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성경162화_마가복음10장1-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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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5 янв 2025
- 한 젊은이가 예수님을 찾아와 무릎을 꿇었다. 그를 묘사하는 표현은 세 가지, 우리 모두가 부러워할만 한 것이다.
마태와 마가는 그를 젊고 재물이 많다고 표현했고, 누가는 그가 관원이라고 했다. 그냥 요즘으로 공무 원이라고만 해도 부러움을 살만 하지만, 이 관원이 라는 헬라어 표현 ‘아르곤’은 통치자나 군주라는 표현이다. 최대한 약하게 표현해도 한 기관의 책임 자를 이야기 한다. 이 사람의 배경을 모르니 ‘금수 저’라고 표현하긴 어렵고, ‘엄친아’정도가 적절할 것 같다. 젊은 나이에 이미 모든 것을 다 이룬 그런 사람이다.
심지어 이런 사람이 겸손하기까지 했다.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기꺼이 무릎을 꿇었으니 말이다.
그런 그가 영생, 참된 삶에 대해 주님께 묻고 있다. 이미 뒤에 나오는 것처럼 그는 그 어려운 모세의 율 법 하나도 놓치지 않고 순종해온 놀라운 사람이다. 어린 시절부터 율법을 지켜 흠이 없다고 대답하는 그를 주님께선 사랑스럽게 바라 보셨다. 거의 말이 진실되다는 뜻이다.
나 혼자의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거의 사도 바울 급 의 인물이다. 베드로 요한 그리고 야고보 앞에 이 사 람의 이름이 올라갈 만한 사람인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12사도 를 택하신 이후 이런 특채가 있었나? 예수님의 이런 특채는 부활 이후 사도 바울을 부르실 때까지 없었 다. 사도 바울을 놀라운 반전의 드라마를 가진 사도 라고 한다면 그는 다른 대척 점에선 빛나는 사도로 역사에 남게 되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듯이 그는 실종되었다.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눠주고…….”
이 한마디가 그를 근심하게 했다. 그는 슬픈 기색으 로 되돌아 간다. 솔직히 나는 그를 탓할 마음은 없다. 그는 젊고 총명하고 가진 것이 많았다. 다른 사도들 중에서도 나름 먹고 사는 걱정은 안 하던 사람들은 있었지만 이처럼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 의 고민과 망설임을 이해한다.
마가는 분명 이 젊은 지도자의 이야기를 “어린아이 와 같은 순전한 믿음”의 반대의 예로 사용하고 있다. 이 젊은 관원의 이야기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가 는 것”의 조건을 말씀해 주고 있다. 어린 아이는 구 원의 조건에 맞는 합당한 상태를 보여주고, 이 젊은 이는 그 반대의 상태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따지 고 계산 할 것이 많은 오늘 우리는 어쩌면 구원에서 조금씩 더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근심하며 돌아가는 그를 바라보시며 주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낙타가 바늘 귀에 들어가기”라는 극단적인 비유는 예수님의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낙타가 어떻게 바늘 귀로 들어간다는 말인가?
물론 주석에 따라서는 이 바늘 귀를 큰 성문 옆에 달 린 작은 문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문은 작아서 짐 을 실은 낙타는 지나갈 수 없다. 이 젊은 지도자의 모습과 제법 일치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 시는 문맥을 좇아보면 이건 분명히 터무니 없는 불 가능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와 부자 청년을 극단적으로 대비한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 각자 계산이 빨라진 제자들을 꼬집 고 계신다. 그물과 아버지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 던 믿음을 환기 시키시고 계신 것이다. 2000년 전 의 제자들 뿐만 아니라 오늘 2019년을 살아가는 수 많은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말이다.
오늘 날 대한민국을 부자청년들의 시대라고 말해도 될까? 불황과 실업의 그늘이 드리워져 부자라는 단 어가 어울리진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을 등 지고 근심 어린 모습으로 어딘가로 향하는 젊은 이 들이 너무 많다. 주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길 간 절히 소망해 본다.
하나님은 善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