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주의의 상징, 전함 미카사//조종의 NAVY썰(해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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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14 янв 2025
- #쓰시마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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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개혁 개방의 시작, 쿠로후네 사건, 미군과 조선의 첫 전투인 신미양요, 굴욕적인 불평등 조약을 이끌어낸 운요호 사건. 이들은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전함을 이끌어 힘을 통한 협상, 포함외교를 한것이라는 점이다. 전함은 미사일이 발명되기 이전까지 가장 강력한 무기였으며, 바로 전함의 함포를 이용한 외교는 그야말로 냉혹한 국제 정치에 현실이었다. 이 처럼 전함은 항공모함이 나타나기 이전까지 국가 전략무기였었고, 전함의 보유숫자는 그 자체로써 그 나라의 국력을 상징하는것과 같았다.
그렇다면 20세기 일본은 과연 어떻게 세계 열강과 견줄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 것일까? 일본 제국주의의 시작은 과연 어디서부터인걸까? 오늘 이야기 할 네이비썰은 일본 제국주의의 시작, 전함 미카사이다.
청일 전쟁 이후, 한반도에서의 청나라의 영향력을 막아낸 일본은 이후, 부동항을 찾아 남하하는 러시아와 지역 패권을 두고 힘겨루기를 시작하게 된다. 러시아의 남하 목적은 부동항이었고, 강력한 발트함대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은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서 해군력 증강이 필요하다고 느껴 이후 해군력 증강에 박차를 가한다. 이에 일본은 66함대 계획을 수립, 전함 6척과 장갑 순양함 6척을 배치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을 공포한지, 30년도 안된 시점이었고, 러시아 함대와 맞써기 위해서는 강력한 전함이 필요했는데, 아직까지 일본은 그런 군함을 건조할 능력이 부족했다.
이에, 일본은 당시 동맹이었던 영국에게 전함 4척을 주문하였고 영국은 동맹국 간의 우호로써 이를 승락했다. 이에 영국은 마제스틱급 전함의 계량형이며, 주포와 부포는 후지급 전함과 같은 40구경 305mm포와 40구경 152mm, 18노트 이상 속도를 가지는 전함. 시키시마급을 건조하기 시작했고 오늘의 주인공인 미카사는 시키시마급 4번함으로, 1900년 11월 8일 진수된다.
미카사의 기본적인 제원은
기준배수량 1만5천톤/ 전장 132m / 폭 23m/ 속력 14,500마력, 18노트/ 무장 305mm 연장포탑 2기/ 152mm 부포 14문/ 장갑 현측 최대 229mm 갑판 최대 76mm로 이루어져있다.
미카사는 1902년 3월 1일부로 정식으로 사우샘프턴에서 일본해군으로 인도되었다. 이때 건조 비용은 선체가 88만파운드, 무장은 32만파운드였다고 하며, 당시 일본은 이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있는 수단 없는 수단 긁어모아 겨우 예산을 마련했다고 한다.
(특히 시키시마급을 건조하기 위해 일본은 천황의 내탕금까지 사용하면서 까지 어떻게든 시키시마급을 구매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라고 나무위키에 적혀있긴 하지만, 교차검증이 안되는바, 사실 확인이 필요합니다.)
시키시마급은 영일동맹의 우호의 상징으로써 당시 영국의 기술력을 동원하여 만들어진 전함이었다. 305mm 주포는 386kg의 포탄을 최대 13,700m까지 날려보낼 수 있었고, 송탄 및 양탄 그리고 장전까지 원본이 되는 마제스틱급 전함에 비해 개량이 되었다고한다. 이런 내부 개량 때문에 발사 속도는 약 20%정도 빨랐다
152mm부포는 45kg의 포탄을 최대 9천미터까지 발사할 수 있었다. 양현에 총 14기 배치되었는데, 분당 5-7발정도로 발사 할 수 있었다.
장갑또한 당시에 주류인 박스형 시타델을 채용하였고, 1번 주포탑에서 2번 주포탑까지 수선부 장갑 229mm 장갑이 흘수선 윗 부분을 두르고 있었으며, 그 위에는 152미리 중갑판을 덧데어, 두터운 측면부 방어를 구현했다.
이런 고 스펙 때문에 시키시마는 진수가 되었을 당시 세계최대의 전함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영국해군 입장에서는 자국의 전함보다 훨씬 좋은 스펙의 전함을 외국에 수출하는 꼴이라 영국 의회에서 논란거리가 되었을 정도라고 한다.
앞서 말한 대단한 스펙 때문에 시키시마는 인도 되자마자 일본 해군의 기함이 되었고, 마지막에 건조된 미카사 또한 인수되자마자 일본 해군의 기함으로 활약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이들의 능력이 십분 발휘되는 사건이 발생한다.1904년, 일본의 기습공격으로 러시아와 일본은 한반도 주도권을 건, 러일전쟁을 시작한다. 이에 미카사를 포함한 시키시마급도 일본 해군의 기함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되며, 당시 뤼순 항구를 중심으로 모여있던 태평양 함대와 서해에서 교전을 하여 전략적인 승리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거기다 일전에 뤼순이 기습을 받게되면서 태평양 함대는 큰 타격을 받고 사실상 항구가 봉쇄된 상황이었다, 이런 전황을 타개하기 위해 러시아는 주력 해군인 발트함대를 지구 반바퀴를 돌아 대한해협으로 돌입시켜, 일본의 해상보급로를 차단한다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이거는 너무나도 무모한 작전이었는데, 우선 발트해에서 일본까지 지구 반바퀴를 돌아야했으며, 몇몇 전함들은 수에즈 운하를 도하할 수 없었기 때문에 희망봉까지 돌아서 가야했던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트함대의 규모는 일본 해군과 비교해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같은 함대가 일본 연안에 접근한다는거 자체만으로도 일본은 매우 부담이 되자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연합함대 사령관으로 있던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 또한 발트함대가 일본 내해에 접근하게 되면 승산이 없다는걸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도고 제독은 발트함대가 다가올것으로 예상되는 해역에 함대를 배치시키고 다가오면 기습을 하는 작전을 구상했다.
이때 발트함대는 도착지인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로 들어가기 위해 총 세가지 항로가 있었는데, 일본 해군은 이 항로를 모두 막기 위해 전력을 분산하다가는 발트함대의 각개격파 당하기 쉽상이었고 도고 제독은 이 세가지 루트 중 발트함대가 오는곳을 정확하게 예측해야했다.
이때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적은 먼 거리를 항해해 매우 피곤해있는 상태이며 따라서 가장 최단 루트를 선택할거라고 확신했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그대로 적중하였고, 발트함대는 현재 대한해협, 쓰시마 인근을 지나는 항로에 나타난다.
5월 27일 오후 1시 55분, 지구 반바퀴를 돌아온 장거리 항해에 방심하고 있던 발트함대를 발견한 연합함대는 미카사에서 전투개시를 알리며 각 함에 무선으로 이런 말을 전했다고 한다. '황국의 흥폐, 이 전투에 달려있다. 각 대원은 한층 분발 노력하라.' 이 무전을 받고 난 뒤 일본 해군의 모든 함들은 발트함대를 향해 총공세를 가한다.
발트함대가 올것을 확신하며 기다렸던 일본군은 발트함대를 상대로 T자 진형을 유지했다. 모든 함포가 사격을 개시했고, 발트함대는 그야 말로 일본 연합함대에게 제대로 기습을 당한다. 발트함대는 결국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각개 격파 당했고, 이 때문에 발트함대의 선상은 지옥이 되어버린다. 이후 발트함대는 뿔뿔히 흩어지면서 퇴각하기 시작했고, 몇몇 함들은 일본에게 노획되면서 쓰시마 해전은 러시아의 완패로 마무리 된다.
이 해전 이후 일본이 얻은 성과는 너무나도 많았다. 이 해전의 패배로, 사실상 한반도 주변 제해권이 일본에게 넘어가게 되었고, 가뜩이나 러시아는 민중소요가 일어나 내부 통제가 안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전쟁 수행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에 1905년, 결국 러시아는 패배를 받아들여, 미국의 중재 하에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하게 되면서 러일 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마무리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된다. 특히 포츠머스 조약은 한반도의 지배권을 사실상 일본에게 양도한 조약이었으며, 이 때문에 일본은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들었고, 만주와 중국까지 진출하는 교두보를 확보하게 된다.
러일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 한 이후 전함 미카사와 연합함대 사령관 도고헤이하치로 제독은 국가적 영웅과 상징이 되었다. 특히 도고 헤이하치로의 기본적인 군사전략은 거함거포 함대결전사상으로 발전해, 앞으로 일본 해군에 기본 모토가 된다.
영국 또한 쓰시마해전의 사례를 통해 전투함의 빠른 속도와 거포의 화력과 사거리가 중요하다고 판단, 지금의 전함의 기본적인 뼈대가 되는 드레드노트급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전함을 탄생시켜, 기존의 전함들을 도태시키고 건함경쟁을 새로운 국면으로 끌고 가게된다.
하지만 미카사는 이후 그리 좋지는 않은 함생을 보내게 된다. 러일 전쟁이 끝난 직후 1905년 사세보 항에서 탄약고가 폭발해 침몰했고, 339명의 군인들이 미카사와 운명을 함께했다.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탄약고에서 수병들이 몰래 술을 만들어 먹다가 불이 붙어 폭발한것으로 보는게 보편적인 시각이라고 한다. 이에 미카사는 완전히 폐함처리가 될 위기가 되었으나 일본은 미카사를 근성으로 수리해, 1906년 사세보 해군 공창에서 수리되어 1908년에 제 1함대 기함으로서 현역에 복귀했다. 그 뒤 1923년, 워싱턴 군축 조약으로 폐함이 결정된 미카사는 기념함으로써 남으려고 했지만, 관동 대지진으로 해안에 충돌하면서 침수되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쓰시마 해전의 영웅, 미카사를 이대로 스크랩 처분 할 수 없었던 일본해군은 어떻게든 기념함으로 복구하기위해, 다시한번 근성을 발휘해, 악착같이 수리를 했고, 이후 요코스카 항구에서 현재까지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미카사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태평양 전쟁 패전 직후 기념함이었던 미카사는 연합군이 접수하여 장교 클럽과 수족관으로 개조되어 사용했고, 그 과정에서 주포 등 각종 화기와 시설물이 제거된데다가 원형 또한 크게 훼손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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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유익한 시간 보내고 갑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ENTERPRISE 없어요
@@jojong_SMA1 그게 실제로는 있엏는데 워게이 가없애버림
@@김재희-q8q ? 고증상 없는뎅.... 다른 시키시마급은 있는데 미카사는 없어요
@@jojong_SMA1 아 그런가요? 그건 몰랐는데
미카사: 아래쪽에 감각이 전혀 없으니 어떻게 된거요?
으사양반: Aㅏ, 이보세요! 당신은 이제 건물이에요
형사양반: 그러게 왜 군국주의를 하다 이모양이야
형사양반: 전함이면 전합답게 침몰해야지(!?)
김두한: 어차피 침몰될 운명이니, 우릴 너무 원망 마라
이게무슨소리야 네가네가 건물이라니!
지금은 백병원으로 간 전함
미카사
"선생은 상태가 영 좋지 않아요. 한마디로 말해 전투를 할수가 없다는것이오. 그러니 푹 쉬세요"
뭐요? 내가 박물관이라니!
@@S1NABR0 흥분하면 폭☆8할 위험이 있어요. 그러니 푹 쉬세요
@@GHOST004_Tac 타....탄약고
왜들 이러시오 도대체.....내가 무슨 죄를 졌다고!
@@kv-2231 야, 너 적 맞잖아? 강력한 화력으로 우리 해군을 몰살시켰어. 일제가 뭐가 어째고 어째! 다시한번 주접떨어봐봐!
미카사 말고도 러일전쟁 당시 가장 유명한 군함은
제물포, 즉 오늘날 인천 앞바다에서 일본 해군에게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다 침몰한 방호순양함, "바랴그" 도 있죠.
그리고 쓰시마(또는 대한해협) 해전에서 살아남았지만 경순양함 SMS 엠덴에게 격침당하는 젬추그는 하나도 안 유명...
바랴그... 쿠르네초프급 항공모함이었지만 미완성인 상태로 중국한테 팔려서 랴오님이 되었죠...
일본이 2차 세계대전 미국참전 당시 가장 많은 항공모함을 가지고 있었어요.. 꼰대 국가이긴 하지만 현대 해전에서는 정말 앞선 나라였죵
교리는 전쟁 끝날때까지 거함거포였습니다, 여전히 전함이 1등군함이고요, 오히려 정말 앞선 나라는 미국입니다. 진주만 공습이 터지고 난 뒤, 바로 항공모함 중심의 교리로 갈아탔으니까요
03:58 분당 5~7발인데 분동이라 오타있어요!
당시 기술로서 최신인 주포기술이 탑재되었다고합니다.
미카사급 전까지는 전함의 주포는 발사후 포신을 정방향으로 돌려 장전후 다시 조준,발사 하였는데 미카사급 부터 주포를 정방향으로 돌리지않고 장전할수있는 기술이 탑재되었다고합니다 -미카사 박물관에서 보았습니다
아조시 마지막 전노급 전함은 1908년에 나온 Lord Nelson이고 마제스틱급 다음 함급도 몇개 있던데 ㅠㅠ
아 이거는 제대로 확인 못했네... 팩트체크 감사해여
중간에 나온 설계도면 뭐라 치면 나오나요?
그런거 많은 싸이트도 쫌 알려주세요
준비 엄청하셨네요 늘 즐거운 기분으로 시청합니다 파이팅! !
진격의거인 등장인물 미카사아커만 이름을 여기서 따옴(작가 오피셜)
벽람항로에도 나오죠...
분명 중국게임인데 일뽕을 넣어준 이유가 궁금해지는 캐릭터...
그런데 알고보니 프라모델 덕후(박물관임을 반영) 허당으로 묘사되었더군요 ㅋㅋ
미카사가 최후가 저래가지고 불운함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야마토보다 더 불운하겠나...
미카사는 그래도 쓰시마해전에서 화려하게 승리(우리에게는 민족적 재앙이었지만...)라도 했지 야마토는 그냥 호텔...ㅋㅋㅋㅋ
@ᄋ반일정신병자 는 아랫도리친일파다 조선반도........
우리나라는 거의 사용하지않는 용어네요.
@ᄋ반일정신병자 는 아랫도리친일파다 그렇구나.....
그냥 저는 조선반도 보단 한반도를 더 많이 사용하는거 같아 답글 드린건데
화려한 역사가 있지만 아군에게 폭사당해서 침몰했다가 강제로 살아났다가 자연에게 마저버림 받아서 영원히 박제된 함선
마지막 마무리 내레이션이 좋았어요
넘나잼있다
잘 보았어요. ^^
나무위키에서도 비슷한 서술이 있습니다만 러일전쟁은 1904~5년에 있었고 태평양전쟁은 1939~45년으로 30년간의 갭이 있습니다. 그 사이 유럽에서는 1차대전, 2차대전 유럽전쟁이 터졌고 그 때마다 전쟁 양상이 확 바뀌어서 유럽국가들은 자기네 군사 교과서를 상당부분 다시 써야 했습니다. 러일전쟁 탓을 하기보다는 그 30년동안 안 바꾼 탓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안 바꾼 이유 중 하나가, 쓰시마 해전에서의 영광에 대한 지나친 추종이 크게 한 몫했다는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태평양 전쟁때 미군과 일본의 결정적인 차이가 전함의 운용 방식이었거든요. 밥값 못한 전함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후소급 이상 전함들은 후에 있을 함대결전을 위해 아껴둔다라는 논리로 다른 임무에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이거만 봐도 일본이 유연함이 얼마나 부족한 집단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jojong_SMA1 그건 러일전쟁 탓을 하기보다 일본군의 정신력이 썩어빠진 탓 내지 다른 정치경제지리군사적 요인 탓을 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생각해보세요. 04~45년 동안 다른 나라 군대 역시 나름대로 굵직굵직한 전투를 치렀고 개중에는 나름 자랑스러운 기억도 있을 겁니다. 근데 그 나라들이 다 그 때 그 시절 옛 전술에 집착해서 말아먹은 건 아니었습니다. 설사 옛 전술에 집착한 거 같아보이는 나라가 있더라도 그건 뽕에 취했다기보다는 그 나라가 처한 정치경제지리적 제약이 큰 경우를 더 많이 봤습니다. 일본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경제력, 산업력등에서 현저한 차이가 나니 미국과 장기전, 총력전을 선택할 수는 없죠. 당시 상황이 일본에게 함대결전을 통한 단기전을 강요했다라고 보는 게...
움직이지 못하는 고자 전함
내가......내가 곶자라니! 겋헣헣허허허!
술만들어 먹으려다 터지고 술마시고 놀려고 바뀐다음 기괴한 현대의 소나무좀비의 기원이 되는 시발점인거 같은 전함.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러시아함대들은 영국의 방해로 저질 석탄을 사용하며 지구 반바쿠를 도는 동안 제대로 된 보급도 못 받고 사기도 떨어진 상태였지요. 어찌보면 영국, 일본 대 러시아의 대리전쟁이었다고도 볼수 있지요..
미카사가 집착한게 참 좋은뎁 읍읍
오타 있어요 쓰시바 해전때 러시아 병원선이 있어요
하...병원선만 아니면 발트함대 안들키고 블라디보스토크항에 입항할수 있었는데....
???:누가 탐조등키래 ㅅㅂ
@@S1NABR0 승무원 : ???국제법 준수인데요?
국제법 좋☆까!
@@치으려 고위관료:그딴게 뭐가 중요함? 이기면 아무도 모르잖씀?
일반군인:정말 위대합니다선생! 우리는 몰랐습니다! 공격!
@@성이름-q5w9e 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오늘 해군 카레 랑 미카사 보고왔습니다
미카사 너무 잘빠진 전함인디
축소모형 나오면 무조건 사서
컴뷰터 책상에 올리고 싶다.
드레드노트의 시작
천황의 비상금까지 써서 건조한 미카사
오타 있네요 러시아 함대 에전함 이 없내요 크냐지 스보로포 암페라토르 알렉산드르 3세 보로디노 오률
전후 주민들이 미카사 부품을 고철로 팔았다고 합니다..
불쌍한 미카사 전함...
러일전쟁은 일본의 전략적 판단이 확실히 훌륭했군요.
드레트노트:ㅋ 준노급으로 꺼져
근대화 30년째인 일본의 경제력으로는 저런 전함과 순양함들을 무더기로 해외에 주문할 능력이 없었죠.
건조 비용은 거의 전적으로 청일전쟁 배상금으로 이뤄졌습니다.
영상에서도 잘 지적하고 있지만 천황 내탕금 어쩌고 그런 나무위키 내용은 믿을게 못되고요.
청나라로부터 받은 배상금 대부분을 육군과 해군이 할당해서 책정된 겁니다.
저어기 대열 부수는 이소카제가 접니다
초신성같은 삶은 살았죠 그녀는.....
역시 통수의 나라답다는..
전쟁은 온통 기습에다가. 2차 대전 때의 영국 뒷통수 때리기..
폭8엔딩이라니...;;;
에잇 폭8이다!
미카사의 후예 무츠: 본인도 폭☆8이다!
그러고 보니 훗날 2차 대전 나가토급 2번함 무츠도 똑같은 꼴을......
미카사랑 프순3티(저) 랑 1ㄷ1 매치잡혀서 그냥 발렸죠........
전함은 제국주의의 상징이군요!
전함과, 그 전함을 만들 수 있도록 강철을 정제하는 기술인 광학이 제국주의의 상징이죠.
??:숙련된 로동자 입니다
-다이내믹 로동-
천황의 비상금으로 건조된 미카사 ㅋㅋ
러시아 함대 박살낸 1등공신인가
암튼 일본은 기습이 종특이여
I am 연막빌런
앍 게샑....
미카사(해안포)
그저 운...
내가 아는 시키시마는 20인ㅊ...
아커만
일본의 만주 진출??? 그렇게 진출, 진출 거릴거면 북한의 남한 진출, 일본의 진주만 진출 이런 표현도 써봐요.
꼰대....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