텐데 악독한 진나라 법대로 마빡에 문신 새기고 코 베고 아킬레스건 끊고(또는 발목자르고) 허리를 잘라 죽이는 풀코스를 하며 뭐라도 말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줬기 때문입니다. 8. 아방궁은 페이퍼 플랜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진승 오광이 반란 일으켰었던 원인도 따지고 보면 수십만을 투입해도 진시황 무덤을 완성을 못해 더 닥달하다가 생겼는데 그와중에 궁궐을 새로 지을 돈과 여유가 있을리 없었을테니 말입니다.
5번이 되게 흥미로운 주제네요. 저는 진시황이 옥타비아누스보다 정치를 못하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진시황은 왕가에서 태어나 시작부터 왕이던 인물이었습니다. 원로원을 사실상 제압한 상태에서 명목 상으로는 시민의 지위였던 옥타비아누스와 처한 사회계급이 달랐지요. 이 부분이 두 영웅의 정치행보 차이를 만든 것 같습니다. 지위 상 선택할 수 있는 대응의 가짓수가 달랐을 거 같네요. 또 당시 로마는 이미 카르타고를 제압하고 수백년이 지나 어느정도 안정시켰기에 하나의 국가개념이 없던 갈리아, 이제는 허약해진 이집트를 로마의 압도적인 전력으로 흡수하던 상황이었지요. 고로 옥타비아누스는 엄격한 법의 집행을 시행하지 않아도 로마의 보호 하에 타국을 복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시황은 군사력을 제외하면 진만큼의 저력을 자랑한 타 6국을 복속시켰습니다. 허나 그들의 국가인식이 같이 변한 것이 아니지요. 그래서 진시황은 옥타비아누스나 후대의 황제처럼 통치에서 유연성을 섞을 여유가 없던 거라 추측합니다. 저는 진승, 오광의 난 이후 그들이 국호를 장'초'라 선포했고 이후 제, 연, 조, 서초 등의 국가가 부활한 것이 시황제의 걱정이 현실로 된 것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통일 이후 진 내에서 집권층을 갈아 엎는 쿠데타는 발생하지 않았기도 하지요. 물론 진시황과 진의 법가가 너무 엄격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진의 지배층의 입장에서도 6국 출신이라는 인식을 최대한 빨리 소멸시키는 작업에 부담을 느낀 것 같네요. 불가능하지만 옥타비아누스가 만약 진시황의 입장이었어도 엄격함을 강조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동의보감구수략 제가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선생님이 지금의 만리장성을 보여주면서 2000년 전에 이런 것을 어떻게 쌓았지는 궁금하다라고 했던 것도 있고, 예전에 모 방송사의 퀴즈 프로그램에서 지금의 만리장성이 포함된 여러 유적을 보여주며 시대순으로 나열하라는 문제가 나왔는데 저걸 진나라의 만리장성으로 여겨할 지 명나라의 만리장성으로 여겨야 할 지 생각했었는데 그 퀴즈 프로에선 당연히 진나라의 만리장성으로 대충 여기던 것이 생각나서요.
많은 정복 군주들이 하는 말이 정복은 쉬워도 그걸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들 했죠. 물론 정복 군주 입장에선 정복은 해봤던 일이니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진 부분도 있겠지만, 전시 상황에서의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단순 명료한 행정과 뛰어난 전쟁 수행 능력은 평시의 정교하고 세분화된 행정, 신화들과 줄다리기를 하고 민심도 살펴야 하는 정치력 등과는 완전히 다른 영역일 수 밖에요. 전자는 완전히 군인, 장군의 영역이라면 후자는 행정 전문가들의 영역이니까요. 현대에 비추어봐도 미국이 절대적인 군사력만으로 못 이길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등...미국이 군사력 때문에 문제를 겪지는 않았죠. 그러나 그 나라를 군사력으로 밀어버리는 것과 점령하고 통치하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는 걸 현대의 미국조차 보여줬지요.
오랜 세월이 흘러도 쉽게 변하지 않는 문자인 한자는 비록 배우기 힘들고 체계적이지 않은 하급 문자이지만 그러한 디지털화 하기 힘든 아날로그적이고 폐쇄적인 점이 오히려 정보유출을 막고 내부적 단결을 촉진하는 역할도 한다는 점이다 밖으로 새나가지는 않고 안으로 모일수 밖에 없는 특징이 결국 대국을 만드는 특색이었지 않았을까? 잘나가는 기업은 연구개발부서외에 섣불리 또는 무리하게 자동화와 첨단화 디지털화를 추진하지 않으며 어느정도 성숙했다고 판단할때 비로소 도입하는 이유는 개혁과 진보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한글의 뛰어난 과학성과 배우기 쉬운점은 분명 훌륭하나 짧은 세월에도 변하기 쉽고 새로운 단어 언어를 양산하며 세대 직업 취미 미디어 노출방식에 따라서 문자.언어적 단절을 보인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러한 언어적 단절은 국민의 소통을 저해하고 지역.세대.교육수준에 따라 다른 어휘와 단어를 말하는 분열의 양상을 점점 심화 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더구나 요즘은 기본적인 초등수준의 맞춤법 또는 단어의 뜻조차 모르는 것이 무슨 문제냐는 반 지성적인 행태까지 공공연히 사회를 잠식해 나가는 추세다 문자와 언어는 혈연보다 더 강한, 민족을 이루는 가장 기초적인 대체할 수 없는 필수 요소임을 우리는 잊지 않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세종대왕이 이러려고 한글을 만드시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하… 너무 좋아… 제발 4년 이상 방영해주세요 박사님…
테슬라 서버에 박사님이 업로드 될 때까지 쭉......
@ 21세기 불로초 ㄷㄷ
진짜 주변이 죄다 비문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나던 것도 아니고, 기술이 엄청 차이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빠르게 통일하고 그렇게 빠르게 기반 닦은게 대단함.
알렉산더는 비록 여러 문명을 아룰렀다곤 하지만 후대에 계속 남을 무언가를 형성하진 못했는데.
8년 전쟁하고 돌아왔는데 죽어서 그래. 좀 더 오래살았으면, 달랐겠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헬레니즘 문명. 고대 그리스어가 전세계 공용어가 됨. 유클리드 기하학, 아르키메데스 원리, 프톨레미 천문학 등이 전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연구한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엔지니어들에 의해서 만들어 진겁니다.
임박사님 방송 너무 재밌고 유익합니다.
박사님 여러 방송 나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박사님 이 프로도 오래하실 수 있도록 건강 항상 잘 챙겨주십시오❤
와 이걸 2화할때 봤네! 다행이다
토요일 아점심 먹으면서 보기 좋은 방송 1위
이번 영상도 잘 보고 갑니다.
좋은 강의입니다 감사합니다
이거 잘됐으면... ㅠㅠ
너무 좋아요!!!
너무 재밌게 잘 봤습니다 오래오래 해주세요
아주 좋아요 좀더 길게 무편집으로 ㅋ
너무 재밌는 시리즈입니다!
행복하다 수요일 역전다방, 금요일 지구영운전 아
❤❤❤
영상 너무너무 맛있다 ㅋㅋㅋㅋ
편견이나 고정관념, 진영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사고에서 나오는 이야기.
내가 임박사님의 영상을 좋아하는 이유. ㅋ
26:00 행군 능력 34:40 분서갱유 37:32 업적 40:10 아방궁 45:53 업적
1. 사실 진소양왕 때 통일준비는 끝났으나(ex.장평대전), 삼성전자 주식만 생각하면 내 눈물이 흐르듯이 후계자인 진시황이 소양왕의 유산을 잘 받아먹고 잘 굴렸기에 통일 완수 할 수 있었습니다.
2. 임신은 보통 40주이나 42주 넘어간 과숙임신이 작은 확률로 일어날 수 있는데, 더 늦게 출산할 수록 아기에게 안좋아 폐병달고 태어날 수도 있고 외관이 애답지 않다고. 즉 진시황의 못생김은 과숙임신일 수도 있고 어쩌면 여불위의 아들일지도?(생모 조희는 말거시기와 같은 대물 노애와 앙앙하는게 가능한 비범한 여자인걸 생각해봐도...1
3. 여불위가 친부가 아니든말든 숙청은 불가피했을 겁니다. 법가사상으로 강력한 통제를 하는 진에서 여불위는 권력 좀 쥐었다고 도가정치를 표방하는데 여씨춘추를 발간함으로써 영정에게 대놓고 도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위지치 말이야 좋지만 그거 왕을 상징적인 존재로 만들고 지가 계속 권력 차지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4. 여불위가 망한건 거시기 대장 노애를 태후가 된 조희에게 보내서라기보다 위에 말한 대로 왕에게 도전을 했고, 그게 맘에 들지 않았던 자들-법가들이 왕의 힘을 실어줬기 때문일 겁니다. 진의 입장에서 법가는 보수이기 때문에 기득권을 해치는 진보 여불위가 맘에 안들었겠죠.
5. 진소양왕과 영정의 관계처럼 카이사르에게 똑같이 (정치적) 유산을 받아먹고 황제가 된 아우구스투스와 비교해보면 진시황은 정치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통일후 업적들은 부정할 수 없으나 강온조절을 잘하며 원로원들을 무력화 하고 굴복시킨 아우구스투스와 다르게 진시황은 일관되게 잔혹한 통치를 했기에 업적이 빛을 바랬죠.
유학자들에게만 가혹했다면 진승 오광의 난도 없었을테고 건달 유방이 한나라 세우며 영광을 가로채는 일은 없었겠죠. 새 부대에 새 술을 담아야 하는데, 통일된지 얼마 안된 시기에 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옛 6국의 백성들과 새 중국에게 맞지도 않는 가혹한 진의 법을 강요한거 보면 행정력은 뛰어나도 정치를 잘하는거 같진 않습니다.
6. 중국에서 황제가 수도에만 있고 지방순시를 잘 안하는건 백성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후대의 이야기지만 수양제와 건륭제 사례를 보면 민초들의 고통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그걸 5번이나 하는 진시황의 얼굴에 철판이 몇겹인지 궁금합니다.
7. 진시황 사후 직후에 있었던 사구정변의 전말은 상상의 영역이 아니라 신빙성 높다고 보는데 제국의 3인자였던 이사가 숙청당해 죽기전 폭로했을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깔끔하게 빨리 참수하면 큰 문제가 없었을텐데 악독한 진나라 법대로 마빡에 문신 새기고 코 베고 아킬레스건 끊고(또는 발목자르고) 허리를 잘라 죽이는 풀코스를 하며 뭐라도 말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줬기 때문입니다.
8. 아방궁은 페이퍼 플랜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진승 오광이 반란 일으켰었던 원인도 따지고 보면 수십만을 투입해도 진시황 무덤을 완성을 못해 더 닥달하다가 생겼는데 그와중에 궁궐을 새로 지을 돈과 여유가 있을리 없었을테니 말입니다.
5번이 되게 흥미로운 주제네요.
저는 진시황이 옥타비아누스보다 정치를 못하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진시황은 왕가에서 태어나 시작부터 왕이던 인물이었습니다.
원로원을 사실상 제압한 상태에서
명목 상으로는 시민의 지위였던 옥타비아누스와 처한 사회계급이 달랐지요. 이 부분이 두 영웅의 정치행보 차이를 만든 것 같습니다.
지위 상 선택할 수 있는 대응의 가짓수가 달랐을 거 같네요.
또 당시 로마는 이미 카르타고를 제압하고 수백년이 지나 어느정도 안정시켰기에 하나의 국가개념이 없던 갈리아, 이제는 허약해진 이집트를 로마의 압도적인 전력으로 흡수하던 상황이었지요.
고로 옥타비아누스는 엄격한 법의 집행을 시행하지 않아도 로마의 보호 하에 타국을 복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시황은 군사력을 제외하면 진만큼의 저력을 자랑한 타 6국을 복속시켰습니다. 허나 그들의 국가인식이 같이 변한 것이 아니지요.
그래서 진시황은 옥타비아누스나 후대의 황제처럼 통치에서 유연성을 섞을 여유가 없던 거라 추측합니다.
저는 진승, 오광의 난 이후 그들이 국호를 장'초'라 선포했고 이후 제, 연, 조, 서초 등의 국가가 부활한 것이 시황제의 걱정이 현실로 된 것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통일 이후 진 내에서 집권층을 갈아 엎는 쿠데타는 발생하지 않았기도 하지요.
물론 진시황과 진의 법가가 너무 엄격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진의 지배층의 입장에서도 6국 출신이라는 인식을 최대한 빨리 소멸시키는 작업에 부담을 느낀 것 같네요.
불가능하지만 옥타비아누스가 만약 진시황의 입장이었어도 엄격함을 강조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21:06 ~~음 킹메이커잖아~ 진짜 소름돋게 유치해서 어이가없다
44:02
박사님 영상 너무 잘 보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44분쯤 왕기와 이신에 대한 일화를 말씀을 하시는데 왕기와 왕전을 착각하시고 얘기하신 것 같습니다.
혹시나 하는 얕은 생각에 무례를 범하고 댓글 남깁니다.
아앗...😂
시황제가 남긴 유산이 '언젠가 하나가 된다'라는 마인드를 중국인들에게 심어 준거임(그래서 중국인들이 저렇게 시황제를 신경쓰는거지.....)
다 너무 좋은데 AI더빙 때문에 퀄리티가 갑자기 확 떨어짐 .. ㅜ 제작비 부족이면 제작진이라도 더빙하면 좋겠어요 ㅠ
넥타이랑 탱크 앞 젊은 군인,
담주는 패튼이랑 롬멜? 아니면 구데리안인가
종신! 종신! 종신!
33:50
“성공한 군자” : 군주 아닐까요?
유가의 영원한 피해의식을 배운 정당이 대한민국에도 있는것 같아요. 근데 정치가 이렇게 혼란스러워도 삼시세끼 먹고 있으니 태평성대라고 생각하려구요.
방송 환경 좋은 임용한 선생님을 누가 막으리!
중화 통일도 이루었고 화폐 도량형 통일도 했고 다 불태워서 사상도 통일했지만
정작 본인 유언장은 지키지 못하신.... ㅜㅜ
3:29
다음주 영웅은 혹시 롬멜 인가요 박사님?
롬멜보단 페튼같아요 사진속군복이 1차대전 미국군복같아서
ㅋㅋㅋㅋㅋㅋㅋㅋ 생각해 보니까 병마용갱 30년 빨리 찾았으면 문화대축제때 박살났겠네 ㅋㅋㅋㅋㅋ
兵马俑就是在文化大革命时期发现的,请停止谣言
아니 대축제ㅋㅋㅋㅋㅋ
유방 : 꺼억~!
제목: 임용한의 킹덤
맛있다! 내 완식ㅠㅠ
여기 댓글에는 진시황이 동이족이네 어쩌네 우리문화의 위대함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게 안보이네요 다행이다
역시 진시황이구나
다른건 모르겠고 인자강인건 확실함
수은을 그렇게먹고도 저정도산거보면ㅋㅋ
국가의 기틀, 화폐와 문자의 통일, 군사력, 표준화... 능력제. 이거 우리나라 건국후 군사정부가 들어서며 겨우 끝났던 거네.
과거엔 대단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왜 그모양일까 아마 곰팡이가 왕고로 오래하니 곰팡이가 되버린 그들....ㅋㅋㅋ
새삼 저 어마어마한 중국옆에서 2000년 넘게 독립 유지하는한 한반도가 대단하게 느껴지네
그런걸 보면 일본은 정말 대단한거지. 협상만으로 조선을 병합했으니
ㅋㅋ야무지게 납짝 엎드리긴 했죠 얼마나 믿었으면 조선시대에는 군대 증강도 가능하게 해줬으니ㅋㅋ
@@NALDAWSON뭔협상? 힘이있으니 당하는거지 ㅉ
고려 때는 사실상 원나라 괴뢰국이 된 시기가 있고, 조선 때는 패전으로 청나라의 아예 속국이 되었는데 뭔 2000년 독립. 서울에 지어진 독립문 마저도 청일전쟁을 계기로 청나라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한 건물이고.
@kanvarry3356 원나라 괴뢰라니요. 고려왕실은 원나라의 지배층이었는데요. 고려의 왕은 몽골의 최고의결기관으로 칸을 선출하기도 했던 쿠릴타이의 멤버였습니다. 혈통상으로도 칸과는 한집안이었고요
01:31 이 만리장성은 진시황과는 상관없는 명나라 영락제 때 쌓은 만리장성인데... 그건 그렇고, 진시황이 6국을 정복할 능력은 있었어도 정복하고나서 그 뒤 체제를 세우고 유지시킬 능력은 없었네요. 전쟁을 하는 방식과 통치를 하는 방식 둘은 전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안 보여 줄 수는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합시다.
우리가 뭐 논문 심사하는 것도 아니고요.
우리가 경복궁 볼 때 굳이 이건 나중에 재건한 겁니다라고 굳이 꼭 말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동의보감구수략 제가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선생님이 지금의 만리장성을 보여주면서 2000년 전에 이런 것을 어떻게 쌓았지는 궁금하다라고 했던 것도 있고, 예전에 모 방송사의 퀴즈 프로그램에서 지금의 만리장성이 포함된 여러 유적을 보여주며 시대순으로 나열하라는 문제가 나왔는데 저걸 진나라의 만리장성으로 여겨할 지 명나라의 만리장성으로 여겨야 할 지 생각했었는데 그 퀴즈 프로에선 당연히 진나라의 만리장성으로 대충 여기던 것이 생각나서요.
많은 정복 군주들이 하는 말이 정복은 쉬워도 그걸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들 했죠. 물론 정복 군주 입장에선 정복은 해봤던 일이니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진 부분도 있겠지만, 전시 상황에서의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단순 명료한 행정과 뛰어난 전쟁 수행 능력은 평시의 정교하고 세분화된 행정, 신화들과 줄다리기를 하고 민심도 살펴야 하는 정치력 등과는 완전히 다른 영역일 수 밖에요. 전자는 완전히 군인, 장군의 영역이라면 후자는 행정 전문가들의 영역이니까요.
현대에 비추어봐도 미국이 절대적인 군사력만으로 못 이길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등...미국이 군사력 때문에 문제를 겪지는 않았죠. 그러나 그 나라를 군사력으로 밀어버리는 것과 점령하고 통치하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는 걸 현대의 미국조차 보여줬지요.
중국 댓글 부대 총 출동했나?
중국은 믿고 거른다
극우 유튜버나 보십쇼 할배
@ 나 고향 중공에서
살아라. 한국 더럽히지 말고 ㅋㅋㅋㅋ
세다
근데~ 진시황무덤 발굴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무덤이라고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병마~ 과연 한족일까~?? 진시황도 한족일까~??
오랜 세월이 흘러도 쉽게 변하지 않는 문자인 한자는 비록 배우기 힘들고 체계적이지 않은 하급 문자이지만 그러한 디지털화 하기 힘든 아날로그적이고 폐쇄적인 점이 오히려 정보유출을 막고 내부적 단결을 촉진하는 역할도 한다는 점이다
밖으로 새나가지는 않고 안으로 모일수 밖에 없는 특징이 결국 대국을 만드는 특색이었지 않았을까?
잘나가는 기업은 연구개발부서외에 섣불리 또는 무리하게 자동화와 첨단화 디지털화를 추진하지 않으며 어느정도 성숙했다고 판단할때 비로소 도입하는 이유는 개혁과 진보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한글의 뛰어난 과학성과 배우기 쉬운점은 분명 훌륭하나 짧은 세월에도 변하기 쉽고 새로운 단어 언어를 양산하며 세대 직업 취미 미디어 노출방식에 따라서 문자.언어적 단절을 보인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러한 언어적 단절은 국민의 소통을 저해하고 지역.세대.교육수준에 따라 다른 어휘와 단어를 말하는 분열의 양상을 점점 심화 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더구나 요즘은 기본적인 초등수준의 맞춤법 또는 단어의 뜻조차 모르는 것이 무슨 문제냐는 반 지성적인 행태까지 공공연히 사회를 잠식해 나가는 추세다
문자와 언어는 혈연보다 더 강한, 민족을 이루는 가장 기초적인 대체할 수 없는 필수 요소임을 우리는 잊지 않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세종대왕이 이러려고 한글을 만드시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愚蠢的民族主义者,朝鲜彦文是一种朝鲜人都嫌弃的文字,两班贵族都不想使用低级的拼音文字
汉字古老又高级,西方文明的新概念都使用汉字来翻译而不是韩文或日本独有的文字
이 혼란의 시기 진시황같이 국가를 통일하고 혼란을 종식시킬 사람 없나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