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kinada9 그건 아님. 저분들 대다수가 저 동네에 적어도 40 50년 머무르셨는데 몇십년 같이 지낸 이웃들이랑 대화하면서 같은 동네 풍경 보는게 일상인데 이제와서 어디로 이사를 감 노인들 이사하는게 쉬운것도 아니고 짐 옮긴다고 아사가 끝이 아님 그리고 노인들이 인프라 누릴게 뭐가있음
아~! 중계동! 정규 버스도 들어가지 않는 논밭을 지나 민둥 산에, 서울의 여기저기에서 강제 철거민들이 내팽개쳐져서 시작된 동네. 1960년대 중후반 나도 장화신은 개척자가 되어 거기서 5년의 세월을 보냈었지요. 마을 입구에 조그만 야학교도 만들어 봉사도 했었고, 야무진 꿈을 가진 몇명은 대학도 가고, 좋은 직장을 얻어 온 동네가 잔치를 했던 그곳. 나도 이제는 80에 접근하는 미국의 한 노인이 되었네요. 아~ 그 어려웠던 세월이여!
중학교때 창동역에서 은행사거리 가려고 1142번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잠이 들어서 도착한 동네.. 어린시절 내 눈에는 참 신기하기만 해서 이곳 저곳을 돌아보니, 학생이 여기까지 왔냐며 아저씨 한분이 주먹밥을 주셨던 일이 있었지요. 문득, 작년 백사마을이 생각나 창동역서 똑같이 1142번을 타고 찾아간 백사마을은 공가가 많이 늘었더군요.. 거기를 걷다보니 고양이들이 밥달라고 야옹거리고 있어 황급히 밑으로 내려와 사료와 물을 사들고 어느 공가 앞에 밥을 놔두고 지켜보고 있으니 옆집에 사시는 할머니가 '좋은일 했구만~ 미물이든 사람이든 밥을 주는건 정말 좋은일이야' 라고 방긋 웃으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혹자는 이 세상에 '악'만 남았다곤 하지만, 아직 세상은 따뜻하구나 라는 것을 백사마을서 느끼고 내려왔습니다. 저가 만났던 할머니와 아저씨 모두 건강하시기를 바라며.. 좋은 영상 감사드려요
10년도 더 된 영상이지만 참 감사한 영상이네요. 환경미화원으로 나오신 분 사셨다는집 앞집에 애기때 살았는데... 토끼도많고 강아지도 많아서 앞집에 놀러가서 구경도 많이했고 어느날 불이나서 토끼들이 다죽어서 어린마음에 많이 울었던 기억도있네요... 집앞 도로가 아무리 뛰어놀아도 넓고 컸던 도로가 생각이나서 몇년전에 한번 가보니 차한대 간신히 갈수있는 좁은도로였더라구요 옛생각이 많이나네요
옛 생각이나니 코끝이 찡해지네요. 20년 전에 중계 주공 6단지 살았고, 저 동네 바로 아래였고... 저 마을 살았던 친구들은 어찌 그리도 다 선량하던지.. 저 마을 가끔 놀러다니곤 했었는데... 다 셋방살이살던 친구들이라 지금은 다들 성공해서 저 마을에서는 살지는 않음... 옛 추억이 사무칠 정도로 떠오릅니다. 그때 친구들이 지금은 거의 대부분 저세상에 있고...
은시리님 저도 중계동 불암초 옆 현대아파트 살았는데 제 친구들도 6단지에도 살고, 104번지에도 살았었습니다.. 지금은 다 추억이 되었네요.. 미국으로 이민오기 전 들려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와서 아쉽네요.. 가끔 한국이 그리울때면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했던 추억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꿈을 꾸기도 합니다.. 오늘밤 꿈속에서 그 시절 그때로 돌아가 어릴적 친구들을 만날 것 같은 밤입니다~ 🥲
서울에도 달동네가 존재하는 지 처음 알았습니다. 서울은 도시가스가 놓여서 가스 보일러를 쓸 줄 알았는데 연탄을 쓰는 곳이 있군요. 백사마을 주민들의 가장 큰 걱정이 재개발이 되는 것이라니 사연을 아니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도시를 개발하는 것이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주민분들의 표정이 밝고 인상이 좋으셔서 저도 그 정을 받는 것 같습니다. 백사마을 주민분들에게 항상 행복한 일만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옛날 10번 버스 종점이네요 (저는 40살입니다) 저희 할머니가 평생 저 마을에 사셨습니다. 화장실이 없는 집이 태반이었고 눈이라도 오면 길바닥에 연탄재를 부셔서 미끄러지지 않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주 좁은 골목을 제외하면 오고가는 길이 정해져있어 동네사람들끼리 인사하는게 일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 동네 행정명칭이 중계본동이었고 배달하시는 분들은 누구나 기피하는 동네였으며 사실 불량청소년도 정말 많았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저 근처 노원우체국에서 평생 집배원으로 근무하셨어요 낭만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서울 땅값은 비싸고 밀리고 밀린 사람들이 홍수라도 피할 수 있게 산기슭에 모인 게 저 마을의 시초죠... 어마무시하게 덥고 습하고 겨울엔 춥지만 어찌되었든 침수는 되지 않았습니다. 저 마을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랬겠지만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여 몸으로 일하며 잠을 자던 보금자리가 시초 일 것입니다. 공장에서 일하다 저 마을에서 노인이 되어 공공근로를 하거나 고물을 주어 파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지금의 은행사거리(학원이 많던곳)이나 노원은 그때 한참 주공 xx단지로 아시아에서 아파트가 제일 많은 곳으로 개발이 한창이었지만 유일하게 저 동네만은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4호선 창동이나 노원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들어가는데 저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건물이 낮아지고 네온사인이 없어지던 기억이 나네요 어찌보면 현대화의 그림자 같은곳에 저희 아버지와 할머님이 사셨다는 걸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네요 여러가지 봉사활동을 해주신 분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글을 빌어 감사인사 드립니다.
답십리 재개발되기전에 저런 동네서 살았음 겨울이 눈내려서 한밤중이나 새벽에 눈 치우러 나가면 굉장히 운치 있고 좋음 가로등도 led가 아닌 누런 전구인데다 집집마다 내뿜는 보일러 연기가 어우러질때의 감성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물론 내리막에 눈까지 내려서 마을 어르신들이 종종 넘어지기도 하지만… 일면식도 없는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눈 치우면 서로서로 수고하십니다 덕담나눴었는데 ㅎㅎ 근데 눈내려도 자기 집앞도 안치우는 종자들은 겨울내내 안치우더라
이 영상에 등장하신 어르신들 다 잘 지내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서울에 얼마전까지도 이런 동네가 있었다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고단한 삶을 또 이어가고 계실지…. 모쪼록 건강하십시요. 어려운 사람들은 들어가지도 못하는 재개발, 흉물스런 아파트 위주의 재개발 징그럽다~ㅜ
자신은 따뜻하게 풍족하게 살면서 이런 방송을 자주 해달라는건 욕심같아요 겪어본 사람들은 추억이지만 안겪었으면서 이런것으로 위로 받으려한다면 .. 마음이 아프네요... 저분들이 이제는 좀더 좋은 환경에서 살되 가족과 이웃을 향한 이 따뜻한 마음을 잊지않고 살아가면 좋겠네요
겨울에 갑자기 들어와 언 흙벽돌로 집을 얼기설기 지었기 때문에 봄이 되니까 그 흙벽돌이 녹아 벽에서 물이 질질 흘러 도베지가 늘어지고 곰팡이가 생기고... 어느 따뜻한 봄날을 택해 벽을 새로 세우기도 했지요. 그러나 꿈이 있었기에 이를 악물고 버텨 미국까지 오게 되었지요. 꿈이 생명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요즈음입니다.
댓글을 자주 달아주셔서 보고 있습니다 여행말고는 한국을 떠난적없는 사람인데 울동네 충청도 소도시 읍내엔 미국으로 오십년전 시집갔다가 한국이 너무살기좋다고 일년이면 7.8개월 원룸살이 하다 가는 칠십대초반 언니있지요 아들 딸도 잘있는 미국가면 그렇게 오고싶어 오시는데 이제는 3년까지 살수있는거 만들어서 조그마한 연립도하나 장만 했어요. 뭐니뭐니해도 한국이 제일살기 좋은곳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우린 미국에서도 살아보고 싶은데... 장단점은 있겠지요 한마디님 건강하세요~~
불편하고 추웠지만 참 정감있고 그리운 풍경이에요. 시골마을 같다고 했는데 시골보다 서울 달동네가 저는 더 더 좋아요.^^ 단칸방에서 가족과 살 부비며 살고… 어렸을적 살던 동네는 지금 으리으리한 아파트로 꽉 차서 그 동네 갈때마다 서글픈 그리움이 들곤 하는데 중학교 졸업앨범에 학교 전경과 재개발 되기전 살던 동네가 같이 나온걸 발견해서 너무 반가워 한참을 들여다보고 눈물도 찔끔 나고 그랬네요. ㅎㅎ
드라마 서울달에서만 본 달동네가 아직도 있군여 서울도심에 있는 시골풍경의 달동네가 있어서 좋으네여 시골처럼 동네분들하고 겨울에 고구마도 나눠먹고 그러시겠죠ᆢ제가 시골이 고향이라서 그런지 시골풍경이 있는 도심속 동네 엄청 좋아합니다ㆍ사라지지 않고 오래 도록 보존되었음 좋겠어여 ᆢ🤗🤗🤗
저희도 제가 중학교 2학년 1968년도에 상계동으로 이사 갔었지요 수출용 조화공장 하느라고 일할사람이 필요해서지요 구로동애서 하다가 구로공단이 들어오는 바람에 일할 언니들이 공장으로 이직해서 이사했어요 차편이 너무 불편하고 학교가 영등포라 멀고 고등학교는 홍제동이라 또 멀고 직장은 소공동이라 또 멀고 결혼해서 강남 논현동에 신혼살림 차리는 바람에 그 먼 거리애서 벗어 났지요 지금은 미국에 사니 집에서 더욱 멀어 졌네요 ㅠㅠ
따뜻한 물나오고 세수할수있고 양치할수있고 화장실있는 집이면 좋다는 말씀에 가슴이 찡 합니다
안녕하세요 오지환입니다 반갑습니다
10년전인데 지금은 많이 번했지
지방으로 눈 돌리면 해결될걸
결국 저들도 내심 서울인프라는 누리고싶은거겠지
@@Tokinada9 그건 아님. 저분들 대다수가 저 동네에 적어도 40 50년 머무르셨는데 몇십년 같이 지낸 이웃들이랑 대화하면서 같은 동네 풍경 보는게 일상인데 이제와서 어디로 이사를 감 노인들 이사하는게 쉬운것도 아니고 짐 옮긴다고 아사가 끝이 아님 그리고 노인들이 인프라 누릴게 뭐가있음
@@Tokinada9인프라는 무슨, 수도세도 못내시는 할매할배들이 예술의전당에 오페라라도 보러가시려고 그 잘난 인프라 누리려고 서울안뜨시나 참내
아!! 아직도 서울에 저런마을이 있군요~
아~! 중계동! 정규 버스도 들어가지 않는 논밭을 지나 민둥 산에, 서울의 여기저기에서 강제 철거민들이 내팽개쳐져서 시작된 동네. 1960년대 중후반 나도 장화신은 개척자가 되어 거기서 5년의 세월을 보냈었지요. 마을 입구에 조그만 야학교도 만들어 봉사도 했었고, 야무진 꿈을 가진 몇명은 대학도 가고, 좋은 직장을 얻어 온 동네가 잔치를 했던 그곳. 나도 이제는 80에 접근하는 미국의 한 노인이 되었네요. 아~ 그 어려웠던 세월이여!
늘 건강하세요 어르신
아!그렇군요!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나도 미국 좀 데려가 주시오 돈은 만천달러(11,000) 있어요
미국 뼈 묻을겁니까
7:56 동영아저씨! 당시에 지나가면서 인사만 대면대면 하던 꼬맹이 입니다. 사셨던집 아래아래 초록대문집 꼬맹이가 올해 34살이 됬네요. 이 글을 보긴 어렵겠지만 반갑습니다! 여전히 동네에 계신걸 보니 반갑고 다행이네요!
중학교때 창동역에서 은행사거리 가려고 1142번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잠이 들어서 도착한 동네.. 어린시절 내 눈에는 참 신기하기만 해서 이곳 저곳을 돌아보니, 학생이 여기까지 왔냐며 아저씨 한분이 주먹밥을 주셨던 일이 있었지요.
문득, 작년 백사마을이 생각나 창동역서 똑같이 1142번을 타고 찾아간 백사마을은 공가가 많이 늘었더군요..
거기를 걷다보니 고양이들이 밥달라고 야옹거리고 있어 황급히 밑으로 내려와 사료와 물을 사들고 어느 공가 앞에 밥을 놔두고 지켜보고 있으니 옆집에 사시는 할머니가 '좋은일 했구만~ 미물이든 사람이든 밥을 주는건 정말 좋은일이야' 라고 방긋 웃으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혹자는 이 세상에 '악'만 남았다곤 하지만, 아직 세상은 따뜻하구나 라는 것을 백사마을서 느끼고 내려왔습니다.
저가 만났던 할머니와 아저씨 모두 건강하시기를 바라며.. 좋은 영상 감사드려요
정말 마음이 따뜻해지는 훈훈한 댓글이네요^^
좋은일 했구만~이 질알ㅋㅋㅋ뭔 연극대본씀?
@@un음주오락부차관보기 싫음그냥 지나가시게 시비충😅😅😅
따뜻한 물 나오는 집에 사는게 소원이라는 말씀을 들으니 나는 얼마나 당연시 해왔으며 그럼에도 만족하지못 하고 세상에 온갖 허례허식으로 살아온 현 지금의 상황도 반성 하게 되네요
10년도 더 된 영상이지만 참 감사한 영상이네요. 환경미화원으로 나오신 분 사셨다는집 앞집에 애기때 살았는데... 토끼도많고 강아지도 많아서 앞집에 놀러가서 구경도 많이했고 어느날 불이나서 토끼들이 다죽어서 어린마음에 많이 울었던 기억도있네요... 집앞 도로가 아무리 뛰어놀아도 넓고 컸던 도로가 생각이나서 몇년전에 한번 가보니 차한대 간신히 갈수있는 좁은도로였더라구요 옛생각이 많이나네요
연탄에 까만부분있으면 더 뗄 수 있다는 할머니 말씀에 왜이렇게 가슴이 먹먹해지냐....
옛 생각이나니 코끝이 찡해지네요.
20년 전에 중계 주공 6단지 살았고, 저 동네 바로 아래였고... 저 마을 살았던 친구들은 어찌 그리도 다 선량하던지.. 저 마을 가끔 놀러다니곤 했었는데... 다 셋방살이살던 친구들이라 지금은 다들 성공해서 저 마을에서는 살지는 않음...
옛 추억이 사무칠 정도로 떠오릅니다.
그때 친구들이 지금은 거의 대부분 저세상에 있고...
생생한 옛날얘기 들으니 더 재밌어요:)늘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은시리님 저도 중계동 불암초 옆 현대아파트 살았는데 제 친구들도 6단지에도 살고, 104번지에도 살았었습니다.. 지금은 다 추억이 되었네요.. 미국으로 이민오기 전 들려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와서 아쉽네요.. 가끔 한국이 그리울때면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했던 추억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꿈을 꾸기도 합니다..
오늘밤 꿈속에서 그 시절 그때로 돌아가 어릴적 친구들을 만날 것 같은 밤입니다~ 🥲
ㅜㅜ
마음이 찡합니다
이곳에서 연탄봉사를 했었어요 봉사가 끝난 후에 어르신들이 연신 고맙다고 하셨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 어르신들 따뜻한 겨울 보내시길 바라요
잘햇어요@@@
정말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다큐3일만 보면 아련해지면서 마음이 따뜻해져요. 이제 이런 다큐는 어디서도 볼수가 없다
우리가 어릴쩍 살던 ㄷㆍㄷㅇ네 같아요
불평만 하고 살았던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지금 주워진 제삶에 행복을 느끼는 시간입니다
이 어려운 삶을 잘 헤쳐나가길 그리고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바래봅니다
하루뒤면 다 까먹고 다시 불평합니다..
@@이꺼꿀-i4m그럴지언정..
참 오랜만에 보네요..어릴때 밤에
연탄갈기 싫었는데..가스냄새도..
부모님과 형제들 고생했던게
생각나네요..
50넘어 지금은 좋은집에서 살고있지만 어릴적 달동네에서 자란 제자신이 생각납니다. 저분들도 행복하게 건강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옛날 할머니집에 가면 바닥만 엄청 뜨거움.. ㅋㅋ
바닥만 뜨겁고 몸은 추움.. ㅠㅠ
뜨거운 이불에서 나가는 순간 헬임 ㅎㅎ
뜨거운거 vs 추운거의 싸움
제가 상도동 달동네 출신인데
어떤건지 느낌이 팍 오네요
조금 웃긴게 그런곳에 익숙해지고
등만 따뜻하면 북극에서도 숙면할만큼
실내공기를 무시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혼하고 냉골방에서 전기장판 하나로 잘자는 저를 와이프가 신기하게
보더군요
한국에 달동네도 많고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도 매우 많음.. 티비에 잘나가는 연예인들 나와서 실없는 소리만 해대니 현실을 아무도 모름 세끼 밥 걱정없이 살며 두다리 뻗고 누울수있는 온전한 내 집, 내 방이 있는 것만해도 엄청난 행운임
서울에 신림동 에있는 난곡동 생각나네 달동네 눈에선 하다 좁은 비탈길 난곡초등하교 그립다 사람좋고 인심좋았는데 지금은 아파트
없는 이들의 마음은 없는 이들이 알고 방의 넓이가 행복의 넓이가 아니라는 양희경 배우님의 말씀이 정말로 가슴에 깊히 와닿네요.
많이 느끼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출연하셨던 모든분들 건강하시고 지금은 그 시절보다 좋은 환경에서 지내시고계셨으면 합니다 기도합니다🙏
저도 백사마을에서 15년 살다가 19년도에 이사왔습니다. 이렇게 영상으로라도 다시보니 옛추억이 떠오르네요.. 어르신들 건강하신모습보니 마음이좋네요.
2011년 방송입니다...
아직 재개발이 안됐는지 궁금하네요 ㅠ
@@wethinkweare166715년간 살다가 19년에 이사갔다는 말입니다
@@힐링수영 노원구 사는데 지금은 아파트 밖에 없어요
@@힐링수영헉 아니네요 대부분 이사하셔서 빈집만 있구 재개발 예정이래요
서울에도 달동네가 존재하는 지 처음 알았습니다. 서울은 도시가스가 놓여서 가스 보일러를 쓸 줄 알았는데 연탄을 쓰는 곳이 있군요. 백사마을 주민들의 가장 큰 걱정이 재개발이 되는 것이라니 사연을 아니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도시를 개발하는 것이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주민분들의 표정이 밝고 인상이 좋으셔서 저도 그 정을 받는 것 같습니다. 백사마을 주민분들에게 항상 행복한 일만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한국👍 추위에도 불구하고 주민들 생각해서 끝까지 고쳐주시고 가시는 기사님들 정말 고맙고 감동입니다. 저런 분들이 계셔서 나라가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건강하세요~ God bless you~
날씨는 춥지만 동네 주민들 마음씨가 따뜻하네요~ 보는사람 마음도 따뜻해져요
그건 제3자의 입장이니까요.본인 보고 저기서 한달만 살라고 해도 못버티고 뛰쳐나올겁니다🤣
네, 맞습니다. 해요감사님^^ 그만큼 아직까지는
백사마을에 정이 많이 살아있다고보여지네요
맞아요..
가장인간답게 살 수 있는 모습입니다
저보다 더한 삶을 살아본 사람으로서 글 을 올립니다...
이런 달동네 마을이 인심도 좋고 사람 사는 냄새 가 난다 옛날 생각납니다
옛날 10번 버스 종점이네요 (저는 40살입니다) 저희 할머니가 평생 저 마을에 사셨습니다.
화장실이 없는 집이 태반이었고 눈이라도 오면 길바닥에 연탄재를 부셔서 미끄러지지 않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주 좁은 골목을 제외하면 오고가는 길이 정해져있어 동네사람들끼리 인사하는게 일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 동네 행정명칭이 중계본동이었고 배달하시는 분들은 누구나 기피하는 동네였으며 사실 불량청소년도 정말 많았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저 근처 노원우체국에서 평생 집배원으로 근무하셨어요
낭만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서울 땅값은 비싸고 밀리고 밀린 사람들이 홍수라도 피할 수 있게 산기슭에 모인 게 저 마을의 시초죠... 어마무시하게 덥고 습하고 겨울엔 춥지만 어찌되었든 침수는 되지 않았습니다.
저 마을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랬겠지만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여 몸으로 일하며 잠을 자던 보금자리가 시초 일 것입니다. 공장에서 일하다 저 마을에서 노인이 되어 공공근로를 하거나 고물을 주어 파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지금의 은행사거리(학원이 많던곳)이나 노원은 그때 한참 주공 xx단지로 아시아에서 아파트가 제일 많은 곳으로 개발이 한창이었지만 유일하게 저 동네만은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4호선 창동이나 노원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들어가는데 저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건물이 낮아지고 네온사인이 없어지던 기억이 나네요
어찌보면 현대화의 그림자 같은곳에 저희 아버지와 할머님이 사셨다는 걸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네요 여러가지 봉사활동을 해주신 분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글을 빌어 감사인사 드립니다.
91년도 친구 아버지께서 10번버스 운전하셨는데 경기공고 끝나면 딱 그시간에 지네 아버지 지나간다고 좀기다렸다가 꽁짜로 타고 갔던.. 벌써 30년이 훌쩍 세월참 그시절 그립네요 ㅎㅎ
연탄 주워가시는 할머니 말씀하시는게 참 다정하시네요.
올겨울도 따뜻하고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래요.
중계동 아파트만 많이 있는줄 알았는데 이런곳이 있는줄 몰랐네요ㅠㅠ
옛날 생각난다..
나도 어릴때 달동네서 살아봐서 고생하는 마음 너무 잘알지요ㅠㅠ
기도하겠습니다ㅠㅠ🙏
어린시절 친구가 월곡동 달동네 살았었는데 종종 놀러가보면 딱 이런풍경이었던게 아직도 머리속에 생생하네요..
달동네는 거의다 비슷비슷한듯.. 그시절이 정말 그립습니다..
캘리포냐 이런언덕위에 집지으면 수백억씩합니다...
@@dreameroh4819 한국 동네 얘기하고 있는데 캘리포니아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l2rskkd
ㅎㅎ
@@l2rskkd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ㄱ
이게 2011년 1월에 방송된 거였군요.
11년 전의 서울 중계동 모습을 영상에 잘 담았네요.
정말 잘 봤습니다.
답십리 재개발되기전에 저런 동네서 살았음
겨울이 눈내려서 한밤중이나 새벽에 눈 치우러 나가면 굉장히 운치 있고 좋음
가로등도 led가 아닌 누런 전구인데다 집집마다 내뿜는 보일러 연기가 어우러질때의 감성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물론 내리막에 눈까지 내려서 마을 어르신들이 종종 넘어지기도 하지만… 일면식도 없는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눈 치우면 서로서로 수고하십니다 덕담나눴었는데 ㅎㅎ 근데 눈내려도 자기 집앞도 안치우는 종자들은 겨울내내 안치우더라
나도 답십리 성당 건너편 현대시장 위로
두산 국민 임대에서 16년 살어는대
추억 돋네요.
139번 버스 넘어가던 촬영장 고개(아마도 채석장?)며... 얼마전 가보니 흔적도 없더군요.
@@나는나-j2x 그 찰영소 고개가 대장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 되어는대 그 아파트가 17억 한다고 하내요 동대문구
전농동에 17억 이것 누가 살까
53번 139번 뻐스 다 살어 젔지요
@@심마니-q2p 53번, 54번, 139번
53번 지나던 길에 있던 굴다리, 신답극장 아시죠? 언제적 이야기인지...
저에게는 그런게 추억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금의 모습이 추억이겠지요.
오랜만에 옛날 생각 해봤네요. 감사합니다.
@@나는나-j2x 신답 극장은 용답동 입니다
극장 없어지고 예식장 되어다가 없어지고
지금은 아파트 지어고 용답동 3/2종도 재건축 중이고 아파트 짖겠조 요즘 때을
잘못만나 아파트 짖고 있어요(3/1.)
2가 아님 오타
이 영상에 등장하신 어르신들 다 잘 지내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서울에 얼마전까지도 이런 동네가 있었다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고단한 삶을 또 이어가고 계실지….
모쪼록 건강하십시요.
어려운 사람들은 들어가지도 못하는 재개발, 흉물스런 아파트 위주의 재개발 징그럽다~ㅜ
와 11년전 영상 귀하다
70년대에는 저런 마을이 많았지!
옛날 생각나네요! ㅋㅋㅋㅋ 😆 아! 눈물나네!
제일위 교회 아랬집에서 살아는데..겨울이면 살살내려왔는데
백사마을도 재개발 논의가 한창이라던데 원주민 분들이 쫓겨나지 않고 저 지역에서 계속 사실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재개발 확정이고 내년이면 철거들어갑니다. 원주민들, 집주인은 새아파트로 받고 세입자들은 임대아파트 우선배정받게됩니다.
그지역에서 계속 살으라고요?
어서어서 벗어나도록 지원
@@Owen-lx8mo 오 집주인들 돈 벌었네요
@@p.e5794 감정 평가가 얼마안되기에 대부분 떠납니다, 추가분담금 낼 여력들이 없거든요
@@epicpangs 아ㅜㅜ 하긴 추가 부담금이 상당하겠죠
매일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정말 감사 하다는걸 느끼게 하는 방송. 제발 이런 프로그램 더 많이 만들어주세요...
자신은 따뜻하게 풍족하게 살면서 이런 방송을 자주 해달라는건 욕심같아요
겪어본 사람들은 추억이지만 안겪었으면서 이런것으로 위로 받으려한다면 ..
마음이 아프네요...
저분들이 이제는 좀더 좋은 환경에서 살되 가족과 이웃을 향한 이 따뜻한 마음을 잊지않고 살아가면 좋겠네요
어두운밤에 집집마다 켜있는 전등불빛 진짜 어릴때살던 느낌 그대로네요. 집집마다 연통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이가들면 추억속에서 산다더니 중년이 되고보니 제가 그러고 있네요.
아....마음이 아프기도하고 따뚝해지기도 합니다. 다큐3일 다시 방송되길 바랍니다.
지금 아파트만 보다가
70,80년대중반까지 저런동네 엄청 많았었지 산동네~
좁은 골목~쓰레트 집,기와집,
양옥집 정말 그립다
저 때가 좋았던것같다
아놀로그시대가 아직도 있어서
정이 듬뿍담겨ㆍ 살아남아있는 동네네요
고향이 그리워지는밤입니다
십일년전 영상 이네요 지금쯤 어떤모습을 하고 있으려나요..^^ 마음속 오래도록 저장하고픈 따뜻한 영상 입니다♡
재개발 중지..언제 재개될지 기약이 없음.10년이 지나도 그대로..
아직 똑같아요
원자력병원 뒷길지나다니다보면
와...이런데가다있네했는데...
여기였군요...몇년전에 초입은 합판으로?집인가 공장인가 새로지었던데...
11년전 영상이네....돌아 가신분도 있겟구...참 포근하게 만드는 동영상 고맙습니다
빈집도 많아서 범죄위험도 있고, 수도도 난방도 인프라가 제대로 된 것도 없고ㅠ 분명 재개발이 되야하는건 맞음ㅠ 무조건 감성적으로만 보고 저곳을 유지하자고 하는건 옳지않지.. 그저 뭔지모를 아쉬움, 옛추억들이 한켠에 남아있었는데, 영상으로나마 기록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함.
저런 달동네에서 범죄 저지르는 것들은 뇌가 없는거죠
재개발은 필요하지만 문제는 원주민 분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다는거죠.분담금 때문에 떠나는 분들이 많습니다.재개발도 무작정 재개발이 아니라 신중한 재개발이 필요해요.
재개발 되어야하는건 맞지만 한국의 재개발은 가난한 원거주자들을 내쫓기위한 방편에 불과하죠.
가난한 이웃들과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범죄가 왜?누가 저 산꼭대기까지 들어와 숨었냐
재개발 다 없애버려라 오세훈 타도한다 미친것아
어릴적 달동네 살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그시절 힘들었지만 지금 뒤돌아 생각해 보면 그리운 시절인것 같아요
추운 겨울에 찍은 영상인데 마음은 제일 따뜻한 영상이네요! 다큐3일 고마워요!
요즘은 옆집에 누구 사는지도 모르는 시댄데 옛날엔 동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이 살았었는데 참 좋은 동네내요
동네분들이 다들 표정이 밝고 인상들이좋으시네 정을 주고받으며 사는 모습들이 너무부럽네요
그럼 저기서 대대손손 사세요.^^
@@배달의기수-w7e 요즘 왜이리 모지리들이 시비털고다니냐 넌 평생 부정적으로나 살며 인생꼬세요^^
ㅋㅋㅋ백수돼살면돼
@@심종수-y7p 영상에나온분이 그런 편견으로 보지말라는뜻을 담았는데도 굳이 백수발언하고싶나 생각없이사는인간들 참많은듯
저기가서사세요 ㅋㅋ
겨울에 갑자기 들어와 언 흙벽돌로 집을 얼기설기 지었기 때문에 봄이 되니까 그 흙벽돌이 녹아 벽에서 물이 질질 흘러 도베지가 늘어지고 곰팡이가 생기고... 어느 따뜻한 봄날을 택해 벽을 새로 세우기도 했지요. 그러나 꿈이 있었기에 이를 악물고 버텨 미국까지 오게 되었지요. 꿈이 생명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요즈음입니다.
미국에서 행복하신가요
댓글을 자주 달아주셔서 보고 있습니다 여행말고는 한국을 떠난적없는 사람인데 울동네 충청도 소도시 읍내엔 미국으로 오십년전 시집갔다가 한국이 너무살기좋다고 일년이면 7.8개월 원룸살이 하다 가는 칠십대초반 언니있지요 아들 딸도 잘있는 미국가면 그렇게 오고싶어 오시는데 이제는 3년까지 살수있는거 만들어서 조그마한 연립도하나 장만 했어요. 뭐니뭐니해도 한국이 제일살기 좋은곳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우린 미국에서도 살아보고 싶은데... 장단점은 있겠지요
한마디님 건강하세요~~
@@오그래영 미국에서 멏십년 살면서 한국도 왔다갔다 하는 친구 있는데 미국서 살면 한국생각나고 한국서 살면 미국생각이 난다고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나이가들면 어렸을때 살던곳이 그립고 외국생활 오래 하신분들도 나이드시면 고향에 묻이고 싶다고 하십니다..
@@물흐르듯이-u1o
감사합니다.
미국에 산 햇수가 한국에서 산것보다 많지만 마음은 늘 한국에 있습니다.
사람이 그리운 요즘 같은 시절에 참... 가슴이 포근해지는 영상이네요.
옛날 우리 세대는 정말 다 저렇게 살았었는데... 이웃사촌... 형제자매들끼리 장성해서도 다 같이 모이고 먹고 나누고....
ㄷ
요즘은 해외로 각자 따로 국밥;;;;
불편하고 추웠지만 참 정감있고 그리운 풍경이에요. 시골마을 같다고 했는데 시골보다 서울 달동네가 저는 더 더 좋아요.^^ 단칸방에서 가족과 살 부비며 살고… 어렸을적 살던 동네는 지금 으리으리한 아파트로 꽉 차서 그 동네 갈때마다 서글픈 그리움이 들곤 하는데 중학교 졸업앨범에 학교 전경과 재개발 되기전 살던 동네가 같이 나온걸 발견해서 너무 반가워 한참을 들여다보고 눈물도 찔끔 나고 그랬네요. ㅎㅎ
그럼 저기서 대대손손 사세요.^^
@@배달의기수-w7e 어휴. 꼭 그렇게 말을.
달동네가 더좋다는건, 실제 달동네사는사람들 능욕하는거 아닌가?
예비군아저씨가 훈련병들한테 군대 그립다고 하는거랑 뭐가 달라ㅋ
조선이 그립다는 한국인들
축하드립니다♡
드라마 서울달에서만 본 달동네가 아직도 있군여 서울도심에 있는 시골풍경의 달동네가 있어서 좋으네여 시골처럼 동네분들하고 겨울에 고구마도 나눠먹고 그러시겠죠ᆢ제가 시골이 고향이라서 그런지 시골풍경이 있는 도심속 동네 엄청 좋아합니다ㆍ사라지지 않고 오래 도록 보존되었음 좋겠어여 ᆢ🤗🤗🤗
하루에 3장씩..ㅠㅠ 곧 추운 겨울이 다가 오는데, 백사 마을 좀 지원 해주세요.. 님들이 공금 횡령 안하면 저 마을 주민들 겨울 충분히 납니다.
어렸을때 우리집도 한쪽은 불때고 한쪽은 연탄때고 그랬었는데 불때는 아궁이 위에 가마솥 올리고.. 그립다
연탄가스 마시고 학교 못 감 ㅋㅋㅋ 외삼촌이 김치 국물 먹이고 일어났음 ㅋ
마지막 장면 할머니가 배웅하시면서 눈물 훔치시는게 참 마음 아프네요..
바로 옆동네 상계3동 달동네 출신입니다..거기가 제 고향이죠
재현중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고등학교 진학 할때쯤 부모님께서 열심히 모으셔서 그나마 작은 빌라 구매해 나왔는데
30여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가끔 그 시절이 생각 납니다.
이 영상 보니 더더욱 그립네요
최기현 알긋네요
@@설아름다운청년 체육선생 아니셨나요?
정년퇴임 하실때 지나신거 같은데요
@@꿀세뼘 ㅋㅋ 재현이면
최기현 선생 다 아시졍 ㅋㅋ
@@설아름다운청년 고딩때 김석기 일어선생님 하고 김병렬 수학선생님이 담임이셨거든요
최기현 선생님 그분이야 뭐 ㅋ
@@꿀세뼘 김병렬 선생은 저도 알듯
님 띠가 무슨띠세요?
가난하지만 인정과 따뜻한 미소가 가슴이 저밉니다 4~5십년 전 우리네 모습이 그대로 느껴져서 만감이 교차하며 큰 감동 받았습니다
벌써 11년 전이네요
동내 어르신들!
육남매 분들 잘지내시죠!
아련한 추억속으로 여행 잘 했습니다!
좋은 프로 감사 합니다!
와~서울에 저런곳이 있다니~~~
마음이 울컥하네요~~^^
울컥 ㅇㅈㄹ 저기 집주인들 재개발 되면 돈벼락 맞을 부자들이야
저기 월세도 거의 안나가서 집주인들은 그냥 나가 살거나 눌러사는거
글의뜻도 모르는사람들이 그냥지나가지 꼭집값이니 재개발이니 주접을 떨어싸...서울집값 모르는사람있나 참나
원댓님은 그런 생각으로 단게 아닌데
그저 돈생각만 하는 덧글 ㅋㅋ
14:05 너무 귀엽다 길냥이 그루밍해주는 시골개라니 ㅎㅎ
참 신기합니다. 살아본 적 없는 옛날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따뜻한물이 나오는것이 강명혜할머니소원이라니 힘내세요^^
연탄난로에 주전자올려서 따뜻한 보리차 마시던 옛사절...교회가면 저렇게 했었는데 학교에서도...정겹네요 어린시절생각나요.
10번버스 타면 어디든 가던때가 있었죠
입구에 똘이네떡뽂이도 기억나네요
온양상회에서 야채사구 ㅋㅋ 건너편에 신발집있구 안쪽으로 가면 호남식당 안성슈퍼 ㅜㅜ 넘 그립네요 제가 7살때 놀던곳
70년도에 내가살던곳 중계동104마을 내나이 64살 아직도 그 옛날 그 모습이네요
다큐3일 보면 마음이 꽉 채워지는 무언가가 있어요... 정말 좋아요...포근해져..
이런 옛감성 다큐 완전 따봉입니다 ㅎ
6남매보는데 눈물나게 좋다..무진장 행복해보여서!!!
괜히 눈물이 나네요
연탄 주워가는 할머니 말씀하시는거
넘~ 귀여우시고 긍정적이세요~ ^^
사진발 잘받는다고 잘찍어 달라시는 할머니 오래오래 사셔요~~^^
보는 내내 따듯함이 전해지네요
부디 중계동 모든 분들이
건강하시길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제작진들이 참 따뜻하네요. 말투에서 정이 느껴집니다.너무 편하게 잘봤어요. 추운겨울 가슴이 따뜻해지네요~ㅎ
중계국민학교 나온지가 엊그제인거 같은데 벌써 40년이 훌쩍 넘었네요 ㅠㅠ 그때가 요즘들어 더 그리워지는 동네~^^
정겨운 우리 고향을 보는것 같아 마음이 포근해지네요..
좋은집좋은차좋은환경에살아도 외롭게외롭게 사는사람들이 마음이가난해서 대인관계에도어려움이많습니다 정이있고함께함이있고추억이있고미소가떠나질않으니 정말이지 돈으로살수는 마음부자너무부럽습니다
좋은집나쁜집이어디있겠습니까 함께할수있는공간에즐거움이있음그곳이 행복이죠 추워진날씨에 건강하시길바래요~~
11년전 영상이면 많이들 세상과 등지셨겠다.
가슴이 멍먹 하네요.
나도 삼양동 달동네 출신인데, 당시 가족이 연탄가스 중독도 되어보고, 아련합니다.
그립다... 이때는 열등도 크지않고 개천용난 이웃들한테도 순수한 마음으로 축하도 해주고 우리도 그에 희망도 얻고.. 그 따뜻한 정문화가 그립다..
2011년땐 아주머니가 그당시 44살이면 지금쯤55살쯤되겠네요 제가 지금 44살이니까요^^ 추억의달동래 뭉클하네요... 지금은 재계발되었겠죠... 어릴적살던데라 너무나좋았었어요^^
10년이 넘었지만 공가만 늘어나고 재개발 중지된 상태,언제 재개발 될지 기약이 없음
_와우~저는 지금 46세ㅠ 중계동.. 본적입니다 연촌초등다닐때 산으로 등하교다녔는데..하~뭉클하네여 저는 중2때 마포구로 이사왔음요_
저희도 제가 중학교 2학년 1968년도에 상계동으로 이사 갔었지요 수출용 조화공장 하느라고 일할사람이 필요해서지요 구로동애서 하다가 구로공단이 들어오는 바람에 일할 언니들이 공장으로 이직해서 이사했어요 차편이 너무 불편하고 학교가 영등포라 멀고 고등학교는 홍제동이라 또 멀고 직장은 소공동이라 또 멀고 결혼해서 강남 논현동에 신혼살림 차리는 바람에 그 먼 거리애서 벗어 났지요
지금은 미국에 사니 집에서 더욱 멀어 졌네요 ㅠㅠ
노원구 쪽에 달동네가 있었다니, 중계,상계, 하계 15년 토박인데 왜 못봤을까..여건은 좋지 않지만 옛날감성이 느껴지고 운치가 있는 마을이네요...
영화 한 편 본 것 같다.불편함도 많지만 따뜻한 정이 넘치는 곳이네요💕💖💕💖💕💖
분명 배경은 추운 겨울인데 따뜻한 영상이네요
어릴적생각이나서 뭉클하네요 그때는 힘든것도 모르고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파트숲으로 변해버려 뭔가아쉬움이 있었는데 지금도 이모습이대로인지 궁금하네요
쌀 연탄
석유 점빵에서 구매하는 시절두 있었죠
상계 4동도 아직 달동네 있습니다.... 저기만큼 역사가 깊죠
2:50 할마시 왠지 친근하네.. ㅋㅋㅋ 할머니 건강하시고 오래사시길 바라지만. 영상이 오래전꺼같으니 .. 뭐 그레도 어디에 게시든 행복하십쑈!
음성이 참곱습니다...아나운서 동네분들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불편해도 살아가는 정감은
그대로 있네요
카메라 진짜 구도예쁘게찍으신당..
다들 매섭지 않고 하하호호 하는 분위기가 좋네요. 각자의 행복은 다르겠지만 저사람들이 불쌍한 사람이란 인식은 편견 아닌가 싶어요. 매번 스트레스랑 싸우는 사람이나 저 분들이나 뭐.. 삶의 방식이 다른거지
아주 오래전 버스10번종점이 있던 곳이네 제 친구가 쌀집이랑 오락실을 해서 종종 놀러갔던 곳
감사합니다 스승님 💐
날이 무척 춥습니다
항상 건강 유의 하시고 평안한 저녁 되세요
모두가 따뜻하게 행복하게 사는날 되길~
우와... 83년생인데
나 어렸을적 국민학교 3학년 91~93년도에 살았었는데
중계본동.. 추억이 너무많네요
국민학생때만 제일추억이 많았던곳...
꼭대기까지올라가 바퀴4개달린 말타고 다르륵 소리내며 타면서 내려오고
학교다녀오면 오른다고 땀흘리면서 올라가던거 생각나고
옆집 어떤아저씨가 참새잡았다며 참새구이해줘서 조금나눠먹었던기억도나고
버스정류장앞에오면 매운떡볶이집도 생각나고
버스한번타면 버스안에 애들만 잔뜩 탔던 그때는(애들한반이 60명가까이됨)
너무 추억이다..
중계동 104번지 정말감해가 새롭네요
시골서 공장간다고 처음 서울바디딘곳이 중계동104번지였는데 53년전 그대로네요
그때는 수도물도 없어서 계곡에가서 길어다먹고 전기불도없고 시영버스가끔
다니는데 완전 콩나물시루였지요
16살때 추억이있는곳인데
70이 다돼서 보게되네요
세월이 흐르고보니 104번지도 나만큼 늙어보이네요
ㅣ1기ㅣ4ㄱㅁ
이곳은 그때 그대로에요.
감회
어릴때부터 여기서 살았는데 이렇게 보니 또 반갑네요 백사마을.. 최근에 갔었는데 팬스가 다 쳐져잇더군요 예전엔 집집마다 빼곡히 사람들이 다 살았엇는데.. 그립습니다 그 시절..
와... 저도 78년도에 미국으로 오기전 마포아파트 뒤에있던 무허가촌 달동네에 살았어요. 버스 정류장서부터 걸어 올라가자면 3,40분이 걸리는 거리를 중, 고등학교 책가방을 들고 다녔는데 그래서인지 지금도 다리힘은 남못지 않아요. ㅋㅋ
사람냄새나는 이런 프로 넘따뜻하고 좋네요^^
나보고 살라하면
살고 싶지 않겠지먀
맘이 아련하면서
그리워 지네요
옛날 금호동 살때 분위기가 저랬음. 그래도 거긴 한강이라도 보이니까 답답하면 한강이라도 바라보며 마음을달랬는데 저긴 어떨지..
추억의 달동네.
잘봤어요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나네요 11년전에 우리할머니도 저렇게 밝으셨는데
사람들이 정말 순수하고 정이 많아 보여요~요즘 이런 분들 시골에서도 없는데..
너무도나 열악한 환경..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는 동네.. 사람 살기에는 그게 더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