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ER-han3namkill 그런 것 같지는 않는데? 연산군이 죽을 때 자기 친정 산에다 묻겠다하고 자기 죽을 때 같이 나란히 뭍혔음. 연산군이 잘못 빠지지 않았으면 더 행복했을 거임. 성격도 넘 어질어서 연산군만 후에 나빠지지 않았어도 조선 역사상 임금과 중전이 함께 어진 왕과 비로 태평성대가 지속되고 심지어 왕비를 무척사랑하는 임금으로 가장~ 그랬을 텐데...
내가 썼는데도 못 알아처먹겠어서 수정. 좋아요를 다른 댓글보다 많은 것이 어처구니 없지만 연산군 일기(패주 되면 실록 아닌 일기로 말함.) 안보고 말하면 다들 공감할 사항이니 그렇다치고(아예 연산군 일기 안봤다는 사람 없다고도 할 수 없지만.) 연산군이 죽기전에 자기 엄마도 아닌 신씨를 보고 싶다 말하는 것부터 연산군의 일생이 거의 신씨였다는 걸 알 수 있음. 더 알아보니 신씨에게 이런 러브도 없음. 신씨와 자녀도 8명에 연년생도 있음. 후궁 다 합쳐도 자녀의 수는 신씨와 비슷. (참고로 왕과 왕비 사이에 합궁 날짜 정해져 있음.) 연산군이 대비전에 가서 난리 치려는거 신씨가 막아서 조용히 떠남. 사관하는 말이 왕은 비록 왕비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지만 성내지도 않았다함. 하루는 신씨가 간언을 하면 신씨 칭찬이 입에서 술술 나오는데다 연산군이 신씨를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음. (그냥 누가 봐도 알아줄 것 같은데...) 신씨가 만삭일 때, 신씨 아버지가 상을 당하자 신씨 건강 챙겨야한다고 곡도 금지함. 연산군이 신씨에게 존호를 준다고 황금에 세기겠다 들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사람들 황금 할당 못 채워 자살했다는 얘기도 봄. 이 정도 봐도 ㄹㅇ 신씨에 대한 애정은 장녹수 정도가 넘보기 힘듦. (또, 엄마 정도로 신씨 여겼으면 챙겨주는 선이지 마지막에 보고 싶은거 당연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 아니겠음? 진정 사랑을 하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죽어서도 함께하고 싶으니까 보고 싶으니까 부르는게 사랑하는 사람인데 그게 엄마도 아니고 장녹수도 아니고 신씨면 말 다했지. 사랑 못해봤음? 왜들 그래?) 팩 말함, 사람들이 폭군이라는 이미지에 요녀가 반드시 커플되어야하는 공식이 성립해야 되니 조강지처 신씨가 폭군 연산군의 찐 럽 관계 있음 개 껄끄러워하는 거 아니겠음? 연산군의 러브가 신씨 같은 사람보다 녹수같이 집안 형편 어려운 여자랑 알콩달콩 마음으로 통해서 궐내 피바람 정도는 불어주고 사건이 풍성해주는 걸 원하니까, 드라마틱하니까, 폭군 러브 라인에 감히 처를 사랑한다는 사실 자체가 몹시 싫은 거잖슴! 그렇지 않고선 저런 기록을 보고도 신씨는 엄마 생각 때문에라는 말이 통하냐고. 요즘 픽션에서조차 진짜 둘 사이에 어떤 명확한 관계 보여준 적 없는데, 오히려 다른 이 좋아하거나 혹은 죽이려고까지 했는데 자기가 오!하고 좋아하게 되서 없던 둘 감정 만들어 내 커플이 되어버린게 수두룩함. 요즘 독자가 보는 로맨스 수준이랑 신씨는 어머니 생각해서 혹은 우정이라서 정도로 여기고 장녹수는 연산군의 찐러브라고 하는 거랑 똑같음. 연산군이 일생 중에, 하다 못해 죽기 전까지 연산군이 다른 말 없었고 다만 신씨가 보고 싶다라는 말을 하였다고 기록도 분명되어 있는데... 이 정도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차지한 사람이 엄마도 아닌 장녹수도 아닌 신씨인거 알텐데 진심 사람들, 자기가 원하는 방향에 속고 속는 것도 진실로 여기며 살고 있는 거 같음.
@@moonlight5740 재밌는 게 장녹수는 그렇게 연산군이랑 붙어다녀도 자식은 옹주1명이 다인데 중전신씨는 숨죽이며 살았던 거 치고는 요절한 아이들까지 합해서 7남2녀를 낳았대요 ㄷㄷㄷㄷㄷㄷㄷㄷ 아버지 성종이 후궁들한테 많은 자식을 본 거랑은 천지차이.... 자녀들 나이를 보니까 거의 연년생으로 출산했더라구요 ㄷㄷㄷㄷㄷ 실제 심정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두 사람 사이가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다는 증거죠 실록에도 연산군이 신씨를 많이 챙겨준 게 나옵니다.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는 폐비신씨가 연산군의 작은 양심을 상징했을 거라고도 해요ㅠㅠㅠ 이분에 대해서 모를 때는 그냥 그랬는데 알고나니 안됐어요ㅠㅠㅠㅠ 남편은 폭군에 아이들도 다 죽고ㅠㅠㅠㅠ 중전 말고 평범한 사대부댁 마님으로 살았으면 평탄하게 살았을 거 같은데....ㅠㅠㅠ
상궁들이 8방에서 왕과 왕비 잠자리도 지시하는데다 합하는 날짜도 정해져 있는데 베프나 엄마를 생각해서 챙겨주는 정도면 절대로 그 만한 수의 임신출산이 불가능. 거기에 조혼임에도 그 정도로 챙기고 러브 할 때는 또 임신출산이 잘 되는 거 보면.. 연산군이 어려서부터 신씨에 대해 애정이 남달랐다는 뜻이 되죠.
연산군이랑 결혼한 것 때문에 신수근, 신수근 누이(연산군 부인 폐비 신씨)랑 딸(중종 부인 폐서인 신씨) 셋 다 너무 불쌍하게 되었네... 아무 죄도 없이 신수근은 중종 반정세력이후 폐비 신씨의 오빠라는 점 때문에 딸이 중종의 조강지처인데도 무참히 살해당하고, 연산군 부인(신수근 누이)은 폐비가 되고, 중종 조강지처(신수근 딸)는 폐서인이 되고.... 사후에 악녀인 문정왕후(윤원형일파)의 악행과 비교된 덕분에 영조시대에 단경왕후로 복위되고 추증되지만... 중종도 워낙 ㅄ 같은 남편이자 왕이라 장인은 살해당하고 조강지처는 폐서인이 되게 하고, 첫째 아들 복성군은 엄마인 경빈 박씨가 세자를 저주했다고 역모죄로 엄마랑 같이 사형당하게 하고(by 문정왕후), 둘째 아들 인종은 착했으나 새엄마인 문정왕후에 의해 살해당하게 하고(중종 살아생전에 죽이려는 시도를 많이 했지만 대표적으로 동궁전에 불질렀는데 당시 왕세자였던 인종이 문정왕후의 뜻을 알고도 유교적인 효심이 지극해서 그냥 불에 타죽으려고 했더니, 중종이 다급히 불러서 나감. 후에 문정왕후가 준 떡을 먹고 사망하였고 누가봐도 독살징후가 확실함. 본인이 독살당할 거라는 것을 알고도 먹었다는 썰이 있었음), 셋째 아들 명종은 왕이 된 후에도 문정왕후가 과도하게 꾸중하고 정사를 좌지우지해서 스트레스로 요절하게 만들고... (중종 3명+@의 자식이 모두 문정왕후에 의해 살해..) 장인 살해당한 건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척신 세력의 대항마였던 조광조를 죽인 것이나 누가봐도 악녀였고 자기 아들을 죽일 것이 뻔했던 세번째 부인인 문정왕후를 사사하지 않은 것이 정말 병딱같았음. 문정왕후를 죽이지 않아서 명종(문정왕후의 아들) 즉위하자마자 자기의 2번째 처가(인종의 생모 장경왕후 집안인 대윤(윤임) 일파))도 몰살되었고 소윤의 척신정치에 의해 나라가 대 황폐화됨. 나라에 도적이 들끌고(황해도의 임꺽정도 이 시절 이야기임. )명종 때엔 왜란이 일어나도 대처도 못해서 다음 왕인 선조때에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하는 계기가 되게 함. + 적어도 자기 조강지처의 고모이자 자기 이복형제(연산군)의 아내는 존중해줬나보네...
폐서인된 자기 조강지처 신씨에게도 지원을 제대로 안해줘 신씨가 직접 옷감염색인가? 하면서 연명했다 들은거같은데요.. ㅠㅠ 문정왕후 시기가 조선역사상 가장 최악의 시기라고 했던것 같았어요.. 말씀하신대로 임꺽정 등과같이 농민들이 살수가없어 산으로 숨어버리는.. 이런 부패한 귀족들에 대항해 지방 사림들이 정계로 나오게된 계기가 되어 붕당정치의 기반이 된다고.. 갠적으로 느끼기에는.. 조선정치변화의 한 획과같은 시기!!
그 시할머니인 인수대비를 탓하지 아니할 수가 없군 그토록 예법에 예도에 능통하신 분이 어찌 며느리에 대한 예법은 아니하셨는지.... 설마.....혼자....아들 둘을 키우신 분이시라 그리 하셨던 것인가..... 조선 전기는 태종과 세종으로 시작하여 성종으로 마무리 됀다 배웠는데... 결국은 태종이 피로 세운 것은 세종에서 자손들의 피로 세운 것이 되었구나 그가 눈을 팔아서 까지 한글을 창제 했음에도 백성들은 위대하다 부르짖을 줄만 알지 그 누구도 위대함을 말해 주지 않는구나 한글창제함의 막바지에 안질을 앓아서 그 눈에 맺히는 고름을 소헌왕후께서 친히 닦아주시고 탕약도 드리고 하셨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우리의 세종대왕님은 이렇게 살아 오셨었고 백성의 대왕이셨지만 그 아드님들은 아니 했다는 역사가 맘이 아플 뿐입니다 태종 이방원의 과한 자식사랑이 불러온 참사라 하겠습니다 ...세자가 있어 과인이 후대를 의심치 않겠으나 수양을 조심하시오....주상......
@@코로나물러가라-g7z 그건 아닌 듯? 집권 초기 잘하는 왕임. 만약 있었어도 신씨 앞에서는 무력하지만... 어쨌든 포악했음 원자로 삼지도 않았을 거임. 임해군이 임금된다 생각해보셈. 끝장. 반정군이 기록할 때 과장도 있을 순 있음. 공신들과 연산군과 어떤 관계가 있기에 오히려 연산군을 더 나쁘게 표현했을 수도 있음.
세자때부터 포악하고 학문을 싫어해 대신들이 왕 자리가 아깝다는 말을 했다는 얘기가 실록에 실려있고, 아버지가 죽자마자 아버지가 사랑하던 동물을 쏴죽이기도 했음. 싸패든 경계성 인격장애든 정상인물 아니었다고 생각함. 비슷하게 개인적 불우함을 가지고 있던 다른 왕들은도 왕 되고서는 자신의 지위에 걸맞게 행동했음. 누굴 때려죽이고 흥청망청이란 말을 만들어내고 궁궐에 대신들 모아놓고 연회치르며 기생들과 적나라한 행위를 하는걸 부끄럽지 않게 여겼고, 김처선 같은 인물은 활로 쏘고 칼로 사지를 절단하기도 하면서 광기를 부리는 등등. 뭘 보고 원래 성군자질인데 엄마일 하나때문에 폭군되었다고 하는지 모르겠음 ㅎ 집권초기는 성종대에 안정되었던 시스템이 그대로 돌아가고 있었으니 평화로울 수 있었던 거고
베프가 아니라 찐러브에요. 찐 러브. 베프한테 저렇게 해줌? 베프한테 연년생 아이들 낳을 정도로 연달아 애 만드는데다 베프라도 망. . 아. ** 진짜. 어떻게 해야 ** 베프로 보이냐? 베프라도 친여동생한테나 친누나한테 대하 듯 행동하지 신씨 칭찬 마르지 않고, 신씨 아비가 상 당해 곡애하지말고 고기 먹이게 하고, 연산군에게 직언하고도 살았고... 애당초 베프랑 그거 해서 연년생 낳을 수 있냐? 좀... 우리나라는 자기 기준에서 벗어난다 생각함 이런 식으로 포장한다니까. 얼탱이가 없다. 진짜. 어떻게 해야 찐사랑임? 찐사랑에 공식이라도 있는건가? 죽을 때 그리워하는게 신씨인데. 이거면 이미 설명 끝난 건데
하아.. 더 말하자면 아무리 13살이어도 친구사이 같이 느꼈으면 친구에서 애 낳기 겁나 힘듦. 왜 힘든 줄 앎? 애시당초 베프같은 인간에게 (친구는 이성 아님. 사람임.) 웨스턴마크 효과처럼 친누나나 친여동생같이 느낄 뿐더러 편했던 친구사이에서 애증관계로 가는 것조차 힘들고, 이성간에 느껴야 할 사랑과 흥분이 되지 않아서 대게 왕들이 정비들에게 자손 보기 쉽지 않는 이유인 건데.. 하물며 가뜩이나 이성적으로 좋아할 마음이 없어 러브에 흥분조차 되지 않는 정비 혹은 이성이 아닌 단지 사람일 뿐이자 친남매같은 베프친구랑 맺어야 하는데 주변에 상궁들이 각 방에서 아주 은밀하고 뜨거워야 할 사적인 일에 일일이 듣고 간섭까지 해서 스트레스 때문에도 그 상황에서 어떻게 러브 끝에 달해서 임신에 성공이 쉽겠냐고요. 실제로 혈연관계가 전혀없어도 조혼하는 애들은 임신률도 굉장히 낮은데다 이혼률도 ㄹㅇ 높음. 근데 이성도 아닌 사람인 베프에 상궁들이 각방에서 안보고 있지만 어떻게 하냐 눈부릎뜨고 보는 것처럼 하는데 임신 되겠음? 후궁보다 자손의 수가 못했음 못했지 더하진 않는데 8명까지 낳았다면 연산군이 신씨에 대해서 베프같은 감정은 전혀 아니란 얘기임. 13살 넘고도 그 정도면.. 말 다한 거임. 무슨 베프같은.. 하아...
중전의 자리가 왕의 사랑으로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보니 솔직히 사랑, 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왕비 신씨는 중전의 자리에 있던 시절, 중전으로서 내명부 수장의 일을 잘 해왔고 남편과 맞다이 까지않는 온화한 성정이었기에 연산군도 그런 아내를 존중한게 아닐까 싶어요. 연산군이 후궁인 장녹수가 그토록 총애를 받았는데 총애를 받는 것과 별개로 신씨는 계속 보위했는걸요. 신씨를 정말 사랑했다면 후기의 어느 왕처럼 계속 아내에게도 정절을 지키고 후궁을 들여도 아내의 명예에 누가 되지않을 여인을 데려왔겠죠. 남의 집 애 엄마를 데려오는게 아니라요.ㅜㅠ 연산군 즉위 초기에는 세종대왕과 비견할 정도로 치세가 좋았던 걸 생각하면 흑화시점에서 모친없이 자란 외로움을 유부녀였던(...) 후궁 치맛폭에서 귀여움을 받으며 즐기면서도 그저 묵묵히 제 편에 서 준 아내에 대한 의리나 감사함, 남편으로서 책임지지 못한 죄스러움과 미안함(귀한 집 딸인데 남편 잘못만나 속상하고 고생하고 이젠 반정으로 죄인까지 되었으니) 등의 감정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네요.
삐뚤어지면 사람을 그렇게 죽이고 강간 하나요 그럼 고아원에서 자란 사람은 다 싸패 되겟네요 정상적인 사람은 삐뚤어져도 그 정도로 사람 죽이고 겁탈 안하구요 사도세자야 워낙 학대가 심해서 정신병 온거니 그렇다 쳐도 연산군은 사랑을 못받고 자란거지 성종이 학대 하지도 않앗고 정ㅈ신병도 없엇음 그리고 당시 조선 시대 평민이나 내시들 인생이 훨신 더 비참 햇죠 그리고 폐비 윤씨는 자기가 후궁 모함하고 독살 하려다 걸리고 왕 한테 죽인다고 협박하고 비상 지니고 잇다 걸려서 죽은거에요 자기가 잘못해서
세종 - 이구 - 어머니 - 폐비신씨 세종 - 세조 - 예종 - 성종 - 연산군. 둘은 7촌임. 그게 뭐가 문제라고... 4촌만 해도 기형적 문제는 뚝 떨어짐. 일반인 정도거나 일반인보다 조금 높은 수치인데 하물며 7촌은 남임. 아예. 민비하고 고종하고가 11촌임. 유전으로 따짐 4촌도 그리 떨어지는데 7촌이면 남이구만 11촌은 아예 남남인데 어떤 사람이 민비하고 결혼해서 애 항문없는 아이 태어났다고 **을 함. 그렇게 근친 어쩌고 하는데 근데 순종은 자기 엄마 닮아 이목구비는 별로지만 머리는 명석함. 민비로 추측되는 붕어빵 사진을 보면 민비 상태가 좋아보이지는 않음. 싸우기 귀찮아서 한 꺼번에 말함. ----------------- ----------------- 단순계산은 사촌끼리 유전 같을 확률이 25%임. 6촌이 3%, 8촌 이상이면 그냥 남. 그런데 사촌간 유전결함이 1.7%, 삼촌간 유전결함은 12.5%. 일반부부끼리 기형아는 3%~4% 확률이고 사촌끼리는 4%~7%. 근친간으로 유명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주걱턱 시초인 카를 5세 부모 후아나와 펠리페 1세는 8촌임. 펠리페 1세의 부모인 막시밀리아 1세와 마리, 후아나의 엄마인 이사벨 1세는 6촌. 막시밀리아 1세는 포르투갈과 독일의 자손, 마리는 포르투갈과 프랑스의 자손, 이사벨 1세는 포르투갈과 카스티야 자손임. 막시밀리아 1세와 카를 5세 이후의 후손을 제외한 나머지는 주걱턱 문제 안 보임. (그렇게 혼혈하더니 이건 또 혈연 묶어서 근친으로만 때려 묶음.) 혈우병이 근친으로 낳았다는 것은 확실하지 않음. 혈우병 시초인 빅토리아가 사촌혼을 한 것이지 그녀를 낳은 그의 아버지가 사촌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를 낳은 아비의 나이가 51세임. 참고로 남자는 8개월마다 돌연변이가 늘어남. 28번?만 여자가 빠르게 돌연변이를 늘리는 것이고 다른 부분에서는 3년마다 늘림. 40세 이상으로 정자은행에서 안 받아주는데는 이유가 있음.
폐비 윤씨는 성종이 내쫒은 거임....;; 오히려 인수대비는 말렸다고 함! 드라마에서는 인수대비가 성종을 못놓고 휘두른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까지는 안했다고 함 애초에 인수대비 신념이 여인은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한다고 했음 성종의 후궁 정씨, 엄씨랑 중전을 모함했다는 것도 다 야사....폐비윤씨 사건을 일으킨 건 성종이고 그 이후에도 폐비윤씨 얘기만 나오면 화를 버러버럭 냈다고 함;;; 아래 자료는 성종 때 실제 있던 기록이니 참고 바람 성종실록 105권, 성종 10년 6월 5일 경인 4번째기사 지난 정유년에 윤씨가 몰래 독약을 품고 사람을 해치고자 하여, 건시와 비상을 주머니에 같이 넣어 두었으니, 이것이 나에게 먹이고자 한 것인지도 알 수 없지 않는가? 혹 무자(자식을 낳지 못하게)하게 하는 일이나, 혹 반신불수가 되게 하는 일, 그리고 무릇 사람을 해하는 방법을 작은 책에 써서 상자 속에 감추어 두었다가, 일이 발각된 후 대비께서 이를 취하여 지금까지도 있다. 엄씨 집과 정씨 집이 서로 통하여 윤씨를 해치려고 모의한 내용의 언문을 거짓으로 만들어서 고의로 권씨의 집에 투입시켰는데, 이는 대개 일이 발각되면 엄씨와 정씨에게 해가 미치게 하고자 한 것이다. 항상 나를 볼 때, 일찍이 낯빛을 온화하게 하지 않았으며, 혹은 나의 발자취를 찾아서 없애버리겠다고 말하였다. 비록 초부의 아내라 하더라도 감히 그 지아비에게 저항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왕비가 임금에게 있어서이겠는가? 위서(가짜 문서)를 만들어서 본가에 통하여 이르기를, ‘주상이 나의 뺨을 때리니, 장차 두 아들을 데리고 집에 나가서 내 여생을 편안하게 살겠다.’고 하였는데, 내가 우연히 그 글을 얻어보고 일러 말하기를, ‘허물을 고치기를 기다려 서로 보도록 하겠다.’라고 하였더니, 윤씨가 허물을 뉘우치고 말하기를, ‘나를 거제나 요동이나 강계에 처하게 하더라도 달게 받겠으며, 남방기에서 발원한 대로 사람의 허물을 무량수불 앞에서 연비(팔을 불로 지지는 행위)하여 이를 맹세하겠습니다.’라고 하므로, 내가 이를 믿었더니, 이제 도리어 이와 같으므로, 전일의 말은 거짓 속이는 말이었다. 상참으로 조회를 받는 날에는 비가 나보다 먼저 일찍 일어나야 마땅할 것인데도, 조회를 받고 안으로 돌아온 뒤에 일어나니, 그것이 부도에 있어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항상 궁중에 있을 때에 대신들의 가사에 대해서 말하기를 좋아하였으나, 내가 어찌 믿고 듣겠는가? 내가 살아 있을 때에야 어찌 변을 만들겠는가마는, 내가 죽으면 반드시 난을 만들어낼 것이니, 경 등은 반드시 오래 살아서 목격할 자가 있을 것이다.
역사는승리한자들에의해 역사는이루어지는법이죠 만약 그날 연산군12년9월 궐에서 반정 이 일어나지못하였거나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 이극악무도한 쓰래기들이 반정에실패하였다면 아마 역사는 새로이조명되었을듯 싶네요^^ 박원종일파들이 폐왕 연산의수도없는악행만을 기록하였으며 연산의선행이라곤 한줄도없는것이 연산군일기의만행이지요... 그렇다고 연산을두둔하고저하는맘은절대없습니다 다만 연산군재위12년간의 기록이 너무훼손된거같고 박원종 등반정일파들에의해 무자비하게 기록이변질된그에 대해 안타까울따름입니다 연산군즉위~연산군 4년초까지는 태평성대였다고합니디다 그것도 조선최고의태평성대였다고하니 적어도 연산4년무오사화전까진 나라가 그만큼 안정적인때도없었다고하니...
중종의 비 폐비신씨 단경왕후와 연산군 비 폐비신씨는 고모 조카 사이고, 연산군 또한 장녹수나 폭군 이미지 때문에 자신의 비 신씨에대한 이야기는 중종처럼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았지만 부인에게 잘 했다거나 죽기전 그리워 했다 는 것 정도는 알려져 있었죠. 이건 그런 내용들을 기록과 함께 좀 자세히 알려준 내용이네요.님은 이 영상을 보고 댓글을 단 건지 제목만 보고 단 건지 모르겠네요. 연산군 얘기 맞아요
중종과 폐비신씨는 너무 많이 아는 얘기구요, 연산군이 폭군이기는 했지만 너무 나쁜이미지만 부각되었던 면이 있죠. 그리고 중종 또한 폐비신씨 단경왕후에 대한것도 많이 미화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중종은 다 아는 얘기고 연산군의 잘 몰랐던 부인에 대한 얘기에요. 잘 읽어보시죠.
어진 아내를 만난 것이 얼마나 큰 복인데.... 참 안타깝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조금만이라도 아내의 말을 듣고 마음을 다잡고 왕으로서 삶을 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 그랬더라면 성군은 아닐지라도 폭군은 면했을텐데요~ 감사합니다~♡
장녹수에게도 중궁을 함부로 넘본다면 가만 두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는 걸로 봐서...진심은 신씨였을 듯.
제 생각이지만ㅎ
개인 생각 아니라 그게 맞음.
그리고 죽기전에 다른 말을 안하고 신씨가 보고 싶다고만 말함.
애초에 장녹수는 피해자임 연산군이 장녹수 총애한 건 맞지만 연산군-장녹수 이렇게만 보는건 편협함. 연산군은 후궁이 무려 20명이었음 장녹수는 그들중에 하나였고 후궁이 아니어도 연산군한테 총애받는 여자는 있었음
@@ddd-kx1eu그래봐야 자녀는 정작 중전 신씨랑 겁나많았죠 장녹수랑은1명만놧는데 신씨하고만 거의7명낳죠
유일하게 폭주하는 연산군을 컨트롤 할 수 있었던 사람임
장녹수 때문에 사랑을 못받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연산군의 트루럽이었죠. 오히려 장녹수는 연산군의 예술혼에 걸맞아서 총애한 느낌
장녹수는 '엄마'에 약한 연산군의 아픔을 자신의 총애를 얻는 데 쓴 거 같음 연산군은 장단을 맞춘거고~ 폐비 신씨는 남편만 아니었어도....아니면 하다 못해 남편이 임금만 아니었어도 잘 살 사람이었으뮤ㅠㅠㅠㅠㅠ
@@USER-han3namkill 그런 것 같지는 않는데? 연산군이 죽을 때 자기 친정 산에다 묻겠다하고 자기 죽을 때 같이 나란히 뭍혔음.
연산군이 잘못 빠지지 않았으면 더 행복했을 거임. 성격도 넘 어질어서 연산군만 후에 나빠지지 않았어도 조선 역사상 임금과 중전이 함께 어진 왕과 비로 태평성대가 지속되고 심지어 왕비를 무척사랑하는 임금으로 가장~ 그랬을 텐데...
세상 다시없을 망나니이였던 연산군도 자기 아내에겐 다시없는 순종파였군요 비뚤어지지만 않았다면 성군으로 남았을텐데..
한국에도 신씨같은 여자가 있어야 되는데 유전자가 도태된 건지 다 사라짐
신씨가 폐비가 된 후에도 노비들이 아무도 그녀곁을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단순히 착하기만한 사람은 아니었단걸로 보임
두분이 같이 계신다니 현세에서 누리지 못한 사랑 그 곳에서 편안하게 펼쳐지시길 바랍니다 엄마에 억울함일랑 다 놓아버리시고 평온 하세요 두분이서 편안히 쉬시옵소서
폐비 신씨는 진짜 남편 잘못만나서 인생 무너진 케이스네
자기 어머니가 왕비자리에서 쫒겨나고 비참하게 죽은걸 보고 자기 아내에게만은 아버지같은 짓을 하기 싫었나보다.
물론 부인도 좋은 사람이었겠지만.
@MI mi 아닌데? 겁나 좋아함. 신씨 앞에서는 나쁜 짓을 못함. 허구언날 신씨 칭찬에 신씨를 자신에게 대하 듯 하라고 함. 장녹수도 못 건드리는게 신씨인데.
아... 여기 장녹수파임? 신씨한테는 꼬리 내리는 사람이 연산군임.
내가 썼는데도 못 알아처먹겠어서 수정.
좋아요를 다른 댓글보다 많은 것이 어처구니 없지만 연산군 일기(패주 되면 실록 아닌 일기로 말함.) 안보고 말하면 다들 공감할 사항이니 그렇다치고(아예 연산군 일기 안봤다는 사람 없다고도 할 수 없지만.)
연산군이 죽기전에 자기 엄마도 아닌 신씨를 보고 싶다 말하는 것부터 연산군의 일생이 거의 신씨였다는 걸 알 수 있음.
더 알아보니 신씨에게 이런 러브도 없음.
신씨와 자녀도 8명에 연년생도 있음.
후궁 다 합쳐도 자녀의 수는 신씨와 비슷.
(참고로 왕과 왕비 사이에 합궁 날짜 정해져 있음.)
연산군이 대비전에 가서 난리 치려는거 신씨가 막아서 조용히 떠남.
사관하는 말이 왕은 비록 왕비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지만 성내지도 않았다함.
하루는 신씨가 간언을 하면 신씨 칭찬이 입에서 술술 나오는데다 연산군이 신씨를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음.
(그냥 누가 봐도 알아줄 것 같은데...)
신씨가 만삭일 때, 신씨 아버지가 상을 당하자 신씨 건강 챙겨야한다고 곡도 금지함.
연산군이 신씨에게 존호를 준다고 황금에 세기겠다 들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사람들 황금 할당 못 채워 자살했다는 얘기도 봄.
이 정도 봐도 ㄹㅇ 신씨에 대한 애정은 장녹수 정도가 넘보기 힘듦.
(또, 엄마 정도로 신씨 여겼으면 챙겨주는 선이지 마지막에 보고 싶은거 당연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 아니겠음? 진정 사랑을 하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죽어서도 함께하고 싶으니까 보고 싶으니까 부르는게 사랑하는 사람인데 그게 엄마도 아니고 장녹수도 아니고 신씨면 말 다했지. 사랑 못해봤음? 왜들 그래?)
팩 말함, 사람들이 폭군이라는 이미지에 요녀가 반드시 커플되어야하는 공식이 성립해야 되니 조강지처 신씨가 폭군 연산군의 찐 럽 관계 있음 개 껄끄러워하는 거 아니겠음?
연산군의 러브가 신씨 같은 사람보다 녹수같이 집안 형편 어려운 여자랑 알콩달콩 마음으로 통해서 궐내 피바람 정도는 불어주고 사건이 풍성해주는 걸 원하니까, 드라마틱하니까, 폭군 러브 라인에 감히 처를 사랑한다는 사실 자체가 몹시 싫은 거잖슴!
그렇지 않고선 저런 기록을 보고도 신씨는 엄마 생각 때문에라는 말이 통하냐고.
요즘 픽션에서조차 진짜 둘 사이에 어떤 명확한 관계 보여준 적 없는데, 오히려 다른 이 좋아하거나 혹은 죽이려고까지 했는데 자기가 오!하고 좋아하게 되서 없던 둘 감정 만들어 내 커플이 되어버린게 수두룩함. 요즘 독자가 보는 로맨스 수준이랑 신씨는 어머니 생각해서 혹은 우정이라서 정도로 여기고 장녹수는 연산군의 찐러브라고 하는 거랑 똑같음.
연산군이 일생 중에, 하다 못해 죽기 전까지 연산군이 다른 말 없었고 다만 신씨가 보고 싶다라는 말을 하였다고 기록도 분명되어 있는데... 이 정도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차지한 사람이 엄마도 아닌 장녹수도 아닌 신씨인거 알텐데 진심 사람들, 자기가 원하는 방향에 속고 속는 것도 진실로 여기며 살고 있는 거 같음.
성숙하네 와이프한테잘해라
@@용가리-x3l신씨에게잘해라
훌륭한 남편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신씨에게는 진심을 준 남자였네요.
남자는 진심을 여러명에게 줄수있는지
@@shj1083 연산군 보면 장녹수 비롯 다른 후궁들에겐 진심 아니었던 것 같아요
장녹수가 악명 때문에 유명하지,장녹수 만큼이나 총애한 후궁은 여럿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moonlight5740 재밌는 게 장녹수는 그렇게 연산군이랑 붙어다녀도 자식은 옹주1명이 다인데 중전신씨는 숨죽이며 살았던 거 치고는 요절한 아이들까지 합해서 7남2녀를 낳았대요 ㄷㄷㄷㄷㄷㄷㄷㄷ 아버지 성종이 후궁들한테 많은 자식을 본 거랑은 천지차이.... 자녀들 나이를 보니까 거의 연년생으로 출산했더라구요 ㄷㄷㄷㄷㄷ 실제 심정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두 사람 사이가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다는 증거죠 실록에도 연산군이 신씨를 많이 챙겨준 게 나옵니다.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는 폐비신씨가 연산군의 작은 양심을 상징했을 거라고도 해요ㅠㅠㅠ 이분에 대해서 모를 때는 그냥 그랬는데 알고나니 안됐어요ㅠㅠㅠㅠ 남편은 폭군에 아이들도 다 죽고ㅠㅠㅠㅠ 중전 말고 평범한 사대부댁 마님으로 살았으면 평탄하게 살았을 거 같은데....ㅠㅠㅠ
@@USER-han3namkill 마지막 말 정말 공감해요
폐비의 아들이 왜 세자에 올려놓은 건지 월산 부인이랑 사이도 좋았다던데....
월산 부인의 양아들로 신씨와 함께 살았다면
중종 부부도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ㅠㅜ
@@shj1083 장녹수에게도 신씨는 조강지처니까 중궁전은 넘보지 말라고 경고했다는데 사실인지는?
후궁들 다 합쳐서 낳은 아이들이랑 중전 신씨가 낳은 아이들의 숫자가 비슷했다는....
상궁들이 8방에서 왕과 왕비 잠자리도 지시하는데다 합하는 날짜도 정해져 있는데 베프나 엄마를 생각해서 챙겨주는 정도면 절대로 그 만한 수의 임신출산이 불가능.
거기에 조혼임에도 그 정도로 챙기고 러브 할 때는 또 임신출산이 잘 되는 거 보면.. 연산군이 어려서부터 신씨에 대해 애정이 남달랐다는 뜻이 되죠.
연산군은 폭군이지만 어릴때의 ?진정한 엄마의 사랑을 못받아~왕의자리에 올라 폭군이 된건 이해가됨 원래는 머리가 똑똑한 왕~~왕비한테 대하는태도를 봐도 알수있다 두분의 사랑이 얼만큼 두터운 사랑이었는지..넘 안타까운 두부부애가 ~감동주는 스토리네요~~
폭군의 이면에 가려졌던 부분이지만 연산군의 또다른 면을 볼수있죠😄 시청해 주시고 소중한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스토리 디렉터 진행자님 ~ 조선시대 * 이야기
연산군 😂 알고 보면 어렸을적
다소 불우 하게 성장한 모습이
슬프게 느껴 지네요 😅
바른말하고도 유일하게 살아남은 분임
폐비윤씨는 시어머니 인수대비와
권력투쟁서 패배 죽었다고 보는게 맞다
투기실덕등 이유는 있으나
늙어서도 기득권을 놓치 않으려던
인수대비의 노욕으로 연산군의 비극은
예견됐던것
시청해 주시고 소중한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행복한 하루되세요😍🥰♥️♥️
연산군이랑 결혼한 것 때문에 신수근, 신수근 누이(연산군 부인 폐비 신씨)랑 딸(중종 부인 폐서인 신씨) 셋 다 너무 불쌍하게 되었네...
아무 죄도 없이 신수근은 중종 반정세력이후 폐비 신씨의 오빠라는 점 때문에 딸이 중종의 조강지처인데도 무참히 살해당하고,
연산군 부인(신수근 누이)은 폐비가 되고, 중종 조강지처(신수근 딸)는 폐서인이 되고.... 사후에 악녀인 문정왕후(윤원형일파)의 악행과 비교된 덕분에 영조시대에 단경왕후로 복위되고 추증되지만...
중종도 워낙 ㅄ 같은 남편이자 왕이라 장인은 살해당하고 조강지처는 폐서인이 되게 하고,
첫째 아들 복성군은 엄마인 경빈 박씨가 세자를 저주했다고 역모죄로 엄마랑 같이 사형당하게 하고(by 문정왕후),
둘째 아들 인종은 착했으나 새엄마인 문정왕후에 의해 살해당하게 하고(중종 살아생전에 죽이려는 시도를 많이 했지만 대표적으로 동궁전에 불질렀는데 당시 왕세자였던 인종이 문정왕후의 뜻을 알고도 유교적인 효심이 지극해서 그냥 불에 타죽으려고 했더니, 중종이 다급히 불러서 나감. 후에 문정왕후가 준 떡을 먹고 사망하였고 누가봐도 독살징후가 확실함. 본인이 독살당할 거라는 것을 알고도 먹었다는 썰이 있었음),
셋째 아들 명종은 왕이 된 후에도 문정왕후가 과도하게 꾸중하고 정사를 좌지우지해서 스트레스로 요절하게 만들고... (중종 3명+@의 자식이 모두 문정왕후에 의해 살해..)
장인 살해당한 건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척신 세력의 대항마였던 조광조를 죽인 것이나 누가봐도 악녀였고 자기 아들을 죽일 것이 뻔했던 세번째 부인인 문정왕후를 사사하지 않은 것이 정말 병딱같았음. 문정왕후를 죽이지 않아서 명종(문정왕후의 아들) 즉위하자마자 자기의 2번째 처가(인종의 생모 장경왕후 집안인 대윤(윤임) 일파))도 몰살되었고 소윤의 척신정치에 의해 나라가 대 황폐화됨. 나라에 도적이 들끌고(황해도의 임꺽정도 이 시절 이야기임. )명종 때엔 왜란이 일어나도 대처도 못해서 다음 왕인 선조때에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하는 계기가 되게 함.
+ 적어도 자기 조강지처의 고모이자 자기 이복형제(연산군)의 아내는 존중해줬나보네...
폐서인된 자기 조강지처 신씨에게도 지원을 제대로 안해줘 신씨가 직접 옷감염색인가? 하면서 연명했다 들은거같은데요.. ㅠㅠ
문정왕후 시기가 조선역사상 가장 최악의 시기라고 했던것 같았어요.. 말씀하신대로 임꺽정 등과같이 농민들이 살수가없어 산으로 숨어버리는..
이런 부패한 귀족들에 대항해 지방 사림들이 정계로 나오게된 계기가 되어 붕당정치의 기반이 된다고..
갠적으로 느끼기에는.. 조선정치변화의 한 획과같은 시기!!
장녹수 품에 놀아나고 그 수많은 여자들 겁탈한 주제에 그래도 죽어서는 부인옆에 묻히고 싶었다니 내 남편이었음 절대 하지 마라고 했을듯 조두순이 부인이 있고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가 충격받은것처럼
충격이네..
몰랐던 얘기네요...
연산군에게 가려져 많이 알려지지 않았었죠.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시할머니인 인수대비를 탓하지 아니할 수가 없군
그토록 예법에 예도에 능통하신 분이
어찌 며느리에 대한 예법은 아니하셨는지....
설마.....혼자....아들 둘을 키우신 분이시라
그리 하셨던 것인가.....
조선 전기는 태종과 세종으로 시작하여
성종으로 마무리 됀다 배웠는데...
결국은 태종이 피로 세운 것은 세종에서
자손들의 피로 세운 것이 되었구나
그가 눈을 팔아서 까지 한글을 창제 했음에도
백성들은 위대하다 부르짖을 줄만 알지
그 누구도 위대함을 말해 주지 않는구나
한글창제함의 막바지에 안질을 앓아서
그 눈에 맺히는 고름을 소헌왕후께서 친히
닦아주시고 탕약도 드리고 하셨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우리의 세종대왕님은 이렇게 살아 오셨었고
백성의 대왕이셨지만 그 아드님들은 아니
했다는 역사가 맘이 아플 뿐입니다
태종 이방원의 과한 자식사랑이 불러온
참사라 하겠습니다
...세자가 있어 과인이 후대를 의심치 않겠으나
수양을 조심하시오....주상......
시청해 주시고 소중한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폭군인거 다 차치하고 둘은 진심으로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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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12년의 있어 10년은 정치나 왕권강화 잘했구요..단지 2년의 악행으로..지금껏 폭군이라 불리는거임..사실 자기 친 엄마가 그렇게 되었는데..눈 안돌아갈 사람있나요?
어렸을때부터 성격이 괴팍하고 음흉했다고 하는데요?
눈 돌아가도 근친상간에 그딴 짓은 못하죠
사람 타고난 인성이 싸패에 가까웠음
@@코로나물러가라-g7z 그럼 진성대군으로 세자가 바뀌었겠죠 세자 시절은 딱히 문제가 없었다고 평가합니다
@@코로나물러가라-g7z 그건 아닌 듯? 집권 초기 잘하는 왕임. 만약 있었어도 신씨 앞에서는 무력하지만... 어쨌든 포악했음 원자로 삼지도 않았을 거임.
임해군이 임금된다 생각해보셈. 끝장.
반정군이 기록할 때 과장도 있을 순 있음. 공신들과 연산군과 어떤 관계가 있기에 오히려 연산군을 더 나쁘게 표현했을 수도 있음.
세자때부터 포악하고 학문을 싫어해 대신들이 왕 자리가 아깝다는 말을 했다는 얘기가 실록에 실려있고, 아버지가 죽자마자 아버지가 사랑하던 동물을 쏴죽이기도 했음. 싸패든 경계성 인격장애든 정상인물 아니었다고 생각함. 비슷하게 개인적 불우함을 가지고 있던 다른 왕들은도 왕 되고서는 자신의 지위에 걸맞게 행동했음. 누굴 때려죽이고 흥청망청이란 말을 만들어내고 궁궐에 대신들 모아놓고 연회치르며 기생들과 적나라한 행위를 하는걸 부끄럽지 않게 여겼고, 김처선 같은 인물은 활로 쏘고 칼로 사지를 절단하기도 하면서 광기를 부리는 등등. 뭘 보고 원래 성군자질인데 엄마일 하나때문에 폭군되었다고 하는지 모르겠음 ㅎ 집권초기는 성종대에 안정되었던 시스템이 그대로 돌아가고 있었으니 평화로울 수 있었던 거고
가정환경이 ㅈㄹ맞으면 사이코패스가 나온다.
연산군이 13세 되는해 비가되었으니...지금으로치면 어린시절을 함께한 다정한 베프같은 존재 아니었을까요.
13살이면 중학교 1학년 나이네요...
베프가 아니라 찐러브에요. 찐 러브. 베프한테 저렇게 해줌? 베프한테 연년생 아이들 낳을 정도로 연달아 애 만드는데다 베프라도 망. .
아. ** 진짜.
어떻게 해야 ** 베프로 보이냐?
베프라도 친여동생한테나 친누나한테 대하 듯 행동하지 신씨 칭찬 마르지 않고, 신씨 아비가 상 당해 곡애하지말고 고기 먹이게 하고, 연산군에게 직언하고도 살았고...
애당초 베프랑 그거 해서 연년생 낳을 수 있냐?
좀... 우리나라는 자기 기준에서 벗어난다 생각함 이런 식으로 포장한다니까. 얼탱이가 없다. 진짜.
어떻게 해야 찐사랑임?
찐사랑에 공식이라도 있는건가?
죽을 때 그리워하는게 신씨인데. 이거면 이미 설명 끝난 건데
하아.. 더 말하자면 아무리 13살이어도 친구사이 같이 느꼈으면 친구에서 애 낳기 겁나 힘듦. 왜 힘든 줄 앎? 애시당초 베프같은 인간에게 (친구는 이성 아님. 사람임.) 웨스턴마크 효과처럼 친누나나 친여동생같이 느낄 뿐더러 편했던 친구사이에서 애증관계로 가는 것조차 힘들고, 이성간에 느껴야 할 사랑과 흥분이 되지 않아서 대게 왕들이 정비들에게 자손 보기 쉽지 않는 이유인 건데.. 하물며 가뜩이나 이성적으로 좋아할 마음이 없어 러브에 흥분조차 되지 않는 정비 혹은 이성이 아닌 단지 사람일 뿐이자 친남매같은 베프친구랑 맺어야 하는데 주변에 상궁들이 각 방에서 아주 은밀하고 뜨거워야 할 사적인 일에 일일이 듣고 간섭까지 해서 스트레스 때문에도 그 상황에서 어떻게 러브 끝에 달해서 임신에 성공이 쉽겠냐고요.
실제로 혈연관계가 전혀없어도 조혼하는 애들은 임신률도 굉장히 낮은데다 이혼률도 ㄹㅇ 높음. 근데 이성도 아닌 사람인 베프에 상궁들이 각방에서 안보고 있지만 어떻게 하냐 눈부릎뜨고 보는 것처럼 하는데 임신 되겠음?
후궁보다 자손의 수가 못했음 못했지 더하진 않는데 8명까지 낳았다면 연산군이 신씨에 대해서 베프같은 감정은 전혀 아니란 얘기임.
13살 넘고도 그 정도면.. 말 다한 거임.
무슨 베프같은.. 하아...
핳머니 인수대미가 너무크나큰 죄를 저질렀다., 애 엄마를 왜죽이냐? 그것도 나중에 왕이 될 아이의 엄마를 세상에 비밀은 없다.
연산군을 만든이가 청상과부
인수대비 한씨다 어미없는 연산군 성장기에 모정을 못느끼고 얼마나 눈치밥먹고 엄하게
자랐을까 여기서 성격형성이
잘못되어 버린듯... 그래서 13살때
중전은 친구같고 어머니 같은 여자로 모성애적인
사랑이 애틋했을것 같다
권력화신 인수대비가
더큰 역사 죄인이지
장희빈 사약받을때 연산군도 함께 사약받아야했다
중전의 자리가 왕의 사랑으로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보니 솔직히 사랑, 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왕비 신씨는 중전의 자리에 있던 시절, 중전으로서 내명부 수장의 일을 잘 해왔고 남편과 맞다이 까지않는 온화한 성정이었기에 연산군도 그런 아내를 존중한게 아닐까 싶어요.
연산군이 후궁인 장녹수가 그토록 총애를 받았는데 총애를 받는 것과 별개로 신씨는 계속 보위했는걸요.
신씨를 정말 사랑했다면 후기의 어느 왕처럼 계속 아내에게도 정절을 지키고 후궁을 들여도 아내의 명예에 누가 되지않을 여인을 데려왔겠죠.
남의 집 애 엄마를 데려오는게 아니라요.ㅜㅠ
연산군 즉위 초기에는 세종대왕과 비견할 정도로 치세가 좋았던 걸 생각하면 흑화시점에서 모친없이 자란 외로움을 유부녀였던(...) 후궁 치맛폭에서 귀여움을 받으며 즐기면서도 그저 묵묵히 제 편에 서 준 아내에 대한 의리나 감사함, 남편으로서 책임지지 못한 죄스러움과 미안함(귀한 집 딸인데 남편 잘못만나 속상하고 고생하고 이젠 반정으로 죄인까지 되었으니) 등의 감정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네요.
할머니 인수대비가 벌레대하듯하니 삐뚤어 진거조 연산군탓만할수는 없어요 색안경으로 눈치밥을 얼마나 줬겠어요 천한피가 흘러서 엇쪄구...영조도 사도사자를 뒤주에 갇어 죽였조 아버지가 ... 그놈의 권력이란
천하기는 인수대비의 그 생각이 천하겠죠
한확은 누이를 팔아서 출세한 속물이고
권력욕이 강하죠 세종이 어쩔수없이 한확의
오만을 눈감아주었죠 부전여전이죠
덕없는 할망구 인수속물할망구
인수대비 원인제공자 영조도 사도세자 정신병들게한목소리를
연산군을 인수대비가 그렇게 만든거에 한 몫햇죠
삐뚤어지면 사람을 그렇게 죽이고 강간 하나요 그럼 고아원에서 자란 사람은 다 싸패 되겟네요 정상적인 사람은 삐뚤어져도 그 정도로 사람 죽이고 겁탈 안하구요 사도세자야 워낙 학대가 심해서 정신병 온거니 그렇다 쳐도 연산군은 사랑을 못받고 자란거지
성종이 학대 하지도 않앗고 정ㅈ신병도 없엇음
그리고 당시 조선 시대 평민이나 내시들 인생이 훨신 더 비참 햇죠
그리고 폐비 윤씨는 자기가 후궁 모함하고 독살 하려다 걸리고 왕 한테 죽인다고 협박하고 비상 지니고 잇다 걸려서 죽은거에요 자기가 잘못해서
야사에전해지는건연산이폭군으로나오죠 역사는 승리한자에의해 모든역사적기록이 전해지기마련이죠 당시 반정세력인 박원종일파에의해 너무도처참하게 가려진 연산군의재위기록은 모든것이 진실이아닐테이지요
혹자는말하길 연산때에 백성들이제일 태평세대였다고하더이다 효성이지극하고 시를좋아했던 젊은임금 그러나 그를시기하는많은세력들;;; 연산군은조선조27대임금들중인물이제일출중했다고전해지고있답니다 ;.; 승리한자들에의한 역사의날조 이시대에 숙명적과제일듯
정말 아까운 왕비였네..ㅠ
👌👌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storydirector 역사를 알수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산군~ 성군으로 치적을 남겼을수도 있었는데~~~
안타깝고 불쌍하다~ 그 마음도 이해는 가고도 남지만 복수혈전을 조금더 지혜롭게 했었더라면~하는 마음이 든다~
신씨의 아들들인 3살, 5살짜리 철부지들도 모두 사약을 먹여 죽였죠, 세상에 그 어린 것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ㅜㅜ
오마이갓ㅜㅠ울아들 세살인데ㅜ그어린아이를
중종반정이후 연산군의 아들 3명은 모두 사사되었습니다. 그중 폐비 신씨의 아들 세자 이황은 10세, 창녕대군 5세, 숙의 이씨 아들 양평군이 9세였습니다^^!
애들까지 끔살하게끔 조정한 반정 공신들이 진짜 나쁜놈들이죠ㅠ
헐.....조선시대 법으로 따지면 사형시킬 나이도 아닌데ㅠㅠㅠ 대체 반정공신들은 뭐가 두려웠던 걸까요?😱😱😱
@@USER-han3namkill 반정의 공신들 이잖아요ㅋㅋ 또다른 반정이 없을거라 장담할 수 없으니 죽인거죠
어리석은 인간, 자기의 분노로 인해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을 지옥에 빠뜨렸네
그건 3자 생각. 본인은 어땠을지 모름. 분명 세자까지 죽고 원통했겠지만 그래도 자기 친정 땅에 안치 시키고 자신도 나란히 묻은거 보면..
연산군 초기 노비도 살이찌는 조선 최고의 태평성대였다.
그랬구나....그래도 연산군이. 정신은 있었구나.
장녹수의 농간에...
연산군과 연산군부인신씨는 고조할아버지가 같음 세종대왕...연산군은 세조의 손자 신씨는 세조의 친동생 임영대군의 외손녀...
고조가아니라 증조아님
@@shj1083 연산군 계보로 올라가면 고조할아버지고 신비 계보로 올라가면 외증조 할아버지.... 신비의 외할아버지가 임영대군 연산군의 증조할아버지가 세조.... 세조와 임영대군은 소헌왕후 소생(즉, 세종의 적자들/동복형제) 촌수로 따지면 연산군이 신비의 칠촌조카임 ㄷㄷㄷㄷㄷ
혼인전엔 거의 뭐 가족이였죠 연산군은 세종의 고손자(세조 계), 신씨는 증손녀(임영대군계)로..이런경우는 조선 후기에도 종종 있더라고요ㅋㅋ사도세자-혜경궁 홍씨도 선조 후손이죠 사도세자는 선조아들 정원군(의 아들 인조)계이고 혜경궁 홍씨는 정원군의 이복여동생 정명공주 후손이니
세종 - 이구 - 어머니 - 폐비신씨
세종 - 세조 - 예종 - 성종 - 연산군.
둘은 7촌임. 그게 뭐가 문제라고...
4촌만 해도 기형적 문제는 뚝 떨어짐. 일반인 정도거나 일반인보다 조금 높은 수치인데 하물며 7촌은 남임. 아예.
민비하고 고종하고가 11촌임.
유전으로 따짐 4촌도 그리 떨어지는데 7촌이면 남이구만 11촌은 아예 남남인데 어떤 사람이 민비하고 결혼해서 애 항문없는 아이 태어났다고 **을 함. 그렇게 근친 어쩌고 하는데 근데 순종은 자기 엄마 닮아 이목구비는 별로지만 머리는 명석함. 민비로 추측되는 붕어빵 사진을 보면 민비 상태가 좋아보이지는 않음.
싸우기 귀찮아서 한 꺼번에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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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계산은 사촌끼리 유전 같을 확률이 25%임. 6촌이 3%, 8촌 이상이면 그냥 남.
그런데 사촌간 유전결함이 1.7%, 삼촌간 유전결함은 12.5%. 일반부부끼리 기형아는 3%~4% 확률이고 사촌끼리는 4%~7%.
근친간으로 유명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주걱턱 시초인 카를 5세 부모 후아나와 펠리페 1세는 8촌임.
펠리페 1세의 부모인 막시밀리아 1세와 마리, 후아나의 엄마인 이사벨 1세는 6촌.
막시밀리아 1세는 포르투갈과 독일의 자손, 마리는 포르투갈과 프랑스의 자손, 이사벨 1세는 포르투갈과 카스티야 자손임.
막시밀리아 1세와 카를 5세 이후의 후손을 제외한 나머지는 주걱턱 문제 안 보임.
(그렇게 혼혈하더니 이건 또 혈연 묶어서 근친으로만 때려 묶음.)
혈우병이 근친으로 낳았다는 것은 확실하지 않음. 혈우병 시초인 빅토리아가 사촌혼을 한 것이지 그녀를 낳은 그의 아버지가 사촌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를 낳은 아비의 나이가 51세임.
참고로 남자는 8개월마다 돌연변이가 늘어남. 28번?만 여자가 빠르게 돌연변이를 늘리는 것이고 다른 부분에서는 3년마다 늘림.
40세 이상으로 정자은행에서 안 받아주는데는 이유가 있음.
고금을 막론하고
조강지처가 최고👍
제가 거창신씨 인데 왕비가 둘이나나온집안이라 자부심이 장난 아닙니다
어릴때 큰댁에 가면 명절때 우리집안이 어떤집안인데 당숙들이 맨날그러고
저희 엄마 막결혼 하자마자 거창 열녀문 보여준다 그러믄서 ㅋㅋ 종가집도아닌데 대표로
교보생명 회장님 이 거창신씨입니다
아직도 이런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놀랍군요!!
자부심 가지는 건 좋음. 근데 열녀문은 폐단이 심해서 그걸 보는 걸 가문의 영광으로 느끼지 않으셨으면 함.
내외의 금슬이 보기드문 경우였는데 ... ㅜ
👌👌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수대비의 죄가 제일큰듯
인수대비가 원흉
인수대비가 연산군을 폐세자 삼지 않고 폐비윤씨는 미워했어도 연산군은 손자로 왕위에 옹립했다
폐비 윤씨는 성종이 내쫒은 거임....;; 오히려 인수대비는 말렸다고 함! 드라마에서는 인수대비가 성종을 못놓고 휘두른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까지는 안했다고 함 애초에 인수대비 신념이 여인은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한다고 했음 성종의 후궁 정씨, 엄씨랑 중전을 모함했다는 것도 다 야사....폐비윤씨 사건을 일으킨 건 성종이고 그 이후에도 폐비윤씨 얘기만 나오면 화를 버러버럭 냈다고 함;;; 아래 자료는 성종 때 실제 있던 기록이니 참고 바람
성종실록 105권, 성종 10년 6월 5일 경인 4번째기사
지난 정유년에 윤씨가 몰래 독약을 품고 사람을 해치고자 하여, 건시와 비상을 주머니에 같이 넣어 두었으니, 이것이 나에게 먹이고자 한 것인지도 알 수 없지 않는가?
혹 무자(자식을 낳지 못하게)하게 하는 일이나, 혹 반신불수가 되게 하는 일, 그리고 무릇 사람을 해하는 방법을 작은 책에 써서 상자 속에 감추어 두었다가, 일이 발각된 후 대비께서 이를 취하여 지금까지도 있다.
엄씨 집과 정씨 집이 서로 통하여 윤씨를 해치려고 모의한 내용의 언문을 거짓으로 만들어서 고의로 권씨의 집에 투입시켰는데, 이는 대개 일이 발각되면 엄씨와 정씨에게 해가 미치게 하고자 한 것이다.
항상 나를 볼 때, 일찍이 낯빛을 온화하게 하지 않았으며, 혹은 나의 발자취를 찾아서 없애버리겠다고 말하였다. 비록 초부의 아내라 하더라도 감히 그 지아비에게 저항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왕비가 임금에게 있어서이겠는가?
위서(가짜 문서)를 만들어서 본가에 통하여 이르기를, ‘주상이 나의 뺨을 때리니, 장차 두 아들을 데리고 집에 나가서 내 여생을 편안하게 살겠다.’고 하였는데, 내가 우연히 그 글을 얻어보고 일러 말하기를, ‘허물을 고치기를 기다려 서로 보도록 하겠다.’라고 하였더니, 윤씨가 허물을 뉘우치고 말하기를, ‘나를 거제나 요동이나 강계에 처하게 하더라도 달게 받겠으며, 남방기에서 발원한 대로 사람의 허물을 무량수불 앞에서 연비(팔을 불로 지지는 행위)하여 이를 맹세하겠습니다.’라고 하므로, 내가 이를 믿었더니, 이제 도리어 이와 같으므로, 전일의 말은 거짓 속이는 말이었다.
상참으로 조회를 받는 날에는 비가 나보다 먼저 일찍 일어나야 마땅할 것인데도, 조회를 받고 안으로 돌아온 뒤에 일어나니, 그것이 부도에 있어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항상 궁중에 있을 때에 대신들의 가사에 대해서 말하기를 좋아하였으나, 내가 어찌 믿고 듣겠는가?
내가 살아 있을 때에야 어찌 변을 만들겠는가마는, 내가 죽으면 반드시 난을 만들어낼 것이니, 경 등은 반드시 오래 살아서 목격할 자가 있을 것이다.
연산군이 그랬죠 자신을 왜 싫어하냐고 그러니 인수대비가 너를 보면 페비윤씨가 생각나서 싫다고도 했죠
총명했던 왕자가 어릴때의 학대로인해 망가졌던...
영화에선 폭군모습만 보여줘서 몰랐는데 중전과 사이였구나
연산군도 어찌보면 불쌍한 왕이다.
희생양이기도 하지만 엄마의 성품을 닮은건 아닐까요
@@혜리-b2t 2년간만 보면 온갖 사악한 말들, 그런 수식어와 넣을 만한 온갖 이유 대겠지만 사실 조선시대 태평성대는 연산군 초기가 태평성대였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연산군이 변했는가? 그게 더 궁금한데 연산군이 남긴 말도 그렇고... 뭔가 더 있지 않을까 싶어요.
@@혜리-b2t 후대에서 경계성 인격장애까지 논하는 폐비신씨 닮았던듯. 연산군 집권초기야 성종대에 안정화된 시스템이 그대로 돌아가니 잠시 평화로웠던거고
좋은성품에‥좋은왕비로남을수있었는데‥남편잘못만나‥끝이안좋은아쉬움이있네요‥잘봤어요‥
연산군의정비였던신비는 거창부원군신승선의큰따님으로 알려져있죠 바로밑에 동생이 진성대군에게시집을갔죠
@@코스모스-i2u 조카가 아니었나요?
한 형제에게 한 자매를 혼인 시키진 않았을텐데.
아무리 왕족의 결혼에 겹사돈을 막지 않았더라도.
조선왕조 에서 왕비들중 최고의 인품을 갖추었던 아름다운 여인 준경받을 참으로 ㆍㆍ ㆍ
승자들의 기록이니 마냥 폭군만 강조했겠지
연산군은 정말 더러울까?
폐비윤씨 엄마사건 수사하다가 권력층에게 밀려나갔겠지.ㅡ은정
저희 선조라 새롭네요 ㅋㅋㅋㅋㅋ
폐비신씨 우리 조상님인데ㅠ.ㅠ
연산군 묘
광해군 묘
광해군 엄마묘
넘 심하게 빈비해서
맘이 아프다
못된 문정왕후 능은
서울 한복판 태~~에
명종왕이 자기 엄마다고
허허 ~~~~
역사는승리한자들에의해 역사는이루어지는법이죠 만약 그날
연산군12년9월 궐에서 반정 이 일어나지못하였거나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 이극악무도한 쓰래기들이 반정에실패하였다면
아마 역사는 새로이조명되었을듯 싶네요^^ 박원종일파들이 폐왕 연산의수도없는악행만을 기록하였으며 연산의선행이라곤 한줄도없는것이 연산군일기의만행이지요... 그렇다고 연산을두둔하고저하는맘은절대없습니다 다만 연산군재위12년간의 기록이 너무훼손된거같고 박원종 등반정일파들에의해 무자비하게 기록이변질된그에 대해 안타까울따름입니다
연산군즉위~연산군 4년초까지는 태평성대였다고합니디다 그것도 조선최고의태평성대였다고하니 적어도 연산4년무오사화전까진 나라가 그만큼 안정적인때도없었다고하니...
연산군이저리된건 할머니 인수대비 질투때문 인수대비를 패서인만들고신씨를복위시켜야한다
연산군이 성군으로 남았다면
이나라의 역사는 바뀌었다 조오케
반정으로 된 임금은 똑바로한 인간이 없네
@Amicus 맞지요
지금정부랑 왜캐 닮은꼴 ㅋㅋ 그래서 지들세상 만들라꼬 발광이네
서민들 다 죽인다 공산당은 ㅋㅋ
저도 연산군을 폭군으로 만든것은 인수대비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황금알-c9t 지금 정부가 공산당이랑 무슨 관계?
남북 관계가 꽉 막혀서 교류도 없는데 공산당 드립 지겹구먼,ㅠㅠ
@B A 태극기 부대 어르신!
그때 당시의 연산군을 과연 그대로 표현했을까~???
'정헌왕후'가 아니라 '정현왕후'입니다
말씀해주신것처럼 자순대비는 정현왕후가 맞습니다. 검토를 하는데도 가끔 실수를 하게되네요. 좀 더 신경써서 작업할께요. 감사합니다😅😭
차분히 잘봤습니다
ㅉㅉㅉ
진정한 사랑과 행복할 기회를
과거의 유령때문에
다말아먹고
지팔지꼬했네
제목만 보고 들어왔는데 폐비 신씨를 평생그리워하신분은 연산군이 아니라 이복동생인 중종 이네요 중종반정후 중전신씨가 폐비되서
중종의 비 폐비신씨 단경왕후와 연산군 비 폐비신씨는 고모 조카 사이고, 연산군 또한 장녹수나 폭군 이미지 때문에 자신의 비 신씨에대한 이야기는 중종처럼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았지만 부인에게 잘 했다거나 죽기전 그리워 했다 는 것 정도는 알려져 있었죠. 이건 그런 내용들을 기록과 함께 좀 자세히 알려준 내용이네요.님은 이 영상을 보고 댓글을 단 건지 제목만 보고 단 건지 모르겠네요. 연산군 얘기 맞아요
중종과 폐비신씨는 너무 많이 아는 얘기구요, 연산군이 폭군이기는 했지만 너무 나쁜이미지만 부각되었던 면이 있죠. 그리고 중종 또한 폐비신씨 단경왕후에 대한것도 많이 미화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중종은 다 아는 얘기고 연산군의 잘 몰랐던 부인에 대한 얘기에요. 잘 읽어보시죠.
신승선은 할아버지 신수근이 아버지
그건 중종의 비 단경왕후 신씨이고, 여긴 연산군의 비 신씨니까 신승선이 아버지, 신수근이 오빠죠. 단경왕후는 폐비신씨 조카가 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