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 한국사 296회] 탄금대 전투 신립은 왜 충주를 선택했나? feat 이일이 제일 잘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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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14 ноя 2024
- 부산이 그렇게 쉽게 뚫리는 바람에 제2군 가토 기요마사(22,800여 명) 제3군 구로다 나가마사(1,1000여 명)가 이끄는 일본선봉 5만여 명의 군사들이 무사히 상륙하여 북상을 서둘렀다. 이어 4,5,6군의 대장과 수군이 건너와 부산에 진을 치고 자리 잡으니 그 숫자가 약 17만에 이르렀다.
연이은 패전 소식은 곧 조정에 알려졌다. 선조는 매우 놀랐다.
"부산의 장수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길래 하루도 견디지 못하고 모두 무너졌단 말인가?"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어서 대비책을 마련하셔야 합니다. 왜적이 부산에 상륙했다면 이제 대구, 상주를 거쳐 이곳 도성으로 진격하려 할 것입니다."
"전쟁은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제와서 대비책이라니?!"
왕의 질책에 신하들은 고개만 숙일 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아무걱정 마시옵소서...! 신이 최정예 기병을 이끌고 부산으로 달려가 왜놈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릴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예 대마도로 건너가 왜놈들의 본거지까지 초토화시키고 돌아오겠나이다."
온 조정이 절망으로 가득한 가운데 자신감 넘치는 이 사람은 당대 최고의 명장이라 불렸던 신립장군이었다. 기병이 강했던 여진족 이탕개를 기병으로 맞짱떠서 언제나 승리한 장수였다.
선조는 그런 신립을 보자 마음이 한결 놓였다.
"오~ 신립장군이 있었구려 그대가 나서준다면 과인이 무엇을 걱정하겠소?"
이일도 나섰다.
"신 또한 대구로 가서 왜적을 막겠나이다. 신립장군과 소장이 있는 한 적들이 더 이상 북상하는 일은 없을것이니 전하께서는 안심하시옵소서!"
두 사람은 일본군에게 결코 질 수 없는 조선의 양대 명장이요 희망이었다.
"참으로 든든하오! 어서 가서 왜적들을 소탕해 주시오!"
한편 일본 제2군(22,800명)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는...
"고니시 그 얍삽한놈이 어디까지 진격하였는가?"
"부산진성, 동래성을 함락하고 대구로 향하고 있다 합니다."
"아...젠장! 조선군은 뭘 하고 있단 말인가? 그 허접한 놈 하나를 막지 못하고?"
"아니 아군이 승리하는데 장군께서는 기쁘지 않으십니까?"
"기쁘긴 뭐가 기뻐? 그 꼴 보기 싫은놈이 연전연승하고 있는데...그놈이 전공을 다 차지하고 먼저 한양으로 간다면 우린 뭐가 되느냐 말이다.
서둘러라! 우리도 출격할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고니시 그놈보다는 우리가 먼저 한양에 가야한다!"
가토의 제2군은 울산 경주를 유린하며 충주로 빠르게 북상하였다.
징비록 오버랩되서 웃을일이 아닌데도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네요..😊 특히 이일 웃음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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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서
빤스런이 아닌 조선사 최초로 장군이 알몸런ㅋㅋ
신립이 조선최대 정예군인 기마병을 끌고가서 다죽여 버렸지 그래서 명나라 장수도 와서 조령을 보고서는 이런좋은 곳을 놔두고 기마부대의 말들의 발이 빠져
움직이지도 못할 무논과 비온뒤의 뻘밭에서 기마부대를 운용한것을 듣고서 조선에는 그렇게도 제대로된 장수가 없느냐며 한심해 하였다 조령에서 막을 기회
를 놓쳤다면 왜군들이 행군할때 양옆이나 전후에서 기마부대로 기습공격을 하면 조총을 쓸기회가 줄어든다 병자호란때 청나라 역시 그런방법으로 수백명의
적은병력으로 조선의 4만 경상도 근왕군을 박살내어 버렸다 그래서 안동 영주등지에서는 한동안 같은날에 수많은 집들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머리가 나쁘면
남의 말이라도 들어야지 똥고집과 아집으로 뭉친 신립이 조령도 놓쳤고 왜군이 오고 있다고 제대로 알려줘도 자기생각 만으로 그백성을 허위보고 했다고 목을
치고 하더니 ... 이삼천명만 매복 시켜 놓아도 왜군의 진군을 막을수 있었던 조령조차 포기하고 기마병 1명은 보병10명과도 안바꾼다는 그정예병 8천명을 들어가
면 말들의 발이 빠져 움직이지도 못하는 무논과 폭우가온뒤의 뻘밭에 쳐넣어 놓고 공격명령 내려서 조총에 다죽게 만들었다 그래서 한양백성들은 도망도 못하고
왜군들에 인질이 되어서 명나라군이 한양성 탈환을 할때 인질처형으로 수도없는 수만명의 백성들이 아기 여자 노인 할것없이 죽어갔다
이일이 웃음벨이지...에휴 선조...팩스토리도 새해복 마니마니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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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대가 배수진인데 그 때 병사들이 탈영하는 경우가 많아서 도망갈 곳을 두지 않고 싸우려 했다는 얘기도 있죠
신립옹홍하지말자 한신의 배수진창시자가 한건 연구도안해봤나 당시시대와격차 1500여년차이인데 배수진의한신이힌건 빈집털이에 상대방이 날우습게하기유도 신립은 이런이치도모르고 주특기 기마전?그냥 지랄하고자빠짐 ㅋㅋ햐 .. 한신이이끈 3만 오합지졸 신립오합지졸 핑계도못되요 적을가벼이대한댓가 경적필패 ㅇㅇ 역사는 이런사실을 간과햐서안된다
그건 후일날 신씨들이 조상의 면상을 세워 줄려고 적당히 만들어낸 변명일 뿐이고 ....
신립이 조선최대 정예군인 기마병을 끌고가서 다죽여 버렸지 그래서 명나라 장수도 와서 조령을 보고서는 이런좋은 곳을 놔두고 기마부대의 말들의 발이 빠져
움직이지도 못할 무논과 비온뒤의 뻘밭에서 기마부대를 운용한것을 듣고서 조선에는 그렇게도 제대로된 장수가 없느냐며 한심해 하였다 조령에서 막을 기회
를 놓쳤다면 왜군들이 행군할때 양옆이나 전후에서 기마부대로 기습공격을 하면 조총을 쓸기회가 줄어든다 병자호란때 청나라 역시 그런방법으로 수백명의
적은병력으로 조선의 4만 경상도 근왕군을 박살내어 버렸다 그래서 안동 영주등지에서는 한동안 같은날에 수많은 집들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머리가 나쁘면
남의 말이라도 들어야지 똥고집과 아집으로 뭉친 신립이 조령도 놓쳤고 왜군이 오고 있다고 제대로 알려줘도 자기생각 만으로 그백성을 허위보고 했다고 목을
치고 하더니 ... 이삼천명만 매복 시켜 놓아도 왜군의 진군을 막을수 있었던 조령조차 포기하고 기마병 1명은 보병10명과도 안바꾼다는 그정예병 8천명을 들어가
면 말들의 발이 빠져 움직이지도 못하는 무논과 폭우가온뒤의 뻘밭에 쳐넣어 놓고 공격명령 내려서 조총에 다죽게 만들었다 그래서 한양백성들은 도망도 못하고
왜군들에 인질이 되어서 명나라군이 한양성 탈환을 할때 인질처형으로 수도없는 수만명의 백성들이 아기 여자 노인 할것없이 죽어갔다
조선군은 한결 같이 적을 얕잡아 봤고 공세적인 전술을 취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는 사실 조선군의 훈련 부족과 사기 저하로 수비적 태세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통솔되지 않는 군대의 경우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죠. 전쟁 전 간첩 활동도 상당했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현대전쟁도 마찬가지인게
앞선이 싹 쓸리면 뒷선 병력들이 자기도 100퍼죽는다는 확신때문에 두려워서 도망가거나 제대로못싸운다고하죠
그럴땐 그냥 상대숫자라도 줄인다는 생각으로 모조리 돌진 전술같은 멍청한 전술밖에 못쓴다는거..
조선 군이 너무 초반에 생각없어 싸웠다 차라리 성에 들어가서 수성을 했다면 더 좋지않았을까 하네요 그보다 이제 이순신 장군님이 나오시니 가슴 웅장해지네요!
신립이 조선최대 정예군인 기마병을 끌고가서 다죽여 버렸지 그래서 명나라 장수도 와서 조령을 보고서는 이런좋은 곳을 놔두고 기마부대의 말들의 발이 빠져
움직이지도 못할 무논과 비온뒤의 뻘밭에서 기마부대를 운용한것을 듣고서 조선에는 그렇게도 제대로된 장수가 없느냐며 한심해 하였다 조령에서 막을 기회
를 놓쳤다면 왜군들이 행군할때 양옆이나 전후에서 기마부대로 기습공격을 하면 조총을 쓸기회가 줄어든다 병자호란때 청나라 역시 그런방법으로 수백명의
적은병력으로 조선의 4만 경상도 근왕군을 박살내어 버렸다 그래서 안동 영주등지에서는 한동안 같은날에 수많은 집들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머리가 나쁘면
남의 말이라도 들어야지 똥고집과 아집으로 뭉친 신립이 조령도 놓쳤고 왜군이 오고 있다고 제대로 알려줘도 자기생각 만으로 그백성을 허위보고 했다고 목을
치고 하더니 ... 이삼천명만 매복 시켜 놓아도 왜군의 진군을 막을수 있었던 조령조차 포기하고 기마병 1명은 보병10명과도 안바꾼다는 그정예병 8천명을 들어가
면 말들의 발이 빠져 움직이지도 못하는 무논과 폭우가온뒤의 뻘밭에 쳐넣어 놓고 공격명령 내려서 조총에 다죽게 만들었다 그래서 한양백성들은 도망도 못하고
왜군들에 인질이 되어서 명나라군이 한양성 탈환을 할때 인질처형으로 수도없는 수만명의 백성들이 아기 여자 노인 할것없이 죽어갔다
다음편에는 육지전 첫 승전보를 울리고서도 처형당한 비운의 신각 장군의 해유령 전투와 이순신의 첫 출격, 옥포 해전이 있겠군요.
제승 방략에 대해 오해가 있는데, 지방에 병력이 모이면 중앙에서 장군을 파견하는 것이 제승방략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렇게 할 경우 중앙에서 장군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이 적군의 공격에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문제점은 제승방략을 만든 사람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각 지방에는 병마절도사(약칭 '병사')라 불리는 군 지휘관을 배치하였고, 지방의 군 병력은 현지의 병마 절도사의 지휘를 받는 병력과 서울서 내려오는 장수의 지휘를 받는 병력으로 이원화 되어 있었습니다. 병마절도사는 휘하의 병력을 모아 적군의 침공을 저지하면서 서울서 지휘관이 내려와 병력을 수습할 시간을 벌어주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동래성에 집결한 병력이 바로 경상 병사 '이각'이 지휘하던 경상도 병력이였습니다. 원래 제승방략에 따른 계획대로면 경상도 병사 이각이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동래성을 근거지로 적군을 저지하는 동안 서울서 파견된 순찰사가 대구에 집결한 병력을 인수받아 공세를 펼치는 것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각의 병력이 이틀만에 완전히 무너졌고 서울에서 장군이 올때까지 적군을 저지할 수단이 사라져버린겁니다. 이후 경상도 내지로 일본군이 속속 진격해 들어왔고, 대구에 집결한 병력은 지휘할 장군보다 일본군이 먼저 들이닥칠 상황이 되니 병사들이 흩어져 달아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동래성에서 조선이 즉각 동원한 정예병과 경상도 지휘부가 증발해버린게 너무 아쉽...부산진성 동래성 전역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조선군의 매운맛은 여기까지였다” 정도
늘 재밌음~~~
병력들이 집결했는데 대다수가 농사짓다온 싸울줄도모르는 오합지졸이였기에 조령같은곳에서 게릴라전을 하자니 군사들이 겁먹고 도망갈것같고 또 산에서는 주력인 기마부대를 제대로 활용못하니 이럴바에는 죽을심정으로 다같이싸우자는 뜻으로 배수진을 친거임 결과는 패배했지만 아무 생각없이 그런 작전을 세운건 아님
너무 재밌게 봤어요!
와.. 재밋다
애초에 경상좌수사 박홍 우수사 원균이 바다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위서 상륙을 저지했다면 저지경에 이르진 않았을텐데 그 아까운 판옥선들 원균이 날려먹은 판옥선이 몇척인지..
오늘 성공의 방법은 내일의 실패 방법이다라는 말이 떠오르네여.. 항상 통하는 성공방식은 존재하지 않고 전쟁사를 보면 더더욱 와닿네요
신립 : 벌써 상주까지 빼앗겼다니.
김여물 : 천혜의 요새인 조령에서 적을 막아야 합니다.
신립 : ...이미 적이 상주에 있는데 이제와서 조령에 방어진을 구축할 시간이 어디 있단 말이오? 조령이 천연의 요새라지만 정작 의지할만한 성곽도 보루도 없잖소? 조령에 병력 배치하던 도중에 상주에 있는 적이 들이닥치면 진짜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오.
변기 : 그렇다면 충주성에서 수성전을 하실 겁니까?
신립 : 지금으로선 그것이 최선의 계책이오
이일 : 적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여기 병력만으로 막기는 어려울 겁니다. 일단 한양으로 퇴각하여 더 많은 병력을 추가 동원해 한양 방어를 하는 것이 낫습니다.
신립 : 싸워보지도 않고 퇴각부터 하라니. 상주에서 패배로 정신줄 놓쳐버린 거요?
....
이종장 : 어제까지 선천군 군수였는데, 이런 제가 충주 목사를 하라구요?
신립 : 충주목사 민인백은 군사에 대해 아는바가 없는 문관이라 전투 지휘를 맡을 만한 인물이 아니오. 무관인 자네가 충주 병력을 지휘하게.
김여물 : 읍성이 시원찮은 건 알았지만 충주성은 진짜 심각하네. 성벽도 낮고 좁아서 여기서 농성전은 불가능합니다.
신립 : 충주성 농성은 충주목사의 군대에 맡기고 우리 병력은 성 밖에 주둔하며 농성전을 지원할 것이요. 왜적들이 충주성을 공격할 때 기병으로 이들을 요격한다면 승산이 있소.
이종장 : 우리만 남겨두고 충주성을 나간다구요? 우리 버리는거 아니죠?
....
김여물 : 정말 여기서 진을 칠겁니까? 강을 등지고 배수진을 치는 겁니다. 왜적들이 충주성이 아니라 우리에게 곧장 올 경우 꼼작없이 강변에 갖히게 됩니다. 여긴 병법에서 말하는 사지입니다.
신립 :...아무래도 한양으로 퇴각하는게 나을거 같소. 조령 방어를 하기엔 너무 늦었고, 충주성도 저모양이니 아무리 우리가 성밖에서 지원한들 적의 공세를 감당해내지 못할거요.
김여물 : 설마 여기 진을 친게 강 너머로 퇴각하려는 것이였습니까?
신립 : 이미 조정에 장계를 보냈소. 조정의 답변이 오는데로 퇴각할테니 그리 알고 준비를 해두시오.
사료에 있는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합리적으로 해석되고 있는 정황을 상세하게 설명해주셨네요.
상식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유추라고 봅니다
잘봤어요 이제 곧 명나라 이여송 장군이 나오겠네요
제가진짜 답답한것은요!! ㅠㅠ 팩스토리님 너무 팬인데 지금 고려거란전쟁이
얼마나 핫한데요 핫한거 우려먹어야합니다 ㅜㅜㅜㅜㅜ 다른동네 유튜버들은 다 우려먹으면서 조회수 엄청뽑아요 ㅠㅠㅠ
훗날 세키가하라전투에서
고니시는 서군 가토는 동군으로 대결하게된다
당파 싸움에는 그렇게 떠들던 대신들이 정작 국가의 위기 앞에서는 아닥
역시 입만 살아있는것들
지금 여야 정치인들도 다를건 없는듯
@@흑화한루피 적어도 조선의 정치인들보단 나음
조선군화이팅
드디어 영웅출격...!
이일이랑 신립은 진짜 한심하게 짝이없네...
저때 능력있는 장수가 그리 없나
신립하고 기마병이 아깝다
잘훈련되고 경험많은 장군인데
훈련이 안된 군대 !!
신 립장군은 역사적으로 제대로 평가받아야 합니다.
신립 장군처럼 하면 온 백성 고생한다는 것을
지금 한국군은 초급간부가 부족하여 있는 무기도 다활용할수 없다는데 사실인가요.
신하들 보다 도망촉이 빠른 선조...;;
생존왕 이일
배수진의 참뜻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네. 배수진은 말 그대로 죽기 살기로 꼴아박는다는게 아니라 한신처럼 다른 별동대를 가동해서 후방을 공격해서 적을 와해시키는 전술임. 그냥 단순히 배수진만 펼치면 전투력 0임 ㅋㅋ
김여물은 지략과 무력이 출중했던 인재였다고 합니다 그런 인재를 신립이 한순간에 소모시켰죠 일상생활에서도 신립처럼 몇번 이겼다고 근자감 뿜뿜 하는 경우 많이 봅니다
아...신립장군은 적을 너무 만만히봤어 솔직히 조선군은 일본군보다 병력도적고 무엇보다 신무기 조총까지 있는데 이럴땐 차리리 성으로 들어가 결사항쟁 아니면 이일장군 말처럼 조령으로 가서 싸웠어야지...
하지만 조령의 험한 지형과 성채를 이용한 수비전술로 농성하며 1군을 저지하는 동안에 빠른 승부를 보지 못하면 그곳에서 발이 묶이게 될 텐데..
그 사이에 왜군의 2군과 3군이 한양 빈집털이 러쉬를 감행하면 그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신립장군의 전술은 타당한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신립 장군은 1군을 평야지대로 끌어내 자신의 주특기인 기마병을 활용한 한번의 회전으로 1군을 가능한 빠르게 격파하고 바로 북상하여 2군,3군을 각개격파하던지.. 아니면 한강을 먼저 건너 2군,3군을 상대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천운이 따라주지 않았네요.
사람마다 생각하는 전투방식은 다 다르니까 경훈님 생각 이해해요
만약 신립장군이 결사항쟁이 아니라 수성전을 했다면 얼마나 버틸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
@@임준성-x8g 제 생각에는 성안으로 들어가 성채에 의지하여 농성전을 벌였다면 신립장군의 주특기인 기마병 전술을 활용할 수 없고, 보병들은 훈련이 제대로 안된 민병대 수준에 불과하며 제대로 된 보급 또한 기대하기 어려웠을 거라고 봐요.
그리고 1군에게 성을 포위당한 상태에서 2,3군이 그대로 한양으로 진격했다면 결국은 나와 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탄금대 전투에서 회전을 벌였던 것보다 더 비참한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더 무서운 상황은 1,3군이 연합하여 성을 포위, 공격하고 가토의 2군이 단독으로 한양으로 진군하여 한양을 공격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립 · 이일 참패
전술적으로 완전히 개쳐발리고 여러 의미로 ㄹㅈㄷ임
신립장군은 관우같은 느낌이지
조일전쟁처럼 전략적인 부분에선 그닥이었지
여진족싸움에서도 큰싸움보단 적장과 일기토로 항복을 받거나, 기병으로 제압하는 전략이었지
그리고 신립은 어릴때부터 조선내에서 주먹으로 유명한 사람이었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늪지대에서 기마돌격으로 승부보려했다는건 솔직히 납득이 ㅎㅎ
대전대학교 윤일영 교수의 논문
탄금대 전투 시 신립 군의 병력 수
Shin Rip(申砬)'s number of troops
in the Battle of Tangeumdae
2020, vol., no.11, pp. 275-309
(35 pages)
여기 나온 내용에는
신립이 서기 1592년 음력 4월 25일
충주성에 집결시켰던
총 병력 수는 8,000명이었다.
이 병력 가운데 신립 장군이
都城에서 동원하여
충주 성까지 인솔했던
병력 수는 보병 및
기병 4,366명이었다.
그리고 충청도 內
군현에서 동원하여
충주 성까지 이동시켰던
병력 수는 보병 3,634명이었다.
도성에서 인솔했던 4,366명 가운데
기병 수는 1,152명이었고
보병 수는 3114명이었으 며
宗族은 100명이었다.
8,000명 가운데
보병 수는 6,748명이었다.
즉,신립은 1만6천명의 병력이 아니라
8천명의 병력을 가진 것이다.
......................................................
신립 장군이 일본군을
우습게 보았다는 것이 잘못 알려 진것
((외방의 군사는 모이지 않고
도성에는 전후하여 대부분의 장정들이
거의 징발되었으므로
도원수 역시 군사가 없었다.
상주에서 패배한 보고가 이르고
신입(申砬) 또한 비밀히 아뢰기를 ‘
적의 기세가 매우 드세니
도성으로 후퇴하여
지키도록 하소서.’ 하였다.
내간(內間)에서는 이미
서울을 떠나려는 뜻이 있었는데,
수상(首相)만이 그것을 알았다.
--선조수정실록 26권,
선조 25년 4월 14일
태백산사고본 6책 26권 4장
*******************************
조선왕조실록에 신립 장군이
상주에서 패한 이일에게
일본군 군세를 선조에게
비밀리에 보고하고 후퇴를 청함.
조령에서 왜군을 막지 못 한 것에
대한 비난이 많은 데
험한 계곡 속에 많은 군사를 배치하면
훈련이 안 된 병사는
지휘도 안 되고 탈영자가 나오면
한 번에 무너질 수 있음.
그리고 조령에서 충주로
가는 길이 그것만 아니었다
조령 자체도 문경새재외에
큰 새재, 작은 새재, 하늘재 등
몇 개의 통로가 더 있기 때문에,
훈련과 병력이 열세인
병사들을 데리고
한꺼번에 막는 것은 제한이 있을 수 있다.
한마디로 조령만 막는다고 끝이 아니라
조령에 새길로 왜군이 처들어오면
훈련 안 된 병사들로 막기 불가능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신립 장군이 알았는 지 몰랐는 지 모르지만
제2군은 가토 기요마사 휘하의 22,800명
동래-경주-군위-죽령 방면으로 북상
제3군은 구로다 나가마사
휘하의 11,000명
다대포-김해-성주-추풍령 방면으로
북상 중이었는 데
가토 기요마사는 중간에 조령을
향했는 데 만약 조령에서
왜군이 막혀 있었다면
원래 가던 곳으로 갔을 가능성이 있다.
여든 조령 말고 다른 길로
수도 한양으로 가고 일부가
충주 방향으로 배후로 처들어 오면
그냥 계곡 속에 갇히는 것이다.
신립 장군의 이해하지 못한 전투는
병력이 부족하고 훈련도 안 된 병사들 데리고
강한적을 맞이해 싸우는 것보다
충주가 아닌 곳으로 물러나
더 많은 병력을 지원 받아 싸우려 했다가
왜군이 너무 빨리 진격하여
어쩌다 보니 싸우게 되었다는 것이
합리적이다.
드디어 이순신이다
이미 본토에서 다케다의 기병부대를 조총부대가 격파한 사례가 있었는데 신립도 진짜 ㅋㅋ 무능하다 그냥
다케다 신겐은 조총부대에 대한 정보와 지형지물을 잘 골라서 싸운 날선 명장이고 신립도 나름 기병전에서 명장이지만 늘 익숙한 북방이랑 탄금대랑 즉 전장차이를 이해못한 차이라 봅니다. 뭐 이러니 저러니해도 다케다신겐은 조총부대를 격파한 장수였고 신립은 제물이 된 장수니
임난 전반기는 이미 탄금대로부터 판가름이 난 편이었다는 ㄷㄷ
이일과 신립에게 묻고싶은것은 일본군이 바로앞까지 진격해왔다고 보고한 척후병을 왜 목을베어서 죽여야했나? 묻고싶다
조선건국이래 평화가 지속되다보니.. 그럴 수 밖에요
저때 문경세제에서 왜군들과 맞섰다면 최선으로 한양까지 왜군이 당도할 일은 없었을텐데.. 마치 마속이 제갈량의 진을 내치고 산 위로 간 것처럼
대장군 한신도 실전에서 배수진을 쓸 때 적 배후를 기습해서 적을 혼란에 빠뜨렸기에 앞뒤로 쌈싸먹어 승리할 수 있던 거였음. 단순히 배수진의 결사항전만으로 적을 이긴 게 아니었는데 신립은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배수진만 쳤나 봄. 그리구 이치 전투를 봐도 험난한 산세를 틀어막으면 미비한 조선군 수준이더라도 왜군 정예를 충분히 격퇴시킬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음. 조선 정규군으로 조령을 틀어막았으면 적어도 적의 예봉은 충분히 꺽을 수 있었을 것임. 신립의 졸전이었음. 군사는 실전을 겪으면서 강해지는 법이라 조령을 틀어막고 버티면서 수만의 조선군을 정예화 하였다면 전쟁의 양상은 크게 달라졌을 것임.
"지금으로 치면 수기사나 제7기동군단 전력을 지휘관의 삽질로 완샷에 말아먹은 경우네..!!"
군량이 부족하다고 성을 버리는게 이상한거지 가능한 정도로 수성군을 배치하고 후방에서 보급하던지 하면될일을
이일, 선조가 똑똑하네
신립의 친척이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입니다 .
신사임당1504년 , 신립1546년생인데 ㅡㅡ 찾아보니 신립아부지 신과국이 신사임당의 8촌동생이란다
아 , 그래요 ? 수정하겠습니다 .
@@타키수녀님 잘 몰랐는데 찾아봤어요 힛
신립의 가족과 자녀들을 보면 왕실과 관련있는데
신립의 누나가 인헌왕후 구씨 어머니고
딸 신제순이 선조와 인빈 김씨의 아들 신성군 ( 원종 형이자 인조 삼촌 ) 부인이죠 .
무릇 자만이 문제구나...
이일 도망의 귀재. 멍청한 선조 놈, 믿을 놈을 믿어야지, 신립이, 이일 따위를 믿으니 의주로 튀어야 했던거야.
이일은 깔수없는게 훗날 명나라군과 같이한 평양성탈환전에 공세우고 광해군 부관이되고 광해군을 많이 도와줘서 원균보다는 나아요
@@user-runqian 명군에 숟가락 얹는게 공이요? 이자는 병법도 모르고, 왜군의 진군 소식을 전하는 전령을 참수하는
멍청한 놈이니 더 말해 무엇하리요. 그리고 전황을 보며 먼저 도망갈 궁리부터 하는 놈이요. 그러니 지휘하는 전투마다 패해서
도망만 다녔던거요.
평양성 함락 이후 고니시가 더 북상하지 못한 건 분조를 호위하는 이일이 필사적으로 방어전을 펼쳤기 때문임. 실록 기록만 찾아봐도 거의 매일 교전리 있었음. 괜히 조선에서 중용한 장수가 아님
정탐은 전혀 없네요.
신립은 바보로다. 손자병법에 적에 따라 유연하게 싸움의 방법을 달리 하라 그리 강조하였건만 어찌 경직적으로 기병 운용에만 집착한단 말인가.
걍 할줄아는게 기병전뿐이어서 똥고집을 부린것
신립만의 문제는 아니지 서양도 조총이 첨나왔을때 기사들 닥돌하다 갈렸고 가이의 호랑이의 후손도 갈렸고 무지의 산물일뿐
신립이 문제이긴함 조령에서 방어했으면 이길수 있었음
일본은 해병대고 조선은 육군이기 때문에 이기기 어렵습니다
조선 제14대 구광 선조...거꾸로 읽으면 조선....하아...신발...
충주는 지금도 불모지 황무지 개발도상도시
조령에서 싸워야지 전법의 기본이 안되어있는 ㅉㅉ
병법의 권위자였던 이일이 기막힌 전락을 내세웠지만 신립은 거절하고 결국 기병전으로 패하죠
신립 ㄷㅅ
이일이 실제로는 옷한벌 안걸치고 다 벗고 빤쓰런 했다는 이야기 있음.
조령같은소리하네 이런들저런들 다개죽음이었음 가토 , 쿠로다가 올거거든😊
무슨 신립장군..
신립이지..
신립은 용장은 될지언정 지장은 모르는 장수.병법이란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식한 장수
1등ㅋㅋ
일본의 체급이 조선 2배에 기술력 경제력 모든면에서 조선따위보다 배로 우월한게 사실인데
우습게 보고 정면승부한 능지처참함은 뭘까?
산성에서 지키고 있어도 모자랄건데 ㅉㅉ
에휴..답답한사람들 배수의진 한신이한건 빈집털이 그기다상대적장 날우습게만들기 신립은 그 이치를몰라서 패배함 ㅇㅇ 오합지졸은 한신이더한심해슴한심했지 신립핑계도못됨 적의전술도파악못하지 오히려 적을 너무가벼이대함 경적필패의좋은 예들 보여줌 ㅋㅋㅋㅋ
조선이 왜 저때 망하지않아서 에휴 ㅉㅉ 이순신도 답답하지
역시 병법의 권위자 이일답군여.니탕개의 난때 이일의 기막힌 작전으로 여진족들을 개박살냈죠.
기병 원툴 말박이 신립찡...
신립 강조 두 용렬한 졸장들의 대패 원인은 자국의 전력을 파악하지도 못하고 정면대결했기 때문
대회전 실력도 안되면서 댐비다가 사망
천애의요새 x 천혜의요새 o
신립은 지랄 ㅎㅎ
빤스런 이일
너무 가볍게 역사 이야기를 하네.
생각해보니 세종은 김일성하고 똑같군요
???
??
???
평양 ip 검거 국정원 아조씨 여기에요
@@harrisseeo6740 세종이나 그놈이나 똑같지
신립과 이일은 말타기 만주벌판에서 싸우는 전술밖에 몰랐다 그래서 멍청하게도 탄금대에 진을 쳤다 차라리 조령성에 진을 쳤으면 그리도 쉽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짜 멍청한 장군들이다 명장이 아니라 멍청한 장군 멍장이다
신립같은 안목가진자가 조선에서 제일이라니ㆍ 현재도 같다 이죄면같은 넘을 지지하다니 ㆍ
이씨가 아니라
윤씨와 한씨를
착각한것 아니야
토왜척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