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우리나라 땅 전체를 다 파도 저런게 계속 나올텐데 나중에 땅주인 토지개발하거나 할때 비용처리 나라에서 해줘야되는거아님? 저런거 ㅈㄴ많을텐데 ... 언제까지 고고학자의 놀이터로 전락하게 할건가 ㅋㅋ 저런거 나오면 고고학자랑 학계만 신나잖아 자기 논문쓰고 돈벌거 생기니까 근데 땅주인은 돈 다 내면서 저거 발굴비 지급해야한다고 알고있는데 누구를 위한 발굴인가 ?..ㅋㅋㅋ
확실치 않는 유언비어를 퍼트리지 마시길. 임야는 원래 개발이 금지 되는 곳입니다. 택지지구와 같이 개발가능한 지역내 민간 개발사는 개발전에 문화재 지표 조사를 시행합니다. 이 때 문화재가 나오면 시행사는 문화유산법에 따라 신고하게 됩니다. 누구를 위한 발굴인가가 아니라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가 맞습니다. 이번 기회에 문화재보호법도 좀 읽어 보시고 왜 필요한지도 인지하시기 바랍니다.
@@수원호랭이-u6v 상주시는 '고녕가야' 미공개 고분군이 어마어마하게 산재하고 있지요. 가야고분군의 또 다른 특징은 낙동강, 강줄기 따라 이동했었고, 농경지 평야를 중심으로 문명을 이뤘다고 봅니다. 그 농경지가 내려다 보이는 곳은 어김없이 고분군이 있지요.(민족의 특징) 가야시대는 해상, 강을 통해 교역을 활발히 했음을 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 쪽으로는 영주, 단양, 서쪽으론 보은 그 이전 시대 고인돌 분포도를 통해서 역사는 이어지고 발전되었음을 대략적으로 유물과 유적을 통해 확인됩니다.
신라에 금관가야 구형왕이 항복해 들어갔고, 그의 세명의 아들 중 첫째인 세종과 셋째인 무력은 신라의 북진에 여러모로 활약했다고 봅니다. 특히 세종과 무력 둘다 단양 적성비에 등장하는 만큼 두 사람만 참전하지는 않았을거에요. 그 휘하에 많은 가야계 부장들과 병사들이 따라갔겠죠. 그때 참전한 장수들도 있고, 통치를 위해 파견된 가야계 인사들도 있을 테니 그들의 무덤이라면 아무래도 가야계 양식이 남지 않겠습니까~
고구려와 신라는 역시 우리의 역사다 물론 백제와 가야도 우리의 역사
삼국시대에는 당나라에 나라 팔고 지금은 일본에 나라 파는 신라는 근본없는 새끼들이지
@일탈녀-다늬고구려 지방 중국이 지들꺼라고 관광아낸판에 한글로 적어둠 ㅋ
하지만 아파트앞에서는 답이없죠. 재개발로 밀어버리기!
그럼 북조선도 우리역사요? 내래 간나시키
@@동연강-g5f 분단되고나서도 당연 역사에 들어가죠;;;
고구려사기 , 백제사기 , 신라사기 고려사기 등등 발견되면 참 좋으려만 너무 아쉽다.....반만년 중 잃어버린 기록이 훨씬 많으니 너무 아쉽다 진짜...
있었다면 강점기때 일본이 가져갔을거임... 백프로...
온달장군이 전사한곳은 단양이 맞는듯
금산 인삼랜드 근처 신라산성과 신라고분들도 발굴하면 대박일텐데
백제영토에 알박기한 형상임
역사 교육 제대로 못 받은 사람들은 죄다 이게 거짓말이라 하네
님들은 한국사람이라고 하지 마셈
에효~ 산 꼭대기에 무덤 만드느라.. 고생들 했겠네~ 다 없어졌겠지~~유물들.
대단한 발견이다
어케 찾았냐😊
전쟁과 개발때문에 사라진게 수도 없겠지
도굴꾼은 아는데
학자들은 몰랐던거야
돈이 않되 관심이 없었던거야...
짝짝짝~ㅋㅋ~ 천재천재~ 변희재!
신라 것인지 과학적 근거를 대라.
눈으로 하지 말고.
대 정 용
이집트를 보면 알듯이 귀족들의 무덤 같은건 만들어지고 바로 그날부터 도굴의 대상이 됨.
140기 ㄷㄷㄷ
도굴꾼 천벌을 받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천벌 안받는다.
문화의식 수준이 어쩜 이러냐
퇴보다 참
개탄스럽네
근데 우리나라 땅 전체를 다 파도 저런게 계속 나올텐데
나중에 땅주인 토지개발하거나 할때
비용처리 나라에서 해줘야되는거아님?
저런거 ㅈㄴ많을텐데 ...
언제까지 고고학자의 놀이터로 전락하게 할건가 ㅋㅋ
저런거 나오면 고고학자랑 학계만 신나잖아
자기 논문쓰고 돈벌거 생기니까
근데 땅주인은 돈 다 내면서 저거 발굴비 지급해야한다고 알고있는데
누구를 위한 발굴인가 ?..ㅋㅋㅋ
확실치 않는 유언비어를 퍼트리지 마시길. 임야는 원래 개발이 금지 되는 곳입니다.
택지지구와 같이 개발가능한 지역내 민간 개발사는 개발전에 문화재 지표 조사를 시행합니다. 이 때 문화재가 나오면 시행사는 문화유산법에 따라 신고하게 됩니다. 누구를 위한 발굴인가가 아니라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가 맞습니다.
이번 기회에 문화재보호법도 좀 읽어 보시고 왜 필요한지도 인지하시기 바랍니다.
@@sunnyan151 말귀를 못알아 먹으시는거같은데 임야는 임야고 제가 말한건 개인사유지에서 발굴되는 걸 말하는겁니다. ㅋㅋ
@@user-yx8tq4ee5t 개인사유지 인지 아닌지 구분 없이 법 적용. !!!
땅도 없는 놈이 별
그럼 학자랑 학계가 신나야지 사업주 신나라고 땅 까재껴서 포크레인으로 뭉게버리게? ㅋㅋㅋ
발굴조사비 국가지원정책도 시행하고 예산 쏟아붓자마자 텅텅 비고 예약순서가 저 앞까지 밀렸는데 일일이 다 보상할 예산은 어디서 가져올거고? 현장도, 학문도 모르면 그냥 입을 다물어. 다물면 중간이라도 간다잖아. 공부를 안하니까 망신만 당하는거 아니야.
산능선이 따라 쓰여진 고분은 가야고분의 특징인데, 신라고분으로 보는 이유는 5세기 이전 문명, 국가는 없다는 식민사학의 대명제가 있기 때문이다.
어디 저 곳 뿐이랴?
어쩐지 가야의 수혈식 석실인거 같은데 신라 고분이라는게 좀 의아했는게
그것보다 충북 단양에 가야의 고분이? 이게 맞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네요
@@수원호랭이-u6v 상주시는 '고녕가야' 미공개 고분군이 어마어마하게 산재하고 있지요.
가야고분군의 또 다른 특징은 낙동강, 강줄기 따라 이동했었고, 농경지 평야를 중심으로 문명을 이뤘다고 봅니다. 그 농경지가 내려다 보이는 곳은 어김없이 고분군이 있지요.(민족의 특징) 가야시대는 해상, 강을 통해 교역을 활발히 했음을 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 쪽으로는 영주, 단양, 서쪽으론 보은
그 이전 시대 고인돌 분포도를 통해서 역사는 이어지고 발전되었음을 대략적으로 유물과 유적을 통해 확인됩니다.
그러게요 토기모양이 가야 굽다리 모양인데다가 사각형의 무덤이라면 가야 아닌가
신라에 금관가야 구형왕이 항복해 들어갔고, 그의 세명의 아들 중 첫째인 세종과 셋째인 무력은 신라의 북진에 여러모로 활약했다고 봅니다. 특히 세종과 무력 둘다 단양 적성비에 등장하는 만큼 두 사람만 참전하지는 않았을거에요. 그 휘하에 많은 가야계 부장들과 병사들이 따라갔겠죠. 그때 참전한 장수들도 있고, 통치를 위해 파견된 가야계 인사들도 있을 테니 그들의 무덤이라면 아무래도 가야계 양식이 남지 않겠습니까~
먼 개소리야. 6세기에 신라는 대륙 강소성,안휘성,절강성 지역에 있었다. 한반도는 고구려의 영토였어.
저게 뭔 신라냐?
산림파괴하지말고 그냥 뭍힌데로 두어라 뭔 대단한 거라고 ...
묻
와 ㅋㅋㅋㅋ 뭍 은 솔직히 첨 본다 ㅌ이랑 ㄷ은 거리도 먼데 이건 오타가 아니잖아
요즘것들 밥주고 학비주고 국가 징학금까지 줘가면서 80%대학 보낸거 아니었어?
헛돈 썼네 ㅋㅋㅋ 뭍은 ㅋㅋㅋㅋ뭍 ㅋㅋㅋ. 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
묻히든 뭍이든 먼상관이냐? 6세기에 신라가 충북단양에 있었다는 증거가 있냐? 금석문 하나 없는데 무슨 근거로 신라가 저기에 진출했다고 떠드는 거야.
요즘 것들이 아니라 글 보면 연세 ㅈㄴ 많은 분임
@@super-JEI금석문 있어요 단양신라적성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