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페스트)대유행과 카파전투, 중세봉건제도를 무너지는 요인 중의 하나인 흑사병(페스트)라는 전염병은 제노바의 교역소가 있던 카파라는 도시의 전투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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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1 окт 2020
  • 흑사병 혹은 페스트라 불리우는 전염병의 대유행은 카파(페오도시야)전투라고 불리우는 작은 전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즉 1347년 ~ 1351년까지 불과 4년 만에 중세 유럽인구의 1/3을 사망케 한 것으로 알려진 흑사병(페스트)의 시작은 카파전투라고 불리우는 흑해 크림반도의 작은 도시에서의 전투에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카파전투는 베네치아 상인과 몽골상인의 다툼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카파는 제노바(신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의 고향) 상인들이 킵차크칸국으로부터 교역을 허락받은 거점도시로서 제노바 교역소가 있었습니다. 당시 지중해 무역을 지배하던 베네치아(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의 베니스가 베네치아 임)와 제노바는 향신료 산업을 수행하기 위해 킵챠크 칸국으로부터 베네치아는 타나, 제노바는 카파(페오도시야)라는 도시를 거점도시로 받아 무역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타나지역의 베네치아 상인과 몽골상인이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네치아 상인의 일행이 몽골 상인의 일가족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에 따라 킵차크 칸국의 자니베크 칸이 타나지역을 파괴하고 타나사람들을 받아준 카파지역을 공격합니다.
    그런데 카파지역은 콘크리트를 이용한 단단한 성벽도시이며 바다에 면한 지역으로 쉽게 함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킵차크 칸국의 4만 병력은 카파를 포위한 채 1343년에 시작된 전쟁은 몇 년동안 시간만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시기에 1347년 킵차크 칸국의 군대에 전염병이 돌았고 2만이 넘는 병사가 죽었다고 합니다. 이에 자니베크 칸은 병들어 죽은 시체를 투석기를 이용해 성안으로 쏘아 올렸습니다. 이에 카파사람들은 시체를 바다에 버렸으나 그로부터 얼마 후 사람들은 전염병에 걸려 죽어갔으며 카파의 시민들은 도시를 버리고 본국인 이탈리아의 제노바와 베네치아로 돌아갔습니다.
    이에 따라 제노바와 베네치아에서 전염병이 번지기 시작하고 마침내 유럽전역으로 번져 유럽인구의 1/3이 죽어나가는 대 참사가 벌어진 것입니다.
    당시 전염병에 감염된 사람의 피부가 검게 변하며 죽었던 관계로 이를 흑사병이라고 불렀는데 다른 말로 페스트라고 불리우는 전염병입니다.
    이 병은 페스트균에 감염된 쥐에 기생하는 벼룩이 사람을 물 때 사람에게 전파됩니다. 보통 페스트 균에 감염되면 2일에서 6일간의 잠복기를 거친 후 증상이 나타나는데, 당시 사람들은 이 병이 신이 내린 천벌이라고 여겨 함께 모여 기도하거나, 집시나 유대인이 이병을 전염시킨다고 생각하여 이들을 박해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유럽은 흑사병으로 인해 심각한 변화를 겪는데 일단 일할 사람이 줄어 봉건제도가 붕괴되고, 막대한 피해를 입은 수도원의 영향으로 성직자가 줄어 성직에 대한 자격조건이 완화되고, 살아 남은 자들에게 부가 집중되어 졸부가 급증하고 사회계층이 급격히 변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이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종교중심의 세계관에서 점차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같은 경우에는 외국에서 온 배들은 멀리 떨어진 섬에 40일 동안 격리하여 페스크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도시에 들어올 수 있게 하였는데 이것이 검역의 시초입니다.
    페스트균은 1894년 프랑스 세균학자 예르생과 일본의 세균학자인 시바사브로에게서 동시에 발견되어 치료의 실마리를 찾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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