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룡 오랫만에 보네요. 엠비씨 청룡의 원년 에이스...그리고 금광옥선수는 원년 꼴찌 삼미에 유일하게 개인기록 홈런 10위에 올랐던 선수. 정구선은 가끔씩 홈런을 치는 2루수. 엠비씨 2루수 김인식님은 진짜 지독하게 도한 플레이를 하시던분. 양승관선수는 좋은 타격과 좋은 어깨를 가진 외야수. 다이빙 캐치를 하다가 어깨인지, 쇄골쪽인지 뼈가 부러졌던 기억이 있네요. 심재원선수는 한대화가 홈런을 쳐서 유명했던 세계야구 선수권 당시 주전 포수. 타격은 약했지만 수비형 포수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선수. 세계야구선수권 당시 우리팀에 찬스가 걸리면 앞타자를 상대팀에서 거르고 항상 심재원선수와 승부를 했던 기억이....그러다가 한번 2루수 옆을 빠지는 땅볼 안타를 쳤던 모습도 기억나고...이선웅 선수도 국가대표 3루수 출신인데, 공을 잡고 한번 글러브에 튕긴 후 송구하는 버릇 때문에 이선웅 선수가 3루 수비에 들어오묜 이해창이나 김재박 같은 발빠른 선수들은 기습번트를 3루쪽으로 댔던 기억이...최계훈선수는 고교시절 초고교급 투수였으나 혹사로 프로들어와서는 빛을 보지 못한 케이스...그리고 이재환코치님은 방배동 카페골목 쪽에 사시던분. 집 바로 옆이 모텔이었다는 ㅋㅋㅋ 어떻게 아냐고? 이재환 코치님 아들이 같은 반 친구였거든 ㅋㅋㅋ 저시절 선수들을 보니까 기억이 새롭네요.
국민학생 시절이었는데 이경기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경기로 기억합니다😅당시 삼미 팬으로서 개막전 롯데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이후로 18연패에 빠졌었고 이날 선발 투수였던 최계훈과 양승관의 눈부신 호투와 맹타로 4-0 승리를 거뒀고 경기로 보면서 감격에 겨웠던게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집니다🧐안타까운건 경기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삼미 그룹의 주력회사인 삼미 해운의 부도로 인한 여파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매각이 발표되고 청보 그룹으로 넘어가서 후기 리그부터 청보 핀토스로 간판이 바뀐게 생각나네여🤔
@@시민애인 이주일 선생님 청보라면 전속모델(?) 이었습니다😆열라면,아줌마 매운탕면(컵라면으로 기억합니다) 광고에도 출연하셨는데 집이 예전에 가게를 해서 청보 라면 납품 받았었고 개인적으로 맛이 별로였고 순자 누님 운영한다고 대학생 형&누나들 불매운동(?) 했던 기억이 납니다😅
송영운 기억납니다 박철순 투구때 땅볼로 박철순 허리를 맞춰 거의 박철순 선수생활 그로기까지 갔음😊
하기룡 오랫만에 보네요. 엠비씨 청룡의 원년 에이스...그리고 금광옥선수는 원년 꼴찌 삼미에 유일하게 개인기록 홈런 10위에 올랐던 선수. 정구선은 가끔씩 홈런을 치는 2루수. 엠비씨 2루수 김인식님은 진짜 지독하게 도한 플레이를 하시던분. 양승관선수는 좋은 타격과 좋은 어깨를 가진 외야수. 다이빙 캐치를 하다가 어깨인지, 쇄골쪽인지 뼈가 부러졌던 기억이 있네요. 심재원선수는 한대화가 홈런을 쳐서 유명했던 세계야구 선수권 당시 주전 포수. 타격은 약했지만 수비형 포수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선수. 세계야구선수권 당시 우리팀에 찬스가 걸리면 앞타자를 상대팀에서 거르고 항상 심재원선수와 승부를 했던 기억이....그러다가 한번 2루수 옆을 빠지는 땅볼 안타를 쳤던 모습도 기억나고...이선웅 선수도 국가대표 3루수 출신인데, 공을 잡고 한번 글러브에 튕긴 후 송구하는 버릇 때문에 이선웅 선수가 3루 수비에 들어오묜 이해창이나 김재박 같은 발빠른 선수들은 기습번트를 3루쪽으로 댔던 기억이...최계훈선수는 고교시절 초고교급 투수였으나 혹사로 프로들어와서는 빛을 보지 못한 케이스...그리고 이재환코치님은 방배동 카페골목 쪽에 사시던분. 집 바로 옆이 모텔이었다는 ㅋㅋㅋ 어떻게 아냐고? 이재환 코치님 아들이 같은 반 친구였거든 ㅋㅋㅋ 저시절 선수들을 보니까 기억이 새롭네요.
솔직히 삼미 18연패보다 한화 18연패가 더 치욕적이라고 봄 삼미는 찐으로 인프라고 뭐고 없던 약팀인지라
심수창 18연패도...
화나 애들은 프로도 아니지....
아는처근ᆢㅍ
당시 기준으로도 제대로 된 프로구단이라고도 할 수 없었죠
오히려 동시대 실업야구 강팀들에게조차 밀리지 않으면 다행일 지경이었으니
ㅇㅈㅋㅋ한화는 씨발프로가아니고 걍크보 오물팀임
하기룡투수 정말 청룡 에이스로 기억 공이 묵직했죠 해태타자들도 하기룡 쉽게 공략못함😊
8:47 삼미 우승
어렸을때 이경기 보면서 아니, 삼미한테도 지냐면서 짜증냈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
이제는 시간이 정말 많이 흘러.. 저당시 하기룡 -심재원 배터리, 경기를 중계한 송인득 아나운서 모두 고인이 되셨네요. ㅜ
포수 김진우도 고인이 되셨조 전 사인도 받았는데
특히 송인득 아나운서는 젊은나이에 너무 갑자기 돌아가셔서 더 안타까워요
1985저 당시 삼성이 압도적인 실력으로 우승했고 청룡과 삼미 두팀 탈꼴찌 경쟁했던 해. 9년뒤 저 두팀이 구단이름 바뀌고 시리즈에서 만날줄 누가 상상했을런지 ㅎ
국민학생 시절이었는데 이경기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경기로 기억합니다😅당시 삼미 팬으로서 개막전 롯데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이후로 18연패에 빠졌었고 이날 선발 투수였던 최계훈과 양승관의 눈부신 호투와 맹타로 4-0 승리를 거뒀고 경기로 보면서 감격에 겨웠던게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집니다🧐안타까운건 경기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삼미 그룹의 주력회사인 삼미 해운의 부도로 인한 여파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매각이 발표되고 청보 그룹으로 넘어가서 후기 리그부터 청보 핀토스로 간판이 바뀐게 생각나네여🤔
청보식품의 우가자차 우짜짜 짜장라면이 생각나네요.~ 이주일 선생님이 광고 했는데
@@시민애인 이주일 선생님 청보라면 전속모델(?) 이었습니다😆열라면,아줌마 매운탕면(컵라면으로 기억합니다) 광고에도 출연하셨는데 집이 예전에 가게를 해서 청보 라면 납품 받았었고 개인적으로 맛이 별로였고 순자 누님 운영한다고 대학생 형&누나들 불매운동(?)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는 팀당2연전씩였는데. 중간설명이 틀리네요. 출범 수년후3연전씩 했죠
6개 팀에 게임수가 많지 않아 2연전 했다가. 빙그레 생기면서 3연전으로 바꼈던거 같아요.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이름의 마지막 경기였습니다.
1985년 삼미는 시범경기 1위
그리고 개막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최동원을 공략하여 첫승
그리고 18연패.
삼미 멤버들 태반이 아마시절 국내에서 다들 유망주로 맹위를 떨친 선수들인데 원년애 왜그렇게 못했는지 정말 이해가 안갑니다
한국 프로야구는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위해서는 확고한 지역 연고제가 필수였고. 때문에, 출범 초기 연고지 선수들을 무제한으로 선택 ,입단시켰습니다. 그런데 삼미 주전 선수들중 인천경기 출신 선수들이 극히 적었다는. 그때문에 외인구단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나원참 관중들 이 거의 없는건 첨본다 삼미가넘 약하긴했지 .그런데 그시절 ob베어스하고 1점 2점차로 진게 엄청 많다는게 기억나요😊
나 국민학교 4학년 때 진짜로 삼미 지는 경기 무지 봤지 도원야구장 생각나네 ㅎ
도원야구장 .. 참 많이 갔었는디..
추억의 명소.. 현대이후로 가질 못했네 ㅎㅎ
속상한건 져도 또 응원한다는거 ㅎㅎㅎㅎ
그와중에 LG는 MBC시절부터 약팀연패탈출 시켜줌!
한화18연패도 한번보내주세요
한화는 두산이 보내줘야죠ㅎㅎ
이 당시 삼미가 왜 그렇게 야구를 못했는지 인천 팬들도 참 답답했을 것이다. 삼미를 만나는 팀마다 보약을 먹자며 편하게 야구를 했었다고 얘기들을 했었다.
김성근 감독이 태평양에 부임을 한 후에 첫 포스트 시즌을 치렀을 정도로 참 어렵게 야구를 했다.
인천 야구 찐팬들~~ 으샤으샤
정구선이 대전 사람입니다. 대전고 출신
삼미, 청보에서 군계일학이었던 선수였다고 들었습니다.
비유하자면 제일 꼴통학급에서 1등을 도맡아했고 인서울 대학갈 실력되는 학생이라고 들었구요.
정구선이 3년연속 골글 탔죠. 하필 삼미랑 롯데같은 약팀에서만 뛰는 바람에 😔 은근 당시 롯데랑 트레이드를 많이 했는지 마찬가지로 롯데 청보에서 대부분 뛰었던 양상문도 던진거에 비해 승리에서 손해를 많이 봤죠
참 나무베트로 장갑없이 ... 손약력 대단하시네요 .. 타력만큼은 . 어느팀에도 뒤지지않았는데
양승관 타석때 청룡 수비 보니... 봐준 느낌이다
이재환 코치님, 마봉춘 하기룡 형님. 삼미 금광옥 형님 세상 뜨신 심재원 형님. 나 이거 군대 가기 전 봤다. 구선이 형님은 지금 뭘 하시나. 아 ! 해설자 이호원 아제
그러나 그 다음 날 구단은 매각이 되었죠...
원조 보살 팬분들 ~~
프로스펙스가 당시엔 최고였지~
이 귀한 자료를 어떻게 얻으셨나요? 꼭좀 알려주세요
유튜브에 예전에 있었던 겁니다~ 퍼갔던 거에요~
한화 18연패 기억나요.
마지막에 뭔 노래임?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입니다
땡큐@@김태훈-p2x3h
계속 맞는데 투수교체를 안하는 거는 여전하네
교체할 투수가 없으니😊
저때 두산베어스 연고가 대전이었죠
ㄴㄴ 84년도부터 서울로 올라왔어요
당시 OB는 대전이 홈구장이었음
1985부터 서울 동대문구장 홈으로
하기룡 투수 ~~~
송인득아나가 고인??
돌아가신지 한참 됐슴
@@han1231 😭
@@han1231 됐슴(X) , 됐음 (O)
2000년대 초 젊은 나이에 갑자기 돌아가셨지요.
@@시민애인 상관 없슴
아무리 시대에 맞게 인정해줘야한다지만..솔직히 80년대 프로야구는 형편없는..말만 프로지 실력은 아마..
크보가 제대로된 프로라고 불리우기ㅡ시작한건..용병제도 도입하고... 대략 90년대 중후반부터 제대로된 프로리그라고 봅니다..
그땐 뭐 실업리그고 지금은 마이너 싱글.5 에이죠 뭐
캐스터 송인득
하기룡이 나와서 지면 어카냐
저때는 투수분업화가 없었습니다.
하길룡 82년 평자 2위 83년 평자1위 82~85년까지 4연속 평자 2점대 기록한 에이스 투수네요.. 근데 승운이 진짜 오지게 없는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