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누르하치가 개인능력에다 시대적 천운도 다 타고난 인물이었음. 당시 명이 막장에 다 기울어가긴했는데 산해관에서 후금세력을 잘 막고 있어서 명이 망할 수준까진 아니었음. 진짜 이자성 때문임. 그런데 이거와는 별개로 실제 여진과 일본이 한판 붙었다면 어땠을지 궁금하긴 함. 전통적으로 싸움에 능한 북방유목민족과 실질적으로 역사상 북방민족과 접해본 적이 없던데다 나름 전국시대를 거치며 싸움에 단련되고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이 제대로 붙는다면 어떨지 개인적인 호기심이 생김. 임진왜란때 일본군이 압록강 월경해서 여진부락 습격하고 잠깐 접촉해본적이 있었다지만 두 세력이 제대로 전력모아서 붙어본다면 그 결과가 어떨지 궁금하긴 함.
임진왜란(1592-1598) 당시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을 때, 후금(훗날 청나라)의 창시자 누르하치(努爾哈赤, 1559-1626)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과 누르하치의 행보를 보면, 이런 소문이 나올 만한 맥락이 존재합니다. 1. **누르하치의 등장과 조선-후금 관계**: 누르하치는 16세기 말부터 후금을 창건하며 점차 명나라에 대한 세력을 강화했습니다. 조선은 명나라와 오랜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금과 조선의 관계는 긴장 상태였습니다. 2. **임진왜란 중 누르하치의 입장**: 임진왜란 동안 후금은 명나라나 조선과 크게 얽히지 않았습니다. 누르하치는 주로 만주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왜구를 정벌하겠다고 말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으며, 조선을 침략하겠다고 한 것도 당시 임진왜란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3. **후금의 성장과 조선에 대한 압박**: 후금이 강성해지자 조선과의 관계가 악화되었습니다. 특히 1620년대에 들어서면서 후금은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명에 협조한 조선을 적대시하게 되었고, 결국 1627년 정묘호란과 1636년 병자호란으로 이어졌습니다. 정리하자면, 임진왜란 중 누르하치가 조선을 침략하거나 왜구를 정벌하겠다고 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후금이 성장하면서 조선과의 관계가 악화된 것은 사실이며, 이는 이후 후금의 조선 침략으로 이어졌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여진족 일부가 조선을 도와주겠다고 제안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니탕개(尼湯介, Nikan Wailan)**라는 여진족 지도자와 관련이 있습니다. 니탕개는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조선에 도움을 제안하며, 조선군과 협력하여 왜군과 싸우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하지만 조선 측은 그를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니탕개는 여진족 내부에서도 반란을 일으키는 등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의 도움 제안은 의심스러웠습니다. 결국, 조선은 그의 제안을 거절했고, 이후 니탕개는 명나라와도 갈등을 빚으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나중에 명나라 군대에 의해 진압되었고, 1596년에 처형되었습니다. 따라서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한 여진족 지도자는 **니탕개**였습니다.
이때 이미 조명연합군 자체가 다국적연합군인데 여진도 동참시켜서 막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다만 전투에 가세하지않고 정탐목적이 있을 수 있으므로, 전장에 한해 기동을 시켜야겠죠. 그리고 여진의 군사력이 강대하고 본인 스스로가 스탠스를 낮추는데 선조도 무작정 여진을 배척할게 아니라 액션만으로라도 달래는 모양새였다면 추후 전쟁의 화는 피했을거라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누르하치의 동생 슈르하치와 관계를 잘 조종해서 누르하치를 견제했다면 명의 멸망도 막았을거고 여진세력의 폭증도 막았겠지요. 애초에 조선의 왕에게 이런것들을 수행할 능력이 없으니 아쉬울뿐입니다.
아직 건주만 장악하고 있었을 뿐 (9부족 3만 연합군과 싸우지도 않아) 여진국 내부 최강자도 아니었던 누르하치가 조선에 구원군 보내겠다고 떠들어댄 건 당연 언플 근데 나중에 등장하는 과대평가갑 광해군을 역폴님은 어떻게 평가하실지 궁금하네요. 주제가 명청교체기라 광해군의 내정보단 첩보 활동과 외교가 주가 되긴 할텐데
사실 만주족 여진족은 유전적으로나 모든면에서 우리민족하고 가장 가까운 친척이나 마찬가지임... 한족들도 공공연하게 만주족은 한국인하고 비슷하다고 얘기함..이건 내가 한족한테 직접들은 얘기임. 그런 친척같은 사람들을 오랑캐라고 멸시하고 명나라나 섬기는 조선의 왕족과 양반사대부는 일찍없어져야할 민족의 원흉들이었음
고구려와 발해의 백성들이지요. 근데 최치원은 발해를 금수의 나라라고 했고, 조선 후기에는 호락논쟁을 거론하면서 근본이 다른 짐승이라고 비하했지요 ㅠㅠ. 이성계는 여진을 포섭하려고 했지만.. 후대에 잘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이 우리 민족의 통한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고구려, 백제, 신라 3국 중에서 고구려는 흔적도 안 남고 중국에 의해 소멸되어가고, 백제는 일본으로 이어졌는데, 신라인 우리는 백제와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되어서 서로 이를 갈고 있는 지금 형국이 너무 개탄스럽습니다. 진짜 불구대천의 원수는 중국인데.. ㅠㅜ
태종 이래 조선이 여진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오랑캐 ㅉㅉ'라는 말로 퉁칠 수 없다는 걸 아실텐데 너무 간단하게 표현한 것 같아 아쉬움이 드네요. 3:13 내용을 들어보면 작가님도 조선이 여진에게서 느꼈던 위협과 그에 기반한 실리적인 판단하에 거부했음을 아시는 건 분명해보이는데. 그래도 잘 봤습니다. 오늘도 역시 재밌네요.
수백년을 우리 변경을 약탈하고 공격했던 애들이고 끊임없이 국경 분쟁을 일으켰던 애들인데 그냥 오랑캐라 무시했다 하면 잘못된 말이지. 왜 여진무시했냐 어쩌는 애들한테 미래인이 와서 북한을 용서해야 되느니 아니면 일본을 용서해야 하느니 하면 니가 뭘아냐 우리 감정을 알기나 하냐 발끈할듯
갠적으로 왜구 토벌 한다고 말한건 블러핑이었을거라고 봅니다. 왜냐면 누르하치 집안은 할아버지때부터 여진족중에서 명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친명파 여진족이었던... 이성량의 군대한테 할아버지+아버지가 살해당했지만 이성량이 손자인 누르하치한테 잘해준거 보면 실수로 죽인거라고 생각하는.... 그렇다는건 누르하치 입장에선 자기의 충섬심을 명나라에 보여야 할 행동이 필요했다고 봅니다.아직 임진왜란 때는 세력이 미약했으니까 누르하치 말대로 정말로 명나라가 여진족 약화 시킬생각으로 야 우리가 요동군 출발 할라면 발배의 난 땜시 걸리거든 니네가 먼저 가서 막고 있어 라고 하면 엄청 당황하면서 만력제 한테 그놈은 고려천자더냐? 명의 천자더냐? 라고 까고서 조용히 지냈을거라고 봅니다. 이 당시에 출병할 병력 수준은 안되었으니까요 정말로 출병할 생각이 있었으면 나중에 중원 입관전 조선이랑 전쟁해야하니 조선으 도로망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서 떠든거일수도 있다 봅니다. 누르하치가 정말로 명의 압박이나 자발적으로 출병해서 싸웠으면 여진입장이나 왜군입장에서나 서로에 대한 엄청난 충격이었을거라고 봅니다. 왜군 애들은 대규모의 기병이 없는데 기병대가 와서 휩쓰는 애들이 있다는 거에 놀랄거라 봅니다. 이 당시에 왜군 애들 기병은 편자도 못쓰던게 사실이니까요 쏘고 튀고 쏘고 튀다가 칼 들고 장창진을 무너트리는 애들이 수천기나 있으니 뭐 저런 놈들이 있냐? 하고 놀랬을 거라 봅니다. 건주애들 입장에선 왜군의 조총병+장창진에 대해서 엄청 놀라지 않을까 합니다. 활을 쏘고 튀고 대기병 돌격을 하는데도 버티고 조총의 폭음에 놀라워 할거 같거든요 실제 역사에서 건주애들이 신충일한테 말해듯이 제일 탐내던게 조총이었다고 압니다. 싸웠으면 서로에 대해서 엄청난 충격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대체 역사 소설에서도 이 시점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있는데 건주나 왜국의 지배자가 된 건주국왕 누르하치 태정대신+막부쇼군이 된 도쿠가와 모두 서로의 병종을 탐내서 조선을 중계로 하여 서로의 병종을 교환 하는 내용이 나오거든요 건주국 입장에선 중원 입관할려면 공성+단병접전을 담당할만한 전문 집단이 필요했고 에도 막부가 보내온 반 막부파 무사들을 모아서 왜군팔기로 개편하고 건주국왕 친위대로 삼을정도로 총애 하더라고요 에도막부 입장에선 병력 감축을 시행한 상황이라서 소수 정예 병력이 필요한데 건주의 슈르하치 아들이었던 아민이 왜국에 망명해오니 기뻐하면서 받아주는 얼마나 기뻤던지 도쿠가와가 자기의 막내딸(서녀)를 아민에게 시집보내서 사위로 삼고 자기 원래 성씨인 마쓰다이라를 쓰게 허가해주고 영지도 내려줬습니다. 이 소설에선 사르후 전투 패전 이후에 요동을 공식적으로 누르하치한테 할양 해주고 건주 군왕이란 이름으로 책봉까지 해줬던.....
@@행복회로-y8l 차이나가 떠오르는... 국가라고요? ㅋㅋㅋ 차이나 묻으면 망하는거 자명하고, 차이나의 횡포로 인해 시름시름 앓는 국가가 몇인데 눈가리고 아웅하나요? 블리자드도 차이나 덕분에 망하고, 차이나 노리다가 망하고. 차이나와 연을 안맺으면 그게 사는거 아는데 무슨. 지금 게임이랑 영화계 사업마저도 기술갈취 때문에 차이나 버린지 오래됩니다. 한국에서도 한국 기술 보유자가 차이나에 팔려는거 간신히 막았고, 지금 강원도 유적지에 차이나 타운 세우는 것도 난리 아니구만 이딴 나라와 무슨 친하게 지내자뇨. 할 짓이 없어 자국 망하게 하고 차이나 크게 하는 짓거리에 동조하십니까?
여진족=만주족을 만주에서 스스로 멸족시킨 위대한 위인~~~누르하치!!! ......................,.역사를 모르면 저런 위인이 나와 (중국과 전혀 다른) 자기 민족을 스스로 멸족시킴!!!!!!~~~~우리 한민족이 만세를 이어 꼭 유념할 역사의 교훈이다!!!!!
차라리 조선이 여진족을 잘 이용해서 누르하치를 받아들여서 이용했다면 상황이 달라질수도 있었다......제 아무리 누르하치가 후금을 건국했다 해도 조선과 충돌은 없었을것이자......정묘호란(1627:후금) 병자호란(1636:청나라)의 두 호란때 수모를 당하지는 않았을것이다......
정말 착하시네요ㅎ왜 사람들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보면서 교훈을 얻지 못하죠ㅎ 십자군전쟁 때 아군이라고 생각할수있는 십자군이 콘스탄티노블을 지나면서 콘스탄티노블과 영토를 어떻게 유린했죠ㅎ 그리고 임진왜란은 조선이 적을 물리치고 이긴 전쟁입니다 전쟁 후반인데 굳히 도움없어도 될것 같네요ㅎ
여진족이 부대를 이끌고 한반도 남쪽 까지 와서 전투를 한 다는 것은 여진이 조선의 주요 지형을 자기들 원하는 대로 정찰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후에 여진이 조선을 약탈을 하거나, 대규모 침공을 할 때 더 용이하게 됩니다. 조선은 원래 여진을 지속적으로 공격했고 조선이 여진에게 한 것 만큼 여진도 조선에 원한이 있었을 터이니 누르하치의 조선 파병은 자기 실리를 챙기기 위한 명분이었을 것이고, 조선 입장에서는 차라리 받지 않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singhdodo4053 그건 님들의 상상이고 그렇게 합리적인 판단이라도 했음 좋겠다는 바램 그 이상 이하도 아님. 조선은 원래 오랑캐라하면 질색하고 무시했음. 나중에 청나라를 정복하겠다고 군사 훈련까지 시켰던 조선인데 ㅋㅋㅋ 실록에 정확히 오랑캐놈들 시러서 안받은것을 그런식으로 상상해서 변호해주지 마쇼 역겨움.
오랑캐 누르하치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수길이에게 고마워 해야할까나 아니면 제위기간동안 거의 조회를 나온적이 없고 가만히 놔둔 만력제에게 고마워해야하나 아니면 견제 여진부락을 박살내준 선조에게 고마워 해야하나 참 운도 좋네
누르하치는 진짜 인물임 아버지 할아버지가 명 손에 죽었는데 참고 또 참음 큰그림을 보는 사람인듯 참다가 기회가 왔을때 잡는 것까지 보면 진짜 무서운 사람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그런사람이죠.
본인도 정말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세계사적 천운도 타고 났지. 당시 동북아의 흐름을 보면 누르하치 보고 황제가 되라고 하늘이 명해 등 떠민 수준.. 명나라도 그렇게 쉽게 갈 나라가 아니었는데 ㅋㅋ
@@dubu999 이자성이 아니였음 누르하치는 중원을 재패하지 못했을지도요. 그 후세가 했을수도 있죠
진짜 누르하치가 개인능력에다 시대적 천운도 다 타고난 인물이었음. 당시 명이 막장에 다 기울어가긴했는데 산해관에서 후금세력을 잘 막고 있어서 명이 망할 수준까진 아니었음. 진짜 이자성 때문임. 그런데 이거와는 별개로 실제 여진과 일본이 한판 붙었다면 어땠을지 궁금하긴 함. 전통적으로 싸움에 능한 북방유목민족과 실질적으로 역사상 북방민족과 접해본 적이 없던데다 나름 전국시대를 거치며 싸움에 단련되고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이 제대로 붙는다면 어떨지 개인적인 호기심이 생김. 임진왜란때 일본군이 압록강 월경해서 여진부락 습격하고 잠깐 접촉해본적이 있었다지만 두 세력이 제대로 전력모아서 붙어본다면 그 결과가 어떨지 궁금하긴 함.
애초에 거기에 누르하치 조상이 이성계 수하 출신인데... 그래도 초반에는 조선에 우호적인 입장이었는디...
고생하셨습니다. 자주뵙겠습니다. 응원합니다. 좋은하루되세요
역사폴드님 영상 최애합니다. 다른 다큐영상처럼 지리하게 끌고가지도 않으면서 요점만 찝어서 만드는 진한 맛이 정말 좋네요. 앞으로도 좋은영상 부탁드립니다~~
누르하치 진짜 치밀하고 계획적인 인물이네요
역시 패권을 잡을 자격이 되는 것인가요?
역시. 역사는 과거이자 미래.
설명 진짜 잘하신다. 빠져듬
교훈 :영웅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잘보라고
누르하치가 임진왜란이라는 기회삼아서 성장한것을 영웅은 이렇게 성장하는거임
그런데 저 시대에는 여진족 변발이 손가락 하나 만큼만 남겨놓는 더 극단적인 헤어스타일 아니었나요? 저건 청나라 후기 머리라던데
네 금전서미라고 뒷통수에 동전크기 정도로만 남기고 모두 민 채 그 남긴 머리는 쥐꼬리처럼 얇게 땋았죠. 다만 달달이 머리가 자랄때 마다 민다는게 생각보다 귀찮아서 보통은 금전서미는 유지한채로 어느정도 머리가 긴 채 생활했다고는 하네요.
이성계 의형제가 여진족인데 그렇게 속국 행세를 하고 싶을까
막상 여진족도 파벌끼리 증오가 심해서
항상재미있고배우는게많네요.
아무리 가까운 민족이라도 국경을 접한 두 나라가 평화공존 하는것은 불가능하죠.
그래서 "원교근공"이라는 말도 있고...
약간 그림에 고증오류가 있는데 저런 황비홍식 변발은 청나라말기 스타일임. 누르하치 당시에는 빡빡이 상태에서 뒷통수에 한가닥으로 꼬리처럼 있는 변발. 이 유튜버분은 어차피 다른 사진이나 그런거에 트레이싱하시는 걸듯
인내하며 때를 기다리는게 쉽지 않은건데 대단한 사람이네.
나래이션이 좋아졌네요 !!
전국시대 들을 때는 TTS 듣는 기분이였는데
청태조 누르하치는 스스로 비파를 연주할 정도로 예술에 조예가 있었군요.
항상 재밌게 잘 감상합니다^^~
잼 있다
추석이 여진족 명절이기도 했나보군요. 추석때 이미 여진쪽이 추웠나봅니다. 방한화를 신고 있었다니.
재밌게 들었습니다
임진왜란(1592-1598) 당시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을 때, 후금(훗날 청나라)의 창시자 누르하치(努爾哈赤, 1559-1626)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과 누르하치의 행보를 보면, 이런 소문이 나올 만한 맥락이 존재합니다.
1. **누르하치의 등장과 조선-후금 관계**: 누르하치는 16세기 말부터 후금을 창건하며 점차 명나라에 대한 세력을 강화했습니다. 조선은 명나라와 오랜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금과 조선의 관계는 긴장 상태였습니다.
2. **임진왜란 중 누르하치의 입장**: 임진왜란 동안 후금은 명나라나 조선과 크게 얽히지 않았습니다. 누르하치는 주로 만주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왜구를 정벌하겠다고 말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으며, 조선을 침략하겠다고 한 것도 당시 임진왜란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3. **후금의 성장과 조선에 대한 압박**: 후금이 강성해지자 조선과의 관계가 악화되었습니다. 특히 1620년대에 들어서면서 후금은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명에 협조한 조선을 적대시하게 되었고, 결국 1627년 정묘호란과 1636년 병자호란으로 이어졌습니다.
정리하자면, 임진왜란 중 누르하치가 조선을 침략하거나 왜구를 정벌하겠다고 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후금이 성장하면서 조선과의 관계가 악화된 것은 사실이며, 이는 이후 후금의 조선 침략으로 이어졌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여진족 일부가 조선을 도와주겠다고 제안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니탕개(尼湯介, Nikan Wailan)**라는 여진족 지도자와 관련이 있습니다.
니탕개는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조선에 도움을 제안하며, 조선군과 협력하여 왜군과 싸우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하지만 조선 측은 그를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니탕개는 여진족 내부에서도 반란을 일으키는 등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의 도움 제안은 의심스러웠습니다.
결국, 조선은 그의 제안을 거절했고, 이후 니탕개는 명나라와도 갈등을 빚으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나중에 명나라 군대에 의해 진압되었고, 1596년에 처형되었습니다.
따라서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한 여진족 지도자는 **니탕개**였습니다.
이때 이미 조명연합군 자체가 다국적연합군인데
여진도 동참시켜서 막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다만 전투에 가세하지않고 정탐목적이 있을 수 있으므로,
전장에 한해 기동을 시켜야겠죠.
그리고 여진의 군사력이 강대하고 본인 스스로가 스탠스를 낮추는데
선조도 무작정 여진을 배척할게 아니라
액션만으로라도 달래는 모양새였다면 추후 전쟁의 화는 피했을거라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누르하치의 동생 슈르하치와 관계를 잘 조종해서
누르하치를 견제했다면 명의 멸망도 막았을거고
여진세력의 폭증도 막았겠지요.
애초에 조선의 왕에게 이런것들을 수행할 능력이 없으니 아쉬울뿐입니다.
오랜만에 1등 찍습니다.
늘 이런 재밌고 유익한 영상 만들어주셔서 감사하고
제가 역사로 진로를 잡아서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음주 부터 고1이라 중간 고사 시험대비를 시작해서
1.2등을 못 할 수도 있어요.
제가 댓글 못달아도 보고있다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려의 왕온이 삼별초 지도자 승화후 맞나요?
도요토미 히데요시만 강조 되는데 진짜 야심가는 누르하치 였구나!!!
병자호란을 잘 대비해서 막고 전쟁에서 승리 했다면 분명 동북아시아의 큰 주인이 됐을텐데!!
누르하치 정말 탐나는 인물이네 저 당시 선조가 광계토 태왕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였다면 어르고 달래서 누르하치와 그 세력까지 꿀꺽했겠다.
10:16 충일이형 개 멋지네... 충일이형... 보고 싶어요...
우리민족이 고구려 발해 고려때
차라리 합쳐서 여진족을 우리 문화권에 들어 왔으면 현재에
어떻게 되었을까
누르하치를 받아줬더라면 청일전쟁이 몇백년 당겨졌을거 같다...
트로이목마 수작질이라고 생각해서 안받아준거죠
트로이목마로만 판단한것이 패착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
금나라와 후금도 김씨의 후예!
그때 누르하치가 2만병력으로 왜군과 붙었다면 어찌되었을까요?
이거 그림 다 손으로 그리신거죠???
저는 다케다 신겐 그림이 가장 맘에 드네요
저는 누르하치가 그림이 멋지네요 ㅎㅎ
다른 영화나 그런 장면 위에 그린걸로 보입니다
Good~~~
아직 건주만 장악하고 있었을 뿐 (9부족 3만 연합군과 싸우지도 않아) 여진국 내부 최강자도 아니었던 누르하치가 조선에 구원군 보내겠다고 떠들어댄 건 당연 언플
근데 나중에 등장하는 과대평가갑 광해군을 역폴님은 어떻게 평가하실지 궁금하네요.
주제가 명청교체기라 광해군의 내정보단 첩보 활동과 외교가 주가 되긴 할텐데
14:55 누르하치는 뇌물을 바칠때 물건만 보낸것은 아님
누르하치는 1593년에
약 1만의 군사로 9부족 여진,몽골 3만 연합군을 격파해 위명을 떨쳤죠.
그래서 당시 중국인들은 누르하치의
병사들을 일본군보다 한수 위로 쳤습니다.
사실 만주족 여진족은 유전적으로나 모든면에서 우리민족하고 가장 가까운 친척이나 마찬가지임... 한족들도 공공연하게 만주족은 한국인하고 비슷하다고 얘기함..이건 내가 한족한테 직접들은 얘기임. 그런 친척같은 사람들을 오랑캐라고 멸시하고 명나라나 섬기는 조선의 왕족과 양반사대부는 일찍없어져야할 민족의 원흉들이었음
고구려와 발해의 백성들이지요.
근데 최치원은 발해를 금수의 나라라고 했고, 조선 후기에는 호락논쟁을 거론하면서 근본이 다른 짐승이라고 비하했지요 ㅠㅠ.
이성계는 여진을 포섭하려고 했지만.. 후대에 잘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이 우리 민족의 통한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고구려, 백제, 신라 3국 중에서
고구려는 흔적도 안 남고 중국에 의해 소멸되어가고,
백제는 일본으로 이어졌는데,
신라인 우리는 백제와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되어서 서로 이를 갈고 있는 지금 형국이 너무 개탄스럽습니다.
진짜 불구대천의 원수는 중국인데.. ㅠㅜ
아무리그래도 임진왜란때 명이 도와준게 엄청났기때문에 숭명사상은 쉽게 사라질수있는 것의 성질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명이 망하고도 명을 몰래 섬겼죠!
4:40 킹덤 아신전에 나온 내용이랑 비슷하네
조선이 건주가 청나라가 될거라 생각했겠는가
그건 당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였다
태종 이래 조선이 여진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오랑캐 ㅉㅉ'라는 말로 퉁칠 수 없다는 걸 아실텐데 너무 간단하게 표현한 것 같아 아쉬움이 드네요. 3:13 내용을 들어보면 작가님도 조선이 여진에게서 느꼈던 위협과 그에 기반한 실리적인 판단하에 거부했음을 아시는 건 분명해보이는데.
그래도 잘 봤습니다. 오늘도 역시 재밌네요.
수백년을 우리 변경을 약탈하고 공격했던 애들이고 끊임없이 국경 분쟁을 일으켰던 애들인데 그냥 오랑캐라 무시했다 하면 잘못된 말이지. 왜 여진무시했냐 어쩌는 애들한테 미래인이 와서 북한을 용서해야 되느니 아니면 일본을 용서해야 하느니 하면 니가 뭘아냐 우리 감정을 알기나 하냐 발끈할듯
사상과 이념의 무서움...조선 사대부란 놈들이 몸소 보여 주었네...
두드려맞아도 외딴길을 꿋꿋이 걸어가시는 용감함...진심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지금은 미국사대가 당연시되는 시대
누르하치의 정체를 그리도 못 알아차렸을꼬
누루하치는 애신각라 신라 경주김씨 왕족 후손입니다
누르하치의 성인 아이신기오로는 만주어는 쇠의 부족이란 뜻으로 신라를 사랑한다는 뜻이 전혀아님. 그리고 신라는 흉노족이 세우고 지배한 국가임.
@@12coom쇠 금(성 김)
누르하치 거의 사마의급으로 존버타네
여진의 사마의가 여진족 대장님이었네.. 기회의 대가
조선의 명에게 올인한 외교정책 자체가 문제였읍니다
누루하치가 조선의 왕이 되었다면 동북지역과 한반도는 이미 대한민국 이였을 것이다.
아마 지금까지 중국의 일부였겠지.
갠적으로 왜구 토벌 한다고 말한건 블러핑이었을거라고 봅니다.
왜냐면 누르하치 집안은 할아버지때부터 여진족중에서 명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친명파 여진족이었던...
이성량의 군대한테 할아버지+아버지가 살해당했지만 이성량이 손자인 누르하치한테 잘해준거 보면
실수로 죽인거라고 생각하는....
그렇다는건 누르하치 입장에선 자기의 충섬심을 명나라에 보여야 할 행동이 필요했다고 봅니다.아직 임진왜란 때는
세력이 미약했으니까
누르하치 말대로 정말로 명나라가 여진족 약화 시킬생각으로 야 우리가 요동군 출발 할라면 발배의 난 땜시 걸리거든
니네가 먼저 가서 막고 있어 라고 하면 엄청 당황하면서 만력제 한테 그놈은 고려천자더냐? 명의 천자더냐? 라고 까고서
조용히 지냈을거라고 봅니다.
이 당시에 출병할 병력 수준은 안되었으니까요
정말로 출병할 생각이 있었으면 나중에 중원 입관전 조선이랑 전쟁해야하니
조선으 도로망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서 떠든거일수도 있다 봅니다.
누르하치가 정말로 명의 압박이나 자발적으로 출병해서 싸웠으면 여진입장이나 왜군입장에서나 서로에 대한 엄청난 충격이었을거라고
봅니다.
왜군 애들은 대규모의 기병이 없는데 기병대가 와서 휩쓰는 애들이 있다는 거에 놀랄거라 봅니다.
이 당시에 왜군 애들 기병은 편자도 못쓰던게 사실이니까요
쏘고 튀고 쏘고 튀다가 칼 들고 장창진을 무너트리는 애들이 수천기나 있으니
뭐 저런 놈들이 있냐? 하고 놀랬을 거라 봅니다.
건주애들 입장에선 왜군의 조총병+장창진에 대해서 엄청 놀라지 않을까 합니다.
활을 쏘고 튀고 대기병 돌격을 하는데도 버티고 조총의 폭음에 놀라워 할거 같거든요
실제 역사에서 건주애들이 신충일한테 말해듯이 제일 탐내던게 조총이었다고 압니다.
싸웠으면 서로에 대해서 엄청난 충격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대체 역사 소설에서도 이 시점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있는데
건주나 왜국의 지배자가 된 건주국왕 누르하치 태정대신+막부쇼군이 된 도쿠가와 모두
서로의 병종을 탐내서 조선을 중계로 하여 서로의 병종을 교환 하는 내용이 나오거든요
건주국 입장에선 중원 입관할려면 공성+단병접전을 담당할만한 전문 집단이 필요했고
에도 막부가 보내온 반 막부파 무사들을 모아서 왜군팔기로 개편하고 건주국왕 친위대로 삼을정도로 총애 하더라고요
에도막부 입장에선 병력 감축을 시행한 상황이라서 소수 정예 병력이 필요한데
건주의 슈르하치 아들이었던 아민이 왜국에 망명해오니 기뻐하면서 받아주는
얼마나 기뻤던지 도쿠가와가 자기의 막내딸(서녀)를 아민에게 시집보내서 사위로 삼고 자기 원래 성씨인 마쓰다이라를 쓰게 허가해주고
영지도 내려줬습니다.
이 소설에선 사르후 전투 패전 이후에 요동을 공식적으로 누르하치한테 할양 해주고 건주 군왕이란 이름으로 책봉까지 해줬던.....
좀 친하게 지내지...
@@행복회로-y8l 차이나가 떠오르는... 국가라고요? ㅋㅋㅋ 차이나 묻으면 망하는거 자명하고, 차이나의 횡포로 인해 시름시름 앓는 국가가 몇인데 눈가리고 아웅하나요?
블리자드도 차이나 덕분에 망하고, 차이나 노리다가 망하고. 차이나와 연을 안맺으면 그게 사는거 아는데 무슨.
지금 게임이랑 영화계 사업마저도 기술갈취 때문에 차이나 버린지 오래됩니다.
한국에서도 한국 기술 보유자가 차이나에 팔려는거 간신히 막았고, 지금 강원도 유적지에 차이나 타운 세우는 것도 난리 아니구만 이딴 나라와 무슨 친하게 지내자뇨.
할 짓이 없어 자국 망하게 하고 차이나 크게 하는 짓거리에 동조하십니까?
@@행복회로-y8l 닉값하시네요ㅋㅋ 떠오르는 중국ㅇㅈㄹ
중국이 싫긴 하지만 조빱은 아닌데 조빱으로 생각하는 조빱들이 있다.
@@용가리-x3l 미국이 장기전략의 일환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이유가 중국이 떠오르는 나라이기때문이 맞음. 이전에는 그게 소련이었고.
임진왜란 당시로 보자면 누르하치가 여진을 통일하고 병력을 싹싹 긁어모아서 와도 왜군한테 개털림 못이김
소수의 항왜한테도 개털리는데 무슨
청나라 정사책 흠정만주원류고에는 누르하치가 자신이 신라 김씨왕족 후손이라고 언급하고 있음.. 그래서 금나라임.. 그 뒤에 왕 홍타이지는 황태자라는 뜻임..
신라인은 아니고 고려인 이 맞음
애신각라 ㅋ 아이신쭤러 만주어로 김씨부족이라는 뜻.
@@이학준-e8y김씨는 신라임
조건도 20만대군양성했더라면..만주 대마도는 점령했을텐데..에휴..
간이공판절차에서도 자백보강법칙이 적용
학벌 자랑, 고리 타분한 횡설 수설이나 하는 어용 역사 학자들은 반성 좀 해라! 좋은 역사 강의에 거듭 감사 드립니다.
조선과 여진이 나라를 합쳤다면
고구려가 망한게 아쉽...
다 좋은데 목소리 톤때메 ㅋㅋㅋ 아쉽네요 ㅜㅜ
명나라와 조선이 왔다갔다 했는데 그사이에 여진이 있는걸로 그림이 ..
그럼 배타고 왔다갔다?
말이 안되죠.
당시 조선의 강역은 산해관 북동쪽까지였고 여진은 산해관의 먼 북에 있어야 사신과 명의 군사가 왔다갔다 할수있죠...반도사관에서 탈출들하시길...
요동왕 이성량은 뭔뎈ㅋㅋㅋㅋ
그러고보면 한국사 보면 해외와 관련된 전쟁역사보면 60%는 거의다 만주:여진,청나라 ( 병자호란 ) 아니면 일본 왜구와 전쟁기록인것같아요
거의다 북방민족이엿음 거란 여진 몽골 만주 일본도 도요토미처럼 미친인간 하나빼곤 섬에짱박혀잘지내는편임 해적은 .. .별개
대영웅 누르하치!
차라리 누르하치가 조선에 원군으로 오게 해서 누르하치의 힘을 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물론 누르하치가 실제로 도왔을지는 의문이었겠지만요.)
예전에 고구려 광개토 때 신라 구원한다고가서
반속국으로 만든적 있죠.
도와주러가는 사람들이 단순한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고독한미식가-c9y 인정합니다. 국제관계는 철저한 이해관계이죠
병자호란은 조선이 자초했구먼유~
조선을 도와 일본과 전쟁..
조선을 공격? 뭔소리야 ㄷㄷ
조선을 돕겠다면 군사통행만 허가해야지
소 설 이 네. 대 륙 조 선 인 데
그럼 언제 반도가 된 건지 설명해
4:30 중국속국 조선 클라스
세계관 최강자들의 대결이였네요..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여진족=만주족을 만주에서 스스로 멸족시킨 위대한 위인~~~누르하치!!! ......................,.역사를 모르면 저런 위인이 나와 (중국과 전혀 다른) 자기 민족을 스스로 멸족시킴!!!!!!~~~~우리 한민족이 만세를 이어 꼭 유념할 역사의 교훈이다!!!!!
개같은 세상..피 토하는 음악..ㆍ
누루화치 후금을 세우고 나중에 청나라를 세운사람이다.
소찌키 주변국가 왕들이
만력제, 선조 &인조 였는데
이정도면 운에 몰빵한게 확실하지...
태조 이성계가 여진족 밑에서 자랐고 정도전이 이성계의 여진족 덕망으로 유화정책으로 흡수해서 명나라의 관계에서 좀더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길 원했으나 이방원이 조준 때문에 실패 ㅜ ㅜ
제306조(공판절차의 정지)
〶피고인이 사물의 변별 또는 의사의 결정
을 할 능력이 없는 상태에 있는 때에는 법
원은 검사와 변호인의 의견을 들어서 결정
으로 그 상태가 계속하는 기간 공판절차를
정지하여아 한다.
차라리 조선이 여진족을 잘 이용해서 누르하치를 받아들여서 이용했다면 상황이 달라질수도 있었다......제 아무리 누르하치가 후금을 건국했다 해도 조선과 충돌은 없었을것이자......정묘호란(1627:후금) 병자호란(1636:청나라)의 두 호란때 수모를 당하지는 않았을것이다......
네 운이좋아야 청나라 속국되던가 아니면 현제 중국땅이되었을듯...
이성계 때 여진족을 받아들였으면 이런일 있지도 않았음
정말 착하시네요ㅎ왜 사람들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보면서 교훈을 얻지 못하죠ㅎ 십자군전쟁 때 아군이라고 생각할수있는 십자군이 콘스탄티노블을 지나면서 콘스탄티노블과 영토를 어떻게 유린했죠ㅎ 그리고 임진왜란은 조선이 적을 물리치고 이긴 전쟁입니다 전쟁 후반인데 굳히 도움없어도 될것 같네요ㅎ
@@გმადლობთ 명나라 때문에 그렇게 하기는 힘들고 누르하치가 아무리 병력 모아봤자 2만명인데 임진왜란으로 인해 정예화된 조선군을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았겠죠. 노토 부족도 조선군 5천한테 개털렸잖아요
@@장재호-r9w 조선이 이긴전쟁이다. 동의는 하는데 조금 완전한 승전국은 아니지 않나싶어요 승전국으로 그나라에 피해보상을 받기는커녕 제일피해를 본게 조선이랑.명인데 전쟁 덕분에 도쿠가와가 쿠데타 일으켜서 정권장악하고
왜 역사는 찐따들의 주요 먹잇감이 되는것인가
인싸는 현실을 살고 아싸는 과거에 사니까
누르하지 군대 원조 받고 일본군 입장에서 이순신 골치 아픈데 일본 최강 시마즈 군대 북쪽 전선에 동원할 가능성 있죠 어쩌면 전라도 지역이 시간 더벌어게죠 가토 기요마사 발려지만 시마즈 가문 누르하치 군대랑 비벼볼만한 정예군 아닌지
조선이 임진왜란 이전에 여진족과 더큰전쟁을 벌였다면 다른 모습으로 역사가 흐르지 않았을지..
사실 명나라가 그냥 여진족 전체를 조선에게 맡겼다면 고구려 부활시킬 수 있었을까요?
실력은 없고 말과 자존심만 많은나라 중국 한국 ㅋㅋㄱㅋㅋㅋㄱ
여진족은 우리민족이다!우리가 오랑캐 부르는 잘못된 편견이다
그놈에 오랑캐 타령하면서 정작 이성계는 선대가 여진족출신인건 안비밀 ㅋㅋㅋ
여진족 출신 아니예요
토착 여진족
@@성이름-e2x5m 원나라 출신 아닌가?
근데 먼가 웃기네 이성계 자체가 여진족 출신인데 (지들 스스로 전주 이씨라고 하지만 전혀 근거없음) 이씨놈들 오히려 자기 형제들을 업신여기고 우습게 여기면서 머?? 누르하치에게 내주느니 그냥 일본한테 먹히고 말아??
이런 미친 놈들이 있나 싶음.
여진족이 부대를 이끌고 한반도 남쪽 까지 와서 전투를 한 다는 것은 여진이 조선의 주요 지형을 자기들 원하는 대로 정찰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후에 여진이 조선을 약탈을 하거나, 대규모 침공을 할 때 더 용이하게 됩니다.
조선은 원래 여진을 지속적으로 공격했고 조선이 여진에게 한 것 만큼 여진도 조선에 원한이 있었을 터이니 누르하치의 조선 파병은 자기 실리를 챙기기 위한 명분이었을 것이고, 조선 입장에서는 차라리 받지 않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singhdodo4053 그건 님들의 상상이고 그렇게 합리적인 판단이라도 했음 좋겠다는 바램 그 이상 이하도 아님.
조선은 원래 오랑캐라하면 질색하고 무시했음. 나중에 청나라를 정복하겠다고 군사 훈련까지 시켰던 조선인데 ㅋㅋㅋ
실록에 정확히 오랑캐놈들 시러서 안받은것을 그런식으로 상상해서 변호해주지 마쇼 역겨움.
@@리니어-r7r 선조 실록 25년 9월 17일 자에는 싫어서 안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태도가 의심스러워 안 받는다고 되어있는데, 싫어서 안 받는다는 것은 어디에 있는지 혹시 알 수 있을까요?
@@singhdodo4053 그게 여진족이라서 그런거임. 오랑캐는 믿을수없다. 무슨 대단한게 아니라.
@@user-dj5pf3br7m 중공댓글부대가 자꾸 여진설을 퍼뜨리네요 동북공정이죠 댓글다는이들 잘살펴보세요
토요토미히데요시는 서양백인 입니다 역사조작 문제 많아요