裸人(나인)은 노래 제목이고 부캐같은 애칭 그건 dearro입니다 김원준씨가 Dear 친애하는 이란 단어를 좋아하셨는데 4집앨범에 노래 제목으로도 있고 싸인하실때 받으시는 분들 이름으로 Dear ㅇㅇㅇ 라고 써주셨어요 그러다보니 팬들 또한 Dear Hero라고 당시 게시판에서 김원준님을 친애하는 우리들의 영웅이다 이런 의미를 담아 부르게 되었고 dear+hero=dearro가 된. 작사작곡에 사용하시는 자매품 부캐명들로는 indik 김과장 등도 있어요 indik로 하기 시작한 이유는 라디오에서 말씀하신적 있는데 당시 걸그룹에게 노래를 주실때 김원준작사작곡이라고 하면 스스로 생각하기에 옛날사람 느낌이다 이렇게 생각하셔서 부캐명으로 하셨다고 합니다. M4곡도 부캐명으로.
9집때까지도 김원준 팬들 화력이 상당했기 때문에 (당시 인터넷투표를 하던 시기였고 보이/걸 그룹이 대세이던 시기였는데 그때도 인터넷 사전투표에서만큼은 3위까지 하는 저력이 있었던. 2천년대 초반 엠넷 케이엠티비 인터넷 투표 등이 남아있는 자료들 봐도 대부분 높아요 1,2위는 초인기 아이돌그룹이고. 9집까지도 팬들 떼창과 화력이 남아있어 이어서 10집을 내시면 되는데 딱 이때 스튜디오 문제로 생활고..겪던 시기가 오기 시작해서 당장 해결해야하는 문제로 제작비 감당이 안되셨을..그래서 솔로앨범을 내지 않으셨을거 같네요 제작 매니지먼트 홍보 등이 되는 소속사에 계셨다면 부담이 덜가고 상황이 달랐을수도
슈가맨은 이미 제작진이 시즌2때부턴 방송컨셉을 아예 추억소환으로 바꾼다고 했었죠 쥬얼리가 나왔던것도 그래서고. 김원준은 이미 불후의명곡에 전설로서 나온데다 히든싱어 모창자들을 모집중이라 옛날목소리가 아닌 현재의 목소리근황이 필요해서 겸사겸사 나온거고 김원준 나온 편이 애초 히트곡부자 특집이라 했고..
쇼 때는 s사가 친화적인게 아니라 k사가 타사 엠시를 본다고 심사점수에서 확 깎은거지요 m사에서도 쇼가 1위후보 엠넷 케이엠티비 케이블도 1위는 했는데 가요톱텐이 사전점수에서 낮춤 당시 기사에는 가수가 특정 음방 엠시를 보게되면 사전점수 감점은 감수해야한다는 kbs측 기사.. 그리고 김원준에 친화적이라기보단 sbs 10대위주 mbc 20대 kbs 10대가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 김원준팬층이 10대가 주가 되던 5집까지는 s사에서 더 강할수밖에 없었고 팬층이 나이 들어 20대 되자 mbc에서 더 강했어요 부탁도 mbc 음캠 거기선 6-8위까지 갔고 s사가 10-11위로 더 낮았던.
저번에 김원준편도 보았구 이번 풀 버젼도 정독 했습니다. 제가 첫번째 최애가수였고 엄청난 영향력과 몰락까지 다 지켜보았습니다. 1집 ~ 5집까지는 정말 영향력이 엄청났습니다. 개인적으로 김원준의 시대가 저물었던 이유는 꼽자면 첫번째 5집까지는 너무 센세이션했고 스타일 , 노래 , 얼굴 모든게 완벽했습니다. 하지만 김원준 몰락은 5집부터라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김원준의 5집부터 솔로가수들은 퇴보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1996년도 5집부터 무슨일이 있었냐면 대뷔 또는 인기가수들은 대부분이 그룹 또는 혼성그룹이였고 솔로가수의 자리는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던 시점이라고 봅니다. 두번째 김원준은 그 당시 가창력보다는 솔직히 완벽한 외모로 떳다고 할수 있습니다. 덤으로 노래도 톡톡 튀는 하이틴스러운 느낌이 강했고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하지만 6집부터는 더이상 하이틴 느낌이 먹히지가 안았죠. 김원준에 6집이 나온 시기가 1997년도였는데 그 당시 핫 했던 가수들 목록이 H.O.T , 영턱스클럽 , 쿨 , 터보 , 룰라 , 주주클럽 , 언타이틀 , UP , 클론 , 지누션 등등 그룹 가수들의 전성시대이자 한국 가요계의 르네상스라고 불리오던 시대였고 솔로가수들의 생존법은 이 당시에 애절한 발라드 이지훈 양파 임창정 같은 스타일이거나 독보적인 댄스머신 유승준 같은 스타일이 아니면 정말 살아남기 힘들었다고 봅니다. 세번째 90년대 후반부터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영향때문인지 양아삘 나는 패션 얼굴 노래 느낌이 인기가 많았습니다. 약간 반항아스러운 느낌이 있어야 대중들의 이목을 끌었고 김원준 같이 90년대 초반에 홍콩배우같은 완벽한 외모가 10대들에게는 다소 부담스럽거나 느끼하게 느껴졌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러니하게 완벽한 외모로 정상에 올랐지만 90년대 후반 6집부터는 그 완벽한 외모때문에 주목을 못받았다고 볼수 있습니다. 이 당시에 원빈도 느끼하게 생겼다고 다들 싫어 했지만 가을동화에서 양아삘 나는 연기에 많은 인기를 얻었죠. 네번째 시대를 앞서 가는 패션 + 노래감각에서 점점 매니아층에 가까운 노래와 평범한 패션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6집부터는 노래도 평범했고 댄스도 평범했다고 봅니다. 물론 1등하는 가수들의 비해서 그랬다는 느낌적인 느낌입니다. 힙합춤이 유행하던 시절에 율동같은 춤선은 혼성그룹를 제외하고 다른 가수들은 춤을 잘 춘다 또는 멋있다 느낌이 들어야 대중들의 주목을 끌었다고 봅니다. 암튼 이래나 저래나 저번에 슈가맨에서 봤지만 지금은 정말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것 같아서 정말 보기 좋습니다.
1.창공 하면 마지막회가 생각나네요 하필 그때가 삼풍백화점 참사날 이라 그래서 전 이거 어떻게 끝났는지 분명 봤는데 기억 안나요~ 2. 김원준은 9집 이후로 아예 연기자로 전향 했다면 이란 아쉬움이 있어요 칼 갈고 나와 인정 받았다면 이란 아쉬움이... 3. 홍길동 특집 왠지 (유승준 임창정 강성훈 박유천 빅뱅 김현중 이선희 {이승기도?} 등등 {용준형 정일훈은 못 비빔 수준 차이} 떠오르네요 ㅋㅋㅋ
김원준은 뼛속까지 음악이라 연기랑은 거리가 멀어요 성향상 드라마 출연조차 음악을 계기로 출연한것이거나 (ex 넝쿨당 o.s.t도 김원준이 몇곡 참여. 걸스데이가 부른 드라마주제곡 넝쿨송도 김원준 작사작곡) 배역도 그런쪽 창공도 일년간 제작진이 설득해 찍었던 작품이고 주제가를 만드는데 흥미가 있었을뿐 2000년대 RNA라고 특출로 나온 작품이 있는데 이것도 o.s.t 몇곡을 김원준이 만들고 출연은 2회분까지만 잠깐 나오기로 했는데 제작진이 한장면만 더 찍어요 이런식으로 가다 뭔가 배역 비중이 꽤 되어버린 작품 그 드라마방영중 당시 kmtv 김원준편 방송에서 원랜 2회분만 잠깐 나오기로 했는데 그렇게 되었다고 이후 드라마 출연엔 음악 녹음실 스튜디오 문제로 이때는 좀 생활고가 있어 출연했을거고 그때 음악과 관련해 방향을 찾은게 교수직일거예요 모든건 음악 한길로 귀결 쭉...
카운트다운 광고장에서 첨 봤는데.. 그 당시 제일기획산하 오렌지…. 뭐 정확하게 기억나지않지만 .. 그 제작사에서 올인했음. 음반 발매에 맞춰 광고 뜨고 정말 한달도 안되어서 바로 스타가 되더라구요. 물론 성실했고 가창력도 외모가 한 몫했지만요^^
뜨는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ㅋㅋㅋ
넌내꺼 반주도 넘 좋아요~
캬 김원준 개 잘생겻지 작사작곡에 노래도 잘하지
김원준 부탁이랑 세상그누구보다 최고
발라드 명곡임
라디오처럼 틀어놓고 듣기 좋아요 😊
영상 재밌게 잘 봤습니다
7집의 처음이야라는 노래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
즐겁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준이형은 못참지
김원준은 멜로디의 시작부터 끝까지의 어울림이 꽉 차 있죠
흔히 특정 후크멜로디가 좋아도
나머지가 기억에 잘 안남는 경우들도 많은데
김원준이 만든 곡들은 그냥 전체가
유기적으로 잘 짜여진
전부 핵심이 될만큼의 멜로디로
잘 녹아있음
지금들으면 좋은 곡들이 너무많아요~~~
엥.. 얄개는 김원준님 경험이 아니고
어릴적 영화 얄개시리즈 내용을 복고풍 가사로 재밌게 풀어낸거랬어요 ㅋㅋㅋ
👍
裸人(나인)은 노래 제목이고
부캐같은 애칭 그건 dearro입니다
김원준씨가 Dear 친애하는 이란 단어를 좋아하셨는데 4집앨범에 노래 제목으로도 있고
싸인하실때 받으시는 분들 이름으로
Dear ㅇㅇㅇ 라고 써주셨어요
그러다보니 팬들 또한
Dear Hero라고 당시 게시판에서 김원준님을 친애하는 우리들의 영웅이다 이런 의미를 담아 부르게 되었고 dear+hero=dearro가 된.
작사작곡에 사용하시는
자매품 부캐명들로는
indik 김과장 등도 있어요
indik로 하기 시작한 이유는
라디오에서 말씀하신적 있는데
당시 걸그룹에게 노래를 주실때 김원준작사작곡이라고 하면
스스로 생각하기에 옛날사람 느낌이다 이렇게 생각하셔서
부캐명으로 하셨다고 합니다.
M4곡도 부캐명으로.
9집때까지도 김원준 팬들 화력이 상당했기 때문에
(당시 인터넷투표를 하던 시기였고
보이/걸 그룹이 대세이던 시기였는데
그때도 인터넷 사전투표에서만큼은 3위까지 하는 저력이 있었던. 2천년대 초반
엠넷 케이엠티비 인터넷 투표 등이 남아있는 자료들 봐도 대부분 높아요
1,2위는 초인기 아이돌그룹이고.
9집까지도 팬들 떼창과 화력이 남아있어 이어서 10집을 내시면 되는데 딱 이때 스튜디오 문제로
생활고..겪던 시기가 오기 시작해서
당장 해결해야하는 문제로
제작비 감당이 안되셨을..그래서 솔로앨범을 내지 않으셨을거 같네요
제작 매니지먼트 홍보 등이 되는
소속사에 계셨다면
부담이 덜가고 상황이 달랐을수도
공방 뛰는 화력은 당시 무대영상만 봐도 느껴집니다 ㅋㅋ 떼창이 어마어마함
덕분에 원준이형 9집 wato ,4집 comma
노래 너무 좋네요
넌 내꺼도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노래 안무 패션 지금 보니 신선하네요
4집 콤마 진짜 숨은 띵곡임 ㅋㅋㅋ
파멸99는 지금 들으니 완전 취향
7집앨범이 발매당시 처음에는 연령제한이 없었는데
어느날부터 갑자기 이 앨범에 빨간딱지로
청소년 청취불가 딱지가
크게 붙어있었던..
해당음반은 19세 미만 판매 금지 및 청취 불가라고 써있던.
아마 이 곡때문이지 않을까 하네요
앨범판매량은 3집까지가 350만장+이고
세상은 나에게 음반과
4집이 각각 50만장 넘었고
3집이후 앨범이라
선주문 출하량부터가 많았고 4집은 50만장이 넘었다는 신문기사가 활동중에 있었어요
여기까지 벌써 450만인데
5집이 70만장 넘습니다
7집이 20만장가량
550만은 가뿐하게 넘죠
삼성 오렌지레이블
LG LG미디어
SK 메탈포스
CJ 녹스
각 기업에서 음악부서를 신설해
소속 가수들을 선발 했는데
오렌지의 김원준을
제외하고 다 신통치 못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동아기획 지구 아세아 서라벌 등의
음악전문회사가 가요계에선 군림하고 있었기도 했고
광고회사에서도 음반 제작했는데 유일하게 제일기획이 성공했죠
슈가맨은 이미 제작진이 시즌2때부턴 방송컨셉을 아예 추억소환으로 바꾼다고 했었죠
쥬얼리가 나왔던것도 그래서고.
김원준은 이미
불후의명곡에 전설로서 나온데다 히든싱어 모창자들을 모집중이라
옛날목소리가 아닌 현재의 목소리근황이 필요해서
겸사겸사 나온거고 김원준 나온 편이 애초 히트곡부자 특집이라 했고..
너없는동안도 얄개도
김원준님 경험은 아닙니당..
70~80년대 얄개영화
고등학생이 나이 속이고
대학생과 빵집 미팅소개팅하는
완전 복고적인 코믹 순박한 이미지의 그림인건데 받아들이는 방향이 시대가 다르다보니..
쇼 때는
s사가 친화적인게 아니라
k사가 타사 엠시를 본다고 심사점수에서 확 깎은거지요
m사에서도 쇼가 1위후보
엠넷 케이엠티비 케이블도 1위는 했는데 가요톱텐이 사전점수에서 낮춤 당시 기사에는 가수가 특정 음방 엠시를 보게되면 사전점수 감점은 감수해야한다는 kbs측 기사..
그리고 김원준에 친화적이라기보단
sbs 10대위주
mbc 20대
kbs 10대가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 김원준팬층이 10대가 주가 되던 5집까지는 s사에서 더 강할수밖에 없었고 팬층이 나이 들어 20대 되자 mbc에서 더 강했어요
부탁도 mbc 음캠 거기선 6-8위까지 갔고 s사가 10-11위로 더 낮았던.
편집본 3번은 본 것 같은데 풀버전도 다른 재미가 있네여.
맛땡이 시리즈 2탄도 해주세요ㅎㅎ
저번에 김원준편도 보았구 이번 풀 버젼도 정독 했습니다.
제가 첫번째 최애가수였고
엄청난 영향력과 몰락까지 다 지켜보았습니다.
1집 ~ 5집까지는 정말 영향력이 엄청났습니다.
개인적으로 김원준의 시대가 저물었던 이유는 꼽자면
첫번째
5집까지는 너무 센세이션했고 스타일 , 노래 , 얼굴 모든게 완벽했습니다.
하지만 김원준 몰락은 5집부터라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김원준의 5집부터 솔로가수들은 퇴보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1996년도 5집부터 무슨일이 있었냐면 대뷔 또는 인기가수들은 대부분이 그룹 또는 혼성그룹이였고
솔로가수의 자리는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던 시점이라고 봅니다.
두번째
김원준은 그 당시 가창력보다는 솔직히 완벽한 외모로 떳다고 할수 있습니다.
덤으로 노래도 톡톡 튀는 하이틴스러운 느낌이 강했고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하지만 6집부터는 더이상 하이틴 느낌이 먹히지가 안았죠.
김원준에 6집이 나온 시기가 1997년도였는데 그 당시 핫 했던
가수들 목록이 H.O.T , 영턱스클럽 , 쿨 , 터보 , 룰라 , 주주클럽 , 언타이틀 , UP , 클론 , 지누션 등등
그룹 가수들의 전성시대이자 한국 가요계의 르네상스라고 불리오던 시대였고
솔로가수들의 생존법은 이 당시에
애절한 발라드 이지훈 양파 임창정 같은 스타일이거나
독보적인 댄스머신 유승준 같은 스타일이 아니면 정말 살아남기 힘들었다고 봅니다.
세번째
90년대 후반부터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영향때문인지 양아삘 나는 패션 얼굴 노래 느낌이
인기가 많았습니다. 약간 반항아스러운 느낌이 있어야 대중들의 이목을 끌었고
김원준 같이 90년대 초반에 홍콩배우같은 완벽한 외모가
10대들에게는 다소 부담스럽거나 느끼하게 느껴졌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러니하게 완벽한 외모로 정상에 올랐지만 90년대 후반 6집부터는 그 완벽한 외모때문에
주목을 못받았다고 볼수 있습니다.
이 당시에 원빈도 느끼하게 생겼다고 다들 싫어 했지만
가을동화에서 양아삘 나는 연기에 많은 인기를 얻었죠.
네번째
시대를 앞서 가는 패션 + 노래감각에서
점점 매니아층에 가까운 노래와 평범한 패션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6집부터는 노래도 평범했고 댄스도 평범했다고 봅니다.
물론 1등하는 가수들의 비해서 그랬다는 느낌적인 느낌입니다.
힙합춤이 유행하던 시절에 율동같은 춤선은 혼성그룹를 제외하고
다른 가수들은 춤을 잘 춘다 또는 멋있다 느낌이 들어야 대중들의 주목을 끌었다고 봅니다.
암튼 이래나 저래나 저번에 슈가맨에서 봤지만 지금은 정말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것 같아서 정말
보기 좋습니다.
1.창공 하면 마지막회가 생각나네요 하필 그때가 삼풍백화점 참사날 이라 그래서 전 이거 어떻게 끝났는지 분명 봤는데 기억 안나요~
2. 김원준은 9집 이후로 아예 연기자로 전향 했다면 이란 아쉬움이 있어요 칼 갈고 나와 인정 받았다면 이란 아쉬움이...
3. 홍길동 특집 왠지 (유승준 임창정 강성훈 박유천 빅뱅 김현중 이선희 {이승기도?} 등등 {용준형 정일훈은 못 비빔 수준 차이} 떠오르네요 ㅋㅋㅋ
김원준은 뼛속까지 음악이라 연기랑은 거리가 멀어요
성향상 드라마 출연조차
음악을 계기로 출연한것이거나
(ex 넝쿨당 o.s.t도 김원준이 몇곡 참여. 걸스데이가 부른 드라마주제곡 넝쿨송도 김원준 작사작곡)
배역도 그런쪽
창공도 일년간 제작진이 설득해 찍었던 작품이고
주제가를 만드는데 흥미가 있었을뿐
2000년대 RNA라고 특출로 나온 작품이 있는데 이것도 o.s.t 몇곡을 김원준이 만들고 출연은 2회분까지만 잠깐 나오기로 했는데
제작진이 한장면만 더 찍어요 이런식으로 가다 뭔가 배역 비중이 꽤 되어버린 작품
그 드라마방영중
당시 kmtv 김원준편 방송에서
원랜 2회분만 잠깐 나오기로 했는데 그렇게 되었다고
이후 드라마 출연엔
음악 녹음실 스튜디오 문제로
이때는 좀 생활고가 있어 출연했을거고
그때 음악과 관련해 방향을 찾은게 교수직일거예요
모든건 음악 한길로 귀결 쭉...
김민종도 더블루앨범3개합쳐야 500만장밖에안되네용 김원준 450만장대단하긴하다
김원준 3집까지가 벌써 350만 넘었고
솔로앨범 합산 550만 넘음
풀버전도 좋습니다만 홍길동전 후속작 빨리 만들어내야합니다. 소포모어 징크스를 유쾌한 반란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