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관련 일제강점기 기록물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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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4 янв 2025
- 영국 정보국(SIS)이 한국의 3·1운동과 독립운동에 대해 젊은 여학생들의 적극적인 가담과 자발적인 자금 마련 등이 인상적이었고,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설립까지 이어진 독립운동의 도화선이었다고 평가한 문서가 공개됐다.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기록원은 영국 정보국 극동지부가 1923년 7월 27일 본국 외무성에 보낸 '한국 독립운동 초기 전개과정' 보고서 등 영국 국가기록원과 미국 국가기록관리청이 수집한 3·1운동 관련 일제강점기 기록물 3건을 28일 공개했다. 이들 기록물은 최근 비밀이 해제됐다. 1912년 창설된 영국 정보국은 당시 미국 전략정보국(OSS)과 소련 KGB 등과 함께 대표적인 정보기관으로 꼽힌다.
'한국 독립운동 초기 전개과정' 보고서에는 "독립선언 발표 후 모든 주요 도시와 읍내의 독립투사들이 시위를 조직했고, 수많은 젊은 여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운동에 가담해 열렬한 반일운동을 시작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1919년 10월 23일 작성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관련 보고서에는 "상하이 임시정부가 본국과 미국으로부터 상당한 자금을 받았는데 한국인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냈다"고 적었다. '회원은 2000여명으로 구성됐고, 일본인 관리를 암살하려는 목적' 등의 내용도 기록하고 있어 무장투쟁을 주도했던 의열단에 대한 관심이 컸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국가기록관리청 기록물은 1945년 일제에 의해 태평양 중부 타라와 섬으로 끌려간 한국인 노동자의 비참한 모습을 담은 사진 등 8점이다. 타라와 섬은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과 일본군의 격전지로 군사시설을 세우기 위해 일본이 한국인 800여명을 징용해간 곳이다. 70여명만이 살아서 돌아온 생지옥이었다.
글 /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영상편집 / 문성호PD sung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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