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률철학티비 제124강 간신인가, 혁명가인가 정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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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14 ноя 2024
- 강성률 철학 티비 제124강 ‘간신인가, 혁명가인가?-정도전’
어느 날. 함흥에 있는 동북면도지휘사 이성계를 찾아온 인물이 하나 있었으니, 그는 장차 조선 왕조를 함께 개창해나갈 정도전이었습니다. 일찍이 동문수학한 정몽주와 함께 ‘썩어가는 고려 왕조를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의기투합했던 삼봉 정도전은 그날 밤 이성계와 밤새워 술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이성계의 최측근이 되어 ‘역성혁명’까지 모의(?)하는 단계로 나아갔는데요.
이성계, 정몽주와 더불어 우왕과 창왕을 차례차례 폐위한 정도전은 절친한 친구이자 동지인 정몽주와도 등을 돌리게 되고, 스승인 이색마저 배신하고 맙니다.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은 이성계의 비호 아래 정도전은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하는데요. 마침내 ‘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가 제거되자 정도전은 조준, 남은 등과 더불어 이성계를 새 왕으로 추대함으로써 조선 왕조를 개창하기에 이릅니다.
조선 건국 이후에도 그의 활약은 계속 이어지는데요. 전반적인 제도의 대부분을 직접 정비했을 뿐 아니라 한양(오늘날 서울) 천도를 주도하고, 그 이후에는 한양의 4대문과 궁궐의 이름까지 직접 짓습니다. 또한 청계천 공사를 진행하여 세종 당시 약 20만 명의 인구를 가진 대도시로 성장하게 만드는데요. 그러나 세자 방석을 둘러싼 갈등 끝에 대척점에 섰던 이방원에 의해 살해되고 맙니다.
정도전의 생각한 이상 정치는 “재상에게 실권을 주어 위로는 임금을 받들고, 아래로는 신하와 백성들을 다스리도록 하자.”는, ‘재상정치’였습니다. 임금을 그저 상징적인 존재로 만들고자 했던 그의 꿈은 ‘왕 중심의 통치’를 지향했던 이방원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을 겁니다.
불교를 억제하고 유학(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고자 했던 정도전은 과연 ‘두 왕조를 섬긴 변절자’이자 ‘처세에 능한 모사가’일까요? 아니면 부패한 고려 조정을 뒤엎은 혁명가이자 조선 건국의 최고 공로자일까요? 이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는 후자 쪽에 무게를 더 두는 것 같습니다.
이밖에 본 영상에는 "이성계가 군대를 동원해 명나라를 공격하려고 한다."고 명나라에 무고한 ‘윤이 이초 사건’, 태종 이방원이 ‘뒤끝을 작렬시켜’ 계모(신덕왕후 강비)의 묘를 정릉동으로 옮기며 그 석돌들을 청계천 다리 제일 구석진 곳에 쳐박아 놓았다는 놀라운 사실까지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