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보는세상 내안에서 바라보는 감정?인식...정신...내 주위의 모든것은 변하지 않는 일시적 장면 하나 그대로라고 한다면 객관적이지만 보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이는것과 그렇지못한거에 대한 견해차이는 어마어마할듯하고...흐름이 더한 시간과 공간에서는 더 할거 같고(기억! 메타적 사고에 더한 사고)...이런걸 정리한 분들도 대단한듯요.생각해보면 다 아는것 같으면서도 ...궁금증도 더하여지고... 형식에 풀어 설명 한다는 자체도 매력이 있네요.그리고 한글로 이런 소통이 가능하다는것도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습니다.선생님 콘텐츠를 보면 굳어진 나 자신을 보며 자성하게 됩니다...감사합니다.건승하세요.🍀
물론 이런 철학이 사람들이 철학이 현실과 유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거리를 둘 것이 아니라 ‘이런 생각도 있구나’하고 넘어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철학의 의의는 그러한 생각을 ‘했다는 것’에도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해요.
피히테가 모든것을 자아로 묶은것은 모든것은 꿈과 같은 것이라는 가상현실이론과 거의 일치하고, 셸링이 모든것을 자연으로 묶은것은 우주로 묶은것과 같은 것이고 우주는 존재하고 있는 시공간 전체이기 때문에 결국 존재하는것들을 존재하는것들이라고 묶어버린것이죠... 서로 반대라기보다는 층위가 다른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이 영상을 보고 느끼는게 많네요. 우리의 의식에 관해서요. 예를 들어 우리가 사과(apple)를 본다는 것은 우리 뇌가 인식한 사과라는 상(image)을 보는 것이죠. 피히테가 주장한 주관적 관념론도 관점에 따라서는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떠한 실체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사과를 봤다고 인식한 것일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각을 통해 실체를 파악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 실체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우리 인간이 알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느낀 것을 나름대로 해석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객체들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살아갑니다. 이 과정에서 저마다 삶을 이루고 인생을 살아가고 있죠. 우리의 생각, 의식은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그것 자체로 영속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의식 자체도 멀리서 지켜보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어떤 것이죠.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의식은 단순히 물질로써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뇌의 시냅스 간 전기신호로 이루어지는 작용은 우리의 몸을 움직이게 하는 신호일 뿐 그것 자체가 의식일 수는 없습니다. 의식의 존재는 관념적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질이 아니기 때문이죠. 물질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뇌 자체는 원자들의 구성체일 뿐 그 자체가 의식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초월적 자아에 대해 철학적으로 이해해 보자. 그럼으로서, 칸트의 마음을 이해해 보자. 내가 없다면, 최소한 나에게 만큼만은 세상이 존재한다고 말 할수 없다. 그렇다면 현상계란 무엇일까. 현상계란, 주관적 자아(에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존재감이 펼처지면서 나타내는 표상이라고 할수 있다. 내 앞에 컵을 내가 아무리 안볼려고 해도, 바라보면, 보일수 밖에 없다. 존재하는 컵을 존재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선,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는 내 존재감이 없으면 되는 것이다. 내가 없다면, 최소한 나에게는 컵이 존재할수 없다.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안보인다고 생각하는가.. 눈을 감아도 검은 화면과 함께 시공이 잡힌다. 내 의지와 상관 없이 내 존재감이 시공을 펼친다. 이제 다시 눈앞의 컵을 보자. 아직도 컵이 나와 별개의 물자체로서의 컵으로 보이는가. 우리가 보고 있는 컵은 우리들 각자 각자의 존재감의 표현이며 표상이다. 컵을 넘어 우리가 보도 듣고 느끼는 모든것이 존재감의 표상이다. 이 존재감이 초월적 자아이며, 우리는 각자각자 자신의 초월적 자아 안에서 살고 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세상은 존재감이며, 존재감이 세상을 표현한다.
빛을 공부하는 이과생들은 황소는 밤에는 검은 소가 사실이고 낮에는 황소가 되고 노을이 지면 약간 붉은 소가 되는게 사실이래요. 그리고 황소 케이스 반대로 동시성의 상대성 이론을 보면 밖은 같은데 내가 달라지면 다르게 경험된데요 그래서 둘 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아요. 이런 것 보면 왜 아인슈타인이 통일장 이론을 그토록 발견하고 싶은지 이해할수 있을 것 같아요. 간단한 기준을 만들고 싶은게 아닐까 ?
말씀하신 걸 칸트는 현상계라고 말하죠 그런데 그건 인간의 인식 이전의 광학작용의 문제로 밤에 황소가 검은소로 보이는 건 주어지는 빛의 양이 극단적으로 적어서 황소에 반사되어 나오는 빛의 양이 너무 적어서 검은색(정확하게는 진한 회색)으로 보이고 저녁에는 지구의 대기를 통과하는 빛의 각도상 두꺼운 대기층을 통과하여야 하므로 가시광선 중 에너지가 가장 적은 적색광이 두꺼운 대기층에 산란이 되어 지상에 적색의 과다로 붉게 보이죠 이것들은 모두 인식 이전 즉 대상(물자제ㅡ철학이 제 전공이 아니라서 뭐라 해야 하는지 잘 모름)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대신 인식 이후의 현상계에서도 다르게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적녹을 구별하지 못하고 모두 녹색으로 보는 적녹색맹은 붉은 노을을 모두 녹색으로 인식하죠 심지어 시각장애인은 비장애인(정상인이 잘못된 말)과 달리 외부(물자체)에서 오는 시각정보를 해석하지 못하기도합니다.
난 생물학을 공부하는 이과생인데, 조명효과가 어떻건 어금니 뽑아서 현미경 들이대면 확실히 무슨 소인지 구별할 수 있죠. 단순화는 수학이나 물리같이 천재들이 예로부터 많이 얼어죽는 분야나 가능하지 철학이나 인간사는 다 멍청이고 개떡같이 하면 찰떡같이 알아들어라가 신조라서 뭐가 있는지만 찾아내서 종류별로 늘어놓기만 해도 아주 많은 걸 하는 셈이죠. 그게 가장 중요한 작업이고.
심리학을 공부하는 저는 사회과학에 들어가지만 인문학과 관련이 많아서 입장이 애매해요. 심리학은 걷기 운동을 하면 어떤 사람은 무기력이나 스트레스가 치유되지만 어떤 사람은 효과가 없데요. 똑같은 행동인데 놀듯이 하면 치유되지만 일하듯이 하면 치유효과가 없데요. 문제는 이런 정서의 가장 효과있는 방법이 걷기 운동이래요. 보면 조건이 두개 걸려요 "걷는 것과 노는 듯한 느낌" 하나는 수치화가 가능하지만 하나는 수치화가 불가능해요 (나중에 fMRI 같은 것을 머리에 쓰고 다니면 모르겠어요). 그래서 심리학은 애매해요. 과학인지 인문학인지
@@박동원-u4u 생물학도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 뿐이지 사실 사회과학이죠. '세포 갯수'같은게 당최 측정이 가능하긴 할까요? 현미경으로 열심히 들여다보면 조금 큰 세포도 있고 작은것도 있는데, 반쯤 분해된 것도 한 개로 세어야 할까요? 걷기가 측정이 가능하긴 개뿔. fmri에도 분해능의 한계가 있고, 측정이 측정대상을 교란시키지 않는다는 증거가 있을까요? 사실은 사회학자들도 고집을 부리는 겁니다. 그런 분야에서는 간신히 뭔가 알아내기만 하면 되었지 과학적이건 말건 방법론이 뭐가 얼마나 중요하다고...자칭 '사회과학'하고 있고.
셸링이 이런 말 한 이유가 그가 옛날 스피노자사상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랬대요. 헤겔도 그렇구요... 그래서 전 셸링을 칸트+스피노자로 봐용 그 스피노자가 말하길 이세상 모든건 자연이라는 신의 변용이라고 말하고, 또 인간의 몸과 머릿속에 든 정신이 따로 있다는 이원론적인 구분도 넓게보면 똑같이 하나의 신에게서 나온 다양한 갈래일 뿐이라고 설명하잖아요?
선대의 사상을 짜깁기 한 셸링에 비하면 유아론이라는 한계에 부딪히긴 했지만 자아를 중심에 세운 피히테가 조금 더 독창적인것 같지만 둘 다 칸트의 벽을 허물지는 못했지요 이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강박에서 출발한게 헤겔인거 같아요 그 무리한 철학이 어떻게 역사가 되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추종자들도 잘 이해되지 않고요. 가능 하시다면 헤겔 한번 진하게 다루어 주실수 있으신지요...... 그리고 영상은 매번 잘 보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그 노력이 사람들의 의식으로 나타나겠지요. 감사 드립니다.
합리론과 경험론은 메소드적인 성격이라면 관념론은 메타적인 성격을 지닙니다. 다시 말하면 메소드적인 철학은 실물질의 상태와 동작을 이해하는 측면이라면 메타적인 철학은 메소드적인 것들의 근본원리를 논한다라고 보면됩니다. 철학은 기본적으로 생각이라는 인간행동에서 비롯됩니다. 생각에는 관점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를 ‘관념’이라고 부르죠.
불교의 세친이 발전시킨 유식철학처럼 보입니다. 만법유식. 여기에서 만법은 객관적인 세상. 그 세상은 오직 나의 식(관념)일 뿐이란 주장이죠. 그러면서 유식에서 여래장이란 개념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또 세링의 생각과 같이 생각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인간의 사고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비슷해 보입니다. 재미있네요.
니체가 말한 "신학자들의 피로 더러워 졌다"는 말은 셸링이 일종의 신학자였다는 말인가요? 물질적 관념론이든 자아로 뭉뚱그린 관념론이든 다 신학과 같다는 말인가요? 저는 가끔 신학과 철학의 경계처럼, 철학과 과학의 경계가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소위 자연과학자라고 하더라도 그의 관념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지 않는 개인이 있을 수 있는가하는 점 때문입니다. 마찮가지로 내가 물질적 토대 위에 살고 있지만, 내 머리속의 생각의 영향을 받지않는 구체적인 하루하루의 내 삶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제 말은 철학적 관념론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내 머리속에 있는 생각들을 믿고 그 토대 위에 삶을 꾸려간다는 점에서 내 두뇌에 있는 세계에 대한 관념을 무시할 수 없겠다는 거지요. 진정 자기 머리 속에 있는 세계관이나 관념이 바뀌지 않고도 내가 바뀔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겁니다. 예를들면, 제가 최근에 양자물리학자가 쓴 책을 읽었다면, 그 저자가 쓴 세계관, 물질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즉, 그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나가 같은 인간일까요? 또 하나는 내가 모짜르트의 소나타 10번을 집중해서 듣고 감상했다면, 그 음악을 듣기 전의 나와 들은 후의 나는 같은 인간일까요? 더 나아가 그음악을 피아노 건반에 구현해서 내 손가락과 두뇌가 그 음악을 물질적(?) 구현, 즉 피아노 연주를 했을 때, 그것을 연주한 적이 없던 나와 그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연주한 나는 과연 다른 인간일까요? 저는 다르다고 믿습니다. 내가 그저 머리로만 책을 읽었든, 몸으로 땀을 흘려 운동을 했든, 그 이전의 나란 실체와 그 이후의 나는 상당히 다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어떻든지 관념론이란 이 짧은 강의를 들으면서 드는 생각은 그게 허술한 관념론이라고 하더라도 다 의미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니체가 통렬하게 비판했다 하더라도 니체 자신 조차 그 선행 철학자의 존재없이는 본인의 철학이 나올 수 없었을 거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이지요. ㅎㅎ 긴 글을 올려 죄송(?) 합니다.
천재였던 셸링은 깨달음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융도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물은 답을 알고 있다, 이 책. 일본 사람이 쓴 책이라 썩 믿고 싶지는 않지만. 사람의 말이나 감정에 특정 에너지 파동이 있고 물이 그 에너지 파동에 영향을 받아 저런 결정을 만들었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영상 : ruclips.net/video/V6W8tjLX4jo/видео.html 전형적인 유사과학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과학으로 증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비과학인 건 아닐 겁니다. 과학은 점점 발전하는 기술이자 학문이고 도구이니까요. 오늘도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칸트까지는 직관적으로 납득이 가는데 그 이후로 피히테부터 헤겔까지는 솔직히 그냥 개소리 같습니다. 응당 철학이라면 논증과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이 죄다 주장과 선언만 하고 있고. 결론도 황당하고. 심지어는 분석철학이 나오고 나서도 소위 대륙철학자들은 계속 헛소리만 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느꼈어요. 자아를 사용하는 지금 나와 외부를 상으로 인식되는데, 피히테가 과연 자아가 사라지면 세상이 사라지는 상태를 경험했는지는 의문입니다만, 피히테가 설명한 나와 세상 모두를 자아안으로 인식하는 상태를 불교에서 깨닫기전 자아의 허상을 가지고 외부 대상과 작용하는 부분을 묘사한 부분이 떠올랐습니다.
내가보는세상 내안에서 바라보는 감정?인식...정신...내 주위의 모든것은 변하지 않는 일시적 장면 하나 그대로라고 한다면 객관적이지만 보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이는것과 그렇지못한거에 대한 견해차이는 어마어마할듯하고...흐름이 더한 시간과 공간에서는 더 할거 같고(기억! 메타적 사고에 더한 사고)...이런걸 정리한 분들도 대단한듯요.생각해보면 다 아는것 같으면서도 ...궁금증도 더하여지고...
형식에 풀어 설명 한다는 자체도 매력이 있네요.그리고 한글로 이런 소통이 가능하다는것도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습니다.선생님 콘텐츠를 보면 굳어진 나 자신을 보며 자성하게 됩니다...감사합니다.건승하세요.🍀
책을 읽는거랑 5분 뚝딱철학 영상보는거랑 같이 하니 시너지 효과가 되는것 같아요~^-^책도 재미있게 잘 읽고있슴니다~
5분뚝딱 철학
베스트 축하드리고
책 잘보고 있습니다
진선미도 철학의 일부
새롭게 느낍니다
물론 이런 철학이 사람들이 철학이 현실과 유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거리를 둘 것이 아니라 ‘이런 생각도 있구나’하고 넘어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철학의 의의는 그러한 생각을 ‘했다는 것’에도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해요.
9:34 저도 동의합니다. 100%.
유튜브 세계의 보석. 잘 보고 있습니다!
목소리가 안좋아보이시네요.. 너무 기다리던 셸링강의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 유의하셔요!
피히테가 모든것을 자아로 묶은것은 모든것은 꿈과 같은 것이라는 가상현실이론과 거의 일치하고, 셸링이 모든것을 자연으로 묶은것은 우주로 묶은것과 같은 것이고 우주는 존재하고 있는 시공간 전체이기 때문에 결국 존재하는것들을 존재하는것들이라고 묶어버린것이죠... 서로 반대라기보다는 층위가 다른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피히테 셸링..
이름만 들으면 학창시절 방학동안 미뤄둔 일기장같은 느낌. 오늘 하루종일 한달치의 일기를 마무리한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이 영상을 보고 느끼는게 많네요. 우리의 의식에 관해서요.
예를 들어 우리가 사과(apple)를 본다는 것은 우리 뇌가 인식한 사과라는 상(image)을 보는 것이죠.
피히테가 주장한 주관적 관념론도 관점에 따라서는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떠한 실체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사과를 봤다고 인식한 것일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각을 통해 실체를 파악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 실체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우리 인간이 알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느낀 것을 나름대로 해석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객체들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살아갑니다. 이 과정에서 저마다 삶을 이루고 인생을 살아가고 있죠.
우리의 생각, 의식은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그것 자체로 영속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의식 자체도 멀리서 지켜보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어떤 것이죠.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의식은 단순히 물질로써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뇌의 시냅스 간 전기신호로 이루어지는 작용은 우리의 몸을 움직이게 하는 신호일 뿐 그것 자체가 의식일 수는 없습니다.
의식의 존재는 관념적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질이 아니기 때문이죠. 물질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뇌 자체는 원자들의 구성체일 뿐 그 자체가 의식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항상 👍👏🙏
재밌었습니다.
책보다가 이해하기 어려워서 보는데 확실히 이해가 좀 되네요
Thank you for new information of philosophy's
박사님 ~ 마이크 바꾸셔서 그런지 목소리 더 잘 들리고 좋아요
오~~곧 헤겔을 볼 수 있나요???
칸트 이후부터는 왜 늘 머리가 뻑뻑해지면서 읽을수록 화가 나는지 조금은 알게 된것 같네요.
선생님 가다머는 없나요~ ㅜㅜ 같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초월적 자아에 대해 철학적으로 이해해 보자. 그럼으로서, 칸트의 마음을 이해해 보자.
내가 없다면, 최소한 나에게 만큼만은 세상이 존재한다고 말 할수 없다.
그렇다면 현상계란 무엇일까.
현상계란, 주관적 자아(에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존재감이 펼처지면서 나타내는 표상이라고 할수 있다.
내 앞에 컵을 내가 아무리 안볼려고 해도, 바라보면, 보일수 밖에 없다. 존재하는 컵을 존재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선,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는 내 존재감이 없으면 되는 것이다. 내가 없다면, 최소한 나에게는 컵이 존재할수 없다.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안보인다고 생각하는가..
눈을 감아도 검은 화면과 함께 시공이 잡힌다. 내 의지와 상관 없이 내 존재감이 시공을 펼친다.
이제 다시 눈앞의 컵을 보자. 아직도 컵이 나와 별개의 물자체로서의 컵으로 보이는가. 우리가 보고 있는 컵은 우리들 각자 각자의 존재감의 표현이며 표상이다. 컵을 넘어 우리가 보도 듣고 느끼는 모든것이 존재감의 표상이다. 이 존재감이 초월적 자아이며, 우리는 각자각자 자신의 초월적 자아 안에서 살고 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세상은 존재감이며, 존재감이 세상을 표현한다.
생각을 펼치는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사람들
관념론을 비롯한 많은 서양 철학을 읽다보면 서구 사람들은 동양 철학을 어떤 관점에서 이해 할까 너무 궁금해져요.
생각, 이념, 세계를 보는 시선이 완전히 다른 것 같아 보이거든요 ㅎㅎㅎ
영상 감사합니다 :) 바흐가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사람사는게 다 비슷하죠 뭐.
철학도 그시대에 따라 달리 합니다
빛을 공부하는 이과생들은 황소는 밤에는 검은 소가 사실이고 낮에는 황소가 되고 노을이 지면 약간 붉은 소가 되는게 사실이래요. 그리고 황소 케이스 반대로 동시성의 상대성 이론을 보면 밖은 같은데 내가 달라지면 다르게 경험된데요 그래서 둘 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아요. 이런 것 보면 왜 아인슈타인이 통일장 이론을 그토록 발견하고 싶은지 이해할수 있을 것 같아요. 간단한 기준을 만들고 싶은게 아닐까 ?
말씀하신 걸 칸트는 현상계라고 말하죠 그런데 그건 인간의 인식 이전의 광학작용의 문제로 밤에 황소가 검은소로 보이는 건 주어지는 빛의 양이 극단적으로 적어서 황소에 반사되어 나오는 빛의 양이 너무 적어서 검은색(정확하게는 진한 회색)으로 보이고 저녁에는 지구의 대기를 통과하는 빛의 각도상 두꺼운 대기층을 통과하여야 하므로 가시광선 중 에너지가 가장 적은 적색광이 두꺼운 대기층에 산란이 되어 지상에 적색의 과다로 붉게 보이죠 이것들은 모두 인식 이전 즉 대상(물자제ㅡ철학이 제 전공이 아니라서 뭐라 해야 하는지 잘 모름)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대신 인식 이후의 현상계에서도 다르게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적녹을 구별하지 못하고 모두 녹색으로 보는 적녹색맹은 붉은 노을을 모두 녹색으로 인식하죠 심지어 시각장애인은 비장애인(정상인이 잘못된 말)과 달리 외부(물자체)에서 오는 시각정보를 해석하지 못하기도합니다.
난 생물학을 공부하는 이과생인데, 조명효과가 어떻건 어금니 뽑아서 현미경 들이대면 확실히 무슨 소인지 구별할 수 있죠. 단순화는 수학이나 물리같이 천재들이 예로부터 많이 얼어죽는 분야나 가능하지 철학이나 인간사는 다 멍청이고 개떡같이 하면 찰떡같이 알아들어라가 신조라서 뭐가 있는지만 찾아내서 종류별로 늘어놓기만 해도 아주 많은 걸 하는 셈이죠. 그게 가장 중요한 작업이고.
심리학을 공부하는 저는 사회과학에 들어가지만 인문학과 관련이 많아서 입장이 애매해요. 심리학은 걷기 운동을 하면 어떤 사람은 무기력이나 스트레스가 치유되지만 어떤 사람은 효과가 없데요. 똑같은 행동인데 놀듯이 하면 치유되지만 일하듯이 하면 치유효과가 없데요. 문제는 이런 정서의 가장 효과있는 방법이 걷기 운동이래요. 보면 조건이 두개 걸려요 "걷는 것과 노는 듯한 느낌" 하나는 수치화가 가능하지만 하나는 수치화가 불가능해요 (나중에 fMRI 같은 것을 머리에 쓰고 다니면 모르겠어요). 그래서 심리학은 애매해요. 과학인지 인문학인지
@@박동원-u4u 생물학도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 뿐이지 사실 사회과학이죠. '세포 갯수'같은게 당최 측정이 가능하긴 할까요? 현미경으로 열심히 들여다보면 조금 큰 세포도 있고 작은것도 있는데, 반쯤 분해된 것도 한 개로 세어야 할까요? 걷기가 측정이 가능하긴 개뿔. fmri에도 분해능의 한계가 있고, 측정이 측정대상을 교란시키지 않는다는 증거가 있을까요? 사실은 사회학자들도 고집을 부리는 겁니다. 그런 분야에서는 간신히 뭔가 알아내기만 하면 되었지 과학적이건 말건 방법론이 뭐가 얼마나 중요하다고...자칭 '사회과학'하고 있고.
감사합니다
셸링이 이런 말 한 이유가 그가 옛날 스피노자사상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랬대요. 헤겔도 그렇구요... 그래서 전 셸링을 칸트+스피노자로 봐용 그 스피노자가 말하길 이세상 모든건 자연이라는 신의 변용이라고 말하고, 또 인간의 몸과 머릿속에 든 정신이 따로 있다는 이원론적인 구분도 넓게보면 똑같이 하나의 신에게서 나온 다양한 갈래일 뿐이라고 설명하잖아요?
선대의 사상을 짜깁기 한 셸링에 비하면 유아론이라는 한계에 부딪히긴 했지만 자아를 중심에 세운 피히테가 조금 더 독창적인것 같지만 둘 다 칸트의 벽을 허물지는 못했지요 이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강박에서 출발한게 헤겔인거 같아요 그 무리한 철학이 어떻게 역사가 되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추종자들도 잘 이해되지 않고요. 가능 하시다면 헤겔 한번 진하게 다루어 주실수 있으신지요......
그리고 영상은 매번 잘 보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그 노력이 사람들의 의식으로 나타나겠지요. 감사 드립니다.
헤갤과 마르크스가 너무 기대됩니다 ㅎㅎ
너무 유익하게.잘.들었습니다! 그런데 다름이 아니라 ㅜㅜ 책상에 팔 닿으실때 소음이 계속 발생하는데 ㅠㅠ 이 부분이 조금 마음에 걸리네요 ㅠ
썸네일이 흑우여서 일단 들어와봤다
킁 킁
흑우 왔는가?
ㄹㅇ
어렵네요~
감사합니다^^
ㅇ...오늘은 아무리 들어봐도 잘 모르겠어요. ㅜㅜ
철학 전공수업 다 듣기전에 이 영상이 나왔더라면..ㅠ
지구라는게 ,세계라는게 나라는 인간 안에 있는가요, 나 밖에 존재하는건가요
1편에는 안나와있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5분 뚝딱철학 2편도 기대합니다.
합리론과 경험론은 메소드적인 성격이라면 관념론은 메타적인 성격을 지닙니다.
다시 말하면 메소드적인 철학은 실물질의 상태와 동작을 이해하는 측면이라면 메타적인 철학은 메소드적인 것들의 근본원리를 논한다라고 보면됩니다.
철학은 기본적으로 생각이라는 인간행동에서 비롯됩니다.
생각에는 관점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를 ‘관념’이라고 부르죠.
9:32 초에 나오는 피아노 진짜 좋네요.. 혹시 곡 이름 아시는 분 계신가요?
셸링은 물활론을 주장한 것인가요?
그렇다면 진정 관념론자군요.
헤겔이ㅡ피히테와ㅡ세링을ㅡ반씩섞은ㅡ생각이군요ㅡ칸트가ㅡ잘나누어ㅡ놓은ㅡ생각을ㅡ다시섞어ㅡ혼돈으로ㅡ캰트의ㅡ거대한구멍ㅡ물자체가ㅡ즉자대자ㅡ상태가ㅡ되지않으면ㅡ사유가ㅡ불가능하다는ㅡ사유의ㅡ과정이ㅡ생략되어ㅡ때문에ㅡ역으로ㅡ정신넘어ㅡ물질이ㅡ사유한다는거대ㅡ오류가ㅡ피히테의ㅡ생각에는ㅡ자세히ㅡ생각하면ㅡ큰ㅡ문제가ㅡ없습니다ㅡ생각이ㅡ경계를ㅡ넘지않는다면ㅡ세링ㅡ헤겔이ㅡ성립되려면ㅡ양자역학이ㅡ기존ㅡ존재론을ㅡ붕괴시킬때ㅡ헤겔의ㅡ지위를ㅡ피히테에게ㅡ주어야ㅡ할수도ㅡ엑기스가ㅡ피히테이므로
마이크 사니까 음질 ㅆㅅㅌㅊ
색증시공 공즉시색의 논리와 유사해보임
칸트의 철학이 관념론이라고 볼 수 있나요???
피히테 철학은 불교하고도 비슷하네요. 나 라는 생각에서 세상이 펼쳐진다는건데.. 그래서 나와 외부는 본질적으로 둘이 아니라는..
그건 힌두교의 아트만이나 도교의 물아일체 개념이고 불교랑은 좀 거리가 있는듯. 쇼펜하우어가 불교랑 비슷해요.
불교의 세친이 발전시킨 유식철학처럼 보입니다. 만법유식. 여기에서 만법은 객관적인 세상. 그 세상은 오직 나의 식(관념)일 뿐이란 주장이죠. 그러면서 유식에서 여래장이란 개념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또 세링의 생각과 같이 생각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인간의 사고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비슷해 보입니다. 재미있네요.
늘 유익하게 보고있어요. 감사드리고요.
9분26초 부터 시작되는 피아노 비지엠 알려주면 고맙겠습니다. 항상 열혈구독하고 있어요
다음시간이 헤겔인가요?
현대ㅡ철학에서ㅡ자아를ㅡ무의식으로ㅡ가져가지만ㅡ관점으로ㅡ가져가는게ㅡ더옳은ㅡ것일것입니다ㅡㅡ어떤ㅡ관점으로ㅡ보느냐가ㅡ나가ㅡ누구냐를ㅡ결정하므로ㅡ생각의ㅡ주체는ㅡ눈에ㅡ보이는ㅡ또는ㅡ들은ㅡ즉생각만큼의ㅡ관점동화ㅡ대자즉자를ㅡ만들고 ㅡ사람끼리ㅡ동화를ㅡ통화여ㅡ자신의ㅡ관점ㅡ자아를ㅡ형성한다고ㅡ보는게
1bba💙
간단한것을 복잡하게 복잡한것은 간단하게 대부분 이렇게 생각하면 좋더라구요
니체가 말한 "신학자들의 피로 더러워 졌다"는 말은 셸링이 일종의 신학자였다는 말인가요? 물질적 관념론이든 자아로 뭉뚱그린 관념론이든 다 신학과 같다는 말인가요?
저는 가끔 신학과 철학의 경계처럼, 철학과 과학의 경계가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소위 자연과학자라고 하더라도 그의 관념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지 않는 개인이 있을 수 있는가하는 점 때문입니다. 마찮가지로 내가 물질적 토대 위에 살고 있지만, 내 머리속의 생각의 영향을 받지않는 구체적인 하루하루의 내 삶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제 말은 철학적 관념론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내 머리속에 있는 생각들을 믿고 그 토대 위에 삶을 꾸려간다는 점에서 내 두뇌에 있는 세계에 대한 관념을 무시할 수 없겠다는 거지요. 진정 자기 머리 속에 있는 세계관이나 관념이 바뀌지 않고도 내가 바뀔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겁니다.
예를들면, 제가 최근에 양자물리학자가 쓴 책을 읽었다면, 그 저자가 쓴 세계관, 물질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즉, 그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나가 같은 인간일까요?
또 하나는 내가 모짜르트의 소나타 10번을 집중해서 듣고 감상했다면, 그 음악을 듣기 전의 나와 들은 후의 나는 같은 인간일까요? 더 나아가 그음악을 피아노 건반에 구현해서 내 손가락과 두뇌가 그 음악을 물질적(?) 구현, 즉 피아노 연주를 했을 때, 그것을 연주한 적이 없던 나와 그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연주한 나는 과연 다른 인간일까요?
저는 다르다고 믿습니다. 내가 그저 머리로만 책을 읽었든, 몸으로 땀을 흘려 운동을 했든, 그 이전의 나란 실체와 그 이후의 나는 상당히 다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어떻든지 관념론이란 이 짧은 강의를 들으면서 드는 생각은 그게 허술한 관념론이라고 하더라도 다 의미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니체가 통렬하게 비판했다 하더라도 니체 자신 조차 그 선행 철학자의 존재없이는 본인의 철학이 나올 수 없었을 거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이지요. ㅎㅎ 긴 글을 올려 죄송(?) 합니다.
셸링 말년에 신화철학이라고 종교 다루긴 함
너무 차원 높은 진리철학이여서 그렇습니다
근데 솔직히 뜬구름 같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독일 관념론은 너무 어려워요 ㅠㅠ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인 느낌
스피노자가 왜 위대한 사람인지 점점 알게되는군요
앗 마이크 멋지네용ㅎ
천재였던 셸링은 깨달음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융도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물은 답을 알고 있다, 이 책. 일본 사람이 쓴 책이라 썩 믿고 싶지는 않지만.
사람의 말이나 감정에 특정 에너지 파동이 있고 물이 그 에너지 파동에 영향을 받아
저런 결정을 만들었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영상 : ruclips.net/video/V6W8tjLX4jo/видео.html
전형적인 유사과학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과학으로 증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비과학인 건 아닐 겁니다.
과학은 점점 발전하는 기술이자 학문이고 도구이니까요.
오늘도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니체 관념론 비하발언 합법 인정~
칸트까지는 직관적으로 납득이 가는데 그 이후로 피히테부터 헤겔까지는 솔직히 그냥 개소리 같습니다. 응당 철학이라면 논증과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이 죄다 주장과 선언만 하고 있고. 결론도 황당하고. 심지어는 분석철학이 나오고 나서도 소위 대륙철학자들은 계속 헛소리만 하는 것 같아요.
고기토ㅡ주체ㅡ자아는ㅡ나의ㅡ다른ㅡ이름입니다ㅡ생각하는ㅡ나는ㅡ공허입니다ㅡ무얼ㅡ생각한다는건ㅡ나가ㅡ아닌ㅡ무언가를ㅡ생각하는것이므로ㅡ즉생각할때ㅡ나는ㅡ다른ㅡ무언가가ㅡ나입니다ㅡ대자가ㅡ나ㅡ즉자가되고 ㅡ합이ㅡ즉자ㅡ대자아되고ㅡ우리는ㅡ세상을ㅡ볼때ㅡ사물하나만ㅡ보는게ㅡ아니고ㅡ세상을ㅡ통째봄으로ㅡ나는ㅡ모든ㅡ물체가ㅡ번갈아ㅡ나가됩니다ㅡ즉자대자가ㅡ절대자아ㅡ되는ㅡ것입니다ㅡ모든ㅡ사물ㅡ사람이ㅡ되는ㅡ생각안에서ㅡ나는절대적이므로ㅡㅡ소설은ㅡ허구지만ㅡ나는ㅡ소설안의ㅡ누구도ㅡ될수있고ㅡ어떤사물도ㅡ형이상학의ㅡ어떤것도ㅡㅡ됩니다ㅡㅡ나라고ㅡ하는나도ㅡ대자를ㅡ통해ㅡ즉자된ㅡ나입니다ㅡ즉자ㅡ대자ㅡ즉자 ㅡ즉자대자ㅡ과정을ㅡ거칠때 ㅡ처음의ㅡ즉원래의ㅡ생각하는ㅡ나라는ㅡ즉자는ㅡ지각할수ㅡ없습니다
ㅎㅇ
피히테를 불교의 일체유심조적 인식론으로 봐도 될까요
저는 그렇게 느꼈어요.
자아를 사용하는 지금 나와 외부를 상으로 인식되는데,
피히테가 과연 자아가 사라지면 세상이 사라지는 상태를 경험했는지는 의문입니다만,
피히테가 설명한 나와 세상 모두를 자아안으로 인식하는 상태를
불교에서 깨닫기전 자아의 허상을 가지고 외부 대상과 작용하는 부분을 묘사한 부분이 떠올랐습니다.
@@tdfjwrfadse 가르침 감사합니다. ^^
^^
철학이 무시받는데는 이런 철학자들이 많은 탓이 있다고 봄;;
반동 수구꼴통 교조주의자 ㅉㅉ 유물론은 아냐??
오히려 이런저런 사유의 장이 넓을수록 좋은듯
헤겔이 그래서 뭔소리한건가요?? 아무리봐도 헛소리같은데?
니체가 왜 욕하는지 알겠군. 개똥철학 그 자체여서였네
ㄹㅇ
영혼이 육신과 따로 존재한다는 전제를 강력히 믿어야만 이해가 가는게 독일 관념론이 아닐까 싶네요
ㅛ 와 ㅕ 발음이 이상하군요.
강의 들었으면 좋아요 누르고 가라 들 댓글에 지저분하게 되지도 않는 부연설명 하지 말고
피히테는 반야심경을 봤나보네 ㅎ
천상천하 유아독존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