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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이성복 1 그 여자에게 편지를 쓴다 매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내 동생이 보고 구겨버린다 이웃 사람이 모르고 밟아 버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길 가다 보면 남의 집 담벼락에 붙어 있다 버드나무 가지 사이에 끼여 있다 아이들이 비행기를 접어 날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가져갈 때도 있다 한잔 먹다가 꺼내서 낭독한다 그리운 당신...... 빌어먹을, 오늘 나는 결정적으로 편지를 쓴다 2 안녕 오늘 안으로 나는 기억(記憶)을 버릴 거요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왜 그런지 알아요?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요 나는 선생이 될 거요 될 거라고 믿어요 사실, 나는 아무것도 가르칠 게 없소 내가 가르치면 세상이 속아요 창피하오 그리고 건강하지 못하오 결혼할 수 없소 결혼할 거라고 믿어요 안녕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편지 전해 줄 방법이 없소 잘 있지 말아요 그리운...... - 이성복,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중. * 이 시의 경우, 2 부분, "안녕/오늘 안으로 나는 기억을 버릴 거요" 이후 후반부에 '또 다른 한 편의 시'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이 경우에도 "안녕", 이렇게 가볍게 시작하고 "오늘 안으로", 이어가지요. 다시, "안녕/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이런 식으로 반복하고 변주하면서 리듬을 만드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시에서 "안녕/오늘 안으로", 이 문장이 세 번 반복되고 있는데 그건 시인이 다분히 의도한 것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만큼 급박한 사정이라는 것이죠. "안녕/오늘 안으로", 무언가를 해야 하거나, 무언가를 하지 말아야 할 것 같은 게 우리 삶에는 있으니까요. 그런데 아주 나중에 생각해보면 또 "안녕/오늘 안으로", 꼭 해야만 할 것 같았던 그 일들은 사실 그날 꼭 안 해도 되던 것들이 대부분인 것 같아요. 이런 묘한 감정들, 서로 부딪히는 감정들이 가장 극대화되는 게 바로 '사랑'의 일들, '연애'의 일들이겠지요. 그래서 탄생하는 게 이런 이상하고도 정확한(?) 문장입니다. "잘 있지 말아요". "그리운".
기념식수 이문재 형수가 죽었다 나는 그 아이들을 데리고 감자를 구워 소풍을 간다 며칠 전에 내린 비로 개구리들은 땅의 얇은 천정을 열고 작년의 땅 위를 지나고 있다 아이들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으므로 교외선 유리창에 좋아라고 매달려 있다 나무들이 가지마다 가장 넓은 나뭇잎을 준비하려 분주하게 오르내린다 영혼은 온몸을 떠나 모래내 하늘을 출렁이고 출렁거리고 그 맑은 영혼의 갈피 갈피에서 삼월의 햇빛은 굴러 떨어진다 아이들과 감자를 구워 먹으며 나는 일부러 어린왕자의 이야기며 안델센의 추운 바다며 모래사막에 사는 들개의 한살이를 말해 주었지만 너희들이 이 산자락 그 뿌리까지 뒤져본다 하여도 이 오후의 보물찾기는 또한 저문 강물을 건너야 하는 귀가길은 무슨 음악으로 어루만져 주어야 하는가 형수가 죽었다 아이들은 너무 크다고 마다 했지만 나는 너희 엄마를 닮은 은수원사시나무 한 그루를 너희들이 노래부르며 파놓은 푸른 구덩이에 묻는다 교외선의 끝 철길은 햇빛 철 철 흘러넘치는 구릉지대를 지나 노을로 이어지고 내 눈물 반대쪽으로 날개도 흔들지 않고 날아가는 것은 무한정 날아가고 있는 것은 - 이문재,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중. * 어떤 슬픔은 활자를 통과하면서 눈부시게 빛난다. 활자의 빛은 슬픔의 원형질을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그 슬픔이 거느리고 있는 그늘을 격렬하게 부각시키는 방법으로 슬픔을 위로한다. 이러한 방법은 가령, 시가, 고통을 살아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박진성)
늘 힘내세요
네 :)
시가 고통을 살아내는 방식 멋진표현
🎄
: )
백음악이 너무 크니
시인님 목소리 듣기가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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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이성복
1
그 여자에게 편지를 쓴다 매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내 동생이 보고
구겨버린다 이웃 사람이 모르고 밟아 버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길 가다 보면
남의 집 담벼락에 붙어 있다 버드나무 가지
사이에 끼여 있다 아이들이 비행기를 접어
날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가져갈 때도 있다 한잔 먹다가
꺼내서 낭독한다 그리운 당신...... 빌어먹을,
오늘 나는 결정적으로 편지를 쓴다
2
안녕
오늘 안으로 나는 기억(記憶)을 버릴 거요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왜 그런지
알아요?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요
나는 선생이 될 거요 될 거라고 믿어요 사실, 나는
아무것도 가르칠 게 없소 내가 가르치면 세상이
속아요 창피하오 그리고 건강하지 못하오 결혼할 수 없소
결혼할 거라고 믿어요
안녕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편지 전해 줄 방법이 없소
잘 있지 말아요
그리운......
- 이성복,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중.
*
이 시의 경우, 2 부분, "안녕/오늘 안으로 나는 기억을 버릴 거요" 이후 후반부에 '또 다른 한 편의 시'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이 경우에도 "안녕", 이렇게 가볍게 시작하고 "오늘 안으로", 이어가지요. 다시, "안녕/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이런 식으로 반복하고 변주하면서 리듬을 만드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시에서 "안녕/오늘 안으로", 이 문장이 세 번 반복되고 있는데 그건 시인이 다분히 의도한 것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만큼 급박한 사정이라는 것이죠. "안녕/오늘 안으로", 무언가를 해야 하거나, 무언가를 하지 말아야 할 것 같은 게 우리 삶에는 있으니까요.
그런데 아주 나중에 생각해보면 또 "안녕/오늘 안으로", 꼭 해야만 할 것 같았던 그 일들은 사실 그날 꼭 안 해도 되던 것들이 대부분인 것 같아요. 이런 묘한 감정들, 서로 부딪히는 감정들이 가장 극대화되는 게 바로 '사랑'의 일들, '연애'의 일들이겠지요. 그래서 탄생하는 게 이런 이상하고도 정확한(?) 문장입니다.
"잘 있지 말아요". "그리운".
박진성 시인님 반갑습니다
시로 시집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음성으로 시를 짓는 작문비법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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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식수
이문재
형수가 죽었다
나는 그 아이들을 데리고 감자를 구워 소풍을 간다
며칠 전에 내린 비로 개구리들은 땅의 얇은
천정을 열고 작년의 땅 위를 지나고 있다
아이들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으므로
교외선 유리창에 좋아라고 매달려 있다
나무들이 가지마다 가장 넓은 나뭇잎을 준비하려
분주하게 오르내린다
영혼은 온몸을 떠나 모래내 하늘을
출렁이고 출렁거리고 그 맑은 영혼의 갈피
갈피에서 삼월의 햇빛은 굴러 떨어진다
아이들과 감자를 구워 먹으며 나는 일부러
어린왕자의 이야기며 안델센의 추운 바다며
모래사막에 사는 들개의 한살이를 말해 주었지만
너희들이 이 산자락 그 뿌리까지 뒤져본다 하여도
이 오후의 보물찾기는
또한 저문 강물을 건너야 하는 귀가길은
무슨 음악으로 어루만져 주어야 하는가
형수가 죽었다
아이들은 너무 크다고 마다 했지만
나는 너희 엄마를 닮은 은수원사시나무 한 그루를
너희들이 노래부르며
파놓은 푸른 구덩이에 묻는다
교외선의 끝 철길은 햇빛
철 철 흘러넘치는 구릉지대를 지나 노을로 이어지고
내 눈물 반대쪽으로
날개도 흔들지 않고 날아가는 것은
무한정 날아가고 있는 것은
- 이문재,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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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슬픔은 활자를 통과하면서 눈부시게 빛난다. 활자의 빛은 슬픔의 원형질을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그 슬픔이 거느리고 있는 그늘을 격렬하게 부각시키는 방법으로 슬픔을 위로한다. 이러한 방법은 가령, 시가, 고통을 살아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박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