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수가 춘추 친아빠, 용춘은 작은 아버지지만, 고구려의 형사취수제처럼 용수가 죽은 후 부인과 자식이 모두 동생인 용춘에게 맡겨졌는 데, 일반인(혹은 귀족이래도)이라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자식중 한명인 춘추가 왕이 돼버려서 문제가 된거죠. 뿌리부터 유학자인 김부식 입장에서는 자신의 조상이기도 하기에 오랑캐 문화를 도저히 기록할 수 없어 장난질을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 청화수님이 왕따를 당하셨어요? 저런 해석을 하시니 고루한 사학계에서 그럴만도 한데 왕따까지요? 생각은 안하고 배운거 앵무새처럼 반복하기만 하는.. 으이구 멍청한 자들... 아이를 홈스쿨링하고 있는데 역사를 국정교과서로 가르치기가 싫었는데 나중에 시험은 봐야하니깐 교과서에서 이상한 부분은 알고는 있으라고 청화수님 영상 열심히 보고 갈쳐야겠어요.
박창화씨는 30년대에 일본 왕실사서관리하는 곳에서 실지로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일본 국회도서관 에있는 당시 직원명부에서 발견되었으니, 일본이 실제로 조선에서 실존하고있던 화랑세기를 약탈해 갔다면, 물리적으로 충분히 접근 가능한곳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박창화씨의 필사본은 단순 위작이라고 보면 안된다고 봄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근현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입니다. 역사학계에서 잘 알려진 유명한 출판사에서 책도 여러 편 출판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화랑세기 필사본을 읽어본 결과, 인간의 상상력에 의존해서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저의 확신입니다. 언젠가는 진서임이 입증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제 소설은 이렇습니다. 622 ~ 629년 : 이찬 용수(형) 파진찬 용춘(동생) 존재함, 629 ~ 635년 : 이찬 용수(형) 사망 아들(춘추),부인을 대장군(용춘)에게 의탁함.. 용춘 형의 이름을 물려 받음. 아들이 없어 춘추를 양아들로 받음.(선덕여왕 거절 사유가 자식이 없음으로.. 선덕여왕 재위 579~632) 김춘추는 용수의 아들이자 자식없는 용춘의 양아들임. 635년 : 죽은 형의 등급이 아직 높음으로 용수(혹은 용춘이라고함) 이라 기록... 645년 : 용춘 이찬으로 승급..살아 있음으로 용춘(혹은 용수라고함) 이라 기록(삼국유사) 654년 : 용춘 아직 생존해 있음.. 김춘추의 아버지는 진지왕의 아들 용춘(혹은 용수라고함) 이라 기록 654년 : 죽은 친아버지 용수 문흥대왕으로 승급.. 이후 용춘은 기록 더이상 없음..
@@김원휘-t5m상식적으로 조선사편수회의 대대적인 역사왜곡, 말살이 있었고 이병도 사관 = 식민사관으로 현 주류 사학계까지 이어져 내려왔는데 비판적 의식 없이 음모론으로 치부할 것은 아니죠 오히려 강단사학만을 추종하는 사고방식이 전혀 이해가 안 됩니다 물론 일부 재야사학계의 극단적인 주장도 당연 피해야겠습니다
저도 선덕여왕 드라마는 완전 허구이고 , 화랑세기 또한 위서라고 생각하였는데 ... 이 영상을 보고 제 생각이 완전 바뀌었습니다 . 저도 나름 역사에 관심이 많고 조금 안다고 생각했는데 .. 청화수님의 역사에 대한 견해는 정말 놀랍고도 넘사벽이군요 . 정말 잘 보고 갑니다 ~ !!
화랑세기 진위서 논쟁은 제 생각엔 역사학계의 헤게모니가 걸려 있기 때문에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아요. 박창화가 소개한 이후 서강대 이종욱의 진서론과 서울대 노태돈의 위서론이 대립하는 양상입니다. 그런데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인싸 중 인싸, 학문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이 노태돈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만약 화랑세기를 진서라고 인정해버리면 권력을 쥐고 있는 쪽에선 권위에 금이 가겠죠.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진서라고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오죽하면 이종욱 교수가 '관학파'라는 말을 했겠습니까?
형 이찬 김용수가 친아버지고, 동생 파진찬 김용춘이 아버지처럼 김춘추랑 공주를 돌봤나 보네요. 장성했어도 아버지 장례 치루는 건 쉽지 않기도 하고, 슬픔 나눌 수 있는 핏줄이니까 친아버지처럼 돌봤을 건 이해 가요. 용춘에게 자식도 없었고. 그렇게 파진찬 김용춘은 세월이 흐르면서 이찬 김용춘으로 승진했고 사후엔 문흥대왕으로 추대. 후대 역사가들은 어떤 기록에선 이찬 김용수가, 어떤 기록에선 이찬 김용춘이 아버지라고 나오니까 병기한 거 아닐까 싶네요.재밌어요.
개인적으로는 진서론에 무게를 두고 있었는데, 이런 영상 올려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박창화 선생이 유언으로 자기가 쓴 책들 중에서 화랑세기는 소중하고 나머지는 모두 쓸데 없는 책들이라고 했었다죠. 발언의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요. 개인적으로는 이게 소설이라면 더 쓰기 힘들었을거라 생각합니다. 어찌됐든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내용과 어느정도 맞춰가며 창작을 해야 하는거니까요. 향가 부분도 그렇구요. 이미 소설을 그렇게 쓰신분이 유독 화랑세기만 이렇게 교묘하게 위서로 창작했다? 개인적으로는 납득이 안되거든요. 차라리 그냥 소설 화랑세기라 하고 자기가 쓰고 싶은대로 쓰지…
맞습니다! 그게 합리적인 생각입니다! 위작도 어떤 사건을 토대로 지어지는 겁니다! 밑에 댓글보면 용수 용춘이 동일이이다 아니다를 놓고 위작 여부를 얘기하는데 한두가지 사건으로 거짓 여부를 판단할수 없죠! 그런 논리면 호태왕이 삼국사기에는 13세손으로 비문에는 17세손으로 나오 는데...비문이 당대 기록이므로 삼국사기의 13손이 거짓이 되므로 삼국사기는 위작이되죠! 그렇지만 삼국사기를 위서라고 안하죠!
@@@@@@ 용수가 형이고 용춘이 동생인데 용수가 죽으면서 아들(김춘추)과 처를 맡겼으니, 죽은 이후에는 용춘이 김춘추의 아버지 역할을 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결론은 용수(형)와 용춘(동생)는 별개의 인물이다. 김춘추 입장에서는 실제 아버지(용수)가 있고 양 아버지(삼촌 용춘)가 있는 것이 되는 거죠. 역사서에 용수를 용춘이라고도 한다라고 이야기 한 부분은 2가지로 추측할 수 있는데, 첫번째는 어떤 일을 한 것이 용수가 한 것인지 용춘이 한 것인지 정확하지 않을 때 병기 표기한 것일 수도 있고, 두 번째는 춘추이다. 진지왕의 아들 용춘(또는 용수)의 아들이다. 이 부분은 양 아버지와 실제 아버지를 함께 표기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좋은 방송 잘보고 있습니다. 덕분에 많이 배우고 갑니다. 앞으로도 많은 영상 업로드 부탁드립니다. 다른 역사 채널보다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주셔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어 참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보통 역사를 하면 주류 이야기만 하지, 다른 해석들은 이야기 해주지 않으니까요. 이번 화랑세기도 관련해서 논문을 찾아보니, 실제 진서냐, 위서냐 가지고 많은 논문이 발표되지는 않았던것 같더라구요. 2010년대 논의대고 끝났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엔 진서쪽이 더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위서라고 주장한 측의 주장을 반박하는 논문이 발표된 이후 새로운 주장을 실은 논문은 없는것 같더라구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진서쪽에 가깝고, 필사본에 문제가 있다면 그건 위서/진서의 문제라기 보다는 당시 그 원본을 만든 사관의 오류/상황/실수 혹은 지금 우리의 해석이 잘못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위서론자들 처음에는 .. 마복자 제도는 파천황 이라면서 있을수 없는 일이다.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라고 했었습니다. 헌데 요즈음 같이 도덕이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는 그런 이야기 별로 없네요... 남당 박창화가 시인도 아니고 ,, 바람이 불되 님앞에 불지 말고 물결이 치되 님앞에 치지 말고... 등등 이런 멋진 내용을 향가로 창작했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 됩니다. 싫던 좋던 화랑세기뿐 아니라 남당박창화가 남긴 사료는 전세계의 소중한 유산이라고 생각됩니다.
저 용춘과 용수 동일인설이 위서론의 강력한 근거 중에 하나인데, 오히려 정반대로 진서론의 근거일 수 밖에 없는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시해주시네요. 엄청납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또하나의 위서론의 강력한 근거가 "호림공" 이야기인데요,,,호림공이냐 무림공이냐 이 주제에 대해서 다음에 한번 꼭 반박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청화수 형 동영상 보고 삘 받아서 역사책 3권 이번주에 읽음.. 이문영씨가 쓴 하룻밤에 읽는 한국 고대사, 한국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역사비평사),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돌배게 김기협).. 우리나라에 사라진 고대역사서나 아니면 유사역사학에 대한 강의도 해주세요... 가야사나.. 몇년째 듣고 있는 애청자입니다.
무려 20년전 이야기지만 그때도 위서인지 논란이 있었던 화랑세기에 대하여 고대사 전공 교수님이 화랑세기 내용은 후대사람들이 꾸며내기엔 너무 자세하고 세밀하다 따라서 전부 위서다 말하는건 문제가 있다 다만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위서고 어디가 진서인지 알 수 없는 부분이기에 사료적 가치로 쓸 수 없다,,, 지금도 가치있는 말씀으로 봅니다
11인지 확실하지 않은데, 00이 일수도 있다. 00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더라. 뭐 이런 뜻인게, 깔금하네요. 동일인이란 말을듣고, 선입견에, 다른 생각은 안들었는데, 결론을 듣고보니, 아, 저렇게도 읽히네. 무릎 탁! 칩니다. 처음에 어떤 말을 먼저 들었는지가 이렇게나 중요합니다.
감사합니다. 화랑세기 시리즈로 좋은 영상 계속 부탁드립니다
기록의 민족인 우리나라 고서가 책명만 전해지고 있고 다 사라져버려 특히 이웃나라 해괴한 거짓에 반박도 못하고 속앓이만 하는게 우리나라 역사현실인 것 같습니다
화랑세기 연구가 더 절실합니다
어쩜 이렇게 재밌있고 흥미로울 수가 있나요
청화수님 천재!!!
꼭 다시 화랑세기 다뤄 주세요^^
진짜 화랑세기편이 제일재밌어요 제발연재해주세요 선생님..
내용이 궁금한 책이 현재 사라진 화랑세기,가락국기 인데 화랑세기를 이렇게 세세하게 다뤄주시니 감동입니다
용수가 춘추 친아빠, 용춘은 작은 아버지지만, 고구려의 형사취수제처럼 용수가 죽은 후 부인과 자식이 모두 동생인 용춘에게 맡겨졌는 데, 일반인(혹은 귀족이래도)이라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자식중 한명인 춘추가 왕이 돼버려서 문제가 된거죠. 뿌리부터 유학자인 김부식 입장에서는 자신의 조상이기도 하기에 오랑캐 문화를 도저히 기록할 수 없어 장난질을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나도 그리 생각되네요.👍
충분히 설득력있는 논리입니다
신라는 흉노설도 있기때문에 민감한 주제들이 얽혀있어서 위서론으로 학자들이 전부 몰아가는게아닐까 의심해봅니다... 현실적으로도 연구 논문들 갈아엎어야되는게 많고요
이름이 춘추인 것을 보면 생물학적 아빠는 김용춘인 듯.
¹
용수와 용춘이 동일인이라면 왜 불과 200년 후 기록인 찰주본기에 용수를 문흥대왕이라고 표기하지 않았는가 라는 부분에서 머리가 띵해집니다. 대단한 게시물입니다.
문흥대왕이라고 표기안 한 찰주본기 기록자는 참형을 당했겠죠! 왕실을 능멸했으니!
서강대 사학과에서 사학계 전반으로부터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하면서까지 이런 연구를 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역사에서 다양한 시각과 가설들을 제기하고 그 가능성을 연구하는 것이 역사의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해서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생각해봅니다.
어.. 청화수님이 왕따를 당하셨어요? 저런 해석을 하시니 고루한 사학계에서 그럴만도 한데 왕따까지요? 생각은 안하고 배운거 앵무새처럼 반복하기만 하는.. 으이구 멍청한 자들... 아이를 홈스쿨링하고 있는데 역사를 국정교과서로 가르치기가 싫었는데 나중에 시험은 봐야하니깐 교과서에서 이상한 부분은 알고는 있으라고 청화수님 영상 열심히 보고 갈쳐야겠어요.
어떤 역사 유튜버가 사학계가 어쩌고 저쩌고 청 원 수 당이 중국 역사라더군요.. 사학계 단체가 천문학적 돈 쳐먹고 하는일도 없고 동북아공정 역사를 그대로 답습해 논란되기도 했고.. 중국몽 색히들 사학계에서 활동하는거 같기도 함
청화수님 이야 말로 진정한 사학자입니다
힘에의해 굴복하면 매국 식민사학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나저나 어찌 사람의 과거를 본인의 허락 없이 기재하는거죠?
화랑세기가 진본인지 정말 궁금했는데, 이걸 이렇게 풀어내시다니...
청화수님 영상은 볼 때마다 가슴이 뛰고 와와~~ 소리만 나오네요. 👍👍👍
정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내용으로 보답 드릴수 있도록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자제 분께서도 즐겁게 시청하실 수 있는 건전하고 유익한 강의를 계속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말 깊이 감사드립니다.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역사 시간에 못 배웠던걸 유투브로 보는 재미는 역시 꿀잼이네요^^청화수님 만수무강 하세요
박창화씨는 30년대에 일본 왕실사서관리하는 곳에서 실지로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일본 국회도서관 에있는 당시 직원명부에서 발견되었으니, 일본이 실제로 조선에서 실존하고있던 화랑세기를 약탈해 갔다면, 물리적으로 충분히 접근 가능한곳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박창화씨의 필사본은 단순 위작이라고 보면 안된다고 봄니다.
보면서 굉장히 똑똑해지는 방송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근현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입니다.
역사학계에서 잘 알려진 유명한 출판사에서 책도 여러 편 출판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화랑세기 필사본을 읽어본 결과, 인간의 상상력에 의존해서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저의 확신입니다.
언젠가는 진서임이 입증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도 아마추어지만 그렇게 소설을 쓴다는건 불가능해보이더군요
ㅇㅈ
맞습니다! 읽어보면 진짜라고 밖에 생각이 안들어요
저는 역사교사이고 대학교 때 노태돈 교수님 수업도 받았습니다만 화랑세기를 위서로 단정하는 노교수님의 논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더군요. 고대인의 성관념에 대한..
신라 관련된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고 흥미롭고 좋아요
제 소설은 이렇습니다. 622 ~ 629년 : 이찬 용수(형) 파진찬 용춘(동생) 존재함,
629 ~ 635년 : 이찬 용수(형) 사망 아들(춘추),부인을 대장군(용춘)에게 의탁함.. 용춘 형의 이름을 물려 받음. 아들이 없어 춘추를 양아들로 받음.(선덕여왕 거절 사유가 자식이 없음으로.. 선덕여왕 재위 579~632)
김춘추는 용수의 아들이자 자식없는 용춘의 양아들임.
635년 : 죽은 형의 등급이 아직 높음으로 용수(혹은 용춘이라고함) 이라 기록...
645년 : 용춘 이찬으로 승급..살아 있음으로 용춘(혹은 용수라고함) 이라 기록(삼국유사)
654년 : 용춘 아직 생존해 있음.. 김춘추의 아버지는 진지왕의 아들 용춘(혹은 용수라고함) 이라 기록
654년 : 죽은 친아버지 용수 문흥대왕으로 승급.. 이후 용춘은 기록 더이상 없음..
화랑세기에 용수와 용춘이 형제일 뿐만 아니라, 용수가 아들을 용춘에게 맡겼다고 기술되어 있어서, 김춘추의 아버지가 두 사람이 될 수 있는 근거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좀 더 강조하셨으면 좋을 듯하네요
저게 위서라면 저 걸 쓴자는 천재임이 틀림없다
천재가 아니라 신일걸요? 아무도 모르던 해자의 존재를 먼저 밝혀버렸으니까요
화랑세기는 진서로 생각됩니다. 기술된 당시의 성윤리는 매우 기이해서 창작이라고 여겨지지 않거든요. 현실이 더 소설같다는 표현에 걸맞지요.
책을 읽을때 "이하 ~라고"한다가 보통인데 이렇게 보면 상당한 설득력과 논리성을 갖고있네요. 화랑세기 필사본의 진위 여부는 정말 중요하고도 중요한 사안 인것 같습니다.
교양 수업 때도 위서론이 주류라고 배우고 치웠는데
이야... 진서론도 굉장히 흥미롭네요
원문을 읽어보고 싶습니다
강단사학은 믿을 게 못되요. ㅠㅠ 국정교과서에 속은 세월들 ㅠㅠ
@@Unicusmomo 전형적인 음모론자네ㅋㅋㅋ 환단고기 좋아하세요?ㅋㅋㅋㅋ
Right.
관료주의가 너무 강하죠. 상상력 제로.
@@김원휘-t5m상식적으로 조선사편수회의 대대적인 역사왜곡, 말살이 있었고 이병도 사관 = 식민사관으로 현 주류 사학계까지 이어져 내려왔는데 비판적 의식 없이 음모론으로 치부할 것은 아니죠 오히려 강단사학만을 추종하는 사고방식이 전혀 이해가 안 됩니다 물론 일부 재야사학계의 극단적인 주장도 당연 피해야겠습니다
용춘용수는 형제이고 별개 인이 맞는것 같습니다.
저도 선덕여왕 드라마는 완전 허구이고 , 화랑세기 또한 위서라고 생각하였는데 ... 이 영상을 보고 제 생각이 완전 바뀌었습니다 . 저도 나름 역사에 관심이 많고 조금 안다고 생각했는데 .. 청화수님의 역사에 대한 견해는 정말 놀랍고도 넘사벽이군요 . 정말 잘 보고 갑니다 ~ !!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 입니다. 감사합니다.
이 영상을 볼수있다는게 오늘 하루의 큰 기쁨!!
최근에 알게되서 구독하고 매일매일 듣고 있어요.너무 재미있네요ㅎ
고구려 신라 백제에 대해서 쭉 듣다보니 갑자기 가야라는 나라도 궁금해졌는데
혹시 나중에라도 알려주실수 있을까요?ㅎ
정말 매일매일 기다려져요 ㅋㅋ
항상 재미있게듣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유익한 내용입니다.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셨다니 감사합니다
진짜로 감사합니다!!!
정말 신기하네요ㅎㅎㅎ
이렇게보면 진서론이 너무 틀림없는것같아서
시간되시면 위서론도 탄탄한지 듣고싶어요~!
위서론 주장하는 학자들도 100프로 위서까진 아니다(진짜인 부분이 존재한다)라고 보고 있음.
잘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사의 무뢰한이지만 청화수님의 설명을 들으니 진서론에 무게가 갑니다. 분석력이 대단하십니다.
무뢰한은 건달 양아치란 뜻이고요 어떤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은 문외한이에요.
화랑세기의 진위여부를 비교해보는 것도 참 흥미롭네요 용수,용춘이야기처럼 화랑세기에만 있다는 향가 관련해서도 한 번 다뤄주시면 좋겠네요 ㅎ 항상 고맙습니다.
화랑세기 필사본이 나올 당시에는 향가를 제대로 이해하는 학자 단 한명만 있었다고 합니다.향가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향가는 절대로 창작불가능하다고..
용춘/용수 단순히 음의 부전현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는데 이찬과 파진찬 내용부터
와~~오늘 내용은 진짜 ㅎㄷㄷ 했습니다
화랑세기 진위서 논쟁은 제 생각엔 역사학계의 헤게모니가 걸려 있기 때문에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아요. 박창화가 소개한 이후 서강대 이종욱의 진서론과 서울대 노태돈의 위서론이 대립하는 양상입니다. 그런데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인싸 중 인싸, 학문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이 노태돈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만약 화랑세기를 진서라고 인정해버리면 권력을 쥐고 있는 쪽에선 권위에 금이 가겠죠.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진서라고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오죽하면 이종욱 교수가 '관학파'라는 말을 했겠습니까?
말씀 잘하셨습니다. 더구나 한국은 학문에 뭔 위계질서를 그렇게 따지는지 , 서울대에서 나오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하지요. 다양한 의견을 용납하지 않아요.
"용수(또는 용춘이라 한다)의 아들...."
즉, 춘추가 용수의 아들인지 용춘의 아들인지 모른다는 말!
그러게 신라시대에는 남녀 혼인관계가 지금의 윤리적 기준과 달랐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여.. 당시엔 삼촌하고도 결혼하고 여자도 재혼하고 그런시절이었으니..
청화수님 오늘도 잘 들었습니다
화랑세기 진/위서론 주장 계속 이야기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신라 왕조에서 석씨가 사라져버린게 궁금한데 나중에 한번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김씨한테 왕권 뺏기고 6두품 이하로 강등된 것이 아닌가~
아 완전 재밌어요ㅋㅋㅋ 사실 진서론 쪽 주장도 궁금했는데 자료 찾기가 어려웠거든요. 꿀잼!
형 이찬 김용수가 친아버지고, 동생 파진찬 김용춘이 아버지처럼 김춘추랑 공주를 돌봤나 보네요. 장성했어도 아버지 장례 치루는 건 쉽지 않기도 하고, 슬픔 나눌 수 있는 핏줄이니까 친아버지처럼 돌봤을 건 이해 가요. 용춘에게 자식도 없었고. 그렇게 파진찬 김용춘은 세월이 흐르면서 이찬 김용춘으로 승진했고 사후엔 문흥대왕으로 추대. 후대 역사가들은 어떤 기록에선 이찬 김용수가, 어떤 기록에선 이찬 김용춘이 아버지라고 나오니까 병기한 거 아닐까 싶네요.재밌어요.
10시간이 넘어도 좋으니 얘기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위서론과 진서론 얘기ㅜㅜ 화랑세기 재밌어요
그동안 긴가민가 했는데 오늘 보니 "화랑세기는 위서가 아니다"라는 결론.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어 고맙습니다.
계속해 주세요!
몇 년전 화랑세기 책을 사서 읽어 본적이 있다. 난 학자는 아니지만 진서라고 믿는다. 이런걸 어떻게 소설로 쓸 수 있겠는가? 오늘 다시 읽어 보아야 겠다.
여러생각을 하게하는 영상이네요.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불면증인데 잘때 켜놓고 잠.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용춘과 용수 논리 너무 훌륭합니다.
포석정도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많은 신하들과 더불어 유흥을 즐기기에는 너무 규모가 작죠.
드디어 올것이 왔다
진위여부를 떠나서 접근하는 방식과 해설이 엄청 흥미롭네요 넘모나 재밌는것
좋게 봐주셔서 언제나 너무 깊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내용으로 보답드릴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진정 참 역사학자이십니다
다음 화랑세기 영상도 얼른 올려주세요... 현기증나네요 너무 재미있어요ㅜ
위서라는 말만 듣고 (진서론의 근거도 잘모르고...) 위서로만 알았는데, 진서론의 근거를 들어보니 이것은 진서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설명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진서론에 무게를 두고 있었는데, 이런 영상 올려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박창화 선생이 유언으로 자기가 쓴 책들 중에서 화랑세기는 소중하고 나머지는 모두 쓸데 없는 책들이라고 했었다죠. 발언의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요.
개인적으로는 이게 소설이라면 더 쓰기 힘들었을거라 생각합니다. 어찌됐든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내용과 어느정도 맞춰가며 창작을 해야 하는거니까요. 향가 부분도 그렇구요.
이미 소설을 그렇게 쓰신분이 유독 화랑세기만 이렇게 교묘하게 위서로 창작했다? 개인적으로는 납득이 안되거든요. 차라리 그냥 소설 화랑세기라 하고 자기가 쓰고 싶은대로 쓰지…
뭔지 몰라도 화랑세기가 진짜였으면 좋겠어요
ㅎㅎㅎㅎ ㅎㅎㅎㅎ
청화수님 사랑합니다 💜
진서론에 한 표 찍습니다.
오늘 내용 들어보니 화랑세기 필사본을 너무 폄훼해온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필사본의 근거로 든 것들이 너무 파워있는데요. 구지는 진짜 충격이네요
깊이있는 내용에 감사합니다
역사라고 해봐야 저는 조선시대를 많이 접해서 다른시대는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있었는데,,,그걸 확 깨주시네요
너무 재미있습니다~~
일본 황실을 압수수색하고 싶은데 ㅎㅎ.
가라앉기 전에 환수해야
황실은 무슨... 왕실이죠
나도 동~~감입니다
윤산군 보내면 잘할수 있겠죠??
너무재밌는데요...이 분 컨텐츠를보면서 못내 아쉬운 역덕질을 하고있습니다ㅎㅎ고맙습니다
다 떠나서 거짓말로 지어내기에는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구체적임.
맞습니다! 그게 합리적인 생각입니다! 위작도 어떤 사건을 토대로 지어지는 겁니다! 밑에 댓글보면 용수 용춘이 동일이이다 아니다를 놓고 위작 여부를 얘기하는데 한두가지 사건으로 거짓 여부를 판단할수 없죠! 그런 논리면 호태왕이 삼국사기에는 13세손으로 비문에는 17세손으로 나오
는데...비문이 당대 기록이므로 삼국사기의 13손이 거짓이 되므로 삼국사기는 위작이되죠! 그렇지만 삼국사기를 위서라고 안하죠!
@@김성환-f8m 탁월한 의견이십니다.!
화랑세기가 위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너무나 이질적이고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사건이 구체적이고 기록이 방대하다는 겁니다. 필사본자가 당시에 가졌던 지식으로는 불가능한 창작이므로 위서일 수 없습니다.
몆백년 흐른 후 이책 저책 모아다 놓고 짜집기 하면 저렇게 됩니다...
그냥 만담 잡설집합책 으로 이해하세요
@@kevinkim1448그런 짜집기로만보기엔 월성해자나 포석사같이 진짜로 검증된 부분이 있다니까 뭔소리냐 얘는
위서가 아니고 진서같아요
신라의 결혼제도 족내혼이니
남녀평등도 보이고
아주 디테일한 기록들이 위서일수
없죠
@@@@@@ 용수가 형이고 용춘이 동생인데 용수가 죽으면서 아들(김춘추)과 처를 맡겼으니, 죽은 이후에는 용춘이 김춘추의 아버지 역할을 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결론은 용수(형)와 용춘(동생)는 별개의 인물이다. 김춘추 입장에서는 실제 아버지(용수)가 있고 양 아버지(삼촌 용춘)가 있는 것이 되는 거죠. 역사서에 용수를 용춘이라고도 한다라고 이야기 한 부분은 2가지로 추측할 수 있는데, 첫번째는 어떤 일을 한 것이 용수가 한 것인지 용춘이 한 것인지 정확하지 않을 때 병기 표기한 것일 수도 있고, 두 번째는 춘추이다. 진지왕의 아들 용춘(또는 용수)의 아들이다. 이 부분은 양 아버지와 실제 아버지를 함께 표기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오래 기다렸습니다~ ^^
좋은 방송 잘보고 있습니다. 덕분에 많이 배우고 갑니다. 앞으로도 많은 영상 업로드 부탁드립니다.
다른 역사 채널보다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주셔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어 참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보통 역사를 하면 주류 이야기만 하지, 다른 해석들은 이야기 해주지 않으니까요.
이번 화랑세기도 관련해서 논문을 찾아보니, 실제 진서냐, 위서냐 가지고 많은 논문이 발표되지는 않았던것 같더라구요. 2010년대 논의대고 끝났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엔 진서쪽이 더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위서라고 주장한 측의 주장을 반박하는 논문이 발표된 이후 새로운 주장을 실은 논문은 없는것 같더라구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진서쪽에 가깝고, 필사본에 문제가 있다면 그건 위서/진서의 문제라기 보다는 당시 그 원본을 만든 사관의 오류/상황/실수 혹은 지금 우리의 해석이 잘못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설명 듣고 보니 진서라는 생각이 드네요
참.분석잘했습니다.
고맙다는.말밖에..
저도 진서론을 믿고 있습니다. 일본을 통해 진서론이 밝혀지면 좋겠네요. 일본을 압도해야 그렇게 될겁니다.
그럴일이 있겠냐…
제발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을테니 화랑세기의 존재와 저 필사본이 진짜인지 확인만 해주면 좋겠습니다 ㅠㅠ 제발
KBS 역사스페셜보다...더 흥미롭네요.....😉😉😉
이걸기다림, 잘듣겠습니다!
난 백제서기 일본왕실에 있다고 추측합니다.
백제서기 뿐만아니고 발해역사서 고구려역사서 심지어 신라역사서도 지금 소실됫는데 나머지것들중에도 잇을수도잇음
청화수님 중간에 나온 신라 5묘에서 태조대왕은 누구를 말하는건가요? 진흥왕인가요? 김알지? 혹은 성한왕인가요? 김알지의 정체와 금석문에 가끔 나오는 시조 성한왕이라는 분에 대해서도 다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꾸벅 궁금하네요
소름끼치네요.. 그 동안 오독한 긧을 아무도 몰랐단 말인가
더 다뤄주세요~~ 궁금해요
일본에 있다는 화랑세기 원본은 현재 행방을 알 수 없는건가요? 이걸 찾아서 가져와야....
청화수님 감사합니다
용수 아들이 용춘에 양자로 들면 아버지도 동일인물이 아닌 둘인거죠. 둘이니 둘다 같이 표기하는게 맞는거 같습니다.
이게 맞다고 봅니다. 양자 들이는 거는 흔한 일이고 양반 집은 종종 있었던 일입니다.
위서론자들 처음에는 .. 마복자 제도는 파천황 이라면서 있을수 없는 일이다.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라고 했었습니다.
헌데 요즈음 같이 도덕이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는 그런 이야기 별로 없네요...
남당 박창화가 시인도 아니고 ,,
바람이 불되 님앞에 불지 말고
물결이 치되 님앞에 치지 말고...
등등
이런 멋진 내용을 향가로 창작했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 됩니다.
싫던 좋던 화랑세기뿐 아니라 남당박창화가 남긴 사료는 전세계의 소중한 유산이라고 생각됩니다.
마복자 풍습은 인류학적인 조사에서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위서론자들이 성에 대한, 성관념, 결혼 제도에 대한 고정된 인식으로 위서론을 뒷받침하고 있는데 견강부회입니다.
정말 재미있어요.
그거다하려면 10시간에도 다 못한다고하셨는데 20시간도 괜찮으니까 해주세여
청화수님 여기서 더욱나가서 박창화의 남당유고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진서에 한표입니다. 유학자 김부식 입장에서는 신라가 이해할 수 없는 풍습이 많아서 많은 부분을 누락시키지 않았을까요? 화랑세기가 가공이나 창작이었다 하더라고 상상력만으로 이렇게 쓰기 어려울 것입니다
화랑세기는 창작이 불가능한 수준
완전 설득됩니다. 존경
저 용춘과 용수 동일인설이 위서론의 강력한 근거 중에 하나인데, 오히려 정반대로 진서론의 근거일 수 밖에 없는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시해주시네요. 엄청납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또하나의 위서론의 강력한 근거가 "호림공" 이야기인데요,,,호림공이냐 무림공이냐 이 주제에 대해서 다음에 한번 꼭 반박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으악 올라왔다!!!!!!!!
대단하십니다. 머리가 말랑말랑한 사람들이라면 설명을 듣고는 위서라고 절대 상상하지 못하겠네요!
위서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나요?
화랑세기 진위서론 20부작으로 해주세요~
이편이 정말 재밌네요.
딴건 모르겠고 진짜 백제서기 고구려 신집5권 신라 국사같은 역사서 하나만 나와도 최고의국보급이자 역사를 다시 만들수 있을텐데 어디갔을까요
일본 왕실 도서관에 있을겁니다.
정치와 별개로 친한적인 전 일왕을 초청하고 잘 지내야할 이유 인 듯 합니다.
남당유고에 그런 기록이 있긴 하던데..
전 못 믿겠더군요
@@isshin1 진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남의품에 있더라도 현존만 하고 있다면..
@@trr3062 있을거라 믿어요
@@europa318 정 관심이 있으시다면 정재수가 쓴 , , 세 권을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를 필사한 박창화가 마찬가지로 필사한 삼국의 사초략이라 하더라구요. 단, 역사가 아니라 소설로 보셔야 할 것 같네요.
저도 진서에 한표 합니다
청화수 형 동영상 보고 삘 받아서 역사책 3권 이번주에 읽음.. 이문영씨가 쓴 하룻밤에 읽는 한국 고대사, 한국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역사비평사),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돌배게 김기협).. 우리나라에 사라진 고대역사서나 아니면 유사역사학에 대한 강의도 해주세요... 가야사나.. 몇년째 듣고 있는 애청자입니다.
저는 별개 인물로 보입니다. 강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무려 20년전 이야기지만 그때도 위서인지 논란이 있었던 화랑세기에 대하여 고대사 전공 교수님이 화랑세기 내용은 후대사람들이 꾸며내기엔 너무 자세하고 세밀하다 따라서 전부 위서다 말하는건 문제가 있다 다만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위서고 어디가 진서인지 알 수 없는 부분이기에 사료적 가치로 쓸 수 없다,,, 지금도 가치있는 말씀으로 봅니다
혹시 마이크 뭐 사용하시나요??
구독합니다 감사합니다
11인지 확실하지 않은데, 00이 일수도 있다. 00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더라. 뭐 이런 뜻인게, 깔금하네요.
동일인이란 말을듣고, 선입견에, 다른 생각은 안들었는데, 결론을 듣고보니, 아, 저렇게도 읽히네. 무릎 탁! 칩니다. 처음에 어떤 말을 먼저 들었는지가 이렇게나 중요합니다.
화랑세기 필사본 진서론이 논리적으로 결함이 없어 보입니다.
사실을 입증할 만한 과학적 증거가 발견되면 인정하면 되는데, 지금의 강단에 서 있는 기득권을 가진 놈들은 그런 학자적 양심이 없는 놈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