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람들 자꾸 칼 모양이 비슷하다고 한국이 일본 따라했다고 하는데.. '세조실록'에 따르면 조선도 류큐왕국의 일본도를 보고 '우리 조선의 환도와 비슷하다'라는 기록이 있고, 일본측 기록인 '통항일람(通航一覽)'에서도 '조선의 검이 일본도와 유사하다'라는 내용이 있음.. 한국의 환도는 원래는 곡률이 없는 검이었지만, 몽골 지배기 거치면서 곡도를 사용하는 몽골 무기의 영향을 받아 휘어지게 된거임. 조선 측에서도 왜병의 검술을 높이 평가하거나 일본도를 높이 평가하는 기록이 많지만, 칼의 모양은 일본도에게 영향을 받은게 아님. 다만 검술은 임진왜란 이전까지 조선에는 제대로 된 검술이 없었고, 임진왜란 시기를 거치면서 항왜(降倭)들에게 검술을 전수받았고, 정조때 직접 김체건이라는 사람이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혹은 왜관에서) 검술을 배웠고, 그 검술을 왜검(倭劍)이라고 칭했음.
그건 전쟁중에 득이 되는건 답습해 계량하는 습성때문입니다. 카피와는 다르고 조선환도 특성에 일본도검의 장점을 업그레이드 시킨거죠. 그렇게 따지면 일본역시 고구려,신라에도 도검 문화에 영향을 받은게 사실인데 중국의 명나라도 곡선도검이 있었습니다.일본만 있는게 아니란겁니다. 가야투구나 백제 갑옷도 일본의 영향을 준 계기도 있었는데 곡선도검은 주로 중동쪽에서 사용되어진 유목민들이 뽑기좋고 곡률이 있어 자연스럽게 패용하기 좋은 구도를 가진 형태였기에 몽골에서도 넘어 영향을 끼친거였고 그런몽골도 유목민 특성이 말타고 활쏘고 칼을 뽑아야 하기에 직도보다는 곡선도를 주로 쓴겁니다. 고구려 역시 기마민족이라 직도가 많지만 곡선도 역시 있었다고 보지만 역사적 유물이 중국만큼 보존이 잘되서 발굴되지 않아 거의 날부분은 다 썩어 없어진 형태나 왕이나 귀족의 무덤부분에서 출토된 것 부장품 따위 그래서 이것을 정확히 언제 부터 한반도에서 곡선도를 사용햇느냐가 추측일뿐 정확한 연대는 추정일뿐입니다. 조선은 임진왜란과 같은 나라의 큰전쟁 을 통해 좋은장점은 답습하고 계량시킨 조선환도에서 조금 변형시킨 조선도검으로 발전한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곡선도는 중동의 아랍국가에서도 반월검 이라고도 불리는 칼들이 있습니다. 실크로드 나 중국서역등 무역을 한고구려와 고려 신라, 백제,가야 한반도에 곡선도가 없다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거죠. 조선도검은 환도의 시작으로 전쟁으로 인한 환경으로 만들어진 도검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보여집니다.
안녕하세요. 비급칼잡이님과 함께 촬영한 무예24기를 수련하고 있는 최형국입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한 실력이지만, 우리 무예의 다양한 모습을 함께 나누고 싶어 영상을 촬영했습니다. 이미 미사일이 하늘을 날고, 핵무기가 지배하는 전장에서 창검을 비롯한 단병무예는 그저 전통시대에 대한 추억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예 안에 담긴 몸철학의 문제, 무예로 풀어갈 수 있는 무예인문학적 고민은 무예수련의 의미를 더 넓힐 수 있으리라 믿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와의 싸움에서 칼을 뽑는 순간, 이미 법에 의해 가중처벌되는 세상입니다. 그저 또 다른 몸살림의 수련으로 무예을 익힙니다. 가장 '야성'적이면서도 가장 '지성'적인 몸짓이 무예에 담겨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영성'의 단계까지 풀어보고 싶기도 합니다. 아직도 공부할 것도, 채울 것도 많아 오늘도 내일도 한결같이 수련할 뿐입니다. 고맙습니다.
최 박사님이 영상에서 설명하신 올려베기(걸쳐베기)의 경우, 갑옷을 벤다기 보다는 갑옷이 벌어지는 틈을 파고들어 베는 느낌이 강합니다. 예를들어 겨드랑이나 사타구니 같은 갑옷으로 완전히 가릴수 없는 부분이요. 물론 주무기인 둔기류에 비해 보조병기인 환도로 제압하기에는 까다로웠겠죠. 그래서 쉴새없이 빠른 보법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이 나오는것 같습니다.
아래서 위로 올려베는 것은 일본도 처럼 칼이 길면 잘못하면 주변 지형 상황에 따라 칼 끝이 땅을 긁거나 주변 사물에 걸릴 위험이 크지않을까 유추해봅니다. 서로 마주보고 휘둘렀는데 휘두른 칼이 주변 어디에 잘 못 맞아서 탱 하고 튕기면 바로 반격에 내가 당할 것입니다. 칼이 길기에 머리 위로 들고 아래로 베야 할것 같습니다. 반면 조선도는 칼이 짧아 땅을 긁거나 사물에 걸린 위험이 더 적어 보입니다.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베면 방어자가 칼을 들어서 막을 수 있는데 순간적으로 아래서 위로 베면 방어자가 어떤식으로 막아야 할지 애매 할것 같습니다.
동북아 3국의 무의 발달, 그중에서 칼에만 한정해도 차이가 많이 나죠 그래서 질문거리가 많죠 조선에 일본같은 발도술이 있는가? 검집에서 검을 뽑으며 위로베며 자세를 취하는 자세가 있으니 발도술과 개념이 다르지만 비슷한건 있고 조선의 환도와 일본의 카타나의 칼의 구조와 끝부분은 어떻게 되는가? 검으로 사람을 베고 피가 묻으면 일본은 칼을 손잡이를 중심으로 회전시키고 칼등을 주먹으로 탁 치고 피를 닦거나 팔꿈치로 피를 닦거나 하는데 조선의 검법에는 그런게 있는가? 등등이 있죠 근데 조선의 검법은 보법이 중요하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적이 있는데 그 이유를 알겠네요 날이 짧으니 아래에서 위로치며 앞으로 빠르게 가서 베거나 아래에세 위로치고 간격을 보거나 하기에 보법이 중요해 보입니다
검술은 조선에서 명맥이 사실상 끊어졌습니다. 전쟁도 별로 없고 무예를 익힐 여유가 있는 계층인 양반들은 활쏘기만 하지 검과 검술을 천시해서 전혀 배우지 않았습니다. 쓸 일도 별로 없고 배우고 연마하는 이도 없으니 명맥이 끊기는게 당연한 일이였지요. 그러다 왜란때 조선군이 단병접전에서 극악의 취약성을 들어내자 단병접전 능력 강화를 위해 병사들에게 검술을 익히도록 했는데 조선 내에선 검술을 가르쳐줄 인물이 없어서 항왜들과 명나라 장교들을 사범으로 삼아서 검술을 교육해야할 정도였습니다. 조선 검술이 일본 검술과 명나라 검술을 베이스로 다시 탄생하는 순간이였습니다.
환도가 짧은 이유는 첫째, 기효신서 영향을 받아 방패를 든 팽배수의 검으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일본도가 아무리 길고 강력해도 방패와 함께 운용되는 적당한 길이를 가진 환도를 이기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척계광이 당시 압도적이었던 일본 검술을 파훼하는 방법으로 고안한 것이고 결과가 꽤 성공적이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에 한국 검이 점점 더 한손 검의 짧은 형태로 바뀐 것은 검술이 열화한 것이 아니라 진화했다고 봐야 합니다. 로마군의 전술과 로마군의 검 글라디우스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둘째, 환도는 기본적으로 기병도 쓸 수 있어야 하는 다용도 검입니다. 그래서 한 손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길이의 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카타나는 양손 검이기 때문에 말 위에서 사용하기 적합하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검방은 검만 가진 어지간한 병사를 쌈 싸먹죠. (숙련도나 인간자체가 강한 이레귤러는 있습니다만, 인간은 도구의 변화로 극적으로 강해집니다) 검방이 양손검보다 강하다는 것에 어떤이는 반론이 있을수 있겠지만, 양손은 거리를 두고 무거운 검으로 강하게 치는게 가장강한 올바른 사용법이며, 검방은 방패라는 벽을 세워 벽뒤에서 인파이팅을 강요합니다. 그러니 방패라는 벽이란 공간적 제약 안에서 효율적인 글라디우스 같은 짦은 검으로 공격하기에 양손검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해집니다.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인 제약과 도구의 길이로 오는 한계점을 파악한 거죠.
저 길이 정도의 카타나는 평화기인 에도시대의 산물입니다. 일본도가 전쟁에서 쓰일때는 대태도 정도되는 길이로 폴암처럼 쓰는거고, 집단전이 본격화 되자 장창과 조총으로 넘어가죠. 전쟁터에서 주무기로 사용된 칼들은 대부분 길이가 짧습니다. 방패와 함께 쓰거나 기병도이거나 호신용 2차무기로 쓰이거든요.
@@地獄龍-m7q 저 우치카타나가 일본도의 대명사가 된것은 평화기인 에도시대란다. 실제 전쟁에서 대규모전투의 주력병기로 사용된 칼은 길이가 짧단다. 대표적인 예가 로마군단의 그라디우스지. 저런 카타나는 타치처럼 길지 않아서 폴암처럼 쓸 수 있는것도 아니고, 보드소드, 환도처럼 보조무기로도 못써먹을 물건이지. 아 물론 타치의 보조용으로 사용되었던 초창기 우치카타나는 예외. 저런 카타나 보다는 더 짧거든. ㅋ
@@地獄龍-m7q 저 우치카타나가 일본도의 대명사가 된것은 평화기인 에도시대란다. 실제 전쟁에서 대규모전투의 주력병기로 사용된 칼은 길이가 짧단다. 대표적인 예가 로마군단의 그라디우스지. 저런 카타나는 타치처럼 길지 않아서 폴암처럼 쓸 수 있는것도 아니고, 보드소드, 환도처럼 보조무기로도 못써먹을 물건이지. 아 물론 타치의 보조용으로 사용되었던 초창기 우치카타나는 예외. 저런 카타나 보다는 더 짧거든.
That hwan-do seems like it might be similar in size to Japanese uchigatana, which was a smaller fore-runner to the katana (as we know it now). It's hard to find images of actual uchigatana outside of a bare few sword collecting books, as the term also refers to the standard furniture of the katana, and the characters for uchigatana are the same as what the Chinese use for the Japanese katana. On a separate note, I remember seeing some impressive Korean swords when I visited the War Memorial Museum in Seoul many years ago when I was a young American soldier.
That's a pretty keen observation. While the end result is more or less what you said, how korean swords got there is a bit more complicated. Korean swords were once long, developed, and otherwise advanced. In fact, the swords of the korean three kingdom period influenced japaense sword and armor design a ton. After all, before contact with the west, the japanese were almost always on the recieving side of asian technological trade. But the unification of the peninsula shifted the paradigm of korean warfare toward siege defense against northern nomad tribes. For this, bows were far superior to swords - which were sidearms at best even in a stereotypical plain battle. By the joseon period - korea's last dynasty - swords had devolved to be shorter, smaller, and most importantly, not get in the way of bows - which were also holstered at the hip. That's why the korean swords you see in the video look less advanced :D
Traditionally, Chinese swords are double edged, so as Korean's. Japanese katana were known to the continent since the Song dynasty, but it gained its reputation through 13th~16th century as Japanese pirates raiding China and Korea were using them practically. Chinese called these Katana "Wo-Dao", and either imported them from Japan, or made similar ones themselves.
@@jimblack8808 먼저 제가 술먹고 장난으로단 댓글이....죄송 합니다. 지금은 시간이 있고 특히 심심해서요.ㅋ *플레이트 갑옷을 뚫는 창이 존재 했던적이 없습니다.냉병기로는 석궁이 유일 합니다. 고대 유럽-창병은 기본적으로 방패를 들지못해 좀 쓰다가 말았습니다.로마시대, 알렉산드로스.페르시아군 까지 창병의 활약은 없다고 바도 됩니다. 글라디우스가 일반적 오랫동안 쓰인 이유 생각 하시면 더우기 기습이나 지형 이동의 제약을 받습니다.그래서 로마시대의 군가에 중요한 병장기를 호칭하는데도 검이나 전차는 더우기 방어구인 방패나 각반이 빛나는~ 그런 표현은 있어도 "창"은 언급도 안합니다. 너무길어져서.. 그리고 할버드는 전쟁용 무기가 아닙니다 기병은 쓸수도 없고 동양에 비슷한 "극"이라는게 있습니다. 파이크는 대충 15세기 16세기에 평지에서 적 창부대에 대항에서 쓰였습니다. 창부대가 별다른 훈련 없이 농사 짓다가도 쓸수 있다는 장점 있지만 전문군인을 만나면...같은 별훈련 없는 창부대를 만나면 더 긴 파이크를 든 부대가 유리 했습니다. 그리고 머스켓의 활용은 적군이 머스켓이 없을때 머스켓 재장전 까지 경갑기병의 접근을 막는것에 한정적으로 쓰였습니다. 적군도 머스켓을 들고 궁수가 훈련되면서 부터 .... 동양의 경우 손무의 전쟁에 적 창병을 둔기로 무장시켜 전장에 이겼다.아니면 그 반대..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서 여포가 극의 곁가지를 화살로 맞추다 이런식으로 몇번 나옵니다. 전장에선 큰칼로~ 활로~이런식 입니다. 명말기 명장 원숭환이 소대에 창 비슷한것으로 여진족 기마병 말을 공격해서 엄청난 전과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삼국시대 신라군에 전문 창병이 있었는데 혼자 쓰는게 아니라 아주 긴창 가지고 2~3명이 썼습니다,훈련도 2년? 걸린다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전문 궁수 부대가 일반적이 될때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조선의 경우 삼지창은 수성 방어용 입니다. 적의 무기를 성위에서 걷어내는 용도 입니다. 일본의 경우 창병이 있었으나 일본은 궁수가 곡사가 아닌 직사라 전문궁수 부대가 아니라도 아주 끔찍한 피해를 입습니다. 그냥 없어 졌습니다. 나중에 검+창 비슷한게 나왔는데 개인vs개인은 좋아도 전장에서는 쥐약이 무기가 됬습니다. 몽골의 경우도 창은 초원에서 깃발을 달아 적과 구분하는 용도내지는 집합용도로 쓰였습니다. 창이 개인적 결투에선 유리 하겠지만 전장에선 전장까지 이동(현대 전쟁도 마찬가지)해야 했기에 아주 비효율 무기 였습니다. 특히 험지로 이동 할땐. 공격 방향도 제한적이고 방향 전환도 어렵 습니다.난전에선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창은 성벽에서 수성용이거나 관문 성문에서 지키는 용도 의전 등에 동서양 할것 없이 쓰였습니다. 전장에선 둔기와 함께 명맥은 이어 졌지만 자연스럽게 안쓰게 되었습니다. 현대 전쟁에선 "권총"같은 상징성과 계급 지휘는 나태내지만 그렇게 전장이라는 곳에선 ...
보통의 환도는 칼이 짧은데 이는 활을 쏘기 위해서죠. 그래서 짧은 칼을 활용하기 위해 파고드는 기술 위주로 발달했습니다,본국검과 예도에서 허리베기를 변태처럼 좋아하는 이유죠. 칼이 짧으면 긴칼과의 전투에서 일본처럼 원중거리에서 빠른 머리치기보다, 한번 공격을 막고 속으로 파고들어가 긴칼의 장점을 상쇄하고 씨름이나 허리베기로 마무리합니다.(이 근거리로 들어가 간칼의 원거리 공격 리스크를 무효화하는 것은 리히테나류 롱소드검술에서도 강조하는 부분)
환도 쓰는 법을 보니 전투에서 근거리에 처했을 때 쓰는 부무장의 전술적 의도가 분명하게 녹아 있네요.. 주무장은 창이나 활이고... 칼을 뽑아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기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것보다 리치가 좀 짧아지는 대신에 대응속도가 빠르고, 적이 근거리에 급속도로 접근했을 때 반사적으로 대응하기에 적합한 기술로 보이네요. 일본도는 완전한 전투용이라기보다는 무사간의 대결이라는 의식적인 부분이 많이 남아있는 무기라고 생각됩니다.. 칼로 일대일 대결한다고 치면 당연히 길이가 더 긴 칼이 유리하겠지요.. 근데 진짜 전투용이라면 긴 칼보다는 창과 활이 더 유리하죠.. 오로지 전투만 의식했다면 환도처럼 짧아지는 게 맞다고 봅니다.. 전투로만 단련된 몽골 병사들도 일본처럼 긴 칼은 안 썼지요..
칼에 대해선 일본이 우세가 맞아요. 조선시대 초기엔 칼을 보조병기로 인식해서 휴대성 위주로 발전하던 시대였으니까요. 칼날의 길이도 전체적으로 일본이 더 길고, 비슷한 길이의 날이라도 일본도의 손잡이 부분이 긴 것이 일본도의 트릭 비결일껍니다. 칼싸움은 가라데 고수의 3배수라는 말이 있듯 상대보다 긴거리에서 때릴수 있다는건 크죠. (양손으로 무겁게 내려치는 공격으로 싸우다 긴 손잡이 끝부분의 쥐고 한손으로 베면 더 긴거리를 공격이 가능하기에 자세에 따라서 30cm 이상의 리치를 확보할수 있으니, 칼의 유효 거리감을 상실한 상대편으로선 승부가 되지 않았을껍니다.)
@@nicecatplus4969뭘 보신지 모르겠는데 저는 조선의 검과 검술이 일본 것보다 전체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원래 평화시대 때 무술이 발전하죠 에도시대 때부터 검패용을 하고 봉건제가 유지되어 각 지역마다 유파와 검술이 발전한 일본과 검술을 무예도보통지와 같은 군용 교본으로 참고한 우리와 비교하면 곤란하죠 대신 화약무기와 비교한다면 명치유신 전까지는 우리의 압승입니다 아시다시피 일본의 검술이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막부가 화약무기를 터부시한게 큽니다 반대로 우린 보병은 조총 기병은 편곤 위주였으니 칼은 당연히 주무기에서 배제될 수 밖에요
카타나와 환도의 차이는 대략 이야기하면 도끝이 다르고 환도는 날이 부드럽게 곡선으로 도끝까지 가는데 카타나는 도끝에서 살짝 각이 있어서 도끝으로 가며 손잡이의 길이가 다르다 손잡이의 길이의 차이는 일본에서의 전쟁에서는 전사가 말타는 일이 거의 없어서 두손으로 카타나를 잡고 싸워서 손잡이가 길다 또한 일본 전사들은 방패를 휴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두손으로 칼을 쓰기위함이며 더 공격적인 스텐스와 파워를 사용할수 있다 수비보단 공격적인 도라고 봐야한다 반면 환도는 한손으로 잡기에 편하게 제작 되었다 이유는 말을 타면서 칼을 써야 하고 활을 쓰기도 하며 방패를 사용하는데 손잡이가 길면 도를 사용하기 불편해 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끈으로 매달아서 휴대하기 때문에 끈고리(끈고리는 말을 타기 위함이다)가 있다 그러나 조선 초기의 손잡이 보다 길어진 이유는 임진왜란 때 환도가 카타나에 비해서 싸움에 밀리다 보니 임진왜란 이후 손잡이가 카타나처럼 길게 제작하였으나 환도의 특성상 불편함 때문에 다시 짧아져서 초기때 보단 손잡이가 길고 카타나보단 짧아진것이다
왜란 끝나고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선 이후에 일본도를 입수하게된 조선의 무사들은 날을 줄여서 휴대하기 편하고 사용하기 편하게 만들었다고 하네요. 그나저나 한때 영신류 거합을 수련했을때 어떻게 박사님 연무영상이나 베기 시범하시는거 오래전부터 많이 봐왔었는데 볼때마다 너무나 멋지십니다..감동감동 ㅠㅠㅠㅠ
@yeorokim9800 조총이 사기급이라 통했을꺼로 보입니다. 열병기라 전면전에선 돌격해오는 병력을 일순 쓸어버릴테니까요. (상대하는 조선군과 의용군들은 일본군을 상대로 조총을 염두하지 않을수 없었겠죠) 그리고, 일본군 입장에서도 전투는 보급이 문제라서 열병기를 남발할순 없었겠죠. 따라서, 일본군도 정예병이 아닌 각각의 번에서 차출된 병사는 스야리나 나기나타는 철이 적게 들어 제작이 편하기에 많이 보급 되었을꺼고 전면전시 창이나 월도는 거리에서 우월하니 근접전에서 활약했을껍니다. 반대로 조선군은 팔도의 병력을 모은다해도 조총을 단한번이라도 경험하였다면 전면전을 벌릴수 없었겠죠. 적 본대까지 돌파를 담당할 병력이 열병기에 한순간에 무너지는데 병력적 우위를 확보해도 돌파력이 없으니 전장을 유지 못하고 후퇴했을껍니다. 그러니, 소수 게릴라전 위주 or 성벽을 방패로 공성전 아님 승산이 없었을껍니다. (정예군의 열병기를 상대로 대규모 회전으로 몰아낼 방법은 같은 열병기 말곤 없으니까요.) 일본창이나 일본식 월도가 활약했다해도 차출된 일본군들의 실상은 퇴각하는 병력을 공격하는 위주였으며 후퇴병력과 민간인 학살에 사용 되었기에 무기나 사용법으로서의 이점보단 뻥이 섞여있는 점도 있어요. 단지, 칼과 칼만으로 승부할땐 일본도는 길고 무겁기에 주무장으로 사용했고 빠르게 휘두르는것에 초점을 맞춘 사용법이라 보조무장인 조선환도로는 숙련도가 필요하거나 긴 손잡이를 사용해 거리감을 속일때엔 칼좀 쓴단 조선병사라도 쉽게 당했을껍니다.
@@golength 동양인은 그런식의 '내탓이요.'논리지만, 실상은 검술이란건 '도구 사용 설명서'입니다. 전쟁은 스포츠가 아니고 사람자체가 졸라짱센게 아니라면, 검은 맨손의 3배수란 일본말처럼 검의 길이가 길면 그냥 강한거고, 손잡이 길이가 길면 손잡이 끝을 잡으면 거리가 늘어나고 양손으로 잡으면 더 강하게 밸수 있는겁니다. 무게중심이 검끝에 있으면 강한 일격을 내고, 대신 움직임이 단순해지는 겁니다. 이게 일본검법의 대부분의 형태며 모든 동작이 간결하며 빠르게 배는 동작으로 이루어지는 이유죠.
다른거 없어요.. 쟤들은 당시에 100여년을 계속 전국시대 전쟁 하던 애들이고 조선은 평화에 물들어 있던 나라라서. 진짜 몇년을 길거리에서 주먹질 하던놈이 갑자기 조용한 동네와서 난장판 치면 막기 어려운거였죠 뭐.. 애초에 저런애들이 감당 안되니까 도요토미도 명나라 쳐들어가니 뭐니 한거라.. 그래도 그 100년 넘는 차이가 나던 전쟁 경험치 빠르게 따라 잡았다고 봅니다.
일본도와 조선 환도에 대해 잘 알게되어 너무 좋군요😅 두분다 검술실력이 너무 출중해서 감탄했습니다. 좋은 공부가 되었어요(참고로 전 검 전문가도 아니고 클레이모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합니다 ㅋㅋ😅)클레이모어는 스코틀랜드 하이랜더 지역 전사들이 쓰는 대검이라고만 알고있어요. 그냥 소울류 게임에 대검 클레이모어가 자주등장해서 좋아함😅 국내에도 서양검술 전문 유튜버가 계신데 나라마다 검술방식이 다르고 크기나 사용하는 사람도 다른것 같더군요. 서양은 덩치큰 거구들이 무거운 갑옷입고 휘두르다보니 검들이 크고 긴데 아무래도 동양에 비해 느린게 사실.나중엔 점점 해머로 바뀐거 같더군요.
활과 칼은 상호 의존 입니다 먼저 원거리 적을 격퇴 할때 활쏘기로 격퇴 하고 적이 근거리에 오거나 화살이 다 떨어진 경우 칼로 백병전을 했습니다 심지어 조총병들도 칼이 지급되었습니다 총알이 다 떨어지거나 총 장전시 시간 걸릴때 또는 총 이용 환경이 아닐 때 적이 근거리로 오면 칼로 백병전을 했습니다
그냥 문뜩 드는 생각이 무의 수련방법은 각양각색이고 베기의 동작과 기본동작이 다르면 안된다는 말이 옳기는 한데 단순 기본 동작만 죽어라 파도 위력은 나오는 검술도 있기에 검술의 이름이 기억이 안나지만 아마 사츠마, 지금의 가고시마의 검법에서 목도로 통나무를 큰 소리와 함께 미친듯이 내려치는 단순한 수련법을 하는 검법이었는데 이 검법은 에도막부의 신센구미에서 절대 받아치지 말고 피해야 한다 막약 받아치면 검째로 상대를 두동강 낸다 라고 한말을 들은적이 있죠
사츠마의 지겐류(示現流)를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사츠마는 왜구와도 관련이 있기에, 아래와 같은 역사 기록이 남은 듯 싶네요. [천자칼럼] 長刀 두 자루에 담긴 충무공 호국 의지 기다란 일본도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척계광은 병법서 에서 “(오타치에) 당하게 되면 몸이 두동강 나버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서애 류성용도 에서 왜병이 오타치로 사람과 말을 동시에 베어버렸다고 전했다.
찾아봤는데 시현류가 맞네요 기합은 그렇다 치고 길이가 무진장 긴 검을 쓰기도 하고 소태도라고 작은 검을 쓰기도 하는데 사용하는 무기가 두개고 둘다 극단적인 검술인것 같네요 긴 검은 파괴력과 한합을 휘두를때마다 한번에 썰어내는 느낌이고 소태도는 약간 뭐랄까 조금 우습기도한 동작으로 연속으로 적을 공격하다 마지막에 찔러 끝내는 느낌이더군요
군용 검술이 특징이 실용적이면서 빠르게 배울 수 있는 부분이 많더군요. 심지어 근대 미국의 세이버 검술도 그렇고, 명나라 검술도 그렇고. 대도록 많은 병사를 빨리 가르쳐야 하고, 전장에선 칼보단 다른 무기가 주인 경우가 많아서(특히 조총병에게 보조 무기로 칼 들려준 경우 많아서) 주병기가 아니다보니 더욱 그런 부분이 두드러지더군요. 이전 영상에서도 환도 패용방식보면 딱 봐도 환도보단 활이 주무기인게 보이는 것처럼
그게 전형적인 한국에 잘못퍼진 낭설입니다 일본도는 명나라와 조선에서도 최고라고 칠 정도로 최상의 품질인 검이에요 그 내구성이 안좋다는 일본도는 사철로 만든 의장용 즉 장식용 일본도입니다 참고로 이 제련법은 조선에서 건너온 방식인데 그렇다고 조선검이 안좋진 않잖아요 전쟁용은 열처리를 해서 산화 티타늄 비율을 잘 조정한 세계최고품질의 검 입니다
@@망구-t3c 반은 맞고 반은 제가 알고 있는 내용과 다른 것 같습니다. 어차피 중근세 야금술은 거기서 거기고, 조선도 환도를 제작할 때 사철로도 만들었다 합니다. 사철은 동서고금 막론하고 접근성이 높아 상당히 많이 사용된 소재입니다. 사철로 재련된 검도 충분히 전장에서 쓸만한 성능이 나옵니다. 일본도를 제작할 때 신가네, 하가네의 조합처럼 내구성에 치중하는 이유는 특유의 제강법에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용광로가 비교적 대형이라 높은 온도로 불순물을 제거하기 쉽지만, 일본의 타타라 제강법은 올릴 수 있는 온도도 비교적 낮아 불순물을 제거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철의 성능에서 불순물의 함유가 상당히 중요한 요소인 만큼 제강술의 차이를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떨어졌을지언정 동시대 주변국가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던걸 봐서 전장에서 활약하기엔 충분하다 봅니다. 마지막으로 전쟁용 카타나가 따로 있지는 않았습니다. 기록을 보면 도공 이름값의 차이는 있다만, 갓 완성된 카타나 신품은 의외로 가격이 낮았다 합니다. 반면 전장에서 쓰였던 카타나가 비싸게 팔렸습니다. 이는 철의 성능을 명확히 알 수 없던 당시 전장에서 구르고도 멀쩡한 카타나는 신뢰성이 입증됬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짚단이나 대나무가 아닌 사형수들의 목을 치는 타메시기리를 통해 와자모노를 분류한 것도 이러한 양상과 연관이 있습니다.
문젠 훈련도가 높을땐 얼마나 숙련도따라서 전투력이 다른데요 .. 하지만 지금도 군사교육하면 막대한 비용입니다 높은 숙력도에서 아니고 보급력에서 무기의 파워는 리치 거리 그래서 창위주 활위주가 더욱더 발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칼길이도 더긴칼이 더유리하고 파워에서도 긴칼이 더유리하죠
칼날의 예리함에 따라 대나무베기가 차이나는 것이라기보다, 일본도의 길이가 조선도보다 긴 탓에 따른 결과라 봅니다. 격투기에서도 그래서 윙스팬이 긴 사람이 동일한 체중이라도 펀치력이 훨씬 강하죠. 그리고 조선은 전국시대를 거친 일본과 달리, 중무장을 한 대규모 병력간 백병전을 피하는 방향으로 전술과 화기가 발전합니다. 그래서 조선중기에 이르면, 창과 검은 계속 만들어졌으냐, 창술과 검술의 전수가 끊기어, 사실상 백병전을 위한 무예나 전술이 전무한 상황이 됩니다. 조선중기에, 명나라 척계광이 지은 기효신서 따위를 베껴서라도, 백병전 메뉴얼을 확립합니다만, 그것만으론 영 부족했죠. 보병간 백병전을 멀리했으나, 대신 북방 함경도의 오랑캐 야인들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기마궁술의 연마는 비교적 꾸준히 이뤄져 이들 오랑캐나 산발적인 왜구를 토평하는데에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물론 전면전단위로 발발한 임진왜란때는, 대대단위 전술경험이 일천하였던 신립이, 조악한 기마궁병의 지휘를 맡다가, 상인출신 다이묘 고니시에게 처절하게 패하여 죽고 말았죠.
허세에요. 모든 검법은 도구사용법 메뉴얼정도로 보조무기와 주무기의 사용법정도로 받아들여야 해요. 일본도나 검법의 강점은 거리와 무게라서 긴칼(손잡이까지 길어서 사거리를 속일수 있죠)로 더 먼거리에서 무게중심이 칼날에 있기에 강하고 간결하게 때려야하죠. 조선검이나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본국검은 무게중심이 잘 잡힌 한손검 사용법이라서 칼끝의 변화가 쉽게되는 장점이 있지만, 숙련에 어려움이 있고 역시 먼거리에서 타격과 양무게중심이 칼앞쪽이라 무거운 일격을 버티기엔 힘들었을껍니다. 간간히 손잡이로 거리를 속이는 기교를 부린다면 조선환도 사용자는 쉽게 살해 당했겠죠. 저건 소총과 권총을 쥐어주고 300m 앞에서 서로 그 도구로 승부한 것이라 임진년에 왜란으로 검술엔 밀린 역사가 기록되어 있어요. 저런 무게와 거리의 장점을 가진 검을 가지고 그걸 빨리 휘두르기만 연구한 속도로 싸우는 장검과 일대일 승부할땐 검방으로 싸워야 승산이 있는데, 조총이란 열병기의 등장으로 방패가 무용지물이 되었죠.
일본은 개인 살상무기중 쓸수 있는 무기가 칼 밖에 없습니다 활이라 해봤자 우리나라 활 반에 반도 못 따라오고 장식이나 게임 또는 정신수양 정도로 알고 있고 우리나라 환도는 옆에 차고 있다가 활로 먼저 공격을 하고 근접하면 환도 특성상 발도가 빠르기 때문에 바로 꺼네어 베는 용도라고 들었습니다 사실상 일본 검술을 보기도 전에 활로 끝내 버리는 속전속결 전술 입니다
기본적으로 방어구가 두꺼워지면 두꺼워질수록 무기 또한 커집니다. 이건 보편적인 법칙입니다. 당연하지만, 무기가 커지면 양손으로 써야 하죠. 그럼 환도는 방어구가 두껍지 않은 적을 감안하고 만든 것이고, 일본도는 방어구가 두꺼운 적을 감안하고 만들었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당시 조선의 주적은 북방의 여진족이었고, 이들은 유목을 하기 때문에 방어구가 두텁지 않았죠. 반면에 일본의 주적은 같은 사무라이 계층이었고, 이들은 유럽의 기사들처럼 두터운 방어구를 착용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의 환도는 빠르게 움직이는 적을 상대로 간결한 공격을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반면에, 일본도는 중무장을 갖춘 적의 가장 약한 고리인 목 부분을 일격필살로 방어구를 쪼개고 죽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죠. 그러다 임진왜란 때 일본의 사무라이들에게 패배했고, 그걸 분쇄하기 위해서 왜검을 배웠죠. 그 결과물이 무예도보통지입니다. 일본도의 일격을 막기 위해서 장대에 가지를 달아서 방해하고, 느려진 공격을 방패수가 막는 방진이 나오는 것이죠.
잘보고갑니다. 일본도를 카타나라고합니다.날카롭고 예리하다고들었습니다. 스즈키 바이크중에 카타나라는 바이크가 있는데 거기서 따왔다고합니다. 타미야에서도 카타나바이크가 나왔습니다. 일본도는 보통 사무라이등 무사들이 많이 사용하고 지금도 일본도를 만드는 장인이 있고 계속 지속해서 만들고 있다고합니다. 장인정신이 여기서 비롯된걸로 생각이 됩니다.ㅎㅎㅎ
조선시대는 장검은 거의 사라지고 부무장 개념으로 사용, 조선 중기 이후 무관들 복원한거 보면 활이 주무기이고 뒤에 짧은 환도를 차고 있는데 활로 상대를 빠르게 쏘고 가까이 오면 환도로 후려치는 패턴을 구사한 것 같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환도가 저렇게 짧지는 않고 엄청 길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활과 창 또는 환도에 방패를 차는 형식으로 전투를 치루는 형태로 변해서 장검은 효율성이 떨어져서 사라졌다고 들었어요.
사극이나 영화를 볼때 항상 궁금했던게 있습니다. 칼날끼리 부딫혀 가며 싸울때 칼날의 이가 다 나가는게 아닐까요? 예를들면 예날 전쟁터에서 싸움하다보면 금방 칼이 무뎌져 사람을 베어도 베이지 않는 그런게 있지 안했을까 생각을 해보는데 칼날과 칼날이 물런 강하겠지만 서로 부딫히면 칼날이가 엄청 무뎌지지 않나 궁금했네요
칼의 길이가 긴 게 아무래도 실전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함. 길이가 짧아서 좋은 점은 휴대가 편하다는 거. 일본은 전국시대를 거쳐서 길이가 길어진 거고... 조선은 평화의 시기가 오래되고, 칼보다 활을 주무기로 써서 활과 같이 휴대하고 활쏘기에 편하도록 짧은 검이 유행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도는 무게 중심이 날에 있기 때문에 위력이 좋은 대신 휘두른 다음의 회수가 상대적으로 느리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단타 형식의 끊어치기가 주를 이룹니다. 반대로 서양의 롱소드나 중국의 한손검 같은 경우는 무게 중심이 손잡이에 있어서 위력은 좀 약하지만 회수가 쉽고 빠릅니다. 그래서 화려하게 휘도는 연속 동작이 많죠. 각자 장단점이 있는 거죠. 그런데 환도는 다뤄 본 적이 없어서 무게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네요. .... 긁적.
전쟁에서는 저렇게 안싸웁니다. 일단 저렇게 가까이 안붙고 거리를 둡니다. 방패 내세워서 창으로 가까이 못오게 막습니다. 그러고 그렇게 계속 대치하면서 거리를 유지하다 10 분정도 지나 지칠때면 다른 군사들이랑 교대하여 쉬게 합니다. 그러니깐 진형이 무너지지 않는이상 쉽게 죽지도 죽이지도 못하는거죠. 먼저 지치거나 실수를 해서 진형이 무너지면 그때 칼이나 도끼로 싸우게 되는게 그게 최후의 방법이죠. 기병들이 유용한게 그런 보병들의 진형을 흔들고 아군보병에게 틈을 만들어 주는겁니다.
환두대도+당태도의 양식에 영향을 받은 일본도와는 달리 환도는 환두대도의 일종인 목병도에 유래를 두고, 고려 중기때만 해도 직선의 형태였으나 몽골 침략 이후 몽골 기병도의 영향을 많이 받은 칼 입니다. 대다수의 유물들은 일본도의 요코테와 킷사키 부분에 해당하는 경계가 없어 칼 끝으로 갈 수록 서서히 얇아지며 날렵한 형태가 주로 보입니다. 이는 가장 큰 차이점이자 환도와 일본도를 구분할 수 있는 요소입니다. 또한 육각도 유물이 대다수인 일본도에 비해 환도는 배형도, 육각도, 오각도 등 다양한 형태가 산재되는 등 이처럼 명확한 양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칼날 외로 가자면 영상에 나와있다시피 환도는 외수와 쌍수 겸용, 띠돈, 비녀장 같은 잠금장치, 끈이 매달린 자루 등 일본도와는 제법 차이가 있습니다.
난 환도 를 잡아도 서양검술 하듯이 일본검술 하듯이 잡는데. 난 환도 를 잡을때 는 내가 이미 습관 이 된 저선비검객 이 뭐라고 해도. 난 내가 편한대로 환도 를 잡을거야. 선비검객 이 하는말 을 않들을거야. 난 내가 편한대로 환도 를 잡을거야. 난 환도 이어도 일본검술 처럼 서양검술 처럼 잡을거야.
최형국박사님께 무예사 공부나 동호회 수련 문의는 muye24ki.com 로 부탁드립니다^^
일본 사람들 자꾸 칼 모양이 비슷하다고 한국이 일본 따라했다고 하는데.. '세조실록'에 따르면 조선도 류큐왕국의 일본도를 보고 '우리 조선의 환도와 비슷하다'라는 기록이 있고, 일본측 기록인 '통항일람(通航一覽)'에서도 '조선의 검이 일본도와 유사하다'라는 내용이 있음.. 한국의 환도는 원래는 곡률이 없는 검이었지만, 몽골 지배기 거치면서 곡도를 사용하는 몽골 무기의 영향을 받아 휘어지게 된거임. 조선 측에서도 왜병의 검술을 높이 평가하거나 일본도를 높이 평가하는 기록이 많지만, 칼의 모양은 일본도에게 영향을 받은게 아님. 다만 검술은 임진왜란 이전까지 조선에는 제대로 된 검술이 없었고, 임진왜란 시기를 거치면서 항왜(降倭)들에게 검술을 전수받았고, 정조때 직접 김체건이라는 사람이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혹은 왜관에서) 검술을 배웠고, 그 검술을 왜검(倭劍)이라고 칭했음.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서 일본도를 따라했다고하네요
그건 전쟁중에 득이 되는건 답습해 계량하는 습성때문입니다. 카피와는 다르고 조선환도 특성에 일본도검의 장점을 업그레이드 시킨거죠. 그렇게 따지면 일본역시 고구려,신라에도 도검 문화에 영향을 받은게 사실인데 중국의 명나라도 곡선도검이 있었습니다.일본만 있는게 아니란겁니다. 가야투구나 백제 갑옷도 일본의 영향을 준 계기도 있었는데 곡선도검은 주로 중동쪽에서 사용되어진 유목민들이 뽑기좋고 곡률이 있어 자연스럽게 패용하기 좋은 구도를 가진 형태였기에 몽골에서도 넘어 영향을 끼친거였고 그런몽골도 유목민 특성이 말타고 활쏘고 칼을 뽑아야 하기에 직도보다는 곡선도를 주로 쓴겁니다. 고구려 역시 기마민족이라 직도가 많지만 곡선도 역시 있었다고 보지만 역사적 유물이 중국만큼 보존이 잘되서 발굴되지 않아 거의 날부분은 다 썩어 없어진 형태나 왕이나 귀족의 무덤부분에서 출토된 것 부장품 따위 그래서 이것을 정확히 언제 부터 한반도에서 곡선도를 사용햇느냐가 추측일뿐 정확한 연대는 추정일뿐입니다. 조선은 임진왜란과 같은 나라의 큰전쟁 을 통해 좋은장점은 답습하고 계량시킨 조선환도에서 조금 변형시킨 조선도검으로 발전한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곡선도는 중동의 아랍국가에서도 반월검 이라고도 불리는 칼들이 있습니다. 실크로드 나 중국서역등 무역을 한고구려와 고려 신라, 백제,가야 한반도에 곡선도가 없다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거죠.
조선도검은 환도의 시작으로 전쟁으로 인한 환경으로 만들어진 도검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보여집니다.
안녕하세요.
비급칼잡이님과 함께 촬영한 무예24기를 수련하고 있는 최형국입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한 실력이지만, 우리 무예의 다양한 모습을 함께 나누고 싶어
영상을 촬영했습니다. 이미 미사일이 하늘을 날고, 핵무기가 지배하는 전장에서
창검을 비롯한 단병무예는 그저 전통시대에 대한 추억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예 안에 담긴 몸철학의 문제, 무예로 풀어갈 수 있는 무예인문학적 고민은
무예수련의 의미를 더 넓힐 수 있으리라 믿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와의 싸움에서 칼을 뽑는 순간,
이미 법에 의해 가중처벌되는 세상입니다.
그저 또 다른 몸살림의 수련으로 무예을 익힙니다.
가장 '야성'적이면서도 가장 '지성'적인 몸짓이 무예에 담겨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영성'의 단계까지 풀어보고 싶기도 합니다.
아직도 공부할 것도, 채울 것도 많아
오늘도 내일도 한결같이 수련할 뿐입니다.
고맙습니다.
-무예24기 최형국 드림-
와 박사님 본국검법 풀영상 올려주시면 안될까요??ㅠㅠ 동작 하나하나 보면서 굉장히 감탄했습니다 😮
ㄹㅇㄹㅇ.......
진심 멋집니다
일단 조선 병과에 방패수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일본과 전투방법이 다름. 방패를 한손에 든다면 초근접전에 들어가니 칼이 짧을수밖에 없음. 로마가 글라디우스를 썼던것처럼
원거리는 활로 빠르게 대처하면서
보법 자체가 가만히 있지 않는 상대방의 움직임에 따라 칼날을 피하고 빠르게 찌르고 베는 실용적인 형식이네요
전쟁의 형태에 따라 발전해온게 고스란히 녹아있는거 같습니다
사실 전쟁에서 베는건 별 의미 없죠. 갑옷이란게 있으니까요.
갑옷을 상대할땐 둔기 같은걸로 두드려패거나 찔러야 하죠.
환도가 짧은 이유도 긴칼로 찔러봐야 부러지기만 쉽기 때문이죠.
최 박사님이 영상에서 설명하신 올려베기(걸쳐베기)의 경우, 갑옷을 벤다기 보다는 갑옷이 벌어지는 틈을 파고들어 베는 느낌이 강합니다. 예를들어 겨드랑이나 사타구니 같은 갑옷으로 완전히 가릴수 없는 부분이요.
물론 주무기인 둔기류에 비해 보조병기인 환도로 제압하기에는 까다로웠겠죠. 그래서 쉴새없이 빠른 보법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이 나오는것 같습니다.
@@스윗도기 임진왜란 이후 한때 길어졌다가 북방유목민 상대로 써봤더니 쓰레기라서 다시 짧아짐.
도검이라는것 자체가 보조 무기임.
이 보조가 길어 봐야 주무기 쓸때 걸리적 거릴 뿐임.
@@산시우-u8l 애초에 전장에서 누구나 중갑 입을수 있는것도 아니고 일본식 갑주의 단점이 올려서 치는 공격에 취약한거라서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공격방식이 될듯도 합니다
@@스윗도기 지금도 그렇고 모든건 실전에서 증명해야하고 편의성이 좋아야함 길고 무겁고 너무 큰건 예나 지금이나 최악의 무기로 생각했음 만주족이나 몽골군은 일찍히 여러 민족 군대를 상대해보니 실전능력이 미친수준이라 그걸 알고 검은 기병으로 짧거나 검방용으로 다 봐꾼거임
검도와 병행해 거합을 배우는 중인데, 본국검법도 물론 재미있었지만 박사님의 조선검법을 보니 칼이 살아 움직이는듯 너무나 멋지고 매력적입니다. 앞으로도 영상에서 자주뵙고 싶어요 ㅎㅎ 비급 칼잡이님도 언제나 양질의 영상 감사드립니다 ^^
以前から双方の違い切れ味扱い方等気になってましたのでとても興味深く拝見させて頂きました
와 군대동기랑 카톡으로 최형국 박사님 이야기 중인데,
최박사님이 등장하는 따끈따끈한 영상이 올라왔네요!
재미있게 잘 봤어요!
아래서 위로 올려베는 것은 일본도 처럼 칼이 길면 잘못하면 주변 지형 상황에 따라 칼 끝이 땅을 긁거나 주변 사물에 걸릴 위험이 크지않을까 유추해봅니다. 서로 마주보고 휘둘렀는데 휘두른 칼이 주변 어디에 잘 못 맞아서 탱 하고 튕기면 바로 반격에 내가 당할 것입니다. 칼이 길기에 머리 위로 들고 아래로 베야 할것 같습니다. 반면 조선도는 칼이 짧아 땅을 긁거나 사물에 걸린 위험이 더 적어 보입니다.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베면 방어자가 칼을 들어서 막을 수 있는데 순간적으로 아래서 위로 베면 방어자가 어떤식으로 막아야 할지 애매 할것 같습니다.
이렇게 다루기 어렵다보니 제대로 전투력을 갖추고 전투를 하기 위해 시간을 얼마나 투자해야할지..이래서 총이 상대적으로 편하다라고 하는 것인듯...
최고의 검술 콘텐츠👍👍👍👍👍👍👍👍👍👍👍👍
동북아 3국의 무의 발달, 그중에서 칼에만 한정해도 차이가 많이 나죠
그래서 질문거리가 많죠
조선에 일본같은 발도술이 있는가?
검집에서 검을 뽑으며 위로베며 자세를 취하는 자세가 있으니 발도술과 개념이 다르지만 비슷한건 있고
조선의 환도와 일본의 카타나의 칼의 구조와 끝부분은 어떻게 되는가?
검으로 사람을 베고 피가 묻으면 일본은 칼을 손잡이를 중심으로 회전시키고 칼등을 주먹으로 탁 치고 피를 닦거나
팔꿈치로 피를 닦거나 하는데
조선의 검법에는 그런게 있는가?
등등이 있죠
근데 조선의 검법은 보법이 중요하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적이 있는데
그 이유를 알겠네요
날이 짧으니 아래에서 위로치며 앞으로 빠르게 가서 베거나 아래에세 위로치고 간격을 보거나 하기에 보법이 중요해 보입니다
애초에 주무기가 활이라, 검은 보조용 혹은 접근전 때의 호신용이었죠. 그래서 길이도 짧았고요.
발도술은 어느나라든 잇습니다 단지 기습할때 위주로 많이쓰는나라가 일본이라 발달햇을뿐
검술은 조선에서 명맥이 사실상 끊어졌습니다. 전쟁도 별로 없고 무예를 익힐 여유가 있는 계층인 양반들은 활쏘기만 하지 검과 검술을 천시해서 전혀 배우지 않았습니다.
쓸 일도 별로 없고 배우고 연마하는 이도 없으니 명맥이 끊기는게 당연한 일이였지요.
그러다 왜란때 조선군이 단병접전에서 극악의 취약성을 들어내자 단병접전 능력 강화를 위해 병사들에게 검술을 익히도록 했는데 조선 내에선 검술을 가르쳐줄 인물이 없어서 항왜들과 명나라 장교들을 사범으로 삼아서 검술을 교육해야할 정도였습니다. 조선 검술이 일본 검술과 명나라 검술을 베이스로 다시 탄생하는 순간이였습니다.
저는 일본인입니다.
일본어에서는 한국도의 자료를 찾을 수 없습니다.
저는 최근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한국어 자료를 찾을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이 없습니다.
나에게이 동영상은 매우 고맙습니다!
환영합니다~
@@스윗도기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손잡이가 짧은 것은 어느 정도 원거리에서 공격하기 위한 것인가요?
한국사람이지만 일본도가 무사간의 칼싸움에선 유리해 보인다.
韓国の刀剣はモンゴルの影響を多く受けました 剣身が曲がったのがこの時からでした
朝鮮は文宗以降、長さが規格化されました 約70センチ、これは長い黒い弓を撃つのが不便だからです
日本の侵略以後、日本刀の影響を受けて剣身が日本刀ほど長くなります
剣身の短い幻刀は、日本刀と剣術で鍛えられた日本の武士を相手にするのが難しかったです
もちろん、倭乱後期に戦争に慣れてきた朝鮮軍も近接戦に長けていましたが、前期はどうしようもありませんでした
もちろん、世祖の時に弓を主武器として採用し、近接戦のノウハウが多く消えたのもあります
その後、朝鮮は日本の古流剣術も導入します
その後、銃を主に使い、軍用の黒い長さが再び短くなりましたが、王の護衛武士たちの黒い刀身が長いものが多いです
小さなお役に立てば幸いです
また、朝鮮初期の軍種では彭培手がありました
片手剣と盾を使った戦士です
朝鮮王朝実録によると、彭培地の戦闘力と熟練度がかなり高かったと記録されています。 チャンチャン5基とペンベ1基がつくとペンベ1基が勝つという描写まで登場します。 盾と片手剣、または近接武器はどちらも非常に実用的な武装であり、強くて厳しい訓練を受けたことを考えると、それなりに強兵といえるでしょう。
両手剣の日本刀と運営教理が違いました
우와 환도 검술 부드러우면서도 빠르고 멋지네요.
짧은 환도가 올려베기에 더유리하고 50대이후 수련에 관절에 덜 부담이 될수도 있겠지만
긴검의 장점과 특징도 있을것 같습니다 ㅎㅎ
환도가 짧은 이유는
첫째, 기효신서 영향을 받아 방패를 든 팽배수의 검으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일본도가 아무리 길고 강력해도 방패와 함께 운용되는 적당한 길이를 가진 환도를 이기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척계광이 당시 압도적이었던 일본 검술을 파훼하는 방법으로 고안한 것이고 결과가 꽤 성공적이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에 한국 검이 점점 더 한손 검의 짧은 형태로 바뀐 것은 검술이 열화한 것이 아니라 진화했다고 봐야 합니다. 로마군의 전술과 로마군의 검 글라디우스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둘째, 환도는 기본적으로 기병도 쓸 수 있어야 하는 다용도 검입니다. 그래서 한 손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길이의 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카타나는 양손 검이기 때문에 말 위에서 사용하기 적합하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덧붙이면 카타나는 사실상 전쟁에서 사용하는 무기는 아니죠. 일본도가 전쟁에서 쓰일때는 대태도 정도되는 길이로 폴암처럼 쓰는거고, 집단전이 본격화 되자 장창과 조총으로 넘거가죠. 정작 카타나는 평화기인 에도시대때의 산물.
시미터나 세이버와 같은 계열로 보는 게 맞겠네요.
맞습니다.
검방은 검만 가진 어지간한 병사를 쌈 싸먹죠.
(숙련도나 인간자체가 강한 이레귤러는 있습니다만, 인간은 도구의 변화로 극적으로 강해집니다)
검방이 양손검보다 강하다는 것에 어떤이는 반론이 있을수 있겠지만, 양손은 거리를 두고 무거운 검으로 강하게 치는게 가장강한 올바른 사용법이며, 검방은 방패라는 벽을 세워 벽뒤에서 인파이팅을 강요합니다.
그러니 방패라는 벽이란 공간적 제약 안에서 효율적인 글라디우스 같은 짦은 검으로 공격하기에 양손검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해집니다.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인 제약과 도구의 길이로 오는 한계점을 파악한 거죠.
@@dongkuri00 네, 서양에서는 한국의 환도 형태의 중국 검을 차이니즈 세이버 또는 몽골리언 세이버라고 부릅니다. 한국의 환도는 용도로 봤을 때 세이버와 글라디우스를 섞어놓은 것이죠.
환도 자체가 부무장이었지 않았나요. 주무장은 활이었고.
그래도 실제 환도도 양손검으로 활용이 가능하군요.. 그런데 그래도 카타나보다도 짧네요 ㅎㄷㄷ
원딜위주고 호신용 느낌인가봐요
저 길이 정도의 카타나는 평화기인 에도시대의 산물입니다. 일본도가 전쟁에서 쓰일때는 대태도 정도되는 길이로 폴암처럼 쓰는거고, 집단전이 본격화 되자 장창과 조총으로 넘어가죠. 전쟁터에서 주무기로 사용된 칼들은 대부분 길이가 짧습니다. 방패와 함께 쓰거나 기병도이거나 호신용 2차무기로 쓰이거든요.
@@地獄龍-m7q 저 우치카타나가 일본도의 대명사가 된것은 평화기인 에도시대란다.
실제 전쟁에서 대규모전투의 주력병기로 사용된 칼은 길이가 짧단다. 대표적인 예가 로마군단의 그라디우스지. 저런 카타나는 타치처럼 길지 않아서 폴암처럼 쓸 수 있는것도 아니고, 보드소드, 환도처럼 보조무기로도 못써먹을 물건이지. 아 물론 타치의 보조용으로 사용되었던 초창기 우치카타나는 예외. 저런 카타나 보다는 더 짧거든. ㅋ
@@地獄龍-m7q 저 우치카타나가 일본도의 대명사가 된것은 평화기인 에도시대란다.
실제 전쟁에서 대규모전투의 주력병기로 사용된 칼은 길이가 짧단다. 대표적인 예가 로마군단의 그라디우스지. 저런 카타나는 타치처럼 길지 않아서 폴암처럼 쓸 수 있는것도 아니고, 보드소드, 환도처럼 보조무기로도 못써먹을 물건이지. 아 물론 타치의 보조용으로 사용되었던 초창기 우치카타나는 예외. 저런 카타나 보다는 더 짧거든.
한국검은 한손과 양손 멀티 가능한손잡이 길이
저 사무라이 옷입은 분하고 한복 입은 분의 동작의 차이가 보는 사람입장에선 속도와 힘 위주의 움직임과 부드럽고 몸의 움직임에 의해서 힘을 만들어내는 동작의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That hwan-do seems like it might be similar in size to Japanese uchigatana, which was a smaller fore-runner to the katana (as we know it now). It's hard to find images of actual uchigatana outside of a bare few sword collecting books, as the term also refers to the standard furniture of the katana, and the characters for uchigatana are the same as what the Chinese use for the Japanese katana.
On a separate note, I remember seeing some impressive Korean swords when I visited the War Memorial Museum in Seoul many years ago when I was a young American soldier.
- Chang Dao = Ming Dynasty
- Wodao = Qing Dynasty
- Miao Dao = Republic Of China
Thank you for your service.
That's a pretty keen observation. While the end result is more or less what you said, how korean swords got there is a bit more complicated. Korean swords were once long, developed, and otherwise advanced. In fact, the swords of the korean three kingdom period influenced japaense sword and armor design a ton. After all, before contact with the west, the japanese were almost always on the recieving side of asian technological trade. But the unification of the peninsula shifted the paradigm of korean warfare toward siege defense against northern nomad tribes. For this, bows were far superior to swords - which were sidearms at best even in a stereotypical plain battle. By the joseon period - korea's last dynasty - swords had devolved to be shorter, smaller, and most importantly, not get in the way of bows - which were also holstered at the hip. That's why the korean swords you see in the video look less advanced :D
Traditionally, Chinese swords are double edged, so as Korean's. Japanese katana were known to the continent since the Song dynasty, but it gained its reputation through 13th~16th century as Japanese pirates raiding China and Korea were using them practically. Chinese called these Katana "Wo-Dao", and either imported them from Japan, or made similar ones themselves.
현실에서는 한명이 무쌍을 하는게 아니라
다굴로 상대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활입니다.
그래서 짧은 게 아닐까 싶어요
활 쏘다가 적이 근접하면 얼른 뽑아서 쓸 수 있는 가볍고 짧은 칼인 것 같아요
공통점:2다 외날검
다른점:환도는 도신이 배형으로 되있고 카타나는 육각의 형태(물론 삼각도 있음)
최박사님도 나이가 많이 드셨군요. 세월이 느껴집니다. 최박사님 같은 분들이 있어 드디어 사극에서도 깍지를 끼우고 활을 쏘는 장면이 나오는 것 같아 요새 감회가 새롭습니다. 조선에서 칼은 부무장 개념으로 궁술을 더 중요시했죠.
일본도 전쟁에서는 무조건 창이 1순위입니다
동양에서 칼은 그냥 과시용이나 보조무기죠
@@제국전기 서양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창은 전열 난전은 검 조선은 수성이라 창은 삼지창으로 방어용 유럽예서 냉병기중 창으로 죽은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댓글들 수준보소
@@skymars2069 기사들 아작낸 무기들 중 하나가 창인뎁쇼..할버드도 따지고 보면 창이고 파이크로 기사들 못들어오게 막는 전법도 있고...화승총 운용해서 대량학살 가능해지고 나서도 화승총병 지킨게 창임.
@@jimblack8808 먼저 제가 술먹고 장난으로단 댓글이....죄송 합니다.
지금은 시간이 있고 특히 심심해서요.ㅋ
*플레이트 갑옷을 뚫는 창이 존재 했던적이 없습니다.냉병기로는 석궁이 유일 합니다.
고대 유럽-창병은 기본적으로 방패를 들지못해 좀 쓰다가 말았습니다.로마시대, 알렉산드로스.페르시아군 까지 창병의 활약은 없다고 바도 됩니다.
글라디우스가 일반적 오랫동안 쓰인 이유 생각 하시면
더우기 기습이나 지형 이동의 제약을 받습니다.그래서 로마시대의 군가에 중요한 병장기를 호칭하는데도 검이나 전차는 더우기 방어구인 방패나 각반이 빛나는~ 그런 표현은 있어도 "창"은 언급도 안합니다.
너무길어져서..
그리고 할버드는 전쟁용 무기가 아닙니다
기병은 쓸수도 없고 동양에 비슷한 "극"이라는게 있습니다.
파이크는 대충 15세기 16세기에 평지에서 적 창부대에 대항에서 쓰였습니다.
창부대가 별다른 훈련 없이 농사 짓다가도 쓸수 있다는 장점 있지만 전문군인을 만나면...같은 별훈련 없는 창부대를 만나면 더 긴 파이크를 든 부대가 유리 했습니다.
그리고 머스켓의 활용은 적군이 머스켓이 없을때 머스켓 재장전 까지 경갑기병의 접근을 막는것에 한정적으로 쓰였습니다.
적군도 머스켓을 들고 궁수가 훈련되면서 부터 ....
동양의 경우
손무의 전쟁에 적 창병을 둔기로 무장시켜 전장에 이겼다.아니면 그 반대..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서 여포가 극의 곁가지를 화살로 맞추다 이런식으로 몇번 나옵니다. 전장에선 큰칼로~ 활로~이런식 입니다.
명말기 명장 원숭환이 소대에 창 비슷한것으로 여진족 기마병 말을 공격해서 엄청난 전과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삼국시대 신라군에 전문 창병이 있었는데
혼자 쓰는게 아니라 아주 긴창 가지고 2~3명이 썼습니다,훈련도 2년? 걸린다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전문 궁수 부대가 일반적이 될때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조선의 경우 삼지창은 수성 방어용 입니다.
적의 무기를 성위에서 걷어내는 용도 입니다.
일본의 경우 창병이 있었으나 일본은 궁수가 곡사가 아닌 직사라 전문궁수 부대가 아니라도 아주 끔찍한 피해를 입습니다.
그냥 없어 졌습니다.
나중에 검+창 비슷한게 나왔는데 개인vs개인은 좋아도 전장에서는 쥐약이 무기가 됬습니다.
몽골의 경우도 창은 초원에서 깃발을 달아 적과 구분하는 용도내지는 집합용도로 쓰였습니다.
창이 개인적 결투에선 유리 하겠지만 전장에선 전장까지 이동(현대 전쟁도 마찬가지)해야 했기에 아주 비효율 무기 였습니다.
특히 험지로 이동 할땐.
공격 방향도 제한적이고 방향 전환도 어렵 습니다.난전에선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창은 성벽에서 수성용이거나 관문 성문에서 지키는 용도 의전 등에 동서양 할것 없이 쓰였습니다.
전장에선 둔기와 함께 명맥은 이어 졌지만 자연스럽게 안쓰게 되었습니다.
현대 전쟁에선 "권총"같은 상징성과 계급 지휘는 나태내지만 그렇게 전장이라는 곳에선 ...
보통의 환도는 칼이 짧은데 이는 활을 쏘기 위해서죠. 그래서 짧은 칼을 활용하기 위해 파고드는 기술 위주로 발달했습니다,본국검과 예도에서 허리베기를 변태처럼 좋아하는 이유죠. 칼이 짧으면 긴칼과의 전투에서 일본처럼 원중거리에서 빠른 머리치기보다, 한번 공격을 막고 속으로 파고들어가 긴칼의 장점을 상쇄하고 씨름이나 허리베기로 마무리합니다.(이 근거리로 들어가 간칼의 원거리 공격 리스크를 무효화하는 것은 리히테나류 롱소드검술에서도 강조하는 부분)
4:07 저도 이제 곧 40대이고 요즘 허리디스크로 매우 고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릎을 탁 치면서 느낀점이 많습니다 😮😊
아무래도 부무장의 느낌이 강하다보니 소지가 용이하고 좁은 장소에서 사용이 용이하게 만들어죠
그래도 군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고 당시 기록을 살펴보면 칼날이 아에 없는 가벼운 가짜 환도를 들고 다녀서 징계를 했다는 기록도 있합니다ㅋㅋ
와... 진짜 너무 멋있어요 ㅠㅠ
환도 쓰는 법을 보니 전투에서 근거리에 처했을 때 쓰는 부무장의 전술적 의도가 분명하게 녹아 있네요.. 주무장은 창이나 활이고...
칼을 뽑아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기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것보다 리치가 좀 짧아지는 대신에 대응속도가 빠르고, 적이 근거리에 급속도로 접근했을 때 반사적으로 대응하기에 적합한 기술로 보이네요.
일본도는 완전한 전투용이라기보다는 무사간의 대결이라는 의식적인 부분이 많이 남아있는 무기라고 생각됩니다.. 칼로 일대일 대결한다고 치면 당연히 길이가 더 긴 칼이 유리하겠지요.. 근데 진짜 전투용이라면 긴 칼보다는 창과 활이 더 유리하죠.. 오로지 전투만 의식했다면 환도처럼 짧아지는 게 맞다고 봅니다.. 전투로만 단련된 몽골 병사들도 일본처럼 긴 칼은 안 썼지요..
Great cutting, Blademan. I've watched you for 12 years and you are kicking ass
흰 옷 입으신 분 스텝이 상당히 경쾌하네. 검 뿐만 아니라 다른 운동이나 무예도 상당한 고수일 듯.
환도 길이라는 게 사실 정해진 건 없습니다
문종 때 규격화되었다가(활 쏘는 것도 있고 방패랑도 같이 운용) 왜란 때는 일본도 영향으로 도신이 길어졌다 조총운용 때문에 다시 짧아집니다
이것도 군용한정이고 운검같은 유적을 보면 도신이 긴것도 종종 있습니다
칼에 대해선 일본이 우세가 맞아요. 조선시대 초기엔 칼을 보조병기로 인식해서 휴대성 위주로 발전하던 시대였으니까요.
칼날의 길이도 전체적으로 일본이 더 길고, 비슷한 길이의 날이라도 일본도의 손잡이 부분이 긴 것이 일본도의 트릭 비결일껍니다.
칼싸움은 가라데 고수의 3배수라는 말이 있듯 상대보다 긴거리에서 때릴수 있다는건 크죠.
(양손으로 무겁게 내려치는 공격으로 싸우다 긴 손잡이 끝부분의 쥐고 한손으로 베면 더 긴거리를 공격이 가능하기에 자세에 따라서 30cm 이상의 리치를 확보할수 있으니, 칼의 유효 거리감을 상실한 상대편으로선 승부가 되지 않았을껍니다.)
@@nicecatplus4969뭘 보신지 모르겠는데 저는 조선의 검과 검술이 일본 것보다 전체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원래 평화시대 때 무술이 발전하죠 에도시대 때부터 검패용을 하고 봉건제가 유지되어 각 지역마다 유파와 검술이 발전한 일본과
검술을 무예도보통지와 같은 군용 교본으로 참고한 우리와 비교하면 곤란하죠
대신 화약무기와 비교한다면 명치유신 전까지는 우리의 압승입니다
아시다시피 일본의 검술이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막부가 화약무기를 터부시한게 큽니다
반대로 우린 보병은 조총 기병은 편곤 위주였으니 칼은 당연히 주무기에서 배제될 수 밖에요
@@nicecatplus4969그냥 환도규격에 대해 말 하고 있는데 뭔소리임?
@@nicecatplus4969일뽕임?? 일본도는 쌍수가 기본인 주무기임 반면에 환도는 부무장이고 외수로 들고 방패를 들어도 됨
경기에서 카타나 대 환도로 붙으면 카타나가 완전 우위는 맞긴한데 ㅋㅋ
@@지니어스V gun은 모두를 평등하게 만들지요.
분명히 검방이 좋다고 써놨는데...사시임?
0:35 칼을 만드는 기술과 그 운용 무예를 보니 ..
임진왜란때 사무라이 한명이 조선병사 20명을 상대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듯합니다.
전술자문 분야도 박사학위가 있나요?? 아님 신바람 이박사님 같은 느낌인가요 ??
자기가 쓴 논문도 있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20명이면 사무라이 한명 압사시키는건 일도 아니지 ㅋㅋ
와...당시에는 이런 연구가 아니라 실전이 많았을텐데 더 살벌하게 베었겠다. 언제든 실전은 무서우니...ㄷㄷ
환도는 접근전에 유리할것같네요..사용자가발이빨라야될것같고 아니면 투창으로 사용도 가능한가.. 이도류도 가능할듯..
카타나와 환도의 차이는 대략 이야기하면
도끝이 다르고 환도는 날이 부드럽게 곡선으로 도끝까지 가는데 카타나는 도끝에서 살짝 각이 있어서 도끝으로 가며 손잡이의 길이가 다르다 손잡이의 길이의 차이는 일본에서의 전쟁에서는 전사가 말타는 일이 거의 없어서 두손으로 카타나를 잡고 싸워서 손잡이가 길다 또한 일본 전사들은 방패를 휴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두손으로 칼을 쓰기위함이며 더 공격적인 스텐스와 파워를 사용할수 있다 수비보단 공격적인 도라고 봐야한다 반면 환도는 한손으로 잡기에 편하게 제작 되었다 이유는 말을 타면서 칼을 써야 하고 활을 쓰기도 하며 방패를 사용하는데 손잡이가 길면 도를 사용하기 불편해 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끈으로 매달아서 휴대하기 때문에 끈고리(끈고리는 말을 타기 위함이다)가 있다 그러나 조선 초기의 손잡이 보다 길어진 이유는 임진왜란 때 환도가 카타나에 비해서 싸움에 밀리다 보니 임진왜란 이후 손잡이가 카타나처럼 길게 제작하였으나 환도의 특성상 불편함 때문에 다시 짧아져서 초기때 보단 손잡이가 길고 카타나보단 짧아진것이다
본국검도 영상을 올려주세요 ❤❤❤
한국검술의 움직임이 뭔가 곡선적인 느낌이 있네요. 뭔가 칼춤추는 느낌도 나고 영상에서 보기에 더 화려하고 멋있어보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강동원이 영화에서 보여줬던 느낌이 진짜 한국식 검술의 움직임을 고증해서 만들었구나 싶기도 하고. 너무 멋지네요.
왜란 끝나고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선 이후에 일본도를 입수하게된 조선의 무사들은 날을 줄여서 휴대하기 편하고 사용하기 편하게 만들었다고 하네요. 그나저나 한때 영신류 거합을 수련했을때 어떻게 박사님 연무영상이나 베기 시범하시는거 오래전부터 많이 봐왔었는데 볼때마다 너무나 멋지십니다..감동감동 ㅠㅠㅠㅠ
일본칼이 들어와도 한국사람이 쓰면 자기성향에 맞게 커스텀한거군요, 로컬라이징화 같기도 ㅎㅎ
조선검술 1편보기 ruclips.net/video/NhKyxkYEnug/видео.html
3편
ruclips.net/video/8KVtK_ktrDM/видео.html
저래서 임진왜란때 일본도에 밀렸군요. 거리차이가 상당하군요.
칼이란게 숙련도가 중요하지만 도구에서 받는 버프가 상당한데 한치( 3.03cm ) 차이로 승부가 나는데 열병기 조총으로 화력전 양상으로 몰고가니 전면전에서 밀리고, 몇척 차이나는 그냥봐도 20~30cm 차이가 있으니 육상 근접전에서 칼만으론 일대일로는 상대할수 있는 사람이 적었겠네요.
그러니, 전면전에서 밀리고 게릴라전 위주의 전술 싸웠겠죠.
@yeorokim9800 조총이 사기급이라 통했을꺼로 보입니다.
열병기라 전면전에선 돌격해오는 병력을 일순 쓸어버릴테니까요.
(상대하는 조선군과 의용군들은 일본군을 상대로 조총을 염두하지 않을수 없었겠죠)
그리고, 일본군 입장에서도 전투는 보급이 문제라서 열병기를 남발할순 없었겠죠.
따라서, 일본군도 정예병이 아닌 각각의 번에서 차출된 병사는 스야리나 나기나타는 철이 적게 들어 제작이 편하기에 많이 보급 되었을꺼고 전면전시 창이나 월도는 거리에서 우월하니 근접전에서 활약했을껍니다.
반대로 조선군은 팔도의 병력을 모은다해도 조총을 단한번이라도 경험하였다면 전면전을 벌릴수 없었겠죠.
적 본대까지 돌파를 담당할 병력이 열병기에 한순간에 무너지는데 병력적 우위를 확보해도 돌파력이 없으니 전장을 유지 못하고 후퇴했을껍니다.
그러니, 소수 게릴라전 위주 or 성벽을 방패로 공성전 아님 승산이 없었을껍니다.
(정예군의 열병기를 상대로 대규모 회전으로 몰아낼 방법은 같은 열병기 말곤 없으니까요.)
일본창이나 일본식 월도가 활약했다해도 차출된 일본군들의 실상은 퇴각하는 병력을 공격하는 위주였으며 후퇴병력과 민간인 학살에 사용 되었기에 무기나 사용법으로서의 이점보단 뻥이 섞여있는 점도 있어요.
단지, 칼과 칼만으로 승부할땐 일본도는 길고 무겁기에 주무장으로 사용했고 빠르게 휘두르는것에 초점을 맞춘 사용법이라 보조무장인 조선환도로는 숙련도가 필요하거나 긴 손잡이를 사용해 거리감을 속일때엔 칼좀 쓴단 조선병사라도 쉽게 당했을껍니다.
@@golength 동양인은 그런식의 '내탓이요.'논리지만, 실상은 검술이란건 '도구 사용 설명서'입니다.
전쟁은 스포츠가 아니고 사람자체가 졸라짱센게 아니라면, 검은 맨손의 3배수란 일본말처럼 검의 길이가 길면 그냥 강한거고, 손잡이 길이가 길면 손잡이 끝을 잡으면 거리가 늘어나고 양손으로 잡으면 더 강하게 밸수 있는겁니다.
무게중심이 검끝에 있으면 강한 일격을 내고, 대신 움직임이 단순해지는 겁니다.
이게 일본검법의 대부분의 형태며 모든 동작이 간결하며 빠르게 배는 동작으로 이루어지는 이유죠.
다른거 없어요.. 쟤들은 당시에 100여년을 계속 전국시대 전쟁 하던 애들이고 조선은 평화에 물들어 있던 나라라서. 진짜 몇년을 길거리에서 주먹질 하던놈이 갑자기 조용한 동네와서 난장판 치면 막기 어려운거였죠 뭐.. 애초에 저런애들이 감당 안되니까 도요토미도 명나라 쳐들어가니 뭐니 한거라.. 그래도 그 100년 넘는 차이가 나던 전쟁 경험치 빠르게 따라 잡았다고 봅니다.
칼날이 길면 조선군에서 운용 안했겠지 ㅋㅋㅋ
염병... 칼이 무슨 주요무기가 아니지.. 왜란은 대포나 총의 전쟁. 학살때나 쓰이던가 칼, 그리고 해전으로 박살냈슴.
일본도와 조선 환도에 대해 잘 알게되어 너무 좋군요😅 두분다 검술실력이 너무 출중해서 감탄했습니다. 좋은 공부가 되었어요(참고로 전 검 전문가도 아니고 클레이모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합니다 ㅋㅋ😅)클레이모어는 스코틀랜드 하이랜더 지역 전사들이 쓰는 대검이라고만 알고있어요. 그냥 소울류 게임에 대검 클레이모어가 자주등장해서 좋아함😅 국내에도 서양검술 전문 유튜버가 계신데 나라마다 검술방식이 다르고 크기나 사용하는 사람도 다른것 같더군요. 서양은 덩치큰 거구들이 무거운 갑옷입고 휘두르다보니 검들이 크고 긴데 아무래도 동양에 비해 느린게 사실.나중엔 점점 해머로 바뀐거 같더군요.
もともと朝鮮刀に興味がありましたので私にとって大変有益な動画でした!
日本剣術と朝鮮剣術を同時に見れる動画は貴重ではないかと感じま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下から上へ斬りあげる技は防御が難しく極めて効果的であると言われています。そしてこの速度素晴らしいですね。片手使いですと幅広い運用ができそうですし極めて強力な剣術であるように感じました。
そして何より朝鮮刀かっこいいです!
幕末の剣客集団の新選組は「突き」を多用したようです。中でも最も多くの敵を斬殺した永倉新八は後輩の斎藤一に「もっと、突きを多用せよ」と忠告しています。しかし集団戦では突きより斬る事が重要になり、西南戦争では西郷軍の白刃突撃に明治政府軍は対抗できず、後に抜刀隊を組織します。
한국의 전통문화에 관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술은 너희가 제일 멋져요😊
일본도에 영향을 받은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활과 칼은 상호 의존 입니다 먼저 원거리 적을 격퇴 할때 활쏘기로 격퇴 하고 적이 근거리에 오거나 화살이 다 떨어진 경우 칼로 백병전을 했습니다
심지어 조총병들도 칼이 지급되었습니다
총알이 다 떨어지거나 총 장전시 시간 걸릴때 또는 총 이용 환경이 아닐 때 적이 근거리로 오면 칼로 백병전을 했습니다
그냥 문뜩 드는 생각이
무의 수련방법은 각양각색이고 베기의 동작과 기본동작이 다르면 안된다는 말이 옳기는 한데
단순 기본 동작만 죽어라 파도 위력은 나오는 검술도 있기에
검술의 이름이 기억이 안나지만
아마 사츠마, 지금의 가고시마의 검법에서 목도로 통나무를 큰 소리와 함께 미친듯이 내려치는 단순한 수련법을 하는 검법이었는데
이 검법은 에도막부의 신센구미에서 절대 받아치지 말고 피해야 한다 막약 받아치면 검째로 상대를 두동강 낸다 라고 한말을 들은적이 있죠
사츠마의 지겐류(示現流)를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사츠마는 왜구와도 관련이 있기에, 아래와 같은 역사 기록이 남은 듯 싶네요.
[천자칼럼] 長刀 두 자루에 담긴 충무공 호국 의지
기다란 일본도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척계광은 병법서 에서 “(오타치에) 당하게 되면 몸이 두동강 나버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서애 류성용도 에서 왜병이 오타치로 사람과 말을 동시에 베어버렸다고 전했다.
시현류를 말씀하신거 같은데.
시현류가 채용은 카타나 형태도 독특함.
찾아봤는데 시현류가 맞네요
기합은 그렇다 치고 길이가 무진장 긴 검을 쓰기도 하고 소태도라고 작은 검을 쓰기도 하는데
사용하는 무기가 두개고 둘다 극단적인 검술인것 같네요
긴 검은 파괴력과 한합을 휘두를때마다 한번에 썰어내는 느낌이고
소태도는 약간 뭐랄까 조금 우습기도한 동작으로 연속으로 적을 공격하다 마지막에 찔러 끝내는 느낌이더군요
朝鮮文化を否定的に言うわけではなく、中立的に見て日本刀のほうが切れ味がいい。あと、朝鮮の剣術では無駄に振り回すので体力的に辛い。この剣士の加齢により体力的に厳しいとコメントされている。見て思ったことは、テコンドーと全く発想が同じ舞い方。日本の剣術では、最小にコンパクトに剣を振る。また剣道の基本でも、腕で振るのではなく、手首の返しが非常に重要。目立たない部分であるが、剣術を習得された方なら基礎の基礎。(私は未経験ですが、居合や剣道の達人から聞いただけ)よく剣道が韓国起源という話で論争があるが、それぞれが全く別だとわかった。どちらが出はなく、それぞれが別。日本の剣道を韓国起源というのではなく、韓国は韓国の剣術として広めればいいと思う。
환도 진짜 이쁨
적당한 곡선에 적당한 길이에
それぞれの刀にあった技術があることは認めます。ただ竹を切った際の切れ口が全然違いますね。
そもそも刀鍛冶とは別に研師がいるので。
その研ぎの技術もまたどの研ぎとも違う技術です。
そして日本刀は質の高い刀になると、もし曲がって、鞘に入らなくても、下の真っ直ぐな刃に戻ります。
そして切る人の腕が良ければ、刃こぼれすらしません。
長さや重さも、その運用に一番特化した作りになっています。
種類もそれと同様にあるし、暗殺用忍者刀など様々な形もあります。
日本刀は皆さんが知ってる打刀以外にもあるので、調べてみると面白いですよ。
박사님이 사용하시는 환도는 어디서 구매할 수 있나요?
환도가 짧은건 방패를 같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것도 있지 않을까요? 손잡이가 짧고 도신도 짧은거 보면 한손검 같은데요
그냥 근접은 갑옷때문에 도끼나 몽둥이가 더 실용적임
조선에서 칼은 권총같은 호신용이었음
씨름이나 그라운드로 넘어트리고 찌르는용
실제로 편곤이나 몽둥이를 더 선호함
군용 검술이 특징이 실용적이면서 빠르게 배울 수 있는 부분이 많더군요. 심지어 근대 미국의 세이버 검술도 그렇고, 명나라 검술도 그렇고. 대도록 많은 병사를 빨리 가르쳐야 하고, 전장에선 칼보단 다른 무기가 주인 경우가 많아서(특히 조총병에게 보조 무기로 칼 들려준 경우 많아서) 주병기가 아니다보니 더욱 그런 부분이 두드러지더군요. 이전 영상에서도 환도 패용방식보면 딱 봐도 환도보단 활이 주무기인게 보이는 것처럼
옛날에 어떤다큐에서 봤는데 일본도 전쟁에서 쓰이는 칼중예리함이 순위에 들지만 내구성이 약하다고 하고 환도가 조금예리하지는 못해도 내구성은 좋다고 하네요
그게 전형적인 한국에 잘못퍼진 낭설입니다
일본도는 명나라와 조선에서도 최고라고 칠 정도로 최상의 품질인 검이에요
그 내구성이 안좋다는 일본도는 사철로 만든 의장용 즉 장식용 일본도입니다 참고로 이 제련법은 조선에서 건너온 방식인데 그렇다고 조선검이 안좋진 않잖아요
전쟁용은 열처리를 해서 산화 티타늄 비율을 잘 조정한 세계최고품질의 검 입니다
@@망구-t3c 반은 맞고 반은 제가 알고 있는 내용과 다른 것 같습니다.
어차피 중근세 야금술은 거기서 거기고, 조선도 환도를 제작할 때 사철로도 만들었다 합니다.
사철은 동서고금 막론하고 접근성이 높아 상당히 많이 사용된 소재입니다. 사철로 재련된 검도 충분히 전장에서 쓸만한 성능이 나옵니다.
일본도를 제작할 때 신가네, 하가네의 조합처럼 내구성에 치중하는 이유는 특유의 제강법에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용광로가 비교적 대형이라 높은 온도로 불순물을 제거하기 쉽지만, 일본의 타타라 제강법은 올릴 수 있는 온도도 비교적 낮아 불순물을 제거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철의 성능에서 불순물의 함유가 상당히 중요한 요소인 만큼 제강술의 차이를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떨어졌을지언정 동시대 주변국가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던걸 봐서 전장에서 활약하기엔 충분하다 봅니다.
마지막으로 전쟁용 카타나가 따로 있지는 않았습니다.
기록을 보면 도공 이름값의 차이는 있다만, 갓 완성된 카타나 신품은 의외로 가격이 낮았다 합니다. 반면 전장에서 쓰였던 카타나가 비싸게 팔렸습니다.
이는 철의 성능을 명확히 알 수 없던 당시 전장에서 구르고도 멀쩡한 카타나는 신뢰성이 입증됬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짚단이나 대나무가 아닌 사형수들의 목을 치는 타메시기리를 통해 와자모노를 분류한 것도 이러한 양상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런컨텐츠 너무 좋아요👍
솔직히 저의 생각은 베기의 목적이 전투시 경장비만 착용해도 칼 들어가는게 힘들걸로 알고있습니다.
베기 목적이 갑옷틈새 정확하게 베기 위해서 인걸로 알고있는데 베기 수련이 그 틈새 정확한 베기를 위해서 인걸로 알고있습니다.
애초에 짧았던 환도가 길어진 이유도 임진왜란 때 일본칼의 영향을 받아서죠. 그러나 나중에 다시 짧아졌죠. 짧아진 이유도 쓸 일이 별로 없어서죠. 그냥 보조무기일뿐이고 거기다 별로 쓸 일도 없었으니까요.
조선은 활의 나라였고, 실제 전투에서는 월도나 창이 훨씬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 후기는 화승총이 제식이고 활이나 칼은 그냥 보조무기 정도.. 활은 그냥 기생이나 한량의 놀이정도가 되고 말았죠.. 총이 있는데 칼이 무슨 의미..
문젠 훈련도가 높을땐 얼마나 숙련도따라서 전투력이 다른데요 .. 하지만 지금도 군사교육하면 막대한 비용입니다 높은 숙력도에서 아니고 보급력에서 무기의 파워는 리치 거리 그래서 창위주 활위주가 더욱더 발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칼길이도 더긴칼이 더유리하고 파워에서도 긴칼이 더유리하죠
Thank you for the english translation!
큰칼일수록 4:05 더 빠르게 관절에 무리가죠 .
아프고 후회해봐야.... 스타가 바둑장기처럼 한국에서 유행했듯 종주국은 강한 일면도 존재합니다만 분야별 장단점이 있겠죠
.
칼날의 예리함에 따라 대나무베기가 차이나는 것이라기보다, 일본도의 길이가 조선도보다 긴 탓에 따른 결과라 봅니다.
격투기에서도 그래서 윙스팬이 긴 사람이 동일한 체중이라도 펀치력이 훨씬 강하죠.
그리고 조선은 전국시대를 거친 일본과 달리, 중무장을 한 대규모 병력간 백병전을 피하는 방향으로 전술과 화기가 발전합니다.
그래서 조선중기에 이르면, 창과 검은 계속 만들어졌으냐, 창술과 검술의 전수가 끊기어, 사실상 백병전을 위한 무예나 전술이 전무한 상황이 됩니다.
조선중기에, 명나라 척계광이 지은 기효신서 따위를 베껴서라도, 백병전 메뉴얼을 확립합니다만, 그것만으론 영 부족했죠.
보병간 백병전을 멀리했으나, 대신 북방 함경도의 오랑캐 야인들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기마궁술의 연마는 비교적 꾸준히 이뤄져 이들 오랑캐나 산발적인 왜구를 토평하는데에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물론 전면전단위로 발발한 임진왜란때는, 대대단위 전술경험이 일천하였던 신립이, 조악한 기마궁병의 지휘를 맡다가, 상인출신 다이묘 고니시에게 처절하게 패하여 죽고 말았죠.
I like it keep going
조선 검술은 뭔가 부드럽게 이어지는 물의 호흡이 생각나고,
일본 검술은 짧고 빠른 번개의 호흡이 생각나네요~
오오 적절한 비유인것 같아여👍🏻👍🏻👍🏻
허세에요. 모든 검법은 도구사용법 메뉴얼정도로 보조무기와 주무기의 사용법정도로 받아들여야 해요.
일본도나 검법의 강점은 거리와 무게라서 긴칼(손잡이까지 길어서 사거리를 속일수 있죠)로 더 먼거리에서 무게중심이 칼날에 있기에 강하고 간결하게 때려야하죠.
조선검이나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본국검은 무게중심이 잘 잡힌 한손검 사용법이라서 칼끝의 변화가 쉽게되는 장점이 있지만, 숙련에 어려움이 있고 역시 먼거리에서 타격과 양무게중심이 칼앞쪽이라 무거운 일격을 버티기엔 힘들었을껍니다. 간간히 손잡이로 거리를 속이는 기교를 부린다면 조선환도 사용자는 쉽게 살해 당했겠죠.
저건 소총과 권총을 쥐어주고 300m 앞에서 서로 그 도구로 승부한 것이라 임진년에 왜란으로 검술엔 밀린 역사가 기록되어 있어요.
저런 무게와 거리의 장점을 가진 검을 가지고 그걸 빨리 휘두르기만 연구한 속도로 싸우는 장검과 일대일 승부할땐 검방으로 싸워야 승산이 있는데, 조총이란 열병기의 등장으로 방패가 무용지물이 되었죠.
배우기로는 조선에는 도보다는 검이나 창 활등을 주로 쓴걸로 배움.
일본도 주로 쓰는게 창이 었으며 도는 방어용 또는 호신용으로 사용된걸로 고증되고 있음.
도결을 보면 알수 있듯이 조선환도는 그냥 매끈하지만 일본도는 물결이 문양이 많음.
일본은 개인 살상무기중 쓸수 있는 무기가 칼 밖에 없습니다 활이라 해봤자 우리나라 활 반에 반도 못 따라오고 장식이나 게임 또는 정신수양 정도로 알고 있고 우리나라 환도는 옆에 차고 있다가 활로 먼저 공격을 하고 근접하면 환도 특성상 발도가 빠르기 때문에 바로 꺼네어 베는 용도라고 들었습니다 사실상 일본 검술을 보기도 전에 활로 끝내 버리는 속전속결 전술 입니다
기본적으로 방어구가 두꺼워지면 두꺼워질수록 무기 또한 커집니다. 이건 보편적인 법칙입니다. 당연하지만, 무기가 커지면 양손으로 써야 하죠.
그럼 환도는 방어구가 두껍지 않은 적을 감안하고 만든 것이고, 일본도는 방어구가 두꺼운 적을 감안하고 만들었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당시 조선의 주적은 북방의 여진족이었고, 이들은 유목을 하기 때문에 방어구가 두텁지 않았죠.
반면에 일본의 주적은 같은 사무라이 계층이었고, 이들은 유럽의 기사들처럼 두터운 방어구를 착용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의 환도는 빠르게 움직이는 적을 상대로 간결한 공격을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반면에,
일본도는 중무장을 갖춘 적의 가장 약한 고리인 목 부분을 일격필살로 방어구를 쪼개고 죽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죠.
그러다 임진왜란 때 일본의 사무라이들에게 패배했고, 그걸 분쇄하기 위해서 왜검을 배웠죠.
그 결과물이 무예도보통지입니다.
일본도의 일격을 막기 위해서 장대에 가지를 달아서 방해하고, 느려진 공격을 방패수가 막는 방진이 나오는 것이죠.
잘보고갑니다. 일본도를 카타나라고합니다.날카롭고 예리하다고들었습니다. 스즈키 바이크중에 카타나라는 바이크가 있는데 거기서 따왔다고합니다. 타미야에서도 카타나바이크가 나왔습니다. 일본도는 보통 사무라이등 무사들이 많이 사용하고 지금도 일본도를 만드는 장인이 있고 계속 지속해서 만들고 있다고합니다. 장인정신이 여기서 비롯된걸로 생각이 됩니다.ㅎㅎㅎ
무례한 일본인이 많은 것에 대해 일본인으로서 사과드립니다.
일본인들이 검술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을 이해합니다 다만 서로의 차이를 존중한다면 더 좋을거 같습니다
뭐 어딜가나 병신들은 다 있으니까요
@@misojang7747일본인 아니다
조선시대는 장검은 거의 사라지고 부무장 개념으로 사용, 조선 중기 이후 무관들 복원한거 보면 활이 주무기이고 뒤에 짧은 환도를 차고 있는데 활로 상대를 빠르게 쏘고 가까이 오면 환도로 후려치는 패턴을 구사한 것 같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환도가 저렇게 짧지는 않고 엄청 길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활과 창 또는 환도에 방패를 차는 형식으로 전투를 치루는 형태로 변해서 장검은 효율성이 떨어져서 사라졌다고 들었어요.
제가 독일에 있을 때 보유했던 카타나는 날 길이 67-68이였던거 같네요...10년도 넘게 전의 일이라 기억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지만요.
일본과 전쟁에 환도가 일본도에 비해 사정거리가 짧은이유로 꽤 죽어나간 자료를 본거 같은데요...
그리고 임진왜란시 일본자료에서 보면 우리나라 장수들은 말타고 창들고 기마전을 했습니다...
조선초 직검에 까까운 환도랑 임진왜란후 일도 특징 적용한 휘어진 환도간 사용법 차이도 보여줬으면합니다. 각궁이랑 기마 포함해서 특징도요~
사극이나 영화를 볼때 항상 궁금했던게 있습니다. 칼날끼리 부딫혀 가며 싸울때 칼날의 이가 다 나가는게 아닐까요? 예를들면 예날 전쟁터에서 싸움하다보면 금방 칼이 무뎌져 사람을 베어도 베이지 않는 그런게 있지 안했을까 생각을 해보는데 칼날과 칼날이 물런 강하겠지만 서로 부딫히면 칼날이가 엄청 무뎌지지 않나 궁금했네요
칼의 길이가 긴 게 아무래도 실전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함. 길이가 짧아서 좋은 점은 휴대가 편하다는 거.
일본은 전국시대를 거쳐서 길이가 길어진 거고...
조선은 평화의 시기가 오래되고, 칼보다 활을 주무기로 써서 활과 같이 휴대하고 활쏘기에 편하도록 짧은 검이 유행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와...설명을 들으니 새롭네요. 한손검을 길게만든 변형소드가 바스타드 소드라면 양손도를 짧게만든 변형도가 환도 개념이네요 환도에 방패조합도 전쟁에서 좋았을듯한데 없었을까요?
Fantastic video! Thank you 🙏
이 영상이 이제야 추천영상으로 나와서 보게되다니 ㅠ ㅠ
와 비급님도 짧은 환도 하나 장만 하셔요 ㅎㅎ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구독자가 +1 되었습니다~ ^^*
채널주인분은 무게중심이 앞~중간쯤이고 선생님은 약간 뒤쪽이 무게중심인 것도 차이인 것 같아요!! 검의 무게나 길이에 의한 차이일까요?.?
일본도는 무게 중심이 날에 있기 때문에 위력이 좋은 대신 휘두른 다음의 회수가 상대적으로 느리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단타 형식의 끊어치기가 주를 이룹니다.
반대로 서양의 롱소드나 중국의 한손검 같은 경우는 무게 중심이 손잡이에 있어서 위력은 좀 약하지만 회수가 쉽고 빠릅니다. 그래서 화려하게 휘도는 연속 동작이 많죠.
각자 장단점이 있는 거죠.
그런데 환도는 다뤄 본 적이 없어서 무게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네요. .... 긁적.
최형국 소장님이 쓰시는 환도가 딱 취향인데 어디서 만들었나요?
실제로 왜란때 문헌 기록에 따르면 왜병둘과 단병접전에선 압도적으로 불리했기에 조선병사들 주력 무기가 주로 활이나 창 이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병들이랑 단병접전하면 조선군들 손목이 그냥 날라갔다죠
일본도와 환도의 차이
일본도는 양손무기 환도는 한손무기
일본도는 길이가 길고 환도는 짧음
일본도는 칼날에 무늬가 있고 환도는 없음
일본도는 칼날에 혈조(피가 흐르는 라인)가 있고 환도는 없음
손잡이를 만드는 방식이 다름
패용법이 다름
큼직한 차이는 이정도
일본의 검술은 동작 하나하나에 힘이 담긴 일격필살같은 느낌이면 우리나라의 검술은 쉼 없이 몰아치는 폭우와 같네요
칼의 자르기는 밀던지 당기면서 베어야 효과가 있다. 썰어서 쓴다고 생각하면 된다.
와 개인적으로 무지해서 조선시대, 옛날에 칼들고 그냥 막대기휘두르듯 하는줄 알았는데,
어마무시 하네요...
(박사님이나 칼잡이님 정도는 지휘관급이고 쫄병들은 쫌 못하지 않았을까요? ㅎ)
전쟁에서는 저렇게 안싸웁니다. 일단 저렇게 가까이 안붙고 거리를 둡니다. 방패 내세워서 창으로 가까이 못오게 막습니다. 그러고 그렇게 계속 대치하면서 거리를 유지하다 10 분정도 지나 지칠때면 다른 군사들이랑 교대하여 쉬게 합니다. 그러니깐 진형이 무너지지 않는이상 쉽게 죽지도 죽이지도 못하는거죠. 먼저 지치거나 실수를 해서 진형이 무너지면 그때 칼이나 도끼로 싸우게 되는게 그게 최후의 방법이죠. 기병들이 유용한게 그런 보병들의 진형을 흔들고 아군보병에게 틈을 만들어 주는겁니다.
Wow awesome swords skills😮
일본이 칼을 잘다뤄 백병전에서 우세했기때문에 조선은 해군에서 최대한 백병전을 피하고 거북선을 만들고 전술을 가다듬음
나아가 만주벌판의 기병들과 검술에 능한 일본을 상대하기위해서 양측 모두에 효과적인 활이라는 무기가 발달한것이 아닌가 싶음
조선환도랑 일본도는
“칼날” 하나만 가지고 길이가 똑같다고 치면 서로 생김새에 무슨 차이점이 있나요?
환두대도+당태도의 양식에 영향을 받은 일본도와는 달리 환도는 환두대도의 일종인 목병도에 유래를 두고, 고려 중기때만 해도 직선의 형태였으나 몽골 침략 이후 몽골 기병도의 영향을 많이 받은 칼 입니다. 대다수의 유물들은 일본도의 요코테와 킷사키 부분에 해당하는 경계가 없어 칼 끝으로 갈 수록 서서히 얇아지며 날렵한 형태가 주로 보입니다. 이는 가장 큰 차이점이자 환도와 일본도를 구분할 수 있는 요소입니다. 또한 육각도 유물이 대다수인 일본도에 비해 환도는 배형도, 육각도, 오각도 등 다양한 형태가 산재되는 등 이처럼 명확한 양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칼날 외로 가자면 영상에 나와있다시피 환도는 외수와 쌍수 겸용, 띠돈, 비녀장 같은 잠금장치, 끈이 매달린 자루 등 일본도와는 제법 차이가 있습니다.
굉장히 유익한 영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환도가 이렇게 까지 짧을거란 생각도 못했습니다.
칼집은 손잡이가 뒤로가게 차면
서둘러 칼을 뽑아야 할 땐ㅈ불편하진 않나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이 둘의 차이는 칼의 형상 적인 부분에서는 대충 알았는데 검술 부분에서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거든요.
일본. 검법이 꽤 많은데 북진일도류 빼고도..동양권에서 일본검 보다 나은게 있던가?
일본도랑 환도 보면 착검방향이 반대라서 신기함.
일본도는 칼날이 위로 환도는 칼날이 아래로
일본도는 허리띠에 끼우고 환도는 검집에 고리를 달아서 그런건가...??
조선 검술 배우는데도 있나요?
다음번에 노다치도 나오나보네요
조선이나 그이전을 보면 활과 검을 착용하는게 보통임 일본은 검이나 활이 길어서 둘다 지니고 다니기힘듬
クルクル回っている所を間違い無くサムライに切られますね…
멋지십니다. 계속 기대가 됩니다
韓国人として日本の方へ
昔の朝鮮の記録にも「日本刀は品質がとても良く、日本人は剣を扱う能力に優れる」と書かれています。
これはただ両国間の剣術の特徴を比較するもので、お互いに尊重し合い、悪いコメントを残さないでほしいと思います。
その通りです!
韓国人、日本人、お互い敬意をもって欲しい
日本が築いてきた剣の老練さは本当に素晴らしいと思います!
대한민국의. 뿌리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이어나갈수있도록 힘쓰주세요 이런분들은 국가에서 보호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도와 백제도가 가장 비슷한데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았을까요
난 환도 를 잡아도 서양검술 하듯이 일본검술 하듯이 잡는데.
난 환도 를 잡을때 는 내가 이미 습관 이 된 저선비검객 이 뭐라고 해도.
난 내가 편한대로 환도 를 잡을거야.
선비검객 이 하는말 을 않들을거야.
난 내가 편한대로 환도 를 잡을거야.
난 환도 이어도 일본검술 처럼 서양검술 처럼 잡을거야.
○●발도가.... 나는 배움을 옆으로 날을 향하고 뽑게 되었는데... 이렇게 되면...단점이 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